vol. 4 첫 혹은 유일 1
JUNE. 2018
부정기 마을잡지
Editor’s Letter
성수동에서의 첫 혹은 유일 쌀밥 혹은 씨앗을 선택하다 내 일상과 우리 문화를 다시 보기
이번 호의 주제는 ‘첫 혹은 유일’입니다. ‘첫’으로 생각을 해보니, 첫사랑도 떠오릅니다. ‘처음처럼’은 이제 소주 이름처럼 들리지만, 그 마음은 귀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첫은 선 지자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것으로 태어나 이후에 두 번째, 세 번째 것들의 길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언젠가 끝도 있을 것이겠구요. 그렇게 존재를 이어가는 동안, 그것은 그 자신에게는 유일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첫은 자연스레 유일과도 어울리는 것입니다. 지난 4월 21일께 경기도 고양 우보농장에 가서 볍씨 열여덟 종을 얻어왔습니다. 노인도, 대춘도, 돼지찰, 무주도, 백석, 백석찰, 버들벼, 북흑조, 숙나, 여명, 올뭇개, 은조, 적토미, 청송도, 충북흑미, 우리 토종볍씨들입니다. 이들 종자는 물론 방아를 찧거나 정미를 통해 ‘ 쌀’이 되어 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그곳에 모인 전국의 농부들처럼, 제 목 표는 그걸 ‘씨앗’으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동네 숲 ‘서울숲’에서 논을 내어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터에서 키워 우리 볍씨를 열배, 백배, 천배로 수확해 보는 것이 목표입 니다. 이 일은 제게 첫 벼농사 농부의 과제를 준 것입니다. 성수동에 와서 사람들이 놀라는 것 중의 하나는 자전거입니다. 어린이서부터 학생들, 아주 머니들과 어르신들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죠. 어디든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평지 덕입 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뚝섬둘레길로 나서거나, 중랑천쪽 송정제방길로 가면 한강과 중랑천으로 이어지는 토끼굴(육갑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전거 타고 여행이 언제든 가 능한 곳이 성수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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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
지난 5월 5일에는 한강상류를 따라 올랐습니다. 춘천까지, 북한강을 따라 올라가는 것 이 목표였습니다. 성수동 제4갑문(트리마제 아파트 옆)으로부터 춘천 신매대교까지는 약 100킬로미터의 길입니다. 이 길은, 한강과 북한강이 팔당댐, 청평댐, 의암댐, 춘천댐, 소양 강댐 등으로 막히기 전까지는 뗏목이 흘러왔던 길입니다. 뚝섬나루터에서 뗏목을 해체해 판 뒤엔, 여러 생필품을 이고지고 해서 다시 물길을 따라 올라갔던 길이겠죠. 종착점과 시 작점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동네의 갤러리 오매에서 두 명의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도파민전은 그 시작부터 흥성 스러웠습니다. 전시는 다양하고 풍부한 형식과 내용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의 첫 개인전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만큼이 가능하지?’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삼 십여 회의 단체전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오매갤러리에서 장소를 주고, 밥도 해주고, 지원을 해주어 작업실이 곧 전시실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작가 만욱 은 평범하고 소심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혼자 해외여행을 감행했습니다. 그 걸 책으로 냈지요. 자신의 출판사에서요. 작업실도 내고, 큰 그림을 그리고, 그리고 전시를 했습니다. 작가로 변신한 것입니다. 그것은 또 어떻게 가능했을지 궁금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놨죠. 그러자 빈 자리에 채워진 것은 주로 그림과 글과 관계되는 것들이었어요.’ 만욱 이 말했습니다. 시작을 할 수 있는 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성수동쓰다>는 동네 잡지입니다. ‘동네잡지’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 적지 않습니다. 동네에 대해, 동네 사람들이, 동네를 위하여 만든다는 쉬운 답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동네의 어느 것을 다루어야 할까요? 이 작은 동네 성수동에 만도 4개의 동이 있고, 초등학교 중학교도 각 4개, 고등학교도 세 개나 됩니다. 지난해 6월 30일 기준, 성수동 주민은 육만삼천여 명이고, 가게와 상점도 피고집니다. 역사와 문화와 예술과 사회와 경제도 끊임없이 돌고 도는데요. 그저 소박하게 성수동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그게 꼭 우리 모두와 연관 되는 큰 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성수동 사람들이, 아니 꼭 성수동 사람이라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 다른 지역 분들일지라도 함께 성수동을 보고 느끼고 공부한 것을 씁니다. 꼭 성 수동에 대한 것이 아니어도 됩니다. 내가 사는 곳의 일상을, 내가 사는 곳의 문화를 이전과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의미는 그 자체로 충분할 것입니다. 시작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유지하는 것, 그것은 참 보기에 좋은 일입니다.
성수동쓰다 편집장 원 동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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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2018. JUNE
1부 첫 혹은 유일
08 다루도서관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처음과 용기 발행인 publisher
원동업
편집장 editor in chief 원동업 편집위원 editor 이성일, 이희선, 이미경, 곽설미, 서수아, 신희섭 디자이너 designer 강민경 일러스트 illustrator 최제희, 강민경 기고 contributing writer 이유상, 정의홍, 임주연, 한희숙, 조나무, 지담, 이상국, 이재민, 김정원, 김지혜, 안형진
10 오직 한 메뉴
30년간 갈비 안 파는 갈비집
14 첫 혹은 유일
발간 성수도시재생주민기자단 후원 성수도시재생센터 동네잡지 <성수동쓰다>는 2018 성수도시재생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첫으로 시작하는 모든 것들이 유일이 되길
18 오매갤러리에서
첫 이전에 무엇이 있었나
22 유일하게 혼자였던 명절
처음, 서울숲에서의 기억
24 성수동 오매갤러리[omae]
첫 경험의 각인들이 만들어 낸 공간
2부 우리 동네 이야기
성수동의 서울 미래 유산
30 영업신고증 2호 1967~2018
성수탕
33 성수동으로 이사 온 서울 미래 유산 <표지사진> 성수탕_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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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씨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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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칼럼
맑은 마을 성수
동네에서 지켜야 할 ‘선’
38 사람과 마을이 사랑에 빠지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40 왼손으로 그린 그림
사는 것 사는 곳
42 31년 경동슈퍼 문닫다
그간 고마웠어요
56 성동구공동육아연합
57 2018 성수작가전
58 골목길 디지털갤러리
60 시간기록소
44 마장동 벽화 마을
침묵하던 골목이 말을 걸다
46 지역 브랜딩을 통한 지역 활성화
4부 그리고 남은 이야기들
69 동시
입양동생
70 에세이
3부 성수 도시재생 공모사업을 소개합니다
50 성수를 ‘진짜’ 거닐다
왜 20대는 고통스럽거나 패기로워야할까?
74 그림
우리는 살고 있다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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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부모로 성장하는 그림책 여행
성수에서 생긴 일들
News
78 에필로그 5
첫....성수동. 텁텁한 가죽내음. 시멘트의 음침함. 상쾌한 자전거 바람에 문화의 향기가 스며든다. 변화의 내음.......
성수동의 첫인상을 개인의 취향으로 끼적이다. 글 그림 최제희 6
1 첫 혹은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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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루도서관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처음과 용기 글 곽설미
처음 보는 이들과 빙 둘러 앉아 누군가는 먼저 말을 시작해야하는 상황, 가장 먼저 말을 꺼 내본 적이 있나요? 처음 말을 걸고, 첫 걸음을 내딛고, 첫 사랑을 시작하는 것. 모두 처음이 라는 용기가 필요한 순간들입니다. 그림책 속에도 많은 처음이 있지요. 초등학교에 처음 입 학하는 아이 이야기를 담은 에마 앨런의 ‘나의 첫 책가방’과 같이 그림책은 처음 시도해보 는 것이 많은 아이들의 마음을 미리 달래주기도 하고 힘이 되어 주기도 하지요. 어른에게 는 또 다른 많은 처음들이 있지요. 보람찬 처음, 후회 없는 처음, 어딘가에는 상처로 자리 잡은 처음도 있겠지요. 나는 어떤 처음과 함께 해왔나요? 여기 용기를 담은 처음이 숨어있 는 그림책 두 권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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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 중 사고를 당해 걸을 수 없게 된 수지. 수지는 매일 아파 트 베란다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봅니다. 앞을 보고 걸 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까만 머리만 보여 마치 개미 같습니다. 강 아지와 어울려 노는 아이들,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 수지 는 늘 모두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지는 용기를 내 소리칩니다. “내가 여기에 있어요. 아무라도 좋 으니.. 위를 봐요!” 수지의 목소리를 듣고 문득 위를 올려다본 한 소년. 수지가 다리가 불편해 내려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 년, 어떻게 했을까요? 소년은 길바닥에 누워 수지를 바라봅니다. 길바닥에 누워있는 소년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지나가던 아주머니도 옆에 눕습니다. 이윽고 지나가던 연인도, 자전거도, 강아지와 아이도 길에 누워 수지를 봅니다. 그리고 수지는 사람 들을 바라보다 위를 올려다보고 미소 짓습니다. 이 책에서의 처음을 찾으셨나요? 다른 사람 의 시선을 무릅쓰고 무언가를 시작하기란 쉽지 않지요. 시작하는 용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요? 우리는 충분히 시작하고 있나요? 이 그림책은 포르투갈에서 왔습니다. 표지 색은 알록달록한 데 말에 탄 장군은 아무도 지나가지 말라고 무서운 표정으 로 소리치고 있는 중이지요. 이 책은 펼치면 왼쪽, 오른쪽 페 이지로 구분되는 책의 특성을 이용한 재미난 그림책이에요. 표지에 나온 장군이 한 병사에게 아무도 오른쪽 페이지로 지나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으라고 불호령을 내리면서 이 야기는 시작됩니다. 병사는 분부대로 마을 사람들을 옆으로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어 어느새 하얗던 왼쪽 페이지가 사람들로 꽉꽉 채 워집니다. 항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큰소리치던 병사는 어느새 작은 목소리로 말을 더듬게 되지요. 바로 그때, 한 아이의 공이 통통통 오른쪽 페이 지로 넘어가고 맙니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병사는 공을 잡으러 뛰어가는 아이들을 처음으 로, 사람들에게 지나가는 것을 허락해줍니다. 사람들이 오른쪽 페이지로 거의 넘어갈 무렵 갑자기 장군이 나타나 병사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며 호통을 치지요. 불쌍한 병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처음에 사람들을 지나가게 해준 것을 후회하게 되진 않았을까요? 왜 장군은 오른쪽을 비워두라고 했을까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혹은 어려운, 나에게 와 닿는 처음 은 무엇인가요? 뒷표지까지 재미난 이야기를 꾹꾹 담고 있는 책.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다 루도서관에 지금 첫 방문을 해보세요. :)
서울숲옆 다루작은도서관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6길 14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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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메뉴
30년간 갈비 안 파는 갈비집 글, 사진 이성일
체부동에 있는 심리 인문 서점 ‘림’은 한 달 동안 딱 한권의 책만 판다. 이 한책서점 콘셉은 일본 ‘모리오카 서점’의 ‘하나의 방, 하나의 책’ 프로젝트에서 따왔다고 한 다. 언론·출판계에서 일하는 젊은 지식인 13명이 만든 중국의 서점인 ‘단향공간’ 도 같은 컨셉이다. ‘림’의 공동대표인 이승욱 대표는 “워낙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 니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혼란스럽고, 책을 골라도 주마간산식으로 허겁지겁 읽어내기 급급한 경우가 많기에 한 달 동안 한 권만 제대로 읽자는 의미로 이러한 사업컨셉을 적용했다고 한다. 이는 비단 책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오후 12시 우리는 그 어떤 업무 에서보다 다소 심각해진다. 어떻게 무엇을 할지 결정내리기 어려운 그것, 바로 점 심식사 메뉴. 200조원에 육박하는 식품·외식산업 규모, 66만 개의 식당, 비록 회 사 근처 식당으로 한정한다 해도 메뉴가 너무 많다. 게다가 외국 음식들의 점유율 이 높아지다보니 점점 메뉴가 어려워진다. 요즘 집밥 먹기도 힘든데 왜 밖에는 그 렇게 발음도 어려운 음식점들만 점점 늘어나는지 참. 이러한 걱정을 단번에 날려줄 식당이 있다. 성수1가 1동 경동초등학교 인근에 위 치한 경동갈비! 이 곳은 메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간판이 ‘경동갈비’지 만 갈비는 팔지 않는다. 대신 여기선 30년 숙성시켜온 집밥을 판다. 딱 요일별 메 뉴 하나씩 딱 5 종류만. 10
튀는 빨간 색과 파란 색의 간판
자 이건 ‘경동갈비에서의 점심식사’라는 긴 레이스의 시작을 알리는 사진이다. 앞으로 리필될 반찬이 더 많다. 생선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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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부끄러움도 웃음도 많으시다. 손도 크시다. 실제 손은 작으신데, 음식을 집어주실 때면 거인의 손이 된다. 대학시절 대기업에서 만든 교내식당의 아주머니 들은 동그랑땡 다섯 개를 집어 식판에는 3개를 내려놓는 사라짐의 마술을 보여줬 다면 경동갈비 사장님은 어느새 우리 곁에 살폿이 서서 반찬을 더 내려놓는다. 그 것도 메인 반찬을. 떡 5개와 생선 2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는 예수님의 그 이적 처럼 보통 2인분은 예사로 먹어치우는 나를 메뉴 하나로 배불리는 그 놀라운 능력. 아직 놀랄 일이 더 남아있다. 경동갈비는 점심식사만 한다. 아 물론 사장님 친구가 놀러오면 오후 네 시 넘어서까지도 장사를 한다. 하지만 성수동에 사는 사장님의 손자가 보챌 때면 가게 문을 일찍 닫는다. 여기선 욕망도 탐욕도 없다. 겉으로만 보 이는 친절도 없다. 와우, 그냥 다 진짜다.
사진찍기 부끄러우셔서 나물 다듬던 바구니로 자체 모자이크 처리하신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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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경동갈비에서는 처음에는 갈비를 팔았다. 예전 사장님은 갈비집으로 재미를 좀 보셨다고 했다. 지금 사장님이 이 가게를 인수하신 다음 얼마 동안에도 갈비메 뉴가 있었다. 하지만 사장님의 남편이 지병으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 메뉴 를 바꾸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갈비는 저녁 메뉴이고 술도 빠질 수 없고, 일하는 시 간이 길어지기 때문일 터. 사장님은 그때부터 남편 병간호도, 손자들 돌보는 일도 식당일도 해냈다고 했다. 그저 담담하게 웃으면서. 나 역시 웃으며 듣다가 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놓칠 뻔했다. 30대 젊은 나도 퇴근 하면 대충 씻고 침대를 끌어안고 있는데 말이다. 씹고 있던 호박나물 맛이 달라보 였다. 그래도 식당을 운영하면서 버는 돈으로 손자들 용돈도 주고 한다며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신다. 70이 넘으셨다지만 미소만은 여전히 소녀같다. 요새 일이 바 빠서 즐거운 일이 별로 없었지만 덕택에 나도 아주 약간은 더 행복해졌다. 식사 를 마치고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 대신 ‘또 올게요’라고 말했다. 나 역시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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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혹은 유일
첫으로 시작하는 모든 것들이 유일이 되길...... 글 이미경 그림 최제희
사랑, 만남, 경험, 눈...... ‘첫’이란 접두사를 ‘설레임’이라는 말로 홀로서기가 가능하게 해주는 단어들이라고 말하면 억지일까? ‘첫’하면 떠오르는 낱말을 고작 첫사랑, 첫만남, 첫경험, 첫눈 4개를 적어보며 ‘첫’과‘설레임’을 동일 시켜본다. 그러고 보니 마흔여덟 되도록 수없이 많은 첫사랑을 해왔던 일, 수없이 많은 첫만남을 가졌던 일, 수없이 많은 첫경험을 해왔던 일과 계절이 바뀔 때마 다 수없이 많이 맞았던 첫눈이 막연히 떠오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설레임으로 가득했던 날 들이 ‘첫’이라는 이름으로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2006년, 8월, 14일 계획하지 않았던 셋째 아이와의 첫만남을 가졌다. 아이가 늦게 생겨 마음고생이 심했던 내가 셋째까지 낳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 당연히 설레임 그 자체 였을 거다. 그런데도 연년생이였던 5살, 4살인 첫째, 둘째를 이웃집 엄마들과 품앗이로 키 우고 있었던 터라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고 솔직히 부담이 더 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첫째는 친정에서, 둘째는 시댁에서 1년씩 돌때까지 봐주셔서 셋째까지는 더 이상 부탁을 드 릴 염치가 없었다. 아니 친정과 시댁에서 봐주신다는 말이 모두 없으셔서 자연스럽게 당연 히 나의 몫이 되었다고 말해야 맞을 것 같다. 당연한데도 이 당연함을 받아들이기까지 정신 적이나 육체적으로 너무나 많이 힘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나마 둘 데리고 즐겁게 하던 품앗이도 유지하기 어려워 이미 또 다른 손녀를 보고 계시느라 정신없는 친정은 말고, 잠깐 이나마 맡길 수 있는 시댁 근처라도 이사가야겠다는 큰 결심을 해야만 했다. 14
그해 11월! 드디어 20년 넘게 살았던 고향같은 지역을 떠나 성동구에 첫발을 디디게 되었다. 처음 얼 마 동안은 성동구 금호동에서의 생활이 익숙하지 않음으로 인해 남편이 출근을 하자마자 퇴근해서 돌아오길 목빠지게 기다리는 게 다반사였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던 그 당시 세 아이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찾은 것이 도서관을 가는 일이였다. 한명은 손잡고, 한명은 유모차 태우고, 한명은 등에 업고, 아침부터 서둘러 간 곳이 바로 아파트를 끼고 있 는 금호도서관이다. 아무리 가까워도 아이 셋과 외출을 하려면 준비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닌지 알지만, 올망 졸망 세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시간때우기 딱이였기에 도서관으로의 외출이 무조건 1순위 가 되었다. 잠든 셋째를 유아방에서 눕힐 때면 행여 깰까 살포시 내려놓고, 그때부터 5살, 4살 아이들 책 읽어주기가 시작된다. 그러면서 주위에 혹시 또래맘이 없나 슬쩍슬쩍 살피 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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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돌보면 하루가 정신없이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지만, 아이들에 게 또래 친구들이 필요하듯 나에게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아이들하고만 있다가는 육아에 지쳐 혹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 도로 힘겨울 때가 여러 번이었는데도 남편한테 왠지 모르게 말조차 하지 못했다. 오히려 5 살 아이가 뭘 안다고 옆에 두고 그런 심정을 하소연을 했으며, 내면에서 일어나는 뭔지 모를 감정으로 인해 짜증을 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을 외면하고 싶어서인 지, 탈출하고 싶어서인지 한번 외출하려면 감수해야 할 많은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기계적 으로 움직여 끝내곤 했다. 아이들 간식, 여벌옷, 갓난아기 기저귀 등 가방에 있는 대로 쑤셔 넣듯 다 넣으면 준비 끝~~~ 이렇게 같은 또래를 두고 있는 엄마들과의 첫만남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만남을 도서관에서 갖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갈수록 도서관에 들르는 것 자체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를 솔솔 느끼게 해주었고, 육아문제도 의논할 수 있는 친구 도 사귀게 하는 소통의 창구가 되어주었다. 수다의 달콤함을..그 무엇과 견줄 수 있으랴?.... 그렇게 시작된 아이들과의 첫 도서관 나들이를 기점으로 눈만 뜨면 아이들 친구, 나의 친구 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 다양한 어린이 프로그램도 친구들과 의논하여 같이 참여를 시키면서 더더욱 도서관과의 밀도를 좁혔다. 그렇게 1~2년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 이들 데리고 품앗이를 같이 할 정도로 마음 맞는 사람들을 제법 많이 만나고 사귀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아이들 일정한 시간 풀어(?)놓고 나머지는 각자 개성과 능력을 살려 요리, 미술 실험 등 엄마선생님의 본격적 활동도 선보였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만남을 엄마들이 더 기다리고 좋아하고 철저히 준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금호도서 관과의 만남은 과다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모든 것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5살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할 무렵 나는 바로 금호도서관에 이력서를 내고 문화 프로그램의 선생님이 되었다. 성동구에 와서 첫 직장 장소로,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금호 도 서관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품앗이를 같이 했던 엄마들이며, 몇 년 동안 함께 했던 이웃들의 응원 속에 설레임으로 가득찬 부모님들과의 첫 브리핑이 있는 날 그동안 품앗이로 다져졌 던 실력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가르칠 것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면서도)자신있게 어필 했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세 아이가 가끔씩 금호도 서관에서 엄마와의 수업을 떠올리며 그때의 추억을 얘기 할 때면 난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어떤 이유든 열심히 산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며 진리인 듯 하다. 요즘 학교 창체 수업이며, 방과후 수업이며, 마을일까지 하면서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남들이 보기에도 벅찰 것 같은 많은 일들을 하지만 다시금 꿈이 생겼다. 8년 동안 일했던 첫 직장 이었던 금호도서관으로 돌아가는 거다. 그리고 그곳이 내 기억속 유일한 직장으로 남길 희 망까지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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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갤러리에서> 도파민최展과 만욱과의 대화
첫 이전에 무엇이 있었나 글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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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최의 첫-삼십 번의 단체전 있었다 흥성스러워, 놀랐습니다. 성수동 오매갤러리에서 열린 도파민최 작가의 도파민 이야기입니 다. 일단 전시된 작품들의 형식이 다양했습니다. 회화도 있었고 조각이 함께 했습니다. 도자 기로 구운 작은 피규어도 전시장 곳곳에 위치했습니다. 마치 이 전시를 위해 전시장이 준비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시에 걸맞는 음악이 흘렀고, 조명이 비추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작가는 한 스무 날 가량(스무 날은 달걀을 품어 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이죠)을 이곳 전 시장에서 작업했다고 합니다. 오매갤러리에서 때때로 밥도 해주었답니다. 그래서 그간 작 업실이 좁아 하지 못했던 ‘대작’도 아예 캔버스를 주문해 마칠 수 있던 것이었죠. 이 작품전이 도파민최 최종한 님의 첫 개인전[18.04.23~05.28]이라는 것을 알고 다시 놀 랐습니다. ‘도파민전’은 주제가 또렷하고, 그에 부합한 형식을 구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장인의 손길을 닮은 노련함도 보였고, 예술가적인 실험의식과 열정도 보였죠. 그런데 첫 개 인전이라고? “삼십 번쯤 단체전을 해 왔었죠.” 하는 작가의 말을 들었습니다. “혼자 하니까 모든 것을 쉽게 결정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진행되는 게 느리더라구요.” 고백도 했습니다. “중독에 관심이 많았어요. 저를 포함해서 우리 세대가 게임에도, 사이버세계에도 빠져 있고 요. 누구든 헤어나오기 어려운 기쁨과 환락이 있거든요. 그게 뭘까 풀어보고 싶었죠.” 좋은 작가는 자신이 정말로 관심이 있는 것을 다룹니다. 삶에서 겪는 문제를 풀고자 분투하는 과 정으로서의 작품을 하기도 하죠. 이 모든 것들도 이해가 갔습니다. 그의 전시 첫날 오프닝에 평론가 옥시토시안(안재우)의 도파민전 해설을 곁들인 퍼포먼스 도 있었습니다. 그는 음악과 함께, 작품 하나하나를 릴레이로 뛰어다니며, 마치 토크쇼 공연 을 하듯이 풀어내 갔습니다. 작가는 작가대로, 평론가는 평론가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그저 하는 것(Just do it)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머리 안에서 하고 싶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 그러면 그렇게 시동 건 것을 가지고, 실제로 해보는 것.’ 모든 첫 시작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겠다 생각했습니다. 시작을 만들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 한번 그냥 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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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욱의 첫-아무것도 하지 않자, 예술이 다가오다 작가 만욱은 오매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전시는 미술가들에게 하나의 성과입니다. 비즈니 스맨들에겐 오더를 따내고 납품을 완료한 것과 같습니다. 소설가에겐 책을 출판한 것과 같 고, 감독은 한 편의 영화를 찍고 편집해서 개봉까지 해낸 거죠. 만욱은 그 갤러리에서 작가 와의 대담도 진행했습니다. 그녀가 쓴 책 <아줌마 왜 혼자 다녀요>를 읽은 분들이 찾아왔습 니다. 성수동과 성동구의 엄마들과 지역 주민들이 그녀 앞에 앉았습니다. 최근 만욱이 해낸 것은 평범한 엄마들이 보기에, 놀라운 것들입니다. 첫째, 작품 전시를 해 내었지요. 둘째 혼자서 해외 여행을 해냈고, 그 내용들을 써내 책을 출판한 것입니다. 출판 사도 차려, 말하자면 자신의 사업체도 가졌죠. 그녀는 큰 벽에 큰 그림을 그렸습니다. 자신 의 기획으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린 거죠. 오매갤러리 아래 음식점들이 여럿인데, 그중 하 나엔 만욱의 벽화도 있습니다. 작업실도 이미 가졌죠. 그리고 그걸 옮아가기도 하고요. 누 군들 처음부터 작가였겠습니까만, 그녀는 전공도 미술이나 공예가 아니었습니다. 평범하게 직장생활하던 소심한 여성이었다고 스스로 말했죠. 어떻게 그녀는 예술가로서의 첫 시작 을 할 수 있었던 걸까요?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다음에, 예술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처음엔 모 든 걸 놓았어요. 직장도 다니지 않았고요. (아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무슨 여행을 꼭 가야겠다고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그 빈자리로 들어오는 것은 거의 전부 다 미술 과 관련된 것들이었어요. 전시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그렇게 자신에게 오는 것들을 회피하지 않았던 것이죠. 시작이 되면 그 다음은 그걸 지속 하는 것입니다. 만욱은 시간 안에서, 공간 속에서 차근차근 삶과 작업들을 쌓아올리고 있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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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혼자였던 명절
처음, 서울숲에서의 기억 글,그림 강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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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이자 유일하게 오롯이 혼자서 보낸 명절이 있다. 서울숲이 개장한 가을의 추석이 다. 고향이 부산인 나와 동생은 대학 진학으로 서울에서 살게 되었는데, 동생이 휴학을 했던 2005년의 추석에 나는 귀성길 차편을 구하지 못했다. 사실 의지만 있었다면 심야버스를 타 고서라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약간의 귀찮음과 소심한 일탈로 혼자 명절을 보내려 마음을 먹 었었다. 부모님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씀을 드렸지만 마음속에는 처음 홀로 보내는 명절에 대한 설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같이 시간을 보내고자 계획했던 친구들도 추석 당일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 집으로 갔고, 명절 당일엔 배달음 식점이며 마트도 문을 열지 않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었는지. 짧다면 짧은 하루지만 아무 정 보도 준비도 없이 맞은 추석 하루는 너무나 길고 지루했다. 게다가 차례 준비로 바쁘신 부모 님과의 짧은 통화 후에는 왠지 서글프기까지 했다. 즐거울 줄 알았던 휴일이 우울해지려고 할 때 자전거를 끌고 서울숲으로 갔다. ‘동네에 멋진 공원이 있다니 얼마나 좋아! 책도 읽고 음악 들으며 그림도 그려야지‘ 했던 즐거운 나의 계 획은 어마어마한 가족단위 인파를 보고 또 한번 좌절됐다. 평소에도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날의 서울숲에서 혼자 명절을 보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 보였다. 여유 있게 앉 을 자리도 없을뿐더러 어딜 가도 대가족들 틈에서 괜히 눈길만 받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래도 그냥가긴 아쉬워 꿋꿋하게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돌다가 무겁게 메고 간 필름 카메라 로 사진도 찍고 공원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찍은 사진으로 후에 학교 오픈스튜디오에서 전시도 했었는데 지금은 어딜 갔는지 필름을 못 찾는 것이 아쉽다. 그 많 은 사람들 틈에서 찍은 사진이 얼마나 쓸쓸한 풍경들인지...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 때 내가 느꼈던 외로움이 가득 담긴 사진이었는데. 짧은 나들이 후 저녁에 엄마랑 통화를 하는데 얼마나 엄마아빠가 보고 싶었던지, 흐르는 눈 물에 울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한 번도 명절을 혼자 보낸 적은 없 다. 가는 길이 멀고 힘들어도 꼭 표를 예매해서 다녀왔고 그 과정에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행복했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새로운 내 가족을 꾸린 지금 그 날의 서울숲을 생각하니, 내 딸은 그 날 내가 느꼈던 감정을 모르고 자랐으면 좋겠다 싶다. 살면서 많은 경험과 감정들을 느끼면서 배우는 것이 많겠지 만 엄마 된 마음으로 딸이 굳이 그런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으면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그 날 혼자 있는 딸이 얼마나 마음이 쓰였을까? 엄마한테 또 미안해진다. 나의 처음이었고 유일한 ‘홀로 추석’ 의 기억은 그날이 무슨 날이었는지는 헷갈려도 그날 의 서울숲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내 가족 아닌 다른 가족들 틈에서 처음 홀로 명절을 보냈던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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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오매갤러리
첫 경험의 각인들이 만들어 낸 공간 글, 사진 서수아
첫 작품 평범한 어느 날, 동생과 남겨진 방에는 레고 블럭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흐트러진 레고 블럭들만이 나의 눈에는 집중의 대상이 되었다. 메뉴얼화 되지 않은 레고 블럭들을 쌓 으며 나는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해 보았다. 상상은 또다른 상상을 불러오고 나의 머릿속에선 점점 현실화되었다. 평범했던 그 날 내가 만들었던 집에 대한 기억은 평범하지 않은 기억으 로 각인되어 상상의 공간이 계속 맴돌게 된다. 첫 개인전 무언가를 만들기 좋아했던 나는 8살 필연적으로 도예를 배웠고 흙으로 매주마 다 작품을 만들었다. 잠시 만드는 경험을 해 보고 싶었던 계획은 6년 이상이 지속되었고 작 품은 쌓여져 갔다. 쌓인 작업을 가족들에게 공유하고 싶었던 나는 방과 동선을 갤러리로 꾸 며 가족과 친척을 초대하는 초대장을 보냈고 초대하여 작품도 파는 기회가 있었다. 이로 하 여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용돈까지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첫 선물 처음 내가 누군가에게 준 선물은 어머니 생신선물로 드린 100% 내가 만든 것으 로 꾸며진 선물 꾸러미였다. 쓰다 버린 박스와 포장지를 모아 선물 상자를 만들었고 흙으로 그릇을 만들고 말린 꽃을 가득 담아 그릇 밑바닥에 마음을 썼다. 생애 태어나 처음 만들어 본 선물을 어머니께서는 너무나 기뻐하셨고 기쁘신 나머지 눈물까지 보이셨다. 이 경험은 나에게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경험케 하는 소중 한 계기가 되었다.
첫 작품 첫 전시 네온메세지전(2018년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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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처음 붓을 다시 들어 작품을 만든 그녀 오매 타일아트 워크숍 (2018년 3월)
도파민최의 첫 개인전 도파민랩 개인전(2018년 4월)
처음 만들어 본 아트슈즈 오매 커스텀슈즈워크숍 (2018년 5월)
성수동 오매(OMAE)갤러리는 내게 각인된 첫 경험들이 자양분이 되어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런 내가 어릴 적 경험한 소중한 첫 순간들을 선사하는 곳, 첫 경험의 설레임을 상기시켜 주 는 곳, 그리고 평생에 기억될 만큼 좋은 첫 경험을 만들어 내는 곳이 오매가 되었으면 한다.
첫, 유일 By 서수아 (245*245mm, mixed media) 첫 사랑, 첫 만남, 첫 행복이 주는 설렘과 풋풋한 감정을 커다란 풋사과로 표현했다. 작품에 청개구리는 처음 사랑을 할 때 실제 사랑하는 마음과는 달리 행동하거나 표현하는 미숙함 을 뜻한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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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림 최제희
우리동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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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의 서울미래유산> “오늘, 우리는 100년 후의 보물을 준비합니다.”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의 소개입니다. 문화재로 등 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미래 세대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유형 무형의 모든 자산들을 지정 하여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2018년 5월 31일 현재, 성수동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 래 서울미래유산은 여섯 개. 당신이 지정하고 싶은 서울미래유산 혹은 성수미래유산은 무 엇입니까?
1회차 ; 성수탕과 공씨책방 ※ 공씨책방은 서대문구 창천동 소재이나, 2018년초 성수점 열림. 2회차 : 뚝섬승마장과 서울경찰기마대 3회차 : 성수대교참사희생자 위령탑과 구두제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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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에 터잡은 서울미래유산
1960년대의 목욕탕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수탕. 가운데 물을 떠서 앉아 목욕을 했다.
영업신고증 2호 1967~2018
성수탕 글,사진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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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탕은 서울시가 지정한 미래유산입니다만, 정작 성수탕에는 그 표식이 없었습니다. 서 울미래유산 선정 후, 동판을 가져가라는 소식을 늦게 받았기 때문인데, 어찌보면 주인장이 특별히 그것에 ‘욕심’이 없어보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직업을 갖든, 그 종사자들은 그 직업을 어느 정도 닮게되는 것이라면, 성수탕의 주인 이창훈(43) 씨는 맑은 물을 닮은 것처럼 보였 습니다. 훤칠한 젊은이었구요.
“목욕탕에 무슨 쓸 것이 있겠어요? 이야기를 들어도 재미도 없을 거예요.” 창훈 씨는 겸손해 했지만, 차근차근 성수탕과 성수동과 미래유산으로서의 목욕탕 이야기는 자연스레 나왔습니다. 성수탕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67년. 창훈 씨의 부친 이치 님이 이곳 목욕탕을 인수받았습니다. 당시엔 집에 목욕탕 혹은 샤워시설이 없는 집이 많았습니다. 그 러니 명절이면, 휴일이면,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 목욕탕 행은 너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목 욕탕은 긴장된 의례를 위한 장소요, 휴식을 취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대개는 1층에 목욕탕이 있었습니다. 성수탕도 남탕과 여탕 사이 벽 윗부분은 트여있 어서 엄마와 아들이 서로 약속도 주고받았죠. 바가지로 중앙의 물을 퍼, 몸에 끼얹으며 목욕 했던 흔적은 여전히 있습니다.
“성수동에도 동신탕, 한강사우나, 유성사우나, 충남탕…, 이런 곳이 다 사라졌어요.” 사우나가 대중화되고, 90년대 후반엔 대형찜질방도 자리를 잡으며 벌어진 일입니다. 헬스 장 수영장 등도 활발하게 이용하는데, 그곳도 샤워시설이 있으니까요. 세신사로 일하고 있는 김진성 님은 삼십여 년 ‘이쪽 일’을 해왔습니다. 성수탕에선 3년여쯤 됐죠. 남탕은 여탕보다 손님이 적지만, 오신 분께는 “정성스레 잘 때를 밉”니다. 바닥도 물도 수건도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죠. 주인장 창훈 씨는 2003년여부터 카운터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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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탕은 아침 5시 30분에 열고 저녁 8시에 닫는다. 매주 수요일은 휴무
“손해 보며 문을 열고 있진 않죠! 아예 사람이 없진 않고, 그래도 손님이 들고 납 니다. 서울시 문화정책과 분이 그러시더군요. 잘 지켜 주셔서 고맙다고.” 언젠가 아들 손 잡고 성수탕엘 가야겠습니다. 내 아버지 손잡고 갔던, 그 목욕탕이 기억나 겠지요. 사각사각 때수건으로 몸을 밀고, 뜨거운 탕에도 들어갔다가, 발그라니 몸을 데운 후에 나와 ‘목맥’(목으로 넘기는 맥주) 한 잔도 시원하겠습니다. 아이에겐 야쿠르트를 주고 요. 성수탕은 재개발이 예정된 성수동 성덕정길 골목에 있습니다. 아직은 옛 풍경을 간직한 이곳이 더 소중한 이유이겠습니다. 주소 서울시 성동구 성덕정19길 11 32
성수동으로 이사 온 서울미래유산
이곳은 천국인가 보물섬인가?
공씨책방 글,사진 원동업
“만일 지상에도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의 모습과 같을 것” 이라고 보르헤스가 말했습니다. 작은 책방 공씨책방에 들어가보니, 그 말은 서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 니다. 켠켠이 옛날책들이 쌓여있고, 다른 한 켠으로는 음반들이 흥부네 집 자식들처럼 나란 히 꽂혀있습니다. 책들과 음악의 속살거림이 상상되는데, 책을 골라 펼치면 즉석으로 천상 의 소리들이 울려퍼질 것 같습니다. 음반을 통해 음악이 공씨책방을 가득 채우기도 합니다 공씨책방에 ‘공씨’는 없습니다. 책을 주로 담당하는 분은 장화민(62) 님. 1972년에 헌책방 1세대로 시작한 그의 이모부 공진석 님의 책방을 남편 왕복균(62) 님과 이어가고 있는 것 입니다. 동대문구 이문동 경희대 앞에서 시작한 책방은 서대문구 창천동을 거쳤고, 임대료 가 상승해 지난해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동구에서 공공안심상가를 조성해 공모 를 했는데, 6대 1의 경쟁을 뚫고 낙점된 공씨책방이 성동구 성수동에 둥지를 틀게 된 것입 니다. 남편 음반, 부인 책, 이렇게 역할을 분담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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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씨책방은 정말로 진짜로 헌책방입니다. 도심곳곳에 있는 알라딘 중고책방에서는 거부될 법한 헌책들입니다, 손을 잘못대면 바스라질 것같은 책들도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 나와 헌책이 된 책들도 서가 한 곳을 채우고 있습니다만, 200년 묵은 책도 창천동점에는 아 직 있지요. 36평방미터 좁은 ‘성수점’에 책을 다 옮겨놓지는 못했고 현재 두 부부는 이산가 족이 돼 있습니다. 저는 그간 말로만 들었던 책 <숨어사는 외톨박이>(뿌리깊은나무)를 샀습니다. 절판본 희귀 본만 수집한다는 박균호 씨에게 그런 책이 3,500여 권인데, 만약 집에 불이나 책 한 권만 가 지고 나가야 한다면 1초도 망설임 없이 들고나갈 책이라고 했던 그 책입니다. 정가로 인쇄 된 것보다 열 배를 더 주고 샀지만 보물을 잡아든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400여 권쯤 모으고 있는 네셔널지오그래픽을 또 열 권쯤 보탰지요. 그것 역시 기쁨으로 가득찬 행위였 습니다. 이곳은 천국이자 보물섬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어떤 보물을 발견하게 될까요? 참, 공씨책방은 서울시가 지정한 서울미래유산입니다. 공씨책방의 이사로 성동구 는 여덟 개의 서울미래유산 보유구(성수동은 여섯 곳)가 되었습니다.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130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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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칼럼
동네에서 지켜야 할 ‘선’ 글,사진 이상국
변화가 빠른 도시에서의 삶이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동네에 새롭게 생긴 공간을 탐방 하고 잘 디자인된 밥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할 때는 신나고 즐겁다가도, 동네에서 오래된 식 당이나 세탁소가 갑자기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는 뭔가 아쉽고 섭섭한 기분이 든다. 도시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반갑기도 아쉽기도 한 게 참 아이러니하다. 우연한 기회에 성수동에 터전을 잡았지만, 이제 동네는 나에게 삶터와 일터, 심지어 쉼터까지 일치하는 공 간이 되었다. 점심에는 직장인으로 가끔 새롭게 생긴 공간에서 밥을 먹고, 저녁에는 주민으 로 동네에 오래된 식당에 찾아가 밥을 먹는 일이 자주 반복됐다. 그리고 쉬는 주말에는 가 끔 서울숲에 산책을 나간다. 막 목련 꽃이 올라오던 지난 봄, 자전거를 타고 서울숲을 거쳐 내가 일하는 카페 앞을 지나 다 우연히 들었던 대화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성수동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 들이 카페성수에 대해 나누는 대화가 귀에 닿는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한 기분 이 들었다. “내 친구들 집이고 아저씨들 집이었는데, 유명한 카페가 됐어.” 여자의 말에 같이 걷던 남자가 물었다. “그럼 지금 그 친구들 뭐해?” “이사 갔어 멀리.” 당시 순간에는 여자가 느꼈을 감정이 어떤 느낌인지 잘 몰랐다. 단지, 처음으로 지역 주민들 의 입장이 나의 피부 깊숙하게 직접적으로 전해진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여자가 느꼈 던 감정을 나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이상국 함께하는 성수동을 좋아하는 동네 청년이자 마을 주민. 청강문화산업대학교의 문화공간 성수동 카페성수 가 일터다. leesang30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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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가 운영하던 동네의 작은 세탁소는 이제 카페로 변했다.(촬영일 20170505)
요즘 주말이면 성수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촬영일20161217)
성수동에 새롭게 생긴 공간이 점점 많아지는 만큼, 이제 내 기억에서만 존재하는 공간과 사 람도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변하고 공간이 변화하면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 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아주머니의 손맛도, 또 그 공간을 찾아오던 동네 근로자들의 모습 도 자연스레 자취를 감췄다. 동네의 변화 흐름에 발맞춰 성수동에는 모두 떠나거나 사라져서 얼마 남지 않은 유일한 것 과 이제 처음 생겨나기 시작하여 유일한 것이 공존하게 되었다. 골목 사이사이에 새롭게 들 어 온 예쁜 카페와 세련된 식당은 주말이 되면 젊고 새로운 외부인들이 찾아오는 서울의 핫 플레이스로 유일한 가치를 뽐내고 있다. 그에 반해, 오랜 시간 성수동을 지탱해 온 작은 공방이나 공장과 같은 전통적인 상업 공 간, 주민들이 일상으로 이용하던 작은 세탁소와 목욕탕 등의 대중 이용 공간은 점점 자취를 감추어 이제는 소수가 유일하게 남아있다 36
낡고 오래된 것을 새롭게 창조한 공간은 성수동 역사의 단면을 축소하여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사회의 변화 흐름과 함께 사라지고 떠나서 유일해 진 것이든,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창 조하여 만든 유일한 것이든 둘 다 오직 하나라는 점은 마찬가지인 사실이다. 특히 마을이라 는 커뮤니티 안에 각자만의 개성을 내뿜고 있는 콘텐츠들이 다양하게 혼합되고 공존하는 모 습은 도시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유일한 풍경이다. 서로 다른 성질의 유일한 것을 바라보며 도시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공존해 나가야 할지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동물이든 공간이든 어떤 대상이 유일해 지면 공통적으로 관심이 집 중되기 마련이다. 사라져서 유일해 지는 것에는 생명 다양성을 지키려는 사람들로 대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새롭게 창조하여 유일해 진 것은 다양한 가치 기준으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욕구와 미적 취향에 맞춰 기획된 디자인이 빛을 발휘하여 관심으로 이 어진다. 나는 같은 듯 다른 유일함이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어울릴 때 더 아 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이 사라지면 도시는 활기가 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성 수동의 다양성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지켜야 할 ‘선’은 동네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을 존중 하는 문화가 아닐까 싶다. 동네에서 함께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인식하고 조화로운 삶을 사는 것, 당신이 새롭게 창조한 공간이 누군가가 떠나버린 친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기억 되지 않도록 만드는 현명한 방법이다.
한때 국밥집이 몰려있던 성수동 골목은 이제 새로운 가게들이 자리를 잡았다.(촬영일 20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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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마을이 사랑에 빠지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글, 사진 곽설미
서울에 살기 시작한 것은 19살 때부터였다. 대학입시를 위해 부모님과 떨어져 서울로 올라와 홀로 살기 시작했다. 서울의 첫 인상은 높고 복잡했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학교 근처에서 살았다. 그곳의 서울은 산, 그리고 언덕길이었다. 성수동에 오게 된 것은 성수동 토박이 남편을 만나 신혼집을 얻으면서였다. 신혼집은 서울숲 건너편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한창 서울숲역 공사 중이었다. 길 건너 서울숲에 잠깐 나갈래도 철컹철컹하는 철판을 딛고 땅을 깨는 소음을 건너 가야했기에 성수동의 첫 인상은 그다지 유 쾌하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점이 있다면 평지라는 것, 잘 가꿔진 공원이 있다는 것, 한강이 가 깝다는 것들이었다. 큰 아이 출산 후 백일 즈음에 경수초등학교 근처로 이사를 갔다. 그곳의 성수동은 가죽과 공장, 자동차였다. 유모차를 끌고 이마트나 아이 놀이터, 서울숲에 가는 길에는 연무장길을 통해 가 곤 했는데 그럴 때면 공업지대인 성수동의 모습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둘째 백일 즈음 해서는 서울숲 옆길로 이사를 왔다. 집에서 나와 한 번 두 번 꺾으면 서울숲 입 구다보니 틈만 나면 서울숲에 갔다. 서울숲에서 재즈 콘서트가 열리면 창문 너머로 어렴풋이 재즈 선율이 흘러 들어오고, 새벽에 아이들이 까무룩 잠들어있는 사이 남편과 몰래 손잡고 서 울숲에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아이들은 두말 할 것 없이 아침이고 낮이고 밤이고 서울숲에 가 자고 졸랐다. 이때의 성수동은 서울숲과 다정한 골목길이었다. 38
셋째를 출산할 즈음에는 성수동의 모습은 또 달라져 있었다. 2017년 서울시내 골목상권 매 출 1위라는 기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성수동이 서울의 소위 핫 플레이 스로 떠올랐다는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것이다. 집 주변 길거리의 오래된 가게, 창고들은 대부 분 식당, 카페, 옷가게, 스튜디오로 바뀌었고 이는 현재진행 중이다. 지금의 성수동을 정의 하자면 인더스트리얼 무드의 복합 공간들, 소셜 벤처 정도가 추가되었을 것이다. 그 외 서울 숲이나 공업지대, 수제화 산업이라는 큰 성수동의 인상들은 각 특징을 품고 여전히 그곳에 있고 자라나고 있으니 성수동을 ‘서울의 브루클린’으로 만들겠다던 구청장의 야심찬 선언이 성공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듯하다. 성수동살이 8년차. 앳된 신혼부부에서 아이 셋의 엄마가 되는 동안 성수동을 정의하는 나 나름대로의 기준도 점차점차 바뀌어왔다. 외적 요인들로부터 나의 삶으로. 나의 삶 가운데 쯤에는 성수동 사람들이 들어왔다. 다루도서관으로, 공동육아로, 이웃으로 만나게 된 동네 사람들은 어느새 주거 문제나 아이들 학업을 핑계로 훌쩍 떠나버리기에 마음 아픈 인연들 이 되었다. 함께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마음을 터놓고 신뢰를 쌓아온 소중한 관계들. 그 관 계들이 타지로의 이사를 마음 한구석에 늘 꿈꾸었던 신혼 초와 달리 이제 성수동이 나를 뱉 어내지 않기를 바라도록 바꾸어 왔다. 이제야 배운 것이다. 사람과 마을이 사랑에 빠지기 위 해선 무엇보다도 또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에도 직장 때문에, 학업 때문에, 결혼 때문에 새로운 동네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사람들을 응원한다. 사랑에 빠져볼 수 있기를. 그리고 성수동을 선택한 이들이라면 내가 그 사랑을 도울 수 있는 이가 되어보기를 스스로에게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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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으로 그린 그림 그림 조나무
왼손으로 그린 그림을 처음 만난 것은 우리동네 ‘카페성수’ 과학북클럽입니다. 그곳서 이지유 과학저 술가가 모임을 끌어주셨는데, 그 분이 소개한 자신의 책 <펭귄도 사실은 롱다리다>가 왼손으로 그려 지고 쓰여진 책이었습니다. 짧지만 강한 인상으로 남은 데일리 드로잉, 더구나 ‘불편한’ 왼손으로 그리 다보니, 새 세상이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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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무 범띠 전갈자리. 가끔 스콘을 만들어 나눠먹는다. 토요일 아침 혼자 영화보기를 즐기 며, 도서관에 한 달 3권의 책을 사달라고 졸라 그걸 읽는다. 아직 소녀감성이 남아있는 그녀 다. ys20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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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경동슈퍼 문 닫다
글, 사진 원동업
31년 한 자리 폐업하는 동네가게 경동슈퍼 “상원길에서 장사를 하다, 87년에 이 곳이 신축될 때 여기로 왔어요. 그 당시엔 이 건물 이 여기서 최고로 높았어요. 엘리베이터도 처음 생겼고, 수세식 화장실도 있어서 주변 서도 많이 왔죠. 문 닫으니 시원함보다는 섭섭함이 더 크죠.” 장석명(64) 님과 최경희(62) 님 부부는 오는 5월 18일, 31년간 장사해온 경동슈퍼의 문을 닫는다. 1987년 8월 4일 오픈해 생활에 필요한 온갖 상품들을 진열하고, 계산하고 배달해 온지 31년만이다. “작은 공장들이 많을 때는 배달도 많이 했어요. 기숙사도 있어서 트리오, 세제부터, 장 갑, 계란까지 주문이 왔어요. 근처 연립주택서도 장을 많이 봤고…. 근데 지금은 다 떠났 잖아요. 지금은 모두 인터넷서 쿠팡 같은 데로 주문을 해요. 배달원 구하기도 어렵고, 최저임금 맞추기도 어렵고…. 우리 잘못이라기보단 시대가 변한 거죠.” ‘나들가게 코사마트’는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인사 나누고, 요기 해결하던 동네 사랑방이 었다. 아이들은 방앗간에 들르는 참새떼처럼 쭈쭈바를 물고 나가고, 청소년들은 사발면을 사들고 나갔다. 전구가 나갔을 때, 동태탕을 먹고자 할 때, 백숙을 하고 돼지김치찌개를 할 때, 이곳은 늘 유용했다. 나들가게 코사마트 간판과 함께지만 우리의 기억속에 이곳은 늘 경 동슈퍼(성수동쓰다 2호 참조)일 것이다. 이 자리에는 편의점 CU가 들어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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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분의 대통령이 다녀간 성수동 공장터 근처, 탱크라도 만들 장인, 공구상, 공장직원들의 물결, 여기는 그랬던 곳”
장석명 님이 기억하는 이 곳 경동빌딩의 시작 1980년 지하철 2호선이 개통했다. 지금은 지상철이 다니던 뚝섬역-성수역 부지는 아차산 에서 중랑천으로 이어지는 개천이 있던 곳이었다. 지금은 성수동 곳곳의 지식산업센터로 넥 타이 부대가 아침저녁으로 물결을 이루지만, 1970년대 이곳 성수동에는 섬유 봉제업이 성 했다. 광나루길 버스에서 내린 여공들이 알록달록 옷들을 입고, 상원길을 거쳐 이곳 성수동 으로 몰려들었다. 지금의 용답동-한양대 앞 중랑천을 따라 판자촌이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이곳 경동빌딩 앞 오거리를 혜림오거리라고 한 건, 여기에 혜림화학이란 큰 공장의 부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했던 헤이그라운드 부지는 이전에 제빙공장이 있었 다. 그 곳을 박정희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이 방문했으니, 세 명의 대통령이 오신 자리가 됐다. 화학공장의 오염 때문에 농작물이 죽는 등 사고가 일어나자 혜림화학은 떠났다. 그 넓 은 부지는 몇 개의 필지로 나뉘어 팔렸고, 상가들도 새로 들어섰다. 경동빌딩도 그렇게 지어 졌다. 장석명 님은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했다. “저기 앞에 보이는 희망상사 있죠? 저는 그분을 장인으로 존경해요. 청계천 말할 때, ‘탱크라도 만들 사람들’ 그러잖아요? 저기 주인장이 그런 기술을 가진 분이에요. 외국서 들어온 전자전기 과학장비도 고치거든요. 말씀은 별로 없으시지만, 부인이랑 제대로 하 시지. 그리고 이 집 뒤로, 대경화학이라고 있어요. 대경분채 옆에…. 거기 분도 꼭 만나 셔야할 분이에요. 모나미 있을 때, 볼펜심 만들던 기술장인도 있었지. 세광주방, 대림상 사…. 참 둥지회도 찾아보세요.” 사람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저 사람들을 글의 기록으로 삼을 일이다. *장석명 님의 ‘사람들 기억’ 은 <성수동쓰다> 5호에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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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동 벽화 마을
침묵하던 골목이 말을 걸다 글, 사진 이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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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골목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벽화 서울 성동구 마장동 벽화마을은 5호선 마장역 4번 출구 뒤편 골목으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 다.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음으로 사람들의 발길 또한 잦지 않 다. 그러므로 더욱 소중하다. 통영 동피랑 마을에서 시작된 벽화는 전국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지금은 전국 주요 도 시마다 벽화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며 서울에도 여러 동네 골목에서 벽화가 그려졌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이화 벽화마을에선 유명세를 타고 중국인 유커(?) 들은 천사 날 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긴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고 30분 이상을 기다려야한다. 너무 많은 관광객들이 밀려들면서 심각한 소음공해를 참지 못한 주민들은 마침내 계단의 대형 붕어 그림을 지워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곳 마장동 벽화마을은 아직은 알려져 있지 않아 사람들의 발걸음도 드물어 조용 하다. 그러나 이화 벽화마을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정다운 좁은 골목길과 간혹 있는 폐가와 창신동 절개지에서 볼 수 있는 대형 바위 절벽이 어우러져 묘한 골목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이유상 :http:// blog.naver.com/uslee3232 성동구 여행서포터즈로 활동하며 취미 사진가 겸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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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외치는 지역브랜딩은 과연 무엇일까?
지역 브랜딩 이전에 지역활동 있다 글 정의홍
우리에게 ‘지역 브랜드’는 어떤 의미일까요? 지역 브랜드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도시 브 랜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해를 같이 하면 좋겠습니다. 사실 도시 브랜드와 지역브랜드 는 범위(규모)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실제 브랜드를 강화하고 만들어가는 과정 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개념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도시 브랜드라는 용어가 다소 이해를 돕기 쉬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도시 브랜드에 대해서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도시 브랜드는 그 도시만의 역사, 사회, 문화적 특성을 비롯한 도시만의 독특한 가치를 정체 성으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국가 간 경쟁보다는 지역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개별 도시들이 생존하기 위해, 해당 도시에서 만들어지는 제품과 해당 도시 자체의 매력을 강화하기 위해 서 선택하고 있는 전략입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쇠퇴한 도시나 지역의 재활성화 를 위해서 많이 고려하고 있는 전략이지요. 도시 브랜드를 구성하는 것은 크게 이미지적 요 소와 전략적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적 요소는 도시 브랜드의 네임, 슬로건, 스토리, 캐릭터나 심볼과 같은 언어적으로 시각적으로 도시의 가치를 이미지화 하는 것들 입니다. 전략적 요소는 지역의 문화, 축제, 경제(지역기업, 지역경제), 인프라, 내외부 소통과 같이 도시 브랜드가 말하는 가치를 실제적인 가치로 만들어 내는 과정입니다. 많은 지자체들이 이미지적 요소를 개발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만 보다 본질적인 것 은 우리가 이야기 하는 가치를 실체화 하는 것이라 하겠죠. 그래서 도시 브랜드는 지역의 유 형, 무형 자산을 이용해 다른 지역과 차별화 할 수 있는 특성을 전달(이미지화)하고 실제화 (전략화)해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의 변화가 먼저 필요합니다. 도시 브랜드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이자 현대적 개념의 도시 브랜드 초기 사례인 뉴욕시의 경우에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이러브 뉴욕’이라는 슬로건과 로고가 나오기 전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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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기존에 제조업과 물류기지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통제불능의 아스팔트 도시’라 불렸습니다. 거리는 더럽혀졌으며 각종 범죄가 난무하는 거 대한 슬럼이 형성된 것이지요. 이 때 생겨난 것이 abny(association for a better new york)이라는 연대조직입니다. ‘더 나은 뉴욕연합’으로 번역할 수 있겠네요. 이것은 여러 기 업과 지역의 다양한 조직(협의체나 주민 자체모임 등)을 대표하는 리더들이 모이는 모임으 로 뉴욕시의 발전과 변화를 위한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이 모임은 현재까지도 뉴욕 시의 발전을 위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뉴욕시는 ‘세계 문화 예술의 수도’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 기업들이 예술문화 사업에 지원하고 있으며 거리에는 브로드웨이의 유명 배우들이 무료로 뮤지컬 공 연을 열기도 하고 유명 레스토랑들은 파격적인 세일행사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시 정부도 이에 부응해 도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각종 조례를 제정하고 있으며,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제작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뉴욕시의 ‘창조성’, ‘에너지’, ‘첨단’의 브랜드 이미지는 이처 럼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무엇보다도 민간영역의 고민과 실천이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다만 이러한 노력이 다른 도시나 지역과 비교되는 것은 브랜드 관점의 전략적 접근이 이루 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시민들이 먼저 뉴욕을 사랑하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말하고 행 동하였기에 뉴욕을 찾는 많은 관광객과 투자자들도 ‘I love New York’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도시브랜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 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 다. 그리고 도시브랜드의 통합적이고 일관된 전략은 외부(이주민, 관광객, 투자자)인들도 공 감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정의홍 국토연구원에서 일하다 성수동에 있는 모라비안 프라트룸이라는 브랜드컨설팅 회사에 있습니다. 지역의 브랜딩과 마을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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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성수도시재생 공모사업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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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성공소 <III-1 성수를 거닐다>
성수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 ‘성수를 거닐다’ 탐방기
성수를 ‘진짜’ 거닐다 글, 사진 이성일
“도시 산보자는 거리를 배회하면서 사물을 관찰하지만 동시에 그 스스로가 사물 및 공간 에 의해 주시되고 그것들이 요구하는 바를 읽어야만 한다. 산보자는 대도시의 빠르고 화려 하게 변하는 시공간적 문화에 동화되지 않기 위해 저항적인 몸짓과 인식을 취한다. 그런 의 미에 서 산보자가 느리게 걷는 것은 기계적인 리듬에 종속되지 않는 가운데 내적인 감수성 을 확보하고 동시에 삶의 성찰적인 리듬을 회복하려는 제스처에 다름아니다” -발터 벤야민대도시에 태어난 우리는 살면서 많은 걸음을 옮긴다. 출근하면서, 장을 보면서, 그리고 누군 가를 만나면서 온통 도시를 쏘다닌다. 그리고 휴일이면 굳이 야외로 나가 시간을 또 보내기 도 한다. 우리에게 도시라는 공간은 경제적·문화적·거주지적 ‘기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에 따라 도시의 변화는 기능의 상실과 변화로 읽힌다. 골목에 있던 문방구 가 사라지고 다이소가 들어서도, 동네 빵집이 사라지고 파리바게트나 뚜레주르가 그 자리 를 차지해도 우리는 새로운 가게의 외관이나 상품에 관심을 더 갖는다. 하지만 그 지역역사의 중요한 단편이었던 작은 가게들과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어디로 사 라져버린 것인지는 그저 묻혀버리고 시간이 지나면 망각된다. 그렇게 점차 한 가지 색으로 도시는 물들어버리고 점차 우리는 미학적으로도 미시역사의 한 단면으로서도 다양성을 잃 어버리고 있는 듯하다. 벤야민의 말처럼 우리에게 산보가 중요한 것은, ‘도시가 강요하는 삶의 리듬과 가치관에서 조금은 물러나 우리를 관조할 수 있게 함’에서 비롯될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현재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나 마을공동체의 파괴, 고독사와 같은 문제들은 우 리가 산보라는 중요한 활동을 잊고 산 시간 속에서 퍼져나간 듯 하다. 50
(내가 동네가이드로 참여한) 성수도시재생센터의 주민공모사업으로 시작한 ‘성수를 거닐 다’ 프로그램은 그런 차원에서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성수 지역을 실제로 산책하며 각자 사진을 찍어 모든 산책이 끝나면 이 사진들을 모아 전시를 진 행하는 프로그램이다. 5월 17일 비오는 오후 우리는 정기엽 작가와 함께 뚝섬우체국 앞의 마을카페인 비썸(b.some)에서 먼저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성수동의 지역에 대한 이야 기를 들었다. 뚝섬이라는 지명에 대한 설명이 먼저였다. 많은 사람들이 뚝섬의 어딘가엔 섬 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들 실제 섬이 있는지, 하필 왜 뚝섬인지 확인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바쁘니까. 한강과 인접한 성수동은 예로부터 물난리를 자주 겪었다. 그래서 한강물이 크게 범람하기 라도 하면 그 넘친 물로 인해 다른 지역과 고립되기 일쑤였다. 그때는 마치 섬으로 변했다고 해서 섬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뚝이라는 지명은 어디서 왔을까? 이 명칭은 ‘치우천황기(旗)’를 뜻하는 ‘둑’에서부터 유래했다. 우리나라에 환난이 닥칠 때마다 우리를 도왔다고 하는 치우의 사당이 있던 곳이 바로 현재의 뚝섬역 인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성계의 화살을 기둥 뒤로 피했던 태조 이방원의 일화에서 비롯된 살곶이 마 을, 과거 병사들의 훈련장이었던 연무장길 등 우리는 성수 지역의 지명의 의미를 먼저 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요즘 ‘핫’하다고 언론에 소개되는 서울숲역 인근에서부터 성수 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웅덩이 마을을 거쳐 아파트 단지들이 즐비한 주거지를 최종 목적지로 정하고 산보를 시작했다. 서울숲역 인근은 소위 핫플레이스 혹은 힙한 장소로의 변화가 시작된 그런 장소였다. 20년 은 족히 되어보이는 해장국집과 트렌디한 스테이크 비어가 혼재되어 있고, 거중기가 상주 하는 그런 곳. 낡은 자전거를 타고 후줄근한 와이셔스를 입은 오랜 주민들과 누가 봐도 데이 트 복장같은 옷을 갖춰 입고 연인의 손을 잡고 놀러온 방문객들이 또 혼재되어 있었다. 오 래된 순대국집 간판은 여전히 달려있지만 내부는 완전히 새로운 인테리어로 공사하고 있 었다. 이곳은 성수의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그리고 우려를 나타내는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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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로를 하나 가로질렀을 뿐인데, 우리는 성수동의 과거를 갑작스레 직면했다. 성수 1주택 재건축지역으로 지정된 웅덩이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수다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보이는 이름은 (떨어져나가 확인할 수 없는 ‘맨션’들은) 30년 전에 한창 유행했던 주거건물명이다. 요즘은 빌라로 많이 불리지만. 이 맨션들 앞을 지나가다 쓰레기 통에 들어있는 비디오 테잎들과 주인은 오간 데 없는 조그만 금형공장도 만났다. 도로 하나 의 온도차는 정말 컸다. 모두가 알고 있는 핫플레이스 성수동 안의 진짜 핫플레이스는 바로 웅덩이 마을인 것 같았다. 산보 내내 별 말없이 걷던 모두를 시끄럽게 만든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웅덩이 마을에서 성수쌍용아파트로 이어진 10미터 정도의 골목은 우리를 다시 현 대로 뱉어내었다. 마치 ‘백 투 더 퓨쳐’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말이다. 갑작스런 현재의 도래 에 조금은 어색스러움을 느꼈지만 이내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아파트들 앞을 걸으며 성 수의 과거, 즉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웅덩이 마을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획일 화된 개발방식과 언론의 호들갑으로 인해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사라지는 풍경들에 대해 말 이다. 그래 그렇게 우리는 성수를 ‘진짜’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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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성공소 <III-2 성수동 엄마와 아이들이 사는 법>
건강한 부모로 성장하는 그림책 여행
큰북 작은북
‘큰북 작은북’은 성수동의 엄마들이 그림책을 공부하는 모임입니다. 그 자리에 갈 때 엄마들 은 아이들과 ‘이별’하고 갑니다. 오롯하게 엄마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엄마가 먼 저 건강하게 서고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믿지요. 스스로 충분히 행복하고 충전되어야 아이 들과의 관계가 제대로 설 것입니다. 2018년 큰북작은북은 오는 7월 5일까지 12회에 걸쳐 ‘그림책강의’를 듣습니다. 두근두근 그림책 연구소 심미진 소장과 함께 하는 강의입니다. 지난해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문을 열 었습니다. 올해는 스물여덟 명의 엄마들이 매주 모여 눈과 귀를 모읍니다. “다른 두꺼운 책들 같지가 않잖아요. 그림책은 잠깐 시간을 내서 읽을 수도 있죠.” “아이나 저나 이제는 글자 말고 그림을 읽어요.” “감동을 깊게, 여운을 길게, 이젠 그림 책을 그렇게 보게 되었어요.”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읽어주기 위해 그림책을 처음 접했지 만, 엄마들은 이제 압니다. 그 시간이 자신에게 훨씬 더 큰 배 움을 준 것을요. 큰북작은북은 지난해처럼 올해도 책 잔치를 준비하고 있습니 다. 동네의 작은공원에 자리를 펴고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그 림책을 읽어주고, 책을 쓰고 만들기도 할 예정이죠 . 책을 나누 고 교환하는 책장터도 열리고요. 그림책 강의와는 별도의 부모 교육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지난해 ‘큰북’은 그림책을 통해 ‘작 은북’ 아이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올해는 큰북과 작은북이 함 께 울릴 것입니다. 54
2018 성공소 <III-2 성수동 엄마와 아이들이 사는 법>
맑은 마을 성수
지구를 지켜라 우리 도시 인간들이 추구해온 풍요와 편리는 이제 복수를 해오고 있 습니다. 미세먼지는 자주 나쁘거나 최악으로 우리들의 공기를 오염 시키고 있습니다. 상품을 소비하고 난 뒤 감당해야할 비닐과 스티로 폼이 우리 곁을 유령처럼 맴돕니다. 생수와 정수된 물이 아니면 마 실 물조차 없습니다. 태우면 독성물질을 내뿜고, 묻으면 썩지도 않 고, 해양에선 미세하게 바스라져 우리에게 돌아오는 프라스틱도 있 습니다. 맑은마을성수는 이 지구적 변화에 대한 마을에서의 작은 대 응입니다. 그래서 ‘지구를 지켜라’ 팀이 운용하고 있지요. 맑은마을성수는 미생물 EM(Effective Micro organism) 만들기부터 시작합니다. EM은 거의 모든 곳에 쓸 수 있는 친환경 세제요, 벌레를 내쫓고, 식물을 건강하게 기르는 만능 효 소액이죠 맑은마을성수는 천연화장품도 만듭니다. 스킨로션, 에센스, 크림을 만들고 클렌 징과 샴푸와 천연비누도 만들어 나눕니다. 그리고 어린이들과 환경지킴이 공부도 합니다. 실험도 직접 해보고, 어떻게 실천할지 서로 다짐도 나눕니다. 축제를 열면 그 곳에 부스를 열고, 마을사람과도 함께 나눌 것입니다. 맑은마을성수는 성수도서관의 어린이책 읽어주는 봉사모임 북스타트와 경동유치원등 어린이집 엄마들이 함께한 보물섬 모임이 함께 참여하 고 있습니다. 도시재생센터와 성수복지관 등 마을안의 공유공간을 이용해 배 움을 지속하고 있죠. 마을에서 마을사람들이 마을을 위하여 배 우고 만드는 풍경은 보기에 좋습 니다. 천연의 재료를 이용해, 이 웃들과 함께 만들고 가족과 친지 들을 위한 이 활동이 더 많은 이 들에게 퍼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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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성공소 <III-2 성수동 엄마와 아이들이 사는 법>
성동구공동육아연합
성공연 글 임주연
‘성동구 공동육아 연합’은 ‘보물섬, 봄, 우아한 꿈터, 용감한 엄마들, 헤아림’이 뭉쳐서 만들어 졌다. 쉽게 말하자면 성수동에서 아이를 기르는 엄마들이 모여 이것저것 머리를 맞대고 아 이들을 위한, 엄마들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이다. 문유석 작가님의 책에 이런 글귀가 있다.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 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줘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세상은 달라지고 개인과 사회는 떨어져 살아갈 수 없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적 지식 말 고,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에 합리적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 자신의 아이뿐만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경험과 체 험을 바탕으로 바른 인성을 기르고 타인을 돕고 배려할 수 있으며 자신의 삶을 잘 꾸려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성공연’은 이를 기본 목표로 아이들과 다양한 활동을 한다. 책-미술-숲-견학 등 다양한 협 동 수업도 하고, 장애친구들과도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해 비장애인 친구들과 장애친구들이 서로 알아가는 유대감의 시간도 갖는다. 아이들뿐만아니라 육아로 인해 자신과 멀어진 엄 마들을 위해 소셜벤처 팀들과 일자리와 몸관리를 진단하고 성장 도모하는 발판도 마련해 본다. ‘성공연’의 작은 움직임들이 지역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어 발전되고 더 많이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본다. 56
2018 성공소 <III-3 회색빛 성수동에 예술을 물들이다>
2018 성수 작가전
디자인포럼 글 곽설미
동네 익숙한 길 위 익숙했던 건물이 전혀 다른 곳으로 변신을 한다면 어떨까? 오매 갤러리 가 바로 그런 곳이다. 17년에 이어 올해도 <2018 성수작가전>을 개최하는 오매 갤러리를 소개한다. 오매 갤러리는 평범한 주택가의 한 빌라를 전체적으로 재생개조하여 건물 자체 로도 도시재생을 이룬 곳이기도 하다. 내부에는 음식점, 수제화 샵, 갤러리가 함께 있는 독 특한 공간이다. 마을공동체에서 도시재생으로 가는 길에 마중물로 전문가가 더 많이, 깊숙 이 침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이숙 디자인포럼 대표는 본인의 공간과 예술품 거래 경력 을 십분 활용해 이번 사업을 계획했다. 현재 성수동은 제조 산업이 강하지만 전반적인 하락세에 있고, 예술적 기회나 인프라는 부 족한 편이다. 오매 갤러리의 성수작가전은 이 성수동의 두 가지 문제의 해답을 전시에서 찾 는다. 작년 성수작가전은 성수에서 예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하기 위한 전시였다 면, 올해는 수제화와 예술의 만남을 주제로 한다. 작년 전시 중 성수동 수제화 브랜드 What I want의 오경희 디자이너와 김새롬 작가가 함께 했던 전시 <취향>을 떠올려 보면 된다. 작가 선정은 오매갤러리와 심사진이 함께, 새로운 것을 찾아 성수동을 찾는 30대 힙스터들 을 관람 대상으로 두고 이루어진다. 실제 올해 봄 이루어진 전시 <중독만욱>이나 <도파민 랩> 역시 20~30대 취향의 젊은 전시였다. 벌써 맨솔, what I want, 34 minute, 몰리브 데 넘, 새라 등 디자인, 제조업, 유통 등 서로 다른 성격의 성수동 수제화 기업들과 미팅을 마쳤 다고 하니 올해의 전시도 더욱 기대해본다.
오매 OMAE 성동구 뚝섬로 9길 16번지 4층 070 7578 5223 omae@omae.co omae.co.kr Insta:omaeco Naver blog: omaeco.blog.me [대중교통] 지하철 2호선 성수역 3번 출구에서 대림창고 방향으로 직진 훔볼트 카페에서 좌회전 50m 전방 우측 빨간벽돌 4층 건물 [자동차] 오매 건물 건너편 ‘에이스하이엔드성수타워’ 지하 주차장 이용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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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성공소 <III-3 회색빛 성수동에 예술을 물들이다>
디지털 골목길 갤러리
에이치앤제이컴퍼니 글, 사진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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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 정동식, 오른편 한우진 작가와 관객을 잇고, 동네의 소상공인을 문화예술과 잇는 작업이 골목길디지털갤러리 프로젝트다.
“한국의 모든 작가들에게 문을 열고 싶었어요!” 성수동 서울숲길에서 서울숲사진관을 열고있는 공동대표 한우진, 정동식 님의 말이다. 이 들은 최근, 성수동의 카페와 골목길에서 전시할 작품 공모를 진행했다. 서양화와 사진, 금 동조각 등 설치작품들을 지닌 작가들이 그들과 손을 잡았다. 이들은 이렇게 모은 작품을 골 목길에서도 공개할 예정이다. 매월 작가전을 곳곳에서 여는 것. LED 조명을 달고있는 디 지털 갤러리 작업도 한다. 작가에게 열린 전시실, 관객들에게 열린 작품들을 꿈꾸는 두 사 람을 그들의 집 서울숲사진관 지하에서 만났다. 아직 겨울의 흔적인 펠릿 난로가 두 곳 지 하작업실에 모두 설치돼 있었다. “유명인들 왔다간 성수동 골목길 말고, 곳곳에 문화와 예술이 스민 골목길을 만들고 싶어요.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테마가 있는 곳이란 점이 알려지면 더 많은 분들이 우 릴 찾겠죠. 프로포즈를 하면 옥상에서 비누방울하고 눈도 날릴 수 있죠. 성수동에 계시 는 소상공인들께도 열린 공간을 생각하고 있어요. 골목길 디지털갤러리를 통해서 광고 도, 프로포즈도 하는 거죠.” 이들이 이런 다양하고 큰 꿈을 꿀 수 있는 건, 이들이 이미 사진가이고 그래서 동시에 디지 털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설치작업을 위해 태양광까지 공부하고 있다는 두 사람은 작업을 완수할 수 있을까? ‘재능의 크기는 꿈의 크기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둘이 인 화하고 있는 이 꿈은 현상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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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성공소 <III-3 회색빛 성수동에 예술을 물들이다>
성동구 청년들의 시간기록소
시간기록소 글 이재민
사진 김정원/김지혜/안형진
시간은 흐릅니다. 주변에 있는 공기처럼 우리와 항상 맞닿아 있지만 언제나처럼 어딘가로 흘러갑니다. 시간기록소는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흐르는 시간을 담고 싶고, 기억하고 싶습 니다. 그리고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런 욕구를 사진을 통한 기록이라는 형태로 시간에 대 한 욕구를 해결하기로 결정하였고 뜻이 맞는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활동을 하다보니 이 뜻 에 함께하고자 하는 친구들이 더 생겼습니다. 우리는 함께하였고 다양한 온도와 향기의 사 진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동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빠르게 시간이 변화하고 정착하는 곳 성수에서 사진을 남깁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성동구 의 주변을 기록하는 데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플레이스토어/ 앱스토어 소모임 어플에서 SISO ‘시간기록소’ 를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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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잠기는 몸으로 지하철 출구를 나서는 ‘이 순간’ , 빛이 갑작스럽게 쏟아질 때의 기분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상쾌한 새벽 공기네’ ,‘오늘 하루도 견디자’, ‘오늘은 또 어떻게 견디지’. 이러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몰려오는 단 한 점의 순간. 우리는 그 감정을 매일같이 견뎌낸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 해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기분을 매일같이 견디고 나아간다. 성수동 작은 출구 속에는 그 수 많 은 사람들의 느낌과 애환이 담겨있다 작가소개 사진에 애정을 담아 내는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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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심에 자리잡는 ‘숲’은 그 목적성이 다분하다. 높은 인구밀도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어떻게든 여 유를 제공하고 스트레스를 낮추겠다는 목적성이 보인다. 맨하탄 한가운데 각진 센트럴파크나, 과거의 영광을 기리는 데 급급한 런던 트라팔가 광장이 그렇다. 그래서 도시 속 공원들은 주로 밉다. 다만 서울숲은 조금 다르다. 성수동 한 가운데 어디가 입구인지도 조금은 찾기 힘든, 다리와 구부러진 골목길들에 62 웅장함보다는 소박한 동네의 오솔길 같은. 목적보다는 정말 그냥 있었던 느낌이다. 그래 서 좋다. 그래서 자주 찾아도 밉지가 않다.
작가소개 평일에는 0과 1 속 세상을 만들어내는, 주말에는 색감 속에 담긴 세상을 찾아내는 개발자이자 63 취미 사진가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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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켜있는 전선처럼 성수는 그렇다, 아직 남은 옛 공장의 흔적들과, 그와는 전혀 다른 시대인 듯한 젊 은이들의 핫한 카페들,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기 직전 조용한 발악이 느껴지는 예술가들의 소박한 움직임, 이 엉켜있는 전선들이 묘한 성수동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서울 어디 속에서도 찾아보 기 힘든…. 작가소개 아우라를 매대에서 빼겠다고 한다, 살려달라고 빈다, 요번 달 매출 해야한다고, 오늘도 난 그렇게 성수동 에서 발걸음을 돌린다 by 아우라맨(안형진)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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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이야기들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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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동생 이희선
눈 코 입 하나도 닮은 데가 없는데 내 동생이래요. 시영 시은 하늘이 주신 제 동생들이래요. ㅡ주영아! 너랑 손가락이 닮았네. ㅡ아빠! 발가락도 닮았어요.
동시 <입양 동생> 은 입양 동생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첫, 사랑은 입양 동생을 친동생으로 동일시 하는 사랑의 의미성을 담고 있다. 동생이 생겨 기뻐하는 주영이의 얼굴이 그려진다.
이희선 성수동이 좋아 성수동에 살고있는 마을 작가 sun701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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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etto Society to Young People
왜
20대는
고통스럽거나 패기로워야 할까? -위로 따위는 필요 없다-
글 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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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최제희
젊어서, 혹은 건강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의 나이 20대. 사람들은 20대를 대단히 특별하게 바라보고, 미디어도 이에 발맞춰 20대를 열정, 순수, 패기 등의 이미지로 그려낸 다. 하지만 지금의 20대도 그럴까? 20대를 넘긴 사람들이 20대들을 만나면 보통 2가지 자세를 취한다. 우선 20대 때 취해야 할 자세라든지, 그때 꼭 해야 할 것들을 조언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세계를 여행해보 라, 가슴 뛰는 연애를 해보라, 패러글라이딩을 해보라, 외국어 하나 정도는 능숙하게 공부 하라 등등 종류가 다양하고도 많다. 주로 자신이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좀 더 놀았을 텐 데, 학생 때가 좋았지 등등의 말들과 조언들을 섞어서 이야기 한다. 그들은 마주앉은 20대 가 조금이라도 힘들다고 불평하면 지금 네가 얼마나 행복한지, ‘쓰잘데기 없는’ 고민을 하 고 있는지 엄하게 꾸짖는다. 한편 구직난에 시달리는 ‘불쌍한’ 청년들을 위로하거나 공감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청춘들 을 위해 연예인들이 인생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콘서트가 빈번하게 개최되고, 뉴스에서는 연일 청년 실업 문제를 떠들어댄다. 앞서의 꼰대들보다는 점잖은 이들은 자신들의 20대에 비해 포기할 것이 많은 삶을 물려주었다며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현재의 사회나 경제 구조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한다. 주로 셀럽들이나 정치권에 계신 분들이 ‘교양 있는 어른’ 의 모습으로서 이와 같은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청년층 전체가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며 가난하고 불쌍하게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언뜻 이 두 가지 대화 방식은 상극인 듯 보인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20대를 대하 는 태도다. 양 쪽 모두 20대에 대해 생각하는 상이 확고하고, 자신의 경험을 상대와 비교하 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두 부류 모두 자신이 먼저 20대를 거쳐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 우위’가 있다고 생각한다. 70대 노인에게 ‘자고로 노인은 점잖은 태도를 갖추어야 해요.’라 고 면전에서 말하는 20대는 없지만, ‘20대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어르신들의 훈계조 의 대화는 아주 쉽게 들을 수 있다. ‘불쌍한’ 청년들을 위로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대 시절의 나’에 비해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청년들이 안쓰럽다. 꼰대들과 같이 비교 준거는 ‘20대 시절의 나’다. 그때의 나에 비해 행복해보이면 꼰대, 그때의 나에 비해 불쌍 해 보이면 위로해주는 사람이 될 뿐이다. 또한 자신들이 동경했던 ‘안정적인 삶’을 새로운 세대에게 주입하고, 그에 부합하지 못하는 20대들을 예외적인 케이스로 취급하기도 한다. 대학 때부터 너의 인생은 자유이며 무한한 선택의 가능성이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20대들은 이미 ‘대학-취직-결혼-출 산-육아’ 타임라인을 인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내재화하고 있다. ‘안정적인 삶으로 가 는 여정’은 20대들한테 당연하게 스며들었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밑바탕을 만드는 것 이 20대들의 과업처럼 되어버렸다. 71
나만해도 대학 4년, 석사 2년, 연구원 1년 그리고 직장생활 2년차이자 새댁이다. 극히 평 범하지만 빈틈없는 타임라인을 기계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20대 전체를 바쳤다. 명절에 밥 상머리에만 앉으면 어른들이 묻는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은 언제 할 건지, 취직을 하고 나면 결혼은 언제 할 건지. 이 두 가지를 성취해 낸 나한테는 요새 애는 언제 가질거냐 묻는 다(참고로 나는 28살이고 한국 초산 연령은 31.4세다). 당연한 타임라인을 조금이라도 비껴가면 우리는 그들을 ‘패기로운’ 청년이나 ‘아웃사이더’ 로 그려낸다. 물론 정말 상황이 여의치 않아 포기해버린 사람도 있지만, 결혼이 하기 싫어 서 비혼주의를 ‘선택’한 사람도 어른들 눈에는 결혼 포기자와 동급으로 취급당한다. 내 집 마련 대신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청년은 ‘정신 못 차린 사람’이다. 그 러나 그가 캠핑카 여행으로 성공을 하면 아마 사회에서 찬밥 취급을 받던 ‘아웃사이더’에 서 ‘패기로운 청년’으로 둔갑할 것이다. 패기롭지 못했던 나는 범생이처럼 사회(기득권 세대)에서 시키는 요구들을 척척 해갔다. 기성세대가 세워준 목표를 내재화하여 안정적인 기업에 취직하고 결혼하여 4인 가족을 꾸 리는 게 가장 행복하고, 안전한 길이라고 믿었다. 사실 아무도 이 길이 가장 행복하다고 보 증해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래선지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 한 길이 아니기 때문에 늘 의 심하고, 새로운 선택지를 고민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80-90년대보다 취직이 안 되는 사회적 환경보다 20대들을 더 숨 막히게 하 는 건 ‘정상적인 타임라인’일지도 모른다. 좀 놀다가도 번듯한 기업에 언제든지 취직을 할 수 있다면, 이름 있는 대학을 20대 초에 졸업해야만 돈을 괜찮게 벌 수 있는 사회가 아니 라면 조금은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정상적인 타임라인’을 준수하며 그 와중에 여행도 다 니고, 외국어도 좀 배워야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20대들의 목표가 되는 것도 문제 다. 이렇게 되려면 어느 정도 부모의 지원이 필요하다.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어 그 돈 으로 월세도 내고, 등록금도 내고, 해외 어학연수도 다녀오면서 교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 을 수 있을까? 대학 등록금을 빚지고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수업을 들으면서, 취직에 해가 될까 장기간 휴학도 할 수가 없다면 학점이 잘 안 나오는 게 당연지사 아닌가? 결국 등록 금 대주면서, 어학연수 보내주는 부모 밑에 있어야 더 좋은 곳에 취직을 한다. 20대 초반 부터 대물림되는 부는 무시하고 모든 책임을 오롯이 20대들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지는 않 은지 돌아봐야 한다.
지담 6개월차 새댁이자 직장인. 그리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불만도 많은 반만 모범생. 72
예전 스위스 교환학생을 갔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게 있었다. 스위스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갈 때까지 1년 동안의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그 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기도 한다. 그 기간이 길어져 길게 여행을 하 고, 30-40대에 취직을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과 달리 공부에는 때 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실제로 교환학생 때 만났던 동료 중 40대 부부가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결혼을 했지만 각자 월세 방에 거주하고, 대학에 다니며, 기 숙사 공동 주방에서 식사를 한다. 20대의 삶을 넘치거나 모자라다고 평가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개인의 선택을 방해 하고 하나의 선택지만을 강요하는 사회를 바꾸는 방향이 위로보다는 큰 도움이 될 것 같 다. 물론, 아직도 20대를 ‘먹고 대학생’으로 규정하는 이들이 사라져야 되는 건 말로 할 필 요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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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고있다 / 장지에 안료,채색 / 50x71cm / 2017 우리시대 누군가 살고있고 살았었던 도시에 흔적을 남기듯이 도심 주변에서 유일하거나 그렇지 74 않은 것을 풍경 속 추억처럼 드로잉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림 기고 그림 신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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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대통령과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일자리와 경동초 보육/교육 이야기 문재인 대통령과 성수동의 인연 중 수제화가 있지요. 대통 령은 지난해 5월 대통령 당선 후 드림제화 유홍식 (수제화 명장1호) 명장에게 여섯 켤레의 구두를 주문했습니다. 그 일주일 뒤에는 김정숙 여사가 전태수 명장에게 버선코 구두 를 주문했고요. 같은 해 10월 18일에는 헤이그라운드에서 일자리위원회 3차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소셜벤처, 비영리 단체, 사회혁신지원조직, 프로보노(사회적 약자를 돕는 전 문가 그룹) 등의 일터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올해 4월 4 일에는 경동초에서 온종일 돌봄체계구축을 위한 회의와 학 부모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보육에서 교육, 가치 있고 혁신 적인 일자리 논의까지, 성수동에서 더 많은 논의가 열리길 기대합니다.성수동쓰다
시민이 함께 만드는 서울숲
이음정원에 꽃심고 제비논에 벼 심었어요 성수동 ‘가오’의 80%쯤을 차지한다는 서울숲. 2005년 시 민들과 기업이 함께 조성한 이 숲은 지금도 여전히 그 전통 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울숲의 공식 홈페이지랄 수 있는 이곳 서울숲 컨서번시(http://seoulforest.or.kr)에 가면 빼곡한 서울숲의 일과가 공개되어 있지요. 지난 6월 10일 에는 서울숲 수변공원에서 벼농사 모심기도 했습니다. 집 지을 때 진흙이 필요한 제비에게 논은 훌륭한 건축재료를 제공해 줍니다. 이날 모심기엔 서울 전역의 시민들이 오고, 서울숲 4번 출구쪽 이음정원을 가꾸는 ‘2018 우리동네가 드너’ 회원 및 성수동 주민들도 참여했습니다. 두 개의 허파 처럼 생긴 이 제비논에서는 올 여름 20여 종의 토종벼들이 76
자랄 거예요.성수동쓰다
성수동에서
생긴 일들 뭉친 아이들과 엄마들이 더 뭉쳤어요
<성동구공동육아연합>이 서울숲서 놀았어요 공동육아는 함께 모여 아이를 키우죠. 숲에서 놀고 도서관 에서 책을 보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공동육아 엄마들과 아 이들이 다시 ‘연합’했습니다. 성동구공동육아연합은 보물 섬, 봄, 우아한 꿈터, 용감한 엄마들, 해아림’ 등이 모였습니 다. 이 성공연은 한창 자라나는 서울숲에서 신나게 놀았습 니다. 한바탕 땀 흘리고 웃고 나면 밥도 꿀맛, 잠도 꿀잠일 것입니다. 엄마들도 마을에서 성장해 갑니다.한희숙 객원기자
학교와 아파트 사이 장터
내 집 앞마당에 펼치고 이웃이 함께 하다 지난 5월 19일 토요일. 성수동아파트연합(성수금호3차베 스트빌, 성수현대그린아파트, 서울숲 힐스테이트)이 힐스 테이트와 성수공고 사잇길에 모여 나눔장터를 개최하였습 니다. 이번 나눔 장터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활용품을 비 롯하여 의류, 잡화 등을 지역 주민들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먹거리 장터를 통해 이웃과 서로 나 누고 소통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행사장에는 어른들뿐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나와 직접 자신의 장난감, 옷, 책 등 에 가격표를 붙이고 판매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올바른 소 비와 경제관념, 나눠 쓰고 다시 쓰는 즐거움을 배울 수 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장터 종료 후에는 주민센터를 통하 여 판매 수익금 중 일부를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하 여 뜻 깊은 마무리를 지었습니다.한희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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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쓰다> 편집위원들 이 네모난 공간에서...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좋았다. 최제희
‘성수동 쓰다’를 통해 일명 써본 여자가 되었네요. 앞으로 써도써도 아깝지(?) 않은 읽을거리 풍성한 글을 쓰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성수동 쓰다’를 쓰기 위해 만났던 소중한 인연 또한 잊지 않겠습니다. 이미경
나의 리틀포레스트 같은 성쓰! 여름철 아낌없는 햇빛과 함께 여러 사람들의 글과 함께 마을과 함께 숲처럼 자라나기를.. :-) 곽설미
힙한 동네 성수동에 모인 즐거운 사람들. ‘성수동 쓰다’에 참여하면서 사람사는 동네 성수를 만나 즐거웠습니다. 강민경
성수동에 살기만 하다가 이제는 일도 하고 있네요. 조금씩 더 많은 이웃들을 알아가고 성수동을 더 알아가는 하루하루가 매일 신선합니다. 서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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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성수동에 사니, 재밌습니다. 서울숲에서 우리동네가드너 가 되어보고, 제비를 위한 논에 벼도 심습니다. 성수동 뚝 방길 육갑문 나가 한강을 타고 춘천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습니다. 카페에 모여 과학책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렇게 마을 사람들과 잡지까지 낸다니, 성수동에 사니 재 미집니다. 원동업
성수에서 살고지고 성수동 쓰다를 위하여~ 이희선
그러고보니 남들은 읽지 못하게 막아놓고 내 안의 글만 쓰다가 어쩌다보니 남들과 공유하는 글을 쓰게 되었네요. 어쩌다보니 성수에서. 이성일
어느덧 4호를 만드네요... 1호_그냥, 2호_후다닥, 3호_재밌게... 4호_띠~이~옹... 5호,6호도 기대해 주세용~^^ 신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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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쓰다 5호를 함께 만들어 주세요. <동네잡지 성수동쓰다> 다음호 기획 특집은 ‘사람 in 성수동’ 입니다. 당연히, 나누고싶고, 나눌 만한 가치를 지닌 우리 동네의 여러 이야기와 사진, 그림을 함께 싣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동네의 문화를 다시 생각하고 만들 어가는 잡지.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 모집기간 : 2018년 6월 21일~7월 21일 ■ 대상 :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누구나 ■ 방법 : 이메일 iskarma@hanmail.net 전화번호 : 010-6772-3795 위 메일 혹은 전화로 제보 혹은 원고를 보내주세요. 참여자들께는 작은 선물을 드 리고, 글이 실린 책자, 이전 과월호 등도 전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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