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아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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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아



나오는 사람들

칭기즈칸: 몽골 황제 옥타르, 오스만: 몽골 장수 잠티: 중국 관리, 유학자 이다메: 잠티의 아내 아셀리: 이다메의 하녀 에탄: 잠티의 하인

캄발루(현재 베이징), 황궁에 연접한 부속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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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제1장 이다메, 아셀리

이다메 비탄의 시간이여,

학살과 파괴의 날이여! 피에 젖은 궁전 문이 몽골족에게 열리고 온 세상이 야만족 손아귀에 떨어졌네. 이 참혹한 광경에 더하여 새로운 고통이 내게 덮쳐 오다니! 아셀리 천지가 무너지는 멸망의 날,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남편, 아버지, 혹은 아들을 잃은 슬픔에 하늘을 향해 울부짖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몽골족이 알지 못하는 이 넓은 궁전에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들을 임금님께서 숨겨 두셨죠. 법관, 제관, 늙은이, 여자, 어린아이. 모두들 약하고 힘없는 자들이라 아무도 전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 무례한 정복자들이 바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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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극악무도한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천둥과 폭풍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와요. 이제 곧 우리 머리 위에 떨어지겠죠. 이다메 아, 운명이여! 아, 하늘이여!

아셀리야, 너는 아느냐? 중국의 광활한 제국을 압박하는 자가 누군지, 숨 쉬는 모든 것을 억누르는 자가 누군지를? 아셀리 사람들은 그자를 왕 중의 왕이라 부르더군요.

찬란한 아시아 대륙 전체를 커다란 무덤으로 만드는 그 끔찍한 비행을 저지른 오만한 칭기즈칸. 들리는 말로는 그자의 수하 장수인 옥타르가 무기와 횃불을 앞세우고 황궁에 난입했다더군요. 중국은 이제 새 주인 손에 들어갔어요. 세상의 중심이었던 이 도시에 피의 강물이 흘러넘쳐요. 다들 울면서 그렇게 얘기하더군요. 저는 완전히 얼이 빠져 버렸죠. 이다메 이 나라의 종말을 재촉하는 자,

이 세상 모든 왕조를 파괴하고, 왕들의 피로 목을 축 이는 자 그 무시무시한 금단의 땅 괴수가 누군지, 너는 아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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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 그자는 바로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스키타이의 전사 란다. 모진 비바람과 혹독한 추위와 뜨거운 햇살을 견디고, 황막한 열사의 사막을 떠돌며 세력을 규합해 큰 세력을 얻었지. 하지만 한순간에 모든 걸 다 잃기도 했어. 그때 피신처를 찾아 숨어들어 온 곳이 우리가 사는 이곳이야. 그자의 이름은 테무친, 더 이상 말 안 해도 알겠지? 아셀리 뭐라고요? 예전에 마님을 따라다니던 바로 그 사람

이라고요? 뭐라고요? 마님을 사랑하고 숭배했던 바로 그 사람. 마님에 대한 모욕이라고 마님의 부모님께서 쫓아낸 바로 그 사람이라고요? 그 사람이 바로 이름만 들어도 산천초목이 벌벌 떠는 왕 중의 왕이라고요? 이다메 그렇단다, 아셀리야.

그때 벌써 그의 얼굴에는 용맹이 드러나고 있었고 위대함이 엿보였어. 그 사람 옆에 서면 모두들 졸장부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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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도망자 신세로 도움을 구하러 황궁에 갔을 때도 그자는 왕자처럼 당당했어. 그런 사람이 날 사랑했어. 나도 싫지 않았어. 어쩌면 난 우쭐했는지도 몰라. 그 용맹한 사자가 내게 무릎을 꿇었으니까. 난폭하고 거친 태도를 고치고 사나운 성질을 누그러뜨려서 우리 백성으로 만들면 그 얼마나 영광일까!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몰라. 그랬다면 그 사람은 전쟁으로 파괴하는 대신, 이 나라를 위해 싸웠을지도 몰라. 하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어. 천하의 불행은 거기서 시작되었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백성은 긍지가 대단하지. 찬란한 예술, 오래된 법률, 신성한 종교, 수천 년이나 지속된 영광의 역사, 이 모든 것이 이민족과 결혼하는 것을 금했지. 게다가 더 적합한 혼처가 나섰어. 고결한 잠티는 흠잡을 데 없었어. 냉대받던 그 스키타이인이 우리를 정복하다니! 평화와 행복이 가득했던 그 시절엔 어찌 꿈엔들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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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했겠니? 그래서 난 걱정스럽고 근심이 되는구나. 난 그자의 청혼을 거절했고 이제 남편과 자식이 있 는 몸이야. 그자는 모욕을 당했고 절대 용서하지 않아. 그자가 복수를 좋아한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 기구한 운명, 믿을 수 없는 운명의 반전이야. 하늘이시여! 이 많은 사람들이 황금에 팔려 가는 어리석은 양 떼처럼 한 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스키타이인의 칼날에 스러진단 말인가. 아셀리 고려인들이 군사를 일으켰다고 해요.

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이니 침략자의 손아귀를 벗어날 길이 없군요. 이다메 현재 상황을 모르니 더 고통스럽구나.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르고, 황궁의 천자께서는 은신처를 찾으셨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지켜드릴까? 황후께서는 적의 손에 붙잡히셨을까, 두 분 모두 돌아가신 것은 아닐까? 아! 두 분의 막내 아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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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돌보는 불행한 아드님은 어떡하나. 걱정스럽고 불안하네. 남편은 위험을 무릅쓰고 황궁에 갔어. 아무리 포악한 무리지만 그분의 높은 지위를 알면 좀 누그러지지 않을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고, 천지를 피바다로 만드는 그 도둑놈들도 천지신명은 안다고들 그러더군. 어느 나라건 조물주를 섬기고, 천지신명을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야. 하지만 헛된 희망일 거야. 그자들은 아무것도 개의 치 않아. 입으론 희망을 말하지만 가슴은 갖가지 두려움으로 죄어들어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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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이다메, 잠티, 아셀리

이다메 여보, 당신이에요?

이제 우리 운명은 결정되었나요? 아이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요? 잠티

가슴이 떨려 말이 안 나오는구려. 이제 끝장이오! 나라가 망했소. 외적의 칼날에 모든 것이 사라졌소. 우리가 섬기고 충성하는 모든 것이. 태평성대를 누리던 이 나라는 세상의 중심이요 모범이었지. 온 세상이 우리의 법을 따랐지.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람? 무력이 횡행하는 세상에 지혜가 무슨 소용이람? 북방에서 도적 떼가 쳐들어와 황궁을 피바다로 만들었어. 죽어 가는 우리 형제의 쌓인 신체를 짓밟으며,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두르고, 도처에 불을 질렀어. 그러고는 떼 지어 거룩한 처소에 들어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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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공정한 우리 폐하께서 장엄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 황후 폐하께서는 황제 폐하 품에서 실신하시고, 큰 황자들은 모두 비정한 칼날에 쓰러지셨어. 용감히 칼을 들고 싸우다 쓰러진 거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우는 것뿐인 어리고 약한 자녀들은 황제 폐하의 다리를 붙들고 울고 있었어. 폐하께서는 그들을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셨어. 나는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 통로로 들어가, 떨리는 걸음으로 불행한 아버지 곁으로 다가갔어. 비천한 황야의 무리는 망극하게도, 고귀한 우리 군주와 그 자녀와 아내 몸을 묶어 놓고 주위를 온통 약탈과 참살로 뒤덮었어. 내게 시선을 돌리신 폐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몽골족과 일반인이 모르는 신성한 황실의 말로 이렇게 말씀하셨어. “내 막내아들 목숨만이라도 구해 주게.” 여부가 있나. 하늘에 맹세코 지키겠다고 약속드리고는 바로 그곳을 떠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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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도적들이 날 내버려 두더군. 약탈과 살육에 도취되어 날 보지 못했는지, 아니면 내 의관을 장식한 천제의 표식에 압도당해, 감히 해칠 생각을 못했는지, 아니면 천제께서 내 품에 안긴 이 아이를 구하시려고 그자들 눈에 구름을 드리우시어, 날 못 보게 하셨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소. 이다메 서방님, 황자를 구할 방도가 있어요.

우리 아들과 함께 멀리 보냅시다. 빼낼 방도가 있어 요. 절망하지 말고 빨리 준비합시다. 에탄을 따라 바다 건너 고려로 갑시다. 바다로 둘러싸인 그 음울한 고장에는 인적 없는 황무지와 감춰진 동굴이 있을 거예요. 거기로 아이들을 데려갑시다. 거기까지 참화의 손길이 미치기 전에. 도적들이 그곳을 알기 전에. 한시가 급해요. 한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잠티

오호 애재라! 천자의 아들이 숨을 곳조차 없다니! 고려 군사가 올 거요. 하지만 그땐 너무 늦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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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들이 황궁에서 살육에 미쳐 있을 때, 그 틈을 타서 이 귀한 보물을 안전한 곳에 숨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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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잠티, 이다메, 아셀리, 에탄

잠티

에탄아, 어디로 그렇게 황급히 뛰어가는 거냐?

이다메 스키타이인들이 횡행하는 이곳에서 빠져나갑시다. 에탄

놈들이 감시하고 있으니 도망은 불가능합니다. 창칼을 든 사람들이 방벽처럼 빽빽이 이곳을 에워싸고 있어요. 정복자들이 명령을 내렸어요. 이곳 사람들 모두 노예처럼 묵묵히 복종하고 있답니다. 황제께서 참살당하신 뒤로 모두들 겁에 질려 꼼짝 않고 있어요.

잠티

폐하께서 승하하셨단 말이냐?

이다메 천지신명이시여! 에탄

그 망극한 참상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칼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황후 폐하와 황자님들…. 세상의 추앙을 받던 천자의 핏줄들이! 오호, 애재라! 망극, 또 망극이로소이다. 정복자들은 효수된 머리에 대고 비웃음을 흘리고, 백성들은 겁에 질려 아무 소리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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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참으며 눈을 내리깔더군요. 패배한 우리 군사들은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었답 니다. 마음껏 성안을 짓밟은 정복자들은 피 맛에 질리고, 승리에도 진력나, 이제 그만하라고 참살 중지 명령을 내렸어요. 죽는 대신 노예가 된 것이죠. 하지만 더 큰 재난이 다가오고 있어요. 사람들 말로는 지금까지 우리를 짓밟은 자들은 북쪽 족속의 한갓 장수들에 불과하다고 해요. 그 족속의 진짜 우두머리는 칭기즈칸이라 하는데, 예전에 이곳 성안에서 수모를 당했다고 해요. 예전 원한에 사무친 그자가 득달같이 복수하러 온다 는군요. 북쪽의 난폭한 족속들은 이곳 성안 사람들과 달라서, 들판의 천막이나 수레에서 살기 때문에, 이런 큰 도시가 거추장스럽답니다. 고상한 예술과 발달된 법률도 싫어하고요. 그러니 도적들은 폐허로 만들어 버릴 거예요, 온 세상이 찬미하던 유서 깊은 이 도시를 말입니다. 이다메 정복자는 분명히 복수하려 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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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부는 복수를 피할 희망이 있겠지만, 난 이제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없어. 이제 그런 신분이 아니니까. 아마도 천지신명께서 날 벌주시려고 그런 걸 거야. 그들의 주군 눈에 띄지 않는 이름 없는 백성은 얼마 나 행복할까? 잠티

우리 주군은 승하하셨소. 이제 고아가 되신 황자님을 천지신명께서 지켜 주시기를! 황자님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으뜸가는 의무요. 그런데 저 몽골 놈은 왜 여기 왔지?

이다메 천지신명이시여, 지켜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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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잠티, 이다메, 아셀리, 옥타르, 군사들

옥타르 노예들이여 들어라.

내 명령에 잠자코 복종할지어다. 너희 황제의 막내아들이 아직 살아 있다. 너희가 그 아이를 키우고 있지. 그것은 바로 말살해야 할 적을 키우는 것이다. 정복자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명한다. 즉시 그 아이를 내놓아라. 기다릴 터이니 가서 아이를 데려오너라. 잠시라도 지체하면 이곳은 다시 피바다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너부터 처치할 것이다. 해가 지고 밤이 오는구나. 살고 싶으면 복종해라. 날이 저물기 전에 아이를 데려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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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잠티, 이다메

이다메 이 일을 어찌하면 좋아요? 너무도 끔찍한 명령이군요.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그 말이 맞아요. 오늘의 참극이 있기 전까지는 이런 일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여보, 당신은 아무 말씀 없이 한숨만 쉬시네요.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런 시련을 주시다니. 천자의 아들이시여, 도적의 명령이 저러하니 그 무고한 생명을 희생할 수밖에 없단 말인가요! 잠티

난 약속했소. 황자의 목숨을 구하기로.

이다메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요?

맹세가 무슨 소용이며, 측은지심은 또 무슨 소용인 가요? 약속을 지킬 방도가 있어야지요. 이젠 어쩔 수 없어요. 잠티

아! 하늘이시여! 그런데 당신은? 황자가 죽는 것을 보고 싶소?

이다메 그럴 리가요.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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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아이만 없다면, 내 품에서 키운 아들을 위해 살지 않아도 된다면, 기꺼이 당신과 함께 죽겠어요. 망한 나라와 그 백성들과 함께 황제 폐하를 따라 무덤으로 내려가겠어요. 잠티

폐하의 끔직한 최후를 알고서 죽음이 두려워 피할 자가 어디 있겠소? 죄인은 겁내고, 불행한 자는 어서 와 달라고 애걸하 고, 용감한 자는 스스로 먼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현자는 죽음을 조용히 기다리다 의연하게 맞이한 다오.

이다메 그렇게 말씀하시는 저의가 무엇입니까?

고개를 숙인 채 말씀을 못하시네요.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눈에 눈물이 가득하네요. 당신 마음이 바로 제 마음이에요. 너무도 괴로워요.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잠티

맹세를 지킬 생각이오. 자, 황자에게 가서 날 기다리시오.

이다메 제 기도와 울음으로 황자를 지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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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잠티, 에탄

에탄

주인님, 황자를 구할 방도가 없습니다. 나라를 구하려면 애기씨를 희생해야 합니다. 백성을 구하려면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잠티

그래…. 희생이 불가피하단 건 나도 알고 있어. 자, 잘 듣게. 자네는 이 나라에 충성하는가? 우리 조상들이 섬기던 천지신명을 믿는가?

에탄

이런 애통한 때 천지신명밖에 또 무엇을 믿겠습니까? 망한 나라를 위해 울면서, 천지신명만을 의지합니다.

잠티

그럼 천지신명께 맹세해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다고. 내 명령대로 어김없이 시행하겠다고. 내 명령은 바로 이 나라를 위한 것이고, 또한 천지신명이 내게 명한 의무거늘.

에탄

맹세하고말고요. 만일 제가 맹세를 깨뜨린다면, 말이나 행동으로 주인님을 배반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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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안에 떨어질 모든 재앙을 제 한 몸 위에 떨어지게 해 주십시오. 잠티

자,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어.

에탄

주인님 웬 눈물이세요? 그렇게 수많은 고통을 당하셨는데, 아직도 눈물이 남았단 말씀입니까?

잠티

포고가 내려졌으니 절대로 뒤집지 못해.

에탄

그건 저도 압니다. 남의 자식 때문에….

잠티

남이라니, 황제 폐하가 어찌!

에탄

저도 압니다. 황제 폐하의 아드님이시죠. 천벌 받을 말을 했습니다. 자, 말씀하세요. 무얼 할까요?

잠티

나는 감시당하고 있어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 자네는 평민이라 괜찮으니 그걸 이용해 보세. 황자께서 어디 계신지는 알고 있겠지. 자네에겐 감시가 없으니 그곳에 쉽게 들어갈 수 있어. 조상님이 만드신 무덤 속에 잠시 숨겼다가 때가 되면 고려군 장수에게 넘기세. 고려군은 너무 늦게 도착해. 하지만 도적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불쌍한 애기씨 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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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손에서 구할 수는 있을 거야. 고려군은 황자를 구하고, 나는 나머지를 책임지지. 에탄

귀하신 볼모 애기씨 없이 어쩌시려고요? 성난 도적들에게 뭐라고 대답하시려고요?

잠티

내가 방도를 강구해 놓았어.

에탄

방도라뇨?

잠티

아, 하늘이시여! 아, 어려운 충절이여!

에탄

분부를 내리십시오.

잠티

가서 내 외동아들을 데려오게.

에탄

아드님이라뇨?

잠티

지켜야 할 황자님을 생각하게. 내 아들을 데려와 도적들에게…. 차마 말을 못하겠 구나.

에탄

아니, 무슨 이런 분부가!

잠티

아비의 심정을, 찢어지는 내 가슴을, 약한 내 마음을 헤아려 주게. 군말하지 말고, 맹세한 대로 자네 임무를 수행하게.

에탄

전 멋도 모르고 맹세했습니다. 이런 참혹한 임무라면 맹세하지 않았을 것을. 만고 충절 우리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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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정상 그럴 수가…. 잠티

그만하게. 명령일세. 나도 아비라네. 내 가슴도 찢어지네. 나도 수백 번 주저했네. 하지만 나는 핏줄을 포기했네. 그러니 자네도 인정을 버리게. 자, 어서 가게.

에탄

어쩔 수 없군요.

잠티

제발 날 혼자 내버려 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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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잠티(혼자 남아)

잠티

난 핏줄을 포기했어! 아, 가련한 아비, 아이 목소리가 귀에 쟁쟁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귀한 아들 목소리. 하늘이시여! 이 가슴의 고통을 멈춰 주소서! 내 아내, 내 아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구나! 이 가슴의 상처를 가려 주소서! 인간은 너무 약해서 자연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이 혼자 뭘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절 도와주십 시오. 흔들리는 이 마음을 붙잡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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