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 사선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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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觀詞選 진관 사선


秦觀詞選 진관 사선


편집자 일러두기 ∙이 책은 진관(秦觀) 저(著), 서배균(徐培均) 전주(箋註) ≪회 해거사장단구( 淮海居士長短句) ≫[상해고적출판사( 上海古 籍出版社): 상해, 1985]를 저본으로 삼아 번역한 것입니다.

∙전체 110수의 사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이고 작품성이 뛰어난 작 품을 중심으로 35수를 발췌했습니다. ∙원 작품의 맛을 최대한 살리면서 쉽고 유려한 우리말 번역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주석은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가 상세하게 달았습 니다. ∙괄호 안의 말과 바깥 말의 독음이 다를 때, 괄호가 중복될 때에 는 [ ]를 사용했습니다. ∙이 작품은 <지식을만드는지식 클래식>을 통해 원전을 모두 번역한 책도 함께 출간됩니다. ∙뒤표지의 글은 옮긴이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 문장을 직접 뽑아낸 것입니다. ∙표지에 사용한 색상은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을 위 해 개발한 고유 색상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은 환경인증서를 획득했습 니다. 표지와 본문은 모두 친환경 재질을 사용했습니다.


그리움은 봄과 함께

간밤의 안개 자욱하고 흰 구름 해를 뒤덮었지만 날은 점차 길어만 간다. 난초 핀 물가에 진흙 윤기 흐르니 어느 집 제비인지 즐겁게 물어 나른다. 벌집에 꿀 향기 적어선지 곳곳에 벌들이 분주하다. 종일토록 찾아오는 이 없이 발만 걸렸는데 거미줄만 바람에 실려 이따금 담 넘어오는구나. 가랑비 내린 뒤 복사꽃 살구꽃 슬픔이 인 듯 붉은 눈물 방울져 흘러내린다.

다정한 마음 감상에 젖기 쉽지만 떠나기 아쉬워 우두커니 서 있으니 끝없이 내장이 뒤틀린다. 생각하면 작은 경대 옥거울 붉은 연지 거듭 바르고 25


옥 배롱(焙籠) 금 다리미 수시로 옷에 침향이 배어들게 했지. 버들 아래 함께 노닐던 곳 돌이켜 보아도 청루는 이제 타향. 옛일을 생각하면 남방의 편지지 만 겹으로 있다 해도 산란한 이 마음 써내기 어려우리.

沁園春 宿靄迷空, 膩雲籠日, 晝景漸長. 正蘭皋泥潤, 誰家燕喜. 蜜 脾1 香少, 觸處2 蜂忙. 盡日無人簾幕掛, 更風遞游絲時過牆. 微雨後, 有桃愁杏怨, 紅淚淋浪. 風流寸心易感, 但依依竚立, 回盡柔腸. 念小匳瑤鑑, 重勻 絳蠟.3 玉籠金斗, 時熨沉香.4 柳下相將遊冶處, 便回首, 青 樓5 成異鄉. 相憶事, 縱蠻牋萬疊, 難寫微茫.

해 설

봄 경치를 묘사하면서 이별한 여인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하편(下片)의 ‘돌이켜 보아도 청루는 이제 타향(青樓成異鄉)’ 은 양주(揚州)에서의 유락 생활(遊樂生活)을 가리키는 듯해 희 령(熙寧)·원풍(元豊) 연간 집 안에 거주하고 있을 때 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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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인 것 같다.

1.

蜜脾(밀비): 벌집의 한 방 한 방이 꿀을 저장하고 있는 형태가 지라 같

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왕우칭(王禹偁) ≪봉기(蜂記)≫: “그것이 빚 어낸 꿀이 지라 같아 봉비(蜂脾)라 한다(其釀密如脾, 謂蜂脾).” 2.

觸處(촉처): ≪시사곡어사회석(詩詞曲語辭匯釋)≫(권6) ‘촉처(觸處)’

조: “도처 또는 수처(隨處: 곳에 따라)의 뜻과 같다.” 3.

絳蠟(강랍): 본래 홍촉(紅燭)을 가리킨다. 한류(韓疁) <고양대(高陽

臺)·제야(除夜)> 사: “은빛 도리깨 소리 잇달아 들으며, 붉은 촛불 거듭

밝힌다(頻聽銀簽, 重燃絳蠟).” 그러나 여기서는 여인의 연지를 가리키 는 듯하다. 4.

沉香(침향): 향목(香木)이다. 침수향(沉水香)이라고도 한다. ≪태평

어람(太平御覽)≫(권982)에 ≪남주이물지(南州異物志)≫를 인용해 “침 수향은 일남(日南)에서 나는데, 얻고자 하면 나무를 잘라 땅에 저장한다. 오랫동안 쌓아놓으면 외피는 썩고 중심부는 지극히 단단해져 물에 넣으 면 가라앉기 때문에 침향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5.

青樓(청루): 위(魏) 조식(曹植) <미녀편(美女篇)>: “청루는 대로에

접해 있고, 높다란 문 겹겹이 잠겨 있다(靑樓臨大路, 高門結重關).” 이 로부터 청루가 원래 부귀한 집을 가리켰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양(梁) 유 막(劉邈) <만산견채상인(萬山見采桑人)> 시: “기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차려입고 청루를 내려간다(倡妾不勝愁, 結束下靑樓)”로부터 청루 가 기원(妓院)을 비유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후자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두목(杜牧) <견회(遣懷)> 시: “10년 만에 양주의 꿈에서 깨어나니, 얻 은 건 청루에서의 무정하다는 명성뿐(十年一覺揚州夢, 嬴得靑樓薄倖 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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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이별한 여인

작은 누각 멀리 하늘로 솟아 있어 수놓은 수레와 치장한 말 달리는 것을 내려다본다. 붉은 발 반쯤 걸고 홑옷을 막 갈아입었다. 청명 시절 따스함을 실은 가벼운 바람과 갠 날을 희롱하는 보슬비가 없어질 듯하다가 다시 찾아든다. 꽃 파는 소리 다 지나가고 지는 해 정원에 비쳐 드는데 붉은 꽃잎 줄을 지어 우물가로 날아든다.

패옥을 딩동 거리며 이별한 후 언약이 어그러져 다시 만날 수 없음이 한스럽다. 명리에 속박된 몸 하늘이 아신다면 하늘조차 야위리. 28


꽃 아래 거듭난 문과 버들 가 깊숙한 골목 차마 돌이켜 생각할 수 없구나. 다정했던 그 사람 그립건만 그때의 하얀 달만이 전과 같이 나를 비춘다.

水龍吟 小樓連遠橫空, 下窺繡轂雕鞍1 驟. 朱簾半捲, 單衣初試, 清 明時候. 破暖輕風, 弄晴微雨, 欲無還有. 賣花聲過盡, 斜陽 院落, 紅成陣, 飛鴛甃.2 玉佩丁東3 別後, 悵佳期, 參差難又. 名韁利鎖, 天還知道,4 和天也瘦. 花下重門, 柳邊深巷, 不堪回首. 念多情但有, 當 時皓月, 向人依舊.

해 설

이 작품이 관기(官妓) 누완(婁琬)을 그리워하며 지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작가가 봄날 이별한 여인을 생각하며 쓴 것 임에는 틀림이 없다. ≪초계어은총화(苕溪漁隱叢話)·전집 (前集)≫(권50)에 ≪고재시화(高齋詩話)≫를 인용해 “진관이 채주(蔡州)에 있을 때 자(字)를 동옥(東玉)으로 하는 관기 누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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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매우 가깝게 지냈다. 그녀에게 사를 증정했는데 <소루연원 횡공(小樓連苑橫空)>과 <옥패정동별후(玉佩丁東別後)>가 그것이다”라고 했다. 진관은 원풍(元豊) 8년(1085)에 진사에 급제해 채주교수(蔡州敎授)로 파견되었다가 원우(元祐) 5년 (1090)에 비로소 서울에 들어와 비서성(秘書省)에 근무했는데, 이 작품은 그때 지은 것이다.

1.

繡轂雕鞍(수곡조안): 아름답고 화려하게 장식된 거마(車馬)를 가리킨

다. 송기(宋祁) <자고천(鷓鴣天)> 사: “아름답게 장식된 거마를 좁은 길에서 만났다(畫轂雕鞍狹路逢).” 2.

鴛甃(원추): 대칭형의 벽돌로 쌓아 만든 우물 벽을 가리킨다.

3.

玉佩丁東(옥패정동): 옥패는 고대에 사대부가 의대(衣帶)에 매고 다

녔던 옥 장신구를 가리킨다. ≪예기(禮記)·옥조(玉藻)≫: “고대의 군자 는 반드시 옥을 찼다(古之君子必佩玉).” 정동(丁東)은 옥 장신구가 서로 부딪는 소리다. 4.

天還知道(천환지도): 이하(李賀) <금동선인사한가(金銅仙人辭漢

歌)> 시: “하늘에 정이 있다면 하늘도 늙으리(天若有情天亦老)”에서 나

왔다. ≪시사곡어사회석(詩詞曲語辭匯釋)≫(권1) ‘화(和)’ 조: “화(和) 는 연(連: ∼조차)과 같다. 진관의 … <수룡음(水龍吟)> 사: ‘名韁利 鎖, 天還知道, 和天也廋’는 ‘하늘조차 이와 같은 고통에 처해서는 마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인데, 하물며 사람임에랴!’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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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슬픔

높다란 정자에 기대서니 원한은 봄풀처럼 푸릇푸릇 돋아나 깎아도 다시 자란다. 생각하면 버들 가 푸른 말 타고 떠난 후 강가에서 붉은 소매의 그녀와 헤어질 때 남몰래 놀라며 비통해했지.

공연히 하늘은 어여쁜 사람을 주시어 달 밝은 밤 주렴 안의 그윽한 꿈이었고 봄바람 십 리 길의 은근한 정이었지. 어찌하나? 즐거운 시절은 어느덧 흐르는 물 따라 가버려 거문고 소리 끊기고 푸른 옷의 향기 사라져 버렸으니! 어찌 견딜까, 꽃잎은 조각조각 저녁 하늘에 흩날리고 비는 부슬부슬 하늘을 뒤덮었으니! 가슴 아파하는데 꾀꼬리는 또 운다. 31


八六子 倚危亭, 恨如芳草,1 萋萋剗盡還生. 念柳外青驄別後, 水邊 紅袂分時, 愴然暗驚. 無端天與娉婷. 夜月一簾幽夢, 春風十里柔情. 怎奈向,2 歡 娛漸隨流水, 素弦聲斷, 翠綃香減. 那堪片片飛花弄晚, 濛 濛殘雨籠晴. 正銷凝,3 黃鸝又啼數聲.

해 설

이별 후의 그리움을 쓴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억제할 수 없는 이별의 슬픔을 깎아도 다시 자라는 봄풀에 비유함으로써 독자 로 하여금 ‘창연암경(愴然暗驚)’의 함의를 체득하게 했다. 지난 일은 흐르는 물 따라 가버리고 그녀를 다시 만나기 어려운 지금 흩날리는 꽃잎과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그리움을 솟구치게 하 는데 꾀꼬리 소리마저 들린다고 한 것은 끊임없는 그리움과 그 로 인한 고통을 암시한 것이다. 원풍(元豊) 3년(1080) 손각(孫 覺)이 지은 <소백두야정(召伯斗野亭)> 시에 대해 진관 등이

화답했는데, 장완(張琬)에게 ‘높다란 정자에서 들판을 내려다 본다(危亭下瞰野)’ 구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사가 그와 동시 에 지어졌을 것이다.

1.

恨如芳草(한여방초): 이욱(李煜) <청평악(淸平樂)> 사: “이별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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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봄풀과 같아서, 멀어져 갈수록 더욱 돋아만 난다(離恨恰如春草, 更行 更遠還生)”에서 나왔다. 2.

怎奈向(즘내향): 여기서 향(向) 자는 뜻이 없는 사미(詞尾)다. ≪시사

곡어사회석(詩詞曲語辭匯釋)≫(권3) ‘향(向) 二’ 조: “향(向)은 어조사 로서 ‘내하(奈何)’, ‘여하(如何)’ 따위의 말에 전용되어 어기를 강화하는 어미로 쓰인다. 안수(晏殊) <체인교(殢人嬌)> 사: ‘비단 손수건으로 눈물 가리고, 분 자국 얼룩져도 내버려 둔다. 어찌하나, 천 번 만 번 만류 해도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을!(羅巾掩淚, 任粉痕霑汙. 怎奈向, 千留萬留 不住)’” 3.

銷凝(소응): ≪시사곡어사회석≫(권5) ‘소응(銷凝)’ 조: “‘銷凝’은 ‘消

凝’이라고도 하며 ‘소혼응혼(銷魂凝魂)’을 줄인 말이다. ‘소혼(銷魂)’과

‘응혼(凝魂)’은 모두 넋이 빠졌다는 뜻이다. … ‘소혼의 ’ 뜻이 인신(引伸) 되어 감회·상심 등의 정감도 표시하게 되었다. … 진관의 <팔륙자> 사는 그 체를 본받아 말미에 ‘正鎖凝, 黃鸝又啼數聲’이라 했다. 이로부터 ‘소응은 ’ ‘소혼을 ’ 대신해 같은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예문을 더 들 어보면 유영(柳永)의 <야반악(夜半樂)> 사: ‘이 아름다운 경치를 대하 니, 갑자기 감회에 젖어, 슬픔이 인다(對此佳景, 頓覺銷凝, 惹成愁緖)’에 서 ‘돈각소응(頓覺銷凝)’은 ‘돈각소혼(頓覺銷魂)’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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