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유시선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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陸游詩選 육유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합니다.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시 선집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陸游詩選 육유 시선 육유(陸游) 지음 주기평 옮김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편집자 일러두기 ∙ 이 책에는 육유의 ≪검남시고≫에 실려 있는 9,000여 수의 작품 중 50수의 작품을 선별해 수록했습니다. ∙ 각 시의 구성은 한글 번역시, 원시, 해제로 되어 있습니다. 해제 와 주석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가 덧붙인 것입니다. ∙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시기순으로 배열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로서 명확한 구분이 어려울 경우 ≪검남시고≫에 수록되어 있는 순서를 따랐습니다.


차례

제1부 밤에 병서(兵書)를 읽으며 夜讀兵書 ··········3 산 서쪽 마을에서 노닐며 遊山西村 ··········6 서리 바람 霜風 ··················8 풍교(楓橋)에서 유숙하며 宿楓橋 ··········11 저녁에 유숙하며 晩泊 ···············15 꿈을 기록하다 記夢 ················18 산남(山南)의 노래 山南行 ·············20 돌아와 한중(漢中) 땅에서 유숙하며 歸次漢中境上 ···25 검문관(劍門關)을 지나는 도중에 가랑비를 맞다 劍門道中遇 微雨·······················30

3월 17일 밤, 술에 취해 쓰다 三月十七日夜醉中作 ···34 8월 22일 가주(嘉州)에서 크게 열병하며 八月二十二日嘉州 大閱 ·······················38

9월 16일 밤, 꿈에 황하 밖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九月十六 日夜夢駐軍河外 ··················42

보검의 울음 寶劍吟 ················47


대산관도(大散關圖)를 보고 느낀 바 있어 觀大散關圖有感 ························50 황금으로 주조한 칼의 노래 金錯刀行 ········56 오랑캐 없어지도다 胡無人 ·············59 저녁에 호숫가를 거닐며 晩步湖上 ··········64 가을 소리 秋聲 ··················67 장안성의 지도를 보고 觀長安城圖 ··········70 장가행 長歌行 ··················74 강 위에서 술을 대하고 쓰다 江上對酒作 ·······78 비 雨 ······················82 취중에 지은 초서권(草書卷)을 제(題)한 후에 題醉中所作草書 卷後 ·······················85

병석에서 일어나 심사를 적다 病起書懷(二首其一) ···89 검객(劍客)의 노래 劍客行 ·············93 만리교(萬里橋) 강 위에서 활쏘기를 연습하다 萬里橋江上習射 ························96 강가 누대에서 江樓 ···············100 강가 누대에서 피리 불고 술 마시다 크게 취한 중에 쓰다 江 樓吹笛飮酒大醉中作 ················103

영석(靈石)의 세 봉우리를 지나며 過靈石三峯(二首其一) 109 앞에 항아리 술을 두고 前有樽酒行(二首其二) ·····112 5월 11일 한밤중에… 五月十一日夜且半 ·······117


포구에서 漁浦 ··················121 삼강(三江)의 배 안에서 크게 취해서 쓰다 三江舟中大醉作 ························124 울분을 쓰다 書憤 ················128 임안(臨安)에 봄비가 막 개어 臨安春雨初霽······131

제 2부 취해서 부르는 노래 醉歌 ·············137 11월 4일, 비바람이 크게 불던 날 十一月四日風雨大作(二首 其二) ······················142

겨울밤 책을 읽다가 느낀 바가 있어 冬夜讀書有感(二首其二) ························144 3월 25일 밤, 아침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 三月二十五 夜, 達旦不能寐(二首其一)··············147

산 위의 사슴 山頭鹿 ···············150 나라를 걱정하며 憂國 ··············154 새로운 봄 新春 ·················157 농산(隴山)의 물 隴頭水

·············160

뜻을 써내다 書志 ················163 옛날을 생각하며 憶昔···············168


심씨(沈氏)의 정원 沈園(二首) ···········172 새로 우는 닭을 사다 新買啼雞 ···········176 쇠해서 병들고 衰疾 ···············180 거문고와 칼 琴劍 ················183 아들들에게 示兒

················185

해설 ······················187 지은이에 대해··················193 옮긴이에 대해··················194


제1부

누린내 나는 오랑캐 소굴이 단번에 깨끗하게 씻겨 버리니 태항산(太行山)과 항산(恒山)은 애초에 아무 일이 없었던 듯. 다시금 말술을 가져오라 소리치고 긴 노래를 지어 천산(天山)의 건아들로 하여금 노래 부르게 했네.

-<9월 16일 밤, 꿈에 황하 밖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九月十六日夜夢駐軍河外…)> 중에서-



밤에 병서(兵書)를 읽으며

외로운 등불은 서리 내리는 저녁에 빛나는데 인적 드문 산속에서 병서를 읽나니, 평생토록 만 리를 달리는 마음은 창 들고 왕 앞에서 말달리는 것이라네. 싸우다 죽는 것은 병사에겐 흔히 있는 일 치욕스러이 처자식만을 지키고 있겠는가. 공업을 이루는 것은 우연히 되는 것, 결과를 미리 헤아린다면 절로 멀어지게 되리니. 물 고인 웅덩이는 허기진 기러기를 울리고 세월은 가난한 선비를 속이는구나. 거울 속의 모습에 탄식하나니 어찌하면 오래도록 젊은 모습 간직할 수 있으리.

夜讀兵書 孤燈耿霜夕, 窮山讀兵書. 平生萬里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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執戈王前驅. 戰死士1)所有, 恥復守妻孥2). 成功亦邂逅3), 逆料4)政5)自疎6). 陂澤7)號飢鴻8), 歲月欺貧儒. 歎息鏡中面, 安得長膚腴9).

1) 사(士): 전사(戰士). 2) 처노(妻孥): 처자식. 3) 해후(邂逅): 우연히 만나는 것. 공이란 우연히 기회가 맞아 이루어진다 는 뜻. 4) 역료(逆料): ‘예료(豫料)’의 의미로, 공을 이룬 뒤의 결과를 미리 짐작하는 것. 5) 정(政): 여기에서는 ‘정(正)’의 뜻. 6) 소(疎): 멀어지다. ‘우활(迂闊)’의 의미로 보아 ‘어리석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7) 피택(陂澤): 저수지. 습기지고 축축한 땅의 의미도 지니고 있으며, 여기서 는 백성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의미한다. 8) 기홍(飢鴻): 굶주린 기러기. 척박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백성을 비유한다. 9) 부유(膚腴): 피부에 윤기가 흐르는 것. 젊은 시절의 모습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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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제

송(宋) 소흥(紹興) 26년(1156) 가을, 육유(陸游)의 나이 32세 때 고향인 산음(山陰)에 기거하며 쓴 것이다. 당시 남송(南宋) 조정은 회하(淮河) 이북의 땅을 금(金)나라에 내어주고 굴욕적 인 화친 정책을 통해 일시적인 안정을 누리며 실지(失地) 회복 을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시에서 육유는 이 와 같이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중원 수복의 의지와 위국헌신(爲 國獻身)의 결의를 다지며 자신의 소망이 실현될 날을 준비하고

있다. 첫 4구에서 시인은 유생이면서도 병서(兵書)를 읽고 있는 자신 의 모습을 묘사하며, 자신이 직접 창을 들고 왕의 선봉에 서서 금(金)을 몰아내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다 음 4구에서는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기개를 드러 내며 처자식만을 보존하고자 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수치스럽 게 여기고, ‘공업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 결과를 미리 헤아린 다면 절로 멀어지게 된다’는 말로써 금(金)과의 항전에 대한 투 지와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은 시인의 의 지나 소망과는 달리 더욱 암울해져만 가고 있으니, 마지막 4구 에서 시인은 날로 열악해져만 가는 백성들의 삶과 소망 실현의 기회조차 없이 헛되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 자신의 현실을 안타 까워하며 공업을 실현할 때까지 젊음을 유지하고픈 바람을 나 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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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서쪽 마을에서 노닐며

농가의 섣달 술을 탁하다 웃지 마오. 풍년이라 객을 붙잡아 풍족한 닭고기 돼지고기를 대접하네. 산 첩첩 물 겹겹, 길이 없는 듯싶더니 버드나무 짙푸르고 꽃 밝은 곳에 또 한 마을이 있어라. 피리 소리 북 소리 이어지니 춘사절이 가까웠고 의관은 소박해 고풍이 어려 있네. 지금부터 한가로이 밤나들이를 즐길 수 있게 된다면 지팡이 짚고 아무 때나 와 밤에 문을 두드리리.

遊山西村 莫笑農家臘酒10)渾, 豊年留客足11)鷄豚. 山重水複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 簫鼓追隨春社12)近,

10) 납주(臘酒): 음력 섣달에 설을 쇠려 빚은 술. 11) 족(足): 만족하게 하다. 여기서는 만족하게 대접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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衣冠簡朴古風存. 從今若許閑乘月13), 拄杖無時夜叩門14).

해 제

건도(乾道) 3년(1167) 초봄, 43세 때 육유는 융흥부통판(隆興 府通判)으로 있다가 파면되어 산음(山陰)의 경호(鏡湖) 지역

에서 거주했는데, 이 시는 이때 근처의 산서촌(山西村)을 유람 하며 지은 것이다. 제1∼2구에서는 지나는 객에게조차 술과 고기를 대접해 주는 산서촌 사람들의 순박하고 넉넉한 인심을 말하고 있으며, 제3 ∼4구에서는 산서촌을 찾아가는 과정과 봄을 맞은 마을의 아늑 하고 아름다운 정경이 묘사되고 있다. 제5∼6구에서는 명절을 맞이한 시골 마을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소박하고 꾸밈없는 산 서촌 사람들의 모습들이 나타나 있다. 평화롭고 안락한 산서촌 의 삶에 감동한 시인은 마지막 2구에서 언제든 잠깐의 여유라도 있으면 이곳에 와서 머물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내고 있다.

12) 춘사(春社): 춘사절(春社節). 입춘(立春) 후 다섯 번째 되는 무일(戊日) 로, 농촌에서는 이날이 가까워오면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사직신(社稷 神)에게 제사를 드려 풍년을 기원했다. 13) 승월(乘月): 달을 타다. 즉 밤나들이를 즐긴다는 뜻이다. 14) 고문(叩門): 문을 두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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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바람

시월 서리 바람은 집 주위에서 소리 내어 울어 대고 베 갖옷에는 한 줌의 솜도 마련하지 못했네. 어찌 다만 굶주림에 이웃 스님의 쌀을 구하기만 하랴, 진정 추워도 손님에게 내어놓을 방석조차 없다네. 늙은 몸으로 노래 읊조리며 긴긴 밤을 슬퍼하나니 가난한 집안이나마 지탱해 가며 흉년을 넘을 수밖에. 장부가 이런 일을 겪으매 어찌 복이 아니겠는가. 눈물 거두고 등불 앞에서 한번 미소를 지어 본다네.

霜風 十月霜風吼15)屋邊, 布裘未辦一銖16)綿. 豈惟飢索鄰僧米, 眞是寒無坐客氈17).

15) 후(吼): 사나운 소리로 울부짖다. 16) 수(銖): 무게의 단위. 1량(兩)의 1/24이다. 즉 아주 적은 양을 가리킨다. 17) 전(氈): 털로 된 깔개. 양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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身老嘯歌悲永夜18), 家貧撑拄19)過凶年. 丈夫經此寧非福, 破涕燈前一粲然20).

해 제

건도(乾道) 3년(1167) 10월, 43세에 산음(山陰)의 경호(鏡湖) 지역에서 살고 있을 때 쓴 것이다. 전(前) 4구에서는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충족되지 않아 이웃 스 님에게까지 쌀을 구하고 손님에게 내어놓을 방석조차 없이 살 아가는 시인의 궁핍한 삶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혹독한 가난도 시인의 정신까지 위축시킬 수는 없었다. 후 (後) 4구에서 시인은 비록 궁핍한 현실에 서글퍼하면서도 이에 대한 극복의 의지를 피력하고 나아가 이를 오히려 장부로서 경 험하기 어려운 일을 경험하는 복으로 여기는 낙관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이 경제적인 궁핍 상황을 이야기하는 시는 그의 전 시기 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데, <가난의 병(貧病)>, <가난의 즐

18) 영야(永夜): 긴 밤. ‘영(永)’은 ‘장(長)’의 뜻이다. 19) 탱주(撑拄): 지탱하고 떠받치다. 20) 찬연(粲然): 환하게 미소 짓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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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움(貧樂)>, <놀이 삼아 가난시를 짓다(戱作貧詩)>, <세 모에 가난이 심해 놀이 삼아 짓다(歲暮貧甚戱作)>, <고통스 러운 가난(苦貧)>, <고통스러운 가난에 놀이 삼아 짓다(苦貧 戱作)>, <가난함을 느끼며(感貧)>, <가난 속에서 스스로

즐기며(貧中自戱)> 등과 같이 시제(詩題)를 통해 이를 구체적 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만 해도 총 32제(題) 65수에 달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시제를 통한 직접적인 언급들은 모두가 소희(紹 熙) 5년(1194) 이후 만년에 쓰이고 있어, 비록 그의 일생이 궁핍

한 생활의 연속이었으나 그중에서도 만년이 특히 더 곤궁했음 을 짐작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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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해서 부르는 노래

3만 권의 책을 읽었으나 벼슬한 후론 모두 누각에 묶어 두었고 40년 검술을 익혔으나 오랑캐의 피로 칼날을 적시지 못했네. 기다란 무지개 되어 만 장으로 드리워 넓은 하늘을 쓸어버리지도 못하고. 또 질주하는 바람 되어 6월에 흩날리는 우박을 뿌리지도 못했네. 전마(戰馬)는 마구간에서 죽어 가는데 공경 대신들은 화친 조약만을 지키고 있으며 먼 변방 하면 회수(淮水)와 비수(淝水)를 가리키고 이역 땅 하면 변경(卞京)과 낙양(洛陽)을 바라보고 있네. 오호라, 이 어떠한 마음인가! 술은 있으나 내 차마 마실 수 있겠는가? 평생토록 입고 먹는 것을 위해 홀을 들고 양발에는 가죽신을 신었었네. 마음엔 비록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만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고 예, 예 하기만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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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늙고 병들어 머리칼은 다 빠지고 이도 빠지고 말았네. 하늘을 우러러 조금이나마 울분을 토해 내면 굶어 죽을지라도 진정 조금은 즐겁나니. 굳건한 마음은 묻혀도 썩지 않고 천년 후에라도 오히려 되살아날 수 있으리.

醉歌 讀書三萬卷, 仕宦皆束閣240). 學劍四十年, 虜血未染鍔241). 不得爲長虹, 萬丈掃寥廓242). 又不爲疾風, 六月送飛雹. 戰馬死槽櫪,

240) 속각(束閣): 높은 누각에 묶어 두다. 내버려 두고 활용하지 않는 것을 의 미한다. 241) 염악(染鍔): 칼날을 적시다. 242) 요곽(寥廓): 높고 넓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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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卿守和約. 窮邊指淮淝243), 異域視京雒244). 於乎此何心, 有酒吾忍酌. 平生爲衣食, 斂版245)靴兩脚. 心雖了是非, 口不給唯諾. 如今老且病, 鬢禿246)牙齒落. 仰天少吐氣, 餓死實差樂. 壯心埋不朽, 千載猶可作.

해 제

엄주지사의 임기가 만료되어 육유는 순희(淳熙) 15년(1188) 7 월 산음으로 돌아갔다가 그해 겨울 군기소감(軍器少監)으로

243) 회비(淮淝): 회수(淮水)와 비수(淝水). 244) 경락(京雒): 변경(卞京)과 낙양(洛陽). 245) 염판(斂版): 홀을 들다. 246) 빈독(鬢禿): 귀밑머리가 빠져 대머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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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되어 다시 임안으로 부임했다. 이듬해 순희(淳熙) 16년 (1189) 1월 예부낭중(禮部郞中)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7월에 는 실록원검토관(實錄院檢討官)을 겸임했다. 그러나 11월 간 의대부(諫議大夫) 하담(何澹)에게 ‘풍월이나 읊조린다(嘲咏風 月)’는 탄핵을 받아 면직되어 산음으로 돌아갔다. 이후 육유는

가태(嘉泰) 2년(1202) 5월 실록원동수찬(實錄院同修撰)이 되 어 효종(孝宗)과 광종(光宗)의 실록을 편찬하러 1년 남짓 임안 에 나갔던 것을 제외하고, 가정(嘉定) 2년(1209) 85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칠 때까지 전후로 20년간을 산음에서 머물며 본격적 인 전원생활을 했다. 이 시는 산음으로 돌아온 이듬해인 소희(紹熙) 원년(1190) 여 름, 66세 때 쓴 것이다.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 공업 성취에 대한 아무런 성과도 없는 현실 상황과 화친에 안주하는 공경 대신 및 이들과 다를 바 없었던 그동안의 자신의 비굴했던 삶에 대한 비 판, 영원히 변치 않을 우국의 열정과 신념이 나타나 있다. 전(前) 8구에서 시인은 중원 수복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 이 오랜 기간 많은 준비를 했음에도 이 모든 것들이 쓸모가 없거 나 혹은 쓰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기개(氣槪) 또한 강대하나 어느 하나 실현하지 못한 현실의 상황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 은 현실 인식은 곧바로 다음 4구에서 중원 수복에 대한 의지 없 이 현실에만 안주한 채 화친 조약만을 지키고 있는 공경 대신들 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시인은 이와 같은 비판에 자 기 자신에게조차도 너그럽지 않다. 시인은 보다 많은 다음 8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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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걸쳐 호구지책(糊口之策) 때문에 용기 있는 주장과 반대를 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치열한 비판을 하고 있으며, 마지막 4 구에서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비장한 결의와 천 년토록 변함없을 불굴의 우국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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