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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인간 이해 아무리 빠르고 아무리 정확해도 쓰지 않으면 허사다. 인간이 컴퓨터를 배우는 시대는 가고 컴퓨터가 인간을 배우기 시작했다. 인간과 기계가 서로를 돕는 시대, 휴먼 컴퓨테이션이다.

<인간과 기계 XV>, 데이비드 칼, 1955


인텔리겐치아 2343호, 2014년 12월 5일 발행

신동희가 쓴 ≪인간과 컴퓨터의 어울림≫

성공한 사용자 중심 기업은 뭔가를 최초로 시 도한 것도 아니었고, 엄청나게 많은 돈을 한 꺼번에 투자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확고 한 리더가 없는 적당한 경쟁이 존재하는 시장 을 공략했고, 차별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 로 한층 업그레이드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했 다. 이제는 사용자 중심의 HCI에서 사용자


경험이 더욱더 강조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 요하다. - ‘휴먼 컴퓨테이션’, ≪인간과 컴퓨터의 어울림≫, xviii쪽.

HCI(Human-Computer Interaction)가 무엇인가?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을 말한다. 과학과 인 문학 사이의 인터페이스다. HCI는 무엇을 하는가? 시스템의 기능성, 사용 편의성과 안전성, 효 율, 효과성이 고려된 컴퓨팅 시스템을 만들 거나 개선한다. 즉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


용을 더욱 인간 중심적으로, 자연스럽게, 풍 부하게 발전시킨다. 연구 분야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사용자, 컴퓨터, 상호작용의 세 가지 분야 를 연구한다. 최근에는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사용자 가치(user value), 사회적 경험(social experience) 등의 새로운 개념이 나오고 있다. 사용자 분야와 인터랙션 분야 를 같이 연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용자 경험이란? 사용자가 어떤 시스템, 제품, 서비스를 직· 간접적으로 이용하면서 느끼고 생각하게 되 는 지각과 반응, 행동을 말한다.


사용자 경험을 왜 연구하나? 개인 또는 집단이 최적의 사용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과 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 문이다.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 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어도 시장에서 외면된 다. 대부분 실패한 IT 제품의 공통점은 사용 자와 개발자가 지닌 인식의 괴리를 간과했다 는 것이다. 사용자 경험의 실패 사례는? 노키아의 스마트폰이다. 노키아는 애플보다 스마트폰을 더 일찍 개발했지만 실패했다. 1990년대 노키아는 세상이 받아들일 수 있 는 것보다 20년 이상 빠른 것을 개발했다. 기 술적으로 가능했지만 대중이 따라가지 못하


거나 시장이 수용할 수 없는 스마트폰을 만든 것이다. 20년이나 빨랐다는 노키아의 기술은 어떤 것 이었나? 1996년 출시한 노키아 9000이라는 제품은 당시에 이메일과 팩스 그리고 웹서핑까지 가 능했다. 혁신 제품이었지만 소비자는 스마 트폰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시장도 이 혁신적인 스마트폰을 받아들일 만한 서비 스가 없었다. 사용자 경험의 한계는 무엇인가? 사용자가 개인이라는 점이다. 있는 것을 사 용하는 피동적 입장이다.


한계의 극복 방향은 있는가? 소셜 미디어처럼 사용자 경험은 개인에서 확 산되어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개념으로 진화할 것이다. 거기서 발생하는 가치가 개 인 사용자의 혜택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사 회적으로 의미 있는 가치로 환원되는 것이 필 요하다. 인간과 컴퓨터가 함께하는 미래는 무엇인가? 인간과 컴퓨터가 협력하는 휴먼 컴퓨테이션 의 모습이다. 휴먼 컴퓨테이션은 크라우드 소싱의 시초다. 인간의 지능과 컴퓨터의 기 능을 활용하는 것이다.


크라우드소싱이 무엇인가? 제품 혹은 서비스의 개발 과정에 비전문가나 외부 전문가의 참여를 개방하고 유도해 혁신 을 이루고자 하는 방법이다. 한정적인 내부 인적자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부 인적자원 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다. 외부인은 이러 한 참여를 통해 더 나은 제품, 서비스를 이용 하거나 이익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책, ≪인간과 컴퓨터의 어울림≫은 무엇을 말하나? HCI와 학제 간 경계를 없애는 핵심 융합 학 문인 인터랙션을 소개한다. 사용자 경험을 새로운 측면에서 정의하고 융합의 허브로서 차세대 융합 학문의 방향을 제시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신동희다. 성균관대학교 인터랙션사이언스 학과 교수다.


컴퓨터의 인간 이해 아무리 빠르고 아무리 정확해도 쓰지 않으면 허사다. 인간이 컴퓨터를 배우는 시대는 가고 컴퓨터가 인간을 배우기 시작했다. 인간과 기계가 서로를 돕는 시대, 휴먼 컴퓨테이션이다.

<인간과 기계 XV>, 데이비드 칼, 1955


인간과 컴퓨터의 어울림 신동희 지음 학문일반 / 컴퓨터 2014년 4월 15일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180쪽 9,800원


작품 속으로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인간과 컴퓨터의 어울림 신동희


휴먼 컴퓨테이션

기술의 융합적 접근 HCI(Human-Computer Interaction)는 본질적으로 융합 과 통섭에 기반을 둔 담론이고 조화의 학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HCI는 분열과 갈등의 학문이 될 수도 있

다. 통섭학자인 찰스 스노(Charles Snow)는 󰡔󰡔두 문화(The Two Cultures)󰡕󰡕라는 저서에서 과학과 인문학, 과학자와 인문학자들이 서로 극단으로 갈라서는 데에 현대 지식인 들의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지칭하는 두 문화는 시 스템 개발과 인간 이해, 주관성과 객관성, 예술성과 실용 성으로 바로 HCI 분야의 핵심 주제들이다. 시스템 개발 중심과 인간 이해 중심의 생각은 서로 상극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개발과 인간 이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연구 목적 은 공학과 인문학 사이의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공학자 들은 대개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개발하고 싶어 하는 반면 인문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정신과 행동을 이해하 려고 한다. HCI의 과제는 이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 에 있다.


또한 객관성 중심과 주관성 중심의 생각도 대척점에 있 다. 과학은 객관적이어야 하는 것이 당위지만 객관화할 수 없는 현상도 많다. 시스템의 인터페이스를 설계할 때 객관적 자료에 의해 설계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통찰이 나 직관으로 되는 부분도 많다. 객관을 위해 노력해야 하 지만 복잡한 현실 속에서 주관을 인정할 수도 있을 때 HCI 는 가능하다. 실용성 중심과 예술성 중심의 생각도 어울리지 않는 조 합이다. 효율성만 생각하는 것은 실용성 중심의 사고이고 미적인 것만 생각하는 것은 예술성 중심의 사고다. 이 두 사고는 이성과 감성, 혹은 인지와 감성 중심의 차이를 나 타낸다. 이성과 감성은 어느 한쪽만이 항상 우세하다고 말할 수 없다. 시대에 따라 어느 한쪽을 강조하거나 덜 강 조할 뿐이다. HCI는 서로 다른 학문인 인문, 과학, 예술이 유기적으 로 융합한 학문이다. 서로 다른 관점과 서로 다른 생각들 이 HCI라는 플랫폼 위에 같이 서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 은 관점은 상이하지만, 서로의 궁극적 수렴점은 같다는 사 실이다. 통섭학문으로서 HCI의 궁극적 목적은 IT 기술을 다양한 학문 분야와 융합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산 업을 고도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근본에 대한


학문, 그리고 그 근본 안에서 일궈낸 과학이라는 기술, 그 리고 이 둘이 결합한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생 활에서 더 나은 편리함을 추구하려 할 때 인간은 그 편리 함을 현실화하기 위해 발명을 한다. 발명을 함으로써 새 로운 기술이 생겨나고, 그 기술은 보편화하며 하나의 트렌 드가 된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최근의 스마트 혁명도 계 속 진화하는 트렌드의 한 과정이고, 현재의 스마트 기술과 개념이 융합되어 또 다른 새로운 기술이 탄생할 것이다. 이러한 스마트 기술들이 함의하고 있는 문화적 의미는 바 로 개방, 협업, 통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래의 기술 발 전도 이런 가치들이 중심축을 이루며 나아갈 것이다.

‘사용자 중심’ 원리를 놓친 IT 실패 사례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은 노키아가 점령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키아 는 새로운 스마트폰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2009년부터 추락하고 만다. 일반적으로 노키아가 스마트폰 개발에 늦 어서 몰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노키아가 스마 트폰을 애플보다 더 일찍 개발했다. 1990년대 노키아는 세상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보다 20년 이상 빠른 것을 개 발했다. 기술적으로 가능했지만 사람들이 따라가지 못하


거나 시장이 수용할 수 없는 스마트폰을 만든 것이다. 노 키아는 휴대폰의 전화 수신만으로는 2000년 이후부터 최 대한의 이윤을 창출하지 못할 것이라 예측하고, 차세대 휴 대폰 개발을 위해 엄청난 자원을 투자했다. 그래서 1996 년 노키아 9000이라는 제품이 나왔고. 이 제품은 당시에 이메일과 팩스 그리고 웹서핑까지 가능했던 최초의 스마 트폰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제품이었다. 이렇게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했지만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인 지하지 못했고, 시장도 이 혁신적인 스마트폰을 받아들일 만한 제반 관련 서비스가 없었기 때문에 최초의 스마트폰 은 외면당하고 말았다. 노키아의 스마트폰 시장 적응 실패는 사용자 중심 혁신 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단순히 기술적인 가능성이 아닌, 혁신적인 제품이 나왔을 때 이것을 시장에 잘 적용시키느 냐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한 것이다. 노키아의 흥망성쇠와 같이 기술의 역사를 보면 사용자 중심 원리를 간과해 실패한 기술들이 많다. 마이크로소프 트(MS)의 PC 운영 체계 소프트웨어 ‘비스타’와 이제는 잊 혀진 위성전화 서비스 ‘이리듐’ 등이 그것이다. 출시 직전 까지 ‘비스타’는 이전 제품 ‘윈도 XP’보다 향상된 보안 기능 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모았으나 막상 출시하


자 ‘XP’와 두드러진 보안 성능 향상을 보이지 못한다는 평 가를 얻었고 오히려 상당수 PC에서 동작을 느리게 만든다 는 지적을 받았다. 모토로라가 주도한 ‘이리듐’은 지구 궤 도에 위성을 66대 배치해 위성전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 는 야심 찬 계획이었으나 위성 발사 같은 설비 투자에만 50억 달러라는 큰 재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곧 휴대전화 가 일반화하면서 ‘이리듐’은 파산했다. HCI 원리를 무시한 다른 실패 사례는 ‘HD DVD’와 위성 라디오 ‘시리우스(Sirius)’, 스마트폰의 원조격인 ‘팜’과 인 터넷전화의 원조격인 ‘보나지(Vonage)’, PC 제조업체 게 이트웨이 등이다. HD DVD는 초창기에 차세대 영상 저장 매체로 자리 잡는 듯하다가 경쟁 기술인 ‘블루레이’에 밀 려났고, 시리우스와 보나지, 게이트웨이는 어느 정도 시 간이 흐르거나 사용자군을 확보하면 큰 인기를 얻을 것으 로 여겨졌으나 결국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했다. 사용자 경험의 중요성을 인식했으나 사용자 니즈를 정 확히 이해하지 못해 실패한 서비스도 많다. 모든 사람이 페이스북을 이용하기에 페이스북 기반 화상 채팅 플랫폼 이 잘되라는 생각에서 나온 ‘에어타임(Airtime)’은 초기에 는 주목받았지만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약 400억 원을 투자한 에어타임은 사용자가 겨우 1만 명


으로 끝을 내었다. 또한 2012년 혜성같이 등장한 소셜 커 머스는 파격적인 가격 할인과 사용자의 구매 경험 공유라 는 획기적 아이디어로 초기에는 큰 성장을 했지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소셜 커머스의 딜(거래) 메일에 피로감을 느낀 사용자들은 이제 이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다. 기 술보다 더 빠르게 급변하는 사용자 니즈를 그때 그때 반영 하지 못한 소셜 커머스는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스 마트폰의 보급화와 함께 반짝 인기를 얻었던 QR 코드와 영화 아바타의 성공으로 주목받은 3DTV 등도 실패한 기 술로 점차 사용자의 관심 밖으로 잊혀지고 있다. 이 밖에도 게임기와 휴대폰의 결합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노키아의 ‘엔게이지(N-Gage)’, 세가의 가정용 게 임기 ‘드림캐스트(Dreamcast)’, 캐논과 도시바가 야심차 게 내놓은 ‘SED TV’, 소니의 지능형 로봇 강아지 ‘아이보 (AIBO)’, 구글의 SNS 서비스 ‘구글 버즈’와 ‘웨이브(Wave)’ 등이 혁신적 기술력에도 사용자들로부터 외면받은 사례 들이다. 실패한 제품의 공통점은 사용자의 니즈와 욕구를 정확히 분석해 내지 못하고 변화하는 시장과 사회에 적극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설계자가 없는 설계 실패한 IT 제품의 공통점은 사용자와 개발자가 지닌 인식 의 괴리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개발자나 디자이너들이 사 용자의 심리나 행태가 어떠하리라고 예측할 수 있다고 하 는 특권 의식이 문제의 발단이고, 또한 그런 개발이나 디자 인은 특정 계층의 일이란 생각이 문제를 심화시킨 것이다. 국내의 HCI나 UX 관련 기업의 부서는 대부분 특정 전 공이나 특정 배경 경력자들로만 구성이 되어 있는 것이 현 실이다. 국내에서는 UX 분야의 역사가 비교적 짧기 때문 에 실무 경력보다는 연차가 높은 관리자 비중이 높았다. HCI나 UX 자체가 경시되던 시기에는 다른 분야 관리자가 UX 분야의 관리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젠 국내에 서도 UX 분야가 활성화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UX 관 련 부서는 대부분 그래픽 디자인이나 웹디자인 그리고 소 프트웨어 관련 공학 중심의 인력으로만 채우고 있다. 또 한 국내 학계에서도 HCI가 특정 전공(공학, 디자인 등)의 전유물로 간주되는 배타적 경향이 없지 않다. 국내에서 올바른 HCI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고, 편 향적으로 인식해 온 증거라 할 수 있다. HCI의 역사가 오래되고 UX 분야가 조금 먼저 보편화했 던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들은 사회학과 심리학, 철학 등


인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전공자들이 HCI나 UX 관련 부서 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텔은 컴퓨터와 인간의 경험 방식을 재창조하기 위해 SW·HW 엔지니어와 디자 이너, 심리학자, 인류학자가 가세한 다양한 관점과 지식 융합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구글의 데이먼 호로비츠 (Damon Horowitz) 부사장은 제품 개발과 디자인 설계에 서 유저 인터페이스 개발에는 기술 못지않게 사람을 관찰, 이해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언급하면서 인간의 본질 적인 패턴과 직관을 제품 개발에 반영했다. 그는 “구글의 지도 검색 서비스인 ‘스트리트 뷰(Street view)’ 같은 것을 개발할 때도 ‘칸트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를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저커버 그(Mark Zuckerberg)는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사 업적 안목’을 지닌 프로그래머였다. 인터랙션 디자인의 대 가인 빌 모그리지(Bill Moggridge)도 디자인 전문 교육을 받은 디자인 전문가들의 집단이 아닌 다양한 전공과 배경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팀으로 모였을 때, 디자인 프로세스 에 의해 학문 간 지식 교류가 이루어지고 이상적 디자인 혁신이 구현된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UX나 UI를 기술 개 발의 핵심 업무가 아닌 부수적 일로 치부하는 경향과 UX 나 UI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다양성이 실종되는 결과를 낳은 것 같다. 사용자 경험의 대가인 도널드 노먼(Donald Norman) 은 “디자이너 없는 디자인(Design without designers)”이 란 개념을 피력하며, 진정한 휴먼 디자인은 특정 집단에 의해 그들의 전문적 지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상식적 수준의 보편적 인간이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그의 말은 디자인이 눈에 보이 는 스타일이나 외관에 관한 것 이상으로 새로운 사용자 경 험을 창출하고 사람들이 제품과 인터랙션하는 방식, 경제 적/환경적 지속가능성, 효용성과 즐거움 제공 등을 위한 콘텍스트에 관한 작업이다.

인간 가치 중심의 새로운 틀 우리가 쓰고 있는 컴퓨터의 자판은 1868년 크리스토퍼 숄 스(Christopher Sholes)가 창안한 쿼티(QWERTY) 배열에 따른 것이다. 이는 컴퓨터 자판기 왼쪽 상단에 배열되어 있 는 영문자 QWERTY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이 쿼티 배열은 얄궂게도 사용자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이 다. 최초 발명된 타자기는 자판에 연결된 막대(typebar)를 움직여 글자를 찍었고, 따라서 자주 쓰는 글자를 찍는 막대 가 서로 맞물리지 않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많은 실


험을 통해 이런 ‘맞물림’을 최소화한 자판이 QWERTY 자 판이다. 이후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키보드 사용이 급격히 늘었 고 이런 맞물림의 문제점은 사라졌다. 하지만 자판 배열 은 여전히 QWERTY 순으로 불편하게 돼 있다. 여러 번에 걸쳐 훨씬 편리하고 사용자 중심의 자판 배열을 가진 드 보락(Dvorak) 키보드가 나왔지만 모두들 현재의 자판 배 열에 익숙해져 새로운 키보드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 쿼티 자판은 사용자의 편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사람들 의 행동이 과거 습관에 따라 형성된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의 결과다. 이 쿼티 배열은 기술이 사용자 편의에 관계없이 나오고 그 기술에 사용자가 맞추어 적응해 가던 모델의 예를 보여 준다. 이전에는 기술 제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드웨 어였다. 하드웨어의 경쟁력이 제품 판매의 결정적 요인으 로 간주되던 시대에는 내구성과 기능성이 가장 중요한 요 소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하드웨어 기술의 빠른 진보로 더 이상 차별화가 어려울 정도로 기술 장벽이 낮아졌다. 하드웨어의 차별화가 어려울 정도로 평준화·범용화되면 서 경쟁적으로 제품에 더욱 많은 차별화 기능과 복잡한 구 조들을 추가하고 있고, 이로 인해 사용성은 매우 어려워졌


다. 결과적으로 제품 사용에 필요한 고도의 기술을 사용 자들에게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즉, 이제는 네트워크나 하드웨어 기반의 경쟁이 아닌 사용자 차원에서 경쟁 구도 가 형성된 것이다. 구글은 소비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판다는 말 이 있다. 애플은 스마트 기반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성공한 비결이 광범위한 사용자 기반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한

다. 사용자 연구의 전문가이자 󰡔󰡔유저(Users, not customers: who really determines the success of your business)󰡕󰡕의 저자 애런 샤피로(Aaron Shapiro)는 ≪포천(Fortune)≫ 선정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디지털 리더십 세트’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해 현재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기업들 이 ‘사용자’ 경험에 집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구글, 페 이스북, 아마존, 앵그리 버드(Angry Bird)는 경쟁사보다 도 편리한 온라인 인터페이스를 구축하고 사용자의 니즈 에 발 빠르게 반응하며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이 기업 들은 타사와 차별되는 ‘강력한 사용자 경험’을 창조하고 그를 통해 전략을 이끌어 나간다. 마이스페이스는 2005년까지 페이스북과 비교가 안되 는 단연 세계 1위의 소셜네트워크사이트였다. 현재는 그 1위 자리를 페이스북에게 내주고 사용자 수도 페이스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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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의 1도 안되게 줄었다. 마이스페이스는 선발주자로 서 최고의 위치를 구가했지만 후발주자인 페이스북에게 뒤지고 만 것이다. 많은 학자와 경영 컨설턴트들은 사용 자 전략의 실패를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마이스페 이스는 개인 페이지를 꾸미는 기교 디자인에 집중하다가 사용자 편의성 개념을 놓쳐 버렸다. 반면 페이스북은 사 용자가 친구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표준화 인터페이스 를 구축하고 사용자에게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철저히 배 제함으로써 순식간에 강력한 지지를 끌어냈다. 한마디로 마이스페이스는 폐쇄적인 개인 홈페이지 구축이었고 페 이스북은 개방형 플랫폼 전략이었다. 세계적으로 약 700만 개의 애플리케이션이 팔렸고 현 재도 각국의 앱스토어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앵그리 버드의 성공 비결도 사용자 중심 전략이다. 앵그리 버드 는 사실 굉장히 단순한 게임으로 배고픈 돼지들이 알을 훔 쳐가고 분노한 새들이 이를 되찾아 온다는 간단한 게임이 다. 이 간단하고 사용하기 쉬운 사용자 중심 전략이 주효 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으 나, 앵그리 버드의 콘셉트는 명확했다. 앵그리 버드를 처 음 실행한 사람이 화면을 봤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


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단순하고 명확하게 드러난다. 캐 릭터의 디자인 역시 단순해서 폭탄새는 폭탄처럼, 노란새 는 총알처럼 생겨 처음 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바일 게임의 경우 디테일이 세밀하고 깊을수록 오히려 이해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어 단순하고 쉽다는 것은 굉 장히 큰 장점이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애니팡 게임도 단순하고 사용하기 쉽다는 장점 덕분에 폭발적 성공을 거 둔바 있다. 사우스웨스트항공, 홈디포, 스테이플스, 타깃, 제트블 루항공, 월마트, 페덱스, 웰스파고, 시어스홀딩스.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기업들은 ‘사용성(usability)’에 집중하고 사용자 경험을 경영 전략으로 구사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 기업들은 내부적으로 사용자 중심 경영 철학을 실천하 고, 집중적 조직을 통해 업무 프로세스를 디지털화하면서,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쉽게 처분할 수 있는 기 술을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외부 고객을 대할 때에는 보 다 고차원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한편,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애쓴다. 이런 전략을 성공적으로 실행 하고 있는 디지털 기업이 구글, 아마존 등이다. 구글은 시종일관 제품의 사용성에 주목했고,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랑할 만한 혁신 서비스를 계속 내놓았다. 아


마존의 사용자 중심 전략은 ‘지속적인 테스트와 이를 바탕 으로 한 개선 작업’에 초점을 맞춘다. 아마존은 정확한 발 송과 결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사용자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었고, 이를 토대로 서비스를 확장해 나갔다. ‘구매 목록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사용자의 사용성을 극대화한 시도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제 아마존은 광범위한 제품 을 모두 취급하는 종합 쇼핑몰로 거듭났고, 킨들을 통해 전 자책 시장의 리더로 앞장서는 등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성공한 사용자 중심 기업들은 뭔가를 최초로 시도한 것 도 아니었고, 엄청나게 많은 돈을 한꺼번에 투자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확고한 리더가 없는 적당한 경쟁이 존 재하는 시장을 공략했고, 차별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층 업그레이드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했다. 이제는 사용 자 중심의 HCI에서 사용자 경험이 더욱더 강조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토머스 쿤(Thomas Kuhn)이 절대 적 진리로서 과학이 아니라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의 관점에서 과학을 말하고 있듯이, 이제는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이 혁신과 창조적 마인드를 고취하고 창의적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참고문헌 신동희(2011). 󰡔󰡔스마트융합과 통섭 3.0󰡕󰡕.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신동희(2013). 󰡔󰡔휴머니타스 테크놀로지󰡕󰡕. 커뮤니케이션북스

에드워드 윌슨 저, 최재천·장대익 역(2005). 󰡔󰡔통섭󰡕󰡕. 사이언스북스 Snow, C. P.(2001). The Two Cultures.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Shapiro, A. 저, 박세연 역(2012). 󰡔󰡔유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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