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츄잉 41

Page 1

월간츄잉 Monthly Chewing /

41 /



4 츄잉 한 컷

6 교감일보직전

8 일상다반사

12 하루 한 장

20 독일어 시간

22 이 달의 츄잉


츄잉 한 컷

4 _


5 _

첫 패러글라이딩! 구름과 함께 하늘을 나는 정은 / 사진 윤나리


교감일보직전

6 _


감정의 너울

너의 등에 닿지 않도록 너울을 그러모은다.

7 _ 교감일보직전

초선영 | 작가, 화가. 행복이 무언지, 올바르게 사는 게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 chosunyoung.com | @chosunyoung


일상다반사


들었던 노래를 계속 듣는다. 중학교 때 전국적 유행이었던 MP3 플레이어는 많아봐야 열 몇 곡을 담을 수 있을 뿐이 었다. 512Mb였나. 저장용량이. 그래서 우리들은 매일 밤 다음날 숙제를 하는 대신 쉬는 시간에 들을 노래를 선곡했다. 컴퓨터에 저장되어있는 음악 중 내일 듣고 싶은 곡을 골라 내는 작업을 매일 매일 했다. 버디버디에서 친구와 쪽지를 주고받으며. 내일 점심먹고 무 슨 노래를 들을지 이야기했었다. 어지럽게 표시된 음악 파일명을 나만의 형식으로 정리 하며. 그때는 하루 하루가 좋은 노래를 찾아 헤매는 경쟁의 시간이었다. '이 노래 들어봐. 정말 좋지?' 할 수 있는 새로운 노래를 한곡쯤 담아가야 소위 잘나가는 친구가 될 수 있 었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아이는 일본 음악에 심취해있었다. 그때 그 친구를 통해 do as infinity나 the brilliant green, 시이나 링고 같은 뮤지션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촌스러워서 가사가 들리지 않는 음악은 잘 듣지 못한다. 그래서 팝이나 J-pop 을 듣는 아이들은 내게 더 대단하게 여겨졌다. 이 어려운 영어와 일본어 가사를 일일이 해석하며 듣는단 말이야 하며. 생일날에는 꼭 공CD에 생일자 친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들을 정리해서 구워줬었더 랬다. 트랙리스트를 만드는 과정을 나대로 참 즐겼던 거 같다. 그 시절에 나는 롤러코스 터를 참 좋아했다. 조원선의 목소리가 내 귀엔 너무나 매혹적이었고, 가사들도 하나같이 내 맘에 들었다. 인상적이지만 편안한 멜로디들. 과하지 않은 사운드. 그렇게 한 곡씩 몰 래 롤러코스터의 노래들을 심어놓고 나서는, 친구들이 그 트랙을 이야기해주기를. 그 노 래 정말 좋았다며 말해주길 남몰래 기다렸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한 후, 음악은 내가 낄 필드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클래식부터 모던 락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며 시대적 특색, 디테일한 한 줄의 가사들 곡 작사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악기 하나쯤은 다들 다루기에 명함을 내밀 판이 아니 구나 생각하고 한 발짝씩 멀어졌던 것 같다. 이후에는 음악을 '함께' 듣는 일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지인들의 음악취향을 확인할 수는 있었지 만. 뭔가 주눅이 들어 음악을 소재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 혼자 조용 히 음악을 듣게 되었고, 좋은 음악을 찾아도 들려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굳이 열심히 새로 운 노래를 더 찾아 듣지 않게 되었다. 내가 아는 음악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일상다반사

을 이야기했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 밴드활동을 한 친구들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직접 작

9 _


그러다 남미 여행을 갔다. 스물 네 살에 떠났던 남미에서는, 와이파이가 굉장히 귀했다. 한국어로 만든 모든 콘텐츠가 귀했다. 여행길에서 만난 언니 오빠 친구들은 '너 뭐 갖고 있어?'를 묻기 바빴다. 간단한 대답 뒤에서 게스트 하우스 로비에 앉아 서로의 하드를 털 기 시작했다. 여행길에서는 영화, 음악, 사진을 공유하는 일이 매우 익숙했다. 느려터진 외장하드를 끼고 몇시간씩 서로의 음악파일들을 나눠가졌다. 서로의 플레이리스트가 비 슷해지면서 저마다 노래에 담긴 사연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헤어지고 엄 청 들었다.' '이 노래는 말이야. 마추픽추에 올라가면서 들었는데-' 하며. 여행지에서의 이국적인 풍경은 익히 알던 노래들을 낯설게 만들어주었다. 새삼 알던 노래를 다시 들으 며 오랜만에 사람들과 음악 이야기를 했다. 우리에게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는 마추픽추 송이 되었다. 에피톤프로젝트의 선인장은 내게 우중충하게 구름이 뒤덮인 바릴로체의 강 가를 떠올리게 해준다.

다시 돌아온 한국은 스마트폰 천국이었고, 내가 듣는 음악은 점점 더 좁아졌다. 영화 드 라마ost처럼 노력하지 않아도 내 귀에 들어오는 음악들 말고는 새로운 음악을 듣는 일이 점점 더 사라져갔다. 전체듣기 한번이면 음악이 쏟아져 나왔다. 일일이 곡명, 가수명을 칠 일도 앨범명을 다시 정리해야할 필요도 없었다. 편리해진 만큼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추억이 담긴 노래. 좋아하던 노래들을 반복해서 들었다. 온종일 한 곡 재생만 하는 날도 많아졌다. 듣던 노래를 계속 듣는다. 살면서 그렇게 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어느 순간 노력을 멈 추게 되는 일. 해왔던 수준에서 만족하는 일. 딱히 슬프지 않다. 내가 듣는 음악들에 만 일상다반사

10 _

족하고, 그로 인해 곱씹을 수 있는 추억들이 많다. 어느날 '이 노래 들어봤냐' 묻는 친구 들이 나타날 거고, 그 때는 그 노래를 통해 그 사람을 추억할 준비를 하면 된다. 굳이 내 가 찾지 않아도 선물처럼 음악들이 나를 찾아올 것을 안다. 그러다 또 어떤 날에는 카페 에서 글을 쓰다 처음 듣는 음악을 좋다고 여기는 날이 오겠지. 그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노래 들어볼래?' 하고 물어보면 될 일이다. 세상 열정을 쏟던 일이 스스로의 평정심에 더 이상 영향을 끼치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 다. 그 때에는 자연스럽게 잠시 멈춰서도 될 것 같다. 새 음악을 찾아듣지 않는다며 나를 다그치지 않는 것처럼.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그런 시간들도 필요하다.


오늘도 듣던 노래를 계속 듣는다. 롤러코스터의 일상다반사는 언제 들어도 좋다.

11 _ 일상다반사

블블 | 떠들고 쓰는 일을 합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습니다. 대본 창작 중. 팟캐스트 <서늘한마음썰> 진행 중. brunch.co.kr/@miyath | @la_leche


하루 한 장

12 _


13 _

하루 한 장


하루 한 장

14 _


15 _

하루 한 장


16 _


17 _


18 _


19 _

박정은 | 기억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에 닿아 울림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ddurudduru@naver.com | pje.kr | @pjekr


나는 개와 살고 있다. 우리 부부의 동생이자 ‘포카’라고 불리는 우리 개는 2년 전 늦은 가을, 우리에게 왔다. 임시 보호 봉사를 하고 싶어서 가입한 유기견 카페에서 임시 보호처에서 맡지 못할 아이가 생겼단 소식을 듣고 급히 신청해 인연이 되었다. 만남을 약속한 날에 봉사자분은 작은 포대기에 돌돌 말은 강아지를 신랑 품에 안겨주고 바쁜 걸 음으로 돌아갔다. 신랑은 그때의 감촉과 무게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주는 대로 받아먹고 쑥쑥 자라는 강아지를 보면서 ‘힘차게 자란다’는 말의 뜻을 눈으로 보고 알 게 되었다. 누군가의 가족이 될 아이를 임시보호자로 데려온 거였고, 우리 부부를 향한 봉사자 분들의 ‘믿는다’라는 마음이 더해져 마음을 다해 돌봤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선물처 럼 찾아온 포카를 보내지 못해 입양했다. 포카는 가족이 된 후로도 크고 작은 기쁨을 매일 주었 다. 돌봄을 준비하면서 나는 비용을 지불하고 산 것들을 마련해줬지만, 포카는 매일매일 돈으로

독일어 시간

20 _

살 수 없는 것들을 한가득 안겨 주었다. 나는 포카 이전에도 여러 마리의 개를 기른적이 있다. 아빠가 데려온 개들을 당시 학생이었고, 직장인이었던 내가 책임을 지기에는 버거워 온 마음을 쏟아 기르지는 못했다. 같이 여행도 가 고, 바다도 보여주고 싶었고, 수영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는데... 어쩌면 그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을 포카에게 해주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내가 포카만큼 좋아했던 총채, 다랑이, 똘 이, 곰돌이, 세리, 이랑이, 아지에게서 받았던 과분한 사랑을 나는 다시 포카에게 전하고 있다. 내 인생, 우리 인생의 마지막 강아지. 포카가 우리 가족 곁에 오래오래 함께 있어주었으면 좋겠 다.


부엌은 엄마의 공간이었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땐 주방에서 엄마의 심부름과 일손 을 도우면 되었다. 언니와 나는 파와 콩나물을 다듬고, 꼬막 껍질을 까면서 엄마의 힘든 감정을 들어주었다. 언니와 나는 언제나 뭐든 잘 먹는 아이로 컸다. 먹고 싶은 것을 해달라고 조르기도 했지만 대부분 적당히 엄마가 잘하고, 좋아하는 메뉴를 고르는 편이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나 와 입맛이 같다면서 즐거워했다. 언니는 요리를 좋아했지만 나는 취미도 없었고, 부엌이라는 공 간 안에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부엌을 가진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 이 없었다. 결혼 전, 명절에 시댁에 인사를 갔을 때도 시어머님과 첫인사를 부엌에서 나누었다. 여자들은 모두 부엌에 있었고, 남자들은모두 거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작은 아 버님들은 ‘며느리 보셔서 좋겠어요. 이제 사람 하나 더 생겼으니 (제사 때) 형수님 편하시겠네.’ 따위의 말을 했다. 결혼 후에도 안부 인사를 묻고, 근황을 이야기하는 것 모두 부엌에서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하는 동안 이루어졌다. 어머님의 손을 거들면서 일하는 동안, 신랑은 어머님 등 쌀에 거실에서 할머님, 아주버님과 담소를 나누었다. 명절마다 나 혼자 시댁에서 고생하지 않도 록, 결혼 전부터 미리 주방에서 일손 도와 주방 출입이 어색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는 신랑의

내 마음대로 써도 되는 부엌이 생겼다는 기쁨을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 부부만의 부엌이 생김 으로써 먹고 싶은 것을 같이 생각하고 장을 보고 요리할 때, 우리가 공평히, 마음대로 쓸 수 있 는 부엌이 생겼다는 사실에 내심 기뻤다. 이제는 나의 부엌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 금은 알 것 같다.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나누는 곳. 과정의 힘듦을 서로 나누기 위해 노력하는 것. 나에게 있어서 부엌은 서로를 돕는 마음을 느끼는 공간이다. 나의 부엌, 우리의 부엌은 우리 의 부모님의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쓰이길 바라본다. 윤나리 | 프로산책러. 반려견 포카 @poca_girl 와 산책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독일어 시간

말은 고마우면서도 웃기고 또 슬펐다.

21 _


걱정이 많아서 계속 꼬리에 꼬리 를 물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 이 이어진다. 그럴 때 STOP 카 드를 보면 걱정을 멈추는데 도움 이 된다고 해서 급하게 하나 만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 때면 카드를 꺼내서 봤다. 단순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의 리듬을 끊는 데에 생각보다 꽤 큰 도움 이 되었다. 과거의 후회나 미래 의 걱정보다 현재의 삶에 집중하 고 싶다. 잊어버리는 것도 기억 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_박정은

올 한 해 동안, 계절별로 물건을 덜어내고, 정리하면서 느낀 건 데.. 더 이상 가지고 싶은 게 없 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필요 한 것은 충분히 가지고 있고 그 래서인지 안정적인 느낌. 이런 츄잉 새소식

22 _

기분이 행복한 기분을 주기도 하 는 구나하고 새롭게 깨닫기도. _윤나리


가을을 만끽하다가 훅 하고 추워 졌다. 패딩을 꺼내입으며 겨울의 추위를 두려워하는 내가 간사하 게 느껴졌다. 가을이 오면 겨울 이 온다. 그 사실까지도 만끽하 길. 가을이 데려올 겨울도 편집 없이 사랑하는 내가 되길! _블블

자전거를 배우니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유난히 죽음에 대 해 많이 생각한 한 달, 사랑과 따 뜻함을 제 때 그 시간에 나눠야 하는 이유도 생각하는 계절. 잠 시 정지상태였던 나의 시간도 잠

23 _

잠히 흐르는 중. _이지나

이 달의 츄잉


월간츄잉 #41 2017년 11월호 츄잉룸 chewing.kr | chewingroom@gmail.com | @chewingroom 디자인 윤나리 @nariplanet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