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보러 와요
나오는 사람들
김세곤 반장 박달호 형사 김인중 형사 조남호 형사 박영옥 기자 미스 김 남씨 부인 김우철 사내(최기정) 용의자(이영철, 남현태, 정인규, 진짜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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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춤추는 악령 1
(밤. 비 내리는 들판. 들길에 빨간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우 산을 받고 걸어간다. 음산한 기운이 스쳐 간다. 형체 불명의 검은 물체가 여인을 덮친다. 외마디 비명. 잠시 후 거친 숨 소리)
남자 씹할 년! 몇 살이야? (뭐라고 웅얼거리는 여자의 소리)
서방 있어?
(멀리 불빛과 함께 오토바이 소리. 점차 가까이 다가온다.)
엎드려! 소리 지르고 싶지? 질러 봐.
(멀어지는 불빛. 빗소리. 서걱서걱 옷 벗기는 소리. 숨소리)
여자 사…살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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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시키는 대로만 해. (여자의 가는 비명 소리) 쉬잇!
(남자와 여자의 거친 숨소리 계속되다 갑자기 끊어지며 여 자의 짧은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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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원 벤치에서
(어느 화창한 봄날. 오산의 어느 공원. 벤치에 40대 중반의 남자가 피폐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오른손에 지팡이를 들 었으며 왼팔은 꺾여 있고 비틀어진 손가락들이 오른편 가슴 에 닿아 있다. 얼굴은 찌그러들어 삐뚤어진 입술 아래로 침 이 흐른다. 남자로부터 3∼4미터 떨어진 곳에서 30대 초반 의 여인이 카메라 셔터를 막 누르는 순간이다.)
박 기자 좋아요. (남자의 옆에 와서 앉으며) 힘드세요? (남
자가 말을 못 알아듣자 큰 소리로) 힘드시냐구요? (남 자가 개미 같은 소리로 말하니까 남자의 입에 귀를 대 고 듣는다) 괜찮다구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 제 곧 나을 거예요. (반응이 없자 큰 소리로) 김 반장님 은요, 이제 곧 나아서요, 마음대로 걸어 다니고 얘기도 잘하고 그럴 거라구요. (남자, 고개를 흔든다) 아니라 구요? 아니에요. 우리 아버님도 풍 맞으셨는데요,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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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에 지팡이 버리고 그냥 걸으세요. 얘기도 잘하시 고…. 요새는 약수터에서 만난 할머니하고 데이트도 하시는데요? (남자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자 남자 의 팔짱을 끼며) 데이트 말예요, 데이트. (남자, 히죽이 미소 짓는다. 사이) 아세요, 또 사건 터진 거? (남자, 고 개를 젓는다) 모르세요? (남자, 다시 고개를 젓는다) 네? (남자, 얼굴을 찌푸리며 지팡이를 든 채 오른팔을 내젓는다) 아, 얘기하지 말라구요? 알았어요. 안 할게 요. (사이) 사진 한 장 더 찍어요. 이번에는요, 저하고 둘이서 찍어요. (삼발이를 세우고 카메라의 뷰파인더 를 들여다보며) 나중에 다 나아서 이 사진 보면 재밌을 거예요. (셔터를 누르고 벤치로 뛰어와 남자 옆에 앉 는다. 찰칵 소리와 함께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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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파티
(이른 아침. 화성 특별 수사본부 사무실. 김 형사가 금방 출 근하여 자리에 앉아 있다. 음악을 들으며 시를 읽고 있다.)
김 형사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 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시집을 책상 위로 던지며) 씨팔… 인생 좆 같구나. 너 는 혼자 바닷물 들여다보며 옛날얘기 각색하고 윤색 하고 지랄을 떠는데, 나는 시골 파출소 순사 짓 하며 썩어 가는 여자 시체나 주무르고 앉았으니…. 하지만 여기서도 30분만 나가면 태안반도 소금이 썩는 검은 바다가 있다. 너는 남해 푸른 바다 물속에 잠기고 나는 태안의 검은 바다 위에 떠 있다. (음악에 맞추어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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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흉내를 내다가 갑자기) 그래, 바다! 바다다, 바다! (서랍을 열어 서류를 뒤진다) 박 기자 (사무실 구석에 숨어 있다가 나와서 사진을 찍으며)
바다가 뭐예요? 김 형사 (놀라며) 뭐야? 박 기자 (백에서 명함을 꺼내 김 형사에게 건네주며) 경기신
문 사회부 박영옥이에요. 김 형사 기… 기자님이십니까 ? 박 기자 (악수를 청하며) 네, 수사본부 담당이에요. 김 형사 저는 김인중이라고 합니다. 며칠 전에 새로 부임해
왔습니다. (악수를 하다가 갑자기 카메라를 낚아채 필 름을 꺼낸다) 박 기자 필름 이리 내놔! 김 형사 어서 나가 보셔. 무단 침입으로 잡아넣기 전에. (필
름을 통에서 주욱 잡아 뺀 후 박 기자에게 던져 준다) 박 기자 (발악하듯) 너 이게 무슨 필름인지 알아? 물어내 이
새끼야. 물어내애! 박 형사 (등장하며) 어… 박 기자, 왜 이래? (박 기자 자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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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 어떻게 된 거야, 김 형사? 김 형사 저 여자가 몰래 숨어 들어와서 우리 기밀서류 다 뒤
지고 사진까지 찍었어요! 박 기자 생사람 잡지 마, 이 새끼야! 김 형사 나 욕할 줄 몰라요. 고운 말 좀 씁시다. 박 기자 (김 형사에게 달려들며) 특종 사진 어떻게 할 거야?
대답 좀 해 봐, 이 새끼야! 김 형사 고운 말 좀 쓰자니까요, 씹할 년아! 박 기자 저 새끼 세상 무서운 거 모르네. 야, 이 씹할 놈아!
(이때 김 반장이 짐 가방을 메고 등장하여 잠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박 형사 (김 반장에게) 뭐야? 김 반장 나 오늘 부로 여기 부임하게 된 김세곤이오. 박 형사 아! 반장님. 오신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박달홉니다. 김 형사 김인중입니다. 김 반장 (박 기자에게) 이분은 누구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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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형사 경기신문 박 기잡니다. 이 동네 정보통이죠. 김 반장 기자분이시라구요? 박 기자 박영옥이에요. 김 반장 뭐 언짢은 일이라두…. 박 기자 (김 형사를 가리키며) 저 얼치기 교육 좀 잘 시키세
요. 김 반장 네? (박 형사에게) 무슨 일입니까? 박 형사 아무것도 아닙니다. 박 기자 (필름을 흔들어 보이며) 특종이 날아갔는데 아무것
도 아니라구요? 그냥 안 넘어가. (김 형사에게) 야, 얼 치기! 너 확실히 해. 김 형사 씹할 년이 눈에 뵈는 게 없나? 김 반장 이 사람, 왜 이러나! (박 기자에게) 미안합니다. 부
서장으로서 사과드립니다.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박 기자 좋아요. 공식적으로 문제 삼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보상은 꼭 받아야겠어요. 김 반장 알겠습니다. 박 기자 근데 반장님 인상이 너무 좋으시다. 동대문서 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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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있다가 오셨죠? 김 반장 아주 쪽집게시네. 박 형사 반장님도 서울이세요? 저기 김 형사는 치안본부 있
다가 왔거든요. 김 반장 치안본부? 거기서 이리로 오는 사람도 있나? 박 기자 사진 한 장만 찍을게요. 김 반장 사진은 뭐, 일도 시작하기 전에. 박 기자 (사진을 찍고 나서) 나중에 또 들를게요. 김 반장 자주 들르시오. 박 기자 김 형사! 청구서 보낼 테니까 보상금 준비해 둬요.
(흥분해서 일어나려는 김 형사의 사진을 찍은 후 퇴장) 김 반장 이거 짐도 못 풀고 일 시작하게 됐구먼. 우리 팀에
배당 형사가 넷이라고 들었는데…. 박 형사 한 사람은 잠복근무 중이구요, 또 한 사람은 윤 형사
라고 있었는데 두 주 전에 과로로 쓰러졌어요. 영 못 일어나네요. 아마 형사 생활 시마이해야 할 모양이에 요. 반장님도 몸 사리셔야 됩니다. 김 반장 내가 몸 사린다구 해서 몸이 사려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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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형사 그래두요. 여기 몇 달 사이에 벌써 본부장 세 번 갈
렸구요, 반장님도 세 번째예요. 첫 번째 반장은 한 달 도 안돼서 짤렸구요, 두 번째 반장은 한 달 만에 딴 데 로 튀었어요. 돈 써 갖구요. 김 반장 난 짤리지도 않고 튀지도 않을 거요. 잘 좀 해 봅시다. 박 형사 좋습니다. 김 반장 그동안 4차 사건까지 수사기록 있지요? 봅시다. 박 형사 네.
(박 형사는 반장에게 수사 기록을 가져다주고 김 형사는 자 기 자리로 돌아가 카세트 녹음기를 튼다. 모차르트가 흘러 나온다.)
여깄습니다. 반장님, 제가 커피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김 반장 커피? 좋지. 박 형사 (전화를 건다) 미스 김? 나야. 모닝커피 한잔해야지.
알아서 해. 빨리. 김 반장 (김 형사에게) 자네 신세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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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사 네? 김 반장 업무 시간에 웬 음악이야? (사이) 치안본부 출신은
다 그런가? (김 형사 카세트에 헤드폰을 꽂고 듣는다) 반년 사이에 세 여자가 죽었고 아니, 네 명이지. 네 번 째 여자는 몇 달 전에 죽었는데 엊그제 발견되었다. 그 러니까 네 번째 여자는 사실은 두 번째 여자와 세 번째 여자 사이에 당한 것이다!
(이때 쑥 다방 미스 김이 커피 보자기를 들고 등장한다.)
미스 김 안녕하셨어요? 박 형사 어, 어서 와, 미스 김. 미스 김 처음 뵙는 분들이네. 박 형사님, 저분들은 새로 오신
모양이네요. 박 형사 새로 오신 김 반장님이셔. 미스 김 반장님이세요? 미스 김이에요. 잘 부탁합니다. (김
형사에게) 어머나, 저분은 미남이시다. 박 형사 미남뿐이 아냐. 서울대 영문과 출신에 시인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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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김 서울대요? 어머나, 어머나! 나 태어나서 서울대 나
온 사람 처음이에요, 직접 만나 보긴. 영광이네요. 시 까지 쓰세요? 나도 시 쓰거든요. (인사하며) 반갑습니 다.
(전화벨 소리)
박 형사 (전화를 받는다) 어디야, 지금? 뭐? 진짜야? 알았어.
빨리 와. (김 반장에게) 반장님, 잡았습니다! 김 반장 범인을? 박 형사 네! 미스 김 (팔짝팔짝 뛰며) 정말로 범인을 잡았대요? 김 형사 아가씬 몰라도 돼. 미스 김 전 수사본부 전담 커피 요원이란 말이에요! 김 형사 그럴 리가 없는데…. 박 형사 무슨 소리야? 김 형사 조 형사가 잠복하던 자리에 그놈이 나타날 수가 없
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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