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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씨앗을 모아라 드라마는 보는 것이고 보기 위해서는 찍어야 하지만, 성공은 드물다. 성패는 기획에서 결정되고 기획은 이야기의 씨앗에서 비롯된다. 노희경도, 송지나도 이구동성 외친다. 메모하라.

이야기 씨앗을 모으는 방법은 간단하다. 메모하라.


인텔리겐치아 2166호, 2014년 8월 12일 발행

굿클래스 교재 안내 2. 성준기가 쓴 ≪드라마 기획의 이해≫

드라마를 책이나 강의를 통해 배워 보겠다는 생각은 정말 어리석은 것이다. -‘나오는 말’, ≪드라마 기획의 이해≫, 514쪽.


드라마를 책으로 배울 수 없다면 당신은 이 책을 왜 썼나? 그 말은 실제 몸으로 부딪쳐 제작을 해 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학생들에 겐 좋은 교재가 필요하다. 당신의 책은 좋은 교재인가? 대학 강단에 서면서 적당한 교재를 찾아봤는 데 대부분 제작 기술에 치우쳐 있었다. 우려 스러운 것은, 학생들도 기술 지식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별 고민 없이 카메라 들고 촬영에 나서려는 학생들의 모습 에 막막함을 느꼈다.


드라마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기획이다.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 어나갈지 사전에 철저히 계획해야 한다. 이 책은 드라마 기획 단계인 프리프로덕션 단계 에 중점을 두고 서술했다. 기획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드웨어에만 집중하는 것 은 설계도 없이 건축물을 짓는 것만큼이나 위 험하다. 언제나 드라마 성공의 열쇠는 탄탄 한 기획에 있다. 성공하는 기획은 어떤 것인가? 시대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맞는 이 야기를 골라내는 것이다. 그다음 이야기가 성공적으로 영상화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판단과 실행은 전


적으로 기획자 개인의 능력이다. 그래서 기 획자에게 풍부한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 드라마 기획은 어떤 과정인가? 발상–구체화–소재로 발전시키기–주제 도출–단일화–스토리 작성–플롯 구성– 대본 작성 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보통이 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작업 전에 이야기의 씨앗이 수집, 입력되고 분류, 저장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이 작업이 전제되지 않으면 기 획은 아예 시작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평 소에 이야기 씨앗을 모으는 일을 게을리해서 는 안 된다.


이야기 씨앗은 어떻게 모으나? 간단하다. 메모하라. 노희경 작가는 “내 창작 의 원천은 메모장이다”라고 했다. 송지나 작 가도 “나에게 글 쓰는 비법이 하나 있다면 그 것은 메모 노트에 적기다. 실천하기 전에는 식상하고 빤한 일이지만, 일단 실천하고 나 면 놀라운 비법이 된다”고 했다. 당신의 드라마 기획 강의 노하우는 무엇인가? 학생들은 이론으로만 배우는 드라마나 영화 수업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다양한 현장 경 험, 실제 사례를 통한 적절한 예시, 작품 제작 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팁을 제공해야 한다. 이 책에서도 현장 경험, 예시, 제작 팁을 풍부 하게 담으려 노력했다.


이 책에는 어떤 현장 경험, 예시, 제작 팁이 실 려 있는가? 직접 연출한 <은실이>, <사랑한다 웬수야> 의 사례를 들기도 했고, <해를 품은 달>의 시 놉시스, <넝쿨째 굴러온 당신> 스크립터 대 본, KBS 단막극 드라마 대본 등 다양한 자료 를 제시했다. 부록에 실린 대본은 수업에 어떻게 활용하나? 그 대본은 15분 정도 분량의 에피소드로 구성 된 옴니버스 형태다. 이 드라마의 내용과 구 조를 분석해 보고 학생들에게 각 에피소드의 기획안을 작성하게 함으로써 기획제안서 작 성 능력을 길러 주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은 어떤 강의에 활용할 수 있나? 드라마의 이해, 드라마 기획, 영상 기획 실 무, 영상 콘텐츠 기획, 드라마 연출 등의 강의 에 활용할 수 있다. 책은 어떻게 구성되었나? 드라마 제작의 주체인 작가, 감독, 연기자의 일과 드라마 제작 과정을 연결해 설명했다. 기획, 작가, 감독, 연기자로 부를 나눈 까닭은 무엇인가? 드라마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제작 스 태프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각 파 트마다 작업 내용이 세분화되어 있고 각 일의 특성도 판이하게 다르다. 복잡한 공정을 쉽


게 제시하기 위해서 작업 내용에 따라 부를 나누었다. 기획 파트에서는 무엇을 다루었나? 기획의 주체와 프로듀서의 일, 기획 과정, 기 획제안서 작성법, 대본 분석법, 제작 예산 작 성법을 다루었다. 우리는 왜 드라마를 보는가? 판타지, 타인의 삶,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이 모든 것이 재미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드라마가 있다. 재미 있는 드라마와 재미없는 드라마. 재미로만 은 부족하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뭔가 우리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강렬한 여운이 필요하


다. 바로 감동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성준기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영상제작과 교수다.


이야기의 씨앗을 모아라 드라마는 보는 것이고 보기 위해서는 찍어야 하지만, 성공은 드물다. 성패는 기획에서 결정되고 기획은 이야기의 씨앗에서 비롯된다. 노희경도, 송지나도 이구동성 외친다. 메모하라.

이야기 씨앗을 모으는 방법은 간단하다. 메모하라.


드라마 기획의 이해 성준기 지음 예술/영상 2014년 8월 25일 출간 예정 신국판(153*224) 무선 제본, 562쪽 2학기 교재 무료 검토하기


작품 속으로

드라마 기획의 이해


드라마 기획의 이해

지은이 성준기 펴낸이 박영률 초판 1쇄 펴낸날 2014년 8월 25일 커뮤니케이션북스(주) 출판등록 2007년 8월 17일 제313-2007-000166호 121-869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571-17 청원빌딩 3층 전화 (02) 7474 001, 팩스 (02) 736 5047 commbooks@eeel.net www.commbooks.com CommunicationBooks, Inc. 3F Cheongwon Bldg., 571-17 Yeonnam-dong Mapo-gu, Seoul 121-869, Korea phone 82 2 7474 001, fax 82 2 736 5047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주)가 저작권자와 계약하여 발행했습니다. 본사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성준기, 2014 ISBN 979-11-304-0079-2 책값은 뒤표지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들어가는 말

텔레비전 제작 현장에서 일한 지 벌써 27년이 흘렀다. 제작 현장에서 선배들의 작업 방식을 어깨너머로 배우며 흥분과 사명감에 불탔던 말단 AD 시절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고참이 된 지 금까지, 항상 느끼는 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영혼의 고갈’이 더 심해진 다는 것이었다. 영혼의 갈증을 채울 방법이 없어 ‘다 때려치우고 유학이 나 갈까, 나도 누구처럼 워커 하나 사 신고 영화판에 뛰어들어 볼까’, 이 런 저런 궁리로 시간을 죽이며 잠 못 이룬 밤도 참 많았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이란 항상 샘솟아 나오는 것 이 아니고 얼마간 쓰다보면 이내 고갈 되고 마는 ‘지갑 속의 현금’ 같은 것이다. 뭔가 다시 채워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망감, 단지 느낌과 경험에 근거해 습관적으로 해 오던 작업 방식에 대한 회의와 자기혐오 에 빠질 때쯤 대학 강의를 제의 받았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가르치는 일이 곧 배우는 일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젊음을 바쳐 해 왔던 그 모든 작업들이 얼 마나 단편적이고 체계화되지 않은 경험의 조각들로 채워져 있었나 하 는 부끄러움과,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나를 괴롭혔고, 이제라도 뭔가 정리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의식에 생각나는 대로 몇 자씩 끄적거린 것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드라마란 무엇인가? 좋은 드라마와 그렇지 않은 드라마를 가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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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은 무엇인가? 컷은 왜 나누는가? 연기자의 블로킹이나 카메라 워 크는 왜 필요한가? 사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현장에선 전혀 불필요한 것이다. 그럴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하루하루 주어진 방송 분량 을 채워 나가기도 벅찬 상황에서 이러한 의문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감 상이고 사치인 것이다. 어린애가 엄마에게 하는 칭얼거림은 문법이 없다. 그저 애정만으 로도 어머니는 아이의 요구와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듣는다. 외국인이 서툰 우리말로 길을 물어올 때 친절이라는 정서적 매개물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 사람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영상제 작물을 보는 관객이나 시청자는 감독에 대해 애정이나 친절을 갖고 있 지 않다. 난해하고 시시껄렁한 이야기라고 느끼는 순간 그들은 가차 없 이 채널을 돌려버린다. 소리와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영상의 세계에서 감독과 관객이 적절한 의사소통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을 때 우리는 즉각 소통의 부재와 표현의 한계라는 불행한 현실에 부딪치고 만다. 이것이 영상의 세계에 있어 문법이란 것이 필요한 이유다. 영상 표현에는 나름 대로의 규칙에 따른 별도의 표현 방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소통 수단을 확보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적절하고도 효과적인 영상 언어를 통해 익명의 다수인 시청자들에게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제작은 프리프로덕션(pre production)과 프로덕션(production), 포스트프로덕션(post production)의 세 단계로 나뉜다. 이 책은 제작의 3단계 중 프리프로덕션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 루었다. 프로덕션과 포스트프로덕션에 관한 것을 한 권의 책에서 모두 다루자니 분량이 엄청나게 늘어날 뿐 아니라 다루어야 할 내용도 워낙 방대해서 자칫 욕심을 부리다가는 읽는 이들이 소화불량에 걸릴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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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도 되고, 또한 나 자신도 좀 더 이론과 체계를 가다듬을 시간이 필 요하다고 생각되어 나머지 부분들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였다. 대학 강단에 서게 되면서 학생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재로 쓸 만한 적당한 책이 있을까 하고 찾아봤으나 시중에 나와 있는 관련 서적은 대부분 기술적인 부분에 치우쳐 있었다. 더구나 우려스러 웠던 것은 대다수의 학생들도 기술적인 지식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 고 있었다는 점이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아무 런 고민도 갖지 않은 채 카메라를 들고 뛰쳐나갈 태세를 갖추고 있는 학 생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의 막막했던 심정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 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다. 강의실에서 텔레비전드라마를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요긴 하게 쓰일 수 있는 교재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중 때마침 교육부의 교육 역량 강화사업의 일환으로 국고 지원을 받아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 었다. 사실 교재 집필의 필요성을 느낀 건 오래전의 일인데 워낙 초보 교수라 이것저것 처리할 일들이 많고, 또 책을 쓴다는 게 두렵기도 해서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은 전적으로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되었다. 내가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옳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도 없지만 지난 27년간 제작 현장의 경험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만으로 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게 되었다. 여기에 담긴 내용들이 드라마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이나 배움의 길에 있는 후학들 을 위해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의 개인적인 경험들 이 기록되거나 다음 세대에게 전해질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끝으로 집필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흔쾌히 나누어 주신 이남기, 최상식 두 선배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특히 이 책의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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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텔레비전드라마 약사’는 최상식 선배가 개인적으로 수집, 정리해 둔 자료에 전적으로 기댔음을 밝혀 둔다. 이론이 부족한 필자에게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 명지대학교 디지털 미디어학과의 곽한주 교수와 동아방송예술대학교 극작과의 김애옥 교수, 그리고 소중한 대 본과 시놉시스를 후학들을 위해 선뜻 제공해 주신 노희경, 진수완 작가 와 KBS의 한옥금 편집감독께도 정중한 감사를 드린다.

2014년 7월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영상제작과 성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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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들어가는 말

1부 드라마의 이해 01 드라마란 무엇인가? 02 한국 텔레비전드라마 약사 03 드라마의 구조 04 드라마 제작과정 05 한국 드라마 산업의 현실

2부 기획 06 기획의 주체 07 프로듀서 08 드라마 기획과정 09 기획제안서 10 기획제안서를 보는 두 가지 관점 11 기획제안서 작성 시 유의할 점 12 기획제안서의 기능 13 대본 분해 14 제작 예산 15 상위라인과 하위라인 16 드라마를 실패로 이끄는 요인들


3부 작가 17 단순성 18 웃음 19 감동 20 도덕성 21 캐릭터 22 휴머니티 23 빛나는 조연

4부 감독 24 감독 25 감독의 역할 26 감독의 자질 27 대본 고르기 28 스케줄 29 콘티뉴이티 30 콘티연출 31 촬영현장 32 후반작업

5부 연기자 33 캐스팅 34 카메라 연기

부록: 실습 대본 나오는 말


1부

드라마의 이해


우리 일상의 삶은 늘 드라마에 노출되어 있다. 누구나 드라마

를 보고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드라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품을 많이 소비한 경험이 제품의 생산 과정에 대한 이해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 중에 한 편의 드라마가 기획되어 전파를 타기까지의 과정을 자 세히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작업 과정의 복잡성과 작업의 난 이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드라마를 전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제작에 참여하는 스태 프들에게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다. 심지어는 늘 드라마 제작 현장과 가 까이 지내며 이에 관한 기사를 쓰는 방송 담당 기자들도 제작의 디테일 에 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기사를 쓰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만큼 각 파트마다 작업 내용이 세분화되어 있고 각각 일의 특성이 판이하게 다를 뿐 아니라 거치는 공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드라마의 제 작 과정을 비교적 소상히 이해하고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직종은 프로 듀서나 감독 정도에 국한될 것이다. 드라마는 제작 과정도 복잡하지만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드라 마에 대한 가치나 판단 기준도 각각이고 드라마를 보고 평가하는 시청 자들의 취향도 백인백색이다. 따라서 드라마 장르에 대한 전체적인 이 해는 개개인의 가치판단이나 취향보다는 하나의 덩어리로서 대중 (Mass)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드라마의 최종 소 비자로서 불특정 다수인 시청자군의 시각에서 드라마를 전체적으로 개 괄하고 그 구조와 제작 과정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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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란 무엇인가?

드라마의 세계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 정동을 잇는 성수대교의 5번째 교각과 6번째 교각 사이 상판 48m가 붕괴 되었다. 이 사고로 출근길, 등굣길의 시민, 학생들 32명이 죽고 17명이 부상당했다. 당시 떨어져 내리는 상판 바로 앞에서 사고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한 어느 자가운전자가 텔레비전 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갑자기 내 앞에 있던 모든 것이 떨어져 내리면서 눈앞에서 사라졌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인터뷰에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라는 표현에 주목한 다. 그 남자는 왜 하필 이 상황에서 ‘영화’라는 단어를 떠올렸을까? 우리 는 일상적으로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극적이다’, ‘한 편의 드라마 같다’, ‘드라마틱하다’ 이런 표현을 자주 쓴다. 즉, 도저히 현실에서 일어날 법 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또는 일상적인 언어로는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현상을 누군가에게 전하려고 할 때 이런 표현을 쓴다. 여기에 드 라마의 비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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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의 세계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 만들어 낸 이야기, 꾸며 낸 이야기, 가 공의 세계, 허구의 세계, 거짓말…. 그것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세계다. 한마디로 드라마는 꾸며 낸 이야기다. 이것이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비 실제성(impracticality)’이다. 드라마와 정반대 장르가 다큐멘터리다. 논픽션(Non-fiction), 즉 꾸며 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다. 중요한 것은 드라마가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서 사실이 아닌 것이 다 드라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픽션, 그것은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개연성의 세계

허구의 세계를 그린 이야기가 한편의 드라마로 탄생하려면 어떤 조건 을 갖춰야 할까? 한국 드라마를 이야기할 때 흔히 ‘막장’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몇 년 전부터 쓰이기 시작한 이 ‘막장드라마’란 용어가 우리 방송계에 일종의 보통명사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뭐가 막장일까? 드라 마의 어떤 점이 막장과 막장 아닌 것을 구분하는 잣대가 될까? 일반인 들이 흔히 주장하는 막장드라마의 조건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이라 고 생각된다.

① 출생의 비밀: 사랑했는데 알고 보니 이복 남매다. ② 시한부 인생: 죽도록 고생해서 먹고 살만하니까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다. ③ 가족관계의 뒤엉킴: 딸이 며느리가 된다. ④ 과도한 불륜: 가정 있는 남자가 불륜을 저지르고, 부인도 이에 뒤질세라 불륜을 저지른다. 주인공의 시댁 식구도 불륜에 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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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친정 식구들도 불륜을 저지른다. 드라마는 온통 불륜의 왕 국이 된다.

보통 이런 종류의 설정이 나오면 막장드라마라고 한다. 그런데 이

는 좀 더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소포클레스의 고전 󰡔󰡔오이디푸스 왕󰡕󰡕

은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하고 결혼하는 이야기다. 막장 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국 드라마에도 아직 이런 존속 살인이나

모자 근친상간의 이야기는 없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햄릿’ 의 엄마는 ‘햄릿’의 작은아버지와 결혼했다. 이를테면 형수가 시동생과 결혼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형부가 처제를 사랑한 이야기가 한번 그려 지기는 했지만(MBC <눈사람>, 2003, 이창순 연출, 공효진·오연수· 조재현 출연) 그 엇갈린 사랑이 명쾌하게 완결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 나고 말았다. 결국 인습의 한계를 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막장드라마가 판치는 우리나라에서도 감히 시도하지 못하

는 막장 중의 막장에 해당되는 설정이 󰡔󰡔햄릿󰡕󰡕과 󰡔󰡔오이디푸스 왕󰡕󰡕에 버

젓이 등장하지만 우리는 󰡔󰡔햄릿󰡕󰡕이나 󰡔󰡔오이디푸스 왕󰡕󰡕을 막장드라마라 고 하지 않는다. 왜일까? 막장은커녕 오히려 동서고금을 통해 불멸의 명작으로 칭송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바로 ‘개연성’의 문제다. 개연성 이란 ‘절대적으로 확실하지는 않으나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성 질’이다. 다시 말하면 “아. 그럴법 하다, 그럴 수 있겠다”, “저 상황이라 면 나라도 그럴 것이다”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설정과 이야기 전 개가 개연성을 확보해 준다. 이런 공감을 끌어내려는 노력 없이 자극적 이고 황당한 설정을 남발하는 드라마, 그것이 막장드라마의 기준이 되 어야 한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 중에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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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있는 설정이 갖춰져야 비로소 드라마는 성립한다. 그것이 개연성의 세계다. 다음의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서 개연성의 문제에 관해 좀 더 논의해 보기로 하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므로 드라마가 성립한다는 주장

어떤 신인 작가가 최루성 멜로드라마 대본을 한 권 써서 내게 보냈다.

일본영화 <러브레터>(1995, 일본, 이와이 슌지 감독)를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러브레터>에서는 여자 주인공의 애인이 등산 중 사고로 죽 었는데 이 대본에서는 애인이 백화점에 갔다가 백화점 건물이 무너지 면서 깔려죽은 것으로 설정해 왔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 서울 강남구 서초동 소재 삼풍백화 점이 붕괴되면서 502명이 사망, 6명이 실종되고 937명이 부상당한 사 건으로 현재 이 자리에는 아크로비스타라는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 있다.

나는 이 작품이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작가는 실 제로 일어났던 일인데 왜 개연성이 없느냐고 항변했다. 작가의 주장이 무조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의 주된 이야기가 ‘홀로 남은 여 자의 새 삶 찾기’인 바에야 애인을 죽이는 수많은 방법이 있는데 굳이 백화점 붕괴사고를 드라마의 발단으로 설정할 이유가 뭔가? 이 작품은 사실을 기초로 구성되었지만 드라마로서의 개연성은 부족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드라마에서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하 지 않다. 그것은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따져야 한다. 드라마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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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추구하는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사실 같은 허구, 허구 속의 진실을 추구하는 장르다. 그래서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이므로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자칫 위험하게 들린다. 사실보다는 ‘그럴 법한 꾸며 낸 이야기’가 더 드라마적 진실에 가깝다.

토끼와 거북이

이솝 우화 중에 유명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자.

‘어느 날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했습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토끼는 자만에 빠져서 중간에 낮잠 을 자고, 거북이는 쉬지 않고 열심히 기어가서 결국 거북이가 승리한다 는 것이 이야기의 골자다. 물론 우화고, 그러니까 사람은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니만치 이야기 자체의 존 재가치는 충분하다. 그리고 자라나는 어린이들한테 대단히 유익한 이 야기임에도 틀림없다. 그런데 드라마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 이야기 는 드라마가 성립될 수 없는 중대한 허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토끼 입장에서 보자. 거북이가 경주를 하자고 제안해 왔을 때 ‘그래, 한번 붙자!’ 하고 선뜻 수락할 토끼가 있을까? 토끼가 거북이하고 경주를 해서 이겼다고 해서 “야, 그 토끼 대단하다” 하고 칭송받을 일일 까? “당연한 거지 뭐 그걸 갖고 난리야?” 이런 소리를 듣지 않겠는가? 게 다가 만에 하나 토끼가 이 게임에서 지면 토끼의 명예를 실추시킨 불량 토끼로 낙인찍혀서 토끼사회에서 매장될 수도 있다. 즉 토끼 입장에서 는 애당초 이 경기를 수락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번에는 거북이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토끼와 경주를 하면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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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거북이가 질 것이다. 이 경기에서 졌다고 해서 거북이의 명예가 실 추될 일은 없다. 오히려 “야, 거북이 주제에 토끼하고 한판 붙어보겠다 는 그 용기가 가상하다! 후배 거북이들이 배워야 할 점이다.” 이렇게 칭 찬 받을 것이다. 만에 하나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면 그 거북이는 거 북이 사회에서 영웅이 될 것이다. 기금을 모아 동상을 세워 줄 수도 있 고 대대손손 자손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교과서에 실릴지도 모른다. 거 북이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는 게임이다. 결국 이 게임은 애당초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토끼로서는 이 경 주를 수락할 동기가 전혀 없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 날 토 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토끼 와 거북이 이야기는 개연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연성의 측면에서 이 이야기는 드라마의 성립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이 틀 림없다. 개연성이란 ‘절대적으로 확실하지는 않으나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성질’이다. 관객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도록 사전에 복선과 암 시가 제시되고, 앞뒤 상황에 맞는 이야기 전개가 이루어지면 다소 극단 적인 상황설정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시청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개연성은 허구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성립되 는 첫 번째 전제조건이다.

당위성의 세계

당위성이란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성질’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도덕, 관습, 문화, 제도, 법률 같은 것은 그 사회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형성된 일종의 역사적 산물이다. 한 사회의 보편적 관습이나 불문율, 도덕 등의 기준에 부합하는 정도를 당위성이라 한다. 대부분의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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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 문화, 제도, 법률은 그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방 향으로, 또 그 사회가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형성되고, 전수되고, 확대 재생산 되어 간다. 당위성이란 ‘옳 다 그르다’ 의 문제라기보다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가? 해 악이 되는가?’ 또 ‘그 사회가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가?’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만일 드라마의 결말이 악행을 일삼는 자가 잘 먹고 잘 살게 되고 정 의로운 사람은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파멸로 끝나게 된다면 그 작품은 대중의 사랑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당위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그런 부당한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하더라도 적어 도 드라마의 세계에서 당위성이란 이야기를 성립시키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앞서 언급한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를 다시 보자. 이 이야기가 가 진 강점은 분명하다. 게으른 자는 패배하고 성실한 자가 승리한다는 권 선징악적인 주제가 뚜렷해 강력한 당위성이 확보되어 있다. 성실한 사 람은 성공하고 게으른 사람은 실패하도록 귀결 지어지는 것. 이것이 토 끼와 거북이 이야기의 당위성이고 그래서 교육적으로 대단히 유용한 이야기다. 관객들은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악한 자를 확실 하게 응징하지 않거나, 선량한 사람이 불행하게 되는 결말은 관객의 기 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게으르고 오만한 토끼에게 패배의 쓴 잔을 마시 게 함으로써 이 이야기는 당위성을 확보한 것이다.

필연성과 의외성의 세계

이야기는 인류가 생존에 유용한 경험들을 후대에 전승하기 위해 발달 시킨 도구다. 날씨가 흐리면 비가 온다든가, 천둥이 치면 벼락이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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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자연법칙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고 그것이 오 랜 세월 후대에게 구전으로 전승되면서 스토리텔링의 틀을 갖추게 된 것이다. 자연법칙은 인과의 법칙에 따라 설명되며 그것은 필연성으로 귀결된다. 필연성이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성질’이다. 인과율, 즉 원 인과 결과의 법칙에 의해서 항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연법칙적인 것, 사필귀정으로 이어지는 원칙성이다. 다음은 2012년 9월에 방송된 KBS2의 월화드라마 <해운대 연인들> 의 어느 한 회의 상황이다.

“선상파티에서 준혁(정석원)과 소라(조여정)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남해(김강우)는 소라에게 화를 내고 소라는 남해에게 오해라고 말하 던 중 로프에 구두가 걸려 바다에 빠지고 만다. 소라를 구하려고 함께 뛰어든 남해. 소라와 남해가 없어진 사실을 안 준혁과 삼촌들은 구조 작업을 펼치고 한편 남해와 소라는 무사히 무인도에 떠밀려 와 탈출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와 같은 ‘주인공 불사의 법칙’이 남발되면 필연성에서 벗어나게 된다. 유람선 갑판에 있다가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로 빠진 두 남녀가 해변으로 떠밀려 와 둘 다 무사히 깨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우리가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보고 즐거워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아무것 도 남는 것이 없는 이유는 바로 필연성의 결여로 인한 공감 부족 때문이 다. 40층 빌딩에서 떨어져도 때마침 침대 배달 트럭 위에 떨어져 살아 나는 주인공을 보면서 관객은 “이번에는 무슨 방법으로 저 주인공을 살 려낼까?”를 생각하며 감독과 두뇌게임을 즐길 뿐이다. 다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게임의 예상치 못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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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가 토끼 사회에 널리 퍼졌다. 열 받은 제2, 제3의 분기탱천한 토끼가 나타나 “한 판 더 붙자!” 이렇게 도전장을 내기 시작한다. 두 번째 경주, 세 번째 경주에서도 계속 거북이가 이길 수 있을까? 아마도 한 번뿐일 것이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지만 같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 다. 따라서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에는 필연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조작적인 설정을 남발하면 드라마의 개연성을 해치게 되고 이는 관객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그러 나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의한 필연성을 확보했다고 해서 항상 이야기 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역동성을 가진 상호작용과 충돌에 의 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뻗어 나갈 때 듣는 사람은 매료된다. 드라마가 관객을 사로잡으려면 스토리 전개에 예측 불가능성이 전제되 어야 한다.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는 필연성은 결여되어 있으나 예상 을 뛰어넘는 의외성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힘이 있다. 드라마가 가지는 본질적인 속성 중의 하나가 픽션의 세계라고 해 서 픽션, 즉 꾸며낸 이야기가 모두 드라마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것은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라기보다 드라마적인 진실의 문제일 뿐 만 아니라 개연성, 당위성, 필연성, 의외성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판타지의 세계

홍길동, 임꺽정, 일지매의 이야기는 모두 의로운 도적에 관한 이야기 다. 착취당하는 민중을 대신해 탐관오리들을 혼내주는 이야기다. 그 통 쾌함 때문에 항상 리바이벌된다. 빤한 이야기인데도 볼 때마다 재미있 다. 또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우리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얼굴은 예쁜 데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집안의 여자가 잘생기고 키 크고 성격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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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2세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지금도 끊임없이 반복 생산되 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전인 <춘향전>도 그 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 데렐라 스토리의 원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침드라마가 불륜 일색인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주부들은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안정 되었지만 일상의 삶이 너무나 판에 박힌 틀 속에 갇혀 있어 판타지를 강 렬하게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한국의 30대 여성은 결혼과 육아, 남편 뒷바라지와 집안일에 치여 꿈 많은 소녀 시절의 판타지를 현실에 서는 구현할 방법이 없음을 절실히 깨닫는 세대다. 불투명한 미래와 유 보당한 꿈으로 현실에 대한 욕구불만이 큰 세대여서 판타지에 쉽게 노 출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한국 드라마의 최대 고객은 30대 주부이며 30대 주부를 잡지 못한다면 시청률 올릴 생각을 말아야 한다. 인간이 처한 현실은 항상 누추하고, 나라는 존재는 왜소하고 초라 하다. 드라마는 이처럼 누추한 현실과 초라한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 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 불을 붙이며 그들의 정신세계를 황홀하고, 아름답고, 강하고, 정의로운 판타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다. 관객은 드라마가 인도하는 판타지(fantasy)의 세계에서 아름답고 황홀한 세계, 강하고 정의로운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드라마의 기능 핍쇼머신을 통해서 본 타인의 삶

1894년, 에디슨이라는 미국의 걸출한 발명가가 ‘활동사진’을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 영화산업의 출발점이다. 정지된 사진이 아니라 움 직이는 사진을 만든 것이다. 그는 이 기계의 이름을 ‘핍쇼머신(P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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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 machine)’이라고 붙였다. 우리말로 ‘요지경 기계’, 또는 ‘훔쳐보 기 기계’쯤 되겠다. 에디슨은 이 기계를 대량으로 만들어 팔아 돈을 벌 고자 했다. 그래서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을 기계 안에 설치해서 팔았다. 제목은 ‘요염한 댄서들’, ‘젊은 여자들은 어떻게 옷을 벗나’ 등 등…. 이를테면 야동의 효시라고나 할까? 초당 46프레임이었고 러닝타 임은 15초 정도였다. 이 기계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고 그는 돈을 벌지 못했다. 에디슨같이 머리 좋은 사람이 ‘활동사진’이 가지고 있는 상업적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훔쳐보기 기계를 만들어 파는 일에만 급 급했다는 것은 대단히 아쉬운 일이다. 결국 공은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 제에게 넘어갔다. 그 이듬해인 1895년, 뤼미에르 형제는 세계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을 만들어 파리의 한 카페에서 상영했다. 러닝타임 은 3분. 스크린에서 열차가 달려오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치여 죽을까 봐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심리학 용어 중 ‘피핑톰(peeping tom)’이란 용어가 있다. ‘관음증’ 이란 뜻이다. 실제로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성교장면, 나체를 보며 성적만족을 느끼는 성도착증을 말한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11세기 중엽 영국 코번트리 지방에 레오프릭이라는 악덕 영주가 살고 있었다. 그는 농노들에게 세금을 너무 가혹하게 매겨 농노들의 삶이 도탄에 빠졌다. 레오프릭 백작(당시 70대 노인)의 젊은 아내 고디바 (당시 16세)는 남편에게 세금을 내려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으나 백 작은 거절했다. 그러면서 ‘당신이 만일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면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빈정댔다. 그런데 정말 고디바는 그 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약속한 날이 다가오고 그 소문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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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에 퍼지자 사람들은 그날 창문과 커튼을 모두 닫고 바깥을 내다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고디바 부인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감사와 존경을 표 하기 위해서였다. 젊디젊은 16세의 백작부인 고디바가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돌던 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커튼을 닫고 밖을 내다보지 않았는데, 톰이라는 재단사가 약속을 어기고 몰래 바깥을 내다보며 백 작부인의 나체를 훔쳐보다가 눈이 멀었다. 그 후로 다른 사람의 나체 를 몰래 훔쳐보는 사람을 피핑톰( peeping tom)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19세기 이후에 심리학에서 이 용어를 차용했다.

에디슨이 활동사진기계를 핍쇼머신이라고 명명한 데서 우리는 드 라마의 본질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즉, 드라마 는 ‘핍쇼머신을 통해 들여다본 타인의 삶’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자신의 경험세계를 확대하고자 하는 지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드라마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도구 다. 인간은 내가 가 보지 않은 길,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의사들은 어떻게 사나? 변호사들은 어떻게 사 나? 대통령은 부부싸움을 어떻게 하나? 대중스타 연예인들은 어디서 옷을 사 입고, 무엇을 먹으며, 연애는 어떻게 하나? 나는 이렇게 인생이 불안하고 우울한데 다른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저렇게 신 나게 돌아다니며 웃고 떠들며 사는 것일까? 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며 사나? 전문직 드라마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을 깨고 근래에 많은 전 문직 드라마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면에는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경험세계를 확대하고자 하는 인간의 강렬한 지적욕구가 도사리고 있 다. 에디슨이 발명한 위대한 발명품 활동사진은 핍쇼머신에서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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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텔레비전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스토리텔링이 지배하는 미디어 산업의 세 계에 살게 되었다.

카타르시스와 한풀이

한국의 중년남자들은 죽어라 일만 할 줄 알았지 노는 법을 모른다. 논 다는 생각조차 해 보지 못하고 살았다. 그들에게 논다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었다. 그런데 지금 노동 시장의 유연성 제고라는 명분하에 직장 에서 쫓겨나고 있다. 취미도 없고, 가족들과 소통하는 법도 배우지 못 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술 먹고 골프 치는 것뿐, 어디 마음 터놓고 얘 기할 데도 없다. 미래는 불안하고 앞으로 남은 삶은 창창하다. 그래서 우울하다. 그들은 1960년대의 춥고 배고팠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러나 그 고생담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가방 대신 보자기에 책과 도시락을 싸서 메고 10리 길을 걸어 학교 다닌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 비 하면 요즘 아이들은 너무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 만족할 줄을 모른다.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우며 호롱불에서 공부하던 얘기를 꺼낼라치면 자식들은 “또 그 얘기!”하며 피해 버린다. 필자가 연출했던 <옥이이모>(1995, SBS)는 시청층 분석에서 40∼ 50대 남성 비율이 대단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원래 드라마하 고 별로 친하지 않은 계층이다. 한국 남자들이 유일하게 빼놓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은 <9시 뉴스>다. 9시라는 시간은 한국 남자들에게 일종 의 성역이며 오롯이 남자들만의 시간이다. 이런 한국 남자들을 9시에 뉴스에서 드라마로 뺏어온 드라마가 <옥이이모>였다. 가난했지만 열 심히 살아왔던 자기 삶이 다음 세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마음대로 표현할 수도 없는 분위기에서 정서적 억압을 받아온 한국 중년 남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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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 드라마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 것이 이들이 뉴스를 포기 하고 드라마를 보게 된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되었다. 불황기에는 최루성 멜로드라마가 잘된다고 한다. 울고 싶을 때 뺨 때려 주는 식이다. 드라마는 관객의 감정을 정화하는 카타르시스 기능 을 가지고 있다. 가슴에 맺힌 것, 드러내놓고 말하기 힘든 것, 말하고 싶 은데 치사해서 말 안 하고 있던 것 등을 텔레비전이 대신해 주니 꽉 막 힌 가슴이 풀리는 것이다. 관객이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그것이다. 울고 싶으니 뺨 좀 때려 달라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남자 화장실에 가면 종종 만나는 문구가 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는 남자 들이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사회다. 그러나 남자도 울고 싶을 땐 울어야 한다. 억압하고 참으니까 한국 남자들은 감정의 정화 기능이 꽉 막힌 채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의 밤 문화가 세계 유래 없이 질펀한 것 아닐까? OECD 국가 중에 중년 남자 사망률도 한국이 가장 높다. 오줌 누면서도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강요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일상의 삶에서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춤추며 기뻐하고, 웃길 때 시원하게 웃는 일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된다면 한국 의 드라마 시청률은 좀 낮아지고 제작편수도 좀 줄어들겠지만 그건 바 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인간 탐구

심리학의 목표는 인간 마음의 원리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측 정 가능하고, 지표로 환산할 수 있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고, 반복 실험 을 통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인간과 동물의 행동을 탐구한다. 드 라마의 목표는 ‘인간의 탐구’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의 행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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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집중시킨다. 인간의 행동에는 동기와 목표가 있고, 행위자의 생 각이나 감정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는 인간의 행동을 통해 인간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Drama란 말이 ‘행동하다’라는 뜻 의 그리스어 ‘Dran’에서 유래된 것은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관찰과 실험은 과학적 연구방법의 토대가 된다. 과학은 관찰, 측정 가능한 것을 대상으로 하며 그것을 수치와 지표로 계량화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물과 현상의 인과관계를 밝힘으로써 결과를 예측할 수 있 어야 하고 반복 실험을 통해 누구나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을 탐구하는 방법도 역시 관찰과 체험으로부터 시작된다. 눈물 젖 은 빵을 먹어 보지 않는 사람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 가? 고통 받고 좌절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제대로 그 려내겠는가? 그런 사람에게 무슨 인생의 향기가 느껴지겠는가? 삶의 진실은 ‘체험’ 속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체험과 관찰은 드라마를 공부하 는 데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 펼쳐져 있는 모든 인간과 사 물이 우리에게 드라마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다. 거리에서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발걸음에서부터 가을바람에 떨어져 구 르는 낙엽 하나까지 우리에게 드라마를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는 자기 가 듣도 보도 못한 것을 상상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자신이 느끼고 체험 한 만큼 표현할 수 있다. 관찰과 체험 없이 늘어놓는 이야기는 늘 공허 하다.

재미와 감동

영국이 낳은 스릴러 영화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영화란 지루 한 부분이 커트된 인생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영화란 인 생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내고 남은 것을 이어 붙인 것인데 사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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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인생의 대부분은 영화적으로는 필요 없는 것들로 점철되어 있다. 인 간이 90년을 산다고 하면 그중에 30년은 잠을 자고, 15년은 밥을 먹고 배설하느라 보낸다. 즉, 인생의 절반은 먹고 자고 싸는 데 쓴다. 우리 삶 은 대부분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일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인생 그 자체로 본다면 필요 없는 부분이 어디 있겠는가? 히치콕은 ‘드라마를 구성하는 데 있어’ 필요 없는 부분, 다시 말하면 재 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부분을 말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감독의 문제는 무엇을 보여 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보여 주지 않을 것인가에 있다”고 말한 것은 대단히 일맥상통하는 발언 이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그래서 드라마가 성립되지 않는 부분 을 감독은 화면에서 배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 겠다. 드라마는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그러나 재미만을 추구하다가는 저질 막장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그 안에 감동이 더해져야 비로소 하나 의 완성도 있는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감동이란 드라마 속에 삶의 진 실이 드러날 때 관객이 느끼는 영혼의 울림이다. 진실이라는 쓴 약을 재미라는 사탕발림으로 포장하는 기술, 이것이 감독의 능력이다. 더 나 아가 재미와 감동,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시청자는 웃음과 눈 물을 동시에 요구한다. 따라서 웃음과 눈물을 모두 다룰 줄 아는 연출 자가 진짜 실력 있는 연출자다. 시청자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이 야기를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 권리는 시청자에게 영원히 보 장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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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어디까지 왔나?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이 시작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드라마를 예술 의 한 장르로 분류하지 않는다. 한때 한국인에게 드라마가 문학이고 저 널리즘인 시대가 있었다. 1980년대에 방송된 KBS의 <TV문학관>이나 MBC의 <베스트셀러 극장>은 한국 소설문학의 걸작들을 영상화하여 시청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고, 1990년대에도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 하고 사회비판적 색채가 짙은 고품격 드라마들이 다수 선보였다. 아쉬 운 일이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이제 드라마는 철저하게 엔터테 인먼트의 기능을 수행하는 오락 장르이고, 산업 생산의 한 측면으로 간 주되는 문화상품이며, 국제수지에 영향을 미치는 수출 품목이 되었다. 애당초 방송법에 규정된 편성상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드라마는 오 락프로그램의 한 종류임이 분명하고, 오늘날 지상파에 드라마의 70% 이상을 공급하는 외주제작사들이 세법상 ‘제조업’으로 분류되고 있는 점에서 보면 드라마 감독이 예술가나 저널리스트로 고개를 쳐들고 있 던 시대가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모든 변화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있듯이 드라마에 대한 세간의 인식 변화도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의 의식구조를 바꿔 놓았다. 첫째, ‘무엇이 좋은 드라마인가?’에 대한 우리의 판단 기준이 달라 진 것을 꼽을 수 있다. 요즘 시대에 좋은 드라마란 단지 작품성이 있거 나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이 ‘돈이 되느냐?’가 대단히 중요한 잣대가 된 것이다. 드라마의 작품성이나 완성도보다 매 출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태도는 드라마가 예술이냐 저널리즘이 냐를 가지고 논쟁하던 1980∼1990년대를 기억하고 있는 중견 감독들 에게 있어서도 뭔가 소중한 부분 하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만 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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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낸다면 그리 나쁜 것도 아니다. 둘째, 드라마의 규모가 점차 커져 하나의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면 서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와 창의적인 작품이 끊임없이 만들어질 수 있 는 인적, 물적 인프라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를 보는 인식의 변화는 긍정적인 측면을 가진다. 방송을 ‘돈 되는 사업’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방송의 꽃’인 드라마도 당연히 투자와 원금 회수, 수익의 창출과 이익 배분이라는 사업논리로 접근하게 된다. 드라마를 하나의 상품으로, 제작에 참여하는 작가, 감 독, 배우, 스태프 등을 각각 독립된 하나의 생산요소로 보는 시각은 보수 언론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 관계자나 일반 국민들 사이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러나 이는 굴뚝산업시대에 통용되던 경제논리와 프레임으 로 21세기 문화산업을 보려는 것이고 사실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드라마를 산업생산의 결과물로, 드라마의 제작과 시청을 산업시대 의 생산과 소비의 관계로만 보는 것은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무 지의 소치다. 이런 시각의 이면에는 돈의 논리가 숨어 있다. 다시 말하 면 돈 앞에 모든 가치가 고개를 숙이는 자본주의의 시장원리가 작동하 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21세기 문화산업을 진단하고 평가하고 예측하 려면 산업사회의 생산과 소비의 관계로서만 드라마를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프레임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방송은 문화이면서 산업이다. 그래서 ‘문화산업’이라고 부르는 것 이다. 드라마 역시 문화산업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문화와 산업의 특성 을 단순히 합쳐놓은 것이 아니다.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가지면서 이 둘 의 범주를 뛰어넘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기술적 맥 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따라서 당연히, 대중문화의 논리와 산업논리 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어떤 관점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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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의 드라마를 보는 시각에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드라마를 순수한 예술창작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 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가 산업논리로 드라마를 재단하고 있는 이 와중에도 누군가는 드라마의 예술적 측면을 고민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드라마는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닌, 만드는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 주의, 주장, 사상이 담긴 철학적 사고의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잊지 않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은 드라마를 공부하는 우리들의 몫이다. 모두가 돈타령을 하고 있을 때, 드라마를 통해 세상을 바꾸지는 못 하더라도, 적어도 드라마를 보는 사람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 줌으로써,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게 하고, 그 결과로 보다 나은 세 상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누군가는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다. 드라마를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이고, 인생 은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드라마를 공부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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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북레터 <인텔리겐치아>를 보셨습니다. 매일 아침 커뮤니케이션북스와 지식을만드는지식 저자와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인텔리겐치아>사이트(bookletter.eeel.net)를 방문하면 모든 북레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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