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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은 메시지다 스타일, 곧 양식은 그릇이나 형식을 뜻한다. 내용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내용은 형식을 따르기 마련이다.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으면 우리가 마시는 것은 헌 술이 된다.

다큐멘터리 <어느 여름의 기록>, 장 루슈·에드거 모랭 감독, 1961


인텔리겐치아 2199호, 2014년 9월 3일 발행

오원환이 쓴 ≪다큐멘터리 스타일≫

다큐멘터리는 현실과 맺고 있는 관계의 힘과 더불어 형식을 통해 전달된다. -‘다큐멘터리로 보는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 스타일≫, xv쪽.

다큐멘터리에서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다큐멘터리 장르에 대한 감독의 고유한 신념 을 담아내고 표현하는 그릇이다.


스타일과 신념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다큐멘터리를 대하는 시각과 태도가 촬영과 편집을 통한 현실 재현 방식으로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스타일의 차이는 현실 재현 방식 의 차이다. 재현 방식의 차이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감독의 촬영 방법 차이에서 확인된다. 카메 라의 존재감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 ‘실제’ 라는 영상 재료를 획득해 ‘진실’에 어떻게 다 가설 것인가에 대한 감독의 생각과 행동은 다 양한 촬영 방식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촬영 방식이란 어떤 것인가? 다큐멘터리는 ‘부지불식간의 기록’이거나


‘카메라 앞에서 촉발된 것’ 또는 ‘카메라를 통 해 구성된 것’이 된다. 재현 스타일은 얼마나 다양한가? 관찰적, 설명적, 참여적, 수행적 양식이 있 다. 이 중 한 가지가 지배적 양식이 되지만 종 종 여러 개가 혼합 구현되기도 한다.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양식은 무엇인가? 관찰적, 설명적 양식이다. 관찰적 양식은 감 독이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며, 설명적 양식은 해설 내 용의 논리적 구성으로 청중을 설득하거나 이 해시키려 한다.


참여적, 수행적 양식은 뭐가 다른가? 현실 개입이 더 깊다. 참여적 양식에서 감독 은 현실의 촉매 역할을 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낸다. 수행적 양식에서는 특정 개인이나 집 단이 자신이 처한 사회적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표현한다. 이 책, ≪다큐멘터리 스타일≫은 무엇을 말하 는 책인가? 감독들이 촬영과 편집을 통해 추구했던 가 치, 이 가치를 획득하기 위한 접근 방식을 재 현 스타일에 따라 정리했다. <북극의 나눅>, <주택 문제>, <어느 여름의 기록>과 같이 다 큐멘터리 역사에서 주목받은 작품 10개를 사 례로 선정했다.


<북극의 나눅>은 어떤 스타일인가? 관찰과 참여를 혼합한 참여적 관찰 스타일 을 정립한 영화다. 이국적 부족에 대한 관객 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기존 기행 영화에 서 벗어나 이누이트 부족을 ‘좁고 깊게’ 파고 들었다. 좁고 깊게 파고들기 위해 플래허티는 어떻게 했나? 16개월의 촬영 기간 동안 이누이트족 부족장 나눅과 함께 지내고 친밀하게 교류하며 교 감의 폭을 넓혔다.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촬 영하는 과정에서 부족 사람들과 협력했다. 현장에서 촬영한 필름을 부족사람들에게 보 여 주고 그들의 의견을 구했으며 만족스럽


지 못하다면 다른 각도와 거리에서 재촬영 을 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을 보여 줄 수 있었는가? 촬영 대상에 대한 외부자의 시선이 아니라 내 부자의 시선을 보여 주었다. 문명인의 시점 에서 본 나눅의 모습 대신 나눅 스스로가 자 신들을 보는 방식을 작품에 담아냈다. 이 양식은 어떻게 이후 어떻게 발전되는가? 시네마베리테로 이어진다. 영화 제작자와 대상의 상호 참여를 통해 거리를 없앤다는 정 신을 이어받은 스타일이다. 시네마베리테의 트레이드마크, 곧 감독이 현장에 직접 뛰어 들어 인터뷰를 진행하고 영화적 진실을 촉발


하는 촉매 역할을 수행하는 점에서 참여적 스 타일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시네마베리테가 나타날 수 있었는가? 영상 기술 장비의 발전이다. 경량의 카메라, 고감도 필름, 소형 녹음 장비의 개발로 다큐 멘터리 감독은 트라이포드와 조명장비 없이 적은 인원으로 삶의 현장에 깊숙이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시네마베리테 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 <어느 여름의 기록>이다. 1960년 여성 두 명 이 파리의 거리, 공원, 자동차 정비소, 가정 집을 방문하여 다양한 시민들에게 행복한가


를 묻는 현장 인터뷰를 진행한다. 다소 흔들 리지만 자유롭게 유영하는 핸드헬드 카메라 가 다양한 숏 사이즈와 앵글로 현장감을 증대 시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택 문제>는 어떤 스타일을 대표하는 영화 인가? 설명적 스타일이다. 아서 엘턴과 에드가 앤 스테이가 공동 연출한 이 영화는 슬럼가의 노 후한 주택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위 험하고 비위생적이며 불편한 거주 환경 속에 서 살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주택 문제>의 작품 주제는 무엇인가? 영국 근대화 과정에서 야기된 불평등한 삶의


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민주사회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한 노동자 스스로의 인 식 고취와 정부 차원의 개선책을 촉구하는 것 이다. 변혁의 도구인가? 그렇다. <주택 문제>를 비롯해 <가난한 사람 들의 영양 결핍>, <공교육의 문제>와 같은 영국 다큐멘터리 운동의 영향을 받은 영화들 은 설명적 스타일을 차용해 국가가 직면한 문 제들에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 그 원인과 해결 방안을 제시하려 했다. 이들 영화가 사 회적 다큐멘터리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누구를 생각하며 이 책을 썼는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는 학생들이다. 재현 스타일은 그 자체가 메시지이며, 감독의 신 념과 가치관이 형식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 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오원환이다. 군산대학교 미디어문화학과 교 수다.


스타일은 메시지다 스타일, 곧 양식은 그릇이나 형식을 뜻한다. 내용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내용은 형식을 따르기 마련이다.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으면 우리가 마시는 것은 헌 술이 된다.

다큐멘터리 <어느 여름의 기록>, 장 루슈·에드거 모랭 감독, 1961


다큐멘터리 스타일 오원환 지음 영화 / 영화이론 2014년 4월 15일 출간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130쪽 9,800원


작품 속으로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다큐멘터리 스타일 오원환


다큐멘터리로 보는 다큐멘터리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의 정체성과 재현 양식을 논의한 후,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주목받는 작품 10개를 통해 다큐멘 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앞으로 고민해야 할 것 들이 무엇인지 다루고 있다. 그것은 다큐멘터리의 이론적 측면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실천적이며 방 법론적 차원이다. 대학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정체성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가 선 행되어야 그다음에 어떻게 다큐멘터리를 만들 것인지를 제대로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수의 학 생들에게 다큐멘터리는 대체로 TV에서 본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다소 경직된 장르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경직성은 무엇보다 저널리즘적 전통에서 객관성 과 공정성의 신화와 맞물려 있거나 혹은 다큐멘터리는 왠 지 연대기적으로 구성돼야 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 그 리고 인터뷰와 내레이션을 꼭 써야 할 것 같은 선입견에서


연유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다큐멘터리 장르의 지배적인 재현 양식으로 자리해 온 넓은 의미의 시네마 베리테 (Cinema Vérité) 스타일은 우리나라 방송 다큐멘터리 스 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례로 모방송사의 특집 다큐멘 터리의 슬로건이 ‘내레이션 없는 다큐멘터리’였다는 점은 그만큼 해설에 의존해 온 우리 방송 다큐멘터리의 현실을 잘 보여 준다. 이 책의 가장 기본 목적은 무엇보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려는 학생들의 경직된 생각들을 풀어 주려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서 다큐멘터리의 정체성과 재현 스타일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제공할 수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려고 한 다. 여기서 다루는 10개 다큐멘터리는 감독이 카메라를 통해 혹은 편집을 통해 추구하려고 했던 가치들과, 그러한 가치들을 획득하기 위한 접근 방식에서 매우 선구적인 역 할을 수행한 작품들이다. 아울러 이 작품들의 재현 스타 일은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동시에 새 롭게 그 영역을 확장하는 데도 기여를 했다. 니컬스 (Nichols)가 지적하듯이 “스타일은 의미 없는 체계적인 기 술의 활용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의미를 담아내는 전달 자”로 기능했기 때문이다(Nichols, 1991, 79∼80).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정체성 다큐멘터리를 다른 장르와 차별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보편적 맥락은 다큐멘터리가 무엇인가라는 개념 구분으 로부터 출발한다. 그간 다큐멘터리를 정의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영화 이론가인 포시스 하디(Forsyth Hardy)는 다큐멘터리를 ‘선택적 사실을 드라마화하는 것’ 이라고 했고, 영화 학자인 앤드리스 데이넘(Andries Deinum)은 ‘새롭고 의미 있도록 보여 주는 창조적인 작업’ 이라고 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윌러드 반 다이크 (Willard Van Dyke)는 ‘현실을 조각조각 나누고…, 그 조 각들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스텔라 브루치 (Stella Bruzzi)는 다큐멘터리는 “실제 사건과 실제 사건 재 현 사이의 영원한 협상”이며, “그 둘은 구분되지만 상호작 용한다”고 지적한다(Bruzzi, 2000, 9; Ward, 2005/2011, 21 에서 재인용). 그리고 기 고티에(Guy Gauthier)는 “다큐멘 터리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명명하는 것에 접근하는 하나 의 방법일 뿐이다”라고 주장한다(Gauthier, 2005/2006, 27). 그 밖에 영화 관련 단체들의 정의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실제 상황 을 촬영하거나 재현해 흥미보다는 실제 내용을 충실히 다 루는 것으로 순수 교육용 영화는 제외”한다. 1947년의 다


큐멘터리 세계연맹선언에서는 “실제 촬영이나 합당한 재 현에 의해 해석되는 현실의 한 측면…”으로 다큐멘터리를 정의한다. 위의 다큐멘터리 정의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요소 들은 1933년에 간행된 학술지(󰡔󰡔시네마 쿼터리(Cinema Quarterly)󰡕󰡕)에서 최초로 등장(Ward, 2005/2011, 19)해 유명해진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의 다큐멘터리에 대 한 간결하고 함축적인 정의로 요약될 수 있다.

“실제의 창의적 재현(creative treatment of actuality)”

그리어슨의 간결한 정의가 함의하는 바는 ‘사실(fact)’ 이나 ‘진실(truth)’이 아닌 ‘실제(actuality)’라는 것을 다큐 멘터리의 재료로 활용하되, 그것을 선택하고 구성하는 방 식은 창의적으로 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창의적 재현은 극적 요소와 극적 구성을 포함한다. 에이트킨(Aitken, 1989, 253)은 흔히 그리어슨이 다큐 멘터리의 ‘실제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알려져 있지 만 오히려 ‘창의적 재현’, 즉 극적 구성에 좀 더 무게를 두 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에이젠슈테인(Eisenstein)의 <전함 포템킨(Battleship Potemkin)>(1925)을 통해 몽타


주와 미장센의 정교함에 그리어슨이 깊은 감흥을 받았고, <전함 포템킨>이 다큐멘터리로서 적절한 전형을 제시하 지는 않지만 효과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실천에 매우 중요 한 극적 편집의 예를 보여 준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아울 러 그리어슨은 다큐멘터리의 극적 요소와 극적 구성 때문 에 그것이 뉴스릴(newsreel)이나 강의 영화와 같은 논픽 션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Ward, 2005/2011, 18).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다큐멘터리 정의를 물어보면, 대 개 ‘실제’라고 하는 영상 재료를 ‘진실’ 혹은 ‘사실’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 󰡔󰡔옥스퍼드사전(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에 따르면, ‘실제’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나 그것의 상태’를 의미한다. 반면에 ‘진실’은 ‘사람들이 진실 이라고 믿는 사실’ 혹은 ‘사실에 근거한 상태나 수준’을 의 미한다. 이때 ‘사실’은 ‘실제’와 ‘진실’ 사이에 놓여 있다. 왜 냐하면 ‘사실’은 ‘존재하는 특정 상황’을 언급하기도 하지 만, ‘증명될 수 있을 때, 진실이라고 알려진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을 생각 해 보자. A가 다른 사람보다 B에게 떡 하나를 더 주는 상황 이 발생할 때, 세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A가 B를 더 좋아 하거나 속담처럼 더 미워하거나 혹은 별 생각 없이 줄 수 있다. 이때 A가 B에게 떡 하나를 더 준 것이 ‘사실’이라면


‘진실’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연결된 다. ‘하나를 더 준 것’이 ‘좋아서일까 미워서일까 아니면 아 무런 생각이 없어서일까?’ ‘진실’은 종종 해석의 문제와 연 결된다. 그리고 ‘사실’ 역시도 ‘진실’에 어느 정도 발을 걸치 고 있다. 존 그리어슨에게 촬영된 영상이 창의적 재현을 위한 재료라고 할 때 ‘실제’라는 표현은 ‘사실’이나 ‘진실’보 다 더 타당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영상 재료를 재현하는 방식을 ‘극적 요소와 극적 구성’으로 설명하면 학생들은 더 낯설어 한다. 물론 극영 화적 기법의 활용에 대해서는 다큐멘터리 전문가 집단에 서조차도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예컨대 ‘실제’라는 영상 재료를 촬영할 때나 편집할 때 ‘극적 요소나 극적 구성’과 같은 극영화적 미학 요소들이 개입할 경우, 그것은 종종 현실을 왜곡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Ward, 2005). 대 표적으로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2008)는 화면 구성 이나 사운드의 활용에서 미학적 요소의 개입이 극영화적 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 나 마이클 레노프(Michael Renov, 1993, 13)가 지적하듯 이 “영화적 예술로서 창의성, 서사적 전개 혹은 상상력”에 대한 거부감이 논픽션이라는 막연한 제약 속에 다큐멘터 리를 구속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다큐멘


터리의 미학적 선택이나 형식적 논리로 다큐멘터리의 정 체성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다양한 기법들에서 서로 영향 을 주면서 발전해 왔고, 다큐멘터리 영역이 지속적으로 확 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형식에 근거해서 다큐멘터리 의 정체성을 한계지우는 것은 편협한 접근일 수 있다. 오 히려 텍스트의 형식이 아니라 텍스트가 무엇에 헌신하는 가에 따라 허구와 비허구를 구분해야 한다(Noel Carroll, 1996). 그렇지 않다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마이클 무어 의 <로저와 나(Roger & Me)>(1986), 에롤 모리스의 <가 늘고 푸른 선(The thin blue line)>(1986), 말론 릭스의 <풀어헤쳐진 말들(Tongues untied)>(1996)과 같은 새로 운 시도들은 지금과 같은 다큐멘터리의 영화사적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다큐멘터리 정의에 관한 논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다큐멘터리의 가치나 그것이 수행하는 기능적 측면에 관한 논쟁이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가치와 기능에 관한 논쟁은 다큐멘터리 역사의 출발점 부근에서 시작했다. 다큐멘터리의 아버지 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선각자인 미국의 로버트 플래허티 (Robert Flaherty)와 영국의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 은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정체성에 대해서 서로 다른 생각


을 했다. 본격적인 다큐멘터리의 효시로 평가받는 <북극 의 나눅(Nanook of the North)>(1922)을 제작한 플래허 티는 다큐멘터리를 스토리텔링의 ‘예술’로 간주했다면, 다 큐멘터리 장르를 이론적으로 구축하고 후학 양성에 힘쓴 그리어슨은 ‘프로파간다’로서 도구적 측면을 강조했다. 플래허티는 자신이 경험한 세상을 영상으로 이야기하 려 했고, 그것을 예술가의 작업으로 이해했다. 그렇게 만 들어진 예술 작품에 의해 사회 변화가 촉발될 수도 있겠지 만, 사회 변화를 목적으로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것은 잘 못된 생각이라고 봤다. 반면에 다큐멘터리에 관한 아이디 어를 사회과학에서 얻었던 그리어슨은 국가 정책에 대한 이해 증진과 민주적 의사결정에서 시민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즉 다큐멘터리를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사회적 도구 로 간주했다(Ellis & McLane, 2005). 이와 같은 논란 속에 서 다큐멘터리의 역사는 ‘예술과 프로파간다’라는 두 개 중심축을 놓고 발전해 왔다. 어떤 다큐멘터리든 예술과 프로파간다라는 X, Y축이 만들어 내는 공간 속 어느 지점에서 그것의 가치와 기능을 평가받을 수 있다. 물론 다큐멘터리의 가치나 기능을 예 술과 프로파간다로 단순하게 양분하는 것은 무모할 수도 있다. 예컨대 ‘오락성과 상품성’은 오늘날의 시장중심적


매체 환경에서 다큐멘터리의 가치나 기능을 평가하는 현 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잣대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다큐멘터리가 극영화나 TV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 등과 차별적으로 인식되는 다큐멘터리의 진지함이나 건전함과 같은 장르적 차원의 보편적 맥락에 서 다큐멘터리의 가치와 기능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먼저 예술적 가치에서는 미학적 선택이 중요하다면 프 로파간다에서는 정치적 선택이 중요하다. 다큐멘터리에서 는 적어도 이 두 가지 선택들이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만 들어 가는 과정에서 다양하게 조합된다. 어느 하나가 지배 적일 수도 있고, 혹은 상호작용하면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훌륭하게 결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술과 프로파간다는 대척점에 위치하는 동일 차원의 상대적 개념이라고 볼 수 없다. 예컨대 사회주의에서의 예술은 다분히 프로파간다 적이라고 할 때 두 개념은 상호 보완적이고, 프로파간다 역 시 예술적 창의성을 요한다는 점에서도 상호 보완적이다. 대표적으로 독일 나치 전당대회를 소재로 만든 레니 리펜 슈탈(Leni Riefenstahl)의 <의지의 승리(Triumph of the Will)>(1935)는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프로 파간다로 간주되는 동시에 매우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으 로 평가받는다.


한편 다큐멘터리의 가치와 기능을 예술과 프로파간다 중 어디에 방점을 둘 것인지 혹은 어떻게 조합해 갈 것인 지는 다큐멘터리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보여 줄 것 인가에 관한 스타일의 문제 혹은 재현 양식의 문제와 직결 된다.

다큐멘터리 재현 양식 다큐멘터리를 정의하는 핵심 요소로서 ‘실제’를 기록하고 그것을 ‘창의적으로 재현’하되, 다큐멘터리의 가치나 기능 으로서 ‘예술’과 ‘프로파간다’를 고려한 재현 양식들은 빌 니 컬스(Bill Nichols, 2001)의 구분에 따르면, ‘시적(poetic)’, ‘설명적(expository)’, ‘관찰적(observational)’, ‘참여적 (participatory)’, ‘성찰적(reflective)’, ‘수행적(performative)’ 양식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오락적 가치를 중심에 둔 ‘리얼리티 TV’처럼 허구와 비허구 사이의 경계에 놓인 또 다른 재현 양식들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 미 많은 논의가 진전된 니컬스의 범주를 활용해 스타일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빌 니컬스(Bill Nichols, 2001)는 기존의 다큐멘터리 영 화들에서 발견되는 재현 관습, 혹은 스타일을 여섯 가지 재현 양식(modes of representation)으로 범주화했다. 이


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장르적 이해, 다큐멘터리의 기능과 가치에 대한 이해, 다큐멘터리의 대상을 대하는 감독의 태 도나 주제 의식의 문제, 그리고 그것들이 표현되는 방식에 서 반복적인 미학적, 수사적 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빌 니 컬스는 여섯 가지 재현 양식을 통해 역사적, 사회적 맥락 과 더불어서 하나의 스타일로서 차별되는 특징들을 제시 하고 있다. 이는 적어도 레노프(Renov, 1993)가 제시한 다큐멘터리의 네 가지 기본적인 경향성 혹은 수사적이거 나 미학적 기능들인 ‘기록·폭로·보존’, ‘설득·촉진’, ‘분 석·해석’, ‘표현’의 네 가지 유형보다는 구체적 재현 관습 으로 범주화된 스타일의 특징이 강하다. 여섯 가지 재현 양식에 대한 이해는 앞서 언급한 다큐 멘터리의 장르적 정체성과 그 가치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이 책에서 다루는 10개의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다큐멘터리는 현실과 맺고 있 는 관계의 힘과 더불어 형식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에 다가서는 방법으로서, 그리고 그것을 담아 내는 형식으로서 재현 양식에 대해 먼저 간략하게 설명하 고자 한다. 시적(poetic) 양식은 초기 극영화의 내용과 영상 문법 의 정형화에 반발해 언어적 수사 없이 영상 이미지의 회화


적이며 시적인 정서를 시각적 리듬과 함께 제시하면서 내 러티브나 시공간의 연속성보다는 파편화한 세상을 미학적 으로 재구축하는 예술적 표현 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 적으로 소련의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나 독일의 발 터 루트만(Walther Ruttman), 네덜란드의 요리스 이벤스 (Joris Ivens) 등이 1920년대에 수행한 작품들 속에서 재현 되고 있다. 이 시기의 시적 다큐멘터리는 아방가르드 운동 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시적 양식은 실제 그 자체보다는 그 것의 미학적 표현에 중심을 두었다(Ward, 2005/2011, 28). 설명적(expository) 재현 양식은 이른바 ‘신의 목소리 (Voice-of-God)’ 전통으로 불린다. 권위적인 해설로 특정 메시지를 관객에게 직접 호소하거나 설득하려고 하며, 해 설의 내용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영상은 해설을 보완하는 증거적 기능에 머문다. 이때 해설의 내용이 특정 시선의 이데올로기를 내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종종 윤리적, 정치 적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구성 측면에서 보면 시공 간의 연속성보다도 해설 내용의 논리적 연속성이 더 중요 하다. 그리어슨이 영국 다큐멘터리 운동에서 만든 작품들 이나 에드워드 머로(Edward Murrow)와 프레드 프렌들리 (Fred Friendly)의 PD저널리즘 전통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TV 다큐멘터리의 전형적인 양식으


로 이어졌다. 관찰적(observational) 양식과 참여적(participatory) 양식은 기술의 발달로 카메라가 가벼워지고 동시녹음이 가능해지면서 촉발됐다. 미국의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로 대표되는 관찰적 양식은 ‘신의 목소리’ 전통에 반발하여, 촬영 대상에 대한 그리고 촬영 현장에서의 감독 이나 카메라의 개입을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이른바 ‘벽에 붙은 파리(fly-on-the wall)’와 같은 제작자의 존재감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고자 했다. 제작 과정에서 기획을 충실히 하기보다는 큰 그림 속에서 많은 분량의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 과정에서 이야기를 구성했 다. 이때 해설뿐만 아니라 배경음악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음악조차도 관객의 정서를 왜곡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로버트 드류(Robert Drew)와 그의 제작단체, 프레데릭 와이즈만(Fredeic Wiseman)이나 메이슬리스 형제(Maysles) 등이 관찰적 재현 양식을 수행한 대표 감독 들이다. 한편 시네마 베리테(Cinema Vérité)로 대표되는 참여적 양식에서는 기술 발달에 힘입어 제작자의 이동성(mobility) 이 증대하자 촬영 대상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려는 친근성 (intimacy)의 시도들이 나타났다.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을


개척한 장 루슈(Jean Rouch)는 카메라의 존재가 오히려 등 장인물의 입을 열게 하고, 즉흥적이고 자발적인 말을 하도 록 유도한다고 믿었고, 그것이 ‘카메라의 개입으로 촉발된 영화 속 진실’이라고 주장했다(조관현, 2002). 관객 역시 카 메라 앞에 있는 등장인물의 자기 연출과 호의는 그 사람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이해한다(Gauthier, 2005/2006, 216). 또 감독은 촬영 현장에 개입하여 화면 내에 자신을 등장시 켰고, 자기 의견을 전달하면서 이야기를 촉발하는 자극제 의 역할도 수행했다. 인터뷰 방식은 감독과 등장인물 간 가 장 일반적인 상호작용의 수단으로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 낌을 끌어내는 방법이었다. 최근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러한 참여적 양식이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성찰적(reflective) 양식은 촬영, 편집, 상영 등 다큐멘 터리가 제작되고 재현되는 관습을 관객에게 노출시켜 다 큐멘터리의 객관성이라는 신화에 도전한다. 아울러 성찰 적 양식은 제작 과정의 노출을 통해 다큐멘터리가 현실 세 계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대표적인 작품 인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The man with a movie camera)>(1929)에서는 주요 스태프와 촬영, 편집, 상영의 전 과정을 노출시킨다. 이에 대해서 워드(Ward,


2005/2011)는 성찰성이 객관성을 의문시하고, 또 성찰성 이 더 깊은 진실성을 보증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단순한 것이며, 이것도 재현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수행적(performative) 양식은 제작자의 주 관적 경험과 정서를 종종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과 연결해 개인적인 주장을 담는다. 참여적 양식이 다수에게도 분명 한 진실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수행적 양식은 감독의 주관 적인 진실을 추구한다. 예컨대 젠더, 소수 인종, 성적 소수 자, 계급 등의 이슈와 연결해 자신의 처지를 밝히고, 자신 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진실을 주장한다. 재현의 방식도 개인적이고 비관습적이며 실험적이다. 대표적으로 말런 릭스(Marlon Riggs) 감독이 있으며, 최근 독립 다큐멘터 리 영화제를 중심으로 지배적인 스타일로 부상하고 있다. 위의 여섯 가지 재현 양식은 개별적으로 하나씩만 사용 되는 것이 아니라 대개 혼용된다. 그러나 지배적으로 드 러나는 재현 양식이 있으며, 이러한 재현 양식이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다큐멘터리는 몇 가지 기준에 따 라 배제했다. 무엇보다 선정 방식에서 매우 중요한 기준은 학생들이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참고할 수 있고, 학생들이 만들 수 있는 다큐멘터리 스타일인가를 고려했다. 아울러


감독의 위치나 태도, 그리고 영상의 활용 가치와 목적을 염 두에 두었다. 예컨대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의 <의지의 승리 (Triumph of the Will)>와 같은 예술적 완성 도가 높은 프로파간다 영화, 프랭크 카프라(Frank Kapra) 의 <왜 싸워야 하는가?(Why We Fight?)>와 같은 선전 영 화들을 제외했다. 그리고 요리스 이벤스(Joris Ivens)의 시적 양식의 작품이나 대의명분을 실천한 투사로서 그의 전쟁 다큐멘터리 등도 제외했다. 한편 이 책에서 다루어 도 좋을 작품들 중에서 배제된 작품으로는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갈등 구조를 통해 노동문제의 사회정치적 측면을 고찰한 바버라 코플(Barbara Kopple)의 <아메리칸 드림 (American Dream)>, 한국 독립영화사에서 투사로서 감독 의 위치를 설정하고 액티비즘적 전통을 구축한 김동원 감 독의 <상계동 올림픽> 등이 있다. 한편, 이 책은 10개의 작품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스타일 을 다루면서 각각의 챕터 말미에 참고할 점을 두었다. 이는 해당 스타일을 활용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하는 학 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참고문헌 조관현(2002). 장 루슈의 민족지 영화 제작 방법론. 󰡔󰡔한국아프리카학회지󰡕󰡕, 16권 159∼176.

Aitken, I.(1989). John Grierson, Idealism and the Inter-war Period. Historical Journal of Film, Radio and Television, 9(3), 247∼258. Bruzzi, S.(2000). New Documentary: a Critical Introduction. London: Routledge. Carroll, N.(1996). Nonfiction Film and Postmodernist Skepticism. In D. Bordwell & N. Carroll(Eds.), Post-theory:

Reconstructing fFlm Studies. Madison: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283∼306. Ellis, J. C.(1989). The Documentary Idea: a Critical History of

English-language Documentary Film and Video. Englewood Cliffs: Prentice Hall. Nichols, B.(1991). Representing Reality.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Nichols, B.(2001). Introduction to Documentary.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이선화 옮김(2005). 󰡔󰡔다큐멘터리입문󰡕󰡕.

서울: 한울아카데미. Renov, M.(1993). Toward a Poetics of Documentary. In M. Renov(Ed.), Theorizing Documentary(pp.12∼36). New York: Routledge. Ward, P.(2005). Documentary: the Margins of Realit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조해영 옮김(2011).

󰡔󰡔다큐멘터리: 리얼리티의 가장자리󰡕󰡕.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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