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특집인티 6 동시 전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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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한국동시



나팔 소리 김요섭

강물이 흐르는 지도입니다 굵은 산맥도 있읍니다 잔잔한 시내도 있읍니다 숲 속의 길도 있읍니다 어린아이가 뛰어갈 때 발자국에서 레슨 받는 피아노 소리가 납니다.

지도 속에서 나팔 소리가 울리면 지도는 새벽으로 깨어납니다 교실과 그네와 철봉이 파랗게 빛납니다 나팔 소리 울리자 크레용으로 그린 태양 밑에서 살던 나무토막으로 만든 달을 걸어 놓고 살던 색종이로 별을 오려 붙이고 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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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모두 곤한 잠에 빠집니다.

시장판의 장사군들은 물건을 든 채 자동차 운전사는 핸들을 잡은 채 서류에 도장을 찍던 사람은 도장을 든 채 거리에서 싸움하던 사람은 멱살을 움켜쥔 채

부엌에서 밥 짓던 사람은 남비를 든 채 정치가는 자기 사진이 난 신문을 펼친 채

그러나 어린이들은 집집에서 북을 치며 나옵니다 하나님이 내려다보시니까 풀밭이 퍼져 가는 것 같습니다.

나팔 소리가 또 울렸읍니다 폭격기가 학교 지붕 위를 날아왔읍니다 한 대의 그랜드 피아노처럼 그러나


1940년의 그 어두운 하늘에서처럼 1950년의 그 어두운 하늘에서처럼 교실과 그네, 철봉과 어린이의 벤치를 부수는 것이 아닙니다.

기총소사1) 소리 음악의 폭격 총알은 캐라멜이 아니면 보올2) 과자와 연필 색종이와 동화집을 쏟아 놓는 폭격 비들기가 만국기를 물고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나팔 소리 울리는 우리들의 새 지도 어른들이 곤히 잠든 세계의 내일 아침입니다.

1) 기총소사: 비행기에서 목표물을 비로 쓸어 내듯이 기관총으 로 쏘는 일. 2) 보올: 볼(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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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팔이 아이 이종택

저므는 행길에

맨발로 달리는 신문팔이 아이

매서운 겨울바람 뒤쫓아 달립니다

“신문! 신문! 신문 삽쇼”

아이가 소리 지르면 바람도 소리칩니다

추웁질 않읍니다 배도 고프지 않읍니다


싸움이 끝나는 날

일선 가신 아버지가 돌아오실 날까지

그 아이는 견디는 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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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가겟집 아이 유경환

길가 움막집에 햇볕이 들었읍니다.

작은 아이 하나 새하얗게 성에 앉은 들창으로 내다봅니다.

거리엔 벌써 지게꾼 빵장수 나와 앉았읍니다.

전쟁은 뒷골목으로만 지나갔읍니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것도 불평을 할 것이


없읍니다.

길모퉁이, 자기네 우동집의 우동이 썩 잘 팔리는 것이 기쁘기만 했읍니다.

아이는 하얀 창에다 ‘호오’ 하고 입김 불어 가며

떡국 우동 빈자떡 십환 금일 개업

예쁜 손으로 나란히 이런 것들을 옮겼읍니다.

전쟁은 뒷골목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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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갔읍니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것도 불평을 말할 것이 없읍니다.


피난민 순이 이종택

1. 가랑비 내리는 길 한 모퉁이에

피난민 순이가 능금을 파네.

찢어진 우산에서 빗물 떨어져

목판 위의 능금도 세수한 얼굴.

이웃 가게 아줌마가 순이 보고 사 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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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능금 사 가이소, 떨이해 가이소!”

경상도 사투리 흉내를 내는

순이의 목소리도 빗속에 젖네.

지나가던 아저씨가 순이 나이 묻더니

“쯧쯧” 혀 차시며 몽땅 사 가시네.


봄 이종기

속심이 풀려나는 잔디밭을 미끄럼 타고 내린 활짝한 봄볕이 고아원 뒷뜰까지 쪼르르 굴렀다

음메에… 어린 염소 한 마리 향긋한 햇풀을 씹다 말고 운다

고 새까만 털을 부시는 햇발이 눈에 따거워

“너희도 전쟁에서 어머닐 잃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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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토닥 빨래 소리 들려오는 한나절 고아원 뒷뜰에 어린 염소가 운다.

≪소년세계≫, 1954. 4


전쟁을 겪은 우리들의 졸업장 1956년 봄에 읊은 시 윤석중

졸업장을 받는 두 손이 어째서 이처럼 떨리는가. 슬프지도 않은데 어째서 자꾸만 눈물이 솟는가.

아아 6년 전 6월은 우리들이 학교 든 달! 바로 그해 그달은 전쟁이 터진 달! 책보를 베개 삼아 피란살이 다녔었지. 거적 깔고 공부하고 달빛 별빛에 책을 읽었지. 그렇게 해서 기어히 타고 만 졸업장!

아아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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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라. 단짝 동무들이 얼마나 축이 났는가. 낯선 동무들이 얼마나 불었는가.

전쟁을 겪은 우리들의 졸업장은 상제 아이 옷보다도 희구나 거기 쓰인 먹 글씨는 총알보다도 검구나.

때는 3월 38선 근방 휴전선에도 봄은 찾아와 진달래랑 개나리랑 피어 있겠지. 반도 강산 동여맨 꽃 허리띠를 풀러서 꽃굴레를 만들어 머리에 쓰고 덩실덩실 춤을 추자. 남북 통일 만세! 조국 통일 만세!

아아 그날이 오면, 슬픈 전쟁을 겪은 우리들의 졸업장은


잔치에 한 몫 낄 즐거운 초댓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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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석용원

모래 위에 지도를 그린다. 우리나라 지도.

허리 짤룩 그었다. 휴전선.

오가지 못하는 담 너머 여긴 금이가 사는 곳 금이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핑 솟는 눈물방울 지어 모래 위에 떨어진다. 지도를 적신다.


‘원수의 휴전선!’ 하고 서부럭서부럭 마구 발길로 뭉겨 버린다.

≪소년동아≫, 1956.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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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권오순

눈 쌓인 언덕에서 누굴 보고 손짓하나

한 포기 마른 억새꽃 하얀 손길은

흘러가는 구름에도 눈시울 적시며 북녘 하늘 우러러

올해에나 명년에나 손 모으시다 뼈만 앙상해진 우리 할머니 하얀 손길


봄 오면 억새풀은 푸르러지고

아!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우리 할머니 그날을 껴안고 부둥켜안고 울다가 웃다가 춤추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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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지 않는 기차표 박경종

할아버지는 기차표를 사 오라고 하신다. 저! 함경도 홍원 가는 기차표를…

나는 좋아라고 정거장으로 달려가니 하얗게 식은 난로가 날 기다리는데

서성거리는 여러 사람들 속에는 보따리를 든 할머님도 의자에 기대앉은 사람들도 다들 고향으로 갈 사람들인데

우리 할아버지 고향인 이북 홍원으로 가는


기차표는 팔지 않는다.

낡은 털모자를 쓰고 열심히 담배만 피우시는 할아버지도 이북 가는 기차를 기다리시는지 눈 내리는 창밖만 내다보고 앉았다.

나는 찌부러진 갓을 쓴 정거장을 뒤돌아보면서

“내일도 나와 보고 또 모레도 나와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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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의 어머니 박용열

포 소리에 놀라 집을 떠난 아가는 커서 아가를 낳고

도란 도란 살아가며 모든 것을 잊으려도

아직도 철없는 엄마의 아가.

언제나 보고픈 어머니의 모습.


저 멀리 휴전선 너머 그 얼굴 더듬어

“어머 니” “어머 니” 가슴이 터지도록 목이 메면

“그리운 내 악아 ” 메아리쳐 오겠지.

≪고요≫, 아동문예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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