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공스 5기 후기 -지속가능한개발목표,은유와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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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차후기]

#1 낭공스 첫 스터디

3 차가 되어서야 첫 스터디 모임을 참여할 수 있었다. (소심한 성격탓에) 비록 한마디도 못하고 끝나버린 스터디 였지만 스터디 그룹에 장점들을 만끽하고 돌아왔다. 함께 관심있어하는 주제를 놓고 관련된 아티클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생각을 넓혀갈 수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열심을 다해 스터디에 참여하는 낭공스 5 기 식구들과 이러한 스터디를 통해 풍부한 이야기가 넘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운영진께 다시한번 감사함을 느낀다. 아직도 나에겐 장황하기만 한 주제인 sustainable development 이지만 그래도 모호했던 정의를 시작으로 마지막 시간에는 이 주제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또 왜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clear 한 이해가 있기를 소망한다.

#2 SDG???

sustainable development 라는 용어를 처음 접하게 된 곳은 저개발국가에서 수여자들의 부재에도 그들 스스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개발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give a man a fish and you feed him for a day; teach a man to fish and you feed him for a lifetime) 개념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이번 스터디를 통해 좀 더 넓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고 (아직도 모호한 부분이 많지만)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체계적인 개념이 잡히게 되었다. 세가지 -경제, 사회, 환경 - 섹터들이 있어 그들의 교차점을 찾아가면서 세계의 지속가능하지 못한 부분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는 것. 하지만 각 섹터들이 가지고 있는 부분들이 과연 쉽게 다른 섹터들과 동화될 수 있을까? 각 섹터마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텐데 이성적으로 각자의 욕망(want)을 절제하고 서로의 필요 (basic needs)를 충족 시킬 수 있는 교차점을 찾아야 겠..말은 쉽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합리적인 생각 즉,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 최대한의 효용으로 결정/소비 할 수 있는 곳, 최적화(optimization) 혹은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점, 최대화(maximization)를 고려하는것이 decision making 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분명 어느정도의 배분의 균형이 이뤄져 있는 상태여야 하겠지만 현실속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으니..). 하지만 한가지 목표를 위해 담론을 형성하고 서로의 교차점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과연 최적화, 최대화 하는것이 sustainable

development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이론일까?

(sustainable

development 관점에서 경제섹터를 바라보면 왜 나는 자꾸 greedy 한 capitalists 들 밖에 떠오르지 않는지..)지속가능한 개발에 혹 장애가 되는 이론은 아닌지 의문점이 생긴다.

교차점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스터디에서의 정보와 다른 몇가지 정보를 이용해 이미지를 만들어 보았다.



[4 차후기]

# 첫번째 종남오빠의 마르크스 자본론에 대한 강의:

Natural Resources Labor Capital(money)

세 요소가 모여 하나의 product 를 생성하고 market 으로 가서 commodity 가 되어 측정된 value 를 consume 하게 되면 Money' (= profit+money)가 생긴다. 그렇게 생긴 profit 은 capital 로 재투자되어 계속해서 이윤을 얻는 사람만 부를 축적하게 된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목적은 이윤추구이기 때문에 어떻게 서든지 3 요소의 비용을 줄이려고 할것이다. 그렇다면 natural resources 와 capital(money)는 줄이기 쉽지 않기 때문에 남은 labor 의 비용을 줄이려고 할 것이다. labor 는 시간 (time)을 늘릴 수 있고 혹은 생산력(productivity)을 증가시킬 수 있다. 시간을 늘리자니 사람이 다치기 때문에 생산력을 늘리려고 한다. 그래서 현대자동차 예제를 들어주신 것 같다. 1:13 받는 수당의 13 배 가치 있는 일을 한다. 13 배에 도달하지 못하는 직원들은 짤리고 만다.

듣는 내내 거북하고 이미 이렇게 자리잡혀 버린 시스템에 살고 있는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마저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이론으로 멈춰버리면 안된다. 비록 비관적인 이야기 일지라도 이렇게 스터디를 하는 이유는 진리를 알고 이곳에서 자유롭게 되기


위함인 것. 어떻게 하면 이런 세상을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바꿀 수 있을지, 분명 고질화되어 지금부터 몇 십년동안은 바꿀 수 없다 할지라도 교육을 통해? 인식제고의 노력을 한다면 미래에는 안타까운 시스템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덜 생기지 않을까...대체 방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 마지막 우영의 발제 내용인 treadmill of production 에 대해 듣고 있을때..

treadmill

of

경제성장...경제를

production 성장시키기

목적은

위해서

무엇일까에

labor,

대해

producer,

생각해보자고

그리고

정부들은

했다. 다른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만약 그 경제성장이라는 목적을 지우고 다른 가치를 집어넣는다면 treadmill of production 은 좀 더 나은 환경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목적을 집어넣는 것이 필요하며 어떻게 다른 가치관도 함께 넣을 수 있을까? 교육을 통해서? 가능할까? 희망적인 이야기를 과학에서 찾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지금 , 아주 작은 행동이지만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 보고 싶다.

# self-critique 논문 이해력에 대한 아쉬움

“자본주의, 자연, 사회주의 이론적 서설. 공간과 사회” “자연의 신자유주의화: 자연과 자본 축적 간 관계. 마르크스주의 연구” “The Treadmill of Production and the Environmental State”


소수에게만 이해되는 학문 말고 6 살짜리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쉽게 풀어놓은 논문은 왜 없...?

공대 연구실에 놀러간 적이 있다. 박사과정 5 년차이신 그 분은 함께 놀러갔던 우리를 위해 그 분이 연구하고 있는 내용을 암호화된 전문 용어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셨다. 무언가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해서 audience 가 어떤 레벨이건 간에 그 사람의 관점에서 설명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학계에 계신 많은 학자들은 (워낙 똑똑하신 분들이라) 그들만의 언어로 그리고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여 자기 이론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분명 일부로 그러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뭔가 그들의 논문이 sophiscated 한 내용이라는 것을 어필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좀 더 쉬운 말로 혹은 강의때 나왔던 우리가 실생활에서 겪고 있는 예제를 덧붙여 설명했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내가 이해하지 못해서.... 내 머리가 저자의 글솜씨를 따라가지 못해서 아쉬워서..

그래도

스터디를

통해

듣는

조별

발제와

종남오빠의

visualize 하면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강의를

들으니

조금씩


[6 차후기]

Elite power and local knowledge: mix and match

처음

Elite

power

Local

knowledge

라는

주제를

발견했을

때,

윌리엄

이스털리(William Easterly)의 "세계의 절반 구하기"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 책은 서구가 아프리카에 쏟아 부은 개발 원조에 대해 비판적이며 제프리 삭스(Jeffery Sachs)의 poverty trap 에 대해서도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의 책에서는 개발자들의 두가지 다른 특징에 대해 설명하는데, 다음과 같이 비교할 수 있다.

계획가(planner) top-down 방식의 개발 추구 고의계층에 속하여 개발현장에 대한 이해 부족 좋은 의도는 있지만 뚜렷한 동기가 없어 책임감 부족

탐색가(explorer) bottom-up 방식 개발 추구 현장전문가, 원주민들로 구성되어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 (local knowledge) 지역만의 고유한 특징을 고려하여 개발 계획 수립 성과를 추구하기 때문에 책임감 투철

계획가가 갖고 있는 엘리트 파워와 탐색가가 갖고 있는 local knowledge 가 어우러져 개발계획을 수립해 나가야하고, 특히 계획가의 위치에서 탐색가 정신으로 개발에 임하는 것이야 말로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했다.


예를들어, 그 지역의 고유한 특징 중 장점을 살려 적정기술에 도입 혹은 project team 을 그 개발하려는 지역의 원주민들과 자문위원들을 함께 구성하여 그 지역에 오랫동안 살았어야만 알 수 있는 know-how 와 프로젝트를 추진력을 가할 엘리트들의 파워가 만나 개발에 성공시킬 수 있을것이다. 두번째 논문에서 강조했던바와 같이 개발도상국 뿐만아니라

선진국가에서도

어느

지역을

개발하려고

할때

충분한

담론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한다. 개발에 있어서 물질적인 변화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커뮤니티의 사회, 문화, 경제, 심리적인 면들도 함께 고려하여 개발의 단계를 밟아야 할 것이다.

두번째 논문 발제문을 마무리하면 제기한 discussion question 처럼 우리가 이미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local knowledge 라는 개념이 개발도상국에서 개발을 착수 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sd 의 목표에 해당되는 전세계 지역 개발에 local knowledge 가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elite power 가 만연한 개발협력에 local knowledge 가 어떻게 유입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좋은 starting point 가 될 것 같다.

발제문 中 ✪ Discussion Questions 개발도상국에만 국한된 local knowledge 가 아닌 SDG 의 대상인 전 세계 나라가 지역개발을 할때 community-level 에서의 사회적인 이슈의 이해와 함께 개발계획을 세워야 함. 사회적인 영향을 개발계획을 수립할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2 차후기: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1 2015 년 4 월 17 일 첫 스터디 후기:)

내가 낭공스라는 스터디를 시작했다. 사실 금요일에 모이는 모임은 나에게 쥐약이다. 아이들과 함께 금요일을 (특히 수업이 풀인 금요일) 보내고 퇴근을 하면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제는 커피도 3 잔이나 마시고, 정신을 차려보겠다고 하며 열심히 버티고 스터디에 갔다.

"문명의 붕괴"라는 책을 읽고 환경과 지속가능한 개발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대단하신 분들이 많은 거 같다.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내가 이렇게 환경에 무지한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나는 이 책과 논문 한편을 읽으며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나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환경을 침해하는 사람인가 적응하여 함께 발전하는 사람일까? 내가 어떠한 문화 속에 내가 하고 싶은 교육을 가지고 가는 것인가? 그들이 필요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교육을 가져갈 것인가? 항상 나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었다.

참여적 개발과 그 안에서 나는 생태학적인 관계(교육학에서 말하는 생태학적 관계)들을 어떻게 맺어갈 것인가?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 환경의 문제 보다는 내가 그 책속에 나왔던 사람처럼 혹시나 다른 문명을 붕괴하려고 가는 것이 아닐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느꼈던 것은 내가 평소에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의 기본이 어디에 서 있는지는 내가 읽었던 책과 얘기 속에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도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했던 말이 "기본은 속일 수가 없나봐"였다. 정치학도에겐 정치적인 것이 주로 보이고, 환경학도에겐 환경적인 내용이 보이고, 경제학도에겐 경제적인 것이 보이는. 그러니 교육학을 하는 나에겐 역시나 관계적이고 교육적인 면이 더 눈에 들어온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게 되었고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완전 스터디의 장점!!)

감성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나의 꿈인지라 늘 이 일을 대하는 태도는 감성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성적인 부분으로 봐주시는 분들 덕분에 나도 성장할 수 있었다. 사실 이번 스터디를 통해 내가 많은 지식을 채우겠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내가 어떠한 사람이며, 어떠한 개발협력가로 성장하고 싶은지 고민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그들과 함께 소통하는 협력가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사업을 진행하면서 많이 무너지고 있지만…….)

special education specialist 로 성장하고 싶기 때문에 더욱 더 필요한 공감. 그 안에서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은가 다시금 고민해 봐야겠다.


3 차 스터디 후기 지속가능한 개발은 무엇일까? 1) 지속가능한 개발 넌 누구냐? 교육개발현장을 여러 번 다니며, 내가 언제나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은 지속가능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지속가능한 개발이 뭔지도 잘 모르며 그냥 입으로 떠들던 사람에 불과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생각보다 어려운 개념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이 개념이 실행되기 위하여 많은 방법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장도 너무나 많다.) 어려운 이론처럼 보이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회, 경제, 환경이 각각의 역할을 중점으로 협력하여 `지속가능성`을 이끌어 내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뤄내기 위해 생태학적 접근이란 것을 만들었다. 특수교육학에서도 아동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환경(사회, 경제)을 분석하여 상호작용을 이끌어 내는 유기체적인 방법으로 아동의 환경을 분석한다. 이러한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 경제, 환경이라는 것이 서로 협력하여 초학문적인 발전을 이뤄낼 수 있을까? 과연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무언가 새로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것을 위하여 어떠한 방법들이 이뤄져야하는가? 등 정말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지속가능한 개발은 성장하고 있고 진화되고 있는 개념이기에 정답은 없다고 한다. 그럼 현장에 있는 나는 나의 정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나야 할 것 같다.

2)지속가능한 개발 위한 나의 역할


지속가능한 개발의 방법론을 생각해보자. 지속가능한 개발 이뤄내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을 하고 계신다. 그렇지만 교육자인 나는 어떠한 노력으로 지속가능한 개발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먼저 우리나라 교실에 학생에게 세계시민교육을 잘 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개발 이끌어 내기 위해 공여국인 우리의 국민이 올바른 거버넌스를 운영할 능력이 있는 인재로 성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개발은 이뤄낼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의 교육구조가 경쟁구조이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세계시민성으로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쉽게 없앨 수 없는 교육의 틀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 앞에서 교사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세계시민교육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교사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러한 학교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지속적인 연수와 활동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 교사집단의 거버넌스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한 영향이 아이들의 교육에도 받아드려질 것이라 믿으며 말이다.

두 번째로는 교육을 통한 국제개발협력의 활성화이다. 단순히 학교를 세우고 출석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건강한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인간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교육이 아닌 다양한 집단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분야별 전문가를 다 초빙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교육전문가가 보건, 정치, 사회, 경제, 인권, 젠더, 직업 등 다양한 직군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성장하며 이를 이용하여 초학문적인

교육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또한

이렇게

훈련된

교사가가

현지에서

직접학생들에게 교육을 진행하거나, 현지 교사들에게 연수를 진행해야한다. 그렇게 되면


이제 자라나는 개도국의 학생들이 세계시민적소양과 자기 옹호 기술 등을 배울 수 있게 되고 이는 건강한 거버넌스를 성장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 스스로의 변화이다. 아직 개발학에 입문하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단단하게 내 자신을 키워 가는가! 이것이 성장의 기본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 나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3)투지혜원경원 후기 이번 팀 발제를 통해 지혜언니와 경원이를 알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지속가능한 개발 대해 하나씩 풀어나갔다. 물론 모두다 초짜인지라 정확하고 정답을 얘기하는 모임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느끼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풀어내며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어쩌면 한국사회에서는 정답을 말하는 것이 익숙하고, 그것이 정답이란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정답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인류학을 전공하는 멋진 경원이의 생각, 내가 잘 못하는 영어를 통역까지 할 수 있는 멋진 지혜언니를 통해 나는 오늘도 성장했고 또 그들을 만나 나는 오늘도 낭만적이었다.

`언제나 일은 지나고 사람이 남는다.`

사람이 가장 중심에 있는 나의 삶을 기억하고 이들과 나눌 수 있었던 이야기와 스터디에 감사하자.


4 차 스터디 후기 수레바퀴 밑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벌써 스터디가 4 회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나는 평생 처음 접해왔던 것들을 읽으며 스터디가 아니었음 접하지도 않았을 것들을 접하고 있다. 그동안 접해왔던 것들에 대한 반감이나, 의구심은 이번 내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싶다. 오늘 우리가 나누었던 논문의 총체적인 주제는 마르크스와 관련이 있다. 마르크스라는 사람 !! 무식했던 나는 `공산당` 이런 거 읽어도 되나? 라는 두려움으로 이 글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사전지식이 매우 부족한 상태여서 김수행 교수님의 자본론공부를 추천받아 읽었는데 논문을 읽는 데 그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1.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서 무의식 : 나는 왜 마르크스를 외면하고 살았는가?

나는 마르크스를 왜 외면하고 살았는가?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자본주의의 가장 많이 젖어 있는 나라에서 태어나 심지어 교. 사. 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국가의 교육을 책임진다는 이름아래서 국가에서 선택한 교육과정을 아무런 의심 없이 아이들에게 전달한다. 생각해보면 나를 가르쳐주셨던 많은 은사님들도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를 키워 내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수준의 교육과정들의 내용들은 대부분 정부에서 지정하여 선별한 지식의 위계를 정하여 쌓아놓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마르크시즘에

기초한

교육사회학학자들은

교사의

의식수준과

교육과정(선택되지 않은 지식의 범위)의 중요성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며 교육과정을 통해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배워왔다. 마르크스 때문에 어쨌든 북한이 생겨났고, 잘못된 판단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 또한 자본주의는 우리가 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고 신자유주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러한 가르침 덕분에 경제적인 부유를 이루기 위해서 당연히 감수해야하는 것들이 있고, 경쟁의 사회에 몰아넣는 이러한 현상들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그러니 여전히 나에게 마르크스는 거북하고, 어색하고, 의심이 드는 분야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심을 가지고 나는 스터디를 시작했다.

2. 마르크스주의 생태론

오코너의 논문을 읽으며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하는 노력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먼저 생산력의 변화와 생산관계의 변화는 나 자신과 직면하는 순간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얼마나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 이것을 다시 재투자하며 부를 키워나가는 것이다. 이런 것을 자본의 순환이라고 하며 이 자본의 원활한 신진대사를 위하여 우리와 같은 노동자들은 항상 생산력을 값싸게 제공해야한다. 또한 이러한 원활한 신진대사만이 경제발전이며 이것이 곧 사회의 발전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속에서 자본의 축척을 위해 자본이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노동력, 천연자원, 돈)을 파괴하면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려한다. (*대강)


시장경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환경과 인간의 입장에서 이것을 그저 바라보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불공평하고 힘든 것이다.

자본의 순환도 중요하지만 자연환경의 순환도 우리는 고려해야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에서 환경과 경제를 먼저

묶어 이야기하는

부분도 자연의 회복

없이는 어떠한 것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서로 공생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속가능한 개발 고민할 때에 사회주의에서 보이는 공생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봐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우리가 환경을 지배하고 이것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물과 공기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그것은 누구의 것인가? 생각해보면 한 번 더 고민하게 될 것이다.

3. 나의 생각 우리는 현재 자본주의로 인해 자연과 사회와 경제가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신진대사의 불균형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그 나라에 들어가 많은 자원을 사용하고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단순히 읽고 쓰는 노동자를 만들기 위한 교육을 진행한다면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개발협력이라 말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이것을 지속가능한 개발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개발협력을 접근할 때에 경제적인 것에만 관점을 두고 협력 사업을 진행한다면 우리의 사업 속에는 환경과 인간이 들어가 있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또 하나의 경제적 제국주의를 만들 수밖에 없고 그 나라의 발전을 돕는 다는 미명하에 한나라의 문명을 망가트리는 현상을 발생시킬 것이다.


지속가능한 개발협력의 하위 3 영역중 `자연과 경제`를 살펴보니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은 인간보다 더 많이 착취당했고, 앞으로도 당할 것이고 또한 없어지는 자원들을 위한 대체자원을 개발하려 전 세계는 혈안을 올릴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본의 재생산만이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를 유지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과학은 과연 누굴 위해 일할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하루 1.25 달러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25 달러의 싼!! 인큐베이터를 지급하는 이러한 적정기술들이 해결해낼 수 있는 문제인지 정말 기대가 된다.

- 스터디를 통해 항상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스터디가 제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 공부가 점점 더 흥미가 있어지네요. 벌써 스터디가 4 회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나는 평생 처음 접해왔던 것들을 읽으며 스터디가 아니었음 접하지도 않았을 것들을 접하고 있다. 그동안 접해왔던 것들에 대한 반감이나, 의구심은 이번 내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싶다. 오늘 우리가 나누었던 논문의 총체적인 주제는 마르크스와 관련이 있다. 마르크스라는 사람 !! 무식했던 나는 `공산당` 이런 거 읽어도 되나? 라는 두려움으로 이 글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사전지식이

매우

부족한

상태여서

김수행

자본론공부를 추천받아 읽었는데 논문을 읽는 데 그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교수님의


5 차 스터디 후기 협력을 위하여

5 번째 스터디를 마치고 나니 아무것도 없던 황량함이 어느덧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뿌였함이 나는 답답하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을 보내면 또렷한 현상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이번 스터디의 주제는 내가 고민하고 있었던 생태근대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생태학을 전공하지도 환경에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아서 이 스터디를 통해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내가 느낀 점을 차분히 적어 내려가 보려고 한다.

1. 협력 [명사] 힘을 합하여 서로 도움. 협력이라는 단어는 서로 힘을 합쳐 돕는다는 아름다운 뜻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협력하고 있는가?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하여 사회, 환경, 경제는 서로 협력해야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진정한 개발협력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다. 생태근대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의 문제와 환경의 문제를 결합하여 바라보아야한다는 입장이다. 나는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협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협력이라는 것은 어떠한 상태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인가? 협력은 상하의 관계에서는 절대로 성립할 수 없다. 스터디에서도 말했지만 우리가 언급하는 혹은 지금


현재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개발이나 과학의 주장들은 대부분 가장 힘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양말아저씨 같은 사람)힘이 없는 사람은 그 어떠한 일도, 주장도 해낼 수가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환경과의 협력을 이뤄 낼 수 있을 것인가? 먼저 사회구조와 환경의 구조가 별개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와 환경은 연결이 되어 있다. 환경의 문제가 사회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반대로 사회구조가 환경구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것은 일본이나 네팔에서 일어난 환경 재해 등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환경과 경제 그리고 문화 등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연결은 마음대로 끊어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각각의 요소들과 발렌스를 맞추며 서로의 연결성을 더욱 돈독히 해 나갈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점점 더 개인화가 되어가고 누군가와 협력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인하여 힘의 불균형이 발생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느낄 수 있고 또한 서로에게 중요한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힘의 불균형은 상담학자 로저스가 주장하는 <진정한 만남>을 방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오히려 명확히 보였던 근대 이전의 계급사회에서는 계급의 불행함과 불공평함을 함께 나누는 것에 거부감이 덜했을지 모른다. 그것은 그 사회를 지배했던 공동체 무의식이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인해 서로 응집력을 향상시켰을 것이고 이러한 것이 쉽게 그들에게 동질감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사회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사회에서는 '내가 잘한다면!' 넘어설 수 있는 문제라고 얘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사회에서의 불공평함과 불행함은 나


자신의 문제인 개인의 무의식으로 전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나의 문제를 논의하고 꺼내 놓는다는 것은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꼴이다. 그렇기에 우리사회는 더욱 차갑게 변할 수밖에 없다. 나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더 많은 스펙을 쌓고 가면을 쓰며 남을 이겨야만하며 나의 삶을 더욱 발전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을 고갈되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와 사회 그리고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을 키우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 연결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우리의 잘못이 아님을 인정하는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구조가 잘못되었음을 파악하고 이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가

잘못되었다고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이다. 무한 경쟁 속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 사이의 연결을 막는 가장 큰 장벽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그렇게 학습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무섭게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진정한 연결을 이루어야 하는가. 그것은 사회구조의 모순을 우리 스스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애석하게도 이루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가 과연 존재하는가? 표현의 자유는 있는가? 우리나라는 이러한 부분은 들으려 하지도 않으며,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과업을 들어내고 이에 대한 보상을 운운하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청년들은 자빠진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보니 어느덧 타인의 삶에 관심을 끊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이러한 고민을 한다.

3. 공감 공감능력이다. 인강중심상담이론을 살펴보면 인간은 공감을 갈구한다. 하지만 현재 사회에서 공감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은 자괴감에 빠지게 되고


이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일들을 버리곤 한다. 나는 사회가 하나의 힘을 갖고 같은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서로를 공감하고 나를 공감하는 것(자기 성찰적 반성) 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려할 때 이것이 가장 큰 연결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이것이 올바른 협력의 시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비단 인간의 문제를 넘어서 환경과 경제까지도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4. 세계시민성 세계시민성이란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비판적 의식을 가지며 이러한 일을 해결하기 위한 자기반성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나는 이러한 세계시민성은 공감의 최고봉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반성하고 돌아보며 스스로의 문제를 파악하는 능력은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을 확장하여 지역사회, 국가, 세계 그리고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은 인간들이 지구에 존재한다면 세상은 조금 달라질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교사로서 교단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나는 이러한 점에 더욱 고민을 하게 된다. 자기 반성적 성찰. 그리고 이를 통한 진정한 공감을 도출하고 이를 통한 세계시민성의 향상으로 모든 이를 사랑하고 환경과 지구를 지키는 마음을 갖는 것. 벡이 논문의 결말을 결혼과 사랑으로 칭한 것도 나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결혼의 기본이 되며 결혼은 동등한 관계로서 서로를 지지하며 의지하고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참여적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텐데 나는 더욱 기대가 된다. 참여적 개발을 이끌기 위해 파트너국의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공감하여 진정한 협력을 이뤄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스터디를 한번 할수록 안경을 닦아나가는 기분이다. 내가할 수 있는 내 위치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싶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차분히 성장하여 나의 자리에서 할 일을 다 해야겠다. 그리고 오늘 나는 지금처럼 "일은 지나고 사람은 남는다." 는 외침을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


6 차스터디 후기 엘리트파워와 local knowledge: with us 1. 엘리트파워의 중요성과 비판 우리사회는 많은 지도자를 통해 사회를 성장시켜왔다. 특히나 위기에 빠진 국민(예전에는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훌륭한 지도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요즘 우리는 메르스를 보면서도 컨트롤타워의 중요성과 우리를 이끄는 엘리트의 중요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대번에 알게 된다. 엘리트파워란 것은 누군가의 선동이 아닌 그 분야의 전문성이라고 보고 싶다. 보건과 교육, 경제, 정치 등의 전문가에 의해 논의되고 심화되어진 전문성 말이다. 전문성의 발달로 인하여 세상은 매우 많이 발전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올라갔으며, 여러 물리학자와 항공전문가들의 연구를 통해 비행기와 같은 물건들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농업의 기술이나 방법적인 면에서도 발 빠른 성장을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발전에 전문가들 (우리사회에서 엘리트라 부르는 사람들)의 노력이 없다고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문제는 엘리트지상주의에 있다고 생각한다. 단편적인 엘리트 중심의 사회가 점점 모두를 위한 기술이 아닌 자신들의 권력이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바뀌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보는 돈이 되었고, 이러한 발전이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진다면 엘리트의 지식은 우리 사회의 악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식은 더 이상 우리의 의견을 존중하는 모습을 취하지 않으며 보통의 순수한 시민들을 지배하기 위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사회는 정확한 판단과 시선으로 그들을 감시해야하며 우리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local knowledge 의 중요성과 비판 건강한 시민사회의 부재는 그 나라의 흥망을 가지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전문성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자신들이 피부로 느끼고 몸으로 체험한 지역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오랜시간동안 과학자들이 양적으로 측정하던 사실들을 몇 십 년 동안 학술적이진 않지만 말로 설명해 낼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들에게 집단무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어떠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자신들의 방법을 가지고 해결해나가며 생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적 지식은 우리가 교육으로 배울 수 없는 여러 영역에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지역사회는 지속적인 발전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여기서 local knowledge 의 단점은 지나친 개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편한 지역사회를 구연하기 위하여 그들이 의견을 모으고 함께 고민한다면 우리 사회는 정부가 없는 상태에서도 이뤄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자본주의 시대와 개인화에 접어들면서 집단의 무의식보다는 개인의 무의식이 점점 더 강화되어지고 있다. 함께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과 어색함을 느끼고, 누군가와 협력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니 당연히 지역 내의 모임들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기에 개인이 꼭 지역사회를 위해 합리적인 지식을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없고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우리는 건강한 거버넌스를 잃어버린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지역을 위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말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건강한 거버넌스를 만들기 위한 바른 토론문화를 장작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비난이 아닌 비판을 하고 함께 협의 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3.공감과 소통 먼저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 집단과 지역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소통과 공감의 장을 만드는 것이 가장 우선된 해결방법이라 생각한다. local knowledge 의 성장을 위해서 전문성을 가진 집단이 지역주민을 교육하고 지역주민들은 자신들의 특수성을 엘리트에게 교육하며 서로 상호 이해와 토론을 통해 지식을 형성해야 한다. 물론 매우 어려운 작업이기에 소통의 장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강구해야하며 이러한 소통의 장에서는 서로에게 비난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건강한 시민의식을

갖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엘리트

또한

엘리트지상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또한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사회의 협의는 매우 쉬운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평범한 지역 시민들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건전한 방법과 선거의 중요성 등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면 우리의 사회는 조금 더 편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의 공감과 소통 그리고 협력을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지만 진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한발 물러서고 이해하려는 노력과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 사회는 소통과 공감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만큼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스터디 후기 : 이해와 소통을 통해 머물기

개발협력 스터디를 시작하기 전, 경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았던 개발협력은 나에게 항상 의문을

남기고

있었다.

교육개발협력,

그중에서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교육개발협력은 경제적인 관점으로는 해석하기도 어려웠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6 번의 스터디를 통해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정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 에세이를 읽고 스터디를 나누며 내가 느낀 것은 사람의 힘이 그리고 문화와 사랑, 이해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가의

어려움이

존재하겠지만)

1.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한 지역의 공동체를 운영하자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은 요즘 한국사회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내기 위해 우리는 나눔을 잊고 살아왔다. 하기사 가족끼리 도란도란 앉아 식사한끼 해결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었던 사회인데, 지역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사회를 고민한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에 불과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공동육아, 마을 공동체, 협동조합개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공동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어떠한 목표와 성과를 기대하는지는 모르지만, 그 방법적인 면에서는 바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공동체, 개발협력에서도 개도국현지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지역사회의 경제와 문화를 살리고, 그들의 정체성을 인식시키는 일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역주민의 참여는 소통을 통해 그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혹은 그 욕구가 환경과 지속가능성에 반한다면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지속가능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는 것이 개발협력가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어떻게 공동체로 만들어 줄것인가? 그리고 그 운영방법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우리나라도 공동체에 약한 나라로서 과연 나는 이러한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가?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지나친 개인화와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방법들을 잃어버린 것 같다.

내가 해답을 갖게 되고, 행복했던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장애개발협력은 지역공동체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이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가 장애인의 인권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많은 개도국에서는 `악마, 전생의 벌`등과 같은 미신적인 요소로 장애를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인간적인 대우 보다는 시설수용, 혹은 분리교육을 통해 사회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들도 지역의 공동체이고 함께해야할 이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도국에서는 인식의 차이를 보인다. 예전에는 그들을 이상하게 생각했었고, 그들이 바라보는 관점을 난 이해할 수없는 미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스터디를 통해 그들이 그렇게 굳어져온 문화와 사건에 대해 고민해보기로 했고, 과연 그 중심에는 어떠한 사건들이 있었는지 파악해보고 싶어졌다. 또한 그것을 통해 내가 지역사회에 던질 질문과 어떻게 이 인식들을 개선해 나가며 긍정적인 방법으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정답은 이해와 소통이다. 현지 전문가가 될 수 없지만, 그들의 삶에 들어가볼 수도 없지만, 지역공동체를 통한 마을의 인식개선을 이뤄낸다면, 사업의 주체도 변화할 수 있고 그만큼 빠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은 내가 생각하는 협력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무릎꿇고 도우라..` 내가 낮은 자세로 그들과 함께 해야한다는 것에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의 입장에서 고려해야한다고 생각한 것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한번 더 깨닫게 되었다.

좋은 기회를 통해 많은 분들과 얘기 나눌 수 있어서 매우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행복하세요^^



나는 시를 쓰던 문청(文靑)생 이었다. 그리고 국문과를 졸업했다. 3 년간 소셜미디어 마케터로 일한 경험도 있다. 그러다 어느 날,다소 뜬금없이 ‘개발학’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제대로 아는 것 하나 없는 백지상태에서, 오직 ‘환경문제’를 향한 호기심만 가지고 낭공스 5 기의 문을 두드렸다.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낭공스에서 첫 스터디를 시작하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여태껏 살아보니, 아무래도 내겐 시 쓰던 문청의 마인드가 불변하는 내 DNA 같은데, 개발의 현장과 현실적 문제들을 시를 쓰던 버릇대로, 마치 1 인칭 시적 화자가 되어 낭만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과오를 범하지는 않을지, 과연 내가 개발학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일생의 업이 될 수 있을지등.

그런 도중, 스터디를 시작하기에 앞서 들었던 첫 질문이 뇌리에 깊이 남았다.

“생태계는 누구의 언어인가?”

최근 환경 문제를 화두 삼아 그 해결점을 모색하는 방안을 공부하겠거니 했다. 그런데 생태계라는 단어의 기원과 그것을 만든 주체를 먼저 생각해 볼 줄이야. 신선하고 인상깊은 질문이었다. 배운 바로는, 자연을 최초로 ‘생태계’라 명명한 사람들은 지식인이었다. 문명이 발달되기 전까지 자연은 말로서 해석될 속성의 것이 아니었는데, 문명의 발달과 이성(logos)를 갖춘 지식인이 등장하면서, 그 지식인들이 자연을 생태계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지적 부탁드림돠..^^;)

이 질문에서 나는 순수문학을 전공했던 내가 개발학을 공부할 자질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얻었다. 시를 배울 때에도, 언어와 이성, 작가의 권위를 비판하는 탈 근대적 시각에 나는 매료되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문학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인간이 만든 기표와 기의, 모든 상징체계를 해체함으로써 고정관념에서 해방되고자 했다. 가령 '장미'를 떠올리면 '사랑', '특별한 날의 선물'로 연관시키는 것이 우리의 습성인데, 그 둘의 연관성을 해체하고, 장미를 장미 본연의 본질로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시간'은 인간 중심 주의 산물로 묘사된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각에서 보자면, 시간이란 원래 지금처럼 분절된 개념이 아니었는데, 인간에 의해 시, 분, 초 단위로 나뉘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 중심적 사고가 낳은 자연에 대한 폭력이라고도 해석되기도 한다. 이런 비판은 신선하게 다가왔고, 근대적 관념에서 벗어나, 포용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마음을 문학을 통해 배웠으니, 이제는 개발학을 배우면서 그 마음을 더 견고히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스터디 조원들과 운영진분들의 도움으로, 이 학문을 부단히 잘 이해한다면, 개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희망하면서. 물론, 지식인의 언어가 아니라 낮은 자세와 공감 능력으로 말이다! 순수문학 전공자의 개발학 입문기, 그 당위성을 말한답시고 너무 장황하고 두서없이 첫 후기를 남긴 것 같다. ㅠㅠ ㅎㅎ 이상 의식의 흐름으로 써 내려간 후기였습니다. (_ _) 감사합니다!



1차 후기 Walking down the back alley, my steps were heavy from nervousness. Regardless of my hesitation, I eventually arrived at the building, and from afar, I could make out a few figures through the glass door. As I slowly walked in, I almost suffocated from the silence: the air was heavy with awkwardness. However, having lived in 4 different countries, I met countless number of people and I was accustomed to such tense atmosphere. New place, new faces… another new beginning, it was as comfortable as if I were at home. As time went by, one by one people started to come in and sat on the chairs. What surprised me was that no male comrades walk in through the door. I quickly flipped out my phone and checked for any male names, but it was a useless endeavor. Some may think I was happy to be surrounded by beautiful ladies, but the world needs a balance between Ying and Yang. Now I will have to be extremely careful in the choice of words and be a shrewd diplomat in the war of roses. The first day was all about getting to know each and ice breaking. We used crayons to draw our faces and present about it. Some people were really artistic and I really enjoyed this time. The diverse backgrounds of the people, yet all have a common interest in aiding the needy to get back on their feet. I have been searching for a group like this for a long time. People can sympathize with my dream but how many can empathize with it? I live only once and I want make the most out of it. The materialistic and worldly things do not interest me. I want to be where I can make an impact on others’ lives. Yet, I still have much to learn. Thus, my expectations are high and I am thrilled at how much I will grow from this experience. What new insights will people bring forth? What stories will they share? It has only been the first


meeting and I am already exhausted from all the fervor. I most definitely should not leave out our first ‘second round’. A cold beer with chicken always makes everyone merry. The conversations started off lightly but eventually we got serious about the development topics. Anyways, I really enjoyed the time of being able to ‘converse’ (usually it’s one-sided) with others on topics of my interest. I look forward to the next meeting, even though I still need to read “Collapse” by Jared diamond. I strongly recommend it to everyone: amazing book that surely surprises everyone! Anyways, it was an unforgettable night and there are lots more that I wish I could put on to words, but let me leave that for later.


2차 후기 I think there are two things people fear the most: change; and unknown. What I would like to discuss here is “unknown.” What is unknown? Something that we have no understanding of and this causes fear in people. Today’s discourse gave me this exact feeling. We all want to find an answer. I must know something clearly or I would not accept it. However, the world is full of unknown: for example, a foreign culture. We know it exists, but do we fully understand it? No, definitely not and I will never fully understand it. But does this mean I have to ostracize them? Once again, no, because by communicating with them, we can get to know their values and understand it. Our meeting is aptly named “SDG: Metaphor and Discourse.” I really like the term “discourse”. This word comes from Latin discursus meaning "running to and from," in other words, communication going back and forth. Without communication, everyone will continue to believe their value to be the only correct answer. Then with communication, will people accept other’s value? No, because they need to empathize with you. Therefore, I can say there are two important factors in successful communication: values; and empathy. First, I need to find a value that I can stand by. Previously, I thought that everything can coexist and every value is correct, but now I understand that this is not true. If I don’t have a standard, I will forever sway and never reach the other person. Second, the two parties need to be willing to talk and understand each other. This would be the most difficult part as people usually refuse to comprise or at least understand others. However, from the history, we have learnt that people cooperate when facing a common enemy. I guess this could be the environmental destruction and climate change. Anyways, I have to be honest that I still don’t know what value I can stand by. However, I am certain that by the end of our discourses, I will have a clear understanding of my values. Only then will I be able to go help others.


4 차 후기 It has been a week since our last meeting, and I finally have the courage to write my review. The word ‘courage’ is used here on purpose because I was reluctant to write this review. However, after meeting my colleagues, I decided to share my thoughts. The spiral of silence theory is quite interesting as it explains that individuals have a fear of isolation, which results from the idea that a social group or the society in general might isolate, neglect, or exclude members due to the members’ opinion. Eventually the group will only have one voice as the rest will remain silent, and like a spiral, the situation will continue to deteriorate. I am certain that almost everyone have experienced this fear of being ostracized from a group for having the ‘wrong’ opinion. Can opinions be ‘right’ or ‘wrong’? In Korea, it is generally believed that there are largely two groups of left or right, but in my view, the division is meaningless since regardless of one’s position, the other side is completely ignored. Why is this happening? There could be many explanations but I believe the society searches for the ‘correct’ answer and in the process, other various opinions are silenced. Some may argue that this is efficient but at what cost? A society with one voice is usually a dictatorship and the benefits are focused towards the dominant group. However, the greater threat lies beyond. For example, the suppressed somehow managed to become the dominant group; will they be willing to suddenly heed other’s opinion? My knowledge of history tells me otherwise. The case usually becomes worse and the former dominant group is suppressed harder due to vengeance. This can be applied to academia as the mainstream school of thought receives the most spotlights (and support). However, the story above will repeat once a new school of thought comes into power. So is the history going to repeat itself forever? Should we accept it as the way things are? In my second review, I discussed the idea of discourse. Since no one will ever have the ‘correct’ answer, it is important to allow various ideas to clash in a search for the best solution. In other words, the core idea of a discourse is the willingness to listen to and accept others’ opinions. Acceptance doesn’t mean agreement, but a sincere gesture of understanding. It is always easy to criticize others and cast aside their opinions, but this is extremely arrogant as others’ opinions are as valuable as mine. Of course, a discourse is easier said than done; however, if it wasn’t I wouldn’t have to write this review. Then, my next question is, who are the


participants of this discourse? Should only the ‘experts’ speak? Who can define ‘experts’? In my opinion, everyone in our meeting is an expert because they can contribute to the discussion. I realized that the lack of knowledge in international cooperation prevents people from expressing their opinions, but what is international cooperation anyways? Are we discussing economic growth? International trade? Sustainable development? One thing I am certain is that it is an inter-disciplinary subject, and everyone in our meeting will have something to say; if only given the chance to do so. In the last meeting, we discussed various Marxist theories, and I agree with the problems posed by these theories. However, are we safe to assume them to be completely true? The first thing I learnt in university was to think critically. Theories are attempts to explain the real world, but with assumptions. Therefore, no theory should be presented as if it is the absolute truth. Also, no matter how moral and ethical a theory may be, it is up to the humans to translate it into the real world. Let me not go into the details of Communism and its failure, but this shows that the core of the issue is the people. Unless the people change, the world will not change. So how can the people change? Should we abolish the current system? Should education be improved? Should we wait for a new generation of power? Or, even before that, do my colleagues agree with my argument? The questions I pose here may have no ‘correct’ answer, but so what? Do we need to have an answer right now? I think the act of us sitting around every two weeks to discuss is already a step towards finding a solution for the future generations. We need to have more faith each other, and listen to each other’s opinions. It is a slow and tedious job, but it will surely fulfill the purpose of our meeting. I believe a big change comes from the smallest things.


5 차후기 “I don’t have enough time” I myself say this a lot. Why do we keep telling ourselves that we lack time? Modernity has abolished the concept of community and instead created a society of individuals; thus, each individual now have the burden of survival on their shoulders. In another words, one’s failure is one’s issue, not the society’s problem. On top of this, the rapid advancement of technology has increased the overall welfare of the world: mass consumption; and higher standard of living. Life is getting simpler and the society keeps encouraging people to consume. The latest trend is “Snack Culture,” where people consume cultural contents like snacks, or “Kakao Pay” to simplify the process of payment. As life becomes more convenient, people become more resistant to change: who would want to let go of the convenient life? Consequently, as the overall welfare is increasing, it is believed that the world is going in a positive direction; thus, there is no need for public discourse on these matters. In summary, it is up to an individual’s ability to climb up the social ladder, and to reap the fruits of modernity. However, individuals cannot be held responsible for all social issues; which, in most cases, go beyond an individual’s capacity. This is exactly why individuals must come together to tackle various social issues, and they need to critically examine the issues at hand to identify true risks. However, the convenience of life and the burden of survival are pressing the people to create a false belief that critical thinking is unnecessary. We forgot how to think critically. So what is critical thinking? There are many definitions for this but my understanding of critical thinking is to examine whether a statement holds truth that we can believe it. In other words, critical thinking requires examination of basic assumptions and beliefs of a subject. If there is a scientist with a certain claim, we should examine his argument by asking what are the basic assumptions. Similarly, if we intend to examine the problems of a society we live in, we should ask what the basic assumptions that the society operates on. The current world is operating on the core assumptions of modernity such as rationality or individualism; thus, we examine what kind of issues these assumptions have caused.


This is where we see different approaches for solving the problems of modernity. Some argue that modernity has its limits and something that transcends modernity needs to be created. In another case, Ulrich Beck considers self-critique as one of the highest values that could lead our society towards risk society. The development of human society has created by-products of risks and self-critique is required to examine these risks. I do not fully comprehend his arguments so I’ll refrain from criticizing his argument for now. However, one thing I do agree with Ulrich Beck is that people must start to think critically. Criticism is difficult. It is difficult because it creates enemies. The search for truth always makes people uneasy and majority of people are resistant to change. However, as Ulrich Beck has mentioned, this society is creating risks as byproducts, and once we start to think critically again, we should ask what the risks are. But, do we truly know what the risks are? Or are we just accepting what the elites lay out as risks?


6 차 후기 I am a historian and I tend to search for answers from the past. Not only answers for the future but also clues that could help me understand the present. This week’s presentation was on knowledge. We saw how the elites are in position to dictate the terms and define what knowledge is. However, we should think critically and challenge the idea that even science is full of uncertainty. So why is it accepted as the only knowledge? Why do elites have a monopoly over knowledge? The answer to these questions can be sought by examining how our society has been structured since the beginning of history. Once a community is formed, there always has been a form of social hierarchy and the elites had a monopoly on power. I am sure we all have heard the saying, “knowledge is power.” Many believe that writing was created for communication, but in fact, it was created as a tool to govern the people. The earliest writings were simple, and the purpose was for tax collection. As time progressed, the ability to read or write was monopolized by the elites. In Medieval times, the church served as the source of knowledge and the priests would preach to the people. Only after the creation of printing press, books become more widespread and literacy rate started to increase. However, even with increased literacy rate, the majority people still only do more advanced form of labor. They do not generate knowledge (or their knowledge is not accepted as knowledge). Therefore, the monopoly of knowledge is something that existed throughout history rather than a sole issue of modernity. Can we solve this issue of knowledge? I am pessimistic. The reason for my pessimism is that in the Information Age, knowledge and information are invaluable resources. In another word, sharing of knowledge means sharing of power but are people willing to share? Countries fight to have an edge against other countries by controlling information. As Habermas mentioned, one sided flow of information is a communication between a master and a slave. This can be applied at the state level as well. The advanced countries are not supporting the developing countries out of goodwill; rather there are strong political motivations behind each action. So why am I studying international development cooperation despite my pessimism? The answer is simple. I want to help those in need. In order for me to help those in Africa, I need to first understand how the world operates. I need to see the cold reality rather than believing in ideals. If the world is following the laws


of jungle, what can I do? Can I change the rules of the game? If I can’t, what can I do to help those in need? These are the questions I keep asking myself and I will continue to struggle until I find an answer. I know there is something I can do to change this world.


7차후기 Culture holds the fabric of society together and it is critical to understand the culture before conducting any form of development projects. But who’s culture? Everyone has a mirror that they use to see the world and I call this mirror, “culture.” In the 21st century, when we think of a mirror, we imagine a glass that shows a clear image of an object; however, not all mirrors reflect the object as it is. Primitive form of mirrors was a pool of dark water collected, and in later periods, bronze were polished as a mirror. Furthermore, mirrors are not always plane mirrors, rather some are curved or cracked. Thus, a mirror does not always reflect the object as it is, but distorts the object. In other words, our culture distorts the view of other person’s life style or culture. Therefore, no matter how much we try to understand other person’s culture, we will only see a distorted view of it. Hence, it is important to critically review what “our” culture entails. How does my mirror look like? This can provide some evidence to why it distorts the view of the world. So what is culture? It is not only personal experiences but also the basic assumptions of a society. These assumptions could be tacit social agreements; for example, in South Korea, people consider Japan as a taboo and this plays an important role in Koreans’ lives. Even if someone does not really know about Japan, there is a tacit social agreement that expression of hatred towards Japanese is required to be part of the community. A foreigner will find this hard to understand or even irrational but it is inseparable part of Korean culture. One’s culture can be explained as personal experiences of the world plus the social norms of one’s society; thus, no mirrors can be same. Therefore, if everyone holds a different mirror, it would be ridiculous to say that one can fully comprehend a society (possibly some of the social norms but never the culture). So should we just continue and conduct development projects as we have done until now? No, we can learn from our mistakes and improve our techniques by thinking critically. We can examine our own culture and analyze carefully the impact we will have on the field. Development is not only the act of changing lives physically but also socially: the intangible part of the people will change due to interaction


between our culture and their culture. This is why it is important to critically analyze our own culture, which will reveal our true intentions for helping those in need. What part of my culture am I trying to impose on those in need? Are there some parts that I can compromise? Only after this analysis, I will be able to identify the reasons why I wanted to become a development practitioner. The objective will be different for everyone; thus, everyone should think critically. Doug Reeler explains that change is not imposed, but it is a natural process of a society; thus, the development practitioners should realize that they are just supporters of this change. The practitioners will never be able to fully predict the outcome of an intervention, but the uncertainty can be mitigated by knowing what values are conveyed through the projects.


구이경지 [久而敬之] 구이경지. ‘오래 사귀었지만 처음처럼 존중하다.’ 내가 오래된 벗을 존중 한다면 낯선 이에 게는 얼마나 더 예를 갖추고 존중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 “주민 주도의 지역개발”이라는 강의를 통해 개발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율성 (Autonomy)와 존중 (Respect)이라고 배웠다. 최근 들어 원조 효과성에 대한 관심 때문 에 지역적 지식 또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 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은 거의 못 들어 본 것 같다. 난 과연 내가 돕고자 하는 이들을 나와 동등한 인간으로 보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도움이 필요한 ‘대상’ 으로 보는 것일까? 개발협력은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나의 행동으로 인해 한 사람, 한 지 역 더 나아가 한 국가가 영향을 받고 바뀐다. 그들의 삶이 바뀌는 막중한 일을 낭만에 젖 어 하는 것보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면 난 먼저 그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존중하다. ‘누군가를 높이어 귀중하게 대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존중 할 수 있을까? 내가 찾은 답은 공감(empathy)이다. 연인 사이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상대방을 진심 으로 사랑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다면 연인의 삶과 공감할 수 있다. 남의 입장을 이 해한다면 그들을 자연스레 존중하게 된다. 늘 그렇듯이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려운 법이다. 사랑해서 결혼한 이들도 시간이 흐르면 싸우고 존중하는 법을 까먹는데 어떻게 생판 남인 이들을 한결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리고 굳은 다짐과 고귀한 뜻을 가지고 개발협력을 시작한다고 해서 사람들을 갑자기 존중 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낯선 환경에서는 본 모 습을 들어낸다. 선교 여행을 가서 나 자신도 몰랐던 정말 추하고 이기적이고 모습을 보았 다. 사소한 일에 상처 받고 내 것부터 챙기려는 내 모습이 아직도 안 잊혀진다. 이처럼 난 매우 이기적이고 내가 편한 사람들과만 일하려는 성향이 매우 심하다. 과연 이런 사람이 세계 각국의 인원들이 모이는 국제개발협력이란 무대에서 일 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결국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나 뿐만 아니라 내가 돕고자 하는 이들을 다치 게 할 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난 아직 어리기에 충분히 발전 할 여지가 있음을 감사 드린다. 그래서 난 내 주변인들을 존중함으로 나의 개발협력의 첫 발 걸음을 떼려고 한다. 낭공스의 구성원은 정말 다양하다. 나이도, 직업도, 살아온 배경도 매우 다르다. 당연한 이 야기지만 낭공스의 참가한 이유도 다양하고 이 곳에서 얻어가고자 하는 바도 다양할 것이


다. 어떤 이는 나와 친해지고자 하는 이도 있을테고 그저 조용히 있다 가고자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찍감치 앉아 구경만 해서는 절대 이 다양성을 이해 못 할 것이기에 난 그들을 찾아간다. 그들의 마음의 문을 한번씩 두들겨 본다. 날 반갑게 맞이하는 이들과 는 이야기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 내가 미쳐 깨닫지 못한 부분들을 일깨워주며 잘 못한 부분은 지적해주고 그들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지식에 눈을 뜬다. 그리고 반대로 날 어려워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난 이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드리면서 또 한번 배운 다. 존중과 배려는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솔직히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상대방으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고 사소한 오해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 그럼에도 난 또 다가가려 노력한다. 왜냐면 난 사람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나랑 같은 꿈을 꾸는 내 협력자들이 아닌가? 나와 가장 가 까운 협력자들을 이해하고 존중하지 못한다면 내가 어떻게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이들을 돕 겠다고 나설 수 있을까? 그러기에 난 오늘도 내 협력자들에게 대화를 건넨다.

나는 해가 뜨거울 때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비가 올때면 사람들에게 피할 자리 를 마련해주는 나무이고 싶다. 나를 때리던 발로 차던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나무이 고 싶다. 그러나 난 아직 작은 묘목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기에 나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세상을 덮을 수 있는 나무가 되기까지…


낭공스 5기에게 긴 여정 이였지만 결국 모든 여정이 그렇듯 낭공스 5기 스터디도 끝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매번 끝에 다다르면 더욱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여정의 끝은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인 것처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큽니다. 제가 낭공스에 지원했을 때 저는 개발 분야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어린 아이였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낯설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려웠지만 이제는 옆에 많은 동료들이 저와 함께 길을 가서 든든합니다. 낭공스가 끝난 이 시점에서 과연 나는 발전 했는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근데 전 아직도 어린아이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아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시작 했었습니다. 그러나 스터디를 하면 할수록 내가 왜 이 분야에 들어왔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낭공스의 좋은 커리큘럼을 통해 다양한 이론들도 배우고 지식도 많이 쌓였지만 제게 가장 값진 자산은 질문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전 단 한 번도 제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질문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원래 세상은 이러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며 당연시 했지만 낭공스를 통해 처음으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과연 나의 세계관은 무엇인가? 답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도와준 낭공스 5기에게 감사합니다! 낭공스 5기 백용준 드림 2015/06/29

























David Woods. Sustainable Development_ A contested Paradigm 1조. 고지혜 최지혜 이경원

1. Opening: 지속가능한 개발 - 지속가능한 개발은 담론이다. 지속가능한개발은 방법론이 아니고, 거대 담론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을 찾아가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우리의 스터디의 커리큘럼을 살펴 보면 지속가능한 개발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문명의 붕괴 부터 우리 스터디의 커리큘럼을 보면 지속가능한개발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루어져 나가는 지를 살펴볼 수 있다.

2. 지속가능한개발의 정의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현재 통용되고 있는 정의는 현대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미래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개발을 하는 것이다. (이론일 뿐 ‘어떻게’가 부재했다.) -지속가능한개발의 요소는 통상 3가지를 이야기 한다. 환경, 경제, 사회이다. 각각의 요소 에서 요구하는 지속가능성에 차이는 있다. 환경은 환경보호적 측면, 사회는 재화의 순화를 통한 복지의 증가, 경제는 재화의 재생산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그래서 4가지로 보는 경향도 있다. 정 치를 대게 사회에 포함시켜 3가지로 말하긴 하지만, 우리가 생각했을 때도 정치적인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에 문제점이 있다. 서로 ‘상충’하는 부분이 발생한다는 것인데, 이 부분 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야 하는지가 큰 문제점이다. 먼저 재화의 재생산과 투자를 중요시하 는 경제의 성장을 지속가능으로 본다면 환경은 당연히 무시되어질 것이고, 사회도 성장위 주의 사회이다보니 분배가 어려워 질 것이다. 이것은 다른 부분에서 모두 같은 부분이다.

3. 지속가능한 발전과 생태학적 접근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다른 방법으로 생태학적 접근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러나 이것도 방법적인 면으로는 부실하다고 생각해요^^ 담론적인 면이 강하네요. -생태학적접근이라는 것은 특수교육학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이해가 쉬웠습니다. 잘 못하면 환경적인 면으로 치우쳐 생각하기 쉬운데 생태학적 접근은 유기적인 관계에 중요성 을 두고 있습니다. 환경, 사회, 경제의 1차적인 요소와 그들의 관계인 2차 그리고 그들을 포함하고 있는 국제사회와 평화와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움직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떻게??의 문제는 항상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 어떻게의 방법으로 대두되는 것이 참여적 개발이 아닐가 감히 예측해 봅니다. 그 중심에 제가 하고 싶은 교육 학이 있다고 생각하구요. -유기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과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기 위해서는 개발협력자간의 간학문적 협력보다는 초학문적협력을 통해 서로의 지식을 공유 하고 마침내 그 학문의 접점을 찾아 서로의 역량을 공유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지


David Woods. Sustainable Development_ A contested Paradigm 1조. 고지혜 최지혜 이경원

역전문가 혹은 지역주민의 참여와 그들의 교육수준을 높여 이해를 늘려가야하는 방법이 필 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개발을 위해 우리가 갖춰야할 요소들은 개인의 능력과 그 전문성이라 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오늘의 논제를 꺼내보려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지속가능한개발은 무엇인가요? 교육자인 저는 교육이 이 3가지 영역을 묶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주민에게 경 제적인 안정과 복지 정책을 요구할 수 있는 자기옹호기술을 가르치고, 민주주의와 사회 일 원으로서의 역할 세계시민으로서의 역량 등을 논의해본다면, 발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 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전공과 여러분의 언어로 지속가능한 개발협력을 이루기 위 한 생태학적접근으로 자신의 역할과 생각을 자유롭게 논의해 주세요^^


[4 차] 자연의 신자유주의화: 자연과 자본축적 간 관계 2 조 박종남

1. 이론들

마르크스주의 생태론이 안고 있는 이론적 문제는 현실 사회에서 생태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적절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 생태문제들이 이제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운 기회로 활용(녹색자본주의 또는 녹색성장이라는 용어들로 대변)

1) 포스터(J. B. Foster)와 버킷(P. Burkett)의 ‘신진대사’ 및 이의 ‘균열’ 개념, 2) 오코너(J. O’Connor)의 ‘생산조건’으로서의 자연과 ‘2 차 모순’론 3) 스미스(N. Smith)의 ‘자연의 생산’과 자본에 의한 ‘자연의 포섭’ 개념,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제시되고 있는 ‘축적 전략으로서의 자연’ 4) 카스트리(N. Castree) ‘환경적 조정’의 개념

2. 포스터의 신진대사

1) 두 가지 유형의 환원주의: ‘자연주의적 환원론’과 ‘사회학적 환원론’-->‘자연에 대한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 2) 사회와 자연은 상대적으로 분리 된 메커니즘에 따라 작동하지만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매개적 관계 속에서 작동하며, 발전 또는


변화. 상호교환 관계(마르크스는 자연과 인간을 매개하는 것은 노동이며 자연과 인간 간 상호작용은 신진대사로 이해, 즉 노동을 통해 자신과 자연 간의 신진대사를 조절/통제==> 부의 원천) 3) 농촌과 도시 간 불균등 발전과 더불어 생태문제, 즉 ‘신진대사의 균열’을 고찰. 장거리 무역의 등장과 도시화 과정 4) 대규모 공장제 공업은 도시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 자원들을 대규모로 소모. 식민지는 모국의 산업화를 부양하기 위해 토지, 자원, 토양을 약탈

3. 포스터 이론 비판

1) 노동과정을 통한 자연의 생산과 자본축적 과정에의 포섭은 신진대사의 개념이나 이의 균열에 관한 분석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2)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진대사의 균열 또는 단절은 자본축적의 위기를 초래하기보다는 오히려 추가적 자본축적을 위한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 3) 신진대사의 균열을 극복한 새로운 생태사회에 대한 전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공간적 분업이나 지역 불균등 발전의 해결 방안

4. 오코너의 생산조건으로서 자연과 2 차 모순

1) 1 조 발제 참조. 2) 폴라니의 ‘허구적 상품’ 개념. 생산조건(자연)은 판매를 위해 생산되지는 않는다. 노동, 토지, 화폐라는 상품은 완전히 허구적인 것이다”(Polanyi, 1957: 96). 3) 생산력과 생산관계 모순


4) 자연과의 2 차 모순 5) 생태위기는 오히려 자연적 생산조건을 파괴---> 포괄적 생태운동

5. 오코너 이론 비판

1) 생산조건 개념의 모호함(포괄적) 따라서 ‘허구적상품(폴라니)’을 ‘의제적자본’의 개념과 관련시켜 이해할 때 유의미. (ex. 4 대강은 하천 정비나 토지 개발과 같은 자연의 생산으로 얻은 이윤은 일반적 상품 생산을 통한 가치 창출과는 달리 실제 가치가 아닌 ‘의제적 가치(자본)’에 근거하였음) 2) 생산력과 생산관계 모순 그리고 자연과의 모순이라는 2 가지 모순을 기계적으로 결합하려는 시도.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분리. 3) 생태위기가 경제위기로 이어지나? 오히려 새로운 투자 및 이윤의 기회 획득.

6. 스미스의 자연의 생산 개념과 실질적 포섭

1) “사고, 개념, 의식의 생산은 우선 물질적 활동, 인간들의 물질적 상호 과정, 실질적 생활의 언어와 직접 얽혀 있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인용. 자연의 생산 개념은 ‘자연은 그 구성에 앞서 존재하지 않는다,’ 또는 ‘자연은 문화의 일부’ 2) 자연의 생산 개념은 노동에 의해 매개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변화. 임금에 의해 포섭(즉각적 통제)은 ‘형식적 포섭’. 기계적 노동과정 속에서 자본주의 사회조직에 포섭되는 것을 ‘실질적 포섭’. 미국과 같이 자본주의 영농방식은 농민의 기술적 토대 박탈하고 자연에 화학물질 투입의 핵심적 수단으로 전락. 기술의 발달은 직접적 개량을 넘어 자연이 실질적으로 자본에 의해 작동되도록 조작(ex. GMO, 벌목을 위한 산림 가꾸기 등)


3) 어떤 사회적 수단들과 제도들을 통해, 자연의 생산이 조직되어야 하는가? 자연을 생산하기 위한 민주주의적 수단을 어떻게 창조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종류의 자연을 원하고 있는가? 7. 스미스 이론 비판

1) 생태문제의 원인은 지적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함. 2) 자연의 소유관계(특히 토지)로 인해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음 3) 자연과 사회 간의 역사성, 복합성, 다중성, 다면성 등을 고려하지 않음

8. 카스트리의 환경적 조정

1) 자본주의는 생태 위기에 봉착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위기를 통해 ‘환경적 조정’ 시도하는데 이는 스미스의 “의제적 포섭” 개념과 하비 “공간적 조정”의 개념에서 발전(하비의 공간 조정이란 잉여 가치는 노동 과정에서 이루어지지만 필연적으로 지리적 입지와 연관. 자본축적은 공간의 극복을 가져다주지만 이는 새로운 공간과 생산의 속박을 통해서만 가능. 즉 판매와 구매의 시공간적 분리와 지리적 불평등은 발전의 필수. 2) 기존의 이론을 살펴보면, 포스터: 자본주의가 생태위기의 와중에도 이윤을 얻을 수 있음. (황사현상과 산소마스크, 석유고갈과 세금인상)---> 주로 소비강조와 소비억제. 파나요타키스: 상호전가 원칙. 생태문제에 직면하여 자본은 지속적인 비용전가를 추구. 그런데 이러한 비용전가는 균일하게 분배되지 않음. 비용전가를 통한 부담은 공동체 전체에게 지워질 수도 있고, 특정 집단에게 부가. 3) 카스트리의 환경적 조정의 네 가지 유형.


- 신자유주의가 생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우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습지개발권) - 환경친화적 동기 없이 자본에 의한 자연의 형식적·실질적 포섭을 확대(WTO, 민영화) - 환경이나 보건에 대한 공적, 또는 국가적 여론을 무릅쓰고 자연을 적극적으로 퇴락시킴으로써 이윤을 얻기 위해 자연을 형식적·실질적으로 포섭하는 방안 - 책임과 비용을 민간영역이나 시민사회에 전가하는 방안

9. 결론


4차.수레바퀴 아래서.2015년 05월15일(금) _ 작성자: 이미선, 강예은 코멘트: 강지연

제임스 오코너, 자본주의, 자연, 사회주의 이론적 서설 -오코너는 전통적 맑스주의가 전통적 노동운동의 실천을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태적 맑스주의”는 신사회 운동1의 실천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주고 있다고 주장함. 

두 가지 종류의 위기 이론  맑스는 생산조건을 다음과 같은 세가지 종류로 정의하였고 ①

자연요소 -외적, 자연적 조건은 생태계의 생존 유지, 적당한 오존층, 해안이나 하천 유역의 안정성, 토양, 공기, 물의 질 등과 같은 용어로 논의되고 있음

노동력(개인적 생산조건)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안락, 사회화의 종류와 정도, 노동관계의 유독성과 노동자의 대처 능 력, 사회적 생산력과 생물학적 유기체로서의 인간과 같은 용어로 논의되고 있음

공동체적 조건 (사회간접자본) -사회자본, 기간시설등의 용어로 논의되고 있음

 이러한 생산조건을 오코너가 개념화 함 “생산조건은 상품생산, 분배 그리고 교환 그 자체는 제외된, 상품화된 혹은 자본화된 물질성과 사회 성을 포함한다.”  첫번째 위기 (모순): 전통적인 맑스주의 이론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 ☞’과잉생산’(수요부족) 자본주의는 이윤을 추구 자본 + 자원 + 노동력 → 물건 → 제품 → 이윤 잉여가치 증대를 위해 노동력을 착취함. 자본가-노동자 사이의 생산관계에서 모순이 발생 잉여가치=노동착취로 인한 산물 -잉여가치가 많아질수록 시장에서는 잉여가치의 실현이 어려움 잉여가치 구매를 위한 수요의 부족으로 인한 첫번째 위기!(실현의 위기)

1960년대 말부터 서구 사회에서 기존의 노동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 투쟁적 성격의 사회 운동에서 벗어나, 환경 운동, 여성 운동, 평화 운동 등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신사회 운동이라고 한다. 신사회 운동은 다원적 가치를 중시하고 다양한 분야의 쟁점을 대상으로 하며, 인류와 지구의 미래에 관련된 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다. 오늘날의 시민 운동은 대부분 이러한 신사회 운동의 부류라고 할 수 있다. 1


 두번째 위기: 생태적 맑스주의의 이론 ”생산력+생산관계와 생산조건 간의 모순” ‘과소생산’(공급부족) -생태적 맑스주의의 출발점은 생산력2 및 생산관계3와 생산조건 간의 모순 생산조건의 훼손→자본주의적 생산비용의 증가→이윤압박→과소생산(유동성의 위기) 파괴적 영농법→산림붕괴→나무, 땅값오름→자본요소 비용상승 때문에 조금만 생산. ☞ 자본주의에 따른 자연의 파괴는 다시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친다. (자연적, 사회적 환경의 문제들은 노동빈민층을 포함한 빈민층에게 더 절실한 문제로 다가옴.)  전통적 맑스주의 위기이론은 신용/부채 구조를 자본 과잉 생산의 결과로서 해석한다. 생태적 맑스주 의는 똑같은 현상을 자본과소생산과 생산된 자본의 비생산적 사용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요약하자면, 생산관계, 생산력 그리고 생산조건들의 보다 사회적인 형태들 모두가 그들 내부에 사회주 의적 형태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이것들은 결과적으로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전통적 모순에 의 해서뿐만 아니라 생산력/생산관계와 이것들의 조건 사이의 모순에 의해 초래된 위기가 만들어 냈다. 결국 자본주의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위기를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다.

 결론: 자본과 신 사회운동간의 투쟁은 두 가지 기본적인 모멘트를 갖는다. 1) 자본자신의 고유한 무모성과 과잉으로부터 초래되는 더 이상의 파괴로부터 생산조건 또는 생활수 단을 보호하기 위한 대중적이고 거의 보편적인 투쟁이다. 2) 생산조건을 재구조화하려는 자본과 국가의 계획과 정책 증 생산조건 변화의 형식과 내용을 둘러 싼 투쟁이다.

2

'생산력'(Produktivkräfte)이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물질적재화를 창출해 내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능력을 가리킨다.

( 마르크스 『독일 이데올로기』 (해제), 손철성, 2004,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3

생산은 사회적 활동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산 과정에서 타인과 일정한 사회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생산 과정

에서 일정한 사회 관계 즉 생산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러한 생산 관계는 생산력에 의해서 규정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생산 관계가 생산력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생산 양식을 구성하고 있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생산력과 생산 관계는 서로를 전제로 하고 규정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상호 작용의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크스 『독일 이데올로기』 (해제), 손철성, 2004,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마르


5 차 Environmental Policy: Ecological Modernisation or the Risk Society 2 조 박종남

1. 환경과 사회의 관계 변화

● 80 년 이후 ‘불확실성(uncertainty)’과 ‘불안(insecurity)’이 증대 (가령 내전, 남북의 빈부격차 심화). 환경에 관한 논의는 핵을 중심으로 오존층 파괴, 온실가스, 멸종 등 다양하나 최근 “자원고갈”과 “오염”(TOP)이 핵심 화두. 사회구조변화(development 개념 변화)와 지속가능한개발에 대한 논의 본격화

● 사회구조변화 개념과 생태적재구조화 동일한 개념. 지난 4 차 스터디에서는 두 구조 모두 자본주의 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모순, 생태문제의 해결은 자본주의 구조를 해결해야 가능하다는 입장

● 반면 생태근대화 현재 생산과정과 제도개혁을 통해 사회모순, 생태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새로운 산업의 성장 기회. 즉 환경보호를 위한 기술

발달은

다른

산업이

됨.

현재는

전환기(moment

이슈화:

학문적

연구나

of

transition

or

transformation).

환경이

정치적(대중적)

논의는

여전히

초기

단계.

근시적/미시적 대안. 따라서 담론으로 성장시켜야 함. 이런 점에서 “지속가능한개발” 역시 실제적인 개념이 아닌 수사적 표현에 불과함.


2. 환경 문제 인식 과정

● 환경이슈는 1972 년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 증폭되면서 Rio(1992 년) 회의 때 절정, 이어 ‘지속가능한개발’ 아젠다. 초기 논의는 경제문제였으나 자연스럽게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폭. 하지만 환경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를 살펴보면,

● 환경문제의 원인을 사회현상으로 인식하기 시작. 즉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사회구성원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는 의미. 따라서 유럽과 미국이 이해하는 환경문제와 아프리카, 아시아가 이해하는 환경문제 사이에 차이가 생김. 누구의 의견을 따를 것인가? 환경문제는 권력과 지식의 영역. 미디어/통신의 발달/국제기구나 NGO 활동은 정치권력과 지식인의 환경의식을 국제문제로 확장. 이는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을 증폭. 금융기관의 결정에 따라 환경이슈의 우선순위가 결정될 수 있음.

● 해결책을 논의할 때 권력과 지식의 영역에서 대안을 마련함. 각자의 입장에서 각기 다른 해결책을 대안으로 제시. 특히 과학은 “불확실성”이라는 한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한 지식으로 인정. 하지만 여기서도 누구의 연구인가가 중요함(황우석, 천안함 등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하면 우리 사회에서 누구의 권력이 지배적인지 확인할 수 있음). 즉 다른 연구가의 불확실성이 그 연구의 한계로 지적되는 권력 현상

● 지금까지 논의를 정리하면,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해결이 있는지를 찾으려는 노력은 정치적, 경제적 권력과 지식의 영역 내에서 논의되기


시작. 따라서 이들의 윤리와 도덕에 대한 고민이 수반. 역설적으로 모든 학문(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등) “환경 윤리”에 대해서 고민해야 함.

● Soft Sustainability vs Hard Sustainability = 생태근대화 vs 위험사회

3. 위험사회

1) 위험사회: 울리히 벡의 1986 년 출간된 『위험사회』에서 소개된 개념. 벡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개념화. 벡은 위험사회를 근대 산업사회의 성공이 낳은(비의도적) 결과로 인식. 자연적인 재난이나 위해(danger)와 구분.

2) 위험사회 성격

●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앞서 논의한 것처럼 정치, 경제, 사회, 기술변화의 산물. 이때 인위적인 행위의 동기는 경제적 유용성. 즉 근대의 실패가 아닌 성공에 의해서 발생. 원자력 연구의 성공이 체르노빌 사태를 낳은 것이라는 점. 근대 대의 민주주의는 과학자 집단의 정치적 권력을 부과(역설적으로 이들의 연구 인허가 문제를 국회나 정부 관료가 결정하게 됨) 하여 정당성 확보.

● 감각적으로 인식 불가. 체르노빌 방사능 낙진이 유럽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데 어느 정도 위험한지 감각기관을 통해 알 수 없음. 따라서 무엇이 얼마나 문제인지를 과학자 집단을 통해서 확인해야 함. 위험을 예견한다고 하여 무조건 따라야 하나?


● 위험의 보편성. 두 가지로 해석 가능. 위험은 국경을 넘는다는 것과 오염물질에 노출되는 위험은 계층과 관계없이 동일하다는 것. 하지만 방사능 물질에 의한 영향은 동일할 수 있으나, 원자력 발전소가 서울에 위치하지 않는 것은 계층에 따라 위험이 차등적임.

● 위험을 계산할 수 없음. 기후변화의 경우 전 지구를 조사할 수 없기 때문에 얼마나 위험한지 알 방법이 없음.

● 환경문제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위험사회는 실제인가? 사회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여전함. 또한 모든 제품에는 일정 비율로 불량품이 있는 것처럼 인위적인 산물이 가지는 불량률을 현대사회 전체로 확대해석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음. 또한 담배나 유해식품의 경우 안 피거나 안 먹으면 위험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 설명이 불가.

3) 위험사회와 개인

● 거시적 측면을 위험사회라고 한다면 미시적 측면을 개인화(개인주의화)로 볼 수 있음. 벡의 위험사회는 “거시적 위험+미시적 위험” 합쳐진 것.

● 근대사회는 개인의 결합, 즉 공동체적 제도들을 해체. 가족의 역할이 약화되고 계급은 직업으로 대체되었음. 제도적으로 조건화된 개인들은 불안에 의해 연결. 역설적으로 기존의 계급 개념에서 하층민은 빈곤이 핵심적 문제였지만 현재는 그러한 계층 결속력마저 상실. 개별화된 개인들을 공동체로 결합시키는 과정이 신사회운동(환경운동의 중요성은 환경 인식이 아닌 근대사회의 한계와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


● 단순히 전통적 가치가 흔들렸다고 하여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가? 계급 간 격차는 그대로 유지된 상태에서 대량실업 등으로 개인은 집합적 운명을 함께 하고 있음. 반면 생활조건이 과거에 비해 나아졌기 때문에 계급격차에 대한 “공적인 논의” 사라짐. 따라서 실업, 건강, 결혼, 학업 등 사회와 밀접히 연관된 개인사(생애주기) 모두 개인의 책임(보험 가입 안하면 치료 받지 못하는 것). 여성 개인화의 경우 젠더와 노동시장 모순을 모두 넘겨받게 됨.

4) 성찰적 근대화:

● '성찰적 또는 재귀적 근대화', ‘근본화된 근대화(radicalized modernization)’, ‘2 단계 근대화(second phase modernization)’, ‘고도 근대화(high modernization)’, ‘후기 근대화(late modernization)’, ‘책임 있는 근대화(responsible modernization)’등으로 불리는 ‘근대화’ 논의가 다시 부흥. reflexive: 재귀적, 자기 자신에게의 의미. 한국어로 성찰적으로 번역. 성찰적근대화는 탈근대화와 구분.

● 근대성: 근대성의 핵심은 ‘자기를 이해’하려는 데 있음. 따라서 성찰적 근대화는 근대를 반성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대면하는 데 있음. 또 다른 근대성의 핵심은 지식. 따라서 전근대적 방식의 비합리적 해석이 아닌 객관적이고 타당한 방법으로 근대를 돌아볼 수 있음.

● 이처럼 성찰을 기준으로 제 1 근대와 제 2 근대로 구분이 되며 제 2 근대를 위험사회라고 칭함. 현재는 제 1 과 제 2 근대 사이에 있음(현실에 대한 성찰은 시작되었지만 자기에 대한 성찰 이전의 상태).


● 성찰의 방향과 속도의 문제. 여전히 이성의 절대성. 자율적인가? 강압적인가? 제 1 근대에서 제 2 근대로의 전환이 아니라 제 1 근대의 심화 가능성.

5) 세계시민사회

● 6 차 스터디에서 다루게 될 예정


2015. 6. 12

발제자: 이미선, 박은빈, 백용준

Community Impacts of Technological Change: Toward a Longitudinal Perspective ✪ 요약: 물질적인 개발(건설, 생산, 확장)뿐만 아니라 개발 전후 상황 또한 상당한 사회적 영향을 미치기에 간과해선 안됨 ✪ 새로운 부분: - 개발의 3 단계 (시간의 흐름) - 개발은 물리적뿐만 아닌 사회적 영향도 미침 ✪ 사회 변화의 흐름

기회/위기 단계

개발 단계

적응 단계

시간의 흐름 (Longitude Perspective) 1. 개발 前: "기회/위기" 단계 -

개발 前 (proposed development)도 인간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5개의 시스템 (relationship between humans and the broader environment)

문화 생물리

심리

사회

경제

2. 장기적 영향: "적응" 단계 - 이미 존재하는 "return to normal" 가설 또는 "개발" 모델은 장기적 영향을 설명하기엔 부족 - 개발 前 /개발 中 축적된 경험 또는 영향이 "과잉적응"의 문제를 이르킬수 있음 3. 과잉 적응의 조건 - 개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기대 - 진행 중인 번영 - 번영의 수준 - 점진적 발전 및 능력의 전문화 ✪ Discussion Questions - 개발도상국에만 국한된 local knowledge 가 아닌 SDG 의 대상인 전 세계 나라가 지역개발을 할때 community-level 에서의 사회적인 이슈의 이해와 함께 개발계획을 세워야 함. 사회적인 영향을 개발계획을 수립할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참고자료> Table 1: Ability of Towns to Sustain the Life Cycle Through Revitalization / Diversification Category Boom-bust towns

Characteristics Examples single industry mining towns; completed population life cycle remote Pine Point, NWT location; limited access to outside; competing with regional centres


2015. 6. 12

Towns of uncertainty Diversified towns Sustainable towns

발제자: 이미선, 박은빈, 백용준

single industry mining towns early phase of population life cycle opportunity exists to diversify economic base diversify economic base (i.e. from mining to services centres) based on production of renewable resources (i.e. forestry) ability to avoid short life cycle of mining towns

Fort McMurray, Alberta Norman Wells, NWT Yellowknife, NWT Mackenzie, B.C.

Source: Bone (1998). Table 2: Freudenberg‟ s and Gramling‟ s Framework for Assessing Impacts of OCS Development Potential Impacts by Phase of Development System Opportunity - Threat Development / Event Adaptation / Post- Development Affected Potentially massive alteration of Anticipatory construction or Loss of some uses due to the the physical environment; lack of maintenance; decay exploitation of others; destruction of old, and Physical of existing structures and deterioration of alternative construction or upgrading of new facilities; new construction productive facilities / existing facilities Suspension of activities that Initial contact; potential for Gradual erosion of culture; loss assure cultural continuity, i.e. loss of cultural continuity; of unique knowledge, skills, and subsistence harvest; reduced Cultural threats to the legitimacy of / or perspectives; loss of cultural effectiveness of traditional norms existing institutions leaders, seeking jobs elsewhere / sanctions Organization; investment of Alteration of human capital, Population increases; influx of time, money, and energy for through refocus on specialized outsiders; decline in density of support or resistance; skills with few other acquaintanceship; social change; Social conflicts resulting from applications; losses of formation of newcomer / olddifferential construction of organizational skills and timer cleavages risks networks Litigation to promote or Intrusion of development activity Recriminations over loss of block proposed into community politics; earlier options and / or development; intensified litigation and conflict over „unexpectedly‟ short duration Political / lobbying; organized protests; activity impacts; decreasing of boom-bust prosperity; zoning Legal potential „civil capacity of community facilities / regulatory changes in search of disobedience‟ or even and services new development violence Large-scale job loss and / or Decline or increase in Traditional boom-bust effects; unemployment; loss of property values; speculation inflation; entrance of „outsiders‟ economically flexible and investment; efforts to Economic and national chains into local businesses; increased „lock up‟ particularly labor market and retail sector bankruptcies, even in „spinpromising parcels off‟ sectors of economy Depression and other problems Euphoria; stress associated with Anxiety, stress, anger; gains associated with loss of rapid growth; psychosocial employment; acquisition of Psychological or losses in perceived pathology; family violence; efficacy potentially maladaptive coping losses or gains in efficacy strategies Source: Freudenberg and Gramling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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