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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인과관계 25편의 영화를 사례 연구한다. 성패의 원인을 찾는다. 결론은 놀랍게 간명하다. 분명한 주제를 인과관계로 전개했다. 어떻게 전개하는가? 설정하고 전개하고 해결한다.

영화 <차이나타운>, 로만 폴란스키 감독, 로버트 타운 각본, 1974


인텔리겐치아 2179호, 2014년 8월 21일 발행

작가 되기 2. 토머스 포프(Thomas Pope)가 쓰고 박지훈 · 윤용아가 옮긴 ≪좋은 시나리오, 나쁜 시나리오 (Good Scripts, Bad Scripts)≫

이론이 전부가 아니다. 시나리오 창작은 더 더욱 그렇다. … 유일한 규칙이 있다면 그것 은 바로 ‘시나리오는 반드시 잘 읽혀야 한다’ 는 것이다. -“머리말”, ≪좋은 시나리오, 나쁜 시나리오≫, vii∼ix쪽.


이론이 전부가 아니라면 무엇이 전부인가? 이론만으론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이론의 왕자가 현실의 바보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지적한다. 이론의 왕자는 언제 현실의 바보가 되는가? 이론은 대개 이런 것이다. “대사는 간결하 게”, “인물 묘사는 행동으로”, “중요한 것은 구성이다”. 당신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겠 는가? 나는 왜 이렇게 못하는 것인가? 이런 지침은 대개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대부분이 적용 불가의 원리나 사실 무근의 아 이디어, 혹은 실행 불가의 낱말로 채워져 있


기 때문이다. 독자는 왜 당황하는가? 어느 정도가 간략한 것인가? 어느 정도가 행 동인가? 구성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답이 있는가? 이론을 논하지 않는다. 시나리오의 문제점 이 무엇인지를 분석한다. 어떻게 분석하는가? 최고와 최악의 영화 25편을 골라 성패의 원 인을 가려낸다.


최고와 최악의 판단 기준이 뭔가? 신의 인과관계, 이야기 설정의 개연성과 당 위성 유무로 판단한다. 최악을 분석하는 이유는 뭔가? 왜 실패했는지 이유를 알아야 실수를 반복하 지 않는다. 방법론이 있는가? 하버드대학교의 사례 연구법을 시나리오 분 석에 적용했다.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이 할리우드로 간 셈이다. 분석 틀은 무엇인가? 3막 구조다. 이 틀 안에서 시나리오를 분석


한다. 3막 구조가 정공법인가? 절대 기준은 아니다. 그러나 드라마란 흐름 이고 흐름의 성공률은 아직까지 3막 구조가 가장 높다. 너무 뻔하지 않은가? 전형적인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전형적인 드라마 구조의 틀 안에서 얼마나 전형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창조하는가가 시나리오 성공 의 가장 큰 관건이다. 성공하는 시나리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까에 대한 강한 궁


금증을 유발시키고 그 궁금증을 끝까지 유 지한다. 이 책이 말하는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하며 그 주 제와 연관된 신이 모두 인과관계로 얽혀 있어 야 한다. 당신이 꼽는 최고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차이나타운>이다. 주제가 명확하며 모든 신들이 완벽하게 인과관계로 얽혀 있어 가히 시나리오 작법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차이나타운>은 어떤 영화인가? 1973년 로버트 타운이 시나리오를 집필했


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세련되고 날카로우며 질퍽거리는 대사, 신 선한 구성, 그리고 화려한 캐스팅의 3박자가 척척 맞아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었 다. 특히 영화 전체를 통틀어 단 세 번밖에 등 장하지 않는 악인의 어두운 존재감이 인상적 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용아다.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 교 수다.


주제와 인과관계 25편의 영화를 사례 연구한다. 성패의 원인을 찾는다. 결론은 놀랍게 간명하다. 분명한 주제를 인과관계로 전개했다. 어떻게 전개하는가? 설정하고 전개하고 해결한다.

영화 <차이나타운>, 로만 폴란스키 감독, 로버트 타운 각본, 1974


좋은 시나리오, 나쁜 시나리오 토머스 포프 지음 박지훈·윤용아 옮김 예술 > 영화 2008년 12월 30일 출간 신국판(153*224) 무선 제본, 300쪽 18,000원


작품 속으로

좋은 시나리오 나쁜 시나리오 토머스 포프 지음 박지훈·윤용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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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 Chinatown

미지의 주인공

기테스 씨. 대부분의 사람은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겠지만, 인 간은 때와 장소가 맞아떨어지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거요. -<차이나타운>의 노아 크로스(Noah Cross)

하지만 노아 크로스는 그것을 경험했고 그의 어두운 존재감은 마치 악 마의 장막과도 같이 영화 전체를 감싼다. 그렇다고 그가 몰지각하고 의 식 없는 정신병자처럼 마구잡이로 세상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뉘앙스로만 존재하는 영악한 인간으로서 그가 저지르는 끔찍한 행위는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것이며 언제부터인가는 잊혀진 사랑하는 딸이 다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 다. 끔찍한 행위의 동기가 노아 크로스라는 인물을 어둡게 색칠하며 마 치 카이저 소제와도 같은 악인의 범주에 집어넣는다. 하지만 카이저 소 제가 <유주얼 서스펙트>의 내레이터로서 언제나 영화에 등장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반면 노아 크로스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 단 세 번밖에 21.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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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그의 부재는 오히려 그의 존재감을 더욱 강하 고 어둡게 만들며 또한 그의 행동을 더욱 부각시킨다. 탐정추리물은 대부분 내용이 어둡지만 우리에게 짜릿한 재미를 선사한 다.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우리의 주인공인 탐정만이 엇갈린 증언과 거 짓말 등의 미로를 헤쳐나가며 범인을 잡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탐 정 이야기들은 예전엔 영국 작가의 고유영역인 듯했다. 애거사 크리스 티(Agatha Christie)의 미스 마플(Miss Marple)이나 에르퀼 푸아(Hercule Poirot), 그리고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경의 셜록 홈스(Sherlock Holmes) 등은 거의 10년간 세상을 지배했다. 1920년대에 들어서서야 다시엘 해 멧(Dashiel Hammett)이 콘티넨탈 옵(Continental Op), 샘 스페이드(Sam Spade), 닉과 노라 찰스(Nick and Nora Charles), 그리고 레이몬드 챈들러(Raymond Chandler)가 필립 말로(Philip Marlowe) 등의 캐릭터들을 창조해 내며 미국식

탐정물의 장을 열었다. 경력 많고 나이 든 영국작가들은 복잡한 사건을 풀어나가긴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악마의 손길에 감정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던 것에 반해, 미국식 탐정물의 작가들은 자신들이 창조해 낸 캐릭 터의 삶에 개입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의리 있는 협객이자 실존하 는 영웅이며 또한 근대적 기사였던 것이다. 샘 스페이드를 일례로 들어 보자. 그는 아름답지만 살인자이고 위선자인 브리지드 오쇼프네시 (Brigid O’Shaughnessy)와 사랑에 빠졌는데도 자신의 윤리관을 무너뜨리는

대신 그녀를 경찰에 인도한다. 이렇듯 미국의 새로운 탐정들은 자신들 고유의 기호로 패륜의 늪을 헤엄치며 선구자적 윤리의식을 정립시켜 나 갔던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주류사회와 격리시키고 그들만의 윤리를 방패로 삼았으며 자신들의 지능과 지혜로 스스로를 악의 무리에서 보호 했다. 미스 마플이 복잡한 퍼즐을 풀어나가듯 그들은 진실을 간단한 것 으로 보지 않고 영원히 잡을 수 없는 끝도 없는 여정으로 여겼다. 그들은 항상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기본적 요소로 삼았으며 그것으로부터 벗어 나는 것이 그들의 승리이자 십자가였던 것이다. 이러한 근대적이고 냉엄한 탐정을 염두에 두고 로버트 타운(Robert Towne) 212


은 1973년, 실로 대단한 <차이나타운>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이것은 후에 197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기를 통틀어 최고의 시나리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로만 폴 란스키(Roman Polanski)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페이 더너웨이(Faye Dunaway) 와 존 휴스턴(John Houston)이 주요 조연으로 등장했다. 세련되고 날카로우 며 질퍽거리는 대사와 신선한 구성, 그리고 화려한 캐스팅의 3박자가 척척 맞아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영화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를 하나로 묶는 것은 역시 제이크 기테스 캐릭터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잭 니콜슨(Jack Nicholson)이 연 기한 기테스 캐릭터는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 냉소적이지만 내면은 연약 한 남자로서 알 수 없는 윤리적 모호함으로 차이나타운 관할 경찰에서 물러나고 타인의 고통으로 먹고 사는 사설탐정으로 일한다. 인생의 바 닥을 걸어봤던 기테스는 바람난 남편이나 부인을 미행하는 등의 아주 단순한 사건을 맡으며(모든 탐정 이야기 속의 사건은 처음엔 단순하게 시작한다) 재기에 힘쓴다. 하지만 인간의 유혹이 빚어낸 영혼이 뒤틀리 는 타락 속으로 말려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가장 지독한 유혹에 휘말리게 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기테스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는 과연 부패 세력에 편승할 것인가? 타락한 세상에서 사랑과 희망이 지켜질 수 있다고 믿는가?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것은 결국 악, 그 자체가 아니라 바 로 기테스의 영혼이었다. 1930년대 로스앤젤레스에서 제이크 기테스는 ‘부부관계’ 전문(버림받 은 아내에게 남편의 불륜을 입증해 보이는) 사설탐정으로 나름대로의 영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간다. 어느 날 그는 수도국의 국장인 홀리스 멀레이(Hollis Mulwray)의 부인에게서 남편을 미행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 다. 홀리스 멀레이를 미행하기 시작하는 기테스는 그가 젊은 금발 여성 과 만나며 도시의 송수관을 살펴보고 또 어느 노인과 다투는 모습 등을 목격하게 된다. 홀리스 멀레이의 불륜에 대한 기사가 터진 후 기테스는 자신이 홀리스 멀레이의 진짜 부인인 에벌린 멀레이(Mrs. Evelyn Mulwray) 21.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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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주장하는 한 미모의 여성에게 소송을 당한다. 그녀는 무언지 알 수 없는 대단한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 보이며 특히 대화 중에 그녀의 아버 지이자 로스앤젤레스 도시 전체에 수돗물을 제공한 거부, 노아 크로스 (Noah Cross)가 거론될 때마다 신경쇠약 증세를 보인다.

기테스는 결국 노아 크로스를 만나고 이번엔 노아 크로스가 기테스에게 홀리스 멀레이의 불륜상대인 의문의 금발 여성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기테스의 수사가 점점 복잡하게 꼬여만 가던 중, 그는 노아 크로스가 농 부들의 원성을 사가면서 근교에 있는 산페르난도 밸리(San Fernando Valley)의 땅을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테스와 에벌린은

내연의 사이로 발전하면서 기테스는 그녀를 통해 노아 크로스가 찾고 있는 그 젊은 여성이 다름 아닌 에벌린과 노아와의 근친상간의 결과였 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테스는 노아 크로스를 만나고, 노아는 자신이 딸을 범했고 그로부터 자식을 얻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또한 그가 소 유하고 있는 방대한 산페르난도 밸리의 농지에 불법으로 물을 끌어들인 후에 그 땅을 로스앤젤레스와 합병시키면 로스앤젤레스는 주요 대도시 로 급부상하는 한편 노아 크로스 또한 억만금의 돈을 챙길 수 있다는 사 실도 함께 인정한다. 기테스는 산페르난도 밸리의 땅을 사들이고 자신 의 딸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자식이자 손녀의 양육권을 가지려는 노아 크로스를 저지하려는 시도를 해보지만 그런 그의 노력은 결국 차이나타 운에서 살해를 당하는 에벌린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영화가 끝나면서 기테스는 그가 겪은 일련의 사건에 치를 떨며 터벅터벅 어둠 속으로 사 라진다. 결국은 악이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멋지고 세련된 테마가 그와 상응하는 구성과 조화를 이룬다. 이쯤에서 1 막을 살펴보자. ∙ 컬리(Curly)에게 아내의 간통 사실을 입증해 보이는 기테스.

∙ ‘홀리스 멀레이의 부인’이 기테스에게 남편을 미행해 달라고 의뢰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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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리스 멀레이가 새로운 댐 건설에 결사반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테스.

∙ 로스앤젤레스 강으로 가는 멀레이를 미행하고 그가 조랑말을 타고 온 한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하는 기테스.

∙ 밤새 송수관을 지켜보는 멀레이를 목격하는 기테스.

∙ 멀레이가 한 노년의 남자와 다투는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살펴보는 기테스.

∙ 멀레이가 한 아리따운 금발의 젊은 여성과 만나는 것을 목격하는 기 테스.

∙ 멀레이와 젊은 여성을 쫓아 한 아파트에 도착하는 기테스.

∙ 멀레이의 불륜 관계를 노출시키고 완전히 비웃음거리가 되어버리는 기테스.

∙ 멀레이의 진짜 부인이 기테스에게 소송을 건다.

지극히 전형적인 1막이다. 구성적으로 독특한 점이 있다면 주인공인 기 테스가 도입부에서 노동자계급인 컬리에게 부인의 간통 장면이 담긴 사 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컬리는 차후에 다시 등장하기는 하지만 주된 이야기의 맥락에 개입한다거나 혹은 어떤 중요한 문제를 제시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주인공인 기테스가 무슨 일을 하고 사는 지 설명하려는 목적이 더 큰 것이다. 작가인 로버트 타운이 영화를 통해 풀어나가려는 핵심적인 문제는 ‘컬리의 아내가 누구와 그 짓을 했느냐’ 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삶의 수단으로 살아가는 기테스 캐릭터 그 자 체인 것이다. 우리가 처음 접하게 되는 것도 기테스의 영혼이며 마지막 에도 역시 그의 영혼과 접하며 끝을 맺는다. 능수능란한 역량을 지닌 그 의 영혼, 하지만 그의 성공은 달콤한 것이 아니라 마치 재를 씹는 것과도 같은 맛인 것이다. 기테스의 영혼을 내면적 문제로 삼은 로버트 타운은 이후 바로 외형적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가 외형적 문제라고 추정할 수 있는) 문제를 21.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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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한다. 바로 멀레이의 불륜을 입증하는 일이다. 다른 어떤 수준급의 탐정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표면적으로 보이는 그 자체가 아 니다. 멀레이의 부인이 진짜가 아니었던 것뿐만 아니라 기테스가 펼치 는 수사의 결과는 지속적으로 그의 상식을 벗어난다. 이외에, 1막은 두 개의 플롯 라인을 소개한다. 첫째로 기테스는 멀레이의 물에 대한 집착 을 목격한다. [기테스의 동료인 월시(Walsh)가 “머릿속에 온통 물 생각밖 엔 없네?”라고 얘기하듯.] 그는 댐 건설에 반대하는 신원이 파악 안 된 한 노인과 언쟁을 벌이며 불모지인 로스앤젤레스 강을 조사한다. 두 번째 로 기테스는 내연녀로 추정되는 한 젊은 여성과 호수에서 보트를 타는 멀레이를 추적하고 불륜의 현장이라 생각되는 아파트까지 쫓아간다. 이 두 개의 플롯 라인을 설정한 후, 1막의 끝에서 로버트 타운은 멀레이의 부인은 가짜였고 기테스는 이유도 모른 채 누군가에게 모함을 당하며 멀레이의 진짜 부인인 에벌린 멀레이는 그를 고소한다는 설정을 내세우 며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일들이 얽히고 꼬이며 기테스는 점점 깊 은 늪으로 빠져든다. 로버트 타운은 주인공을 선택의 기로에 세우며 전형적인 막의 전환점을 마련한다. 포기할 것이냐 아니면 계속 전진할 것이냐에 대한 선택이다. 기테스는 어차피 취하될 확률이 높은 에벌린 멀레이의 고소를 그냥 자 기 변호사에게 넘겨버릴 수도 있었으며 홀리스 멀레이에 대한 수사를 접고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건을 더 욱 깊게 캐보기로 작정한다. 돈 때문도 아닌데 자기가 누군가에게 이용 당한다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결말이 어 찌되었건 진실을 밝혀보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테스의 결심은 자신 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고 그를 프 로타고니스토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과 함께 전체 영화의 색깔을 결정 지으면서 우리를 2막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2막의 신들 중 물의 테 마를 가진 것들 뒤엔 (1)을, 에벌린과 의문의 젊은 여성에 대한 것들 뒤 엔 (2)로 표기했다. 216


∙ 수도국 비서관인 옐버턴(Yelburton)을 만나는 기테스.(1)

∙ 멀레이의 집을 방문하는 기테스. 정원사가 “안경에 안 좋아.”라고 지 껄이는 말을 듣는다. 에벌린이 소송을 취하하겠으며 남편은 댐에 나 가 있다고 말한다.(1과 2)

∙ 댐에서 익사한 홀리스 멀레이를 발견하는 기테스.(1)

∙ 에벌린이 기자들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테스.(2)

∙ 시체안치소에서 한 주정뱅이 노숙자가 바싹 물이 마른 강가에서 익 사했다는 사실을 접하는 기테스.(1)

∙ 익사했을 거라곤 믿기 힘든 장소를 바라보는 기테스, 조랑말을 탄 소 년을 통해 멀레이가 언제 이곳에 물이 흘러갔냐고 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1)

∙ 저수지에서 멀비힐(Mulvihill)과 한 악당에게 코를 찢기는 기테스.(1)

∙ 기테스에게 전화를 거는 아이다 세션스(Ida Sessions)가 신문의 부고 란을 보라고 말한다.(1)

∙ 에벌린이 노아 크로스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기테스. 기테스 는 에벌린에게 그녀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얘기한다.(2)

∙ 옐버턴에게 그를 감방에 처넣을 생각은 없다고 말하는 기테스. 노아 크 로스가 도시의 수도 공급원이 된 땅을 기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

∙ 노아 크로스와 홀리스 멀레이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테 스에게 알리는 에벌린.(1)

∙ 멀레이와 불륜을 저지른 그 젊은 여성을 찾아달라고 기테스를 고용 하는 노아 크로스.(2)

∙ 기록원에서 일정량의 밸리 땅이 근간에 명의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테스.(1)

∙ 격분한 밸리의 농부들에게 몰매를 맞는 기테스.(1)

∙ 기테스를 돕는 에벌린. 기테스가 그녀에게 옐버턴의 주장과는 달리 밸리에 물 공급이 안 되고 있다고 말해준다.(1)

∙ 요양원에 간 기테스와 에벌린. 기테스는 많은 노인들이 저마다 밸리 21.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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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일부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들은 모두 알바코어 클럽 자선단체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멀비힐이 기테스를 때리려 하 나 에벌린이 도망치도록 도움을 준다.(1)

∙ 사랑을 나누는 기테스와 에벌린. 기테스는 노아 크로스가 알바코어 클럽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1과 2)

∙ 의문의 젊은 여자가 있는 집까지 에벌린을 미행하는 기테스.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일 거예요.”라고 얘기하는 에벌린.(2)

∙ 아이다 세션스로부터 연락을 받고 그녀를 만나는 기테스.(1과 2)

∙ 살해된 아이다를 발견하는 기테스, 그녀가 멀레이 부인으로 가장했 던 바로 그 여자라는 사실을 알아낸다.(1과 2)

∙ 경찰인 에스코바(Escobar)가 버려지는 물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얘기 한다. 곤경에 빠지는 기테스.(1)

복잡하다. 하지만 플롯이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아도 괜찮다. 왜냐하면 기 테스 역시 뭐가 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몰매를 맞고 코가 찢기고 고용되었다 해고되고 끊임없는 협박을 당한다. 그가 아는 것은 누군가 가 밸리의 땅을 사들이고 있고 그것이 노아 크로스와 연관성이 있을지 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에벌린이 의문의 젊은 여자를 몰래 숨기고 있다 는 사실 뿐이다.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추측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막의 전환점에 도달해 있다. 왜냐하면 기테스의 삶이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잃게 될 지경이며 사랑에 빠진 에벌린과는 점점 멀어지 는 느낌을 받는다. 2막으로의 전환점에서처럼 기테스는 여기서 주저앉 을 것인지 아님 끝장을 볼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 더라도 끝장을 보겠다는 기테스의 결심이 2막의 촉매제로 작용하며 우 리를 3막으로 인도한다. 작가가 2막에서 두 개의 테마 사이에 균형을 얼 마나 잘 맞추었는지 주목해 보자. 숫자 1과 2가 기테스와 함께 두 플롯 사이를 마치 테니스공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인다. 또한 후반부의 신은 거의 다 1과 2가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두 개의 테마는 기테 218


그림 21-1

기테스

첫 번째 플롯 (에벌린) 노아 크로스를 만나는 기테스

두 번째 플롯(물) ● 플롯을 통해 본 기테스의 여정

스가 노아 크로스를 처음 만나는 영화 중반부에서 너무도 훌륭하게 한 곳에 모인 후 기테스의 집요한 수사를 통해 더욱 세밀히 짜인다. 그것을 도표로 보면 그림 21-1과 같다. 보는 바와 같이 노아 크로스는 플롯의 촉매제로서 기테스를 가동시킨 다. <죠스>의 상어나 <네트워크>의 하워드 빌 캐릭터처럼 노아 크로스 는 영화에 지극히 제한적으로 등장하고 그런 그의 부재는 그의 권력을 오히려 더욱 위협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마치 인형극처럼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모든 캐릭터를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사건들이 충 돌하고 기테스가 막장으로 치달으며 우리는 3막으로 이동한다. ∙ 멀레이의 집. 해수 연못 안에서 멀레이의 안경을 발견하는 기테스. 그가 살해당했음을 입증해 보인다.(1)

∙ 의문의 젊은 여자가 자신이 아버지와의 근친상간으로 낳은 딸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에벌린.(2)

∙ 컬리의 도움으로 에스코바에게서 도망치는 기테스.(1)

∙ 기테스 앞에서 모든 사실을 인정하는 노아 크로스. 멀레이를 죽였으

21.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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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물을 훔치고, 자신의 딸을 범했다는 사실 모두를 말이다.(1과 2)

∙ 차이나타운에서 에벌린을 발견하는 기테스. 그녀가 피살된다. 살인 을 저지르고도 멀쩡한 노아 크로스. 물에 관한 그의 모략은 계속될 것 이다. 홀로 쓸쓸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기테스.(1과 2)

복잡한 2막 후에 작가는 간략하고 단순한 3막으로 이야기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전의 신들이나 캐릭터가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지 주목해 보자. 기테스는 해수 연못에서 멀레이의 안경을 찾아내며 그가 살해된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보인다. 2막에 보면 그가 멀레이의 안경 을 거의 찾을 뻔했던 순간이 있다. 만일 그랬다면 영화는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또한 기테스는 그의 숙적인 형사 에스코바로부터 도망칠 때 컬 리의 도움을 받는다. 일회성이며 완전히 잊혀진 것 같은 캐릭터를 후에 다시 끌어와 주요한 플롯의 도구로 사용한 로버트 타운의 재치가 돋보 인다.[대부에도 흡사한 장면이 있다. 도입부에 비토 콜레오네(Vito Corleone)가 장의사와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이후 장의사는 거의 잊혀 지지만 비토 콜레오네의 장남이 엄청난 총격을 받고 죽었을 때 도움을 주기 위해 다시 등장한다.] 두 개의 테마인 근친과 물은 대화 신을 통해 종결된다. 근친의 테마는 에 벌린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직접 고백하며 종결된다. 물의 테마는 기테 스가 에스코바를 따돌린 뒤(에벌린이 폭로한 근친상간의 충격에서 어 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한다) 노아 크로스를 만나고 결국 그 가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참으로 처절한 내용 의 신을 통해 종결된다. 두 개의 대화 신이 마치 원투 펀치와도 같이 앞 서 벌어진 모든 사건들에 대해 설명해 준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통상적 으로 클라이맥스를 물리적인 액션 신으로 활용하는 데 반해 로버트 타 운은 복잡한 이야기와 추격, 폭력으로 2막을 가득 채우고는 정작 3막의 클라이맥스에 가서는 통상적인 방법의 반대인 대사로만 풀고 있다. 하지 만 거기서 오가는 대사는 그 어떤 액션 장면보다 훨씬 더 끔찍한 것이다. 220


작가가 상황 설명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한번 주목해 보자. 멀레이가 언제 어디서 로스앤젤레스 강에 물이 흘러 들어갔는지를 물어봤다는 사 실을 기테스가 알게 되는 그 신을 일례로 들어보자. 이것은 플롯의 중대 한 열쇠를 쥐고 있는 아주 중요한 신이며 그것을 관객에게 설명하기 위 해 말로 풀어도 됐고 전화 대화로도 가능했으며 아니면 멀레이의 다이 어리를 사용하는 등등 수백 가지의 가능한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로버 트 타운은 기테스를 통해 늙은 조랑말을 타고 다니는 의문의 소년에게 묻게 했다. 거기서 얻어낸 정보는 플롯을 진행시키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이러한 인상 깊고 음산한 느낌의 영상은 관객이 이토록 중요 한 플롯의 열쇠를 그냥 흘려버리지 않도록 만드는 일종의 처방전 역할 을 톡톡히 해냈다. 또한 기테스가 기록원을 방문해 산페르난도 밸리의 많은 땅이 근간에 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그 신을 상기해 보자. 마찬가지로 간단한 전화 통화나 조사로도 설명이 가능했고 심지 어는 기테스가 부하 직원에게 시켜서 얻어낼 수도 있는 정보였다. 하지 만 작가는 모든 공공기관의 직원들이 그러하듯 불친절하고 설명을 잘 안 해주는 한 얄미운 직원에게 기테스가 말을 걸게끔 만든다. 결국 기테 스는 상당히 재수 없는 그 직원을 자극해 말을 하게 만들고 복사해 갈 수 도 있는 필요한 정보를 찢어서 훔쳐가는 방법으로 그 직원에게 앙갚음 을 한다. 마찬가지로 이 직원은 우리에게 그 부분에서 파생되는 중요한 플롯의 정보를 잊지 않게 만들기 위한 조미료인 셈이다. <차이나타운>의 플롯엔 이러한 장치들이 가득하다. 정보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항상 예상 밖의 행동이나 영상들로 우리들의 기억 속을 자연 스럽게 파고드는 것이다. 이토록 훌륭한 시나리오에도 몇 가지 문제점은 존재한다. 에벌린이 홀 리스 멀레이의 죽음에 어떠한 반응(거기에 대해 말도 한마디 안 한다)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이것은 그녀의 캐릭터를 흥미롭게 만드는 장점도 있지만 자신을 평생 끔찍한 아버지로부터 보호해 준 한 남자의 죽음에 아무런 반응도 없을 수 있다는 건 좀처럼 믿기 힘든 일이 21.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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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또한 기테스가 차이나타운 관할 경찰 시절 누군가를 도우려다가 오 히려 안 좋은 결과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는 신이 있다. 이것은 과 도한 암시였고 사실상 필요가 없었다. 작가는 차이나타운에 대해 적게 설명하면 할수록 더 좋았을 거란 사실을 미리 알았어야 한다. <시민 케 인>의 로즈버드처럼 ‘차이나타운’도 잡기 어려운 진실 즉,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은유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타운은 <차이나타운>에서 벌어지는 영화의 결말을 증오했다. 그는 그토록 험난한 과정을 겪은 기테스가 결말에 어느 정도의 승리라 도 거두길 바랐던 것이다. 물과 관련한 범죄로 노아 크로스가 감옥에 갈 수 도 있었고 에벌린이 살아남아 기테스와 함께 갈 수도 있었으며 혹은 노아 크로스의 딸이자 손녀인 젊은 여자가 그의 그늘을 벗어날 수도 있 었다. 여하튼 무엇이 되었든 간에 로버트 타운이 원하는 결말의 방식에 폴란스키는 쌍수를 들고 반대했다. 또 하나의 훌륭한 영화인 <악마의 씨(Rosemary’s Baby)>를 만들 때처럼 말이다. 그는 악이 승리해야 옳다 고 생각했다. 로버트 타운은 폴란스키에게 분노해 협박도 해보고 빌기 도 해보고 비난도 해봤다. 그는 정의가 다만 조금이라도 승리해야 옳다 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란스키에겐 소귀에 경 읽기였다. 그는 로 버트 타운에게 정의가 명백하게 패하는 결말을 강요했다. 로버트 타운 은 결국 시키는 대로 썼던 자신의 결말은 ‘개똥’이라며 수년 동안 분개했 다. 그리고 그는 20년이 필요했다. 폴란스키가 옳았다고 인정하게 되기 까지 말이다. 기테스는 악을 상징하는 노아 크로스를 상대로 패했어야 만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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