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분석
2018170518
도시 속에서 살아가며 건축을 벗어난 생활이란
상상하기 어렵다. 창문 프레임 속 보이지 않는 나사
하나부터 거대한 빌딩까지, 건축은 그 작은 부분부터
큰 부분까지 디자인의 언어로 가득차있다. 그럼에도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빽빽하게 들어찬
디자인 속에서도, 마치 일상에서 지구의 둥근 형태를
의식하지 않듯 우리의 대부분은 그 것을 일상에서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건축물을
둘러싸고 다양한 사회적 맥락과 문화, 취향과 공학,
미학이 디자인을 거쳐 하나의 덩어리로 얽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건축의 복잡함에 대해 디자인론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이 시사하는 바는, 이런 복잡한
디자인의 결정체로서의 건축물을 다양한 예술의
경향성과 요소와 원리들로 나누어 분석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디자인 사조가 나타나고, 형태적으로는 어떠한 요소를 강조했으며, 사회와는
디자인으로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등, 건축은
3차원의 입체이자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으로
디자인론에서 배운 다양한 지식들로 살펴볼 때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디자인론 과제는 "건축"에 관한 전시로서
현재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서울: 서울형 공공건축의 탄생" 전시회를 감상하고
디자인론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글을 작성해보고자 했다.
특히나 공공건축은 건축 중에서도 내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공공건축이
변화하는 모습, 특히 서울에서의 공공건축의 흐름이
변화하는 모습이 그 어느때보다도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공건축물이라 하면 미쳐
디자인을 깊게 돌아보지 못했던 산업화시대의
고지식하고 절대 곁을 내주지 않을 것 같은
권위주의적 콘크리트 블록들을 생각하곤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문화가 크게 발전하였어도,
최근까지도, 어쩌면 지금 까지도 우리의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더욱 고착화시킨
것은 오로지 가장 적은 비용으로만 설계하고
시공하는 설계안을 택해온 까닭이 크리라 생각한다.
그 안에서의 생활과 디자인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비용만으로 줄을 세워 지어온 건물들의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이고, 이내 도시 경관을
삭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공공건축에서의 미적 가치, 지속가능성, 그리고 지역성 등과 같이 그 동안
공공건축의 디자인에서 무시되었던 것들이
적극적으로 요구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공공건축물들에서는 다양한
흐름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경향
속에서 서울시는 공공건축에서 비용 외의
건축의 다양한 가치들을 고려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개공모방식을 도입한 뒤로 창의적이고 다양한
모습의 공공건축물들을 지어왔다. 이 덕분에 우리도
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 아름다운 공공건축물들을
서울에서 즐길 수 있었다. 이 전시에서는 그동안
공모를 통해 당선된 건축 프로젝트들의 고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01. 서울 시립 미술 아카이브
이 건물은 평창동에 위치한 미술문화복합공간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건물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특징이다. (앞으로 이 글에서 언급할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선보인 특정한 예술사조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닌, 국제주의와 모더니즘으로부터 벗어난 경향을 의미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표현상 특징 중, 맥락주의 및 장소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형태 구성방식을 보인다.
이러한 연속성과 주변환경과의 조화는 단순히 물리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
또한 고려한 것임을 다이어그램을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이 건물은 이 곳에 크고
거대한 건물들이 많지 않고, 작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마을과도 같음을 염두에 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건축가는 지형을 고려하여 계단식으로 매스를 분절하여
배치해 주변의 맥락을 받아들였고, 이 후 각 덩어리들을 밀어넣어 시민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렇듯 이 건물의 형태에서는 지형과 지역사회의 맥락에 대한
고려가 깊게 반영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엿볼 수 있었다.
디자인의 조건으로 판단해보았을 때, (물론 평창동의 특성상 다른 곳보다 더 강하게
높이 제한이 있겠지만) 낮은 높이의 건축물은 경제성을 따져보았을 때 합리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낮은 디자인, 주변의 맥락과 경관을 고려한 디자인은 그
경제성을 넘어서는 독창성과 합목적성을 담을 수 있다. 미술문화공간이 가지는
사회적 기능과 그에 따라 디자인으로서 드러나야 하는 개방성과 친밀함은 대지경계에
꽉차게 지은 건물보다 빈 공간과 낮은 덩어리로 만들어진 건물이 더 잘 나타낼 수
있다. 에너지 효율을 따져보면 비합리적인 통창 또한 이러한 합목적성의 맥락에서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02. 서울 공예 박물관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서울공예박물관은, 서촌과 삼청동을 놀러다니면서 많이 지나쳐봤지만 정작 안은 들어가보지 못한 곳이다.
그럼에도 항상 밖에서 보이는 이질적인 두가지 언어 – 동그란 원통과
연식이 느껴지는 직선의 매스 형태가 눈을 끌었던 기억이 있다.
이곳은 원래 안동별궁이 있던 곳으로 조선시대 왕실 사람들의 안가였다가 후에 학교건물로 사용되었다. 이제는 공예박물관으로
리모델링 되어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이 건물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는데, 학교 건물이었던 과거의
역사적 모티프를 재해석하여 현재의 디자인 언어로서 사용하고 있는 점, 그리고 기존의 학교건물과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은행나무와
공예품이 유명한 주변의 맥락을 고려한 맥락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러한 과걱 건축물에 대한 재해석, 즉 거창한 전통이나 민족사가 아닌 작고 소박한 과거의 건물과 안국동이라는 지역사에
집중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도가 이 건물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자세히
보면 독특하고 참신한 형태를 하고 있음에도 주변건물과 크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 이 건물을 설계할
때 과거와 현재 모두의 디자인 요소를 적절히 섞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방식(이중코드화, 복합성과 대립성의 원리로)이 고려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 자세히 보면 독특하고
참신한 형태를 하고 있음에도 주변건물과 크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03. 스페이스 살림
이 건축물의 첫인상은 다공성이다. 마치 완성되지 않은
건물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후에 작품 설명을 읽어보면서, 이
건축물은 의도적으로 모든 용적률을 사용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디자인 하였으며 이러한 빈 공간들에 이용자들이 그 각각의 필요에
따라 공간을 구성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설명을 읽고 나서야 소제목으로 적혀있던 “도시 속의 작은 도시”라는
말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건축가가 의도한 것은 건축가가 강요하는
하나의 고정된 형태로서의 공공건축이 아니라, 마치 무에서부터
마을을 만들어가듯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지역의 커뮤니티였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디자인 방향이 수업시간에 배운 지속가능한
디자인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패션만큼이나 건축의 트렌드도
매번 빠르게 변화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아름다운 디자인도 분명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이 대다수의 건물이고, 이들은 점차 낡으면서 철거된다. 공동주택의 수명을 보았을 때, 영국의 경우
140여년, 미국과 프랑스, 독일 모두 70~80년인데에 비해 우리나라의
공동주택의 수명은 채 20여년 정도이다. 당연히 이렇게 무너진
건물들은 쓰레기가 되고 매년 발생하는 건설 폐기물의 양은 전체
폐기물의 40%정도를 차지한다. 즉, 어떠한 건축물이 지금 쓸모가
있을지라도, 앞으로도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점에서 이 건물을 다시 보면, 단순히 주민간의
소통과 커뮤니티 얘기보다는 더 깊은 환경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보인다.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각자 필요에 따라
공간을 구성한다는 점은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지속가능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용자가 직접 구조의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유형의 건물들은 대체로 (조립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
해야하기 때문에) 투박하게 느껴질 수 있다. (따라서 디자인의 조건
중 심미성으로 평가하자면 좋지 못한 평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의 오래 지속될 수명을 생각하며 경제성을 따져본다면, 충분히
합리적이고 커뮤니티 센터라는 그 목적에 맞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 마치 무에서부터 마을을
만들어가듯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지역의
커뮤니티였던 것이다."
04. 시립 마포 실버 케어센터
이 건축물은 마포구에 있는 노인복지시설이다. 으레 노인시설이라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병원이나 경로당 같은 이미지와 달리 이 건물의 내부를 보면 ‘힙’함을 느낄 수 있다. 노인복지시설인 만큼, 이 건물에는 유니버셜 디자인이 잘 적용되어 있음을
사진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현재 같이 수강하고 있는 “건축과 행태” 수업에 따르면, 노인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가장 신경써야 하는 부분 중 하나가 장소에
대한 인지이다.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인지능력이 떨어져 자신이 있는 공간과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가야할 방향 등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건물을 보면 자칫 촌스러워보일 수도 있는 강렬한 원색으로 실내가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쉬운 인지를 위해 공간별로 다른 색깔을 칠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색깔은 가장 기초적이고 확실한 공간 구분을 도와준다. 이에 더해 휠체어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과 이동에 도움을 주는 손잡이, 그리고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열
수 있는 미닫이문과 자동문 등이 이러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재미있는 점은, 감성 디자인의 사례로 볼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으레 감성 디자인의 이용자로 노인을 떠올리진 않곤 하지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디자인보다 더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감성 디자인은 유니버설 디자인과 함께
노인의 생활과 인지에 도움을 준다. 특히 이곳은 (의학적으로 공간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배회 동선을 보이는) 치매노인을 위해 다양한 오픈 공간들을 연결하여
풍성하고 다양한 공간경험을 주고자 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감성 디자인이
중심이 되는 오픈공간들은 마치 폐쇄병동과 같은 분위기를 없애는 역할을 한다.
추가적으로, 건축물의 외형적인 형태는 가장 기초적인 박공지붕의 형태를 재해석하여, 마치 로버트 벤츄리의 “어머니의 집”과 비슷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05. 망우리 웰컴센터
망우리 공원에 위치한 이 건물은 방문객에게 편의와 안내를 제공하는 웰컴센터로 세워졌다. 다만 한편으로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것이 망우리 공원 공동묘지에 대한 안내 시설이라는 점이다. 공동묘지라는 보통 사람들에게 꺼려지는 시설을
대하는 자세는 처음에 인상을 찌푸린 내가 사뭇 부끄러워질 정도로 성숙했다. 이내 디자인이 어떻게 단어 하나 없이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보통 죽음을 대하는 묘지시설이나 메모리얼 등의 건축물들은 엄숙하고 무겁다. 디자인의 구성원리로 살펴보면, 반복과 통일, 균형과 대칭, 비례 등이 강조되면서
방문자들의 기분을 (어쩌면 필요이상으로) 무겁게 만들어 놓는다. 용산의 전쟁기념관이 그 좋은 예시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어쩌면 그러한 장식적일 수도
있는 디자인 어휘들을 내려놓는 미니멀리즘의 어휘를 사용하면서도 얇고 가벼운
열주의 반복과 균형으로 엄숙함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다양한 재료와 프로그램, 형태의 시도들을 뽐내고 있는 다른 작품들 가운데에서, 디자인의 구성원리를 적절히
활용하여 엄숙하면서도 가벼운 묘지시설을 만들어낸 이 건물이 유독 전시가 끝난
후에도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06. 종암 스퀘어
이 건물은 우리 학교와 가까운 종암사거리의 고가하부에
지어진 생활체육시설이다. 으레 고가하부는 도시에서 외면받고
버려진 공간 중 하나이다. 구조상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렇게 칙칙하게 남아있는 고가하부들에는 누군가 몰래버린 쓰레기가 쌓이거나 비행 청소년들의 아지트가 되곤 한다. 여기서 디자인의
역할은 이러한 인식에서 벗어나, 누구나 환영받는 밝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목재로 된 건축물의 외관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다. 설명을 읽어보았더니, 초기 계획에서는 구조와
마감 모두 목재를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구조적인 문제로 철골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먼저 지속가능한 재료로서 나무를 활용한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렇게 사용된 목재들은 화학물질이 많이
첨가된 다른 건자재보다 건강에 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이곳이 건강과 관련한 생활체육시설임을 다시 떠올렸을 때 더욱 그렇다.)
또한 비교적 구하기 쉽고 운송과 제작과정에서 철이나 콘크리트보다
에너지를 더 적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에서는 목재
또한 재활용된 건축자재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 건물도
그러한 맥락에서 처음부터 재활용된 건자재를 사용했으면 이러한
지속가능성을 더 강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목재의 역할은 비단 지속가능성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여기서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디자인의 구성요소들로
살펴보자면) 목재가 가지는 따뜻한 색상과 친숙한 질감에 있다.
외부의 적삼목 패널과 내부의 자작나무 패널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음침하게 느껴지던 고가하부에서 따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또
수직으로 시원하게 뻗어 있는 목재들이 숨김없이 철골조와 함께
노출되어 열주처럼 세장하게 반복되는 것에서 운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즉 이곳은 질감과 색, 선 요소의 반복을 통해 고가하부의
분위기를 역동적으로 바꾸어 시민들에게 돌려낸 것이었다.
" 이곳은 질감과 색, 선 요소의
반복을 통해 고가하부의 분위기를 역동적으로 바꾸어
돌려낸 것이었다."
07. 대방동 지하벙커
이 건물은 말 그대로 군사시설이었던 벙커를 재활용하여 청소년들의 문화공간으로
만들어낸 독특한 프로젝트이다. 구조자체는 남겨 놓고 그 안을 새롭게 리모델링한
프로젝트인데, 본디 가지고 있던 벙커라는 독특한 구조를 허물지 않고 새로운 디자인 기회로 만들어낸 점이 인상깊었다. 디자인의 조건으로 살펴보았을 때, 이는 특징적인
기존의 맥락을 이어받으면서 기존의 구조적 독창성을 자기의 것으로 이어받는 것처럼 보인다. 이 뿐만 아니라 원래는 밖에서 새롭게 건물을 지었어야 할 것을 기존의
생각지도 못한 벙커 공간을 활용함으로써 경제적이기 까지도 하다.
벙커의 둥근 모습은 내부의 가구, 천장마감 등 공간 디자인에서도 반복되면서 사용되는 모습이다. 벙커의 디자인 언어를 활용한 리모델링으로, 벙커의
어두컴컴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물리치는 아이러니가 돋보인다. 기존의 군수물자를
보관하던 벙커에서, 청소년들의 상상력과 활동을 보관하는 벙커로, 추상적 의미로서
“저장”의 의미는 어쩌면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08. 서서울 미술관
시각적으로 밖과 연결된 전시관이라는 주제는 그 동안 다른 곳에서도 많이 보아왔는데, 대부분 제대로 초기 디자인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빛에 민감한 예술작품들을 외부의 빛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전시실에 위치시킨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비슷하게 외부의 빛을 들이는 창이 있는 지하공간이 있는데, 이는 지하로 매우 깊이 들어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조감도를 보면 그렇게 깊히 만들어서 빛의 영향을 줄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프로젝트라, 그 이면에 어떠한 건축적 해결장치가 있을지는 자세히 보지 못했으나, 그런 것이 없다면 분명 블라인드가 쳐지고 으레 그렇듯 밖과 시각적으로 단단히 차단된 미술관으로 돌아갈 것이다. 즉 디자인의 조건으로 분석해보자면
심미성과 독창성은 우수할지 모르지만, 미술관의 본디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는, 합목적성의 부재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 이러한 “디자인의
빈틈”들은 결국 추가적인 조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빛의 차단을 위한
블라인드나 가벽 등)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경제적이지도 못하다.
티보 칼맨(Tibor Kalman)이 “디자이너는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한
것은 비단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건축가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명확한
실제의 전달보다는 건축물이 가져올 이상향을 부풀려 그려 내는데에
집중한 나머지, 실제의 공간은 그만큼의 퀄리티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건물은 올해 지어질 예정이라고 하니, 그 때 꼭 찾아가서
어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실제로 “열린 미술관”을 만들어냈는지 보고와야겠다.
09. 서울마루 프로젝트
10. 서울 시민 미래학교
시민주도 학습 플랫폼은 중구 정동에 지어질 예정인 시민들의 학습공간으로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정동은 내가 자주 들르는, 좋아하는 공간들 중
하나인데, 서울 시립미술관과 정동극장, 신아일보 별관, 정동교회 등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길이 인근 시청역 일대의 빌딩숲의 숨막힘과는 대조를 이루는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 깔끔하고 다정한 느낌의 붉은 벽돌들은 이 곳에서 재료 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건축가 또한 이 프로젝트에서 이러한 정동의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노력한 듯하다.
즉 이 지역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길 택한 것이다. 전부 허물어
버릴 수도 있었던 기존 붉은 벽돌 건물의 1층을 남겨서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외부는 이렇게 차분하게 마감하면서도, 내부는 금속과 유리 등 더 현대적인 재료들을
활용하여 활기찬 분위기를 의도했다고 한다. 이렇게 장소에 대한 배려와 지역성에
대한 고려가 더 아름다운 공간, 새 건물이지만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익숙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시민 미래학교는 앞서 설명한 시민주도학습 플랫폼과 같은 공모전에 대한
출품작으로, 비록 당선작이 아니라 실제로 지어지지는 않은 설계안이지만, 교육시설답지 않은 아이코닉한 외관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전시의 많은 설계작들이
주변의 맥락과의 조화를 꾀했다면, 이 설계안은 주변으로부터의 차별화를 통한
강조를 의도했다.
이 건물은 바로 인근에 위치한 고층건물들에 묻혀 이곳이 가려지는 것에 대해, 이곳을
외부에 크게 소리쳐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외관이 설계되었다. 이에
기존의 건물 그리드에서 벗어나 대각으로 배치된 강렬한 초록색의 벽채가 바로
그러한 용도의 일환이다. 즉 이는 리모델링 프로젝트이지만, 형태적으로 모더니즘의
맥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판넬에서
또한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인 로버트 벤츄리의 스케치를 활용하고
있었다.) 효율과 조화를 떠나서, 이러한 변주를 제시하는 것이 강렬하게 느껴지는데,
11. 곰두리 체육센터
이 프로젝트는 송파구 오금공원에 있는 곰두리 체육센터를
증축한 것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설계되었다. 판넬을 읽어보면서,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건축가의
깊은 생각이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도 눈여겨볼만한 점은, 증축과정에서 장애인이 겪을 수 잇는 물리적 베리어 뿐만 아니라
심리적 베리어 또한 유심히 고려했다는 점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양한 능력과 제약을 가진 사람들을 최대한 포용할 수 잇는 디자인이다. 하나의
디자인으로도 여러 사람들에게 똑같이 편리함과 만족을 주는
디자인인 것이다. 이러한 유니버설 디자인의 철학은 구분없는
디자인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줄곧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을
유니버설 디자인과 동일시하곤 한다. 하지만 장애인만을 위한
디자인은 곧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짓고 낙인찍는 디자인이며, 결국 물리적으로 편리한 결과를 가져올지라도 이들이 느끼는 심리적
베리어는 지워지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을 건축가는 잘 이해하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모두 불편없이 함께 사용하는 시설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장애인만을 위한 시설이 아닌, 모두를 위한 시설을 디자인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계단을 올라서 진입해야 했던 1층의 진입로를 바꾸어
단차 없이도 건물 내로 들어올 수 있는 입구를 만들었고, 가장
중심시설이 되는 체육관은 1층의 출입구에 가깝게 새로 배치하여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의 편의를 고려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진정한
의미의 유니버설을 고민하는 디자인을 찾아볼 수 있길 희망한다.
12. 서울마루 프로젝트 2021
서울마루 프로젝트는 (이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옥상이자
마당인 장소에서 매년 가설건축물을 지어 진행하는 프로젝트이다. 이곳은 원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체신국 청사가 있던 곳이자 해방 이후에는 서울지방국세청
남대문 별관으로 사용되었던 곳인데, 이제는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오픈형의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 되었다.
2021년에 진행한 서울 마루프로젝트의 당선작은 서울 핀볼 프로젝트이다.
당시는 군복무 중이라 가보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평평한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옥상을 거대한 핀볼기계처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은 굉장히
대담하고 통쾌하게 느껴진다. 더욱이 인근에는 궁궐과 성당, 시청 등 사무적이고
딱딱해 보이는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어 이 발칙함이 더욱 강조되는 느낌이 든다.
건축이란 언제나 일반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보다는 명품처럼 ‘있어 보이게’
거리를 두곤 한다. 건축가는 이러한 장벽을 키치한 핀볼을 통해 부숴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 핀볼은 시민들에게 건축을 재밌게 소개하기 위한 건축적 장치로 작용한다.
정지한 오브제로서의 건축이 아닌, 들어가서 직접 체험하는 도시의 지형으로서의
건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위한 노력 또한 엿볼 수 있었다. 여기
설치된 오브제들은 일반적인 건축
13. 서울마루 프로젝트 2022
이는 서울마루 프로젝트 2021에 이어 2022년에 진행한 프로젝트로, 나도 직접가서 건축가와 조경사의 인터뷰를 듣고 야외에서 영화 또한 봤었던 경험이 있는 프로젝트였다. 이는 목재로 한옥의 마루와 같은 구조체를 만들고 마루 밑에는
살아있는 이끼를 깔아서 마치 숲속 정자에 누워 쉬는 듯한 공간을 만들어낸 것으로, 2021년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던 “지속가능한 디자인”이 다시금 반복된 느낌이
들었다.
당시 인터뷰를 떠올려보면, 이 목재들은 전시 이후에도 따로 분해되고 다른 장소에서
조립되어 실제 마루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다고 하며, 그렇기 때문에
짧은 전시기간 이후 해체해도 폐기물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이끼 또한 한번 전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다른 곳에 심어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이 파빌리온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이미지와 어우러진다.
앞으로도 이런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마주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14. 팔레트 스케이프
이것은 공공건축물 전시 섹션에 있던 것이 아니라 “건축가의 예술적 기질”이라는 다른 전시실의 있던 건축관련
전시인데, 마찬가지로 공공건축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험적인 시도들이 돋보여서 추가적으로
작성하게 되었다. 팔레트스케이프는 이화여대 국형걸 교수가 설계한 파빌리온인데, 이는 팔레트를 쌓거나
수직으로 세워 지형을 만든 작품이었다.
공사장이나 창고에서나 볼 수 있는 팔레트를 일시적인 건축의 유닛으로 활용한다는 생각이 참신했다.
이것이 전시에 사용된 장면을 보면, 플라스틱 팔레트는 키치한 느낌을 주면서도, 그 안에 (하중을 분산하기
위해 설계된) 그리드가 사뭇 엄숙한 느낌을 주는 역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러한 양가적인 속성이
이것이 전시회에 더 적합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플라스틱의 물성으로 의외적이고 친숙한 분위기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그 안에서는 수직의 그리드로 진중한 전시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15. 또아리망
이것은 공공건축물 전시 섹션에 있던 것이 아니라 “건축가의 예술적 기질”이라는 다른 전시실의 있던 건축관련
전시인데, 마찬가지로 공공건축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험적인 시도들이 돋보여서 추가적으로
작성하게 되었다. 팔레트스케이프는 이화여대 국형걸 교수가 설계한 파빌리온인데, 이는 팔레트를 쌓거나
수직으로 세워 지형을 만든 작품이었다.
공사장이나 창고에서나 볼 수 있는 팔레트를 일시적인 건축의 유닛으로 활용한다는 생각이 참신했다.
이것이 전시에 사용된 장면을 보면, 플라스틱 팔레트는 키치한 느낌을 주면서도, 그 안에 (하중을 분산하기
위해 설계된) 그리드가 사뭇 엄숙한 느낌을 주는 역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러한 양가적인 속성이
이것이 전시회에 더 적합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플라스틱의 물성으로 의외적이고 친숙한 분위기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그 안에서는 수직의 그리드로 진중한 전시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