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심조룡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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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心雕龍 문심조룡


편집자 일러두기 ∙ 이 책은 1989년 상하이구지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에서 출판 된 잔잉(詹鍈)의 ≪문심조룡의증(文心雕龍義證)≫을 저본으로 삼았으며, 저우전푸(周振甫)가 1984년 타이베이(臺北) 리런서국 (里仁書局)에서 펴낸 ≪문심조룡주석(文心雕龍注釋)≫과 일본 인 도다 고교(戶田浩曉)가 1983년 도쿄(東京) 메이지서원(明治 書院)에서 펴낸 ≪문심조룡(文心雕龍)≫을 참고본으로 삼았습

니다. ∙ 이 책은 ≪문심조룡≫ 50편을 완역했으며, 다만 각 편의 마지막 부분 구절인 ‘찬(贊)’은 따로 모아서 장편 시의 형태로 실었습니다. ∙ 독자의 편의를 위해 각주를 달지 않고 모두 문장 속에서 소화했 습니다. ∙ 선집이나 단행본 작품은 ≪ ≫를 사용하고 단편은 < >로 표기 했으며, 독음이 한글과 다른 경우의 한자는 [ ]에 넣어 표시했습니 다. ∙ 나라 이름과 작품명 및 작가는 한글(한자)로 표기했습니다. 한 페이지에서 한글(한자)를 표기한 다음, 중복되는 경우는 한글로 표기했습니다. ∙ ‘찬(贊)’과 ‘찬(讚)’, ‘전(銓)’과 ‘전(詮)’의 경우와 같이, 같은 뜻의 글자가 다르게 표현된 부분은 원문대로 표기했습니다. ∙ 인명·지명·나라이름은 25편까지는 한글(한자)로 표기하고 26편부터는 거의 반복되는 경우가 많아서 한자는 가능한 한 생략 했습니다. ∙ 각 편의 ‘내용 해설’ 부분은 옮긴이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한 부분입니다. ∙ ‘☐’는 원문의 산일로 인해 빠진 부분을 나타냅니다.


원도(原道) 제1

해제

원도란 ‘도에 바탕을 두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천지자연 의 이법은 아름다움을 그 본질로 하고 있음을 논하고, 인간 문화 활동의 일환으로서의 문학도 본질적으로는 도에 바탕을 둔 미 적 언어 표현이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우주에는 자연 이 법으로서의 도가 존재하며, 도는 아름답게 빛나는 성질을 가지 고 있다는 것이 유협의 인식이다. 둥글면서 어두운 하늘, 네모 지고 누른 대지, 하늘에 빛나는 일월성신, 대지에 아름답게 질 서를 부여하는 산천, 그러한 것은 모두 도의 미적 발현, 즉 ‘도의 무늬’로 칭해야만 하는 것으로, 하늘에 속하는 것을 ‘천문’이라 하고 대지에 속하는 것을 ‘지문’이라 부른다. 더욱이 동물의 아 름다운 무늬, 구름과 노을의 아름다운 색채, 초목의 아름다운 꽃 등은 물론, 수풀에 스치는 바람소리, 돌에 부딪치는 물소리 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천지간의 온갖 아름다운 현상은 모두 ‘도 의 무늬’로 인식했다. 그런데 천지에 사람이 참가하는 때, 소위 천·지·인의 삼재가 성립하고 사람의 활동은 인간의 문화를 낳게 된다. 이것이 사람의 무늬, 즉 ‘인문’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도의 영묘한 작용은 무의식의 자연으로부터 의식이 있는 인간 활동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 활동은 말을 낳는데, 말은 또한 아름다운 온갖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여기에서 말 의 무늬가 생겨나게 된다. 문장 또는 문학이란 실로 이 ‘말의 무 늬’인 것이다. 원래 ‘문’이란 ‘무늬’이며 ‘모양’이다. ‘문질빈빈(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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質彬彬)’이라는 말과 같이, ‘문(표현)’은 ‘질(내용)’에 부합해야

하는 것으로 아름답게 존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일월은 하늘에 빛나는 자연의 무늬이며, 산천은 땅에 새겨진 자 연의 모양이다. 천지가 만물을 기른다고 하는 대사업에 사람이 참가해서 문화를 창조하는 때에, 그 문화의 하나로서 ‘말의 문’, 즉 문학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말의 무늬’는 ‘도의 무늬’가 그러 하듯이 그 자체가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협의 문 학 창작 방법에서는 ‘미’가 문학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마디로 인문이라 해도, 그것은 사람이 단지 사람이라 는 것만으로 쉽게 생산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월산천· 노을·구름·초목 등 ‘도의 무늬’에 필적할 만한 ‘언어의 무늬’ 에 대한 창조는 성인이라는 특수한 사람들을 기다려서야 비로 소 가능해진 것이다. 성인은 문장을 매체로 해서 천지의 이법을 인간의 이법에까지 전개한 위대한 존재인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의 인간은 단순한 사람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모여 이루어진 인 간의 세상, 즉 ‘The World’의 의미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리하 여 성인의 도는 실로 천지의 이법 그 자체이며, 그러한 도를 기 록한 문학은 하늘의 일월이나 땅의 산천과 마찬가지의 가치와 권위를 지닌 절대적인 것이다. 이상이 <원도> 편의 요지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문심조룡≫ 전체에 걸친 일관된 사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늬의 존재는 훌륭한 것으로, 그것이 천지의 발생과 동시 에 생겨났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릇 검은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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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이 섞여서 하늘과 땅이 생기고, 해와 달은 두 개의 옥을 겹쳐 놓은 듯이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을 나타내었으며, 비 단 같은 산과 강은 땅의 형상을 옥 주름으로 전개했으니, 아 마도 이것이 자연의 무늬일 것이다. 올려다보아 일월성신 의 빛남을 관찰하고, 내려다보아 산천초목의 자태를 살피 니, 높고 낮은 위치가 저절로 정해져 있는 까닭에 천지는 상 하로 나뉘어져 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오직 사람만이 천지에 참가해 정기를 모을 수 있으니, 천·지·인을 가리 켜 삼재라고 한다. 오행의 뛰어난 기운은 실로 천지를 나타 내는 마음이어서, 마음이 생기면 말이 성립하고, 말이 성립 하면 문장으로 밝혀지는 것은 자연의 도리라고 할 수 있다. 이 도리가 두루 만물에 미치게 되면 동물과 식물에도 모 두 무늬가 있게 된다. 용과 봉황은 아름다운 색깔로 상서로 움을 나타내고, 호랑이와 표범은 두드러진 모양으로 자태 를 응축시키고, 구름과 노을의 조각 같은 색채는 화공의 솜 씨를 뛰어넘음이 있고, 풀과 나무에 장식된 아름다움은 명 장의 기교를 기다릴 필요가 없으니, 어찌 인공의 장식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저절로 그러할 뿐이다. 숲을 지나는 바람 의 소리가 맺는 울림은 생황과 슬과 같은 악기 소리같이 조 화롭고, 샘물이 돌에 부딪치는 울림은 옥경이라는 악기 소 리같이 조화롭다. 그러므로 형태가 생기면 무늬가 생기고, 소리가 울려도 무늬가 생긴다. 이와 같이 마음이 없는 사물 조차 무성함으로 색채가 있으니, 마음을 담는 그릇에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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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가 없겠는가? 문장의 근원은 ≪역(易)≫의 태극으로부터 시작되었으 니, 즉 신묘함으로 드러나는 도를 깊게 규명해 밝히는 데는 ≪역≫이 먼저 지어진 것이다. 포희씨(庖犧氏)가 처음에 팔괘를 그리고, 공자가 마지막에 <십익(十翼)>을 저술해 서 ≪역경(易經)≫을 완성했다. 그리고 공자는 건괘(乾卦) 와 곤괘(坤卦)를 사용해 <문언전(文言傳)>을 작성했는 데, 이것은 언어에 색채가 있는 것이 천지의 마음이기 때문 이다. 용의 형상을 한 말이 짊어지고 있었다는 ‘하도(河圖)’ 는 팔괘의 원리를 내장하고, 신비의 거북이 짊어지고 있었 다는 ‘낙서(洛書)’는 천하를 다스리는 원리를 내포하고 있었 으니, 옥으로 된 금색 글자의 내용과 녹색 및 붉은 글자의 화려함은 누가 주관했는가? 이 또한 자연의 이법일 뿐이다. 새의 발자국으로부터 ‘결승(結繩)’이라는 문자로 교체되면 서 문자가 처음으로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염제신농 씨(炎帝神農氏)와 대호복희씨(大皥伏犧氏)의 사적은 ≪삼 분(三賁)≫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시 대가 아득히 멀기 때문에 그 시절 문장의 내용은 지금 알 수 없다. 그러나 당(唐)·우(虞) 시대의 문장은 광채가 드러나 서 성행하게 되었으니, 즉 순(舜)임금과 그의 신하인 고요 (皐陶)가 노래를 주고받음으로써 일찍이 자신의 뜻을 음영 했으며, 백익(伯益)이나 후직(后稷)이 진술한 <모(謨)> 는 상주문의 풍조를 후세에 남겼다. 하후씨(夏后氏)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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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우(禹)임금은 흥기해 크고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아 홉 가지 공적은 순서가 있어서 흐트러짐이 없으며 백성들은 그것을 노래하며 즐겁게 생활하니, 제왕의 위대한 덕은 마 침내 성행하게 된 것이다. 은(殷)과 주(周)의 시대에 이르자 표현이 점점 발달하고, ≪시경(詩經)≫의 <아(雅)>와 <송(頌)>의 영향으로 나날이 화려해졌다. 주나라 문왕 (文王)은 폭군 주왕(紂王)에 의해 유리(羑里)에 갇히게 되 었지만, 그러한 우환에 직면해 지은 괘사(卦辭)와 효사(爻 辭)는 광채가 아름답게 빛나고, 뜻은 은미(隱微)하면서도 함

축성이 풍부하며 내용이 정확하면서도 심오하다. 게다가 주 공(周公)은 재능이 뛰어나서 훌륭한 사업을 떨치고, ≪시 경·빈풍(豳風)·치효(鴟鴞)≫ 편과 <대아(大雅)·문왕 (文王)> 편 및 <주송(周頌)·시매(時邁)> 편 등을 제작 하고, 여러 가지 표현으로 수식했다. 공자가 성인의 정신과 사업을 계승함에 이르러서는 앞의 성인보다 더욱 뛰어났다. 육경을 편찬해 번잡한 문장에 조리가 있게 하고, 아름다운 성정을 조탁해 정밀하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조직하게 되니, 문장으로 교화를 일으켜 천리에 감응시키고, 훌륭한 덕행 은 흘러서 만세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천 지의 찬란한 모습을 묘사하고 인류의 눈과 귀를 밝힌 것이 다. 이리하여 포희씨에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포희씨가 ≪역≫을 창작하고 공자가 <십익>을 저술할 때에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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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근본원리에 바탕을 두어 문장을 서술하지 않음이 없었으 며, 천지를 뜻하는 ‘대연(大衍)’의 수는 톱풀과 거북의 등에 서 하늘의 무늬를 관찰해 사계절 변화에 대한 근원으로 삼 고, 인간의 무늬를 살피어 교화를 이룩한 것이다. 그러한 연 후에 천하를 수습해 가지런히 할 수 있었으며, 널리 상도로 서 다스리고 백성들에게 적용시키는 데 성과를 거둘 수 있 었으며, 문장의 본질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도 는 성인에 의해 문장으로 나타나고 성인은 문장으로 도를 밝힐 수 있게 되었으며, 사방으로 통해 경계가 없고 매일 사 용해도 부족함을 느낄 수 없음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역경≫에서 “천하의 모든 변동에 대응하는 득실의 이 치는 모두 ‘효사’에 갖추어져 있다”고 말했듯이, 문장이 천 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또한 ‘도의 무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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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原道 第一 文之爲德也大矣, 與天地並生者何哉. 夫玄黃色雜, 方圓 體分, 日月疊璧, 以垂麗天之象. 山川煥綺, 以鋪理地之 形, 此蓋道之文也. 仰觀吐曜, 俯察含章, 高卑定位, 故兩 儀既生矣. 惟人參之, 性靈所鍾, 是謂三才. 爲五行之秀, 實天地之心, 心生而言立, 言立而文明, 自然之道也. 傍及 萬品, 動植皆文. 龍鳳以藻繪呈瑞, 虎豹以炳蔚凝姿. 雲霞 雕色, 有踰畫工之妙. 草木賁華, 無待錦匠之奇, 夫豈外 飾, 蓋自然耳. 至於林籟結響, 調如竽瑟, 泉石激韻, 和若 球鍠, 故形立則章成矣, 聲發則文生矣. 夫以無識之物, 鬱 然有彩, 有心之器, 其無文歟. 人文之元, 肇自太極. 幽讚神明, 易象惟先. 庖犧畫其始, 仲尼翼其終. 而乾坤兩位, 獨制文言, 言之文也, 天地之心 哉. 若迺河圖孕乎八卦, 洛書韞乎九疇, 玉版金鏤之實, 丹 文綠牒之華, 誰其尸之, 亦神理而已. 自鳥代繩, 文字始 炳, 炎皞遺事, 紀在三墳, 而年世渺邈, 聲采靡追. 唐虞文 章, 煥乎始盛. 元首載歌, 既發吟詠之志, 益稷陳謀, 垂敷 奏之風. 夏后氏興, 業峻鴻績, 九序惟歌, 勳德彌縟. 逮及 商周, 文勝其質. 雅頌所被, 英華日新. 文王患憂, 繇辭炳 曜, 符采複隱, 精義堅深. 重以公旦多材, 振其徽烈, 剬詩 緝頌, 斧藻群言. 至夫子繼聖, 獨秀前哲, 鎔鈞六經, 必金 聲而玉振, 雕琢情性, 組織辭令, 木鐸啟而千里應, 席珍流 而萬世響, 寫天地之輝光, 曉生民之耳目矣. 爰自風姓, 暨于孔氏, 玄聖創典, 素王述訓, 莫不原道心以 敷章, 研神理而設教, 取象乎河洛, 問數乎蓍龜, 觀天文以 極變, 察人文以成化. 然後能經緯區宇, 彌綸彝憲, 發揮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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業, 彪炳辭義. 故知道沿聖以垂文, 聖因文而明道, 旁通而 無涯, 日用而不匱. 易曰, 鼓天下之動者存乎辭. 辭之所以 能鼓天下者, 迺道之文也. 贊曰: 道心惟微, 神理設教. 光采玄聖, 炳燿仁孝. 龍圖獻 體, 龜書呈貌. 天文斯觀, 民胥以傚.

2. 徵聖 第二 夫作者曰聖, 述者曰明. 陶鑄性情, 功在上哲. 夫子文章, 可得而聞. 則聖人之情, 見乎辭矣. 先王聲教, 布在方冊. 夫子風采, 溢于格言. 是以遠稱唐世, 則煥乎爲盛, 近褒周 代, 則郁哉可從. 此政化貴文之徵也. 鄭伯入陳, 以立辭爲 功, 宋置折俎, 以多文舉禮. 此事蹟貴文之徵也. 褒美子 產, 則云言以足志, 文以足言, 泛論君子, 則云情欲信辭欲 巧. 此修身貴文之徵也. 然則志足而言文, 情信而辭巧, 迺 含章之玉牒, 秉文之金科矣. 夫鑒周日月, 妙極機神, 文成 規矩, 思合符契. 或簡言以達旨, 或博文以該情, 或明理以 立體, 或隱義以藏用. 故春秋一字以褒貶, 喪服舉輕以包 重. 此簡言以達旨也. 邠詩聯章以積句, 儒行縟說以繁辭. 此博文以該情也. 書契斷決以象夬, 文章昭晰以効離. 此 明理以立體也. 四象精義以曲隱, 五例微辭以婉晦. 此隱 義以藏用也. 故知繁略殊形, 隱顯異術, 抑引隨時, 變通適 會, 徵之周孔, 則文有師矣. 是以論文必徵於聖, 窺聖必宗 於經. 易稱, 辨物正言, 斷辭則備. 書云, 辭尚體要, 弗惟好異. 故 知正言所以立辨, 體要所以成辭, 辭成無好異之尤, 辨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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