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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니콜라이
글 서희주
나는 작가들에게 으레 건네는 질문이 있다 . 작품의 주제와 의미가 무엇인지 , 작품을 통하여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 등 . 이런 질문은 어떤 작가들에게 귀찮은 일이거나 대답할 가치가 없을 만큼 명료한 자신의 작품에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미칠 수 있다 . 그러나 나에게 이런 질문들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이념 또는 작품과 예술관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 작품을 굳이 언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시각적 이미지가 모든 것을 표현하는 작품도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 나는 소통이 잘 되는 작품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진다 . 가끔 의외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고 작가의 예술관과 다른 시각적 이미지가 드러난 작품을 만날 때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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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위트가 소개한 모니카 니콜라이 (Monica Nickolai) 에게도 나는 유사한 질문을 던졌다 . 개념적 작업에는 작품과 감상자 간의 소통에 언어적 설명의 개입은 일정부분 필요하다 . 시각적 이미지가 작가의 주장을 충분히 전달 할 때도 있지만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작품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좋다 . 니콜라이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존재론과 인식론이라는 용어로 집약했다 .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 작가는 자신의 관심사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해석 그리고 언어에 있다고 말했다 . 세계에 대한 근원적 고찰과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은 유기적으로 우리 삶에 관계한다 . 그리고 진리의 의미와 기준에 대한 성찰은 인간으로서 삶의 의미를 사유하고 지향하기 위함이다 . 철학적 사유는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 더 나은 삶으로 이끈다 . 그래서 ,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하는 사람은 한번쯤 그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 니콜라이의 작품도 그러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
니콜라이의 철학적 사유는 자신의 작품에 내포되어 있다 . 작가의 작품에는 삶에 대한 많은 질문들과 우리들의 생각 , 현대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다양한 상황들 , 세계화에 따른 서로 다른 문화들의 이해 , 소통 , 이주 등 다양한 문제들이 텍스트 / 언어를 활용한 미디어 설치 , 사진 , 영상 , 사운드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 주목할 것은 니콜라이가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는 매개로 언어를 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 언어는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전달하는 훌륭한 도구이며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 따라서 작가의 철학적 사유는 언어를 통해서 구체화되고 작품이 되는 것이다 . 마치 언어의 구조가 세계의 구조를 드러내고 , 언어 분석을 통해 실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던 초기 분석철학자들처럼 언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작품 안에서 강력하게 작동한다 .
이런 점에서 , 니콜라이의 작품 ‘No-no’ 는 그의 작품 세계를 잘 드러낸다 . 영어에서 ‘No’ 와 우리말에서 ‘ 아니오 ’ 의 사용에서 드러나는 다름은 언어적 습관으로 표출되는 문화적 다름에 있다 . 이 다름으로 인해서 우리는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문법적으로 Yes 와 No 의 사용을 이해하지만 막상 외국인과의 대화에서는 종종 혼란을 경험하거나 소통에 문제를 발생한다 . 반대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한국어를 배울 때 동일한 혼란을 경험할 수도 있다 . 한편 , 영어 ‘no’ 의 발음은 한자어 櫓 ( 물살을 저어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노 ) 와 유사하다 . 동음이의어는 공통된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에게 쉽게 구분되지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여러모로 어려운 단어이다 . 이런 부분 때문에 언어는 공통된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의 역사와 문화를 내포하고 있으며 새로운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 따라서 니콜라이의 작품은 초기 분석철학자들이 언어 분석을 통해서 세계 구조를 탐구 했듯이 언어를 통해서 서로 다른 문화의 다름을 드러내고 이해하도록 한다 . 이것은 인간 존재의 공통 분모를 이해하고 서로에 대한 공감을 키워 우주에서 우리의 존재적 가치를 더 잘 이해하고자하는 작가의 의도가 함의 되어있다 .
니콜라이의 작품은 동시대적 매체를 활용한 흥미로움과 그 작품에서 느껴지는 철학적 사유에 몰입하게 한다 . 서로 다른 문화를 경험하면서 살고 있는 작가에게 존재의 근원과 본질 그리고 그 존재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는 글자와 글자들이 만나 생산되는 의미를 넘어선다 . 니콜라이는 우리가 자유롭게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도록 이끈다 . 그리고 더 나은 세계에 대해 꿈꾸도록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