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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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1)

1) ‘빵집’ 혹은 ‘빵 가게’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브레히트의 미완성 희곡 10편 가운데 하나다. 1929년에서 1930년 사이에 쓰였다. 당시 베를린에 몰아닥친 경기 침체와 경제 위기, 그리고 수많은 실업자들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의 중심은 일곱 아이를 키우는 과부 니 오베 크베크 이야기다. 그녀와 함께 젊은 신문팔이, 빵집 주인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세 개의 장면 가운데 ‘크베크 부인 의 나무’와 ‘빵으로 싸우는 전투와 마이어의 죽음’은 1958년 처음으로 ≪의미와 형식(Sinn und Form)≫이라는 잡지에 실렸다. 여기에 덧 붙인 것이 ‘푼돈을 위한 싸움’이다. 이 부분은 타자한 미발표 원고에서 찾은 것이다. 노래와 가곡들은 브레히트의 시집에 실린 것이다.



나오는 사람들

울리세스 슈미트 워싱턴 마이어 크베크 부인 아이약스 야누셰크 야누셰크 부인 마이닝거 플람 로이터 알폰스 디트마이어 부인 프란츠케 부인 히플러 마셔 뵐케 구세군 경찰 세 든 사람들 실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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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돈을 위한 싸움

(실업자들이 관객을 향해 몸을 돌린다.)

실업자들 당신들, 지금 막 밥을 먹고 이곳에 온 당신들.

당신들 앞에서, 당신들이 이미 먹은 밥을 위해, 우리에겐 정말 아주 조그만 만족밖에 줄 수 없었던 밥을 먹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우리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합니다. 그러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우리를! 그러나 먹을 것과 일자리를 찾을 때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규칙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그 규칙은 끝없이 밑으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아스팔트에 생긴 틈을 통해 아래로, 밑으로 떨어집 니다. 갖가지 인간들이 표시도 없이, 흔적도 없이 밑으로, 갑자기, 소리 없이, 재빨리 밑으로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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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걸어가다가, 유쾌하게 밑으로 사라집니다.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알 수 없는 기준으로 일곱 사람 가운데 여섯 사람은 밑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일곱째 사람은 식당에 밥 먹으러 갑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그렇게 될까요? 그렇다면 구원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알 수 있죠? 어디에 다음 사람이 떨어질 구멍이 있죠? 아무도 모릅니다.

(신문 판매업자 울리세스 슈미트, 실업자들을 향해 몸을 돌 린다.)

울리세스 슈미트 너희들! 거기 있는 놈들! 난 지금 신문을 가

져다주고 신문을 사기 위해 가게로 찾아오는 고객을 불러올 놈이 필요해. 왜냐하면 요즘엔 신문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었기 때 문이지. 내가 신문을 팔기 위해 돌아다닐 수는 없어. 난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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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지켜야지.

(실업자로 인정받아 정부 보조금을 받는 사람들이 양철 접 시에서 양철 숟가락으로 계속해서 뭔가를 떠먹는다.)

실업자로 인정된 실업자들 우린 당신이 원하는 그따위 한철

장사에는 관심이 없어. 실업자들 우리 가운데 골라 주세요. 주인님으로 모시겠습니

다. 우린 모두 신문 배달을 하고 싶어요. 울리세스 슈미트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냐. 너, 가

족이 있어?

(첫째 실업자, 고개를 끄떡인다. 둘째 실업자, 첫째 실업자 앞으로 나오며)

둘째 실업자 난 가족이 없어요. 실업자들 저놈은 주정뱅이야. 셋째 실업자 (둘째 실업자 앞으로 나오며) 난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어요. 짐꾼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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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실업자 (셋째 실업자 앞으로 나오며) 넌 너무 늙었어. 워싱턴 마이어 (네 사람 다리 사이에서 기어 나와 앞에 선다.)

내가 더 젊죠. 울리세스 슈미트 따라와. (신문 한 뭉치를 마이어에게 건네

준다.) 넷째 실업자 (마이어를 붙들어 세운다.) 이것 봐, 워싱턴! 난

어떻게 해? 내 몫은 전혀 없어? 나한테 떨어진 일거리를 가로채 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할 거야? 워싱턴 마이어 조금 기다려 에드문트. 일이 잘 진행되는 대

로 어떻게 해 볼게. 우선은 일자리가 확실해져야지, 안 그래? (슈미트를 따라간다.) 실업자로 인정된 실업자들 신문 10부를 팔아야 한 푼을 벌 수

있다니! 사업성이 없군. 실업자들 울리세스 슈미트. 싸울 줄 아는 싸움꾼. 이제 신참

에게 교육을 하는군. 장사 원칙을 알려 주고 있어. 울리세스 슈미트 여기 신문 10부가 있어. [저리 치우지 못해!

아직은 손대지 마!] 이게 무조건 열 푼이 돼야 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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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은 네 거야. 아홉은 내 거고. [똑바로 서! 건들거리 지 말고!] 넌 누구야? 아무것도 아냐. 단지 빵 달라고 외치는 구멍일 뿐이야. 빵을 처먹고 싶어 하는 주둥 이일 뿐이지! 그런데 여기 신문이 있어. 여기 있는 신문 10부가 네가 가진 전부야. 이게 지푸라기고, 밧 줄이고, 섬이고, 널 구해 주는 닻이야. 알아? 처먹든, 덮고 자든, 깔고 앉아 술을 마시든, 이게 이 세상이 널 위해 마련한 전부야. [훌쩍거리지 마!] 누군가 이 걸 뺏으려고 하면, 그놈은 네 원수야. 사람들이 아무 도 이 신문을 사려고 하지 않으면 결국 그놈들이 널 죽이는 거야. [정신 차리고 똑똑히 잘 들어!] 열 번은 시험해 볼 수 있어. 용기를 가지고, 강하게, 참아 가 면서.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넌 차라리 태어나지 말 았어야 해. 그런 놈은 땅에 흐르는 강물 한 모금 마시 는 것도 아까울 지경이니까. 물론 넌 아주 센 놈은 아 냐. 하지만 눈감아 주기로 했어. 이제 곧 강해질 테 니까. 하지만 만일 네가 돈을 벌어 오지 못하면, 이 신문을 팔지 못하면, 다른 놈들처럼 네 머리통을 부 숴 버리겠어. (워싱턴 마이어, 신문을 팔기 위해 밖 으로 나간다.) 실업자들 이제 넌 혼자야. 그리고 시작해야지. 스스로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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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야 해! 지금이 어떤 세상인지 넌 알고 있어. 네가 속해 있는 현실이 네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이제 세상과 거래를 시작 해!

기계적인 표현2): 신문팔이 길거리의 움직이는 벨트 위에서 워싱턴 마이어가 신문을 팔 고 있다. 그는 빵 제조업자 마이닝거, 시민들을 설득하는 구 세군 소령, 목재상 로이터, 부동산 중개인 플람, 니오베 크 베크 부인을 만난다. 우선 그는 “신문이오! 신문!” 하고 외친

2) 브레히트가 메이예르홀트의 ‘생체역학’적인 표현법으로 연기하도록 강조한 부분이다. 메이예르홀트는 1898년부터 1902년까지 스타니 슬랍스키와 함께 모스크바 예술극장을 운영했다. 그는 1917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정치 적인 동시에 문화적인 운동으로 시작한 ‘연극 10월 운동’의 일환으로, 배우 1만 5천 명을 등장시켜 관객 10만 명 앞에서 <겨울 궁전 공 격>을 공연했다. 정치 선동적인 연극 형식으로, 그로테스크하면서 도 인상주의적인 신체 표현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배우들에게 ‘기계 적인 표현’으로 연기하도록 요구했다. 즉, 마임으로 연기하면서 마치 기계 부품처럼 반복해서 동작을 재현함으로써 전체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도록 의도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부록 <연극을 위한 짧 은 오르가논> 73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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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때는 그가 서 있는 벨트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하 나도 팔지 못한다. 실업자들이 그에게 충고한다. “신문에 있는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려 줘!” 다시 외친다. “자본주의 자들(Burschuasie)의 진실! 시의회의 목재 구입 뒷거래!” 부 동산 중개업자 플람, 스쳐 지나가면서도 신문을 사지 않는 다. 실업자들이 다시 한 번 뭔가를 알려 준다. “왜 거물급들 이 돈을 주고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지 알아야 합니다. 거물 급 인사들의 비밀! 인간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희망은 죽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입장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행동도 멈췄습니다.” 신문을 들여다보고 뭔가를 찾아내서 말한다. “그래서 난 누가 무엇 을 원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밝 혀내고자 합니다.” 이제부터 마이어는 두 개의 각기 다른 기 사 내용을 인용한다. 그동안 그가 서 있는 벨트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선은 “서쪽 지역, 성탄절 밤을 위한 비상경계망 확보”, 그다음엔 “자본가들의 진실을 밝힌다! 시의회에서 목재를 구입할 때 뒷거래가 있었다”. 그는 “비상경계망 확 보” 내용을 담은 신문을 빵 제조업자 마이닝거에게, 부동산 중개업자 플람에게, 목재상 로이터에게 권한다. 그들은 신 문을 산다. “자본주의자들의 진실”을 담은 신문을 남루한 옷차림을 한 구세군 소령에게 내밀어 보지만 그는 사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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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다. 대신 그는 지나갔다가 잠시 뒤 다시 돌아와 “비상경계 망 확보” 신문을 구입한다. 그래서 마이어는 “비상경계망 확보” 신문을 가난한 니오베 크베크 부인에게도 권하고, 나 중에는 빵 만드는 아이약스 야누셰크에게도 권한다.

크베크 부인 (워싱턴 마이어에게) 야누셰크 씨를 조심해요.

성질이 아주 고약하니까. 저 사람은 절대 돈을 내지 않을 거예요. (퇴장한다.) 워싱턴 마이어 어디 돈을 내는지 안 내는지 두고 봅시다. 여

기 신문을 이렇게 펼쳐 놓고, 하나를 집으면, 나에게 한 푼을 내야지. (신문을 집 모퉁이에 펼쳐 놓는다.) 실업자들 이때야! 아이약스 야누셰크! 등장해! 한 방에 날려

버려! 나비처럼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이약스 야누셰크가 등장해서 신문을 집어 들고 퇴장한 다.)

(웃음을 터뜨리며) 이제 널 고용한 사람이 네 머리통 을 부숴 버릴 거야. 워싱턴 마이어 만일 매일 밤 싸움에 익숙한 야누셰크가 신문

을 집어 가면서도 돈을 내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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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된다면, 10부를 팔아야 한 푼을 버는 내 몫은 어떻 게 되는 거지? 남들이 모두 다 지켜보는 공공장소에 서 힘이 세다고, 싸움을 잘한다고, 이렇게 신문을 훔 쳐 간다면 난 어떻게 하지? (그는 힘없이 주저앉아 운다. 그러다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알겠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꾀를 써야지! (그는 위에 있는 창문을 향해 외친다.) 야누셰크 부인!

(야누셰크 부인, 창문을 내다보며 뭐라고 소리 지른다.)

당신 아들인 야누셰크 씨가 여기서 신문을 한 부 가 져가고는 돈을 안 냈어요! 야누셰크 부인 난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내 아들이 신문을

가져갔으면, 내 아들이 돈을 내야지. 왜 나한테 그 래? (퇴장한다.) 워싱턴 마이어 늙은 젖소 같은 년! (한참 생각한다.) 저기 쓰

레기통이 있구나. 이제 됐다. 이게 바로 물에 빠진 사람도 건진다는 지푸라기고, 밧줄이고, 조난당한 사람들을 위한 섬이고, 구원의 닻이야! (그는 쓰레기 통을 어느 한 지점에 옮겨 놓는다. 그런 다음 신문은 다른 곳에 놓아 둔다.) 그놈은 내 원수야. 날 죽일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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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내가 죽는 모습을 보여 줘야지. 신문을 이렇게 나란히 펼쳐 놓아야지. 하나씩. 저 늙은 여자가 지켜 볼 수 있도록. 나도 여기 이렇게 누워 있어야지. 저 여자가 자기 아들이 신문 훔치는 걸 보지 않으면 절 대 믿지 않을 테니까. 저 여자에게 돈 한 푼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보여 줘야 믿을 거야. (그는 바닥 에 주저앉아서 쓰레기통 밑 부분을 칼로 파서, 자기 머리를 숨길 수 있는지 시험해 본다.) 실업자들 (그동안 관객을 향해 몸을 돌리고) 이제 저 친구는

정치가처럼 행동합니다. 정치가 워싱턴 마이어는 원 칙에 따라, 밑바닥까지 지배한다는 원칙에 따라, 폭 력에 대항해서 자신의 생명을 숨깁니다! 만일 폭력 이 텅 빈 곳을 공격하면 폭력은 자연히 약해질 수밖 에 없기 때문이죠. 왜 이 쓰레기통을 가지고 꾀를 부 려 볼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기계적 표현: 싸움 아이약스 야누셰크가 돌아와 다시 한 번 신문을 훔친다. 워 싱턴 마이어가 달려들어 그의 몸을 붙들고 머리 위에서 외 친다. “야누셰크 부인! 보세요. 야누셰크 부인!” 야누셰크가 그를 가볍게 밀쳐서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그는 계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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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친다. “야누셰크 부인. 보세요. 여길 보세요. 야누셰크 부 인!”, 마이어는 다시 야누셰크에게 달려든다. 그래서 이제 정식으로 마이어와 야누셰크 사이에 주먹다짐이 시작된다.

실업자들 (그동안 관객에게로 몸을 돌려서) 아직 저 친구는

허약하지만 그래도 싸웁니다. 약한 사람은 결국 터 질 수밖에 없죠. 싸우는 동안에는 말이죠. 그러나 이 제 곧 저 약한 친구가 꾀를 써서 이기고, 강한 자가 될 겁니다. 원수의 주먹에 맞아 쓰레기통에서 뒹굴 면서. 때리는 자는 잠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자기가 휘두른 주먹에 맞아 강철로 만들어진 쓰레기통 바닥 에 불쌍한 머리통이 처박혀서, 한 생명이 죽게 되었 다고.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야누셰크 부인 눈에 띄기 위해 꾸민 것. 그래서 때린 자를 깜짝 놀라게 해 대가 를 치르게 하자는 거죠. (야누셰크 부인이 다시 창밖 으로 얼굴을 내밀며 외친다. “아이약스.” 야누셰크 가 놀라서 뒤돌아본다. 바로 이 순간 싸우던 마이어 는 “야누셰크 부인” 하고 외치면서 쓰레기통 안으로 떨어진다. 그러고는 미리 파 놓은 쓰레기통 밑바닥 에 있는 구멍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민다. 마치 얻어 맞아서 머리통이 튀어나온 것처럼. 야누셰크는 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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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려서 쓰레기통 밖으로 나온 마이어의 머리를 쳐다 보고는, 어머니가 보지 못하게 숨기려 한다. 그러고 는 “내가 두 배로 물어 줄게! 두 배를 낼게! 네가 다시 눈을 뜬다면!” 하고 말한다. 워싱턴 마이어는 두 눈 을 감은 채로 “세 배로 갚아야지!” 하고 말한다. 야누 셰크가 말한다. “그래. 세 배로 갚을게!” 워싱턴 마이 어는 “이제 눈떴다” 하면서 두 발로 일어나 몸을 편 다. 야누셰크는 주저앉아 흐느껴 울면서, “우리 엄마 가 저렇게 늙은 나이에, 이렇게 무너지는 내 모습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참을 수가 없어.” 그는 울 면서 동전 한 푼을 마이어에게 주고는 강하게 부르 는 자신의 엄마를 향해 집으로 돌아간다.) 워싱턴 마이어 한 푼이라! 그래도 어쨌든 한 푼이니까! (싸움

으로 피범벅이 되어 누더기 같은 모습으로 그는 실 업자들에게 동전을 보여 준다.) 실업자들 운이 좋았어! 실업자로 인정받은 실업자들 그렇게 힘들게 노력했지만 한 푼

뿐이야. 꽉 움켜쥔 주먹을 깨뜨리고 힘들게 건져 올 린 게 겨우 한 푼이야. 실업자들 그래도 저 친구는 자기 몫을 얻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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