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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끊어지고 이어지는 곳 인간이 생물에 불과하다면 죽음은 삶의 끝이다. 그러나 사유의 존재라면 그것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죽음과 진정으로 대면하는 인간은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훨씬 더 커지고 깊어질 뿐이다.

철학에게 죽음은 삶의 단절이 아니라 삶의 영속이다. ＜삶의 시작＞, 프란티세크 쿠프카, 1900

인텔리겐치아 2444호, 2015년 2월 11일 발행

한국철학상담치료학회가 엮고 김선희 · 김성진 · 박병준 · 이영의 · 정세근 · 홍은영이 쓴 ≪철학과 상담 2. 죽음 그리고 자살≫

철학은 죽음을 인간의 본래적 실존을 가능 케 하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인간화’ 를 촉구하는 삶의 본질적 요소이기 때문이 다. 실존의 본래성으로부터 바라보면 인간 은 죽음 앞에서 불안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 려 죽음 앞에서 자기를 이해하고 자기를 실 현하는 존재다. 죽음과 진정으로 대면하는

자는 죽음 앞에서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죽 음이야말로 자신을 성숙시키는 계기다. 죽 음은 삶의 단절이 아니라 삶의 영원한 영속 성이기 때문이다.

- ‘머리말’, «철학과 상담 2. 죽음 그리고 자살», vii쪽.

죽음과 자살에 대해 말하는 이유가 뭔가? 가장 오래된 철학적 물음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긴박한 현안이 아닌가? 죽음에 대해서는 생물학이 설명하지 않나? 죽음을 의식하는 인간은 더 이상 생물학적 존 재가 아니다. 자살 문제는 더더구나 생물학 과는 무관하다.

그다음은 종교의 영역이 아닌가? 죽음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은 된다. 그러나 인간의 실존적 삶을 해명하고 그것으 로부터 죽음을 이해하는 일은 철학의 작업이 다.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철학에게 죽음은 무엇인가? 죽음은 자신을 성숙시키는 계기다. 삶의 단 절이 아니라 삶의 영속이다. 자살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는 삶에 대한 태도와 연결된다. 그래서 자살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다. 철학은 죽음이 끝이 아닌 새로 운 시작 또는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긍정적 이해와 해석 앞에서 자살의 부정 적 태도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 철학에서 자살이란 어떤 것인가? 인간은 살려고 하고 행복하려 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죽는 것이 낫다거나 죽음 을 도구로 생각하는 태도는 모순 중의 모순이 고 부조리다. 그래서 자살의 이유 속에 철학 적 문제가 깊이 개입된다. 철학이 자살을 막을 수 있는가? 자살 충동에 빠진 사람에게 검증과 반성의 기 회를 제공할 수 있다. 철학상담이 이 역할을 수행한다.

검증과 반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예를 들면 플라톤이 대화편에서 묘사하는 소 크라테스식 “철학하기” 대화법을 사용할 수 있다. ‘자기문답’과 ‘자기검증’의 효과를 만들 어 내는 방법이다. 철학하기 대화법이 뭔가? 자신의 주장과 믿음과 선택에 대해 '왜'라고 묻는 것이다. 이 대화법은 인지치료사의 안 내를 받아 실행할 수 있다. 자살 환자나 또는 다른 신경증 환자들에게도 유용하다. 왜라고 물으면 답이 나오나?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처럼 대화를 통해 스스 로 삶을 성찰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상담자

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설명하게 하면 그 과정에서 변 화가 생긴다. 심리상담이나 정신의학과는 무엇이 다른가? 심리상담이나 정신의학은 문제를 겪는 인간 의 상황을 비정상으로 규정한다. 환자를 치 료의 대상으로 여긴다. 철학상담은 대화를 통해 ‘환자가 아닌’ 내담자가 스스로를 치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하면서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 게 되면 삶의 주인으로서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환자가 스스로를 치료한다는 말인가? 그래야 한다. 스스로 하지 않으면 문제는 해 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상황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는 바꿀 수 있다. ≪철학과 상담 2. 죽음 그리고 자살≫은 무엇 을 다루나? 자살 충동, 죽음에 대한 공포, 존재의 유한성 에 대한 인식 등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삶의 문제를 철학상담의 관점에서 다룬다. 철학상담은 언제부터 실행된 방법론인가? 한국에는 이제 막 도입되었다. 1981년 독일 아헨바흐가 ‘철학실천’을 새로운 방법론으로

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철학상담은 심리상 담, 정신의학에 비해 인간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철학 논의가 풍부하다. 이런 점에서 앞 으로 발전 가능성이 크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성진이다. 한림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다.

삶이 끊어지고 이어지는 곳 인간이 생물에 불과하다면 죽음은 삶의 끝이다. 그러나 사유의 존재라면 그것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죽음과 진정으로 대면하는 인간은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훨씬 더 커지고 깊어질 뿐이다.

철학에게 죽음은 삶의 단절이 아니라 삶의 영속이다. ＜삶의 시작＞, 프란티세크 쿠프카, 1900

철학과 상담2 죽음 그리고 자살 한국철학상담치료학회 엮음 김선희·김성진·박병준· 이영의·정세근·홍은영 지음 철학 / 철학상담 2015년 2월 13일 신국판(153*224) 무선 제본, 232쪽 17,000원

작품 속으로

철학과 상담 2

죽음 그리고 자살

철학과 상담 2

죽음 그리고 자살

1부 죽음에 대하여

01 우리 시대의 죽음 담론에 대한 시론: 푸코의 담론이론과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를 통하여 홍은영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사

들어가는 말 우리 시대에 통용되는 죽음에 관한 담론은 다양한 영역에서 각기 다른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등장한다. 의학에서는 장기이식이나 안락사 등과 관련하여 생물학적 죽음 정의와 고투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인 층에서뿐만 아니라 청년층에서도 급격히 증가하여 사회적으로 문제 되 고 있는 자살 현상을 인간 삶의 문제로 이해하기보다는 정신의학이 마 련해 준 의학적 기반에 의거해 질병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자살을 예 방한다는 보건복지부의 명분 아래 무수히 양산되고 있는 자살방지센터 나 협회 또한 죽음의 문제를 사회문제로 폭넓게 이해하기보다는 우울증 과 같은 질병 메커니즘에 묶어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제 우리 삶의 맥락에서 죽음은 멀리 치워진 지 오래다. 종교계에서도 교 리의 세속화 과정을 통해 윤회, 영생, 영혼의 문제 등을 매개로 인간의 죽음을 관장하거나 통찰하기보다는 현세를 통제하기에 바쁘다. 또한 점 점 비대해지는 의료 자본과 기업화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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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물질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세기 전에, 아니 200 년, 300년 전에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경험했을까? 지금과 같 은 방식으로 이해했을까? 이 글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과정, 그리고 체험이 보편적인 것인지 아니면 우리 시대의 특수한 담론 에 불과한 것인지를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담론이론과 필리프 아리에스(Philippe Ariès)가 고찰해 온 죽음의 역사를 통해 접근해 본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 죽음 담론이 만들어 내는 현상들을 탐색하고자 한 다. 이러한 검토 과정을 통해 계몽주의 이념 아래 과학적 계량화와 의료 화 과정에서 죽음에 관련된 현상들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도 잘 드러 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차후 우리가 일상적으로 떠올리는 죽음에 대한 관념 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그리고 관련된 지식체의 출처를 분석하는 데 에도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아가 지금과는 다른 방식 으로 죽음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마리가 되리라 생각한다. 과거의 지배적 관점에 동화되지 않고 현재를 바라봄으로써 현재 우리가 죽음 담론과 관련하여 ‘참’으로 받아들이는 지식과 절차 속 에 내재되어 있는 잠재적 문제점을 분석할 수 있는 토대가 되리라 생각 하며, 죽음 현상에 관해 우리 사회가 직면하는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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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죽음 관념 인간과 죽음의 역사에 관해 방대한 저작을 남긴 프랑스의 역사학자 필 리프 아리에스는 과거 공동체 시대에 죽음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행 위가 아니라 개인과 그가 속한 혈족 혹은 공동체 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 고 확인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즉, 공적이고 사회적인 사실이었던 셈이다. 죽음의 의례를 통한 유대감은 개인을 종의 과거와 미래에 종속 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 속으로 편입시켰다. 이때 의식의 마지막 절차는 늘 즐거운 축제의 성격을 띠었다. 이처럼 죽음은 개인적 차원의 비극이 아니라 종의 연속성을 지켜 나가야 한다는 책무를 안고 있던 공동체 전체의 시련이었던 것이다(Ariès, 1977:13∼35). 현대에 오면서 의학은 죽음을 감정이 추방된 병원이나 과학적 실험 실에 감금시켰다. 과거 공동체 사회에서 경험했던 죽음 문화가 사라진 오늘날의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세기에 이르기까 지 애도 행위를 존중하면서 죽음의 의식을 중요시 여기던 공동체가 어 떻게 해서 자신의 역할을 전복시켜 오히려 그것을 금지하기에 이른 것 일까? 아리에스는 공동체가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다는 느낌의 강도가 점차 약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이를 설명한다 (Ariès, 1977:80∼81). 즉, 기술의 진보, 특히 의학의 발달로 야생적 자연 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공동체가 스스 로 인식하게 되었고, 전통적 의미의 공동체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집합체가 공동체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현대에 오면서 빠르게 진행된 현대 의학기술의 급진적 발전으로 의 학 지식의 차원에서 현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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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장비 덕분에 질병에서 죽음 그리고 장례 절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의료 서비스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가정의 임종은 시 골에서나 간혹 찾아볼 수 있을 만큼 희귀한 현상이 되어 버렸다. 죽음은 의료 장비를 통해 연장될 수 있게 되었고, 마지막 순간은 의료 기기들에 둘러싸여 의료 관료의 행정절차를 통해야만 인증된다. 이처럼 병원에서 죽음은 통증 완화를 위한 의학적 기술의 진보, 제도적으로나 물리적으 로 그 기술을 가정에서 실시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멸균·청결과 위 생이라는 과도한 감수성이라고 하는 세 요소에서 비롯되었다(Ariès, 1977:577∼588). 아울러 이제 죽음의 시간은 연장되고 세분화되었다. 그리하여 죽음 은 기능 마비의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고, 의사에 의한 외관적 소 견보다는 뇌 기능이나 뇌전도 측정을 통해 확인되는 시대가 되었다. 호 흡 보조 장치가 죽음의 순간을 연장시키며 이제 의료기술은 죽어 가는 환자를 회복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생명을 거의 무한정 존속시킬는지도 모른다. 의료기술뿐 아니라 의학과 병원, 다시 말해 일정한 절차와 엄격 한 규칙을 적용함으로써 의료 생산 활동을 행정화, 기업화하는 모든 조 직과 기관이 여기에 참여하고 일정한 의미에서 생산적으로 기여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료 시스템에 개인의 선택 문제가 들어서며 그동안 공 들여 분리해 놓은 삶과 죽음이 격론과 갈등을 겪게 되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치료를 중단하거나 연장하려는 권리의 문제인 안락사다 (Ariès, 1977:585∼586). 오늘날 죽음은 일정한 시기에 찾아오는 자연현상으로 인식되지 않 는다. 죽음은 일종의 실패한 사업이 된 것이다. 일단 죽음이 찾아오면, 이 죽음은 하나의 사고 혹은 무능력이나 서투름의 징표로서 곧 잊혀야 할 대상으로 간주된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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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어느 날 갑자기 의식하지도 못한 채 죽는 죽음은 옛 시대로 거슬러 올 라가 저주받은 죽음에 해당되어 급사나 돌연사,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 이에 이루어지는 죽음과 정확히 일치한다. 과거에는 좋은 죽음과 거리 가 멀었던 ‘모두를 난처하게 하는 품위 없는 죽음’이자 환자가 ‘자신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죽음’이 이제는 좋은 죽음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 다(Ariès, 1977:50∼54).

푸코의 담론이론과 계보학적 방법 이 절에서는 우리 시대 죽음 현상에 연관된 담론들을 이해하기 위한 하 나의 통로로 푸코의 담론이론을 살펴본다. 푸코의 담론이론에 따르면, 담론은 규범화된 언어적 표현의 집합체이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기보 다는 다른 언어적 표현들과 함께 예측 가능한 형태로 결합되어 존재한 다. 담론은 일련의 규칙들의 통제를 받게 되는데, 이 규칙들을 통해 특정 한 발화와 언표들은 사회적으로 유통되며 복잡한 사회적 관행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존재하게 된다(Foucault, 1970:32). 이 관행을 통해 어떤 담론은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반면, 이와 경쟁관계에 있는 다 른 담론은 유통이 억제되거나 아예 배제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담론은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을 구조화하는 시스템이라 고 할 수 있다. 현실을 인식하는 틀로서의 규범은 우리가 현실에 부과하 는 담론의 익명적 규범인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푸코는 담론이 우리의 지각을 구속한다고 주장한다. 푸코에 따르면, 일정한 사회에서 유통되는 담론의 실질적 가치는 권력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잘 드러난다. 푸코가 말하는 담론이란

이데올로기와 달리 제도적 권위를 부여받고 개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 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강화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권력의 토대를 흔들 기도 하며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폭로함으로써 권력을 약화시켜 권력 의 작동을 방해할 수도 있다. 세라 밀스(Sara Mills) 또한 언급한 바 있듯 이 담론이란 단순히 언어의 등가물이 아니며, 또한 담론과 현실의 관계 는 대응 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 따라서 담론은 단지 현실을 언어로 번역 하는 매체가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을 구조화시키는 시스 템이라고 할 수 있다(Mills, 2003:55).

푸코는 󰡔󰡔담론의 질서(L’ordre du discours)󰡕󰡕에서 담론의 표면과 내

용이 일치한다고 생각하거나 그래서 언제나 의미 해독이 가능하다고 상 상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며 담론에 선행하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Foucault, 1970:59). 예컨대, 다양한 형태의 죽음에 해당하는 명칭과 분류가 존재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죽음의 종류를 구분하지 않은 채 ‘죽음’이라는 용어 하나만 존재한다고 할 경우, 후자의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구분하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단지 그 지역에서는 그러한 구별이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 뿐 아 니라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실을 인식하는 틀로서의 규범은 우리가 현실에 부과하는 담론의 익명적 규범 과 다르지 않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푸코는 담론이 우리의 지각을 구속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신체는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질병에 걸리기도 하며 사고 가 나면 다치기도 하는 물질적 대상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담론 을 매개로 해서만이 지각되고 인식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상적인 몸 매가 어떤 것인지에 관한 담론을 통해 각자의 몸을 날씬하다 혹은 뚱뚱 하다 등으로 평가하며, 정신과 육체의 연관성에 대한 담론을 통해 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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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피곤함을 정신적 스트레스의 신호로 해석한다. 즉, 우리가 물질적 대 상체와 전체로서의 세계를 경험하고 사유하려면 담론과 그것이 우리의 사고에 강요하는 구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 관해 사고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조에 따라 경험과 사건 들을 범주화하고 해석하며 또한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 구조를 견고하고 규범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그것의 다양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 는 경우가 많다(Mills, 2003:56∼57). 실제로 사물이 존재하고 사건도 일어나지만 이 사건을 파악하고 해 석하는 일은 담론 구조 내에서 행해진다. 그리하여 자연현상의 차원에 서 이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신의 분노로 이해하기도 한다. 죽음 현상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신의 저주라고 보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생(生)으 로의 이행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인간의 구체적 감각 활동 역시 담론 의 구조를 통해 여과됨으로써 특정한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Foucault, 1970:59∼60). 푸코의 담론 분석에서 흥미로운 것은 담론이 통제되는 방식이다.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절차의 목적은 담론이 지니는 힘과 위험성을 막 고 그것의 우발성을 제어하며 동시에 담론이 지니는 물질성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푸코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런 종류의 담론 구조 혹은 절차 이며, 이 절차에 의해 우리의 발화 행위는 일정한 형태로 통제된다. 󰡔󰡔담 론의 질서󰡕󰡕에서는 담론을 통제하고 생산하며 조직화하는 일련의 과정 을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 ‘배제(exclusion)’의 형태를 크게 세 가지로 구 분한다(Foucault, 1970:10∼22). 배제의 형태는 ‘사회적 금기’, ‘분할(partage)과 거부(rejet)’, ‘참과 거 짓의 구별’로 나뉜다. 첫째로, 외적 배제 장치인 금기는 말 그대로 금지 를 의미한다. 성(性)이나 죽음과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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렵게 만들기도 하고,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통제하기도 한다. 둘째로, 분할과 거부는 이성과 광기의 대립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 된다. 셋째로, 참과 거짓의 구별은 전문가로 분류되는 권위자만이 진리 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Foucault, 1970:21). 그리하 여 죽음의 문제와 관련하여 죽음을 정의하는 문제와 안락사를 허용하는 문제, 그리고 장례 절차와 관련된 문제들은 의료전문가 집단에 의해 관 장되거나 주재된다. 예컨대, 죽음의 정의에 대한 문제는 의료인에 의해 확정될 수 있으며 그들만이 죽음과 관련된 논의의 진리성을 담보한다. 그리하여 장기이식을 수용하는 사회에서는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기 도 하면서 신체 장기의 교환 과정을 자연스럽게 유통시킨다. 또한 늘어 나는 자살 현상을 우울증과 같은 질병 현상의 테두리에 묶어 둠으로써 사회적 모순의 노정이나 극단적 삶을 선택하게 하는 구조의 문제를 회 피한 채 질병 치료 과정에 편입시킨다. 우리 시대의 큰 사회문제로 부각된 자살은 과거에는 도덕적, 종교 적, 범죄적, 차원에서 다루어졌던 영역이다. 반면, 오늘날에는 정신병리 학의 틀에서 정신적 질환의 하나로 이해한다. 전문 학술지와 정부 정책 기록 및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자살자들은 병적인 속성을 지닌 채 고뇌하 는 사람으로서 ‘특이한 내적 고통’으로 인해 삶을 끝내도록 내몰린 사람 으로 특징화한다(Hill, 2004:2). 존스홉킨스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인 케이 레드필드 제미슨(Kay Redfield Jamison)은 유럽, 미국, 오스트레일 리아 그리고 아시아에서 행해진 연구에 따르면 자살을 시도하거나 실행 에 옮긴 사람들 모두에게서 심각한 정신병리적 소견이 보였다고 보고한 바 있다(Jamison, 2005:100). 정신병리적 맥락에서 자살을 개념화하는 방법은 사실상 서유럽에 서 그 인과적 관계와 가설의 적절성에 관해 철학적으로 논구한 바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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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심리학적, 정신의학적 문헌과 과학적 문헌을 폐기시킬 만큼 강력한 입장을 개진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병리학적 개념에 근거해 자살에 관한 진리 담론을 구성하는 작업은 실제로 다양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푸코의 권력-지식론과 계보학적 방법을 통해 본다면, 우선 자살 담론과 관련해 권위적 지식이 생산되고 순환되며 유통된다. 관련된 담론을 축으로 진리 가 생산되며, 이러한 진리 체계로 인해 일정한 실천이 이루어진다. 이 구 조 속에서 이러한 진리 체계를 구축하는 대상과 주체가 형성되며, 이 진 리 체계를 생산하고 유지하는 권력관계가 미시적으로 작동한다. 일정한 사회 속에서 유통되는 진리는 광범위한 관행과 제도에 의해 물질적으로 지탱된다고 할 수 있다. 제도적 기관은 나름의 잣대를 통해 거짓으로 판명된 개념은 배제하는 반면, 진리로 여기는 표현은 사회적으 로 유포하고자 애를 쓴다. 푸코의 입장에서 보면, 진리는 그 자체로 진리 이기 때문에 진리로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진리가 된다. 우리가 아는 한에서 진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을 주장한 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주장하는 담론은 사회 내에서 공인된 모든 다른 담론에 부합해야만 진리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러한 담론이론을 통해 푸코는 모든 이야기를 그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러한 관 념이 탄생하는 과정을 계보학적으로1) 분석하고자 한다. 담론과 권력에 관한 푸코의 이론은 지식과 문화에 관한 우리의 일 상적 관념을 다시 평가하고 관찰할 수 있게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큰 역 할을 한다. 푸코의 방법들을 잘 활용함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무 엇이고, 지식이 마련되는 데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그 지식은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지식의 생산 조건은 무엇인지, 이러한 지식은 누구의 이익 과 시스템을 위해 봉사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다른 방식으 로 사유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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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공간과 신체 푸코는 일찍이 󰡔󰡔성의 역사(Histoire de la sexualité )󰡕󰡕에서 계보학적 방법 을 통해 성(性)에 관한 진실들이 불변의 본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띠며 지식 체계를 통해 정당화 과정을 밟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푸코에게 신체는 역사적으로 제조되는 셈 이다. 푸코가 말하는 성의 계보학은 시간, 공간 그리고 힘의 산물로서 신 체의 진실을 제조해 내며 권력과 지식 및 진리의 투쟁에서 초점으로서, 특별한 역사적, 물질적 구성물로서 신체를 구축한다. 권력의 새로운 형 태(훈육, 복종, 생명권력)와 이러한 권력이 어떻게 정체성을 만들어 내

고 제한하는지에 대한 푸코의 이론을 설명하는 󰡔󰡔성의 역사󰡕󰡕는 섹슈얼리 티와 역사의 우연성, 그리고 그 진실에 신체가 굴복하는 방식을 여실히 보여 준다(Oksala, 2007; 홍은영 역, 2008:7장 참조). 따라서 푸코의 입장에서 인간의 신체는 그 자체로 ‘타고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사회문화적으로 담론의 공간에서 변형

된다. 고정된 본성과 변화할 수 있는 문화 사이의 구분, 그리고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인 젠더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불변의 특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푸코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전체에 대해 생각하는 범주는 투명한 필연성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 이미 권력 의 작용이 근본적으로 문화적으로 각인되어 스며들어 있다. 예를 들어, 섹슈얼리티의 사실은 자명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섹슈얼리티의 담론 안에서 호색적이게 되며 이성애, 레즈비언, 변태 성욕, 혹은 성적으로 건 전함 등과 같은 정체성을 학습하게 된다. 만약 이와 같이 신체가 경험적 수준에서 전개되고 형성된다면 역사적 경험을 가로지르는 결합 요소로 서 ‘특정한 모습을 한 인간 존재로 존재한다는 것’의 지위는 문제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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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될 것이다(McNay, 1992:149). 따라서 계보학적 분석이 수행해야 할 임무는 ‘역사가 각인되어 있 는 것으로서 신체와 역사에 의해 몸이 파괴되는 과정’을 폭로하는 것이 다. 푸코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구체화된 실체인 신체에 주의를 기울인 다. 다시 말해, 신체는 사회적 맥락과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식되고 취급되며 경험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체는 언제나 변화를 겪는, 자연의 산물이 아닌 담론의 산물이다. 따라서 신체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담론으로 매개될 수밖에 없다.2) 이러한 분석 방법을 활 용하면 우리의 신체를 축으로 하여 우리가 경험하는 오늘날의 죽음 관 념과 그에 따른 의식이란 보편적 개념도 보편적 의식 행위가 아니라 우 리 시대에 특수화된 특정한 힘과 매개된 현상임을 충분히 예측 가능하 리라 생각한다.3) 담론이 구현되고 작용하는 장(場)인 신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자 유주의적 휴머니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해 보려 는 푸코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푸코는 권력관계가 특정 유형의 정체성 을 생산해 내는 방식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단순히 억압의 장 으로 보거나 권력이 한 개인의 정체성 자체를 완전히 결정한다고 보지 는 않는다. 정체성은 권력과 개인 간의 타협과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됨 으로 저항담론(counter-discourse)의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다고 주장 한다. 푸코는 제도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권력관계가 우 리 몸을 통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고찰하지만, 이 과정에서 몸을 단순 히 수동적 객체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푸코는 훈육적 통제가 이뤄지는 방식을 설명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푸코 철학의 비판적 효과는 그가 내린 명시적 판단에 근거한다기보 다는 오히려 그가 문화를 분석하기 위해 채택한 접근 방법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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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대부분의 철학적 작업은 사건과 경험의 혼재 속에서 필수적인 것과 보편적 법칙에서 드러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해독해 내는 일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푸코의 생각은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다. 철학적 정밀 조사를 통해 필수로 여기는 것들이 우연적이고 유동적 이며 또한 자의적인 것이었음을 밝히려 노력했다. 지금은 당연하게 존 재하는 것이 지금과는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기 위해 푸 코가 추구한 철학의 목표는, 우리가 생각하고 살아가고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연관시키는 방식들에 대해 우리가 의문을 품게 만 드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철학을 이해하는 것은 자유의 공간－새로운 생각, 인지, 삶의 가능성의 노출－을 넓힌다. 이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 면서 필수적인 것으로 가정해 온 사물들이 인간 실천의 연계망 속에서 실제로는 우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방식을 보여 줌으로써 구체적 변화 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푸코는 사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지 각하고 행동하는 데 준거가 되는, 근본적이기는 하나 역사적으로 바뀌 고 있는 생각의 실천, 범주, 개념, 구조들을 관심거리로 삼았다. 푸코가 섹슈얼리티의 영역이나 비이성으로서 광기의 영역을 분석 함으로써 우리가 겪는 현재 경험이 항구불변의 보편성을 띠는 것이 아 니라 우연적 과정을 통해 이뤄진 역사적으로 특수한 현상임을 밝혀냈 듯, 이러한 방법론을 오늘날의 죽음 담론에 가져와서 우리 시대를 특징 짓는 죽음을 둘러싼 개념, 현상, 지식 체계, 문화 의식, 제도 등을 분석한 다면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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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권력’으로부터 밀려난 ‘죽음에 대한 권리’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고유한 권리를 부여받

게 되었을까? 푸코는 󰡔󰡔성의 역사󰡕󰡕󰡕1권에서 오랫동안 군주의 권력을 특 징짓는 특권의 하나가 삶과 죽음에 대한 권리였다고 설명한다(Foucault, 1976:177 참조). 군주는 자신의 신변이 위협에 노출될 경우, 신하들의 죽 음을 직접적으로 초래하지는 않으면서 합법적으로는 그들의 목숨을 위 태롭게 할 권리를 가졌다. 말하자면, 이런 방향으로 군주는 신하들의 삶 과 죽음에 대한 ‘간접적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Foucault, 1976:178). 지배자는 죽일 권리를 보유함으로써만 삶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며, 이런 사회에서 권력은 사물, 시간, 육체, 최종적으로는 생명에 대한 탈취 권인 셈이다. 그러다가 서구에서는 고전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죽음에 대한 권리는 삶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요구 쪽으로 방 향을 선회하게 된 것이다. 전쟁은 이제 수호되어야 할 군주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전체의 생존이라는 명목 아래 치러지게 된다. 수많은 전쟁을 수행함으로써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것은 삶과 생존, 육체와 종족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수호의 대상은 군 주권이라는 법적 존재가 아니라 주민이라는 생물학적 존재인 것이다. 이 런 맥락에서 사형(死刑) 또한 권력의 상징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타인 에 대한 생물학적 위험 요소로서만 남게 된다(Foucault, 1976:182 참조). 푸코는 죽음에 수반되던 관례들의 소멸과 죽음에 대한 폄하를 이러 한 맥락에서 설명한다. 또한 우리 사회가 죽음을 교묘히 피하게 되는 이 유는 그것이 견디기 어려운 불안 요인에 결부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오 히려 힘의 방향이 죽음으로부터 삶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하여 죽음은 생산적 권력의 영향권을 벗어나는 지점인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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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밀스럽고 사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군주 시대에 ‘자살’은 군주만이 행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에 죄에 속 했으나, 19세기 이후 자살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죽을 권리에 속하는 것 이 되었다(Foucault, 1976:183 참조). 이제 삶에 대한 권력은 종개념으로서의 육체, 생식, 건강, 수명, 장 수, 공중 보건, 주거, 이주 등과 같은 문제들에 개입한다. 바야흐로 ‘생명 관리 권력(bio-pouvoir)’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푸코는 성적 욕망의 장 치는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매개지점으로 작동하게 되었으며 인간이라 는 종의 생명 현상에 고유한 현상들이 지식과 권력의 영역 안으로 진입 하게 되었다고 본다. 죽음은 이제 더 이상 삶에 직접적인 의미연관을 갖 지 않게 되었지만, 이전과 달리 삶이 관리의 대상이 됨으로써 조절과 교 정의 기제가 필요하게 되면서 정상화의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 고 의학이나 행정기관이 교정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시대로 들어서게 되 었다고 설명한다(Foucault, 1976:149 참조). 이러한 푸코의 분석은 우리 시대의 삶의 틀을 조명하는 의미 있는 준거 틀로 작동하리라 기대된다. 적극적인 죽음 담론의 부재 현상이나 산 자를 위해 죽은 자가 소멸해 버리는 장기이식의 문제, 죽어 가는 사람 들의 소외 현상, 죽음에 대한 자율적 선택으로서 안락사, 사소하게 사라 지며 협소한 질병 영역으로 자리를 찾아가는 자살, 생애 주기의 의학화 (medicalization) 현상, 질병의 규범화 등과 같은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사적 맥락에서 분석, 조명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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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죽음 현상: 죽음을 추방하는 사회 아리에스에 따르면, 과거 공동체 사회에서 죽음은 늘 사회적이고 공적 인 사실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본격적으로 진행된 산업화와 도시화 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죽음의 유형을 등장시켰다. 최근 더욱 강화되 고 있는 우리 시대의 죽음 추방 현상은 한편으로는 안위와 사생활을 이 유로, 그리고 철저해진 개인위생 및 살균 처리 등과 같은 요소들이 빠르 게 발전하면서 모두가 까다롭고 예민한 존재로 변해 감에 따라 가능해 졌다고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증이나 질병과 더불어 일상을 구성했던 악취와 그러한 장면들은 이제 우리의 감각이 견디어 내기 어 려운 요소들로 간주되었다(Ariès, 1977:564 참조).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 이루어진 외과 의학의 진보, 장기간의 까다로 운 의학적 요법, 매우 복잡한 의료 장비의 사용 등은 그 특수성으로 인해 중환자들을 병원에 장기간 체류하게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병 원은 사회도 가족도 견뎌 낼 수 없으며 차마 남에게 내보이기 거북해진 환자를 은닉할 수 있는 은신처를 가족에게 제공했다. 이는 또한 가족들 이 서투른 방문객들을 대하는 수고를 양심의 가책 없이 남들에게 떠넘길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었고, 이로써 그들은 정상적인 삶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임종 환자의 침실 역시 이렇게 가정에서 병원으 로 이전된 셈이다. 이러한 이전은 의학적 기술을 계기로 가족들에게 용 인되었으며, 이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더욱 보편화되고 절차도 간편해졌 다. 이렇게 해서 병원은 고립된 죽음의 장소로 어느덧 변하게 되었다 (Ariès, 1977:564∼565 참조). 아리에스는 20세기 초에 죽음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가족과 가 까운 친지에 한정된 사적인 행위로 만들어 그것이 갖고 있던 공적인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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례로서의 성격을 제거하려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설 명한다. 그러다가 임종 환자들의 병실 입원이 보편화되면서 가족마저도 배제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아리에스는 그럼에도 아직까지 죽어 가는 자와 사회 간에 소통 가능한 두 기간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는데, 그것이 바로 임종 환자가 주도권을 쥐게 되는 마지막 순간과 애도 기간이라고 설명한다. 즉, 오늘날 죽음의 역사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사건은 애도 기 간에 대한 거부와 삭제의 움직임이라는 것이다(Ariès, 1977:569 참조). 아리에스는 20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살아남은 자들이 처하게 되는 새로운 상황과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행동 양상, 그리고 이들을 대하는 사회적 행태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애도의 사회적 기능이 변화되었고, 이러한 변화를 통해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근본적 변화가 나타나게 되 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애도 절차가 사라진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경 박함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준엄한 억압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며, 이는 원칙적으로는 죽음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으나 죽음의 존재를 거부하는 방식이라고 제시한다(Ariès, 1977:569∼570 참조). ‘죽음에의 존재’라는 사실에 두려움을 갖기 시작한 뒤부터, 또한 질 병에 대한 혐오감으로 인해 타인들에게 죽음을 은폐하기 시작한 뒤부 터, 죽음에 대한 거부 움직임은 서서히 부상해 온 셈이다. 이는 마침내 현대 문명의 중요한 특징으로 부각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애도의 눈물이란 질병으로 인한 분비물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었다. 이 렇게 해서 죽음은 인간과 사회로부터 추방되었고, 어느덧 애도를 공개 적으로 표현한다거나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그러한 행위가 장기간에 걸 쳐 이뤄지는 경우는 병리적인 것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우리 는 부모상을 당하면 1년 이상 어두운 색 옷을 입고 경사가 있는 집안에 참석하거나 웃음을 보이는 일을 삼갔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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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지속적인 슬픔으로 울적해 하는 날이 많아지면 우울증으로 여겨 치료받을 것을 권유한다. 지나친 슬픔으로 표현되는 애도는 곧 질병으로 이해되어 치료 대상으로 간주되 며, 그것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 또한 성격상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 으로 어느덧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심리학자와 의학자들이 애도와 관련된 이러한 태도를 위험 하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평가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 에서 특이한 사실은 애도 혹은 애도의 역할에 대한 심리학자와 의학자 들의 관점이 사회 전체의 태도와 완벽히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는 애도를 병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반면, 심리학자들은 오히려 애 도를 억압하는 것 자체가 병리학적인 것이며 병리학적인 상태를 유발하 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아리에스는 이러한 대립적 상황이 죽음을 추 방하고자 하는 사회적 감수성의 강도를 더욱 실감 나게 한다고 설명한 다(Ariès, 1977:571 참조). 실제로 성욕이나 아동 발달에 대한 심리학자 와 정신분석학자들의 이론이 즉시 대중화되고 사회에 편입되었던 반면, 애도에 관련된 사고들은 완전히 무시되고 대중매체에 의해 유포되는 일 조차도 제외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회가 어떤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 면서도 다른 것은 배척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의 의료화 과정 아리에스에 따르면, 애도를 비롯해 죽음을 연상시키는 것들이 모두 사 회적으로 금기시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이러 한 과정에서 복잡한 장비와 능력을 갖춘 의료진을 활용하는 의학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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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적 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병원은 고도의 의 학적 지식, 진단,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일 뿐 아니라 부차적 서비스, 정 밀하고 희귀한 고가의 장비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 되면서 병원은 죽음 과 관련된 일들이 이루어지는 주요 장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대 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통증 완화 를 위한 의학적 기술이 급격히 진보함에 따라 제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그 기술을 가정에서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Ariès, 1977:577 참조).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죽음의 시간은 연장되고 세분화되었다. 즉, 뇌사, 생물학적 죽음, 세포 차원의 죽음 등으로 나뉘게 되었으며, 심장박 동이나 호흡 정지 같은 이전 시대의 징후들만으로는 충분치 않게 되었 다. 즉 뇌 기능, 뇌전도 측정이 그것들을 대치하게 되었고, 죽음의 시간 은 의사들의 개입을 통해 연장될 수 있게 되었다. 의사가 죽음 자체를 제 거할 수는 없으나 어느 정도까지는 조절하여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의학의 발달 덕택으로 죽어 가는 환자를 완치시킬 수는 없더라도 병상에 존속시킬 수는 있게 된 셈이다. 오늘날은 의학과 병원을 통해 엄격한 절 차와 규칙을 적용함으로써 의료 생산 활동을 행정화, 기업화하는 모든 조직과 기관이 여기에 참여하고 기여하는 셈이다(Ariès, 1977:578 참조). 또한 가정으로 왕진 오던 시대의 의사들과 달리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규율과 조직 및 익명성으로부터 힘을 얻는 관료체제에 속하게 되어 생존과 관련해 일정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이 러한 상황에서 ‘의료화된 죽음’, ‘병원에서의 죽음’이라는 새로운 모델, 즉 새로운 스타일의 죽음이 출현하게 된다. 이로써 이제 죽음은 필수불 가결한 자연현상으로 인식되지 않게 되었다. 죽음은 일종의 실패, 실패 한 사업이 된 것이다. 이것이 죽음의 통제를 일생일대의 사명으로 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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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의사들의 견해다. 일단 죽음이 찾아오면, 이 죽음은 하나의 사고, 혹은 무능력이나 서투름의 징표로서 곧 잊혀야 할 대상으로 간주된다. 대학 병원의 사망자 통계와 관련해 대부분의 병원이 사망률을 어떻게든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죽음은 이제 죽어 가는 자 본인에게도, 자 신의 무능함을 잘 알고 있는 가족들에게도 속하지 않게 되었다. 죽음은 이제 특정한 관료체제에 의해 통제되고 조직된다. 이 관료조직 어딘가 에 내재되어 있을 능력이나 인간성도 체제가 죽음을 자기 소유물, 즉 전 체의 이익 차원에서 가능한 한 사회에 폐를 끼쳐서는 안 되는 물건 취급 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Ariès, 1977:579 참조). 아리에스는 이 견고한 의 료시스템에 틈이 생겨나 그동안 공들여 분리해 놓은 삶과 죽음이 대중 적 격론의 거센 물살 속에서 서로 만나는 사태가 벌어지는데 이때 등장 한 것이 바로 안락사 또는 치료를 중단 혹은 연장하려는 권리의 문제라 고 설명한다. 아리에스에 따르면, 18세기 이후 인간들은 악마의 권위를 침식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이 과연 실재하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지옥은 그 존재로 인해 정신적, 도덕적 악(惡)의 온갖 변종들을 사라지게 했다. 그 리하여 죽음과 질병 및 고통은 노년기의 인간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요 소가 아니라 올바른 감시 시스템이 제거해야 할 사회적 오류로 간주되 었다. 이렇게 해서 과학과 도덕성과 사회조직이 진보하면서 모두가 서 서히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사고가 지배하게 되었다.

19세기에도 여전히 신체적 악이나 질병과 죽음이라는 장애물들이 존재했지만, 이 시대에는 이러한 장애물들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다. 아 리에스는 낭만주의자들은 이를 우회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흡수·동화시 켰다고 설명한다. 낭만주의자들은 인간적 차원으로 변모된 내세의 문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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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서 죽음을 미화시켰으며, 아득한 옛날부터 내려온 질병, 통증, 임종 의 고통과의 공존을 기꺼이 수락했다는 것이다. 즉, 이것들은 혐오의 대 상이 아니라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혐오감이 출현하면서 혼란이 시작된다. 신체적 악, 즉 질병 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해 보기도 전에 인간은 그것을 눈으로 보 는 것, 환자들의 헐떡거리는 숨소리, 그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악취를 혐 오하기 시작한 것이다(Ariès, 1977:606∼607 참조). 그리하여 의학은 환 자의 통증을 감소시켰으며, 심지어 완벽하게 제거하기도 했다. 기독교 인들이 믿었던 것처럼, 악이 인간을 따라다니고 인간과 혼동되는 일은 이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는 죽음 자체도, 죽음으로 인 한 두려움도 소멸시키지 못했다. 왜냐하면 고슴도치처럼 갖가지 튜브들 이 온몸 곳곳에 꽂힌 채 누워 있는 병원에서의 죽음 이미지가 해골보다 도 더 무시무시한 대중적 이미지로 고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악의 마지 막 은신처인 죽음의 ‘퇴거’, 그리고 야생 상태로 돌아간 죽음의 귀환 간의 상관관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행복의 개념과 조화롭게 만드 는 것만이 우리의 항구적 관심사가 되었다(Ariès, 1977:607∼608 참조).

죽음 관념의 역사적 특수성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아리에스가 죽음의 역사에 관해 쓴 자신의 저서 에서 고찰했던 죽음에 대한 관념의 역사적 변화를 따라가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죽음이 단순히 개인적 행위가 아니라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유대를 돈독히 하고 확인하는 의식 절차였던 고대에는 죽음과 관련해 일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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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행함으로써 상실된 힘을 회복하고 결속력을 다지는 기회를 만들 었고 이때 의식의 마지막 절차는 즐거운 축제의 형식을 띠었다(Ariès, 1977:597 참조). 이러한 유대감은 종(種)을 과거와 미래에 종속시켰으며, 개인을 그가 속한 공동체 안으로 편입시켰다. 인간 삶의 종말을 신체적 죽음과 일치시키지 않으며, 그 기간을 영원으로 확대시킨 기독교, 즉, 사 후 삶을 상정한 기독교에서는 신기하게도 신체적 고통, 심적 고뇌, 잘못, 처벌, 행운의 반대가 되는 모든 것을 라틴어 ‘malum’에서 파생된 한 단 어인 ‘mal(악)’로 표현했다. 말하자면, 다양한 양태를 지니고 있는 ‘악’이 라는 개념이 존재했을 따름이었다. 기독교가 악의 개념을 원죄라는 개 념으로 총괄적으로 설명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이러한 형태의 ‘악’의 표현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악’ 개념은 대중 속에 이미지로 깊 이 새겨지게 되었고, 원죄의 개념은 악의 지속적인 존재라는 절대적으 로 보편화된 생각에 부응하고 있었다. 따라서 중세 기독교 시대의 죽음 관념은 오늘날과 같은 생물학적 필연성의 관점에서 이해되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악’을 설정하고 그것에 대한 구원을 찾아가는 태도라 할 수 있다 (Ariès, 1977:599 참조). 그런 탓에 역사적으로 가장 무서운 죽음 이미지 는 중세 때 탄생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죽음에 대 해 두려워하고 성직자와 탁발승들은 이 공포를 더 강화시키고 고통스러 운 죽음 이미지를 종교를 토대로 극대화시켰다. 악의 최후로 상정된 죽 음은 죄의식과 사후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가시적으로 강화시키는 중요 한 도구로 기능한 셈이다. 죽음을 향한 불안을 고통스럽게 고조시키고 그 틈새를 파고든 기독교는 종교적 교리를 강화시키는 중요한 하나의 발판으로 죽음과 악, 그리고 고통을 연결시키며 사후 세계를 상정함으 로써 구원의 개념을 등장시켜 하나의 완결된 체계를 만들어 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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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러한 이미지는 낭만주의 시대를 맞아 변화를 겪게 된다. 자신의 죽 음보다는 타인의 죽음이 대상화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아름 다움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중세의 무서운 지옥과는 다른 아름다운 천상 의 세계가 도래했다.4) 그러나 20세기 이후 우리 삶 전체가 의료화 과정 을 거치면서 죽음 이미지는 급속히 삶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며 그 자 취를 감추게 되었다.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사실상 사회 변화에 따라 변화해 왔음을 역사적으로 잘 알 수 있다. 죽음의 관념과 장례 의례, 죽음에 대 한 이미지, 죽음에 이르는 절차 등은 다양한 흐름을 타고 일정한 사회와 역사 속에서 매번 다른 옷을 입고 등장한다. 한 시대 내에서도 집단에 따 라 차이가 나타나기도 하며 공통의 관념과 의례는 사람들의 의식과 사 고를 통합한다. 또한 관념의 차이는 집단을 구분하기도 한다.

󰡔󰡔문명화 과정(Über den Prozess der Zivilisation)󰡕󰡕의 저자이자 죽음

에 관한 다양한 성찰을 시도했던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는 사회 변화와 함께 사람들이 대처해야 하는 죽음과 관련된 문제도 변 화를 겪는다고 본다. 문명화 과정에 동반된 일련의 인간적, 사회적 문제 들에서도 특수한 질서를 감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엘리아스에 따르면, 옛날에는 죽어 가는 것이 오늘날에 비해 상당히 공개되어 있었 다. 그 당시 조건으로 보았을 때 다른 식으로 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혼자 있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주거 형태가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으며, 출생과 사망은 공개적이었 으므로 오늘날에 비해 더 사회적이었던 것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오늘날 사회에 만연한 죽음에 대한 태도의 특수성을 이해하 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 속에서 죽음의 관념을 배제하는 행위 가 이전 시기 혹은 다른 사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그 시대의 관련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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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들의 변화에 주목하여 관련 지식 체계를 검토하고 비교할 필요가 있 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행위의 변화는 관찰 가능하고 접근 가능한 것으 로 드러나고 또 설명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 죽음의 특수성 우리 시대에 죽어 가는 사람 곁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각별하 다고 할 당혹감은 죽음과 죽어 가는 사람이 사회적 삶으로부터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죽어 가는 사람들을 다른 이들로부터 철저 히 격리한다는 사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여전히 살아 숨 쉬는데 도 그들은 이미 버려진 것이다. 병원에서의 제도화된 일상만이 죽어 가 는 상황에 대한 사회적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틀은 감정이 배제되어 있으며, 죽어 가는 사람을 더욱더 고립무원의 상태로 몰아넣는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죽어 간다는 것은 상당히 무정형적인 상황에 놓여 있으 며, 사회적 지형도에서 빈자리로 표시된다. 세속적 의례는 대부분의 경 우 감정과 의미를 약화시켜 가고 있으며, 설사 강한 감정을 느낀다고 할 지라도 사회적 금기들이 감정의 과잉 표출을 금지하고 있다. 현재 죽어 가는 사람과 가까운 이들은 그들이 사랑하고 또 걱정한다는 증거를 보 임으로써 죽어 가는 사람에게 격려와 위안을 줄 수 있는 힘을 상실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강력하고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감정 표현을 금 하는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금기는 그들의 감정 표현을 통제하고 있 는 셈이다. 한편,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죽음의 현상은 현대사회의 구조적 특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사회 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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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상당 정도 통제되어 있지만 병과 노화로 인해 침상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우리 삶에서 생(生)의 문제는 다양한 형태로 권력의 매개지점이 되어 작 동하는 주요 거점이 되어 가는 반면, 죽음의 문제는 17∼18세기와 달리 우리의 관심으로부터 밀려난 지 오래된 것이다. 엘리아스 또한 일찍이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로 고도로, 그리고 특수한 유형으로 개인화된 사회라는 점을 든 바 있다. 개인의 기억 속에 있는 죽음의 이미지는 그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 즉 인간 존재에 대한 이미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현대사회에 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기본적으로 고립된 존재, 창문 없는 단자, 고립 된 ‘주체’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다른 모든 사람은 외부 세계로 간주되며 나로부터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다가갈 수 없는 먼 존재로 느껴진다. ‘내부 세계’는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되어 있고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의해 타인으로부터 고립되어 가듯 점점 격리되어 가고 있다 는 것이다(Elias, 1982:56∼57 참조). 또한 엘리아스는 자신을 체험하는 이 특수한 양식은 문명화 과정의 최근 단계에 나타난 특징적인 ‘폐쇄인(Homo clausus)’이라는 자기 이미 지를 통해 설명한다. 즉, 이는 사회적 삶의 영역에서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의미를 가진다는 느낌과 인식,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느낌이나 인식과 상호 연관되어 있다 고 설명한다(Elias, 1982:56∼57 참조). 엘리아스는 이러한 견지에서 한 인간의 삶의 의미 여부가 그 사람의 존재와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가지 는 중요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고도 로 개별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이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다. 그러나 일면 이러한 인간 존재의 특성을 사회학적으로 또 심리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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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구성해 내고 다른 특성은 배제한 채 그것을 사회가 받아들이고 있 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러한 현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용하게 하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억압과 불안의 장막을 걷어 내고 우리 는 죽음 현상과 관념에 대해 공개적으로 통찰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 라 죽음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죽음은 한 인간의 종말이다. 남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에게 주었던 것, 즉 산 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이다. 엘리아스가 노심초사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죽음을 우 리 사회 속에서 더 이상 배제하지 않고 인간 삶의 총체적 구성인자로서 인간의 표상 속으로 끌어들인다면 스스로를 외롭고 고립된 존재로 느끼 는 ‘폐쇄인’이라는 에토스는 어느덧 모습을 감출 것으로 여겨진다.

맺으며: 우리 시대 죽음의 에토스를 넘어서 이 모든 점들로 미루어 볼 때, 현재 죽어 가는 사람과 죽음을 향한 태도 나 관념은 바뀔 수 없는 불변의 것도 아니며 필연적인 것도 아님을 분명 히 알 수 있다. 죽음에 대한 태도는 사회 변화 과정과 맞물려 보이지 않 은 힘의 관계 속에서 구조화된, 특수한 단계에 있는 특수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죽어 가는 것과 죽음 현상은 산 자의 시선 밖으로 그리고 사회의 정상적 삶의 배후로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처럼 조용하게, 위생적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병원에서, 고독감을 조장하는 사회적 여건을 물리치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것은 우 리 시대에 일어난 그야말로 특수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정 부가 국민의료복지 차원에서 내세워 시행하고 있는 장기요양보험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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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고립된 죽음 현상을 체계적으로 가속화하고 있는 결과를 가져오 고 있다. 오늘날 의료 조치들은 인간의 생리학적 기능의 개별적 치료와 연관 되어 진행돼 왔고, 이러한 맥락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연장하는 의료기 술은 미증유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과 의료체계는 의료화,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의 삶 문제를 떠나 자본주의적 이해관계 속에서 시장을 위한 경쟁체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비판적 의료적 처치 역시 이 모든 부분과 과정들을 한데 통합하고 있는 한 인간 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지기보다는 생명 외적 요소에 비중을 두며, 죽음 의 문제를 한 개인의 삶 속에서 분리하여 무조건적 생명 연장이라는 기 치 아래 움직이고 있다. 앞서 엘리아스도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실 제로 죽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인간만이 죽음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 다는 점이다. 인간의 손에 붙들린 거미는 살인자의 손아귀에 있는 사람 처럼 마치 자신이 처한 위험을 알고 죽음을 인지하고 있는 듯 퍼덕인다. 그러나 죽음의 위기에 처한 거미의 필사적 몸부림은 그 종(種)이 가지고 있는 학습되지 않은 본능인 것이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죽음에 대 한 지식을 앞서 선취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기에 죽음이 문제가 되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죽음이 우리 사회에서 배제된 채 극단적으로 의료화, 산업화되는 것에 제동을 걸고 이러한 상황이 함축하는 의미를 검토함으로써 우리 삶에 죽음이 던지는 메시지를 우리 시대의 특수성 안에서 읽어 감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 사회에서 앞으로 증폭될 죽음 담론에 대한 다양 한 논의의 시발점과 토대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며,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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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리라 생각한다.

* 이 글은 2011년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된 바 있는(NRF-2011-327-A00211), 한국의철학회의 ≪의철학연구≫ 16집(2013, 겨울)에 게재된 필자의 같은 제목의 논문을 다소 수정하여 수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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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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