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짐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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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d Jim 로드 짐


1장

원래 그는 목사 가문의 출신이었다. 훌륭한 상선의 많은 선 장들이 이런 경건하고 평화로운 가문에서 나온다. 그의 가 문은 몇 대에 걸쳐서 목사직을 이어왔다. 하지만 짐은 5형 제 가운데 하나였고, 그래서 그는 대중문학의 영향을 받아 뱃사람을 천직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곧 상선의 고 급선원을 양성하는 연습선(練習船)으로 보내졌다. 그는 거 기서 약간의 삼각법과 상부 돛대의 활대 다루는 법을 배웠 다. 그는 대체로 사람들의 마음에 들었다. 그는 항해 때에는 조타실에서 세 번째 자리를 맡았고, 처음 타보는 소형 범선 에서는 타수(舵手)와 마주 보고 앉아 타수에게 배의 속도와 방향을 말해주는 정조수(整調手)를 맡았다. 훌륭한 신체에 명석한 두뇌를 지닌 그는 돛대를 능숙하게 다뤘다. 200명의 목소리들로 시끌벅적거리는 하부 갑판에 있을 때면, 그는 자신을 망각하고 벌써부터 대중문학에 나오는 해상 생활을 마음속에 펼쳐보곤 했다. 그는 침몰하는 배를 구하고 있는, 태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돛을 자르고 있는, 밧줄을 가지고 밀려드는 파도를 뚫고 헤엄치고 있는, 또는 외로운 표류자로서 맨발에 반나체로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자 조개를 찾아 물 밖으로 드러난 암초 위에서 걷고 있는 자 21


신을 상상했다. 또한 그는 열대의 해안에서 야만인과 대결 하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반란을 진압하고, 대 양 위의 작은 구명보트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는 항상 헌신적 으로 의무를 다하는 본보기로서 그리고 책에 나오는 굽힐 줄 모르는 영웅으로서 자신을 상상하곤 했다. “사고가 났다. 자, 빨리 빨리.” 그는 벌떡 일어섰다. 훈련 생들이 사다리 위로 모여들었다. 위에서 허둥지둥 달리는 소리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승강구에 도달하 여 넋이 나간 양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는 어느 겨울날 해 질 무렵이었다. 정오부터 강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폭풍으로 돌변하여 마치 바다 위에 대포라도 쏘아대는 것처 럼 세차게 휘몰아쳤다. 빗줄기가 옆을 세차게 갈기고 지나 가는 동안에 짐은 험악한 시선으로 넘실대는 바다를, 해안 가에서 뒤범벅되어 이리저리 흔들리는 작은 배들을, 휘몰 아친 안개 속에 꼼짝 않고 있는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는 빙빙 도는 것만 같았다. 그는 누군가에 의해 떼밀렸다. “구명보트에 올라타라!” 훈련생들이 돌진하여 그를 지나갔다. 폭풍을 피해 부두로 들어가던 연안 무역선이 정박해 있던 범선과 충돌했고, 연 습선의 교관들 가운데 하나가 그 사고를 목격한 것이었다. 한 무리의 훈련생들이 난간 위로 기어오르더니 구명보트를 22


매달아 올리는 기둥 주위로 모여들었다. “충돌이다. 바로 우리 앞이야. 시먼스 교관님이 보셨대.” 누군가에게 떼밀렸 던 짐은 비틀거리며 뒤 돛대 쪽으로 가서 밧줄을 잡았다. 정 박지에 쇠사슬로 매여 있던 낡은 연습선 전체가 흔들리더니 살며시 바람 부는 쪽으로 뱃머리를 향했다. “구명보트를 내 려라!” 짐은 훈련생들을 태운 구명보트가 신속히 난간 아래 로 내려가는 걸 보고서 그 구명보트를 향해 돌진했다.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려라. 고팻줄1)을 완전히 내려!” 그는 난간 위로 몸을 구부렸다. 어둠이 내리는 가운데 구명 보트는 조류와 바람의 마법에 걸린 것처럼 한동안 그 자리 에 머문 채 연습선 옆에서 위아래로 요동치고 있었다. 구명 보트 안에서 나는 고함 소리가 희미하게나마 그에게 들려왔 다. “배를 저어!” 그러자 갑자기 구명보트는 뱃머리를 높이 올리더니 치켜세워진 노들의 힘으로 파도 위를 뛰어올라 바 람과 조류가 건 마법을 깨뜨렸다. 짐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꽉 잡는 걸 느꼈다. “너무 늦었네, 젊은이.” 짐이 연습선에서 뛰어내리려는 것을 선장 이 보고서 손으로 짐을 제지한 것이었다. 짐은 패배를 의식 하는 고통스런 눈빛으로 선장을 쳐다보았다. 선장은 동정 1) 고패란 깃대 따위의 높은 곳에 기나 물건을 달아 올리고 내리기 위한 줄을 걸치는 작은 바퀴나 고리를 말하는데, 이 고패에 걸쳐서 물건을 올렸다 내렸 다 하는 줄을 고팻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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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듯이 미소를 지었다. “다음번에는 운이 좋기를 바라네. 이번 일로 인해서 자네는 서둘러야 한다는 걸 배웠을 걸세.” 높은 환호성이 구명보트를 맞이했다. 구명보트는 반쯤 물에 잠긴 채 춤을 추면서 돌아왔는데, 구명보트 바닥에는 물을 뒤집어쓴 기진맥진한 두 사람이 있었다. 이제 짐은 그 런 소동 및 바람과 바다의 위협을 매우 경멸스럽게 여겼고, 바람과 바다의 하찮은 위협을 두려워한 것에 대해 몹시 후 회했다. 이제 그는 그 위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알았다. 그는 강풍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으로 보 였다. 그는 더 큰 위험과도 태연히 맞설 수 있었다. 그는 그 렇게 할 것이었고, 그 누구보다도 잘할 것이었다. 티끌만 한 두려움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2년간의 훈련을 마친 후, 짐은 바다로 나갔다. 그는 그의 상상력 속에서 너무도 잘 알려져 있는 세계로 들어갔지만 이상하리만치 그곳에는 시시한 모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그는 항해를 많이 했다. 그는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생활한 다는 게 굉장히 단조롭다는 걸 알았다. 그는 사람의 비판을, 바다의 부당한 요구를, 생계를 유지해 주는 무미건조한 일 상적인 일의 괴로움을 참아야만 했다. 이런 일에서 유일한 보상이란 일을 완벽하게 사랑하는 데 있다. 그에게서 이런 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돌아갈 수가 없었는 데, 바다에서의 생활보다 더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란 24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장래가 촉망되었다. 그는 자 신의 직무에 대한 지식을 완전히 갖췄을 뿐 아니라 예의 바 르고, 착실하고, 유순했다. 그래서 매우 젊은 나이에, 한 인 간의 내면적 가치라든가 기질이라든가 사람 됨됨이를 냉철 하게 보여주는, 바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의해 검증을 받지 않고도 멋진 배의 일등항해사가 되었다. 나중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장이 “햐! 배가 폭풍우를 뚫고, 살아왔다는 게 내겐 완전히 기적이야!”라고 말하곤 했 던 그 폭풍이 시작된 첫날, 짐은 쓰러지는 돛대에 맞아 부상 을 당했다. 그는 축 늘어져 누운 채로 멍하니 여러 날들을 보냈는데, 마치 불안이라는 심연의 밑바닥에 빠진 것처럼 괴롭고 절망적이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무질 서하게 요동치는 선실뿐이었다. 그는 승강구 입구를 누름 대로 밀폐한 선실에 누워 있었고, 갑판에 나가지 않아도 되 는 게 은근히 기뻤다. 날씨가 다시 좋아졌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절뚝거렸고, 배가 동양의 어느 항구에 도착하자 입원해야만 했다. 그는 더디게 회복되었고, 그래서 그를 남 겨둔 채 배는 떠났다.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자마자, 그는 고향으로 돌 아갈 기회를 잡으려고 시내로 내려갔다. 그에게 당장 돌아 갈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그는 항구에서 자연스럽게 같은 직업을 지닌 사람들과 사귀었다. 그들 대 25


부분은 짐처럼 사고를 당해 거기에 팽개쳐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제 본국에서 근무하는 것이라면 질색했다. 그들 은 동양의 하늘과 바다가 주는 영원한 평화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그들은 짧은 항해, 좋은 갑판 의자, 많은 원주민 선 원들, 그리고 백인에 대한 특별 대우를 좋아했다. 그들은 힘 든 노동이라면 생각만 해도 몸서리쳤다. 그들은 편안하게 살 수만 있다면 악마라도 섬겼을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행운을 잡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무개가 중국 연 안에서 선장이 되었고, 그치는 일본 어딘가에서 편안한 직 업을 얻었고, 저치는 시암2) 해군에서 잘하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그들이 했던 모든 말에서 살아 있는 동안은 무 사히 빈둥빈둥 놀며 지내겠다는 결심이 엿보였다. 잡담이나 하는 그 친구들은 처음엔 선원으로서 볼 때 아 무런 실속도 없는 허울뿐인 사람들로 보였다. 하지만 마침 내 그는 그 사람들의 판단에서, 그런 작은 위험과 고생을 겪 으며 아주 잘 지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매혹적인 걸 발 견했다. 결국 원래의 경멸 말고도 또 다른 감정이 서서히 자 라났다. 그리고 갑자기 고향에 갈 생각을 포기하고서, 그는 파트나 호에 일등항해사로 취직했다. 파트나 호는 산처럼 오래되고, 사냥개 그레이하운드처

2) 시암(Siam): 타일랜드(Thailand), 즉 태국의 옛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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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 야위고, 폐기 처분된 물탱크보다도 더 많이 녹이 슨 기선 이었다. 그 배의 주인은 중국인이었고, 전세를 낸 자는 아랍 인이었으며, 선장은 독일인이었다. 선장은 공공연하게 그 의 조국을 저주하고 싶어 안달이 난 일종의 변절자였다. 그 는 자신이 두려워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잔인하게 대했 다. 그 배의 외부와 내부가 흰색의 페인트로 칠해지고 난 뒤, 800명 정도의 순례자들이 몰려와 배에 올라탔다. 그들은 신 념과 낙원에 대한 희망에 이끌려 배 안으로 밀려들었다. “저 짐승 같은 놈들을 봐” 하고 독일 선장이 새로 온 일등 항해사에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 경건한 항해의 지도자 인 아랍인이 왔다. 그는 천천히 걸어서 배에 올랐고, 짐을 짊어진 하인들이 한 줄로 그 뒤를 따랐다. 파트나 호는 매어 놨던 밧줄을 풀고서 부두에서 떠났다. 배는 해협을 벗어나 작은 만(灣)을 가로지르고 ‘1도’ 항로를 지나서 계속 홍해를 향해 나아갔다. 날마다 태양은 아침에는 배꼬리로부터 일정한 거리에서 조용히 빛을 터뜨리며 솟아올랐고, 정오에는 경건한 목적 을 지닌 사람들에게 불같은 햇살을 퍼붓다가 서서히 미끄러 져 내려갔으며, 저녁에는 뱃머리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 지하면서 바닷속으로 신비스럽게 가라앉았다. 배 안의 다 섯 명의 백인은 인간 뱃짐과 떨어져 배의 중앙에서 생활했 다. 천막들이 뱃머리에서부터 배꼬리까지 갑판을 흰색 지 27


붕으로 뒤덮었고, 희미한 노랫소리와 슬프게 중얼거리는 소리만이 강렬한 태양 빛의 바다 위에 사람들이 있음을 드 러냈다. 그렇게 조용하고 뜨겁고 힘겨운 날들이 하나씩 과 거 속으로 사라져갔다. 짐은 갑판을 가로질러 걸어갔고,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가 운데 발소리가 그의 귀에 크게 들렸다. 수평선 근처에서 맴 도는 그의 눈은 얻을 수 없는 것을 애타게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고, 닥쳐올 사건의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두 명의 말레 이 사람이 조용히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타륜의 양쪽에서 배를 조종하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는 조타 장치 뒤쪽의 나 지막한 세발탁자 위에 네 개의 압정으로 고정되어 있는 해 도를 한가롭게 바라보았다. 해도 위에는 그날 오후의 배의 위치가 작고 검은 십자로 표시되어 있었고, 페림3)까지 연필 로 선명하게 그어놓은 일직선이 배의 항로를 가리키고 있었 다. ‘참으로 순조로운 항해로구나’ 하고 짐은 생각했고, 이 처럼 평온한 하늘과 바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때에 그의 생각은 용감무쌍한 행위들로 가득 찼다. 기관실 환기구를 통해 양동이에 석탄재를 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 양동이가 절거덕거리는 소리는 짐의 불침 번이 끝나간다는 것을 예고했다. 그는 흡족해서, 그리고 맘

3) 페림(Perim):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있는 섬으로 홍해의 입구에 위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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껏 모험을 상상하도록 해준 고요함과 헤어져야만 하는 게 아쉬워서 한숨을 쉬었다. 잠옷 차림의 선장이 소리 없이 올 라와 있었다. 아직 잠이 덜 깨어 왼쪽 눈이 약간 감긴 상태 로, 선장은 큰 머리를 해도 위로 숙이고서 졸린 듯이 옆구리 를 긁었다. “아래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워” 하고 누군가 말했다. 짐은 돌아보지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배다리의 사 다리 꼭대기 위에서 이등기관사가 땀으로 축축한 손바닥으 로 더러운 수건을 주무르면서 계속해서 불평을 해댔다. 갑 판 위의 선원들은 여기 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 만 불쌍한 기관사들은 어떻게든 배를 나아가게 해야만 한다 는 것이었다. “닥쳐!” 독일인 선장이 무신경하게 소리를 질 렀다. “아, 그래! 닥치지. 하지만 일이 잘못되어 가면 당신은 우리한테로 달려오지, 그렇지 않나?” 상대방이 계속해서 말 했다. 짐은 그자가 반쯤 맛이 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자는 얼마나 자신이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지난 3일 동안 그자는 악인들이 죽을 때 간다는 불의 지옥을 기관실에서 멋지게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술을 퍼마셨어?” 독일인 선장이 포악 스럽게 물었다. 짐은 뒤로 물러나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계 속해서 미소를 지었다. “술이라!” 그 기관사가 실실 비웃으 며 말했다. “당신이 준 술은 아니었지, 선장. 당신은 너무나 인색해, 어이구. 당신은 좋은 사람한테 술 한 방울 주기보다 29


는 죽게 놔두지. 그게 당신네 독일인들이 말하는 절약이지. 한 푼을 아끼려다가 천 냥을 잃는 격이지.” 그자는 감상적이 되었다. 10시쯤에 기관장이 “딱 한 잔이야, 맹세코!” 하면서 그자에게 한 모금의 술을 주었다. 파트나 호의 선장의 굵은 목에서 돼지라는 단어가 나지막하게 터져 나왔다. 선장과 기관장은 꽤 오랜 세월 동안 친구였다. 평소에 기관장은 그 가 몰래 보관해 온 술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에 그 는 그의 원칙을 어겼고, 그래서 이등기관사는 뜻밖의 한 잔 에 얼큰하게 취해서 건방지고 말이 많아졌던 것이다. 선장 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는 엔진의 배기관처럼 씩씩거렸 다. 그 장면을 어렴풋이나마 즐기고 있던 짐은 선실로 내려 갈 때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침번의 마지막 10분은 뇌관 에 불을 붙였지만 발사가 지연된 대포처럼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누가 술이 취했어? 내가? 아니지, 아냐, 선장! 그건 안 돼. 기관장의 인심은 참새가 취하도록 술을 줄 정도가 아니 라는 걸 지금쯤은 선장도 알아야 돼, 어이구! 내 인생에서 술 때문에 잘못된 적은 없어. 날 취하게 할 정도의 술은 없 었다고. 불이 붙은 위스키로 당신과 대작할 수 있다니까, 어 이구. 그래도 난 정신이 말짱해. 술이 취했다고 생각되면 배 위에서 뛰어내릴 거야. 죽을 거라니까, 어이구. 그럴 거야! 당장에! 당신이 무슨 짓을 해도 난 두렵지 않아.” 30


독일인은 묵직한 두 주먹을 하늘로 추켜올리더니 말없 이 흔들어댔다. “난 두려움이 뭔지 몰라.” 기관사가 계속해서 말했다. “이 썩어 빠진 배에서 모든 일을 혼자서 한다 해도 난 두렵 지 않아, 어이구. 그리고 우리들 가운데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당신한테 참으로 잘된 일이야. 그렇 지 않으면 당신이 어디에 있겠어. 당신과 갈색 포장지 같은 철판으로 된 이 낡은 배가 말이야. 당신한테는 이 모든 게 좋겠지. 당신은 이리저리하여 많은 걸 얻겠지. 하지만 난 뭐 야. 난 뭘 얻지? 한 달에 기껏해야 150달러와 필요한 건 알 아서 처리해라 이거잖아. 정중히, 정중히 묻겠는데, 이런 빌 어먹을 짓을 누가 그만두지 않겠어?” 기관사는 사다리의 가로대에서 손을 떼고서 자신이 얼 마만큼 용감한지 입증하려는 것처럼 많은 손짓을 해댔다. 그는 말을 더욱 강조하려고 앞뒤로 발돋움을 했는데, 갑자 기 뒤에서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거꾸로 떨어졌다. 그는 떨 어지면서 “제기랄!” 하고 말했다. 그 새된 소리가 난 뒤에 곧 조용해졌다. 짐과 선장도 동시에 앞으로 비틀거리며 서로 를 붙잡았고, 놀라서 뻣뻣이 선 채로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 았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배의 엔진은 계속해서 탁탁하 며 씨근덕거렸다. 그들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잔잔한 바 31


다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파멸 의 얼굴 위에 놓여 있는 것처럼 무시무시할 정도로 불안하 게 보였다. 기관사가 똑바로 다시 일어서더니 다시 고꾸라 졌다. 천둥소리와 같은 희미한 소리가 천천히 지나갔고, 마 치 바닷속 깊은 곳에서 천둥이라도 친 모양으로 배가 흔들 렸다. 한 달 정도 지난 다음, 짐은 예리한 질문에 답하여 그때 의 경험을 솔직하게 말하고자 했는데, 그는 배에 대해 다음 과 같이 말했다. “배는 뱀이 막대기를 넘어가는 것처럼 무슨 문제든지 간에 쉽게 넘어갔습니다.” 공식적인 심리(審理) 가 어느 동양 항구의 경찰 법원에서 열리고 있었다. 그는 증 인석에 우뚝 서 있었고,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증인석 아래에서는 많은 눈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깨끗하게 면도를 한 재판장의 무감각한 얼굴이 두 명의 항해 관련 보 조 판사의 붉은 얼굴들 사이에서 하얗게 질린 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사실을 원했다. 그들은 사실이 뭐든지 설명할 수 있다는 듯이 짐에게 사실을 요구했다. “당신은 수면에 떠 있는 뭔가와, 말하자면 침몰된 난파선 과 충돌했다고 결론을 내린 뒤에 선장으로부터 뱃머리에 가 서 어떤 피해가 있는지 확인해 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까? 당신은 강한 충격을 고려하여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 습니까?” 재판장 왼쪽에 앉은 보조 판사가 물었다. 32


“아닙니다.” 짐이 말했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면 안 되었 기에, 아무도 깨우지 말고 떠들어대지도 말라는 말을 저는 들었습니다. 그런 안전 대책이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했습 니다. 그래서 천막 아래에 걸려 있는 등불들 가운데 하나를 들고서 뱃머리로 갔습니다. 뱃머리 화물칸의 승강구를 연 뒤, 저는 거기에서 물이 출렁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등불 을 최대한 아래로 내리고 들여다보니 화물칸의 승강구는 이 미 물이 절반 이상이나 차 있었습니다. 비로소 저는 흘수선 (吃水線) 아래에 큰 구멍이 뚫려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요” 하고 그 덩치 큰 보조 판사가 말했다. “바로 그때에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조금은 놀랐습니다. 그 모든 일이 너무도 조용하고도 갑작 스럽게 일어났으니까요. 그 배에는 뱃머리의 맨 앞 화물칸 에 있는 충돌 칸막이벽 말고는 다른 칸막이벽이 없다는 걸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선장한테 말하러 되돌아가다 가 선교(船橋) 사다리 밑에서 일어서고 있는 이등기관사와 마주쳤습니다. 그는 멍해 보였는데, 왼팔이 부러진 것 같다 고 말했습니다. 그는 선교에서 내려오다가 사다리 꼭대기 에서 미끄러졌었습니다. 그가 소리쳤습니다. ‘맙소사! 저 썩 어 문드러진 칸막이벽이 곧 무너지겠어. 그러면 이 망할 놈 의 배도 납덩어리처럼 가라앉을 거야.’ 그는 오른팔로 저를 밀치더니 내 앞에 있는 사다리를 올라갔습니다. 나도 따라 33


올라갔고, 때마침 선장이 그에게 돌진하여 그를 때려눕히 는 게 보였습니다. 선장은 그를 내려다보면서 화가 난, 그러 나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선장은 아마도 그더러 갑판에서 소란 피우는 대신에 가서 엔진이나 멈추라 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어나! 달려가, 날아가!’ 기 관사는 오른쪽 뱃전의 사다리로 미끄러져 내려가더니 기관 실 승강구로 뛰어갔습니다.” 짐은 천천히 말했고, 재빨리 아주 생생하게 기억해 냈다. 사실을 원하는 이 사람들에게 더 좋은 정보를 줄 수 있다면, 그는 아마도 기관사의 신음 소리까지도 메아리처럼 재생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답변하는 사이사이에 이리저리 둘러 보던 그의 시선이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앉아 있는 한 백인 에게 쏠렸다. 짐은 그 백인의 눈과 마주쳤다. 짐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의 시선은 넋을 잃고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눈과는 달랐다. 그것은 지적인 판단력에서 나온 시선이었 다. 저기 저 남자는, 짐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곤경에 처해 있음을 아는 것처럼 보였다. 짐은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는 것처럼 그 남자를 바라보고 나서 단호하게 시선을 돌 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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