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집_맛보기

Page 1

茶館 찻집


나오는 사람들

왕리파(王利發): 남자. 처음 우리(관객 내지 독자)와 만났 을 당시 나이는 20여 세.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젊은 시절부터 위타이(裕泰) 찻집의 주인이 되었다. 똑 부러지고 약간은 이기적이지만 마음씨가 나쁘지는 않다. 탕톄쭈이(唐鐵嘴): 남자. 30여 세. 관상 보는 일이 주업이 며, 아편을 피운다. 쑹 대인(松二爺): 남자. 30여 세. 겁이 많고 말하기를 좋아 한다. 창 대인(常四爺): 남자. 30여 세. 쑹 대인의 친한 친구. 두 사람 모두 위타이 찻집의 단골이다. 정직하고 체격이 좋다. 리싼(李三): 남자. 30여 세. 위타이 찻집의 종업원. 부지런 하고 마음씨가 좋다. 얼더쯔(二德子): 남자. 20여 세. 심부름을 잘한다. 마 대인(馬五爺): 남자. 30여 세. 서양 종교를 믿는 건달. 류마쯔(劉麻子): 남자. 30여 세. 중매쟁이로 마음씨가 매 우 나쁘다. 캉류(康六): 남자. 40세. 근교의 가난한 농민. 황 뚱보(黃胖子): 남자. 40여 세. 건달패 우두머리. 19


친중이(秦仲義): 남자. 위타이 찻집의 건물주. 제1막에서 는 20여 세. 부잣집 젊은 주인이지만 나중에 유신(維新)을 외치는 자본가가 된다. 노인: 남자. 82세. 의지할 데 없는 인물. 시골 아낙: 여자. 30여 세. 가난한 나머지 딸을 판다. 계집아이: 여자. 10세. 시골 아낙의 딸. 팡 태감(龐太監): 남자. 40세. 돈을 번 후에 마누라를 들이 려 한다. 샤오뉴(小牛): 남자. 10여 세. 팡 태감의 서동(書童). 쑹언쯔(宋恩子): 남자. 20여 세. 구식 특무. 우샹쯔(吳祥子): 남자. 20여 세. 쑹언쯔의 동료. 캉순쯔(康順子): 여자. 제1막에서는 15세. 캉류의 딸. 팡 태감에게 팔려 간다.

왕수펀(王淑芬): 여자. 40여 세. 왕리파의 처. 남편보다 정 직하고 공평하다. 순경: 남자. 20여 세. 신문팔이: 남자. 16세. 캉다리(康大力): 남자. 12세. 팡 태감이 사들인 의붓아들. 후에 캉순쯔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라오린(老林): 남자. 30여 세. 탈영병. 20


라오천(老陳): 남자. 30세. 탈영병. 라오린의 동생. 추이주펑(崔久峰): 남자. 40여 세. 국회의원을 지냈고, 후 에 도를 닦으며 위타이 찻집에 딸린 숙소에 산다. 장교: 남자. 30세.

왕다솬(王大拴): 남자. 40세 전후. 왕리파의 큰아들. 사람 됨이 정직하다. 저우슈화(周秀花): 여자. 40세. 왕다솬의 처. 왕샤오화(王小花): 여자. 13세. 왕다솬의 딸. 딩바오(丁寶): 여자. 17세. 여자 종업원. 담이 크고 식견이 있다. 류마쯔 아들: 남자. 30여 세.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발 전시킨다. 전기세 수납원: 남자. 40여 세. 탕톄쭈이 아들: 남자. 30여 세. 아버지의 일을 계승하여 천 사(天師: 도사)가 되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다. 밍 사부(明師傅): 남자. 50여 세. 술집 운영을 책임지는 주 방장. 쩌우푸위안(鄒福遠): 남자. 40여 세. 평서(評書) 공연의 대 가. 웨이푸시(衛福喜): 남자. 30여 세. 쩌우푸위안의 후배로서 21


평서 공연을 하다가 나중에 경극으로 분야를 바꾼다. 팡류(方六): 남자. 40여 세. 소고를 치며 사기에 능하다. 처당당(車當當): 남자. 30세 전후. 현양(現洋) 매매로 생계 를 꾸린다. 팡 마님(龐四奶奶): 여자. 40세. 추악한 인물로 황후가 되 려 한다. 팡 태감의 넷째 조카며느리. 춘메이(春梅): 여자. 19세. 팡 마님의 몸종. 라오양(老楊): 남자. 30여 세. 온갖 물건을 판매한다. 얼더쯔 아들: 남자. 30세. 얼더쯔의 아들로 싸움꾼. 위허우자이(于厚齋): 남자. 40여 세. 초등학교 교사. 왕샤 오화의 선생님. 셰융런(謝勇仁): 남자. 30여 세. 위허우자이의 동료. 쑹언쯔 아들: 남자. 30여 세. 아버지의 뒤를 이어 특무가 된 다. 우샹쯔 아들: 남자. 30여 세. 아버지의 뒤를 이어 특무가 된 다. 샤오신옌(小心眼): 여자. 19세. 종업원. 천 처장(沈處長): 남자. 40세. 헌병 사령부 처장.

찻집 손님 몇몇은 모두 남자. 찻집 종업원 한두 명은 모두 남자. 22


난민 수 명, 남녀노소가 섞여 있다. 무장 군인 서너 명은 모두 남자. 투숙객(학생) 수 명은 모두 남자.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 일곱 명은 모두 남자. 헌병 네 명은 모두 남자. 양 바보(傻楊): 남자. 수라이바오(數來寶)를 하는 인물.

23


제1막

인물: 왕리파, 류마쯔, 팡 태감, 탕톄쭈이, 캉류, 샤오뉴, 쑹 대인, 황 뚱보, 쑹언쯔, 창 대인, 친중이, 우샹쯔, 리싼, 노인, 캉순쯔, 얼더쯔, 시골 아낙, 계집아이, 찻집 손님 갑을병정, 마 대인, 찻집 종업원 한두 명. 시간: 1898년(무술년) 초가을, 캉유웨이(康有爲)와 량치차 오(梁啓超) 등의 유신운동이 실패한 무렵의 아침나절. 장소: 베이징, 위타이 찻집.

막이 열리면 보이는 찻집. 이런 커다란 찻집은 이제는 찾아 볼 수 없다. 몇십 년 전에는 각 도시에 최소한 한 군데 정도 는 있었다. 여기에서는 차를 팔기도 하고 간단한 간식이나 밥을 팔기도 한다. 애완용 새를 키우는 사람들은 매일 멧새 나 꾀꼬리 등을 데리고 돌아다니다가 여기에 와서 쉬면서 차를 마시기도 하고 새들이 노래를 부르게도 한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중매를 서려는 사람들도 여기로 온다. 당 시에는 항상 싸움이 있곤 했지만, 나서서 양측을 화해시키 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리를 지어 싸우다가도 화해시키는 사람이 나서서 이리저리 설득하면 모두 차를 마시거나 밀국 25


수(찻집의 특산품으로 가격도 저렴하고 빨리 먹기에 안성맞 춤이었다)를 먹으면서 싸울 일도 평화롭게 끝내곤 했다. 요 컨대 이곳은 당시로서는 매우 중요한 곳이었고, 일이 있든 없든 앉아서 반나절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여기에서는 아주 황당한 소식을 들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느 곳의 거미가 어떻게 애벌레가 되었다가 전기 충격을 받았나 하는 것들이다. 기괴한 의견 또한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바닷가에 담장을 쌓아서 서양 군대가 상륙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식의 말들이다. 여기에서는 또한 어떤 경극 배우가 어떤 곡조를 새롭게 만들었다든가 아편을 피우는 가 장 좋은 방법 같은 것도 들을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이 새로 얻은 진귀한 물건, 즉 출토된 옥 부채라든가 삼색 담배 주전 자 같은 것들을 볼 수도 있다. 여기는 정말로 중요한 곳으로 서 문화 교류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찻집을 보려고 한다. 문을 들어서면 계산대와 부뚜막이 있다. 번거롭지 않게 하 기 위해서 우리 무대에는 부뚜막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 다. 뒤편에서 나는 솥뚜껑 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집은 매 우 높고 크다. 네모난 탁자가 놓여 있고, 긴 의자와 조그만 의자가 있는데 모두 차를 마시기 위한 좌석이다. 창문 너머 로 뒷마당이 보이고 천막이 높다랗게 쳐져 있다. 천막 아래 26


에도 좌석이 있다. 집 안과 천막 아래에는 모두 새장을 걸어 놓는 곳이 있다. 여기저기에 ‘나랏일은 논하지 말 것이라고 ’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손님 두 명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흔들고 판을 두드리면서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역시 이름 을 모르는 두세 명의 손님들이 와관(瓦罐)1) 안의 귀뚜라미 를 흥미진진하게 감상하고 있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쑹 언쯔와 우샹쯔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모습을 보자 면 그 사람들은 북쪽 관아의 사건 처리를 하는 사람들(수사 관)이다. 오늘 또 사람들을 많이 끌어모으게 된 것은, 들리는 말로는 닭 한 마리 때문에 무력을 써서 해결해야만 하는 다툼이 있 다는 것이다. 만약 정말 싸움이 일어나면 인명 피해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약속된 선수들 중에는 싸움을 잘 하는 형씨들과 군인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들은 모두 매우 지독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진짜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 다. 왜냐하면 쌍방이 아직 싸움 약속을 하지도 않았는데 사 람들이 조정을 해서 지금 여기에서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모여 있는 선수들은 모두 눈을 부라리면서 간단하

1) 질항아리.

27


게 분장을 하고 수시로 마당을 드나든다. 마 대인이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구석에 혼자 앉 아서 차를 마시고 있다. 왕리파는 계산대에 높이 앉아 있다. 탕톄쭈이가 신발을 끌면서 몸에는 길고도 더러운 두루마기 를 걸치고 귀에는 종잇조각 몇 장을 끼우고 들어온다.

왕리파: 탕 선생, 바깥에 좀 계세요! 탕톄쭈이: (쓴웃음을 지으며) 주인장, 탕톄쭈이 좀 치켜주 구려! 차 한 잔 주시면 관상을 좀 봐드리리다! 수상은 서비스 니까 한 푼도 받지 않겠소이다!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왕리 파의 손을 끌며) 금년은 광서(光緖) 24년 무술년(戊戌年)이 오. 올해 연세가…. 왕리파: (손을 빼며) 됐어요. 차 한 잔 드릴 테니 그런 식으 로 장사할 필요 없어요! 관상 볼 필요도 없어요. 강호 안에 서 우리 모두는 고생스럽게 사는 사람들이오! (계산대에서 걸어 나와 탕톄쭈이를 앉힌다) 앉으세요! 제가 한 말씀 드리 지요. 당신 정말 담배 끊지 않으면 영원히 좋은 운을 맺지 못 할 거요! 이게 내가 보는 관상이오. 당신보다는 훨씬 영험할 거요!

28


쑹 대인과 창 대인이 새장을 들고 들어온다. 왕리파가 그들 에게 인사한다. 그들은 먼저 새장을 잘 걸고 자리를 찾아서 앉는다. 쑹 대인은 부드럽게 꾀꼬리 새장을 들어 올린다. 창 대인은 구구 하면서 크고 높은 꾀꼬리 새장을 들어 올린다. 종업원 리싼이 다가와서 찻물을 따른다. 그들은 항상 찻잎 을 가지고 다닌다. 차를 다 우려내고 나서 쑹 대인과 창 대인 은 근처에 있는 손님들에게 양보한다.

쑹 대인, 창 대인: 이것들 좀 드시죠! (그러고 나서 뒷마당 을 본다) 쑹 대인: 또 무슨 일이 있나? 창 대인: 어쨌든 싸울 수는 없지! 정말 싸운다면 진작에 성 밖으로 나갈 일이지 찻집에 뭐 하러 온다는 말이야?

얼더쯔와 선수 한 명이 마침 들어오다가 창 대인의 말을 듣 는다.

얼더쯔: (다가와서) 당신, 누구한테 쓸데없는 말 지껄이는 거야? 창 대인: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며) 나한테 묻는 건 가? 돈 주고 차 마시는데 누굴 가르치려는 건가? 29


쑹 대인: (얼더쯔를 한번 가늠해 보고는) 이분으로 말씀드 리자면, 부대에서 심부름하는 분이시죠? 자, 앉아서 한잔하 시죠. 우리도 모두 외지 사람들입니다. 얼더쯔: 내가 심부름을 하든 안 하든 무슨 상관이오? 창 대인: 위세를 떨려거든 서양 사람들에게 떨어보게. 서양 사람들은 무서우니까!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圓 明園)을 불태웠는데, 당신은 나랏밥을 먹고 있으니 용감하

게 싸우는 걸 봐야겠군! 얼더쯔: 서양 사람들과 싸우든 말든 말할 필요 없고, 난 먼 저 당신을 손 좀 봐야겠수다! (손을 쓰려 한다)

다른 손님들은 여전히 자기 볼일을 보고 있다. 왕리파가 급 하게 뛰어온다.

왕리파: 손님들은 모두 길에서 만난 친구 분들인데, 할 말이 있으면 좋게 말로 하세요. 얼더쯔 나리, 뒤에 앉으세요!

얼더쯔가 왕리파의 말을 듣지 않고 그릇을 집어 던져 박살 을 낸다. 이어서 창 대인의 멱살을 잡으려 한다.

창 대인: (피하며) 네가 어쩌려고? 30


얼더쯔: 어쩌려고? 서양 사람과 싸울 수가 없다고 너하고도 싸우지 못할까 봐? 마 대인: (일어나지 않고) 얼더쯔, 자네 대단하구먼! 얼더쯔: (사방을 둘러보다가 마 대인을 발견하고는) 허, 마 대인, 대인도 여기 계셨군요! 제가 눈이 어두워 몰라뵈었습 니다! (다가와 인사한다) 마 대인: 일이 있으면 좋게 말로 할 일이지 뭐하려고 사람 들을 때리고 그러는가? 얼더쯔: 휴! 맞는 말씀입니다! 뒤에 가서 좀 앉겠습니다. 리 싼, 여기 찻값은 내가 내겠네! (뒤에 가서 앉는다) 창 대인: (다가와서 마 대인에게 하소연한다) 나리, 나리는 현명하셔서 아주 판결을 잘해주셨습니다! 마 대인: (일어나서) 일이 있어서 그만 가보겠소이다! (나 간다) 창 대인: (왕리파에게) 아! 정말 괴이한 분이로군! 왕리파: 이 마 대인을 모르신단 말입니까? 어쩐지 그분한테 죄를 짓더라니! 창 대인: 내가 그분한테 죄를 지었다고! 난 오늘 집 밖에서 좋은 꼴을 못 보는구먼! 왕리파: (낮은 목소리로) 방금 나리가 서양 사람들이 어쩌 고저쩌고 했는데, 그분이 바로 서양 밥을 먹는 분이에요. 서 31


양 종교를 믿고, 서양 말을 하고, 일이 있으면 곧바로 완핑현 (宛平縣)의 대감을 찾아가거나 해서 웬만한 관리들도 그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고요! 창 대인: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 흥, 나는 서양 밥을 먹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소! 왕리파: (쑹언쯔와 우샹쯔 있는 쪽을 향해서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할 때는 좀 조심해서 하세요! (큰 소리로) 리싼, 여기 찻물 좀 더 부어주세요! (땅에 떨어진 그 릇 조각들을 줍는다) 쑹 대인: 그릇이 얼마지? 내가 배상하리다! 바깥사람은 아 녀자들 일을 하는 게 아니지! 왕리파: 바쁠 거 없어요. 좀 있다가 계산하도록 하죠! (떠난 다)

중매쟁이 류마쯔가 캉류를 데리고 들어온다. 류마쯔는 먼저 쑹 대인과 창 대인에게 인사를 한다.

류마쯔: 두 분께서는 일찍 출근하셨습니다! (담배 주전자를 꺼내어 담배를 올린다) 이거 한번 태워보시죠! 방금 포장해 온 건데 정통 영국산입니다. 아주 순하고 잘 만들었어요! 창 대인: 허! 담배까지 외국에서 들여오는구먼! 그럼 밖으 32


로 얼마나 많은 돈이 흘러 나간다는 거야! 류마쯔: 우리 대청나라에 있는 것은 금산이요 은산인데, 영 원히 써도 다 못 쓸 겁니다! 앉으세요. 제가 조그만 일을 좀 해드리죠! (캉류를 데리고 와 자리를 찾아준다)

리싼이 차를 가지고 온다.

류마쯔: 말해보게. 은자 열 냥이면 되겠나? 확실하게 말해 보게! 난 바쁜 몸이라 한가하게 기다릴 시간이 없으니 말일 세! 캉류: 류 나리! 열다섯 먹은 딸인데, 은자 열 냥 가지고 되겠 습니까? 류마쯔: 굴에 갖다 팔아보게. 아마 한 냥 팔 전을 준다고 할 걸세. 그래도 자네는 안 된다고 할걸! 캉류: 제 친딸이란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류마쯔: 딸아이를 자네가 잘 키울 수가 없으니 누굴 원망하 겠나? 캉류: 그건 농사가 잘 되질 않아서 그렇게 된 것 아닙니까? 집 식구들이 하루에 죽 한 끼만 먹을 수 있는데도 딸을 팔 생 각을 한다면 제가 사람이 아닙니다! 류마쯔: 그건 당신 고향 일이니 내 알 바가 아니지. 난 자네 33


부탁을 받고 자네가 손해 보지 않도록 하고, 또 자네 딸이 배 불리 먹을 수 있는 곳에 갈 수 있도록 한 건데, 그래도 좋지 않단 말인가? 캉류: 도대체 누구에게 주는 건가요? 류마쯔: 내가 말하면 아마 아주 만족할걸. 궁에서 벼슬을 하고 있는 분이지! 캉류: 궁에서 벼슬을 하고 있는 분이 왜 시골 계집애를 필요 하다고 하겠어요? 류마쯔: 그러니까 자네 딸 팔자가 좋다는 거 아닌가? 캉류: 누구지요? 류마쯔: 팡 총관(龐總管)일세! 자네도 팡 총관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걸세! 태후마마를 모시고 아주 잘나가시 는 분이지. 집에서 쓰는 식초병까지도 모두 마노로 만든 것 일 정도니! 캉류: 류 나리, 딸내미를 태감에게 시집보내고 나서야 제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면목이 서겠습니까? 류마쯔: 딸을 판다면 어떻게 팔든지 간에 딸한테 면목이 안 서는 거지! 참, 흐리멍덩하군! 딸내미가 시집만 가면 먹는 것은 진수성찬에다 입는 것은 비단옷이니 이것이 천국이 아 니겠는가? 어떤가? 그렇게 하지. 깔끔하게! 캉류: 예로부터 어떻게… 그분이 은자 열 냥을 준다고 했습 34


니까? 류마쯔: 자네가 사는 마을을 다 뒤져도 은자 열 냥이 나오겠 는가? 시골에서는 밀가루 닷 근에도 아이를 바꾼다는 얘기 를 못 들은 건 아니겠지? 캉류: 제가, 아! 제가 딸내미와 상의 좀 해보겠습니다! 류마쯔: 자네에게 말해두겠는데, 기회가 왔을 때 꼭 잡아야 지, 일을 그르치고 나서 나를 원망하지는 말게나! 빨리 다녀 오게! 캉류: 아이고!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류마쯔: 난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캉류: (천천히 걸어 나간다) 류마쯔: (쑹 대인과 창 대인 쪽으로 다가와) 시골 사람들하 고는 일하기가 참 어려워요. 언제나 시원시원하지 못하다니 까요! 쑹 대인: 이번 장사도 적지 않은가 본데? 류마쯔: 별 볼일 없어요. 일이 잘 되면 원보(元寶) 하나 버 는 정도인걸요! 창 대인: 시골은 어떻게 된 거지? 이런 식으로 아들딸들을 팔아야 하니! 류마쯔: 누가 알겠습니까? 어찌 됐거나 개도 베이징 성에 들어와야 빌어먹고 살 수 있다니까요! 35


창 대인: 류 형, 당신도 참 지독하네. 이런 일을 꾸미고 다니 는 걸 보면! 류마쯔: 만일 내가 신경을 안 쓰면 그 사람들은 아마 살 사 람을 찾아내지 못할걸요! (급하게 말을 돌려) 쑹 대인, (작은 시계를 꺼내어) 이것 좀 보세요! 쑹 대인: (시계를 받아 들며) 아주 그럴듯한 시계로군! 류마쯔: 들어보세요. 재깍재깍 소리가 나죠! 쑹 대인: (들으며) 이거 얼마 주었소? 류마쯔: 마음에 드십니까? 그럼 제가 양보하지요! 한마디로 해서 은자 다섯 냥입니다! 실컷 가지고 놀다가 싫증 나면 받 은 값대로 돌려드리지요! 물건은 진품이고 집안의 가보로 할 수도 있지요! 창 대인: 내 지금 이런 생각을 해봤소. 우리 한 사람 몸에 얼 마나 많은 양놈 물건들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오! 형씨만 봐 도 그렇지. 양코담배, 서양 시계, 양복지로 된 두루마기에 바지저고리하며…. 류마쯔: 서양 물건이 정말 멋지잖습니까! 내가 만약 구식 옷을 걸치고 촌뜨기처럼 하고 있다면 누가 나를 거들떠나 보겠습니까? 창 대인: 나는 그래도 우리 중국 비단과 사천 명주가 훨씬 그럴듯해 보이는걸! 36


류마쯔: 쑹 대인, 이 시계 가지고 계세요. 요즘 같은 때, 이 렇게 좋은 시계를 차고 있으면 사람들도 다른 눈으로 대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쑹 대인: (시계가 정말 마음에는 들지만 비싸다고 여겨) 나 는…. 류마쯔: 이틀 정도 차고 계시다가 돈은 그때 주세요!

황 뚱보가 들어온다.

황 뚱보: (심한 사팔뜨기로 잘 보지 못한다. 문을 들어서서 야 인사를 한다) 형씨들, 모두 저를 좀 보세요! 인사드립니 다! 모두 형제들이니 잘 지내봅시다! 왕리파: 여기 계신 분들은 그분들이 아닙니다. 그분들은 후 원에 계세요! 황 뚱보: 내가 잘 보지를 못해서요! 주인장, 밀국수를 좀 준 비해 주세요. 나 황 뚱보가 왔으니 아무도 싸우지 못할 겁니 다! (안으로 들어간다) 얼더쯔: (영접하러 나온다) 양쪽이 이미 만났으니 빨리 들 어오십시오!

얼더쯔와 황 뚱보가 안으로 들어간다. 37


종업원들은 앞뒤를 오가며 찻물을 나른다. 한 노인이 이쑤 시개, 빗, 귀이개 같은 조그만 물건들을 가지고 들어와 고개 를 숙이고 천천히 탁자마다 돌지만 아무도 사려 하는 사람 이 없다. 후원으로 가려는 것을 리싼이 붙잡는다.

리싼: 영감님, 밖으로 다녀보세요! 후원에서 사람들이 한참 말하면서 일도 하고 있는데, 영감님 물건 살 사람 없을 거예 요! (노인에게 차 한 잔을 내민다) 쑹 대인: (낮은 목소리로) 리싼! (후원을 가리키며) 저 사람 들은 도대체 무슨 일로 저렇게들 칼이니 몽둥이를 빼 들고 저러는 거지? 리싼: (낮은 목소리로) 비둘기 한 마리 때문이라고 하네요. 장 씨 댁 비둘기가 리 씨 댁으로 날아갔는데, 리 씨 댁에서 내놓으려고 하지 않… 아이고, 우린 아무래도 말을 좀 적게 하는 게 좋겠어요. (노인에게) 영감님은 올해 몇이십니까? 노인: (차를 마시고) 고맙소! 여든둘이오. 아무도 봐주는 사 람이 없구려! 요즘 같은 때에는 사람이 비둘기 한 마리만도 못하구려! 아! (천천히 걸어 나간다)

친중이가 잘 차려입고 얼굴 가득 홍조를 띠고 걸어 들어온 다. 38


왕리파: 아이고! 친 나리, 어떻게 시간이 나셔서 저희 찻집 을 찾아줄 생각을 다 하셨습니까? 아랫것들도 대동하지 않 으시고요! 친중이: 좀 보러 왔소. 신출내기 젊은이가 장사를 잘하나 보려고! 왕리파: 네, 일하면서 배우고 있죠. 이걸로 밥이나 먹어야 죠. 아버님이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으니 제가 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 다행히 단골분들이 아버님 옛 친구분들이라서 제가 치밀하지 못한 점이 있어도 모두 이해해 주시고 눈감 아 주시지요. 길에서 밥을 빌어먹더라도 인연은 정말 중요 한 거지요. 아버님이 남겨주신 이전 방법에 따라서 좋은 말 많이 하고 인사 많이 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드리면 싸움 날 일이 없지요! 앉으세요. 제가 차 한 잔 우려드리겠습니 다! 친중이: 안 마시겠네! 앉지도 않겠네! 왕리파: 그래도 좀 앉으시죠! 나리께서 여기에 잠깐 앉으시 기만 해도 저로서는 영광이니까요! 친중이: 그래도 좋고! (앉는다) 하지만 나를 떠받들 필요는 없네! 왕리파: 리싼, 좋은 차 한 잔 우려 와요! 나리, 댁내 모두 무 고하시지요? 일은 뜻대로 잘 되시고요! 39


친중이: 그렇게 좋지는 않지! 왕리파: 나리께서는 뭐가 걱정이십니까? 장사도 그렇게 잘 되시니, 나리의 작은 손가락이 제 허리보다도 더 굵을 텐데 요! 탕톄쭈이: (다가와서) 이 나리 관상이 좋습니다. 양미간이 넓고 턱은 반듯한 것이 재상의 권세는 아니더라도 도주(陶 朱)2)의 부귀는 누릴 것입니다!

친중이: 비키게! 가란 말이야! 왕리파: 선생, 차 다 마셨으면 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죠! (탕 톄쭈이를 가볍게 밀어낸다) 탕톄쭈이: 에구!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간다) 친중이: 이보게 왕 씨! 여기 집세를 좀 올려야 하지 않겠나? 예전에 자네 부친이 내던 집세는 내 찻값 대기에도 부족하 거든! 왕리파: 나리, 맞습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하지만 그 런 일이라면 신경 쓰실 일이 못 되지요. 집사를 보내시면 제 가 잘 의논해서 하시라는 대로 할 텐데요! 네! 네! 친중이: 자네, 부친보다 한술 더 뜨는군! 흥, 보라고. 조만간

2)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대부 범려(范蠡)의 별칭으로 후세에 돈 많은 상인을 부르는 이름으로 쓰임.

40


에 집을 내놓아야 할걸! 왕리파: 놀래지 말아주세요. 나리께서 저를 얼마나 잘 보살 펴 주시고 아껴주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더러 저 큰 찻 주전자를 메고 거리에 나가서 차를 팔라고 하는 건 아니시 겠죠? 친중이: 두고 보라고!

시골 아낙이 열 살쯤 된 계집아이를 데리고 들어온다. 여자 아이의 머리에는 짚으로 엮은 표지가 꽂혀 있다. 리싼은 그 들을 막으려다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냥 둔다. 그들은 천 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손님들이 갑자기 이야기를 멈 추고 쳐다본다.

계집아이: (방 가운데까지 걸어와서 멈춰 선다) 엄마, 배고 파요! 배고파요!

시골 아낙은 계집아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다 리가 풀리더니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얼굴을 가리고 운다.

친중이: (왕리파에게) 내쫓아 버리게! 왕리파: 네! 나가요. 여기 앉아 있으면 안 돼요! 41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