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집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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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 Eun-jung

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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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집어보는 여자, 신은정


2011년 5월 다큐 <베리타스> 제주 상영회 후 김영갑갤러리에서

외롭고 아팠기에 너의 사랑은 언제나 구체적이었다 쓸쓸한 날이 많아서 너의 원려는 곱게 깊었다 신은정, 심장에 피어 결코 지지 않을 보랏빛 자운영


최고의 친구, 동지, 지식인이었던 아내 신은정을 보내며

조지 카치아피카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저는 큰 슬픔을 느끼며, 나의 사랑하는 아내 이자 동반자, 최고의 친구이자 동지이며 지식인인 신은정이 지난 11월 2일 세상을 떠났음을 알려드립니다. 앞으로 제가 여러분을 만날 때, 이처럼 큰 비극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개인적인 상실이며, 그녀의 아낌없는 마음을 듬뿍 받았던 우리 모두에게는 커다란 비극입니다.

신은정과 카치아피카스 부부. 2009년 1월 광주


우리는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를, 그녀가 삶을 대했던 솔직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는 우리들은 앞으로 삶에서 중요한 연결고리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너무도 짧은 40년 동안 이 별에 머물렀던 바다(그녀의 한국어 애칭). 그녀는 고향인 광주에 서 전남대 학생 운동가로 시작해 방송국 작가로, 인권영화제 기획자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로, 그리고 지적인 저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10년간 광주방송국(KBC)과 한국방송총국(KBS)에서 방송작가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영화는 광주 대인시장에서 오랜 기간 힘들게 일해 온 여성들의 생애사를 기록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광주는 1980년 역사적인 민중항쟁을 촉발시켰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려던 신군부 에게 치명타를 날린 도시입니다. 은정은 항쟁 동안 미국이 제공한 탱크와 헬기에 대항해 마지막까지 동지들과 함께 전남도청을 지키다가 죽어간 시민군 가족의 투쟁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이 작업은 후배 최성욱 독립영화감독과 함께 했습니다. 자신의 독립영화로 그녀는 맨 먼저 5·18광주민중항쟁의 역사를 담았습니다. 이 다큐 는 지난주 독일에서 상영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어느날 저녁, 그녀는 자료 영상 을 보다가 탄성을 질렀습니다. 시민군이 개최한 군중 집회 도중 흰색 옷을 입고 앉은 나이 든 농부가 화면에 비쳤는데, 바로 그녀의 외할아버지였던 것입니다. 당시 광주시민들은 미 국이 지원한 공수부대의 살육으로부터 광주를 지켜내고자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은정의 주요 다큐멘터리는 앞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 실>(하버드의 숨겨진 역사에 대한 80분간의 폭로)입니다.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버전으 로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녀는 기록물을 조사하고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책과 문서, 신 문기사를 탐독하고 인터넷을 꼼꼼히 뒤지는 데 1년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놀라운 정확 성과 깊은 통찰력으로 그녀는 일반인들에게 자주 숨겨졌던 하버드의 다양한 이면을 찾아 냈습니다.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은 2011년 뉴욕 국제독립영화제에서 다큐 부문 감 독상을 받았습니다. 상영 요청을 받은 은정은 그간 터키의 10개가 넘는 도시들, 미국 샌프 란시스코 그리고 한국의 6개 도시들을 순회했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한국어로 출판된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을 영문으로 번 역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은정의 장례식은 2012년 11월 5일 오후 5시 메사추세츠주 02139, 캠브리지 메사추세 츠가 5O번지에 있는 MIT 예배당에서 열릴 것입니다. 장례식 후 캠브리지 로크거리 30번지 에 있는 저희 집에서 다과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우리는 은정이 가장 좋아했던 보라색 옷을 입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석을 기 대합니다. 이 부고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십시오. 조화(弔花) 대신 평화, 특히 한국의 평화를 위해 노력합시다. 번역_ 김대성




신은정과 카치아피카스 부부. 2010년 9월 미국


한국 정치인은 왜 하버드에 인사하러 올까

인터뷰_ 세계 최초로 하버드의 이면 다룬 다큐멘터리 만든 신은정 감독 오마이뉴스, 2011년 5월 4일 게재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학 하버드. 하버드의 어두운 역사를 정면 으로 고발하는 다큐멘터리가 세계 최초로 제작됐다. 제목은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미국의 대표적 지성인 노엄 촘스키 교수는 이 다큐멘터리 제작 소식을 접하고“매우 흥미로운 소재” 라며 큰 관심을 표현했다. 촘스키 교수는 이 다큐멘터리의 주요한 인터뷰이 중 한 사람이다. 놀랍게도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 한 이는 한국인이다. 신은정 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신 감독은 2005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살고 있다. <신좌파의 상상력> 저자인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웬트워스 공과대학)가 그의 남편이다. 노엄 촘스키 교수와 인터뷰 중


2일 광주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신 감독은“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하버드라는 보

이지 않는 제국의 실체를 밝혀보고 싶었다” 고 했다. 하버드가 2차 세계대전 후 냉전시대에 어떻게 미국의 이익에 철저히 복무했는지, 신자유주의의 등장 이후 하버드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등을 역사적 사건과 함께 고발하고 있다. 신 감독은“하버드의 학자들이 개입했던 주요 정책들이 늘 옳았던 것은 아닌데 그들은 단 한 번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진 적 다” 며“오늘날 교육의 목적이 왜곡된 것도 하버드의 책임이 크다” 고 지적했다. 신 감독은 하버드의 정체성을“미국의 지배계층이 필요로 하는 지적 노동을 수행하는 기구” 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하버드의 학자들이 미국 정부 입맛에 맞게 정책을 마사지해 주고 그 대가로 신분과 지위 상승을 꾀하며 지식인의 책무를 망각해왔다” 고 신랄하게 비판 했다. 신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5·18광주민중항쟁 31주년에 맞춰 상영을 할 계획을 세우 고 있다. 오는 11일 광주에서 첫 상영회를 여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일엔제주에서,26일엔서울에서무료상영할예정이다.이무료상영회는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이 함께 한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한국 정치인이라면 하버드에 꼭 인사 와야 한다?

하버드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 배경은. “처음 미국에 가서 어떤 작업을 첫 다큐멘터리의 주제로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어느날부지불식간에하버드가떠올랐다.스스로그이유를생각해보니, 내가 하버드 섬머 스쿨에서 영어공부를 했었다. 또 남편인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가 하버드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지낸 이력으로 하버드가 주최하는 여러 행사에 자주 가게 되었다.


잘못 알고 있었던 이미지의 베일이 벗겨져가는 과정이었다. 하버드가 섬머 스 쿨이나 하버드를 극찬하는 진보적 인사의 비디오를 틀어주면서 은근히 자신들 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학문의 자유 수호에 앞장서왔는가 강조하더라. 또 한 가지 이해 안 됐던 게,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대선 후보로 한참 거론 될 때 하버드에 강연하러 왔던 일이다. 고건 전 총리도 대선 후보로 거론되면서 하버드를 다녀갔다. 조지에게 이 얘길 했더니“한국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하버 드에 인사 와야지” 하며 웃었다. 하버드는 단순한 대학이 아니라 전 세계 정치인들의 쇼 무대라는 생각이 들었 다. 마침 2006년 조지의 논문 주제가‘5·18광주민중항쟁에 미국이 어떻게 개입 했는가’ 였다. 가령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엘리트들의 회의 기록을 보면 20사 단의 광주 투입을 승인하는 결정이 나온다. 나는 하버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 을 하고, 이들이 어떤 교육을 통해 무슨 이데올로기를 양산하는지 알아보고 싶었 다. 세계를 지배하는 하버드라는 보이지 않는 제국의 실체를 밝혀보고 싶었다.”

다큐멘터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해 달라. “큰 흐름은 하버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따라가는 것이다. 부자들의 대학으로서 하버드가 학생들을 파업 진압에 동원한 사건, 하버드가 인종주의의 근원지가 되면서 우생학을 어떻게 촉진시켰고, 우생학을 통해 나 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고발한다. 또 남성 중심 대학이었던 하버드가 여성을 어떻게 소외시켰는지, 2차 대전 후 냉전시대에 하버드가 미국 정부에 어떤 역할들을 했는지를 담고 있다. 특 히 CIA의 전신인 OSS요원들이 하버드를 비롯한 미 대학들의 지역학 연구소 를 어떻게 확장시켰고, 이들이 전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추적했다. 하버드 출신 외교압력단체들의 행태도 고발했다.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하버드 대학이 어떻게 변했는지, 하버드가 러시아 경제개혁에 어떻게 개입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한 내용도 있다. 또 2008 년 미국 금융위기에 대한 하버드의 책임과, 1,000여 명의 노동자를 정리 해고한 하버드의 추악한 면도 담았다.”


뉴욕 국제독립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감독상을 받고. 2011년 11월


하버드는 왜 진보적인 학자들을 해고하지 않을까

노엄 촘스키 교수 등 인터뷰에 응해준 석학들이 많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결정한 이후 인터뷰를 할 많은 분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 분들 중 가장 빨리 대답을 준 분이 촘스키 교수였다. 하루도 안 돼 답장 이 왔다. 촘스키 교수는‘매우 흥미로운 주제’ 라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촘스키 교수는 <냉전과 대학>이라는 책에 글을 썼는데, 그 책은 냉전시대 미국 대학들이 미 제국주의의 부속물이 된 과정을 고발한다. 촘스키 교수는 이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다큐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지식인의 책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전이 과거 일이라고 생각하는 데 결코 그렇지 않다. 베트남전에 찬동하고 복무했던 학자들이, 이라크에 가서 효율적 고문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학자들이 학자적 양심과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심판 받은 적이 없고 책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뉴욕 브레이트 포럼에서 <베리타스>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 2012년 3월


하버드 학생운동 조직의 의장을 지낸 마이클 엔세라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학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정책을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키려 하지만 그것이 이끌어낸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하버드 학자들은 늘 자유로웠 다’ 고 말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학자들이 정부 입맛에 맞게 정책을 마사지 해준 다음, 그 대가로 신분과 지위 상승을 꾀하며 지식인의 책무를 망각해왔기 때문이다. 진정한 역사의식, 인간에 대한 애정 없는 자들이 지식인이라는 외피를 뒤집어 썼을 때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이 시기 고등교육의 목표가 무엇인가? 20세기는 고등교육이 급속히 확장된 세기 였다. 그렇지만 교육의 목적은 힘과 자본을 좇는 네트워커를 양산하는 것이었 다. 오늘날 교육의 목적과 목표가 왜곡된 것은 하버드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진정한 교육목적이 무엇인지, 내 스스로도 화두처럼 의문을 가져보고 생각해보고 싶었다.”

인터뷰했던 이 중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누구였나. “리처드 레빈스 하버드 의학대학원 과학자다. 하버드 내에 있는 몇 명 안 되는 진보적 과학자 중 한 분이다. 그는 하버드를 가장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길‘내가 진보 성향이라고 하버드로부터 해고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버드 이사회 등 하버드의 주요 논의기구들이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땐 결코 나를 부르지 않는다.’ 하버드가 왜 그를 데리고 있겠나? 하버드의 명예를 자 랑하기 위해서다.‘우린 이런 진보적 학자도 있다’ 하는 식이다. 하버드의 정체성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배 계층은 세상을 자기 입맛에 맞게 조정하기 위해 지식 이 필요하고 지식인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 인들에게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 다. 학문적 다양성은 하버드의 구색 맞추기일 뿐이다. 하버드는 미국의 지배계층이 필요로 하는 지적 노동 을 수행하는 기구다. 양비론으로 가다보면 문제점을 놓치는데 리처드 레빈 스는 하버드 정체성의 핵심을 잘 짚어줬다.

“한국인들의 하버드 집착, 세계에서도 드문 일”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남편이자 협력자다.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아이디어는 떠올랐지만 제작에 대한 자신이 없어 접었다. 그런데 조지가“이런 기획 은 처음이다, 당신은 할 수 있으니 해보라” 고 용기를 줬다. 그리고 자료와 인물, 방대한 역사적 사실과 사건 에 대해 풍부하게 설명해줬다.


책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출판 기념 북콘서트. 2012년 7월 광주


그는 내가 인터뷰한 여러 사람 중에서 60년대와 70년대 미국 학생운동 성장과 쇠락의 과정을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통찰력 있는 사람이었다.”

하버드는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버드라는 이름이 가진 브랜드 가치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하버드라는 극소 수의 강력한 네트워크에 진입하고 나면 신분 상승이 보장될 것이란 기대치가 높다. 하버드의 학자들은 늘 승승장구했다. 하버드의 학자들이 개입했던 주요 정책들이 늘 옳았던 것은 아닌데 그들은 단 한 번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진 적 없다. 그 때마다 늘어놓았던 하버드의 변명은‘학문의 자유’ 였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선 미국의 전·현직 고위관료들이 강연을 한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은 펜타곤(미 국방성)과 국가안보 엘리트들의 평생교육원이랄 수 있다. 케네디스쿨 이벤트에 가면 군인들이 유독 많다. 황당했다. 대학이 아닌 ROTC 행사장 같았다. 9·11 이후 하버드가 이라크 파병 군인들에게 특례제도를 주고 있어서 펜타곤의 고급장교로 입문할 이들이 많이 간다. 케네디스쿨은 펜타곤에 지원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하지만 하버드는 영악하다. 이라크전 논란이 한창일 때 하버드는 미 정부 정 책을 합리화하는 일만 하지 않았다. 이를 비판하는 컨퍼런스도 열었다. 우리는 하버드를 정확히 봐야 한다. 거대한 빙산을 한 면만 보고 평가해선 안 된다. 국 제관계 속에서 하버드를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하버드 출신자들이 어떤 역할 을 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할 것인지 미리 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조차 하버드는 최고로 선호하는 대학이다. “요즘은 덜하지만 1960년대에는 하버드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식이 팽배했


었다. 에드워드 베이커 전 하버드 옌칭연구소 부소장은‘한국 사람들의 하버 드에 대한 집착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일’ 이라며‘심하다’ 고 꼬집을 정도다. 근래 미국에선 하버드만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버클리대는 공공정책, 하버드는 로스쿨이 좋다는 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학에 서열 을 매기기 때문에 하버드면 무조건 최고로 좋은 줄 알고 있는 것 같다. 대학 서 열화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본다.”

관객들에게 미리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하버드가 명문대학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하버드에게 이런 면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함께 보셨으면 좋겠다.”

다큐 <베리타스> 첫 포스터가 나오던 날. 2011년 5월


우리가 맞닥뜨려야할 실체를 캐낸 다큐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을 보고나서

이재의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저자

당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50대 중반을 넘어서니 세상 일이 이제 새로운 게 별로 없어보였다. 별의별 소릴 해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대개‘그게 그거구나’ 싶은 일들 뿐이었다. 때문에 나는 간혹 가족들과 함께 영화관엘 가도 졸지 않고 끝까지 본 영화가 별로 없는 편이다. 이 영화 <베리타스>도‘좀 비판적인 시각에서 그려진 영화 정 도겠지’ 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5월 11일 저녁 7시 첫 상영관인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공 연장에 들어섰다. 고향 광주에서 다큐 <베리타스> 첫 상영회를 마친 후. 2011년 5월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대부분의 국제관계 뉴스는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세계화로 치 닫는 자본주의 핵심부에 미국이 있고 그 영향력은 반세기에 걸쳐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때 문에 우리는 자기 자신보다 오히려 미국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연예인 은 잘 몰라도 할리우드 영화배우 이름들은 쭉 꿰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러니 미국에 서 벌어지는 일들이라… 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자 내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 다. 영화는 하버드가 만들어진 연원부터 다루기 시작했다. 엑슨모빌, 록펠러, 포드 등 오늘 날 다국적 기업의 선두에 선 기업들이 폐쇄적인 이사회를 구성했다는 이야기부터 범상치 않았다. 하버드 생물학자들이 세계 여러 나라 인종을 우생학적인 차원에서 연구하고 있다 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이들은 특정 인종이 유전적으로 우월하다는 인종우월주의를 생물 학적으로 논증하기 위해 노력했고, 히틀러는 그 우생학을 유태인 대학살의 논거로 차용했 다는 것이다. 영화는 종횡무진이었다. 현대사의 큰 사건들이 미국에 의해 주도됐고 그 사건들의 대 부분이 직간접적으로 하버드와 연관돼 있었다는 점이 낱낱이 밝혀진다. 학문의 전당으로 포장된 하버드가 미국의 세계 지배정책 연구의 첨병 역할을 하게 된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더욱 적나라하다. 중간 고리 역할을 하는 게 CIA다. 하버드 교수의 상당수가 CIA 요구에 따라 CIA 자금을 받고 연구 결과를 제출한다. 어떤 이들은 아예 이중 신분을 갖기도 한다. 연구 결과는 미국 대외정책의 기저를 이룬다. 현대사의 변곡점에서 미국이 지탄받는 사건들의 상당수가 하버드의 산물이라는 점을 이 영화는 구체적인 논증과 증언으로 제시한다. 그 내용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증거들이 이를 하나하나 뒷받침한다. 충격적이었다. 80분 동안 이 영화는 잘 만들어진 스릴러물보다 더 팽팽한 긴장감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졸음이 올 리 없었다. 영화가 끝났을 때 나도 모르 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감독과의 대화 자리가 펼쳐졌다. 질문했다.“혹시 하버드 당국자들이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있었다면 어떤 반응인가?”대답은 당연히“아직까지는 없다” 였다. 광주에 서의 이 날이 첫 상영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만약 유튜브 같은 경로를 타고 여기저기 전파되기 시작하면 적지 않은 파장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왜냐고? 영화를 본 사람은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노엄 촘스키 같은 거물급 인사들이 다수 등장해서가 아니다.


금세기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과 정책을 이처럼 적나라하고 단순 명쾌하고 구체적이 고 신랄하게, 날카로운 칼로 심장을 찌르듯 지적한 작품을 일찍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는 한계도 많다. 잘 짜인 각본이나 극적 갈등구조 같은 건 없다. 할리우 드 상업영화의 달콤함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이런 게 무슨 영화냐는 반응이 있을 법하 다. 자녀가 하버드 박사과정에 있다는 어느 학부모의 지적처럼“편협한 시각에서 하버드 를 폄훼하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영화” 라는 반발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 그것도 광주 출신 신예 독립영화 감독의 시 각이 아니면 도저히 포착하기 어려운 예각 지점들을 날카롭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 이다. 물론 광주민중항쟁에 관한 것은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광주민 중항쟁의 영향권에서 자라난 세대의 섬세한 예술적 감수성이 진하게 묻어난다. 세계화의 심장부 미국, 그리고 미국의 심장과 머리 역할을 하고 있는 하버드에 대해 그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5·18을 포함해 남미, 중동 등 오늘날 세계 곳곳에 서 분쟁을 일으키는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대한 그녀 나름대로의 문제 제기가 아닐까 싶다. 그녀가 폭로한 하버드의 어두운 측면은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맞닥뜨려야 할 실 체가 아닐까? 5·18 이후 우리 사회가 화두로 삼았던‘미국’ 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순천대 영상디자인학과 학생들과 <베리타스> 상영회를 가진 후. 2012년 6월


“2008년과 2009년, 나는 영상 제작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게 되었다. 과거 짧지 않은 시간을 방송 작가로 영상과 씨름하며 보냈고, 한동 안 광주 인권영화제를 기획하기도 했 지만 실제 제작을 배우는 과정은 녹록 치 않았다. 팀 작업으로 두 편의 다큐 멘터리를 만들었지만 촬영과 편집은 내게 여전히 어려운 과제였다. 미국에 돌아가면 혼자서 영상제작을 할 수 있 을까, 또 한다면 어떤 작업을 할 것인 가를 고민할 때 부지불식간에 하버드 라는 주제가 떠올랐다.” 신은정, KBS 노동조합 소식지에 기고한 글 하버드를 통해 세상을 보다’중에서


1988년 고등학교 1학년 때 다큐 <베리타스> 첫 상영회를 마치고 대성여고 동기들과 함께. 2011년 5월

남편과 함께 광주 대인시장에서 지인들을 만나고. 2009년 1월

미국 보스톤 존 핸콕타워에서. 2010년 9월

대인시장 여성 생애사 기록 작업 당시 미디어인 동료들과 함께. 2009년 9월 광주 전남대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2010년 6월

책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출간 후 대학 친구들과 함께. 2012년 7월


단골이었던 광주의 음악바 포플레이에서. 2009년 6월

미국 이주 직후 2005년 하버드 섬머 스쿨을 마치고. 이때의 문제의식이 다큐 <베리타스>의 씨앗이 됐다.

터키 이스탄불 국제노동영화제에서 감독 인사. 2012년 5월

남편으로부터 깜짝 생일축하 케이크를 받고. 2012년 5월

미국 이주 후 처음 광주에 와서 후배 최성욱을 만나. 2006년 5월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언니, 편을 나누기 싫

긴 생머리에 하얀 얼굴의 너,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어했고 경계를 짓지 않으려고 했던 언니의 행동들이

너는 또래의 동기들처럼 멋 내고 취직공부에 매달리

우리에게 때로는 감동이었고 때로는 반성의 기회도

는 대신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누구보다 치열하

되었습니다. - 방송작가 김영란

게 살았던 아이였어. 객관적이고 날카롭지만 항상 마 음이 따뜻했던 너. 예쁜 얼굴과 달리 매서우리만치 날카로운 눈매로 거침없이 자기 주장을 얘기하던 너.

시를 좋아하고 국어시간을 유독 좋아했던 너는 진지

- 친구 채수정

함과 예리함으로 수업이 끝난 후에도 선생님과 토론 을 하기도 했지. 당시 전교조를 지지하는 선생님들 곁을 같이 지키며 단상에 올라 학생들에게 목청껏 참

너처럼 에너지 넘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통일의

교육 실현을 외쳤던 너는 누구보다 깨어있었고 당당

집 할아버지들 곁에도, 인권영화제가 자리 잡는 데에

하게 신념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정말 멋진 친구

도, 아파 흔들리는 친구들 곁에도 항상 네가 있었다.

였단다. - 친구 박수미

너처럼 유쾌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떤 비극 속에 서도 건강한 웃음을 만들어내던 아이. 너처럼 지혜롭 고 사랑스럽고 멋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나는, 너처럼 인간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보내기 너무 아까운, 우리 예쁜 바다 - 선배 조현정

광주 고향집 담장 아래서 어머니와 함께. 2012년 6월


누나는 늘 웃으며 사람을 사랑했었지요. 함께하는 사

광주가 키워낸 당신, 똑똑하고 선명한 야성으로 하버

람들에게 항상 생기를 주는 따뜻하고 당당한 사람이

드의 이면을 꿰뚫던 장부가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다

었습니다. 따뜻한 가슴을 가졌고 합리적 이성을 모두

니요. 당신 같은 통찰력 있는 다큐감독을 어디서 찾

갖춘 부러운 사람이었습니다. 더러운 사회를 향해서

을까요. 당신의 인생이 담겨진 광주의 시선을 누가

는‘씨발’ 이라는 욕도 서슴지 않으며 분노하고 행동

이어가나요. 광주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었던 별 하

했지요. - 후배 임형문

나를 이렇게 보냅니다. - 이순학 페이스북 이웃

일면식도 없었지만 메신저를 통해 이야기를 나눈 감

당신은 광주의 딸로, 민주화의 유산과 사회의 이면을

독님, 제가 <베리타스> DVD 첫 구매자라며 정성스

담은 작품을 종과 횡으로 엮으며 비판과 말하기를 주

럽게 카드까지 써주신 감독님, 그리고 커피프로젝트

저하지 않았습니다. - 임인자 페이스북 이웃

에서 했던 공동체 상영을 허락해 주시고 응원해주신 감독님, <베리타스>를 더욱 알려달라며 무료로 10장 이나 보내주신 감독님. - 박기남 페이스북 이웃


1972년

광주에서 태어남

1991년~ 1995년 2월

전남대학교 심리학과에서 공부

1995년~ 2004년

광주방송과 KBS광주총국 방송작가로 활동

2000년~ 2004년

광주인권영화제 기획자로 활동

2004년

미국의 진보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웬트워스 공과대학)와 결혼

2005년~

미국 보스턴 거주

2009년

독립다큐멘터리 <기억하기 위하여> 공동연출.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시민영상제에서 상영

2009년

<프로젝트 No. 5 언니들> 공동제작

2010년

단편 다큐멘터리 <광주항쟁의 유산 The Legacy of the Gwangju Uprising> 제작

2011년

장편 다큐멘터리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제작

2012년 7월

책 <하버드,그들만의 진실 >(시대의창 출판사) 출간

2012년 11월 2일

책 <하버드,그들만의 진실 > 영어판 출간을 위해 번역 작업 중 운명

2012년 11월 13일

미국과 광주에서 각각 장례를 마치고 광주 영락공원 묘지에 잠듦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감독 신은정 / 편집 오퍼레이터 최성욱 / 제작지원 Eros Effect Foundation

“그 누구도 몰랐던 하버드의 실체가 드러난다” 하버드의 역사와 전세계적 영향력에 대한 비평적 분석

독립다큐멘터리

그 누구도 몰랐던 하버드의 실체가 드러난다. 하버드의 역사와 전세계적 영향력에 대한 비평적 분석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감독 신은정

사진 최성욱

5.18민중항쟁 31주년 기념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무료상영회

베리타스는 라틴어로 진리, 진실을 뜻하며 하버드를 상징하는 문장이다. 사진은 존 하버드 동상으로, 발을 만지면 하버드에 입학한다는 전설 때문에 너도나도 왼쪽발을 만져서 그 부분만 닳아 반짝거린다.

뉴욕 국제독립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감독상 수상

서울 국제변방연극제 초청 상영 뉴욕 브레이트 포럼 상영

2012년 전미 영화 및 미디어 연구학회, SCMS 공식 상영 터키 국제노동영화제 초청 상영 샌프란시스코 국제노동영화제 상영

2012년 현재 미국 25개 도시 및 대학, 한국 주요 도시에서 상영회 진행


광주의 5·18을 세계의 5·18로 단편 다큐멘터리 The Legacy of the Gwangju Uprising (5·18광주민중항쟁의 유산. 2010)

5·18광주민중항쟁을 영어로 소개하는 단편 다큐. 5·18 전후 한국사회의 정치 현실, 항쟁의 전개, 그리고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을 균형 있게 소개한 다. 신은정 감독은 장편 독립다큐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제작 을 앞두고, 파일럿 영상으로 이 작품을 제작했다. 평소 그녀는 5·18을 영 어로 알기 쉽게 소개하는 영상을 인터넷에서 찾기 어려움을 아쉬워했었다. 러닝타임 10분. 남편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가 나레이션을 맡았다. 유튜 브(Youtube)에서 영어 제목으로 검색하면 쉽게 볼 수 있다.

하버드의 어두운 이면 파헤친 세계 최초의 다큐 장편 다큐멘터리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2011) 신은정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로‘세계적인 명문대학’하버드의 이면을 파헤쳤다. 그녀는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미국의 많은 지식인들을 인터 뷰했다. 자료조사, 섭외, 촬영, 편집, 번역 등 대부분의 작업을 혼자 진행 했고, 해외 영화제 출품을 위해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했다. 베리타스(Veritas)’ 는 하버드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라틴어로 진리, 진실을 뜻한다. 신은정 감독은 하버드 건물 곳곳에 새겨진 베리타스 문장에서 작 품 제목을 착안했다. 그녀는 하버드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적 성격을 읽은 후, Veritas를 Verita$로 비틀어 보았다. 러닝타임 81분.

책으로 만나는 베리타스 Verita$ 책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시대의창, 2012) 장편 다큐멘터리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의 책 버전. 5·18광 주민중항쟁 31주년 기념 주간이던 2011년 5월 11일 광주에서 다큐 <베 리타스>의 첫 상영회가 열렸다. 이날 상영회에 출판사 시대의창 관계자가 찾아왔다. 하버드의 이면을 다룬 이 다큐의 의미와 가치를 곧 알아본 출판 사에서 책 출간을 제안했고, 신 감독과 시대의창은 의기투합해 이듬해인

2012년 7월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총 435쪽.


보랏빛 자운영

신은정

장례위원회 강성관 강위원 김대성 김동찬 김지연 김찬호 박수미 성경훈 윤수안 이정우 이주빈 임용철 정영대 조대영 채수정 최성욱 최완욱 최해영 (이상 가나다 순) 추모집 l 사진 최성욱 외 2쪽 글 이정우 3쪽 글 이주빈 편집 이혜영·조현아 디자인 허빛나


내 가 이

아 는

모 든

가 을,

사 람 들 이

아 프 지

않 고

행복하게

지내길

잊 혀 진

계 절

잊 지 떠

말 아 야 올

할 며

바래본다 1 0 월 에 사 람 들 을 .

.

.

신은정 감독은 다큐 <베리타스> 광주 상영회 때 찍은 사진들을 꺼내 보며 2012년 10월 4일 페이스북에 이 글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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