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을 턴다. 날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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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을 턴다 날뛴다 떤다


깃을 턴다 날뛴다 떤다 원광문학회 30주년 기념 시집 초판 1쇄 발행: 2012년 11월 16일 펴낸이: 김주혁 발행인: 김차중 기획 및 책임 편집: 김명호 표지디자인: 김유정 교정교열: 조대호 제작처: 현문인쇄(인쇄) 자현제책(제본) 발행처: 도서출판 플랜디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24-1번지 율촌빌딩 3층 대표전화: 070-8679-2454 이메일: plandesk@plande.co.kr ISBN : 978-89-969663-0-2 정가: 12,000원 * 잘못된 책은 구입한 서점에서 바꿔 드립니다. * 이 책에 실린 모든 내용, 디자인, 이미지, 편집구성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플랜디와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양측의 동의 없이 복제하거나 다른 매체에 옮겨 실을 수 없습니다. * 이 책은 제작비의 일부를 원광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출간되었습니다.


깃을 턴다 날뛴다 떤다

원광문학회 30주년 기념 시집


깃을 턴다 날뛴다 떤다 06 발간사 김주혁 08 일기 외 1편 안도현 10 모악산(母岳山) 외 1편 이요섭 12 핸드폰에서 너를 내보내며 외 1편 이용범 14 우물 외 1편 이정하 16 벼룻길 외 1편 김양용 18 시내버스 외 1편 김주혁 20 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외 1편 유강희 22 동화 외 1편 송현섭 25 먼지 외 1편 송종안 27 상추 외 1편 박윤근 29 힘 외 1편 하상욱 31 낙화암 외 1편 백연숙 33 하늘타리꽃 외 1편 이미영 35 나이테 외 1편 전창환 38 황태 외 1편 박태건 40 크레인 외 1편 송승환 42 마침 외 1편 서광일 45 저글링 외 1편 이현승 47 갑을(甲乙)시티 외 1편 최승철 51 박쥐 외 1편 박수선


깃을 턴다 날뛴다 떤다 계단 외 1편 김차중 54 고등어 외 1편 김성철 56 눈물을 찾아 우시네 외 1편 송기역 60 정물의 세계 외 1편 김경철 64 혼자 있는 것들 외 1편 김형미 70 거미집 외 1편 윤석정 72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외 1편 김명호 74 주저흔(躊躇痕) 외 1편 김경주 76 유령의 초상화 외 1편 고태관 79 목련은 알까 외 1편 정은정 81 구멍 외 1편 최민영 83 실연 외 1편 김경나 86 구름 위를 걷는 달처럼 외 1편 최종열 90 걱정해주세요 외 1편 남승훈 92 중생대의 바다에서 온 편지 외 1편 박상길 98 필적(筆跡) 외 1편 이재인 100 사슬 외 1편 김석현 102 서곡 외 1편 김하늘 104 눈을 비비고 싶은 날이다 외 1편 최진희 108 부답 외 1편 임영재 110 첫걸음 외 1편 채도영 113 연혁 115 편집 후기 123


발간사

원광문학회 100년을 꿈꿉니다! 김주혁(원광문학회 회장)

1982년 통합 이후 원광문학회라는 유전자가 우리 몸 속에 흐르기를 30년, 드디어 우리는 한 세대를 이루었 습니다. 그동안 스스로 밑거름이 되어 주신 선배님들과 그 싹을 틔우고 일어선 후배들이 모처럼 밥상에 둘러앉 았습니다. 문학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더 어려운 요인 은 외부적인 것보다 내부에 있습니다. 현재 원광문학회 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듯이, 원광문 학회 선배들은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오늘의 한국문 단을 이끌어가는 저력을 다져왔습니다. 이제 그 전통을 우리들이 다음 후배들에게 가르치면서 물려주어야 합니 다. 또한 날것의 체험과 진정성으로 문학의 카오스에서 제 목소리를 찾아가는 작업을 계속해야 합니다. “타고 갈 배를 불태우고 밥해 먹을 솥을 깨뜨려라.” 초나라 장수 항우가 전쟁터에서 결사의지를 천명했던 분주파부(焚舟破釜)라는 고사성어입니다. 문학은 간절 함입니다. 그것은 굶주린 짐승이 먹이를 기다리면서 언 제까지고 길목을 지키고 있는 절박한 마음 상태를 말합 니다. 궁하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통합니다. 기차는 달 려야 합니다. 침목 하나하나를 밟으며 철길을 달려야 합니다. 우리의 시들이 그 열차 안에서 백 년 동안 읽 히는 한 권의 스테디셀러였으면 좋겠습니다. 6


우리 원광문학회는 침목 하나하나를 밟으며 철길을 달려야 합니다. 이제 원광문학회 100년을 꿈꿉니다. 30주년 기념 동 인지 발간에 흔쾌히 호응해 주신 선후배님들께 진심으 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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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외 1편 안도현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醫員)에게 감나 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 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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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꽃1)

이 세상 가장 서러운 곳에 별똥별 씨앗을 밀어 올리 느라 다리가 퉁퉁 부은 어머니, 마당 안에 극지(極地)가 아홉 평 있었으므로 아, 파꽃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는 그냥 혼자 사무 치자 먼 기차 대가리야, 흰나비 한 마리도 들이받지 말고 천천히 오너라

1)1기.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이,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 되어 등단. 시집으로『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모닥불』 (창작과비평,1989) 『그리운 여우』(창작과비평,1997) 『외롭 고 높고 쓸쓸한』(문학동네,1994)『바닷가 우체국』(문학동 네,1999)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창작과비평,2004)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2005) 『간절하게 참 철없이』 (창작과비평,2008) 『북항』(문학동네,2012)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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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母岳山) 1 외 1편 이요섭

우리 형제 팔남매처럼 줄줄이 거느리고 만경들 물 가장자리 끝둥이 산 못 미더워 해 지는 서녘하늘에 눈물 훔쳐 쌌더니. 구름이 자욱한 날 허리저린 능선 아래 금산사 범종소리 문빗장 거는 걸까. 팔형제 품에 모으고 뜬눈으로 날 새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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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의 봄1)

늦가을 뵈올 적엔 삭발승 두륜산이 꽃동백 고깔모에 푸른 가사 두르고 엇박자 염불소리로 일주문을 나가시네. 영산홍 자산홍은 발뒤꿈 높이 들고 부도전 고요 털고 꽃배달 온 진달래 소승은 삼배합장을 화단가에 심고 있네. 염원을 태우다가 촛농처럼 주저앉은 초의·완당 두 부처 다담상 마주하고 별리의 그 많은 봄을 밤새 우려 드셨겠지.

1) 1기. 1982년 《시조문학》추천 완료 및 전국민족시짓기 장원. 1985년 《한국문학》신인상 시조 당선. 시집 『아 침산책』『산이 와서 새소리 놓고 가네』『현대시조 100 인 선집』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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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에서 너를 내보내며 외 1편 이용범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이름을 지운다 최, 석, 원, 01028××3155 생각날까 봐 안경 너머 충혈된 눈으로 중앙성당 안치실을 지키던 아버지가 떠오를까 봐 말을 잊고 생기를 잃어버린 어머니가 떠오를까봐 23살을 두고 간 너를 지우고 싶다 고교시절 담임이었던 함께 공 차던 운동장 집 나선 너를 찾던 대학에 합격했다며 목소리 키우던 군대 간다며 밥 사 달라던 죄다 지우련다 끝내 밥 한 끼 못 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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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물1)

문득, 혼자 때늦은 콩국수 먹다 귓가에 나 없이 못 살겠지, 속삭이기에 자음과 모음 죄다 툴툴 풀어 콩물에 넣고 누가 볼세라 눈물이랑 훌훌 마셨더랬어

1) 1기. 1986년 《소설문학》 신인상 당선. 시집으로 『너를 생각는다』(1995년)『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에게』 (2006년)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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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외 1편 이정하

깊고 오래된 우물일수록 컴컴하고 어둡다. 그 우물 속에서, 어둠만 길어질 것 같던 거기서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올려질 줄이야. 이토록 맑은 물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뒤채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지 않아도 속으로 열심히 물을 갈아엎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만히 고여 있는 것 같아도 사실 우물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어쩌다 한번뿐일지라도 우물은 늘 두레박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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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1)

살다보면, 떠나보내지 말아야 할 것을 떠나보낼 때가 있다.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말해야 할 때가 있다. 허기져 죽는데도 입에 물 한 방울 들어가지 않는 때가 있다. 살다보면, 살다보면, 살아 있는데도 죽어 있는 때가 있다

1) 1기. 1987년 〈경남신문〉,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 선. 시집으로『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사랑해서 외로웠네』등이 있음. 산문집으로 『우리 사는 동안에 1.2』『사랑하지 않 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돌아가고 싶은 날들 의 풍경』장편소설 『나비지뢰』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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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룻길 외 1편 김양용

내가 그대에게 이르는 길은 이 산지 어디나 벼룻길이다. 맨 손발로는 닿지 않는 곳 벼랑 끝에서 하얗게 가물거리며 울 어매 산후통을 사루던 구절초 그 향기를 따라가면 내 유년의 젖통을 내미는 그대가 있다. 내가 그대에게 이르는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숨길이다. 아무도 넘을 수 없던 저 산 나는 그대를 향해 목숨을 내 놓고 지독한 그리움의 숨길을 연다. 온 가슴을 꿀꺽꿀꺽 넘치며 아부지 허기를 채우던 비단 강을 돌아 오늘도 비릿한 그대 숨 냄새 흐르는 그 벼룻길로 나도 몰래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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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잎

1)

끝내 가진 것 다 내려놓은 수의 한 자락위에 산국 향기가 쌓이고 그녀의 사지가 꽁꽁 묶여 갈 때 나도 하얀 미라로 굳어갔다. 이 땅에 시린 계절이 어디 가을뿐인가 돌아볼수록 저려오는 그리움이 남은 자의 눈물이 되어 주검 안으로 샅샅이 스며든다. 고작 하루처럼 건너 온 한 살이 가난보다 슬픈 따돌림을 견디며 갈잎들은 새싹을 싸고 갈바람을 견디고 있다. 계절을 잊은 도심 가로에 매달려 이대로는 떠나지 못하는 항거는 상처가 겹칠수록 옹이를 키우며 의인처럼 시치름히 서 있다. 생존의 굴레가 무거울수록 겨드랑이에 웅크린 겨울눈들이 그녀의 묶인 가슴에 안긴 채 쓸쓸한 가을바람을 털어내고 있다.

1)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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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외 1편 김주혁

종착지 포탈라궁은 설원에 갇혀 있었다 순례자들은 티벳의 조캉사원으로 떠났다 광장 모서리에 웅크리고 있던 시내버스가 물집 잡힌 발뒤꿈치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노선은 다르지만 출발은 설레는 일이다 차창 밖으로 생각에 잠긴 세계가 떠다닌다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에 일렬횡대의 코스모스 이곳으로 오는 모든 길은 오르막이다 검게 그을린 라싸시내의 순례자들이 허리에 고무 앞치마를 두르고 두 팔꿈치와 무릎을 아스팔트 위에 던진다 순환노선의 그들은 매일 오체투지를 한다 누에고치 같은 버스가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때로는 길로, 길이 아닌 곳으로 경적을 울리며 끼어들기도 하고 잠시 정류장에 쪼그리고 앉아 모로 앉은 사람들에게 한쪽 젖을 물린다 수유의 포만감에 기대어 잠든 승객들 지상의 파편들이 네온사인으로 반짝일 때 흰색 천을 목에 두른 시내버스가 절뚝절뚝 다리를 절며 골목길 방 한 칸 그들의 안식처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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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침대1)

한 칸 남은 휴대폰 배터리 표시등이 와이셔츠 안에서 더미가 되어버린 사내의 잔해를 비추고 있다 척추수핵이 빠져 나간 침대는 천정 궤도를 도는 낯선 행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으로 가족들이 떠나가고 우편함의 수취인불명 편지가 반송되었다 가을비가 정원 귀퉁이에서 꽃무릇을 잡아 당겼다 사선무늬의 벽지에 빗물이 스며들었다 오랫동안 손톱에 긁힌 침대 모서리 알콜에 뒤섞인 사내의 허물과 먼지들이 시트 위에 퇴적층으로 쌓여 있다 불면증의 침대가 삐걱이며 돌아누우면 방안으로 풀벌레 소리가 안부를 물어오곤 했다 안방 가습기가 허공으로 긴 한숨 내쉬고 충전을 끝낸 액체 상태의 사내가 접힌 코트자락 끝으로 한 방울씩 떨어진다 담쟁이넝쿨 한마디가 숨죽이며 자라고 있었다

1)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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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외 1편 유강희

내가 대팻집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생각해낸 건 이 나무 근처에 오리나 치며 살아야겠다 였다 더 불리지도 더 줄이지도 않으며 내 힘닿는 만큼의 마리 수를 놓고 소란하면서도 다정한 오리 울음을 하루치의 양식으로 삼아야겠다 였다 내가 두 번째로 대팻집나무를 보았을 때 불꽃처럼 퍼 뜩 생각해낸 건 저녁이 올 무렵, 제일 높은 가지 끝 등불 하나 내걸고 꽃집나무, 물소리집나무, 귀뚜라미집나무, 혹은 눈발집나무란 것도 세상에 있나 직접 찾아봐야겠다 였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 세 번째로 대팻집나무를 보았 을 때 생각해낸 건 나도 어느새 눈 귀먹은 한 마리 늙은 당나귀 되어 외딴집 저녁불빛집나무가 되어봐야겠다 였다 저녁 불빛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눈감는지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나무가 되어보는 거였다 *대팻집나무: 대팻날의 집을 만드는데 주로 이 나무가 사용되었다하여 붙여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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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기적1)

소나기를 피해 미루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샤갈이 푸른 수탉과 함께 먼저 와 있었다 인사를 하자 주머니에서 당나귀 눈망울을 꺼내 내 젖은 이마를 닦아주었다 하지만 비는 더욱 세차게 내렸고 근처 고무장갑 공장에선 늙은 아비가 졸고 있었다 그때 소의 얼굴로 변한 샤갈이 갑자기 청어를 사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토록 푸른 유월의 미루나무 밑에서

1) 4기. 198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어머니의 겨 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 『불태운 시집』(문학동네,1996)『오리막』(문학동네,2005) 동시집 으로 『오리 발에 불났다』(문학동네,2010)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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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외 1편 송현섭

아이에게 젖은 구름 한 장을 선물하자 오전 내내 비 가 내렸습니다 훌쩍이는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가서 바삭바삭한 가 을을 배불리 먹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잃어버린 빨간 우체통을 하나, 둘, 세 개나 찾았습니다 아파트 6층 전나무 까치부부는 삼사일 꽥꽥 다투더 니 뿔뿔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얽히고설킨 빈 둥지로 지나는 해가 지글지글 프라이 팬 속으로 저물었습니다 하루를 반쯤 갉아먹다 아이는 잠들고 나머지는 딱딱 한 내 몫이 되었습니다 이제 스물하고도 아홉 날이 냉장고 안에서 오들오들 떨며 옹그리고 있었습니다 천둥번개는 없었습니다 까치부부는 돌아오지 않았습 니다 전나무 푸른 어둠이 아이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이불속 달아난 잠이 달빛 싸한 베란다 빨래건조대에 서 똑, 똑, 똑, 울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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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름은 간다

수돗가에서 불에 탄 나무 밑동이다 개는 뜨거운 수돗가에 모로 누워 있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말끔히 면도를 마치자 갓 구운 빵의 갈색이다 아빠는 고무호스로 구석구석 물을 뿌린다 기름무지개가 예쁘게 번진다 혀를 늘어뜨리고 낑낑대던 울음은 이제 더 이상 흰 색이 아니다 흰색이 아니어서 깨죽나무 위의 새들을 쫒아버린다 새들은 전깃줄에 매듭처럼 내려앉는다 도랑으로 벌겋게 흐르는 핏물을 어린 개들이 쩝쩝 핥고 있다

마당에서 벽돌의 서늘하고 단단한 그늘 한 장 밑에서 기어 나 온 뱀이 마당을 지난다 햇빛이 비늘을 쫒듯 반짝반짝반짝 벌들이 분주히 비행을 하며 졸음에 겨운 꽃들을 깨 우는 사이 껑충껑충 달려온 수탉이 뱀의 머리를 콕콕 쪼아댄다 허연 배를 뒤집고 돌돌 감기는 몸짓 위로 푸드득푸 드득 굶주린 부리들이 몰려든다 23


〉 콕, 콕, 콕, 콕, 콕…… 어쩌면 그늘 한 귀퉁이를 쫀 것처럼 쓱쓱 뱀은 지워졌 다 개미들이 뱀의 몸짓을 흉내내며 까맣게 몰려 있다

개천에서 태양이 하늘 끝에서 마지막 땀을 뻘뻘 흘린다 구름이 새들을 삼키는 시간 개천의 흙탕물과 쓰레기 사이로 죽은 돼지 한 마리 떠내려 오고 있다 풍선처럼 빵빵해진 배다 빙빙 도는 배다 아이들은 돼지의 배 위로 돌을 던진다 배에서 튕겨져 나온 돌들이 꿀꿀거리며 물속으로 가 라앉는다 한 아이가 손나팔을 하고 꿀꿀거린다 바람은 풀꽃들의 머리를 자꾸만 옆으로 돌린다 아이들은 이제 모두 꿀꿀거린다 돌을 던지며 꿀, 꿀, 꿀, 꿀, 꿀…… 돼지의 눈이 웃는다 1)

1) 4기. 1990년 〈전북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1992년 《문학사상》 신인상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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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외 1편 송종안

먼지들의 꿈은 아쉬움의 시간을 껴안고 조용 조용히 가라앉는 것이다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힘으로 떠돌았던 젊었던 날들의 가벼운 고뇌처럼 먼지들은 보이지 않는 날개를 달고 뿌리없는 방황을 시작한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 속에서 부풀었던 헛된 꿈들, 그 부끄러운 후회로 먼지들은 스스로 날개를 버리고 떨어져 쌓인다 기억되지 않아도 좋을 지난 일들 가슴속 어딘가 수북히 먼지로 쌓이고 그 속에 숨겨진 시간의 덫을 피해 나의 꿈들이 먼지로 날리는 것을 지켜본다 나의 눈은 먼지로 부서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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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와 토란잎

토란잎에 솜털같은 실비 내리네 어깨 끼고 손잡고 하나의 물방울 되어 은구슬처럼 커져가네 잘 있어 라고 물방울이 토란잎 흔드네 잘 가라고 토란잎이 물방울 굴리네 다시 실비 모으고 모인 물방울 토란잎 떠나고 떠난 물방울 땅 적시네 언제쯤 나는 저렇듯 죄없이 날리는 실비 될까 아무 말 없이 때 되면 떠나보내는 한세상 넉넉한 토란잎 될까

1)

1) 4기.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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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외 1편 박윤근

그는 하얗게 야위어 땅에 해묵은 둥지를 마련했던 것이다 시간의 강이 그를 관통하는 동안 더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잎을 끄집어 내면서 날개를 펼치면서 띄어 내면서 몸에 흉년이 온 어느 날부터 그는 일상을 위로 올려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바탕 푸른 좌판을 펼쳐서 상투 끝에 씨앗을 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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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궤적

바람이 당신의 살점을 뜯어 가고 나면 그래서 푸른 지네들 기어 다니는 뼈만 남으면 그 잘 마른 정강이뼈에 구멍 뚫어 바람 부는 날 불겠다. 그때 당신의 살점을 뜯어가던 흔적처럼 짐승들의 붉은 꽃이 피면 좋겠다 온 바람 속에 당신이, 당신들이, 다른 높이로 떠 있다1)

1) 5기. 2010년 수주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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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외 1편

하상욱

땀 뻘뻘 쏟으며 트럭 한 대가 섰다 트럭에서 내린 반바지 중년사내가 맥주 세 박스를 등에 지는데 나 서 있는 오층 베란다까지 끄응! 소리가 다 들렸다 부들부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단란주점 계단을 올라가서는 그리고 끄응! 하고 내려놓으리 세상을 한번 들었다 내려놓는 일 저렇게 죽을 힘을 다 쓰는 일이다 너도 한번 죽을 힘을 다 써봐라 비로소, 살아갈 힘이 생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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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이제 진미집 앞 쌓인 연탄 위로 눈이 내려 쌓일 것이 네 그 옆 참 멋없게 쭉 뻗어 서 있는 전봇대도 눈발에 젖 을 것이네 그때 길들도 시름없이 묻힐 것이네 나는 그걸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 볼 것이네 또 한 해가 저문다고 온통 흰 머리로 내려다 볼 것이 네 1)

1)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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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 외 1편 백연숙

행주질한 뒤 이따금 식탁 위에서 강물냄새 나면 나는 물살 위 떠다니는 꽃잎이라는데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칠 때마다 위험수위는 높아지겠지 내가 움켜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다만 거기 벼랑 위 수저받침처럼 놓여 있었을 뿐 어쩌면 그조차 놓아주고 싶었는지도, 꽃씨 떨어진 자리에서 새순 움트는 게 아니라 결정적으로 식탁 위 빈 화분에 씨를 뿌리는 조막손처럼 떨어질 수 있는 그 자리가 꽃이라는 생각 바위 속으로 꽃잎 진다 바위 속에서 꽃이 피고 새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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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낙화암

단말마의 비명 뒤에 수많은 비명소리 들끓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창공을 나는 저 새들조차 숨죽인 채 바위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무거워 무서워, 딱히 누가 이 돌을 치울 수 있을까 깎아지른 벼랑처럼 캄캄하게 입 벌린 식탁 무서워 무거워, 생활고로 한 가장이 아내를 죽이고 아이 둘과 투신자살했다는 뉴스 저녁밥 먹다 아이가 떨어뜨린 밥알 주우며 바닥에서 아무리 올려다봐도 아무도 살지 않는 자신만의 왕국 1)

1) 6기. 1997년 《문학사상》 신인상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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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타리꽃 외 1편 이미영

밥상에서 밥 한 술 뜬 지 이미 오래 할머니의 성냥개비 같은 몸속으로 탈진한 가을이 흐르네 몸이 베겨 뒤척일 적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아픔의 누런 잎새들이 방안을 가득 채우네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당신을 지키고 돌보는 일이 끓어 넘치는 밥솥과도 같았으나 기저귀를 차면서부터 어리디 어린 당신이 애처로워 견딜 수 없었네 은비녀 꽂아 쪽진머리 무심히도 싹둑 자르네 온기 잃은 은비녀 어디에 두워야 하나 하늘타리꽃 당신은 노란 죽음의 향기를 뿜네 불어오던 바람도 미소짓던 햇살도 비켜가는 방에서 이미 시간을 말하지 못하고 즐거움을 읽지 못하는 당신은 마냥 이승의 옷을 벗고 싶어 하였네 마른 버짐같은 날들 버리고 당신이 가장 편안한 곳으로 가려네 생애의 푸른 골을 벗어나 이제 영원한 나라로 돌아가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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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껍질의 노래

내 몸의 향내를 기꺼이 내어 드리리 그대에게 내 몸의 단물과 향내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내어 드리리 나는 주저 없이 나는 서러움 한 점 없이 둥글게 말아 깎이며 희게 웃네라 내 몸의 껍질은 이 겨울날 어느 깊이만큼 땅속에 묻혀 잊히어질지 모르나 둥글게 말아 깎이며 하얗게 웃네라 그대의 가슴에 아름다운 향내로 기억된다면.1)

1)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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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 외 1편 전창환

눈 들어보니 동백꽃 피었다 멀리서 보면 연지입술 같은 꽃덩어리 사이로 드나드는 동박새 작은 지저귐도 들은 듯하다 열어놓은 문으로 찬바람이 슬슬슬 들어와 블라인드 줄을 흔들어 챠르륵챠르륵 소리가 난다 살아 있다는 신호 살아야 한다는 소리처럼 문틀의 등짝을 때린다 참 오랜 시간이 지났다 눈 들어보니 이만큼 건너왔다 무심한 宇와 宙 속에서 낚싯대 찌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살아왔다 아주 작은 파문만을 만들었다 죽을만큼 35


〉 마음이 아픈 날이었다 나이테로 치자면 조금 더 진하고 단단한 동심원으로 남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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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박물관 -오해

나비는 그 곳에 들어가기 싫었던 거다 멈칫거리며 절반만 날개를 집어넣었을 때 세상이 바뀌었다 돌 속에 갇힌 나비는 울었다 연한 날개가 돌에 새긴 흔적은 숨이 차올라 몸부림치던 마지막 비명이었지만, 다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지금 나는 깊은 회한과 고통을 마주하고 있다1)

1) 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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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 외 1편 박태건

황태는 설악에서 자라는 나무다. 미시령 넘어가는 길 용대리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황태. 가파른 겨울바람에 비늘 다 떨어뜨리고 가시만 남은 나무들 한 놈 툭 끊어다가 한 솥 가득 끓여내고 싶다. 간밤 술에 얼얼한 뱃속, 바람이 불 때마다 휘청대는 황태의 손가락이 쓰린 속을 찌른다. 먹은 것 다 게워내라. 겨울하늘 로 솟구치는 황태. 얼음계곡으로 줄지어 몸을 말리다. 몸이 더워지면 주저 없이 속초 바다에 뛰어들 기세다. 말을 버린 것들은 혀부터 단단해진다. 나도 나무껍질 같은 지느러미 하나 갖고 싶어서 산의 정수리를 쓸어내리는 바람에 눈을 부릅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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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에서 0으로

한 편의 절실함도 없이 한 방울의 눈물도 없이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지. 한 모금의 물을 마시고 한 자루의 칼을 얻어 시인은 목을 찌른다 갇힌 새 한 마리, 날려 보낸다. 허공이 온통 핏빛이다. 둘이 하나라면 처음부터 나는, 나는 없는 것이냐? 1)

1) 9기. 1995년 〈전북일보〉신춘문예와 《시와반시》신인상 수상. 2008년 대산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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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 외 1편 송승환

그녀는 내 육체의 운전석에 앉아있다 내가 세워지는 곳은 언제나 모래 먼지 속이다 철의 기둥 미지의 부름을 기다리는 언어의 피스톤 갑자기 내 팔이 공중으로 뻗는다 사물은 이동한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국경 너머로 변경되는 사물의 이름 나는 내가 들어올리는 사물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세계와 함께 있다 하얀 태양 붉은 대지의 나라 항구에 하역된 화물들이 쌓인다 엄습한 안개 속으로 그녀는 다시 사라진다 나는 비어있다 나는 안개 속에 떠 있는 창백한 얼룩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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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

그녀는 태양의 열기 속에 누워있다 이제 그녀의 감긴 눈의 이름은 눈보라이다 닫힌 입은 남극이다 끊긴 숨결은 어둠이다 드러난 가슴은 바람이고 썩어가는 손은 사랑이고 그리하여 그녀의 얼굴은 전쟁이 다 나는 눈보라 치는 남극의 어둠 속 사랑을 찾아 전쟁 의 포탄 속 걸어가는 아이가 되어 바람을 만진다 이제 눈보라 흩어지고 남극이 녹고 어둠 속에서 뱀이 기어나오 고 바람도 그쳐 전쟁을 어루만지는 사랑의 말도 아이의 손가락 사이에서 사막의 모래알갱이로 떨어진다 나는 받아적는다 그녀가 들린다1)

1) 9기. 2003년 《문학동네》신인상 시부문과 2005년 《현대 문학》신인추천 평론부문 당선. 시집으로 『드라이아이스』 (문학동네,2007)와『클로로포름』(문학과지성사,2011) 평 론집으로 『측위의 감각』(서정시학,2010)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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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외 1편 서광일

지지리 궁상이다.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가 지들끼리 꽉 엉켰다. 마침 아기를 재우고 걸레를 빨던 해주 연립 201 동 401호 은경 씨. 다음 달부터가 걱정이다. 임신 8개월 까지 직장에 다녔고 벌써 그게 1년 6개월 전이다. 마침 남편 회사는 일이 점점 줄더니 감원이 시작됐다. 경기가 나빠지면 사람 수를 줄이는 방법 말고 이렇다 할 대안은 없는 건가. 결국 엉킨 빨래는 바닥에 떨어지고 엉겨 붙은 먼지처럼 질문만 잔뜩 묻어난다. 오늘따라 유난히 빨래들 이 탁탁 털어지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프리미엄 따져가며 집을 구한 것도 아닌 데 대출 이자는 대놓고 올랐다. 마침 아기가 생겼고 태어 났고 자랄 것이다. 아기 옷은 따로 빨아야 되는데 엉킨 빨래 속에 곰돌이 내복 바지가 딸려온다. 아기가 깼는지 우는 소리가 난다. 마침 비행기가 낮게 난다. 진짜 더럽 게 시끄럽게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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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기다리며

떠나는 자들은 두리번거린다 버릇처럼 낮게 어디론가 몰려가는 새떼들 담벼락에 기대 볕을 덮고 앉은 노인들 잠인지 고개가 아슬아슬하다 그림자 위에 그림자가 생기고 역전에는 생각들이 모인다 너는 몸을 꽉 뭉친다 시간이 흘러도 오고가지 않을 모양이다 사람들은 무심코 서로 바라본다 지나친다 깃을 턴다 날뛴다 떤다 비둘기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저만치 가고 있기도 하지만 먹다 만 술병을 들고 다시 모여든다 시간을 구경한다 입가의 부스러기 외투를 꽉 껴입고 언젠가 나도 거기 앉아있을 것이다 43


〉 노인들 햇살에 방목했던 자신을 몰고 어둑어둑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데1)

1) 10기. 1994년 〈전북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2000년 〈중앙일보〉중앙신인문학상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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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글링 외 1편 이현승

나는 손이 두 개뿐인데 잡아야 할 손이 여러 개지. 애써 친절을 베풀면서 쉬운 사람은 아니라고 강조하는 사람처럼 내가 잡아야 할 손들은 뚱한 표정을 하고 있네. 너무 빨리 돌아가는 회전문 안에서 우리의 스텝은 배배 꼬이고 뒤엉킨다. 회전과 와류를 빠져 나가지 못해 우리는 빨래처럼 잔뜩 뒤엉키며 물이 빠지네. 아무나 막 목을 조르고 싶네. 남을 웃길 수 있는 능력을 남에게 웃음거리가 됐다로 번역하면서 우리는 자존심이 상한다. 슬픔을 팔고 있다는 수치의 감정이 우리를 화나게 하지. 손 안에 쥐고 있는 얼음처럼 차가움에서 시작해서 뜨거움으로 가는 악수. 나는 손이 두 개뿐이지만 여러 개의 손을 잡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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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제자리란 하나의 강박이다. 켜놓고 온 가스불을 떠올리는 사람의 동공처럼 컴컴하 게 열린 저 구덩이 어디쯤에서 돌아온 자리를, 또 떠나온 자리 를 보는 것. 불현듯 아내에게 필요한 사람은 아내였다는 생각. 컴컴하게 풀린 구덩이 앞에서 어디를 봐도 돌아보는 것인 오르페우스의 아내여 소금기둥이 된 아내여 수십 개의 고개를 돌아 열 겹의 문을 따고 결국 꺼진 가스불 앞에 선 사람은 무너진 사람. 폐허에 도착한 사람이다. 폐허에 지져진 사람이다. 눈밭 위로 솟구친 용천수에서 나는 유황냄새처럼 뚝 떨어진 자리에서 문득 탄내가 난다. 용천수 위로 떨어지는 눈다발들의 표정이 갸웃하다. 우리는 계속 이동 중이다.1)

1) 10기. 1996년 〈전남일보〉신춘문예와 2002년 《문예중 앙》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아이스크림과 늑 대』(랜덤하우스코리아,2007)와『친애하는 사물들』(문학동 네,2012)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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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甲乙)시티 외 1편 최승철

갑은 쿵푸를 배웠다 / 을은 한강대교에서 다이빙을 배 우고 싶었다 / 난 남자니까 / 치부를 건드렸다 / 갑은 부 엌칼을 흉기로 간주했다 / 을이 저기 간다 / 을은 사람이 좋았다 / 쥐의 백혈구 수치에 관한 실험을 했다 갑은 축구공으로 유리창을 깼다 / 을은 벌써 세 번이나 약속을 깼다 / 선생님은 우리에게 깨어있는 사람이 되라 했다 / 갑은 종전 기록을 깨고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 달러화 약세의 전망으로 금(金) 가격은 상승했다 미술심리치료 학원에 갔다 불을 지르고 싶었다 그림을 그렸다 칭찬 받았다 곰인형은 정말 위험한 눈동자를 갖고 있구나 / 인간의 소외는 노동의 소외에서 비롯된다 / 빗방울 소리에 더 자 유로워졌다 / 이것은 방이 아니다 / 톱상어는 인류에게 칼에 관한 착상을 제공했다 / 문명은 18세기 프랑스의 궁정 예의범절을 의미했다 / 그림자를 닮았잖니 / 을은 김치를 먹었다 / 갑은 팥빙수를 좋아해 이 세상 소풍은 재미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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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이 낮은 근로자 B씨 / 은퇴한 사업가 C씨 / 사무 직 근로자 D씨 / 편의점 알바생 A씨 / 이들은 모두 고시 원에 산다 을은 소통한다 그러므로 망치는 무겁다

*빗금( / )은 대응, 대립되거나 대등한 것을 함께 보이 는 문장이나 절, 단어 사이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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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甲乙)시티 2

편견을 극복하는 방법 / 갑의 설득력은 탁월하다 / 내 손에서 장미를 보여주면 믿겠니? / 을의 소요 사태는 쉽 게 처리되었다 / 저는 주인님을 사랑하는 견공주예요 / 갑은 계약서를 강물에 띄웠다 / 어떤 빌딩도 내각의 합은 360도이다 마른 체형이거나 배불뚝이거나 그 곡선의 합은 동일 하다 / 을은 시간이 흐르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 갑은 도사견을 삽으로 내리쳤다 / 여동생은 주머니에 비수를 숨기고 직장에 갔다 / 용의자가 좁혀졌다 / 의사는 수술 을 권고했다 추신수는 좌중간 적시타를 쳤다 / 이동국은 월드컵에서 첫 골을 넣지 못했다 / 갑과 을은 상황에 따라 위치가 변 한다 LPG 충전소 옆 노란 국화 / 이 차에는 갑이 타고 있습 니다 / 을의 인중에서 흐른 땀방울이 갑의 눈으로 들어갔 다 /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갑은 해외 여행중일 것이 다 / 스피드와 타이밍을 정확히 맞추는 하이힐 / 그런 날 이면 생기발랄하게 을은 미니스커트를 입는다 / 건물의 문은 모두 사각형이다 미술심리치료 학원에 갔다 담배를 끊고 싶었다 그림을 그렸다 49


〉 칭찬받지 못했다 을의 아버지는 푸줏간에서 일했다 / 라이터를 긋는다 / 비가 왔다 / 갑은 빨간 차를 몰고 갔다 / 거기까지가 을 의 바다였다 평가(平價)에 따른 변절은 그대의 힘이다1)

1) 10기. 2002년 《작가세계》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갑을시티』(문예중앙,2012)가 있음. 2012년 대산창작기 금 수혜. 제1회 EBS 라디오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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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외 1편 박수선

전주에 가면 문을 닫고 아직도 말죽거리 잔혹사 화보 가 걸려있는 극장이 있는데 소문에는 경영난에 시달리던 사장이 자살했다 한다네. 나는 술을 끊고 속이 울렁거릴 때마다 영화를 보러 간다네. 소주를 대신해서 스크린을 다 들이마셨는데도, 아찔한 취기가 도네. 꽃피고 지고 사 랑하고 죽고 죽이는 지독한 독주를 쭉 빨아버리면 눈물 빠지게 초라한 삼류시인이 검은 부츠를 신고 검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검은 나라를 빠져 나오네. 검은 비가 내리고 검은 우산이 척추에서 발기하여 날개처럼 펴지네. 검은 박쥐가 날아오르네. 사각사각 필름을 갉아먹으며 전봇대 에 거꾸로 매달려 폐허가 된 극장을 바라보네. 권상우는 박쥐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고, 박쥐가 극장 위를 빙빙 돌며 관람을 마치고 풍랑처럼 빠져나가는 시체들을 바라 보며 날개를 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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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백작

빌딩이 갑작스런 테러로 주저앉는다. 아자작, 천지가 꺼지고 송사리떼처럼 소름끼치는 번식력으로 날개 뼈를 쫙 펼치며 자근자근 공포를 씹는 백작이 짜자 잔 재난(災難) 속에서 기어 나온다. 쓱 웃다 흘러 들어가는 입술 안으로 금니가 번쩍, 샘 레이미의 앙각(仰角)이 팡팡 터지는 금빛을 둥글게 둥글게 무삭제 원판 공포로 심의를 마친다. 백작은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리도카인*에 흠뻑 취 해 물개처럼 왕성하게 애드립까지 보여주다 쿵, 떨어진다. 그가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공포를 공포로 입막음하는 52


〉 사랑을 사랑으로 도둑질하는 필름 전부를 갉아 먹어도 결국 토해내는 공포, 끝내 주인공이면서도 단 한 컷의 까메오로 미분(微分) 되어지는, 백 편이 한 편 같은 극영화 안으로 검은 망또 휘날리며 공포 백작은 나타났다 사라진다.

*조루증, 발기력 감퇴 치료약제1)

1) 11기.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으로 『흑백필름 속에서, 울고 있다』『공포백작』『박쥐』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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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외 1편 김차중

계단의 소리는 여러 가지이다 밟는 이의 생김새와 마음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낸다 내릴 때와 오를 때가 또한 다르다 계단의 박자는 여러 자락이다 밟는 이의 사는 모습에 따라 다르다 내릴 때와 오를 때가 또한 다르다 아침의 계단과 저녁의 계단은 다른 소리를 낸다 계단이 숨을 죽이면 세상은 고요하다 새벽이 트고 새 바람이 잦아들면 계단은 다시 긴 장단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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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공장의 흰 연기를 가로질러 흐르는 듯하다 내 키만큼 연실을 늘어뜨리고 동산 언덕을 달린다 늘어뜨리면 그만큼의 거리로 내 뒤를 따른다 열 두 살 생일에 도착한 편지는 오늘 돌아온다고 했다 창공의 연은 운동회의 만국기처럼 흔들어 댄다 얼레를 부여잡은 두 손으로 기도하면 연은 기도를 되뇌였었다 도무지,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11월의 싸늘한 바람은 순식간 노을을 밀어낸다 올 겨울에도 마루 끝에 목을 빼고 형에게 들려주었던 작은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싶다 노래는 점점 처마의 고드름을 녹여내곤 했었다 그날의 일기장엔 꾹 꾹 찍은 그리움의 점들만 남아 있다1)

1) 1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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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외 1편 김성철

토막 치는 칼질에서 비린내가 났어 사내의 손목이 움직일 때마다 붉은 내장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곤 했지 나는 입덧처럼 바다가 먹고 싶었을 뿐이야 혀끝으로 만져지는 출렁이는 바다 나는 싱싱한 해류가 되어 등 푸른 생선의 여정을 기록하고 싶어 입안에선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될 거야 남태평양 거슬러 오르는 고등어 꼬리를 쫓아 내 사내의 칼집 가득한 도마까지, 한 마리의 치어가 굴풋한 사랑 위해 바삐 헤엄치는. 지느러미를 씹을 때마다 목젖 간질이겠지 지글지글 바다가 뒤집히고 있나 봐 사내의 물기 젖은 손에서 짠내가 난다 식탁 위에 오른 바다 한 마리 나는 꼬리부터 먹는 습관을 지녔어 두 발 모아 힘껏 배를 차는 아이처럼 요동치는 힘 뱃속 가득 넣어둘 거야 문득, 내 아이에게서 바닷내음을 맡고 싶다 입 안에서 꼬리 퉁긴 고등어가 바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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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도의 햇살이 환하게 식도를 비춘다 고운 육질들은 빛 따라 가다 계집아이를 만나겠지 아이 손잡고선 바다 속 푸른 세계로 덤벙 사내가 무릎 모아 바닷소리를 듣는다 자맥질하는 발질이 배를 타고 내 심장을 두드린다 양수의 바다를 가르는 등 푸른 치어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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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밤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 하는 저, 아픈데 안 아픈 척 하는 저. 저, 저. 저것들. 보름달이 선명하게 떠 있을 땐 뒤꿈치 들고 동네 한바퀴. 밤길 마중 나온 달빛에게 가볍게 목례. 서둘러 어둠으로 몸 숨기는 고양이에게 기다려 달라는 손짓. 깜빡, 깜, 빡. 옅은 졸음 쏟아내는 공덕슈퍼. 덕지덕지 붙은 전단지가 우뚝 선 전신주의 몸에 붙어 지루함을 공사중. 덤프트럭에 실려 온 황토를 발가락 사이에 끼우고 내가 내 발을 간질이는 일. 아프지도 않은 네가 아픈 척 58


〉 하며 내 속에 있다 보름달 환하게 뜬 산책길 아픈 네가 안 아픈 척, 그렇게. 뒤돌아보면 모든 풍경이 조용한.1)

1) 12기. 2006년 〈영남일보〉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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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찾아 우시네 외 1편 송기역

강을 찾아 떠나셨네 한강에도 금강에도 낙동에도 영산에도 강은 없었네 제방 아래 고수부지 곁 강으로 가는 길목을 막아선 가물막이 오탁방지막 명품 보 공원 야구장 선상 카지 노 강은 포클레인이 삼켜버렸네 벌린 입 속 치솟은 이빨 사이 허리 부러진 단양쑥부쟁이 꼬리 잘리고 눈깔 빠진 꾸구리가 있네 재두루미 발자국이 있네 강의 철거민들이 무한궤도 아래 깔려 있네 강이 소신공양하네 뼛속까지 신나를 들이마시고 상류에서 하구 실개천 지천까지 활활 입술이 타고 활활 모래섬을 밀어내고 활활 귀 코 가 녹아내리고 활활 여울이 생매장되고 활활 살가죽이 뒤 집히고 활활 포클레인 속에 예수가 부처가 우주가 갇혀 계시네 강을 찾고 있네 눈물을 찾아 우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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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시다 돌아 앉으셨네 먼 훗날 찾아올 내 마음 어느 여울 자갈 아래 잠들어 있는 눈물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강 그 강을 찾지 못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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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라는 강

달래 흐르는 물을 보라 물에 비친 산을 보라 골짜기를 보라 깨복쟁이 시절로 저어 저어 옷을 벗고 고인 마음 강변 모래톱에 부려두고 달래강이 되어 흐르며 보라 머리 끝까지 고인 하수구 뚜껑 열어젖히고 벌거벗은 한강 쪽으로 바싹 붙어 손 벌리고 입 벌린 한강아파트 건설현장 지나 강변레스토랑을 흐르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지 나 투기꾼들 부동산을 밟지 말고 수몰되지 않은 논길 밭길 고라니길 맨발로 걸어와 강이 품 열어 키우는 끄리, 누치, 준치, 쏘가리의 눈으로 들여다보라 퇴화된 지느러미 하느작이며 상류로 헤엄쳐 올라 백두대간 골짜기 버들치의 눈동자마다 찍힌 사람의 발자국을 보라 썩어가는 그 눈동자로 흘러나온 눈물로 보라 강심 향한 꼬리짓 타전 아직 멈추지 않아 눈물만은 맑게 일렁일렁 너를 보지 않느냐 62


》 달래강 저리 맑게 일렁이는 것은 버들치 꼬리짓 때문 이지 수천 년 살랑살랑 몸 씻는 소리 때문이지 그 소리가 산란한 탄금대 가야금 뜯는 소리 때문이지 저무는 강 끝까지 흐르다 살랑 하는 소리 다하면 마지막 현 하나 뜯으며 남한강으로 오체투지하는 달래 신을 벗고 속곳을 벗고 논개처럼 심청이처럼 몸을 던져 보라 너를 달래지 않느냐 어느덧 피 흐르는 자리마다 달래강 흐르지 않느냐 발 끝에서 머리 끝으로 쉬리, 꺽지, 동사리, 모래무지 물결치지 않느냐 썩어가는 눈을 뽑아 버들치, 가재 상한 눈을 박아 넣고 보라 그 눈물로 보라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는 것이 보일 때까지 오체투지로 비춰 보라1)

1) 12기. 2006년 전태일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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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의 세계 외 1편 김경철

1 소음의 세계가 사라지고 정물의 세계로 걸어 올라간다. 산정에서 본 도시는 유령 같다. 그 많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건물뿐이다. 나무 하나하나가 보이고 숲의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사라진다. 2 산정과 도시의 거리가 매화나무가 그려진 꽃병과 나의 거리다. 소음과 정물 사이에 거리를 나는 매화나무가 그려진 꽃병과 나 사이에서 본다. 혹 매화나무가 그려진 꽃병으로 걸어 들어가면 이 세계도 조화분청이 될까.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고 보이던 세계가 보이지 않 는다. 정물의 세계는 아늑하다. 두루마리구름이 흐르고 마흔 일곱 계단을 밟고 내려온 빛과 강물이 하프를 연주하고 가끔씩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내가 사랑했던 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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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내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세계 는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나는 정물의 세계에서 정물의 세계를 징검다리 밟듯 건넌다. 징검다리 사이로 세찬 물살이 흐르고 우리는 그 물살을 건넌다. 걷는 발걸음의 속도가 이 세계를 본다. 빠른 자는 느린 세계를 보지 못하고 느린 세계에 사는 자는 빠른 세계를 보지 못한다. 우리를 가리고 있는 장벽은 속도와 거리에 서 발생한다. 속도가 만들어낸 정물의 세계는 거리와 함 께 시시각각 달라진다. 정물의 세계로 사라진 사람들은 정물의 세계로 등산을 마치고 나온다. 3 매화나무가 그려진 꽃병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나는 주 저한다. 세계는 흰 유약으로 발라진 바탕에 매화나무가 전부다. 귀얄 붓으로 그려진 이 세계는 알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는 늘 두렵고 설렌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멀어지면 인상(印象)의 세계가 된 다. 내 기억은 인상화석(印象化石)이 된 매화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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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 꽃잎이 떨어지고 나는 바람이 내뱉은 무언을 듣 는다. 말을 잊고, 사회적 약속을 잊고, 내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을 잊었다.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내가 알지 못한 세계에서 버렸다. 아니 잊었다. 너무 오랜 세월이 매화나 무 한 그루만을 봤다. 나는 인상印象의 세계를 빠져나오 지 못 할지 모른다. 고요와 정적이 정물의 세계를 보호 한다. 내가 잊었던 세계가 정물이 된다. 매화나무 그려진 꽃병에서 본 이 세계는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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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의 세계 2

1 버클리의 새로운 시각 이론에 관한 시론 을 읽다, 유 령과의 대화란 늘 즐겁다, 2 당신이 떠난 후 백일이 지났다, 나의 선과 당신의 예각이 달랐으므로 나는 혼돈스러웠 다. 정물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들어가지 못했다라 는 자책이 깨달음을 얻게 했다. 당신이라는 정물의 세계에서 나의 선과 예각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당신이 보는 선과 예각의 세계 안에서 나는 흐릿한 사 물이었다. 버클리는 말한다. 본다는 것은 경험이라고. 나의 경험과 당신의 경험이 달랐으므로 우리는 서로 다른 사물을 보고 있었다. 정물 세계 안에서 나는 고독했다. 내가 이해했던 한 세 계가 끔찍했다. 나의 철학은 세계를 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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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럴 때마다 나는 무한과 영원에 기대 침묵 속에 칩거 했다. 무한과 영원이. 눈을 찌르면 그 어떤 깨달음이 열릴 수 있을까. 사물의 선과 예각이 제각각인데 어떻게 사람들은 보편 성과 일반성을 얻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착각을 만 들어냈다는 것은 인류의 위대성이다. 나는 사라진다. 3 아이가 최초로 보는 세계는 정물의 세계다. 경험이 없 으므로 세계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이는 전생에 광물이었거나 초목이었거나 구름이었을지 모른다. 그가 세상을 이해하던 방식이 이젠 통용되지 않 는다. 내가 매화 꽃잎이 그려진 매화 꽃병으로 걸어 들어가 서 보는 세계는 이해 불가능한 세계가 아니다. 다만, 선 과 예각이 경험을 갖지 않는 것뿐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하나의 선과 예각을 가졌다고. 그러나 그것이 당신의 선과 예각은 아니었다고. 68


〉 내가 당신을 이해하는 사이에 당신은 부재하고 당신이 나를 이해하는 사이에 나는 부재했다. (우리는 코 앞에서 서로를 보고 있었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시각이 아니 라 마음이었음 했다고. 그러나 당신이 광물의 세계에 살 고 있을 때, 나는 초목의 세계를 꿈꿨고 당신의 구름이었 을 때, 나는 내리는 빗물이었을 뿐이다. 당신의 선과 나 의 예각이 달랐으므로 우리는 만날 수 없는 거리와 시각 을 갖고 있었다고. 거리에서 지나치는 수많은 인파 모두 서로의 사랑이었 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은 공유된 경험이 없으므로 선과 예각이 제각각 달랐음 을. 슬픔이라는 것은 우리의 눈이 천 개 만 개의 눈을 갖 고 태어난 원생동물이 아니었다는 것. 눈이 없으므로 세계의 눈이 되어 버린 최초의 세포가 정물의 세계에서 잉태된다.1)

1) 12기. 2005년《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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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것들 - 죽림정사에서 외 1편 김형미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육신 속에서 해지기 기다려 소쩍새는 운다 사람아, 외로워 마라 산이 외롭다 고 하는 것 봤더냐 산은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제 그림 자를 밟지 않고 빛으로 세상을 안는다 혼자 있는 것들은 모두 저를 보게 한다 방안에 켜둔 촛불이 그렇고 거문고 소리가 그렇다 절집 서까래 밑을 따라 도는 나방이 또 그 렇다 장독대 위로 휘늘어진 저 매화나무는 향기는 남고 꽃잎은 졌다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는 가운데 저 혼자 그 리 되었다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붙잡으려 하면 높거나 낮아지고 해와 달은 지나간 자국이 없다 사람아, 외로워 마라 맑은 낯을 한 사람을 만나면 그 기운이 하루를 살게 하고 좋은 낯을 한 산을 대하면 그 기운이 대를 이어 터 를 다져주는 법 삼천대천세계에 달팽이집이 너무 많아서 지금 우리는 외로운 것이다 어디 멀리 외딴섬은 이 내 마 음을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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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모 돌리는 사람

구궁 구궁 구궁 판굿이 시작되었다 아가야 산 자와 죽 은 자들이 숨을 움켜쥔 채 향해 있는 저기, 상모 돌리는 사람을 잘 보아라 말려 있던 긴 끈 풀어 아주 큰 원을 그 리고 있으니 안에 든 사람은 저리도 느긋할 수가 없구나 팔을 괴고 모로 누워 여유를 자랑할 만하겠지 아가야 저 속에는 어지러움도 없고 촉박하게 종당거리는 발품도 없 구나 구궁 땅을 울리는 소리가 이승의 아홉 고개를 넘는 저것이 바로 큰 흐름이라는 건데 그걸 깨우쳐 알고 가면 다시 나는 것이 두렵지 않단다 굳이 생사 없는 이치를 알 지 못해도 삼십삼천까지 속을 내려 고요해질 수 있는 게 란다 유천리 도요지에서 나온 청자색만큼이나 말간 청매 의 귀혼이 되어 산 자와 죽은 자들이 함께 판굿을 나갈 수 있는 게란다 구궁 구궁 구궁 저마다의 상모를 돌리며, 해와 달은 지나간 자국이 없다 사람아, 외로워 마라 맑 은 낯을 한 사람을 만나면 그 1)

1) 14기. 2000년 〈전북일보〉신춘문예,〈진주신문〉가을문 예 시부문 당선. 2003년《문학사상》 신인상 시부문 당선 으로 등단. 시집으로 『산 밖의 산으로 가는 길』(2010, 문학의 전당)이 있음. 2011년 불꽃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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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 외 1편 윤석정

종일 이삿짐을 풀며 집을 한 뼘 넓힌다는 게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나에게는 아득하기만 했다 허물을 벗듯 정든 집을 떠날 때 살점이 다 떨어진 뼈 한 채 남았다 내가 이사를 다니며 오고 갔던 수많은 뼈들 사이에서 산이 자랐고 바다는 경계를 삼키며 출렁거렸다 뼈는 허공으로 집을 넓혔고 허공으로 이사를 했다 뼈의 살점처럼 달라붙던 팽팽한 삶과 느슨한 죽음이 간결한 겨냥도를 그렸다 속새질 한 번 없이 번득이는 뼈 한 채 바람이 숭숭 지나가도록 넓게 낸 창에 달이 걸려 있다 뱃속에 알이 가득한 달이 이삿짐을 풀고 있는 나를 훑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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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등을 타고 내려가면 언덕이 나오고 오롯한 언덕 사이 웅덩이가 있다 언덕과 웅덩이를 합쳐져 엉덩이가 되었다 엉덩이뼈가 살살 아려왔다 여태 뼈를 만져주고 풀어준 게 엉덩이였다 엉덩이는 고작 입에 풀칠하겠다고 넘어지지 않겠다고 만날 뒤뚱거렸다 책상 앞에서 끙끙거렸다 엉덩이가 힘을 줄수록 흔들거 리던 마음이 새어나오곤 했다 웅덩이 안에서 얼마간 고여 있어야 나오는 똥처럼 엉 덩이는 덜 여문 마음을 가뒀다 더러 술 취한 엉덩이는 잡히지 않는 마음을 잡으려다 되레 마음에 걸려 넘어졌다 뒤뚱거리던 엉덩이가 다시 의자에 앉아 끙끙거리는 동 안 마음의 엉덩이뼈가 아려왔다1)

1) 14기. 2005년 〈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오 페라 미용실』(민음사,2009)이 있음. 2006년 문예진흥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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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외 1편 김명호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상상뿐 나 이제 돌아서네 당 신의 발자국 소리까지 들여보내고 고개 숙이고 있던 수 은등이 마지막 시선 한 조각을 떨어트리네 당신의 눈길 이 차곡차곡 쌓인 골목 내 기다림에 닳고 단 모퉁이 당 신의 체온 대신 깨진 벽보 한 장에 기대네 더 이상 당 신이 내가 아닌 첫 시간, 눈 감은 수은등 대신 당신의 방을 지키려 하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상상뿐 손을 쥐고 태어났지 만 처음부터 빈손이었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사과를 깎는 일과 같더군 손을 베이고 나서야 나를 향해 칼을 쥐고 있다는 걸 알았네 당신을 코르크 마개처럼 빼낼 순 없겠지 하지만 이제 배경이 되어야 할 시간 그동안 고단했을 수은등을 놓아줘야 할 뿐 초승달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네 나와 눈이 마주친 별들이 하나 둘 흥건 히 떨고 있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상상뿐, 이제 당신도 상상이 되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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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면 됐지

수평을 잡을 수 없었던 여섯 짝짜리 장롱, 끝내 바로 서지 못한다 아내는 그중 두 짝을 씻긴다 어차피 여섯 짝 다 채울 옷도 없어요 두 짝 팔면 아저씨들 점심값은 되겠 네요 아내는 연이어 식기세척기를, 소파를, 청소기를 정 성껏 씻긴다 점심으로 장롱 두 짝을 먹게 되겠지 어느 날 아내는 식기세척기를 굽겠지 어떤 날에는 소파와 청소기 를 무치겠지 여보, 그깟 집이야 또 열심히 벌어서 다시 사면 되잖아 요 우리 젊은데 뭐가 걱정이에요 아내의 말끝을 방정맞은 오토바이가 잘라 먹는다 철가방이 허겁지겁 뜨거운 속내 를 털어 놓는다 여보, 이 집으로 우리 딸내미 살렸잖아요 그거면 됐죠 눈동자 가득 짜장면을 묻힌 네 살배기 딸아 이 유월 햇살에 잘 비벼진 면발이 탱탱하다 단무지 한 쪽 이 노랗게 웃는다 젊은 내외가 복 받을랑가벼, 이십 년 넘게 이삿짐을 날 랐지만 오늘처럼 날씨 존 날은 첨 본당게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참말이여, 참말∼ 입술에 짜장 칠을 한 인부가 달 짝지근한 말을 한 젓가락 건넨다 아내는 탕수육 접시를 슬며시 앞으로 내민다 탕수육 씹는 소리가 노릇노릇 바삭 바삭하다 아내의 등 뒤로 탕수육 소스 같은 햇살이 달콤 하다 그래, 그거면 됐지1) 1) 14기.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당선. 2012년《시작》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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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흔(躊躇痕) 외 1편 김경주

몇 세기 전 지층이 발견되었다 그는 지층에 묻혀 있던 짐승의 울음소리를 조심히 벗겨내 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발굴한 화석의 연대기를 물었고 다투어서 생몰 연대를 찾았다 그는 다시 몇 세기 전 돌 속으로 스민 빗방울을 조금씩 긁 어내면서 자꾸만 캄캄한 동굴 속에서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굴 밖에선 횃불이 마구 날아들었고 눈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가진 돌들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법인데 그 것은 돌 속으로 들어간 몇 세기 전 바람과 빛 덩이들이 곤죽을 이루고 있 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썩지 못하고 땅이 뒤집어져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일 시간에 귀속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서로 전이 를 일으키기도 한다 화석의 내부에서 빗방울과 햇빛과 바람을 다 빼내면 이 화석은 죽을 것이다 76


〉 그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피를 나누어 가진 것이 아니라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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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의 시제

마지막으로 그 방의 형광등 수명을 기록한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는 건 손톱이 자라고 있다는 느낌과 동일한 거 저녁에 잠들 곳을 찾는 다는 건 머리칼과 구름은 같은 성분이라는 거 처음 눈물이라는 것을 가졌을 때는 시제를 이해한다는 느낌, 내가 지금껏 이해한 시제는 오한에 걸 려 누워 있을 때마다 머리맡에 놓인 숲, 한 사람이 죽으 면 태어날 것 같던 구름, 사람을 만나면 입술만을 기억하고 구름 색깔의 벌레를 모으던 소녀가 몰래 보여준 납작한 가슴과 가장 마지막에 보여주던 일기장 속의 화원 같은 것을 생각한다 그곳에는 처음도 끝도 없는 위로를 위해 처음 본 사람이 필요했고 자신의 수명을 모르는 꽃들만 살아남았다 오늘 중얼거리던 이방異邦은 내가 배운 적 없는 시제 에서 피는 또 하나의 시제, 오늘 자신의 수명을 모르는 꽃은 내일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된다 구름은 어느 쪽이건 죽은 자의 머리칼 냄새가 나고 중 국 수정 속으로 들어간 곤충의 무심한 눈 같은 어느 날 사람의 눈으로 들어온 시차가 구름의 수명을 위로한다1)

1) 15기. 2003년〈대한매일〉신춘문예 등단. 시집으로『나는 세상에 없는 계절』(2006,랜덤하우스중앙)『기담』(2008, 문학과지성사) 『시차의 눈을 달랜다』(2009,민음사) 산문 집으로『패스포트』(2006, 랜덤하우스코리아)『밀어』 (2012,문학동네) 등이 있음. 2005년 대산창작기금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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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초상화 외 1편 고태관

벽에 걸려있는 풍경화 속 카리브의 수평선으로 가는 동안 눈을 찌르는 야자수의 긴 속눈썹을 조심하세요 밥 말리의 악보를 펼쳤습니다 젖은 캔버스를 준비했습니다 세워둔 이젤은 해변에 찾아오는 우기가 되어 흔들립니다 축축해진 손가락으로 6호 붓을 쥡니다 좁은 방에서 모래가 된 공기를 털어 냅니다 두꺼운 커튼에 숨겨둔 모래성이 허물어집니다 연보라색 페인트통에 마른 붓으로 불을 지피겠습니다 근사한 멜로디를 포근하게 껴안은 가사로 한 곡 부탁해 요 깨진 술병 조각들과 버려진 슬리퍼를 실어나르는 파 도가 인적이 뜸한 백사장을 완성합니다 표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팔자주름을 먼저 그립니다 긴 의자에 누워있 는 날렵한 등허리를 스케치합니다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쪼그려 앉아있는 정수리를 등고선으로 크로키해 둔 적이 있습니다 거기를 오르내 리느라 가빠진 숨소리를 가장자리에 작게 씁니다 목이 긴 병에 종이를 말아 넣기 직전 병뚜껑을 열고 부는 바 로 그 숨결입니다 바다로 가는 길을 묻지 않아도 될 새로운 겨울이 찾 아왔습니다 79


오 분 전

식사를 꼬박꼬박 챙기는 포만감에 대해서 어쩐지 조여 맨 넥타이처럼 갑갑합니다 밥을 뜬 숟갈 위에 고기반찬을 올린 다음 발성 연습하듯 입을 크게 벌리는 건 식사시간이 키우는 새가 된 기분 나의 젓가락질은 집는다기보다 쥐고 비트는 방법에 가까워요 졸려도 놀고 싶은 아이는 잠든지도 모르고 팔에 힘이 빠지고 뛰어노느라 가벼워진 심장은 거울에 비친 표정을 보고 크게 하품을 합니다 무엇을 정해 놓고 살았을까요 내일이면 정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집니다 비가 오는 날 외출을 하면 신발이 젖고 우산을 잃어버립니다 집에서 빗소리를 무료로 들을 수 있어요 가로수의 젖은 정수리가 마를 때까지 교향곡 마지막 악장에 귀를 기울입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오 분이 지나갑니다 화들짝 놀라 박수 칠 준비를 하세요 짝짝짝 새로운 오 분이 놓여집니다1)

1) 1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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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은 알까 외 1편 정은정

가난한 집들에게 등을 기댄 목련 나무는 어쩌자고 투박한 내 발걸음을 붙드는지 서투른 나는 하얗게 마음을 켜놓지도 못하고 그저 가방만 고쳐 맬 뿐이다 수많은 부딪힘 속에서 한 올씩 제 몸이 낡아버린 청가방은 이제 작은 짐조차도 힘들어 한다 목련꽃 하나가 돌아눕듯이 심장 속 열꽃은 저물어 청가방의 한구석에 남을까 담 위로 박혀 있는 사이다 병들처럼 날이 선 눈으로 다시 목련을 바라본다 사랑아, 나는 비인 가방으로 너에게 간다 너에게 가서 저 닫힌 문 앞에 마음을 꿇리고 오래도록 내 이름만을 네 마음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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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전화기

여름과 가을의 옷을 바꿔 걸면서 소통의 창에 가느다란 실도 같이 걸어본다 쭈그려 좌판에 앉아 여남은 나물을 파는 아낙이 아직은 존재하고 커다란 눈망울이 마음을 끄는 동심과 불어보고 싶은 희망이 가득 호주머니에 들어 있다 아침에 차려진 밥상에서 나물은 싱싱한 색으로 몸을 씻기고 놀이터 가장자리에 고이는 어린 웃음이 젊어진 하루를 선사한다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이 가난한 어머니의 몸빼 바지에서 나온 것처럼 유년의 골목을 돌아 웅크려 보는 것이다 저 멀리 이국에서 땅 끝을 지나 불어오는 대지의 바람처럼 오래 머물 초록이 진을 치는 온난한 삶이 스쳐간다 달의 긴긴 밤을 달래는 옥토끼의 절구질이 심심한 인생의 동화가 되는 것처럼1)

1) 1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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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외 1편 최민영

양말을 신다가 구멍 사이로 동그란 엄지발가락 쑥 튀어나왔지요 어찌 보면 어머니의 다리 사이에서 거꾸로 나온 나의 엉덩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버지가 안개를 뚫고 항해하는 뱃머리 같기도 했지 요 바람 숭숭 들어오는 항구에서 수평선을 뚫고 불어오는 숨결에 대해 생각하죠 선상 위에서 지글지글 라면에 꽃게를 넣고 훌훌 불어 먹는 아버지의 동그란 입에서 나온 한숨이 랄까 저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비릿한 게 냄새 같은 것이 있어 나는 두 콧구멍 벌렁대며 아버지를 기다리지요 나의 푸른 엉덩이가 서른 해의 바람을 견디기까지 세상의 골목은 어둡고 좁고 퍽퍽한 양말의 목 그 깊은 터널 속에서 나는 청춘을 갉아 먹는 한 마리 좀이어도 좀 더, 조금만 더 반듯한 길 하나 내고 싶었을까요? 좀처럼 늘지 않는 이력에 실밥 터지듯 삶의 달력에도 구멍이 폭죽처럼 펑, 펑 터지죠 하늘에 뜬 별도 달도 우주에서 보면 동그란 엄지발가락일 텐데 길 못 찾고 헤매는 아버지나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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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종일 하늘만 쳐다볼 테죠 구멍 난 양말을 삐뚤빼뚤 꿰매는 동안 아버지의 바다도 나의 청춘도 지퍼마냥 조금씩 닫히는데 한 쪽으로 기운 초승달처럼 숨통은 조금 열어두는 것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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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

붉은 가죽을 젖히며 중년 남자들이 들어선다. 가죽의 안쪽 에서 얽히고설킨 얇은 혈관이 팔딱팔딱 거린다. 갈래갈래 뻗 어나간 혈관 끝으로 몇 십 촉 전구알들이 늑대 눈알처럼 충 혈된다. 남자들은 이마가 반쯤 벗겨졌거나 오십견이 둥글게 솟았거나 등허리가 휘었거나 넥타이가 아무렇게 매어져 있다 거나 상관없이, 제자리를 안다는 듯 등받이 없는 간이의자에 앉는다. 홍합탕은 팔팔 끓어오르고 조개의 단단한 껍질 속에서 살 결이 말랑하게 빠져나오듯 감출 수 없는 속내가 있다. 불그 스레한 사내들은 손등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튀어나온 푸른 혈관을 바라보며 감전을 상상했을까. 조갯살을 맛보는 혀가 뜨거워 더 짜릿한 중년의 가죽들. 흐물흐물해진 가죽의 기슭에 기대는 남자들의 겨울밤, 안 팎에서 꺼지지 않는 저 홍등. 국수를 말던 아주머니가 테이 블에 엎드려 잠든 남자의 뚜껑을 열고 육수를 붓는다. 둥근 전구가 되어 환한 포장마차 위로 눈발이 설탕처럼 쏟아진다.1)

1) 1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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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 외 1편 김경나

몸도 사생활이 있겠지요? 샛별, 저녁별, 금성은 다 다른 말 두 눈은 서로 닮지 않았어요 눈을 간지럼 태우기도 하고 눈꼽 떼어주고 가거나 눈은 그래서 손을 좋아합니다 나무가 나무만 있는 게 아니듯 가끔 수척한 새가 드나들고 옹이와 잎사귀처럼 팔에 엎드려 있는 놀이도 하지요 눈과 별은 저 끝에 닿아 있고 몸은 골목입니다 서로를 알아보니까요 술 한 잔 줄까 고개를 흔듭니다 긴 시간을 일하다가 눈 감는 일은 몸에게 일어난 불을 끄는 일 모두 깊은 잠에 빠지는 시간입니다 가슴도 별들도 하지만 난 믿지 않아요 별은 그대가 낳았으니까요 뒤척이는 밤 어딘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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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을 잊기 위해 아파하듯 새벽이 오면 아침을 짓기 위해 제 몸이 분주한 소리가 들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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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밤

꿈 속에서 신부(神父)가 뒤에서 나를 가만히 껴안았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나 나를 자꾸 유혹하는 것이 신부의 아픔 때문인지 이 자유로움은 내 어디에서 나와 흐르고 있는 거지 읽고 있던 책이 조용한 바람에 흔들렸다 뒷장이 닫히지 않는 문처럼 삐거덕거리고 있었다 이상도 하지 책은 세워놓아도 밤하늘 별처럼 글씨들이 쏟아져내리지 않는다 올라와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저 높이에까지 목울대는 마치 자유의 여신처럼 남자에 대한 내 마음의 상징이 되었을 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별이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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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집처럼 허물어질 것 같은 한 남자는 곧 가을이 오리라는 어리석은 믿음이 눈에 들어 있다 그가 입은 옷은 계절을 알 수 없는 냄새에 둘러싸여 있었다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1)

1) 24기. 2011년〈경인일보〉신춘문예 소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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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를 걷는 달처럼 외 1편

최종열

돌고 있는 자전거 바퀴의 바람소리 매달 돌고 있는 지구를 돌고 있는 달,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 평상 위에 앉은 노파는 항상 그 자리에서 떠나버린 바람을 기다린다

병상에 초췌하게 누운 남편 발이 닿지 않아 달무리로 허우적대는 달을 보며 구름을 움직여 주고 싶었을까 남편은 식어버린 바람이 되어 창문 너머에 있는 구름을 움직이러 갔다

세월에 낡아버린 평상, 노파의 자리에 그리움이 젖어든다 달에 구름이 닿을 때 부는 바람은 유독 편안하다 그때서야 노파는 평상을 떠난다 마치, 바람이 감싸 안아 집으로 이끌어 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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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은 나무

나무는 철조망을 건너 왔다 고향땅은 손짓을 하지만 닿을 수 없는, 건널 수 없는, 나뭇잎을 뜯어 전보를 날린다 고향에서 날아온 낙옆은 늙어 제 역할 못하고 피폐하다 나무는 수액을 뿜어낸다

나무의 드문드문 벗겨진 살갗에 새살이 돋고 있다 손끝에 닿은 바람이 유독 차게 느껴지면 나무의 가지는 고향땅으로 손을 뻗고 있다 그리운 마음이 커질 때마다 나무의 나이테는 늘어간다

국토를 메우는 나무들 고향땅 그리워 하지만 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렀다 철조망 아래께에는 고향을 그리워한 나무들 뿌리가 상봉을 하고 있다1)

1) 24기.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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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해주세요 외 1편 남승훈

알고 싶어요

바이킹을 타러 왔다는 구나 마마 벌써 몇 번째예요? 미니 사탕 껍질 좀 벗기렴 마마를 이해할 수 없어요 다 너를 위해서야 무슨 일이야? 미키 다녀올게 혼자 두지 마 아직 샤워도 안 했다고 빨리 끝내 안 들어가잖아 움 직이기나 해 빨간색 좋아해? 긴장 풀어 안전하지? 도중 에 못 내려 쪼그라들었잖아 망할 다리에 힘 풀려 즐거 워? 널 보니까 오징어가 먹고 싶어 미니만 재밌게 노는 것 같니? 마마의 하이힐 소리가 무서워 구피야 사탕 껍 질 좀 벗기렴 할짝할짝 싫어 미키 또 방에 기어들어가 지 꽥꽥 도날드 대화를 하자구나 마마는 아무것도 몰라 데이지는 회전목마 타고 있어 오 이런 미니 옷 꼴이 그 게 뭐니 오다리가 돼서 치마도 못 입어요 그럼 진찰을 받아야지 마마 설마 잊어버린 건 아니죠? 의사 선생이 마침 오는구나 빅 쓰리 고마운 분이지 진료받기 싫어요 어디가 아프니? 보여주기 싫어 범버카 타러 갈까? 미니 실밥을 풀고 약을 발라주실 게다 나도 데려가 미니 할 짝할짝 엉덩이를 핥아대 개같이 너무 오래 참았어 줄이 나 풀러요 도날드 사탕 껍질 좀 벗기렴 먹을 생각도 없 으면서 전화벨이 울리는구나 꽥꽥 데이지가 내려올 거 다 아-하고 벌리렴 맛없어 착용감이 좋구나 입으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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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지 마세요 알코올이란다 시트에 오줌이나 갈기지 마시라구요 털이 참 까맣구나 무거워 부들부들 잔

물결치기도 하지 어디까지 청진기를 대는 거예요? 꼬 리가 길면 잡힌단다 선생님 말고도 손님은 많아요 미니 찍찍 뱉지 마라 시간이 다 됐네요 진료시간을 왜 네가 정하니? 구피하고 노세요 할짝할짝 마마 구역질 나 사 탕 껍질 좀 벗기렴 망할 치과 선생이 방문할 거다 난 사탕을 먹지 않았어요 관람차는 어떻게 타야 재밌어? 발발거리면서 뛰어 개같은 구피 의사놀이 안 끝났어 미 키는 어디 갔죠? 사탕 껍질 좀 벗기렴 마마 사탕 같은 건 아무렴 어때요? 녹아내리고 싶어서야 안녕 친구들 미키가 어디로 갔다고 생각하니? 마마 이것으로 마지막 이에요 심각한 얼굴하지 말고 씩 웃어 봐 너도 오다리 돼볼래? 너를 보러 왔어 난 네 여자 친구가 아니라고 내 모습 기억해? 본 적 없어 거울 달린 천장도 있었는 데 나는 미니야 볼 만 했지 양말이나 벗을래? 그날도 이렇게 시작했지 미키 자이로드롭 타러 가자구나 꽥꽥 도날드 뭘 숨기고 있지? 사탕 껍질 좀 벗기렴 미키 미 니가 보고 싶어 사탕을 먹어 보렴 신사숙녀 여러분 마 지막 진찰이에요 짝할짝할 엉덩이에 경련이 난 것 뿐이 란다 데이지 구피 뺨 좀 때리려무나 마마 놀이기구가 더 필요해요 입구는 너 하나로 충분해 꽥꽥 대답해 도 날드 좌변기가 사랑스러워 물 내려줄 테니까 꺼져 특히 여기가 그래요 데이지 집도할 곳이 많구나 미키 미니는 돌아오지 않아 사탕 껍질 좀 벗겨줄까요? 이제야 이해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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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둘이면 둘이지 셋이겠느냐 셋이면 셋이지 넷은 아니야 넷이면 넷이지 다섯 아니야 랄랄랄라 랄랄랄라 라라라 랄랄랄라 랄랄랄라 라라라 다섯이면 다섯이지 여섯 아니야…*

활짝

*만화 ‘영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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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얼굴을 몰라

4 한낮에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사방을 굽어본다 아파트는 소화불량이고 개미집 같아 빌라 단지를 거닐어보자 바글바글 고함과 매 맞는 소리가 기어다녀 2 강남공원에는 엄마와 아이들이 많대 엄마들은 아이들이 놀다가 돌아올 때까지 벤치에 앉아 골똘히 생각을 한대 무관심이 이곳의 암묵적인 룰이래 매일 공원집시 모녀가 머물다 떠난대 이곳의 아이들이 자라서 어디로든 가야 할 때 지하철은 엄마처럼 아무 말 없이 행선지로 끌고 간대 1 맥도날드 2층 창가에서 햄버거를 먹다 말고 너는 고 백했지 3 연필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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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전인가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듣고 있었어요 비가 내렸고 비교적 슬픈 멜로디라 울컥 또 울컥했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한 차례의 비가 쏟아지고 전화를 끊고 노래는 끝나지 않았지만 낯설게도 슬프지 않았어요 요즘 눈이 뻑뻑한 것 같아요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나요? 공원에 몰려든 비둘기에게 말을 걸어본다든지 5 테니스 코트 철조망 같은 철조망 너머는 설탕 공장이 야 공장 부근에 난 가로수를 핥고 싶어 걸어 가다가 뒷문 문턱에 앉은 사나이를 보았지 까만 델몬트 바나나 같아 반사적으로 그의 얼굴을 벗기고 으적거리며 원산지를 떠올렸어 어디 바나나 뿐이냐며 인력사무소 장씨는 일용직 아 저씨들과 혀를 찼대 때마침 휴대폰으로 문자가 도착했어 [신.한] [8월특별혜택] 연 6.5% 마이너스 통장 발급 대상입니다. 한도 확인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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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나이는 손바닥이 바나나 껍질인데도 놀라지 않더라 고 욕먹어도 할 수 없는 건 비둘기라나1)

1) 26기. 원광대학교 국문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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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대의 바다에서 온 편지 외 1편 박상길

먹물을 먹은 포식자는 오징어를 잡았다고 착각한다 그 순간만큼은 꿈을 꾼다 서로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입을 맞추는 연인들처럼 오늘 저녁은 수족관에 갇힌 오징어의 깊은 눈망울을 닮는다 심해에 두고 온 말들이 떠오르지 않아 실어증을 앓는 나날 밤이 깊어갈수록 편지에 옮기지 못한 채 저 며지는 말의 소요들 모르는 사람이라도 꿈에서 자꾸 보다보면 아는 사람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먹물처럼 점성이 강한 밤에는 가 끔 그리워했던 것 같은 감정이 찾아오기도 한다 자꾸 흩어져 어딘가로 흘러가버리는 저녁처럼, 형체가 불분 명한 딱딱해진 입술로는 까마귀처럼 울 수 없다 어제를, 어제의 어제를, 또 그 한참 어제를 건너온 저녁을 맞는다 그의 뼈는 입 안에 갇힌 패각이자 네 멸 종의 증거이기도 하다 얼굴 없는 애인처럼 기억나지 않 을 오늘밤을 꿈꾸기에 이곳은 적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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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뼈

유리는 풍경을 견디고 있는 것 유리창 너머 전봇대를 보며 생각한다 가시처럼 박혀 있는 전봇대 위로 바람을 맞으며 아버지는 흰 구름을 잡으러 올라갔다 뜬구름 잡는 소리 같은 월급날을 떠올리곤 늘어진 전선을 팽팽하게 조이며 견디고 있었다 높이는 버텨냈지만 무게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가시가 되어버린 아버지는 유리조각이었다 깨지는 순간까지 속으로 눌러담았을 신음이 뛰쳐나와,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는다 금방이라도 쨍그랑 깨질 것 같았던 아버지의 어깨는 아물지 못한 풍경이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우는 것이라고 잃어버린 파편을 찾듯 속으로 되뇌이다 전봇대 같은 가시 하나가 내 마음의 유리창에 서 있어 나는 소리를 입속에 머금는다 유리는 안과 밖의 풍경을 견디는 것 바람 불어도 단단한 창문에 비치는 나는 구름을 떠올려본 적이 있던가 살이 오른 햇볕이 유리가 있는 풍경을 물렁하게 감싼다1) 1) 26기.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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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적(筆跡) 외 1편 이재인

편지지를 지탱하는 건 추억이라는 표면장력뿐이다 빗물이 떨어진 공책 위 자국은 검은 여백을 밀어내고 올라온다 갈라지는 표면 사이로 기억이 비친다 긴 장마가 송장처럼 질질 지나간 무덤이 변색된 속내를 보인다 매순간 끝으로 매달리는 지금, 넘치려는 그리고 가라앉으려는 지금 나는 어제까지 혹은 이제까지 사람의 말에는 없는 비 문(非文)으로 내게 이름 붙였다 이 믿음으로 기약했던 낱말 몇, 허공 위로 걸어간다 외로운 문장들이 서로를 향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한다 간신히 펜 끝에 기억을 매달고 필압만큼 주저앉아 자음은 스스로 울지 못해 모음을 불렀다 그곳은 울음이 갇힌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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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나는 느낀다 소근대는 이름마다 쓰여지지 않았다 기억하지 않은 것을 잊는다 죽은 자는 무덤을 떠난다 알고도 외면하는 의문들 나는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잊을 것이다 죽는 자의 방향은 삶이다 잔상을 오래 남기는 사람이 이기기로 하고 게임을 시작한다 아프지 않을 때까지 맞고만 있었다 이것은 모국어가 다른 이방인들이 하는 끝말잇기, 나는 느리다 나는 느낀다 나는 느낌이다 나는 늘 있 다 나를 믿는다1) 1) 27기.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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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 외 1편 김석현

남자는 잘린 부처의 머리를 들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부처와 나의 눈물만이 살아 움직였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눈물을 받아 내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 더 이상 눈물을 주지 않았다 어렸을 적 금빛으로 반짝이는 부처에게 사람들이 나를 위해 울게 하라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럼 나도 당신처럼 금을 두르고 살리라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들을 보는 건지 눈물을 보는 건지 사람들은 눈으로 나를 보는 건지 눈물로 나를 보는 건지 이내 곧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오로지 주위에는 짠내만이 풍겼다 나는 금빛으로 반짝였다 부처를 죽인 순간 내 몸을 이 땅에 얽매고 있던 금빛 옷은 벗겨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 숭고함으로 나는 부처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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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너는 언제 사막으로 들어섰느냐 황폐하고 건조한 그 지옥에서 사막의 모래만이 너를 채워주는 지옥에서 너는 걷고 있구나 너의 밝던 웃음도 뽀얗던 피부도 무거운 열기에 메마른 모래에 눈물이 되어 잃어버리는구나 잔인한 세상에 뼈만 남아 쓰러져도 다시 한 번 웃어보거라 네가 걸어왔던 길 네가 흘린 원망은 썩어가 거름이 되었다 나는 이미 씨앗이 되어 그 썩은내 나는 메마른 길 위에 싹을 틔웠다 이제 네 그늘을 위해 자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네가 웃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1)

1) 29기. 원광대학교 불문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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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序曲) 외 1편 김하늘

숨 쉬듯이 노래하진 않을게 벽돌 나라 공주님께 사탕을 드렸어 달콤한 나머지 혀를 솔직하게 굴렸더니 사탕은 금세 녹아버리고 말았어 공주님은 말이 많아서 친구가 없었지 이젠 솔직해지지 않기로 해 혀가 들어오면 감싸주지 않아도 키스니까 그래서 거울에만 말하는 왕비가 됐어 불안할 때마다 왕비는 공주님처럼 벽돌을 잘라 입에 넣었지 입 안에 공주님을 위한 왕궁이 쌓이기 시작해 나라가 몰락했다고 슬퍼하지 마 전쟁고아가 모여서 봐 전쟁고아의 나라가 생겼어 차곡차곡 쌓았더니 그래도 사탕을 잔뜩 사서 고향으로 갈래 갈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왜 공주님은 모두 왕비에게 사랑한다 말한 적이 없을까 오늘도 벽돌과 벽돌 사이에 시멘트를 잔뜩 넣겠다고 왕비를 보러 가기 전에 다짐하는 공주님 지붕은 벽돌이 아닌데 어쩌지 벽돌 나라의 건물은 위태롭게 흔들려도 지붕 없이 높아지기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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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스가 부족해서 그러니? 요정님, 바람에 나풀거리는 혀는 이제 필요 없어요 왕비를 공주님으로 치장하고 대모요정은 떠나겠다고 했지만 공주님은 문을 잠갔어 요정님 미안하지만 여긴 내 입속 왕궁이랍니다 숨은 때때로 변주되니까 노래하듯이 숨쉬기로 해 무작정 왕과 결혼하면 공주님처럼 살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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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를 자르지 마세요

복숭아에게 거실을 빼앗겼다 가족 모두 모여서 왁자지껄 먹으라는 듯 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복숭아 접시, 내가 언니니까 오늘은 방에 들어가 주는 거야 모처럼 거실에서 교과서를 폈는데 엄마가 복숭아 한 바구니 사왔다 땀범벅인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딸 역시 아빠보다 엄마가 좋지? 식판을 대신 버려주던 아이, 책상 위에 우유병 두고 가던 아이는 어느 날 내 손을 한 짝씩 잡고 내가 좋아, 얘가 좋아? 침을 튀기면서 말했지 손도 둘이고 눈도 둘이고 발도 둘인데 물도 잔뜩 뒤집어썼는데 이젠 모두에게 단맛을 나눠줘도 괜찮을 텐데 복숭아 집어 싹뚝 자르면 자르느라 생긴 평탄한 결을 타고 단물이 접시에 흘러 고이니 안 돼 아무것도 나누지 못하고 발그레 얼굴을 붉혔다 106


〉 주변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얼굴을 붉힌 채 복숭아 하나 집어서 입 안 가득 깨물어 먹었다 1)

1) 29기.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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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비비고 싶은 날이다 외 1편 최진희

비비고 비벼서 찢어질 때까지 양 손으로 하나씩 책임 지고 벅벅 눈으로 향하는 손을 손으로 잡았다 양 손이 벌개져서 피라도 나는 줄 알았다 순전히 비볐기 때문인 데 피 대신 진물이 올라왔고 모든 게 수포로 바꿨다 내 손은 줄줄이 세어갔다 참을 수 없어 발을 올렸다 발로 눈을 비빌 수는 없었다 유연성 없이 딱딱히 굳어 버려 서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허벅지만 땡겨 늘어나다 찢어 졌다 집을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이 비비적거리며 바 닥을 기었다 눈을 비비고 싶어요. 비비고 비벼서 찢어 질 때까지 찢어진 눈 사이로 앞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언제까지고 눈을 비비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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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테이션 추억

우리는 그날 보석함 안에서 보석이었어 밖이 보이지 않는 창문에 팔을 괴고 있었고 원색뿐인 공간에서 같은 곳을 응시하기도 했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포즈를 취했고 급하게 장소를 옮겨 다녔어 그리곤 날짜를 박아 넣고 이름을 쓰고 효과를 줘서 포장했지 수많은 사진 중 맘에 드는 걸 몇 개 골라 주름 속에 끼워두고 휴지통에 넣어 보정은 기본으로 해야지 연출은 보호색처럼 사실은 자연스러워야 하거든 오버는 가끔! 마음에 들지 않으면 휴지통 속에 들어가 쓰레기차는 오지 않을 거니까 네모반듯한 세계를 다녀와서 네모나게 인쇄되어 나온 사진을 바라본다 1)

1) 29기.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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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답 외 1편 임영재

엊그제 사온 주황색 일회용 라이터가 사라졌다 내 엉덩이 밑에도 쓰레기통 밑에도 없다 허둥지둥 라이터를 찾아 해매는 나는 힘에 부쳤다 이도저도 아니다 개중에는 잃어버린 라이터와 헷갈리는 것들도 있었지만 불의 불조차, 아니, 트림도 할 수 없는 죽은 것들이다 죽은 것들 투성이 다 물고 있는 담배의 꼭지에는 침이 젖었고 아마도 욕구불만일 법하다 주황색 라이터를 동전과 교환했을 엊그제 나는 그녀의 눈빛을 봤다 캐셔, 라고도 불리 지 않는 인생의 눈꺼풀엔 안개가 조금 끼어 있었다 다른 흡연 자들은 그깟 일회용 라이터가 중요한 것이냐, 색이 다른 그 것을 건넬 테고 연기는 비 오다 만 하늘 속으로 잘도 희석될 것이다 엊그제 부러 라이터의 색을 고르는 척, 그녀의 목과 귀 옆에 박혀 있는 잔털을 관찰했다 내 이상형에 충족된 여성 을 오히려 죽이고 싶었다 주황색을 골랐다 그녀를 데려 와 죽였 다 라이터는 조금 빡빡했고 연기는 흐물거렸다 그 여자는 휴지 속 에서 숨을 거뒀다 주황 타령을 하며 방바닥을 기어다닌다 엊그제의 기 억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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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릎에 조금 묻는다 담배는 여전히 욕구 불만이고 폭 삭 마른 털과 질내사정을 당한 여자는 휴지통 속에서 숨을 쉬지 않 고 비는 여전히 오다가 말고 누군가는 나에게 색이 다른 라이터를 건 넬테고 나는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다 아무것도, 아무도 내가 찾는 것엔 관심 없다 죽었거나 죽어가는 것들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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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과 고립이 동시에 보이는 외벽과 마주쳤다

자세를 바꿀 때가 된 거야, 딱딱하게 다져진 각을 새 것으로 만들기 위해. 두 덩이가 그린 직각은 통증이 진득히 묻은 곡선으 로, 찌그러졌다 유리벽 한 켠에는 고상하게 자리잡은 인내의 입냄새 자국과 무거운 매려움이 묻어 있는 자세의 흔적이 빼곡했다. 알맹이는 반항기 가득한 선이 되었다 좀 쑤시는 엉덩이를 비틀며 서로의 줄을 잡고 내려온 다 차분히 쌓이는 척, 그러나 근육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단 일초의 휴식조차도 과분해, 시간의 손찌검이 한 차례 쓸고 간다 앞서 도착한 각진 시간의 새끼들 중 몇몇은 불만을 분말로 휘날리며 수십 분을 또 참아야 됨을 텁텁하게 다짐한다. 새로운 각이 쌓이는 와중에, 언젠가 위쪽이었던 아래 쪽의 유리벽엔 아직 성에가 낄 정도의 고통은 없다 하지만 육중한 궁둥이에 기지개를 곁들일 휴식시간은 아직 멀었다 조금 더 부둥키고 있을 시간에 비하면. 흐름과 고립이 동시에 보이는 외벽과 마주쳤다,1)

1) 30기.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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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걸음 외 1편 채도영

초등학교 삼학년 때 썼던 노트를 발견했다 삐뚤빼뚤한 글씨가 못났다고 아무도 놀리지 않았는데 나는 성장하면서 바르게 쓰려고 노력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한 글씨를 볼 때면 뿌듯함을 느꼈다 그땐 아무 생각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시를 썼는데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자꾸 작법 책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썼다 지웠다 반복할 뿐 여전히 비어 있었다 종이는 시 속에 나를 담아낼 때 나는 첫 행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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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서 본 바다

하얀 크림으로 얼굴에 수염을 그렸다 면도를 하면서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서 바다를 보았다 한 소년이 모래성을 쌓았다 소년이 모래성을 완성하자 파도가 다가와서 모래성을 빼앗았다 소년은 울상을 지었다 파도에 밀려온 거품이 산산이 부서졌다 거울 속에 비쳤던 바다가 사라졌다 어른이 된 소년은 손으로 닦아내버렸다 얼굴에 남아있는 거품을1)

1) 30기. 원광대학교 국문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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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문학회 연혁

현재의 원광문학회는 70년대 말에 활동하던 [만경 강] [갈밭] [청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각 동인회 의 구성과 활동 내용은 다음과 같다. 故 朴沈植 교수께 서 지도하시던 [市外文學同人會]는 1972년 3월을 기 하여 [萬頃江同人文學會]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하였다. 이후 박학기, 하미송, 우미자, 이성근, 유태종, 성백일, 김진모 , 장세진, 유신영, 박종렬, 최기종, 김광원 등의 동인들이 [萬頃江同人文學會]에서 활동하였다. 이들 가 운데 박윤기(1978년 중앙일보, 詩), 우미자(1984년 詩文學, 詩)등이 문단에 등단했다. 1977년 첫 同人誌 [萬頃江文學]이 발간된 이래 연간으로 5집까지 발행하 였다. 한편 1975년부터 갈밭 문학동인회가 만들어졌는데, 동인으로는 김경은, 최문수, 황의상, 박남수, 배종남, 이 상용, 백학기, 박문식, 신종균, 강태형, 박상범, 박선희, 서정우, 권강주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최문수(1983 년 조선일보, 詩), 백학기(1981년 현대문학, 한국문학 詩) 강태형(1982년 서울신문 詩) 등이 문단에 등단했 으며, 다년간 李京洙 교수가 지도를 맡았다. 또 1980년부터 한 3년간 金鎭國 교수가 지도를 맡 은 [청뫼文學同人會]에서는 정영길, 안도현, 원희숙, 이 용범, 이정하, 최미정, 황인수, 김영춘, 권오성, 원재훈 등이 활동했다. 이들 가운데 정영길(1980년 서울신문, 詩, 1985년 동아일보, 小說), 안도현(1984년 동아일 115


보, 詩), 이정하(1987년 경남신문, 詩) 등이 등단하였 다. [만경강] [갈밭] [청뫼] 이 세 文學同人會가 70년대 말 따로 활동하다가 1982년 총학생회 체제에 의한 동 아리 등록의 필요성에 의하여 [圓光文學會]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통합 등록하였고 지도에는 故 朴沈植 교수께 서 맡았다.

1981년 백학기 동인 현대문학 시 추천완료, 한국문학 신인상 시 당선/정영길 동인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가 작.

1982년 <원광문학회>로 통합/제1회 문학의 밤(초청 작가: 이경수 교수)/강태형 동인 서울신문 시 당선.

1983년 제2회 문학의 밤/가두 시낭송 및 시화전. 1984년 제3회 문학의 밤 및 문학 강연회(초청작가: 홍석영 교수) 및 시극 공연/가두 시낭송 및 시화전/본 회 주최 제1회 교내백일장 실시/안도현 동인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5년 제4회 문학의 밤 및 문학 강연회(초청작가: 다산연구가 박석무)/교내 시화전/제2회 교내백일장 실 시/정영길 동인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서태 종 동인 시조문학 추천 완료/이요섭 동인 한국문학 신 인상 시조 당선.

1986년 제5회 문학의 밤 및 문학강연회/시낭송 및 시화전/이진영 동인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이용범 116


동인 소설문학 신인상 시 당선.

1987년 제6회 문학의 밤/<부사리> 창간호 발간/시 화전 및 시극 공연/유강희 동인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이정하 동인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시와 경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8년 제7회 문학의 밤/시화전 및 전북지역 5개 대 학 연합 시낭송/김영춘 동인 실천문학 등단/채완순 동 인 원광문예 시부문 당선/윤성근 동인 대구 한의대 제 한 문학상 시부문 당선.

1989년 제8회 전교조 지지를 위한 문학의 밤 및 시 화전/부사리 2집 발간『나에게 바람이 오고』/박윤근 동인 원광문예 시부문 당선.

1990년 제9회 문학의 밤/전북 4개 대학 문학회 연 합 시화전/송현섭 동인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1년 제10회 문학의 밤/부사리 3집 발간 『달과 까마귀』발간/전북 4개 대학 문학회 연합 시화전/제3회 교내 백일장/유승준 동인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최 상 동인 원광문예 시부문 당선/김용 동인 전북산업 대 금강문학상 시부문 당선.

1992년 제 11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곽재구 시인)/ 부사리 4집『기차는 길다 괴로움의 증거다』 발간/송현 섭 동인 문학사상 신인상 시부문 당선 /원광문예대상 시(송종안), 소설(문연숙), 수필(윤성근), 평론(최상)부 문 당선/윤성근 동인 전북대 황토현 문학상, 동아대 동 117


아문학상, 전남대 오월문학상 당선.

1993년 제12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황동규 시인)/ 강태형 동인 (주)문학동네 창립/ 최상 동인 전남일보 시 당선/ 조대호 동인 계명대 계명문학상 시 당선/ 서 광일, 조대호 동인 원광문예대상 시 공동 당선/ 이현승 동인 동국대 시림문화상 시 가작/ 송승환 동인 고려대 고대문학상 시 당선.

1994년

제13회 문학의 밤/안도현 동인 시집 『외

롭고 높고 쓸쓸한』(문학동네) 출간/서덕근 동인 광주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9기)/송종안 동인 문화 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4기)/서광일 동인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10기)/정병석 동인 전남일보 신 춘문예 시부문 당선(9기)/송승환 동인 영남대학교 천마 문학상 시 당선.

1995년 제 14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신경림 시인)/ 부사리 5집『내 유전자 속 피리소리』 발간/박태건 동 인 전북일보 신춘문예와 시와반시 신인상 시부문 당선 (9기)/정병석 동인 광주매일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1996년 제 15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현기영 소설 가)/안도현 동인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연 어』(문학동네)출간/유강희 동인 첫 시집 『불태운 시 집』(문학동네)출간/이현승 동인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10기)/김명호 동인(14기) 전주대 백마문학 상 소설 당선.

1997년 제 16회 문학의 밤/안도현 동인 시집 『그리 118


운 여우』(창작과비평) 출간/백연숙 동인(6기) 문학사 상 신인상 시부문 당선.

1998년 제 17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성석제 소설가 )안도현 동인 소월시문학상 수상, 『관계』(문학동네) 출간/김명호 동인 영남대 천마문학상과 호원대 금강 문 학상 소설부문 당선.

1999년 제 18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신현림 시인)/ 김형미 동인(14기) 기전여자 대학 백합문학상 시부문 당선, 전북산업대 금강문학상 시부문 당선.

2000년 제 19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송찬호 시인)/ 부사리 5집 발간 『그 집엔 오래된 풍경화가 걸려있 다』발간/김형미 동인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과 진 주신문 가을문예 시부문 당선/김정경 동인(16기) 동아 대학교 동아문학상 시부문 당선/김성철 동인(12기) 원 광문예대상 시부문 당선.

2001년 제 20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최승호 시인)/ 서광일 동인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10기)/ 김경주 동인(15기) 원광학예대상, 군산대 황룡문학상 시부문 당선/김명호 동인 원광학예대상, 군산대 황룡문 학상 소설부문 당선/윤석정 동인(14기) 김용 시창작 기금 수혜.

2002년 제 21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이정록 시인)/ 안도현 동인 노작문학상 수상, 『증기기관차 미카』(문 학동네) 출간/박수서 동인 첫 시집 『흑백필름 속에서 울고 있다』(초록배매직스) 출간/최승철 동인 작가세계 119


신인상 시부문 당선(10기)/이현승 동인 문예중앙 신인 상 시부문 당선/김명호 동인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

2003년 제 22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박효근 시인)/ 안도현 동인 시집 『바닷가 우체국』(문학동네) 출간/ 송승환 동인 문학동네 신인상 시부문 당선(9기)/김경주 동인 대한매일(서울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김명호 동인 전북도민일보 소설부문 당선/윤석정 동인 전태일 문학상과 전북도민일보 시부문 당선/이안빈 동인 대한 매일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김형미 동인 문학사상 신 인상 시부문 당선/박수서 동인(11기)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시부문 당선.

2004년 제 23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윤흥길 소설 가)/안도현 동인 시집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 다』(창작과비평) 출간/김정실 동인(20기) 부경대 부 경현상문예 시부문 당선/ 강건모 동인(18기) 충주대 국원문학상과 원광학예대상 소설부문 당선/천명구 동인 (18기) 원광학예대상 시부문 당선.

2005년 제 24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김신용 시인)/ 안도현 동인 이수문학상 수상/유강희 동인 『오리막』 (문학동네) 출간/안도현 동인 시집『아무 것도 아닌 것 에 관하여』(문학동네) 출간/윤석정 동인 경향신문 신 춘문예 시부문 당선/송승환 동인 현대문학 신인추천 평 론부문 당선/김경철 동인(12기) 내일을 여는 작가 신 인상 시부문 당선/김경주 동인 대산창작기금 수혜/이동 원 동인(20기) 병영문학상 소설부문 당선/고태관 동인 (18기) 김용 시 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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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 25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강정·이민하 시인)/유강희 동인 원광문학 젊은 작가상 수상/박수서 동인 『박쥐』(문학의 전당) 출간/김경주 동인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코리아), 산문집

『패스포트』(랜덤하우스코리아)

발간/김성철

동인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송기역 동인(12 기) 전태일 문학상 수상/최명진 동인(15기) 리토피아 신인상 시부문 당선/박태건 동인, 윤석정 동인 문예진 흥기금 수혜/김정경 동인·최민영 동인(18기) 김용 시 창작기금 수헤.

2007년 제 26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윤성희 소설 가)/안도현 동인 윤동주 문학상 문학부문상 수상/이현 승 동인 첫 시집 『아이스크림과 늑대』(랜덤하우스코 리아) 출간/송승환 동인 첫 시집 『드라이아이스』(문 학동네) 출간/백상웅 동인(17기) 제 5회 대산대학문학 상 수상/이동원 동인 고려대학교 고대문학상 소설 당선 /나지희 동인(21기) 김용 시 창작기금 수혜.

2008년 제 27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박범신 소설 가)/김경주 동인 시집 『기담』(문학과지성사) 출간/안 도현 동인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착과비평) 출간/ 박태건 동인 대산창작기금 수혜/송승환 동인 신진예술 가 뉴스타트 지원금 수혜/백상웅 동인 창비 신인상 수 상/오희진 동인 충남대학교 충대문학상 소설 당선.

2009년

제 28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권혁웅 시

인)/안도현 동인 백석문학상 수상/김경주 동인 제 3회 시작문학상과 제 28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윤석정 동인 121


첫 시집 『오페라 미용실』(민음사) 출간/송승환 동인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지원사업 지원금 수혜/이 현승 동인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지원사업 지원 금 수혜.

2010년 제 29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윤고은 소설 가)/박윤근 동인 수주문학상 수상/송승환 동인 첫 문학 평론집 『측위의 감각』(서정시학) 출간/박수서 동인 시집 『공포백작』출간/김형미 동인 첫 시집 『산 밖의 산으로 가는 길』(문학의 전당) 출간/김경주 동인 시집 『시차의 눈을 달랜다』(민음사) 출간.

2011년 제 30회 문학의 밤(초청작가: 김근 시인)/송 승환 동인 시집 『클로로포름』(문학과지성사) 출간/김 형미 동인 불꽃문학상 수상/김미경 동인(24기) 경인일 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2012년

안도현 동인 시집 『북항』(문학동네) 출

간, 임화예술문학상 수상/이현승 동인 시집 『친애하는 사물들』(문학동네) 출간, 솔뫼창작기금 수혜/최승철 동인 첫 시집 『갑을시티』(문예중앙) 출간, 대산창작 기금 수혜, 제1회 EBS라디오 문학상 수상/ 김경주 동 인 『밀어』(문학동네) 출간/송승환 동인 원광문학 젊 은 작가상 수상/ 백상웅 동인 첫 시집 『거인을 보았 다』(창작과비평) 출간, 대산창작기금 수혜/김명호 동 인 《시작》신인상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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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후기

뒷사람을 생각해서 눈 위를 함부로 걷지 말라는 서산 대사의 시구가 계속 맴돌았습니다. 편집을 하는 내내 후배들에게 잘못된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아닐까하는 고민에 원고를 수없이 다시 봤습니다. 그럴수록 일은 더뎌졌고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원광문학회 선 배님들이 남긴 발자국이 어떤지 알기에 멈출 수 없었습 니다. 그래서 잠을 이룰 수 없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여기 또 한 번, 원광문학회가 발자국을 남깁니다. 밝 고 따뜻하고 선명한 족적을 눈 위에.

2012년 11월 16일 원광문학회 30주년 기념 시집 발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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