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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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 소설


진(秦)·한(漢)·위(魏)·진(晉)·송(宋)나라의 여러 황제


1. 진 시황(1) 제(齊)나라 격성(鬲城) 동쪽에 포대(蒲臺)가 있는데, 진 (秦) 시황[始皇: 영정(嬴政)]이 머물던 곳이다. 당시 진 시 황이 포대 아래에서 부들을 엮어 말을 매어놓았는데, 지금 도 부들이 자라면서 여전히 엮여 있기에 세간에서는 그것을 ‘시황의 부들[始皇蒲]’이라 부른다. 진 시황은 돌다리를 만들어서 바다를 건너가 해가 뜨는 곳을 보고자 했다. 당시 어떤 신인(神人)이 돌을 몰아 바다 로 내려가게 할 수 있었는데, 돌이 빨리 가지 않으면 신인이 곧 채찍질을 했기에 돌들이 모두 피를 흘렸으며, 지금까지 도 모두 붉은색이다. 양성(陽城)1) 땅의 열한 개 산의 돌들 은 모두 일어서서 동쪽으로 기울어져 마치 서로 따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진 시황이 바닷속에 돌다리를 만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말했다. “이 돌다리는 사람의 공력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바다

1) 양성: 양성은 당시 초(楚)나라 지역에 있었고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덩펑 현(登封縣) 동남쪽에 해당하므로 지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회계삼부주≫ 에는 ‘성양(城陽)’이라 되어 있는데 이것이 타당하다. 성양은 전한 문제(文帝) 가 주허후(朱虛侯) 유장(劉章)을 성양왕으로 봉하고 내린 봉지로 후한 때 군 (郡)이 되었으며, 치소(治所)는 지금의 산둥성(山東省) 쥐현(莒縣)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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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그를 위해 기둥을 세워준 것이다.” 진 시황이 그 은혜에 감동하여 바다 신에게 경배하기 위 해 만나보기를 청했더니, 바다 신이 말했다. “나는 모습이 추하니 나의 모습을 그리지 않겠다고 약속 하면 황제와 만나겠다.” 그래서 진 시황은 돌다리를 따라 바닷속으로 30리를 들 어가 신인을 만났다. 그런데 좌우에 있던 솜씨 좋은 사람이 은밀히 교각에 바다 신의 모습을 그렸더니, 바다 신이 노하 여 소리쳤다. “속히 떠나라!” 진 시황은 즉시 말머리를 돌렸는데, 앞의 교각은 그대로 있었지만 뒤의 교각은 발걸음을 따라서 무너졌기에 겨우 해 안에 올라갈 수 있었다.

齊鬲城東有蒲臺, 秦始皇所頓處. 時始皇在臺下縈蒲 繫馬, 至今蒲生猶縈, 俗謂之‘始皇蒲’. 始皇作石橋, 欲過海觀日出處. 時有神人能驅石下海, 石去不速, 神人輒鞭之, 皆流血, 至今悉赤. 陽城十一 山石盡起東傾, 如相隨狀, 至今猶爾. 秦皇於海中作石橋, 或云: “非人功所建, 海神爲之豎 柱.” 始皇感其惠, 乃通敬於神, 求與相見. 神云: “我形 醜, 約莫圖我形, 當與帝會.” 始皇乃從石橋入海三十 里, 與神人相見. 左右巧者潛以脚畫神形, 神怒曰: “速 去!” 卽轉馬, 前脚猶立, 後脚隨崩, 僅得登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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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설부(說郛)≫ 권25. * 참조: ≪태평광기(太平廣記)≫ 권408, ≪감주집(紺珠集)≫ 권2, ≪유설(類說)≫ 권49, ≪회계삼부주(會稽三賦注)≫

2. 진 시황(2) 진 시황 때 거인 열두 명이 임조(臨洮)2) 땅에 나타났는데, 모두 이복(夷服)3) 지역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열두 명의 동 상을 주조하여 그 일을 기록했다. 아마도 한(漢)나라 열두 황제의 출현을 예견한 길조였던 것 같다.

秦始皇時, 長人十二, 見於臨洮, 皆夷服. 於是鑄銅爲 十二枚以寫之. 蓋漢十二帝之瑞也.

* 출전: ≪태평광기≫ 권135.

2) 임조: 옛 현 이름. 진나라에서 장성(長城)을 축조할 때 서쪽의 시작을 이곳 으로 했다. 지금의 간쑤성(甘肅省) 민현(岷縣)에 있다. 3) 이복: 주(周)나라 때 왕기(王畿: 도성을 중심으로 사방 1000리) 밖으로 500 리마다 차례로 설정한 구역인 구복[九服: 후복(侯服)·전복(甸服)·남복(男 服)·채복(采服)·위복(衛服)·만복(蠻服)·이복(夷服)·진복(鎭服)·번 복(藩服)] 가운데 하나. 만복으로부터 사방 500리 밖의 지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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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周)·육국(六國)·전한(前漢) 사람


* 출전: ≪설부≫ 권25. * 참조: ≪충파전≫, ≪역사(繹史)≫ 권95.

44. 공자와 자로 공자가 한번은 산을 유람하다가 자로에게 물을 떠 오라고 했는데 물이 있는 곳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자로는 호랑이 와 맞붙어 그 꼬리를 잡아 죽여 꼬리를 가슴속에 넣고 물을 떠 가지고 돌아와 공자에게 물었다. “상사(上士)는 호랑이를 죽일 때 어떻게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상사는 호랑이를 죽일 때 그 머리를 잡느니라.” “중사(中士)는 호랑이를 죽일 때 어떻게 합니까?” “중사는 호랑이를 죽일 때 그 귀를 잡느니라.” “하사(下士)는 호랑이를 죽일 때 어떻게 합니까?” “하사는 호랑이를 죽일 때 그 꼬리를 잡느니라.” 자로는 호랑이 꼬리를 꺼내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공자 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선생님께서 물가에 호랑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 더러 물을 떠 오라고 하신 것은 저를 죽이고자 하신 것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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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가슴에 석판을 숨기고 있다가 공자를 맞히려 하면 서 또 물었다. “상사는 사람을 죽일 때 어떻게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상사는 사람을 죽일 때 붓끝을 사용하느니라.” “중사는 사람을 죽일 때 어떻게 합니까?” “중사는 사람을 죽일 때 혀끝을 사용하느니라.” “하사는 사람을 죽일 때 어떻게 합니까?” “하사는 사람을 죽일 때 석판을 가슴에 품느니라.” 그러자 자로는 석판을 꺼내 던져버리고 마침내 진심으 로 감복했다.

孔子嘗游於山, 使子路取水, 逢虎於水所, 與共戰, 攬 尾得之, 內懷中, 取水還, 問孔子曰: “上士殺虎如之 何?” 子曰: “上士殺虎持虎頭.” 又問曰: “中士殺虎如 之何?” 子曰: “中士殺虎持虎耳.” 又問: “下士殺虎如 之何?” 子曰: “下士殺虎捉虎尾.” 子路出尾棄之. 因恚 孔子曰: “夫子知水所有虎, 使我取水, 是欲死我!” 乃 懷石盤, 欲中孔子, 又問: “上士殺人如之何?” 子曰: “上士殺人使筆端.” 又問: “中士殺人如之何?” 子曰: “中士殺人用舌端.” 又問: “下士殺人如之何?” 子曰: “下士殺人懷石盤.” 子路出而棄之, 於是心服. * 출전: ≪설부≫ 권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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因擲之, 正斫所欲. 後果爲蜀郡守.

* 출전: ≪태평광기≫ 권137. * 참조: ≪녹이전(錄異傳)≫, ≪유명록≫

58. 동방삭(1) 한 무제[武帝: 유철(劉徹)]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133) 의 초상을 보더니 동방삭(東方朔)134)에게 물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동방삭이 대답했다. “옛날의 어리석은 필부(匹夫)이옵니다.” 무제가 말했다. “무릇 백이와 숙제는 천하의 청렴한 선비인데 어찌하여 어리석다고 하는가?”

133) 백이와 숙제: 은(殷)나라 말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 고죽군이 셋째 아들 숙제를 왕위 계승자로 정했는데 그가 죽은 뒤 숙제가 맏형 백이에게 왕위 를 양보했으나 백이가 받지 않았다. 나중에 두 사람은 주나라로 가서 주 무왕 이 은나라를 정벌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결국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하자 함께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 죽었다. 134) 동방삭: 자는 만천(曼倩). 박학다식하고 해학과 골계에 능했으며 지혜와 언변에 뛰어나 무제의 총애를 받았다. <답객난(答客難)>과 <칠간(七 諫)> 등의 작품이 세상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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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삭이 대답했다. “신이 듣자오니 현자는 세상에 머물 때 세상의 추이(推 移)와 함께하며 외물(外物)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하옵니다.

저들은 어찌하여 주(周)나라의 조당(朝堂)에 올라 주나라 의 술을 마시면서 마치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오리처럼 주나 라 사람들과 함께 노닐지 않았던 것인지요? 천자께서 거처 하시는 도성에서도 은거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스스로 수 양산(首陽山)에서 고통을 겪은 것인지요?” 무제는 그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漢武帝見畫伯夷·叔齊形像, 問東方朔: “此何人?” 朔 曰: “古之愚夫.” 帝曰: “夫伯夷·叔齊, 天下廉士, 何 謂愚耶?” 朔對曰: “臣聞賢者居世, 與時推移, 不凝滯 於物. 彼何不升其堂, 飮其漿, 泛泛如水中之鳧, 與彼 俱遊? 天子轂下, 可以隱居, 何自苦於首陽乎?” 上喟 然而嘆.

* 출전: ≪태평광기≫ 권173. * 참조: ≪동방삭전(東方朔傳)≫, ≪속담조≫ 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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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魏)나라 사람


“당신을 곧게 펴는 게 급한데 죽는 일 따위를 내가 어찌 알겠소?”

平原人有善治傴者, 自云: “不善人, 百一人耳.” 有人 曲度八尺, 直度六尺, 乃厚貨求治. 曰: “君且伏.” 欲上 背踏之, 傴者曰: “將殺我!” 曰: “趣令君直, 焉知死事?” * 출전: ≪속담조≫ 권4. * 참조: ≪소림≫

107. 가난한 독장수 항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재산이라고는 달랑 독 하나밖에 없는 어떤 가난한 사람 이 밤에 그 독 속에서 잠을 자다가 마음속으로 계산하며 말 했다. “이 독을 내다 팔아 그 이문이 이미 배가 남으면, 나는 배 가 남은 이문으로 마침내 두 개의 독을 살 수 있고, 두 개의 독이 네 개가 될 것이다. 그렇게 소득이 갑절씩 불어나면 그 이득이 무궁할 것이다.” 이렇게 기뻐하며 춤을 추다가 자기도 모르게 독이 깨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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俗說: 有貧人止能辦隻甕之資, 夜宿甕中, 心計曰: “此 甕賣之若干, 其息已倍矣. 我得倍息, 遂可販二甕, 自 二甕而爲四. 所得倍息, 其利無窮.” 遂喜而舞, 不覺 甕破.

* 출전: ≪사문유취≫(前集) 권36. * 참조: ≪기찬연해≫ 권84.

108. 동소 동소(董昭)266)는 위(魏) 무제[武帝: 조조(曹操)]의 중신이 었으나 나중에 권세를 잃었다. 문제[文帝: 조비(曹丕)]·명 제[明帝: 조예(曹叡)] 시대에는 벼슬이 낮아져 위위(衛尉) 가 되었다. 동소는 궁중 광대들을 후하게 생각해 주었다. 정 월 초하루 큰 조회에서 광대가 동위위의 우는 얼굴을 흉내 내면서 옛날 태조(太祖: 조조) 때의 일을 이야기했더니 온 좌중이 크게 웃었다. 명제는 슬퍼하며 기뻐하지 않았으며, 266) 동소: 자는 공인(公仁). 처음에는 원소(袁紹)를 섬기다가 나중에는 조조 에게 귀의하여 천추정후(千秋亭侯)에 봉해지고 사공좨주(司空祭酒)에 임명 되었다. 문제 때는 대홍려(大鴻臚)와 시중(侍中)을 지내고 우향후(右鄕侯) 에 봉해졌으며, 명제 때는 위위로 전임되었다가 태화(太和) 4년(230)에 사도 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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