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식지 | 2008년 26호 ● 발행일 | 2008년 3월 1일 ● 발행처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 발행인 | 고은태 ● 편집 | 사무국 ● 디자인 | DNC ● 값 | 1.000원 ● 주소 |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사서함 2045호 ● 전화 | 02-730-47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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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nesty International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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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de Apartado ´)의 평화공동체(Peace 콜롬비아 산 호세 드 아파르타도(San Jose Community) 아이들. 1997년 3월 설립된 이래 공동체는 지난 10년을 무장단체에 의 한 학살과 위협의 고통 속에 지내왔다. 최근 평화공동체가 빼앗겼던 초기의 터전으로 돌아가고 하자 다시 위협적인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자세한 내용 <이달의 탄원> 참조)
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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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적 진보를 향한 발돋움 _ 김호수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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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두 명의 인질을 석방하다 / 벨로루시의 청년 활동가 석방되다 / 유럽, 인신매매의 희생자들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다 / 원주민들에게 사과한 호주 정부 / 석방된 쿠바의 활동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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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 그리고 오마르 카드르 _ 허의도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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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네스티 일 년의 도전과 변화 _ 김희진
지금 세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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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석방을 기다리는 팔레스타인 아이들 /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불태우 는 캄보디아
씨줄과 날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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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씨앗을 뿌리는 희망의 사람 주재영님 _ 김호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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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 인턴쉽, 그 6개월의 시간 _ 김소현
한국지부 활동모음 2 1
부록 국제앰네스티 _ 콜롬비아 정부는 평화공동체(Peace Community) 구성원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합니다.
{
포토에세이
}
ⓒ AI
good news
굿뉴스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두 명의 인질을 석방하다 콜롬비아 무장혁명군(The Revolutionary Armed Forces of Colombia, FARC)은 지난 1월 10일 여성 인질 두 명을 석방하였습 니다. 석방된 두 명의 인질은, 현재까지 게릴라 단체에 의해 억류되 어 있는 콜롬비아 대선 대통령 후보 잉그리드 베탕쿠르(Ingrid Betancourt)와 함께 출마했던 부통령 후보 클라라 로하스(Clara Rojas, 2002년 납치)와 전 국회의원 콘 스엘로 곤잘레스(Consuelo Gonza ´lez, 2001년 납치)입니다. 이 석방은 우고 챠베스(Hugo Chavez) 베네 주엘라 대통령의 중재로 이루어졌습니다. 우고 챠베스는 2007년 말 이들 인질을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으 로부터 인계받기로 되어 있었으나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두 여성인질은 콜롬비아의 남동쪽에 위치한 과 비에르(Guaviare) 군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적십자사와 베네수엘라 정부군의 대표들에게 인계되 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두 인질들의 석방을 환영합니다. 국제앰네스티의 대변인은 인질 납치는 절대 로 용납할 수 없는 큰 범죄이며, 전쟁범죄에 속하는 인권 탄압 행위라며 다음과 같이 발표했습니다. “콜롬비아 무장혁명군과 민족해방군(the National Liberation Army, ELN)은 무조건 인질로 납치한
지구적 진보를 향한 발돋움
시민들을 즉시 석방시켜야 합니다.” 국제앰네스티의 클라우디오(Claudio Cordone) 집행위원도“그들이 억류하고 있는 인질이 군인이든,
다르푸르 학살을 불러온 수단정부 유전개발에 대규모 투자
시민들이든 언제나 인간답게 대우해 주어야 하며, 절대로 죽여서는 안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미얀마(버마) 군사정권에 무기 제공 티베트 및 소수민족 탄압
벨로루시의 청년 활동가 석방되다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중국 정부에 인권의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벨로루시의 청년 인권활동가인 즈미체르 다슈케비치(Zmitser
빅 이벤트를 넘어 지구적 가치 진보를 향한 발돋움이 되기를,
Dashkevich)는 스크라우(Sklou) 감옥에서 조기 석방되었습니다.
선전을 위한 쇼가 아닌 변화와 평화를 만드는 장(場)이 되기를,
작년 2월 국제앰네스티는 즈미체르의 석방을 요구하며 탄원엽서를
13억 인구의 대륙 속에 참다운 인권유산이 남겨지길 바라는 경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쓰는 국제적 활동을 벌였습니다. 즈미체르는 석방 이후 이루어진 짧 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석방이 벨로루시 정부에 가해진 국제적 압력
2008년 2월 12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베이징올림픽 예술고문직 전격사퇴
덕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월 23일 즈미체르는 스크라우 우체국에서 친구들에게 전화
“양심은 그 일을 그대로 계속 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를 해 그의 석방을 처음으로 알린 후 기차를 타고 혼자 집으로 돌아 김호수 님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자원개발팀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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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수감된 즈미체르에게 보낸 마지막 음식물 Amnesty International South Korea 200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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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입이 거부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기석방 가능성을 예감했다고 했습니다. “영프론트(Young Front)” 라는 단체의 리더인 즈미체르는, 지난 2006년 11월 "비인가 조직의 사회 활동 과 참여"라는 혐의로 징역 18개월을 선고받았고, 2008년 3월 15일에 석방될 예정이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즈미체르를 양심수로 규정하고 그의 석방을 위해 회원들과 학생 단체, 지지자들이
원주민들에게 사과한 호주 정부 호주의 수상 케빈 루드(Kevin Rudd)는 지난 2월 13일 호주 원주민인‘빼앗긴 세대(Stolen Generation)’ 의 회원들과 그 가족들에게 원주민에 대한 정부의 차별정책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호주 역사에 기념비적 사건으로 평가되는 이 연설은 호주 전역에 생중계되었습니다.
10,000개가 넘는 종이학을 벨로루시 당국에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멕시코에서 열린 2008년 국제대의원
원주민에 대한 호주 정부의 공식적 사과가 있기 전 호주인권평등위원회(The Human Rights and
총회(ICM)에서 국제앰네스티 유스 회원들은 만든 거대한 종이학을 만들어 벨로루시 정부에 보냈으나 국
Equal Opportunity Commission’ s, HREOC)는‘가정으로의 귀향 보고서(Bringing Them Home
경에서 반입이 거부당했고, 그 뒤 벨로루시의 인권단체인 비아스나(Vyasna)로 보내 정부기관에 무사히
report)’ 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10년에서 1970년 사이에, 토착 원주민과 토레스(Torres)
전달된 바 있습니다.
해협 원주민 아동 10명 중 1명에서 3명은 정부의 정책에 의해 부모와 강제로 헤어져야 했고 대부분이 성 적∙육체적∙정신적으로 학대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보고서는 또한 인권침해 피해자는 반드시“적 절한 치료” 를 받아야 한다는 국제법의 논지에 따라 54개의 권고 조항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럽, 인신매매의 희생자들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다 유럽은 지난 2월 1일 새로운 협약의 발효와 함께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보호에 한 발짝 더 다가섰습니다.
국제앰네스티의 대변인은 원주민에 대한 호주 정부의 공식적 사과를 환영한다고 말하며 "우리는 이것 이 현재 원주민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심각한 차별과 비극적 유산에 대한 끝을 상징하기를 바랍니다. 그리
유럽 인신매매 반대행동위원회(Council of Europe Convention on Action against Trafficking in
고 호주 원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심각한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첫 걸음이 되었다고 생각합니
Human Beings)에 속해있는 유럽의회 14개 국가들은 이날 인신매매 희생자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노력할
다."라고 발표하였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호주 지부의 캠페인 코디네이터 로드니 딜런(Rodney Dillon)도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습니다.
당국의 사과문 발표에 대해“호주 원주민과 비원주민들 간의 조화를 이루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할 것이며,
국제앰네스티, 국제노예반대기구(Anti-Slavery International), 그리고 라 스트라다 인터내셔널(La
이들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드는데 필요한 존경과 신뢰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라고 평가하
Strada International, 여성의 인신매매를 막기 위한 유럽 인권단체)은 오랜 시간 캠페인을 벌여온 현대
였습니다. 또한“우리는 호주 정부가‘가정으로의 귀향 보고서’ 에 명시된 다른 권고 사항들도 성실히 이행
식 노예제인 인신매매를 막기 위한 이러한 시도를 환영하는 바이며, 또한 33개의 다른 유럽의회 국가들과
해 주기를 바랍니다. 빼앗은 재산을 정당한 소유자에게 돌려주고, 그들의 명예회복을 돕고, 이러한 일들
유럽연합(EU)도 이 조약을 따르도록 촉구하였습니다.
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신뢰를 쌓은 후에 그들에게 필요한 보상해주는 것이 순서입니다.” 라고 요구했
인신매매 피해자 대부분은 그들이 당한 범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 이해받지 못한 채 오히려 불법
습니다.
이주자나 범죄자, 그리고 인신매매업자를 체포하기 위한 미끼로 이용됩니다. 심리학자들은 그들이 범죄로 인해 입게 된 사회적∙의학적 피해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인신매매 피해자들은 그들이 인신매매업자들을 체포하기 위한 수사에 협조한다는 조건 하에만 회복을 위한 치료를 제공 받을 수 있으며,
석방된 쿠바의 활동가
어떤 수사기관들은 인신매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매매업자의 위협이 있는 곳에 처하게 하기도 합니다.
지난 2월 둘째 주 일주일 동안 쿠바 정부는 네 명의 인권활동가들을 석방했습니다. 이들은 2003년 3월 정
이 협약을 발효시킨 위원회(소속 국가:알바니아, 오스트리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불가리아, 크로
부의 방침에 반대하는 체포되었던 75명의 구금자 중 일부입니다. 석방된 네 명은 62세 오마르(Omar
아티아, 키프로스, 덴마크, 프랑스, 그루지야, 몰타, 몰도바, 노르웨이, 루마니아, 슬로바키아)는 인신매매
Pernet Hernandez), 59세 페드로(Pedro Pablo Alvarez Ramos), 50세 호세(Jose ´ Gabriel Ramon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접근을 하겠다고 결의하였습니다. 이들은 협약에서 인신매매 피해
Castillo) 그리고 48세의 독립 저널리스트 알레잔드로(Alejandro Gonzalez Raga)입니다.
자들의 보호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신매매를 개별국가 법률 및 국제법 위법 으로 처리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아직 감옥에 남아있는 58명의 사람들을 양심수로 규정하고, 성명서를 통해 이들을 즉각 석방하고 사람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쿠바의 양심수 네 명이 석방된 것은 매우
이 협약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58명의 사람들이 단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감옥
-모든 절차에서 인신매매 피해자들은 신변을 보호받아야 한다.
에 갇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이 석방이 쿠바의 변화를 의미하는 신호이길 바랍니다. 또한
-인신매매 피해자에게는 당국의 수사협조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회복을 위한 치료와 조치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것이 표현의 자유와 활동의 자유를 포함하는 인권의 존중을 의미하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라고 발표하였
-인신매매 피해자들은 적절한 구제와 고통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습니다.라고 국제앰네스티 아메리카 지역 총괄국장인 케리 하워드(Kerrie Howard)는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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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힌 21살의 오마르 카드르. 캐나다 국적인 그는 2002년 15살 소년병으로 아프가니스
그런데 왜 관타나모인가? 왜 쿠바 동부 사탕수수∙커피∙카카오 등 가공 농산물 집산지로 유명했던 이 지
탄에서 미군 특수부대에 수류탄을 던져 1명을 숨지게 한 혐의자다.
역이 세계적 인권유린의 표상으로 떠오르고 말았던가?
카드르는 지난 2월 5일 재판받기 위해 군사법원에 섰다. 이름 앞에‘최연소 관타나모 수감자’ 라는 수식어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1903년 이래 천혜의 관타나모를 해군기지로 삼았다. 1년에
를 단 그를 놓고 군 검찰과 변호인단은 거센 공방을 벌였다. 군사법정에서 그의 유죄가 인정되면 종신형에
금화 2천개(당시 가치 약 4천 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이곳을 쿠바로부터 빌리는 방식이었다.
처해질 수도 있는 급박함을 반영하는 듯했다.
지금도 미국은 매년 임차료(rent) 명목으로 약 4천 달러를 쿠바정부에 지급하고 있는데, 쿠바 정부의 '미군
변호인인 해군 소령 윌리엄 쿠블러는 이렇게 방어논리를 폈다.
기지 철수' 요청에 미국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도 어쩔 방도가 없다. 당시 두 나라는 양측이 같이 원할 때 만 철수한다는 불평등조약을 맺은 탓이다.
칼 럼
인권유린의 수용소,
언제 평화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랴!
관타나모 그리고 오마르 카드르 “카드르는 알카에다 구성원이 아니라 알카에다의 희생양이다. 그에게 사 법권을 행사한다면, 판사는 서구 역사상 최초로 소년이 저지른 전쟁범죄 를 다루는 게 된다.”소년병을 성인 적 전투원과 구분하지 않고 처벌하려
허의도 님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언론인위원회 위원장이며, 『월간중앙』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애초 관타나모는 500명 정도의 군인이 주둔하며 사격훈련장으로 이용하 던 수준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러다 2002년 초 미국이 탈레반과 알카 에다 포로들을 이곳에 억류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는 것은 국제조약 위반이라는 것.
미군 경비병이 증파되고 포로에 대한 가혹행위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관
그의 성장 배경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집트계 이민자인 아버지를 따라
타나모는 인권운동가의 비난 표적으로 떠올랐다. 국제앰네스티가 지난 1
1997년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카드르는 지하드(성전)를 수행하는 사람들과
월11일 관타나모 포로수용 6주년을 맞아 워싱턴DC∙런던∙스톡홀름∙
지내며 군사훈련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
서울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글로벌 캠페인을 벌인 것이 대표적이다. 세
덴의 측근으로 알려졌는데 2003년 파키스탄에서 피살됐다.
계적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부인이자 그룹 스파이스 걸스 멤버였던 가수 빅토리아 베컴은 최근 한 패
카드르는 알카에다 무장세력과 함께 숨어있다 2002년 7월 수색 중인 미군 병사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체포
션쇼에서 관타나모 포로를 연상케 하는 황색 포로복을 본뜬 옷을 입고 나와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당시 가슴에 총을 맞고 신음하던 그는 미군한테“죽여 달라” 고 호소했던 것으로 전해져 사람들의 가슴을 더
세계 분쟁지역 전문 르포라이터 김재명은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에서 이런 역설을 쏟아낸다. 관
아프게 했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2006년 영화‘관타나모로 가는 길’ (The Road To Guantanamo)의
타나모의 현장을 취재하고 돌아와 쓴 글에서 그는“영구 평화는 무덤 속에서나 가능하다” 고 말한 독일 철
사연처럼…
학자 칸트의 말을 빌려,“그렇다면 차라리 평화를 기원하기보다 아득한 절망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를 두고서 변호인단은 카드르가 자의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국제앰네스티를
소수자와 못 가진 자, 약자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 고 적었다.
비롯한 인권단체들도 동조하긴 마찬가지다. 그를 캐나다로 돌려보내거나, 아니면 민간 소년법원에서 사
누군가 이기기 위해 지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어쨌거나 그것은 비극이다. 관타나모! 언제 완전한 평화의
건을 다뤄야 한다는 지적은 여기서 비롯된다. 그러나 군 검찰은 알카에다와 관련된 경우 누구든 처벌해야
이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랴!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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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네스티 일 년의 도전과 변화 특 집
정의를 지구화하라!Globalizing Justice
해 국회는 제 역할을 하지 않았고, 한국지부는 다
국제앰네스티는 2006년, 대한민국을 사형제 폐지
른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사형관련 운동에 앰네
운동 집중대상국으로 선정하고 사형제도폐지 특별
스티와 함께 중심이 되어왔던 종교계와 함께 하반
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다각도로 노력을 시도했었
기 활동을 준비하였고 9월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단 한번 논
‘사형’ 이라는 이슈가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하였
의 후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지부는
다. 결국 법무부 홈페이지, 싸이월드 등에서 사형
2007년 유엔에서 발의한 전세계 사형집행의 중단
에 대한 여론조사 등을 이끌어 내었으며 12월 31일
을 요구하는 안건을 통해, 대한민국 정
6명의 사형수들이 감형되게 되었다.
부를 움직이고자 다시 한번 사형폐지 대한민국은 실질적 사형폐지국!
캠페인에 집중하였다. 지난 해 사형
10월 10일, 세계 사형반대의 날
폐지캠페인의 특이점이라면 로비 와 언론활동에 한정되지 않고
에 개최된‘사형폐지국가 선포식’
대중활동을 하였다는 점이었다.
에 참여한 한국지부 유스회원들의
시민들의 관심 없이는 국회와 정부에
퍼포먼스는 사형을 언론에 효과
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것이기 때
적으로 부각시켰으며 약 129건 에 달하는 관련내용이 보도
문이다.
되었다. 또한‘100일간의 희망찾기’ 에서 117명의
유엔 사형집행중단 결의안에 대 한 한국정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국제사무국에서
회원들은 개별 캠페인을
마틴 맥퍼슨 국장의 방문으로 적극적인 로비활동
진행하였고 싸이월드를 통해
이 진행되었다. 외교통상부와 법무부 관계자들과
43,384명의 서명을 받았으며‘세상에서 가
청와대 비서실, 국가인권위원장, 인권 대사와의 면
장 아름다운 용서’콘서트에 함께 하였다. 특히‘사
담을 통해 유엔에서 대한민국이 사형집행중단에
형’ 이라는 이슈를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하게 할 수
대한 결의안을 지지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국가인
있게 한‘생명, 그 소중함’영상전시회는 청계천을
권위원회도 합심하여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정부와
지나다니는 6,000여명의 시민들에게 생명에 대해
국회에서 활발한 논의를 하도록 만들었지만, 대한
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상과 여러 프로그램으로
또한 한국지부는 2007년 한해 다른 어느 해보다 사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민국은 2007년 12월 30일 10년 동
민국 정부는 결국 유엔총회에서 기권을 하였다. 이
이루어졌었다. 그리고 2007년 12월 30일, 대한민
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결과로 앰네스티는‘사실상 사형폐지국’ 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를 위해 김대중 전대통령을 방문하기도 하였으며
국에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지 10년이 되는 날,
영국 및 유럽 대사관들도 자신들의 방법으로 정부
국회의사당에서 사형수를 상징하는 64마리의 비
에 로비활동을 하였다.
둘기를 날리면서 한해 동안의 사형반대캠페인은
앰네스티 한 해의 시작은 4월부터다. 4월에 있을 정기총회를 기점으로 다음해 3월까지의 사업과 조직을 계획하고 비전을 세 우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3월은 한국지부의 일 년의 시간을 평가하고 정리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2007년은 한국지부에 있어 명실공히 성장의 해였다. 회원수가 일 년 사이에 3,000여명이 늘어났고 자체수입은 약 두 배로 증가했다. 거리 회원모집캠페인(DD프로젝트)과 적극적인 미디어활동을 통해 앰네스티의 인지도는 높아졌으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회원들이 앰네스티에 여러 목소리를 가져다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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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까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
막을 내렸다. 한가지 이슈를 위해 여러가지 방식으
어있는 사형제도폐지 특별법의 통과를 촉구하는
로 접근한 시도는 결국 국제앰네스티하면‘사형폐
편지쓰기캠페인이 진행되었다. 7월부터 대선을 위
지’ 를 떠올리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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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폭력추방(Stop Violence Against Women,
져왔다.‘대중들의 운동’ 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대
국제앰네스티의 인지도 향
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속
SVAW) 캠페인의 일환인‘위안부’캠페인 역시 실
중’ 의 기반을 넓혔으며 현재는 약 7,700명의 회원
상을 위해 여러가지 활동이 시
적이고 발전된 인턴십프로그램을 위한
질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11월 초 2주 동안
이 국제앰네스티를 통해 인권활동을 하고 지지하
도되었다.‘Protect The
전략마련이 필요하다.
진행되었던‘위안부’피해자들의 유럽투어를 통해
고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회원이 많아진 만큼
Human’ ,‘평범한 사람들이
유럽전역에 이 문제를 상기시켰으며 12월초 유럽
우리의 활동력은 아직까지 커지지 않은 것이다. 회
만드는 특별한 변화’ 와 같은
의회는 이에 대한 결의안을 통과시킨다. 인권에 있
원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활동에 대한 통로들을 마
다양한 홍보문구들이 개발
2007년 12월 한국지부는 7000
어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유럽에서의 결의안
련해야 하고 활동내용도 더 쉽게 전달해야 한다. 필
되어 앰네스티를 소개하는
명의 회원을 가지게 되었다. 한
은 유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
요와 목소리가 다양해지면서 접근방식 또한 다각
데 사용되었으며 스티브 바
국지부 수입의 95%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의 가사도우미를 위한 엽서쓰기 캠페인
화가 필요하지만, 그에 대한 준비는 아직 미흡하다.
라캇의 CD에 속지로 앰네
회비수입은 일년 사이 약 3배 증
스티의 소개글을 넣은 것,
가하였다. 2007년 한국지부가 새
Make some noise앨범에
롭게 시도한 행사가 하나 더 있었
기 위한 몇 차례의 세미나가 시도되었다. 2007년
대해 4개의 공영 라디오방
으니 11월에 있었던‘촛불의 밤’모
2006년 국제앰네스티의 가장 성공사례로 알려
8월에 열리는 국제대의원총회(ICM)를 위한 정책
송에서 1주일 프로모션 이벤트
금행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회
진 국제무기거래조약에 대한 활동은 올해도 계속
토론회가 3차례 진행되었으며 모여진 의견은 총회
를 실시하고 인터뷰 한 것, 싸이
원으로 함께하게 되었고 모금액은 약
되었다. 무기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5월 5
에서 한국지부의 의견으로 표현되었다. 국제 대의
월드 온라인 도토리 후원하기 이벤
일, 어린이들과 부모님들을 대상으로‘우리는 장난
원 총회를 마치고 9월에는 보고회를 가졌으며 국
트 등이 실행되었다. 특히 앰네스티
감 총보다 책이 더 좋아요’캠페인을 실
제운동에서 결의된 것들을 설명하고 알렸다.
가 주로 나왔던 일간지의 사회면이 아
요했던 것은 새로운 사람들을
닌 경제지, 전문지, 종교잡지, 여성잡지의
만나는 기회가 된 것이다. 한국
이 세계여성폭력추방의 날 진행되었고 1,500장의 엽서가 인도네시아 정부로 보내졌다.
회원들에게 국제앰네스티의 정책을 쉽게 알리
시하여 500여명이 참여하였다. 이 때 한국지부는 SK텔레콤의 60명의 자
새로운 회원들이 갑자기 많아지
성장하라!Grow
6천만원으로 성공적이었다. 이 행 사에서 재정적인 것만큼이나 중
문화, 생활, 사람 등의 다양한 섹션을 활용
지부가 재정적으로 성장하면서 재무관
하여 대중들에게 앰네스티와 인권에 대한 이
리에 대한 중요성도 커지게 되었다. 안정적이고 예
이해하게 하고 활동을 독
슈를 알렸다. 2007년 5월에는 처음으로‘기자간담
측가능한 예산집행과 운영, 투명하고 효율적인 예
려하는 노력들이 계속되었
회’ 를 진행하였다. 국제앰네스티의 연례보고서를
산 관리, 재정에 대한 내∙외부 통제에 대해 분석하
다. 회원들에게 일 년 동안의
매개로 준비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지부는 기자들
고 규정과 지침의 마련을 시작하였다.
국제앰네스티와 한국지부의 활
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앰네스티에 대한 이해를 증
하였다. 특히 11월, 이주노동조합
동을 보고하는 연례보고서가 풍부
진시켰으며 이는 결국 언론에서 앰네스티를 볼 수
2008년은 성장을 튼튼히 하기 위해 내부시스템
의 집행부에 대한 강제출국에
한 내용으로 제작되어 배포되었고
있는 기회를 늘려주었다. 언론인들을 위한 행사로
을 견고히 하고 회원들과의 관계를 더욱 가까이하
캠페인에 참여를 요청하는 문자와
2007년 10회를 맞이하는‘앰네스티 언론상’ 이있
여 활동에 참여를 가능케하고 여러가지 시도들을
이메일이 전달되었으며 회원들
었다. 인권증진을 위해 언론인의 역할을 충실히 한
사업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해 4월
의 모임이 몇 차례 진행되었다. 특히
언론인들에게 주어지는 이 상은 10년째 한국지부
에 새로 개편되는 홈페이지와 새로운 회원관계관
12월 22일 세계인권선언일을 기념하
의 상징적인 행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리시스템을 기반으로, 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지속
원활동가들과 함께 캠페인을 진
자 앰네스티를 더욱 잘
행하였으며 한국지부에게는 새 로운 시도였다. 또한 2006년 부터 지속적으로 활동해온 이 주노동자와 난민에 대한 활동도 꾸준
대한 성명서가 두 차례 발표되었 고 대한민국이 이주노동자 협약에 가입할 것을 계속해서 촉구하였다. 폭발적 에너지!Releasing Energy
여 실시한 인권강연회는 약 80여명
2005년 7월부터 시작한 거리 회원모
이 참여하였고 회원들은 이러한 교
집캠페인은 한국지부에 큰 변화를 가
육기회가 계속되기를 기대하였다. 10
가능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기대해 본다.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인턴십프로그램으로 2007 년 하반기 7명의 인턴이 6개월 동안 활동하였던 것 Amnesty International South Korea 2008. 3
김호진 님은 국제앰네스티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1
지금 세계는
니다. 이들이 구금된 것은 이들을 상대로 한 소송이 제기되었거나 그들을 재판에 회부시켜 야할 특정한 사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군에서는 이들을 "위험인물(security
부모님의 석방을 기다리는 팔레스타인 아이들
risk)"로 분류하고 있지만, 군 당국은 구금된 당사자들이나 그들의 변호사에게 이 주장을 뒷 받침할만한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구금자들은 자신의 혐의에 반박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번, 사미와 누라의 자녀들은 적십자에서 제공되는 버스를 타고 어머니와 아버지 가 갇혀있는 감옥으로 찾아갑니다. 하지만 아이들 중 세 명은 아버지를, 나머지 세 명은 어머 니를 방문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참으로 길고 힘든 하루입니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헤브론을 둘러싸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의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많은 시간 을 보낸 뒤 밤늦게 돌아옵니다. 30분의 짧은 방문동안 아이들은 방음 처리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부모와 전화기를 통해서만 이 야기할 수 있습니다. 오직 사라야(Saraya)라는 세 살된 막내아이
이스라엘 군에서는 이
만이 5분간 아버지 품에 안기는 것이 허락됩니다. 다른 다섯 명
들을 "위험인물security
의 아이들은 유아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모님을 안을 수조차 없습 니다.
risk"로
분류하고 있지
만, 군 당국은 구금된 당사자들이나 그들의
아버지의 수입 없이 아이들은 가난 속에 살고 있습니다. 부모 님의 구금이 지속되고 석방이 언제 이루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 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타리
변호사에게 이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못하 고 있습니다.
(Tahrir)는 엄마가 석방되기 전까지 학교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 하며 수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사미와 누라의 여섯 자녀 중 다섯 명의 아이들. 이들 부부는 각각 2005년과 2006년부터 지금까지 기소나 재판 없이 이스라엘 군에 의해 구금되어 있다.
이스라엘 군에 의해 집행되는 행정적 구금은 6개월 정도로 그 기간이 정해져있습니다. 그 러나 구금이 종료되는 시점, 또는 그 직전에 구금 만료 기간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사미 알 하쉬라몬(Sami Al-Hashlamon)과 누라 알 하쉬라몬(Nura Al-Hashlamon)의 여섯
한 이러한 연장은 제한 없이 계속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2007년 12월 12일 이스라엘 군은
자녀들은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미와 누라는 이스라엘에서 행정
누라의 구금 만료일을 3개월 더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구금 종료 4일전에 이루어진
법상의 이유로 구금되었고, 언제 풀려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국제앰네스티 대표단은 지
것입니다. 그녀는 이제 2008년 3월 12일까지 감옥에 갇혀있어야 합니다. 그녀의 남편 사미
난 12월 팔레스타인 지구 헤브론(Hebron)에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는 2008년 4월 26일까지 석방될 수 없습니다.
2005년 9월 이스라엘 군인은 사미의 집에서 그를 체포하였습니다. 1년 후 어느 날 밤, 군인
국제앰네스티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이스라엘의 행정적 구금에 반대하는 캠
들은 다시 와서 그의 아내인 누라를 체포해 갔습니다. 아이들은 이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지내
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미와 누라, 그리고 다른 행정적 구금자들이 명백한 증거 없이
게 된 것입니다.
구금된 것에 반대하며 그들을 상대로 한 소송이 없을 경우 즉각 석방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사미와 누라는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해 구금된 850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인 중 하나입
12
만약 소송이 진행된다면, 국제 기준에 따른 공정한 재판을 제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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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지금 세계는
의 피해자들이 그랬듯이, 비리크와 그의 이웃들 또한 강제 퇴거가 일어나기 전 어떠한 행정적 경고조차 받지 못했고 마을이 파괴되기 전 토지에 대한 논쟁은 아직 끝나지도 않은 상태였습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불태우는 캄보디아
니다. 국제 인권 기준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강제 퇴거는 마지막 수단으로만 이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행동은 이러한 규정을 위반한 것입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이에 대해 일관된 대응 방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 당국은 집을 빼앗은 후, 강제 퇴거자들이 법을 이용해 거주지를 다시 찾고자 운동하는 것을 강제로 막고 있습니 다. 시하누크빌을 포함한 캄보디아 전역에서는 퇴거민들과 인권 운동 활동가들이 체포가 늘 어나고 있습니다. 비리크의 이웃 13명 또한 집을 잃어버린 후 체포되어 형사법 위반으로 고소 되었고, 그 중 9명은 아무런 증거 없이 유죄로 결정되어 일정 기간 동안 감옥에 있어야 합니 다. 심지어 그들은 정해진 형량을 다 마친 후에도 풀려나 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구금되어 있어야 합니다. ‘미타핍 4’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농부, 해안가의 영세 상인들과 어부인데 이들의 생계수단이 차 단당했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의 삶은 더 비참해졌습니다. 소핍(Sopheap)이라는 늙은 부인은 국제앰네스티에 이렇 게 하소연 하였습니다. "내 아들은 집에 있는 물건들을 챙 기다가 구타당하고 체포당했어요. 잡혀가기 전 우리 집은 아들이 어업과 농사로 삶을 꾸려나갔는데 이제는 내가 누 구를 의지할 수 있을까요?" 캄보디아 정부는 전 세계 기부자들의 지원으로 빈곤층
캄보디아‘미타핍 4’마을 들은 군인들에 의해 그들의 주거지가 불타고 소유물을 약탈당했다. 이 난폭한 강제 퇴거는 2007년 4월 20일 하루에만 100가구 이상에게 가해졌다.
의 삶을 개선하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해왔으나 그러나
‘미타핍 4’마을 강제퇴거가 감행된 후, 같은 날 캄보디아 군은 13명의 마을 주민을 체포하였다.
이러한 정책들은 비리크와 소핍, 그리고 강제 퇴거된 무 "집이 불타기 전, 저는 작은 땅에 농사를 지어서 7명의 자식들을 먹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한 피해자들의 경험이 나타내듯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정부에 의해 더 극심한
이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난을 겪고 있습니다.‘미트핍 4’마을이 보여주듯이 정부 관리들은 강제 퇴거민들을 보호하
비리크(Vireak)와 그의 일곱 자녀들은 2007년 4월 20일 집을 잃었습니다. 같은 날 캄보디아
는 대신 가난한 사람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가난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의 시하누크빌(Sihanoukville)시 근교‘미타핍 4(Mittapheap 4)’마을 대부분이 불에 타 없어
이러한 상황이 계속 되는 한 수 천명의 캄보디아인들은 위협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졌습니다. 이것은 군인들의 강제적 법 집행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100가구 이상이 강제 퇴거되
위협은 시아누크빌과 다른 도시들 뿐 아니라 시골 지역에도 존재합니다. 강제 퇴거는 유엔에
었습니다. 한 달이 지났지만 비리크는 여전히 길가에서 담요 하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 분명하고 심각한 인권 침해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모든 강제 퇴거와의 싸움
비리크의 이러한 상황은 캄보디아 전역에서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무수한 강제퇴 거와 퇴거민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캄보디아에서 거주지를 잃은 다른 수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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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캄보디아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고자 만든 정책의 본래 목적을 지켜 나가겠다는 분명한 의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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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살아가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세상 이야기들을
앰네스티가 광화문에 둥지를 튼 지 4년이 지난 지금 사무국에는
나누게 되고, 그러한 시간이 쌓여 우정이 되고 지
여러 이웃들이 생겼습니다. 삭막함을 느끼게 하는 도심의 높은
금까지 온 것 같아요.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신입
빌딩들 사이에 편안함과 여유를 주는 공간으로 자리잡은 주재영
사원이었던 분이 한 단계씩 승진해 가는 것도 보
회원님의 커피전문점“Sweet B” 도 좋은 이웃입니다. 앰네스티
봄 의
*
님
{ 16
커피 맛과 같이 부드러움 속에 통찰이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는 과정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구요. 이제는 커피 전문점을 단순히 돈을 벌려는 목적 보다는 바쁜 직
주 희 망뿌 재 의리 는영 사
씨줄과 날줄
고, 총각이었던 분이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사
이야기 하나, 광화문 사랑방 커피아저씨
씨 앗 을
람
의 이웃에서 앰네스티의 회원이 된 주재영님과의 만남은 마치
장인들이 마실 나와서 사랑방 가듯이 들려서 소통 할 수 있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공간이 되도록 하고
자신을 간단히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있어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진정한 커피
저는 아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이 있고, 지
의 매력이 아닐까요?
금은 광화문에서 작은 커피전문점(Sweet B)을 운
이야기 둘, 앰네스티, 이웃에서 회원으로
영하고 있습니다. 2006년도에 앰네스티에 가입하 여 회원이 된지는 이제 3년이 되어갑니다. 저는 처 음에 항해사였어요. 그 뒤로 한 해운회사에 다니다
앰네스티를 알게 되고 회원이 되신 동기가 커피전문점을
가 다른 일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주 찾았던 사무국원들과의 만남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마침 자주 가던 커피전문점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
앰네스티 회원이 되신 동기를 듣고 싶어요.
누다 제가 커피와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
예전에는 앰네스티 사무실이‘옥빌딩(국제앰네스
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 두고 커피를 배웠고,
티 사무국이 대구에서 처음 서울로 올라온 2004년
2002년에 지금의 커피전문점을 열게 되었지요. 이
부터 2년간 머물던 공간입니다. 최근 2년간은 세
전 직장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만족하며
일빌딩에서 머물렀고 이제 또 새로운 보금자리로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이사를 준비중입니다.)’ 이라고 저희 커피전문점 바로 앞에 있었어요. 항상 그 빌딩에서 사무국원
가끔씩 주재영님 커피전문점을 지나가다 보면 사람들이
사람들이 커피를 자주 사갔는데 어떤 분들인지 궁
긴 줄로 서서 기다리기도 하고, 단골손님들도 많은 것 같
금했었죠. 조금씩 친해지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요. 이렇게 인기가 많은 비결이 있나요?
까 앰네스티라는 NGO 단체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저희의 고객은 주로 주변의 바쁜 직장인들인데 그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때 앰네스티에 대해서
들은 단순히 커피를 사는 것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좋은 일
속에서 편안함을 찾고 여유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
하는 사람들이구나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언
어요.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
제부턴가 사무국원 분들이 캠페인을 하거나 기자
다 보니까 우리집 커피를 자주 찾는 사람들이 생기
회견을 하는 모습을 언론 보도에서 보게 되었어요.
고 관계를 맺어가면서 우리 가게가 자연스럽게 사
사무국원들이 지나가다 들려서 이런저런 캠페인
람을 만나고 삶을 나누는 공간이 되어 가더라구요.
을 한다라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그러한 활동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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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나 신문에 나오니까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평
가치,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이
네스티 캠페인에 참여하여 사진을 찍어준다든지,
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소에는 친구처럼 지내던 평범한 사람들이 영향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분쟁지역이라든지, 인권이
마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행사에서 마술을 선보여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면서 제가 정체되지 않도록
을 발휘해서 변화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고 깊은
무시되는 현장의 원인은 바로 가치관의 부재잖아
사람들의 주목을 끈다든지, 미술을 하는 사람이 캠
다시 환경보건 분야의 공부를 시작했어요. 학사편
인상을 받았죠. 그리고 저도 그 일에 동참하고 싶
요. 사건이 터진 뒤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캠페
페인 그림을 그려 준다든지 하는 것들이 될 수 것
입을 해서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는데 만만치
다는 생각을 했어요. 앰네스티 사무국과 가깝게 지
인을 벌이는 것보다도 미리 교육을 통해서 사전에
같아요. 직업적으로 인권과는 관련이 없는 일을 한
는 않아요. 요즘 들어 환경이나 보건이 사회 문제
내고 활동을 직접 이야기로 듣고 눈으로 보니까 더
예방하는 것이 현명하고 그러한 면에서 인권교육
다 할지라도 삶의 한 부분에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의 핵심 이슈가 되고 있잖아요. 저도 그러한 것들
실감나는 것 같아요.
이 가장 중요한 캠페인이라고 할 수 있죠.
나누려는 열정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인권적 삶이
에 관심이 가지게 되었고, 조금이라도 사회에 기여
아닐까요? 앰네스티도 더욱더 많은 일들을 할 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 중에서도 수질환경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인생을
주재영님의 말씀대로 회원 중에서 누구보다도 앰네스티를
맞아요. 인권 교육이야말로 앰네스티의 희망이자 미래인
가까이서 지켜보셨잖아요. 앰네스티의 활동들을 보고 들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앰네스티의 회원들이 활동할 수 있
으면서 개인적인 생각이나 바람들이 있으셨을 텐데 이야
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회원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놓고 보면 처음 항해사에서 해운회사를 거쳐 커피
이야기 셋,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삶
전문점을 운영하고 수질환경을 공부하고 있는 것 이 아마도 저는 물과 인연이 있나봐요.
기해 주세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앰네스티를 이미
기본적으로는 관심을 갖는 것이 중
그렇다면 앰네스티의 활동이 아니더라도 삶의 일상 속에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는 것 같아
요하겠죠. 저 또한 가정이 있고 사
서 실천할 수 있는 인권 보호 활동은 무엇이 있을까요?
자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교회에서 많은 청소년
요. 사회문제나 국제적 이슈에 관심
업을 운영하다 보니까 생각만큼 많
소박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인권에 대하여 생각해
들을 만나는데 아이들이 성적이나 입시에 매여서
이 있는 사람들은 언론이나 주위에서
은 활동을 하지는 못해요. 많은 관
보고 이야기 나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때
한번씩은 들어봤을 거예요. 그런데
심을 가지고 내가 매달 회비를 내는
을거 같아요. 저는 두 딸이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가 많아요.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앰네스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앰
NGO단체에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아이들이 읽는 책들을 함께 보기도 하고 좋은 책을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지 알지 못하고 목적 없이 생
네스티와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잘
어떠한 일을 하는지, 무엇을 목적으
권해주기도 하는데, 인권에 대해 자연스럽게 느끼
활하는 경우도 많고요. 다양한 경험과 성취, 그리고
마련되지 않은 것 같아요. 신문에서
로 하는지 정도는 알려고 노력합니
고 인식할 수 있는 책을 많이 사줘요. 예를 들어 장
진심과 배려가 담긴 주위의 조언이 필요하죠. 아직
앰네스티의 캠페인이나 활동이 보도된 것을 보고
다. 또한 참여도 필요합니다. 캠페인이나 교육, 모
애아동과 일반 아동들이 함께 지내는 내용을 담은
은 부족함을 많이 느끼지만 지금하고 있는 환경 공
함께 하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못하
금 행사가 있을 때 한번씩 회원들이 찾아와서 직접
동화책, 아니면 외국인들과 타문화를 이해하고 평
부를 통해서 청소년들과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그
는 경우가 많은데요. 홈페이지나 홍보활동 등, 대
보고 동참하는 것이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
화와 평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을 함께 읽
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중들과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을 잘 정비한다면 앰네
면서 앰네스티와의 관계도 깊어지고요. 저도 늘 가
는 거죠. 그러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게 되는
스티는 더욱 더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까이 있었지만 앰네스티 사무실에는 처음 와 보았
것 같아요. 실제로 아이들이 자기와 조금 다른 사
는데 가깝게 지냈어도 이렇게 직접 찾아와 보니까
람들에게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잘 지내더라구요.
느낌이 새롭네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가치관의 씨앗을 심어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앰네스티도 인권교육에 더 많은 역량을 기울였으 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교육이란 다른 것이 아
그리고 앰네스티 사무국은 항상 사람의 필요가
니라 사람에게 가치관을 심어주는 일이잖아요. 인
많은 것 같아요. 사무국에서는 적은 인원으로 행사
권이라는 것이 때론 거창해 보일지라도 바로 한 사
나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니까 어려움이 있는 것 같
람 한 사람의 가치관에서 시작하는 것이니까 인권
던데 많은 회원들이 물질적인 후원 뿐만 아니라 자
우리의 아이들에게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키워주는 것
의 시작이 결국 인권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의 재능을 나누고 앰네스티의 활동에 함께 했으
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인권활동인 것
특별히 청소년들에게 사람을 존중하는 것에 대한
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앰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재영님 삶의 방향이랄까 꿈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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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또 하나의 꿈은 청소년들 삶의 멘토나 조력
epilogue 먼저 교육을 생각하고 가까운 주변부터 살피는 주재영님은 봄의 씨앗을 심는 농부처럼 내일이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었습
주고 가꾸는 것이 저에게는 인권을 위한 작은 활동
니다. 또한 커피를 찾는 사람들에게 여유와 소통의 기쁨을 함께
이 아닐까 합니다.
전하는 오늘의 땅을 묵묵히 일구는 분이었습니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더 나은 세상의 기초를 다지는 주재영님. 그가 뿌리는 희망의 씨앗이 언젠가 아름답고 향기나는 변화의 열매로 세상을 더 풍성하게 하길 기대합니다. 김호수 님은 현재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자원개발팀에서 인턴으로 근무
Amnesty International South Korea 2008. 3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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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학과에서 실습 과정으로 법원과 경찰서, 교도소로 견학을 간 적이 있었습
한국지부활동모음
니다. 돌아보면 교도소 담장 안에 갇힌 이들을 나와는 동떨어진 먼 세계쯤으로 만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죄를 지은 자는 그만한 처벌을 받아야 하고, 이 는 사회 정의와도 부합된다고 생각했으나 죄를 지었으니까 그들에게 가해질 어떤 처벌과 위해는 과연 당연하고 합당한 것일까라는 단순한 의문으로 조 사를 하여 알게 된 단체가 국제앰네스티입니다. 지난 여름 대학원 진학을 목전에 두고 경험을 쌓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
국제앰네스티 인턴십, 그 6개월의 시간
어 지원한 것이 한국지부 인턴십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가 맡게 된 일은 자원개
시 선
발팀의 회원관계 개발 업무로 국제앰네스티에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는 회원들을 뵙고
> 1월 이달의 탄원에 참여한 회원들의 서명, 슬로바키아 부수상에게 발송
지난 1월 이달의 탄원,‘슬로바키아 정부는 아동들에게 차별적인 교육 체계를 철폐 하고, 이들의 교육접근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여야 합니다’ 에 참여해주신 총 71분 회원님의 355명의 서명은 2월 1일 슬로바키아 부수상에서 발송되었습니다. 살아 있는 앰네스티 운동을 함께 만들고 힘이 되어 주시는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부서였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지만 후원에 대한 마
립니다. 3월 이달의 탄원,‘콜롬비아 정부는 평화공동체(Peace Community) 구성
음이 따뜻하신 분들을 많이 뵐 수 있는 좋은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말 많은 회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아직
원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합니다.’ 에 회원님들의 지속적인 참여 바랍니다. 회원님
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회원은 자진해서 홈페이지에 가입 신청을 하였던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용돈을 아
들이 우편과 팩스, 그리고 이메일을 통해 보내주시는 탄원 서명은 다음 달 초에 발송되오니, 3월 말까지 국
끼면 된다며, 인권 활동이 필요한 곳에 소중히 써달라며 한 장 가득 메모를 남
제앰네스티 한국지부 (110-620)서울광화문우체국 사서함 2045호, 팩스 02-738-4754로 보내주시면 됩니
겨놓았는데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보태고 싶다고 하는 그 어린 회원으로 인
다. 회원님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해 저까지도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회원이라면 크다면 크고 적 다면 적은 만원이란 돈을 매월 회비로 냅니다. 그런데 회원의 60% 이상이 24
> 법률가 위원회, 기관예방 캠페인 진행
살 이하의 유스(Youth)분들입니다. 우리의 학생들이 지구반대편의 모르는 누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원회(위원장 이장희)는 지난 1월 18일 금요일 위원장을 비롯한 소속회원들
가를 위해 용돈을 쪼개서까지 후원하는 것을 보면 세상이 조금씩 더 아름다워
이 이용훈 대법원장과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을 차례로 예방하여 2008년 법률가위원회의 사업계획을 홍보
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는 2000년대 들어 '인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많은 사건과 사고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조사를 의뢰하고 그 해결책을 제 시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것을 보면 '인권'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이 그만큼 진 소현이가 전하는 국제앰네스티 바로잡기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회원님들의 메일을 받아보면 적지 않은 분들께서 엠네스티, 국제인권위원회, 심지어 앰내스티로 잘 못 알고 계신 분들이 계십니다. 국제앰 네스티는 영어 철자가 A로 시작하는‘앰 네스티’ , 영어로는‘Amnesty;사면’ 이 란 뜻입니다. 작은 용어에 불과하지만, 한번만 더 눈여겨 봐주시길.
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인권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인권이라는 담론의 범주를 어디까지 정해야 할지에 대한
하고, 사형제 폐지, 이주민 인권문제, 여성폭력 및 아동학대 등 우리의 인권현안의 개선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또한 같은 날 상임이사회를 개최하여 2008년 주요 사업계획을 논의하였 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원회는 인권문제에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법학교수, 변호사 등 법률가들이 모여 2001년 4월부터 함께하고 있습니다.
의문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인턴 근무하며 적지 않은 분들에게 질문을 받은 것 이 왜 가까운 사람부터 돕지 멀리 있는 사람을 돕냐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느
> 인턴십 프로그램 활동보고회 가져
정도라고 말해야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국내? 북한? 중국과 아시아? 그
지난 1월 31일, 2007 하반기 인턴십 프로그램 활동보고회가 열렸습니다.
작은 정의조차 모호하고 개개인마다 무한하기만 합니다. 또한 이 말은 범주를
2007하반기 인턴십에는 전략사업팀의 박명희, 이문열, 김유민 님 그리고
정해 그 안에 있는 사람만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제가 국제앰네스티 인턴
자원개발팀의 임미정, 김소현, 김호수, 김은식 님이 함께 6개월 간 하반기
으로 일하는 기간 중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미국과 유럽에서 결의안이 상정이 되었습니다. 열배 백배 반가운
의 한국지부의 중요한 실무를 담당하였습니다. 처음으로 가지는 인턴십
일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도와 우리가 해낼 수 있었듯이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이 소식지 중
보고회에서는 6개월 간의 업무에 대한 정리 및 느낀 점, 그리고 앞으로 더
간에도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탄원엽서가 있습니다).
발전된 인턴십의 운영을 위한 평가들이 이뤄졌습니다. 2월 말까지 마친
인턴기간이 종료되고, 저는 이제 난민과 이주노동자 액션네트워크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국제앰네스티와의 인연이 어디까지 될지 모르겠지만 어디가 되었든 그 끈을 놓고 싶진 않습니다. 앰네스티 화이팅!
임미정, 김소현, 박명희 님을 비롯한 총 7명의 인턴 분들의 수고에 감사드 립니다.
김소현 님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인턴십 프로그램을 마치고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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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nesty International South Korea 2008. 3
21
한국지부활동모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계보고
2008년 1월
총수입
59,627,750원 회원회비 기부금
총지출
69,517,607원
52,071,500원
관리인건비
7,500,250원
사무관리비
6,212,940원 17,791,310원
> 제9차 집행위원회 개최
특정지원금
40,000원
회원사업비
지난 2월 2일부터 3일에 걸쳐 제9차 집행위원회 회의가 열렸습니다. 고은태 지부장, 김규환 부지부장, 김
기타수입
16,000원
홍보사업비
3,638,600원
44,700원
캠페인비
도균 집행위원, 연제헌 집행위원, 김희진 사무국장이 참석한 이번 회의에서는 2007년의 2차 실행계획
277,010원
지부분담금
3,217,340원
대출이자
(2006-2008)에 대한 사무국의 평가 보고와 함께, 한국지부의 향후 3차 실행계획(2008-2010)의 초안에 대
14,865,187원
�회원모집캠페인비
해 논의하였습니다. 다음 10차 집행위원회 회의는 4월에 열릴 예정이며, 2년 간의 집행위원회의 마지막 회
23,470,520원
의가 될 것입니다. 신입회원을 환영합니다!
> 2008년 리더스포럼 개최
지난 2월 10일부터 11일에 걸쳐 2008년 리더스 포럼이 서울여성플라자에 서 열렸습니다. 총 20여명의 회원들이 참가한 이번 회의는 국제앰네스티 의 전세계적 외부환경 및 내부역량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사회를 비롯한 아시아의 외부환경 및 내부역량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한국지부의 향후 3차 실행계획(2008-2009)의 기조와 중요한 목표들을 세웠습니다. 한국지부는 지난 2005년에 5년간 의 통합전략계획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1차 실행계획(2005), 2차 실행계획(2006-2007), 3차 실행계획 (2008-2009)을 매년 4월에 열리는 정기총회를 통해 통과시킵니다. 3차 실행계획은 다가오는 4월 정기총 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의될 예정입니다. 회원님들의 많은 참여바랍니다.
> 사무국 사무실 이전
지난 2월 26일 한국지부는 사무실을 경복궁 근처에서 장충동 동국대학교 근처로 이전하였습니다. 새로운 사무실 주소를 공지하기 전까지 모든 우편은 이전 사서함 주소인 (110-620)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사서함 2045호 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2월 소식지 바로 잡습니다
법률가 위원회 인권세미나 개최
2월 탄원엽서 중 <페루-안전과 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원회(위원장 이장희)에서는 상반기 인권세미나를
해 위협에 대한 두려움> 사례에서
다음과 같이 개최하기로 하였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제시된 인권보호협회(Asociaci� Pro Derechos Humanos,
- 일 시 : 2008년 3월 22일(토) 10시 - 17시
APRODEH)는 쿠바가 아닌 페루
- 장 소 : 고려대학교 신법학관
의 인권단체임을 바로잡습니다.
- 대주제 : 국제인권법과 국내인권현황
원고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오기가
- 내 용 : 4개의 소주제 발표 및 토론
발생하였음을 사과드립니다.
감소라 강성진 강수진 강슬기 강영욱 강은미 강지은 강지혜 강현애 강혜림 강효숙 고윤숙 고은해 고정훤 공민지 곽예람 곽은지 구승미 구아름 구형준 권근영 권다예 권민아 권수진 권용무 권우숙 권지원 권혜순 금문영 금지윤
기경서 김아영 기고은 김안나 김여주 김진 김경순 김영옥 김경한 김영은 김계용 김영지 김고은 김영혜 김규린 김유경 김기선 김유진 김도경 김윤아 김명화 김윤희 김미선 김은주 김미희 김은주 김민아 김은주 김민영 김은지 김민정 김은진 김민지 김이슬 김보연 김인혜 김상봉 김정선 김석원 김종철 김석종 김준호 김성경 김지선 김세련 김지윤 김소준철 김지현 김수영 김지혜 김수정 김지혜 김승연 김진선 김승환 김진희 김아람 김창곤 김아영 김태실
1월 18일 ~ 2월 18일
김하나 김하늬 김하영 김한이 김현숙 김현아 김현정 나성흠 나승철 나영숙 남궁 민 남궁 진 노성옥 노아미 노은석 노현주 노희선 라진주 류진아 류한영 명화연 명효은 문경선 문은혜 문재원 문주희 문지숙 문태욱 민경식 박다빈
박민주 박사라 박서희 박소영 박수희 박신정 박영후 박옥자 박윤선 박윤원 박은근 박은혜 박은희 박정옥 박정인 박종현 박주상 박주희 박준희 박진석 박진아 박진아 박진욱 박진희 박창범 박창훈 박채영 박향민 박현진 박혜련
박혜민 박희은 반주연 방병선 배명지 배준상 백명선 백성은 서경기 서송희 서우리 서유경 서지선 서지선 서지은 서지혜 서혜성 서홍일 선주용 성길례 성시준 성은주 성지선 손영화 송유진 송지영 송진영 송현진 송혜미 송혜정
총 406명의 신입회원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신나리 우보미 신다솜 우영란 신명옥 우혜미 신미나 유경옥 신은진 유맹순 신은희 유인수 심보희 유정옥 심성진 윤동철 심영훈 윤무진 심재인 윤상희 심푸르리 윤영미 안지선 윤영준 안지현 윤재삼 안지혜 윤정숙 안혜진 윤정희 양성일 윤현희 양세연 윤혜림 양승혜 윤혜연 양영철 은규진 양지원 이 덕 양희순 이건진 엄윤오 이경희 여은진 이기영 연소라 이나영 오아라 이담미 오은주 이돈협 오지혜 이동하 오진경 이동훈 오창재 이두광 오춘성 이미연
이민아 이민희 이상민 이상현 이서영 이소연 이소연 이소영 이송희 이수복 이수연 이수연 이수정 이수현 이승민 이아림 이아영 이안나 이애린 이왕건 이우현 이원진 이윤경 이윤정 이윤지 이윤희 이은영 이은이 이재만 이재환
이정민 이정숙 이정아 이정하 이정현 이주연 이준하 이지웅 이지원 이지현 이지혜 이지홍 이창훈 이채선 이한아 이현주 이혜경 이혜나 이혜미 이혜정 임경희 임동혁 임설희 임지수 임지영 임혜진 장세미 장수양 장영윤 장유미
장윤미 장윤희 장인희 장일원 전보라 전승현 전영욱 전정연 전준호 전지영 전진선 전효령 정솔 정다운 정다희 정보름 정선희 정설희 정숙란 정승연 정아름 정여원 정유리 정유미 정유이 정은숙 정은호 정정욱 정주호 정진화
진은옥 진희원 차수련 천유정 천하람 최민희 최병용 최성규 최수호 최신애 최유경 최윤정 최윤정 최은영 최은영 최은정 최은혜 최은희 최은희 최인희 최재혁 최정미 최정윤 최지훈 최진묵 하기훈 하민영 하영준 한명아 한성헌
이달의 탄원을 보내주세요 이달의 탄원 서명을 모아 보내는이를 기재하여 앰네스티 한국지부로 매월 말까지 보내주세요. 보내실 곳 E-mail : amnesty@amnesty.or.kr Fax : 02) 738-4754 (110-620)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사서함 20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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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미 정찬용 정찬일 정현숙 정혜수 정환섭 정효정 정희영 정희정 조가람 조근형 조선희 조성민 조성우 조수경 조승구 조아라 조영기 조영옥 조유경 조유경 조윤희 조은희 조재량 조종형 조헌주 조현석 조희성 주정실 지선덕
한수정 한숙희 한연이 한영진 한인애 한자양 함주란 허영정 허윤하 허혜미 홍유리 홍지수 황미경 황지혜 Logandran VictoriaM.Ellio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