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한국문학 8. 시나리오

Page 1

웰컴 투 동막골


웰컴 투 동막골

시나리오 장진 ․ 박광현 ․ 김중 제작 필름있수다 감독 박광현 제작년도 2005년

나오는 사람들 동치성 장영희 서택기 표현철 문상상 이연



S#1. 프롤로그

F.I 화면 밝아지면 50년대 산골 사람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담 은 낡고 거친 흑백 영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영상과 함께 신비로운 음성의 아리아가(슬프도록 아름다 운...) 서서히 화면을 가득 메운다. 뛰고 뒹구는 아이들... 껄껄 웃는 노인네들... 한쪽에는 덩 실덩실 춤추고 있는 여자 아이가 보이고... 그런 모습들 위로 제작사... 메인 스태프의 자막들 생겨난다.

S#2. 동막골 초원 D / EXT

신비로운 아리아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입을 반쯤 벌린 채 배시시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연(20세)의 얼굴로 디졸브된다. 머리에는 예쁜 들꽃도 한 송이 꽂혀 있다. 카메라 점점 위로 빠지면 이연이 서 있던 곳이 물결치는 풀밭 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주변을 한가로이 노니는 나비떼... 이연, 뭔가를 봤는지 씨익 웃으며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드는 순간! 이연을 덮치는 커다란 그림자. 갑자기... 굉음을 내며 총알같은 속도로 날아와 이연의 머리 3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P-47D 전투기. 11


S#2a. 전투기 안 D / EXT

겁에 질린 조종사... 요동치는 계기판... 지상으로 곤두박 질치는 전투기 내부 시점. 일순간... 사운드 사라지고 조종 사의 시야에 날아가는 나비 한 마리가 보인다.

위태롭게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다 초원에 처박히는 P-47D 전투기. 수풀과 바위 등을 휩쓸며 돌진하다 프로펠러가 떨 어져 나와 화면을 덮친다. 측면으로 돌진하던 전투기는 거 대한 흙먼지를 일으키고서야 멈춰선다. 흙먼지로 화면이 어 두워지고 어지럽던 소음도 잔잔해진다. ... 간헐적으로 들 리는 무전음...

Do you copy Sparrow A1? Are you under fire? What are your coordinates? Sparrow A1 Are you there? (영어)... ...응답하라 스페로우 에이 원... 적으로부터 공격 받았는가...?? 현 좌표를 말해라 ...살아 있는가...? 여기에 서서히 생겨나는 타이틀... 웰컴 투 동막골

S#3. 강원도 산간 골짜기 D / EXT

험준한 산자락의 골짜기... 멀리서부터 서서히 드러나는 모 습들... 지친 발걸음으로 계곡을 따라 이동하는 인민군 부 대원 10여 명. 절반 이상이 부상자라 이동 속도가 늦다... 12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부관,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을 하고는 군관 앞으로 다가온다.

부관

(잔인한 어투) 상위 동지... 상급의 명령대로 하지 않는 이유가 뭡네까?

부대원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군관... 검게 그을린 얼굴 왼쪽에 칼자국이 나 있는 차가운 느낌의 사내... 군관 동치성(30대 중반)이다. 겁에 질린 부상자들과 부관을 번갈아본다. 망설이다 힘겹게 권총을 꺼내든다.

치성

처리하고 갈 테니 부상자나 내려놓고 가라우...

부상자들 “살려주시라요” “제발 살려주시라요... 중대장

동지...” 부관

뭐 때문에 주저합니까? 이건 당의 명령입니다!!

어린 부상자 (젖은 눈으로) 상위 동지... 데려가 주십시오... 부관

(날카롭게 치성을 노려보며) 상위 동지....!

다그치는 부관 때문에 갑자기 욱하는 것이 치미는 동치성.

치성

(부관의 뒷덜미를 잡고는) 뉘시깔 내리 깔라우...! 13


쌍판대기에 맞구멍 나기 전에.

치성의 기에 눌린 부관... 차갑던 시선을 거둔다.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의식한 늙은 하사 장영희(40대 후반) 부상당한 팔의 붕대를 옷 속으로 슬며시 감춘다. 그 뒤에 서 있는 꼬질꼬질한 행색의 소년병 서택기(18세)... 독 오른 눈빛으로 망설이는 치성을 보고 있다.

먼 곳에서 이런 혼란스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 그곳으로 겨눠지는 총구... 매복한 국군이다. 타앙-! 하는 금속성 소리와 함께... 목덜미가 뚫리며 쓰러지 는 부관. 곧바로 쏟아져 들어오는 총탄... 불을 뿜는 총구들. “엎드려!!” 사방으로 흩어지며 어딘지 분간도 못한 채 총을 갈겨대는 인민군. 그러다 자신의 편을 맞추기도 하고... 비 오듯 날아 드는 총탄에 처참히 쓰러지는 인민군들. 두려움에 울부짖는 버려진 부상병... 고개를 처박고 벌벌 떠 는 장영희.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지르며 따발총을 마구 갈겨대는 서택기... 택기를 향해 날아오는 수류탄... 몸을 날려 택기를 끌어안고 뒹구는 동치성. 벗겨지는 군모...

치성

(당황해서) 뒤루 빠지라!! 후퇴하라!!! 14


거세게 포위망을 좁혀 들어오는 국군... 뒤도 안 보고 도망 치는 영희... 칡 줄에 묶인 총이 몸에 매달려 끌려간다. 몇 명 살아남은 인민군들이 흩어져 뛰기 시작하고 뒤쫓는 국군. 바닥에 떨어진 동치성의 모자가 밟히며 나뒹군다.

S#4. 산 너머 갈대숲 D / EXT

거친 숨소리와 함께 갈대숲을 빠르게 달리는 누군가의 발... 기다란 갈대숲을 헤치며 뛰고 있다. 갈대 사이사이로 언뜻, 팔에 십자가 완장이 선명하게 보이고... 겁에 질린 표정의 국군 위생병 문상상(20대 초반)이다. 뭔가에 걸렸는지 비명을 지르며 엉망으로 구른다. 그 소리에 놀라는 누군가의 눈동자(클로즈업).. 분열적으로 사방을 살피다 방아쇠에 걸고 있던 손가락의 힘이 빠진다. 카메라 위로 스윽 올라가면 턱에 괴고 있던 총구를 거둔다. 군복 깃에 소위 계급장이 보인다.

S#5. 숲 속 D / EXT

깊은 산중에 들어서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지듯 그 자 리에 주저앉는 문상상. 철모를 벗어 내던지듯 바닥에 놓고 이마의 땀을 훔치며 위 생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 건빵이다... 지금껏 긴장했던 표정이 풀리고 입안 가득 건빵

15


을 넣고 우드득 씹는다. ‘철컥’뒤에서 소총이 장전되는 소리 헉!! 놀라며 먹던 행동을 멈추는 상상... 힘겹게 뒤를 돌아보 면... 살기 띤 눈으로 총을 겨누고 있는 국군 소위 표현철 (20대 중반)

상상

(덜컥 겁먹고는) 사... 살려주세요... 제가 도망친 게 아니거든요... 막 부대로 가다가... 그만... 길을... 길을 못 찾아가지구... 맞아요... 길을 잃어버린 거 지... 타...탈영이 아니거든 요... 제발 살려주세요... 진짜... 꼭 다시 돌아갈려구 했거든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애처롭게 울부짖는 상상을 이글 거리는 눈으로 노려보던 현철... 겨눴던 총을 거두고는 얼빠진 사람처럼 그냥 지나간다. 동 공이 풀린 현철의 눈을 본 상상...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고는 저만치 가는 현철을 빤히 본다.

S#6. 깊은 산속 절벽길 D / E

겨우 살아남은 인민군 넷... 험한 산속으로 도망 중이다. 모자를 쓰지 않은 군관 동치성... 치욕스런 그의 표정. 계속해서 뒤로 쳐지는 늙은 하사 장영희... 그런 그를 못마

16


땅하게 꼬나보는 서택기.

영희

(지친) 아이고 이케 험한 산길루만 언제 폐양까지 갑 네까...?

치성

직살하디 않갔으문 잔말 말구 걸우라!

아차... 하는 순간, 발을 헛디디며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지 는 병사1. 새파랗게 질리는 영희와 택기... 치성을 본다. 고통스런 표정의 치성... 험준한 산을 질린 표정으로 둘러 본다. 막막한 절벽들...

S#7. 숲 속 -뱀바위 D / EXT

안개가 깔리고 수풀이 우거진 곳... 널찍한 바위와 조그맣게 흐르는 냇물... 하늘을 다 가릴 정도의 나무들... 낡고 해진 군화발이 화면으로 들어선다. 바짝 긴장한 표정 의 인민군들... 이 아늑한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알 수 없는 현기증을 느낀다. 여기에 신비로운 음악 한 덩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턱턱 치며 주위를 휙 둘러보는 동치성... 긴장을 풀고 바위 옆에 풀썩 주저앉는다. 영희와 택기도 주변을 살피며 짐을 풀고 한숨을 돌린다. 자신의 흐트러진 외모를 매만져 추스르는 치성... 주름진 옷들의 각을 침을 묻혀 잡고 옷에 먼지를 털어낸다.

17


영희

여계가 되체 어데외까...? 이거라구야 원... 밑도 끝 도 없이 들어와개지구...

치성

이 산만 넘으면 개활지가 보이지 않갔네... 곧 폐양 에 들어갈 테니 걱정 말라우.

영희

락동강까지 왁 밀구 내려갔던 우리가 꼴이... 이 게... (한숨)... 휴... 혹시... 그 이상한 소문 못 디덨 시요...? 영천까지 도로 밀려나갔을 때 들은 건데... 허리 끊어뎠다구 다들 쑥덕대고 난리던데... 보급이 니 지원병력 다 끊딘 거 보문 어디 알간?

택기

(버럭) 다 헛소리요! 쪼굼만 참으문 지원군이 내려와 락동강 건너문 인민의 세상이 될 테니 두고 보시요!

영희

쳇 그렜으문야 오죽 좋간... (탄창을 확인한다) 총알 도 다 떨어져가고... 수류탄 몇 개로 어케 버티네!

택기

열 발 넘어가면 수류탄 까고 열 발 안에 있으믄 육박 전 하문 되지 왜 자꾸 우는 소리 하오?

영희

아새끼래... 딱 열 발에 걸쳐 있으믄 어카간!!!?

택기

(한심하다는 듯) 한 발을 뒤로 가든지 한 발을 앞으 로 가문 되지 거 소문이 어쩌고 저쩌구 하는 소리 좀 그만 하시오!

영희

아새끼가 하사 동지한테 말뽄새래 어디서 해먹던 뽄 때가?

택기

나 참... 낫살 먹었다구 달아준 줄 때문에 힘주오!

18


영희

요놈새끼래... 뭐이가 어디레너...?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권총 탄창을 확인하는 치성... 시끄러운 두 사람을 스윽 돌아본다.

치성

(단호하게) 내 말 잘 들으라우! 어떤 일이 있어도 마 지막 한 발은 무조건 남겨야 한다.

영희, 택기 ...?? 치성

전쟁터에서 가장 불행한 게 뭔지 아네? 손발 묶이는 거이디. 오랏줄에 사지 묶여 질질 끌려가는 거이 가 장 몹쓸 꼴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이마에 총 대고) 땡기라우...!

택기

상위동지... 약해지지 마시오!

치성

약한 거이 아니야... 현명한 거디.

두려움에 서로를 보는 영희와 택기... 택기...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손수건 크기의 낡은 인공기를 꺼내 물끄러미 본다.

치성

해 지면 이동할 테니 잠시 눈 좀 붙이라우... (자리를 살피고 조심스레 눕는다)

19


바람이 그들을 스쳐 지나간다. 서로 숨기려 하지만 패잔병 의 불안함이 보인다.

S#8. 근처 어느 산속 D / EXT

숲 속 누군가의 시선에... 마르고 눈이 처진 부락민 달수가 흥얼거리며 약초를 뜯어 망태기에 담고 있는 게 보인다. 문득, 인기척을 느낀 달수... 약초 하나를 슬쩍 떨어뜨리고 는... 집는 척하며 막대기를 집어 들고 몸을 휙 돌리는데... 순간, 뺨에 겨눠지는 총구. (보통의 경우 이 상황에서는 우 뚝 멈추거나 손을 드는데... 총을 잘 모르는 부락민... 머리 에 힘을 주고 고개를 돌려 누군지 확인한다) 초췌해진 몰골의 상상이 겁먹은 표정으로 총을 겨누고 있고 그 뒤에는 동공이 풀린 현철이 우두커니 서 있다.

S#9. 절벽길 D / EXT

밟고 지나간 자리에서 떨어진 돌멩이가 절벽 밑으로 끝없이 떨어진다. 수십 길 낭떠러지의 위태로운 절벽을 이동하는 세 사람... 달수, 현철, 상상. 몸에 익은 솜씨로 절벽 길을 이 동하는 달수...

달수

뭔 사람이 아는 체를 그리 해요? 낯짝에 짝대기는 들

20


이대고... 상상

(절벽 밑을 보며) 지.. 진짜 여기로 가면 부락 같은 게 있긴 한 거예요?

달수

그럼 없는 데로 데꾸가요?

상상

(혼잣말) 부대에 있을 때도 유격훈련 한번 안 받았는 데... 니미... 길이 왜 이래요?

달수

여보다 쉬운 길이 있긴 있는데, 걸루 갈래요? 내일이믄 들어가는데...

상상

계속... 가시죠.

달수

저 양반은 어디 아파요? 말도 없고...

상상

그... 그러게요.

달수

우터하다 여꺼정 들어왔어요?

상상

작전 중에 길을 잃었거든요... 워낙 막중한 임무여 놔서... 헤헤... 어쨌거나 하루만 있다 갈께요... 전 혀 피해주지 않고...

달수

싹다 좋아할 기래요. 잘 데 엄쓰믄 우리 집도 있는데 요 뭐.

상상

감사합니다. (인사하다 절벽에 머리 부딪히고는... 딴소리) 진짜 길 험하다.

달수

편한 길로 갈래요? ... 내일이믄 들어가는데... ?

상상

... ... 아뇨.

달수

근데... 작전 중에가 뭐래요?

21


현철, 상상 ... ...??

S#10. 다시 인민군들이 있는 뱀바위 D / EXT

울창한 숲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어느덧 골아 떨어 져 있는 인민군을 비추고 있다. 간혹 부는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이때... 그들 앞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누군가... 눈을 번쩍 뜬 인민군들 서로 쳐다보다가... 후다닥 총을 집 어 든다.

치성

뭐이가... 지나간 거이...??

택기

사... 사람 같은데요.

영희

(잠이 덜 깬..) 와둘 그러네?

하는데... 지나갔던 발소리 다시 커진다. 바짝 긴장한 채 총 을 치켜드는 인민군. 그 앞에 헐떡이며 멈춰 서는 이연. 정적... 대뜸 내뱉는 이연의 첫마디.

이연

뱀이 나와...

셋 멀뚱...

22


이연

뱀이 나온다고... 여가 뱀바우자나.

치성

이 간나는 뭐이가?

영희

좀 전에 이짝으루 확 하니 지나간 거이 님자래?

이연

(헤 웃으며) 내 좀 빨라... 난 참 이상해... 숨도 안 맥 히고... 이래 이래 팔을 빨리 휘저으믄 ... 다리도 빨 라지미... 다리가 빨라지믄 팔은 더 빨라지미... 땅 이 뒤로 막 지나가미... 난 참 빨라... 우터 이닷한지...

이연의 횡설수설에 당혹스런 인민군들...

치성

이거라구야 썅!! 그게 무슨 소리가!!! 손이 그러는데... 다리가 왜... 빨라지고... 땅이... ... 뭬라니 이거이...!!

영희

(이연의 머리를 가리키며) ... 상위동지... ... 꽃 꼬 밨습네다.

실실 웃는 이연을 보고 뭔가 느낀 게 있겠지...

이연

(여전히 실실 웃으며) 여 누워 있지 마라... 뱀이 거 깨물믄 마이 아파. 우터 그래 아픈지...

하고는 인사를 꾸뻑하고 그냥 간다. 그래도 좀 무서워해줘

23


야 되는 건데... 당혹스런 인민군...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오델가!!”

이연

(가다 말고) 아직도 거 있나? 일루 나와.

기가 차는 인민군... 이때, 스스스 하는 불길한 소리. 순간 불안하게 주변을 한번 둘러본다. 바위 밑을 다시 한번 유심히 보지만 아무런 기척도 없다. 안 심하는 인민군. 이때, 머리 위에서 나무를 타고 내려온 뱀이 인민군들 얼굴 앞에 떡 나타난다. 소스라치게 놀란 인민군... 일제히 총을 쏘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갈겨대다 철컥철컥 빈총이 되서야 멈춰 선다. 서로 마주보고는 허해지는 셋. 특히 치성이 뻘쭘하다.

이연

(약간 늦다) 이기 먼 소리나? 희한하네...

기가 차서 그냥 보고만 있는 인민군... 그때,

이연

(뭔가 발견하고) 어!!

화들짝 놀라 양쪽으로 비켜서는 인민군. 그 사이를 비집고

24


들어가는 이연.

이연

패래이 꽃이다.... (머리에 꽂으며) 이쁘나?

치성

(피가 거꾸로 솟는다. 수류탄을 빼들며) 썅! 간나 이 거이 확 까서 뒤집어 노카서!!

택기

(치성을 말리며 이연에게 소리친다) 제발 가마이 좀 있소!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치성... 적응도 안 되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휙 가버리는 이연... 뒤통수 맞은 듯 멍하게 서 있는 인민군.... 서로 자신의 총을 보다 약간 울상이 된다.

치성

(정신 차리고) 뭐이가... 이자?

택기

이런 산중에도 마을이 있나 봅니다.

영희

기카문... 거 왜 괴뢰군 아새끼들도 있다는 거 아니 네...?

치성

(신중하게) 여기 군대 없다. 총을 들이밀고 우악을 질러도 눈 하나 깜빡 안 하는 거이... (총을 가리키 며) 이딴 걸 처음 본 거야. 군대 절대 없다. 부락으로 가자... 가서 배도 좀 채우고... 양식도 구하고... 또 상황도 좀 알고 움직이자우.

25


영희

저... 상위동지... 기리니까니... 뱀 나올지두 모르니 깐 여길 뜬 다음에...

그토록 근엄하던 치성, 뱀바위를 물끄러미 보다가 자연스럽 게 일어나 저만치 걸어간다. 영희도 군장을 주섬주섬 챙기고는 뒤따른다.

택기

(우두커니 보다) 어디... 가오?

영희

아 여기... 뱀 나온단 말 못 딛언...

택기

예??!! 아.. 우리 인민군대 아입니까?

영희

야 인민군대라고 물리면 안 죽네... 총알도 없는 데... 뱀 나왔다고 수류탄 까부실랜? 상위동지도 가 닿네.

치성

(옷의 주름을 쫙 펴며 근엄하게) ... ... 뱀 미수워 가 는 거이 아이야!!

인민군 셋... 저만치 걸어가면서...

영희

그나저나 상위동지... 이제 남은 거라곤 수류탄밖엔 없는데... 만약시요 포로가 될 상황이면... 고땐 요 놈을 까야 갔디요?

치성

(대답이 없이 앞만 보고 걷는다) ... ... 26


영희

뭐... 한 명만 까도 되갔구만요.

S#11. 허수아비 길 D / EXT

언덕 공제선을 넘어가는 시점...

상상

(소리) 근데요 매번 저런 길로 어떻게 다니세요?

달수

(소리) 여간해선 배껕에 잘 안 나가요. 아픈 양반이 있어서... 요 약초르- 캐러...

이마의 땀을 훔치며 모습을 드러낸 세 사람. 현철과 상상... 자신들 앞에 나타난 뭔가를 보고 눈이 휘둥 그레진다. 그들의 시선으로 길 양옆 갈대밭에 수백 개의 허수아비들이 나란히 세워져 장관을 이룬다.

상상

이야... 뭔 허수아비를 논밭도 아니고 길바닥에다 이렇게나 많이 세워놨데요? 새떼가 무지 극성인가 보네. (허수아비를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어라? 요 것들 디게 웃긴다... 무슨 허수아비가 죄 봇짐을 지 고 있냐...

달수

여가 우리 조상님들 길 떠난 자리래요.

상상

길을 떠나요... ???... 27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 현철... 바람에 흔들리는 허수아 비... 기괴한 느낌을 준다. 달수의 시선에 넘어진 허수아비가 보인다.

달수

이런... 쯧쯧쯔... (허수아비를 세우며) 이래이... 바람이 쉬 몰래 댕기 믄서 마커 자빠뜨리고... 이래 정신이 없네... 여다 산짐승들도 먹을기 음쓰니 요 허수아비 밑뚱을 다 파 묵고 지랄이잔쏘.

상상

(불안한) 산짐승들이... 나다녀요?

달수

아유... 이건 유도 아니래요... 멧돼지라도 나와봐 요... (그러다 굳은 표정의 현철을 보고는) 근데 저 양반은 먼 부애가 저래 났어요?

상상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앞장서 가는 달수의 눈치를 살피다 봇짐 속을 열어보는 상 상... 굵직한 통옥수수가 들어 있다. 슬쩍 꺼내려는데 달수 가 돌아보면 얼른 손을 떼고 실없이 헤헤거린다.

달수

기르- 떠나실 때 잡술 양식이래요.

상상

에이... 허수아비가 어딜 떠난다고...? (뭔가 떠올랐 다) ... 혹시... 공동묘지...? 28


후다닥 허수아비에서 손을 떼는 상상... 찝찝한 듯 손을 흔 들어 턴다. 아랑곳하지 않고 허수아비 행렬의 끝부분에 병풍처럼 우거 진 나무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달수. 서로 마주보며 불안해하는 현철과 상상.... 조심스럽게 그 속으로 따라들어 간다.

S#12. 처음으로 공개되는 동막골 전경 D / EXT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는 카메라 서서히 드러나는 동막골 전 경. 입이 떡 벌어지는 현철과 상상... 나무들 사이로 아담하게 지어진 집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고, 광장 중앙에는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다. 떠들썩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부락민들과 뛰어다니며 깔 깔거리던 아이들... 현철과 상상을 보고 모두 멈춰 선다.

상상

오...!! 이런 험한 산속에 진짜 부락이 있네.

달수

(씨익 웃으며) 여가 우리 부락 동막골이래요.

상상

동.. 막.. 골 이요?

달수

아-들처럼 막 살라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는데... 그 내막은 잘 몰라요... 그냥 옛날부터...

상상

막- 살아요...? 와... 집두 희한하게 생겼네... (정자 나무 보고) 오... 저건 백 살도 넘었겠다.

29


눈이 휘둥그레져 걷는 현철과 상상에게 모여드는 부락민들, 처음 본 총이 신기한지 손을 대보는 꼬마들... 신경 쓰이는 현철.

관재

달수... 이 양반들 누구나?

달수

(씩 웃어 보이며) 자구 갈기야.

달수 처 (저만치서 환한 얼굴로) 댕기왔어요? 달수

(자랑하듯) 임자, 내가 데리구 온 손님이자나.

연신 수군거리며 뒤 따르는 부락민들... 이때 눈치 빠른 부 락민 한 명이 어디론가 뛰어간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현 철...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의 총으로 손이 간다.

상상

(현철에게 넌지시) 여기... 괴뢰군 소굴은 아니겠죠?

현철

... ...!!!

S#13. 촌장집 마당 D / EXT

진지한 표정으로 어딘가에 집중하고 있는 부락민... 이 부락민답지 않게 동그란 안경을 쓰고. 머리도 단정하 고... 꽤 지식인처럼 보이는 김 선생이 낡은 영어 교과서 같 은 걸 들고 평상에 눕혀져 있는 미국인 조종사 앞에 서 있다. 부상을 입어 꼼짝할 수 없는 조종사 옆에는 부락 꼬맹이들

30


이 죽 앉아서 신기한 듯 보고 있다. (꽤나 겁먹은 표정... 그의 시선으로 보면 부락민이 무섭게 보일 수도 있겠다)

마님

신기하네.. 그러니 저 책만 있으믄 말으 한다 이기 아이나.

용봉 처 김 선상님이야 머 배운 기 많으니... 김 선생 (더듬거리며) 하우... 아... 유? 조종사 What? Do I look OK to you? Are you kidding me?

(영어) 뭐...? 지금 내 꼴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와? 지금 나하고 농담하는 거야?

김 선생, 조종사의 긴 답변에 좀 당황하기도 하고... 모두의 시선도 의식되고... 그 옆에선 꼬맹이들은 조종사를 꼬챙이로 쿡쿡 찌르며 장난 치고 있고...

촌장

(슬쩍 다가가) ... 뭐이 잘 안 돼..?

김 선생 조금 이상한 게... 여기도 나와 있듯이 (책을 보여

주면...) 촌장

난 봐도 잘 모르지 머...

김 선생 아...예 아무튼... 제가 “하우... 아... 유”하면 곧장

31


“파인... 앤드.. 유”해야 이게 옳은 미국인들의 대 답이고 그렇게 나와야 또 제가... “아... 임... 파인” 이래야 완성된 하나의 에... 뭔가가 되는데... 쟤는 아무래도....? 응식

(끼어들며) 이 양반이 왜 하라는 대로 안 하고... (김 선생에게) 이거 시비 거는 거 아니래요?

김 선생 ... 조.. 조금 더 해보지요... 내가 소련 말은 좀 되

는데...

김 선생, 다시 책을 뒤적인다. 답답한 조종사... 다시 입을 연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 그러다 자기를 괴롭히는 꼬맹이들에게 버럭 소리도 지 르고 또다시 말을 이어가고... 점점 긴장이 되서 땀이 나기 시작하는 김 선생... 멀찍이 서 있는 뒤쪽 사람들... 궁금하다.

마님

머이 어터 돌아가는 거나?

석용

(아는 체) 내 딱 보니깐요...“뭘 좀... 먹었냐?”한 거 같애... 김 선상님이... 그러면 우째건 식전이요... 라든가 방금했지요... 라든가 뜨다 말았지요... 뭐 이렇게라도 해야 되는 것인데... 저 코쟁이 하는 걸 보이...“내가 감자를 먹든 감자를 캐든 니들이 뭔 상

32


관이냐... 사람 나고 감자 났지.. 감자 나고 사람 났 냐” 뭐.. 이렇게... (사람들이 본다) 말하자면 이런다 이거지... 가슴에 이래 담아놓지 마라요.... 석용 처 아니... 세 사람 분이나 다 처묵고... 와 저런 소릴

한대요?

할 말을 잃은 석용... 이러고 있는 와중에... 마당으로 뛰어 들어오는 부락민...“촌장님!! 달수 행님이 사 람을 데꾸와요!!” “산 아래 사람이래요...” “어이구 야... 먼 손님이 막 들어오네...” 모두들 웅성거리며 촌장과 함께 밖으로 나간다. 달랑 조종사와 단 둘이 남은 김 선생... 시선이 마주치면... 마른침 한번 삼키고... 그냥 책을 다시 본다... 그냥.. 그러다가는 (소련 말)“안녕계쇼...” 하고는 스윽 일어나 반 대편 쪽으로 눈치를 보며 걸어 나간다.

S#14. 마을 정자나무 D / EXT

현철과 상상 주변을 신기한 듯 빙 둘러서는 부락민들.... 두 사람은 불안한 표정으로 부락민들을 살핀다. 옷매무새를 만지며 다가오는 촌장.

달수

(큰소리로 우쭐대며) 기르- 잃었다지 뭐예요... 자고 33


갈기래요. 현철

(긴장한 듯 주변을 살피며) 죄송합니다. 하루만 머 물렀으면 합니다만...

상상

절대, 사고 안 치고.. 있는지도 모르게 있다 갈게요. 진짜예요.

부락 삼인방 (동시에) 어서와요. 촌장

귀한 걸음 했소.

달수

(현철과 상상에게) 우리 촌장님이래요.

두 사람 인사한다. 현철은 거수경례... 상상은 목례... 다시 거수경례로 바꾸고...

촌장

뭐르 좀 묵었어요?

S#15. 촌장집 마당 D / EXT

촌장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부락민과 국군 두 사람...

달수

몸은 좀 으때요? (약초를 보여주며) 이거르- 끄래 먹 고 퍼떡 인나이지...!

평상에 눕혀져 있는 미군 조종사에게 밝은 표정으로 말하는 달수... 그러나 현철과 상상은 깜짝 놀라 총을 겨눈다.

34


상상

연합군인데요...

겨우 긴장이 풀린 현철과 상상... 습관처럼 척 경례하는 현 철... 상상도 어정쩡하게 따라 한다. 아군을 보자 이제야 살았다는 표정으로 소리치는 조종사.

조종사 I knew it, I knew it. Thank you so much for

coming to get me guys. My name is CPT Smith O’brien of the US Navy. You guys can speak English Right? Thank God! Do you guys have any idea where I am? You guys can speak English Right? These people suck. They kept feeding me only potato men! You hear me? You guys can speak English Right? Right? (영어) 헤이!! 국군 맞지? 난 연합군 해군 소속 전투 기 조종사 스미스 오브라이언 대위야!! 영어 할 줄 알아? 여기가 어디야? 내가 여기 얼마 동안 있었던 거야... 영어 할 줄 알지? 여기 사람들은 미치광이 야. 주고장창 감자만 먹인다고. 내 말 들려? 영어 할 줄 알지? 그렇지?

끝없이 말을 쏟아내는 미군 조종사... 한 걸음 다가가 그의

35


말에 반응하는..가 싶던 현철... 순간 외면하고 촌장에게로 간다. 허해지는 미군 조종사...

현철

(스미스를 가리키며) ... 저... 사람...

촌장

한 사나흘 됐나... 하늘에서 떨어졌어요. 죽다가 살 아났지.

상상

하늘... 요?

현철

(눈치를 살피며) 혹시... 말입니다. 저희 말고 우리 군이 들어온 적 없었습니까?

촌장

... 군...?

상상

꼭 국군이 아니더라도 (눈치를 살피며) 인민군이라 도요...?

촌장과 부락민들 눈만 껌뻑거릴 뿐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달수

타지 사람들 여 쳐다도 안 봐요. 여 올라올라믄 숨만 차지 뭐.

S#16. 전투기가 추락한 초원. 석양이 지는... / EXT

추락한 정찰기 잔해를 뒤지고 있는 아이... 동구다.(9세) 이것저것 구경하며 물건들을 꺼내고 신기하게 만져본다. 저

36


만치서 이연이 중얼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헬멧을 스윽 써보고는 헤 웃던 동구... 다가오는 이연을 본다.

동구

으때... 멋지나?

이연

(헬멧을 쓰다듬으며) 수박 껍데기르- 뒤집어 쓴 거 같다.

동구

(한숨)... 미친년한테 물어본 기 잘못이지...

이연

동구 니가 말하는 미친년에 난도 끼나?

동구

이래이... 우리 마을에 미친년이 뭐 여럿 있나... 니... 머리에 꽃 꽂았제...?

이연

... 니 말고도 아는 사람 많나? ...

동구

응.

이연

김 선상님만 모르믄 대는데...

동구

김 선상님이 그리드라... 니 미쳤다고.

이연

... (실망해서 긴 한숨)

멀리서 동구와 이연을 훔쳐보는 시선... 이연과 동구 앞에 나타나는 군홧발. 놀라는 동구... 덩달아 쳐다보는 이연... 그들 앞에 선 동치 성 일행. 이연... 표정이 밝아지고...

37


S#17. 촌장집 마당 저녁 / EXT

옥수수를 앞에 놓고 어색한 표정으로 부락민을 둘러보는 현 철과 상상... 간혹 부락민과 눈이 마주치면 상상은 어정쩡한 웃음을 짓다 가 선뜻... 옥수수를 하나 집어 든다.

마님

오느라고 을메나 힘이 들었소? 모재리면 마르해요. 옥시끼야 머 천지삐까린 기 머.

상상

아.. 예.. 같이 좀 드시지... (하며 입에 물고 탈곡기 돌리듯 먹는다)

마님

우리야 머... 때가 되면 먹지 머.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듯 소곤거리는 부락민들... 그러나 경 계의 눈빛으로 보는 동구 모.

촌장

뭐를 그래 빤히 쳐다보나 회- 하이 가서 식솔들 좀 멕이야지.

아쉬운 얼굴들이지만 하나 둘 촌장집 곡간으로 가서 자연스 럽게 곡물을 바구니에 담아 나온다.

상상

(일러바치는 분위기) 촌장어른... 저기... 저 사람 38


들... 촌장

니꺼 내꺼가 따로 엄써요... 저다 싸아노코 같이 먹 고... 밭일도 같이 하미... 산이 지퍼서 살다보이 이 래 살지 머.

석용

남자는 감재 두 개 옥시끼 하나... 아-들은 감재 한 개... ... 배 마이 고프믄 두 개... 그래 묵어요.

몸집이 크고 사나운 인상의 응식, 곡간에서 나오며 현철과 상상을 못마땅하게 꼬나본다.

응식

을매 남지도 않은 양시그- 외지 사람들 다 퍼주고 ... 이래이...

상상 주변에 죽 모여 있는 꼬맹이들... 갑자기 장난끼가 발 동한 상상, 옆에 세워둔 소총을 꼬맹이들에게 척 겨누고는 “빵야.. 빵야... 야 쓰러져 죽어야지... 히히히...”뭔지 모르 는 꼬맹이들 헤헤 웃는다. 그 광경을 본 현철... 순간적으로 정신분열을 일으키고... 조용히 상상이 겨눈 총을 턱 잡고 부르르 떤다. 현철의 행동에 뭔가 이상하단 느낌을 받는 상상...

39


S#18. 숲 길 저녁 / EXT

이연과 동구를 앞장세우고 그 뒤를 인민군 셋이 주변을 두 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걷는다. 연신 생글거리는 이연... 길 위를 걷지 않고 풀밭 쪽으로 걷 는다. 인민군 고개를 살살 흔든다. 이연의 머리 위에는 나비 떼가 날고 있다. (관객에게만 보이 는 판타지)

이연

내 거 없는 동안 뱀이가 안 깨물드나?

인민군 셋 (말없이 걷기만 하고) ... ... 이연

안 깨물었나 보네... 멀쩡한 거르- 보니.

동구

아는 사람이나?

맨 앞에 걷던 이연의 얼굴이 갑자기 확 밝아진다.

이연

(아주 큰소리로) 김 선상님!!!

동그란 안경을 쓴 김 선생이 등잔불을 들고 영어책을 보며 어설픈 영어를 주절거리며 오고 있다. 인민군 셋 깜짝 놀라 숲으로 재빨리 숨는다. 반가운 표정으로 이연을 맞는 김 선생.

40


김 선생 어이구... 이게 누구야 이연 양... (진지하게) 오늘

도 꽃 많이 꽂았군요...!

생각났다... 얼른 꽃을 빼 뒤로 감추는 이연. 말하다 말고 사색이 되어 손을 번쩍 드는 김 선생... 카메라 빠지면 김 선생을 포위하고 있는 인민군.

S#19. 개울이 흐르는 부락어귀 저녁 / EXT

졸졸졸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개울가를 몇 명의 실루엣이 지나고 있다. 김 선생 손들고 동구와 이연은 자연스럽게 앞장서서 간다. 총을 겨눈 채 심각한 얼굴로 뒤따르는 인민군. 순간... 인민군... 걸음을 멈춘다. 개울가에서 놀던 아이들 이쪽을 보고 섰다.

S#19a. 들길 저녁 / EXT

손들고 제일 앞에선 김 선생... 그리고 아이들... 그 뒤에 인 민군. 아이들과 그 사이에 겅중 큰 이연이 노래를 부르며 걷 는다. 인민군들... 혼란스럽다.

택기

이 간나 새끼들... 시끄럽다... 입 다물어라...!!!

41


아이들 노래를 멈춘다.

동구

그리니 그... 크게 부르지 말라니... 저 형아가 부애 가 많이 났아.

석양이 지는 들길로 올망졸망 가는 풍경이 예쁘다. 작은 소리로 노래하는 아이들... “시끄럽다 돌대가리 새끼 들” “이것도 커요? 젤로 작게 부르는 건데...” “뭔 노래가 끝이 없네?” “김 선상님은 왜 소느- 들고 걸어요? 힘들게...”

S#20. 촌장집 부엌 N / INT

아낙들이 부엌에서 지짐이 등 요리를 하며 수다를 떨고 있다.

석용 처 으째 묵기를 이래 많이 묵어요...? 부락 한 끼를 뚝

딱 해치웠네... 마님

힘들었겄지... 여 들어오기가 어디 싶나.

용봉 처 우리 부락에 뭔 좋은 일 있을라나... 산 아래 사람

들이 마커 게 모이고. 동구 모 (못마땅한 듯) 그기 좋은 일인지 우터 아나?

42


S#21. 촌장집 마당 N / EXT

혼자 떨어져 앉아 있는 현철... 주변 소리에 민감해진다. (부엌에서 난 소리, 부락민들.. 상상 수다, 누렁이 하품 소 리, 모기 소리 등..)

달수

전쟁이요? 진짜 전쟁이 났다 말이래요?

촌장

아니... 어데서 쳐들어 온 거래요? 왜놈이나... 떼놈 이나...?

상상

그게... 딴 나라서 쳐들어온 게 아니구요... 가만 딴 나란가..? 설명하기 힘드네.... 그러니까 우리 국군 하고 이북의 괴뢰군들하고 싸우는 거죠.

부락민들 무슨 말인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데...

달수 처 (스미스 방을 가리키며) 그리믄 저짝 방에 코 이래

큰 저이는 누구 편이래요? 달수

아... 이짝 편이니 딱 보고 아는 척을 하지!

달수 처 그름... 2대 1이네요... 이 사람들 치사하네. 상상

그게요... 그렇게 보시면 안 되고요...

현철

(저만치 앉아 있다가 상상의 말을 자르며) 저희는 내 일 바로 떠나겠습니다.

촌장

뭐이 그리 급해요... 올 겨울 여서 나고 가시지....

43


상상

(눈치를 보며) 그... 그래요... 당분간 여기 있죠?

그때... 멀리부터 노래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다.

달수

아- 들이네...

달수 처 이래...? 왜 일루들 다 오나? 집에 안 가고? 촌장

(환해지는 얼굴로) 어...! 마치 맞게 김 선상이 오시 네...

두 손을 번쩍 들고 잔뜩 우거지상이 된 채 마당에 들어선 김 선생... 엉거주춤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다.

촌장

(현철을 소개하듯) 김 선상... 서로 인사들 하게... 배컽에서 손님이 오셨아.

김 선생 (울먹이며) 뒤에도 손님이 왔걸랑요...

김 선생이 몸을 돌리자 등잔불에 스윽 어둠이 거치면... 아 이들 사이에 겅중하게 선 인민군이 보인다. 잠시 멍하니 서로 보고만 있다가... 순간 눈이 휘둥그레져 잽싸게 총을 들어 겨누는 현철. 군화를 벗고 마루에 앉았던 상상은 양말바람으로 튀어 내려 와 다급하게 총을 든다.

44


인민군 역시, 생각지도 못한 국군을 발견하고 놀라서 총을 겨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핏발선 눈을 부릅뜨고 살벌 한 말들을 토해내며 서로를 위협하는 양측 군인들.

“총 내려놔!!!” “움직이지 말앗!!!” “다 죽여버린다!! 빨리 총 버려” “아가리 닥치고 엎디라!!!” “씨팔 총 버려!!!” “빨갱이 새끼들 온몸을 벌집을 만들 테다!” “이 쌍간나새끼들 항복 못 하간!!!”“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한다!!! 무기 버리고 손들어!!!” “이 백당놈의 새끼들 다 쏴버리고 말가서! 직살나지 않갔으 문 총 다 놓으라!!”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진 양측 군인들, 상대를 위협할 거친 말들을 계속 쏟아낸다. 양쪽에서 윽박지르다 보니 김 선생을 비롯한 부락민들은 마 당에 놓인 평상 위로 올라가게 되고... 서로 죽일 듯이 악악대는 외지인들을 내려다보며 당황스런 표정의 부락민들. 부락민을 방패삼아 적을 위협하는 양측 군인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총 버리고 손들어” “하.. 저 쫑간나새끼 지금 나 노려보는 건가!!! 니까루 꽉! 뽑 45


아 논다 썅!!” “개새끼 널 제일 먼저 쏴버리겠다!!! 특히 너 배 나온 놈 조심 해라 !!”

S#22. 조종사가 누워 있는 방 N / INT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밖이 궁금한 조종사, 부상당한 몸을 간신히 움직여 머리로 문을 밀어낸다. 겨우 열려진 틈으로 밖을 내다본다. “저건 또 뭐하는 짓들이 지...?” 평상 위에 부락민들이 죽 올라서 있는 이상한 행동을 보며 머리를 갸웃거리는 조종사.

S#23. 다시 촌장집 마당 N / EXT

부락민들 사이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적군의 모습들... 싸늘 한 기운이 흐르고...

영희

(겁에 질린 투로) 상위동지... 아니 군대 없대서 왔 는데... 결정하는 것마다 와 이럽네까?

치성

(이를 악문다) ... ...!!

택기

열 발 안짝에 있습니다... 우린 셋이고 저게는 둘입 니다... 확 까 치웁시다!!

치성

전사동무, 그냥 내 뒤에 있으라우...!

영희

아새끼래... 쫄랑거리며 일 맨들디 말구 가만 좀 있

46


수라우... 상상

숫적으로 우리가 밀리는데 어떡해요? 그러게... 그 냥 지나쳐 가자니까... 왜 여기까지 와가지구... 씨 바... 난 되는 게 없어... 니미...

현철

(무섭게 인민군을 노려보다 소리 지른다) 야-!!

인민군 셋... 침묵... 마을 사람들... 인민군과 국군을 번갈아 보다가...

달수

(인민군들에게) 안 들려요? 부르는 거 같은데...

달수 처 (현철에게) 우리한테 말해요 전해줄 테니... 치성

와?... 방아쇠에 손가락 집어넣었으면 땡겨야지... 다른 볼 일 있네?

영희

상위동지... 거 괜히 세게 나가디 마시라요... 우린 총알도 없는데...

현철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서 제대로 한번 붙자!!

상상

미쳤어요... 숫적으로 밀린다니까...

현철

죄 없는 부락 사람들 피해 주지 말고 일단 나가자...!

석용

우리 때문이면 괜찮아요...

촌장

(지긋이) 석용아...

치성... 자신의 빈총이 의식됐는지 고민하다 이를 악물고 수

47


류탄을 빼든다.

치성

내 말 잘 딛으라우...! 괴뢰군 아새끼나 부락 사람이 나 조금만 허튼짓 했단 그 즉시 직살하는 거야...! 지 금 한 말 허투루 딛디 말라!

영희와 택기도 눈치 챘다... 옆으로 총을 집어 던지고 모두 수류탄을 꺼내든다. 부락민들 치성의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지 그저 수군 거리고만 있다.

치성

뭐 이런 것들이... 야 말 같디 않네!! (버럭) 전체 손 버쩍 들라우!!

부락민들 서로 눈치를 보다 하나둘... 손 올린다... 왼손을 드는 사람... 오른쪽 손을 드는 사람... 현철의 소총 가늠자로 보이는 흥분한 치성의 얼굴... 옆으로 팬하면 손에 들린 수류탄이 보인다. 무슨 이유에선지 불안한 표정이 되는 현철...

이때, 밖에서 용봉이 뛰어 들어온다.

48


용봉

촌장님요!!

일제히 용봉을 향해 총과 수류탄을 겨누는 군인들. 무슨 상 황인지 몰라 잠시 멍하게 서 있는 용봉.

부락민 모두 거 섰지 말고 얼른 일루 올라와. 이 사람들 부

애가 마이 났아. 치성

올라 가라우.

택기

썅!! 빨리 게바라 올라가간!!

소리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평상 위로 올라서는 용봉.

촌장

용봉아 우터 이리 늦었나?

용봉

벌토으- 좀 보고 오느라고요... 아 그보다 짐 난리 났어요!

달수 처 용봉 아제... 소느- 들고 얘기하래요....

어색하게 손 하나 드는 용봉... “아... 예...”

용봉

그 뭐냐... 실천 위 감자밭 있잖아요... 새로 심군 데....그 밭 초입부터 멧돼지가 길을 내버렸어요!! 길 크기를 보이 그기 한두 마리가 아인 거 같애요.

49


부락민들, 그 말에 모두 놀라고...

마님

우터 거다 길을 냈데....

응식

재작년에도 옥시기 밭을 헤집고 돌아댕기미 싹 마호 나서 겨울 한 달을 굶었는데...

촌장

(아주 근심스럽게) 흥분하지들 말고 차근차근 얘기 르- 해보자고...

석용

감재나 캐믄 그리지... 우리 천식이 좋아하는 감재 인제 엄따.

아쉬워하는 꼬마 천식... 사람들 모두 한숨... 휴군인들은 안중에도 없고 모두들 멧돼지 문제로 걱정이 태산 이다.

치성

이보라우..! (수류탄 치켜들며) 이거이 안 보이네? 까딱하면 다 죽을 판에... 그깟 돼지길이 뭐이가 걱 정이가...!! (여전히 반응은 없고) 이놈 까문 이 마당 에 송장길 생게!!

버럭 겁을 줘도 심각하게 논의를 하는 건지... 수군수군... 시끄럽다.

50


영희

(혼란스러운) 기리니까니... 이 부락... 뭐이래 좀... 이상하디 않습네까...?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부상당한 상태의 스미스가 마루로 쏟아져 처박힌다. 깜짝 놀란 인민군들... 일제히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수류탄 을 치켜든다. 스미스 역시 화들짝 놀라 큰 눈만 껌뻑인다.

치성

썅, 저건 또 뭐이가...??

택기

야... 얭키 놈입니다. 저놈이 어째 이런 데 있습니까?

영희

으... 3 대 3... 동대동입니다래...

치성

절대 기죽디 말라우! 꼬락서니를 보니 한 명으로 치 기엔 턱자 없어...

이때... 쾅 하며 다른 방문 하나가 열린다... 또다시 일제히 그곳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겨누는 군인들... 구부정한 허리를 힘겹게 펴며 기지개를 하고 섰는 아흔 살 은 족히 돼 보이는 노모.

영희

데건 또 웬 놈의 노친네가?

노모

(그 앞을 지나며 중얼거린다) 소래기를 질러대서 잠 51


을 잘 수가 있나... 왜 아주 귀때기를 붙잡고 “일어나 요.. 일어나요...할머이 고만 자요...”이리지... 개눔 의 종재들... (외지인들을 발견하고는) 뭐이 이래 마 이 께 들어왔나? 뭔 일이 있나? 촌장

어머이... 일루 와요.. (노모, 대꾸 없이 어디론가 간다)

평상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걸 위아래로 훑어보는 노 모...

노모

지라르하고... 기껏 닦아 놨더니 거 왜 시느- 신고 께 올라가 있나? 뱀이 나왔나?

치성

어디 가는 거야? 이보라.. 노친...!! 꼼짝 말라우!

노모

(가다 말고 치성을 돌아본다) 꼼짝 안 하믄... 여다 똥을 싸나? ... ...싸지 뭐...! 동네 사람들이요... 내 살다 살다 나이 팔십 묵고 배컽에다 똥을 다 싸요-!

당황한 치성... 촌장을 본다.

촌장

... ...우리... 어머니...

노모

여다 싸라고...?

치성

... ... 가시라우.

촌장

어머니... 얼른 댕기와요. 진짜로 싸요.

52


노모

(걸어가는 뒷모습) 뭔 똥을 허락을 받고 싸나... 아 침마다 일어나믄 똥을 싸요! 똥을 싸도 돼요? 물어보 고 싸나... 이래이...

중얼거리며 뒷간으로 가는 노모를 보며 난처한 표정으로 이 마의 땀을 닦는 치성. 대청마루에 앉아 구경하던 이연... 뭐 가 웃긴지 히히히... 웃는다. 부락민들의 반응에 혼란스러 운 군인들...

팽팽한 긴장감이 노모의 뜻밖의 등장으로 풀어지고... 다시 감자밭을 망친 멧돼지 얘기로 웅성거리는 부락민. 평 상시 아는 척을 잘하는 석용... 멧돼지 퇴치법에 대해 장황 하게 교육을 한다(?)

치성

(짜증난) 입 다물라우...

소리를 지르면 그때만 잠시 조용해졌다가... 다시 소란스러 워진다. 평상 위의 부락민들로 인해 서로를 자세히 볼 수도 없고... 시끄럽고... 점점 예민해지는 군인들.

치성

몽땅 다 앉으라우! 내 말 안 들리네? 빨리 앉으란데!!

53


엉거주춤 그 자리에 앉는 부락민들... 서 있을 때보다 전체 덩어리가 커지면서 가장자리에 있던 부락민 몇몇은 평상 밑으로 떨어진다. 민망한 듯 헤 웃고는 평상에 엉덩이를 걸치는 쌍둥이 할아버지.

처음으로 상대편을 정확하게 보게 되는 군인들... 아까보다 더 살벌한 분위기로 변한다. 뒷간에 갔던 노모가 돌아오자 군인들 긴장한다. 쳐다보면 한쪽 코를 짚고 힘차게 팽- 풀고 는 방으로 들어가는 노모...어이없는 군인들.

밤이 깊어진다... 부엉이도 울고... 풀벌레 소리도 들리고 간혹 코를 고는 사람도 있고... 졸다가 평상에서 떨어지는 부락민... 여전히 군인들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총과 수류탄 을 든 채 상대를 노려보며 대치 중이다.

S#24. 동막골 전경 새벽 / EXT

안개 낀 동막골의 새벽은 동양화를 보듯 신비롭다.

S#25. 촌장집 마당 아침 / EXT (대치 2일째)

닭이 울고... “간나새끼 지금 나 노려보는 거네!!! 뉘시깔 꽉! 뽑아 버린다 썅!!”

54


“너 배 나온 놈 특히 조심해라” 아이들은 막대기를 들고 군인들 흉내를 내고 있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있는 국군과 인민 군... 결린 어깨를 톡톡 치는 영희. 양말이 반쯤 벗겨진 채 저린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상상. 평상에서 자던 동구(9세)가 일어나 내려온다.

치성

뭐이가?

동구

뒷간요...

택기

꼼짝 말랏!!

촌장

바지에 쌀라... 얼른 댕겨와. (하고는 인민군들을 보 며 웃어 보인다)

인민군... 할 말이 없다. 동구가 뒷간 가는 걸 물끄러미 보던 용봉도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선다.

현철

그냥, 앉아 계세요!! 저놈들...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요.

용봉

(전혀 상관없이) 내 벌토으- 좀 보고 온다니... 꼼짝 말고 여 있어요?

상상

니미... 이건 뭐... 우리가 인질이잖아?

55


밤을 꼬박 샌... 군인들, 크게 하품을 하는 영희... 하품이 옮 았는지 상상도 쩍스미스는 아예 처박힌 채 자고 있다. 마루 밑의 누렁이도 입이 찢어져라 하품한다. 이때...!

촌장

(당황하며) 어머이... 머르 하실라고요?

마님

어머이...

달수

큰마님...

작은 바가지에 물을 떠서 나오는 노모... 군인들 뭐지? 하고 보는데, 다가와 치성 앞에 선다.

노모

어터 몰골이 깨재재 해가꼬 지나가던 까마구가 형님 요 이러겠다 종재야...

또 뭔 짓을 하려는 거지 하는 심정으로 뒤로 물러나는 치 성... 지난밤 기억도 있고... 얼굴을 찰싹 치며 머리를 들이 대라고 손짓한다.

영희

어케 흉측해딜디 모르니깐 그냥 대주시구래.

쭈뼛거리고 있는 치성의 얼굴을 쓱 끌고 와 씻겨주기 시작

56


하는 노모... 그러면서도 계속 중얼거린다.

노모

날이 트는데 우터 씰 줄들을 몰라.... 밤새 으르렁대 고 소래기나 질러대고 지라르 하드니... 그래하믄... 밥이 나오나... 옥시끼가 나오나? 이래이... 망할 놈 의 종재들...

부락민에게 적대적이었던 인민군들... 노모로 인해 격한 감 정이 봄눈 녹듯 살짝 풀린다. 어색해하는 택기를 씻기고 나면... 영희는 알아서 얼굴을 갖 다댄다. 이번엔 현철에게 다가가는 노모... 이게 뭐하는 짓 인가 싶은 현철... 강하게 제지한다.

현철

할머니, 잠깐요!!!

현철의 강한 제지에 잠시 누그러지는 듯하던 분위기가 다시 냉기가 흐른다. 모두 현철을 주시한다. 강하게 나오는 현철을 물끄러미 보 는 노모...

현철

... 물 갈아서요! 한 바가지로 지금 몇 명 쨉니까!!

57


S#26. 초원의 전투기 잔해 D-저녁 / EXT

초원 위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전투기의 잔해... 그 주변 으로 들꽃이 피어났다. 세차게 울어대는 매미... 한 낮의 초원에선 아지랑이도 피어 나고. (내부) 무전 소음이 새어나온다. ‘치.. 치..지직...’ 시간이 흐르고 있다. 서서히 지는 해... 석양이 진다.

S#27. 촌장집 마당 N / EXT

노을기가 남아 있는 어슴푸레한 밤... 반쯤 얼이 빠진 모습 의 군인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군인들 (관객도) 정확히 판 단할 수 없다. 귀에서 윙-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귀를 턱턱 치고 머리를 흔든다. 차가운 눈빛으로 군인들을 보며 지나는 동구 모. 이때... 하늘 저편에 수송기가 추락하는 게 보였다 사라진 다. 잠시 후 강하게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놀란 군인들... 정신이 번쩍 들어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촌장

(하늘을 휘 둘러보며) 비가 오실라나... 구름이 이래 휘몰아 치믄 종종 이런 소리가 나곤 해요.

58


촌장집에서 서서히 카메라 위로 올라가면 먼 산 너머로 연 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불안한 음악이 깔리고...

S#28. 허수아비 길 아침 / EXT

허수아비 길에 비가 내린다. 도롱이를 쓴 학재와 아들이 허 수아비에 도롱이를 씌우고 있다.

S#28a. 촌장집 마당 D / EXT (시간 경과)

비가 주적주적 내린다. 부락민들은 ... 대청마루에 무표정하게 앉아 옥수수를 먹고 있다. 초점 잃은 눈으로 서로를 보고 있는 군인들. 아이들과 이연 은 첨벙첨벙 물장난을 친다. 신고 있던 버선을 벗어 꾹 짠 다음 얼굴을 닦는 이연... 그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찡그리는 택기...

초라한 모습의 양측 군인들... 언제까지 될지 모르는 대치상황에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 고... 스르르 감기는 눈... 지친 채 서로를 겨누고 있는 그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이 연... 고개를 갸웃거린다.

59


방아쇠에 들어가 있는 손가락도 보고... 수류탄 안전핀에 들어간 손가락도 보고...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꽃가락지도 보고...

멍하게 앞을 보고 선 택기... 이상한 느낌에 옆을 보면... 자신의 수류탄 안전핀 고리에 손가락을 끼고 있는 이연. 어이없이 툭- 뽑히는 안전핀... 멍하게 보는 양쪽 군인들... 이연의 손끝에 대롱대롱 걸려 있는 안전핀. 히죽 웃으며 저만치 내달리는 이연...

이연

(돌아서서 택기에게 보여주곤) 가락지...

택기

(화들짝 놀라 수류탄을 움켜쥔다) 악!!!

현철

야!! 새끼야!!! 뭐해!!

치성

서... 서택기...!!

상상

저런 병신새끼!!

택기

(새파랗게 질려) 사... 상위동지...

치성

그거 잘 쥐고 있으라우! 놓치면 다 직살하는 거야!

영희

아 새끼래... 몇 날 잠 좀 못 잤다구 수류탄 하나 못 건사하네...

상황은 전혀 예기치 못한 곳으로 치닫고... 국군과 인민군 모두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다.

60


군인들의 불안과는 상관없이 손가락에 끼워진 가락지를 보 며 뛰어다니는 이연...

영희

(울상이 되어) 이게 뭐이가... 전장터에 나가믄 밀가 루 한 푸대씩 준다기에 총대 메고 나왔더니... 이게 죽게 생겼구나야 아이고마니...

비 오는 지붕 위에선 두꺼비가 느리게 기어간다.

S#28b. 허수아비 길 D / EXT (시간 경과)

햇볕이 내리쬐는 허수아비 길...

S#28c. 촌장집 마당 D / EXT (시간 경과)

쨍하게 내리쬐는 햇볕. 이제 군인들은 지칠 대로 지쳐 사물이 일렁이며 보인다. 피 로와 졸음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 와중에도 김 선생은 심각한 얼굴로 아이들에게 글을 가 르치고...부락민은 자연스레 일상을 보내고... 이제 군인들 도 선 채로 눈을 감고 있다.

수류탄을 쥐고 있는 택기만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군인

61


들을 둘러본다... 야속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 손도 저리고, 졸음도 밀려오고... 끝내 졸음을 참지 못하고 스르르 감기는 택기의 눈. 손에 힘 이 풀리면서 수류탄이 떨어진다. 수류탄이 굴러가는 대로 이연의 시선도 따라간다... 배시시 웃는 이연. 평상 밑을 굴러 현철의 발에 맞고 멈춰 서는 수류탄. 뭔가 부 딪히는 느낌에 눈을 뜨는 현철...

현철

(화들짝 놀라서) 위험해!! 모두 피해!!

악!! 소리를 지르며 급하게 수류탄을 끌어안고 엎드리는 현 철. 놀란 군인들 사방으로 피한다. 폭발 일보 직전... 이를 악무는 현철... ... ... 잠잠하다... ... 불발탄... 하나둘 고개를 들고... 잔뜩 웅크렸던 현철도 슬며시 눈을 뜨며 수류탄을 살핀다. 그런 현철을 예의 주시하는 치성의 눈빛. 겨우 안심이 되는 현철... 불발탄을 집어 들고는 인민군을 본다. 비웃듯 코웃음을 치고는 불발탄을 뒤로 던진다.

62


현철

(조롱 섞인) 뭐 하나 제대로 된 것도 없는 것들이...

영희

뭐... 좀 종종 그 따우메두 있을 수 있디 뭐 ... 아새끼 노골적으루다...

인민군들... 좀 쪽팔리다... 자신이 들고 있는 수류탄도 한 번 보고는... “혹시 이것도...?” 갑자기,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곡간의 지붕이 날아간다. 놀 란 군인들, 몸을 날려 엎드린다. 거대한 불길과 함께 치솟는 곡물들... 하늘로 치솟았던 노란 색 옥수수들... 내려올 땐 하나씩 터져 팝콘이 된다. (그 광경이 아이러니하게도 벚꽃이 날리는 것처럼 너무나 아름답다) “눈이다...” 웃음 띤 얼굴로 팝콘 비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 이연... ... 그리곤 이상한 몸짓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엎드린 채 그 모습을 보는 군인들. 조종사도. 내리는 팝콘 비를 물끄러미 본다. 이연의 몸짓에 신비로운 음악이 덧씌워지면서 촌장집 마당 은 묘한 기운으로 출렁인다. 사방이 조용해지고... 오직 신비한 음악 소리와... 이연의 몸짓... 서서히 환각에 휩싸이는 군인들... 정신이 혼미해지고...

63


한 명씩 두 명씩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긴다. 누렁이도 쩍 하품을 한다. 엎어진 채로 아이처럼 잠이 드는 군인들...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쓰며 잠들지 않으려는 현철... 퀭한 눈 으로 이연을 보다가... 스르르 빨려 들어가듯 잠이 든다. 바닥에 떨어지는 팝콘이 점점 흐릿하게 보인다. 아주 천천 히 F.O

S#29. 연합군 사령부 막사 앞 D / EXT

연합군 막사. 여러 대의 트럭들... 줄지어선 병사들이 오가 고...저만치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지프차... 일제히 나와 서는 참모들...

S#29a. 연합군 막사 안 D / INT

장군이 막사로 들어서자 모두들 척..! 경례한다. 막사 내부에는 연합군과 국군이 함께 있다. 장군이 자리에 앉자 작계지도를 가리키며 브리핑을 시작하 는 대령. 어둠에 가려진 장군, 아무 말 없이 담배 파이프를 깊이 빨아 들인다. 긴박하게 상황을 보고하는 대령.

64


한쪽의 무선장비들...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메 모를 하고 있는 무전병(한국군2)... 지도 위에 표시된 부분을 담배 파이프로 탁탁 치는 장군... 그 지점으로 카메라 들어가면 동막골의 모습으로 디졸브 된다.

S#30. 함백산 전경

신비한 듯... 웅장한 듯... 보이는 함백산... 그 사이의 포근 히 싸인 듯 있는 동막골.

S#30a. 옥수수밭 아침 / EXT

부락민들... 땀을 흘리며 성실히 일을 한다.

S#30b. 밭으로 가는 길 D / EXT

새참을 내가는 아낙들... 들길을 걸으며 수다를 떤다.

S#30c. 학재네 D / EXT

바가지에 초상화를 새기고 있는 학재... 그 앞에는 부락 노 인이 앉아 있다. 벽에는 수십 개의 초상화 바가지가 걸려 있다.

65


S#30d. 초원 해질녘 / EXT

들풀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이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동구 와 누렁이 고개를 살랑살랑 흔든다. 산 너머로 해가 기울고 있다.

S#30e. 스미스 방 N / INT

잠든 스미스... 짤뚱한 이불 밖으로 발이 나와 있다. (F.O)

S#31. 촌장집 방 안 아침 / INT

악몽을 꾼 듯... 순간 번쩍 떠지는 현철의 눈... 거친 숨소리 와 함께 두려움에 가득 찬 눈동자. (클로즈업) 여기가 어딜까...? ... 뭔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건 뭐 지...?

“생전 처음 보는구만...” “기술 좋아” “이래이... 기술이 좋기는... 결국 일 내고 말았잖아요” “우터 저거르- 한 방에 날릴 수가 있나 그래” 이런 소리들이 밖에서 들려오고 서서히 눈앞에 어른거리던 것이 정확히 보이기 시작한다. 현철의 코앞에서 떡하니 자고 있는 영희의 얼굴... ... 잠시 정적... 66


“헉!!!” 인민군과 한방에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현철.

현철

(소리친다) 문상상 일어나!!

현철이 지른 고함에 번뜩 잠에서 깬 군인들, 후다닥 일어나 좁은 방안에서 양쪽으로 갈린다. 아직 잠이 덜 깬 영희는 국군 쪽에 서 있다... 정신이 들자... 얼른 인민군 쪽으로 간다.

촌장

(소리)어테 그래 자우... 등떼기 안 배기요.

열려진 방문 밖에서 일 나갈 채비를 하던 촌장이 양쪽으로 갈라선 군인들을 걱정스레 보고 있다.

S#32. 촌장집 마당 아침 / EXT

“오늘부터 굶는 거래요...?” “이래이... 쯔쯔쯧...” 걱정스런 얼굴로 부서진 곡간을 들여다보며 죽 서 있는 부 락민. 그런데 평상에서는 치성이 부서진 농기구를 고치고 있다. 놀란 현철, 밖으로 잽싸게 튀어 나와 무기를 찾는데 없다. 급한 대로 호미를 집어 든다.

67


치성

군대는 군대구만... 눈 뜨자마자 죽이갔다구 뎀비는 꼴 보니

현철

뭐야 빨갱이 새끼...!!

촌장

인제 그만 하고... 머르- 좀 먹어야지? (휙- 쳐다보는 현철) 걱정으 마라요... 아무 일 엄쓸 거라 이 양반이 약소그- 했으니... 인제 좀 숴요.

현철

약속요? ... 어르신... 아직 저놈들을 잘 몰라서 하시 는 말씀입니다!

치성

정 피 보구 싶으문 날 쎄게 센 걸루 다시 골라잡으 라...

현철

(호미를 든 채) 촌장님... 감춘 무기 돌려주시죠!

물끄러미 현철을 응시하는 촌장의 시선... 다시 갈라져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양측 군인들...

치성

... 어르신 말씀 듣자우...! 이 부락에 피해주지 말구 ... 각각 갈 길 가자우.

마님

(부엌 쪽에서) 기운들도 좋네... 내 사으- 내올 테 니... 얼굴에 물이라도 좀 묻혀요...

S#32a. 촌장집 마루 (시간 경과)

밥 먹는다... 두 개의 상에 나눠서...

68


그 모습을 부락민 몇 명과 촌장, 마님이 빤히 보고 있다. 노모는 초점 없는 시선으로 평상의 먼지며 머리카락을 손으 로 쓸어 담고 있다. 군인들... 먹으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노모

(중얼) 자들은 우터 처묵을 때도 등떼기를 대고 지랄 이나...

마님

우터하나... 먹을 기 많지 않아서...

이때... 식식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서는 응식.

응식

(지나가며) 부락 일 년치 양식을 다 날린 사람들한테 묵을 기 다 머이래요?

촌장

(아랑곳하지 않고) 몬지랠 거래요. 허기나 좀 달랜 다 생각하고...

응식

(농기구를 챙기며) 날이 추워지믄 머르- 묵고 살아 요? 곡간이 텅텅 벴는데...

군인들, 자신들이 부수어놓은 곡간을 보며 쭈뼛거린다.

치성

거 미안하게 됐소...

촌장

어허... 이 양반들이 별 걱저으- 다해요. 얼른 들어요.

69


상상

(택기 보고) 얌마! 부락 사람들 지금 다 굶는다잖아!

영희

아 새끼가... 뉘깔은 가죽이 모자라서 찢어놘 그건 와 못봐개지구...!

택기

장하사 동지까지 어째 이럽니까...? 씨....

영희

열 발짝 안이 어쩌구 하더니만... 옆채기서 수류탄 까는 것도 몰랐네?

택기

저 개새끼가 던지는 거 못 봤습니까? 허허벌판에 왜 하필 곡간에 던지나 말입니다!

영희

생각해 보니 또 기러쿠나..!! 그걸 거게단 왜 던제갔 네. (현철에게) 이보라 동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세상을 사는 거네..?

상상

무슨 헛소리야?? 죽 서가지고 수류탄 들고 난리를 떨 때는 언제고...

현철

... ...!!

이들의 말다툼을 멍하게 보고 있는 촌장 가족들. 노래를 부 르며 뛰어다니는 이연... 그런 이연을 보는 치성.

치성

(잠시 망설이다) 동무들... 인나라우.

영희, 택기 예...?

(컷) 70


밥상 앞에는 덜렁 현철과 상상만이 남아 있다.

상상

우리도 밭에 같이 갔어야 되는 거 아녜요?

현철

... ...

상상

(버럭) 어쩌자구 그걸 거기다 던졌어요?

현철

(신경질적으로 눈을 치켜뜬다) ...!!!

S#33. 옥수수밭 D / EXT

이런... 그 거칠던 현철이 옥수수를 따고 있다. 부락민과 국군, 인민군이 함께 옥수수를 따는 모습이 이채롭 다. 섞이지 못하고 국군과 인민군이 따로 뚝 떨어져 있고, 그들 중간에서 부락민들이 양쪽 군인들을 살피며 일하고 있다.

상상

(일에는 관심도 없고) 이상하네... 저것들 그냥 일만 하는데요?

현철

정신 놓지 마라... 언제 당할지 모르니까.

석용

내 보기엔 그만하면 사람들 싹 다 괜찮든데...

응식

형님요... 그리 사람 볼 줄을 몰라요.

석용

그리니?... ... 내 말을 가슴에... 너무 이래 담지 마...

영희

상위동지... 기리니까니 강냉이나 좀 따다가 기본부 대 다시 내려올 때 합세하는 거이 어떻갔습네까?

71


택기

저 간나새끼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태평하게 옥시시나 따고 있자는 게요? (치성에게) 상위동지... 우리가 먼저 칩시다.

치성

(말 자르고) 헷딴 거 신경 쓰디 말구 일이나 부지런 히 하라우.

택기

... ...!

서로를 살피느라 잔뜩 긴장한 양쪽 군인들. 저만치 밭 가장자리에서는 쌍둥이 할아버지가 부락의 전통 악기를 불고 있다. 신비한 음악 소리와 시원한 바람이 옥수수 밭을 물결치게 한다.

S#34. 뒷간 앞 석양 / EXT

겁먹은 표정으로 뒷간 앞에 서 있는 미군 조종사... 그 안을 기웃거린다. ‘꿀-’하는 돼지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절뚝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뒤에 뭐가 걸려서 돌아보면 동구가 서 있다. 말똥말똥 스미 스를 쳐다본다.

S#35. 초원 석양 / EXT

아담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밑에서 미군 조종사가 볼

72


일을 보고 있다. 저만치서 망을 봐주고 있는 동구... (컷)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동구에게 건네는 조종사... 껌이다. “뭐지...?” 어정쩡하게 받아드는 동구. (컷) 질겅질겅 씹던 껌으로 얼굴보다 더 크게 풍선을 부는 조종 사... 입이 헤.. 벌어지는 동구...

S#36. 허수아비 길 해 질 녘 / EXT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부락민과 군인들... 군인들의 긴장감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서로간의 냉 랭한 기운이 차갑게 흐른다.

치성

이보라우...!

현철

(치성을 쏘아본다)

치성

곡간... 님자가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채울 테니 님자네들은 그냥 내려가라우. 섞여 있어 봤자 좋을 게 뭐이가 있간.

현철

웃기지 말고 니들이나 내려가라.

치성

왜 안 내려갈라 기네...? 저 양키새끼 데리구 내려가 문 훈장감일 텐데.

현철

(순간, 인상 굳어진다) ... ...!! 73


택기

내려갈 때 조심하는 게 좋겠소 동무...! 산 아래 우리 인민군이 쫙 깔렸을 게야.

현철

이 산 통 털어... 빨갱이 새끼들은 니들 셋이 전부일 거다.

택기

(피식) 썅 간나새끼 우리 놀리나?

현철

니놈들... 왜 여기까지 쫓겨 왔는지 아직도 모르겠 냐?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면 하지 마라.. 인천에 연 합군 상륙해서 이미 평양까지 밀고 올라갔어.. 조만 간 이 전쟁 끝난다. 조심할게 있다면 니놈들이 해야 지...!

표정이 확 굳어지는 인민군들...

영희

상위동지... 데거이 웬 소립네까?

치성

... ...!!

택기

(확 달려들며) 이 쫑간나새끼!!! 개나발 집어치우 라!!!

달려드는 택기를 가로막는 치성... 분이 풀리지 않아 식식대 는 택기... 그들을 빤히 보는 부락민들. 날카롭게 서로를 쏘아보는 치성과 현철... 그 중간에 쪼그 리고 앉아 웃고 있는 이연.

74


S#37. 촌장집 국군방 N / INT

쏟아질 듯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 간혹 들리는 풀벌레 소 리... 개구리 소리... 평화롭다. 열린 방문 틈으로 건너편 방을 살피고 있는 날카로운 눈빛 의 현철.

상상

(자리에 누우며) 진짜 안 잘 거예요? 잘 땐 자자구요.

현철

태평하게 자다가 목 날아가고 싶냐... 먼저 자라... 새벽쯤에 교대하게.

상상

(몸을 돌려 자려다 문득) 근데... 그 대빵요... 우리 가 자고 있을 때... 왜 가만뒀을까요?

현철

(여전히 밖을 보며) 자라...!

상상

... ... (대뜸) 수류탄 안고 누울 생각은 왜 했어요?

현철

자라...!!

“에라 모르겠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으려다... 다시 현철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상상.

상상

(의심스런 눈빛으로) ... ... 표 소위님도... 탈영했 죠...?

현철

(화들짝 놀란다) ... ...!!

상상

아님 말구요... (돌아누우며) 철모는 어디다 버리구 75


다니는 거예요.... 군인이. 현철

... ...???

S#38. 촌장집 인민군방 N / INT

이 방에선 택기가 밖을 살피고 있다. 반듯하게 옷을 접어 한쪽에 놓고 벽을 보고 누워 잠을 청하 는 치성... 영희는 구겨진 옷을 입은 채로 자리에 누워 천정을 보고 있다.

영희

(한숨) 후... 폐양까지 멕혔다면... 이거야 말로 큰일 아닙네까...

택기

장하사 동진... 귀구멍도 넓소... 그 말을 믿소? 그런 놈들이 이 험한 곳에 뭐 볼일 있어서 왔겠습니까 ... 괜한 소리에 넘어가지 마시라요...

영희

(생각 없이) 부대에서 도망쳐 나왔을 수도 있닪네...

택기

... ... !!

치성

(감았던 눈을 뜨지만 아무 말이 없다) ... ... !!

이때,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자 깜짝 놀라 눈동자가 커지는 택기... 건너편 방의 현철...!! 달빛 아래서 왔다 갔다 하는 노모... 역시 중얼거리며...

76


S#39. 뒷간 앞 아침 / EXT

똥장군에 똥물을 퍼 담는 군인들...

상상

우리가 꼭 이런 것 까지 해줘야 돼요? ... 진짜 자세 안 나와 니미... (문득 자신의 똥바가지를 보며) 가 만... 이게 뭐야?

똥바가지를 자세히 보면 없어진 현철의 철모로 만든 것이 다.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허탈해 하는 현철...

S#40. 밭길 D / EXT

똥장군을 지고 가는 현철과 상상... 완전히 전원 풍경이다. 퇴비를 얹은 지게를 지고 다가오는 인민군들... 치성 옷에 묻은 것에 신경을 쓰고... 국군과 인민군 서로 경계하는 눈빛으로 스윽 지나친다.

영희

이거야... 얼마나 해야 되간... 원...

택기

반반씩만 해주고 가는 거니까... 날래 하고 이 부락 을 뜨는 겝니다.

상상

(우뚝 멈춰 선다) 야!! 계산이 그렇게 되면 안 되지... 너희는 셋...! 우린 둘인데... 반반씩 해주고 가다니? 무조건!!! 5등분해서 5분의 1씩 하고 가야지. 표 소 77


위님... 안 그래요? 현철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따라와.

상상

아... 왜요... 계산은 정확히 해야지.

현철

뭐가 됐든 저놈들하고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까.

택기

간나새끼... 악다구니 작작 놀례라!

택기의 말이 거슬리는 현철... 가다가 멈칫한다.

현철

야...!

택기

(슥 본다) ...!!

현철

너 몇 살이야 새끼야!!

택기

내...? 열일곱!...

현철

내가 너보다 열 살이 많다! 말조심해라.

치성

(자연스레 다가와서) 우리 막내동생뻘이구만... 뭐...

현철, 치성을 노려본다.

촌장

마커 다... 내 손아래 같은데... (하고 지나간다)

군인들... 허하게 촌장을 본다.

78


S#41. 촌장집 마당 저녁 / EXT

일을 끝마친 군인들과 부락민 촌장네 마당으로 들어선다... 뒤따라 들어서는 현철... 두통이 있는지 연신 머리를 짓누르 며 미간을 찡그린다...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수류탄 가락지를 보고 있는 이연... 그 모습을 보는 달수 처.

달수 처 우리 이연이도 이제 좋은 사내 만나서 금가락지도

끼고... 시집도 가고... 그래야지. 마님

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자신의 가락지를 잠시 보다가 택기를 보는 이연... 또 배시 시 웃는다. 순간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택기... 얼른 시선을 피한다.

영희

(그런 택기를 보고) 이보라 동무 어디 폔탄네...? 와 낯빛이 그렇게 빨갛네?

택기

(부끄러워) 아... 아이요!! 저 간나새끼들하고 같이 있으니 열 받아서 그럼메!!

상상

근데 저 새끼가... 얌마!! 우리도 니네랑 같이 있는 거 재수 없어...!

79


현철

(참다가 앞으로 나서며) 너...! 죽... (상상이 말리고 나선다)

상상

신경... 끄자구요. 저 쬐만한 놈 상대해 봤자... 우리 만 쪽팔리거든요.

택기

(이연을 의식하고) 뭐이라우...? 쬐... 쬐만한 놈...?!! 썅간나새끼 한판 하자나!!

현철

(가소롭다는 표정) ... ...

택기

어째 겁나나! 겁도 나겠지비... 그러니 부대에서 도 망 나왔지...

순간 눈이 뒤집히는 현철... 사정없이 택기를 향해 주먹을 날린다. 날아오는 주먹을 턱 잡는 치성... 눈을 부릅뜨고 서로 쏘아보는 두 사람...

치성

(감정을 억제하며) 이 부락에서는 소란 피우지 말자 우! 그건 님자가 원하는 거 아니네? 서택기 너도 방 으로 들어가라..

현철

(순간, 손을 뿌리치며 주먹을 날린다)

치성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 개 썅!! 종간나새 끼... 내 더 이상 못 참는다.

영희

(놀라서 뜯어 말리며) 소란 피지 마시라요!!

치성

저 종간나새끼 내 죽여버리가서!

80


촌장

거 약속을 잊은 거래요!

당황스러워하며 군인들을 빤히 보는 부락민들. 식식거리다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치성.

S#42. 촌장집 뒤뜰 저녁 / EXT

택기를 뒤뜰로 끌고 오는 영희... 주변을 살피며 택기를 다 그친다.

영희

아새끼가... 한번 일 저질렀으면 됐디... 왜 자꾸 지 랄이가 지랄이...

택기

왜 나한테 그럽니까... 모든 일은 상위동지가 어렵 게 만들고 있는데!

영희

상위동지가 뭬라니...?

택기

저 간나새끼들 자고 있을 때 없애버렸으면 이런 일 도 없지 않소? 상위동지가 중대장 자격이 있소? (질 리는 표정의 영희)

영희

이보라... 너 그리 쉽게 인간 목숨 하나 끊을 수 있갔 네...? 네래... 인간 죽여봐서...?

택기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 ... !!

81


S#43. 촌장집 국군방 저녁 / INT

눈을 흘기며 현철을 보는 상상... 답답하다.

상상

웬만하면 그냥 참아요... 우리가 일단 머릿수에서 밀리잖아요.

현철

(대꾸하지 않고 윗도리를 벗어 뒤로 던진다) ... ...

상상

아무래도 뭔 일 날 것 같은데... 대충 일해주고 차라 리 우리가 나가요. 내 말 듣는 거예요? (답답한 듯 한 숨...) 근데 저것들... 나 탈영한 걸 어떻게 알았지...?

현철

내일은 나 밭에 안 나간다.

상상

... ... 예...?

현철

무기... 찾아봐야겠다.

상상

나 혼자만 가라구요? 그럼 1:3이잖아요?

현철

마을 사람들 선동할지 모르니까 잘 감시해.

상상

아... 안 돼요...!! 정말 왜 그래... 진짜...!!!

S#44. 감자밭 D / EXT

쭈뼛거리며 인민군들의 눈치를 보는 상상... 신경 쓰지 않고 일하는 치성 일행. 영희는 한쪽 구석에서 꼬맹이들에게 풀잎들을 엮여서 여치, 메뚜기, 인형 등을 만들어준다. 좋아서 입이 함박만 해지는 꼬맹이들에게 웃어보이던 영

82


희... 주눅 들어 있는 상상에게 다가간다.

영희

이보라 위생병 동무, 오늘은 어케 혼자 왔네?

상상

(화들짝 놀라며) 고... 곡간 고친다고 남았다...!

영희

신발 문수 같아지문 아들 손자 다 친구라더니 말뽄 새래 그게 뭐이가?

상상

(찌그러들며) 곡간... 고친다고... 요.

궁시렁거리는 영희... 쩔쩔매는 상상... 이때, 밭 가장자리 풀숲으로 눈치를 살피며 빠져나가는 동 구와 조종사.

S#45. 초원 D / EXT (정찰기 잔해가 있는...)

뒤가 들린 채 처박혀 있는 전투기 밑에서 위를 빤히 보고 있 는 동구... 질겅질겅 껌을 씹고 있다.

S#46. 전투기 조종석 안 D / INT

다급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턱턱 치는 조종사. 치지직... 무 전기의 반응에 수화기를 움켜쥔다.

조종사 Nest! Nest!! Do you copy? Can you hear me? This

is Sparrow A1? Do you copy? 83


(영어) 본부!! 본부!! 들리는가... 들리는가.... 여기 는 스패로우 에이 원...

S#47. 연합군 막사 안 무전실 D / INT 무전병(한국군2) Copy That! Sparrow A1! You are still

alive! (영어) 치...직... 스패로우 에이 원... 살 아 있는가.... 스미스 (소리) Sparrow A1 down. Repeat. Sparrow A1

down. Get me the hell out of here. You hear me? (영어) 스패로우 에이 원 추락했다. 반복한다. 스 패로우 에이 원 추락했다고. 날 여기서 빨리 꺼내 줘? 내 말 들려? 무전병 (종이와 펜을 집어 들며) 위치 확인 바람!!!

치지...치... 뚝...!! 무전이 끊기자 난감한 표정이 되는 무 전병.

S#48. 동막골 어느 절벽 끝 D / EXT 동구

(소리) 많이 힘들어요..? 그래 힘이 없어서 어데다 써요....

84


긴 풀숲을 헤치고 나오는 동구...

동구

근데 아이씨는 이름이 뭐래요? 난 동군데... 이 동 구. (풀숲을 향해) 뭔 말인지 몰라요?

그 옆으로 불쑥 고개를 내밀고 따라 나오는 지친 조종사. 앞 으로 걸어나와... 동구 옆에 선다.

조종사 Fuck!! There is no way out! God Damm it!!

(영어) 젠장... 길이 없어...

동막골 끝자락... 어디를 봐도 나갈 길이 없는 험준한 절벽 뿐이다. 절망적인 표정이 되는 조종사...

S#49. 창고 D / INT

창고 안을 뒤지고 있는 현철. 그러다 문득 발견한 것들... 무기를 분해해서 만든 농기구며 등잔... 똥바가지 등이 놓여 있다.

S#50. 촌장집 곡간 위 D / EXT

곡간 지붕 위에 올라 앉아 여기저기를 수리하고 있는 현

85


철... 인기척에 내려다보면... 언제 왔는지 부락 꼬마(4세)아이가 멀뚱히 올려다보고 있다. 잠시 하던 일을 놓고 그 꼬마를 물끄러미 보는 현철. 순간... 폭격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이 환청으로 들린다. 잠시 호흡 곤란과 현기증을 느끼는 현철... 옆으로 스르륵 기울더니만 그대로 곡간 지붕에서 떨어진다. 바닥에 떨어졌지만... 눈을 부릅뜬 채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 그런데 툭...들어서는 노모의 얼굴... 멍하니 보고 있다가 중얼거리며 어디론가 간다.

S#51. 벌통이 있는 풀밭 D / EXT

풀밭 바깥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조종사... 도대체 왜 서 있 는지도 모르는 표정. 그 풀밭 안쪽에서 들려오는 동구의 목소리...

동구

(목소리) 이름이 이상해요... 그럼 성이 스래요? 스 씨도 다 있나...

그러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정적... 스미스... 뭐지? ... ... 갑자기!! 풀밭에서 후다닥 뛰쳐나오 는 동구...

86


동구

(조종사를 향해 소리친다) 아이씨요!! 스미스 아이 씨요!! 도망가요!!!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엄청난 벌 떼가 뒤쫓아 온다. 화들짝 놀란 조종사 비명을 지르며 같이 도망친다. 풀밭 안쪽에는 벌통 뚜껑이 열린 채 윙윙거리는 벌 천지다.

S#52. 촌장네 마당 저녁 / EXT

황당한 표정으로 일제히 한곳을 보고 있는 부락민들... 맞은편에는 온통 부어오른 얼굴의 동구와 조종사가 서 있다.

달수

얼굴이 거 왜 그리나?

용봉

(의심스런 눈빛으로) 니... 혹시...?

동구

(깜짝 놀라며 얼렁뚱땅) 여... 여기 이 코쟁이 아이 씨 이름이 머인지 알아요...??? 이름이... 스... 스.. 머이더라... ! 아...! 스미스... 그러니까 성이 스고 이름이 미스... 스미스...

용봉

스... 미스...?

석용

스미스!

석용에게 고개를 돌리는 스미스.

87


석용

(이번엔 다른 쪽으로 가서) 스미스!

스미스 What?

갑자기 의심은 사라지고 이름에만 관심이 간다. 특히 벌통 주인 용봉이가...

용봉

동구야... 김 선상님도 모르는 거르- 니가 우터 알았 나? 신기하네... 어이 스미스...!!

스미스 Hey dong koo, Why these people keep calling

me man? 달수 처 스미스. 용봉 처 스미스. 스미스 Stop it. You people are making a fool out of me.

Dong koo tell them to drop that shit! 달수

(씩- 웃으며) 스미수... 나... 달수.

부락민과 군인들에게 스미스를 소개하는 동구... 어깨가 으 쓱해진다. 그러다 문득 문 쪽으로 시선이 가는 동구... 표정이 굳어지 더니 후다닥 도망친다.

동구 모 (촌장집에 들어서며) 이너매 종재 거... 동구야!!!

88


S#53. 촌장집 촌장방 N / INT 동구 모 동구 애비가 집을 께 나간 것도 9년이 다 돼가요.

배껕세상 보것다고 나간 그 양반이야 그렇다 쳐 도... 동구까정 께 나갈 까봐 애가 다 타요. 촌장

... ...

동구 모 어르신요... 진짜 뭔 일 나기 전에 얼른 외지인드르

- 내보내이 돼요. 저리다 동구도 께 나가믄 나는 몬 살아요... ...

끝내 답을 하지 못하고 곰방대에 담뱃잎만 부수어 넣는 촌 장. 옆에는 벌 쏘인 스미스에게 된장을 발라주고 있는 노 모... 뻘쭘한 스미스.

S#54. 옥수수밭 D / EXT

바람에 물결치는 옥수수밭... 기분에 취해 휘이-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는 상상... 듣기가 좋다. 옆에서 듣던 영희가 재밌겠단 얼굴로 옥수수잎을 뚝 따더니 만 역시 풀피리를 분다. 국군과 인민군의 묘한 하모니... 사람들 잠시 하던 일을 멈 추고 본다.

89


상상

(긴 한숨) 전쟁만 안 났어도... 종로에서 끗발 날리 고 있을 몸인데... 이것들이 쳐들어 와가지고... (따 던 옥수수를 보며) 사람 팔자가 이게 뭐냐?

택기

누가 쳐들어갔다 그러네? 미군 앞세워 밀고 올라온 게 언놈인데...?

상상

얌마... 넌 아는 게 없으면 그냥 주둥이 닥치고 있어!

택기

그럼 우리가 밀고 내려갔다는 게요?

치성

서택기... 그만 하라우.

택기

저 어방새가 자꾸 후라이치지 않습니까... 우리가 쳐내려갔습니까?

치성

우리가 쳐내려갔다.

택기

아- 우리가 쳐내려갔습니까?

상상

거 봐 새끼야!

택기

나는 그냥 내려갔소... 가라하니 갔지비.

잠깐의 정적... 쳐다보는 현철... 이 전쟁의 정체성에 대한 알 수 없는 침묵이 흐른다. 그리곤... 일한다. 조용히...

S#55. 초원 전투기 잔해 해 질 녘 / EXT

전투기 잔해 위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스미스. 동구는 헬멧을 쓰고 전투기 주변을 돌며 스미스를 흉내 내

90


고 있다. “스패로우 A1 다운...” 그러다가는 잠잠해진다. 스미스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딘가 를 보고 있는 동구. 저만치서 이연이 웃으며 달려오고 있다.

S#56. 숲길 해 질녘 / EXT (부락으로 오는 길)

일을 마친 부락민과 그 뒤를 따르는 군인들... 영희와 상상... 휘파람과 풀피리를 불면서 오고 부락민들은 신기하게 보며 좋아한다. 힘없이 걷던 택기... 문득 멀리서 달려오는 이연을 본다. 머리를 날리며 오는 이연의 모습이 택기의 눈에 참 예쁘다. 그러다 문득 옆을 보면 동구도 뛰고 있다... 그리고 그 옆을 보니... 어라 양키놈도 같이 뛰네? 순간, 그들 뒤를 보면 성난 멧돼지가 콧김을 내뿜으며 덮칠 듯 거칠게 달려오고 있다. 새파랗게 질린 채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동구와 스미스. 그리고 신이 나서 달리는 이연. 머리가 쭈뼛 서는 부락민과 군인... 당황해서 어떻게 손써 볼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는 동구 모. “동구야!!!” 바닥에서 돌멩이를 냉큼 집어 드는 택기... 입술을 한번 질 끈 깨물고는 멧돼지를 향해 힘껏 던진다.

91


멧돼지의 눈에 정확히 맞는다. 꽥하는 소리와 함께 방향을 틀어 택기를 향해 돌진하는 멧돼지. 화들짝 놀라 냅다 튀기 시작하는 택기, 치성 놀란 눈으로 당 황해하는데... “중대장 동지!!” 멧돼지가 덮치기 일보 직전... 몸을 날려 택기를 밀쳐내는 현철.

방향을 틀어 이번엔 현철을 향해 달려드는 멧돼지...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하는 현철.

치성은 빠르게 주변을 살피고 잽싸게 나무에 걸쳐진 넝쿨을 끌어내려 영희에게 던진다. 상상도 달려와 영희와 함께 넝쿨을 맞잡는다. 스미스, 들고 있던 목발을 치성에게 던진다. 척 잡고는 심호 흡을 하며 달려오는 현철과 마주선다. 현철의 뒤에서 덮칠 듯 거칠게 달려오는 성난 멧돼지... 떨리는 손... 마른 침을 삼키는 치성, 목발을 땅바닥에 후려 치자 날카롭게 꺾인다. 멧돼지의 이빨이 현철의 등에 달랑 말랑... 간발의 차이로 넝쿨을 통과하는 현철. 아주 짧은 찰라, 멧돼지가 덮치려는 순간 영희와 상상이 힘 껏 넝쿨을 잡아당긴다.

92


넝쿨에 걸려 공중으로 붕 뜨는 멧돼지... 입에 침이 마르는 부락민들...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치성... 날카로운 막대기를 있는 힘껏 목덜미에 내리꽂는다. 바닥에 풀썩 떨어지는 치성... 그 앞에 묵직하게 떨어지는 멧돼지... 지쳐서 쓰러지는 현철... 군인들, 쓰러진 멧돼지로 우르르 달려들어 붙든다. 꽥- 소리 와 함께 숨이 넘어가는 멧돼지. 환호하는 부락민들... 동구에게 달려가 와락 끌어안는 동구 모... 그리고는 동구를 개 패듯 팬다.

동구 모 야 이눔의 종재야...! 지 애비 닮아서 속만 쎅이고

나 죽는 꼴 볼라 그리나? 촌장

가, 괜찮구마.

동구

(징징 울면서) 어머이...

촌장

고맙소... 이거르- 우터 갚아야 될지...

상상

(나서며) 뭐 별말씀을 이런 험한 일이야 다 우리 같 은 군인이 해결하고.. 그러는 거죠 뭐. (하고는 택기 쪽으로 가서 눈치를 보며 뒤통수를 친다) 얌마! 너 죽을라고 환장했냐?

택기

(말없이 이연을 본다... 그리곤 미소 짓는다) 93


상상

이 새끼도 점점 이상해지네...?

용봉을 비롯해 부락민들, 군인들의 활약상에 침을 튀기며 칭찬한다. 동구 모, 외지인들에 대한 감정이 좀 녹아내린 듯 바라본다. 응식도 놀래서 우두커니 서서 보고 있다. 말없이 옷을 털며 일어나 걸어가는 현철. 택기의 무사함을 확인하고는 특별한 감정으로 현철의 뒷모 습을 보는 치성.... 그때,

동구모 (소리) 고맙쏘 야...

치성이 돌아보자 동구 모가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같이 고 개를 숙여 답례하고는 동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글썽이는 눈으로 씩 웃으며 쳐다보는 동구...

S#57. 촌장집 국군방 N / INT

잠자리를 펴고 있는 현철... 그때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상 상이 고개를 들이민다.

상상

표 소위님...

현철

... ...? 94


S#58. 숲길 N / EXT 상상

글쎄 일단 따라오시라니깐요...

현철

또 뭔 짓을 할라 그래?

상상

아무리 전쟁통이라지만 맨날 옥수수만 먹고... 어떻 게 힘을 씁니까. 험한 밭일도 해야 하고 또 인민군 놈들 상대하고 뭐 그러려면 제대로 몸보신도 좀 하 고... 헤헤헤... 그래야죠.

S#59. 숲길 N / EXT (멧돼지 잡은 곳) 상상

부대 있을 때 돼지 잡을 일 있다 그러면 나 불렀잖아 요. 이런 건 또 내가 끝내... ...!!

멧돼지를 잡았던 곳에 도착한 현철과 상상. 그런데 히히덕 거리며 고기를 굽고 있던 인민군... 고기를 입에 문 채 두 눈을 껌뻑이며 국군을 본다. (컷) 모닥불 주변에 죽 앉은 국군과 인민군... 좀 전과는 다르게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눈치를 보다 고기 살점을 죽 뜯어 상상에게 건네는 영희... 잠시 쭈뼛거리다 못 참겠다는 듯 척 받아든다. 한입 베어 물면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인민군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95


정신없이 먹던 상상, 우두커니 있는 현철에게 얼른 먹으라 고 눈치를 보낸다. 현철도 못 이기는 척 살점을 뜯어 입에 넣는다.

S#60. 촌장집 근처 풀밭 N / EXT

뒷간에서 볼일을 보지 못하고 풀밭에서 일을 보고 있는 스 미스... 시원한 표정. 바지를 올리고 돌아간다. ... ... 저 멀리 산 쪽에 불빛이 보인다.

S#61. 숲길 N / EXT (멧돼지 잡은 곳)

스미스의 시선으로 보이는 놀란 표정의 국군과 인민군들...

(컷) 처음으로 인민군, 국군, 연합군이 한데 어울리고 있는 장면. 분위기... 묘하다. 바람도 시원하고... 서로간의 위협도 좀 누그러든 것 같고... 고기도 맛있고...그들의 모습이 부감 풀숏으로 보인다.

S#62. 허수아비 길 N / EXT

허수아비 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자 간간이 흔들린다. 저

96


멀리로 고기를 굽는 불빛이 아른거린다. 한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져 허수아비에 맞는다. 빗방울이 점점 많아져 굵은 빗줄기로 변한다.

S#63. 촌장집 마당 N / EXT

비를 피해 수선스럽게 뛰어 들어온 군인들, 옷과 머리를 털 며 킥킥댄다.

상상

(택기를 향해) 히히히... 야 쥐톨! 비 맞은 꼴이 진짜 쥐 같다 야.

낄낄거리며 가볍게 손 인사를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는 상 상. 상상에게 눈을 흘기던 택기... 시선을 돌려 현철에게 걸 어간다.

택기

(어색하게) 낮에는 고마웠소.

잠시 택기를 보던 현철.... 그냥 방으로 들어간다. 고개를 설 레설레 가로젓는 영희.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린다.

S#64. 부락 빨래터 아침 / EXT

투명하게 맑은 하늘을 가로지른 빨래줄 위에 인민군복과 국

97


군복... 조종사복이 널려져 있다. 묘한 풍경이다.

S#65. 촌장집 마루 아침 / EXT

팬티 차림으로 밖에 나와 선 상상...

상상

옷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불쑥 튀어나온 거 시기 한번 보고)... 자세 안 나와...

인민군 방문이 덜컥 열리더니 택기도 역시 얼굴이 붉어진 채 팬티 차림으로 나온다.

택기

(방 안에다 대고) 장하사 동진... 어째 자꾸 나만 놀 리시오?!!

영희

(소리)네래 와... 훈다시 속에 망치는 넣고 다니네... 헤헤헤... 부럽구나야...!

상상

야 쥐톨...! 망치 크다.

둘 다 불쑥 튀어나온 팬티 차림으로 마루에 나와 섰다. 세대간의 동질감이 이런 데서... 언제 왔을까 빤히 보고 있 는 이연... 화들짝 놀란 택기... 잽싸게 방 안으로 들어간다.

98


S#66. 밭으로 가는 길 D / EXT

밭으로 향하는 부락민... 가면서 계속 뒤돌아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뒤따라오는 군인들 모두 이곳 옷으로 갈아입 었다. 처음 입어보는 옷이 어색한지 서로 보며 걷는다.

S#67. 감자밭 D / EXT

실하게 뽑혀져 나오는 감자. 감자를 하나 떼어내 상상에게 던지는 영희... 바로 모른 체한다. 그렇게 장난들 치고... 그 앞을 치성이 배를 움켜쥐고 숲 쪽으로 엉거주춤 걸어간다.

S#68. 수풀 D / EXT

숲으로 들어선 치성, 후다닥 바지를 내리고 자리에 앉는다. 찡그렸던 표정이 펴지며 길게 숨을 토해내고는 편안한 기분 으로 볼일을 본다. 그러다 문득 뭔가 느껴져 옆을 보면 현철도 쭈구리고 앉아 서 치성을 보고 있다. 서먹하고... 이상한 분위기.

치성

(어색하게) 어쩌다 기름기가 들어가니 밸이 놀랐는 디 바로 흐르는구만 ... 기카구 보니 서로 통성명도 못했는데... 성명이 뭐요? 난 동치성이라 하는데...

무시한 채 앞만 보고 인상을 구기며 볼일에 온 신경을 쓰는

99


현철.

치성

(피식 웃고는) 위생병 동무가 표 소위님... 뭐 기케 부르는 것 같던데... 맞나? 어저껜 고맙단 말두 벤벤 히 못해 미안했는데... 우리 전사동무 일 고맙구만 구래.

현철의 무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화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잇는 치성, 똥 누면서...

치성

(밭쪽을 쳐다보며) 참 선한 사람들이디? 서로 불편 한 점이 있더라도 앞으로는 그냥 서로 친한 척, 폔한 척 그렇게 지내는 거이 어떻갔소?

현철

아주 편한 방식으로 사는군... 중대장이 지휘도 그 런 식으로 하나?

치성

!!... ...

바지를 올리고 밭쪽으로 걸어가던 현철... 멈춰서더니..

현철

하나만 물읍시다. 자고 있을 때... 왜 우릴 그냥 뒀소?

치성

(뭔가 말을 할 듯.. 보다가... 그냥 볼일에 신경을 쓴 다... 뿌지직... 소리와 함께)

100


현철

그냥 놔둔 걸 곧 후회하게 될 거요.

노을 진 쪽으로 걸어가는 현철의 실루엣을 우두커니 바라보 고 있는 치성.

S#69. 동막골 상공 어딘가 N / EXT

깊은 밤... 별이 총총 떠 있는 동막골 상공으로 빨간 불빛이 지나간다. - 정찰기...

S#70. 연합군 사령부 막사 안 N / INT

작전 참모들이 레이다를 주시하며 뭔가를 작성 중이다. 불 안한 음악 흐르고... 대령과 몇 명의 참모들 그리고 한국군 장교가 차가운 눈빛 으로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지도에 폭격기 모형을 붙이며 작전을 설명하는 소령.

S#71. 어느 지역 N / EXT

칠흑같이 어두운 밤, 긴 불빛의 행렬이 이동 중이다. 연합군 트럭이다. 흔들리는 트럭 안에는 입을 굳게 다문 차가운 눈빛의 연합 군 특수부대원들과 한국군이 줄지어 앉아있다. 섬뜩한 광기가 배어 나오는 특수부대원1.

101


S#72. 연합군 사령부 막사 앞 N / EXT

연합군 사령부 막사에 도착한 특수부대원을 실은 트럭. 신속하게 뛰어내려 도열하는 부대원들. 매서운 눈매로 나오는 대령, 경례하고 신고하는 특수부대원 들... 싸늘한 그들의 표정. 대령 뒤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특수부대원을 보고 있는 무전 병(한국군2).

S#73. 동 막사 내부 N / INT

섬뜩한 모습의 특수부대원을 막사 커튼 사이로 보고 있는 무전병... 겁먹은 표정이다. 고개를 돌려 다시 레이더를 보면 녹색 불빛이 얼굴에 묻는 다. 레이더로 서서히 다가가는 카메라.

S#74. 촌장집 국군방 N / INT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나는 현철... 가쁜 숨을 토해내며 진정하려 이마를 짚는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다. 코를 골며 세상모르고 자는 상상을 넘어서 밖으로 나가는 현철.

S#75. 촌장집 마당 N / EXT

방에서 나와 평상에 걸터앉는 현철, 어디선가 전통악기의

102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를 들으며 우두커니 앉아 있는 현철... 바지를 여미 며 뒷간에서 돌아오던 치성... 흠칫 놀라는 치성. 현철도 돌아보고... 둘 말이 없다. 다가서 는 치성 뭔가 말을 꺼내려는데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리 는 현철. 혼자 남은 치성...

S#76. 가파른 풀밭 D / EXT

(뮤직 인 포인트 - 경쾌하고 강한 비트의 음악)

가파른 풀밭 위를 옥수수 잎으로 짠 썰매가 경쾌하게 미끄 러져 내려간다. 환호성을 지르며 짜릿한 속도를 즐기는 꼬맹이들. 같이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영희, 상상.

상상

미군 구락부에서 오봉 날랐어요!! 동네 애들이 디게 부러워했잖아요... 나 잘나간다고. 내가 뜨는 날이 면 여자들 다 쓰러졌어요.

쏜살같이 내려가는 영희의 썰매... 그 뒤를 쫓는 상상의 썰 매...

103


S#77. 옥수수밭 D / EXT

새참 시간에 썰매 타는 것을 물끄러미 보던 치성과 촌장.

치성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작은 소리로) ... 거 뭐이 가... 기리니까니...

촌장

(치성을 돌아본다) ... ...?

우두커니 앉아 풀썰매 타는 걸 보고 있는 현철... 상상이 소 리친다.

상상

표 소위님!! 같이 타요! (현철 무시하고 다른 곳을 본 다.

영희

아새끼 삐뚤기는... 자.. 와 그러네?

상상

원래 좀 그래요!

여전히 치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촌장을 보고 있다.

치성

거.... 고함 한번 지루지 않구... 부락민들을 휘어잡 을 수 있는... 그...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요...?

촌장

(빤히 보다가 툭 내뱉는다) 뭐를 마이 메게이지 머... (하며 일어나 어디론가 가버린다)

치성

... ... 예...? (뭔 말인지 도통...) 104


S#78. 부락 어귀 D / EXT

저만치... 걸어오는 이연... 그곳을 보고 있는 택기의 시선. 굳게 다짐한 표정으로 이연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는 택기... 손에 들꽃 몇 송이가 들려 있다. 거의 코앞까지 다가간... 순 간... ...!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걸어가는 택기... 저만큼 멀리 가서 허하게 이연의 뒷모습을 보는 택기. 꽃을 입으로 물어뜯는다.

S#79. 촌장집 마당 저녁 / EXT

부락민과 군인들 하나 둘 밭에서 돌아와 곡간에 곡물을 채 운다. 쌓인 곡물을 보며 뿌듯해하는 사람들... 서로 보며 미 소 짓는다. 갑자기 ‘두두두...’하는 총성이 진동한다. 놀란 군인들 그 자리에 잽싸게 엎드린다. 현철도 뛰어내려 엎드린다. “우와 맛있다!!”광주리를 들고 부엌에서 달려 나오는 이연과 동구... 아이 같은 표정의 김 선생. 쑥스런 표정으로 그 뒤를 따라 나오는 스미스.

동구

이거르- 봐요...!! 스미스 아이씨가요... 옥시끼 알맹 이르 지름 튀겼어요!! 음매나 꼬시다고요!!

쭈뼛거리며 일어서는 군인들... 동구가 다가와 한 줌씩 건

105


넨다.

동구

지난번에 봤아요 !! 곡가느- 뻥 터쳐쓸 때... 그거 보 구 만들었어요... 먹어봐요.

노모에게 다가가 웃으며 한 줌 건네는 스미스... 아낙들에게 도 건네고... “호호호 아이고 저이 좀 봐요... 코가 이래 커가지고... 실하 것지?”“코 커봐야 아무짝에도 씰데 없어” 그동안 못마땅해 하던 응식의 마음도 살짝 풀리고... 이연이 택기에게 다가와 한 줌 준다. 손이 스치고... 마치 전 기에 감전된 듯 숨이 턱 막히는 택기. 모두들 이게 이름이 뭘까 궁금하다... 스미스를 본다. 잠시 정적... 팝콘이라고 알려준다. “아- 팝콘!” 부락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찡해지는 스 미스. 부락민들을 보며 선 치성에게 다가가는 김 선생...

김 선생 이 부락민들은 그냥 자연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예요. (돌아서며) 누굴 휘어잡거나 하지 않 지요. 치성

(김 선생을 돌아보는) ...예 ...? ... ...!!! 106


김 선생 궁금해 하는 것 같아서... 헤헤..

저만치 가는 김 선생을 보는 치성... 부락에 행복한 기운이 넘친다.

S#80. 부락 공터 D / EXT

스미스 얼굴 클로즈업...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다. 가랑이 사이로 공을 던지는 스미스. 카메라 빠지면 군인들과 부락민이 섞여 풋볼을 하고 있다. 공이 날아오지만 굳어서 받지 못하는 치성... 처음 해보는 게임이라 부락민들 엉뚱하게 던지고... 달리고, 끝까지 우기고... 웃어젖히고... 즐거워한다. 공을 받는 택기에게 태클을 하는 상상.... 그리곤 도망간 다... 엎치락뒤치락 같이 달리는 택기와 상상. 더 빠른 속도로 쏜살같이 앞질러 뛰어가는 이연... 뛰다 허 하게 보는 택기... 상상...

(컷) 위생가방을 열고는 몰핀 주사를 꺼내 잘난 척을 하는 상 상... 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하며 주사를 휘두르다 공 받는 연습 을 하며 오는 치성의 엉덩이에 꽂는다.

107


실실 웃고 다니는 치성... 이연이 보면서 쯧쯧쯔... 혀를 찬다.

(컷) 이번엔 인민군이 잘하는 것을 부락민에게 선보이고 있다. 치성... 굵은 통나무를 격파... 다들 환호성. 움찔하는 상 상... 손 꺾기 등... 다양한 특공무술을 부락민들에게 가르친다. 신기한 눈으로 보는 부락민. 상상도 심각한 얼굴로 송판에 주먹을 날린다... 그러나... 송판은 그대로고 주먹을 감싸 쥐고 주저앉는 상상.

먼발치서 이 광경을 표정 없이 보고 있는 현철... 뭔가 날아 와 현철의 머리에 맞고 떨어진다... 돌멩이다. 뒤를 돌아보면 투수처럼 포즈를 취하고 섰는 노모...

S#81. 뒷간 D / EXT

겁먹은 표정의 스미스. 뒤에서 올라가라고 손짓하는 동구. 돼지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돼지와 눈이 마주친 스미스... 머리털이 쭈뼛 선다. 이때 돼지 먹이를 들고 다가오는 관재 처. 들고 온 먹이를 돼지 여물통에 붓고 빈 통을 우리 기둥에 턱

108


친다. 그 소리에 놀라 발판 밑으로 아랫도리가 쑥 빠지는 스미 스...

S#82. 초원 D / EXT

뭔가를 휘휘 돌리며 뛰어다니는 동구... 자세히 보면 카메라 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스미스... 동구를 붙들고 카메라를 자세히 본다.

S#83. 울창한 숲 속 D / EXT

복잡하게 엉켜 있는 넝쿨과 나무들 사이로 매달려 있는 낙 하산... 그 밑에는 수송 물자 박스들... 그 아래서 입을 벌리고 섰는 스미스... 주변엔 수송기의 잔 해가 보이고...으쓱대듯 옆에 서서 웃고 있는 동구. 스미스의 시선에 들어오는 바닥의 나침판... 계속해서 돌고 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스미스... 하늘을 보면 거대한 구름 떼가 하늘을 돌고 있다. “Maybe, Maybe that Strange cloud pulled this plane down too. Maybe.” “(영어) 저 구름 때문인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죽은 나비들... 손으로 만져보는 스미스.

109


S#84. 풀밭 해 질 녘 / EXT

석양이 지는 풀밭 위로 세차게 내려가는 썰매, 겁먹은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썰매를 타고 내려가는 현철. 엄청난 속도로 내려가다 둔덕을 타고 공중으로 살짝 떠오른 다. (뮤직 아웃 포인트)

S#85. 격납고 해 질 녘 / EXT

작계지도를 펼쳐놓고 특수부대원들에게 작전을 설명하고 있는 대령. 한국군에게도 동시통역되고 있다. 번뜩이는 그들의 눈빛.

대령

Once the mission starts, Squad A gets Smith out. Squad B finds out the coordinates of anti-aircraft cannon. Then withdraw. Without any special further notice, It will be bombed 24 hours after the mission starts. You guys should keep that in mind. Dismissed. (영어) 작전 지역에 투입되면 A조는 스미스 대위를 구출한다. B조는 대공포대 위치를 파악한 후 정확한 좌표를 통보한 후 적의 대공화력을 무력화시키고 철 수한다. 투입 24시간 후면 특별한 지시 없이 곧바로 그 지역에 폭격을 가하게 되니까 이점 상기해서 신

110


속히 철수하도록, 내일 정오를 기해 투입될 예정이 니까 각자 개인 정비하고 휴식을 갖도록 한다. 질문 있나? 특수부대원(중사)1 We need one translator sir!

(영어) 통역병이나 한 명 붙여주시죠!

건들거리는 특수부대원1을 물끄러미 보던 대령...

S#86. 풀밭 해 질 녘 / EXT

풀밭에 누운 채 하늘을 보고 있는 현철... 붉게 물든 하늘에 흰 나비들이 노닐고.... 눈을 지그시 감고 바람소리를 들어본다. 넓은 풀밭에 바람 이 띠를 그리며 지나간다. ... ... ... 동막골에서 처음으로 평화로움을 느끼는 현철... 그러다 서 서히 표정이 굳어진다.

S#87. 한강다리 D / EXT 비

서서히 들려오는 포화 소리와 함께 현철이 누워 있는 풀밭 으로 들어서는 피난민들... (다큐멘터리 화면처럼 거친 모노톤의 영상) 다급한 표정의 피난민들 점차 늘어나 그 공간을 다 메운다.

111


누워 있는 현철의 시점으로 보이는 피난민들... 그 위에 생 겨나는 철골 구조의 아치.(한강다리의 아치) 어느새 현철은 과거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클로즈업 상 태로 지휘관과 무전을 주고받는다.

현철

(거세게 저항하는)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아...안 됩 니다!!! 그렇게 쉽게 결정할 상황이 아닙니다.

지휘관(F) 한강 이남으로 적 탱크가 건너는 날이면 다 끝장

나 새끼야!! 현철

다리 위에 피난민이 꽉 찼어요!!!

지휘관(F) 야 개새끼야!!! 잔말 말고 빨리 다리 끊어!! 현철

(울먹이며) 전 못합니다!! 이건 학살입니다!!

지휘관(F) 너 이 개새끼...!! 명령이다!! 총살시켜버리기 전

에... 빨리 눌러!!

S#88. 풀밭 해 질 녘 / EXT

풀밭의 현철(현재)... 고통스런 표정으로 몸을 뒤척인다.

S#88a. 한강다리 D / EXT 비

다시 과거 화면... 현철의 눈동자에 보이는 섬광... 폭발하 면 사방으로 튀는 사람들...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 아이... 아비규환의 현장.

112


자신의 손을 보며 동공이 풀린 채 실실거리는 현철... 현재 의 현철이 그 모습을 보며 고통스러워한다. 이때... 스윽 화면으로 들어서는 얼굴... 이연이다. 그 순간 모든 환영은 사라지고 다시 평화로운 풀밭이 된다. 아직도 진정하지 못하고 거칠게 숨을 토해내는 현철, 물끄 러미 보는 이연... 여전히 그 주변을 나비가 노닌다. (F.O)

S#89. 촌장집 인민군방 D / INT (다음날... 비가 온다.)

(F.I) 동막골에 비가 내리고 있다. 카메라 서서히 내려오면 열려 진 인민군 방 안에 군인들이 보인다. 주적주적 내리는 비를 평화롭게 보고 있는 인민군들... 그 틈에 끼어 있는 상상.

상상

(내리는 비를 보며) 전쟁만 아녔어도 지금쯤 좆나게 잘나갈 인생인데... 제 꿈이 뭔지 아세요... 미군 구 락부 지배인이요. 지배인은 원래... 법적으루다 위 아래 양복 쫙 빼입고 그래야 되거든요... 무지 자세 나오겠죠? 근데... 울 아버지는 그걸 이해 못 해요.

영희

네래 아바디가 돼보면 그 맘 알 거야.

상상

꼭 우리 아버지마냥 말해... (영희를 본다..) 형이라 113


고 불러도 되죠? 영희

몣 살이가? 삼촌이라 부르라우.

상상

아냐... 형이 더 나... 형이. 훨씬 친근하게 느껴지잖 아... (큰 소리로) 형!!

영희

어.. 어...? (갑자기 형이라는 말에 이상한 기분이 들 고)

상상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그때... 우리 맨 처음 본 날... 그때 진짜 나 쏠라 그랬어요?

영희

우헤헤헤... 기칼라구 했는데... 총알이 한 발도 없 어서 야... 속았디?

상상

뭐야...? 이런 사기꾼들...

아이들처럼 붙들고 뒹굴며 웃어젖히는 두 사람.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 치성. 이 모습을 건너 방에서 보고 있는 현철. 사랑에 빠진 택기는 멍하게 앉아 비를 보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리는 비를 입을 벌리고 받아먹고 있는 이연을 보는 거다. 곁눈질로 치성을 살피던 택기... 망설이다 말을 뱉는다.

택기

상위동지... 곡간이 다 차면... 떠날 겁니까?

치성

... ... 기래야 갔디... (그의 말끝은 착잡하다) 114


택기

... 어디로 말입니까?

영희

(참다못해) 야이 반넴아 우리가 갈 데가 어뎄네...! 아무리 철떼기가 없어두 기렇디 폐양 다 멕히고 연 합군 북진 중이라는데... 여적 그 소리가?

치성

... ...

택기

... ...

상상

갈 데 없는 건 우리도 마찬가진데... ...

인민군들 모두 상상을 쳐다본다.

S#90. 촌장집 마루 D / EXT

마루에는 노모와 동구, 스미스가 화로에 콩을 구워 먹고 있다.

S#91. 촌장집 마당 D / EXT

마당에서 비를 맞던 이연 버선을 벗어 꾹 짠다... 또 얼굴을 닦을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 가는 택기... 이연에게 저벅저벅 다가간다. 멀뚱히 보는 이 연...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낡은 인공기를 꺼내서 내민다. 반응 없다... 다시 강하게 내민다. 얼른 손에 쥐어주고 도망치듯 돌아서 온다. 비 맞고 들어오

115


는 택기를 빤히 보는 군인들... 대충 눈치를 챈다.

S#92. 옥수수밭 해질녘 / EXT

옥수수밭의 롱숏. 석양이 묻어 아름답다. 옥수수밭 사잇길 로 새참을 지고 오는 아낙들... 함박웃음으로 달려가 받아드 는 군인들. 동구 모의 바구니를 받아드는 치성... 두 사람 괜스레 쑥스 러워한다. 새참 바구니를 내려놓은 아낙들... 밭을 휘 둘러보고는...

달수 처 (감탄) 어터 그새 언덕 한 구릉을 다 해낸나? 용봉 처 하이고 용하네 우터 그리 힘들이 좋아요... 석용 처 이기 좋아 할기 아이래요... 곡간 다 채워졌으니...

저이들 마을을 떠난다 할 건데...

못내 섭섭한 표정의 아낙들... “이거 더 들어요”하며 군인들 을 챙긴다. 새참을 먹는 군인들... 부락민들... 스미스도 한자리 껴서 어설픈 젓가락질을 하면... 옆에서 가 르쳐 주는 김 선생... 괜히 소련 말도 하고... 허공에 대고 나비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이연을 물끄러미 보 고 있는 택기... 문득 이연이 볼라치면 얼른 고개를 숙인다.

116


상상

니미... 곡간은 다 찼는데... 갈 데는 없고...

영희

어케... 수류탄 하나 찾아 보까나? 헝칸에 잘만 던지 문... 한 몣 달 잘있단칸.

상상

형이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래... 농사꾼도 아니 고...? 어떻게 사람이 쉬지를 않어... 군인이 자세 안 나오게.

택기

내 보기사 곡간이 너무 좁소... 다시 만둘기요... 넓 게스리..

치성

(그런저런 농담을 듣다간 피식 웃는다) ... ...

밭 외각에서 멍하게 노을을 바라보는 현철... 그를 물끄러 미 보는 치성. 모두들 동막골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상상...

영희

(물끄러미 보다) 네래 창가 한마디 해보라. 이거 있 단네. (두 손 모아 노래 부르는 시늉)

상상

창가...라니...? 노래요?...! 쪽팔리게... 안 해요.

부락민들 해봐요!! 해봐! 한번 해보래요!! 상상

아.. 정말 자세 안 나오게... 구락부도 아니고 이런 데서... (씩 웃으며) 그럼 한번 해요!

117


부락민들 좋아서 환호한다. 헛기침 몇 번을 하더니만 폼 나게 자세를 취하고 노래를 시 작하는 상상. 부락민도 군인도 편한 마음으로 상상의 노래에 빠져들어 간다. 마치 가수가 된 듯 세련된 기교로 노래 부르고 있는 상상의 얼굴로 들어갔던 카메라가 다시 빠지면 자연스럽게 부락 정 자나무 밑으로 화면이 옮겨져 있다.

S#93. 마을 정자나무 N / EXT (부락 축제 )

영희의 지휘 아래 무기의 각 부위를 뜯어낸 것들을 두드리 며 박자를 맞추는 동구와 꼬맹이들. 총구를 플루트처럼 불기 시작하는 영희... 여기에 쌍둥이 할 아버지가 연주하는 음악이 상상의 노래에 덧씌워지면서 더 욱 흥겨워진다. 먹거리들과 술... 밝은 표정들... 부락민과 군인들이 한데 어우러진 동막골의 가을걷이 축제다. 그 모습을 슈퍼8mm로 촬영하고 있는 스미스... 사람들의 표정을 담다가 간혹 밝게 웃어젖힌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현철... 어울리지 못하고 자리 에서 일어나 멀리 걸어 나간다.

118


S#94. 허수아비 길 N / EXT

쓸쓸하게 허수아비 길로 걸어 나온 현철...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를 하는 노모를 발견한다. 돌아보지도 않고 손짓으로 부른다. 다가서는 현철. 다시 기도를 하는 노모... 주변에 많은 나비들이 그들의 주 변을 돌고 신비로운 음악이 그들을 감싼다.

노모

(작은 소리로 웅얼거린다) 조상님들요... 야를 똑똑 히 잘 봐요. 어티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나이도 어린 기 수심이 한가득이래요 ... 이기... 지 혼자 이기지 도 몬 하고 끙끙대는기 을매나 맴이 아픈지 몰라요. 잘 좀 보살펴줘요 ... ... 훌훌 털어버리게 마이 도와 줘요...

무슨 소린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가 슴이 뜨거워지는 현철... 우두커니 섰다가 울컥한다. 노모, 뒤돌아 훌쩍거리고 있는 현철을 빤히 본다. 혀를 차는 노모... 맘 놓고 우는 현철.

S#95. 강원도 상공 어딘가... N / EXT (인서트)

구름이 짖게 깔린 상공을 나는 수송기. 섬뜩한 광기를 내뿜는 연합군 특수부대원 10여 명... 119


그들과 달리 겁에 질린 표정의 무전병.

S#96. 마을 정자나무 N / EXT

사람들... 노래와 춤사위를 오가며 흥에 겨워 있다. 분위기는 점점 더 무르익고... 동구 모와 응식도 이제는 외지인들에게 술도 권하고 친해져 있다. 얼큰히 취한 김 선생... 노인들 앞에서 배워야 산다... 뭐 이 런 얘기를 장황하게 하고 있다.

어느덧 그 사이에 앉아 있는 현철... 소매로 땀을 스윽 닦으며 현철 옆으로 다가오는 치성. 물끄러미 보는 현철에게 술잔을 건넨다. 무뚝뚝하게 받아드 는 현철... 아랑곳하지 않고 시원하게 한잔 비우는 치성. 현철도 술잔 을 들이킨다.

치성

함경도에 청진이라고 있어. 들어봤나?

현철

... ...

치성

해방되기 전에 일본 놈이 경영하는 제강소에서 용해 공으로 일했었디. 욱하는 성격에 공장 감독을 때려 눕히고 감옥엘 가게 됐어... 그 바람에 독립운동자

120


딱지가 붙어 조선팔도 방황하며 돌아 다녔드랬지. 일본놈 한 대 패준 거이 기케 됐디. 현철

(빈 술잔을 보며) ... 나랑 딱 반대로 살았네요... 우 리 아버지는 친일파였는데...

치성... 뜻밖의 말에 현철을 본다. 현철도 치성을 본다. 잠 시... 그리곤 둘 다 부락민들을 본다.

치성

어찌됐든... 그 시절엔 말이디... 비록 쫓기는 몸이 래두... 힘들디가 않아서. 어데를 가던지 날 숨겨주 고 먹여줬으니까.

주름진 얼굴과 몇 안 남은 치아로 껄껄 웃는 쌍둥이 할아버 지를 보며 계속 말을 잇는 치성.

치성

그게 불과 5년 전이야.... (긴 한숨)... 후... 지금은 그저... 날 도와줬던 사람들과 전장에서 마주치지 않길 바랄 뿐이디...

실실 웃고 있는 이연에게 다가가는 택기... 잔뜩 긴장한 채 로 이연에게 뭔가를 고백하는 듯하다.

121


치성

(택기와 이연을 보며) 이 부락만큼은 지금처럼 잘 지 켜졌으면 좋갔구만...

현철

(그 말에 동의하듯 미소를 짓는다)

치성

곡간이 다 채워졌으니... 이제 각자 갈 길을 가야 갔 구만. 혹... 다른 전장에서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우린 또 총구를 겨눠야갔지...?

현철

... ... 못... 만날 거요.

치성

(현철을 본다) ... ,,, ?

현철

... ... 탈영했어요... ... 돌아가면 당장에 총살감이 죠... 부대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서로 총 겨눌 일... 없을 거예요.

치성

... ...

상상의 노래가 끝나자 부락민들과 군인들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괴성을 지르는 오빠부대. 멋진 무대 매너로 답하는 상 상... 환호하는 부락민을 보자 찡해진다. 영희와 꼬맹이들도 일어나 인사를 한다. 더욱 세차게 박수 갈채가 나온다. 함박웃음이 되는 꼬맹이들. 이때... 이연의 머리 위를 날던 나비 떼가 스르륵 날아올라 어두운 하늘 어딘가로 간다.

122


S#97. 상공...N / EXT

부락을 향해 내려가는 낙하산들. 겁에 질린 무전병 뭔가를 발견한다. 밑에서부터 날아오르는 나비 떼... 특수부대원을 휘감는 나비 떼... 비명을 지르며 휩쓸리듯 추락한다. 신비스런 소리 같기도 하고 분노에 찬 소리 같기도 한 음악과 함께 세차게 도는 나비 떼. 놀라 비명을 지르는 특수부대원들... 나비 떼에 휩싸여 어지 럽게 뒤엉켜 밑으로 떨어져 안개 속으로 푹 들어간다.

S#98. 동막골 숲 어딘가...N / EXT

낙하산 속에서 고통스런 표정을 짓는 무전병. 밖에서 플래 시 불빛이 비친다. 낙하산 속에서 나오는 무전병... 여러 개 의 플래시 불빛 중 한 개가 무전병을 비춘다.

S#99. 부락이 보이는 언덕 숲속...N / EXT

살아남은 5명의 특수부대원(연합군 2명, 한국군 3명) 언덕 위에 올라서자 저 밑으로 불빛이 보인다. 무전기를 들러 멘 무전병, 긴장한 눈빛으로 본부에 교신한다. Nest1 we found wild dog Copy! Current coordinates are Delta Hotel 4045. (영어) 들개(적) 위치 확인...! 현재 좌표... 델타 호텔 4045.

123


S#100. 마을 정자나무 N / EXT

흥겹게 가을걷이 축제를 즐기고 있는 부락민과 군인들. 술 취해 잠든 노모를 업고 집으로 들어가는 스미스.

스미스 이 마을... 너무 멋져요.

(웃음) 처음엔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 었는데 이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냥 여기에 있 고 싶어졌어요.

S#101. 촌장집 안방 N / INT

노모를 방에 눕히고 나오다 총소리에 놀라 담에 몸을 숨기 고 정자나무 쪽을 살피는 스미스.

S#102. 마을 정자나무 N / EXT

갑자기 허공에 총을 난사하며 들이닥치는 연합군 특수부대 원들. 비명을 지르며 정자나무 밑으로 몰리는 부락민들과 그 틈에 끼어 있는 군인들... (부락민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부대원의 절반을 잃은 특수부대원들, 이곳이 적지라고 믿기 때문에 이성을 잃고 격양된 상태다. Hands on your head! Anyone move, your head will be blown off!, Hey, hey, you! Don't move! 124


(영어) 움직이면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 “머리에 손 올려!!, 헤이 헤이.. 너 움직이지 마!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며 부락민을 위협하는 특수부대원, 연 합군과 한국군의 말이 뒤섞여 혼란스럽다. 얼떨떨한 부락민들 사이에서 긴장된 눈빛으로 서로를 살피 는 군인들.

촌장

우터 오셨나? 부애가 마이 나셨네,,,

촌장에게 총구를 들이대며 윽박지르는 특수부대원들. 뒤에서 눈치를 보던 동막골 삼인방... 살짝 앞으로 나와 고 개를 숙이고 인사한다.

삼인방 어서와요... (퍽!!)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개머리판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특 수부대원1. 피를 쏟으며 나가떨어지는 한 명... 부축하는 다른 한 명에 게... “거 보라니... 하지 말자니...” 뭔가 해명을 해보려고 나서는 김 선생의 머리채를 잡아 처 박고 발로 짓밟는 특수부대원.

125


공포에 휩싸이는 부락민들...

특수대원1 Don’t even think of moving. I will blow your

heads off!! 한국군1 조금이라도 수작부리면 머리통을 날려버린다!!

부락민과 군인들을 한군데 몰아넣고 총을 겨누고 있는 연합 군. 군인들과 연합군만 긴장하고 있고... 부락민들 그저 당 황스런 모습이다. 한국군1의 눈에 부락민들과 달리 머리가 짧은 몇몇이 보인 다. 스윽 앞으로 나와 치성에게로 걸어간다. 긴장하는 군인 들...

한국군1 (치성에게) 너!

화들짝 놀라는 치성, 긴장하는 군인들... 이때,

동구 모 (번쩍 손들며) 야 아부지래요!! 왜 그래요? 동구

(눈치를 보다) ... ...아부지!

와락 치성에게 안기는 동구. 노려보던 한국군1... 의심을 풀 고 다시 부락민들을 본다... 안도하는 군인들. 히죽 웃으며 이 상황을 보고 있는 이연... 한국군1, 이연을

126


움켜쥐고 나온다. 발끈하는 택기. 실실거리는 이연의 뒷덜미를 잡고 코앞까지 끌고 온다. 그 리고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무섭게 노려보는데...

이연

(이마를 툭 같다 댄다) ... ... 히히히...

한국군1 (당황하며) 이런... 개 같은... 너... 대공포대 본

적 있지? 이연

푸대...? 저 많아.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군인들 심장이 멎을 것 같다.

한국군1 (총을 들이대며) 얼른 말해! 엉? 빨갱이 새끼들 다

어디에 숨어 있어?!!

이연이 손가락을 총구에 꽂는다. 그리곤 좌우로 살살 흔든 다. 눈이 뒤집히는 한국군1.

한국군1 이런 미친년!!! (머리채를 뒤로 젖힌다)

이를 악물고 참던 택기... 앞으로 튀어나간다.

택기

(버럭) 걔는 미쳤소!! 미친아한테 어째 그럼둥! 127


군인들... 숨이 멎을 듯하다. 이연... 미쳤다는 택기의 말에 상처받은 듯... 멍하니 섰다. 이연을 위하는 마음을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택기... 이연을 물끄러미 보며 가슴 아 파한다. 껌을 질겅거리는 특수대원2... 고갯짓을 하자 한국군1, 택 기에게로 다가간다.

한국군1 뭐야? (의심스러운 듯 짧은 머리를 본다) 이 부락

민... 맞나? 택기

.... ...!!

한국군1 부모는...?

머뭇거리는 택기... 모두들 긴장하고...

한국군1 (버럭) 이 아인 부모가 없어!!!!! 영희

(동시에) 나외다!!!

달수 처 (동시에) 내 아들이래요!!!

순간 정적... 달수... 마누라를 그리고 그 옆에서 같이 손들고 일어난 장 영희를... 그 둘을 멍하게 본다. 한국군1, 영희과 달수 처를 뚫어지게 보자... 달수 처, 영희

128


어깨에 살포시 기댄다. 어색하게... 화난 얼굴로 슥 일어나는 달수... 옆에 있던 무전병... 본다.

달수

난 홀애비래요... 못된 마누라 도망가고... 나만 남 았어요...

무전병 안 물어봤어.

모든 사람들의 위기감과 상관없이 택기의 말에 상처받은 이 연... 슬픈 눈으로 실없이 웃는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택기... 이연을 보며 가슴 아파한다.

이연

(슬픈 눈으로 웃으며) 나 미친 거... 모르는지 알았 는데... 아이 들킷다야..

택기에게 터벅터벅 걸어가는 이연... 품안에서 뭔가를 꺼내 서 택기에게 돌려준다. 지난번에 택기가 준 인공기다. 새파랗게 질려 떡 굳는 택기... 펄럭 바닥으로 떨어지는 인 공기... (클로즈업) 특수부대원도 군인들도 모두 한순간 정적... “인민군이다!!!” 총을 겨누는 특수부대원들... 순간, 뒤에 서 있던 영희, 재빨

129


리 한국군1의 가랑이 사이를 발로 걷어찬다. 달려들어 특수대원1의 총구를 밀쳐내는 택기. 불을 뿜는 총 구... 사방에 박히는 총탄. 눈물 흘리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지르는 이연... 치성이 한 놈의 목을 비틂과 동시에 목으로 손날을 찔러 넣 는다. 삽시간에 두 명이 나가떨어진다. 용봉과 달수, 응식도 치성에게 배운 특공무술로 특수부대원 을 밀쳐 군인들에게 보낸다. 맞받아치는 치성. 무전병... 본부와 교신을 시도한다. We are under attack!! “놈들에게 당했다!!!” 바닥에 떨어진 총을 집어 들고 악- 소리를 지르며 뛰어간다. 놀란 한국군3, 김 선생을 향해 기관총을 갈긴다. 정확히 그 순간 쓰러져 있는 특수부대원에 걸려 앞으로 철 퍼덕 넘어지는 김 선생... 그 바람에 발사된 총탄이 무전기 에 맞아 박살난다. 놀란 무전병... 얼떨떨한 김 선생... 치성 날렵하게 한국군3의 기관총을 낚아채고 목을 비틀어 제압 한다. 방심하고 있는 상상의 목을 재빨리 감아쥐고 총구를 들이미는 무전병.

무전병 무...물러서!! 이 새끼 머리 박살내기 전에...

현철, 총을 치켜들어 겨누자... 무전병, 더 강하게 상상을 옥

130


죈다.

상상

(살기 띤 현철을 보자) 표...표 소위님...

무전병 뭐야? 너... 국군이야? (움켜쥔 상상의 목에서 인식

표가 잡힌다) 이런 배신자 새끼들... 상상

(무전병에게) 저 사람 정신이 좀 이상하거든요. 그 냥 쏠지 모르니까. 그... 그러니까...

무전병 입 닥쳐 새끼야!!

살기 띤 눈으로 점점 다가가는 현철...

무전병 움직이지 마!! 움직이지 마 새끼야!!! 상상

표..표 소위님... 그냥 쏠라 그러는 거죠...? 아... 안 돼요... 잠깐 잠깐... 왜 그래요? 쏘지 마! 제발 쏘지 마요...

무전병 (상상 때문에 정신이 없다) 가만히 있어 새끼야!! 치성

(다급하게) 이보라!! 표 소위 좀 진정하라우.

영희

고럼... 고럼... 이게 그렇게 풀어갈 거이 아니디...

상상

쏘지 마요... 제발 살려주세요... 나 죽기 싫어...!!

무전병 (제풀에 기가 꺾여 벌벌 떤다) 이... 이런 미친 새끼

들...!!

131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 말릴 수 없는 상황... 모두 눈을 찡그린다. 강한 충격음... 퍽!!! 풀썩 쓰러지는 무전병... ... 그 뒤에 커다란 돌덩이를 들고 서 있는 스미스. 모두들 스미스를 보고는 안도한다. 목을 쥐고 캑캑대다... 현철에게 달려들어 다그친다.

상상

솔직히 말해봐요... 진짜 쏠라 그랬죠...? 아 왜 말을 안 해요!!! 예?

언제나 시끄러운 상상... 이때, 정신이 돌아온 무전병을 보자 군인들이 우르르 달려 들어 뒤로 묶는다. 겁에 질려있던 부락민들 이제야 안도를 하고 몇몇이 촌장을 부축하고 응식과 용봉도 옷을 털며 일어선다.

마님

이구! 야 야...! 이연아! 이연아! 아이구 이 일을 우트하나... 여보 영감... 야를 우터 하믄 좋아요... 이연이가 이상해요.

모여드는 사람들... 군인들. 마님에게 안겨 있는 이연, 붉은

132


피를 쏟은 채 헐떡이고 있다.

이연

(동공이 풀려 헐떡이며 피가 번지는 배를 만진다) ... ... 여가... 뜨구와...

촌장

이연아... 야 야...

이연

... ... 마이 아파...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 군인들... 끝내 숨을 거두는 이연. 이연이 예전에 흥얼거리던 노래 소리가 사방에 번진다. 이연의 주변을 날던 수많은 나비 떼... 분노하여 마당을 세 차게 돌다... 부락을 벗어나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눈이 뒤집히는 택기, 바닥에 떨어진 총을 집어 들고는 묶여 있는 한국군2 쪽으로 달려간다. 이를 악물며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촌장

멈추게...!!

택기

(그 말에 멈칫 한다)

촌장

이 부락에서 더 이상 피르- 보지 마라...

죽일 듯이 이를 악물며 노려보다 옆으로 총을 집어던지는 택기... 끝내 참았던 눈물이 흐른다.

133


S#103. 촌장집 창고 N / INT (무전병이 묶여 있는 곳)

거칠게 문을 박차고 창고 안으로 튀어 들어오는 군인들... 상상, 무전병의 옷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한다.

영희

이런 산골에 뭐 주서 먹으러 왔네?

상상

(윗주머니에서 지도를 발견한다) 씨발... 이게 뭐지?

무전병 흐흐흐... 발버둥쳐봐야 소용없다... 대공포대는

이미 발각됐으니까!! 상상

이 새끼 지금 뭐라 그러는 거예요?

택기

(멱살을 움켜쥐며) 종간나새끼... 니 뭐이라니??

현철

무슨 말이냐?!!

무전병 (떨리는 소리로) 다같이 그냥 죽는 거야... 어때?

괜찮지... 여기에 폭격을 하면 아마 볼 만할 거야 흐흐흐... 상상

하 이 새끼 대가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대공포대 는 뭐고... 뭘 다같이 죽어 새끼야?

치성

여긴 부락민밖에 없는 곳이다. 군대라고는 우리밖 에 없어! 어차피 넌 잡혔고 너한테 거짓을 말할 이유 가 없다. 다시 묻는다... 왜 완?

현철

(낮고 강하게) 너희들 뭔가 오해하고 온 것 같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왜 왔냐?

상상

저 새끼 헛소리만 하는데... 뭘 자꾸 물어봐요...!!

134


그냥 꽉 묻어버리자구요. 어이 스미스! 이 새끼 돌로 한번 더 쳐 무전병 (스미스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 ... 지금...

스미스라고 했어...?

뒤에 서 있던 스미스... 의아해하면서 앞으로 고개를 내민다.

스미스 Hey how do you know my name?

(영어) 헤이... 내 이름을 어떻게... 무전병 (영어) 당신이 정말 스미스 맞아...? 정말이야...?

S#104. 촌장집 뒤뜰 N / EXT

지도를 펴놓고 빙 둘러앉은 국군과 인민군... 망치로 얻어맞 은 듯 말이 없다.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입술을 부르르 떠는 현철...

치성

하눌이 순진한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디 않누만...!

현철

(이를 악물며) 다 우리 때문이야...!

상상

그게 또 왜 우리 때문이에요...!! 진짜 이상한 말만 해.

치성

너무 자책하지 말자우.

영희

이거야 도대체가 어케 꼬인 건지 모르갔구만요.

135


상상

이렇게 된 이상... 스미스를 빨리 보내죠? 스미스 말 은 믿을 거 아녜요. 지들 편이니까...

치성

(지도를 가리키며) 보라, 시간이 없어. 걸어서 그 시 간 안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하다.

상상

니미... 개 같은 새끼들... 멀쩡한 곳에 폭격은 왜 한 대...?

영희

일단 여길 뜨는 거이 좋갔습니다!! 부락민들은 피신 가라구 일러주구 지금부터 내달리면 산자락 두 개쯤 은 제낄 수 있갔디요. 폭격은 면해야 하지 않갔습네 까?

상상

그래요!! 그렇게라도 하자구요... 방법이 없잖아요. 이러고 있지 말고 빨리 짐 싸요!!

치성

수류탄이 뭔지도 모르고 산 사람들한테 뭐라 설명하 간? 순순히 따라 나설 것 같나?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이 답답한 군인들... 불안한 표정으 로 뒤쪽에 앉아 있던 스미스...

스미스 Hey, I found something.

(영어/손짓 발짓) 헤이... 내가 뭔가를 발견한 게 있다... 현철

... ...! 136


군인들 모두 스미스를 본다.

S#105. 수송기 잔해가 있는 곳 N / EXT

지난번 스미스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 입을 벌리고 매달린 물품 박스를 보고 있다.

영희

아니 이걸 저 양키가 어케 알안?

현철

스미스가 추락한 것도 그렇고... 이 지경이 됐으니 놈들이 오해할 만 했어요.

상상

근데 이게 왜 떨어진 거죠? (하늘을 본다... )

(컷) 돌덩이로 군수품 박스를 후려치자 옆판이 떨어져 나가며 속 안에 든 총기가 우르르 쏟아진다. 몇 개의 박스를 더 열어보면 로켓포와 폭약 등 무기들이 쏟 아진다. 군수품 박스 앞에서 무기들을 확인하며 놀라워하는 군인 들... 뒤에선 스미스를 다시 한번 본다.

치성

이 정도면 폭격 유도가 가능하지 않갔네?!! (모두에 게 동의를 구하듯 둘러본다)

현철

충분하진 않지만... 힘을 합치면 전혀 불가능한 것

137


도 아니죠. 상상

무슨... 뜻이에요? 힘을 합치다뇨...? (눈치 챘다)... !!

현철

이곳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아는데... 그냥 나 몰라라 할 순 없잖아!

상상

어차피 우린... 제 삼잔데 괜히 끼어들지 말고... 그 냥 이 부락 뜨는 게 어때요?

현철

(상상을 본다) ... ... !!

상상

나한테 명령이 어쩌구 이런 말 마요. 같은 부대 소속 도 아니고... 난 내 맘대로 할 테니까...

영희

(울상이 되어) 아이구 오마니.... 이걸 어카문 좋갔 소....

불안감에 서로를 쳐다볼 뿐... 말이 없다.

치성

말 그대로 폭격 유도야... 위협사격만 하고 튀면 되 는 거야... 뭐가 문제네...

말없이 무기박스의 총기와 탄띠를 꺼내 어깨에 들러 메는 현철...

현철

야... 문상상... 여기서 도망쳤다고 하자... 그래서 살면... 그게 좋을 것 같냐...? 평생 후회하다 아마

138


미쳐버릴 거다. 상상

아 몰라요... 차라리 미치는 게 나... 난 절대 안 돼 요. 표 소위님이야 죽고 싶어 안달 났으니 상관없겠 지만 난 그런 거에 전혀 관심 없거든요!!

초점 없이 멍하니 있던 택기, 앞으로 걸어 나가 무기를 든다.

영희

이보라... 네래 뭘 하네...?

택기

... ... 어차피 우린 갈 데도 없잖아요. 여기 있어도 죽고 나가도 죽을 판인데...

영희

(울상이 되어) ... 상위동지 어카문 좋습네까...?

치성

여기까지 우리가 어케왔네... ... 살려달란 부상자 들... 못 걸어가는 여성동무들... 내 손으로 다 죽이 고 와서... (영희를 보며) 내래... 고향의 가족을 무 슨 낯으로 보간...

영희

아니 구거야 상급부대에서 시켜서 한 거이디...

치성

어찌 보면 우린... 운이 억세게 좋은 놈들인지도 모 르디... 언제나 죽여야 하는 전쟁만 치뤘잖네... 하 지만 이번엔 달라... 여기 이 사람들을 살리는 거이 야...!

상상

(저만치서 등을 돌리고) 하이구... 말은 멋있어요...

영희

(망설이다 상상을 본다... 동참하면 할 수 있다는 식) 139


이보라 상상 동무... 상상

뭘 봐요!!?? 무조건 난 안 가!! 솔직히 우리 식구도 아 나구... 식구래도 못 한다 난...

이때 뒤쪽에 있던 스미스도 앞으로 나선다. 모두 스미스를 본다. 이쯤 되자... 머리를 벅벅 긁으며 길게 한숨을 토해내 는 상상...

상상

니미... 괜히 탈영은 해가지구.. 하여간 되는 게 하 나두 없어...

치성

어때...? 다들 괜찮디?

모두 말없이 보고 있지만 상상은 여전히 투덜댄다.

치성

그리구 한 가지만 제의하갔다. 이 작전... 표 소위가 지휘하는 거이 어떻갔네? (현철... 치성을 본다) ... ... 치고받고 하는 싸움도 아니고... 이런 무기 처음 봐개꾸...

현철의 어깨를 짚어주고는 무기를 둘러보며 신기해하는 치성.

140


S#106. 허수아비 길 아침 / EXT (이연의 장례식)

군복으로 갈아입은 군인들. 새로 만든 허수아비에 피 묻은 이연의 옷을 입히는 촌장. 눈물을 훔치는 마님... 고개를 숙이고 슬퍼하는 부락민들... 이연의 허수아비 봇짐에 옥수수를 넣는 택기... 주머니에서 꺼낸 인공기를 같이 넣는다. “미안합네다.. 진심으로 미안합네다...” 두 볼을 타고 눈물 이 흐른다.

노모

망할 놈의 종재들... 왜서 다들 울고 지랄이나... 조 상님들 보기 민구시럽게 종재드리...

멀리서 등을 돌리고 욕지거리를 하는 노모... 그 몸짓이 오 히려 슬프다. 군인들 거수경례를 한다. 택기, 소리죽여 섧게 운다. 길게 늘어선 허수아비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S#107. 부락어귀 D / EXT

짐을 챙기고 선 군인들과 그 주위를 둘러싼 부락민들이 안 타까운 표정으로 작별을 한다.

치성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갑니다. 잊지 못할 거외다.

141


촌장

거 먹을 기 없으믄 언제든지 와요... 감자 삶아 놓을 테니...

용봉

김 선상님하고 같이 여 있어요... 어데를 갈라 그래요.

치성

괜시리 부락에 폐만 끼치기나 하고... 그리고 할 일 도 있고 해서요...

노모

개눔의 종재들... 갈라믄 오지를 말든지... 옥시기는 다 터쳐서 못 먹게 만들고... 개눔의 종재들...

현철

할머니... 금방 다시 올께요. 그때는 오래오래 있다 가 갈 거예요. 꼭이요.

노모

지라르해라 지라르... 올거믄 왜 간다고... (돌아선 노모를 뒤에서 현철이 껴안는다)

영희와 상상을 둘러 싼 부락민들... 섭섭함이 얼굴에 가득하 다. 꼬맹이들은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스미스와 포옹하는 동구, 두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치성 에게 동구 모와 응식도 머리를 조아려 인사한다. 응식... 보자기에 싼 감자를 군인들에게 내민다.

응식

가다 먹어요... (머뭇거리다 소리친다) 다시 올끼래요?

떠나는 군인들... 이별을 슬퍼하는 부락민들...

142


S#108. 부락 외각 D / EXT

시야에서 부락민이 사라지자 다급하게 달리기 시작하는 주 인공 6인과 한국군2.

치성

늦지 않았네...?

현철

서둘러야겠어요. 해가 있을 때 도착해야 돼요.

2개의 커다란 무기 박스와 탄약통... 탄띠 등을 들러 메고 동 막골을 빠져 나간다. 추억이 묻은 곳을 지나는 주인공들... 울컥한다.

S#109. 작전지로 가는 길 D / EXT

무거운 박스를 들고 달리는 6인과 무전병... 숨이 턱까지 차 오른다. 험한 경사로를 오를 때는 앞에서 하나씩 끌어올리고 뒤에서 어깨로 밀어 올린다. 보자기가 풀리면서 굴러가는 감자... 시간이 없어 그냥 가는 군인들... 못내 섭섭한 영희...

(컷) 이를 악문 채 구릉을 뛰어 오르고... 숲속 길을 헤치며 뛰 고... 계곡 밑을 지나고... 다급한 그들의 표정...

143


해의 위치를 보며 뛴다. 시간이 없다.

S#110. 초원지대 D / EXT

숲을 빠져나와 비탈진 초원지대를 달리는 6인.

무전병 (달리면서) 도대체 당신들... 어떻게 만난 거요? 모두들 (대꾸하지 않고 달린다.)

달리던 현철, 우뚝 멈춰 선다... 나머지 군인들도 영문을 모 른 채 따라 멈춰 선다.

현철

(무전병에게) ... 부탁이 있다. 스미스 대위와 함께 부대로 가라.

무전병 댁들은 어떻게 하려고...?

Smith, he asked me to go back to the base with you. (영어로 스미스에게) 이봐 당신하고 나만 부대로 돌아가라는데...? 스미스 No, I will go with you guys.

(영어) 나도 같이 가겠다. 현철

당장은 어떻게 해 보겠지만 2차 공격이 가해지면 그 때는 정말 끝장입니다. 동막골은 당신한테 달렸어

144


요... 그들이 당신 말은 믿을 겁니다. 부탁해요.

무전병, 스미스에게 통역한다.

스미스 It seems like, I don't have any choice. Okay.

Good luck to you guys. (비통한 표정으로) 나에겐 선택권이 없는 것 같군. 알았다. 행운을 빈다.

서로 거수경례하고 돌아서는 스미스... 애써 밝은 모습을 보 여주는 스미스... 시계를 풀러 현철에게 건네고 더 있으면 약한 모습을 보일 것 같아 휙 돌아 뛰어간다. 목표 지점을 향해 출발하는 5인.

무전병 How did you guys all meet each other?

다들... 어떻게 만난 거야? 스미스 ... ...

S#111. 산등성 오후 4시경 / EXT (최후의 작전지)

고도가 높은 산 중턱 분지에 도착한 5인... 그들의 뒤편으로 동막골이 있는 함백산이 보인다.

145


그 자리에 쓰러져 죽을 듯 숨을 토해내는 5인.

현철

(일어나 시계를 보고) 4시간 후면 이 위를 지나게 될 겁니다.

모두들 겁먹은 표정들이다. 서로의 눈치만 볼 뿐 말이 없다.

치성

자자 시간이 없어. 힘들 내자우...

상상

구름 위로 가는 폭격기를 어떻게 잡으려고 그래요?

현철

이 산 높이라면 위협사격이 가능해. 놈들을 유인할 방법이 있어.

지도와 지형을 비교해 가며 작전 계획을 설명하는 현철... 모두들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는다. 현철의 작전 설명 을 유심히 듣는 치성... 박스를 깨고 무기를 꺼내는 현철... 대공포와 로켓포의 위치 를 잡고... 지시를 한다. 땅을 파서 풀 더미를 사방에 두르고 는 나무들을 잘라 총처럼 배치한다. 그 주변에 위장망을 쳐 군부대처럼 보이게 한다. 다른 상자를 열자 허수아비가 들어 있다. 꺼내면서 씩 웃는 영희. 허수아비를 곳곳에 배치하는 영희. 기관총을 장착하고 방아

146


쇠에 굵은 실을 연결한다. 둔덕 위에는 폭약을 묻고 도화선 을 깐다. 이런 일에는 의외로 날렵한 영희. 서서히 해가 지고 있다. 준비를 마치자 긴장된 표정으로 모 두를 한번 둘러보는 현철.

영희

(불안한..) 성공할 수 있갔디?

현철

놈들이 나타나면 최대한 우리를 노출시켜야 돼요. 만약 놈들이 우릴 못 보고 가면 그땐 진짜 방법이 없 어요.

상상

... 스미스는 어디쯤이나 갔을까...?

현철

늦을 거다...

택기

그쪽 일은 잊어버리기요.

상상

니미...

치성

위협사격을 하는데 놈들이 우릴 못 보간...? 그땐 날 쌔게 탈출하문 되디 않간? 죽을 수 있으문 살 수도 있는 거야.

현철

(다시 시계를 보며) 한 시간 정도 남았어요.

불안한 표정으로 말없이 먼 산을 보는 5인... 서로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간혹 눈이 마주치면 웃어 보인다. 모두 말이 없다. ... ... 숨이 막힐 것 같은 적막감.

147


영희

와 이렇게 조용하네...?

택기

(조용히 영희에게) 쉬... 마렵지 않소?

S#112. 벼랑 쪽 저녁 / EXT

다섯이 나란히 소변을 보고 있다. 먼 산 너머로 졌고 단지 붉 은 기운만이 하늘에 남아 있다.

상상

우리가 이런다고 누가 알아줄 것 같기나 해요!! 지금 도 안 늦었으니까 그냥 가죠 우리...?

다들 대꾸도 하지 않고 돌아간다. 투덜거리며 따라가는 상상. 치성과 현철만 남는다.

치성

지휘 능력이 좋더구만 구래...

현철

잘 도와줘서 그렇죠 뭐.

치성

난... 선봉에 서는 기 맞지 않은 사람이디.

현철

... ... ?

치성

처음부터 그랬디... 지휘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도 몰랐고... 부대원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몰 랐어. (너털웃음을 웃고) 실은 말이디... 우리 부대 원 다 죽고 나만 살아남았다고 그냥 달아준 중대장 이었거든... 우습지 않나? (현철을 보며) 자넨 천 148


상... 지휘관이야... 현철

어렸을 때부터 장교가 되고 싶었어요. 수많은 무리 들을 지휘하며 멋진 작전을 펼쳐보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바라던 게 이루어졌는데... 임관하고 첫 임 무가 이 손으로 수백 명을 한순간에 죽이는 거였어 요... 민간인을... 평생 후회할 것을 꿈꿨던 거예요.

한강을 폭파했던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며 이를 악무는 현 철... 현철의 젖은 눈을 보는 치성... 말없이 어깨를 짚어 준다.

S#113. 산등성 N / EXT

갑자기 폭격기의 진동이 먼 산으로부터 느껴진다. 걸어오던 영희, 상상, 택기... 얼굴이 확 굳어진다.

상상

뭐야?!! 아직 시간 남았댔잖아!

현철

(치성과 함께 급히 달려오며) 각자 위치로!!

정신없이 각자의 위치로 흩어지는 5인. 치성과 현철은 로켓 포를 어깨에 멘다. 영희는 곳곳에 설치한 폭발물의 도화선 과 허수아비에 연결된 줄을 잡는다. 택기와 상상은 대공포 가 설치된 바위 뒤로 몸을 숨긴다. 입술이 타들어 오는 상상.

149


멀리서 폭격기의 진동이 느껴지는 듯하다.

현철

폭격기가 육안에 보일 때까지 절대 동요하면 안 됩 니다!!

폭격기의 진동이 다섯 사람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핏기가 가신 얼굴로 산 너머를 주시하고 있는 5인.

영희

... 문상상.

상상

(겁에 질린 얼굴로 쳐다본다)... ...

영희

어제 부른 그 창가... 그거 한번... 더 불러보라우.

상상

니미... 이 상황에서 노래는 무슨...

모두 상상을 보고 있다... 투덜거리다 울상이 된 채 노래를 부른다. 서서히 다가오는 폭격기 소리. 폭격기 소리와 상상의 노래가 묘하게 섞여 위기감이 더욱 고조된다. 상상의 노래도 떨리고 있다. 굉음과 함께 마침내 시야에 전투기 편대가 나타나자... 턱 숨이 막히는 상상... 더 이상 노래를 할 수가 없다. 긴장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며 격려의 눈빛을 보내는 치 성, 현철, 영희, 상상, 택기. 치성과 현철... 로켓포를 어깨에 올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폭

150


격기와 전투기 편대를 주시한다. 도화선에 연결된 레버를 다시 한번 힘주어 움켜쥐는 영희, 대공포의 노리쇠를 당겼다 놓는 택기.

택기

근데요, 우리도 연합군 아입니까?

모두들 (무슨 말인가 싶다) ... ...??? 택기

우리도 지금 북남 합작부대 아이야요? 내 말이 틀립 니까?

상상

얌마! 지금 이 상황에 농담이 나오냐!!??

영희

기카구 보니까 연합군이구나... 히히히..

치성

그렇구만... 연합군 동지들...!!

모두들 웃지만 이내 울컥하며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현철

이렇게 말고... 다른 데서... 다르게 만났으면... 우 리 진짜 재밌었을 텐데... 안 그래요?

치성

(미소 짓지만 목이 멘다) ... ...

상상

진짜 위협사격만 하는 거 맞죠?

현철

그래... 위협사격만 하고 반응하면 곧바로 퇴각하자...

S#114. 들판 N / EXT (인서트)

빠른 속도로 걷고 있는 스미스와 무전병...

151


이때, 머리 위를 지나가는 전투기 편대와 폭격기, 이를 악물 고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스미스.

S#115. 산등성 N / INT

점차 다가오는 폭격기와 전투기 편대... 모두들 크게 숨을 들이 마신다.

현철

지금이에요!!!

현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상공을 향해 갈겨대기 시작 하는 5인. 상상의 기관포에서 나간 탄피에 뒤통수를 맞는 영희... 인상 이 일그러진다.

상상

이 정도면 된 거 같은데요.

치성

충분할 거야.

상상

그럼 빨리 튀죠?

그들 위를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폭격기와 전투기 편대.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은 현철... 잽싸게 기관포로 달려간다.

현철

씨팔!!! 저 새끼들 우리를 못 봤어!!

152


전투기를 향해 기관포를 갈기는 현철... 전투기의 몸체에 몇 발이 맞는다.

모두들 어...? 맞았다... (모두 표정이 밝아진다)

S#116. 전투기 조종석 N / EXT

기체에 충격이 가해지자 주변을 살피는 전투기 조종사. 조종사 시점으로 칠흑같이 어두운 지상에서 작은 불빛들이 반짝이는 게 보인다.

조종사 Nest A1, Nest A1...!! This is Sparrow 5. At the

current position, we detected enemy's movement. Over. (영어) 네스트 A1 네스트 A1...!! 여기는 스패로우 파이브. 현 위치에서 적의 징후가 포착됐다. 이상. 폭격기 (수신음)Copy that.

(영어) 수신 완료.

S#116a. 상공 N / EXT

편대에서 선회하여 지상으로 전투기 한 대가 내려온다. 번쩍이는 불빛 쪽으로 급강하하는 전투기.

153


S#117. 산등성 N / EXT

무섭게 내려오는 전투기를 보며 밝았던 표정이 차갑게 굳어 지는 5인. 5인을 향해 불을 뿜는 전투기 기관포. 전투기의 엄청난 화력 에 깜짝 놀라 사방으로 흩어진다. 정신없이 각자 전투기를 향해 사격한다. 겁에 질린 상상은 얼굴도 들지 못하고 탄을 허비하고 있다. 상상을 향해 가는 전투기의 공격을 보고 치성 달려들어 껴 안고 구른다. 얼이 빠져 있는 상상의 얼굴을 위로하듯 쳐준다. 몸을 돌려 로켓포를 발사하는 치성. 줄을 잡아당기는 영희... 허수아비가 움직이고 기관총이 발 사된다.

S#117a. 전투기 조종석 N / EXT

지상의 허수아비가 무수히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긴장하는 조종사... 폭격기에 교신하여 적 발견을 통보한다. 앞으로 후다닥 달려 나가며 기관총을 발사하는 택기, 그 불 빛을 보고 따라붙는 전투기.

영희

야 너 미쳤네??

택기

내 좀 빨라요

154


허수아비 사이를 달리는 택기... 날아온 총탄에 허수아비들 이 사방으로 튄다. 달려오던 택기가 한순간 옆으로 피하듯 엎드리면 바로 앞에서 기다렸다는 듯 현철이 로켓포를 발사 한다. 정면으로 날아간 포탄... 전투기의 방향타에 맞고 흔 들리다 벼랑 쪽 바위에 부딪혀 폭발한다. 환호하는 5인.

다시 2대의 전투기가 회항해서 날아온다. 모두 불안한 얼굴이 되어 다가오는 전투기를 향해 공격하는 5인. 고개를 처박은 채 벌벌 떠는 상상... 옆으로 포탄이 튕겨져 지나간다. 한순간 아찔한 느낌... 절벽 밑으로 날아가 화염을 일으키며 터진다. 영희... 둔덕 위로 날아오는 전투기를 보고 설치된 폭약의 레버를 누르자 연쇄적으로 폭발이 인다. 날아오던 전투기 놀라서 급선회한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조 종사... 진땀을 흘린다. 줄을 잡아당기려는데 폭발로 끊어졌다... 망설이다 앞으로 뛰어나가 줄을 묶기 시작하는 영희. 영희를 발견한 조종사... 빠르게 날아오는 전투기... 허둥지 둥 줄을 묶으며 뒤를 살피는 영희... 잘 묶이지 않는다. 기관 포를 작열시키며 뒤쫓아 오는 전투기. 도망치는 영희...

155


앞에 보이는 참호에 몸을 던져 뛰어든다. 날아오던 포탄이 영희가 들어간 참호 안으로 굴러 들어간다. 잠시 정적...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참호에서 뛰쳐나오는 영희... 그 순간 폭발한다. 공중으로 튕겨져 나가는 영희. 온 몸이 찢겨져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풀썩 떨어진다. 그 광경을 목격한 상상...

상상

(달려가서 안으며) 형!!! 형...

상상을 보며 씩 웃어주다 숨을 거두는 영희.... 비명을 지르 며 전투기에 대공포를 갈겨대는 상상. “야 개새끼들아!!!” 전투기 하부에 있는 연료탱크에 불이 붙어 흔들리다 산 너 머로 추락하는 전투기... 잠시 후 엄청난 섬광과 함께 터진 다. 상상의 뒤로 또 다른 전투기가 다가와 기관포를 발사한 다... 상상이 있는 자리를 훑고 지나간다. 머리부터 몸 끝까지 총알이 박히는 상상. 고개가 꺾이고... 숨을 거두는 상상, 그가 쥐고 있는 기관포 는 계속 발사된다. 탄이 다 소비되고 빈총만이 철컥철컥 소리를 낸다. 달려가 다 이 모습을 보게 되는 치성... 어금니를 깨문다.

156


S#118. 연합군 사령부 막사 안 N / INT

긴박하고 어수선하게 돌아가는 연합군 작전 사령부. 무전기로부터 흘러나오는 무선음이 막사 내부를 가득 메우 고 있다.

전투기(수신음)

We are under attack at the current position. Nest A1, we have wrong coordinates. Repeat. We have wrong coordinates. (영어) 현 위치에서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 았다. 네스트 A1 좌표에 오류가 있다. 반 복한다. 좌표에 오류가 있다.

폭격기(수신음)

Re-confirm coordinates. ASAP! (영어) 치- 폭격위치 재확인 바람!!!

소령1 Sir, we have to change coordinates.

(영어) 대령님!! 좌표를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령

Why is there a difference between the missing point and the current point? (영어) 실종 지점과 다른 이유가 뭐지...?

소령2 There is some distance among the crashed planes.

Maybe there is some kind of mistake. (영어) 몇 대의 수송기와 전투기 실종 지점도 일정 157


부분 거리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좌표에서 문제 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군 장교 I think we are underestimating the situation.

We have to investigate further. (영어) 쉽게 판단할 사항이 아닙니다. 우선 좀 더 조사를... (소령이 말 자른다) 소령1 Obviously the enemy is there. What are you

hesitating for sir? (영어) 적의 존재가 분명한데 뭘 주저합니까? 한국군 장교 There is a chance of surviving civilians sir!

(영어) 민간인 지역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 자는 거요. 소령1 We don’t have any time to be sympathetic right

now. We can't afford to lose any more time! (영어) 이 상황에서 민간인을 동정할 시간이 없소! 그들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단 말이요! 한국군 장교 That is irresponsible sir!!

(영어) 그런 무책임한... 소령1 Chinese are on their way man! If we lose this

passage, this war will last much longer than we expected. 158


(영어) 중공군까지 개입한 상황에서 이 보급로를 확 보하지 못하면... 그만큼 이 나라의 전쟁도 길어질 거요. 한국군 장교 (할 말을 잃는다) ... ... !!

무전 교신음이 막사내부를 혼란스럽게 한다. 갈등하는 대령.

S#119. 산등성 N / EXT

대공포와 로켓포를 발사하는 치성, 현철, 택기... 하나 둘... 탄이 바닥나기 시작한다.

현철

서택기! 탄 더 없어...???

택기

이게 마지막입니다!!

치성

저 백당놈의 새끼들... 왜 폭격은 안 하는 거가!!!

택기

뭔가 좀 이상합니다!

현철

저 새끼들 그냥 지나치면 동막골은 끝장이야...

이때, 펑- 하며 조명탄이 터지고 사방이 대낮처럼 밝아진다. 현철일행이 서 있는 지점이 전투기에서 정확히 보인다. 놀 라서 뛰기 시작하는 현철 일행... 낮게 따라붙는 전투기의 시점 화면. 허수아비가 설치된 곳으로 달리는 세 사람...

159


전투기 조종사... 갑자기 눈동자가 커진다. “아니 저건....” 조종사의 눈에 정확히 보이는 허수아비들... “사람이 아니 잖아...”Oh Shit! It's fake!!

택기

(뭔가를 발견하고) 저거요...!

택기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치성, 현철... 허수 아비에 장착됐던 기관총이 보인다. 달려가 기관총을 빼내서 들고 둔덕 위로 올라간다. 날아오 는 전투기를 향해 정면으로 떡 버티고 선다. 소리를 지르며 기관총을 갈겨대는 세 사람... 전투기에 맞지 만 공기의 저항으로 모두 튕겨져 나간다. 전투기에서도 거세게 기관포를 발사한다. 양쪽 모두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맞대결을 벌인다. “조종석을 쏴요!!” 현철이 소리치자 일제히 조종석을 향해 기관총을 쏜다. 전투기 조종석 유리가 깨지면서 벌집이 되는 조종사. 거의 코앞까지 날아온 전투기에 불이 붙고는 폭발한다. 옆으로 재빨리 피하는 세 사람... 세차게 날아온 전투기의 잔해가 화면을 덮친다.

살벌한 교전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로 그냥 지나쳐 가는 폭

160


격기와 전투기... 끝내 좌절하고 마는 세 사람... 바닥에 풀썩 주저앉는 현 철... 비통한 표정이다.

택기

그냥 갑니다.

현철

(들고 있던 총을 폭격기가 사라진 곳에 던지며) ... 야 개새끼들아... 그냥 가면 어떡해...

좌절하는 현철... 눈에 물기가 고인다.

S#120. 폭격기가 떠 있는 상공 N / EXT

본부와의 혼란스런 교신 소음... ... ... ... ... 서서히 거대한 몸뚱이를 돌리는 폭격기... 그 뒤로 전투기들 따라서 돈다. 돌아오는 폭격기를 발견하는 세 사람... 서서히 다가오던 폭격기가 하단부 헷지를 연다.

현철

(위를 올려다보며) 그래... 그래... 착하지...

지상에 점처럼 보이는 지점으로 내려가는 포탄들... (시점 161


화면) 하늘을 올려다보던 치성, 현철, 택기의 표정이 한순간 ‘헉’하 고 굳는다. 새까맣게 하늘을 덮은 포탄들... 죽음의 공포가 세 사람의 얼굴을 뒤덮는다. 비처럼 쏟아지는 포탄들... 한 순간... 바람이 불어와 세 사람을 휘감고 지나간다. 여기에 신비한 음악 한 덩이... 하늘에서 내려오던 포탄들이 예전의 팝콘비로 디졸브된다.

S#121. 플래시백 / 몽타주

(영화 인트로에 들렸던 슬픈 아리아가 번지며...) / 팝콘 비 아래서 춤추는 이연. / 현철을 위해 기도해 주는 노모... 눈물 흘리는 현철. / 동구가 아버지를 외치며 치성에게 안기고 동구 모가 팔을 잡는다. / 꼬맹이들과 연주하고 인사하는 영희. / 이연이 수류탄 가락지를 보고 있고...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보는 택기. / 행복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는 현철과 치성. / 부락민들과 아이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S#122. 산등성 N / EXT

그들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거대한 포탄 밑에서 서로를 보

162


는 세 사람... 치성, 현철, 택기... 그렁그렁 눈물 맺힌 눈으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주인 공들. “우리 잘한 거지...”

S#123. 동막골 N / EXT

산 너머 먼 하늘에 섬광이 일고 있다. 신비한 듯 보고 있는 동막골 사람들. 멍한 표정의 김 선생... 뒤돌아서며 욕지거리를 하는 노모... 표정 없이 보는 촌장...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뛰어다니는 평화로운 동 막골...

S#124. 숲 어딘가 N / EXT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도 내지 못하고 들풀을 쥐어뜯으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스미스. 그 모습을 보는 한국군2... (F.O)

S#125. 산등성 아침 / EXT (눈이 내린...)

다음날 아침... 간밤에 내린 눈으로 전날 밤의 치열했던 흔적은 보이지 않 는다. 간혹 허수아비만이 비죽 튀어나와 있다.

163


짙게 깔린 안개... 안개 속에서 점차로 들어나는 형태들... 수색 나온 토벌대 다. 폭격지점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군홧발들... 문득, 그들 중 누군가의 시선... 눈 속에 파묻힌 인민군 군복 이 얼핏 보인다. 그런데... 그 옆에는 국군의 군복도 보인다. 알 수 없다는 듯 갸웃거리는 그의 표정에서 카메라 서서히 빠져 공중으로 올라간다. ... 여기에 나비 다섯 마리가 스윽 날아오른다.

현철

(소리)우리가 이긴 거... 맞죠?

치성

(소리) 고럼... 완전히 대승이디... 하하하..

상상

(소리) 나 솔직히... 아까는 도망가고 싶었어요... 노 을이 딱 지는데... 미치겠더라구.

택기

(소리) 지금 생각해 보니까 잘했다고 생각되지비...?

상상

(소리) 도망갔으면 자세 안 나오지...

영희

(소리) 아새끼래... 아까 우는 거 다 봐서야...

상상

(소리) 이 아저씨가 정말... 울기는 누가 울었다고...

영희

(소리) 창가나 한번 더 불러보라우..

상상

(소리) 지금 노래할 기분인 거 같아요?

나비를 따라 카메라 점점 올라가면서... 신비한 음성의 아리 아 시작되고,

164


차츰... 같은 방에서 세상모르고 잠자던 군인들의 모습으로 디졸브된다. 그들의 얼굴엔 모두 평온한 미소가 보인다. F.O

S#126. 에필로그

F.I 화면 밝아지면 프롤로그의 영상이 다시 보인다. 이 영상이 스미스가 찍은 것임을 알게 된다. 부락민과 군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행복해하던 그때가 고스 란히 담겨 있는 낡은 영상... 가슴시린 아리아가 계속 이어지면서 엔딩 크레딧 오른다.

끝.

165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