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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영화 편집 김진희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마술사가 보이지 않는 마술

편집이란 무엇인가 관객들은 영화가 만들어진 이야기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 도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세상에 빠 져든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함께 느끼며 울고 웃는다. 어 느 순간 관객은 영화와 하나가 된다. 자기도 모르게 영화 속으로 빠져들도록 관객을 매혹시키는 마술, 그것이 바로 영화 편집이다. 편집의 세계는 영화의 여러 영역 중 잘 알려지지 않은 분 야에 속한다. 편집의 미학적 측면은 완성된 작품을 통해 분 석할 수 있다. 하지만 편집 과정에서 편집자가 어떻게 영상 을 파악하고, 장면을 구상하며, 그 영화에 가장 적합한 리 듬을 어떻게 찾아내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영화 편 집󰡕에서는 그 장막을 걷고 영화 예술 고유의 창작 과정을 살펴본다. 대중에게 공개되는 영화의 길이는 보통 2시간 전후다. 그러나 실제로 촬영하는 분량은 그보다 훨씬 많다. 국내 상업 영화의 경우, 촬영본(촬영 분량)과 완성된 영화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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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 대략 25대 1 정도다. 디지털 방식의 촬영이 보편화되 면서 촬영 분량이 크게 증가했다. 영상을 기록하는 매체 만을 놓고 보면, 필름에 비해 디지털 저장 방식이 상대적 으로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1979년 영화 <지옥의 묵시 록(Apocalypse Now)>은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인데도, 촬영된 분량이 완성본의 95배에 달했던 것으로 악명 높다. 촬영본과 완성본의 비율이 1대 1이 되지 않는 것은 삭제된 장면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효 과적인 편집이 가능하도록 같은 내용을 다양한 앵글 (angle)에서, 또 같은 앵글을 반복해 촬영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페의 대화 장면을 떠올려 보자. 두 사람이 들어와서 의자에 앉고 이야기를 시작한 다. 대화는 점점 더 중요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우리는 그 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어느 한 사람에게 혹은 두 사람 모두에게 공감하게 된다. 이 장면을 설득력 있게 만 들기 위해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수많은 스태프들의 도움 을 받으며 필요하다고 판단한 여러 숏(shot)들을 촬영할 것이다. 먼저 두 사람 모두를 한 프레임(frame)에서 보여 주는 숏이 있다. 두 사람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보이고 카 페 내부 인테리어도 잘 보인다. 두 사람의 허리까지만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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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에 잡혀서 테이블 위에 찻잔이나 꽃 장식이 좀 더 잘 보 이는 숏도 있다. 카페의 창밖에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두 사람을 보여 주는 숏도 있다. 두 사람을 각각 보여 주기 도 한다. 한 프레임에 한 인물만 담는 것이다. 인물의 몸 전체, 허리까지, 가슴까지, 얼굴만 보여 주는 숏들이 있다. 인물의 옆모습을 보여 주는 숏도 있고 45도 정도의 앞모습 을 보여 주는 숏도 있다. 찻잔을 잡고 있는 손, 테이블 위 의 꽃 장식, 구두 등을 따로 보여 주는 숏들은 아주 가까이 다가가 찍은 것이다. 또 계산대 주변에서 음료를 준비 중 인 바리스타를 보여 주는 숏도 있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떠올려 보 자. 이러한 숏들이 조금씩 모여 대화 장면을 구성했다는 것이 어렴풋이 기억날 것이다. 영화의 장면은 여러 개의 숏으로 나누어서 촬영되고, 숏들을 다시 조합해 하나의 장 면으로 완성한다. 숏들을 조합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완결된 이야기를 구성하는 과정을 편집이라고 한다. 편집에서는 맨 처음 어떤 숏으로 시작하고, 어느 지점에 서 다른 숏으로 바꿀 것인지를 결정한다. 편집자는 숏의 변 화를 통해 움직임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든다. 공간을 재구 성하고, 숏 하나로 공간을 바꾼다. 시간을 압축하고 확장하 고 생략한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숏이 바뀐다는 사실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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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주목하지 않는다. 영상과 사운드가 전하는 정보와 감정 을 따라가며 스크린 위에 펼쳐진 상황에 몰입한다.

숏의 연결 감독은 촬영 전에 그 장면을 어떻게 찍을 것인지 여러 스 태프의 의견을 참고해 구상한다. 계획된 이미지들의 나열 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 스토리보드(storyboard)다. 촬영 현장에서 어떠한 숏을 찍을 때, 스토리보드에 묘사된 분량 만큼만 찍는 경우는 드물다. 가령 카페로 들어온 두 사람 이 의자에 앉고 나면, 그다음에는 한 인물을 허리까지 보 여 주는 숏으로 넘어가기로 계획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두 인물이 의자에 앉는 것까지만 촬영하지는 않는다. 두 인물이 대화를 하는 모습도 이어서 계속 촬영한다. 숏 이 바뀌는 지점이 편집 과정에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막상 화면을 붙여 보면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판단을 할 때가 많다. 앉고 나서 바로 숏이 바뀌는 것이 급하게 느껴 지고, 대신 서로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 메뉴판을 쳐다볼 때 숏이 넘어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하나의 숏을 한 번만 촬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문제가 있어서 다시 찍을 수도 있고, 감독이나 배우의 의사에 따 라 연기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대형 폭발 장면처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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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준비하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각기 다른 위치에서 여러 대의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을 한다. 편집에서는 현 장에서 시도한 다양한 숏들 중에서 장면에 가장 적합한 부 분들을 선택하고 연결한다. 숏을 일단 연결하고 나면, 편집자는 연결이 자연스러운 지 다시 확인한다. 숏이 바뀌는 지점 근처를 계속해서 다 시 보면서 약간씩 조정을 한다. 그 장면만 볼 때는 자연스 럽게 느껴졌던 편집이 앞뒤 다른 장면의 맥락에 따라 부자 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영화를 처음부터 쭉 보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로 볼 때와 대형 스크린에서 볼 때도 느낌이 달라진다. 모니 터에서 볼 때는 길게 느껴졌던 숏이, 스크린에서는 순간적 으로 지나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편집 실에는 큰 화면의 모니터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데스 크톱의 모니터를 보며 편집을 진행하되, 일련의 장면들이 완성되면 큰 모니터로 확인해 본다. 편집은 끊임없이 수 정하는 과정이다. 세심하게 검토해서 선택하고 연결하지 만, 언제든 문제점이 느껴지거나 더 나은 대안이 생각나 면, 편집자는 수정을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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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구성 숏의 연결은 편집의 미시적 측면이다. 거시적 측면에서 보면 편집은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다. 숏들을 연결하고 조정하는 것은 그 장면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효 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장면들이 모여 한 편의 영화가 된다. 각 장면들은 인과 관계에 따라 설득력이 있 게 진행되면서 하나의 큰 이야기가 된다. 편집자는 각각 의 장면을 편집한 후, 장면들을 시나리오의 순서대로 연결 한다. 그러고 나서 이야기가 잘 이해되고 몰입이 되는지 전체적인 관점에서 영화의 흐름과 리듬을 확인하고 수정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장면은 사라지기도 한다. 위치가 옮겨질 수도 있다. 그리고 옮겨진 위치의 전후 맥락에 따 라 다시 장면의 리듬을 조절한다. <잉글리쉬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1996)는 2차 대전 종전 무렵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간호사 하나가 심한 부상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한 남자(알마시)를 보살피는 이야기다. 알마시가 하나에게 들려주는 과거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의 중심을 이루지만, 현재의 하나가 폭 탄 해체 전문가인 킵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도 함께 전개 된다. 영화의 종반부에서 하나는 킵과 아쉬운 작별을 하 고 돌아온다. 때마침 알마시가 하나에게 안락사를 부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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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나는 약을 준비하며 눈물을 흘린다. 원래는 이 두 장 면 사이에 킵과 헤어지고 쓸쓸하게 돌아오는 하나의 장면 이 있었지만 최종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었다(Ondaatje, 2002). 하나의 상실감이 너무 절절히 느껴지면, 바로 뒤에 나오는 알마시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이 덜 부각되기 때문 이다. 때로는 보석 같은 장면도 전체 영화의 흐름을 위해 도려내게 된다. 영화의 제작 과정에서 이야기는 세 번 써진다. 작가에 의해 시나리오로 완성된 이야기는 감독에 의해 촬영 현장 에서 재탄생된다. 그 과정에서 대사가 바뀌거나 장면의 내용과 진행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으로, 글로 표현한 이야기가 이미지와 사운드에 의해 다시 써진 다는 점에서 연출은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텔링이다. 현장 에서 촬영한 영상에는 시간과 움직임과 에너지의 흐름이 담긴다. 감독은 한 줄의 지문 혹은 대사를, 인물들의 행위 와 동선, 대사의 속도, 주변 공간 등을 이용해 묘사한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이 편집 실이다. 촬영 현장에서 연출을 통해 숏 안의 흐름을 다시 썼다면, 편집에서는 숏, 장면, 시퀀스(sequence)의 배치 와 리듬을 통해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구성한다. 관객들 이 보게 될 이야기가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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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편집 필름을 직접 편집하던 시절에는 숏의 연결과 수정을 오 늘날보다 신중하게 진행했다. 촬영 원본인 네거티브 (negative) 필름은 따로 보관하고, 그것을 현상한 포지티 브(positive) 필름을 직접 자르고 붙이며 편집을 진행했다. 필름을 계속해서 앞뒤로 돌리며 확인하고 자르고 붙이는 동안, 필름에는 스크래치가 생기고 숏의 연결 부위는 불안 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잘라냈던 숏이나 몇 프레임을 다 시 찾아서 연결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물론 그 시절 에도 수없이 편집을 수정했다. 다만 여러 번 고민하고 확 신이 섰을 때 실행에 옮겼다. 디지털 비선형 편집 시스템(digital non-linear editing system)이 일반화되면서 숏을 연결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월해졌다. 디지털 편 집 시스템이란 필름이 아닌 필름의 이미지와 정보를 변환 시킨 디지털 데이터 혹은 디지털 방식으로 촬영한 데이터 를 컴퓨터에 저장하고, 아비드(Avid)나 파이널 컷 프로 (Final Cut Pro) 등의 소프트웨어로 편집하는 것을 의미한 다. 비선형 편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원하는 이미지나 편집할 부분에 즉각적이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 이다. 필름 편집은 선형 편집 방식으로 원하는 지점에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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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하려면 필름을 계속 감아야 한다. 디지털 편집에서는 마우스 클릭 한두 번으로 숏을 교체 하고 늘리고 줄일 수 있다. 편집자는 이미지를 감각적으 로 파악하고 즉각적으로 행위에 옮긴다. 숏을 붙이기 전에 고민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대개 숏을 붙이고 난 후 확인한 다. 편집 작업 자체는 수월해졌지만 편집 과정 전체가 수월 해진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손쉽게 수정할 수 있게 되면서 편집을 확정짓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랜 고민 후 에 결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정과 번복이 계속되고, 나 중에는 편집에 대한 판단력이 모호해지기도 한다. 뿐만 아 니라 실제 편집 작업 전후에 필요한 디지털 데이터의 각종 변환 과정들 때문에 부가적인 작업 시간이 늘어났다. 디지 털은 발전된 기술이지만 보관력 자체만으로 볼 때는 필름 보다 손실의 위험이 더 크다. 그래서 디지털 편집을 할 때 는 백업 데이터 여러 개를 따로 보관하게 된다. <매그놀리아(Magnolia)>(1999),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2005) 등을 편집한 딜런 티케노 (Dylan Tichenor)는 디지털 편집의 장단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디지털) 비선형 편집은 영화계와 영화인들 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매우 다양한 편집을 시도 하고 여러 가지 다른 편집본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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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그러한 자유로 인해 다른 기량이나 집중력을 놓칠 수 도 있다. 디지털 편집 방식은 깊게 생각하지 않게 만든다. 피상적인 생각만 하도록 부추긴다.”(Chang, 2012) 더 이상 필름으로 편집하는 영화는 없다. 필름 편집의 경험을 가진 편집자라면 누구나 필름 편집만이 가진 장점 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필름 편집 작업을 다시 선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해도 과거 방식으로 돌아가지 는 않을 것이다. 디지털 편집 시스템이 가진 작업의 효율 성과 표현력의 확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대는 필름 편집 과정의 사고방식, 감성, 리듬을 경험한 적이 없 기 때문에 디지털 편집이 가진 힘과 그림자를 명확하게 자 각하기 어렵다. 디지털 시대에 편집자는 빠른 작업 속도 때문에 편집에 대한 사색과 감상의 시간이 사라지지 않도 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더 신중하게 선택하고 때때로 키 보드로부터 떨어져 나와 여유를 가지고 영상을 보는 시간 을 가질 때,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다.

보이지 않는 컷 오귀스트 로댕(François-Auguste-René Rodin)의 1904년 작품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 앞에서 사람들은 고뇌 에 빠진 한 남자를 본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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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지만, 그의 고민이 깊다는 것만큼은 너무도 분명하게 느 껴진다. 대학 시절 한 수업에서 로댕이 남자의 심각함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 이 있다. 남자의 어깨는 안으로 움츠려져 있고, 오른쪽 팔 꿈치는 가까운 오른쪽이 아닌 왼쪽 무릎에 닿아 있다. 그 로 인해 상체는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더 숙여진다. 왼팔 은 오른쪽 팔꿈치 외부를 감싼다. 무릎 사이에 위치한 왼 손은 안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턱을 괸 모습도 일반적인 경우처럼 손바닥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손등을 쓰고 있다. 턱을 괸 손등 너머의 손가락들은 몸 안쪽을 향한다. 발가 락들도 모두 힘주어 안으로 구부려져 있다. 그의 모든 신 체는 자신의 몸 중심으로, 안으로, 내부로 향하고 있다. 그 가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이처 럼 일관되게 내부로 향하는 방향성 때문이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은 작가의 구체적인 전략을 알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다르다. 자 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수용자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서는 구체적인 기법과 기술이 필요하다. 관객에게 영화의 감동을 전달해야 하는 편집자에게도 필요한 지식이 있다. 󰡔영화 편집󰡕은 편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을 개괄 적으로 다루고 있다. 숏, 편집의 기준, 편집의 발전,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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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과 불연속 편집, 관객의 시선, 시각적 논리, 반응 숏, 리듬, 편집 기법을 이해하면, 편집을 할 때 촬영본에서 무 엇을 보고 관객의 공감을 어떻게 끌어내어야 하는지를 알 게 된다. 마지막 장에서는 실제로 편집 작업이라는 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편집자의 구체적인 역할이 무엇인지를 소개한다.

보이지 않는 마술사 스크린에서 마지막 이미지가 사라지면 영화는 끝이 난다. 극장 내부의 작은 등이 켜지고 관객들은 자리를 뜬다. 사 람들에게 영화는 배우나 감독의 이름과 함께 기억된다. 그러나 사실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예술적 안목과 기술, 그리고 열정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편집자도 그중 에 한 명이다. <졸업(The Graduate)>(1967), <악마의 씨(Rosemary’s Baby)>(1968), <차이나타운(Chinatown)>(1974) 등을 편 집한 샘 오스틴(Sam O’Steen)은 “내가 편집한 영화에서 내가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O’Steen, 2002). 관 객이 영화에서 편집자를 인식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 다. 사람들은 완성도 높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감독 을 언급한다. 멋진 풍광이나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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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며 촬영에 감탄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떠올리며 배우의 연기를 칭찬한다. 그러나 낱개의 멋진 영상들이 완성도 있게 느껴지도록 연결하고, 원석 같은 배우의 연기를 섬세 하게 다듬어 빛나게 한 작업이 바로 편집이다. 같은 재료 와 레시피를 가지고도 요리사에 따라 완전히 다른 요리가 만들어지듯이, 같은 촬영본으로도 편집에 따라 완전히 다 른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편집 자체는 드러나거나 자각되는 것이 아니다. 편집은 영화 속에 녹아 있다. 때문에 그 일을 하는 편집자의 존재 도 드러나지 않는다. 좋은 영화는 좋은 편집이 아니라 좋 은 영화 그 자체로 기억된다. 가장 좋은 촬영본은 편집하기 좋은 촬영본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편집자가 촬영본을 잘 읽어 내는 역량을 가 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편집자는 촬영본에 흐르는 고유한 리듬에 자신의 몸의 리듬을 일치시키고자 애쓴다. 느린 호흡의 영화를 편집할 때는 평소에도 느린 음 악을 듣고, 빠른 호흡의 영화를 편집할 때는 편집에 앞서 스스로에게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노력한다. 편집자가 촬 영본의 리듬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해 체하고 다시 조합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촬 영본에는 감독의 의도가 들어 있다. 그 의도가 효과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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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지는 영화의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이 좋은 편집이다. <와호장룡(臥虎藏龍)>(2000), <고스퍼드 파크(Gosford Park)>(2001), <색, 계(色, 戒)>(2007), <레이첼, 결혼하다 (Rachel Getting Married)>(2008) 등을 편집한 팀 스퀴어 스(Tim Squyres)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편집 자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 제다. 편집자의 스타일은 촬영본으로부터 비롯해야 한 다.”(Chang, 2012) 편집자는 촬영본에 따라, 즉 작품에 따라 매번 다른 스 타일의 편집을 한다. 편집자가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이 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편집자는 숏의 리듬을 읽어내고 장면의 리듬을 만들고, 이를 모아 영화 전체의 리듬을 만 들어 낸다. 관객들은 편집자가 재창조한 리듬에 자신의 감각과 몸의 리듬을 일치시키고 영화 속 세상을 경험한다. 편집은 마술사가 보이지 않는 영화의 마술이다.

참고문헌 Chang, J.(2012). Film Craft: Editing. Waltham: Focal Press. O’Steen, S. & O’Steen, B.(2002). Cut to the Chase. Studio City: Michael Wiese Productions. Ondaatje, M.(2002). The Conversations: Walter Murch and the

Art of Editing Film by Michael Ondaatje. New York: Knop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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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마술사가 보이지 않는 마술

01

02

편집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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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편집의 발전

33

04

연속 편집과 불연속 편집

05

관객의 시선

57

06

시각적 논리

67

07

반응 숏

08

리듬

09

편집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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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과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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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85 97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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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숏

관객들은 편집으로 연결한 영상과 사운드를 통해 영화를 이해한다. 영화 편집은 숏들을 선택하고 연결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숏은 프레임 내 피사체의 사이즈, 숏에 담긴 내용,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담아낸다. 숏이 모여 장면을 이루고, 장면이 모여 시퀀스를 이루며, 시퀀스가 모여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된다. 편집은 촬영본에 담긴 숏들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전체 영화의 감정, 이야기, 주제가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구성하는 작업이다.


편집의 단위 영화 편집은 숏(shot)을 기본 단위로 이루어진다. 필름을 직접 보고 만지며 편집하던 아날로그 시절에도, 디지털 방 식으로 컴퓨터에 입력된 영상을 보며 편집하는 오늘날에 도, 편집자는 숏의 연결을 통해 장면을 만들어 낸다. 촬영 단계에서 숏은 카메라가 단절되지 않고 촬영한 영상을 의 미한다. 더욱 나은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동일한 숏을 여 러 번 촬영하는데, 이를 테이크(take)라고 부른다. 반면 편집 단계나 완성된 영화를 감상하는 단계에서 숏은 단절 되지 않고 보이는 영상을 말한다. 촬영에서 하나의 숏으 로 찍은 영상이라 할지라도, 편집에서 한 숏의 여러 부분 을(일반적으로 다른 숏들과 섞어 가며) 사용할 경우, 그 각 각은 다른 숏으로 해석된다. 하나의 숏은 여러 개의 프레임(frame)들로 구성되어 있 다. 프레임은 움직이는 영상을 구성하는 정지된 이미지들 중 하나를 말한다. 필름으로 완성된 영화의 경우에는 1초 당 24개의 프레임이 빠르게 지나간다. 사람의 눈은 이를 여러 장의 정지된 이미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영 상, 즉 숏으로 인식한다. 여러 개의 숏이 모여 하나의 시공 간에서 이루어진 액션을 보여 주는 장면(scene)을 구성한 다. 하나의 의미 단위가 되는 일련의 장면들을 시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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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quence)라고 부른다. 시퀀스는 때때로 장면과 동의어 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시퀀스들이 모여 한 편의 영화가 된다. 실제로 편집 작업을 할 때, 물리적인 최소 단위는 프레임 이다. 편집자는 의도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부분의 프레임들을 선택해서 서로 연결한다. 또한 연결한 영상을 다시 보면서 불필요한 프레임들을 잘라 낸다. 그러나 프레 임 단위로 실제 작업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각각의 프레 임들은 정지된 한 장의 이미지일 뿐이다. 편집자의 결정은 이미지와 사운드의 흐름 속에서 인식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편집의 기본 단위는 숏이다.

숏의 사이즈 프레임에 잡힌 피사체의 사이즈, 즉 카메라가 어느 정도로 가깝게 다가갔는지에 따라 숏을 구분할 수 있다. 피사체가 사람이라고 가정하자. 익스트림 클로즈업(ECU, extreme close-up)은 눈, 입 등 아주 가까이에서 극히 일부분만을 프레임에 담은 숏을 말한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프레임에 담긴 피사체에 대해 특별히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빅 클로즈업(big close-up, tight close-up)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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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코, 입까지만 보이되 머리 전체가 보이지는 않는 숏이 다. 클로즈업(CU, close-up)은 머리와 목, 클로즈 숏(CS, close shot)은 머리에서 어깨까지 잡히는 숏이다. 가까이 에서 잡은 숏은 표정의 변화가 잘 드러난다. 관객들로 하여 금 등장인물에게 더 깊이 공감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프레임 속 인물이 악역일 경우에는 더 큰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미디엄 클로즈 숏(MCS, medium close shot) 은 머리부터 가슴이나 허리 윗부분까지 잡히는 숏이다. 미 디엄 숏(MS, medium shot)은 머리부터 허리까지, 미디엄 롱 숏(MLS, medium long shot)은 머리부터 무릎까지 오는 숏을 말한다. 미디엄 풀 숏(medium full shot)이라고 부르 기도 한다. 인물에게 중간 정도로 다가간 숏들은 표정과 어 느 정도의 동작을 함께 보여 줄 수 있다. 몸 전체가 보이는 숏을 풀 숏(FS, full shot)이라고 한다. 롱 숏(LS, long shot)은 피사체와 그 주변이 일부 보이는 숏 이다. 인물을 느슨하게 잡은 숏에서는 액션이나 동선을 파 악하기가 쉽다. 또한 몸짓, 자세, 의상 등을 통해 인물의 상 태나 성격을 표현할 수도 있다. 익스트림 롱 숏(ELS, XLS, extreme long shot)은 피사체가 아주 작게 보일 정도로 멀 리서 찍는 숏이다. 주변 환경을 탁 트인 시선으로 보여 주 고자 할 때 사용된다. 또한 인물을 작고 약한 존재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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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도 있다. 대규모 인원을 보여 주기 위해 익스트림 롱 숏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때는 집단이 가지는 역동성 혹은 그 속에 흐르는 감정이나 분위기가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마스터 숏 프레임에 담긴 내용이나 카메라의 위치에 따라 숏을 구분 해서 부르기도 한다. 마스터 숏(master shot)은 장면의 시 작부터 끝까지의 내용을 담은 숏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장면의 설정이 잘 설명되도록 미디엄 숏이나 풀 숏 등의 느슨한 앵글(angle)로 공간 전체나 등장인물을 담는다. 일반적인 상업 영화에서 한 장면을 마스터 숏 하나만으 로 표현하는 경우는 드물다. 관객이 인물에 몰입되기보다 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지켜보게 되기 때문이다. 대개는 각도와 사이즈가 다른 여러 가지 숏들을 촬영하는데, 이를 커버리지(coverage)라고 한다. 커버리지가 많다는 것은 시나리오의 한 부분에 대해서 다양한 숏들이 중복되어 있 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커버리지는 해당 내용을 어떻 게 보여 줄 것인지, 편집 과정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 를 제공하는 것이다. 잘 촬영된 커버리지가 많을수록 창 의적인 편집이 가능해진다. 커버리지가 거의 없이 편집을 머릿속으로 미리 결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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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꼭 필요한 부분만을 촬영할 수도 있다. 이런 경 우는 대개 제작비가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는 감독 이 편집에 대한 남다른 확신을 가지고 다른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커버리지가 적으면 숏 과 숏을 연결하는 장면 편집 단계에서 편집자의 역할이 축 소된다.

두 인물의 숏 인물 두 명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경우, 한 사람을 보여 주는 숏이 있고, 반대쪽 각도에서 맞은편 사람을 보여 주 는 숏이 있을 수 있다. 이처럼 반대편을 보여 주는 숏을 리 버스 숏(reverse shot)이라고 한다. 같은 상황에서, 카메 라를 등지고 선 사람의 머리나 어깨가 프레임의 가장자리 에 걸린 채, 그 너머로 맞은편 사람을 촬영한 것이 오버 더 숄더 숏(OS, OTS, over the shoulder shot)이다. 숏/리버 스 숏, 오버 더 숄더 숏은 대화 장면에서 많이 활용된다. 각 인물을 단독으로 잡은 숏/리버스 숏으로 대화가 이 어질 수도 있고, 오버 더 숄더 숏으로 숏/리버스 숏이 연결 될 수도 있다. 오버 더 숄더 숏에서는 정면으로 보이는 사 람과 마주 선 사람의 감정이나 영향력이 서로에게 미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 각 인물의 단독 숏으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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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어나갈 경우에는 각 인물이 독립적으로 느껴지거나, 인물 각각의 감정과 대사에 집중하게 된다. 미카엘 하네 케(Michael Haneke)의 <아무르(Amour)>(2012) 초반에 나오는 노부부 조르주와 안느의 식사 장면에서, 각 인물의 숏은 맞은편에 앉은 배우자의 어깨 너머로 보인다. 반면 오랜만에 찾아온 딸 에바와 조르주의 거실 대화 장면에서 는 각 인물을 단독 숏으로 보여 준다. 인물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친근함의 정도가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만약 대 화 장면 편집에서 두 가지 커버리지가 모두 있다면 편집자 는 극적 흐름에 따라 어느 부분을 오버 더 숄더 숏들로 보 여 주고, 어느 부분을 단독 숏들로 보여 줄 것인지 결정하 게 된다. 투 숏(two shot)은 두 사람을 한 프레임에 잡은 숏이다. 투 숏에서는 관객들이 두 인물을 나란히 보기 때문에, 자 연스럽게 두 인물 간 조화나 부조화를 느끼게 된다.

시점 숏, 인서트, 컷어웨이 등장인물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그의 시점으로 보여 주 는 숏을 시점 숏(POV, point of view)이라고 한다. 시점 숏은 주관적인 관점을 보여 준다. 관객들은 시점 숏을 통 해 등장인물과 한층 가까워진다. 일반적으로 시점 숏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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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눈높이에서 촬영한 아이 레벨(eye level)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물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는 시점 숏도 있다. 시점 숏은 영화에서 심리적인 효과를 끌어낼 때 유용하 게 쓰인다. 등장인물이 바라보는 대상을 관객도 보고 싶 어 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평범한 주인공의 시 점일 경우에는 즉각적으로 시점의 주체와 공감대를 형성 하지만, 반대로 악역의 시점일 경우에는 프레임 속에 들어 있는 객체인 약자의 입장에서 공포를 느낀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포 영화나 스릴러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서는 시점 숏이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조너선 드미(Jonathan Demme)의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1991)에서 주인공 클라리스는 살 인범 버팔로 빌의 은신처를 찾아낸다. 범인이 전기를 내 리자 클라리스의 시야는 암흑이 되고, 적외선 고글을 쓴 범인의 시점 숏으로 클라리스가 보인다. 관객들은 범인의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긴장한 채 어둠 속을 헤매 고 있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한다. 인서트(insert) 숏은 사물이나 액션의 일부를 구체적으 로 보여 주는 숏이다. 인서트 숏은 누군가의 시점이 될 수 도 있고, 제3자의 객관적인 시점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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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일하는 회사원이 벽으로 시선을 돌리고 난 다 음에 나오는 벽시계 숏은 인서트 숏이면서 동시에 시점 숏 이다. 반면 일에 집중하고 있는 회사원의 모습 다음에 나 오는 벽시계 숏은 인서트 숏이지만 시점 숏은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액션이나 대화와 직접적으로는 상관없 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 장면과 연관이 있는 숏을 컷어웨이 (cutaway)이라고 한다. 스티븐 돌드리(Stephen Daldry) 의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2000)에서 빌리가 왕립 발레학교 실기 시험을 보는 장면 중간에 복도에서 기다리 는 아버지 모습이 두 번 컷어웨이 된다. 한가롭고 심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긴장한 빌리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면서 극적인 흥미를 높이고 있다. 빌리가 음 악을 틀기 전에 컷어웨이 된 아버지의 숏에서는 다른 수업 에서 들려오는 듯한 피아노 연주가 들린다. 빌리가 음악 을 틀고 한창 춤을 출 때 컷어웨이 된 아버지의 숏에서는 음악이 없다. 대조 효과를 높이기 위한 섬세함이 돋보이 는 부분이다. 인서트와 컷어웨이는 세부 요소를 통해 장면 내 흐름, 장면과 장면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매끄럽게 연결하기 어려울 때나 불필요한 액 션이나 대사를 생략하고 싶을 때, 인서트나 컷어웨이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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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해 관객의 시선을 다른 곳을 돌렸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이 너무 갑작스 러울 때, 인서트를 활용해 장소 변화, 시간 변화를 보여 준 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경우에도 맥락에 맞는 적절한 지점에서 인서트와 컷어웨이를 사용해야 한 다. 그래야만 장면의 흐름은 물론 중요한 정보나 추가적 인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카메라와 숏 촬영에서는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 렌즈를 이용해 장면 에 필요한 감정과 정보를 프레임에 담는다. 편집자는 촬 영본에 담긴 각각의 숏들이 어떤 감정을 유발하는지를 파 악하고 필요한 부분을 골라 연결한다. 카메라와 피사체의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다양한 앵글 이 가능하다. 같은 높이에서 촬영하면 아이 레벨, 피사체 보다 낮은 위치에서 올려다보며 촬영하면 로 앵글(low angle), 그 반대가 하이 앵글(high angle)이다. 로 앵글에 서는 피사체가 더 크고 높게 느껴지기 때문에 힘이나 권력 이 실리게 된다. 반면 하이 앵글에서는 피사체가 작고 연 약하게 보인다. 앨프리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싸이코(Psy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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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에는 로 앵글과 하이 앵글을 시점 숏으로 사용해서 등장인물의 심리를 더욱 실감나게 표현한 장면이 있다. 사라진 동생의 행방을 묻기 위해 릴라는 베이츠 부인이 살 고 있는 언덕 위 저택으로 향한다. 언덕 위에 있는 저택의 시점 숏은 하이 앵글로 릴라를 내려다보고, 릴라의 시점 숏은 로 앵글로 저택을 올려다본다. 거기에 인물의 동선 을 반영한 카메라의 움직임까지 더해지면서 장면의 긴장 감은 점점 높아진다.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on)의 <그래비티(Gravity)>(2013)에서는 주인공 라이언이 땅을 딛고 일어서는 순간 그녀가 느끼는 중력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로 앵글이 사용된다. 카메라의 움직임에 따라서도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팬(pan)은 프레임이 좌우, 수평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틸 트(tilt)는 프레임이 위아래, 수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팬 과 틸트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순차적으로 제공한 다. 장소, 중요한 단서, 인물을 새롭게 소개하거나 극적으 로 밝혀지게 할 때 사용된다. 팬이나 틸트 숏이 클로즈업 이면 피사체의 세부 요소를 관찰하고 주목하게 하는 효과 가 생긴다. 원래 팬과 틸트는 카메라의 몸체가 고정된 상 태에서 카메라만 좌우 혹은 상하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 지만, 핸드헬드(handheld)나 스테디캠(steadicam)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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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핸드헬드는 삼각대 없이 카메라를 들고 찍은 것이다. 핸드헬드는 불안정한 상태를 표현한다. 특히 편집에서 안 정된 숏과 나란히 배치되면 더욱 대비되어 과장된 표현이 가능하다. 스테디캠은 흔들림을 완충하는 장치를 통해 핸 드헬드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면서도 좀 더 안정적인 영상 을 제공한다.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의 <좋은 친구들(Goodfellas)>(1990)에서는 마피아 갱단의 일원인 헨리가 여자 친구를 데리고 레스토랑 뒷문에서 홀까지 데 려가는 과정을 스테디캠 숏으로 보여 준다. 편법으로 손 쉽게 이득을 취하는 헨리의 삶을 숏 하나로 압축해서 표현 하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샤이닝 (The Shining)>(1980)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호텔 복도를 돌아다니는 아이의 뒷모습, 광기에 휩싸인 아버지와 아 이의 쫓고 쫓기는 모습 등 공포감이 고조되는 장면에서 스테디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Quentin Tarantino)의 <펄프 픽션(Pulp Fiction)>(1994) 에서는 복도를 걸어가며 대화하는 빈센트와 줄스를 2분 43초의 긴 스테디캠 숏으로 보여 준다. 수다를 떠는 두 사 람의 모습이 다소 엉뚱하고 한심해 보이기 때문에 다음 장 면에서 가차 없이 배신자들을 향해 총격을 퍼붓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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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더치 앵글(Dutch angle, oblique angle, German angle) 은 프레임을 비스듬하게 한쪽으로 기울여서 촬영한 숏이 다. 팬이나 틸트와는 달리 더치 앵글은 일상생활에서 사 람들이 흔히 경험하는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에 혼란, 어지 러움, 기괴함, 심리적 불균형 등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페 르난도 메이렐리스(Fernando Meirelles)의 <콘스탄트 가 드너(The Constant Gardner)>(2005)에서는 주인공 저스 틴의 아내 테사의 갑작스러운 사고 장면을 더치 앵글 숏들 로 표현한다. 비스듬하게 한쪽 방향으로 프레임이 돌아가는 로테이 션(rotation) 앵글은 더치 앵글의 느낌을 더욱 증폭시킨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의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1979) 초반에 등장하는 주인 공 윌라드 대령의 침대 숏과, 코엔 형제(Joel/Ethan Coen) 의 <바톤 핑크(Barton Fink)>(1991)에서 주인공 핑크의 침대 숏은 그 대표적인 예다. 트래킹 숏(tracking shot)은 카메라가 피사체에 다가가 고 멀어지거나, 혹은 피사체 주변을 움직이면서 장면의 상 황에 더 쉽게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숏이다. 주로 바퀴나 트랙(track)을 이용하지만 핸드헬드나 스테디캠으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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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렌즈를 이용해 피사체를 가깝 게 당겨서 보여 주거나 멀어지도록 보여 주는 것이 줌 (zoom)이다. 앞뒤 방향으로 움직이는 트래킹 숏과 줌 숏 은 피사체의 크기가 달라지는 과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는 동일하다. 하지만 트래킹 숏은 피사체와 배경 간 거리 감이 지속적으로 달라지고, 줌 숏은 피사체가 마치 배경에 붙어있는 것처럼 둘 사이의 상대적인 거리에는 변화가 없 고 피사체의 크기와 함께 배경의 화각이 달라진다. 트래 킹 숏은 실제로 사람이 대상을 향해 다가가거나 멀어질 때 와 비슷한 시각적 경험을 주기 때문에 인물의 움직임이나 감정 변화를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반면 줌 숏은 피사체 를 인위적으로 주목하게 하거나 소외시킨다. 마이크 니컬스(Mike Nichols)의 <졸업(The Graduate)> (1967)에서, 대학을 졸업 후 고향 집에 머물던 벤은 이웃 에 사는 로빈슨 부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된다. 영화 중반에 벤은 아버지의 권유에 못 이겨 로빈슨 부인의 딸 일레인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러 간다. 이때 거실에 있는 로빈슨 부인 쪽으로 걸어가는 벤의 시점을 트래킹 숏으로 보여 준다. 부인과 거리감이 좁혀질수록 벤의 난처함과 두려움도 점점 커진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벤은 결혼식 중인 일레인을 발견하고 충격에 휩싸인다. 이때 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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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숏에는 빠른 줌 인(zoom in)이 사용된다. 히치콕은 <현기증(Vertigo)>(1958)에서 주인공 존의 현 기증을 표현하기 위해 파라마운트의 B팀 촬영기사였던 어 먼 로버츠(Irmin Roberts)가 개발한 돌리 줌(dolly zoom) 을 사용했다. 달리 줌은 트랙과 줌을 동시에 쓰는 촬영 기 법으로 이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 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존의 시점 숏은 줌 아웃 트랙 인 (zoom out track in)으로 촬영된 것이다. 멀어지는 줌과 다 가가는 트래킹이 서로 상쇄 효과를 일으키면서 특정 피사 체의 크기는 그대로 유지되고, 화각이 넓어지면서 배경만 멀어진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죠스 (Jaws)>(1975)에서도 같은 효과를 이용해 상어를 발견한 경찰서장 마틴의 충격을 표현했다. 스코세이지의 영화 <좋은 친구들>에서는 젊은 마피아 조직원 헨리가 중간 우두머리인 제임스를 만나는 장면에 서 줌 인 트랙 아웃(zoom in track out)이 사용되었다. 두 사람은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뒷배경 때문에 헨리가 느끼고 있는 두려 움과 압박감을 관객들도 함께 느끼게 된다. 카메라를 크레인에 달고 촬영한 크레인 숏(crane shot) 이나 소형 헬기 등에 장착해 촬영한 공중 숏(aerial 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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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도시나 자연 의 풍광을 담는다. 장소를 극적으로 소개하거나, 상황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하거나, 역동성을 강조할 때 사용한 다. 이준익의 <왕의 남자>(2005)에서 남사당패를 탈출한 장생과 공길은 한양에 가기로 결정한다. 들꽃이 만발한 언덕을 신나게 달려 내려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공중으로 붐 업(boom up)하는 크레인 숏으로 보이면서, 미래에 대 한 두 사람의 희망이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렌즈의 특성에 따라서도 숏의 내용이 달라진다. 광각 렌즈를 통해 넓은 화각을 보여 주는 숏을 와이드 앵글 (wide angle)이라고 한다. 초점이 맞춰지는 심도가 깊기 때문에 전경, 중경, 후경의 상황을 모두 보여 줘야 할 때도 사용된다. 이창동의 <시>(2010)에서 학부모들 점심 모임 에 참석한 미자는 그 자리가 아이들이 저지른 사건의 대책 을 강구하는 자리임을 깨닫는다. 미자는 자리에서 슬그머 니 빠져나가 화단의 꽃들을 살펴본다. 전경의 학부모들과 유리창 너머 후경의 미자가 모두 뚜렷하게 보이면서, 현실 적인 문제 해결에 급급한 학부모와 시상(詩想)을 떠올리 려고 애쓰는 미자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어안 렌즈(fisheye lens)는 180도 이상의 넓은 화각을 한 프레임에 담아서 보여 준다. 인물의 왜곡된 심리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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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대런 아로노프스키(Darren Aronofsky)의 <레퀴엠(Requiem for a Dream)>(2000)에 서는 약물 중독에 빠진 등장인물들을 어안 렌즈로 묘사한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망원 렌즈(telephoto lens)는 멀리 있는 피사체를 당겨 서 보여 줄 수 있지만 원근감이 압축되기 때문에 전경의 피사체와 후경의 배경이 밀착되어 보인다. 영화 <졸업>의 후반부에서 일레인의 결혼식을 중지시키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벤의 모습은 망원 렌즈로 촬영되었다. 카메라 정 면을 향해 달리고 있는 벤은 압축된 공간감으로 마치 제자 리를 달리는 것처럼 보이고, 관객들도 그의 답답한 심경에 동참하게 된다.

숏의 이해 어떤 숏을 어떻게 찍을 것인지는 촬영 단계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촬영한 숏에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는 편집 단계에서 결정된다. 편집자는 동일한 내용을 담 고 있는 커버리지 중에서 어떠한 숏을 쓸 것인지를 결정한 다. 또한 결정한 숏의 여러 테이크들 중에서 어떤 부분을 사용할 것인지 결정한다. 촬영 현장에서는 기록을 맡고 있는 스크립터가 각 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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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에 대한 감독의 평가를 스크립트 양식에 표기한다. 만 족스러운 정도에 따라 OK(좋은 테이크), Keep(판단을 유 보한 테이크), NG(물리적인 문제가 있거나 불만족스러운 테이크)로 기록한다. 편집실에서는 현장의 평가를 존중하 되, NG 테이크까지 모두 검토하고 재평가한다. 왜냐하면 현장의 평가는 해당 테이크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이기 때 문이다. 예를 들어 배우가 도중에 대사를 틀려서 NG로 기 록되었다 하더라도 앞부분의 좋은 연기는 편집에서 사용 할 수 있다. 관객은 편집으로 완성한 영상에서 정보와 감정을 얻게 된다. 편집자는 각 장면과 전체 영화를 통해 감독이 전달 하려고 하는 이야기와 감정이 무엇인지 세심하게 그려 내 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촬영된 숏들 속에 담긴 의미 를 잘 파악하고 이를 편집에 반영한다. 촬영 현장에서 의 도했던 감정이나 정보 전달이 숏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 는 경우, 편집자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숏을 재구성해 원래 의도가 살아나도록 편집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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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Bordwell, D. & Thompson, K.(2008). Film Art: An

Introduction(8th edition). New York: McGraw-Hill. Chandler, G.(2004). Cut by Cut. Studio City: Michael Wiese Productions. Chandler, G.(2009). Film Editing: Great Cuts Every Filmmaker

and Movie Lover Must Know. Studio City: Michael Wiese Productions. 민경원 역(2013), 󰡔장면으로 직접 보는 위대한 편집 문법󰡕.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Hayward, S.(1996). Cinema Studies: The Key Concepts. London: Routledge. 이영기 역(1997), 󰡔영화 사전: 이론과 비평󰡕. 서울: 한나래. Sijll, J. V.(2005). Cinematic Storytelling. Studio City: Michael Wiese Produ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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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편집의 기준

촬영본을 보면서 어느 부분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선택할 때, 편집자는 여러 가지 측면을 동시에 고려한다. 이미지, 사운드, 배우의 동작, 시선, 감정 등 장면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거의 동시에 파악하며 컷을 한다.


에드워드 드미트릭−편집의 7원칙 10년간 편집자로 활동하고, 이후 감독으로 전향해 50여 편 의 작품을 연출한 에드워드 드미트릭(Edward Dmytryk) 은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편집의 일곱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Dmytryk, 1984).

1 분명한 이유 없이 컷을 하지 않는다

모든 컷(cut)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숏이 너무 긴 것 같아서 컷을 해서는 안 된다. 숏(shot)의 길고 짧음 에 대한 판단은 장면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정보를 어떤 숏으로 전달하는 것이 가장 극적으로 효과적인가를 판단 해서 숏을 전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화 장면에서 두 사람의 풀 숏(full shot)으 로 시작했다면 언제 미디엄 숏(medium shot)으로 넘어갈 것인가? 누구를 먼저 보여 줄 것인가? 어깨를 걸고 보여 줄 것인가? 클로즈업(close-up)은 언제부터 쓸 것인가? 장 면 편집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관객이 자 발적으로 더 몰입하게 되는 부분 혹은 몰입을 이끌어 내야 하는 부분에서 점점 더 다가가서 찍은 숏들을 사용한다. 클로즈업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지만, 남용하면 그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화제가 전환되거나 분위기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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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해지면 다시 느슨한 미디엄 숏이나 풀 숏을 연결한다. 만약 중요한 물건을 떨어뜨린다면, 그 순간 그 물건을 보 여 주는 클로즈업과 당황하는 인물의 반응 숏이 연결될 수 도 있다.

2 어느 프레임에서 컷을 할지 결정하기 어려울 때, 숏을 짧게 자 르는 것보다 길게 자르는 것이 낫다

짧은 숏보다 긴 숏이 나은 이유는 이후에 수정할 때를 대 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숏의 앞부분이나 끝부분을 많이 잘라냈다가 나중에 다시 길게 연장하는 것보다는 약간 긴 상태에서 잘라내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이것은 필름을 직접 편집하던 시대에 나온 기준이지만, 디지털 방식의 편 집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연결된 숏과 숏의 경계인 커 팅 포인트(cutting point) 주변의 프레임(frame)을 조정하 며 트리밍(trimming)할 때, 숨어 있는 프레임을 하나씩 혹 은 5~20개씩 세면서 살려 내는 것보다는 여유 있게 연결 된 숏을 재생하며 보다가 ‘그래, 여기야’라고 느껴지는 순 간 키보드를 눌러 커팅 포인트가 자동으로 보정되게 하는 것이 좋다. 편집은 프레임을 세는 작업이 아니라 흐름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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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능하면 ‘움직임’ 중에 컷을 한다

움직임 중에 편집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편집을 시작하 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내용이다. 사람의 눈은 움 직임에 민감하다. 움직이는 동안 숏 전환이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동작의 흐름에 집중하느라 컷을 보지 못하거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앞 숏과 다음 숏의 움직임이 물리 적으로 정확하게 연결된다고 해서 반드시 자연스럽게 보 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3~5 프레 임 정도 동작이 겹쳐지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동작의 중간을 몇 프레임 생략할 때 더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 편집자는 그 주변을 반복해서 보고 트리밍을 거듭하며 가장 적절한 커팅 포인트를 찾아낸다. 움직임은 숏의 전 환뿐만 아니라 장면의 전환에서 창의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4 관객은 새로운 정보를 선호한다

가령 인물이 앞 숏에서 빠져나가고 연결된 다음 숏에서 들 어온다고 가정하자. 이때 앞 숏에서 인물이 프레임 아웃 (frame out)하고 난 뒤에는 더 이상 프레임을 남겨 두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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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다. 움직임을 따라가는 관객의 시선 흐름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남은 프레임에는 관객이 관심을 둘 만한 시각적 요소가 없다. 남은 프레임들은 불필요하게 영화의 시간만 길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떠한 이유로 이 두 숏 사이에 여유가 필요하다면 다음 숏에 인물 이 등장하기 전을 활용하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다음 숏은 관객에게 신선한 시각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5 모든 장면의 시작과 끝에는 연기가 진행 중이어야 한다

숏의 시작에서 배우가 액션을 준비하거나 기다리는 모습 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경험이 부족한 감독들은 간혹 편 집에 사용될 부분만을 촬영하는 실수를 범한다. 모든 동 작이나 연기는 제 궤도에 오르기 위한 준비 단계를 거친 다. 편집에 쓰는 것보다 길게 연출하고 촬영해야 액션이 온전하게 진행되고 있는 부분을 골라 사용할 수 있다. 가령 복도를 걸어가는 발 숏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걷고 있는 상태를 앞뒤로 충분히 여유 있게 촬영해야만 확실하 게 잘 걷는 부분을 골라 편집할 수 있다. 숏의 끝 부분도 마 찬가지다. 배우가 대사나 중요한 액션을 끝낸 후에도 연기 를 계속하고 있어야만 편집에서 적절한 타이밍을 골라 컷 을 할 수 있다. 특히나 편집 과정에서 앞 숏과 다음 숏이 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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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지며 전환되는 디졸브(dissolve)를 추가해야 할 때, 사용 된 부분의 앞뒤에도 연기가 지속되는 여유분이 있어야 효 과를 만들 수 있다.

6 정확한 ‘연결’보다는 적절한 ‘의미’ 전달을 위해 편집한다

드미트릭은 편집의 미학보다 영화의 극적인 요소를 우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숏의 연결로 극의 흐름이 잘 연결 된다면, 그 사이의 불일치(mismatch)는 무시해야 한다. 현장은 매우 바쁘고 고려할 사항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실수도 많다. 연결되는 숏들에서 배우의 의상, 소품, 동작, 표정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일치하기는 어렵다. 편집자 는 관객이 무엇에 주목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관객의 시선이 다른 곳을 주목하고 있다면 뻔히 보이는 불일치도 전혀 인식되지 않는다.

7 형식보다 ‘본질’이 중요하다

드미트릭은 편집 기법과 편집자의 노력을 강조한 자신의 저서 말미에서 좋은 영화란 인간미를 느끼도록 하는 작품 이고 모든 기교는 그것을 위해 사용할 때 의미가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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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머치−편집의 6원칙 사운드 디자이너이자 편집자인 월터 머치(Walter Murch)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1979), <사랑과 영혼 (Ghost)>(1990), <대부 3(The Godfather: Part III)>(1990), <카멜롯의 전설(First Knight)>(1995), <잉글리쉬 페이션 트(The English Patient)>(1996),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1999), <콜드 마운틴(Cold Mountain)>(2003), <자헤드(Jarhead)>(2005)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편 집과 사운드를 동시에 담당했다. 그는 영화 편집에 대한 에세이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편집의 여섯 가지 기준을 소개했다(Murch, 2001).

1 감정

여기서 말하는 감정은 격한 감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 다. 어떤 종류의 감정이든, 편집자는 관객들이 어떤 감정 을 느끼길 바라는지를 계속 생각하며 편집해야 한다. 감 정의 흐름이 영화 전반에 걸쳐 효과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면 좋은 편집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이 영화관을 떠날 때 기억하는 것은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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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야기

영화는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장면의 내용을 관객이 이해 할 수 있어야 하고, 편집을 통해 이야기가 앞으로 진행해 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조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3 리듬

적절한 타이밍에 숏이 전환되게 함으로써 관객이 장면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영화의 리듬은 숏과 숏 사이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에도 해당되는 개념이다. 정확한 타이밍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편집자 자신의 몸의 리듬감도 중요하다. 결국 커팅 포인트를 클릭하는 것은 편집자의 손가락이다. 머치는 몸의 운동 감각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편집 시스템을 높은 작업대 위에 설치하고 서서 편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4 시선의 흐름

관객은 스크린을 볼 때 프레임 전체를 보지 않는다. 각 숏 의 프레임에는 대부분의 관객이 주로 주목하게 되는 시각 적 요소가 있다. 편집자는 관객들이 무엇에 주목하는지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숏을 전환할 때 관객이 주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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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요소도 자연스럽게 연결해야 한다. 머치는 마치 물이 가득 담긴 컵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관객의 시선이 흐트러 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Apple, 2004). 물론 의도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연결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가령 전투 장면이나 폭력적인 장면에서는 컷이 바 뀔 때마다 시선을 방해하여 관객들이 더 혼란스러움을 느 끼도록 만들기도 한다.

5 2차원적 방향감

영화는 2차원의 스크린 위에 현실의 공간을 담아 낸다. 관 객들은 스크린에 보이는 내용만으로도 자연스럽게 공간 을 파악한다. 가장 효과적이고 즉각적으로 공간을 파악하 게 하는 방법이 바로 180도 법칙(180 degree rule)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이라고 했을 때, 한 사람은 오른쪽을 바라보고 한 사람은 프레임의 왼쪽을 바라보게 된다. 어떤 사이즈의 숏을 연결하더라도 각 인물이 바라 보는 방향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관객들이 마주 본 두 사람의 상대적 위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세 명 이상이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주로 대화하는 두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가상선(imaginary line)이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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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된다. 이때는 인물의 동선이나 카메라의 움직임, 숏 의 배치를 통해 180도 법칙을 위반하지 않고 가상선이 전 환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 편집해야 한다.

6 3차원적 공간감

숏이 바뀌어도 스크린 속 인물들 사이의 상대적인 위치, 혹은 공간 내 위치, 혹은 사물과 거리감은 연속성을 가져 야 한다. 예를 들어 멀리 떨어져 있던 인물이 걷기 시작하 자마자 컷이 되었는데 다음 숏의 시작에서 바로 가까이 다 가와 있으면 연속성이 깨진다. 그때는 중간에 다른 인물 이나 사물을 보여 주는 숏을 삽입해 인물이 걸어올 시간을 만들어 준다. 여섯 가지 기준의 순서는 각 항목의 중요도에 따른 것 이다. 감정, 이야기, 리듬은 나머지 세 항목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또한 이들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대체로 이 세 항목은 따로 분리되지 않고 함께 간다. 리듬 이 좋으면 이야기가 잘 진행되고 감정도 효과적으로 전달 되기 마련이다. 이들 상위 기준은 실질적인 차원에서도 하위 기준들보 다 더 중요하다. 즉, 공감이 가고 이야기가 흥미롭고 적절 한 리듬으로 진행되면, 관객들은 시선, 180도 법칙,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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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연속성에 문제가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상위 기준과 하위 기준이 충돌했을 때는 상위 기 준을 우선순위에 두고 판단하게 된다. 가령 장면에 필요 한 감정과 이야기는 잘 흐르는데, 3차원적 공간의 연속성 에 문제가 있다면 후자를 희생시키고 그대로 진행한다. 감정, 이야기, 리듬의 가치가 더 클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나머지 세 항목이 주로 숏과 장면 단위의 연속 성에 관한 요소인데 반해, 감정, 이야기, 리듬은 숏과 숏 사 이뿐만 아니라 장면, 시퀀스(sequence), 영화 전체를 구성 하는 요소다. 머치는 각각의 항목에 대해 중요도를 감정 51퍼센트, 이야기 23퍼센트, 리듬 10퍼센트, 시선의 흐름 7퍼센트, 2 차원적 방향감 5퍼센트, 3차원적 공간감 4퍼센트로 매겼 다. 각 항목의 개별 수치보다는, 다른 항목을 모두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감정에 두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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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Apple. W.(2004). <The Cutting Edge: The Magic of Movie Editing>. Burbank: Warner Home Video. 󰡔최첨단 편집: 영화편집의 마술(DVD)󰡕(2005). 서울: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Dmytryk, E.(1984). On Film Editing. Oxford: Focal Press. Murch, W.(2001). In the Blink of an Eye: A Perspective on Film

Editing(Revised edition). Los Angeles: Silman-James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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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편집의 발전

편집은 영화의 언어다. 숏과 숏의 연결이라는 문법을 통해 관객은 영화의 내용을 이해한다. 이러한 문법은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창의적인 도전의 결과다. 어떠한 도전은 실험으로 그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어떠한 도전은 꾸준히 개발되어 보편적인 문법이 되었다.


영화의 시작 최초의 영화라고 부르는 뤼미에르 형제(Auguste/Louis Lumière)의 작품들, <열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1895)이나 <뤼미에르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La Sortie de l’usine Lumière à Lyon)>(1895) 등 은 대부분 40~50초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영화는 이 야기와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었다. 예외적으로 <물 뿌리는 정원사(L’Arroseur arrosé)>(1895)만 연출된 이야 기였다. 필름을 자르거나 붙이는 개념은 전혀 없던 시절이 었다.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는 <달나라 여행(Le Voyage dans la Lune)>(1902)에서 완전히 만들어진 환상 적인 세계와 이야기를 13분 정도의 길이로 소개했다. 그 는 장소의 변화에 따라 필름을 이어 붙였다. 하지만 극적 인 효과를 위해 숏(shot)을 구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 정한 의미의 편집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편집의 시작 최초로 편집이 보이는 영화는 에드윈 S. 포터(Edwin S. Porter)의 <미국 소방관의 생활(Life of an American Fireman)>(1903)이다. 포터는 현장으로 출동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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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진압 상황의 긴박함을 보여 주기 위해 여러 숏을 연 결해서 표현했다. 이전까지 방식이라면 한 숏으로만 보여 줬을 법한 상황을 여러 숏으로 나누어 보여 준 것이다. 하 나의 액션 상황을 일부러 나누고 이를 다시 연결해서 원래 의 액션을 구축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다. 장 면 내에서 사건은 실제 진행 시간대로 진행하지 않는다. 숏의 연결을 통해 ‘영화적 시간’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대열차 강도(The Great Train Robbery)>(1903)에서 는 도망가는 강도들, 이전에 강도들에게 포박되었던 통신 사의 구출, 마을 잔치라는 물리적 연관성이 없는 세 숏이 차례로 연결된다. 하나의 상황을 계속 따라가는 것이 아 니라 여러 가지 상황이 평행적으로 진행된다. 동일한 시 간대에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교대로 보여 주는 교차 편집(cross-cutting)의 초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편집의 역할 확대 D. W. 그리피스(D. W. Griffith)의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1915)에 이르면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편집 기법들이 나타난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의 암살이 일어나는 장면에서 그리피스는 사건과 공 간을 극적으로 재구성한다. 링컨의 일행, 암살자, 무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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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중인 배우들, 관객석의 엘시와 벤으로 인물군을 나누 고 이들의 숏을 번갈아 보여 주며 인터커팅(intercutting)한 다. 공간의 이동이나 카메라의 위치 변경 등의 물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순전히 극의 몰입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편집을 이용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세부 사항을 보여 주기 위한 클로즈업(close-up), 프레임(frame)의 특 정 부분만을 주목하게 하는 아이리스(iris), 과거 회상을 보 여 주는 플래시백(flashback), 엘시의 구출과 KKK단의 전 투 상황을 동시에 진행시키는 평행 액션(parallel action) 등 다양한 편집 기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편집에 의한 섬세한 표현으로 영화의 내러티브 (narrative)는 더욱 큰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또한 배우의 호흡이 아니라 편집을 통해 긴장감과 리듬을 형성하는 것 이 일반화되었다. 이로써 ‘숏은 얼마나 지속되어야 하는 가’라는 편집의 가장 근원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러시아 영화 러시아에서는 그리피스처럼 장면 숏들의 연결과 구성을 중요시하는 레프 쿨레쇼프(Lev Kuleshov)와 프세볼로트 푸돕킨(Vsevolod Pudovkin)의 견해와, 숏들의 충돌을 강 조하는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Sergei Eisenstein)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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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서로 대립하면서 발전했다. 푸돕킨과 쿨레쇼프는 배우 이반 모주킨(Ivan Mozzhukhin)의 표정을 담은 동일한 숏 을 수프 접시, 관 속의 죽은 여인, 어린 소녀 숏에 각각 연 결하는 실험을 했다. 각기 다른 세 개의 조합에서 모주킨 의 연기는 배고픔, 슬픔, 행복감으로 다르게 해석되었다. 숏과 숏의 상호 관계의 중요성을 밝힌 실험이었다. 반면 예이젠시테인은 숏과 숏이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 며 새로운 의미와 상징을 창출해야 한다는 ‘지적 몽타주’를 주장했다. 그의 영화 <10월(Oktyabr)>(1928)을 보면, 계 단을 오르는 알렉산드르 케렌스키(Aleksandr Kerenskii) 와 독재자, 대원수, 장관 등의 자막이 연결되기도 하고 나 폴레옹 흉상 샷과 그의 샷이 교차되기도 한다. 권력에 대한 야망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연결’과 ‘충돌’은 지금 까지도 영화 편집 스타일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기준이 되 고 있다.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 (Chelovek s kino-apparatom)>(1929)에서는 반복적으로 카메라나 렌즈를 보여 주는 숏이 삽입된다. 관객에게 영 화가 편집이라는 인공적인 재구성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또한 이야기 전달이나 주제 의식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우면서도 실험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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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숏 전환 방식을 선보였다. 알렉산드르 도브젠코(Aleksandr Dovzhenko)는 내러 티브도 다큐멘터리도 아닌 또 다른 편집 스타일을 보여 주 었다. 그는 영화 <대지(Zemlya)>(1930)에서 넓은 평원들, 해바라기 옆에 선 여인, 나무에 열린 사과, 떨어진 사과에 둘러싸여 죽어 가는 노인을 보여 주는 숏을 차례로 연결하 는 등 내러티브 논리를 따르지 않는 편집을 통해 시적인 영상을 만들어냈다. 시각적 요소의 결합을 중시한 그의 편집 스타일은 후대의 전위적 편집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 가 되었다.

사운드의 도입 편집 기법의 대부분은 무성영화 시대에 구축되었다. 시각 적 요소로만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는 일종의 표현적 한 계가 시각적 연결을 더욱 창의적으로 발전시켰다. 사운드의 도입은 영화의 발전 방향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 사실적인 효과음과 대사로 효과적인 설명과 정보 전달이 가능해졌다. 불필요한 설명을 생략하고 더욱 경제 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게 되면서 그만큼 더 복잡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영화의 표현이 일 상과 유사해지면서 무성영화 시절에 발전했던 시각적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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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창의적 활용, 연상이나 상징 등의 표현 기법은 상대 적으로 약화되었다. 비동시적(unsynchronized) 방식의 사운드를 통한 새 로운 편집 시도들도 이어졌다. 앨프리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영화 <협박(Blackmail)>(1929)에서 주인공 앨리스는 살인 후 죄책감에 시달린다. 히치콕은 그녀가 주변 사람들과 대화에서 ‘칼(knife)’이라는 단어만 반복적 으로 듣는 것처럼 표현했다. 주관적 심리 묘사에 사운드 를 활용한 것이다. 프리츠 랑(Fritz Lang)은 <엠(M)>(1931)에서 살인범에 게 납치된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의 시퀀스(sequence)를 사운드 중심으로 표현했다. 창밖을 향해 딸의 이름을 부 르는 엄마의 사운드는 사실적인 사운드다. 그러나 계속해 서 ‘엘시’를 애타게 찾는 사운드 위로 아무도 없는 계단, 텅 빈 빨래터의 숏이 연결된다. 엄마의 소리가 사라지고 빈 식탁, 혼자 굴러가다 멈추는 엘시의 공, 엘시가 살인범에 게 받았던 풍선 인형이 전깃줄에 걸린 숏이 이어진다. 극 적인 효과를 위해 사실적인 사운드를 표현 기법으로 사용 할 뿐만 아니라, 사운드의 부재를 통해 긴장감을 더욱 높 이고 있다. 또한 살인범이 쫓기게 되는 중요한 계기를 장 님이 들은 휘파람 소리로 설정해 사운드 자체를 내러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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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핵심 소재로도 활용했다. 살인범을 잡으려는 경찰 조 직과 범죄 조직의 회의 장면에서는 대사를 이용한 교차 편 집도 선보였다. 대사의 흐름에 맞춘 편집으로 극적 흥미 를 높이고, 사운드를 통해 공간과 시간을 압축적으로 표현 한 것이다. 사운드가 도입되면서, 자연스러운 연결을 통 해 관객의 몰입을 추구하는 연속 편집(continuity editing) 의 발전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참고문헌 Bordwell, D. & Thompson, K.(2008). Film Art: An

Introduction(8th edition). New York: McGraw-Hill. Dancyger, K.(2007) The Technique of Film and Video Editing:

History, Theory, and Practice(4th edition). Burlington: Elsevier. 오명훈 역(2011), 󰡔영화 편집: 기술, 역사, 이론, 미학󰡕.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Giannetti, L.(2010). Understanding Movies(12th Edition). Pearson. 박만준·진기행 역(2012), 󰡔영화의 이해󰡕. 서울: 케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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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연속 편집과 불연속 편집

편집 행위는 숏의 물리적인 분리를 기본 전제로 한다. 숏이 바뀌는 것은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킨다. 그런가 하면 효과적인 숏의 연결은 이야기의 진행을 훨씬 흥미롭게 한다. 결국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관객이 숏을 연결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면서도 이야기와 감정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전략이 필요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구축된 연속 편집은 오늘날 가장 지배적인 편집 방식이다. 반면 관객을 수동적인 자세로 만드는 연속 편집의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며, 대안적 편집 방식으로 불연속 편집을 추구하는 영화들도 있다.


연속 편집 180도 법칙

연속 편집(continuity editing) 방식에서는 180도 법칙(180 degree rule)을 지켜 숏(shot)을 촬영하고 편집한다. 예를 들 어 두 인물이 마주 보고 대화한다고 가정하자. 두 인물 사이 에 가상선(imaginary line, stage line)을 설정하고 촬영 단계 에서 카메라가 그 선을 넘지 않으면서 촬영한다. 톰 후퍼 (Tom Hooper)의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2010) 에서 앨버트 왕자 부부는 언어 치료를 받기 위해 치료사 라 이어널을 찾아간다. 그들은 입구에서 말을 더듬으면서도 용감하게 인사말을 전하는 어린 소년을 만난다. 가상선은 앨버트 왕자 부부와 소년 사이에 존재한다. 앨버트 부부는 각각의 단독 숏에서 항상 오른쪽을 바라보고, 소년은 계속 왼쪽을 보며 이야기한다. 방향이 일정한 숏/리버스 숏 (shot/reverse shot)의 연결을 통해 앨버트 부부와 소년이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상황이 명확하게 설정된다. 180도 법칙은 관객들에게 일정한 공간과 방향감을 보장한다. 이어서 앨버트는 라이어널의 안내를 받으며 치료실로 들어간다. 그는 프레임(frame)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빠 져나가며 프레임 아웃(frame out)하고, 다음 숏에서는 왼 쪽에서 프레임 인(frame in)하며 들어온다. 관객들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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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움직이는 방향을 왼쪽에서 오른쪽이라고 인식하고, 다 음 숏에서도 그것을 기대한다. 연속 편집에서는 숏이 바 뀌어도 일정한 스크린 디렉션(screen direction)을 유지함 으로써 안정적인 공간감을 제공한다. 만약 기대와 달리, 다음 숏에서 인물이 오른쪽에서 프레임 인한다면 관객들 은 그가 우왕좌왕하며 헤매고 있다고 여기거나 그 공간을 재해석하느라 순간적으로 생각이 분산된다. 만약 인물이 가던 방향을 바꾸어 걷는 설정이라면 반드시 프레임 내에 서 방향을 전환하며 돌아서는 것을 관객이 목격해야 한다.

시선의 일치

공간적인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두 번째 기법은 시선의 일치(eyeline match)다. 한 숏에 인물이 무언가를 쳐다보 았다면, 다음 숏은 그가 무엇을 보는지를 보여 줘야 한다. 그의 시선과 완전히 동일한 시점 숏(point of view)일 수도 있고 객관적 시점으로 그가 보는 것을 보여 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관객은 인물의 시선에 집중하기 때문에, 다음 숏은 그의 시선을 따라 이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 다. 또한 시선에 따른 앵글(angle)도 일치시킨다. <킹스 스피치>의 치료실 입구 장면에서 앨버트 부부에 비해 소년은 키가 매우 작다. 앨버트 부부의 단독 숏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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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는 소년의 단독 숏은 줄곧 하이 앵글(high angle)로 부부의 시선을 대변한다. 문을 열고 나온 라이어널은 소 년에게 칭찬을 한 후, 공작 부인과 앨버트 왕자에게 차례 로 인사를 건넨다. 이 숏은 라이어널의 단독 숏임에도 불 구하고, 관객들은 라이어널의 시선이 세 번에 걸쳐 바뀔 때마다 누구를 향하는지 알고 있다. 말하는 사람의 시선 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사람의 반응 숏을 연결하면 관객들 은 그 사이 컷(cut)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대화 내용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동작의 일치

연속 편집에서는 이러한 집중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 앞 숏과 다음 숏의 동작을 자연스럽게 일치시켜 연결(match on action)한다. <킹스 스피치>의 장면에서 문을 열고 나 오는 소년의 단독 풀 숏(full shot) 다음에 소년의 등 뒤 쪽 에서 앨버트 부부를 보여 주는 풀 숏이 연결된다. 앞 숏에 서 걸어오고 있던 소년은 다음 숏의 시작에서도 걸어가고 있다. 동작의 일치를 전제로 할 때,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숏 전환의 기회가 된다. 사람의 눈은 움직임에 민감하기 때문에 움직임 중에 컷이 될 경우 컷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동작 자체에 더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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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와 각도의 변화

연속 편집에서는 장면 속의 어떤 인물을 연이은 숏으로 보 여 줄 때 앞 숏과 다음 숏의 사이즈 차이가 명확하다. 앞 숏 이 풀 숏이라면 다음 숏은 미디엄 숏(medium shot), 클로 즈 숏(close shot), 익스트림 클로즈업(extreme close-up) 등이 연결된다. 연결되는 숏이 거의 비슷하면 관객의 눈 은 컷이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숏 사이즈가 다르면 새롭게 제시되는 시각적 정보, 즉 숏의 내용에 집중하게 된다. <킹스 스피치>에서는 앨버트 부부를 맞이하는 라이어 널을 연이어 두 숏으로 연결해서 보여 준다. 이때 앞 숏은 롱 숏(long shot), 다음 숏은 미디엄 숏으로 확연한 사이즈 차이를 보인다. 한 인물을 보여 주는 연이은 숏들은 촬영 각도가 30도 이상이라야 자연스럽다. 동일한 각도로 풀 숏에서 미디엄 숏으로 연결되면 인물의 동작이나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 도 쉽게 눈에 띈다. 이것이 30도 법칙(30 degree rule)이다. 라이어널을 보여 주는 연이은 두 숏도 뒤로 멀리 보이 는 치료실 벽을 보면 각도가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앞 숏은 하이 앵글이었고 다음 숏은 아이 레 벨(eye level)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시각 정보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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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의 지속

사운드의 지속은 장면의 현장감과 사실성을 살려 준다. 일반적인 경우, 한 장면 안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연속적이 다. 사운드는 공간과 시간을 유지시켜 주는 강력한 도구 다. <킹스 스피치>에서 소년의 인사말은 소년의 숏뿐만 아니라 앨버트 부부의 숏에서도 계속해서 들린다. 관객들 은 컷을 인식하기보다는 소년의 말을 이어 들으면서 자신 처럼 경청하고 있는 앨버트 부부의 반응에 집중한다. 인사말이 끝난 소년이 고개를 돌리면 치료실 안쪽의 라 이어널 숏으로 넘어가고, 그 위로 소년의 목소리가 계속해 서 들린다. 관객들은 라이어널의 치료실이 입구와 연결된 바로 그 공간이며, 라이어널이 모든 상황을 듣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영상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을 경우에 사운드를 활용하 면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 앨버트가 치료실에 들어가는 순간을 자세히 보면 뒤로 물러서는 라이어널의 동작이 실 제로는 앞 숏과 다음 숏에서 두 번 반복된다. 이는 편집자 가 앨버트의 표정과 움직임을 중심으로 컷을 했기 때문이 다. 편집자의 예상대로 관객들은 라이어널의 동작이 반복 되었다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그 이유는 우선 관 객들이 앨버트의 표정에 주목하기 때문이고, 더불어 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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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라이어널의 발자국 소리, 마룻바닥의 삐걱대는 소리, 옷 스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상황을 이어주기 때문이다. 적절한 지점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음악의 삽입도 편집 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시간과 공간이 연결 되지 않는 일련의 숏들을 연결해 특정 내용이나 감정을 전 달하는 몽타주(montage) 시퀀스에서 대개 음악을 사용하 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장면이 전환되는 지점에서 음악이나 대사가 바로 앞 장면의 말미에 먼저 선행된 후 영상이 바뀌거나, 반대로 앞 장면의 사운드가 다음 장면의 초반까지 살짝 넘어가도록 해서 장면 전환을 부드럽게 넘 기는 기법도 자주 사용된다. <킹스 스피치>에는 라이어널의 치료를 받기 시작하는 앨버트의 모습을 보여 주는 몽타주 시퀀스가 나온다. 몽타 주에는 각기 다른 날의 연습 장면과 행사장에서 연설하는 모습이 섞여 있다. 분리된 시간이나 공간을 의식하지 않 고 라이어널의 치료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데는 무엇 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클라리넷 협주곡의 역할이 가장 크다. 음악의 경쾌한 선율과 리듬은 즉각적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 는다. 그런가 하면 몽타주 내부의 각 장면 대사들이 바로 앞 장면 혹은 다음 장면까지 조금씩 걸리도록 배치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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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몽타주가 시작되는 부분에서도 바로 직전 앨버트의 숏 말미부터 라이어널과 앨버트의 연습 소리와 음악이 차례 로 선행해 나온 후 몽타주 화면이 시작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몽타주가 끝난 후 다음 장면의 앞부분까지 살짝 이 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장면으로 넘어간다.

톤과 타이밍

연결되는 숏들의 조명이나 색조에 의한 톤(tone)의 일치 도 연속성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영상의 톤은 촬영, 조명, 미장센(mise en scéne)을 통해 제작 현장에서 조정하고 후반 작업에서 색 보정으로 보완한다. 편집 단 계에서는 촬영본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톤의 조화를 염두 에 두면서 숏을 선택하고 연결한다. 적절한 숏의 타이밍(timing), 사건의 타이밍은 이야기의 흐름에 탄력을 주고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앨프리 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은 영화 <로프(Rope)>(1948) 를 통해 숏을 나누지 않고 연속성을 유지하는 실험을 감행 했다. 영화 전체를 하나의 숏으로 표현한 것이다. 필름의 길이 때문에 10여 분마다 속임수를 써서 각 테이크(take) 를 연결했을 뿐, 편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메라의 이동 이나 인물의 동선을 이용한 숏 사이즈 변화, 세트와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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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변화 등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느슨한 타이밍은 극의 리듬감을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 를 들면 필립이 식탁의 꽃 장식을 보고 파티를 떠올리는 부분에서 다른 영화라면 필립이 시선을 주자마자 그의 시 점 숏으로 꽃 장식을 보여 주고 다시 필립의 숏으로 돌아 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필립에서 꽃 장식으로 틸트 다운(tilt down)했다가 다시 틸트 업(tilt up)하다 보니 진행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로프>는 ‘영화 적’ 연속성이란 물리적인 지속이 아니라 편집에 의해 나눠 지고 재조합될 때 얻어진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

불연속 편집 영화 편집에서는 기본적으로 네 가지 차원을 고려하여 숏의 연결을 선택하고 조정할 수 있다(Bordwell & Thompson, 2008). 시각적 연결(graphic relations)은 숏이 가진 시각 적 요소의 유사성과 차이점의 상호 작용을 활용한 것이 다. 운율적 연결(rhythmic relations)은 숏의 물리적 길이 를 이용해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공간적 연결 (spatial relations)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촬영한 두 숏을 조합해 한 공간으로 인식되도록 조합하는 것을 의미한 다. 교차 편집(cross-cutting)처럼 극적 효과를 위해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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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간을 교대로 연결하는 경우도 있다. 시간적 연결 (temporal relations)은 사건의 순서를 조정하거나 ‘자연 적’ 시간을 생략, 연장, 중복하여 영화적 시간으로 재구성 하는 것을 말한다. 이야기의 흐름과 관객의 몰입을 중요시하는 연속 편집 에서는 공간적·시간적 연결이 기본이 되고, 극적 효과를 강화하는 수단이나 스타일로서 시각적·운율적 연결을 함께 고려한다. 불연속 편집은 이와 반대로 시각적·운율 적 연결에 더 큰 비중을 두거나, 공간과 시간을 부자연스럽 게 연결함으로써 대안적 편집 스타일을 제시한다. 추상적 형식의 실험 영화나 미디어 아트는 내러티브(narrative)를 기반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숏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시 각적 양식에 주목한다. 내러티브 영화에서도 특정 장면이 나 영화 전반에 걸쳐 불연속 편집을 추구하는 작품들이 존 재한다.

시각적 가능성

오즈 야스지로(小津安次郞)의 <꽁치의 맛(秋刀魚の味)> (1962)에는 관객의 몰입보다 시각적 요소의 연속성에 더 큰 비중을 둔 장면들이 나온다. 코이치는 미우라에게 자 신의 여동생과 만나볼 생각이 있는지 물어 보려고 그와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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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가진다. 좌식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두 사 람을 보여 주는 숏에서, 프레임 안의 시각적 요소들은 매 우 정밀하게 일치를 이룬다. 두 사람을 각각 보여 주는 단 독 숏은 일반적인 숏/리버스 숏에서 보이는 비스듬한 각 도가 아니다. 미디엄 숏으로 잡힌 인물은 카메라를 정면 으로 응시하며 이야기한다. 각 인물의 숏이 교대로 보일 때, 인물의 위치, 의상, 몸짓, 테이블 위의 술병이나 그릇 의 위치 등이 거의 동일하다. 또한 영화 전반에 걸쳐 대부 분의 프레임에 의상, 소품, 전등, 포스터 등 붉은 색의 피 사체를 포함시키고 있다. 일반적이지 않은 프레임의 구성 과 앵글, 인물의 시선 때문에 관객은 객관적 거리를 둔 상 태에서 영화를 관찰하고, 반복되는 시각적 요소에 더 집중 하게 된다. 한스 카노사(Hans Canosa)의 <낯선 여인과의 하루 (Conversations with Other Women)>(2005)는 영화 전체 가 이등분된 분할 화면으로 진행된다. 주인공 남녀는 분 할된 화면의 한쪽씩을 차지하며 대화를 나눈다. 한쪽에서 두 인물을 모두 보여 줄 때는, 다른 한쪽에서 같은 공간의 다른 인물이나 그들이 언급한 인물이 잡힌다. 또 두 남녀 의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보여 주며 극적인 아이러니를 만 들어 내기도 한다. 대화 위주의 이 실험적인 로맨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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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관객들로 하여금 각 인물의 반응들, 현재와 과거, 다른 인물과 얽힌 관계를 비교 분석하며 사색하게 한다. 운율적 가능성

알랭 레네(Alain Resnais)의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 (L’année dernière à Marienbad)>(1961)에는 아주 천천히 트래킹하거나 붐 업(boom up)하는 롱 테이크(long take) 들로 구성된 장면들이 있다. 느린 영상의 움직임 위로 마 치 시를 읽는 듯한 일정한 박자의 내레이션이 흐르면서 독 특한 운율을 만들어 낸다. 그런가 하면 남자가 여자에게 그녀의 과거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어두침침한 현 재의 장소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밝은 방 안의 여자 모습 이 교차된다. 과거 숏은 조금씩 더 자주, 조금씩 더 길게 교차되다가 완전히 과거로 넘어간다. 과거 속 그녀의 웃 음소리에 맞춰 현재 웃고 있는 다른 여인의 숏으로 돌아온 다. 연이어 깜짝 놀란 여자와 고개를 돌리는 남자의 클로 즈업(close-up)이 빠르게 반복된다. 현재의 여자가 떨어 뜨린 컵 소리에 맞춰 컷이 되면 과거에 놀라서 향수병을 떨어뜨리는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향수병이 떨어지는 순 간, 다시 컷 되면서 현재의 깨진 유리컵 조각이 보인다. 명 확한 시공간의 이해보다는 운율적 표현이 더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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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런 아로노프스키(Darren Aronofsky)의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2000)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알 약을 삼키거나 약물을 주입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알약, 손, 약물 관련 도구들, 동공, 혈관 등의 익스트림 클 로즈업을 짧고 빠르게 연결함으로써 감각적인 운율을 선 보인다.

공간적·시간적 불연속성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가 <네 멋대로 해라 (À bout de souffle)>(1960)에서 최초로 선보인 점프 컷 (jump cut)은 공간적·시간적 연속성을 파괴하는 편집 방 식이다. 대표적인 장면으로 주인공 미셸이 파트리샤를 조 수석에 태우고 갈 때, 파트리샤의 뒷머리를 보여 주는 비 슷비슷한 클로즈 숏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숏이 바뀔 때마다 파트리샤의 뒤로 보이는 공간도 바뀌고 시간도 생 략된다. 180도 법칙을 기반으로 한 숏/리버스 숏의 진행 을 거부하고, 동일한 인물의 숏을 연이어 연결할 때 적용 하는 30도 법칙도 위반한다. 점프 컷을 처음 접한 관객들 은 영화가 재현하는 현실에 완전하게 빠져들지 못하고 혼 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야스지로의 영화 <꽁치의 맛>에 나오는 대화 장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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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영화에서 사용하는 180도 법칙과 무관하게 편집 되어 있다. 주인공 히라야마가 친구 두 명과 술을 마시는 장면을 살펴보면, 한가운데에 카메라가 들어가서 360도 전체를 촬영 범위로 삼고, 각 인물을 정면으로 찍은 숏들 이 연결된다. 관객이 일정한 방향만 바라보면서 안정된 공간감을 느끼도록 하는 연속 편집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 다. 관객들은 제시되는 이미지에 맞춰 360도로 공간을 해 석하게 된다. 내러티브상 시공간과는 무관한 인서트(insert) 숏의 삽 입도 연속성을 깨뜨린다. 폴 토머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의 로맨틱 코미디 <펀치 드렁크 러브(PunchDrunk Love)>(2002)에서, 주인공 배리는 여자 친구 리나 가 당한 교통사고에 흥분해 이를 사주한 인물을 찾아간다. 그런데 장면이 전환되는 지점에서 형태가 불분명하고 화 려한 색상의 움직이는 이미지가 음악과 함께 삽입된다. 테런스 맬릭(Terrence Malick)의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2011)에는 희미하게 움직이는 어둠 속의 빛, 상상 속의 공간, 공룡이 등장하는 중생대, 우주 등 은유와 상징을 담은 숏과 장면들이 삽입되었다. 뿐만 아니라 플롯(plot) 자체가 시간적·공간적 연속성을 거부 한다. 중년의 건축가인 주인공 잭의 유아기, 아동기,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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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망했던 때, 그리고 현재의 모습이 복잡하고 모호하게 뒤섞여 있다. 연속 편집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내러티브의 연속성 자체가 깨지는 것은 아니다. 정도에 따라 장면의 내용과 감정이 무리 없이 전달되는 경우도 있고, 이야기 자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영화들도 있다. 중요한 점은 거의 대부 분의 영화가 연속 편집을 통한 공간감을 제공해 왔기 때문 에 연속 편집이 영화와 일반 관객 사이를 소통하는 언어의 문법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하는 편집 스타일 은 마치 다른 언어를 구사하거나 문법이 맞지 않는 단어를 쓰는 것과 유사하다. 관객은 차별화된 요소에 더 주목하 거나 전반적으로 부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관객과 영 화 사이의 객관적인 거리를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들, 개성적인 표현 양식을 추구하는 영화들은 기존의 불연속 편집을 활용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편집 스타일을 시도한다.

변화하는 문법 불연속 편집 방식의 대표적인 예였던 점프 컷은 새로운 양 식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던 뉴 웨이브(new wave) 시대를 거치면서 자주 영화에 등장했다. 그로 인해 관객들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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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 컷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영화 감상을 방해할 정도의 단절로 느끼지 않게 되었다. 점프 컷을 또 하나의 기법으 로 수용한 것이다. 인물의 불안정한 심리를 표현하거나 상황을 희극적으로 묘사하는 점프 컷은 주류 영화에서 흔 히 발견된다. 마치 자주 사용하는 다른 나라 단어가 외래 어로 정착하듯이 기존의 연속 편집에 반기를 들고 탄생했 던 점프 컷은 주류 편집 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참고문헌 편장완 · 한승룡(2002). 󰡔편집을 알면 영화가 보인다󰡕. 서울: 위드커뮤니케이션즈. Bordwell, D. & Thompson, K.(2008). Film Art: An

Introduction(8th edition). New York: McGraw-Hill. Dancyger, K.(2007). The Technique of Film and Video Editing:

History, Theory, and Practice(4th edition). Burlington: Elsevier. 오명훈 역(2011), 󰡔영화 편집: 기술, 역사, 이론, 미학󰡕.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Reisz, K., Millar, G.(1953). Technique of Film Editing. London: Focal Press. 정용탁 역(1981). 󰡔영화편집의 기법󰡕. 서울: 집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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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관객의 시선

연속 편집에서 앞 숏과 다음 숏의 동작이 잘 연결되도록 일치시키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혹은 의도적으로 동작을 완벽하게 연결하지 않아도 관객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을 때가 있다. 편집에서 중요한 것은 동작의 일치 자체가 아니다. 관객의 시선이 어디에 집중하는지를 알고 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관객의 시선이 머무는 곳 관객은 영화를 볼 때 2차원 스크린의 모든 시각적 요소를 한 번에 보지 못한다. 프레임(frame) 속에는 관객 대부분 이 주목하는 요소가 있다. 편집을 할 때는 관객의 시선이 머무는 곳(focal point)이 어디인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숏(shot)이 전환될 때 관객의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연결 되어야만 컷(cut)이 인식되지 않는다. 관객은 무엇에 주목할까? 먼저 우리의 눈은 움직임에 민 감하다. 숏과 숏이 연결될 때 프레임 내에 무언가가 움직이 고 있으면 사람들은 거기에 시선을 뺏긴다. 이것을 이용한 것이 바로 동작 중에 컷을 하는 것(cut on action)이다. 편 집에서 안정적인 컷을 만드는 가장 기본 방법이다. 프레임 내에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의 얼굴 에, 특히 눈에 시선이 먼저 가게 된다. 상대방의 눈을 보면 의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이 프레임 아웃 (frame out)을 하는 경우 몸이 완전히 빠져나가고 빈 프레 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컷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의 눈이 프레임 아웃 되는 순간, 프레임 속에는 더 이상 관객의 흥미를 끄는 부분이 없다. 만약 인물이 완전히 프레임 아웃 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그 후의 빈 프레임을 보여 줄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아직 남아 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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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공간 자체가 극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 때다. 한 숏에 주인공과 조연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면, 대부 분의 사람들은 주인공의 얼굴과 행동에 우선적으로 주목 한다. 앞 숏에서 주인공을 보고 있던 관객의 눈은 숏이 바 뀌자마자 주인공의 얼굴을 찾는다.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는 장면 중간에 주인공이 다른 인물이나 피사체에 가린 상태에서 숏을 시작하지 않는다. 렌즈의 포커스는 물리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끈다. 한 프레임 안에서 부분적으로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면 당연 히 관객은 포커스가 맞춰진 쪽을 본다. 만약 관객의 시선 이 향하는 곳이 포커스가 맞지 않는다면 그 숏을 쓸 수 없 다. 예를 들어 앞 숏과 다음 숏에 모두 주인공의 얼굴이 나 온다고 하자. 관객들은 숏이 바뀌기 전에도 후에도 주인 공의 얼굴에 주목한다. 그런데 다음 숏에서 주인공이 아 닌 다른 부분에 렌즈의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면, 관객의 시선은 무엇을 봐야 할지 순간적으로 혼란을 겪는다. 관객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알면 매우 다양한 편집이 가능해진다. 물리적으로 움직임이 잘 연결되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편집에서 더 중요한 가치는 장면에 필 요한 감정과 이야기의 흐름이다. 액션이 잘 연결되면서도 감정과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진행된다면 가장 이상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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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할 때도 많다. 그때는 관객 의 관심사를 우선적으로 연결하고, 관객의 시선이 닿지 않 는 부분은 무시한다. 관객은 자신이 보는 곳만 집중하기 때문에 매끄럽지 않은 부분을 눈치 채지 못하고 전반적으 로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안소니 밍겔라(Anthony Minghella)의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1999)에서 주인공 톰은 딕키의 환 심을 사기 위해 일부러 가방에 든 재즈 앨범들을 떨어뜨린 다. 이 장면에서 앨범을 떨어뜨리는 순간의 숏 연결을 보 면 톰의 몸과 머리가 세 번이나 중복해서 돌아간다. 그러 나 관객들은 톰이 고의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주목하지 않는다. 관객들의 시 선은 갑작스레 떨어지는 재즈 앨범들의 ‘움직임’과 이에 대한 딕키의 반응 숏에 가 있다. 딕키의 반응에 따라 톰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의 <휴고(Hugo)> (2011)에서 도서관에 간 주인공 휴고와 이자벨은 멜리에스 의 생사 여부를 두고 책의 저자와 언쟁을 한다. 이 장면에 서는 휴고와 이자벨, 저자를 보여 주는 여러 숏이 인터커팅 (intercutting) 된다. 휴고와 이자벨을 보여 주는 투 숏을 잘 보면 두 사람 사이에 펼쳐져 있는 책의 위치가 거의 매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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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짐을 알 수 있다. 책은 프레임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심지어 포커스도 맞춰져 있다. 하지만 관객들은 대 립하고 있는 아이들과 저자의 표정에 집중하기 때문에 이 러한 불일치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사운드로 동작의 불일치가 가려지기도 한다. 리들리 스 콧(Ridley Scott)의 <글래디에이터(Gladiator)>(2000)에서 주인공 막시무스는 외진 숲에서 자신을 처형하려는 병사 네 명을 물리치고 탈출한다. 자신에게 칼을 겨누던 병사 를 뒤통수로 들이받고 앞에 선 병사를 칼로 베는 숏들을 자세히 보면 그의 동작이 정확하게 연결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그의 칼은 허공을 휘두른다. 하지만 관객들 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공격을 하는 지점마다 몸이나 칼이 부딪히는 효과음이 크게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불일치 매우 의도적으로 만든 불일치인데도 관객이 이를 자연스 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창의적인 불일치는 관객이 인식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인식하는 불일치 1−점프 컷

관객이 명백하게 인식하지만 자연스러운 불일치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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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예가 점프 컷(jump cut)이다. 점프 컷은 연속된 숏에 서 중간 일부의 프레임들을 드러내거나 동일한 내용의 다 른 테이크(take)를 연결하는 등의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결과적으로 숏이 바뀔 때 프레임 구성은 비슷하면서도, 시 간이나 공간이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에 컷 자체가 두드러 져 보이게 된다. 하지만 장면의 내용과 잘 맞아떨어지는 점프 컷의 경우, 관객들은 이를 하나의 표현 기법으로 이 해한다. 대니 보일(Danny Boyle)의 <127시간(127 Hours)> (2010)에서 아론은 암벽 사이 바위에 팔이 짓눌려 빠져나 오지 못한다. 식수까지 떨어지자 그는 팔을 자를 결심을 하고 등산용 다용도 칼을 팔에 찌른다. 이 장면에서 식수 가 떨어지고 칼을 찌르기 직전까지 심장 박동 소리를 연상 케 하는 사운드 효과음이 점점 커지고 빨라진다. 그 위로 아론의 모습이 다양한 앵글의 점프 컷으로 연결된다. 관 객들은 이를 자각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아론 의 불안, 초조, 긴장, 두려움이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인식하는 불일치 2−액션의 반복

또 다른 예는 특정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 액션을 반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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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 주는 기법이다. 브라이언 싱어(Bryan Singer)의 <유 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1995) 후반부에서, 수사관 쿠얀은 뒤늦게 절름발이 버벌의 진술이 모두 거짓 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순간, 들고 있던 컵을 바닥에 떨 어뜨리는 모습이 각기 다른 사이즈와 앵글로 세 번 반복해 서 연결된다. 너무나 뻔히 드러나는 동작의 불일치를 세 번이나 반복해서 보면서도 관객은 전혀 산만해지지 않는 다. 과장된 기법은 쿠얀이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을 알려주는 일종의 신호로 작용한다. 관객의 호기심은 극대화되고, 쿠얀이 알게 된 정보를 따라잡기 위해 더욱 집중한다. 쿠얀과 동시에 반전을 파악한 눈치 빠른 관객 은 과장된 기법을 보며 클라이맥스의 쾌감을 만끽한다. 그러나 이 기법은 최고의 극적 순간에 신중하고 섬세하 게 써야만 효과적이다. 롭 코헨(Rob Cohen)의 <트리플 엑 스(xXx)>(2002)에서 주인공 샌더는 헬기의 폭격을 피하며 오토바이로 철조망을 곡예하듯이 뛰어넘는다. 영화에서는 철조망을 넘는 순간을 무려 아홉 번이나 반복해서 보여 준 다. 과도한 기교로 오히려 관객의 흥미는 반감된다. 반면 워쇼스키 남매(Andy/Lana Wachowski)의 <매트릭스(The Matrix)>(1999)에서는 네오와 모피어스가 처음으로 만날 때 모피어스가 돌아서는 액션이 13~14프레임 정도 중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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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다. 조명, 사운드 효과음, 음악과 함께 사용된 절제 된 반복 액션은 극 중 전설적인 영웅으로 설정된 모피어스 의 존재감을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인식하지 못하는 불일치 1−시간적 생략

관객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불일치 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시간적 생략(temporal ellipsis)’이다.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은 현실의 시간과는 다르다. 플롯(plot)에 따라 한 사 람의 일생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아주 짧은 순간의 이야기 를 두 시간 동안 다루기도 한다. 장면 전환에서 시간적 생 략은 매우 당연시된다. 코엔 형제(Joel/Ethan Coen)의 <바톤 핑크(Barton Fink)>(1991)에서 LA의 호텔에 도착 한 바톤은 자신의 방이 있는 6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 터를 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컷이 되고 다음 숏에서 불이 들어오면 문이 열린다. 1층과 6층이 컷 하나 사이에 바뀐다. 이야기를 빠르고 생동감 있게 진행하기 위해 장면 사이 가 아닌, 한 장면 안에서 시간적 생략을 이용하기도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캐치 미 이프 유 캔 (Catch Me If You Can)>(2002)에서 사기꾼 프랭크는 급 여 수표가 더 많은 현금으로 교환된다는 사실을 알고 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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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를 위조한다. 타이프 치고, 욕조에서 장난감 비행기 를 꺼내고, 장난감 비행기의 회사 로고를 수표에 붙이고, 서랍 속 성경을 꺼내 수표를 끼워 넣는 숏들이 연결되지만 동작들끼리 이어지지는 않는다. 각 액션의 하이라이트 부 분만을 연결했다. 긴 시간이 걸리는 작업을 압축해서 표 현한 것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자신이 프랭크의 수표 위 조 과정 전체를 지켜보았다고 느낀다. 그들이 보고 싶은 부분을 모두 보았기 때문이다.

인식하지 못하는 불일치 2−액션의 나열

인식하지 못하는 불일치의 두 번째 경우는 순차적으로 보 여 주는 액션이다. 영화에서는 화면을 분할하지 않는 이 상 동시에 일어난 일을 한 화면에 보여 줄 수 없다. 대신 동시에 일어난 액션을 짧은 시간 동안 차례로 보여 주는 것이 관습적으로 행해져 왔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를 동시 에 진행된 행위로 이해한다. M. 나이트 샤말란(M. Night Shyamalan)의 <식스 센스(The Sixth Sense)>(1999) 시작 부에서 아내와 자축의 시간을 보내던 아동심리학자 맬컴 은 오래전 치료받았던 환자의 침입을 받는다. 안방의 화 장실 안쪽에 엉거주춤 서 있던 환자가 입구로 한 발짝 걸 어 나오는 순간, 맬컴은 침대에 주저앉고 부인은 깜짝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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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다. 맬컴과 부인의 행동은 동시에 일어난 것이지만 맬 컴의 숏과 부인의 숏이 차례로 연결된다. 관객들은 당연 히 동시에 일어난 일이라고 여긴다.

참고문헌 Pepperman, R. D.(2004). The Eye is Quicker. Studio City: Michael Wiese Produ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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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시각적 논리

시각적 논리는 객관적인 타당성이 아니라 관객의 눈에 비친 이미지들이 만들어 내는 논리다. 관객은 영상을 보며 장면을 이해한다. 숏들의 연결에서 얻은 정보와 감각이 관객에게 현실적으로 느껴져야 한다. 시각적 논리에 모순이 생기는 순간 관객은 영화에서 떨어져 나와 분석을 시작한다. 시각적 논리는 관객이 감정이입을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토대다.


시각적 논리의 개념 시각적 논리는 이미지로 만들어지는 논리다. 시각적 논리 가 잘 구축된 장면에서는 제시된 정보와 감각이 자연스럽 게 받아들여진다. 시각적 논리가 모순되는 장면에서는 관 객들이 순간적으로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된다. 혹은 명확하게 인식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흐름의 방해 를 받는다. 관객은 영화를 볼 때 스크린의 모든 시각적 요소에 주 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관심을 가진 부분을 우선적으 로 주목한다. 시각적 논리 또한 관객의 시선이 머무는 지 점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윌리엄 프리드킨(William Friedkin)의 <프렌치 커넥션 (The French Connection)>(1971) 초반부에서 형사 도일 과 루소는 흑인 용의자를 체포해 심문한다. 두 형사는 그 를 벽 쪽으로 몰아세운 채 소리를 지르며 겁을 준다. 이 장 면에서는 용의자의 클로즈업(close-up) 반응 숏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면서 편집의 중심을 이룬다. 그를 협박하 는 두 형사는 대부분 미디엄 숏(medium shot)과 풀 숏 (full shot)으로 중간중간 삽입된다. 장면의 내용상으로나 숏(shot) 구성면에서나 관객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용 의자의 표정과 눈빛에 주목하게 된다. 루소의 동선과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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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위치 등이 연속적이지 않지만 흐름에는 전혀 영향을 미 치지 않는다.

대화 장면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다면 180도 법칙(180 degree rule)을 바탕으로 두 인물의 방향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 다. 가상선(imaginary line)을 넘은 숏을 사용하게 되면 인 물이 방향을 틀었다고 여겨지거나 감정의 흐름이 끊어지 게 된다. 전화 장면에서도 일반적인 두 사람의 대화 장면 과 마찬가지로 180도 법칙을 지키는 것이 좋다. 전화하는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공간에 있고 실제로 마주 보고 있지 도 않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마주 보듯이 촬영하고 편집 하면 더욱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 노라 에프론(Nora Ephron)의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1998)에서 남자 주인공 조는 여자 주인공 캐슬 린에게 인터넷 채팅으로 사업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두 사 람은 각자의 침실에서 노트북으로 채팅을 하고 있다. 프레 임(frame) 구성을 살펴보면, 캐슬린은 침대 왼편에 조는 침 대의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다. 각 인물의 클로즈 숏(close shot)에서도 캐슬린은 프레임의 왼편, 조는 프레임의 오른 편에 위치한다. 각 인물이 향한 방향도 서로 마주보는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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낌이 들도록 일관되게 유지한다. 덕분에 두 사람의 채팅 은 한 공간에서 하는 대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일관된 시선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시 선에 의해 감정과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캐스린 비 글로(Kathryn Bigelow)의 <K-19(K-19: The Widowmaker)> (2002)에서 주인공 보스트리코프 대령은 고위 간부들에 게 K-19 잠수함의 투입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발표한다. 발 표를 마친 대령의 시선은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는 고위 장관을 향해 있다. 이어서 대령을 보는 장관의 클로즈 숏 이 나온다. 그런데 그다음 숏으로 연결된 대령의 숏에서 그의 시선이 약간 위쪽을 향해 있다. 장관을 클로즈 숏으 로 보여 주는 동안 대령이 시선을 돌렸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각적 논리에서는 이러한 객관적 타당성은 무의미하다. 관객이 본 이미지에서 대령이 장관을 보고 있었다면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대령은 장관을 보고 있어 야 한다. 눈으로 파악한 이미지만으로 상황이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대령의 시선이 바뀌는 과정을 관객이 지 켜보았다면, ‘왜 시선이 바뀌었지?’라는 불필요한 의문을 가지지 않고 전적으로 장면 속 상황에 몰입했을 것이다. 표정이나 동작도 일관되어야 한다. 숏/리버스 숏(shot/ reverse shot)으로 편집된 대화 장면이라고 하자. 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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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처음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면 상대방을 보여 준 후 다 시 돌아왔을 때도 같은 표정이어야 한다. 중간 숏에서 특 별한 동기가 있을 때는 급격히 변한 표정도 가능하다. 하 지만 일반적인 대화라면 컷(cut) 사이에 표정 변화를 가져 서는 안 된다. 인물의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는 관객을 어 리둥절하게 만든다. 숏 안에서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여 줘야 관객이 감정의 변화를 따라갈 수 있다. 동작의 경우는 더욱 엄격하다. 의자에 앉아 있던 인물 이 상대방을 보여 준 후 다시 돌아왔을 때 일어서 있다면 흐름이 끊어질 것이다. 일반적인 논리로는 상대방을 보여 주는 동안 그가 일어섰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각 적 논리에서는 다르다. 표정과 마찬가지로 자세를 바꾸는 행위가 숏 안에서 목격되어야 한다. 물론 상대방을 보여 주는 숏에서 상대방의 시선이 정면에서 위로 이동하고 누 군가 일어나는 의자 소리가 오프 스크린(off screen), 즉 화면 밖에서 들렸다면 상관없다. 상대방의 시선이라는 시 각적 정보를 통해, 관객은 인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식 할 수 있다. 그리고 오프 스크린 사운드는 이러한 사실을 재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시각적 논리를 역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톰 후퍼 (Tom Hooper)의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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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언어 치료사 라이어널을 찾아간 앨버트 왕자는 치료 에 대한 불신과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낸다. 자신 감에 차 있는 듯이 보이는 라이어널도 긴장한 나머지 불필 요하게 앨버트를 자극한다. 일반적으로 대화 장면에서는 프레임의 왼편에 위치한 사람이 오른쪽을 향해 시선을 주 고, 프레임의 오른편에 위치한 사람은 왼쪽을 향해 시선을 준다. 그래야만 프레임 구성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 진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정반대로 프레임이 구성되어 있다. 앨버트 왕자가 프레임의 왼편에 위치하며 왼쪽을 향해 시선을 준다. 라이어널은 프레임의 오른쪽에 위치하 며 오른쪽으로 시선을 준다. 두 사람이 마주 보는 방향은 180도 법칙에 부합한다. 하지만 각 인물의 얼굴 앞쪽 여 백, 즉 노즈 룸(nose room)이 좁게 형성되어 있다. 그 때 문에 관객들은 두 사람의 대화 분위기가 어색하고 경직되 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숏 전환 모든 숏의 전환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 가 시각적 논리에 부합할 때 관객은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숏 전환은 관객에게 혼란을 준다. 숏 의 전환은 필요한 정보를 적절한 순간에 제공함으로써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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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을 앞으로 진행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액션 장면에서는 빠른 숏 전환을 전략적으로 쓰기도 한 다. 숏의 물리적 길이에 따른 짧고 불규칙한 리듬은 관객 에게 긴장감을 준다. 그런데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면에서 도 단순히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빠르게 컷을 하는 경우가 있다. 빠른 숏 전환은 순간적으로 관객의 신경을 자극하 기 때문에 시선을 끌 수 있다. 그러나 시각적 논리가 뒷받 침되지 않으면 곧 관객은 피로감을 느낀다. 감정의 몰입 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빠른 숏 전환이 계속될 경우 관객의 눈은 감각적인 자극에 둔감해진다. 더 이상 인물과 상황에 공감하지 않고 제3자의 입장에서 관망하게 된다. 숏의 전환에 따른 피사체의 사이즈 변화도 시각적 논리 에 적합해야 한다. 프레임 속 인물의 사이즈에는 관습적인 의미가 있다. 감정이 고조되거나 중요한 대화를 주고받는 시점부터는 클로즈 숏이나 더 가까이 다가간 숏이 이용된 다. 일단 다가간 숏을 썼으면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 미디 엄 숏이나 풀 숏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때 이유 없이 사용된 풀 숏은 관객을 스크린으로부터 밀어낸다. 피사체의 사이즈는 대상과 카메라 사이의 거리 를 의미한다. 그리고 관객은 카메라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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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본다. 즉, 클로즈 숏은 관객이 등장인물에게 가까이 다가 간 상태를 의미한다. 풀 숏이나 그보다 느슨하게 피사체를 잡은 숏은 관객에게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는 느낌을 준다. 대화 장면에는 준비 단계, 본격적인 대화, 화제나 분위 기의 전환, 다시 진행되는 대화, 클라이맥스, 정리 단계 등 의 흐름이 있다. 시각적 논리에 맞는 숏 사이즈 전환은 장 면의 흐름을 더욱 자연스럽게 만든다. 또한 장면 내 극적 전환점들을 부각함으로써 장면의 역동성을 더한다. 밀로스 포먼(Milos Forman)의 <아마데우스(Amadeus)> (1984)에는 모차르트 부인이 궁정 음악장 살리에르를 찾 아가 남편의 취업을 부탁하는 장면이 있다. 장면이 시작 되면 살리에르와 모차르트 부인의 단독 미디엄 롱 숏 (medium long shot)이 몇 차례 연결된다. 처음으로 미디엄 클로즈 숏(medium close shot)이 나 오는 지점은 살리에르의 질문에 부인이 거짓말을 하는 부 분이다. 대사 외 표정에서 표현되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 해서다. 살리에르는 여전히 미디엄 롱 숏을 유지하다가 악보를 받기 위해 부인 쪽으로 다가오면서 미디엄 클로즈 사이즈가 된다. 이후로는 주로 두 사람 각각의 미디엄 클 로즈 숏 위주로 편집되어 있다. 나중에 살리에르가 테이 블에 앉기까지 15개의 숏 중에서 다른 사이즈의 숏은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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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삽입된다. 첫 번째는 의자에 앉는 부인을 보여 주는 미디엄 롱 숏 이다. 처음으로 부인이 살리에르의 의견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서 장면의 갈등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또한 이 사이 즈에서는 의자에 앉는 부인의 동작이 잘 드러난다. 두 번째는 바로 다음에 나오는 하인의 미디엄 롱 숏이 다. 살리에르의 대사 위로 보이는 하인의 반응 숏으로, 두 사람의 갈등에 대한 하인의 관심을 보여 준다. 그다음 살 리에르의 숏에서 그의 고개, 손짓이 하인 쪽으로부터 출발 하기 때문에 두 숏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세 번째는 부인이 딱한 사정을 말하기 시작한 직후에 나 온 살리에르의 미디엄 롱 숏이다. 여기서 살리에르는 부인 의 체면을 생각해 하인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한다. 느슨해 진 사이즈에서는 멀리 있는 하인도 제대로 보이고 살리에르 의 손짓도 강조된다. 뿐만 아니라 부인이 진실을 털어놓으 면서 다시 한 번 장면의 분위기가 바뀌는 지점이기도 하다. 네 번째는 손짓에 대한 반응 숏으로 나가는 하인을 보 여 주는 미디엄 롱 숏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살리에르 와 부인을 보여 주는 롱 숏(long shot)이 이어진다. 이 숏 은 멀리 떨어져 있던 하인이 나가면서 보는 시점 숏(point of view)이면서, 동시에 장면의 전반부 상황을 마무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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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후반부로 넘어가는 전환점 역할을 한다. 후반부에서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나 분위기가 이전과 사뭇 달라지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Pepperman, R. D.(2004). The Eye is Quicker. Studio City: Michael Wiese Productions. Thompson, R.(1993). Grammar of the Edit. Oxford: Focal Press. 김창유 역(1999), 󰡔영화 연출과 편집 문법󰡕. 서울: 도서출판 책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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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반응 숏

반응 숏은 일어난 사건에 대한 등장인물의 반응을 보여 주는 숏이다. 반응 숏은 등장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고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야기를 발전시킨다. 반응 숏은 대사가 없기 때문에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대사 없는 숏 영화에 사운드가 도입된 이후, 대사는 영화에서 정보를 전 달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 로 인해 무성영화에서 보여 주었던 수많은 설명적인 상황 과 자막을 생략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압축적인 전개로 더 복잡한 플롯(plot)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연극이나 문학의 영향을 받은 영화에서는 내레이션을 활용하기도 한다. 대사와 내레이션은 모두 언어를 통해 내용을 전달 한다. 이와는 달리 반응 숏(reaction shot)은 지극히 영화적인 표현 도구다. 반응 숏의 핵심은 대사가 없다는 점이다. (부수적인 사운드 효과와 음악을 제외하면) 오로지 시각 적인 요소로만 인물의 감정과 정보를 전달한다. 반응 숏 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인물의 마음과 태도의 변화를 표 현한다. 반응 숏에서 보여 주는 인물의 표정은 정지된 이 미지가 아니다. 인물의 표정은 계속 변한다. 그 변화는 곧 장면의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경험이 적은 배우는 대화 장면을 연기할 때 종종 자신 의 대사에만 공을 들이는 실수를 범한다. 상대 배우가 대 사를 하는 동안에 집중력을 잃고 표정이 풀어진다. 좋은 배우는 반응 숏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더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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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되지 않은 섬세한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숙련된 편집자는 대사를 하는 사람 위주로 만 숏(shot)을 연결하지 않는다. 반응 숏을 잘 활용한 편집 에서는 대사 부분도 더욱 빛을 발한다. 말하는 사람의 대 사가 흐르는 동안 말하는 사람의 숏과 듣고 있는 사람의 반응 숏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인물의 감정은 물론 대사 의 특정 단어나 구절이 더욱 명확히 전달된다. 관객들은 그 대사에 반응 숏을 보여 주는 이유를 생각하며, 듣고 있는 인물의 감정을 읽게 된다. 그러다가 말하는 사람의 숏이 나 오면 관객들은 그 순간의 단어를 더욱 강조해서 듣게 된다. 반응 숏을 통해 작가, 감독, 심지어 배우가 놓친 감정의 섬세한 부분까지 편집에서 살려낼 수 있다. 반응은 얼굴 의 근육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면밀하게 관찰해 야만 보이는 순간적인 눈빛과 표정의 변화, 배우의 의도와 는 상관없는 눈 깜박임 등이 모두 포함된다. 반응 숏의 길 이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가 형성되기도 한다. 반응 숏 은 편집의 의도에 따라 장면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 요한 요소다. 반응 숏은 대사만큼 혹은 대사보다 더 중요하다. 대사 없는 배우의 반응이 관객의 감성과 이성을 더 적극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언어로 정보가 주어지면 우리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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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쉽게 의존한다. 그러나 언어가 사라지면 관객은 정확 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더 관찰하고 집중한다. 이 점을 잘 아는 편집자는 불필요한 대사 부분이나 내레이션을 과 감히 삭제하기도 한다. 관객이 시각적으로 완전히 몰입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반응 숏의 편집 레프 쿨레쇼프(Lev Kuleshov)와 프세볼로트 푸돕킨(Vsevolod Pudovkin)이 배우 이반 모주킨(Ivan Mozzhukhin) 과 진행한 실험은 반응 숏의 실용적인 측면을 보여 준다. 이들은 수프 접시, 관 속의 죽은 여인, 어린 소녀의 숏에 각각 모주킨의 동일한 표정을 연결했다. 각기 다른 세 개 의 조합을 본 관객들은 모주킨의 연기에서 배고픔, 슬픔, 행복감이 잘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원래 이 실험은 숏과 숏의 상호 관계의 중요성을 밝혀내기 위한 것이었다. 하 지만 우리가 이 실험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내용은, 직 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숏도 훌륭한 반응 숏이 될 수 있다 는 사실이다. 어떤 대사에 대한 반응 숏이 필요할 때, 반드시 그 대사 가 말해지는 순간에 상대 배우가 보인 표정을 써야 하는 것 은 아니다. 그 장면의 다른 부분에서 반응 숏을 가져와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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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할 수 있다. 만약 배경이나 의상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경우라면, 영화의 다른 시퀀스(sequence)에서 차용할 수 도 있다. 편집자이자 감독으로 활동했던 에드워드 드미트 릭(Edward Dmytryk)은 심지어 다른 영화에서 반응 숏을 가져다 쓴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Dmytryk, 1984). 사운드가 없이 영상만 촬영한 숏, 즉 MOS(motor only shot, mit out sound)도 좋은 반응 숏이 될 수 있다. 또한 감독이 연기의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액션”과 “컷”을 외 치기 이전과 이후에 잡힌 배우의 모습에서 적절한 표정을 찾아내기도 한다. 편집자는 촬영본을 창의적으로 활용하 기 위해 언제나 대안을 모색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반응 숏의 역할 좋은 반응 숏은 관객으로 하여금 사색, 예측, 관찰, 참여하 도록 이끈다(Pepperman, 2004). 관객은 등장인물의 표정 에서 그 의미를 생각하고 공감한다. 또한 등장인물이 어 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추측한다. 대사가 없기 때문에 언 어 정보를 해석하는 대신 장면 속 인물들의 관계와 인물이 있는 공간을 관찰한다. 이러한 자발적 참여는 관객을 더 욱 장면 속 상황에 몰입하게 만든다. 페르난도 메이렐리스(Fernando Meirelles)의 <콘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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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 가드너(The Constant Gardner)>(2005)에서 주인공 저 스틴은 아내 테사의 사망 소식을 동료에게 전해 듣는다. 사건 현장의 세부 사항을 동료가 말하는 동안, 화면은 거 의 내내 저스틴의 반응 숏을 보여 준다. 처음에는 놀라고, 잠시 부인하다가, 결국 인정하며 슬픔에 젖는다. 곧이어 애써 슬픈 표정을 감추며 소식을 전한 동료에게 감사를 전 한다. 동료가 나가면 다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시선 을 떨군다. 관객이 그 장면에서 알아야 할 정보는 저스틴 의 아내가 죽었다는 것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저스틴 의 감정이다. 관객은 저스틴의 긴 반응 숏들을 지켜보면 서 그가 받았을 충격을 이해하게 된다. 그의 태도를 관찰 하며 인물의 성격이나 인성을 파악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의 상처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죽 은 아내와 관련된 진실을 파헤쳐 가는 미스터리 형식을 갖 추고 있다. 초반에 섬세하면서도 강력한 효과를 가진 반 응 숏 덕분에 관객은 저스틴의 입장에 완전히 동화된 채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기본적으로 관객은 관찰자다. 관객에게 허락된 행위는 액션이나 대사가 아니라 반응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스크린 속에서 액션이 아닌 리액션(reaction), 즉 반응을 보이는 사람에게 더 쉽게 공감한다. 그들의 반응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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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웃기도 하고 긴장하기도 한다. 때로는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로 반응 숏을 사용한다. 불필요한 대사를 덜어내야 할 때 혹은 다큐멘터리에서 인 터뷰가 너무 길 때, 반응 숏을 컷어웨이(cutaway)로 사용 할 수 있다. 긴 대사를 하고 있거나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인 물을 계속 보여 주는 상태에서 불필요한 부분만 덜어내면 점프 컷(jump cut)이 된다. 하지만 비디오의 커팅 지점을 다른 인물의 반응 숏으로 적절하게 가리면 자연스럽게 필 요한 대사나 인터뷰로 바로 넘어갈 수 있다. 단독 인터뷰 일 경우에는 인터뷰 내용과 연관된 그 인물의 다른 영상, 자료 화면, 소품이나 실내 혹은 실외를 촬영한 인서트 (insert) 숏 등을 반응 숏처럼 활용할 수 있다.

참고문헌 Chandler, G.(2004). Cut by Cut. Studio City: Michael Wiese Productions. Dmytryk, E.(1984). On Film Editing. Oxford: Focal Press. Pepperman, R. D.(2004). The Eye is Quicker. Studio City: Michael Wiese Produ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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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리듬

영화에서는 인물이 움직이고 사건이 발생하고 감정이 변한다. 편집은 이러한 여러 움직임의 타이밍·속도감·경로 구성을 조절해 리듬을 만들어 낸다. 리듬은 관객을 긴장시키기도 하고 이완시키기도 한다.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반복되면 관객은 어느 순간 영화의 리듬과 일치를 이루게 된다.


리듬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영화의 리듬(rhythm)에 흡수된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 까지 일률적인 리듬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이야기와 감정 의 진행에 따라 장면별로 다른 리듬을 가지고 있다. 그리 고 장면들의 리듬이 모여 영화 전체의 리듬을 이룬다. 편집은 영화 속의 모든 요소들의 변화, 즉 움직임을 연 결해 시간의 흐름을 만들고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 업이다. 편집에서 고려하는 움직임은 방향과 속도의 변화, 크기, 형태, 배우의 연기와 동선, 장면이 주는 강렬함 고저 와 빈도 등 매우 다양하다. 움직임을 미적으로 구성해 구 절을 만들고, 그 구절을 따라가며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하 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편집의 리듬이다. 캐런 펄먼(Karen Pearlman)은 편집의 리듬이란 시간과 에너지와 움직임을 타이밍, 속도감, 경로 구성으로 다듬 은 것이라고 정의한다(Pearlman, 2009).

리듬의 요소 타이밍

타이밍(timing)은 커팅을 해서 숏(shot)이 만들어지는 순 간에 발생하는 리듬의 속성이다. 타이밍은 프레임(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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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선택, 지속 시간, 숏의 배치에 의해 만들어진다. 프레임의 선택은 숏의 어느 부분부터 어디까지 쓸 것인 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마이크 니컬스(Mike Nichols)의 <클로저(Closer)>(2004)에서 댄은 프로필 사진을 찍다가 사진작가인 애나를 유혹하고 키스를 한다. 다음 장면에서 사진관으로 찾아온 여자 친구 앨리스를 마중 나간 댄은 가 볍게 입맞춤을 하고 함께 2층 사진관으로 올라간다. 앨리 스가 계단으로 진입하는 미디엄 클로즈 숏(medium close shot)의 시작부에는 무언가를 의심하는 듯한 그녀의 표정 이 드러난다. 만약 이 숏에서 표정 부분을 쓰지 않고 그 뒤 계단을 올라가려고 움직이는 부분만 썼다면 관객은 앨리스 가 무언가 눈치챘다는 것을 모르게 된다. 이 표정의 사용은 다음 장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어지는 세 사람의 대화 장면에서 사실이 폭로되기 전인데도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 다. 앨리스가 두 사람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세 인물의 표정, 행동, 대사의 표면적 인 내용보다 그 이면의 숨겨진 감정들에 주목하게 된다. 숏의 절대적인 지속 시간과 상대적인 지속 시간 모두 타이밍에 중요한 요소다. 숏의 물리적인 길이가 길면 길 다고 느껴진다. 한편으로 짧은 숏들 사이에 삽입된 긴 숏 은 더 길게 느껴진다. 실제로 관객이 느끼는 숏의 지속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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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은 상대적인 길이, 정보의 집중도, 숏 내부에서 일어나 는 움직임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숏의 배치도 타이밍과 연관된다. <클로저>에서 자신의 사진을 찍어 주려는 애나에게 앨리스는 댄과 키스한 사실 을 안다고 폭로한다. 당황하는 애나의 미디엄 클로즈 숏 이 나오고, 창가로 이동하는 앨리스의 미디어 롱 숏 (medium long shot)으로 컷(cut)한 후, 다시 사과하는 애 나의 클로즈업이 연결된다. 애나의 클로즈업(close-up)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진다. 현재의 상태는 애나의 미안해하는 감정을 부각하고 있다. 만약 앨리스가 폭로한 후 애나의 미디엄 클로즈 숏이 아닌 클로즈업을 바 로 썼다면 애나의 놀라고 당황하는 감정이 더 강조되었을 것이다. 여기서는 놀라는 부분이 아니라 미안해하는 부분 을 강조함으로써, 애나라는 인물을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 지보다 상대방을 더 배려하는 사람으로 표현한 것이다. 숏을 배치하는 타이밍에 따라 등장인물의 성격과 장면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속도감

속도감(pacing)은 움직임의 비율·강도·양에 의해 느껴 지는 영화의 진행 속도를 말한다. 특정 부분이 빠르게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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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느리게 진행된다고 느낄 때 만들어지는 리듬의 속성이 다. 속도감은 커팅의 비율, 숏과 장면에서 움직임의 비율, 영화 전체의 움직임이나 사건의 비율로 조절된다. 커팅 비율은 얼마나 자주 컷이 되는지를 의미한다. 숏 의 지속 시간뿐만 아니라 일정 기간의 경향까지를 포함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추격 장면에서 추격이 진행될수록 분당 커팅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그로 인해 속도감도 빨 라진다. 커팅 비율이 관객이 느끼는 속도감에 영향을 끼 치는 이유는 컷이 될 때마다 새로운 정보를 해석하게 만들 기 때문이다. 숏 안에서 움직임이나 변화의 비율도 속도감에 영향을 미친다. 숏의 절대적인 길이가 길다고 하더라도 프레임 안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거나 시각적 요소의 변동이 많으 면 장면의 속도감이 빠르게 느껴진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Darren Aronofsky)의 영화 <블랙 스완(Black Swan)> (2010)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니나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 왕자와 마법사를 오가는 그녀의 춤 숏은 27초 동안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카메라가 그녀의 동선을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그녀의 주변에서 춤추는 여러 무용수들까지 프레임에 걸리면서 속도감은 빠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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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반의 변화 정도도 속도감에 영향을 미친다. 속도 감은 사건이 일어나는 비율이나 움직임과 감정이 발생하는 비율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대니 보일(Danny Boyle)의 <슬 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2008)에는 한 사 람이 겪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극적 사건들이 계속해서 전개된다. 토니 스콧(Tony Scott)의 영화 <언스토 퍼블(Unstoppable)>(2010)에서는 위험한 화학약품을 실은 열차가 줄곧 엄청난 속도로 질주한다.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의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2010)는 영화 내내 등장인물의 대사가 넘쳐난다. 세 작품은 각기 다 른 이유로 빠른 속도감이 느껴지는 영화들이다.

경로 구성

경로 구성(trajectory phrasing)은 편집 리듬의 영역에서 타이밍과 속도감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묘사하기 위 해 펄먼이 고안한 용어다. 경로 구성은 움직임의 방향· 에너지·경로를 숏의 연결을 통해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 다. 경로 구성의 구체적인 작업은 에너지의 연결이나 충 돌을 만드는 것, 적절한 에너지를 가진 테이크(take)를 선 택하는 것, 움직임의 경로를 조정해서 강조점을 만드는 것 이다. 물론 편집자들이 경로 구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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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편집 작업은 이러한 내용을 항상 포함하고 있다. 숏과 숏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움직임의 경로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연결과 충 돌은 프레임 안의 시각적 요소들로 결정된다. 이미지의 방향, 크기, 부피, 질량, 깊이, 색상, 숏 사이즈, 화면의 밝 기, 동작, 시선 등 시각 요소가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에 따라 연결과 충돌의 정도가 달라진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같은 내용과 앵글(angle)의 숏을 여러 번 촬영한다. 테이크마다 배우 들의 연기는 조금씩 다르다. 어떤 테이크를 선택하느냐는 곧 에너지의 특성을 선택하는 것이다. 감독이 다른 연기 를 요청하기도 하고, 배우가 스스로 연기를 바꾸기도 한 다. 촬영을 진행할수록 감정의 몰입이 높아지는 배우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있다. 어떤 테이크에서는 배우가 느 리게 움직이고, 어떤 테이크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 다. 표정은 좋은데 대사가 도중에 틀리는 경우도 있다. 중 요한 것은 장면에서 필요한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최선의 에너지를 가진 지점을 찾아내 연결하는 것이다. 숏에 들어 있는 에너지를 이용해 어디에서 강세를 줄 것인지도 경로 구성에 해당한다. 강세는 숏 사이즈,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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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의 에너지, 숏의 길이 등 여러 가지 요소에 따라 조정 된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이 전화를 끊고 잠시 서 있다가 의자에 앉는 상황을 촬영한 여러 앵글의 숏이 있다고 가정 하자. 전화를 끊는 부분은 클로즈업으로 쓰고 앉는 부분 은 풀 숏(full shot)을 쓴다면 끊는 행위가 강조된다. 수화 기를 과격하게 내려놓자마자 의자에도 과격하게 앉는 부 분들을 골라 연결한다면 두 행위가 하나의 강한 에너지로 연결되며 모두 강조된다. 수화기를 평범하게 내려놓는 풀 숏 후, 서 있는 인물의 얼굴 클로즈업을 길게 쓴다면 서 있 는 행위가 강조된다.

리듬의 기능 리듬은 긴장과 이완의 주기를 만든다. 이를 통해 관객은 육체적·감정적·인지적으로 영화의 흐름에 몰입하며 일 치를 이룬다. 편집자는 관객으로 하여금 어느 정도 감정 이입을 하도록 할 것인가를 결정해서 리듬을 계획한다. 계획된 리듬에 따라 시간, 에너지, 움직임을 조절해 긴장 과 이완의 주기를 만든다.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보여 주 는 긴장과 이완의 주기에 맞춰 영화의 리듬을 느낀다. 영 화의 리듬과 몸의 리듬이 일치하는 순간, 관객은 창조된 영화 속 세상에 동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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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리듬 펄먼은 편집에서 구성하는 리듬의 측면을 물리적 리듬 (physical rhythm), 감정의 리듬(emotional rhythm), 사 건의 리듬(event rhythm)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물리적 리듬은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물리적 움직임을 우선해 구축한 리듬이다. 물리적 리듬은 물리적 움직임의 타이 밍·속도감·경로 구성으로 만들어진다. 춤 장면, 격투 장면, 추격 장면, 액션 장면 등은 주로 물리적 리듬 위주로 편집한다. 물리적 움직임에는 프레임 내부의 시각적 요소 의 움직임, 프레임 자체의 움직임, 숏의 연결로 만들어지 는 움직임이 있다. 편집을 통해 이러한 움직임을 연결 혹 은 충돌시키고, 움직임이 가진 에너지의 높낮이를 조절하 며, 움직임의 비율과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감정의 리듬은 감정적 에너지의 타이밍·속도감·경 로 구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편집을 할 때는 배우의 연기 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움직임에는 준비, 행위, 회 복(휴식)의 세 단계가 있다. 편집자는 배우의 움직임을 단 계별로 더욱 섬세하게 나누어 관찰해야 한다. 또한 배우 의 행위를 볼 때 겉으로 드러나는 내용과 숨은 의도를 나 누어 살펴봐야 한다. 등장인물이 행위를 바꾸거나 조절하 는 지점도 파악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감정의 변화를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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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최상의 커팅 포인트(cutting point)를 찾아내 고, 감정 변화의 인과 관계를 만든다. 사건의 리듬이란 영화 전체에 걸쳐 사건들의 변화 에너 지를 만들어 내는 타이밍·속도감·경로 구성을 의미한 다. 사건들을 인과 관계에 따라 구성한 것이 플롯(plot)이 다. 관객은 플롯을 따라가며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그리 고 얻지 못한 정보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면서 다음 장면을 기대한다. 정보가 너무 부족하면 관객은 혼란을 겪는다. 정보가 넘치면 관객은 호기심을 잃어버린다. 관객의 관심 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객 자체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젊은 관객층을 상대로 한 요즘 영화들은 사건의 진행이 빠 르고 주인공도 여러 명이 등장한다. 영상과 인터넷을 일찍 부터 접한 세대들은 스크린에서 제공하는 여러 정보를 동시 에 이해하고 머릿속에서 재배치하는 능력이 이전 세대보다 뛰어나다. 반면, 세대를 아우르는 영화라면 상대적으로 정 보의 배치나 사건의 진행을 천천히 단계적으로 구성한다. 장면에 따라 더 우선하는 리듬이 있을 수 있지만, 모든 장면에는 세 가지 리듬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물리적 리 듬, 감정의 리듬, 사건의 리듬은 상호 작용하며 작품 전체 의 리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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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Pearlman, K.(2009). Cutting Rhythms: Shaping the Film Edit. Oxford: Focal Press. 김진희 역(2014). 󰡔커팅 리듬: 영화 편집의 비밀󰡕.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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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편집 기법

대부분의 영화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한다. 자연스러운 연결 차원의 편집 외에도 관객의 공감과 흥미를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위한 형식적이고 기교적인 편집 기법들이 있다. 몽타주, 교차 편집, 플래시백, 디졸브는 현대 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법들이다.


몽타주 몽타주(montage)는 프랑스어로 편집이란 뜻이다. 그러나 프랑스 이외 대부분의 국가에서 몽타주는 특정한 편집 기 법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1920년대,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Sergei Eisenstein)은 숏(shot)들의 병치를 통해 충돌과 갈등을 유발하고 여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생 성해야 한다는 자신의 이론을 표현하기 위해 몽타주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현대 영화에서 말하는 몽타주는 하나의 주제를 요약하거나 시간의 경과를 보여 주기 위해 상징적 인 이미지들을 압축한 시퀀스(sequence)다. 몽타주를 통 해 플롯(plot)을 빠르게 진행하기도 하고, 관객의 흥미를 유도하는 시각적 효과로 사용하기도 한다. 오손 웰스(Orson Welles)의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에는 케인의 두 번의 결혼 생활을 표현한 몽타주가 있다. 첫 번째 부인인 에밀리와의 결혼 생활은 여섯 번의 아침 식사 장면으로 압축된다. 각 장면은 신혼부터 권태기 까지를 대표한다. 2분 남짓의 시간 동안 다섯 번의 스위시 팬(swish pan)과 디졸브(dissolve)를 이용해 각 장면을 연 결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부의 자리는 멀어진다. 두 사람의 복장과 태도, 대화 내용도 변해 간다. 두 번째 결 혼 생활은 퍼즐을 하는 수잔의 손을 보여 주는 여섯 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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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이 디졸브되면서 단순하게 표현된다. 배경 음악의 반복 적인 멜로디와 음악의 박자에 맞춘 같은 길이의 숏들은 결 혼 생활의 단조로움과 따분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웰 즈는 첫 번째와 두 번째 결혼 생활 모두를 한 공간에서 벌 어지는 단일한 행동의 몽타주로 표현했다. 동일한 편집 기 법을 통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두 결혼 생활을 비교하게 된다. 왕가위(王家衛)는 <화양연화(花樣年華)>(2000)에서 주 인공 모완과 리첸이 함께 아이디어를 짜내며 무협 소설을 쓰는 며칠간의 모습을 몽타주로 표현하였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에 상처받은 사람 들이다. 이들은 서로를 위로하면서 친해지고 점차 애틋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몽타주의 직전 장면에서 리첸은 모완에게 그들이 자신들의 배우자와는 다르다고 선언하 듯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대사와는 달리, 몽타주에서는 마치 연인처럼 행복해하며 글을 쓰는 두 사람의 모습이 느 린 화면으로 이어진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는 환 한 모습만 보이지만 몰래 상대방을 쳐다보는 표정에서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즐거운 모습 아래로 애써 부인하려 는 감정을 그린 몽타주는 애잔한 음악과 함께 주인공들의 슬픈 사랑의 운명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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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 편집 교차 편집(cross-cutting)은 동일한 시간대에 서로 다른 장 소에서 진행되는 두 가지 이상의 상황을 교대로 편집해 하 나의 흐름으로 통합하는 기법이다. 그러나 현대 영화에서 는 동일한 시간이라는 기준이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상태 다. 여전히 동일한 시간대를 교차 편집하는 경우도 많지 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교차 편집은 대체로 감정을 고조시켜야 하는 클라이맥 스 장면에서 활용된다. 교차 편집은 관객들로 하여금 두 개의 상황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언제 두 상황이 일치될 것인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 관 객들은 결과가 뻔히 예측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두 상황 이 어떤 방법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 기대감을 가진다. 어떤 영향을, 언제, 어떻게 미치는지는 숏이 섞이 는 타이밍, 빈도, 연결되는 숏의 내용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교차 편집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 라(Francis Ford Coppola)의 <대부(The Godfather)>(1972) 에 나오는 세례식 시퀀스일 것이다. 이 시퀀스에서는 주 인공 마이클이 조카의 대부로서 참석한 세례식 장면과 마 이클의 지시로 벌어지는 살해 장면이 서로 교차된다. 적 들을 살해하는 것은 새롭게 대부가 된 마이클에게 신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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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같다.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 두개의 세례식이 동시에 진행되며 극명하게 대비된다. 세례식을 준비하는 신부, 면도를 준비하는 이발사, 총 기를 준비하는 저격수의 동작들은, 시각적으로 유사하되 내용상으로는 선과 악의 대조를 이룬다. 세례 성사를 진 행하는 신부의 기도문과 마이클의 대답, 성당의 오르간 음 악들은 양쪽 장면에서 모두 들린다. 성당의 경건한 느낌 과는 달리, 살해 장면 위로 들리는 세례식의 각종 사운드 는 두 상황의 역설적인 상징을 더욱 부각한다. 오르간 음 악은 교차 편집이 진행되면서 점점 불협화음으로 변해 간 다. 세례식 장면에서는 아기가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만 보이는데도 살해 현장으로 넘어가면 아기의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 적들이 한 명씩 살해되는 순간마다 악 을 멀리하겠다고 단호하게 대답하는 마이클의 클로즈업 (close-up)이 교차된다. 세례 성사의 말미에 “성부와 성자 와 성령”이라는 가장 중요한 기도문에서는 각 단어의 구 절에 맞춰 처참한 살해 현장 세 곳이 연달아 보이면서 클 라이맥스를 장식한다. 마지막 숏에서는 마이클의 클로즈 업이 느리게 트랙 인(track in) 된다. 평화를 누릴 것이라 는 기도문이 들리지만 그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관객 들은 그동안 감정이입을 해왔던 주인공 마이클의 추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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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 편집을 통해 극적으로 목격하게 된다. 간혹 교차 편집의 동의어로 인터커팅(intercutting)이라 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있다. 인터커팅은 숏을 나누어 다 른 숏과 교대로 편집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대화 장면에서 두 사람이 노려보는 클로즈업이 각각 있다면 한 번씩만 쓰는 것보다 두 사람의 숏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감정을 더 고조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인터커팅은 한 장 면 안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기법이다. 인터커팅을 서로 다른 장면의 숏끼리 사용하는 것이 교차 편집이다. 평행 액션(parallel action)도 교차 편집과 혼용되는 용어 다. 평행 액션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내러티브(narrative)상 연관되어 있으나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두 개 이상의 상황 을 함께 제시하는 구성을 의미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여기 에 다른 시간대라는 기준을 더 추가하기도 한다(Hayward, 1996). 각 장면의 숏들이 서로 섞이는 것을 교차 편집, 숏 이 아니라 장면 혹은 시퀀스 단위로 교대로 보여 주는 것 을 평행 편집(평행 액션)이라고 정의하는 경우도 있다 (Pepperman, 2004). 평행 액션은 서로 다른 시각이나 입 장을 보여 주기 위한 내러티브 기법으로서 의미가 들어 있 다. 즉, 두 가지 이상의 상황이 진행되는 상황 자체를 의미 한다. 반면 교차 편집은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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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장면들의 숏을 뒤섞는 편집 기법을 가리킨다. 세 개의 용어가 분명 각각의 정의를 가지고 있지만, 내 용상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용어의 혼용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나마 가장 명료하게 정리된 문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교차 편집은 평행 액션을 구축하고 궁극적 으로 클라이맥스를 만들어 내기 위해 장면의 주된 요소 (숏)를 서로 인터커팅한 것”이다(O’Steen, 2009). 스티븐 돌드리(Stephen Daldry)의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2002)에는 세 여인의 하루 동안 삶이 나란히 소개 된다. 1923년의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영국의 한 시골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Mrs. Dalloway)󰡕을 집 필 중이다. 1951년 미국 LA에 사는 로라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로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있다. 2001년의 미국 뉴 욕에 사는 클라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을 가지 고 있다. 그녀는 에이즈로 죽어가는 옛 애인 리처드를 돌 본다. 세 사람은 전혀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다. 하지만 모 두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연관되어 있고 각기 다른 방 식으로 누군가의 자살에 직면한다. 이 영화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관객 들은 세 여인의 삶을 두루 살펴보며 자연스럽게 답을 얻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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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워스>는 독립된 상황이 교대로 보이며 진행된다 는 점에서 작품 전체가 평행 액션 구조다. 특히 자살을 시 도했다가 실패하고 돌아와 아들을 안심시키는 로라, 클래 리사를 안심시키고 갑자기 창밖으로 몸을 내던지는 리처 드, 남편의 생일파티에서 행복한 가족의 한때를 ‘연기’하 는 로라의 장면이 순차적으로 연결된 후반부 클라이맥스 는 평행 액션의 구조가 얼마나 강력한 극적 아이러니를 만 들어 내는지를 보여 준다. 몇몇 장면은 등장인물에 대한 관심과 감정의 고조를 위 해 교차 편집을 사용한다. 버지니아가 자살하는 영화의 첫 장면과 타이틀이 뜨고 나면, 세 명의 등장인물을 소개 하는 교차 편집 시퀀스가 시작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각 인물의 배우자들, 각자의 침대에서 같은 쪽에 누워 있는 주인공들, 자명종 소리에 일어나는 세 주인공, 세수하는 동작, 머리나 옷매무새를 다듬는 동작, 선반이나 커튼을 여는 동작, 액션을 취하기 전에 고민하는 모습들, 세 개의 꽃병 등이 섬세하게 교차 편집된다. 각각의 장면 전환은 움직임의 경로를 연결하기도 하고, 액션과 반응으로 연결 하기도 하고, 약간의 점프 컷(jump cut) 느낌으로 연결하 기도 한다. 숏의 교차가 일률적이지 않고 일치와 불일치, 균형과 불균형을 오가며 세련되게 조율되어 있다. 음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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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되면서 교차 편집으로 만들어지는 리듬감도 최고조 에 이르고, 마무리되는 음악과 함께 시퀀스가 끝난다. 이 장면에는 감정적인 고조는 없지만 영화 초반부에서 세 명의 인물을 흥미롭게 소개하기 위해 교차 편집을 사용 했다. 또한 관객에게 이들이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줄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그리고 영 화의 후반부에서 이 느낌이 일종의 복선이었다는 것이 밝 혀진다. 로라가 자살을 시도하는 시퀀스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된다. 전반부에는 호텔을 향해 운전하고 있는 로라와 장난감 집을 짓고 장난감 자동차로 놀고 있는 아들이 교차 편집된다. 로라의 차의 동선과 장난감 차의 동선, 버린 엄 마와 버려진 아들, 로라의 급격한 차선 변경과 장난감을 내동댕이치는 아들의 모습 등은 점점 고조되는 로라의 격 한 감정을 표현한다. 시퀀스의 후반부에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자살을 실행에 옮기는 로라와 주인공을 죽일 것인지 말 것인지 고 민하는 버지니아의 모습이 교차 편집된다. 어린 조카가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으면, 생각하는 버지니아의 클로즈 숏(close shot)에 이어 자살을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 있는 로라의 클로즈 숏이 대답처럼 연결된다. 호텔 방 안에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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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올라 로라의 얼굴까지 잠기는 순간, 깜짝 놀라며 고 개를 돌리는 버지니아의 숏이 연결된다. 버지니아가 주인 공을 죽이지 않기로 생각을 바꿨다는 대사를 하자마자 자 살을 포기하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로라의 숏이 연결된다. 다시 돌아온 버지니아의 숏에서 대신 다른 사람을 죽일 거 라는 대사는 후에 로라 아들 로버트의 자살을 암시하는 복 선이 된다. 전반부의 교차 편집은 동선과 감정 에너지의 유사성을 이용해 감정의 고조를 이끌어낸다. 후반부의 교차 편집은 질문과 대답의 리듬, 생각과 생각대로 이루어진 상황을 오 가며 두 장면이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주고받는 에 너지의 점진적인 상승, 음악, 적절한 편집 타이밍을 통해 로라의 감정적 클라이맥스를 구성하고 있다. 교차 편집은 시나리오 때부터 구상했을 수도 있고, 편 집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도해 볼 수도 있다. 김용 화의 <국가대표>(2009) 첫 장면에서는 방송에 출연하는 차헌태의 모습과 나머지 네 명의 주인공들이 교차 편집된 다. 대사의 연결로 볼 때 이 장면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 터 교차 편집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에이드리언 라인(Adrian Lyne)의 <언페이스풀(Unfaithful)>(2002)에 서 유부녀 코니와 청년 폴의 첫 번째 정사 장면과 그 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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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 코니의 모습은 원래 각각 독립된 장면이었으나 편집 과정에서 교차 편집으로 재구성되었다(Chang, 2012). 시나리오에서부터 계획한 교차 편집의 경우, 정말로 편 집에 쓸 부분들만 촬영하게 되면 이후 편집 과정에서 어려 움을 겪을 수 있다. 교차 편집이 사전에 구상한 것처럼 효 과적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편집에서는 장면이나 영화 전체의 흐름에 따라 교차 편집 되는 타이밍이나 속도감, 교차 편집되는 내용 등을 새롭게 조정할 수 있다. 아예 교차 편집 자체를 없애고 각각의 장 면을 독립적으로 편집할 수도 있다. <국가대표>의 경우에 도 재개봉된 편집본에서는 교차 편집을 없애고 차헌태의 장면만으로 첫 장면을 재구성했다. 면밀히 사전 계획된 교차 편집 시퀀스라고 할지라도 되 도록 각 장면이 독립적인 연속성과 충분한 완결성을 가지 도록 촬영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좋은 편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플래시백 플래시백(flashback)은 영화에서 사용하는 내러티브 장치 로, 현재까지 이야기된 사건들보다 시간상 좀 더 앞선 시 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플래시백은 소설이나 희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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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자주 사용해 온 기법이다. 그러나 영상으로 플래시백 을 볼 때는 현재 진행되던 이야기의 단절이 소설보다 크게 느껴진다. 손쉽게 과거를 설명할 수 있는 기법이지만 위 험도 크다. 적절한 타이밍, 길이, 내용으로 편집할 경우에 는 주된 플롯의 감정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다. 베넷 밀러(Bennett Miller)의 <머니볼(Moneyball)>(2011) 에서 메이저 리그 최하위 팀의 단장인 빌리는 팀의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선수 평가 방식을 도입한 다. 그는 여러 사람의 반대에 부딪치며 갈등을 겪는다. 이 영화에서는 플래시백이 짧은 길이로 다섯 군데 삽입되어 있다. 최고로 평가받던 고교 시절, 스카우트들이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던 때, 프로선수가 되자마자 계속 내리막을 걸으며 여러 팀을 전전하는 모습이 세 번에 걸쳐 나온다. 회상이 들어가는 지점은 모두 빌리가 감정적으로 변화를 겪는 순간들이다. 긴 슬럼프에 빠져 괴로워했던 세 번째 회상이 끝난 후부터 현재의 빌리는 자신의 계획에 박차를 가한다. 빌리의 전략이 성공을 거두면서 팀은 20연승이라 는 역사적인 기록을 달성할 수 있는 경기에 임하게 된다. 경기 후반부에 팀이 실점을 계속하자 이전 회상에서 나왔 던 몇몇 숏들이 순간적으로 빠르게 연결되면서 네 번째 회 상을 만든다. 역전의 위기 직전에 삽입된 다섯 번째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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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는 선수 생활을 그만두기로 결정한 빌리의 고개 숙인 뒷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같은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 고 있는 현재의 빌리 숏이 연결된다. <머니볼>의 회상은 빌리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 면서 동시에 현재의 감정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실패가 현재의 빌리에게 심리적인 그림자가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빌리가 가진 내면의 갈등을 회상에 빗대어 표현 한 것이다. 관객은 주인공이 타인에게 내색하지 않는 감정 을 공유하며 더욱 친밀감을 느끼고 자신과 동일시한다. 현재 시점이 영화의 맨 앞과 맨 끝, 혹은 중간중간에 사용 되면서 액자 구조 역할을 하고, 중심 플롯 자체를 플래시백 으로 구성하는 영화들도 있다. <선셋 대로(Sunset Blvd.)> (1950),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1985), <포레 스트 검프(Forrest Gump)>(1994), <관상>(2013) 등이 그러 한 예다.

디졸브 디졸브(dissolve)는 앞 숏이 서서히 사라지는 동안 다음 숏이 서서히 밝아지면서 두 장면이 겹쳐지며 전환되는 것 을 말한다. 컷(cut)이 부드럽게 넘어가도록 도와주기 때문 에 시간 경과, 공간 변화, 장면 전환에서 사용된다. 기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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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편집 기법 중 몽타주, 교차 편집, 플래시백은 특별한 화 면 효과 없이 컷(hard cut)만으로도 구성할 수 있다. 이 기 법들의 핵심은 숏의 배치에 있다. 반면 디졸브는 그 자체 가 추가적인 작업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디졸브는 어느 숏에서, 어떤 프레임(frame)부터, 어느 정 도의 길이로 쓰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와 리듬을 만 들 수 있다. 디지털 편집 시스템이 편집에 도입되면서 편집 소프트 웨어상에서 손쉽게 디졸브를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러나 역설적이게도 현대 영화에서는 장면 전환 효과로 디 졸브를 거의 쓰지 않는다. 관객들이 컷에 의한 시공간의 이동을 자연스러운 영화적 생략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 문이다. 대신 독특한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할 때 디졸브 를 이용한다. 코엔 형제(Joel/Ethan Coen)의 <바톤 핑크(Barton Fink)> (1991)에서 주인공 바톤은 뉴욕에서 극작가로 성공한 후 할리우드의 영화 대본 제의를 받는다. 그는 가고 싶지 않았 지만 매니저의 권유에 못 이겨 할리우드 행을 결정한다. 바 로 다음 순간, 바닷가 커다란 돌에 파도가 치는 숏이 연결된 다. 파도가 다시 쓸려가는 동안, LA의 호텔 로비에 혼자 선 바톤의 모습으로 서서히 디졸브된다. 디졸브가 매우 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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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진행되면서 중첩된 화면이 길게 보이고, 관객은 혼란스 러움과 기괴함을 느끼게 된다. 바다의 경계선에 서 있는 익 스트림 롱 숏(extreme long shot)의 바톤은 마치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온 것처럼 보인다. 낯선 환경에 두려워하는 등 장인물의 감정을 디졸브 효과로 표현하고 있다. 디졸브는 몽타주에도 자주 사용된다. 몽타주는 특성상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의 숏들을 연결한다. 그렇기 때문 에 디졸브를 이용해 단절의 느낌을 상쇄하는 것이다. 로 저 미첼(Roger Michell)의 <노팅힐(Notting Hill)>(1999) 은 영화 시작 타이틀 장면이 할리우드의 최고 인기 배우인 주인공 애나 스콧의 몽타주 시퀀스다. 그녀의 화려한 생 활을 보여 주는 짧은 숏들이 주제곡과 함께 디졸브로 연결 되어 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또 다른 주인공인 서점 주인 윌리엄의 일상을 내레이션, 배경 음악과 함께 디졸브 로 연결해 보여 준다.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두 주인공을 같은 편집 기법으로 대비해 소개하고 있다. 필름으로 촬영하고 편집하던 시절에는 편집 중에 디 졸브를 시도해 보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디졸 브가 들어갈 부분이 포함된 숏들의 네거티브 필름을 잘 라서 구간을 표시하고 관련 업체로 보내면 옵티컬 프린 트(optical print)에서 두 영상을 광학적으로 합성해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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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네거티브 필름을 만든다. 이것을 다시 현상한 필름이 편집실에 도착하고 나서야 진행 중인 필름 편집본에 삽입 해 볼 수 있었다. 한 번 확인하려면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하 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디졸브 구간을 선택했다. 그리 고 광학 합성된 필름이 올 때까지는 컷으로 연결한 채 편 집을 진행했다. <엘리펀트 맨(The Elephant Man)>(1980), <에린 브로 코비치(Erin Brockovich)>(2000) 등을 편집한 앤 V. 코츠 (Anne V. Coates)는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1962)를 편집하던 중, 시나리오에 디졸브로 적 혀 있던 부분을 작업 과정상 어쩔 수 없이 컷으로 붙여 두 었다. 그런데 평범한 컷으로 넘어가는 그 느낌이 훨씬 더 좋아서 결국 디졸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당 시를 회상하며 손쉬운 디졸브나 빠른 디지털 편집 방식 때문에 보다 창의적인 가능성을 발견하고 생각할 수 있 는 여유가 줄어든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Kenneally, 2012). 디졸브나 페이드(fade) 등의 화면 전환 효과를 먼저 쓰 면 섬세한 커팅 포인트(cutting point)와 리듬을 잡기 어렵 다. 뿐만 아니라 좋지 않은 편집도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대부분의 편집자들이 처음에는 효과 없이 평범한 컷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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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편집을 한다. 화면 전환 효과뿐만 아니라, 몽타주, 교차 편집, 플래시백 등 기존에 계획한 어떠한 편집 기법도 원 래 의도가 제대로 살지 않을 때는 기법을 쓰지 않는 시도 를 해 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기교적인 편집 기법을 고려 하지 않았던 장면들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해 볼 수도 있다.

참고문헌 Bordwell, D. & Thompson, K.(2008). Film Art: An

Introduction(8th edition). New York: McGraw-Hill. Chandler, G.(2004). Cut by Cut. Studio City: Michael Wiese Productions. Chang, J.(2012). Film Craft: Editing. Waltham: Focal Press. Hayward, S.(1996). Cinema Studies: The Key Concepts. London: Routledge. 이영기 역(1997), 󰡔영화 사전: 이론과 비평󰡕. 서울: 한나래. Kenneally, C.(2012). <Side by Side>. Boston: PBS. O’Steen, B.(2009). The Invisible Cut. Studio City: Michael Wiese Productions. 김진희 역(2014). 󰡔보이지 않는 컷󰡕. 서울: 비즈앤비즈. Sijll, J. V.(2005). Cinematic Storytelling. Studio City: Michael Wiese Produ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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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편집과 편집자

촬영본을 구성해 영화를 완성하는 편집은 일반적으로 후반 작업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촬영과 동시에 시작된다. 촬영이 종료되면 편집자는 영화 전체가 연결된 1차 편집본을 완성한다. 이후 감독과 협업을 통해 편집본을 수정하고 보완한다. 다양한 의견을 통합한 최종 편집본은 그 외 후반 작업을 거쳐 극장에 배급된다. 편집은 관객에게 공개할 이야기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작업이다.


제작 단계 영화는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린 후 스크린에서 상영되기 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과 각 기 다른 여러 작업 과정을 거쳐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된다. 개발 단계에서는 영화의 아이디어를 시나리오로 완성 하고 투자를 결정한다. 시나리오는 작가의 독창적인 아이 디어만으로 완성되기도 하고, 소설, 만화, 자서전, TV 드 라마, 연극, 기존의 극영화, 게임, 다큐멘터리 등 이미 공 개된 이야기나 소재를 각색하기도 한다. 영화의 제작 비 용에 대한 투자가 결정되는 동안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함 께 진행하기도 한다.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 단계에서는 본격적인 촬영을 위해 필요한 제반 사항을 준비한다. 배우 캐스팅, 스태프 및 촬영 장소 선정이 이루어지고, 촬영, 조명, 사운 드, 미술, 의상 등 작품 전반의 스타일에 대한 의견도 조율 한다. 영화 전체 이미지의 흐름을 계획하고 검토할 수 있 는 스토리보드(storyboard)도 제작한다. 프로덕션(production) 단계에서는 촬영과 동시녹음을 진행한다. 촬영한 분량과 동시녹음한 사운드, 모든 숏 (shot)의 내용과 상태를 기록한 스크립트(script note)는 매일 혹은 정해진 날짜에 편집실로 보낸다. 이렇게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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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촬영본을 데일리(dailies)라고 한다. 포스트 프로덕션(post-production) 단계에서는 편집이 이루어진다. 요즘은 매우 드물지만, 필름으로 촬영한 경 우는 텔레시네(telecine)나 스캐닝(scanning)을 통해 얻어 진 이미지를 디지털 편집 시스템에 입력시켜 편집한다. 디지털 방식으로 촬영한 이미지는 데이터 용량이 크기 때 문에 화질과 용량을 줄인 후 편집을 진행한다. 이렇게 편 집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 원본이 아닌 영상으로 편집하는 과정을 오프라인 편집(offline editing)이라고 한다. 편집 을 진행하면서 시각 효과가 필요한 장면들은 먼저 원본 필 름이나 디지털 데이터를 컴퓨터 그래픽(CG) 업체로 보내 고, 완성된 이미지를 받아 다시 편집본에 삽입한다. 편집본이 확정되면 영화에 사용된 부분의 필름의 키코 드(keykode) 혹은 비디오의 타임코드(timecode)가 적힌 EDL(edit decision list)을 네거티브 필름 편집실 혹은 DI(digital intermediate) 업체에 보낸다. 편집실에서 결정 한 내용에 따라 원본 필름이나 고화질의 디지털 데이터로 재편집하는 과정을 온라인 편집(online editing)이라고 한다. 한편 편집본이 확정되었을 때, 편집실에서는 사운드 데 이터를 정리해 사운드 후반 작업실로 보낸다. 믹싱이 끝 난 사운드와 색 보정을 마친 이미지를 합치면, 비로소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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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에게 공개할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된다. 완성된 영화는 필름이나 디지털 데이터가 저장된 매체를 통해 극장에 배 급된다. 배급 단계에서는 시사회나 영화제, 극장 개봉을 시작으 로 DVD, 케이블 방송, IPTV, 공중파 방송, 인터넷, 모바일 등 다양한 경로로 대중에게 공개된다. 공개 방식과 순서 는 작품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편집 편집은 촬영본을 검토하고 구성해 최종적인 이야기를 구 성하는 작업이다. 편집은 촬영본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으로 구분되지만 실제 편집 작업은 촬영이 시작되고 첫 번째 데일리가 넘어 오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또한 감독과 PD(producer)가 편집자에게 시나리오나 스토리보드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경우도 많다. 장면이나 영화 전체 구성에 대한 편집자의 경험을 활용하는 것이다. 전체 이야기 진행에 대한 분석, 추가해야 할 장면과 삭제해도 무방한 장면들에 대한 의견 을 반영해 제작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런가 하 면 개봉 직전 시사회의 반응에 따라 편집을 수정하기도 하 고, DVD에 들어갈 부가 영상이나 또 다른 편집본을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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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한다. 편집자의 역할 범위는 감독 및 PD와의 관계, 본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국내에서는 촬영 현장에서 현장 편집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현장 편집은 감독이 숏의 연결 여부를 확인하기 위 해 시작되었지만, 요즘은 투자사에서 현장 진행을 확인하 기 위한 자료로 요구하기도 한다. 현장 진행의 효율성을 높이고 투자사의 불필요한 간섭을 막기 위해 현장 편집을 거부하는 감독들도 있다. 현장 편집은 독립적으로 계약하 기도 하고 후반 편집실에 현장 편집을 포함해 계약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후반 편집을 할 때 편집자가 현장 편집 본을 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촬영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게 하고 창의적인 편집 아이디어를 제한하기 때문이 다. 촬영본 데이터의 행방이나 존재 여부가 불분명할 때 현장 편집본을 확인하기도 한다. 현장 편집은 연출이나 제작 진행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현장에서 데일리가 도착하면, 편집 어시스턴트는 함께 온 스크립트를 확인하며 촬영본을 정리한다. 대부분의 경 우에는 동시녹음이 별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사운드를 녹 음한 데이터도 함께 전달된다. 편집 어시스턴트는 파일들 을 장면(scene)별로 정리하고, 동일한 테이크(take)에 해 당하는 비디오와 사운드의 서브클립(subclip)을 합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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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sync) 작업을 한다. 싱크된 숏들, 사운드 없이 이미 지만 촬영한 MOS(motor only shot, mit out sound), 사운 드만 별도로 녹음한 와일드 트랙(wild track)들을 장면별 로 정리하고, 장면의 진행 순서대로 숏들을 나열해 순서 편집을 한다. 대체로 순서 편집에는 전체를 완전히 사용 할 수 없는 테이크를 제외하고는 모두 포함한다. 현장에 서 작성한 스크립트에는 당시 감독의 판단에 따라 테이크 별로 OK, Keep, NG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촬영 현장 과 달리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의 편집실에서는 다른 판단 을 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 명백한 문제가 있거나 도중에 촬영이 중단된 테이크라 할지라도 나머지 부분을 편집에서 활용할 수 있다. 편집자는 순서 편집을 보면서 촬영본과 처음으로 마주 하게 된다. 언뜻 생각하면 그 많은 테이크들을 검토하는 것이 지루한 작업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전체 편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독이 직접 편집을 하지 않는 이유는 촬영본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감독은 해당 영화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때문에 장면의 상황이나 이야기의 진행에 모순이 있어도 발견하지 못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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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있다. 특히 직접 대본을 쓴 감독은 시나리오에 표현 되지 않는 등장인물의 과거나 성격까지 알고 있다. 실제 영화에서 드러나야 할 정보가 부족해도 그것을 알아채기 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건과 사고 속에서 현장 을 지휘했기 때문에, 화면을 보는 순간 그 모든 생각이 무 의식중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같은 이유로 편집자 월터 머치(Walter Murch)는 촬영장 을 방문하지 않는다. 그는 배우를 배우가 아닌 극중 인물로 보기 위해 실제로 배우를 만나는 것도 피한다(Ondaatje, 2002).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방식은 편집자마다 다르 다. 하지만 모든 편집자는 제작 과정을 전혀 모르는 관객의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편집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촬영본 편집이 진행 될수록 숏이나 장면에 대한 객관적 시선을 조금씩 잃어가 게 된다. 그래서 더더욱 처음 촬영본을 보면서 받은 느낌 이 중요하다. 그때의 판단을 믿고 의지하려면 그만큼 촬 영본을 처음 보는 순간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어 야 한다. 편집자는 촬영본 속의 모든 요소와 리듬을 자신 의 몸으로 흡수하고 마음으로 느낀 후 이성적으로 편집을 계획한다. 편집 일정, 환경, 기대치와 다른 촬영본, 본인의 성격 등 편집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는 많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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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편집자가 극복해야 하는 문제다. 장면별 순서 편집을 검토하고 나면 장면별 편집을 시작 한다. 대부분의 경우, 편집을 시작하면 편집자들은 더 이 상 시나리오나 스토리보드를 보지 않는다. 촬영본만으로 판단하고 그 안에서 이야기와 감정을 읽어 낸다. <트루먼 쇼(The Truman Show)>(1998),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2008) 등을 편집한 리 스미스(Lee Smith)도 “(예 외가 있지만) 대개는 시나리오를 한 번만 읽는다”고 말한 다(Chang, 2012). 편집자는 적절한 테이크, 즉 숏을 선택하고 필요한 부 분을 연결한다. 모든 컷은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 유 없이 숏을 바꿔서는 안 된다. 연결한 영상을 여러 번 되 풀이해 보면서 각각의 커팅 포인트를 조정해 자신이 의도 하는 액션이나 감정을 만들어 간다. 장면별 편집이 끝나면 이를 시퀀스(sequence) 단위로 연결한다. 촬영이 완료되고 모든 촬영본이 편집실로 넘어 오고 나면, 편집자는 전체 시퀀스들을 통합해 자신만의 리 듬으로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한다. 이를 1차 편집본 혹은 퍼스트 컷(first cut, editor’s cut)이라고 한다. 1차 편집본 은 처음으로 하나의 완결된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많은 편집자들이 1차 편집본을 러프 컷(rough cut)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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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부르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Chandler, 2004). 왜냐하면 1차 편집본은 ‘대략적으로’ 연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차 편집본은 촬영을 마친 감독이 편집실로 와 서 맨 처음 보게 되는 편집본이다. 또한 편집자의 결정만 으로 완성된 편집본이기 때문에 편집자의 역량과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감독에게 첫인상을 주는 편집본이며 이것을 기준으로 수정과 보안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1차 편집본의 완성도는 상당히 중요하다. 다만 1차 편집본에 서는 장면이나 상황 혹은 대사를 생략하지 않는다. 편집 자는 촬영된 모든 장면과 모든 상황을 포함시킨 상태에서 최상의 리듬을 구성한다. 이후로 감독과 편집자는 함께 작업을 한다. 장면이나 시퀀스 단위로 감독이 의견을 제시하고 함께 토론한다. 편집자는 감독의 의도가 최대한 잘 표현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감독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수정하는 편집자도 있고, 혼자 작업하는 시간을 선호하는 편집자도 있다. 후 자의 경우에는 며칠 간격으로 만나서 의견을 조율한다. 이 단계에서 감독이 임시 음악의 사용을 제안할 수 있 다. 영화에 사용될 곡이 작곡되었거나 저작권 협의가 끝 난 경우는 음악을 넣어볼 수 있다. 편집의 리듬을 음악의 리듬에 따라 조정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임시 음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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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할 경우에는 음악의 리듬을 너무 고려해서는 안 된다. 이후 믹싱 과정에서 완전히 다른 음악이 삽입되었을 때 편 집 리듬과 음악의 리듬이 계속 충돌하며 흐름이 끊어질 수 도 있다. 편집자는 음악을 사용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음 악이 삽입되면 커팅 지점들이 부드럽게 넘어가서 편집이 잘못된 부분을 놓칠 수 있다. 또한 음악의 리듬감에 매몰 되어 숏 자체의 고유한 리듬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할 수도 있다. 음악 없이 숏의 리듬을 구성하고, 이후에 음악을 넣 어 편집을 수정하는 것이 더욱 완성도 높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감독과 협업을 통해 완성한 편집본이 디렉터스 컷 (director’s cut)이다. 그러나 이대로 편집을 확정하지는 않는다. 상업 영화 산업 구조에서 감독이 최종 편집권 (final cut privilege)을 가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독립 영 화의 경우에는 감독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크고, 때로는 감 독 자신이 투자자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감독이 최종 편집 권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상업 영화에서는 제작자, 투자자, 홍보팀 등 영화의 판매 전략을 고려한 의 견이 최종 편집본에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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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편집자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는 감독과 편집자의 관 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영화감독과 영화 편집자는 서로에 게 유대감을 느낀다. 서로를 신뢰하고 상호 의존적이며, 이 러한 관계는 감독에게 안식처가 된다. 나에게 편집실은 영 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곳이며,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다.”(Chandler, 2004) 촬영을 마친 감독은 대부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쳐 있다. 이런 상태의 감독에게 신뢰할 수 있는 편집자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일정이 허락되면 감독은 얼마간 의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을 할 수 있다. 감독과 편집자가 함께하는 첫 작품일 경우는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하기까 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이럴 때 편집자의 완성도 높은 1차 편집본은 두 사람의 관계에 좋은 출발점이 된다. 편집자는 감독의 관점을 존중하고, 감독은 영화를 위해 편집자의 감각과 창의성과 객관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야 한다. <셀레브레이션(Festen)>(1998),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2004)을 편집 한 발디스 오스카즈도티르(Valdís Óskarsdóttir)는 감독과 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작업할 때 감독이 조용히 있어 주는 한, 감독과 부딪칠 일이 없다. 편집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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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만들고 있는 영화 속 세상과 이야기에 빠져 있다. 누군가가 자꾸 나를 방해 하면 집중할 수가 없다. 타인이 무엇을 하라고 말할 때, 우 리의 뇌는 생각하기를 멈춘다.”(Chang, 2012) 감독 중에는 머릿속에서 영화를 완벽하게 완성시키고, 나머지 제작 과정은 그것을 재현하는 단계로 보는 사람도 있고, 제작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를 모아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 가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감독과 편집 자의 목표가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즉, 감독의 의도가 관객 에게 잘 전달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목표 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에서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머치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감독과 편집자의 협업 과정 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반적으로 감독은 꿈꾸는 사람이고, 편집자는 듣는 사람이다. (중략) 편집자는 영화 감독이 꾸고 있는 꿈을 더 완전하게 기억나게 하기 위한 미끼로 대안적인 시나리오를 제안한다.”(Murch, 2001) 편집자가 찬성하기 어려운 의견을 감독이 고집하는 경 우도 흔히 있다. 이때 편집자에게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반대하는 이유를 잘 설명하되 감독의 요구대로 편집을 조 정해야 한다. 편집자 자신도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섣불 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숏들을 붙여 보면 상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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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것과 다른 화학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실제로 재현된 수정안을 보고 감독이 자신의 의견을 철회 할 수도 있다. 또 며칠이 흐른 후에 철회할 수도 있다. 편 집자는 여유를 가지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확고한 편집 계획을 가지고 있던 감독도 어느 순간 자신의 수정안에 의구심을 느낄 때가 있다. 그때 편집자의 객관 적인 의견이나 또 다른 대안이 도움이 된다. 때로는 편집자가 감독과 제작자 혹은 투자자 사이에서 어려운 입장에 놓이기도 한다. 이상적으로는 편집자가 감 독의 입장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좋다. 경우에 따라서는 편집자의 입장에서도, 감독보다 제작자와 투자자의 의견 이 더 바람직해 보일 수 있다. 혹은 자신의 의견과 상관없 이 제작자나 투자자의 요구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편집자는 감독이 현실적인 상황 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편집자와 감독이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할 때 더 좋은 영화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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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Chandler, G.(2004). Cut by Cut. Studio City: Michael Wiese Productions. Chang, J.(2012). Film Craft: Editing. Waltham: Focal Press. Murch, W.(2001). In the Blink of an Eye: A Perspective on Film

Editing(Revised edition). Los Angeles: Silman-James Press. Ondaatje, M.(2002). The Conversations: Walter Murch and the

Art of Editing Film by Michael Ondaatje. New York: Knopf. O’Steen, B.(2009). The Invisible Cut. Studio City: Michael Wiese Productions. 김진희 역(2014), 󰡔보이지 않는 컷󰡕. 서울: 비즈앤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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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강사다. 영화진흥위원회 서 울영상미디어센터, 목원대학교 등에서도 강사로 활동 중이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장편영화, 장편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TV미 니시리즈, 단막극 등 다양한 작품 편집과 장편영화 스토리 기 획에 참여했다. 역서로 󰡔커팅 리듬, 영화 편집의 비밀󰡕(2014), 󰡔보이지 않는 컷󰡕(201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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