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섭 단편집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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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섭 단편집


<의학박사>, ≪동아일보≫, 1938


의학박사(醫學博士)


一 내음새! 코가 보통 사람보다는 민감인 내가, 더군다나, 세상에 허 다한 냄새 중에서 제일 실혀하는 냄새인 이 병원 냄새를 三 十분식이나 맡으면서도 그냥 버티고 앉어 잇는 내가 나 자 신으로 보기에도 의외인 듯싶엇다. 그러나 “벗이 멀리로부터서 차자와 줄 때 이 또한 기뿌지 안흐 랴” 하고 말슴하신 공자님의 말슴을 뒤집어서 “멀리로부터 서 도라와서 벗을 차자봄이 이 또한 즐겁지 안흐랴” 하고 내 가 설명을 한다면 친한 벗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러 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나는 지금 동일 군, 아니 의학박사 채동일 씨를 맞나보려 고 와서 이러케 그의 사무실에 앉어 기다리고 잇는 것이엇 다. 냄새도 냄새려니와 내게는 병원처럼 실흔 곳은 다시없 다. 심리학자들은 혹은 어렸을 적에 크게 인상되엇던 어떠 한 잠재의식의 결과라고 설명할런지 모르겟으나 내가 기억 하기에는 병원을 그다지도 실혀할 무슨 건데기를 집어낼 수 도 없으면서도 그래도 그냥 실흔 생각이 드는 데는 할 수 없 는 일이엇다. 밤에는 무덤이 아니면서도 무덤 속 같은 음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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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런 기분이 실혓고, 낮에는 분주하지 말어야 할 곳이 장날 처럼 분주한 것과 아이들 우름소리와 피와 고름과, 이런 것 들이 모두 실흔 것이엇다. 감옥소 간수가 인생 생활에 대한 그릇된 관렴을 갖게 될 것과 마찬가지로 병원 안에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고직이18)로부터서 원장에 이르기까지 종당 에는 그릇된 인생철학을 부지중에 품게 되고 말지 안흘까 하고 생각되엇다. 종작없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앉엇누라니 갑작이 병원 냄새와는 너무도 거리가 머언 독한 여송연 냄새가 물씬 나 더니 뒤이어서 “아니, 이거 무슨 바람이 불엇나?” 하는 기뿜에 찬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엇다. 二十년 만에 들어도 곧 알아낼 수 잇는 목소리엇다. “아, 이게 얼마 만인가?” “그래, 재미 조흔가?” “자네두 늙엇네그려.” “언제 왓나?” “그래, 이 사람아 편지 한 장 안는 법이 잇단 말인가?” 말, 말, 말! 사람이 말하는 재주가 잇어서 다른 동물들보

18) 고직이: 고지기, 창고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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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월등해진 것이라고 학자들이 수천 권의 책을 써서 증명 하엿지만 그러나 아모래도 말은 참된 감격을 충분히 발표하 는 기관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을 더 한 번 느끼는 것이엇 다. 말로는 도저히 발표할 수 없는 정도로 나는 이 친구를 다시 만나보는 것이 반가웟고 이 친구 역시 나를 반기는 것 을 직각할 수 잇엇다. 무슨 제육감이라고 하든가 원래 동일 군은 체격이 조핫거니와 뚱뚱해진 몸집에 유들유들한 얼골 이며 조금도 억색스런 기분이 없이 떡 버티고 앉어서 팔뚝 같은 여송연을 턱 물고 앉엇는 품이 그야말로 름름한 외과 과장 자격이다. 二十년 전 동일 군이 의과대학을 갖 나온 서 생티가 뚝뚝 흐르던 그때 이별하고 나서 오늘 처음으로 대 하는 내의 눈에 동일 군이 너무 지나치게 신사풍이 흐르는 것처럼 보여진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 성공한 중년 신사! 이것도 아마 한 개의 타입인가 보다. 생리학은 우리에게 개인 개인은 그 하나하나의 지문(指紋) 에까지 독특한 개성을 소유한 것이라고 가르쳐주는데도 불 구하고 사람은 언제나 한 개의 타입 속에 판 백여버리고 야19) 마는 것은 이 어쩐 일일까? “자네두 늙엇네그려” 하고 동일 군이 일깨워 주지 안터

19) 백여버리고야: 박혀버리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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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도 지금 동일 군과 마조 앉어서 새삼스레 나 자신도 늙엇 으리라는 것을 깨닷는다. 하로에도 몇 번씩 거울 속을 들여 다보는 자기 얼골에서 사람은 늙음을 찻지 못한다. 자기와 동갑 연대 옛 친구를 오래간만에 대하고 날 때 그 친구의 얼 골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의 늙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二 간호부가 들어왓다. “선생님, 저…” “응 곧 가지” 하고 동일 군은 간호부가 말을 마치기도 전 에 앞질러 대답하고서 나를 바라다보면서 “허 오늘 좀 분주해서… 아니 가만 잇게 그럴 것 없이 자 네 오래간만에 수술 구경 한번 하려나. 수술 하나만 더 끝내 면 나두 일이 없으니까 우리 가치 나가세나” 하고는 내 대답 도 기다릴 새 없이 곧 간호부를 불럿다. (상대자의 대답을 기다릴 것 없이 명령하기에 익숙해진, 그의 성공이 가저온 버릇일 것이다.) “저 여기 이분이 외국서 방금 오신 의학박사신데 참고상 수술 참관을 하시려니까 곧 가서 까운과 마스크를 가저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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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응” 하고는 나를 돌아다보며 눈을 끔적한다. 그러치 성공 을 한 사람은 거즛말도 늘어 잇는 법이어니 ‘처세술’이란 고 등한 대명사를 소유한 거짓말! 그러나 나는 사실 동일 군의 이 호의를 거절한 아모런 이 유도 갖고 잇지 안헛다. 거절이라기보다 도로혀 자진해서 요구해서라도 조선 제일이라고까지 소문난 그의 손재주를 한번 보고 싶은 호기심도 없는 바 아니엇다. 그 유명해진 동 일 군의 손을 바라다보면서 나는 부지중 한 삼십 년 전에 동 일 군의 하라버지가 예배당에서 수요일 저녁 예배 때마다 기도하면서 “우리 손주 새끼 여기저기 소문나는 의학박사가 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보채옵니나이다” 하고 빌기를 잊어버리지 안흔 일을 생각하고 빙그레 웃지 안을 수 없엇 다. 더구나 나는 동일 군이 ‘과장님’이란 칭호는 꿈에도 못 꾸 고 올챙이 의사로 채 개고리가 못 되고 꽁지만 겨오 떨어지 던 그때 그의 맨 첫 번 독단 수술을 입회하는 광영을 가젓던 사람이다. 그때의 동일 군에게는 물론 연유 없이 아모나를 입회시킬 권력이 없엇으므로 그는 나를 청하지는 못햇지만 나는 그때 동일 군의 손재주에 목숨을 걸어노흔 그 환자가 내 먼 일가 축의 한 사람인 우연을 이용하야 그의 친척 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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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함께 학생들이 앉어 참관하는 그 높은 참관대 우에 앉어서 이를 참관할 기회를 만들엇고 이것이 동일 군을 여 간 기쁘게 한 것이 아니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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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뼁끼칠을 한 상 우에 줄줄이 늘어노힌 번줄번줄20) 하는 가위와 지게와 칼과 갈구리… 이런 것들을 흔히 보는 일이 없는 나는 보기만 해도 어째 언짠흔 기분이 생겻다. 더 구나 수술실에는 또 수술실 독특의 고약한 냄새가 머물고 잇다. 힌 까운을 입고 힌 마스크를 쓴 조수들이 공연히 흥분 해서 왓다 갓다 한다. 동일 군도 조수로 잇을 적에는 저러케 쉽게 흥분하더니… 그러나 오늘 그는 침착의 정도를 훨씬 지나 아주 무관심한 태도이다. 그만큼 그는 그의 기술에 익 숙해진 것이다. 하−얀 까운을 입고 하−얀 마스크를 입에 가리우고 하 −얀 수건까지 쓴 간호부들이 대령하고 서 잇다. 수술대도 하−야코 사방 벽도 하−야코 문설주가지 하−야코… 이 러한 속으로 들것에 담겨 들어오는 환자의 감상이 과연 어

20) 번줄번줄: ‘번질번질’의 다른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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떤할가? 힌빛! 이것은 우리 조선 사람에게는 주검을 상징하는 빛 깔이 아닌가? 사각 사각 사각! 동일 군이 솔로 비누 잠뿍 묻은 손을 닦 는 소리다. “적어도 이 분 이상을 손을 씻어야 하는 규측이지” 하고 동일 군이 설명한다. 이상한 일이다. 눈에 보이지도 안는 미생물한테 사람이 란 최귀의 동물이 픽픽 쓸어젓고, 그러나 또 그걸 발견해 갖 고 고놈들을 삶아 죽이는 법을 고안해 내인 인류의 두뇌!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해두 이걸 몰랏섯단 말이야. 어쩔 수 없이 세게 병원이란 병원을 모두 불살러 없애버려야 하 리라구까지들 생각을 햇으니까. 파스티어21)가 없엇던들 외 과 수술의 현대적 발달이란 잇을 수 없엇을 것이지.” 이러케 이야기를 해가며 수술 준비를 하는 동일 군의 행 동은 이제 기게적이 되어버린 것이엇다. 그러케 비누로 씻어내고도 부족한지 다시 꺼룩한 약물 에다가 손을 담것다가 꺼내서 간호부가 대령해 들고 섯는

21) 파스티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 프랑스의 화학자· 미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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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아낸 고무장갑을 끼고 이러케 척척 차륜22) 돌아가듯 하 여 조금도 어색함이 없다.

三 수술을 받을 환자가 눈을 꼭 감고 수술대 우에 누어 잇다. 나 더러 그러케 누어 잇으라면 세상 못할 것 같이 생각되엇다. “시작하지.” 과장님의 명령일하에 고무장갑을 낀 손들이 분주해진 다. 몽혼23)을 맡은 젊은 의사는 벙거지 같은 천을 환자의 얼 골에 씨우고 ‘이−터’24)를 방울방울 떨어트린다. “하나, 둘, 셋, 이러케 세어보시오.” 울고 울고 울어서 눈이 빨가케 부은 여인 하나이 아모것 도 모르고 쌕쌕 잠들은 어린 애기를 업은 채 높은 참관대 한 편 구석에 엉거주춤하고 앉어서 열심으로 내려다보고 잇다. 가끔 손수건을 눈과 코에 갖다대는 것이 아직 울기를 게속

22) 차륜(車輪): 수레바퀴. 23) 몽혼: 마취. 24) 이−터: 에테르(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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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모양이다. 수술받는 사람의 딸로밖에는, 더 아니 보이 나 사실인즉 그의 안해라고 한다. 껌언 제복을 입은 사오 명 의 학생들이 참관대에 널려 앉어서 힐끔힐끔이 몸집이 작달 막하며 고러케 쯜쯜 울고 앉엇는 것이 어덴지 모르게 앳된 티가 잇어 보이는 중년의 여자를 바라다보고들 잇엇다. “하나, 둘, 셋.” 모기 소리만치 헤여보던 목소리가 뚝 끈치고 마치도 깊 은 잠에 든 것 같은 깊고 더딘 숨소리가 들려온다. 잘그락잘그락 떼꺽떼꺽… 소고기 베듯… 피가 조르르 솟아오르면 하−얀 ‘꺼−제’로 피를 묻혀내고 또 묻혀낸다. 짤각하고 핏줄을 골라잡은 지깨25)가 핏줄을 잘라낸다. 짤 깍 짤각 짤깍… 사람의 배 한복판에 밸까지 들여다뵈는 구 멍이 아가리를 벌렷고 핏줄을 잡아맨 지깨들이 좌우에 설설 이 발처럼 늘어서서 번들번들 빛난다. 냄새! 코와 입을 마스크로 막고 잇건만도 이 견댈 수 없 이 고약한 냄새가 내 전신을 싸고도는 듯싶어 머리까지 아 프다. 아니나 다르리 참관대에 앉엇던 여인은 고만 기절을 햇기 때문에 수술실 밖으로 들려 나가고야 말엇다. 나도 금 시 구역질이 날 것 같아서 목적도 없이 방 안 이 구석 저 구

25) 지깨: 집게. 물건을 집는 데 쓰는, 끝이 두 가닥으로 갈라진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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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을 휘휘 둘러보앗다. ‘여기저기 소문난’ 동일 군의 손은 한 산 사람의 밸을 주 물럭어리고 잇다. 이십 년 전에는 보는 사람이 민망하리만 츰 조심스럽고 초조하더니 지금에는 보는 사람이 역시 민망 하리만치 민첩하고 경쾌하다. “선생님 맥박이 빨러집니다” 하고 맥을 짚어보던 조수가 보고한다. 이십 년 전 같으면 퍽 당황햇으렷만 지금의 동일 군은 아무러치도 안흔 듯이 “이−터를 멈추지” 한다. 한 산 사람의 들어난 밸의 히멀끄럼한 빛갈을 바라다보 면서 나는 이상스런 전률을 느끼엇다. 사람이란 게 대체 무언고? 이러케 돼지 잡듯 갈라노코 볼 때 다른 즘생보다 과연 나흘 것이 무엇이 잇을까? 그러나 무 엇이라구 할 완전하고 신기스런 몸덩이인가? 오십 년을, 칠 십 년을 피가 한 골목길로 돌고 돌고 돌아서 한 분 동안에 칠 팔십 번을 되돌되 번민 고장이 없이 반복해 돌고 잇다는 것 을, 또 거기 어떤 한 부분에 고장이 생길 때 배를 갈라노코 꺼 집어내서 잘라버린 후 다시 올가매 노흐면 그 후에 또 이십 년이나 삼십 년을 그대로 살어갈 수가 잇다는 건… 그 몸둥 이 속 어데에 과연 영혼이란 것이 깃드리고 잇을 것인가? 지금 배를 갈라 노흔 이 사람이 한 시간 후에는 다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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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생각하고 움즈길 수 잇으리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 는 불가능이리라고 내게는 자꾸만 생각되는 것을 금할 수 없엇다. 기게에 고장이 생긴 때 그것을 직각할 수 잇는 것처럼 이 때까지 순조롭던 수술에 어떤 고장이 생겻다는 것을 나는 갑자기 깨다를 수 잇엇다. 조수들이 흥분된 눈으로 두리번거리고 간호부들이 구두 뒷축 콩콩 울리면서 왓다 갓다 하고… 그러나 동일 군은 침 착을 일치 안는다. 주사기를 물고 온 조수에게 자리를 비켜 주고 가만히 서서 바라다보고 잇을 뿐. 조수는 죽은 듯이 누 어 잇는 환자의 여위고 뼈만 남은 팔을 들어내더니 낄쭉한 주사기에 가득히 담긴 주사약을 소르르 혈관 속으로 너허준 다.

四 맥박을 짚고 앉엇든 조수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 는 것을 보고 동일 군은 또다시 헤처노흔 배 속을 들여다본 다. 무엇 박 둥어리만 한 것이 끄집어져 나왓다. 썩뚝! 잘라 냇다. 원 사람의 배 속에 저런 물건이 생겨나다니… 저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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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배 속에 품고도 이때까지 살아왓으니… “아,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맥박을 세이던 조수가 벌떡 이러섯다. “몹시 빠릅니다.” 환자의 얼굴은 죽은 사람의 얼골처럼 창백하고 무표정 하다. 또 한 번 어수선하더니 또다시 주사약이 환자의 혈관 속 으로 흘러 들어갓다. 그러나 맥박을 짚고 앉엇던 조수의 얼 골은 찡그린 채로 그냥 있다. “어때?” 하고 동일 군이 물엇다. 조수는 대답 없이 고개만 흔든다. 동일 군은 환자의 얼골 을 잠시 유심히 들여다보앗다. 약간 실로 한순간, 당황하는 기색이 동일 군의 얼골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보인 것 은 내 착각이엇을가? ‘여겨저겨 소문’난 손의 동작은 번개처럼 빠르다. 눈에 잘 뵈이지도 안는 가느단 실로 혈관들을 싹싹 베여노흠을 따라 지깨가 하나씩 둘씩 피투성이 된 그릇 우에 되는대로 나가떨어진다. 바늘에 실을 뀌는 간호부의 손도 재빠르다. 척척 홀가매는26) 동일 군의 손재주, 그만햇으면 훌륭한 재

26) 홀가매는: 옭아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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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라고 할 수 잇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 그다지도 침 착하고 자신하던 그의 손이 지금 와서 저다지도 갑작이 초 스피드를 내는 연유는 무엇일가? 저러틋이 황급히 홀가매 지 안허서는 안 될 무슨 이유가 잇는가? 나는 그저 멍하니 서서 번개처럼 번득이는 바늘을 응시하고 잇엇다. 그리면 서 막연하게 사람의 뱃가죽이 저러케도 보기 실코 흉물스러 울 수가 잇을가를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다보앗다. 순식간에 재봉이 끝난 후 하−얀 까제로 덮고 붕대로 매 고 힌 보재기로 씨우고 그런 후 환자는 들것에 태워 병실로 돌려보냇다. 수술실에는 형용할 수 없는 일종 이상스런 무거운 분위 기가 충만하엿다. 대개는 참새처럼 재재거리기를 조하할 간호부들이 묵묵히 수술 설거지를 조심스레 하고 잇고 조수 들도 인사도 없이 뿔뿔히 다라나 버리고 말엇다. 동일 군도 잠시 무슨 무거운 것에게 눌리는 모양으로 잠잠히 장갑을 벗고 마스크를 벗고 손을 씻고 하더니 “흥 설비가 불완전한 걸 어쩌는 수 잇나?”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엇다. 하여튼 무엇이 잘못되기는 된 줄로 눈치채고 잇엇으나 나는 동일 군의 기분을 상할가 싶어서 아모것도 묻지 안코 가만히 보고만 잇엇다. 더구나 나는 동일 군이 수술에 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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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실수라도 잇은 후에는 그가 얼마나 고통하고 심려하는 가를 몇 번 목도한 일이 과거에 잇엇는 고로 오늘 조고마한 실수라도 없엇기를 충심으로 바랏던 것이다.

***

동일 군이 아직 ‘여기저기 소문’나기 전에 군과 나는 두 호래 비가 한방에서 일 년 남아를 함께 살앗섯다. 동일 군은 의과 대학 병원의 젊은 의사 또 나는 고등보통학교의 애숭이 교 원, 이러케 직업 전선의 초년병으로 잇을 시절에 동일 군과 나는 하숙집이 아니라 잘 아는 여염집 사랑채에 들어 잇엇 다. 사랑 전채 휭뎅그렁한 양봉사 간 방27)을 들어서 쓰고 잇 엇던 것이다. 그것이 벌서 딱 이십일 년 전 일이지마는! 나 는 아직도 그 하로밤 일을 잊어버리지 못한다. 그날 초저녁 부터 동일 군은 몹시 흥분해 잇엇다. 저녁을 거의 한술도 떠 너치 안코 담배만 자꾸 피어 무는 것이엇다. 여러 번 달래고 빌어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아내엇다.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라도 사람을 그릇 죽여 놋는다면 그건 살인죄가 되겟지.”

27) 양봉사 간 방: 두 홀아비가 살았던 방을 표현한 것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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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는 결론하엿다. 그가 그날 수술을 한 수술이 워낙 어려운 수술이엇기 때문에 고만 조고마한 실수를 햇다는 것 이엇다. “고의가 아닌 데야 죄라고 할 수 없지” 하고 나는 위로하 려 하엿다. “그러나 한 환자의 죽은 원인이 의사의 실수에 잇엇다고 하면 그 책임을 의사가 회피할 수는 없는 것이지.” “그러나 고의가 아닌 담에야 벌할 수 없지.” “벌이 무서운 것은 절대로 아닐세. 이 양심의 가책이 무 서운 걸세. 내가 오늘 실수를 햇다는 것을 눈치 챈 사람도 아마 없을걸세, 간호부까지도. 벌을 받는다거나, 남이 안다 거나 하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두고두고 내 가슴을 찢을 이 마음속 고통이 문제란 말이야.” “그래 아주 죽엇나?” “아니. 혹은 아무러치도 안흘는지도 몰라. 그러나 그 사 람이 오늘 밤으로라도 갑작이 열을 내고 죽어버린다면, 그 구할 수 잇엇을 생명을 구하지 못하고 죽엇다는 죄는 내가 걸머질 수밖에 없단 말야.” “사람이 어디 기게처럼 정확할 수야 잇는가, 가끔 실수를 하게 되는 것도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내 생각 에는 자네가 고통을 괘니 사서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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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두 그 환자, 또 그 환자의 가족들은 내게다가 절대 의 신임을 쏟아주지 안헛는가? 그런데 내가 내 실수로 그들 의 가슴에 못을 박어주게 된다면… 세상에 신임받은 일을 이행 못하는 것보다 더 큰 비극은 다시없을 걸로 아네.” “난 의학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상식으로 판단하더래두 지금 자네네 병원에 모든 설비가 완전하다구 할 수는 없겟 지. 설비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피할 수 없이 당하는 부족을 의사에게 책임을 지울 수는 없는 일이지.” 이러케 나는 될 수 잇는 대로 그의 꽁한 생각을 돌려보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말로 논쟁을 하엿다.

五 그러나 “설비의 불완전을 핑게로 자신의 기술의 부족을 엄호 하려는 것은 비겁한 짓이지” 하며 어디까지나 그는 자기 자신 을 가책하는 것이엇다. 나는 논쟁으로는 도리가 없을 줄을 깨 닫고 그를 끌고 나와서 조하하는 옥돌 치는 집으로 갓다. 그 때 우리들은 옥돌을 별로 잘 치지는 못햇으나 갖 시작하던 참 이라 몹시들 열심이엇엇다. 또 동일 군과 나는 호적수이엇다. 그러나 이날 동일 군의 ‘큐’는 헛탕을 자꾸만 때리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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