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회시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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詠懷詩 영회시


편집자 일러두기 ∙ 이 책은 베이징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출판한 천보쥔(陳伯 君)의 ≪완적집 교주(阮籍集校注)≫를 저본으로 삼았고, 기

타 여러 판본을 참고했습니다. ∙ 완적의 <영회시> 95수 중 4언시 13수를 제외하고 5언시 82 수를 수록했습니다. ∙ 완적의 <영회시>는 모든 작품에 제목 없이 배열된 순서에 따 라 숫자를 붙였습니다. 단 ‘차례’에는 첫 구를 옮겨 놓았습니다. ∙ 시의 번역은 원문에 최대한 충실하면서도 이해가 쉽도록 노력 했습니다. ∙ 괄호 안의 말과 바깥 말의 독음이 다를 때, 괄호가 중복될 때, 옮긴이가 첨가한 어구가 있을 때는 [ ]를 사용했습니다. ∙ 주석은 모두 옮긴이가 붙였습니다. ∙ 뒤표지의 글은 옮긴이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 문장을 직접 뽑아낸 것입니다. ∙ 표지에 사용한 색상은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을 위 해 개발한 고유 색상입니다. ∙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은 환경인증서를 획득했습니 다. 표지와 본문에는 모두 친환경 재질을 사용했습니다.


제1수 夜中不能寐

한밤중 잠 못 이루어 일어나 앉아 거문고 타니, 엷은 휘장에 밝은 달 비치고 맑은 바람 옷깃 스친다. 바깥 들녘 외기러기 울부짖는 소리 북쪽 숲 뭇 새들 우는 소리. 배회한들 무엇을 볼 수 있으리? 깊은 근심에 마음만 상할 뿐. 夜中不能寐 起坐彈鳴琴 薄帷鑑明月 淸風吹我襟 孤鴻號外野 翔鳥鳴北林 徘徊將何見 憂思獨傷心

해제

시인은 한밤중인데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깊은 근심 때문이다. 무슨 근심인지 시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하지만 시인이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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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한 입장을 고려하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위나라 종친(宗親) 으로서 위진 교체기에 겪는 뼈저린 아픔 때문이다. ‘명월(明月)’ 과 ‘청풍(淸風)’은 객관적 경물이긴 하나 시인의 고독한 형상과 고결한 태도를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상관물(相關物)로 작 용했다. 이어서 등장하는 ‘고홍(孤鴻)’과 ‘상조(翔鳥)’는 자아의 상징으로 쓸쓸하고 처량한 경계를 형성했다. 이전의 비평가들 은 외로운 기러기는 자신을, 북쪽 숲속의 뭇 새들은 사마씨(司 馬氏) 세력에 아첨하는 위나라 군신(群臣)들을 비유한 것이라

고 주장했다.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지적이 많으나, 새들의 등 장 자체가 시인의 상상 속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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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수 二妃遊江濱

두 여신(女神) 강가로 놀러와 바람 따라 빙빙 날며 유유자적했노라. 교보(交甫)는 여신의 패옥 가슴에 품고 예쁜 모양 좋은 향기 간직하며 연모의 정에 푹 빠져 기뻐하고 사랑하다 천 년 동안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절세미인이라 하채(下蔡)를 미혹하고 빼어난 미모는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감정 격동하자 근심 생겨 망우초(忘憂草)를 규방에 심었다. 누굴 위하여 예쁘게 화장할거나? 비 기다리다 아침 해 원망하는 꼴. 어찌하여 금석같이 단단한 교분이 하루아침에 슬픔으로 변했을까? 二妃遊江濱 逍遙順風翔 交甫懷環佩 婉孌有芬芳 猗靡情歡愛 千載不相忘 傾城迷下蔡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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容好結中腸 感激生憂思 萱草2 樹蘭房3 膏沐爲誰施 其雨怨朝陽 如何金石交 一旦更離傷

해제

이 시는 유향(劉向)의 ≪열선전(列仙傳)≫에 등장하는 한수 (漢水)의 여신(女神)과 정교보(鄭交甫)의 짧은 만남을 패러디 한 작품이다. 남녀 간의 동등한 사랑 이야기를 마다하고, 여신 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내용으로 한 것은 상대를 차별화한 이 원론적인 발상이다. 당시의 현실을 풍자하며 자신의 의도를 비 유적으로 표출한바, 상대적으로 박정(薄情)한 여신을 등장시킨 것은 위진 교체기에 절의를 배반한 관료들을 질타한 것이라고 도 하고, 교보와 여신을 군신 관계로 보아 사마씨가 위나라 왕조 를 찬탈할 음모를 꾸민 것을 풍자한 것이라고도 한다. 1. 하채(下蔡): 옛날 고을 이름으로, 지금의 안후이성 펑타이(鳳臺)현이다. 초나라의 권문세가 자제들이 봉해진 지역이다. 2. 훤초(萱草): 일명 ‘망우초(忘憂草)’라고 한다. 부인들이 자신의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걱정이 되면 초당 계단 아래에 심었다. 3. 난방(蘭房): 규방, 즉 여인이 거처하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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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수 嘉樹下成蹊

좋은 나무 아래 작은 길 생기니 동원 안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때문. 가을바람 불어 콩잎 흩날리면 이때부터 시들어 떨어지기 시작한다. 번성한 후에는 쇠락하기 마련 대청에 가시나무, 구기자나무 생겼다. 말을 몰고 이곳을 떠나 수양산 기슭으로 올라가리라. 이 한 몸 보전하지 못하면서 어찌 처자를 그리워하리오. 된서리가 들풀을 덮었으니 이렇게 또 한 해가 저무는구나. 嘉樹下成蹊 東園桃與李 秋風吹飛藿 零落從此始 繁華有憔悴 堂上生荊杞 驅馬舍之去 去上西山1 趾 一身不自保 何況戀妻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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凝霜被野草 歲暮亦云已

해제

우주의 삼라만상은 반드시 성함 뒤에는 쇠함이 있고 쇠함 뒤에 는 성함이 있다. 동원 안의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도 가을이 되 어 과실이 익으면 그 아래 길이 생기지만, 나무가 마르기 시작하 면 잡목인 가시나무와 구기자나무가 자란다. 조위(曹魏)의 멸 망과 사마씨의 득세도 성쇠(盛衰) 논리로 보아 자연의 순환 원 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자위가 어찌 고통의 수렁에 빠진 자신을 구해 낼 수 있을까? 이리하여 그가 선택한 것은 은 일(隱逸)이다. 은일은 육체적 고통이 따르지만 정신적 자유를 만끽할 수 있기에 선인들이 택했던 고도의 생활 방식이다. 나라 가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 한 몸도 추스르지 못하는 판국에 가족 에 대한 그리움은 지나친 여유라는 것이 시인의 처절한 변이다. 1. 서산(西山): 백이, 숙제가 굶어 죽은 수양산(首陽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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