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그리스로마 성지순례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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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어키 그리스 로마 성지순례 일지 일시:2014.4.28.~5.10(13일) 순례지역: 터키 그리스 로마 인원: 서정걸목사님 김정은사모 박선옥 김정옥 오광국 배정란 윤광로 임희자 강성자 최부순 엄경자 심필녀 김이덕 권옥자 안정선 김현옥 문미엽 문혜영 우기형 김선희 신소영(인솔자) 21명 성지순례를 한 달 앞두고 순례지에 대한 준비에 들어갔다. 여러 지역에 대한 지리적 위치를 알기위해 지도를 그려가면서 공부하는 숙제를 시 작으로 영상을 보면서 사전지식을 배운다. 순례를 앞두고 교인들은 여러 행사로 인해 바쁜 상태이다.

<성도들께 보낸 문자>

<성도들께 보낸 문자>

<성도들께 보낸 문자>

<성도들께 보낸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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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께 보낸 문자>

<성도들께 보낸 문자>

2014 4.21.월. 이번 성지순례 인솔자로 수고할 신소영집사한테 순례시 유의사항에 대한 전화가 왔다. 함께 떠날 인원은 21명이며 그리스에서 이태리로 이동시 훼리호 에선 캐리어는 화물칸에 넣으니 보조가방 준비와 수영복 필수, 기온은 터키는 우리 와 비슷, 로마 그리스는 약간 높다고 알려준다. 4월 27일 일요일 점심후 사전모임 에서 담임목사님 축복기도를 받았다. 목사님께서 순례일정에 긴장을 풀지말며 건강 하게 잘 다녀오라는 당부말씀을 하셨다.

<순례시 유의 사항>

<순례시 준비 사항>

1일째 날 2014.4.28. 월 2014.4.28.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새벽기도로 출발한다. 오늘의 목사님 말씀은 마태복음 5장 21~24절로써 화를 다스리며 분노를 조절하라 는 말씀이며 화를 다스리지 못하여 실패한 사람, 분노를 조절하여 성공한 요셉의 지혜를 배우라는 말씀이다. 예배 후 가량비가 내리니 쌀쌀한 날씨라 장로님은 약간 두꺼운 잠바를 가져오기 위 해 다시 집으로 잠깐 다녀오고 6시 40분 교회서 강성자권사님과 이승환목사님 도 착하셨는데 이번 여행에 연세가 제일 많으시고 다리가 불편하셨는데 건강해보여서 안심이 된다. 목사님의 배웅을 받으며 오집사님 백목사님 공항까지 함께 실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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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다. 제주간 세월호 진도 헤리호 전복사건으로 온 국민이 우울한 때 떠나게 되어 무거운 마음을 안고 출발한다. 아침 10시까지 공항 도착이라 백종인목사님의 출발기도로 서둘러 출발했다.

<강변성산교회 로비 >

<담임목사님 당부사항을 들으시며 >

7시 7분에 광진약국에서 최부순 심필녀권사님 이어서 민속칼국수 건대부근을 차례 로 일행들을 차질 없이 모시고 간다. 안 권사님은 새벽에 힘들었을 텐데 사과를 깎아오셨다.

<백종인목사님 기도로 출발>

<성지순례 일정표>

좀 밀리기는 하였지만 9시 전에 도착하여 새벽에 정한주목사님 태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먼저 모시고 오신 손상엽장로님을 만나 지하 본 죽에서 손장로님께 서 해물 죽과 비빔밥을 사 주셔서 마지막으로 든든히 먹어두었다. 문혜영권사님은 어제 보쌈을 드시고 급채를 하셔서 금식을 하시고 몹시 힘든 모습 을 보이고 나머지는 바쁜 와중에서도 건강해 보이신다. 많은 기대를 가지고 출발하는 순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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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사님 오집사님과 헤어지고>

<아침식사를 마치고 >

<손장로님께서 대접해주신 아침밥>

<안정선권사 후식으로 커피대접 >

<한국에서는 마지막 커피를>

<급체하신 문혜영권사 >

식사 후 안정선권사님은 재빨리 커피를 대접해 주신다. 이번 순례의 총무는 김이덕권사님께서 수고해 주시고 공동경비 50유로를 모으고 조 인형권사님께서 찬조해주신 10만원은 화장실비 물 값으로 지출하기로 한다. 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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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장소인 E로 가니 D로 바뀌었다는 문자가 와 가니 인솔자인 키가 훤칠한 신소 영집사님과 천지항공 이재용부장님께서 와 계셨다.

<천지항공 이재용부장님과 신소영집사>

< 인솔자 신소영집사님>

모든 일행을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눠었는데 남자가 4명이라 장로님께서 좋아하신다. 그 중에 남포교회 목사님과 사모님도 계셔 감사하다. 왕십리에서오신 오집사님부부 원주에서 오신 권사님부부 인천에서 오신 자매와 같은 권사님 두 분 총 21명이다.

<인솔자설명을 들으며>

< 짐을 부치고>

신소영집사님은 버스 여행 시 차 속에서 쓰레기는 되도록 호텔에 비치된 세탁봉투 를 챙겨서 쓰레기는 모아 휴게소에서 처리하며 버스에서는 2시간에 한 번씩 휴게소 에 들리니 물을 충분히 먹어 두통을 예방하라는 말씀이며 수돗물은 드시면 안 되며 그리스 로마는 호텔 팁도 유로화라는 말씀을 하신다. 여권 지갑은 개인이 철저하게 알아서 관리를 하며 현지에서는 돈 아끼지 말고 터키 석류쥬스, 그리스 요구르트, 꿀 로마 피자 등등 많이 드시고 즐겨라 는 말씀을 덧붙 인다. 몇 년 전에는 유로는 동전이 없어 달러로 팁을 주었는데 유로 가치가 올라가 니 이젠 유로로만 받는가 보다. 출입국심사를 마친 후 트랩을 타고 이동을 하여 면세점 앞에서 인솔자 집사님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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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까지 113번 게이트로 모이라는 말씀이다. 면세점에서 난 트윈케익 리필 3개를 구입했다. 일반백화점에는 리필이 없는데 면세점만 있어 갈 때마다 구입을 하게 된다. 113번 게이트에서 모인 인솔자집사님은 개인당 150유로 가이드 비를 거두신다. 양치도 하고 화장실 이용도 마치고 탑승완료~~ 국내엔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기내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출입국장 앞에서>

<출입국장 앞에서 >

<트랩을 타기위해>

<트랩을 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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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행 게이트 앞에서>

<게이트 앞에서 >

<31번 게이트 앞에서>

<31번 게이트 >

12시 50분 탑승완료 1시 20분에 출발하여 2시 35분 이륙하였다. 이 비행기에는 한국승무원이 한명도 없는 러시아 비행기이다. 탑승 전에 이재용부장님께서 팀끼리 좌석 배정을 미리 해 주셔서 편하다. 다들 피곤하신지 이륙하자마자 주무시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러시아항공 승무원>

<인천공항에는 비가내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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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기 안에서>

< 창밖 인천공항부근>

2시경 점심 기내식이 나왔다. 연어와 생선찜과 약간의 샐러드와 빵이다. 러시아항공은 승무원들이 좀 무뚜둑한편이다. 러시아는 모스크바가 가까이 올수록 시베리아 벌판인지 눈이 보이다가 모스크바가 가까이 갈수록 눈이 없어지고 봄이 시작되었는지 약간 새순이 보이는 듯 한 느낌이 드는 바깥풍경이다. 하늘은 마치 삼층 천을 보는 것같이 구름이 예쁘게 땅과 구름과 하늘 띠를 이루고 있어 장로님은 카메라를 연발하신다.

<상공에서 본 눈 쌓인 러시아 산악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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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모스크바,러시아항공기내식 >


<상공에서 본 러시아 풍경 >

<두 번째 기내식 >

항로지도는 모스코를 2시간 6분이 남아있다고 나온다. 승무원은 오랜지쥬스를 주더니만 이번에는 어묵 비슷한데 어묵이 아니고 육 고기로 만든 어묵 같은 냄새가 나는 기내식이 나온다. 인솔자집사님은 호텔에선 저녁 없으니 기내식 다 드시라고 해 억지로 먹으려고 애 쓴다. 러시아 승무원은 그릇을 빨리 가져가질 않아 승객들이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 다. 앞뒤 다 우리 팀이라 좋다. 한국 시간으로 10시 25분 모스크바공항 착륙 이곳 도 잔뜩 찌푸린 날씨이다.

<상공에서 본 공항부근 러시아풍경>

< 공항에 착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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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공항에서 >

<이스탄불 게이트로 달리며 >

우린 내리자마자 시간적 여유가 없어 줄을 서지 않고 1순위로 출입국을 마치고 10 분 밖에 여유가 없어 다들 뛰었다. 다행히 이스탄불 게이트가 멀지 않아 다행이었 다. 도착하니 30분 쯤 여유가 있었다. 화장실도 이용하고 양치도 마쳤다. 5시간 빠른 시차인 러시아시간으로 6시 10분 탑승 완료하여 6시 45분 이륙하여 이 스탄불로 향한다. 이스탄불 비행기는 3명이 2줄로 약간 작으나 깨끗하고 이번에는 강성자권사님과 함 께 앉아가는 영광을, 뱅기는 처음에 약간 흔들렸으나 괜찮다. 1번의 기내식이 나왔 는데 치킨과 소고기이다. 소고기엔 밥이 있어 샤프란 같은 노란색 덮밥을 먹었다. 함께 나온 빵이 맛있다.

<이스탄불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 러시아경유 이스탄불 행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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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부근 상공>

<이스탄불 행 비행기>

< 모스크바엔 떠나는 시간 가량비가 내리고>

<모스코-이스탄불 러시아항공기내식

>

러시아시간으로 9시 20분경 이스탄불에 도착하니 비가 내린다.

<터키 상공>

< 노면이 젖어있는 이스탄불공항>

짐을 찾는 2번에 가니 벌써 짐이 나와 있고 권옥자권사님 가방이 무슨 착오가 생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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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지 도착하지 않아 인솔자는 분실가방신고 관계로 나머지 분들은 먼저 나가 현지 가이드를 만나라고 하신다.

<권옥자권사가방은 나타나질 않고>

<공항 밖으로 나가고 >

가방은 끝내 오질 않아서 신고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 6일간 터키를 가이드해 줄

아가씨로 보이는 현지가이드를 만났다. 이름은 한소희평신도이시다. 기사 분은

백키르씨,장거리 운전에 베테랑이시며 마음이 좋아 보이신다. 터키 기사 분들은 피로감을 모르는 이유는 튼튼한 다리에서 나온다고 가이드가 설 명하신다. 숙소로 떠난다. 하나님은 어찌 그리 기도하지 않은 부분을 잘 아시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얼마나 구체적인 기도를 하여야 하는지 잘 설명해주는 일이 발생을 하였다. 가방이 도착은 하겠지만 그동안 필요한 물건들 비상이 생겨 대책이 시급하다. 버스에서는 21시 47분을 가리키며 가이드는 터키 문화설명에 바쁘다. 터키는 우리와 어족이 같은 우랄알타이족이며 케밥이 유명하여 칼을 쓰는 민족이라 예부터 칼을 차고 다니며 지금도 시골에서는 칼을 차고 다니며 불만을 표시할 때는 혀를 차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나는 반달족이 생각난다. 원래는 기독교의 뿌리였지만 침략자들이 이슬람을 신봉하여 현재는 이슬람 국이다. 간단한 인사를 소개하시는데, ‘안녕하세요- 멜화바, 물은- 수, 몰라- 화장실 고맙습니다- 세울, 더고맙습니다는 -촉세울이라고 한다. 터키는 터를 순례하는 곳이며 눈에 보이는 것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부분을 보고가라는 당부이다. 이스탄불은 순례겸 관광이 섞여있다고 즐기는 여행을 하라고 한다. 이 호텔만 물 두병이 공짜이며 다음부터는 없다고 한다. 터키는 물이 싸 1달러에 물 두병이라고 한다. 낼 출발은 6,7,8 작전 6시 콜, 일어나 7시아침밥, 정리하고 8시 출발이다. 유럽에선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부풀린 빵을 먹었는데 메소포타미아문명이 가져다준 선물이라고 하며 지금까지 유래되어 빵이 주식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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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선 요구르트에 꿀을 넣어 많이 드시고 특히 염소치즈가 좋다 고한다. 올리브는 다른 나라보다 좀 짜며 내일은 비가내릴 예보이니 우산준비, 돌의 나라이 니 넘어지지 않게 미끄러지지 않고 편한 신발을 착용부탁말이다 기온은 13~16도이 다. 호텔에 슬맆프가있으니 가져와 버스에서 신으라고 하시며 모스크 사원에 들어 가니 개인이 스카프를 가져오면 안 빌려도 되니 착용바라는 안내를 듣는 중에 기사 는 호텔을 찾지 못해 호텔 측에서 차가나와 따라 들어갈 만큼 이면도로에 있었다. 이번 여행은 수습 가이드가 한명 계신데 예쁘고 조용한 아가씨이다. 내일 식당은 1 층 로비는 0층이다. 각 방마다 폿트가 있다고 한다.

<호텔도착>

< 호텔 로비에 부엉이가>

<인솔자집사님의 방배정>

< 아늑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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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욕실>

< 도착예배를 드린 후 순례일정지역설명>

2014.4.29.화 2일째 날 어제 가이드가 새벽 3시경에 일어난다고 하더니만 어김없이 3시에 일어나 잠이 오 질 않아 장로님과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다. 이곳 이스탄불 라마다호텔은 규모는 작으나 깔끔하고 샤워 물이 잘 내려가질 않지 만 떠거운물도 잘나오고 깨끗해서 좋다. 새벽에 밖에서 소리가 나 나가보니 어제 도착하지 못한 권옥자권사 가방이 호텔 로 비에 도착하여 문미엽권사님이 들고 오셨다. 너무 반가워서 모두들 안고 팔짝팔짝 뛰고 야단들이다. 가방 사건으로 다들 기도를 많이 드렸는데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문제의 권옥자권사님 가방>

< 풍성한 호텔 아침식사>

이번 성지순례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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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그리스 로마 지도>

<순례지역 지도>

<터키 지도>

<터키 유적지도>

<보스포러스 해협지도>

<보스포러스 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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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시아 지도>

<비잔틴제국 지도>

<바울 1차선교여행지도>

<바울2차선교여행지도>

<바울 3차 선교여행지도>

<바울 로마행 지도>

7시 56분 장로님의 기도로 출발을 한다. 가이드는 터키 아침인사는 큐라이트라며 반짝반짝 빛나는 아침이라는 뜻이라 한다. 호텔에서 골목으로 버스가 들어가려다 다시 빠져나오는데 10분이 더 소요되었다. 가이드는 오늘 이스탄불 일정을 마치고 점심식사 후 앙카라로 이동한다고 한다. 터키는 남한의 7배 반이 되며 거의 8배 크기며 바울은 선교여행을 1차는 터키,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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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그리스, 3차는 다시 터키였으며 앙카라는 갈라디아 지역이다. 가이드는 중국 사람들은 쓰레기를 바닥에 그냥 버리고 한국 사람들은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서 더 불편하다고 하며 쓰레기는 내일부터 호텔 장롱 세탁물 수거용 비닐 봉지에 담아 일정마감 시 모아서 버려달라고 강조 한다.

<터키에서 버스안>

< 나무는 가로 같고 꽃은 새로 같고>

터키는 공동묘지가 도시 안에 가족합장으로 이루어지며 이곳에선 거부반응이 없다 고 한다. 이스탄불거리는 활기차며 지나가다 데오토시우스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데오토시우스 성벽>

< 이스탄불 거리 표정>

달리는 버스에서 갑자기 사진기를 열면 금방 멀어진다. 그래도 한 장을 건진다. 블루모스크 오스만 시대에 지어진 직경이 27.5m, 높이가 43m에 다다르는 술탄아흐멧 모스크는 규모면에서 터키 최대의 것으로, 맞은편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에 대한 이슬람 세 력의 우위를 상징하기 위해 그 양식을 모방, 발전시켜 건축한 독특한 형상의 회교 사원이다. 그 내부의 벽과 기둥이 푸른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 블루 모스크라고 도 불리고 있다. 돔의 200개가 넘는 조그만 창은 스태인드글래스로 장식되어 있어 이를 통해 들어오는 아름다운 햇살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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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모스크에 들어갈 때에는 사원에서 주는 보자기를 쓰던지 아니면 가지고 간 보 자기를 쓰고 신발은 비닐에 넣어서 들어간다. 사진은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 겉모 양으로 짐작하지만 사원 안 모습에 또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곳이다. 오늘은 햇볕이 나지 않아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볕과 반사되어 색을 내지 못하여 내부가 화 려하지는 못하지만 기하학적인 복잡한 아라베스크문양이 바닥의 화려한 붉은색 카 펫과 더불어 화려한 색이 더하여 복합적인 아름다움을 준다. 주위에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어린아이와 여자분들도 많이 보인다.

<블루모스크>

<블루모스크 내부 >

<블루모스크 내부>

<터키가이드 한소희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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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모스크 앞에서>

<소피아 성당 앞에서 >

성소피아 성당(아야 소피아 박물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규모 면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 던 성 소피아 성당은 오늘날까지도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비잔틴 제국시대에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공인하고 이곳에 거하가로 정한 콘스탄 티누스 대제가 새로운 ‘도시의 큰 사원’으로 325년 창건했던 성소피라 성당은 유스 티니아누스 대제의 명에 따라 532~537년에 다시 크게 개축되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정복으로 회교사원으로 용도가 바뀌면서 성당은 둘러 싸는 미나레트가 세워지고 성당 안벽은 회칠로 덮이고 그 이 위에 이슬람교 코란의 금문자와 문양들로 채워졌으나 회칠 속으로 성모마리아의 모자이크는 모두 사라졌 으나 1934년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정식 명칭을 바꾸면서 복원작업이 진행되어 두 꺼운 회칠이 벗겨지면서 성모마리아를 비롯한 비잔틴 시대의 화려한 흔적들이 드러 났다. 본당의 넓이는 75m X 70m로 7,570평방미터에 달하고 천장높이는 55.6m, 돔의 지름은 33m에 달하여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높이이며 40개의 창문 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구조이다. 또한, 영국 텔레그래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 운 건축물 10선에 선정된 곳이다 성소피아 사원은 블루모스크와 마주보고 서 있다. 현재로서는 블루모스크에 비해서 외관부터 초라한 모습이며 실내에도 소박하다. 그 러나 그 당시로서 교회를 생각하면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입구에는 수많은 기둥들이 반 토막이 된 채로 서 있고 화장실 입구에는 무너진 유 적의 돌들이 내딩굴고 있다. 수많은 역사가 휩쓸고 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소피아 성당은 수없는 공격 앞에도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마치 우리에게 소리 없는 교훈으로 다가온다. 실내에는 세계의 중심이라는 옴파로스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될 당시 아라베스크 문자들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마차를 타고 올라갔던 2층 계단을 거쳐 올라간 2층은 회칠 속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드러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수많은 기둥들 사이로 보이는 유적은 빛바랜 모 습이 우리의 마음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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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소피아 성당>

< 소피아 성당 입구>

<입구 터키인의 존경을 받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대통령사진>

<입구 내부 천정>

<입구 내부 >

<입구 내부 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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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소피아 성당 내부>

<내부의 사람들 >

<회칠 사이에 나타난 예수님 마리아 세례요한

< 복원도 >

모자이크화>

<소원이 이뤄지는 손가락 돌리기>

< 세계의 중심 옴파로스, 비잔틴시대 황제들 대관식 열렸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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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문양>

<

콘스탄티노플을 예수님께 바치는

유스티니아누스황제와콘스탄티누스황제>

<성당 밖 정원의 기둥들>

< 정원의 생과일주스 가게>

<웃음보가 터지고>

<화장실가는 돈 좀 주세요.~ 총무님 >

히포드럼 이곳은 196년 로마의 황제 세비루스(Severus)에 의해 지어진 검투 경기장이었는 데, 4세기 무렵 비잔틴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검투 경기는 금지되고 대신 말 이 끄는 마차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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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명 정도 수용이 가능했다고 하는 이곳은 경마장으로 이용되었을 뿐만이 아니 라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수많은 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13세기 초 십자군 의 침입으로 이 광장에서 비잔틴 군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는데 대부분의 광장 내 유적이 이때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곳에는 아주 귀중한 세 개의 기념비가 잘 보존되어 있다. 히포드럼광장은 양 옆은 마로니에가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히포드럼광장>

< 히포드럼광장>

오벨리스크 "디킬리타스(Dikilitas)"라고 불리는 이집트 오벨리스크는 원래 기원전 1550년에 메 소포타미아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로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헌사한 사원 에 세워졌었던 두 개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로 당시 왕족들의 일상을 양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오벨리스크 밑단 전차경기를 관전하는 황제 조각>

<AD 390년 제작 >

구리눗뱀(민21:4~9) 이외에도 콘스탄티누스의 기둥이라고 알려진 "오르메 수툰(Orme Sutun)", 아폴로 신전에서 가져온, 세 마리의 뱀이 서로 뒤엉켜 직경 3미터의 황금 그릇을 받치고 있는 형상의 셀팬타인 기둥(Serpentine)이 있다. 성경속 구리놋뱀 같은 뱀기둥은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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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놋뱀>

<투트모스3세 이집트 오벨리스크 >

<히포드럼 근처 아늑한 레스토랑에서

<석류즙 짜는 기계 >

점심을>

그랜드바자르 비잔틴 시대부터 현재 그랜드 바자르가 있는 장소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후 터키 가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서 1455~1461에 걸쳐 그 곳에는 도시의 경제생활을 부강하게 만들 목적으로 두 개의 주 아케이드가 만들어졌다. 이후 사람들은 활발한 상업 활동을 위한 더 많은 장소를 필요로 하였고 그 결과 주 아케이드의 바깥부분까지 그 영역을 확대시켜 나갔다. 오트만 시대를 거치면서 지 진,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던 이곳은 몇 번에 걸친 복구 끝에 오늘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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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에 이르게 되었다.18개의 출입구와 4천개 이상의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이스탄 불의 그랜드 바자르는 세계의 가장 큰 바자르 중의 하나로 터키를 방문하는 관광객 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은 관광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이곳은 홍차를 많이 마시는데 물이 귀한 중동에서는 물을 자주 못 마시니 독하다고 한다. 많이 마시는 자는 하루 30잔까지 마시는 자도 있다고 한다.

<터키 전통빵>

<이곳에서도 옥수수 군밤>

<그랜드바자르 입구>

<그랜드바자르 실내>

<남자 상인만 볼 수 있는 시장>

<터키 전통 젤리 터키쉬딜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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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전통 공예품가게>

<그랜드바자르엔 금이 유명 >

<터키 부적 악마의 눈>

< 각종 건과류 >

<터키 전통 신발아기옷>

< 쉬딜라이드 가게>

여기에서 우리는 공동경비를 터키 리라로 바꾸고 아이쇼핑을 하며 나오는 길에 터 키 대표 간식인 터키 떡을 2팩 구입했다. 무술림들은 특징상 여성들은 서비스업에 종사할 수 없어 남자들만 손님을 맞이하게 되어있어 남자상인들만 만날 수 있는 그 랜드바자르는 요즈음 큰 강매는 없어진 것 같고 옛날과 같은 정서가 많이 없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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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홍차 전통배달방식>

<화려한 터키 그릇 >

<터키 호두에 꿀을 바른 전통 간식>

< 터키 팽이>

지나가는 길에 터키 전통 케밥집을 만났다.

<터키 음식>

< 터키 케밥(구웠다는 뜻) 레스토랑>

보스포러스해협 소스포러스 해협은 길이는 약 30km이고 너비는 550~3,000미터 수심은 60~125미 터정도이다. 아시아대륙과 유럽대륙과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고대로부터 흑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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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수로이다. 마르마라 해의 출입구에 해당한은 위치에 있 어서 1453년 터키가 장악하게 되자 방위 목적으로 양안을 요새화하였고 오랫동안 군사 요충지로 활용되어왔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잇는 다리는 1973년 완공되었는데 정식이름이 유라시아 대교이 다. 별명은 보스포러스 대교라고도 하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이다.

<시내 트랩>

< 보스포러스 해협뒤 갈라타타워가 보이고>

<아시아유럽사이 보스포러스 해협>

<보스포러스해협 >

<멀리 유라시아 대교가 보이고>

<아시아와 유럽이 맞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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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러스해협>

<유라시아대교를 건너며 >

아쉬움을 남기고 이스탄불을 떠난다. 앙카라로 가는 길에는 비싼 이스탄불 집값으 로

근교에 새로운 신도시가 만들어졌고 앙카라가 가까울수록 백향목으로 보이는

침엽수도 많이 보인다. 마을에는 어김없이 이슬람 사원이 보이고 양떼들이 간간히 보인다.

<앙카라 가는 길의 백향목같은 침엽수들>

<회교사원이 있는 마을 >

<휴게소에서 예쁜 그릇의 홍차>

<앙카라 가는 길의 호수 >

앙카라까지 149km남았다고 하고 중간 가량비도 약간 내리는 곳도 있어 무지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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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보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석회가 많아 수돗물 마시면 안 되며 몸에 들어

가면 나오지 않아 올리브 와인 석회 빼내기 위해 많이 먹는다고 한다. 주위에 밀농 사가 많으며 우리나라 밀은 건빵용이며 터키는 점성이 강해서 좋은 빵이 나온다고 한다. 지붕이 경사면이 높아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인 것 같고 가이드는 내 일 복장은 등산복차림이 좋고 6~23도 까지 올라가며 날씨는 뜨겁고 사건 사고가 많은 곳이며 골절상 낙타에게 많이 물리니 낙타, 개조심해야 하며 자연그대로 감상 하시기 바란다고 한다. 6시 15분에 호텔에 도착하였다. 앙카라 호텔에서 갑바도기 아까지는 4시간이 걸리며 앙카라, 갑바도기아 건조기후라고 한다. 2014.4.30.수 3일째 날 새벽 2시에 깨어 잠이 오질 않는다. 4시 반에 모닝콜이 울리고 하루를 준비한다. 이 호텔은 반찬을 식당으로 가져가 밥을 먹을 수 있다. 5시부터 아침을 준비해 주는 고마운 호텔이다. 내려가니 강권사님께서 누룽지를 자 겨오셔서 함께 반찬과 먹었다. 식사는 터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치즈종류 올리브 종류가 주를 이룬다. 터키는 지진이 많은 나라라 내진공법에 의해 단열도 잘 안되 어 있고 구멍 난 돌로 집을 지을 수가 있어 층간 소음이 심하다고 한다. 길가 대로변에 호텔이 있어 바깥소음이 좀 심했다. 오늘은 제일 먼저 지하 도시 데린구유를 순례하기 때문에 밀리는 것을 예방하기위 해 정확하게 6시에 일찍 길을 나선다.

<앙카라에서 머문 호텔>

< 아메리칸 스타일 아침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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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바도기아 가는 길의 양떼들>

<소금호수>

<소금공장>

<가는 길 양떼들>

<유채밭>

<포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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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에서 홍차를 >

<가는 길 미루나무>

<갑바도기아 가는 길 눈 덮인 핫산산>

<갑바도기아가 가까워지고>

갑바도기아는 300m강우량에 건조기후지만 주위에 설산이 있어 강을 이루고 비가 오지 않아도 펌퍼시설과 지하수가 많아 밀농사, 포도, 감자, 아몬드, 호수, 살구, 땅 콩이 많다고 한다. 가이드는 그리스 신화속 인물을 이야기 하는데 이곳에 살았던 헷족속은 많은 신을 믿었는데 대지의 신 구바바라는 신은 아데미여신과 비슷하여 가슴에 남자 고환이 많이 달려있었고 손에 석류를 들고 있으며 니므롯신화의 세미라미스를 거쳐 아데미 여신은 다이애나로 바꾸었으며 성경속 아스다롯은 아데미와 같으며 바알신은 제우 스(황소)와 같다고 한다. 그리스 문명은 에게해 문명이며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 명(트로이)합쳐져 그리스 문명이 되며 에게 해에서 꽃을 피워 청동기 끝에 막을 내 렸다고 한다. 터키에선 초대 대통령아타투르크 대통령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가이드는 초 대 대통령 시대에 15년을 집권하면서 터키 땅을 많이 찾았고 그는 터키가 선진국이 되기위해 버려야 할 것은 종교로 보아 여성의 보자기를 벗기기 위해 애섰으며 정통 아람어는 이집트어이지만 너무 어려워 문맹인이 많아 독일 언어학자와 손잡고 1928년 독창적인 문자를 만들었으며 대통령은 터키 미래를 4가지로 보았는데 어린 이(미래), 군인(국방), 선생님(교육), 농부(생산)로 보아 지금까지도 국민들의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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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한 몸으로 받고있다고 하니 우리는 누구를 제일 존경하냐? 하면 생각을 하지만 터키에선 어김없이 초대 대통령을 제일 존경한다고 하니 부럽다. 가이드는 한국 분들이 오시면 반드시 저 넓은 밀밭 주인이 누구인지 물어본다고 하 는데 밀밭은 국유지가 56%이며 이유는 공화국초기 왕족을 모두 내 쫓았고 그 후 그리스인들이 돌아가서 국유지 되었고 농부는 9%대이며 밀밭은 대기업 몇 개가 관 장하고 있고 터키는 1950년대 트렉트가 도입되었지만 재래식을 좋아하며 과수원을 경영하는 농부는 중산층이라고 한다. 터키는 45개의 공항이 있고 국제공항이 24개라고 한다. 2개의 소금호수도 지나고 멀리 해발 3200m의 핫산산이 머리에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데 꼭대기에는 화 산 분화구가 있다 고한다. 풍경이 좋은 곳이 나오면 사진 찍는 소리가 어김없이 나오고 있으나 달리는 차 속 에서 전기 줄이 가로막아 찍는 것이 쉽지 않다. 터키의 휴게소는 관광버스가 가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나와 버스를 물로 씻어준다. 우리나라는 바닥위주의 청소를 한다면 이곳은 창문위주의 청소를 한다고 하며 씻어 주면 운전사는 팁을 주신다고 한다. 이슬람은 가난한자도 먹고살아가도록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해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고 한다. 휴게소에서 밥은 무료로 주며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돌보며 유목생활에도 동물을 가족같이 여기며 묶어놓는것보다 방목을 하며 이리 늑대보호를 철저하게 하며 가족같이 생각한다고 한다. 양고기는 15개월 미만이면 냄새가 안 나며 뼈의 크기로 나이를 알 수 있다 고한다. 갑바도기아(행2:9,벧전1:1~2) 1985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등록되었으며 이곳에 최초로 정착이 이루어진 때는 고 대 로마시대이다. '카파도키아(Cappadocia, Kapadokya)'란페르시아어 '카트파두키아 '에서 유래한 말로 '좋은 말들의 땅'이라는 뜻입니다.카파도키아는 지도에 나오는 도 시명이 아니고,터키(Turkey)의 수도인 앙카라(Ankara)에서 남쪽으로 3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아나톨리아(Anatolia) 고원의 남동부 일대를 말하는데,동쪽 카이 세리(Kayseri)부터 서쪽의 악사라이(Aksaray), 북쪽의 하치벡타쉬(Hacibektas),그 리고 남쪽의 니그데(Nigde) 까지 매우 광할한 구역이다. 아나톨리아 고원은 해발고 도 800∼1200m인 분지형고원으로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져서결국 아르메니 아(Armenia)고원으로 이어지는 매우 광대한 지역이며 이 기묘한 바위들은 화산과 비바람에 의해 형성됐다. 카파도키아는 300만 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활발하게 일어 났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화산재가 고원지대에 두툼하게 쌓여 응회암층을 형성했다. 이 응회암층은 단단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 지하수와 비바람에 침식되면 서 무른 부위는 깎여나가고 단단한 부분만 살아남아 지금 같은 버섯이나 죽순모양 의 기암군이 형성됐다. 방과 방을 잇는 통로 끝에는 연자방아 모양의 커다란 돌이 세워져 있다. 적이 침입했을 때 더 이상의 진입을 막기 위한 장치다. 돌을 옆으로 굴리면 통로가 꽉 막힌다. 방과 방 사이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의사소통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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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이다. 고기를 굽는 연기는 흔적 없이 빠져나가고 신선한 공기는 빨아들이는 통풍구도 있다. 식수를 위해 우물도 있으며 빗물을 받을 수 있는 시설도 있다. 긴급 시 다른 지하 도시로 피신할 수 있는 비밀통로도 9㎞나 이어져 있다. 데린구유 카타콤 (지하 도시) 히11:36~38 버섯모양의 기암괴석으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카파도키아를 더욱 경이롭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최대 3만 명까지도 수용이 가능한 대규모 지하 도시이다. 이 곳의 형성 시기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히타이트 시대 즈음 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본격적인 확장기는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 곳에 들어와 교육 기관과 교회, 와인 저장고 등을 축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작은 규모의 마을부터 거대한 도시에 이르기까지 총 40여개에 달하는 거주지가 발 굴되었으나 오늘날 일반인에게는 소수만이 공개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잘 보 존되어 있는 곳 중 하나가 Nevsehir 에서 29Km떨어진 곳에 위치한 데린구유 지하 도시이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인 데린구유는 1965년에 처음 일반인에게 공개되었 으나 실제로 관람할 수 있는 구역은 총면적의 10%에 지나지 않는다. 미로처럼 얽 혀있는 좁다라한 통로 곳곳은 무너져 내린 곳도 많지만 놀랍게도 내부의 환기시설 은 아직도 잘 작동하고 있다. 데린구유 지하 도시는 총 깊이가 55m에 달하는 8층으로 이루어졌다. 1층과 2층에 는 마구간과 포도주 압착기, 돌로 만든 두개의 긴 탁자가 놓여 있는 식당 혹은 교 실이 위치하고 있고 3, 4층에는 거주지와 교회, 병기고, 터널이 있다. 십자가 모양 의 교회, 지하 감옥 및 묘지는 지하층에 위치해 있다.

<데린구유 지하 도시 모양도>

<데린구유 지하 도시>

어느 유적지나 마찬가지이지 이지만 입구에 기념품가게가 즐비하다. 터키의 유명한 악마의 눈이라는 부적과 같은 것이 나무에 열매처럼 통째로 매달려 있어 찍고 내려간다. 줄이 많이 서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다행히 줄이 길지 않 았다. 들어가면 그 당시 핍박을 피해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사용되었던 맷돌도 있 고 여러 갈래의 길들이 그 당시 성도들의 급박한 상황들을 읽을 수가 있고 농사라 고는 지을 수 없었던 메마른 땅으로 보이는 곳에 포도 농사를 지으며 고난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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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만했던 초기 기독교의 성도들의 고난을 생각하면 오늘 나에게 채찍을 때리고 있다.

<밖으로 나온 환기구>

<입구>

<동굴내부>

<적을 막을 수 있는 구르는 맷돌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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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내부>

<우물>

<군데군데 적을 막을 구르는 맷돌>

<지하교회>

<지하교회터>

<빗물이 모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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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포럼에서 단체사진을 >

<지하 동굴 내부>

<나무에 달린 악마의 눈>

<데린구유 기념품점>

우치히사르 우치히사르성은 로마의 핍박을 피해 기독교인들이 숨어살던 바위산이라고 합니다. 근방에 에르지예수 산이 보인다.

<우치히사르 앞에서 단체사진>

<우치히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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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히사르 요정집같은 집들>

<백년초 꽃>

<우치히사르 입구 낙타>

<괴레메 파노라마 언덕>

우치히사르의 입구에는 낙타가 촬영용으로 버티고 앉아있고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 하다. 500미터쯤 올라가면 파란 하늘에 얼굴을 드려낸 우치히사르에 탄성을 자아낸 다. 각자 사진을 찍고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출발한다. 괴레메 전체 전망을 볼 수 있는 괴레메 파노라마 언덕은 열기구를 타면 볼 수 있는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관광객들이 굉장히 선호하는 장소이다. 괴레메 파노라마 언덕 갑바도기아에 열기구를 타지 않아도 그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이 비둘기 골 짜기이다. 그 옛날 비둘기 배설물로 농사를 지었다고 해 비둘기 골짜기라고 도 하 는데 지금도 비둘기 들이 많이 보인다. 갑바도기아지역에서 제일 전망이 좋아보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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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서 >

<우장로님의 선포>

<기념사진>

<옥상에 수레가>

<비둘기>

<비둘기 배설물을 거름으로 농사를 지었다는 고대 갑바도기아인들>

괴레메동굴교회 박물관 갑바도기아 의 도시이며 네브세히르 주에 있는 괴레메 국립공원안의 동굴교회이다. 카파도키아 관광의 중심으로의 일대가 전부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움의 극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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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 지내는 것만으로도 카파도키아를 다 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합니다. 또한 카파도키아의 인근 다른 도시로의 이동이 매우 용이하여 카파도키아 투어의 시발점이 되는데,우치사르 정도는 가뿐히 걸어 갈수 있을 정도 이다. 사과 교회(Apple Church) 12세기에 지어진 매우 중요한 교회중 하나로잘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인 곳입 니다. 규모가 작은 편으로 일대의 교회중 늦은 시기에 지어졌고십자가 형태로 지어 졌습니다.바위속에 돔모양의 천정과 네 개의 기둥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최후의 만 찬, 십자가 처형, 천사 등을 그린 벽화의 일부가 남아있는데그림속의 가브리엘 천사 가 사과를 들고 있다고 해서'Apple Church'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뱀 교회(Snake Church) 둥근 천장에 11세기 프레스코화가 남아있는데성 바실, 성 도마, 성 오노우프리우스, 성 데 오도르가

뱀과 싸우는 장면과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그의 어머니 헬레나의

그림이 있습니다. 낮은 천정과 긴 예배 당이 있고예수의 그림과 교회를 세운 사 람의 초상이 있다.

<동굴교회 계곡>

<동굴교회 유적>

<동굴교회 유적>

<동굴교회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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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코와>

<관>

<동굴교회 내부>

<동굴교회 유적>

<동굴 수도원 식탁>

<프레스코와사 남아있는 동굴교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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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수도원 식당 내부>

<괴레메 동굴교회유적 카란릭교회>

<동굴수도원 앞에서>

<수도원 입구에서 터키 아가씨들과>

<오네시모 벽화가 있는 교회 입구>

<내려오는 길 블루베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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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가게 장갑>

<찰진 터키 아이스크림>

<신기한 바위들>

<요정의 굴뚝같다>

<기념촬영>

<구렁이 바위>

퍄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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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바위>

<무어라 표현할까?>

<수고 많슴다~>

<열심~>

괴레메 동굴교회는 사진촬영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어 살벌한 느낌이 든다. 프레스코화의 보존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상태여서 그런지 촬영시 후레쉬 때문인지 시작이 시끄럽다. 파란 하늘아래 드러난 절경이 기가 막히다. 우린 식탁이 있었던 곳까지 빠지지 않고 다 보았는데 동굴교회이지만 제대로 된 석회암을 깎아 식탁과 회의실을 만들고 모여 두려움으로 드렸을 예배를 생각하니 마음 한곳이 저려온다. 동굴교회를 내려오는 길에는 야생 블루베리나무가 있는데 비가오지 않아 열매가 아 주 작다. 점심은 항아리케밥 동굴레스토랑에서 먹었다. 동굴 특유의 신비함과 아늑함이 있고 화장실도 더 머물고 싶게 만드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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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녹두 스프와 샐러드가 나오고 메인요리는 항아리에 식재료를 넣고 숯불에 구 운 다음 항아리를 깨뜨리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등장을 한다. 밖으로 나오면 아래로 갑바도기아 인들이 생활할 수 있었던 근원이 된 강 크즐강이 내려다보이며 전망이 좋다.

<동굴식당>

<동굴식당에서 점심을>

<동굴식당>

<항아리케밥>

<항아리케밥>

<크즐강이 내려다보이는 동굴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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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바도기아 순례를 마치고 부근에 터키석 상가엔 은세공이 발달되어 준 보석인 터 키석에 은으로 장식된 장신구들이 많았다. 입구에서 터키에서 유명한 사과차를 여 기서 맛볼 수 있었다.

<사과차>

<터키석가게>

<터키석가게>

<터키석가게>

오후 4시 10분 갑바도기아를 떠나 또다시 핫산산을 보며 비시디아안디옥이 있는 꼬냐로 떠난다. 휴게소에서 터키 소개책자를 5유로에 한권 구입했다. 꼬냐로 가는 길에 옛날 실크로드시대에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갸라반 대상들의 숙소가 있어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받아 외관만 보고 사진만 몇 장 남기고 떠난다. 가이드는 내일 준비물을 알려주는데 기온차가 있고 파묵칼레 족욕이 있으니 물기 닦을 작은 수건준비 하며 내일은 5,6,7작전으로 7시에 비시디아안디옥으로 떠난다 한다. 꼬냐에 도착해 깔끔한 호텔에서 수요예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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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대상들 숙소>

<실크로드대상숙소>

<대상들 숙소 앞에서 기념사진>

<휴게소에서 구입한 터키 소책자가게>

이고니온(꼬냐)(행13:51,14:1) 소아시아 남부 중앙에 위치 터키 도청소재지가 있는 꼬냐이며 해발 1000m 고지에 있는 이곳은 헬라와 로마제국당시에 루가오니아의 수도였다. 비시디아 산맥에서 흘 러내리는 강물로 비옥해진 평야가 있어 곡식과 과일 산출의 중심지이다. 바울은 1차 선교여행에 방문한곳이다. 디모데가 이고니온 출신이다. 이고니온에서 10km떨어진 곳에 칠레라는 기독인들의 마을이 있는데 오늘날에는 꼬냐라고 부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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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냐(이고니온) 도착>

<꼬냐 호텔>

<꼬냐 호텔>

<저녁식사>

<저녁식사>

<예배>

2014.5.1. 4일째날 목 아침식사에 어제 가이드가 치즈 버터 코너에 이곳의 특산물인 고농축 양젖으로 만 든 버터 같으나 우유빛이나는

카이막이라는 아주 맛있는 치즈가 있다고 알려주었

는데 빵에 발라 먹으면 맛있다고 한다. 물 치즈와 비슷한데 나는 육류를 먹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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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먹지 못해 서운하다. 숙소엔 포트와 물2병도 공짜였다. 정확하게 7시에 출발했다. 이고니온에는 몽고군들이 쓸고 간후 렘루트가 다 무너뜨 려 유적이 없어 땅만 밟고 떠나니 서운하다. 이고니온에서 비시디아안디옥까지는 2 시간 45분쯤 걸린다고 한다. 꼬냐는 해발 1000m의 고도에 위치해 있는 공업도시로 부자들이 많다고 한다. 터키에서는 통통하고 머리가 긴 여자를 선호하며 마른여자는 인기가 없다고 하며 남자들이 부인에게도 나의 사탕, 나의 인생, 나의 꿀, 나의 디저트등 표현이 다양하 며 노골적이라고 한다.

<꼬냐 부근 비시디아 산맥>

<비시디안안디옥가는 길>

<기름진 땅>

<설산이 보이고>

비시디아 안디옥(행13:14) 고대 유적지는 악세히르이 남서쪽 오늘날 터키중부의 얄바츠에서 동쪽으로 약 3.2km떨어진 악세히르 남서쪽의 페허지이다.(행13:14) 바울은 1차 여행 때 이곳 안디옥의 회당에서(행13:14~43)안식일에 유대인드로가 헬라어를 사용하는 이방인 들에게 선교하였다. 이때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바울과 바 나바를 따랐다. 유대인 중 일부는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 방했다. 이 도시의 유력자들은 선동하여 박해하자 바울과 바나바는 발의 티끌을 떨 어 버리고 안디옥을 떠나 이고니온으로 갔다(행13: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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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유적으로는 도시 3면에는 성벽이 남아있고 코린트식 달 신전과 아우구스투스신 전인으로 추측하는 신전이 있고 광장과 남성 신의 신당이 있고 동편에는 안티우스 강이 내려다보인다. 비시디아 안디옥이 가까워지자 금방이라도 가량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이다. 9시 35분 비시디아안디옥인 얄바츠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카모마일 꽃이 땅에 붙어서 얼굴을 내밀고 있고 푸른 들풀 속에 돌덩어리 유적들이 나뒹굴고 있다. 그 당시 로마대로와 같은 길이 대리석으로 되어있고 입구 에 그 당시 상가로 보이는 유적이 보인다. 유적에는 여러 모양의 조각들이 보인다. 그 당시 바울기념교회로 전해지는 교회는 유대회당자리에 건축되었다고 전해지는 교회 터에는 한국에서 온 천주교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어 사진촬영을 마치고 목사님의 대표기도로 안디옥교회를 떠나 윗길로 올라가면 그 당시 원형극장이 흙속 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옆에는 또 다른 로마시대 도로가 나 있다. 유적 터를 나와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조금 먼 곳에 있다.

<한글로 된 설명판>

<비시디아 안디옥 유적 안내>

<비시디아안디옥 입구>

<비시디아안디옥 북쪽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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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디아안디옥 유적>

<유적 조각>

<술의 신(디오니소스) 조각>

<사도바울기념교회 5~6세기비잔탄양식교회>

<사도 바울교회터>

<교회 터에서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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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터에서 합심기도>

<십자가가 보이는 바울기념교회터>

<원형극장>

<로마시대 대로>

<카모마일 꽃>

<비시디아안디옥의 네잎클로버>

10시 35분 얄바츠를 떠난다. 비시디아안디옥오는길과 비시디아안디옥을 떠나 에베 소 가는 길도 역시 타우루스 산맥을 나란히 하며 간다. 타우루스산맥(토로스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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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루스 산맥 지도>

<라오디게아 가는 길 >

<가는 길의 석회질의 민둥산>

<시골풍경>

10시 35분 비시디아안디옥을 떠나 타우루스(토로스) 산맥을 바라보며 멀리 설산과 안구정화를 시키는 푸른 초장을 바라보며 간다. 바울의 고향 다소는 타우루스산맥을 넘지 않고는 나올 수 없기 때문에 타우루스산 은 바울과 깊은 연관이 있는 터키의 척추와 같은 산맥이며 길이가 4800km으로 시 리아 국경까지 이어지며 마가가 이 산맥을 넘기 시작하여 힘이 들었는지 이탈했던 곳이며 바울 당시에는 산적과 강도가 많았으며 폼페이우스도 산적을 막을 수 없었 을 만큼 악명이 높았으며 이 산맥을 넘으면 바로 지중해가 나온다고 한다. 바울은 여행 전문가이며 모든 지형과 기후를 연구한 사람이며 전도도 전략이 필요하며 대 도시를 겨냥해 집중 전도를 했다고 한다. 가이드는 바울은안장다리라고 한다. 돌맞고 고문당하고 목숨 걸고 넘어야 되는 산 을 굶고 매 맞아 외모도 많이 변했다고 한다. 작가로서 바울은 참고도서 없이 책을 쓴 천재 CEO로써 그의 인재등용은 경영인 능력없으면 안되었으며 사업가로서 바울 은 전도비용 때문에 같이 다니는 제자 전도비까지 충당해야하는 바울은 전문여행가 이다. 풍토병 흉흉할 때는 그 노하우를 많이 전해주었을 것이다. 돈 훔친 노예를 형제로 생각하라는 말씀은 힘든 일이였다. 바울은 제자도 고향 출신 없다. 학연 지역 혈연 초월한분이다. 산헤드린공인 회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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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말리엘이다. 산헤드린공인 회장이 최고의 3대 유대학자이다 바울이 이 의장을 할 수도 있었으나 결혼을 해야 의장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에선 아덴 제외하 고는 성공적 선교였다 헬라인들 부활사상 없었다. 가이드는 양귀비의 어원이 터키에서 나왔으며 점심은 양귀비 식당으로 간다고 한 다. 양귀비 씨를 넣어 굽는 빵도 있다고 해 기대된다. 터키 민둥산은 석회가 많아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고 한다. 다음 순서는 라오디게아, 골로새, 히에라볼리,파묵칼레를 간다. 아나톨리아 평원 너머 타우루스인 좌측을 보면서 계속 간다. 주위에 보이는 과일나무는 사과나무가 많이 보이고 봄에는 유채꽃이 만발하는데 기 름 때문에 심고, 갑자기 소떼를 몰고 가는 목동이 나타나기도 하며 오늘 가는 곳은 시골이라고 한다. 가이드는 인도는 4대 문명권이지만 조잡스럽지만 그래도 가고 싶은 것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며 기차에는 쥐가 다니며 시신테우는 장작도 꺼지지 않는 불꽃 바나나 시로 테워야하니 비싸다고 한다. 멀쩡한 사람도 죽음을 기다리며 장작 값을 요구하 며 모기도 많아 건기에 가야하며 모기는 인도는 카레를 먹기 때문에 잘 물지 않으 며 성직자와 어린이는 매장하고 뱀은 신이기 때문에 뱀한데 물려죽으면 화장하지 않는다고한다. 가는 길은 커다란 호수가 보인다. 이름은 에기르디르호수라고 하는데 바울당시는 걸어가든지 말을 타고 다녔으니 접근하기가 더 쉬워 쉬어갔을 것이라는 상상도 해본다. 바울은 눈이오나 비가 오나 걸어 다녔다고 하며 에게 해 지중해는 오후에는 파도가 심하다 바울때에는 쪽배로 가니 고생이 굉장히 심했다고 봐야한다 고 한다. 멀미가 심하고 몸살을 앓기도 한다. 타우루스의 눈은 5월이나 6월에 녹는 다. 가이드는 이스탄불은 오늘 노동절이라 시위가 많은데 우린 빠져나와서 다행이 라고 한다. 이슬람권은 소를 잡으면 두건을 씌우고 잡으며 혈관을 갈라서 최대한 빨리 죽이며 풀을 먹고 자란 소는 냄새가 좀 나며 체격이 좀 작다고 한다. 우리 팁에는 수습가이드1명이 터키에서 동행했었는데 오늘 25분 정도 시간을 주어 서 오늘 첫 부대 경험을 한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사법시험준비를 하다 접고 가이드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다음은 이번 순례의 유일한 목사님이신 서목사님께서 소개와 함께 느낌을 말씀하신 다. 아버님께서 목사님이시며 성악을 전공하셨고 도곡동 강변교회 시무하시다 남포 교회를 9년째 시무하시며 그곳에서 결혼도 하시고 신학교 이전에는 많이 방황하셨 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역하시며 안정을 찾으셨다고 하신다. 에베소 원형극장에서 찬양을 한곡하시겠다고 하신다. 짝짝... 가이드는 에베소 원형극장의 음향효과를 그 때에 한번 확인하시라고 하신다. 타우르스산을 넘느라 좋은 경치를 보며 흔들리는 길을 달린다. 점심메뉴는 쌀밥에 피데 샐러드 포도 잎에 산 올리브 잎에 담가 밥과 갖은 양념해 말아서 찐 음식 야프락셀마라고 한다. 수제요쿠르트 위에 꿀을 올리고 양귀비 씨를 올려주는 메뉴이며 피자의 원조 피대가 나온다. 피자와 같은 피데는 소고기와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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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지가 나왔으나 우리는 치즈 피데를 더 맛있게 먹었다. 음식점이름은 디나르이다. 시간은 11시 55분이다. 주위는 타우루스 줄기를 끼고 늘 푸른 들판을 보며 다닌다. 점심식사한 곳부터 아시아라고 한다. 위에 씨있는 부분이 검정부분의 십자가는 개양귀비(포피)라고한다. 아닌 것은 아네 모네이다. 함께 오신 권사님께서 깻잎 멸치볶음 고추장을 가져오셔서 맛있는 점심 을 먹고 화장실을 해결하고 12시 55분 출발했다. 식당에서 라오디게아 교회까지는 1시간 반이 걸린다고 한다. 저녁은 뷔페이란다. 토마토시작은 1500년이며 피 흘리는 야채라고 했으며 원래 유럽은 딱딱한 빵을 먹 었고 나폴리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을 때 토마토의 등장으로 16세기에 피자를 만들 어 먹었다 고한다.

<수습가이드의 첫 소감발표>

<광고사항은 목사님께서>

<말린 양귀비>

<양귀비 씨 전문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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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씨를 넣은 음식점>

<라오디게아교회 가는 길>

내일은 사데를 가는데 경치가 좋고 사데는 복원이 거의 없으며 에베소, 모래는 트 로이이다. 오늘 최종목적지는 고도 300이며 600넘으면 올리브가 불가능하다 바닷 바람 석회있어야하며 물이 너무 많아도 안 되며 3개월 동안은 건조해야한다. 잎에 작은 솜털이있어수분을 보유하고 있다 먼지바람이 한번 맞은 것 같은 나무이다. 우 기에는 까맣색에서 자주 빛으로 멍든 색같이 변한다. 이럴 때 기름함량이 많다고한 다. 올리브는 기계를 이용해 따는데 나무를 흔들어서 수작업이 필요하며 아주 예민 한 나무라 따자마자 바로 가공이 필요한 것이 올리브이다. 그리스 스페인 터키 이 탈리아 올리브나라이다. 스폐인은 기후가 잘 맞고 열매는 30~ 40년 넘으면 못 먹 으나 죽지는 않는다고 한다. 죽지 않는 나무가 올리브나무이다. 라오디게아는 헬라의 왕조이며 라오디게아는 헬라시대 때 세워진 나리이며 헬라시 대부터라고 봐야한다 알렉산드는 패배를 모르는 분이시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스승이며 철학적인 소양 교육적인 것 헬라적 사고를 배웠다. 가는 길에 소다성분이 있는 호수가 나온다. 흰색의 강변은 소금이 아니라 소다이며 타우르스산 아래에 있 다. 터키는 호수가 200개 넘는다. 로마는 그리스를 카피한 것이다. 마케도니아가 그리스를 통일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 내분이였다고 한다. 펠레 폰네소스를 인해 단숨에 통일시킨다. 라오디게아는 헬라시대에 탄생한 이름이다. 히에라볼리 가는 길에는 하얀색 보라색 양귀비 밭이 많이 보이며 에베소가 가까울 수록 포도나무가 많이 보인다. 터키는 장애의 편견이 전혀 없으며 다른 민족이 꽃 피운 문화를 누리며 사는 나라라고 한다. 터키는 집시들이 많으며 나라가 넓다보니 농사철이 달라 농번기에 텐트를 치고 일 하는 집시들의 거처들이 간간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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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 가는 길 양귀비밭>

<라오디게아가 가까워지자 포도나무가>

먼저 도착한곳이 데니즐리에 속해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이다. 라오디게아교회(계3:14,골4:13~16) 뜻은 ‘백성의 정의’이다. 고대 유적지로는 히에라볼리(파묵칼레)에서 남쪽 10km 골로새 서북쪽 약 16km 떨 어진 데니즐리 외곽에 있다. 바울은 이교회를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골2:1) 이곳은 60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크게 파괴되어 복구가 바로 이루어졌다. 이곳은 토양이 좋아 목장들이 많고 봉제공 장인들이 많고 금융활동과 은행업 발달 하였으며(계3:17) 이 근방에는 ‘후르기야’라는 안약 원료가 생산되었으며 전설적인 명의 갈렌이 이 안약을 크게 추천하였다 한다. 그래서 바울은 ‘안약을 사서 눈에 발 라 보게 하라(계3:18)라고 권면한 것은 라오디게아가 안약 산지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 분명하며 의료도시였다. 이곳은 4세기경에는 부르기아 지방의 수도였으 며 유적으로는 고대 경기장 공중목욕탕 수도관과 물탑 공동묘지의 석관들을 비롯하 여 활발한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지금 그 이름만 남아있고 기독교 공인이후에 세워진 교회가 한 창 복원중인데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있고 입구에 보이는 모자잌만 보이고 뒷문으로 돌아가니 젊은이들이 모자잌 조각을 붙이고 있고 사진을 찍으니 자기들을 찍는 줄 알고 포즈를 취해준다. 중심에 신전이 있는데 유리관으로 보호하고 있는 아래 아치도 보이고 여러 그림이 그려진 기둥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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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

<라오디게아 유적 입구>

<라오디게아 유적>

<라오디게아 유적>

<복원중인 유적>

<복원중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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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조각들>

<대로>

<로마시대 기둥들>

<대로변>

<유적>

<유리보호막아래 유적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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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 대로>

<라오디게아 유적>

<라오디게아 유적지 앞에서 먹는

<라오디게아 유적>

아이스크림>

<라오디게아에서 본 히에라볼리>

<라오디게아에서 본 파묵칼레>

이곳의 유적은 로마시대 기둥들이 많이 보이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위치만 보아도 부자동네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중앙에 위치하여 앞으 로는 설산이 바라보고 뒤에는 히에라볼리 대도시가 있고 히에라볼리에서 내려오는 온천수는 라오디게아까지 내려오면 미지근한 물이 되어버린다는 말씀을 그대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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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고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유적지에서 20분만 가면 히에라볼리이다. 라오디게아의 유적에는 눈이 내린 것 같은 파묵칼레 온천이 올려다 보이고 포피 야 생 양귀비가 많이 피어있어 유적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도마뱀들이 많이 보인다. 화장실을 이용하고 상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고는 파묵칼레 목화가 유명하 여 파묵칼레 온천입구에 면제품과 의류점에 45분쯤 들렸는데 1층에는 침구류와 2 층에는 버버리 상품을 팔고 있다.

<상점에서 본 파묵칼레 온천지역>

<면제품 상점>

<버버리제품>

<이불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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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 앞 꼬마들>

<파묵칼레 포도송이>

<올리브 꽃>

<상점 앞 수공예 덧신>

면 제품상점 이브자리를 떠나 히에라볼리 유적지와 파묵칼레 온천 순례이다. 가이드는 데니즐리의 라오디게아가 내려다보이는 히에라볼리 유적지에서 적당한 온 도와 좋은 기후와 적당한 고도를 자랑하며 비옥한 토지와 앞에는 설산의 시원한 바 람으로 최고의 자연을 자랑하는 이곳의 유적지를 설명하며 온천지역에 들어가기 전 유의사항을 말한다. 첫째는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둘째는 선 글라스 핸드폰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하라는 설명을 한다. 히에라볼리, 파묵칼레(목화의 성)(계3:15) 뜻 ‘거룩한 성’라오디게아 북쪽 10km 지점의 오늘날 파묵칼레이다. 파묵칼레는 목 화의 성이다.라쿠스강이 내려다보이는 소아시아 남서쪽에 위치한 이곳은 라오디게 아 이고니움 에베소 대로를 지나 북서쪽의 빌라데리아와 사데로 가는 길목에 있다. 이곳은 BC2세기경에 버가모 왕 엠마네스가 건설한 도시이며(골4:2~13)에 의하면 이곳의 교회는 에바브라가 설립한 듯하다. 유적으로는 공중목욕탕 노천온천 파묵칼 레 순교자 빌립집사의 무덤이 있고 타라타여신의 숭배중심비였으며 이곳의 양털카 펫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석회질 온천은 아직까지 관광객과 순례 객들에 의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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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하고 있다. 히에라볼리는 로마 이름이고 이곳에선 파묵칼레이다. 이곳의 물은 약 간 미지근하다. 입구에는 색색의 장미가 많이 피어있고 여러 줄기의 물줄기였던 작 은 줄기들이 아주 많이 보인다. 얼마나 유적이 큰지 2개의 원형극장이 산 아래 보 이고 기둥들과 여러 유적들이 군데군데 보이고 입구에서 입장료를 지불하였는데 히 에라볼리 박물관을 안에 만들어 또 입장료를 받고 있어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서 사 진만 몇 컷 찍고 있다. 물속에 족욕을 할 때에는 신발을 팀끼리 모아놓고는 가이드 와 인솔자가 지키며 모두들 물속에 족욕도 하며 사진도 찍고 자동으로 발지압을 하 여서인지 발이 시원하며 피곤이 사라짐을 느낀다.

이곳의 온천물은 안구신경정화

를 시키는 물질이들어있어 안약의 재료로 쓰인다고 한다. 족욕을 마치고 유적지에 서 기념 인증 샷도 남기고 5시 20분 히에라볼리를 떠났다.

<히에라볼리 설명도>

<히에라볼리유적>

<땅속 히에라볼리 유적>

<산 아래 히에라볼리 원형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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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라볼리 박물관>

<히에라볼리 유적대로>

<파묵칼레 온천>

<파묵칼레>

<파묵칼레>

<파묵칼레 석회 굳은 석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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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칼레 온천물>

<족욕탕>

<히에라볼리 유적>

<파묵칼레 수로>

<히에라볼리 유적 앞 정원에서>

<유적 정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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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라볼리 온천수로>

<히에라볼리 야생거북>

히에라볼리 근처 붉은 온천으로 유명한 카라하이어트지역 호텔에서 묵는다. 히에라볼리는 3층 이상의 건물은 유적지를 가릴 수 있기 때문에 지을 수가 없다한 다. 호텔도 가방을 각자가지고 가든지 아니면 벨 보이에게 한가방당 1불씩 지불하여 배 달을 해 준다. 방배정을 마치고 우선 온천부터 한 후 7시 반에 저녁식사이다. 저녁 식사는 겉보기와는 달리 아주 다양하게 나온다. 여러 채소 샐러드에 우리나라 부추 부침개 비슷한 것이 나오고 차가운 음식 뜨거운 음식등 다양하다. 이번 순례는 살짝 볶은 밥이나 밥이나와 좋다. 밥이 있으니 간단한 반찬만 있으면 식사에 어려움은 없다.

<히에라볼리 장미>

<호텔 온천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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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온천욕탕>

<호텔 숙소>

<저녁밥>

<담백한 빈대떡>

<풍성한 식탁>

<풍성한 식탁>

밤에 최부순권사님 방에서 다과회가 있다고 하는데 빨래하고 씻다보니 바빠 못 갔 다. 내일은 456작전이다. 2014.5.2. 금 5일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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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한다. 5시 30분에 아침밥이다. 어제 목이 아팠는데 일어나니 괜찮다. 5시에 아잔소리가 난다 아잔 소리는 은율이 있어 음악이 필요없었다고한다. 5시 반에 아침을 먹고 정확하게 6시에 출발한다. 이번 팀은 굉장히 시간을 잘 지켜 정확하게 출발하며 버스안도 깨끗하게 정리를 잘해 기사아저씨가 좋아한단다.

<식사시간 너무 일찍 나와 배회중>

<일찍 나와 새벽공기를 마시며>

<아침밥도 진수성찬>

<올리브가 있는 식탁>

<꿀과 각종 쨈 치즈>

<더운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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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책망을 들은 교회였고 오늘은 칭찬들은 교회를 간다. 빌라델비아교회는 뜻 이 형제사랑이란 뜻이며 현지명은 알라세이르이다. 히에라볼리에서 빌라델비아까지 는 1시간 반이 걸리며 빌라델비아에서 사데 까지는 50분이 걸린다. 이 모든 지역이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며 전쟁이 발발한곳이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요한을 기념 하는 비잔틴시대는 6세기경이다. 요한 기념 터가남아있고 계시록과는 상관없는 건 물터이다. 알렉산드리아이후에 필리타리우스가 버가모라는 영어로 페르가몬왕국을 세운다. 짧았지만 대단했으며 앙카라까지 정복한 왕이다. 갈라티아(갈리아인) 페르 가몬 헬라시대까지는 왕국이며 로마시대는 지역으로 바뀌었다. 아탈로스 3세가 로 마에 헌납한 땅이다 아탈로스는 ,안댤랴 아달리아(레몬교역한곳레몬뜻 유메네스2 세)때 헬라에 조각이 유명한곳이 페르가몬가문이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대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로마시대 좋은 조각들이 만들어졌다 대리석은 무르고 다루기가 좋아 조각이 발전하였고 도서분류법을 고안한 왕국이 페르가몬이며 양피 지를 다룰 수 있는 왕국이였다. 지금 지나는 곳은 빌라델비아지역으로 포도로 유명 한곳이며 바쿠스 술의신 디오니소스 머리 포도덩쿨 감고 나타나는 신 연극 공연의 신이다. 밭에는 포피가 잔뜩 피어있다. 술의 신이 탄생할만할만큼 포도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중부보다 남쪽으로 올수록 포도 잎이 많이 나왔다.

<빌라델비아지역의 포도나무>

<포도가 특산물>

<빌라델비아지역>

<기차가 지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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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부터는 타우루스가 끝나고 다른산맥이약간의 설산을 남아있다. 버가모의 왕국은 끝났으나 지역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페르가몬이다. 터널공사를 하다 유물이 발견되어 유물을 독일로 보내 칼슈만 독일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독일에서 신전 그대로 들고갔으며 그래서 독일 페르가몬 박물관이 유명하다. 내일은 점심후 그리스입국이다. 저녁은 그리스에서 먹는다. 길가엔 야생 양귀비가 예쁘다. 1시간쯤 달리니 어제 밤비가 왔는지 물이 약간 고인 곳도 있다. 군데군데 로마소나무같은소나무도 보이고 키가 큰 포프라 나무가 포도밭 사이에 길 다랗게 서 있고 간간히 석류나무가 보인다. 아침 7시 40분 빌라델비아교회에 도착하니 그토록 성경에서 칭찬받았던 교회가 마 을 안에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유적지는 우리가 너무 일찍 출발해 자고있을수도 있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 문을 두들겨서 관리인이 나오셨다.

빌라델비아교회(계3:7) 필리아(사랑)와 텔피아(형제)가 합쳐진 복합명 97km떨어져 있다. 비옥한 고원지역 에 자리 잡은 이곳은 상업적인 부유함을 누렸는데 오늘날에도 철도가 지나간다.17 년에 강타한 지진으로 파괴되었다.일곱교회중 여섯 번째로 칭찬만 받은 모법적인 교회였다(계3:7~13) 초대교회 유적 터는 현재 땅속에 파묻혀 있다. 요한계시록 3장을 보면 빌라델비아교회는 적은 능력으로 하나님 말씀을 지켰다고 칭찬받은 교회였다 이곳은 사데, 버가모 그리고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이들을 잇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다. 초대교회가 있었던 빌라델비아는 주후 17년과 23년에 큰 지진이 일어나 땅속에 파 묻혀 있다. 현재 이곳에 있는 유일한 교회 유적은 비잔틴시대에 지었던 교회의 두 기둥뿐이다. 약 15m의 두 기둥은 당시 교회의 거대했던 규모를 짐작케 해 준다

<계시록 7교회>

<빌라델비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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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교회유적>

<빌라델비아교회 십자가>

<유적 터>

<여러 관들>

<성전에 손을 대고 기도를 >

<용도를 모르는 절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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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는 빵이 유명하고>

<신소영인솔자님 빵대접>

한소희가이드는 책자를 소개해 주셨는데 장미의 이름책 이라는 제목의 책자인데 수 도사역활나오며 영화도 있다 고한다. 수도사들이 성경필사 대필도 해주고 개인 문 양도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페르가몬 문양도 나왔다. 이집트가 장서가 많은걳은 파 피루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페르가몬가 알렉산더 도서관이 못 따라가자 파피루스 금지를 내리고 페르가몬에서 양피지를 개발하고 오징어 먹물을 이용해 글을 썼다고 한다.오랜시간 보존가능하였다. 양피지가 페르가몬에서 나왔다. 빌라델비아교회 마 을에선 빵으로 유명한데 신소영집사님께서 맛있는 빵집에서 김이 모략 모략한 따끈 따끈한 빵을 사 오셨는데 그 맛이 일품이며 굉장히 크다. 터키 사람들은 뜨겁거나 찬 것을 잘 먹지 못하며 우리에겐 별것아닌것을 뜨겁다고 법석을 뜬다고한다. 빌라 델비아는 말과 트렉트가 공존하는 반촌 같은 느낌이 든다. 빌라델비아를 떠나 살아있으나 죽은 교회 책망을 받은 사데교회로 간다. 사데교회

사데교회는 빌라델피아 교회에서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사데 지역에서는 금이 많이 생산되어 최초의 주화인 금화가 만들어진 곳이다. 그리하여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며 살았던 도시였다. 그리하여 사데교회 성도들은 물질문화에 빠져 도무지 신앙이 자라지 않으므로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책망을 받은 교회이다. 알렉산더 대제의 명령으로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BC330년경) 이 신전 은 에베소의 아데미 전각과 같이 ‘다산과 풍요의 여신’을 위한 신전이다. 전 면의 폭이 50m, 길이가 90m이며 78개의 석주가 늘어선 웅장한 규모이다. 사데는리디아왕국의 수도가 사르디스이다.사르데니아섬을 탄생시킨 곳이다 꽁치로 유명사르디스 즉 사데즉 리디아왕국이 546년 키로스왕국에 의해 멸 망하고 에게 해 재건 누리며 서진을 기하다 벌어진 것이 페르시아 전쟁이다 리디아가 전쟁을 하다가 난민이 많아지자 사르디스이름을 따 탄생시킨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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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디아이다. 서머나 가다보면 보르노바지역 리디아왕국이전부터 지금도 보르노바지역 있 다. 사데의 시작이다. 마지막 왕의 이름은 크로이소스이다 키로이스는 유명 한 왕들은 다 키로스이다 키로스는 신 바벨로니아이다 바벨로니아도 그리스 어다.키로스왕이 건넌 강이 국경선역활했다 서양 사람들 땅이 이었다면 페르 시아가기위해 강의 동쪽이였다.리디아왕국은 금으로 유명했다. 순금과 순 은 으로 취초로 동전을 만든 왕국이 리디아왕국이다. 리다아왕국의 수도 사데는 지금은 시골이지만 그 당시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왕국 이였다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던 사자가 찍힌 것은 어느 곳이든 다 활용되었다한다. 호박금 마차를 몰면 리디아스톤 리디아검정색돌을 탄생시킨 왕국이다 리디아스톤에 금을 긁어보면 진금인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사금이 흐르는 강이 있었다. 리디아 크로이소소가 당대 부자였고 주신은 아데미 여신 전에 사용했다. 리디아크로이소스가 아데미신전 봉헌금을 최고로 많이 내었다고 한다. 고레 스대왕의 조상이다.키로스는 인재등용정책을 폈다. 인재 요직에 앉혔다 주로 유대인들이였으며 메대바사가 메대아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전쟁에서 아테네가 진 것은 전염병 이였다. 전염병에서 다 죽었다 그럴 때 마게도니아인들이 넘어와 멸망되었다. 키로스 는 엄마가 임신해 외할아버지가 꿈이 사나와 해몽 자에 꿈에 소변을 누니 성이 다 잠기더라는 꿈을 이야기하니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하고 군사는 죽 이지 않고 산에가 농부에게 주고 후에 자라서 키루스 사르데스 멸망하고 이오니아 시대왔다.

<사대교회 입구>

<거대한 신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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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데미신전터 옆 교회 터>

<사데 아크로폴리스 언덕>

<사데교회>

<성전터 안>

<성전 안>

<성전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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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데미신전터 거대한 기둥들>

<신전터 뱀 기둥아래석>

<신전터>

<개양귀비(부활꽃의 십자가)>

<사데유적 앞에서>

<사데의 커다란 달팽이>

사데는 입구에는 돌 관이 많이 보이고 뒤에 아크로가 보이며 앞으로 작은 심상치 않은 산이 보인다. 사데는 온통 아데미신전이 차지하고 뒷 모퉁이에 작은 사데교회가 있다 여 기에 교회가 있는 의미는 악한 기운을 조금이나마 잠재운다는 의미를 자진 다고 한다. 아데미는 로마로 건너가 다이애나가 되고 바벨론시대에는 세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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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이다. 아크로폴리스가 내려다보이는 산아래 밭에 올라가니 신전과 교회 가 잘 보이고 얼마나 아크로를 배경을 삼고 앞에 보이는 산을 배경을 두고 신전이 정교하게 재단을 지었는지 알 수 있고 신전 기둥은 밑바닥이 뱀모양 으로 둘러져있다. 기둥의 넓이는 사람 몸통 2사람이나 3사람쯤 되는 것 같 다. 주위에 개양귀비가 많이 피어있어 우리나라 얼굴이 작은 야생화를 생각 하며 부러운 생각이 든다.

<목사님 혹시 개 주인~?>

<지도와 말씀을 대조해 현장공부 중>

<사데의 야생화>

<의자뒷편에 모니터를 걸고>

9시 30분에 사데를 떠난다. 이젠 무화과 오렌지 올리브나무가 많다 에베소 까지는 2시간 40분 걸리며 12시 도착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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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가는 길>

<요한기념교회 앞 셀죽성벽>

에베소 가는 길에는 이전에 포도나무에서 올리브나무로 차츰 바뀌어간다. 에베소 인내라는 뜻을 가진 에베소는 만을 낀 항구였는데 카이스터강의 진흙으로 서서히 메워졌다. 에베소는 로마제국이 소아시아를 지배할 때의 수도로 당시 정치적으로 로마 알렛산드리아 안디옥과 더불어 로마제국의 4대도시중 하나였다 각지 물산이 집합 되는 무역항구요 교통상으로 동서양을 연결시키는 요지이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시 이곳에서 전도하였고(행18:19) 3차 j전도여행 때에는 세 례를 베풀고 안수하매 성령이 강림하여 방언과 예언도 하고 이적을 많이 행하자 마 술 객들은 마술 책을 불사르고 예수를 믿었다.(행19:1~10) 그리고 마게도냐로 왔 다가 돌아오는 길에 밀레도에 이르러 이곳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너희는 깨어있 어 내가 3년간 눈물로 훈계한 것을 기억하라”고 권면하였다.(행20:17~31) 사도요한 기념교회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부탁하신 말씀에 따라 예수의 모친인 마리아 를 모시고 이곳에 와서 말년을 모냈고 마리아는 이곳에서 별세하였다고 한다. 또 그는 이곳에서 감독을 하였고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요1,2,3서)를 기록하였으며 밧 모섬에 유배 가서 계시를 받아 일곱 교회에 보냈다.(계1:11) 요한은 유배 후 이곳 에서 여생을 보내다 별세하였다. 기념교회에는 그의 가묘인 무덤과 세례터 유적들 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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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요한기념교회입구>

<사도요한의 묘>

<기념교회 설명도>

<사도요한의 묘4, 기둥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뜻함>

<사도요한 기념교회 세례터>

<교회 중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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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중심터>

<요한기념교회 벽 야생화>

<요한기념교회 유적>

<유적 속에 핀 개양귀비>

<요한기념교회>

<요한기념교회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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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기념교회 유적>

<우리나라엔 비싼 캄파룰라 꽃>

에베소 요한 기념교회는 깔끔한 느낌을 주며 입구 담벼락부터 야생화천지이다. 요한의 무덤에서는 가까이에 있는 야생양귀비 한송이를 뜯어 올린다. 옆쪽에 세례를 베풀었던 세례대가 있고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모를 기둥들이 즐비하다. 아데미신전터(행19:23~35) 제우스 딸로서 아폴로의 쌍둥이 자매인 로마신화에서는 다이아나신에 해당한다. BC7세기에 세워진 아데미 신전은 전면 폭이 70cm 길이가 130m 높이가 20m가 되 는 거대한 건물로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가 더 크다고 한다. 이 건물 둘레에는 127 개의 이오니아 양식의 돌기둥이 둘러져 있어 건축미의 웅장성과 아름다움을 자랑했 다. 이 아데미 신전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신전이 BC356년 알렉산더가 출생한 해에 한 정신병자의 방화로 불타 버리고 말았다. “아 데미 여신은 방화범이 자기 신전을 불태우는 것도 막지 못할 정도로 무력하단 말인 가? 라는 질문에 ”아데미 여신은 바로 그때 알렉산더대왕 탄생축하출타 중이었다. 고 변명을 한다. 이 아데미 여신상은 수렵과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준 여신으로 만 민을 먹여 키워 준다고 주장하여 유방이 24개가 된다 이 신상은 사람의 손으로 만 든 것이 아니요 하늘에서 스스로 강하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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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데미 신전터>

<아데미 신상>

요한기념교회 뜰에서 에베소 아데미 신전터가 멀리서 보인다.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가 더 컸다고 하는것이 실감이 나질 않을정도로 바울당시 에 베소를 떠들석하게 권세를 휘둘렀던 권력이 다 어딜갔는지 지금은 다 무너져 힘없 는 기둥하나만 눈에 들어온다.

<아데미 신전터 기둥>

<아데미신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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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터 기둥>

<신전터 복원도>

누가의 무덤 에베소 유적지 남쪽 출입구 앞에 누가 복음을 쓴 누가의 묘가 있다. 이오니아 양식으로 사방 16개 기둥을 세워 16m 길이로 건축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의 일부만 보이나 원래 이 건물은 로마시대에 유명 용사나 건강 의 신을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었고 이 후 비잔틴 시대에는 그 구조를 변형시켜 예 배 처소로 사용하였다. 영국고고학자가 오데이온을 발굴하던 중 십자가와 황소모양이 그려진 비석을 복 누 가의 무덤임을 판명하였다고 한다.

<황소와 십자가가 새겨진 누가 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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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의 묘>


<누가 묘 비석>

<에베소 오렌지나무>

에베소 유적 입구에 누가의 묘가 서 있다. 보기에는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황소 가 새겨진 십자가문양을 찿을려고 해도 앞부분에 서 있는 비석 같은데 많이 손상이 되어 문양이 잘 보이지 않고 약간 비슷해 촬영을 해 둔다. 예전에는 철망같은 보호 막이 없었는데 설치가 되어있어 사진 촬영에 어려움이 있다. 에베소 유적

<에베소 전체 사진>

<에베소 로마시대 청소년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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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고대 목욕탕 앞길>

<에베소 오데온 소극장>

<멤비우스 기념비>

<아데미 신전터>

<아스클레피온의 지팡이, 병원안내판>

< 헤르메스가 든 지팡이,병원안내판역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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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티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

<폴리오의 저수조>

<로마 독재관 술라와 이들가이우스조각>

<왼손 면류관,오른손 종려가지들고있는 승리의 신 니케르 부조(옷자락나이키상표)>

<트라야누스 황제의 분수>

<하드리안 황제숭배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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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의 집터앞 상가 바닥 모자이크>

<귀족들의 집터앞 상가 바닥 모자이크>

<로마시대 변기 밑에 물이 흐르는

<한꺼번에 50명 용변 보도록 변기 50개

수세식공중화장실>

대리석변기 있었던 곳>

<홍등가 미성년자 출입금지 광고, 여성이 있고 어음 결제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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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극장 가는 길 대리석도로>


<셀수스도서관 옆 유적>

<원형극장 가는 길에서 본 셀수스도서관>

에베소의 은세공 아데미신상 은세공장이 조합장이 불법집회를 통해 바울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에베소항에서 한번만 배를 타면 어디든 갈수 있었다. 셀수스 도서관 아고라 시장터 동북부에 있는 이 도서관은 20만권의 장서가 있었고 일찍이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나 헬리크리트의 학문 전통을 이어오는 것으로 처음 건물은2세기에 건축되었으나 260년 화재로 정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소실되었다. 이 도서관은 외부가 16m높이에 실내가 16m+10m인 대규모로 건물의 중심 계단 양편에는 곡마 마사들의 동상이 받침대에 받쳐 있었다. 맨 꼭대기와 기둥의 아랫부분은 납판을 씌 워 강한 지진에도 버틸 수 있게 했다. 정면의 벽에는 지혜 운명 학문 미덕을 상징 하는 4개의 조각 여신상이 있고(모조품, 오스트리아 빈 박물관) 이 건물에 대한 복 구는 1970년에 시작하여1978년에 끝났다. 그 당시에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이태 리 페르가몬에 이어 세계3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 옆 아치형태의 문은 기원전 3세기 건물로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이 문이 다. 바로 상업 아고라로 이어진 문인데 시장에는 청동 도자기 아라비아산 약용식물 보석 비단 등이 거래되었다고 한다.

<크레테스 거리의 쉘수스 도서관>

<1만2천권의 장서를 보관한 지혜 덕성 학문 지식상징 4명의 석상이 있는 셀수스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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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수스도서관>

<쉘수스 도서관 앞에서 단체사진>

두란노서원을 쉘수스도서관 뒤쪽이라는 설도 있다 에베소어딘가에 있었다 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한샘학원이 있듯이 두란노도 한 왕의 이름을 붙인 곳이 두란노이다. 에베소는 사도행전 등장하는 사람 중의 니골라 영지주의 사람인데 종교이면서 철학적인 것이 섞인 것이며 영은 약하고 약한 영은 선 하기 때문에 영적인 인간만이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사람이 무엇을 잘못해도 원래 악한 육체가 저지른 것을 어찌 하냐고 정의할 수 없는 이단사상이였다 영지주의자의 특징은 신앙이 더 좋았고 순수한자들이 현옥된 자들이 많았다. 교회가 사랑이 아니라 영지주의자 색출해 내는데 혈안이 된 사랑이 깨어져 소로가 영지주의자인지 의심 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에베소는 7세기에 사명 다하고 끝났다. 에베소는 바울이 쓴 어려운 내용의 편지를 공부하지 않았으 면 읽을수가없었을만큼 에베소 사람들 지식수준이 높았다한다. 에베소 대극장(원형극장) 항구로 가는 아르카디아 도로가 바라다 보이는 산 아래 위치한 원형극장은 그 당시 2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터키 최대 규모의 대극장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AD3세기에 피온산이 경사면을 이용해 건립된 이 대극장의 관객석은 높이 38m 길이 158m의 반원형 모양인데 청동과 도자기제의 확성기가 설치되어 그 음향 효과가 뛰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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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원형극장>

<무대석>

<서목사님의 찬양>

<조용한 관중들>

<부라보~!!>

<에베소 항구로 가는 대로>

이슬람국의 대 원형극장에 서목사님 찬송이 흘려나왔다. 감동 감동 그 자체이다. 역시 세상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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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극장 계단에서>

<항구 가는 길에서 본 원형극장>

<원형극장을 뒤에 두고 단체사진>

<벽만 보이는 마리아기념교회 터>

<원형극장 앞 고대 상점터>

<항구 가는 길목의 무덤터>

에베소유적지 답사를 마치고 소고기에 양기름을 넣고 숯불에 굽은 소고기를 꼬치에 꽃아 구운케밥을 먹었다. 샐러드 바는 뷔페이며 메인요리는 배달해주 신다. 강성자권사님의 메실 장아찌와 멸치볶음이 일품이다. 메실 고추장에 야채를 무쳐먹으니 밥을 먹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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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기념교회

<점심식사>

<점심식사>

<점심식사>

<소고기 꼬치구이>

성모님의 집터에서부터 시작하는 경륜대회가 열려 차량 통제가 있어

20분 기다렸다 간다. 국제대회는 이름난 유적을 통과하도록 루터를 만드는 것 같다. 식사 후 한국에 돌아갈 기념품을 구입하기위해 기념품점을 들린다. 석류쥬스 향신 료 향료 터키식 젤리 같은 떡등을 구입하였다. 우리는 구역식구와 가족에게 줄 떡 을 조금 구입했다. 후에 가죽제품 회사에 들려 간이 패션쇼 도중 우리 팀 중 목사님 권사님 모델이 되 셨다. 3시 55분 출발하여 이젠 무시아에 속해있는 아이발룩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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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쉬딜라이드가게>

<특산품가게>

<각종 쉬딜라이드 >

<말린 가지와 고추>

<향신료>

<향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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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나무>

<박하(민트)>

<가죽제품회사 패션쇼>

<모델이 된 목사님 권사님>

<경륜대회를 보는 직원들>

<경륜대회 진행하는 경찰들>

길거리에는 남자전용카페엔 남자들이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고 창밖에는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지금 지나는 지역은 서머나 지역 이즈미르이다.

서머나 지역은 평지에 멀리 산을 끼고 있고 기름진 흙으로 보이니 검은색 들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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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50만 서머나 지역은 지진 때문에 암반위에 집들이 많이 보이나 우리 는 서머나교회가 있었던 지역만 멀리서 보고 지나간다.

<서머나 지역>

<서머나 지역 마을들>

<에게 해 가는 길>

<양떼도 보이고>

오늘 일정에는 버가모교회를 추가하였지만 시간 관계상 들려지 못하고 떠남이 아 쉽다. 오후 6시 40분 에게 해에 도착하여 숙소에 들어온 우리는 슬리퍼만 갈아신고 에게 해로 나가본다. 바울이 무시아에서 드로아로 가신 것을 생각하며 다들 드로아 방향으로 손을 가리키며 선교에 대한 다짐을 해 본다. 에게 해는 모래가 깨끗한 색 이 아니며 흑색 가까운 색을 띄고 있다. 바다색은 해가 쨍하게 나질 않아서인지 그리 쪽빛이 아니다. 호텔에는 야외 수영장이 있는데 몇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다. 순례일정이 빡빡한 우리에겐 그림 같은 모습이다. 이 호텔에는 많은사람들이투숙하 고 있어 많이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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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해 숙소 호텔 수영장>

<에게 해를 바라보며>

<나도 바울처럼 마게도냐로 가노라~~>

<마게도냐로 가노라~!>

<에게 해 기념촬영>

<에게 해에 발도 담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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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담그고>

<에게 해 여인이 되어>

<에게 해를 무대로>

<에게 해에서 통성기도를>

<에게 해 일몰>

<에게 해를 바라보며 통성기도를>

7시에 저녁식사이지만 조금 늦게 들어가 식사를 마치고 다시 옷을 두껍게 갈아입고 통성기도를 하며 다들 30분 동안 기도를 드리고 바울의 선교지를 바라보며 ‘마게도 냐로 가노라’를 외치며 바울의 달려간 길을 생각하며 작은 마음에 다짐을 해본다. 오늘은 내일 그리스 국경을 넘어가는 날이라 가방정리를 마치고 11시 30분에 잠자 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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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5.3. 토 6일째날 새벽 4시경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3시간 동안 화장실을 갈수가 없다고 해 장로님은 컵라면을 드시고 국물을 드시지 않는다. 난 누룽지를 마찬가지로 끓여먹고 짐을 꾸리고 있다. 빨래를 해 목욕타올로 밟아서 말렸지만 약간 덜 말려 드라이기로 말린다. 아침에 머리를 감는데 글씨가 작아 어느 것이 샴푸인지 몰라 두 개나 비벼보아도 거품이 나질 않고 3개째 비벼보니 거품이 나 샴푸 같아 머리를 감았다. 이것이 60대의 애환이다. 물건을 만드는 기획하는 사람들이 젊다보니 나이든 사람 들 배려를 하지 않는것인지 제발 글씨가 좀 커다랬으면 좋겠다.

<아침식사>

<각종 올리브는 필수>

아침에 식당에 내려가니 도두들 건강해보여 좋다 오늘은 5,6,7작전이라 6시에 아침을 먹고 6시 50분까지 로비로 모이는 것이다. 7시에 정확하게 출발한다. 3시간을 버스로 달리며 화장실 이용이 없다. 에게 해도 이별을 고하고 맑은 날씨속에 하루를 출발한다.

<트로이 가는 길>

<트로이 가는 길 밀밭>

주위에는 비닐하우스도 보이고 올리브나무가 끝없이 펼쳐지고 주위에 약간 높은 산 들이 자꾸만 따라다닌다. 이번 순례 중에 참 좋은 분들과 동행해 참 좋다. 떠나기 전 믿음에 아름다운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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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만나게 해 달라고 했었는데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원주에서 오신 권사님부부 치하철역장님부부 목사님부부 인천에서 오신 자매같은 권사님두분 우리 팀 12명과 인솔자 포함하여 총 21명이다. 현대자동차 판매장이 지 나가며 가이드는 터키 일정이 끝이나니 마음에 여유가 있는지 김동규의 10월의 어 느멋진날등 몇 곡의 음악을 틀어준다. 하천물이 내려오는데 석회가 많아서인지 희뿌연색의 물이 흐르고 있다. 터키 사람들의 일반적인 주택에는 뜰에 나무가 많고 포도나무 몇 그루가 반드시있 어그늘을 올려 시원하게 만들어 놓은 가정이 많고 예쁜 꽃들이 피어있어 꽃을 좋아 하는 민족 같다. 작은 산을 넘어갈 때엔 차가 많이 흔들린다. 터키의 주유소 로고는 영어P에 개가 그려져있는데 7살짜리 아이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다리를 6개를 그린 것은 빨리 달리는 모습을 그린것이라고 한다. 이집트는 매장문화이다 이슬람도 이집트 영향 받았다고 한다. 지금 지나고 있는 곳 멀리는 레스보스 섬이 보이는데 이 단어가 레즈비언 단어가 테어났는데 이 섬의 수 도가 미둘레네 섬이다 최초에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 사람이라한다. 그리스 스승이 이집트이며 그 장소가 크레타 섬이다. 강한 문화가 약한 문화를 흡수하는 것이다. 앗소와 드로아는 가깝다. 드로아가 가까울수록 비가 왔는지 물이 고여 있다. 9시 20분에 트로이에 도착한 우리는 11시 30분 헤리를 타야하니 10시20분까지 유 적지를 보고 입구에 도착되어야 한다고 한다. 트로이, 드로아지방.행20:5~7,행16:8~9 소아시아 서북지방 무시아도 내에 있으며 에게 해안의 테네도스 맞은편에 있는 항 구도시로 고대 전설적인 도시 트로이(일리움)남쪽 약 45km 지점에 있다. 바울은 이곳을 3번이나 방문했으며 2차 전도여행 때 비두니아 지방으로 가려고 하 다가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아 이곳에서 기도하는 주위에 환상이 나타났고 마게도 냐인 초청을 보고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유럽전도길에 오르게 된다. 유적으로는 목욕탕 극장 성벽이 있다

<트로이 목마>

<널브러진 기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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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 속에 사람이>

<목마 속에서>

<트로이 유적 설명도>

<트로이 유적>

<트로이 유적>

<트로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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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유적 소극장>

<지질학적 시대를 구분할 수 있는 지층>

<시대를 구분할 수 있는 고대 건축물>

<트로이 고대 성>

<트로이유적 설명서>

<트로이 인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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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아크로폴리스 언덕위 신전터>

<신전터 상상도>

<아크로폴리스에서 본 넓은 들판>

<트로이에서 본 개양귀비>

트로이는 입구에 커다란 목마가 있어 계단을 올라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고 실내 는 2층으로 되어있다. 학생들이 소풍을 왔는지 고등학생쯤 보이는 학생들이 가득하 다. 목마를 뒤로하고 올라가면 유적지가 나오는데 시대를 구분할 수 있는 지질학적 언덕과 성벽 터가 있고 유적지가 돌과개양귀비와 함께 널부려져있다. 한참을 가다 보면 아크로폴리스로 보이는 언덕이 있는데 올라가보면 들판너머 바다까지 훤히 보 인다. 입구에서 모인 우리는 버스가 입구까지 들어오지 못해 10분쯤 걸어서 버스를 만났다. 트로이를 끝으로 터키 순례일정을 다 마치고 헤리호를 타고 30분 밥 먹고 30분 후 겸손한 버스 타고 국경 통과한다. 세계에서 처음 여행한 사람의 처음 여행은 성지순례이라한다. 오늘날 패키지 여행 상품을 개발한 민족은 베네치아민족에서 시작되었으며 보험은 옵션이다. 차나 칼레 해협을 건너 기위해 랍세키 항구에 도착하니 좀 한적한 기분이 든다. 11 시 30분 이곳에서 30분간 페리호를 타는데 버스는 아래층에 주차시키고 사람은 이 층으로 올라간다. 기념품을 나무가방에 잔뜩 넣은 기념품 상인들이 두 사람이 끈 질기에 강매를 하고 흘러내리는 치즈를 흠뻑 넣은 햄버그가 담백하고 맛있는 곳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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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칼레 해협을 넘는 배 ,배안에 우리

<해협을 건너며>

버스도 싣고>

<헤리안에서 홍차를>

<배안에서 담소를>

<서목사님과 사모님>

<배안에서 먹은 흘러내리는 치즈가 듬북든 햄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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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하나 되어>

<차나칼레 해협을 지나>

오늘 타는 배에는 터키 홍차도 향이 좋고 맛있다. 카나칼레 해협을 지나 갈리폴리 에 도착하기 전 원래 탔던 버스에 타고 배를 타고 항구로 나간다. 오늘 점심은 지나가는 길 일리휴게소 카페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인요리는 고등어이다. 한국반찬 같이 먹어도 되는 곳이라 좋고 마치 한국식당같은 고동어구 이 이다.

<트로이 가는 길 레스토랑>

<점심 고등어구이>

육식을 먹지않는 나에게 좋은 메뉴이다. 젊었을 때는 몰랐으나 나이가 들면서 자주 배탈을 일으켜서 외국 나왔을 땐 조심하는 편이다. 그리스 가는 길에도 야생화가 주종을 이루고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해협을 통과하면 배안에서 버스에 타고 30분 경을 더 달려야 국경지대가 나온다. 1시 40분 국경근처 도착하여 그동 안 정들었던 가이드는 그리스 이태리는 더 복잡하며 기다림의 미학을 배우라는 말 을 남기고 보조가이드, 운전기사, 또 현지가이드와 이별을 나누고 우리 순례일행은 터키 버스가 아닌 국경업무를 대행하는 중형버스를 타고는 자기 짐이 나와서 국경 통과시켜주는 중형버스에 본인 가방이 실렸는지 반드시 확인을 하고는 국경을 통과 하기 위해 준비를 한다. 인솔자 신소영집사는 3가지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1, 국경 통과 대행회사 직원이 여권을 거두어 함께 도장을 맞아올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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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행 한사람씩 직접 가서 도장을 맞을 수도 있고 3, 여권도장 찍힌 후 경찰이 올라와 여권도장 학인을 할 수도 있다. 통과절차가 끝나면 그리스 가이드와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스 버스에서는 본인 가방이 실렸는지 확인하고는 뒤편 우측에 하얀 건물인 화 장실을 반드시 이용하라는 말씀이다. 터키 국경 그리스 국경 모두 여권만 대행사가 거두어서 도장만 찍고 바로 마치고 그리스로 입국했다.

<터키 국경을 통과하며>

<그리스로 입국>

<그리스 거리 희생자를 위한 작은 기도처>

<그리스 버스를 타고>

그리스 2시 20분 국경 통과하여 5분 만에 순조롭게 모든 국경 통과를 마치고 그리스에 들 어와 화장실을 가니 국경화장실에 좌변기 앉는 곳이 없다. 조금은 황당한 사건이지 만 이것도 이곳의 문화라 생각한다. 아잔소리를 들으며 뾰족탑을 보면서 며칠 지내다 돼지고기와 햄을 먹을 수 있는 나 라이다. 그리스호텔 서비스 좋고 한국 같은 밥도 나온다. 된장 넣지 않고 끓인 된장 국 같은 국이 나온다는 가이드의 이야기다. 네압볼리는 국경에서 45k이며 이젠 교회만 나온다. 나이가 있는 가이드는 중년기를 거친 사람들의 삶을 알고 있다는 것이 반갑다.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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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읽는 성경공부를 하기위해 온 것이다. 신앙의 선지자 선배들을 따라가며 남아있 는 것은 현대인들에 의해 변색되었지만 정신은 남아있다. 가이드는 김순자집사이며 어머니가 물러준 것은 콜레스테롤에다 고혈압에다 굉장히 많이 물려주셨다고 해 웃음을 자아낸다. 내 삶이 이기주의 되지 말고 링컨대통령은 행복한 사람들을 등용했다고 하며 행복한 사람이 되며 우린 서로 스트레스 받지 말 고 여유 있게 여행하자고 하신다. 운전기사 분은 약간 뚱뚱한 아저씨이시다. 성지순 례 좋은 점은 우리가 직접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도역사지를 직접 볼 수 있어 의미가 깊다 그리스는 그리스공화국 남한 1.3배 인구 5분의1이며 반도 국가이 다.

<그리스에도 개양귀비 천지>

<에게 해와 늘 함께 하며>

그리스 들어오니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양떼들이 더 많이 보인다. 그리스는 4세기에 걸쳐 터키 지배를 받은 곳이라 음식 음악은 비슷하나 종교는 완 전히 다르다. 데살로니가 110만 명 파트라 30만 명 그레데 60만 명 네압볼리는10 만 명의 큰 도시이다. 바울은 네압볼리로 들어왔는데 현재 까발라로 10만 명 정도 살고 있다 네압볼리,신도시 뜻이다. 오후 4시 45분 까발라를 지나고 있는데 이곳은 대리석으로 유명하여 대리석을 캐 는 산들이 많이 보이고 산거북이 많으며 그리스는 상수리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네 압볼리는 기원전 6세기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 세운도시이다. 바울이 마게도냐를 오면서 첫발을 디딘 곳이며 그리스 선교가 시작되었던 곳이다. 가이드는 내일은 빌립보 이동 암비볼리

아스프로발타 에게 해, 점심식사 현지식

저녁 메테오라 지역은 지각변동으로 인해 땅이 융기되어 올아온곳 메테오라 6개 수 도원방문 1000년 전 이곳에서 가족 버리고 하나님께 기대며 생활할 때 믿음하나가 지고 올라온 사람들 생활 볼 수 있다. 바울이 들리지않은곳이 메테오라이며 바울이 없었다면 메테오라수도원은 생겨날 수가 없었다. 4~5천명이 살고 있는 고장에서 잔다. 아테네 350k이다 워낙 땅이 넓어서 버스이동은 많으나 터키와 비교가 안되며 발칸반도 위치해있는 그리스지형은 새우 같다. 그리스 터키 사이에 있는 바다 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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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바다이며 서쪽바다 이오니 해 남쪽바다 그레테해이다. 우리도 반도국가 지중해 둘러싸인 반도 국가이다. 출발하신 곳 차나칼레지역 좁은 해협 건넜다. 아이들 계모 구박없는 평안한곳으로 보내기위해 헬레네가 양을 타고 날아가다 살짝 졸다가 땅에 떨어져 갈라졌다해서 헬레스폰투스라고 부르고 터키에서는 차나칼레해협이라한다. 내일 15키로 빌립보 데살로니카 메테오라 내일 메테오라 잠 이오니아가 들어와 본 토와 반도에 들어와서 고린도만을 이루고 작은 해안도시 아름답다. 농촌 평화로운 풍경 만끽할 수 있고 파트라에서 배타고 이태리감 6시 출발 다음날 10시 이태리 바리항 도착한다. 반도국가의 본토 펠레폰네소스반도 오나시스 선박왕 스콜피오스 별장 있으며, 데살로니카는 알렉산더대왕 이복동생 에 의해 세워진 도시이다. 현재 마게도니아 수도는 데살로니카이다. 고대 헬라에서 알렉산더대왕 태어난 곳이다. 이 전에는 마케도니아 도시에서 인구 110만 살고 있는 대도시가 되었다. 알바니아 마 케도니아 불가리아 터키 4개국 국경 맞대고 있고 교통요지이며 데살로니가 다음으 로 큰 도시는 네압볼리이다 네압볼리는 부르트스에게 배를 댈 수 있는곳을 제공한 곳이며 반란군들 지원한 도시이며 패패한 사람을 지원한 도시가 네압볼리다. 그리 스도의 도시라고도 불렀으며 크리스도폴리스때 십자군침략으로 도시 파괴하게 되자 비잔틴제국왕제가 도시 보호하는 성벽 쌓고 파괴되며 언덕위의 물을 연결하기 위해 파이프를 연결한 도시이다. 1892년 네압볼리 지역 이름이 까발라이며 뜻은 말을 타 다 뜻이다. 이번 달부터 유대인 유람선이 들어오고 시나고고 유대회당 보러온다. 터 키 지배받으면서 그리스인들 교회를 그대로 모스크사원으로 사용한 도시 데살로니 카도 신사도 있었지만 베뢰아사람은 더 신사적이고 베리아로 피신을 하게된다.데살 로니카에서 베뢰아는 68k이다 암비볼리에서 30분이면 아볼로니아다. 이곳의 이름은 그리스 성인들의 이름을 짓기 도 하며 그리스인들의 신화는 자랑스런 문화로 본다. 바울 후 기독교인이다 96%정 교이다. 100명중 99명이 다 기독인이다. 오순절인사는 예수님 부활했습니다. 하면 상대방은 정말로 부활하셨습니다하며 성모님 8월 15일은 성모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였다고 믿는다. 우리는 1:1이지만 그리스인은 성인이 있어 성인이 중간역활을 하며 교회 천장은 기다란 돔이며 꼭대 기기는 예수그리스도 하나님 말씀 전파하는 천사 그리고 성모마리아성화가 있다고 가이드는 빠르게 마게도냐지역을 설명한다. 네압볼리(까발라)행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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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압볼리 위치>

<네압볼리 항>

뜻 ‘새로운 도시’ 드로아 항구에서 바닷길로 185km떨어져있다. 그리스의 까발라 항 구이다. 바울 당시 이곳은 교통의 요지이고 육로 역시 로마로 향하는 에그나티아 대로가 이곳을 지나간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드로아에서 환상을 본 후 배를 타고 이곳 네압볼리 도착하여 유럽전도를 시작한곳이다. 바울은 오직 예수십자가와 천국만을 전했고 학연 지연 등 인맥을 배재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다 형제요 자매이며 인간의 육신적인 생각을 초월했다고 한다. 이곳은 바울의 네압볼리 도착 을 기리는 바울도착기념교회 두 곳이 있다.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여 한참을 가다보니 네압볼 리가 나타나고 입구에는 수로 같

은 건물이 지나간다. 호텔은 항구 바로 앞 번화가에 있다.

<오스만시대 수도교>

<네압볼리 항구>

네압볼리 사도바울도착기념교회(행1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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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압볼리 사도바울

<바울도착기념교회 내부>

도착기념교회(성니콜라우스교회>

<바울도착기념교회 행 16:9~12절 바울환상벽화>

<교회 내부 십자가에 걸린 가시면류관>

<바울기념교회 유대회당터 기초석 >

<네압볼리에 도착하는 바울 성화>

호텔에서 방 배정을 받고 짐을 올려놓고 간단히 꾸려 해변가와 바울도착기념교회까 지 다시 한 번 다녀오기로 하였다. 가는 도중 네압볼리 항구에서 바울을 흉내 내며 기념촬영도 하며 기념교회까지 간다. 도착하여 마게도냐 환상을 한참을 바라다보니 종소리가 울리더니 성전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전 안에 들어가는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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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을 누렸다. 마침 정교회 예배중이다. 기도를 드리다 나와 교회 앞 슈퍼에 들려 구 경도하고 걸어서 돌아와 저녁밥을 먹는데 밥이 우리나라 밥에 약간 뜸이 안든 느낌 나는 밥에 양배추 국이 시원하게 맛있다. 메인요리는 생선메로 찜에 토마토소스를 끼얹은 요리에 감자를 곁들이고 샐러드가 나오는 맛이 있고 우리나라 음식이 필요 없는 요리이다. 식사 후 바로 호텔이지만 찬양을 부르며 저녁 예배를 드렸다.

<바울기념교회 정문>

<바울기념교회 앞에서 단체사진>

<기초석앞에서기념사진>

<네압볼리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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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압볼리항구에서도, 마게도냐에 도착 했노라~>

<네압볼리 주상복합주택>

<네압볼리 성벽>

<같은 고향 사람들>

<기초석앞에서 권사님 부부>

<된장국 같은 느낌 나는 맛나 는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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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생선요리>

<호텔에서 드리는 밤 예배>

2014.5.4. 일 7일째날 4시 반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좀 여유가 있다 6,7,8이다 8시에 떠나니 조급함이 없어진다. 어제 일기예보에서 비 소식이 있어 가디건을 하나 더 챙긴다. 하늘을 보니 구름 조금에 맑은 날씨로 보인다. 아침에 장이 불편하여 누룽지를 조 금 끓여먹었다. 메밀차를 끓여 2통을 넣어간다. 6시 40분경에 권사님들은 주위 산책을 나가셔서 7시 식사시간에 맞추어서 돌아온 다고 한다. 오늘 기후는 적당하다. 터키나 이곳에서도 엘리베이터가 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열고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를 생각하며 열어주기를 기다리면 다시 내려가 버리니 안에 문이 닫히고 열리면 재빨리 밀고 나와야 한다. 아침엔 요플레가 참 좋다. 아주 뻑뻑하여 마치 치즈 같다는 느낌이 든다. 불가리스 가 가까우니 요플레도 좋을것같다. 그 방식이 같으리라 생각한다. 그리스는 야쿠르 트 올리브 꿀이 좋으며 무엇보다 올리브가 제일 좋다고 한다. 누룽지를 이미 먹어 복숭아 통조림과 과일조금을 먹고 일찍 방으로 돌아왔다.

<너무 일찍 내려오는 우리 팀, 빨리 밥

<치즈와 요쿠르트가 주종을 이루는

주세요~!>

아침식사>

성적 좋은 우리 팀은 어김없이 8시가 약간 못되어 버스에 올라 일정을 시작하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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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도 오늘은 내 차례라 기도 후 출발한다. 아침 해가 찬란히 빛나고 있고 호텔 건너편에선 1층은 상가 2층후로는 아파트인 주상복합에선 발코니마다 제라늄 같은 꽃과 늘어진 식물들이 많이들 보이고 햇볕이 좋은 곳이라 태양열을 이용하는지 아 침 햇살에 빛나고 있고 옥상엔 안테나가 가득하다. 강성자 심필녀권사님 방에서는 발코니에서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빌립보를 향해 출발한다.

<옥상의 안테나들>

<가정집에 애기 놀이터 트램펄린>

빌립보를 가는 중 가이드는 바울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빌립보는 바울이 유 대 회당을 찾지 못하고 기도처를 찾던 중 루디아를 만나게 되고 루디아를 중심 으 로한 가정이 기초가 되어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일 한곳이다. 바울이 바구니를 타고 부끄럽게 내려오는 연약한 사람이며 몸에 가시가 있었지만 나 못난 것 통해 강하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일하시는 바울의 말을 인용한 터키 가이드의 말이 생각난다. 빌립보(행16:12) 성경의 마게도냐지방의 첫 성(행16:12)이며 옛 명칭은 ‘크레니데스’이던 것을 마게 도냐 왕 필립2세가 이 지역을 크게 확장하여 자기 이름을 따 빌립보라고 바꾸었다. 에게 해에서 16km 내륙으로 들어가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있으며 마게도냐 동쪽 에 소재한다. 북으로는 강기테스강이 흐르고 바울은 전도여행 중 빌립보에 들려 기 도하러 가는 도중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을 고쳐 줌으로 고발을 당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감옥에서 찬송과 기도하는 가운데 옥문이 열리게 되고 이를 보고 자결하려는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여 간수가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 곳이다(행16:12~34) 이 곳에서 발굴된 비문에는 자색옷감 무역이 있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자색 옷감 장 사 루디아가 빌립보에 살았고 바울의 전도를 받고 빌립보 교회 초석이 되었음을 증 명하고 있다(행16:11~15) 로마시대 에그나티아대로가 지나가는 곳으로 유적으로는 원형극장 에그나티아대로 바실리카교회터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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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 유적지 상가터>

<빌립보 고대 원형극장>

<빌립보 바실리카 베타교회 복원도>

<십자가가 선명한 기둥>

<바쿠스(디오니소스신전터위에 세운 베타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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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지성소 들어가는 곳>


<빌립보 유적지 >

<안으로 여닫는 문설주>

<알파교회 터>

<세례터>

< 개인이 세운 기도처 가는 길>

<빌립보유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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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새운 기도처>

<개인이 새운 기도처 모자이크>

<기도처 모자이크>

<개인이 세운 기도처 모자이크>

<세례터>

<빌립보 아크로폴리스 스트림몬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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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대로 표시 에그나티아길 >

<풀밭이 된 화장실 변기엔 풀이 나고>

<알파교회에서 단체사진>

<유적지엔 포피가 만발하고>

빌립보 유적지 입구에 들어서면 원형극장이 보이고 상가터 사이로 개양귀비가 흐드 러지게 피어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디오니소스 신전이 있었던 곳에 바실리카(베타 교회)가 세워져있었던 자리이다. 한족 기둥은 십자가가 선명하게 조각되어있다. 아래로 몇 발자국을 내려오면 바울과 실라의 감옥 터가 있다. 지금도 바울이 살아서 말씀을 전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유적지는 모든 문들이 안으로 열고 닫게 되어있어 상대방을 고려하는 방식이며 빌립보사도바울 감옥터(행16:16~39) 바울과 실라는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을 고친 일로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는 수난 을 겪었다. 이들은 낙망하기는커녕 쇠사슬에 발목이 묶인 채 하나님을 찬미하고 옥 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난 곳 간수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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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실라의 감옥터 입구>

<바울과 실라의 감옥터>

길가에 석류 블루베리가 많고 길가엔 카모마일 꽃과 포피가 많이 피어있다 비시디아유적지에도 카모마일 꽃이 많이 피어있는데 꼭 국화종류같은작은 꽃이다. 빌립보는 평지이다 마게도니아는 불가리아에 2번에 걸쳐 정복당한 지역이며 여름엔 32도 45도 까지 올라간다. 요즈음 기후변화에 의해 온도가 많이 올라간다. 여기는 영상 15도이면 체감온도는 9도쯤 된다. 이곳은 뼛속에 바람이 들어오는 특이한 겨울이 있다. 이러다보니 어깨에 가디건을 걸치고 나오는 문화가 있다. 전형적인 지중해성기후이다. 북쪽은 대륙성기후로 여름에도 비가 오는 경우가 있다 8.9월에는 9시쯤 해가 진다 관광 성수기는 4월부터 시작되며 어떤 밭에는 포피가 온통 피어있는 밭도 있다. 루디아기념교회(행16:1~15) 빌립보에서 서쪽으로 1.6km 떨어진 지점에 위치지점에 사도 바울이 기도처를 찾다가 자주 장사 여장부 루디아를 만난 장소인 강기테스 강변에 루디아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입구에는 고대 로마시대 공동묘지 돌들이 내딩굴고 있고 교회가 가까울수록 강기테스 지금은 시냇물 같은 강기테스 강물소리가 많이 난다. 바울 시대 때 두아디라 지역은 옷감으로 유명했고 로마인들이 바다 달팽이로부터 자주색 염료를 만들어 내어 황실에서 전용으로 사용하는 자주색 옷감을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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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디아기념교회터 앞 고대 공동묘지>

<루디아 기념교회>

<루디아기념교회 가운데 예수님 모자잌>

<루디아기념교회 가운데 루디아모자잌>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힌 모자잌성화>

<세례를 주는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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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불꽃같이 임하는 성화>

<루디아 성화>

<기념교회 입구 세계지도>

<루디아 기념교회 예수님 세례 돔 천정화>

<루디아 기념교회 내부>

<내부 세례베푸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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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네압볼리 들어오는 성화>

<바울의 마게도냐 환상 성화>

<아브라함 이삭을 잡는 성화>

<천사를 대접하는 루디아 성화>

<바울을 만난 강기테스 강가>

<바울을 만난 강가에서 주일예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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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예배를>

<강가 세례터>

<세례터 앞에서>

<시내가 되어버린 강기테스 강>

<세례터 앞에서 손도 담가보고>

<강기테스 강가 기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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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디아 기념교회 기념품가게>

<기념품가게에서 커피를>

<루디아기념교회 마라톤 행사 골인지점>

<암비볼리 가는 길 온통 개양귀비 밭>

루디아 기념교회는 루디아 처럼 깔끔하며 입구에 예수님 바울 루디아가 성화 가운데 계시며 입구는 그리스 지도가 모자이크로 되어있고 세례대와 여러 성화가 걸려있다. 바울을 만난 강기테스 강변에서 주일 서목사님 인도와 우장로님 기도로 주일 대예배를 드리고 헌금은 가이드가 다니시는 아테네 한인교회로 보내드린다. 성전을 나오면 화장실 옆에 기념품 가게가 있는데 연세가 드신 두 부부가 운영을 하신다는데 성전관리를 하며 무보수로 일하시며 너무 깨끗하게 관리하신다고 기념품을 많이 팔아드리라는 가이드의 말이다. 화장실을 들리니 그야말로 깨끗하고 화장지도 향기가 나며 장식도 소박하며 잘 단장이 되었다. 난 간단한 기념품과 빌립보 지도를 하나 구입했다. 빌립보에서 루디아 기념교회까지는 20분 걸리고 네압볼리에서 빌립보까지는 30분쯤 걸린다. 11시 20분에 루디아 기념교회를 떠난다. 나오는 길에 입구에서 마라톤 행사 골인지점이 루디아기념교회라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고 선수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빌립보에서 암비볼리까지 70K이나 이곳은 유적지는 발굴 중이라 유적이 없어 실망을 하는곳이다. 암비볼리 둘러싸고 있는 강 스트림몬 강을 보러가며 바울당시 바울이 본 암비볼리사자상 보러간다. 40분 더 가야 나온다. 후에 20분가면 에게 해 해안가에서 점심 먹는다. 저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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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생선 내일 모래 돼지고기 나오며 내일은 된장국 상추쌈이 나오는 저녁밥이 나온다. 그리스는 이콘이 부적시되어서 787년 7년을 걸쳐서 이콘 말살정책시대 왔다 서기 787년 이콘 사용 허용했다 정교회에서는 이콘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수도사들이 주로 그린다. 빌립보 암비볼리 다 기름진 평야다 고대시대 유적지 아고라 스토아 발굴과정에 있으며 암비볼리가는 길은 기름지고 물이 풍부한지역같다. 암비볼리(행17:1) 빌립보 남서쪽 약60km지점위치 로마시대 에르나티아가도에 있던 이곳은 마게도냐 첫지방의 수도였다. 고속도로를 따라 해변지다에 스트리몬 강의 다리를 건너 1km 가면 BC4세기경에 만들어진 사자상이 서 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석방된 후 형제들을 위로하고 이 길로 데살로니카로 갔기 때문에(행17:1)바울도 이 사자상을 보았을 것이다. 암비볼리는 BC 497년 다리오로부터 도주해온 밀레도 출신 아리스 타고라스가 살해된 곳이다. 암비볼리는 유적이 없어 사자상에 잠깐 내려 사진만 찍고 간다. 바울당시 이 길이 아니면 아볼로니아로 갈 수 없기 때문에 바울이 이 사자상을 반드시 보았을 것으로 추정하여 성경학자들은 중요하게 여긴다. 사자상 혓바닥이 없어 조각한 사람이 자살했다는 설도 있다. 사자상 앞에는 장난감 같은 작은 교회 같은 것이 있는데 사망 사고 난 지역 에 작은 교회를 지어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기도처이자 사고다발지역 경고가 되기도 하는데 그리스 전역에 자주 보인다. 12시 10분보고 떠난다. 암비볼리는 스트림몬 강이 중요하다고 한다. 바울당시에도 있었던 강이기 때문이다. 강을 촬영하기위해 창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암비볼리는 아몬드농사를 많이 짓는다고 한다.

<양귀비 밭>

<스트림몬 강을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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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암비볼리 사자상>

<교통사고로 죽은 자를 기리는 기도처>

아볼로니아 가는 길은 인적이 많이 없는 한적한 길이라고 한다. 에게 해가 끝나는 지점 점심을 먹을 레스토랑이 있다. 오륜기가 붙어있는 체육관 같은 곳에 무슨 경기가 있는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레스토랑은 해변에 레스토랑이 즐비한 자리에 있고 멸치 같은 작은 생선을 뼈를 제거하고 튀겨내며 작은 오징어도 통째로 튀겨낸 주 메뉴에 스파게티가 나오고 나한테는 맛있는 메뉴이다. 식사를 마치고 에게 해 바다에 물을 한번 담가본다. 에게 헤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해변이며 아토스 산이 앞에 가로막혀있다.

<마지막 에게 해 레스토랑>

<오징어와 생선튀김 스파게피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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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야자 나무같긴한데 열매는 작고>

<에게 해에서 본 아카시아꽃>

<에게 해의 친근한 파라솔>

<압비볼리의 에게 해>

<에게 해 여인들>

<압비몰리에서 이제 아덴으로 가노라~!>

아볼로니아(행17:1~9) 암비볼리에서 48km데살로니카로부터 61km정도 떨어져 있는 볼레 호수 남쪽에 위 치 에그나티아 가도에 접해있는 이곳은 같은 이름을 가진 갈라디아의 도시와 구별 하기 이하여 미도니스 아볼로니아라고 불린다. 바울은 암비볼리를 떠나 2차 전도여 행 때 데살로니카로 가던 도중 디모데와 실라와 함께 이곳에 잠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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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로니아 가는 길>

<아볼로니아 바울의 강단>

<행17:1절 말씀이 기록된 바울의 강단>

<로마시대 목욕탕>

<새로 복원된 샘>

<바울의 강단에서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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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로니아 바울의 강단 앞에서 풀을 뜯는 양떼들>

<바울의 강단 옆 나무>

아볼로니아는 유적으로는 유대인 회당이 있던 자리에 행17:1절 말씀이 새겨진 비마 (강단의 일종)와 로마시대 공중목욕탕이 있다. 아볼로니아는 샘이 많은 지역이라 예전에는 이곳 샘이 없었으나 몇 년 전에 샘이 발견되어 다시 복원하였다고 한다. 뒤에는 멀리서 카메라를 잡아야만 다 들어올 수 있는 커다란 나무가 한그루 있어 강단을 시원하게 해 주며 왼쪽으로는 로마시대 공중목욕탕 유적이 반쯤 남아있는데 는데 둥근 돔 지붕이 마침 우범지역같은 느낌이 들고 내부가 쓰레기장과 같아 보인 다. 아볼로니아는 아폴로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지금은 작은 동네로 변했다. 행17:1 말씀 새긴 작은 비마 터 옆에는 마침 양떼들이 몰려있다 네압볼리 암비볼리 볼비호수 아토스 산 2333m바다깊이 2333m로 같다 4666m이다 바다에서 산을 보 면서 그리스 두 번째 도시 데살로니카 지나간다. 이곳은 110명중 40만 명이 외국 인이다. 도시가 복잡해 들어가기 힘들고 데살로니카 대 화재도 있었다. 110명이 사 는 것으로 믿어지지 않는다. 고층건물을 짓지못하게 되어있고 꽤 큰 도시이다.요즈 음은 순례지에서 지하철 도시건설로 복잡해 지나가면 서 보는 추세이다. 볼비호수 는 지금 물이 자꾸 줄어지는 호수라고한다.

아볼로니아 볼레호수>

<멀리 올림포스 산이 보이는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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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수한 강정>

<휴게소에서 차 대접>

<구름에 가려진 올림포스 산>

<그리스 햄버그>

그리스도 곡창지대가 많이 보인다. 지나는 길은 양귀비가 얼마나많이 피었는지 밭 전체가 붉은 색이다. 2시 30분 데살로니카로 가고 있고 지나가면서 경유만한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이 내 지하차도와 언덕길이나와 잘 보이지 않는다. 올림포스 산이 보이는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얼음이 들어있는 냉커피를 마시는데 달리는 차에서는 액체를 못마시는 문화라고 해 억지로 다 마시고 출발한 다. 이곳에선 베뢰아산 복숭아를 최고로 치준 다고 한다. 복숭아나무가 많이 보인 다. 올림포스 산은 머리에 눈만 좀 보이고 구름에 가려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길가에 노란 꽃은 낮은 산에 많다. 스파르타 병사창과같다고 해서 스파르타라고 부 르며 싸리비같이 생긴 꽃나무이며 남색가지가 초록색가지 된다고한다. 베뢰아(행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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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뢰아 위치>

<베뢰아 바울의 강단>

<베뢰아 바울의 강단 입구 마르지 않는 샘>

<‘와서 우리를 도우라’ 성화>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제사장 군인 헬라 귀부인 뒤에 앉아 눈치만보는 천민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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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기록된 행17:1절 말씀>


<바울 청동상>

<바울상>

<바울상에 안수 받는 집사님>

<바울에 안수 받는 권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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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카에서 남서쪽 약80km 떨어진 곳의 베르미어 산 시슭에 자리 잡은 마게도 니아의 한 도시이다, 이곳의 북쪽에는 소아시아 지역을 연결하는 로마시대의 길 에 그나티아길아 대로가 놓여있어 신약시대에 와서는 번잡한 도시 중 하나였다. 바울 이 2차 전도 여행 시 실라와 함께 데살로니가에서 다음으로 선교한 마을이다. 성경 에 의하면 이곳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성경을 날마다 상고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고한것처럼 이곳 사람들은바울의전도를 받아사회적으로 저명한 헬라여자들을 포함한 많은 신자가 생겼다 그러나 이곳에 박해가 심하자 바 울은 혼자 아덴으로 향했다,행(17:10~15) 바울의 2차 여행 시 실라와 함께 데살로 니가에 전도한 후에 들린 베뢰아는 마을 입구에서 바울이 말씀을 전했든 강단이 있 고 바울이 말씀을 전하는 모습이 모자이크로 되어있다. 베뢰아 바울기념강단 12세기 바울 기념교회 터키 때 모스크로 사용된 교회 교회 옆 초등학교가 있다. 역사흐름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베뢰아이다. 지금도 깔끔한 도시이 다. 밤새 달려 도망온 베뢰아 복숭아 밭 평야 산으로 둘러싸인 산맥을 넘고 들어오 는 적 평야를 내려다보며 도시가 형성되었다 정치 상업 도시는 아니지만 신약시대 인구가 가장 많았던 마게도냐 도시 중 하나이다. 베리아 바울의 강단을 보고 간다. 입구에는 언제나 마르지 않는다는 물줄기가 시원 하게 나오고 있고 가이드는 굉장히 깨끗한 1급수 물이니 물병이 있음 받아가라는 말을 하지만 물병이 없어 손으로 한 모금 마시니 시원하다. 계단을 올라가면 예전 에는 없던 청동으로 된 바울상이 서 있다. 옆으로 바울이 설교하였다는 바울의 강 단이 있는데 바울에 간한 모자이크가 새겨져있는데 바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표정설명이 참 다양하다. 귀부인의 모습과 가난한 천민이 뒤편에서 눈치를 보며 설 교를 듣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4시 25분이다 터널이 많은 도로를 다닌다, 이도 로가 에그나티아 도로라고 한다. 터널을 지나고 나면 또 다른 터널이 나온다. 지금 부터 2시간을 달려 메테오라로 간다. 그리스도 EU가입 후에 난민들이 많이 들어와 도둑들이 많아 졌다. 메테오라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산악지역을 통과하고 있다. 멀리 높은 산에서는 눈이 조금 남아있고 높은 산 중턱에 마을이 있다. 지대가 높은 지 귀가 먹먹하다. 그리스 아침인사 ‘깔리메라’ 복수격 존칭이다.예스는우리말로 ‘예’이다 지나가면 화력발전소가 보인다. 오늘 안토니아 디오스 호텔 칼람박하지역은 요플레와 꿀이 좋다고 한다. 기원전 330년에 요리책이 발간된 나라가 그리스다. 맘마미아 촬영지는 스포라테스 제도 섬에서 촬영하였다. 1시간을 남겨놓고 화장실을 들린다. 메테오라 세계자연 절경 1호다. 수도사들은 안락한 삶을 버리고 고난을 택하였고 무소유 독신과 재산 버리고 겸손을 겸한 복종 있어야 수도사가 될 수 있고 2년간의 훈련기간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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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라

<데살로니카에서 메테오라 위치와 거리>

<메테오라 절 경위 수도원>

메테오라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뜻이다. 그리스 중부 테살리아 지방 북서부 트리칼라 주의 바위기둥들과 그 위에 세워진 수 도원을 통칭하는 말이다. 11세기부터 이곳에 수도사들이 은둔을 시작했으며 14세기 초 성 아타나시우스가 최초로 수도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전성기인 16세기에는 20여개의 수도원이 있었으나 2차 대전을 겪으면서 파손된 것 을 다시 복원하여 지금은 규모가 가장 큰 대 메테오라 수도원 바를라암수도원 루사 노수도원 성니콜라스아나타우사스수도원 가장 올라가기 힘든 트리니티수도원등 6곳 이 남아있다. 내부에는 기도실 예배당 물탱크 휴게실 도서관 유골당이있고 비잔틴 양식의 문화유적이 많이 남아있고 16세기의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

<안마해주시는 집사님>

<아름다운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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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우먼 문자매권사님들~~**>

<맛있게 드셨어요~?>

<저녁식사>

<가로수에 매달린 예쁜 꽃나무들>

메테오라에 도착하여 7시에 저녁식사이다. 식사시간 전에 호텔 주위 마을 산책을 나갔다 산아래라 그런지 너무추워 몇몇 가게 아이쇼핑만하고 일찍 들어왔다. 식사 는 음식 대부분이 너무 짜다. 팥죽이 있다하여 기대를 하였는데 우리나라 동부 콩 으로 만든 팥죽이 너무 짜 기대한 것만큼 맛이 없다. 컵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하는 팀들이 많다. 내일 아침은 6:30기상 7:30아침밥 8:30출발이다. 2014.5.5 월 8일째 날 아침에 요구르트와 빵 쨈 위주의 식사를 마치고 8시 33분에 출발한 우리는 대수도 원을 방문한다. 메테오라는 절경위에 세워진 수도원자체만 봐도 감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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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오스 니콜라우스수도원>

<메테오라 사암 바위들>

<카스트라키 마을>

<바를라암수도원>

<1337년 최초 수도원 메가론 메테오론수도원>

<물건을 싣고 나르는 도르래 케이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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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변화산에서 변화하는 벽화>

<입구에서 새집속 고개를 내민 작은 새 >

< 메가로 메테오론수도원에 있는

<정원>

수도사유골>

<그리스도와 12사도일부>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영혼이라고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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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수도원 부엌>

<메테오라 단체사진>

<단체치마 사진>

<생활도구>

<동물워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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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

<메테오라 수도원배경 단체사진>

<메테오라의 절경>

<칼람바카 전망대에서 본 메테오라>

<4개 수도원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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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라에서 인증샷~*>

<내려가는 길은 산책을 하면서>

<산책길에서 만난 야생화>

<아기아 트리아다수도원>

수도원안 수도사들이 생활한 생활도구들이 그 당시 배경으로 보면 굉장히 과학적인 도구들이 많다. 포도주 틀과 농사도구 가재도구등이다. 사재들은 여름과 겨울복장이 입구에 걸려있고 땅에서 물건들을 끌어올렸던 도르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성전 안 프레스코 화는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본당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정결 케 하는 그림으로 된 성경과 그 당시 순교한 여러 수도사들의 순교도구로 사용한 고문도구와 성인들의 모습들이 온통 빽빽하게 그려져 있다. 제일 가슴이 아픈 고문 도구는 10개의 칼이 솟아나있는 틀에 사람을 채바퀴돌리듯 한 바퀴 돌이면 살점이 샅샅이 뜯어져 나가는 기구를 그림으로 보면서 가슴이 절절하다. 수도원에 뜰에서 바라보는 절경은 너무 아름답다는 표현밖에 나오지 않는다. 내려오는 길은 다리가 아픈 분들을 버스로 내려오시고 나머지는 산으로 내려오는데 산책하며 경치를 바라 다보며 야생 꽃들을 보며 내려오는 길은 이곳으로 내려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 다. 내려오면 버스가 먼저 대기를 해 있다. 점심은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메테오라 칼람박카 레스토랑에서 피망을 파고 쌀을 넣 고 찐 것과 샐러드 돼지갈비을 먹고 화장실 들리니 남녀구분 화장실 안내가 재미있 다. 식당에는 그리스 할머니 할아버지들 동네 모임으로 많이 오셨다. 그리스는 식당 주방 안에 손님들이 계신데 손님들이 직접가서 따로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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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칼람바카 레스토랑>

<소갈비구이 점심>

<깜찍한 남자화장실>

<여자화장실>

1시 5분 출발한다. 인솔자는 로마 남자 가이드한테 카톡이 왔는데 바티칸 예약자가 3만 명이라며 5~6시간을 기다려야한다며 로마 일정의 차질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 누고 좁은 골목인 로마에선 요즈음 벤츠투어를 하는데 투어에 대한 예약을 말씀하 시는데 1인당 60유로라고 한다. 메테오라에서 아테네까지 350k이다. 테살리아 평야 를 지나가며 아테네까지 6시도착예정이며 아테네에서 1시간 15분 떨어진 고린도 운하를 간다. 그리스는 고기는 오레가노를 뿌려 먹는데 오레가노는 염증을 없애주 고 냄새를 없애주는 향신료를 많이 쓴다. 저녁 메뉴는 된장국 쌀밥 불고기 오징어볶음 갈치구이 혹은 가자미 튀김 고추짱아 지 김치 쌈장 상추쌈 듣기만 해도 즐겁다. 부정적인 면을 보면 보이는 것도 적게 들어온다. 아는 만큼 보인다. 가이드는 나나무스꾸리의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아베마리아 등등의 음악을 버스에서 틀어준다. 메테오라에서 조금 더 가면 마을 나오는데 683가지 약재 아스클레피온 신이 이곳 출신이라 한다. 안전벨트 메라는 주문 수시로 한다.2개의 작은 산맥을 넘는다. 3시 50분 가는 도중 비가 내린다. 그리스도 5월 달에 고사리가 많으나 한인교회서 야외예배 고사리 따러 가는 날도 있다고 한다. 버스에선 서울의 슈퍼를 다 털고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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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지 수시로 간식이 돌아온다. 4시 45분 헤라클레스 고향이라는 곳을 지나고 있고 아테네를 한 시간 남겨두고 비 가 많이 내린다. 우린 아테네 북쪽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어린이날 선물을 나눠주시는

<마을안 묘지들>

김순자그리스가이드>

<휴게소에 우리나라 강정이??>

<휴게소 공작새>

<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의 레오니다스왕

<지나는 길에 유황온전지역에서 내려오는

동상>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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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길에 보이는 유황온천지역>

<피스타치오 나무>

<지나는 길 풍경>

<풍력발전>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공작새 2마리가 있는데 우리를 보고는 날개를 활짝 펴 주는 연출을 해 준다. 헤라여신은 아르고스에게 화가나 그는 그를 공작새로 변하게 해 그의 많은 눈을 공작새 깃털에 다 붙였다는 신화를 가이드가 해 주셨는데 그 말을 실감케 한다. 아테네를 가는 길은 높은 산이 멀리서 늘 따라다니며 유황온천지역도 있고 300명의 군사로 30만 페르시아군을 물리친 레오니다스왕의 동상이 있어 잠깐 사진만 찍고 간다. ‘영화 300’영화를 그리스에 오기 전에 꼭 봐야한다고 가이드는 설명하는데 영화를 못 본 나는 지금 지나고 있는 피니오스강이 어떤 강인지 잘 모 르고 지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적인 강임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날씨는 잔 뜩 흐려있고 비가 간간히 뿌리기도 한다. 아테네(행17~18장)아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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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 지도>

<아덴 기독교의 상징 아레오바고 언덕>

아티카 반도 중앙 살로니카 만 연안에 위치하는데 남동쪽은 이비토스산 북동쪽은 펜텔리산 북서쪽은 파르나타산 서쪽은 에길레오산에 둘러싸인 평야가 살로니카만으 로 기우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옛 헬라제국의 수도요서앙문명의 모태지인 고도 아덴은 수호신은 주신인 제우스의 머리에서 온몸에 갑옷을 입고 태어났다는 아테나 여신으로서 지혜와 기술과 방위의 임무를 맡는다. 바울은 아덴에 도착하여 이 도시 가 우상으로 가득한 것을 보고 회당과 저자거리(아고라)등에서 유대인과 경건한 자 들과 벼논을 벌였다(행17:16~17) 바울의 포고 이후 파르테논 신전으로 바뀌었고 아태나 여신의 신전은 마리아를 위한 교회로 바뀌었다. 19세기 아덴은 인구 1만 명이 채 안 되였으나 지금은 420만 명으로 그리스 인구의 3분의1이 아덴에 거주하는 거대도시가 되었다. 기독교 유적으로는 바울이 행17:22절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 이 많도다. 라며 선포한 아레오바고 언덕이 있고 바울이 아덴에 머무르는 동안 에 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와 논쟁을 벌인 피닉스언덕이 있다. 아테네 도착하여 내일 일정이 바쁠 것을 예정되어 고대 올림픽이 열린 초대 올림픽 경기장으로 갔다. 가이드는 어디에서 구했는지 올리브 가지를 꺾어 면류관을 만들 어 한사람씩 기념촬영을 하게하였다. 초대올림픽경기장(고전9:24~27) (바울이 이 경기장을 보고 인용한 말씀) 프랑스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1890년 부활된 근대올림픽 경기장은 약63,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렸던 파나티나이코 올림픽 경기장은 기원전 331년 아테네 시민들이 모두 모여 축제를 즐기는 아테네 대 축제 가 열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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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올림픽경기장>

<초대올림픽경기장에서 기념촬영>

<올리브 관을 쓴 김이덕권사님>

<1등 제일 실감나는 올리브관을 쓴 권사님>

<올리브관을 쓴 권사님>

<올리브관을 쓴 권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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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관을 쓴 권사님>

<올리브관을 쓴 권사님>

올림픽 경기장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9:24절 운동장에서달리기하는 사람의 비유로 쓰인 경기장인데 바울당시 올림픽 같은 경기나 축제가 많이 열렸는데 그 때는 숙소 가 없으니 장막이 많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장막과 카펫기술자인 바울이 장막을 팔 아 수입으로 선교를 계속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시내는 약간 막히고 올리브 기념품가게를 들려 선물할 물품을 구입했다. 주로 올리브비누와 올리브기름 화장품이다.

<올리브제품과 기념품가게>

<에키드나,사이렌?그리스 신화 상반신 사람인 괴물>

한식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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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저녁식사>

<아테네의 심각한 주차난>

<개인집의 그늘막>

<아테네 숙소>

8시 20분경 호텔 도착 11시 40분경 잠자리에 든다. 2014.5.7.화 아테네 9일째 날 5시30분에 일어나 6시부터 자유롭게 아침밥을 먹고 7시 5분에 김이덕권사 출발기 도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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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앞 전경>

<아크로폴리스 가는 길 아칸사스 잎>

<쥐엄나무>

<쥐엄나무 열매>

아크로폴리스를 유적들을 보기위해 입구에 도착하니 5분전 8시이다. 정확하게 8시 에 문을 열어 입장하니 올리브나무가 유난히 많고 가이드는 아칸사스 식물을 알려 주었다. 스페인에서 인터넷에서 본 아칸사스같아서 사진을 남겨두었는데 꼭 맞아서 반가웠다. 또 쥐엄나무 열매가 파란색 콩주머니처럼 열매가 달려있다. 먼저 헤로데스 아티쿠스 야외극장을 내려다 보고 간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아크로폴리스 남쪽 기슭의 서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AD 160년 유명 한 로마 철학자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예술의 옹호자로서 문화적 행사를 위한 공간 을 만들게 된 것이다. 정교한 대리석 조각들로 장식된 이 건물에서 수세기 동안 음 악과 연극 등 공연이 펼쳐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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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복원도>

아크로폴리스(Macro 높은 Polic 도시국가)는 고대 그리스 전역에 세워졌는데 그 도시의 주신의 신전을 짓고 고대 그리스 도시의 방어 요새와 같은 역할을 했다 고대 그리스 국가 대부분은 중심지에 약간 높은 언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을 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리스 시민의 정신을 한곳으로 끌어 모은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아크로 폴리스 중요 유적지는 니케르(승리의 신 Nike) 신전과 파르테논 신 전등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전쟁과 지혜의 신이자 아테네의 수호신이기도한 아테네여신을 숭배한 곳이며 세계에서 가장 균형 잡힌 건축물로 도리아 양식의 건축물 중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이 신전으로 특이할 만한 것은 56개의 기둥들이 건물안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져 있어 2500 피트상공에서 하나의 꼭짓점을 이루어 모두 만나게 되도록 설계되어있다고 한다. 모든 신전이 집중되어있는 곳은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아레오바고 언덕에서는 정치 경제 철학 문학 각종 심포지엄이 이루어졌고 시민들이 대화의 광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민주주의 언덕이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리카비투스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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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테네 상상도>

< 필로파포스언덕 필로파포스 기념비>

파르테논신전 파르테논은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자연적인 암반 위에 자리 잡은 고대 그리스의 상 징과 같은 건물이다. BC 447년 기공하여 BC 438년 준공한 이 신전은 아테네의 수 호여신 아테나를 섬기기 위해 만든 것이다. 아테네의 황금기인 BC 500년경 세워진 이 신전은 폭이 30.8m길이가69.5m 높이가 10.4m되는 46개의 도리아식 석주가 둘러있어 그리스 건축 예술의 백미이다.신전을 바치고 있는 기둥은 수직이 아닌 한쪽을 약간 경사지게 비스듬히 세워져있어 910M 상공에 있는 가상의 한 지점에서 만나도록 설계되었다는 사실이다. 파르테논 신전 건물 유적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제 1호로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비해서는 그 규모와 건축기술 및 건축된 연도를 비교 해 볼 때 훨씬 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입구 프로필레아>

<입구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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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신전>

<서쪽에서 본 파르테논신전>

<파르테논신전 아테나여신상>

<파르테논신전 앞에서>

<파르테논신전 앞에서>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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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박물관 앞>

<사람만 달리지고>

<단체사진>

<인증샷~>

<아크로폴리스 그리스 국기>

<복원중 파르테논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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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 복원도>

<서 남쪽에서 본 파르테논신전>

니케아(승리의 신 니케)신전 세계문화유산 1호를 눈앞에 두고 그 규모에 모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모든 신전 입 구는 동쪽으로 낸다고 하며 니케 신전 앞에는 복원중이다.

<니케아 신전>

<복원중 니케신전>

<모든신전을위한 신전 에릭테온신전>

<남동쪽에서 본 에릭테온신전>

에릭테온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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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 단어를 탄생시킨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6명이 여신상>

<에릭테온신전 정면>

아레오바고언덕(행17:22~31) 아레오바고는 해발 115m이다 이곳은 로마시대 재판정이 있었던 장소로 사도바울이 이곳을 바라보면서 아덴 사람들이여 종교심이 많도다. 라고 외쳤던 곳이다 아레오바고 언덕은 아크로폴리스 옆에 있는 해발 113m의 나지막한 바위언덕이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제우스신의 아들인 ‘아레스’(Ares)가 나온다. 전쟁의 신인 아레스는 자기 딸을 겁탈한 사촌 형제를 죽였고 다른 신들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정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서편에 인접한 바위언덕이었다. 그 후 아레스가 재판받은 곳은 ‘아레스의 언덕’, 곧 그리스어로 ‘아레오바고’라 불리게 되었다 아레오바고는 원래 살인죄를 범한 사람을 재판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 에 따라 아테네 시의회가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에서 그리스 북부 지역인 마케도니아를 거쳐 서기 50년 경 아테네에 도착하였다. 당시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였던 학문과 문화의 도시 아테 네에서 사도 바울이 유명한 설교를 한 장소가 바로 아레오바고였다. 사람들은 새로 운 종교를 전하는 사람 중의 하나 정도로 생각하였다. 아테네 철학자들은 차츰 그 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고 마침내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연설할 기회가 주어졌 다. 사도행전 17장 22절에서 23절을 보면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 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며 우상을 버리고 참 하나님을 섬기라고 담대하게 설교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고 조롱하였으나 그가 전했던 그리스도의 복음은 아테네뿐 아니라 그리스 전체를 정복하였다. 그리스는 현대 민 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로서 예외적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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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에서 본 아레오바고언덕>

<바울이 설교한 아레오바고언덕>

<행17:22~31장이 헬라어로 기록된 동판>

<아레오바고 언덕 올라가는 계단>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단체사진>

<아테네 시내를 뒤로하고>

파르테논신전을 내려오다 아레오바고 언덕이 내려다 보여 사진을 남긴다. 아레오바고 언덕에 서면 나이키신전 파르테논신전 에렉데온신전 아테네 시내 전망 이 한눈에 들어온다 리카이투스언덕과 필로파포스언덕까지 헵타이투스신전터 지금 은 박물관으로 사용하며 여러 오래된 정교회가 들어온다. 아테네시내가 바다와 함 께 들어오며 오늘날씨가좋아 하늘이 기마 막혀 사진이 살아난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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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전경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본 아테네 시내>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본 원형극장>

<아테네 시내>

<제우스 신전>

<숲속 흰색건물 헤파이스토스신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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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탈로스 스토아(고대아고라박물관)>

<고대 아고라>

<아테네 피닉스 언덕>

<아테네 시내>

아테네 식물들

<올리브 가지>

<일명 유다의 동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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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수나무>

<카모마일 꽃>

<아네모네>

<개양귀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군인 국기 계양후 사열

<국기 계양마치고 내려오는 군인들>

<사열군인들>

이번여행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양하게 보여주신다. 마침 아크로폴리스 언덕 국기 개양 식을 마치고 내려오는 군인들 사열도 보게 하신다. 소크라테스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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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감옥>

<감옥 안>

<감옥안 동굴>

<동굴>

아레오바고 언덕순례후 소크라테스감옥터 한 달 동안 갇혀있다 식물의 독이든 차 를 마시고 죽었다고 하는 감옥 터를 순례한다. 피닉스 언덕에 자리 잡고 있고 별로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다. 10시 15분에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출발한다. 아테네 시내

<아테네 시내 전차>

<시내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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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며 오나시스 정유공장이 있다는 곳을 지나간다. 처형의 남편 소유라고 한다. 오른쪽을 바라를 보며 왼편은 큰 공장들이 있다. 헤라클레스 시멘트 회사도 있다. 아테네에서 고린도까지는 1시간 반쯤 걸린다. 김순자 기이드는 로마신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카루스 신화와 헤르메스이야기등 이다. 석류가 등장하는 신하이야기로 석류가 신화나 성경에서 많이 나오는가 보다. 데메테르 가는 중 살라미스해전이 벌어진 살리미스 섬이 가까이 보인다. 지나가면 서 보니 육지와 붙어있는 것 같이 보인다. 살라미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승리한다.

<고린도 가는 길>

<끝없는 올리브밭>

멀리 고린도 시지프스 산이 보인다. 바울은 아덴에서 고린도까지 수시로 다녔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산 하나하나 눈여 겨보아진다. 고린도 운하

<청옥색 물 고린도 운하 >

<고린도 운하>

가이드는 일정상에 없는 고린도를 넣어주셨다. 우리는 일정에 없는 코스를 다니는 것이 얼마나 가이드가 위험을 감수해야하는지를 알고 있기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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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유난히 물이 청옥색이다. 이곳은 교통사고의 위험이 많은곳같아 보인다. 운하를 직접 넘어서니 가로수인 뽕나무가 아주 예술적으로 가 꾸어져 다들 웃었다. 버스가 미리와 겐그레아로 향한다. 겐그레아(롬16:1)

<겐그레아 지도>

<물에 잠긴 겐그레아 유적>

<겐그레아 해변>

<겐그레아 유적지>

고린도에서 동남쪽 11.2km떨어진 곳에 그리스 남쪽 사론 만에 있는 항구이며 오늘 날 케크리아스라고 부르는 근처이다. 바울은 겐그레아에 오기 전에 고린도 머무는 동안 교회를 세웠는데 뵈뵈는 이 교회의 여집사였다.(롬16:1~2) 바울은 수리아로 행하기 전 그의 서원을 위하여 머리를 깎았다(행18:18) 겐그레아 유적은 고린도 운 하건설로 교회 터 일부만 남아있고 물에 잠겨있어 지금은 볼 수가 없다. 바닷가 에 는 이발소 표지판을 세워놓았다. 겐그레아에는 4세기경에 세워진 바실리카풍년 의 교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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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에서 본 겐그레아 >

<뒷산에서 본 겐그레아 물에 잠긴 유적지>

<물에 잠긴 유적지>

<군부대가 있는 겐그레아 동네>

겐그레아는 요즈음 교통사고가 빈번하여 법적으로 관광버스서에서는 내리지 못하고 버스에서 사진 촬영만 하고 지나간다. 겐그레아 뒷길은 군부대가 있고 바로 고린도 로 이어진다. 오렌지와 레몬 밭을 따라간 고린도 유적지는 이 지역은 땅만 파면 유 적이 발견되어 끊임없이 유적이 발굴되고 그대로 묻혀 있다. 그 범위는 많이 넓고 유적지 건너편에는 원형극장이 발굴되고 있다. 고린도(고전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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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지도>

<고린도 바울의 비마>

고린도는 그리스 중남부의 아가야지역에서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해발 566m의 도로된 언덕도시이다.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약 80km떨어져 그리스 반도 와 대륙을 연결하는 지협 남단에 있으며 겐그리아 항구와 로마의 레기온항구를 연결하고 지중해의 동서를 연결하는 묘한 지형으로 상업과 물질적인 변영을 누린 도시라 문화와 종교의 혼잡을 이루며 특히 아프로디테의 우상이 있어 무녀가 무 려 1,000명이나 있었던 고린 도인들은 음란의 대명사로 그려진다. 기독교 유적으로는 유대회당이 있었던 자리와 바울이 행:18:12~13절의 배경이 된 아가야 지방의 총독인 갈리오 앞에선 바울의 법정이 있다. 거대한 바실리카 교회가 세워졌으나 551년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바울은 아덴에서 선교에 실패한 후 고린도에 내려와 장막 만드는 일을 하는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그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고 화당장 그리스보가 그 의 가족이 주를 믿고 바울에게 세례를 받아 고린도교회의 초석이 되었으며 고린도는 1925년 대 지진 후에 다른 지역으로 옮겨져 인구 5만 명 정도의 신 고린 도가 되었고 신 고린도에는 바울의 전도를 기념하는 고린도 기념교회가 있다.

고린도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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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아크로폴리스 아프로디테신전이 있었던 시지프스산>

<바울이 갈리오총독에게 선 바울의 법정>

<고린도 아폴로신전터>

<고린도 유적>

<피레네의 샘>

<고린도 상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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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 유적 터>

<교회 터 내부, 남아 있는 성화 프레스코>

<바울의 비마>

<고린도에서 단체사진>

<바울의 법정의 십자가>

<바울의 법정위>

바울의 전도여행 성서 지리학적으로 본 고린도는 퇴폐적 항구도시로 음행하는 사람 이 많은 이유는 출애굽 40년 후 약속의 땅 가나안사람들은 농사짓는 것 알려주세 요? 하니 아니, 우리가 알 수 없죠. 땅의 여신 아스다롯과 바알신이 해 주어야 하지 우리가 할 수 없다, 하니 부부관계가 좋아야지,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부 간 사이좋아지나요,하니 신을 자극시키는 사람 필요하다고, 창녀를 직접 보내 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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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 보내 이래서 음행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한다. 엘신,가나안 우가릿신화 신화는 70신이 있는데 최고의 신이 엘이다 그중 최고의 신이 바알과 아스다롯이다. 이모두 가 음란의 대명사다. 고린도박물관

<고린도 박물관 바울당시

<고린도 박물관 십자가>

청동거울,고전13:12>

<십자가 >

<사자가 포도송이를 먹는 부조,몇년전에는 있었던 부조가 지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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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회당, 시나고그 >

<유대인 표시문양, 메노라,일곱촛대>

<로마인들의 식사자세를 볼 수 있는 조각>

<무덤>

<시대를 알 수 있는 기둥,

<네로상>

도리아,이오니아,고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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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 술의 신>

<고린도 고대병원>

고린도 유족자 가기 바로 직전 바울기념교회가 있어 바울이 몽둥이를 맞는 장면이 있어 잠깐 사진을 찍고 간다. 들어가자마자 화장실부터 들려 바로 화장실과 실외 박물관이 이어져 붙어있고 화장 실 문밖에 바로 유물이 전시되어있어 웃습기도하다. 조각과 부조가 뒤섞인 전시실을 지나면 목이 없는 조각상들이 두 줄을 서 있고 실 내에는 아우쿠스트왕제상과 그의 손자와 네로상 그 옆에 술의 신 디오니소스신상 등등 전시되어있다. 그 옆에는 그 당시 병원이였던 전시실도 있다. 그당시 두개골 두상개복도 있다. 실외박물관은 입구에 아폴로신전의 도리아식 기둥이 버티고 서 있다. 우편의 시지프스산의 아크로폴리스가 유적지를 바라다보고 있고 꼭데기에는 음란의 본산이였던 아프로디테신전터가 있었다. 그당시 무희와 음란한 신전의 창녀 와같은 여자들이 1000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고대 고린도에서는 고린도 금 은화로 바꾸지 않으면 사용할수가없었기에 고린도는 부유할수밖에 없었고 그당시 생활이 음란한 사람들을 일컬어 고린티안이라 불렀다한다. 유적지에는 개양귀비와 카모마일차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바울이 재판받았던 바울의 재판정과 피에네 샘 성전터가 있었던 곳은 약간의 프레스코와가 남아있었 다. 고린도에서 찍기로 한 에라스도의 길을 찾지못해 서운하다. 점심은 유적지가 내려 다 보이는 스불라끼 전문집에서 먹는다. 앉기가 바쁘게 금방 짠 오렌지 한잔을 준 다. 오렌지 고장에서 금방 짠 수제 오랜지맛이 기가 막힌다. 2시에 고린도를 떠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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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수불라끼 레스토랑 주방 할머니>

<레스토랑 꼬마손님의 포즈>

<점심 수불라끼 꼬치구이>

<레스토랑 안>

<고린도 야채가게>

<야채가게>

레스토랑에서 주차장까지 걸어서 가는데 입구에는 고린도 원형극장이 있었던 곳이 발굴중이며 주차장에서 본 고린도 바다의 경치는 그 색이 어디가 하늘이며 바다인 지 그 색이 너무 예뻐 구름만 없다면 하늘색이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유적지 노란 야생와가 받혀주면서 한 장의 그림엽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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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유적지 입구에서 본 고린도 바다>

<고린도 바다>

<고린도 특산물 오렌지와 레몬>

<시지프스산과 아폴로신전>

<바울기념교회>

<바울기념교회 뜰에서 본 고린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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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바울기념교회 벽화>

<몽둥이를 맞는 바울벽화>

<비마에서 복음 전하는 바울>

<고린도 개양귀비>

고린도에 입구 시지프스 산 아래 사도바울기념교회가 있는데 뜰에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몽둥이로 맞는 장면을 모자이크 프레스코화로 그려져있어 내려서 잠깐 보고 간다. 규모는 작지만 깔끔한 교회이다. 성전 문을 열어보니 잠겨있어 들어가진 못하 였다. 이 지역은 오렌지 메론 올리브가 많이 재배된다. 고린도를 떠나면서 몇 개의 정교회가 있어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가로수가 너무 높 아 찍을 수가 없다. 고린도에서 파트라항까지 가는 길은 바다가 많이 보인다. 올리브밭사이로 예쁜 교회도 많이 보이고 과일나무들이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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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라항 가는 길 >

<파트라항이 가까워지고>

가이드는 고린도에서 파트라 까지는 2시간가량 걸리며 바리 항으로 가는 훼리로 가 는 짐챙기는 설명을 한다. 간단세면도구 갈아입을 옷 충전기 다용도멀티탭 모자 선 글라스 등등은 하드케이스같은 큰 가방은 배 입구 화물칸에 넣어서 꺼낼 수 없으니 다음날 폼페이 사용할 물건 챙겨 보조가방에 넣어 준비하라는 설명이다. 파트라 항 가까이에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다리가 하나 나오고 조금을 가면 바울의 작은 유적이 하나 지나가는데 카메라를 대자 금방 지나간다. 가이드는 시간의 여유가 있자 길가에 있는 안드레 무덤교회순례를 진행한다. 이교회도 역시 대로변에 있어 교통사고에 위험이 있어 조심해야한다. 어려운 곳에 위험을 무렵 쓰고 일정을 진행해준 가이드께 감사드린다. 안드레무덤교회 파트라 항 입구에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의 무덤이 있어 가이드 의 배려로 들릴 수 있었는데 규모로는 그리스에서 3번째로 큰 교회라고 한다. 외관 이 아름답고 내부는 먼저 나무로 된 상젤리제가 교회를 압도하고 안드레는 X자형으 로 순교를 당하였는데 우측에는 안드레의 유골이 안치되어있고 좌측에는 안드레가 달렸던 X자형 십자가가 있다. 내부에는 성경속 배경이 된 말씀 프레스코와가 많이 그려져 있고 크기도 굉장히 큰 규모이다. 안드레 무덤교회 옆에는 유골이 오기전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1835년 바실리카교회가 새워지고 다시 그 자리에 1980년 오늘날 안드레 무덤교회가 세워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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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라 안드레 무덤교회>

<안드레 무덤교회 나무로된 상제리제>

<안드레 무덤교회 내부>

<안드레가 달렸다는 X자형 십자가>

<안드레 순교 성화>

<안드레 유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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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순교기>

<병을 치료하는 안드레 성화>

안드레 교회에서 10분쯤 가면 파트라 항 이며 파트라 항 선착장에서 버스기사와 현 지가이드와 헤어지고 먼저 배표와 방배정표를 받기위해 가이드와 인솔자가 카운트 로 가시고 우리 일행은 면세점에서 쇼핑을 하는 일행들도 있다. 이곳에서 또 올리 브유와 꿀을 구입하는 사람도 있다. 6시 출항하는 배이며 배에 오르며 그동안 한곳이라도 더 보여주려고 일정에도 없는 몇곳을 보여주시면서 애셨던 김순자가이드와 헤어졌다. 연배가 비슷해 보이며 자연스럽게 웃기는 묘한 매력을 주시는 분이셨다.

<파트라 항 배>

<그리스 기사, 현지가이드와 이별을 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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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라 항 휴게실>

<바리항 헤리로 이동>

<폼페이 행 헤리안에서>

<선실 복도>

파트라스 항구 이동 3만 톤급 대형 헤리호 블루스타호에 승선 지중해 일부인 아드 리아 해를 향해하여 이탈리아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된다. 한 밤중 풍랑이 심하여 배가 요동하는 것을 느끼며 멜리데 섬에 포류한 바울의 심경을 한번 쯤 느끼는 시 간이 되시길... 헤리호에 승선하자마자 서목사님의 핸드폰이 없어져 헤어진 가이드와 전화를 해 그 리스 버스에 떨어져 있는 것을 찾아 다시 돌아와 가져다 주셨다. 감사~ 작은 사건사고가 많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즉각 해결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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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으면 침대가 나오는 2층 숙소>

<욕실>

<푸짐한 저녁식사>

<헤리 안 휴게실에서>

페리에서는 7시에 저녁식사이며 내일은 7시 30분 기상,8시 30분 식사, 폼페이 바리 항구는 10시 반 도착예정이다. 우리 방은 6210B호실이며 로마는 그리스보다 한 시 간 –시차가 있다.7시 저녁식사는 메인요리는 샐러드 파스타 빵 햄버그스테이크 감 자튀긴 것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이나오는 아주 푸짐한 저녁식사이다. 일행 중 뜨거 운 물을 달래서 누룽지를 드시는 분도 있고 컵라면을 드시는 분이 많다. 한국반찬은 냄새만 나질 않는다면 얼마든지 드실 수가 있다. 훼리에선 밖에 나가면 약간 싸늘하다. 식사 후 갑판에 나가니 무지개가 떠 있어 단 체 여행 시 어디를 가나 보여주시는 무지개를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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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안에서 만난 무지개>

<폼페이 입성을 앞두고>

우리 방은 4명이 주무시는 방이며 2층에는 접었다 폈다하는 침대이다. 전기코드가 잘되어있고 온도도 적당하다. 우리 방 4명의 인원이 모두 다 마실을 나가셨다. 5층 휴게실과 레스토랑이 있는데 룸은 답답하니 다 밖에 나가시고 주무실 때만 들어오실 모양이다. 2014.5.7 수 10일째 날 새벽5시반에 일어나 좁은 공간에 4병이 기거하며 2층 침대가 2개가 있어 그대로 누워있다. 간단히 씻고 8시 30분에 아침 식사다 아침은 메인은 계란 프라이 2개와 베이컨 큰 것 한조각 양송이 볶음,씨리얼에 우유 크로와상과 작은 바케트빵 오랜지 쥬스이다. 식사 후 시간이 있어 1시간가량 담소하다 1시간을 남겨두고 해리 직원이 청소관계인지 나가라는 사인을 보낸다.

<아침도 푸짐>

<내릴 시간을 기다리며 담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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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온 권사님들>

<담소시간>

5층 리셉션 실에는 벌써 많은 분들이 나와 계시며 어젯밤 중간에 한번 항구에 정박 을 했는데 그때 학생들이 많이 탔다고 한다. 지금부터는 로마시간으로 1시간을 로 돌려라 고하신다. 10시 30분 이태리 바리 항에 거의 맞추어서 도착하였다. 먼저 주차장에 터럭과 차량들이 많이 있어 가로막고 있어 운전사들이 제일먼저 나가시고 다음순서로 승객들이 나가시고 여권검사는 없다.

<바리항 >

<바리항 도착>

<로마 가이드와 만나고>

<로마 버스 안, 본죠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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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항 10시 45분 선착장에선 남자가이드가 나와 계시는데 이전에 만났던 가이드이시다. 바로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바리는 올리브기름으로 유명한 도시로 커다란 등 대 뒤에 15층쯤 되어 보이는 건물들과 항구의 일반적인 건물들이 보인다. 바리 항 을 떠나 이태리는 노란색 꽃과 개양귀비가 온 들판에 반발해 피어있다. 개양귀비는 부활절까지는 꽃 얼굴에 십자가가 있고 후에는 아네모네처럼 십자가가 없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부활절이 지난 지금에도 십자가가 보인다.어딜가나 올리브 밭이 보이 고 밭작물이 많이 보인다. 이곳의 날씨는 화창하고 여행하기 좋은 기후의 날씨다. 로마 기사 아버씨는 살바도레이며 우리는 ‘본죠르노 살베도레’하며 인사를 나누었 다. 이태리 말로 감사합니다. 는 그라찌에이며 가이드는 일반적인 이태리의 일반적 인 문화와 그리고 역사 2파트를 나누어서 설명을 해 주신다. 우리가 잘아는 부라보는 남자에게 하는 말이며 여자에게는 ‘브라뱌’라하고 해야 한 다고 한다.

<로마엔 노란 꽃이 만발>

<여기도 포도나무가>

네로는 위장병과 약간의 정신병이 있었다고 한다. 네로이후 티투스가 사람은 피를 보면 처음에는 눈을 돌리지만 나중에는 도취된다고 한다. 베스티아누스 티투스가 로마 시민의 마음을 잡았는데 티투스는 이스라엘에서 110만 명을 죽였다. 크리스천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고 생각할 만큼 2 년 후 죽었다. 나폴리는 로마보다 더 빨리 세워졌다. 화산은 29키로에서 30키로 간 다며 돌이 시속 200키로 날아가며 유독가스로 질식해서 죽는다고 한다. 18시간 화 산재가 덮었다고 한다. 그당시는 재앙 이였지만 후손들한테는 그 당시 사람들한테 는 가장 적나라한 상태를 볼 수 있는 유적지이다. 교훈과 도전의 역사를 배운다. 로 마인이 실제 어떻게 살았는지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폼페이로 가는 도로는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번 여행지의 아름다운 집과 경 치를 보며 나도 시골 주택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스나 여기나 아카시 아가 많이 피어있다. 나라별 특징은 한국사람 빨리빨리, 중국 머리떡져있다. 씻으면 복나간다고 믿음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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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우며 일본사람 조용하나 컴플레인 제일 많고 독일 가정 문제제일 많고 이태 리는 문제없다고한다. 유럽여자 연애하고 싶은 남자 이태리남자 여자 뭘좋아하는지 제일 먼저 안다. 한국관강객 특징 줄이 없고 빠르다 마음이 급하다 물어본다. 한국 인 한국 음식 애착 강하다. 이곳 마늘 먹으나 올리브에 구워먹는다. 이태리 음식은 향신료 많이 안 쓰고 점심 파스타 오징어 요리이다 오징어요리 먹는 드물다. 오징어 튀기면 지방 올라간다. 올리브 양파기름 넣으면 음식 맛있다. 이곳 많이 먹으면 예의이며 또 많이 남겨야 예의이다. 피자 2000년 역사이며 나폴리에서 출발했다. 폼페이에서 우리가 탄버스가 기사분은 남겨두고 버스만 바뀐다. 폼페이 부근에는 기사분 고향이라한다. 이곳은 우범지역이며 마피아와 마약거래가 많으며 한 달에 한 사람씩 죽어나가는 곳이라고 한다. 폼페이유적 입구 레스토랑에서 점심 을 먹는데 대 만원이다. 들어가니 집시가 산타루치아 노래를 기타를 치며 부르고 있고 이태리 깐소네를 몇 곡 불렀다. 식사는 빵 파스타 샐러드 오징어 새우튀김 그 리고 우장로님께서 피자를 사 주셨다. 파스타는 우리나라 입맛에 길들여진 우리일 행은 많이들 남겼다. 식사가 끝날 무렵 집시는 바구니를 들고 팁을 요구해한 테이블 만 1유로를 보통 준 다.

<폼페이 피자, 파스타>

<레스토랑 종업원>

<새우 오징어튀김도>

<아칸사스가 꽃이 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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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도 개양귀비 천지>

<폼페이 유적지 앞 과일가게>

폼페이 유적은 입구에는 이곳의 과일인 오렌지 커다란 자몽 같은 과일 등등 주렁주 렁 메달려있다. 폼페이는 모기약의 원료로 쓰이는 유카리투스나무 가로수가 많다. 폼페이 나폴리에서 남서쪽으로 23km 떨어진 베수비오 산 근처에 있으며, 사르누스(지금의 사르노) 강어귀 북쪽으로 흘러든 선사시대의 용암에 의해 형성된 돌출부 위에 건설 되었다. 폼페이는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격렬한 폭발에 의해 헤르쿨라네움 및 스타 비아이와 함께 매몰되었다. 이 고대도시들의 유적들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독특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늘날의 폼페이 시(인구 2만 5,081명[1991]) 는 고대도시의 동쪽에 있으며, 순례요지인 산타마리아델로사리오 바실리카가 있다. 12000명수용 원형극장 있다. 서기 79년 8월,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도시 전체와 2만여 명의 주민이 함께 화산재에 파묻힌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도시이다. 폭발 이전에 하나님께서 는 몇 차례 경고를 했었지만 폼페이 사람들은 그것을 듣지 않았고, 미처 손을 써볼 겨를도 없이 이곳 사람들은 이집트에서나 볼 수 있는 미이라 형상이 되었다. 폭발 당시 폼페이는 로마 제국의 어떤 도시보다도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위락 시설로 로 마 귀족들 사이에 인기 높은 리조트 도시였으며, 농업과 상업도 발달해 있었다. 현재 발굴된 유적들을 보면 성적으로 타락한 당시의 퇴폐적인 사회상을 나타내 주 고 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사람들의 죄가 관영해질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던 것을 떠올리게 되는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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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 화산피해지역>

<폼페이 유적지도>

<폼페이 유적 복원도 그래픽>

<베수비오 화산 분화구>

<폼페이 유적 항공사진>

<폼페이 유적 복원도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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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문, 인도와 마차>

<항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배를 매달은 닻>

입구부터 이곳은 옛날에는 항구라고 한다. 돛을 달았던 자국이 남았어. 항구라는 암 시를 하여준다. 입구는 말과 마차 와 사람이 들어가는 입구가 달랐다. 지금은 사람 이 들어가는 입구는 패쇄되어있고 우마차가 다니던 길로 사람은 들어갈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대로가 나오는데 바닥에는 밤에도 표시가 나오록 형광색이 박혀있 다. 맨 처음 바실리카와 포럼 멀리 베수비오 산 아래 중앙광장의 기둥이 솟아있고 이어서 액체석고로 그 당시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을 석고가 되어 놓여져있다. 고통 속에 죽어간 임산부 개와 여러 생활 집기물등이 전시되어있고 그 당시 화려한 목욕 탕이 있는데 개인 사물함과 욕조 냉탕 온탕 등이 있고 몇m에 하나씩 있는 우물터 와 건널목 마치가다니던 길의 마차바퀴 자국이 선명하다. 피자가게도 보이고 가는 길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가 있는데 홍등가이다. 로마시대 얼마나 성적으로 타 락하였는가를 거울로 보여주는 곳이다. 로마시대 폼페이인 들의 수명을 단축시켰던 놋으로 된 수도관과 귀족이 살았던 화려한 집터와두개의 원형극장이 있다. 원형극장에서 가이드분이 노래를 불렀고 작은 원형극장에서는 아리랑과 주하나님 지으신 세계를 불렸는데 짧았지만 감동의 순간이었다. 유적지 밖에는 그리스에서는 아직 피지 않았던 아칸사스 꽃이 피었다. 베수비우스산은 여전히 유적지 뒤편을 위엄 있게 버티고 서 있다.

<길바닥엔 야광석>

<폼페이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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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신전터>

<포럼,광장앞에서>

<베수비오 산을 배경으로>

<유물보관실, 화석이 된 사람>

<개 화석>

<유물보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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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임산부>

<폼페이 유적>

<스타비아 목욕장>

<목욕장 >

<마차 자국 선명한 도로와 건널목>

<발가락뼈와 두개골이 남아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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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 뼈>

<생선가게 앞>

<남아있는두개골>

<로마는 대리석으로 폼페이는 납으로 된 상수도관>

<건널목 도로>

<홍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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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마다 마을 수도시설>

<화덕이 있는 상점>

<폼페이 원형극장>

<원형극장에서 노래하는 가이드>

<원형극장에서 단체사진>

<검투사 경기장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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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 경기장>

<아칸사스 꽃>

폼페이를 벗어나 보디올로 다니고 있다. 보디올은 오늘날 뽀쥬올리이며 폼페이에서 나폴리까지 30분 나폴리에서 보디올까지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지나가며 차창 밖 으로 나폴리를 보고 지나간다. 나폴리는 3대 미항으로 호주시드니와 브라질 리우데 자니이루와 함께 3대 미항으로 곱히지만 지금은 쓰레기와 빈민과 폭력의 대명사로 그려지는 도시이다. 먼 곳에서 바라보는 나폴리는 아름답기 만하다.

<베수비오 산>

<나폴리 시내>

<나폴리 항>

<보디올, 포쥬얼리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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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올 입구 김을 품어내는 화산지대>

<보디올 꽃이 있는 가정집 발코니>

보디올이 가까워오자 보디올은 폼페이와 산줄기가 같은 곳으로 아직도 연기가 피어 오르는 화산지대임을 볼 수 있다. 지금도 많은 김을 내품으며 두려움을 느끼게 만 든다. 기사아저씨는 보디올 바울도착기념교회까지는 버스가 들어갈 수 없으나 이곳 이 고향이다 보니 앞까지 데려다 주시고 순례하도록 해 주신다 보디올(Putheoli)포츄올리(보디올) 행28:13~14 이태리

남부

나폴리

만에

위치한

항구도시

보디올은

현재지명이

포츄올리

(Pozzuoli)로 샘물 온천이라는 뜻이며 사도바울은 수라구사를 떠나 레기온 항구를 거쳐 남풍을 타고 배에서 내려 나폴리 만의 작은 항구 보디올에 도착해 1주일을 머 물렀다고 행28:13~14절에 기록하고 있다. 이곳의 현재인구는 75만(1993)가량 되 며 도시 입구에는 바울당시 세워진 40.000석의 원형극장과 의술의 신 세라피스 신 전 유적이 남아있다. 이방종교가 번성하였던 이곳에 바울은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며 로마의 사명을 준비했던 곳이며 수라구사(시칠리아 섬) 레기온 보디올은 복음이 로마를 통해 세계에 확산되기 위한 분기점이었다. 항구에는 바울도착기념교회가 있으며 우측 벽에는 사도바울이 믿음의 형제들과 함 께 7일간을 머물며 이곳의 교인들이 환영하였다는 글과 행28:13절의 기념비가 새 워져있고 좌측에는 교황이 방문했다는 글이 새겨져있다. 이태리 사람들은 바울보다는 베드로를 좋아하는 편이며 베드로와 관련된 유적은 화 려하지만 바울과 관련된 유적들은 소박한 편이다. 오히려 소박한 편이 바울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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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올 항구>

<보디올 바울 도착기념교회>

<행28:13절 말씀 동판>

<보디올 바울도착기념교회 단체사진>

<행28:13절 말씀기록과 교황 방문한 기념패>

<교황 방문 기념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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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8:13 바울이 7일간 믿음의 형제들과 7일간 머물렸다는 패>

<보디올 항: 이제 로마로 가기위해 보디올에 도착했노라>

<보디올 항>

<보디올 항구 앞 과일가게>

6시 15분을 달리고 있는데 로마로 가는 길은 벌서 날이 저물고 있다. 버스안에서 가이드는 로마의 유적들을 보기전 명소를 익히기위해 ‘로마의 휴일’ 영 화를 틀어줘 보며 지나가고 있다. 지나가는 길에 압비아 가도가 있나하여 로마소나 무가 모여 있는 곳을 찾아보지만 안 보인다. 가이드는 11시경 로마 도착 예정이라고 하였다. 가는 길에 중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오랜만에 밥만 나와도 맛있는데 깍두기에 마파두부도 나와 모두들 잘 드신다. 오늘 묵을 호텔은 로마 근교 30분 거리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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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중국 식당에서>

<밥 깍두기 마파두부...>

<가는 길에 석양>

<로마 호텔 도착>

<깔끔한 호텔>

<넓은 욕실>

예정시간보다 일찍 로마에 도착한 우리는 로마에서는 짐을 매일 짐을 싸지 않고 이 틀을 머문다고 하니 신났다. 호텔은 깨끗하고 넓고 불빛도 밝고 좋다. 로마 이탈리아 반도의 역사는 구석기시대까지 올라간다. 특히 BC 7세기 경 이곳에 문명 을 전개한 그리스인이나 에트루리아인의 문화유산이 현재에도 많이 남아 있다. 이 탈리아의 모든 지역이 로마제국이 역사 유적지이므로 어디를 가나 기독교의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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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들이 남아 있다. 로마는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도시 자체가 유적들이 많이 있다 기원전 735년 로물루스가 팔라띠노 언덕에 양치는 목동들과 함께 세웠다는 로마는 후에 거대한 로마제국의 중심이 되어 한때는 힘으로, 혹은 예술로, 혹은 종교로 세 계를 지배하였다. 로마 시내로 들어서면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보이는 것마 다 로마시대의 유적이요, 발길이 닿는 곳마다 역사적인 교회들이다. 그러나 무엇보 다도 의미 있는 것은 로마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참믿음의 현주소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로마 탄생 신화>

<늑대 젖을 먹고자란 쌍둥이 형제>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로마>

<하늘계단교회>

2014.5.8. 로마 11일째 날 어제 늦게까지 운전을 해 오늘 법적 운전시간을 조절하기위해 기사아저씨와 조율을 해 서로 10분씩 양보를 하여 8시 20분 출발했다. 로마가 가까울수록 많이 밀린다. 카타콤베를 가다 정체가 심해 먼저 바울 참수 터로 일정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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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먹는 아침>

<바울 순교교회 입구>

바울 참수터교회는 버스에서 내려 10분쯤 걸어 들어간다. 입구 언덕엔 십자가가 서 있고 추측을 끼고 들어가면 우리를 반기는 듯 한 예수님 조각상이 나온다. 하늘계단교회 로마 남문 밖 교외에 위치한 “세 분수의 성당”은 사도 바오로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한 정열적 인생의 막을 내리고 참수 당했던 장소이다. 6세기까지 소급되는 전설에 따르면 형리가 사도 바오로의 목을 자르니까 머리가 세 번 튀었고, 세 번 튈 때마다 분수가 퐁퐁 솟았다고 한다. 로마 남쪽 교외에 세 분수(트레 폰타네)가 솟아나는 곳이 있는데, 여기에다 여러 번에 걸쳐 성당을 지었다. 지금의 사도 바오로 순교 기념성당은 1221년에 축성되었다. 사도 바오로의 머리가 튀어 오른 곳은 제단으로 바뀌었다. 불이 켜져 있는 첫 제대에서 14걸음 옆으로 두 번째 제대, 그 14걸음 옆에 다시 세 번째 제대가 있다. 부활절을 앞둔 성 금요일이 되면 교황은 이곳에서 십자가의 길 14처를 시작한다. 1867년 이래 지금까지 트라피스트 수도회가 이 성지를 관리하고 있다. 안쪽 구석 철장 안에 바울의 목을 칠 때 사용된 돌기둥이 있다. 바울이 순교직전 머물었던 감옥인 이곳은 디모데 후서를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는 천국계단교회는 성 베르나르도가 이 성당 지하실에서 기도할 때 영혼들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가는 환영을 보았다 한다. 그 이후부터 이 교회를 천국계단교회(Scala coeli)교회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먼저 구주를 생각만 해도 얼마나 기쁜지...순례후 합십기도를 드리고 찬송가 ‘구주를 생각만 해도’를 불렸다. 바울 순교직전 감옥이라 음산한 느낌이나며 마음이 착 가라 앉는 느낌이 났으나 오페라 가수와 성악전공 목사님과 함께 부르는 찬송가는 현장 학습효과인지 너무 감동그자체로 은혜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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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계단교회>

<하늘계단교회 계단>

<하늘계단교회 내부>

<하늘계단교회 내부 감옥 터>

<하늘계단교회 내부 바울 순교직전 감옥>

<순교직전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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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터 입구>

<하늘계단교회 성화>

<하늘계단교회 성화>

<하늘계단교회 우측계단>

<하늘계단교회 경당>

<하늘계단 교회 >

세분수교회 로마 남문 밖 교외에 위치한 “세 분수의 성당”은 사도 바오로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한 정열적 인생의 막을 내리고 참수 당했던 장소이다. 6세기까지 소급되는 전 설에 따르면 형리가 사도 바오로의 목을 자르니까 머리가 세 번 튀었고, 세 번 튈 때마다 분수가 퐁퐁 솟았다고 한다. 로마 남쪽 교외에 세 분수(트레 폰타네)가 솟 아나는 곳이 있는데, 여기에다 여러 번에 걸쳐 성당을 지었다. 지금의 사도 바오로 순교 기념성당은 1221년에 축성되었다. 사도 바오로의 머리가 튀어 오른 곳은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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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바뀌었다. 불이 켜져 있는 첫 제대에서 14걸음 옆으로 두 번째 제대, 그 14걸 음 옆에 다시 세 번째 제대가 있다. 부활절을 앞둔 성 금요일이 되면 교황은 이곳 에서 십자가의 길 14처를 시작한다. 1867년 이래 지금까지 트라피스트 수도회가 이 성지를 관리하고 있다. 안쪽 구석 철장 안에 바울의 목을 칠 때 사용된 돌기둥 이 있다.

<세분수교회 입구 바울이 걸어간 길>

<바울이 걸었던 남아있는 길>

<세분수교회 안내>

<세분수교회>

<베드로 십자가 순교>

<바울 참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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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분수교회 내부>

<베드로 순교 성화>

<바울의 참수시 목을 대었던 기둥>

<참수당시 목이 튀었던 3장소 중 한군데>

<바울의 목 부조>

<바울 스테인더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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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참수 때 목이 튀어 물이 솟은 3장소

<바울 참수교회 앞 백향목>

성화>

<‘구주를 생각만 해도’ 찬송 작사 수도사>

<세분수교회 예수님상>

<하늘계단교회 기도>

<딤후4:7-8성경구절 외치고~~ 단체사진>

9시 55분 참수터교회 순례마치고 카타콤베로 향한다. 카타콤베가는 길은 약간 청체 가 있었으나 금방 풀렸다. 가는 길에 쿠오바디스교회가 있어 지나가는 길에 달리는 차 안에서 사진을 찍는데 쓸 만한 사진이 못된다. 쿼바디스교회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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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바디스교회>

<지나가다 찍은 궈바디스교회>

카타콤베 입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 같은 동판조각이 길가에 많이 서 있고 사이 프러스나무가 두 줄로 길게 서있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주로 무덤이 있는 곳에 많 이 있는데 바람이 불어도 소리가 나질 않는다고 한다. 죽은 자는 소리가 없다고 해 이나무를 많이 심는다고 한다. 카타콤베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 구에는 독일 영국 여러나라국기가 달려있는데 다른 나라 이름은 부르는데 우리나라 이름은 부르지 않아 많이 기다려야 하는가 보다 했는데 생각지도 못하였는데 코레 아부터 먼저 들어오라는 말씀을 하신다. 우린 오늘의 빽빽한 일정을 소화할 수 있 도록 배려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카타콤베(히11:36~38) 기독교박해가 강화된 1~3세기경 그리스도 교도는 공식적인 활동이 곳 죽음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예배나 집회를 위해 지하로 잠적했다. 이 지하교회 또는 지하묘지였던 곳을 희랍어로 웅덩이란 뜻의 카타콤베라고 부른 다. 로마 시내와 그 인근에는 45개의 지하 공동묘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유명한 것 은 성 칼리스토, 성 세바스티아노, 도미틸라 지하묘지이다. 로마의 지하 공동묘지 를 형성하고 있는 땅굴의 총 연장길이는 약 900km이며, 삼백년 동안 약 6백만의 시신이 매장되었다고 한다. 구조는 지하 10∼15m의 깊이에 대체로 폭 1m 미만, 높 이 2m 정도의 통랑(通廊)을 종횡으로 뚫어 계단을 만들어서 여러 층으로 이어져 있다. 또한 통랑의 곳곳은 넓은 방처럼 되어 지도자급 교도의 묘실로 되어 있고 나 머지는 통랑의 벽면(壁面)에도 시체를 두는 벽감(壁龕)을 일정한 규칙으로 설치하 였다. 카타콤베의 형태에는 5개로 로쿨로.포르마.아르코솔리오.쿠비콜로.크립타로 나 눌수 있다. 주로 순교자 또는 성인들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공간이 넓기 때문에 교 회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형성된 무덤지역에서 종교의 핍박을 피해 그리스도 교인들이 모인 까닭은 로마법에 의하면 묘지는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성 역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이곳에 숨어 예배를 드리고 목숨을 연명하며 살아간 것 이다. 카타콤은 로마인의 지하 무덤이었으나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에 그리스도인 들이 박해를 피하여 숨어 지냈던 곳이다. 이 장소는 16∼19세기에 걸쳐 재발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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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며 귀족 가문의 소유였던 지하 매장실로부터 여러 층으로 된 긴 복도로 이루어져 있다. 카타콤에는 초기 기독교 예술의 귀중한 재산이 되고 있는 조각, 그림, 형상들 이 새겨져 있다. 로마 교회 크리스천들은 카타콤에서 장례를 지낸 후 시신을 안치 한 주변에 성화를 남겨 놓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한 목자로 그린 성화도 많으며 크리스천을 물고기 모양으로 나타낸 표시도 발견하게 된다. 희랍어로 물고기라는 어휘 ‘익투스’(Ichthys)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 원자’의 머리글자와 같기 때문이다 카타콤베는 터키보다는 높이가 높고 그 범위가 굉장히 넓고 높다. 아직까지 발굴되 지 않는 지역들이 더 많다 고한다. 원래는 더 깊이 개방되었으나 일본인 부부의 실 종으로 지금은 지하2층까지만 개방된다. 고하는데 개방된 부분만 보는 것만 해도 그 범위가 상당하다. 내부는 성도들이 숨어살은 여러 집들과 교회 무덤 공기통 여 러 곳들이 보존되어있고 지금도 약간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서늘한 기운을 느끼는데 어떻게 지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많은 지하 카타콤을 보면서 특히 느끼는 바들이 크다. 우리는 너무 편리하고 풍적하니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더욱 인내 하며 편리함에 너무 익숙함을 때로는 벗고 자연그대로의 삶도 한번쯤 느껴본는것도 훈련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곳은 카메라 촬영이 안 되지만 후레쉬를 사용하지 않고 찍으라고 하신다. 카타콤 순례는 어디든 마찬가지로 개인은 들어갈 수가 없고 반드 시 가이드와 단체로만 입장이 가능하다.

<카타콤베 입구>

<십자가의 길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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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부조>

<무덤에 많이 심는 사이프러스 나무>

<카타콤베 인파들>

<카타콤베 설명도>

<카타콤베 성도들이 새긴 문양>

<카타콤베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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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한 체칠리아 성녀, 오른쪽 손가락 셋을 <카타콤베 내부>

펴고, 왼쪽 손 하나를 포개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죽는순간까지표시했다고>

기독교를 지키기 위해 순교한 성녀 세칠리아는 귀족의 가문에 태어났으나 박해자들 은 뜨거운 증기로 그녀를 죽이려고 하였는데 의연하게 계속 찬송가를 불렸는데 결 국 그녀는 목이 잘려 죽었는데 목과 몸이 분리되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조각가인 스테파노마테르노가 그녀의 시신 모습을 대리석에 조각을 하였다.

<내부>

<가제도구들>

<내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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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교회로 사용한 공간>

*아피아 가도(성경:압비오)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속담을 만든 도로이다. BC312년에 아피오 글라디오(그의 이름에서 유래)가 시작하여 황제시대에 공사를 마쳤다. 로마로부터 사방 29개의 도로가 약90,000km에 도달하였고, 마차 두 대가 왕복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군인들이 행군 할 때에 무기가 부딪치지 않는 넓이, 행군 시에 병사가 지치지 않도 록 삼나무와 소나무로 가로수를 만들으며, 강에는 다리를 놓고 산은 뚫어 가능한 직선 으로 하였다. 도로는 다진 후에 돌을 박은 것이 지금에 탱크가 달려도 파손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자와 군사이동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만든 고대 고속도로이다. 일부는 현재 사용되고 있으며, 그 때의 가로수인 소나무는 지금도 로마의 가로수로 남아있다. 당시에 땅 전체를 측량하여 도로를 계획하였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지금도 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당시에 만든 길로서 관광버스가 두 대가 교차하여 지 나갈 수 있다. 시저는 이 길을 따라 일주일에 900Km나 달렸다고 한다.

<카타콤베 가는 중간 만난 압비아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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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비아가도>


바티칸 시국 테베레 강은 로마 시를 유유히 가로지르고 있는 강이다. 이 강을 건너 시원하게 뻗 은 대로를 따라 서쪽으로 계속 가면 베드로 광장이 나온다. 주권 독립국가인 바티 칸 시국에 들어온 것이다. 바티칸은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지만 가톨릭 교회 의 총본산지이다. 면적:0.4k 인구 약 1000명 교황청 종사자와 가족들 산 페트로 대성당, 바티칸 궁전,미술관,도서관,방송국등 주요건물들이 있고 1929년 당시 이탈리아수상 무솔리니와 교황 비오. 11세와의 합의에 의해 전설된 종교국가 이다. 교황을 원수로 하는나라

<바티칸 입장 줄>

<순서를 기다리고>

<바티칸 입구 미켈란젤로와 라파엘상 >

<바티칸 박물관 검색대 통과하여 입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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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입구에서 본 베드로성당

<바티칸 박물관 솔방울 정원, 로마에선

꾸뽈라>

솔방울은 세상을 정화하는 의미>

<온 지구를 정화하는 바티칸 의미, 지구본>

<솔방울정원>

<솔방울 정원에 비치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그림>

시스틴성당 그림 설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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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방울 정원>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 두상>

바티칸을 들어가려면 몆가지주의해야할것이있는데 모자, 슬리프, 민소매, 무릎위치 마, 맥가이브칼, 베냥통과안되며 검색대를 통과해야한다. 바티칸박물관 세계최대를 자랑하는 바티칸 박물관은 수많은 걸작을 소장하고 서양미술의 보고이 다. 전체를 다 보려면 며칠이 걸린다고 한다. 바티칸 궁전은 들어서면 금박의 천장과 벽의 화려하면서도 정교하고 놀랄 정도다 긴 아치의 통로는 벽에 수많은 그림들이 걸려있고 중간 중간에 많은 조각 작품들이 있다 박물관 안에는 유명작품으로 아폴로상,이태리 사람들이 자기 조상이라 여긴다 는 미켈란젤로의 작품들, 라오콘, 머리가 떨어져나가고 팔 다리가 잘려나간 작품들 이 많았다. 많은 작품들이 농부가 밭을 갈다 주워온 작품들이 많다는 말이 인상적 이다. 이어서 라파엘로 전시관에서의 “아테네 학당“은 명암의 조화 그 당시의 실내 구조를 알 수 있다. 우리는 12시 45분 검색대를 통과하였다.

<바티칸 박물관 전시실>

<라오콘. 트로이에 관한 그리스신화

뱀에

물려죽는 두 아들의 고통을 보는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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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인 아폴로니오스가 조각한 벨베데레의

<풍요와 다산의 상징 아데미 여신상,

토르소>

로마에선 다이애나>

<큐피드가 포도와 화살을 들고 있는 부조

<콘스탄티누스 대제 어머니 헬레나 석관,

콘스탄티누스 대제 딸 콘스탄티나 석관>

로마 기마병이 죄수 압송 장면 조각>

<예수님의 일대기를 표현한 카펫의 방>

<카펫이 그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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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따라오는 3차원적 그림, 예수님의

<카펫트의 방 >

부활>

<바티칸 박물관에서 제일 화려한 지도의 방>

<지도의 방에서>

<입체적으로 보이는 그림>

<섬세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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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지도>

<성화>

<시스틴 성당 들어가기 전 그림>

<목을 안고 있는 여인>

<시스틴 성당 입구 천정화>

<시스틴성당 입구 작은 돔>

시스틴성당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벽화 “최후의 심판”이 있는 예배당, 중요한 의식을 많이 치루 며 교황선거를 이곳에서 하기도 한다. 구약성서를 주제로 한 천정화도 미켈란젤로 의 작품으로 “빛과 어둠의 분리”에서 “술에 취한 노아”에 이르기 까지9개의 작품이 있고 중앙에는 “천지창조”가 유명하다. 최후의 심판은 시스티나 천정화를 완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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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후 1536년에 그리기 시작 중앙에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중심으로 영생과 영 원한 형벌로 갈라지는 인간의 굴레를 다룬 작품,미켈란 젤로는 이 작품을 통해 어 떠한 포즈와 자세 인체의 근육까지 자유자제로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이 완성된 1541년 예배당에 모인 교황과 성직자들은 성자와 성 녀들을 나체로 그려놓은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결국 1564년 미켈란젤로가 여든 아홉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 한 달 전 공회에서는 그림의 중요 부분 만

가리개를 씌울 것을 결정 했다.그일은 메켈란 젤로의 제자인

볼테라가 맡았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일을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 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에 물감을 칠해 나가는 고된 작업을 계속하였다. 이로 인해 목과 눈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작품을 33세에 시작하여 4년만인 37세에 완성했다. 2시 시스틴 성당 입장한다. 역시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사진촬영금지이며 찍으면 메모리를 확인한다. 성베드로대성당 광장중앙에는 높이 25.5m 무게 350톤의 거대한 오빌리스크을 갖고 있고 40만을 수용할 수 있는 타원형의 널찍한 광장이 있고, 최초의 바실리카교회는 콘스탄틴 대 제가 사도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곳에 건립하여 서기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대하여 당초에 세워진 바실리카씩 성당은 1,200년이 지나 낡게 되자 1,506년 교황 율리우스2세에 의해 거장 베르니니가 설계를 맞아 개축이 되었다. 성전 내무에는 500개에 달하는 기둥과 사백 개가 넘는 조각상이 세워져있고 44개의 제대와 10개 의 돔이 있고 3000개의 모자이크그림들이 장식되어있다. 성당 위에는 12사도 조각 상이 세워져있고 매주 수요일 일요일 미사는 이곳에서 교황이 직접 집전하며 3층 건물의 오른쪽 2개의 창문 방이 교황이 계시는 곳 교황이 계실 땐 항상 창문이 열 러있다고 한다. 여행에는 여러 가지 해프닝이 많이 벌어진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바티칸 박물관 화 려한 지도의 방에서 김이덕권사님을 잠시 잃어버렸다 찾았고 베드로 성당광장에서 는 엄권사님을 잠시 잃어버렸다 찾았다. 바티칸 박물관은 갈수록 사람들이 많아 지도의 방에선 팀별로 멈추었다 인파가 빠 지면 한 팀을 보내며 그냥 떠밀려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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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성당 구뽈라>

<베드로 대성당>

<베드로성당 24세 때 조각한 미켈란젤로의

<베드로성당 성화>

삐에따 이작품이후 개인적 사인이 없다 고함>

<베르니니 작, 교황의 옥좌 발타키노>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는 장면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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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비둘기 같이 스테인더글라스>

<베드로의 유골함>

<베드로 상>

<라파엘 작 예수님의 변화>

<베드로성당 앞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상>

<베드로 성당 앞 칼을 쥐고있는 바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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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출신만 쓰는 교황청 근위병>

<바티칸 시국>

<베네치아 광장>

<점심으로 먹은 한식당>

<된장국이다~~>

<십자가가 보이고>

바티칸 일정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된장찌개가 있는 한식이다. 다들 상추를 몇 바구니씩 먹어치운다. 콘스탄틴 개선문 콜로세움 입구에 길가에 로마에서 제일 큰 문인 콘스탄틴 대제 개선문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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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년에 세워진 것으로 정치적 라이벌인 막센티우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 념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공사 중인 콘스탄틴 개선문>

<확대>

콜로세움(히11:33~38) 로마의 상징이며 거대한 원형경기장으로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콜롯세움 주변(Piazza del Colosseo)은 콜롯세움과 포로로마 노등의 고대 로마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네로의 궁전의 뜰에 있었던 인공연못에 AD 72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80년에 완성 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이다. 생사를 겨누는 검투사와 짐승과의 격투기 등이 여기에서 개최되었고 80개 정도가 되는 출구에 5만 5000명도 넘는 관객이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이였다. 네로 통치시대를 영화로 한 영화 "쿼바디스"에서는 기독교도의 박해장으로 사용된 콜롯세움 장면을 잘 보여준다. 고대 로마 유적지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최대지 름 188m, 최소지름 156m, 둘레 527m, 높이 57m의 4층으로된 타원형 건물이다. 콜로세움은 거대하다는 뜻으로 근처에 거대한 네로상이 있어서 이름 지어졌다는 전 설이 있다. 1층은 토스카나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의 아치가 장식되 어 있다. 콜로세움은 로마제국 유적지 중 가장 규모가 큰 타원형 건물이다. 네로의 궁전 뜰에 있었던 인공 연못에 AD 72년 건설을 시작하여 80년에 완성된 대형 원 형 투기장겸 극장이다. 80개 정도 되는 출구에 5만 5천명도 넘는 관객이 입장할 수 있다. 이곳에서 로마 사람들은 검투사와 맹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격투에 열광하 였다. 그러나 기독교가 박해를 받던 시대에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던 순교 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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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콜로세움에서 단체사진>

4시35분 콘스탄틴 개선문앞 콜로세움이 보이는 대로에서 벤츠투어를 한다. 몇 년 전부터 로마에는 밴츠투어가 있어 버스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을 9명이 탈 수 있는 밴이 골목골목 다니며 6군데 쯤 추가로 볼 수가 있어 개인당 60유로씩을 옵 션으로 하고 있는데 로마의 명소들을 불 수 있다. 우리 팀은 밴3대가 왔으며 7명씩 나누어 타고 간다. 대전차경기장 이 장방형의 길쭉한 건물은 시민들의 즐거움을 제공해 주기 위해 지어진 전차경기장으로 벤 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1인승 이륜 전차 경기와 검투사들(글래디에이터)의 검투가 이루어진 곳이다. 지금은 무너진 흔적만 남아있는데, 그 크기가 너비 664mX124m에 이른 다.

<대전차 경기장>

<대전차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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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차경기장 인증샷~>

<단체사진>

이 건물은 로마에 있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의 하나로 과거에는 2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이었다. 로마의 역사와 견줄 수 있을 정도이며, 중간 중간에 계속 증축되었다. 이 경기장은 에트루스칸 왕 때, 타르키니오 프리스코에 의해 만들어 것으로 추정되며, 트라얀 (Trajan)에 의해 개축되었고, 카라칼라(Caracalla )가 확장공사를 하였다. 현재는 이 지역이 공원과 폐허만 남아 있지만 콘스탄티누스도 개축 공사에 참여하여 이 당시 에만 20만 명을 수용했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사비니 여인의 강탈(the rape of the Sabine women)' 이야기와 관계가 깊은 곳으로 바티칸 미술관과 피렌체의 광장에서도 조각품을 볼 수 있다.

바울셋집 바울의 셋집은 산 파올로 알라 레골라(San Paolo alla Regola)라는 명칭이며 바울 은 이곳에서 연금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 복음을 전하며 성경 을 가르치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옥중 서신인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서를 여 기서 썼다고 한다. 이곳은 테베레 강이 바로 옆으로 흐르고 있고 많은 곡물 창고들과 천막공장들이 자 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천막들은 배를 이용하여 테베레 강을 통 하여 바다로 무역하였다고 한다. 바울은 천막제조 기술자였고 또한 셋돈 지불을 해야 되었기에 공장에 딸린 방한 칸 을 월세로 얻어서 카펫을 만들어 수없이 찾아오는 성도들의 필요한 생활비를 벌어 드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옆에는 로마 군병이 있었고 강가였기에 항상 습도로 인해 눅진하여 견디기에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지금도 그 주변으로 유대인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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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셋집교회>

<산 파올로 알라 레골라 교회>

<바울의 셋집교회>

<바울의 셋집교회 성화>

<바울의 셋집교회 성화>

<바울의 낙마와 바울의 순교 성화>

바울의 셋집교회 내부에 사제실이 있어 들어가 보니 신부님 한분이 책을 읽고 계시 고 지하에는 유적이 남아있지만 시간상 들어가질 못해 안타깝다. 외관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교회 전체샷을 찍을수있을만큼 교회 마당이 좁고 일반 가정 골목에 자리잡고 있고 바울시대에는 성경학자들은 테베레 강가에 살았다는 주 장들을 하고있어 강물이 앞까지 들어온것을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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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셋집 성화>

<칼을 들고 있는 바울>

테베레 강 길이 390km. 옛 이름은 티베르강(Tiber R.). 이탈리아 중앙부 아펜니노산맥의 푸 마이올로 산록에서 발원하여 토스카나 ·움브리아 지방을 남류하다가 로마 시내를 관류하여 티레니아해로 흘러든다. 중류 지역은 비교적 넓은 농업지대를 형성하여 올리브 재배가 활발하고 하류 지역에서는 포도를 많이 재배한다. 하구에서 약 30km 떨어진 로마시(市)까지는 항행이 가능하다. 하구에는 고대 로마시대에 번창 하였던 오스티아의 유적이 있는데, 이는 로마 시내에 놓인 여러 개의 다리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로마의 풍물이다.

<로마의 신화가 탄생한 테베레 강>

<로마 테베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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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레강>

<저녁의 테베레강>

벤츠투어는 판테온신전, 트레비분수,포로로마노, 마메르티움, 스페인광장, 캄피돌리 오언덕등을 추가해서 보여주고 판테온신전 앞에선 시원한 냉커피도 마시고 트레비 분수앞에선 아이스크림 명소에서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먹는다. 간간히 테베레강이 보였다 이내 사라지는 강을 간신히 찍어보는데 물 색깔이 영 아니다.

<판테온 신전>

<판테온신전의 수태고지 성화>

<판테온 신전의 십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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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채광 만으로 조명가능, 지붕에 비는 들어오지만 건물 안의 더운 공기가

<판테온 신전에 십자가 예수님>

상승하면서 비를 밖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함>

판테온신전 옆 커피전문점 가이드는 얼음을 띄워 흔들어 먹는 로마의 3대 커피중의 하나라고하는 카페샤케라 토가 맛있다고 추천을 해 주었다. 값은 1유로 60센트다.

<커피콩자루와 기념촬영>

<시원한 카페샤케라토를 든 가이드>

<판테온 신전 앞 오벨리스크>

<길이 아름다운 로마 길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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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분수

<트레비(삼거리) 분수>

<다시오고싶포~! 트레비분수에서 동전을 던지며>

<트레비분수 인파>

<트레비분수 옆 아이스크림집>

<스페인광장>

<스페인광장 위에서 바라본 명품거리>

스페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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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광장 계단에서>

<관광객속의 권사님들>

카피톨리노언덕(시청앞)

<카피톨리노언덕,로마 제정기의 디오스쿠리(카스트로와 폴룩스 형제상 >

<중앙 아테나 여신, 미네르바 조각상>

<로마 건국신화 늑대상과 로물로스

<시의회 앞에서>

레무스쌍둥이 형제>

마메르티움(바울과 베드로의 첫째감옥) 마메르티움 감옥은 복원중이라 건물 전체를 천으로 둘려싸여 촬영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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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메르티움감옥 문,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와 칼을 잡고 있는 바울상>

<마메르티움, 바울 베드로 감옥 앞에서>

프로로마노

<로마 정치 일번지인, 프로로마노>

< 시청 앞 단체사진 >

<프로로마노의 세베루스황제가 중동지역 전쟁승리기념으로 세운 개선문>

<프로로마노 앞에서 행1:8 외치며 우리도 이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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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로마노>

<산탄젤로성(천사의 성)>

8시 15분 중국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그동안 로마에 관한 투어를 음악과 함 께 가이드 해주신 김제환씨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로마를 떠나 근교에 있는 숙소 로 간다. 순례일정에서 남은 한국 반찬을 다 드린다. 난 어제 밤 식당에서 오늘 헤 어진다는 소식을 듣지 못해 아침에 챙기지 못해 미안하다. 내일은 오페라 공연이 있어 나오지 못하신다니 서운하지만 그래도 자기 본업의 일을 열심히 하시니 더 감 사하다. 8시 40분 로마의 노을이 예쁘게 지고 있다.

<저녁은 중식으로>

<로마 가이드 김제환씨와 인솔자집사님>

우리 방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아 장로님께서 샤워하시다 미끄러져 큰일 날뻔 했다. 밤 9시에 246호 서정걸목사님 방에서 순례에 관한 전반적인 소감과 마무리 예배를 드린다. 먼저 예배를 마치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2분 스피치를 한다. 순례기간동안 느낀 점과 도전받은 부분에 대한 말씀으로 각자 마음으로 커다란 각오와 도전을 선 물 받고 가는 느낌이 들고 모든 분들이 받은바 은례가 많은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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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예배와 순례중 느낀 점 2분

< 마지막 예배 인도하시는 서목사님>

스핏치시간>

21명이 한 팀이 되어 13일간을 한 마음으로 보낸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처음부터 사건 사고도 많으나 한사람도 시험당하는 사람 없이 아름답게 마무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걸작에 감사를 드린다. 좋은 날씨를 주셔서 간편하고 상쾌하게 다니며 믿음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 사 사랑에 대화를 많이 나누며 살아온 믿음에 대한 간증도 많이 듣고 많은 간식을 서로 아낌없이 나누어 들면서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의 작은 체험을 가지곤 했다. 한국 도착해선 바로 떠나지 말고 일정 끝기도를 서목사님께서하시고 마무리를 한다 고 하신다. 모임을 마치고 최부순 김이덕권사님 방에서 2차 간담회를 마치고 11시 반에야 방으로 돌아와 모든 짐을 대충 꾸리고 잔다. 내일은789로 9시 출발이다. 14.5.9일 금 12일째 날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누룽지를 끓여먹고 장로님은 어제 가이드한테 드리기로 한 컵라면과 반찬을 드리지 못해 컵라면을 끓여 드신다. 7시 30분경 식당으로 내려가니 반가운 목소리들이 건강한 소리로 들려오니 마음이 놓인다. 로마에서 마지막 아침식사이다. 21명이 한 식구 되어 지내다보니 정이 들 자 이별이 다가온 느낌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이 한동안은 21명의 식구들이 그 리워지며 생각이 많이 날것이다. 그 기간이 오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돌아간다. 아침식사는 나물 같은 것도 있고 콩깍지 볶음, 빵, 토마토, 시리얼, 우유, 쨈, 에그 스크렘블, 베이컨 등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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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

<아침식사>

오늘아침은 7시부터 자유롭게 식사하여 8시 50분에 로비에서 모여 출발한다. 워낙 짐을 일찍 정리 가되어 정리할 것이 별로 없다. 정확하게 9시에 출발하여 40 분을 달리니 공항에 도착하였다. 정체가 심한구역도 오늘따라 정체가 없어 생각과는 달리 빨리 도착하였다.

<로마 공항>

<공항에 도착>

오늘도 로마의 날씨는 청명하다. 9시 50분에 공항도 착하여 복잡한 로마에서 안전운행하여준 아저씨와 이별을 고하 고 공항에 들어서니 그리 혼잡하지는 않는다. 인솔자 신 집사님은 빈 물통을 하나 준비하여 로마- 모스크바구간에서 물을 반 정도 비축을 해 두라는 당부이다. 모스 코에서 3시간 경유하는 시간을 위해서 이다. 짐을 부치고 검색대대를 통화하고 출입국신고서에서는 한국 분들은 출입국신고없이 그냥 통과되는 행운을 주었다. 할렐루야!! 우리 일행은 G10번 게이트이다. 면세점에서 10번 게이트에서 12시에 만날 약속을 하고 자유시간이다. 1분간 트랩을 잠깐 타고 10시 35분 G게이트에 들어오니 어디 에서 몰려들었는지 손님들로 가득하다. 면세점에 다녀온 김이덕권사님은 심필녀권사님이 쇼핑중 돈20만원을 잃어버렸다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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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이야기를 너무 실감나게 하신다. 정말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 이번 순례길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항상 체험하며 끝까지 긴장을 풀지 말라는 신호로 알 고 조심한다. 순례중 일어난 사건 사고들, ㅎㅎㅎ 순서

사건 이름

장소

해결

1

권옥자권사 가방 이탈

터키공항

다음날 새벽

2

서목사님 핸드폰분실

3

김이덕권사 행방불명

바티칸 시국 지도의 방

30분 후

4

엄경자권사 행방불명

바티칸시국 광장

30분 후

5

심필녀권사 돈 분실

로마공항

20분후

그리스 파트라항

<심필녀권사 돈 잃어버린 설명에 바쁜 김 권사님>

약50분 후

<로마 공항에서>

러시아 항공 점심 메뉴는 두조각의 빵 소고기와 콩깍지 볶음과 두조각의 치즈와 너 츠에 쵸콜렛이 듬뿍 발려 굉장히 달콤해 목이 마를 정도이다. 또 물을 주면 커다란 컵에 물도 가득 주는 후한인심이다. 우린 컵에 물을 반쯤 물통에 저장해둔다.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굉장히 쪼잔 해진다. 모스코바에 경유하는 동안 물을 사 먹으려고 러시아 돈을 바꾸는 것은 필요 없는 일 인것 같아 모두들 물을 저장해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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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레 강줄기로 보이는 바다와 만나는 강줄기>

<기내식>

<물을 비축하는 중>

<모스크바 공항부근>

3시 40분이 지나자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 문제로 복도가 복잡하다. 국제선은 타면 1시간 반이 지나면 식사가 나오고 내리기 한 시간 반 전 식사를 주 는 것으로 여기면 좋다고 한다. 우리 팀들은 여러 명이 흩어져 계서 많이 불편한 분들이 많을 것 같다. 4시 30분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하여 나가는 곳에서 모여 환승을 위해 서울 티켓을 인솔자에게 받았다. 우리 부부의 좌석은 22K이다. 인솔자는 서울까지는 8시간 반이 걸리며 두 번의 식사가 있고 한국 도착하면 짐찾고 나가시지 말고 순례마무리 기도 를 목사님께서 하시고 해산을 하신다고 한다. 러시아 공항에서 2시간 1반가량 기다리다 환승을 한다..러시아 시간을 1시간 앞으 로 당기고 러시아 시간으로 8시 35분에 양치를 하고 25번 게이트엔 자리가 없어 27번 게이트에서 어떤 이들은 그동안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며 웃기도 하며 기다린다. 모스크바 공항의 TV는 삼성과 LG라 마음이 뿌듯하며 기업이 나라보다 앞선다는 느낌이 든다. 공항에서 시간은 21:40분을 가리킨다. 외국의 공항에서 아 시아와 서양인들의 얼굴에서 아시아인들은 얼굴이 평면적이고 서양 사람들은 얼굴 이 참으로 입체적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9시 인솔자와 만나기로 한 9시에 25번 게이트로 가니 바로 줄을 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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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공항 한국으로 가는 게이트에서>

<게이트 앞 삼성 TV>

<LG TV>

<인천행 기내식>

<인천행 기내식>

<인천공항 부근>

9시 40분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9시 50분 이륙을 하였다. 좌석은 역시 우리 일행은 K좌석을 배정하여 주로 한국인 승객들이라 많이들 바꾸 었다. 모스크바는 9기사 넘어도 해가 지지 않고 모스크바를 한참 벗어나 10시 반이 되어 어둑어둑 해진다. 러시아 항공에서 식사가 맞지 않아 적게 먹었더니 배가 너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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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고 몸이 많이 다운됨을 느낀다. 쵸콜렛을 나누어 먹고 나니 약간의 허기가 가신 다. 러시아 항공은 의자 사이가 우리나라보다 좀 좁은 것 같아 약간 불편하다. 2014.5.10. 토 13일째 날 인천공항에 11시 03분에 착륙하여 출입국을 마치고 11번에서 짐을 찾고 엄경자권 사님 가방이 러시아에서 부러져 보상신고를 마치고 서목사님 순례일정 마무리 기도 를 끝으로 모든 성지순례일정을 뒤로하고 이젠 사명과 생업에 복귀한다. 이번 여행에서 바울의 열정과 도전정신을 배웠다면 이젠 전진이라는 단어를 선물로 가지고 나아간다. 무엇보다도 바울은 로뎀나무와 에셀나무의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에셀나무는 사막의 광야를 거쳐 온 나그네에게 쉼을 주는 나무이고 로뎀나무는 내가 기어들어가지 않으면 그늘이 나에게 들어오지 않는 나무이다. 바울처럼 남에게 에셀나무가 되어주고 나에겐 로뎀나무가 되어 어려울 때마다 타우 루스 산맥을 생각하며 광야는 애굽과 가나안을 연결시켜주는 빠질 수 없는 공간이 라는 것을 알고 어떤 일이든 믿음으로 승리하리라 다짐한다.

<한국도착 짐을 찾고 >

<엄경자권사 가방 고장 신고>

<무사히 순례마침을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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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또 뵈어요~>


순례일정일정마다 좋은 날씨를 주시고 믿음에 좋은사람들을 부쳐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무지한 저희들을 인솔하시느라 힘드셨죠? 때로는 어머니 같이 자상 하며 때로는 카리스마로 순례일정마다 평안함을 준 신소영 인솔자님 해박한 지식으 로 많은 정보를 주신 터키 한소희 가이드님

한곳이라도 더 보여주시려고 너무 애

쓰신 그리스 김순자가이드님 기다림 없이 순발력을 늘 발휘해 고생 없이 많은곳을 보여주시고 감동의 찬송을 들려주신 로마 김제환가이드님 늘 말씀을 먹이시느라 힘 드셨던 서목사님과 사모님 순례의 중심을 잡아주셨던 오집사님부부 사랑가득하신 권사님부부 순수그자체로 자매 같았던 인천 권사님들 강변성산교회 성도님들 그대 들이 계셔 13일간이 행복했습니다. 열흘 같이 지내다보니 정이 들어 또 보고 싶습 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주안에서 샬롬.!! 터키 유럽 문화 상식 살짝 ★터키의 음식문화는 원래 코스문화이다. 먹고 나면 빨리 가져간다. 여기는 빨리 치 워주어야 하는 문화라 한국인은 오해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기름이 안 들어간 흰밥 터키는 소금과 기름이 들어간 밥이다 여긴 뜸들 인밥 못하며 물에 쌀을 씻고 건져 팬에 쌀을 볶고 물을 넣고 끓이는 것이다. 이 나라에 수출되는 우리나라 라면은 돼지고기는 뺀 것이다. ★터키 물에 석회 많아 생수 발달했다. 생수회사 30개 있다. 스위스에서도 터키 물을 팔정도로 좋다고 한다. 세계에서 물이 제일 좋은 나라는 그루지아로 카프카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지하 암반수로 상을 받은 나라라고 한다. ★그리스는 요쿠르트 올리브 좋다. 좋은 올리브기름은 부침이 잘되지 않으며 장수식품 1위다. 그리스 올리브 좋고 가공도 최고이다. 아침 공복에 올리브한스푼 먹으면 위벽을 튼튼하게 해 변비가 예방된다. 올리브는

클루코신 성분이 너무 떫어서 먹을 수

없어 염장이 없이는 안 된다. 무조건 소금에 담가야 먹을 수 있다. 열매 손등에 문질러보면 손이 달라진다. 올리브는 데치지 않는 브로콜리 같다. ★그리스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며 아직도 기름 난방을 하고 있으며 기름이 비싸다고 하며 집집마다 벽난로가 있다고 한다. ★스파르타인 들은 30살까지 훈련을 받았고 60세까지 전쟁 요구 시 징집대상이 되 었다한다. ★아테네는 눈 구경하기 힘들다. 북쪽 하루 한번 비가 오는 경우가 있다. 지진대비 로 고층건물을 지을 수 없다. 히포크라테스는 600가지 넘는 허브식물에서 약을 만들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사순절동안 금식하며 핏기가 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고난주간은 반듯이 금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사순절 음식이 따로 있고 새우 오징어 등 은먹을 수 있고 그 후 일요일 부활절 앞날에는 고기간이 붐빈다. 바다에 싸여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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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반도 국가이면서도 해물보다는 육식을 먹는다.부할절 밤 12시 되면 아이들에 게 대모가 사준 여자아이 초를 들고 남자아이 총을 그려진 초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꺼지지 않게 해 돌아간다. 부활절에는집에갔다가 촛등 막는 그릇 도 있다. 일요일 새벽부터 가수가 노래하는 쇼 프로가 있다. 집 앞에 넓은 뜰에다 음악을 틀고 그리스 인이 즐기는 축일이 다가오몀 양고기 돌리며 부활절 상징 붉 은 계란 각자 집어 들고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한다. ★그리스에는 학생들 조래가 있다. 성호 3번 그어가면서 시작 조회 시작 후 시작한 다. 깔리메라 굿모닝 뜻이다. 전세계기독국가 아침 학교 조회하면서 주기도문 시 작하는 나라 없다. ★그리스는 자유직이 많다. 그리스는 인문보다 기술고등학교 선호했다. ★그리스는 식당 주방 안으로 들어가서 주문할 수 있다.단체라도 개인이 선호화는 메뉴를 주문할 수가 있다. 학교 8시 반 등교하고 시에 스타 점심 낮잠 잔다 2시 반이면 수업 끝나면 문eke 는다. 그래서 집에 햇볕 차단시켜 집안 선선하고 대낮에도 집이 어두워서 느긋하 게 한숨 잔다. 일반 회사 9시~5시까지 근무라서 시에 스타 없다. ★그리스는 허브티를 많이 마시고 터키는 홍차 두 나라다 유럽과 달리 접대 융성하 다. ★그리스는 선박보유 1위이며 포도 올리브 대리석이 많이 난다. 2004년 그리스 올 림픽 때 현대차가 공식차가 되었으며 이후 차가 많아 홀짝제로 바뀌었다 지금은 휘발류값올라 도로에 차가 많이 없으며 시내는 주차비가 비싸 들어갈 수가 없어 오토바이가 발달한곳이다. 그리스는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아테네 철학을 폐지하였다 ★그리스의 해변 집들은 흰색이 많은데 흰색은 햇볕을 반사시키기 때문이며 그리 스는 10층 이상 건축 까다로우며 이들은 단독을 좋아하며 무덤도 임대며 월세가 비싸다. ★고대 그리스 어느 곳이든 아크로폴리스가 다 있었다고 한다. 적들의 동태를 살피 고적을 곙계시키고 전쟁에서 적을 내려다볼 수 있어 성을 지키기에 유리했다. 그 리스에서 제일 첫 번째 생긴 아크로 폴리스가 아테네이며 아크로폴리스의 대표라 고 한다. 플라톤은 부잣집 아들이며마레도니아 의사아들아리스도텔레스는 로마 귀족들이 그 리스로 철학공부하러왔으나 유스티아누스 황제때 철학과를 폐지시킴으로 철학이 시들었다한다. ★전 세계에 전자파 때문에 벌이 멸종해가고 있다고 한다. 자기파를 혼동을 일으 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꽃 많고 태양이 좋아 벌이 많다 고한다. 거미 같은 사람 손 해주는 사람 남에게 손해도 덕도 안주는 사람이 개미 같은 사람 남에게 이익을 주 는 사람 벌과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자연을 슬기롭게 극복했고 에베소는 극복하지 못했다. 자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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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을 하지만 이기기는 어렵다. 마르코 폴로 베네치아사람이다. 동방견문록에 만 리장성이야기 없다. 내장 일부분에서 향이 난다고 한다. 사향이 모스크향이다. 아 버지 삼촌이 원정 사신으로 가게 된다. 동방견문록 이야기 많다 중국 역사서 마 르코폴로 이야기 없다고 한다. 원조종 쿠빌라이 환영이 아서 왕과 똑같다 그의 대필자가 뻥쟁이였다고 한다. 문맹이 이었던 마르코 폴로에게 얼마나 그 책이 신 빙성이 있는가이다. 행해사의 필수서가 동방견문록이다 스타케티 시작도 중국의 국수다. ★세계3대 악의 인연 있는데 영국음식에 무뚝뚝한 독일여자에 이태리 행정을 꼽는 다고 한다. ★이태리는 내추럴을 좋아하고 유기농을 좋아하며 유적도 복원하지 않고 유지만하 며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 두는 민족이며 100이라면 70%만 만들고 프랑스는 70%인 물건을 100%로 완성시키는 나라라 세계화에서 밀리는 편이며 계산 을 빨리 못하며 순진하며 마피아의 지하경제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태리의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5년이며 고졸도 자부심 을 느끼며 대학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졸업은 10%도 하기 어려우며 학연 지연이 심하며 남쪽으로 내려가면 더 심하다 고한다. ★이태리는 아침은 거의 먹지 않고 11시 샌드위치1개 1시 점심 2~3시 시에 스타 로 낮잠시간이며 5시 간식 7시 퇴근 8~9시까지 저녁식사는 화려하며 천천히 이 야기하며 아이스크림으로 마친다. ★유럽인들의 파란 눈은 자외선에 약하여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쓰고있는사람많 다. ★유럽은 석회질이 많아서 수돗물을 절대로 마시면 안 되며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조금 낫다. 화장실 사용은 4명이 1유로 정도, 물 인심이 박하고 호텔 물은 맥주 보다 비싸다 ★유럽의 호텔은 방 욕실이 적고 기압이 낮아서 염분 보충을 위해 음식이 짜다 유로화는 13개 나라가 화합 통합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고 영국은 파운드, 프랑 스는 루블, 유로 국이 아닌 스위스는 프랑이다 ★이태리 사람들은 사랑하기를 무척 좋아한다 하루에 50번 이상 사랑한다는 말을 한단다. 방송에서 사랑표현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결과를 보고는 “언제부터 이태 리 사람들이 이렇게 사랑 한다는 말에 인색해 졌냐고”야단법석을 하였다고 한다. 조사 결과는 하루에 37번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고 하네요.ㅎㅎㅎ ★이태리는 남 지중해성 기후 북은 대륙성 기후, 남북의 소득격차가 많고 북쪽사람 들은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하며 남쪽은 지중해의 각종 과일나무와 먹을 것이 풍 부, 기후가 좋다 보니 일하지 않아도 풍요롭고 게으르며 풍류를 즐긴다. 북부와 베네치아 제노바는 소득 6만 불 남쪽은 만 불 정도다. 나폴리는 만 불도 되질 안 는다. 자연히 북쪽사람들이 남쪽을 먹어 살린다는 말이 있고 북쪽사람들은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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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다한다 ★이태리 대표 음식은 스파게티인데 유래는 베니스의 거상 아들인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돌아와 베네치아에서 중국에서 먹었던 국수를 흉내 내다 스파게티가 탄 생되었다고 한다. 오래 씹어야 고소한 맛이 나고 다양한 소스가 있다 ★유럽에서 피자를 주문할 때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잘못하면 엔 초비(젓갈비슷) 가 토핑으로 나오는 피자가 나올 수도 있다 ★이태리에서는 레스토랑에서 같은 집이지만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값이 각각 다르 다. 실내에서 먹으면 싸고 종업원의 발자국을 많이 움직여야 되는 실외에서 또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면 배가 비싸진 다네요. ★이태리 국기는 흰색은 치즈 빨강색 토마토 녹색은 바질을 상징 ★이태리사람들은 아침은 빵과 차 한 잔이면 되고 저녁을 많이 드신 다네요. ★이태리는 강제 추방이 없고 집시들의 소매치기가 많은데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개념이 아니고 신이 자기들에게 내린 선물인데 잠시 가져간다는 개념이라네요 ★로마 성당의 가치는 성당 안에 성인들의 유해가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서 등급이 매겨진다. 옛날에는 유해를 돈을 주고 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두오모는 어느 지역이든지 그 지역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교회란 뜻이다 라틴어 “도모스”란 큰집이란 도에서 유래되었으며 신을 모셨든 집이란 뜻이고 주 교님이 계신 곳 이며,두오모를 찾으면 그 도시의 제일 중심이란 뜻이고 두오모의 종탑이 어느 도시든 제일 높다, 그러나 피렌체에서 만은 시청의 탑이 제일 높다 ★유럽의 모든 언어의 뿌리는 라틴어이다. 이태리어는 라틴어와 가깝고 세계문화 유산의 40%가 이태리에 있다 ★이태리 사람이 특징 3가지: 노래, 먹는 것, 사랑 ★와인은 프랑스 브르노로 곱히지만 와인의 종주국은 로마이다. 이태리 모라비아 지역이 뿌리이며 신의 물방울이라 하는 와인은 포도껍질 씨 와함께 발효한 것이 적포도주, 한번 압착하여 즙을 발효시킨 것이 백포도주이다 ★이태리에서는 포도주는 술이 아닌 마시는 야채라 생각한다. 성분은 수분,알콜성 분은9~13% 자연발효라 인체에 해롭지는 않고, 당분 미네랄 로 이루어진 야채성 분의 건강음료라고 여기며 이태리에는 가문 이름끼리 상표로 하여 술을 만들었고 토스카나주,끼안띠,샨지오베라주는 달콤하다 한다. 이태리는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 가 크고,언덕며 공기가 맑아서 당도가 높고 포도농사의 적지라 한다. 포도주병의 진한색은 햇볕을 막기 위함이며. 포도주로 만든 발샤믹식초는 발효년도에 따라 다 다르며 폴리페놀 성분이 많아서 우리 몸은 알카리일때 건강한데, 황산화역활 을 하여주어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올리브나무는 버릴게 없다 열매 뿌리잎은 크림과 샴푸로 열매는 기름으로 나무 는 엔틱고 가구로, 올리브는 비가 없고 석회질땅에 잘 자라며 습기를 오래 머금 고 있어 건조한 땅에서도 잘자라며,첫번째 짠 기름은 엑스트라 버진,샐러드용으로 주로 쓰이며 발원점이 낮아서 끓이면 좋지 않고 포도씨유는 발원점이 높아서 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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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으로 좋다 올리브유는 비타민 C,E가 많고 폴리페놀, 황산화제가 많아 성인병 비만 심장질환 좋은콜레스테롤를 높여준다. ★이태리인은 자신을 위한 투자를 많이 한다. 여름엔 2달이 휴가이고 자족중심이며 크리스마스, 부활절 년2회의 휴가가 있고 우리처럼 명절 대이동은 없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는 처음 오드리헵번이 캐스팅되었을 때 그 당시 에는 우아 함과 글래머를 좋아했기 때문에 게릭트에 맞질 않아서 안 될 뻔 했지만 발탁되어 발랄 깜찍한 연기로 세기의 유행코드를 바꿔놓은 영화가 되었다 후에 그는 세상 의 이목을 피해 좋은 일을 많이 하며 조용히 일생을 마쳤다 ★이태리는 20%는 평야 80%는 구릉과 산이며 인구는 남북 합친 것의 1.5배, 유럽 인들의 여행의 개념은 한 도시에서 쉰다는 개념이고 우리하고는 다르다 ★트레비 분수는 1735년에 만듦 그 당시 수로이며 로마에는 1800~2500명 들어 가는 목욕탕 있었다. 그만큼 물이 풍부했던 곳이며 전 유럽에 수로를 놓고 물을 공급해주고 세를 바치라고 했고, 기원후 1세기에 로마인구 100만 넘어갔고, 로마가 망하고 난후 흑사병이 생겼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듯이 로마인 들은 길을 닦아서 빨리 점령할 수 있었고 중국은 길 대신 성을 만들었다. 만리장 성 같이, 중국은 최고에 성을 붙인다. ★기원후 330년 로마의 행정수도를 콘스탄틴 노플에 의해 이스탄불로 옮긴다. ★은행의 지로 온라인 송금은 피렌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한다 지로는 이태리어 “지라리”돌리다, 에서 시작되었고, 십자군 시절 남자들을 중동으로 보내고 월급을 교황청으로부터 받으면서 돈을 제때에 지급이 되질 않아 피렌체 국에서 교황 청을 재산을 삼고 미리 월급을 지급하였으며, 피렌체는 금융업, 무역이 발달한곳 이라 한다. ★바티칸은 작지만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나라이며 우리나라 명동성당도 우리나라 재산이아니라

바티칸

소속,

치외법권지역이다.

바티칸으로

이탈리아

세금의

8%가 들어가며 단체 입장이 없고 항상 긴 줄이 늘어져있다한다 ★라파엘로는 아버지가 궁정화가였다. 그래서 흔히 만들어진 화가라는 표현을 하 고 미켈란젤로의 아버지는 말단 공무원이셨고 가정의 어려움으로 많이 배우 지 못했다. 그 당시 성경은 라틴어로 되어있어 많은 사람들이 읽지도 못했으며 그림으로 내 용을 전달하는 때였다. 큐피드 상을 24살에 조각하고 20년 후 천지 창조를 그렸다. 천지창조 천정화와 벽화를 그리면서 그는 병을 얻었다 한다. 천정 에 부목을 대고 누워서 작업을 하다 보니 물감이 눈과 피부에 많이 떨어져서 눈 병, 시력저하,피부병과 불안한 자세 때문에 관절염,신경통,목디스크에 시달렸으며, 천정화 최후의 심판은 4년 6개월 동안 하루 4시간 반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당시의 많은 화가들이 교회의 그림을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수직으로 그렸 으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평행으로 그려졌고, 정적에서 동적으로 표현 원근 법을 이용하여 사실감을 더해주었다, 근육의 움직임이 사실적으로 묘사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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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그가 사람을 해부한 경험이 있다는 설도 있다.작품속에 자신을 잘 그 려 넣는데 항상 찌그러진 모습을 그려넣었다.처음 그의 벗고 있는 작품을 본 500 년 전에는 난리가 났었지만 대박이 난 작품이다 ★바티칸은 6만점의 작품을 소장, 천정화를 포함해서 그중 2만점만 공개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에는 교황이 직접 나오셔서 예배를 인도하신다. ★이태리사람들의 좋은 습관3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오트바이를 탈 때에는 반드시 헬멧을 쓰는것, 둘째는 실내에서는 절대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것,셋째는 항상 웃는 얼굴로 다가 온다. ★이태리에서 7월에 차가 고장이 나면 2달을 기다려야 한다. 평소에도 점심시간 2시간, 일찍 문을 닫고 늦게 문 열고 노는 시간을 철저하게 지킨다. ★이태리인은 다른 나라에 관심이 많고 여행이 발달한 나라다.1년 벌어 여행가서 다 쓴다. 교황도 2달 휴가를 가시고 뉴스진행자도 2달 휴가를 떠나고 대타가 진행한다. 7월 달에는 로마에는 관광객과 도둑뿐이라는 말이 있다 ★이태리는 나라에 비해 대학이 많이 없다. 로마에,1 밀라노 1,사립1대학가는 인원 이 반에 23%뿐이다 1/4정도만 대학을 간다. 이유는 대졸이나 국졸이나 사

데 차이가 없다 ★시저의 암살이유는 몆가지 설이 있는데 중요한 이유는 그 당시 왕정시대에서 7명 이 왕이 되어 돌아가면서 왕이 되는 시절 이였는데,1인 황제시대를 시도했기 때문이라 한다. ★로마 인구는 250만 위성도시까지 450만이며 나머지는 관광객들이다 1년에 우리나라 인구만큼의 여행객들이 온다. ★르네상스는 다시 태어나다, 재생하다는 말이다. 인간적이고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다 ★샐러리맨은 이태리 베네치아에서 처음 시작된 단어라 한다. 옛날에는 귀한 사람에게 소금을 대접했는데 암염화 된 땅이 융기되면서 소금이 나왔는데 소금은 이태리 말로 “샬레”인데 베네치아 뻘밭에 소금장수 샬레맨 들이 오늘날 샐러리맨의 유래라고 한다. ★유럽에는 흔히 지도를 가지고 있다 보이면서 관광객을 위장한 소매치기가 극성이 며 3~4명의 조를 지어 다니며, 길을 물어보는 자들도 조심해야한다 ★유럽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전염병이다 모르는 사람과 포옹하는 것도 싫어하고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한 사람은 전염병이 있는 줄 알고 피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같은 사람인데 (빈센트 갈릴레이)당시 토스카나 지역 풍속 에는 장남성 이름 겹쳐짓는 풍습이 있어 갈릴레이사람 장남이라는 뜻이며 이 름에는 기독교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지구가 태양을 향해 돈다고 주장하여 교황 청으로부터 경고를 받고 종신 가택연금을 받음, 죽은지 350년 지난 1992년 10월 31일 그의 인권을 회복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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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발상지는 피렌체다 르네상스이후로 베네치아에서 대중화가 되었으며, 메디치 가문의 결혼식에 처음으로 시작이 되었으며 기준은 첫째, 르네상스이후 16세기이후 생겨난 흐름을 따오는 것이라 야하며 둘째, 전체가 노래로 연결돼 어야 하며 (예외로 카르멘 같은 경우대사위주)대사를 노래로 연결이 되어야 오 페라가 아니면 뮤지컬 연극이 된다. ★유럽에서는 나라들이 서로 붙여 있다 보니 쉽게 외국차를 볼 수 있는데 독일 차 는 D,이태리는 I, 프랑스는 F,스위스는CH로 쓴다. 스위스는 S를 쓰지 않는 것은 역사에서 시작되었다한다. ★유럽의 정원양식, 영국-자연스러움 프랑스-기하학적으로 기교가 많다 이태리언덕을 이용 자연을 최대한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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