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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독자의 차이 누구든 시나리오를 시작할 수 있다. 글을 완성하면 작가가 된다. 인내심의 소산이다. 끝을 맺지 못한 작가는 독자가 된다.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다면.

초보 작가에게 가장 높은 벽은 원고를 완성하는 것이다.


인텔리겐치아 2186호, 2014년 8월 26일 발행

작가 되기 5. 송낙원이 쓴 ≪시나리오 쓰기≫

훌륭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딱 세 가지가 필요하다. 좋은 시나리오, 좋은 시나리오, 좋 은 시나리오다. - 앨프리드 히치콕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시나리오 쓰기≫ v쪽.


무엇이 좋은 시나리오인가? 독창적인 이야기와 캐릭터로 긴장과 서스펜 스를 만들어 내는 정교하고 구체적인 이야기 설계도를 말한다. 설계도는 어디서 시작하나? 간단한 아이디어나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해 이야기와 인물을 구성하는 것이다. 초보자는 첫발을 어디서 떼나? 자기 경험이다. 완전한 허구의 상상에서 시 작하는 것과 비교해 더 현실적인 인물과 사건 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험이 적합한가? 소재의 제한은 없다. 다만 상영 시간에 제한 을 받는다. 상영 시간에 따라 시나리오는 어떻게 달라 지나?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쓴다면 자신의 이야기 를 10분 이내에 끝내야 하고, 장편영화 시나 리오여도 2시간 안에 마무리 지을 수 있는 플 롯과 사건들로 구성해야 한다. 첫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라면 어떤 조건이 안 전한가? 단편부터 연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0분 시나리오에서는 주제와 소재, 등장인물의


성격과 갈등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표현해 야 하기 때문에 초보 작가가 시나리오의 기본 요소와 형식을 배우기에 알맞다. 단편 시나리오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10분 분량의 단편 시나리오는 보통 10개 정 도의 신으로 구성되는데, 이런 짧은 이야기 에도 3막 구조의 플롯이 구성되어야 한다. 단편의 전략은 무엇인가?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다. 주인공은 한두 명 으로 제한하고 조연도 많이 두지 않는다. 갈 등도 하나, 이를 발생시키고 해결해야 할 사 건도 하나만 선택한다.


작가는 단편에서 무엇을 얻는가? 10분 시나리오에서는 지문과 대사, 신, 시 퀀스를 쓰는 장면과 장면 전환 등을 확실히 연습하는 것이 좋다. 아무래도 장편 시나리 오보다 짧기 때문에 신 배분이 비교적 용이 하다. 그럼 장편은 언제 쓸 수 있나? 무조건 오랜 기간 단편을 써야만 장편 시나리 오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편의 단편 시나리오 경험도 충분한 훈련이 될 수 있다. 초보 작가에게 가장 높은 벽은 무엇인가? 원고를 완성하는 것이다. 누구나 시나리오


쓰기를 시작할 수 있지만 오직 인내심을 가진 작가만 글을 마칠 수 있다. 일단 자유롭게 써 보고, 자신이 쓴 것을 뒤집어 엎고 다시 고쳐 쓰기를 반복하면 좋은 시나리오가 된다. 처 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아이디어를 이야기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 인가?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사건 중심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이 사건들의 연속 을 플롯이라 하는데, 극적 구성이 단단하고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는 이야기들은 사건 중 심의 시나리오다. 다른 하나는 캐릭터 중심 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 에서는 외형적인 사건보다 인물들 간의 관계


나 주인공의 내면 변화가 더 중요하다. 주인공은 누구인가? 주인공은 사건을 만들며 이야기를 전진시키 고 플롯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물이 다. 명확한 갈등으로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갈등은 어떻게 생기는가? 모든 주인공은 원하는 것이 생긴다. 누군가 를 사랑하게 된다든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 다든지, 누구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든지, 자 신의 인생을 건 욕구와 욕망, 희망이 생긴다. 흥미 있는 시나리오는 주인공의 욕망을 좌절 시킨다. 이 좌절이 갈등이 되며, 갈등은 사건


들을 연쇄적으로 만들어 낸다. 갈등은 어떻게 깊어지는가? 욕망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장애물이 많으 면 많을수록 캐릭터는 더더욱 욕망을 이루고 싶어 하고 좌절의 깊이는 더 깊어지며 이야기 의 갈등은 심화된다. 관객은 어떻게 갈등 상황으로 끌려 들어오 는가? 극은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살 아 있는 생명체와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사건들은 일관성과 통 일성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믿 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위기와 절


정을 적절히 준비하고 최고의 임팩트와 반전 을 노리기 위해서는 복선과 사건의 개연성을 충분히 설정해 줘야 한다. 이야기의 설득력은 어떻게 만드는가?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시작에서 이야 기의 조건들이 설정되어야 한다. 주제에 대 한 암시나 상황에 대한 기본 설정이 설명되어 야 한다. 어떤 시대와 장소가 배경인지, 주인 공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 지, 압축적인 제시가 짧은 시간 안에 펼쳐지 면서 앞으로 전개될 상황의 아우트라인을 제 시한다.


이야기를 풀어 가는 전개의 방법은 뭔가? 모든 이야기는 시작, 중간, 끝으로 구성되는 3막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의 중간은 전 체 이야기의 대부분인데 갈등과 마찰이 생기 면서 사건이 진행된다. 이야기의 끝에서는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사건의 결말을 지어야 한다. 꼭 3막 구조로 진행해야 하는가? 대부분 훌륭한 이야기는 3막 구조로 이루어 져 있다. 그러나 실제 인생은 3막 구조를 따 르지 않는다. 우리 삶은 우연의 연속과 결말 없는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현대 영화나 예 술영화는 3막 구조를 벗어난 플롯으로 시나 리오를 구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시나리오의 구성 방식과 시나리오 쓰기의 구 체적인 정보를 알려 준다. 교재로도 쓸 수 있나? 물론이다. 교강사를 위한 프레젠테이션 자 료도 만들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송낙원이다. 건국대학교 영화과 교수다.


작가와 독자의 차이 누구든 시나리오를 시작할 수 있다. 글을 완성하면 작가가 된다. 인내심의 소산이다. 끝을 맺지 못한 작가는 독자가 된다.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다면.

초보 작가에게 가장 높은 벽은 원고를 완성하는 것이다.


시나리오 쓰기 송낙원 지음 시나리오 작법 2014년 4월 15일 출간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116쪽 9,800원


작품 속으로

시나리오 쓰기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시나리오의 개념 스릴러 영화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훌륭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딱 세 가지 가 필요하다. 좋은 시나리오, 좋은 시나리오, 좋은 시나리 오다.” 시나리오(scenario)라는 용어는 신(scene)이라는 용어 에서 유래되었다. 신은 연극에서 한 장면 한 막을 가리키 는 것인데 영화에서 한 단위의 시간과 한 단위의 공간을 구분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영화의 모든 하나 하나의 장면들이 모여 전체 영화를 이룬다. 이렇게 이야 기에 따라 진행되는 영화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신으로 구분되는 장면들이고, 이 장면들에 대한 지시나 기록 내용 들이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기본 토대가 된다. 시나리오는 무성영화 시대에는 단지 촬영용 메모로만 사용되었으나 1920년대 이후 영화가 장편이 되면서 그 형식과 포맷이 규격화되었다. 영화제작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시나리오는 스크린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배우에 의해 표현되는 대사와 행동을 알려 주고 지시하는 지문으로 구성된다. 인물 소개, 성격, 성장 환경, 습관, 등장인물들의 관계 등도 시나리오로 전 달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또한 촬영할 때에 지시하는 특 정한 카메라 움직임이나 앵글, 후반 작업 과정에서 다루게 될 특수 효과나 컴퓨터그래픽 처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시 각 정보도 함께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영화제작의 설계도 다. 이 정보들은 시각적으로 보여 줄 것들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진다. 시나리오는 구체적인 영상으로 보여 줄 것이 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비유나 상징이 아닌 정확 하고 객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이런 시나리오를 읽을 때 독자나 영화제작에 관련된 이들은 묘사된 장면들을 시 각적인 경험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작가의 사유, 세계와 세상을 바라 보는 시각을 표현한다. 작가는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캐릭 터를 통해 작가 자신의 자라온 환경, 가치관, 정서, 문화 등을 투사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캐릭터를 표현할 때 독 창적이고 진부하지 않은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해야 한 다. 또한 시나리오는 개인의 생각과 이야기를 쓰는 것이 지만 거기엔 영화적 요소를 담고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 는 하나의 완결된 문학작품이자 가장 기본적인 영화의 설


계도다. 하지만 영화는 극장에 걸리고 관객이 돈을 내고 보아야 하는 산업적 전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시 나리오는 약 2시간이라는 산업적으로 제한된 시간 내에 이야기와 캐릭터의 심층 묘사는 물론 긴장과 서스펜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복합적인 이야기 요소들을 한 치의 흐 트러짐 없이 정교하게 배치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깔끔 한 끝맺음 혹은 놀라운 반전 혹은 가슴 먹먹한 감동으로 관객들에게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credit)가 올라가는 순 간 만족감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전개 나 캐릭터 구축에 굳이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 신이나 대 사가 발견되기 시작하면 훌륭한 시나리오의 자격에서 멀 어진다. 특히 시나리오에서는 이야기의 완성도가 작품에 대한 평가를 상당 부분 좌우한다. 시나리오작가가 시나리오를 완성하면 실제 제작과 관 련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감독이 쓴 시나리오라 면 감독이 직접 프로듀서나 제작자를 만나겠지만, 전문적 인 시나리오작가는 감독을 먼저 설득하여 적절한 제작자 를 만나는 기회를 앞당길 수도 있다. 만약 영화사가 주도 하여 개발된 기획 영화의 시나리오라면 우선 프로듀서와 작가가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나중에 감독을 찾기도 한다. 그런 때에는 제작사에서 시나리오 청탁이 들어오게 마련


이다. 어쨌든 영화화하기 위한 시나리오의 첫 번째 통과 의례는 수많은 영화 관계자를 만나고 설득하는 것이다. 캐스팅도 영화제작이 실제 들어갈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하고 까다로운 단계이므로 시나리오로 잘 설득 할 수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가 제작 가능성에 대한 조건 을 훌륭히 충족시킨다면 제작자나 투자자를 설득하여 영 화가 실제 제작에 들어가게 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시나리오에 담겨 있는 여러 가지 정보들 중에서 실질적 으로 제작비와 직접 연관되어 있는 항목들은 제작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것들이다.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들지 가늠하는 것은 프로듀서나 제작사, 투자사들이 제작 여부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다. 일단 제작비가 산출되면 경험 많은 프로듀서들은 어 렵지 않게 예산 편성 계획을 잡을 수 있다. 따라서 시나리 오는 문학적으로 혹은 예술적으로 이뤄지는 이야기 전달 과 캐릭터 표현일 뿐만 아니라 실제 촬영 현장에 대한 프 로덕션 진행과 후반 작업에 대한 지시며, 이 과정에서 발 생할 모든 예산의 견적서이기도 하다.


영화 시나리오의 고유한 특성 시나리오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그러한 영화는 연극이나 무용과 같이 청각과 시각을 모두 사용한다. 연극과 영화가 갖는 공통 점은 둘 다 시청각을 모두 사용하는 종합예술이라는 점이 다. 음악은 청각으로, 미술은 시각으로, 문학은 글로 머릿 속 상상의 공간으로 확대되며 텍스트 너머를 상상하게 만 든다. 한편으론 영화는 연극과 달리 무대라는 공간의 제 약을 받지 않는다. 사막, 우주, 미래 시대 또는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벌어진 1000년 전의 전설 등 사실상 모든 이야 기가 가능하다. 따라서 영화가 연극보다 훨씬 더 대중적 이고 오락적인 매체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영화의 특징 중 소설과 닮은 이야기다.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캐릭터를 내세워 허구적인 사건을 개연성 있게 풀 어낸 것이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고 쇠퇴하 면서 마지막에는 결말을 맞이하는 완결성을 갖는다. 소설 은 문자라는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고 영화는 영상, 즉 시 각적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 텍스트를 읽는 독자의 마음에는 한 편의 영화가 그려진다고 표현해도 무색할 만 큼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이것은 시각적인 것으로 치환 된다. 마찬가지로 시나리오를 읽는 사람에게도 같은 연상


작용이 발생하며 오히려 더 구체적으로 발생한다. 왜냐하 면 대사와 지문의 가시적인 성격 때문에 등장인물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적어도 등장하는 하나의 신 안에서는 구체적이며 생생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나리오는 영화로 시각화할 것을 글로 미리 풀어 쓴 것이라고 보면 된다. 다른 한편으로 시나리오와 소설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 면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있다. 먼저 시나리오는 영화화 하는 것을 그 전제로 하고 있다. 물론 시나리오 자체만으 로도 문학적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는 완결된 예술 작품 요 소가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시각적인 형상화를 위한 설계도 성격이 매우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실제로 존재하는 배우가 허구의 캐릭터를 구체적인 연기로 카메 라에 담기는 과정을 거치면서 허구적 상상력의 현실적 재 현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순수 하게 문자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작가의 묘사 가 구체적이고 상세할지라도 여전히 허상으로만 존재하 는 것이며 문자에서 생성되는 추상적인 기호를 독자 스스 로 직접 해독하고 시각적인 기호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구체적 실체를 가질 수 없다. 이런 차별성 때문에 시나리오는 훨씬 더 즉각적이고 직


접적으로 관객에게 다가서고 소설보다 훨씬 대중적이고 명확하다. 한편 시나리오작가에게는 그만큼 집요할 정도 로 디테일한 인물들의 행동을 묘사할 수 있는, 때로는 매 우 부담스러운 능력이 요구된다. 자신이 만들어 낸 이야 기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스스로 말을 하며 행동하고 각기 다른 방법으로 사건에 반 응하며 언제 어디서 등장하여 언제 어디로 퇴장하며 어떤 옷을 입고 있으며 빠른 속도 아니면 느린 속도로 걷는지 등 섬세한 창조가 필요하다. 독특한 그들만의 세계를 살 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만큼 개별적 존재에 일종의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연극과 차별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 아보자. 연극은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 위에서 펼치는 공 연 형태의 예술이다.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무제한으로 비약하거나 조작할 수 있다. 시각적으로 연극 무대를 바 라보고 있는 관객이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거리와 영역까지 영화는 시각적인 정보를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다. 슬 픈 표정을 짓고 있는 배우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방울 을 마치 바로 코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같이 가까운 거리 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시각적 힘이다.


더 나아가 영화의 시각화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고 영화관에 걸린 거대한 스크린에 투사되 는 이미지의 장엄한 스펙터클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영 화라는 매체의 특징에서 가장 독특한 것 중 하나가 프레임 이다. 프레임 안과 밖의 공간들을 이용하여 감독은 이미 지의 집중과 분산을 반복하며 관객이 화면과 이야기에 집 중하도록 한다. 감독이나 시나리오작가의 의도가 관객에 게 강제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로, 프레임이라는 사각 틀 안에 있는 것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반대로 화면 바깥에 존재하는 것은 관객이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따 라서 보여 주기와 숨기기를 위한 선택은 언제나 신중하고 의도적으로 진행되며 언제나 우리에게 영화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흡인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다음으로는 몽 타주 표현이 있다. 서로 다른 장면들을 연결하여 이야기 를 생성할 수 있는 서사성은 물론이고 연결된 숏들이 유추 나 암시, 연상에 의해 다양한 의미를 만들기도 한다. 이것 은 영화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인 편집을 이루 는 기본 바탕이 된다. 영화 시나리오는 대사보다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서 술해야 한다. 그리고 감정의 묘사보다는 사건이나 특정한 행위에 대한 시각적 묘사로 진행된다. 그런 면에서는 소


설보다 더 현실적이다. 그렇지만 상상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여전히 허구성을 갖고 있다.

시나리오의 구성 영화 속 이야기를 보여 주기 위해 쓴 글이 시나리오다. 이 러한 시나리오는 완성 이전 대강의 줄거리를 요약한 시놉 시스와 시나리오 형식의 바로 전 단계인 좀 더 상세한 장 면 묘사가 된 트리트먼트라는 단계를 거쳐 완성한다. 장 편영화를 위한 시나리오에는 보통 신이 150~200개 있고 플롯의 구성이나 배우의 대사, 지문 그리고 화면상으로 보 이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묘사가 들어있다. 신은 시나리오에서 가장 최소 단위인데 실제로 영화에 서는 장소와 시간이 일정하게 진행되는 하나의 단위인 쌀 보다 더 작은 단위인 숏이 존재한다. 이 숏은 카메라가 한 번 촬영하면서 컷되는 순간으로 구분된 가장 최소의 단위 다. 이 숏들이 모여 벽돌이 하나의 큰 집을 짓는 데 사용되 는 것처럼 큰 단위의 영화가 구성된다. 카메라 움직임의 최소 단위인 컷(cut) 혹은 숏(shot)들은 영화에서 필름의 조각을 가리키는데 이런 숏들이 모여 시나리오의 최소 단 위인 하나의 신을 이루게 된다. 신에는 시간과 장소라는 필요충분조건이 만족되어야 하며 시간과 공간의 변화가


있게 되면 신도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신에서 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대사와 지문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 해야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들이 몇 개 모여 하나의 이야 기 단위인 시퀀스(sequence)를 이루게 되는데 시나리오 란 시퀀스들의 조합과 배열이라고 볼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에서는 대부분의 영화 와는 달리 이런 시퀀스들을 시간의 역순으로 배합하여 과 거의 사건들을 보여 준다. 소설가였던 감독이 직접 쓴 이 사니리오에는 첫사랑 순이에게 박하사탕을 건네주는 마 지막 장면을 통해 사회적인 메타포를 보여준다. 이창동 감독은 이전 작품인 <초록 물고기>에서도 한국 사회의 근 대화 과정 속에 부서져 가는 가족사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이야기의 선형 구조를 뒤집어 비극적 삶 의 결과를 가져온 근원을 찾음으로써 결국 야학 시절의 가 장 순수했던 마음을 잃고 한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점점 타락해 가며 어쩔 수 없이 운명에 휘말려 든 한 개인의 비 극을 묘사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시간과 공간의 비 약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달라진 배우의 얼 굴을 통해 세월의 흐름을 보여 주고 극단적인 클로즈업으 로 관객들의 몰입을 끌어내는 방식은 탁월하다. 예로 제 시할 <박하사탕> 시나리오에서는 점점 다가오는 기차와


커지는 영호의 얼굴 그리고 기차에 치이는 장면이 몽타주 기법으로 잘 표현되고 있다.

박하사탕 <시나리오> 9. 철교 아래(외부, 낮) 철교 아래로 달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극단적으로 보인다. 이제는 기적소리가 아니라 기차가 달려오는 소리까지 들린다.

남자1: <(철교 위를 쳐다보며) 야! 내려와> 남자6: <늦었어, 늦었어. 언제 내려와> 남자5: <저 친구 정말 죽을려는 거 아냐> 여자6: <엄마, 어떡해? 어떡해?>

기차 소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사태는 분명해졌다. 철교 한가 운데에 있는 그가 이제는 도망치려고 해도 이미 시간이 늦어 버 린 것이다.

남자2: <뛰어내려!> 남자3: <야! 뛰어내려! 괜찮아! 뛰어내려!>


10. 철교 위(외부, 낮) 철교 한가운데 서 있는 영호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선 채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철교 아래에서 뭔가 아우성치는 친구들. 극단적인 부감. 점점 육박해 오는 기차 소리.

11. 철교 아래(외부, 낮) 경악한 사람들의 얼굴 위로 요란한 기적 소리와 열차의 바퀴 소 리가 육박해온다.

12. 철교 위(외부, 낮) 영호의 얼굴 CLOSE UP. 그의 앞으로 검게 입을 벌리고 있는 터 널 구멍이 보인다. 점점 육박해 오는 기차 소리와 함께, 터널의 어둠 저쪽에서 다 가오는 불빛이 보인다. 이윽고, 기관차의 앞머리가 나타난다. 영호의 시선이 허공을 더듬는다. 차츰 다가오는 열차. 영호의 시선이 허공을 더듬는 다. 차츰 다가오는 열차. 영호, 다시 뭔가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 소리를 기차의 요란 한 기적 소리가 덮어버린다. 금방이라도 덮칠 것처럼 점점 커지는 열차와,


들리지 않은 소리를 절규하는 그의 절박한 얼굴에서…. STOP.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기차 소리는 점차 낮아진다. 수초 동안의 암전 상태에서 기차 소리가 사라지며 맑고 잔잔하 며 평화로운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13. 달리는 열차(외부, 낮) 짧은 F.I와 함께, 달리는 열차의 정면에서 보는 시점 숏.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끝없는 철도 침목들과 선로 좌우의 풍 경들. 자세히 보면 풍경 속의 움직임이 거꾸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하늘을 나는 새 떼들이 역동작으로 철로 옆 숲으로 내려앉아 마치 기차가 과거로, 과거로 달려가듯. 십 초 정도 계속되다가..., 다시 암전. 미리 말해두지만, 이제부터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과 거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이틀 전, 한 달 전, 또 이 년 전, 오 년 전…. 그리하여 마침내 20년이란 시간을 역류해서 마지막엔 20년 전 의 어느 순간,


한 인간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했던 때의 모습에서 멈 추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마치 사진첩의 맨 뒷장에서 부터 거꾸로 펼쳐보듯, 한 남자의 20년 동안에 걸친 삶을 돌아 보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점점 젊어지고, 세월이 만든 오염과 타락의 때를 벗으며 젊음의 순수함을 되찾는 모습 을 보게 될 것이다. 마치 두터운 녹을 벗겨낸 은(銀)식기가 조금씩, 조금씩 그 영롱 하고 맑은 광택을 드러내듯이.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아름다움과 순수한 사랑을 찾아가는 시 간여행을 시작한다.

위 시나리오에서 보듯, 10신에서 철로 위에서 자살하려 는 영호의 모습이 보이고 12신에서 점점 육박해 오는 기차 소리와 터널의 불빛이 커지면서 다가오는 열차의 모습이 점점 더 뚜렷해진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영호를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은 열차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모든 것이 멈춰지고 기차 소리가 점차 낮아진다. 이 시나리오는 감독이 직접 자신이 연출할 영화의 시나리 오를 쓴 것이라 구체적인 연출 기법이나 미학적 원칙들이 지문으로 표현되었는데, 13신에서는 기차 소리가 줄어들


고 평화로운 음악이 등장하며 왜 작가가 시간을 역순으로 밟고 올라가 주인공의 잃어버린 순수를 드러내고자 하는 지에 대한 주제 의식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시나리오작가 지망생을 위한 연습과 습작 시나리오작가 지망생들이 시나리오를 잘 쓰기 위해 흔히 연습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문학에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시나리오 베껴 쓰기’다. 어느 장르든지 예술가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에는 언제나 선배 예술가들의 작품들 을 무작정 따라 베끼는 방법이 사용된다. 미술대학에 진 학하는 입시생들이 석고상을 지겹도록 그려야 하는 교육 방식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이 그래야 만 하는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 마찬가지로 시 나리오를 쓰려면 훌륭한 시나리오를 베껴 쓰는 습작 과정 이 필요하다. 먼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출판된 시나리 오 서적을 구입하여 그 시나리오를 손으로 옮겨 쓰거나 컴 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옮겨 써 본다. 이런 모사 과정을 통 해 시나리오를 읽을 때와는 다른 쓰기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고 시나리오의 구체적인 형식과 친숙해질 수 있다. 다음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구해 반복 재생해 보면


서 그것을 시나리오 형태로 옮겨 적는 습작을 시도해 보 자. 그리고 그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해 본다. 그러면 자신 이 영화를 보고 이를 문자로 옮긴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유사한지 비교해 볼 수 있다. 이 습작 방법은 이미지와 사 운드로 구성된 영화를 어떻게 문장으로 표현할지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 어떻게 대사와 지문을 구성해야 할지에 대 한 도움을 실제로 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100편의 영화 를 한 번 보는 것보다는 모범 교재로 삼을 만한 영화를 한 편 정해 놓고 그 영화를 100번 반복해 보는 편이 영화 시나 리오 쓰기에 더 도움이 된다. 처음 영화를 보면 그에 대한 인상만 머릿속에 남지만 반복해 보면 이야기의 구조, 캐릭 터 설정, 사소한 대사가 가진 의미와 상징이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시나리오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단조 롭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습작의 단계를 차례로 거쳐야 한 다. 때로는 치밀하고 구체적이면서도 반복적인 학습도 필 요하다. 시나리오작가는 예술가다. 예술가는 창작을 하면 서 영감도 필요하지만 그 영감을 구체화하기 위한 기술도 필요하다. 옛말에도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이 읽 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 한다고 했다. 좋은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많이 보고, 영


화가 그려 낼 삶과 사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무 엇보다 시나리오를 많이 써 봐야 언젠가 멋진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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