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20150213 4 9

Page 1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표현의 자유를 구속하는 열 가지 판결 이승선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사회적 사건

‘할 수 있다 할 것이다’의 기능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장치들이 도처에 즐비하다. 헌법재판소나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 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판결 을 자주 내놓는다. 그러한 판결들의 영향력은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까닭에 아주 천천히, 조금씩 확대돼 온 자유로 운 의견 표현의 방식들마저 된서리를 맞고 주춤거리게 된 다. 방송과 통신을 심의하는 위원회, 영화의 등급을 심의 하는 위원회 등도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일 때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는 매우 효 과적인 통제 도구로 쓰인다. 헌법과 법률, 시행령뿐만 아 니라 여러 종류의 심의 규정들이 표현 자유의 확장이냐, 위축이냐를 가르는 판단의 준거다. 물론 그 일을 재판관 이나 법관 혹은 심의위원 등 ‘사람’이 처리한다. 동일한 사 건에 동일한 법령을 적용할 때조차 ‘사람’에 따라 해석의 방향과 내용이 너무 다르다. 이를테면, ‘표결을 하기 전에 질의와 토론을 거친다’라는 법률 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

v


고 질의·토론을 아예 생략하고, 처음 접한 법률 개정안 자료를 회의 진행 시스템에 입력한 지 33초 후 표결을 개 시한 의사 진행 절차가 위법하지 않다는 일부 헌법재판관 들의 판단은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 ‘할 수 있다’ 혹은 ‘할 수 있다 할 것이다’라는 규정이나 말도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거나 위축하는 도구로 쓰인다. 헌법재판소법 제66조에 따르면 국회의장의 처분이 국회 의원의 권한을 침해한 때에 그 처분을 취소하거나 무효를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헌법재판관들 다수는 앞의 ‘질 의·토론 없는 33초 후 표결’이라는 대단히 ‘비상한 공적 관심사’에 대해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위법 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위법·위헌적으로 만들어진 그 법률안을 ‘무효 확인’해 달라는 국회의원들의 청구에 대해 서는 ‘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들어 ‘무효 확인을 하지 않았 다’(헌재의 이 비상한 결정은 9장에서 다루었다). 또 헌법 재판소는 2010년 이른바 ‘불온 도서’ 사건에서 관련 법령 에 ‘불온’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규정 이 없기 때문에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되고 나아가 자의적 인 법 집행과 해석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 ‘불온 도서’ 가 이러저러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할 것이다’라는 모호한 언술로 어물쩍 넘어갔다. 법 집행 당

vi


국의 자의적인 집행 가능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헌법재판소는 2002년 ‘불온 통신’의 개념은 너무 불 명확하고 애매하여 명확성의 원칙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 이라고 판단했다. 동시에 2002년 헌재는 법의 집행과 해 석을 통해 ‘불온 통신’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확정하기 어 렵다고 보았다. 다른 부문에서 발생한 ‘불온 도서’ 사건이 었더라면 아마 헌법재판소는 2010년에도 ‘불온’의 법적인 규정이 여전히 불명확하여 위헌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 이 있다. 그런데 헌재는 국가 안보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불 온의 개념을 오히려 ‘불확정 개념’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 다는 놀라운 ‘법적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며 장난하는 말은 군 생활에 지친 병사들에게 일종의 비타민 같은 역할 을 ‘할 수 있다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엔 신성한 군 복무를 조롱하는 언사들이 적지 않다. ‘군인’을 ‘사람’의 집단에서 제외시키며 희롱하는 일들도 잦다. ‘사람 만들려면 군대 보내야 한다’거나 ‘군대 가서 사람 돼 나왔다’는 말도 따지 고 보면 현역 군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 있다 할 것이 다’. 언제는 사람이 아닌 자가 군에 입대했다는 말인가. 장 성한 아들을 군에 보낸 뒤 눈물을 훔치고 가슴을 태우며 초조하게 밤을 지새우는 신병과 초년병의 어머니들에 대

vii


한 모욕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사람’을 낳지 않았으면 도대체 무엇을 출산했다는 말인가? 군대를 ‘사람 만드는 곳’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개별 상황에 서 어떤 사람이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숙한 의사 결정 을 하는 모습을 빗댄 것이려니 하지만, 그와 같은 표현은 그 대상이 직업 군인이든 의무 병역을 수행하는 장병이든 이 땅의 누구보다 심신이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들’을 폄 하하는 ‘불온한’ 언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할 것이다’. 교사들의 정치적 활동과 표현 자유 영역 역시 여전히 꽁꽁 묶여 있다. 2014년 3월 27일 헌법재판소는 공무원과 교원들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정당법과 국가공무원법 등이 ‘합헌’이라며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2011헌바42결 정). 대법원 판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사들의 표현 활 동을 확장하는 하급심 판결이 항소·상고심에서 기묘한 논리와 해석에 의해 ‘간단히’ 뒤집히는 사례들도 부지기수 다. 한 예를 보자. 2010년 대전지방법원의 한 재판부는 당 시 교사들의 시국 선언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 판부는 교사들의 시국 선언 내용을 지지하지 않을지언정 이를 형사 처벌할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1심 재판부는 1 차 시국 선언의 내용은 <PD수첩> 수사·용산 화재 사건 수사·각종 촛불집회 사범 수사에 대한 비판과 함께 노무

viii


현 전 대통령의 서거 원인에 대한 의견 개진, 미디어법 개 정 중단 촉구, ‘한반도 대운하 사업’ 반대, 공권력 남용에 대한 사과 촉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특정 정 당이나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나 반대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아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제2차 시국 선언의 경우 주요 내용은 교사에게도 헌법에 보장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줄 것, 시국 선언 교사 징계 철회, 국민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대통령의 자세 전환, 특 권층 위주 정책 지양, 사회복지와 교육복지 확대, 자사고 설립 등 경쟁 만능 학교 정책 중단, 학교 운영의 민주화 보 장 등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2차 시국 선언에 특정 정치 세 력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음은 자명 하므로 정치적 중립 의무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교사들의 시국 선언 은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만한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한 다며 정치적 편향성과 당파성을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라 고 해석했다. 또 1차 시국 선언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현 정권에 반대하는 전선을 구축하려는 뚜렷한 정치적 의 도를 가지고 시국 선언의 형식을 빌려 왔다고 보았다. 공 권력의 행사와 주요 정책을 일방적으로 부정하고 평가하 고 공격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2차 시국 선언 역시 선언

ix


문에 ‘정부의 조치가 군사독재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민주 주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공권력의 남용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며 정치적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실행한 것이라 고 판단하고 유죄를 확정했다. 서문이긴 하지만 두 차례 의 교사 시국 선언문 전문을 소개하기로 한다. 1심 재판부 의 견해가 합리적인지 아니면 항소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적절한 것인지 비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좀 더 자세 한 내용은 2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① 1차 교사 시국 선언: 6월 민주 항쟁의 소중한 가치가 더 이 상 짓밟혀서는 안 된다

6·10민주항쟁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확인 한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역사다.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6월 항쟁의 역사와 가치를 가르쳐야 할 우리 교사들은 국민들의 숱한 고통과 희생 속에 키워 온 민주주의의 싹이 무참히 짓 밟히는 현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심한 당혹감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 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공권력의 남용으 로 민주주의의 보루인 ‘언론, 집회, 표현, 결사의 자유’가 심 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인권’이 심각하게 유린되고 있다. 촛불 관련자와 <PD수첩> 관계자에 대한 수사가 상식을 넘

x


어 무리하게 진행되었다. 공안권력을 정치적 목적으로 동 원하는 구시대적 형태가 부활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비극 적인 죽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모한 진압으로 용산 참사가 빚어졌고, 온라인상의 여론에도 재갈이 채워졌 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공헌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이 불 법 시위 단체로 내몰려 탄압을 받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 를 거꾸로 돌리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명박정권의 독선적 정국 운영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권의 독선은 민생을 위협 하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발전해 온 생태와 평 화 등 미래 지향적 가치마저 위협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비 롯한 서민들의 생존권이 벼랑에 몰리고 있다. 낡은 토목 경 제 논리로 아름다운 강산이 파헤쳐질 위기에 놓여 있다. 꾸 준히 진전되어 온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국민의 생존과 국가의 미래가 총체 적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교육 또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 고 있다. ‘사교육비 절반, 학교 만족 두 배’의 약속은 지켜지 지 않고 도리어 무한 입시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정책이 강 화되고 있다. 학교가 학원화되고, 사교육비가 폭증하며 공 교육의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가진 자만을 위한 귀족 학 교 설립이 국가 교육 정책으로 강행되고 있고, 학교장의 독 단적 학교 운영이 나날이 강화되어 가고 있다. 교과서 수정

xi


등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위협받고 있다. 20년간 진전되어 온 교육 민주화를 거꾸로 돌리는 시대 역행이 진행되고 있 다./ 우리는 작년 온 나라를 덮었던 촛불의 물결, 올해 노 대 통령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물결은 시대를 역행하는 현 정 부의 독선적 정국 운영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라 생각한다. 바로 22년 전 6월 항쟁 정신의 재현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국민의 버림을 받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에 우리는 오늘 이 선언을 발 표하며, 현 정부의 국정을 전면 쇄신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 복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또한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 도 학교 운영의 민주화가 회복되기를 촉구한다. ○정부는 공권력의 남용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국정을 쇄신하 라. ○헌법에 보장된 언론과 집회와 양심의 자유와 인권을 철저히 보장하라. ○특권층 위주의 정책을 중단하고 사회 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추진하라. ○미디어법 등 반민 주 악법 강행 중단하고, 한반도 대운하 재추진 의혹 해소하 라. ○자사고 설립 등 경쟁 만능 학교 정책 중단하고, 학교 운영의 민주화 보장하라. ○빈곤층 학생 지원 교육복지 확 대하고, 학생 인권 보장 강화하라. - 2009.6.18. 6월 민주 항쟁의 소중한 가치를 기리는 정진 후 외 1만 6171명의 교사

xii


② 2차 민주주의 수호 교사 선언: 표현의 자유 보장하고 시국 선언 교사 탄압 중단하라!

우리는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 가르치고 있다. 대한민 국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기본권으 로 보장하고 있다. 국민의 일원인 교사에게도 ‘언론과 표현 의 자유’는 당연한 기본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국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1만 7000에 이르는 교사 들을 전원 징계하겠다는 사상 유래 없는 교과부의 방침을 접하며, 우리 교사들은 이제 민주주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독재를 민 주주의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가 슴 아픈 역사를 떠올리며, 깊은 분노와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교사는 교과서에 담겨 있는 생명, 평화, 정의 그리 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며 가 르치는 존재다. 이런 교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민주와 인권을 가르치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국 선언 교사 대량 징계는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위헌적 인 공권력 남용이다. 철회해야 한다. 21세기는 ‘소통의 시 대’라 한다. 우리는 교사들의 시국 선언이 국민 대다수가 염 원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판단한다. 현 정부는 최근 소통의 부족을 절감한다며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

xiii


이 진심이라면 정당한 교사들의 목소리를 탄압할 게 아니라 경청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 다. 우리는 국민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이에 귀 기울이려는 대통령의 자세 전환이야말로 현 시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다시 굳건히 세우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표현의 자유 보장과 시국 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 철회를 촉 구한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시국 선 언 교사에 대한 고발 및 징계는 철회되어야 한다. ○특권층 위주의 교육 정책을 중단하며, 사교육비를 감소하고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자사고 설립 등 경쟁 만능 학교 정책을 중단하고, 학교 운영의 민주 화가 보장되어야 한다. - 2009.7.19. 정진후 외 2만 8634명의 교사 일동

이 지점에서 대전지방법원 김동현 판사가 쓴 이 사건 1 심 판결문의 요지를 몇 가지 추가하고자 한다. 이 판결문 은 수많은 대법원 판례와 헌법 관련 서적, 세계 각국의 입 법례, 유사 시국 사건에 대한 다른 법원의 판결 등을 참조 하면서 이를 각주 처리하고 있어 학술적 연구 자료로서도 매우 큰 가치가 있다. 1심 재판부는 첫째, 정파적 이해가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 특정 정파의 의견을 대변하는 표현

xiv


행위는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서 공익에 반한 다는 검사의 주장을 배척했다. 인간은 본디 정치적 존재 (homo politicus)로 사회생활과 관련된 행위는 정치성을 띤다면서 검사의 논리대로라면 정부에 대한 비판은 필연 적으로 야당 및 재야 정치 세력의 주장과 일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비판을 전면적으로 봉쇄하는 결 과를 낳을 것이라고 보았다. 공무원도 국민의 일원으로 직무의 온전성을 해치지 않는 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 의견을 밝힐 기본권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파적 이해 대립이 있는 사안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의사 표 현을 처벌한다면 이는 권력을 비판하는 세력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민주주의를 해치는 처사가 명약관화하다고 보았다. 둘째, 1심 재판부는 교사 들의 시국 선언 발표가 정치적·사회적으로 미성숙한 학 생들에게 여과 없이 수용되어 공익에 반한다는 검사의 주 장을 배척했다. 그러한 시각은 획일적 교육을 받고 정보 부재의 환경에서 성장한 기성세대의 낡은 경험에 근거한 편견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교사들의 시국 선언은 교실 바깥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학생들은 인터넷과 언론을 통 해 무한한 정보를 입수할 능력이 있고 비판적인 논술 교육 을 받고 자라난 학생들은 교사들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xv


수용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정보 획득 과정에서 시국 선 언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주장의 정보도 자연스럽게 수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1심 재판부는 정부 정책을 비 판했다는 이유로 교사들을 형사 처벌하게 된다면, 이를 지 켜보는 학생들은 힘이 있는 자에 대한 비판은 손해만을 불 러온다는 교훈을 얻게 되고 그러한 교훈은 학생들에게 매 우 실제적·구체적인 것으로 이론의 여지없이 전해질 것이 라고 보았다. 그러할 경우, 비판과 견제를 통해 권력의 건전 성을 유지하는 현대 민주주의는 그 건강성을 잃게 될 위험 이 크고 따라서 시국 선언을 한 교사들을 형사 처벌하는 것 이야말로 반교육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재판부의 견해 를 반영한 무죄 판결은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뒤집어졌다.

입법자들의 ‘헌법재판모욕죄’ 혹은 ‘입법 뭉개기죄’ 헌법재판소는 2009년 9월 24일,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 나 해가 진 후에 옥외집회, 시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한 집 시법 제10조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선고하고 2010 년 6월 30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 적용시켰다(2008 헌가25결정). 그러나 위헌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2014 년 4월 현재 이 조항은 개정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헌법 재판소는 2014년 3월 27일,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24시

xvi


까지의 시위’에 해당 규정이 적용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 는 ‘한정 위헌’ 결정을 내렸다[2010헌가2,2012헌가13(병 합)]. 헌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입법자들은 ‘해가 뜨기 전 이나 해가 진 후’는 물론 ‘해가 뜬 후 그리고 해가 지기 전’ 조차 입법의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 ‘헌법재판모욕죄’라는 죄명도 없고 ‘입법뭉개기죄’도 없으니 유권자와 시민단체 들이 밤과 낮으로 입법자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뿐이다. 국회의원을 상대로 집회·시위를 하는 것도 그 방법의 하 나다. 3장은 국회 경계로부터 100미터 이내에서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 규정의 위헌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헌재 는 이곳에서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 규정은 합헌이라고 판 단했다. 지금은 주춤한 것 같지만 한동안 우리 정치사에서 사람 의 이름을 영어 이니셜이 대신하였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YS와 DJ로 불렀다. JP는 김종필 전 국무총 리의 정체를 대신했다. 그들의 아들들도 이니셜을 동반했 다. 이를테면 누구누구 김현철이 아니라 간단히 ‘YS 차남 김현철’로 불렀는데 상황에 따라 ‘YS 차남’으로도 잘 통했 다. ‘DJ 삼남’도 마찬가지다. 급기야 두 사람의 이니셜을 하나로 합쳐 부르는 기막힌 용례도 등장했는데, 그 이름은 단순한 합성이라기보다 한국의 정치 지형을 상징하는 ‘권

xvii


력형 줄임말’이었다. DJP는 정치인 김대중과 김종필의 이 니셜을 ‘합하고 줄인’ 표현이지만 지역적 기반이 서로 다 르고, 정치적 이념의 차이가 있는 두 정당이 집권을 위해 협력한 정책 연합을 상징했다. DJP는 1997년 대통령 선거 에서 승리하고 DJ는 대통령, JP는 국무총리가 되었다. 그 후로 세 명의 대통령이 배출되었지만 그들은 대개 이니셜 보다는 이름 석 자로 온전히 불렸다. 다만, 이명박 대통령 을 MB로 줄여 부르기도 했으나 그의 정책과 정치력을 빗 대어 오히려 함량 부족을 뜻하는 ‘2MB’라고 희롱하는 사 람들이 많았다. 기가바이트(GB) 컴퓨터 용량 시대에 기 능이 상대적으로 작고 모자라는 메가바이트(MB) 급의 지 도자라는 힐난이었다. 더러 공영방송으로서 위상이 급락 한 한 MBC를 겨냥해 ‘2MB의 MB씨’라고 조롱하는 자들도 생겨났다. 인터넷과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확장되 면서, 말과 글에 쓰이는 단어들은 외려 축약을 거듭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최근의 전유물은 아니다. 근대 장편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는 이광수의 󰡔무정󰡕에 ‘검나’라는 단 순하고 우직한 청년 이야기가 등장한다. 1917년 ≪매일 신보≫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므로 벌써 100여 년 전의 일 이다. 키가 크고 얼굴이 거무튀튀한 경성학교 학생 김종 렬은 자나 깨나 나폴레옹을 하느님 이름 부르듯 입에 달고

xviii


살았다. 보나파르트라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그의 전기 한 권 읽지 않았던 김종렬은 모든 것에 나폴레옹을 인용했다. 학생들은 그의 얼굴이 검은 점을 감안해 ‘검은 나폴레옹’이라고 부르다가 후에 ‘검나’로 줄여 불렀다. 100 년 후의 디지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응사’(응답하라 1994)나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를 스스럼없이 사용한다 고 하지만 기실 100년 전의 말 줄임 현상으로부터 크게 나 아간 것도 아니다. 이른바 ‘듣보잡’ 소송으로 알려진 2013 년 헌법재판소 모욕죄 헌법 소원 심판 사건을 살펴보면 더 욱 그러한 느낌을 갖게 된다. 후보자 비방죄가 합헌이라 는 헌재 결정에 이어 5장에서는 이른바 ‘듣보잡’ 모욕죄를 합헌으로 판단한 헌재 결정을 다루고 있다.

‘신통방통’ 위원회의 ‘3대빵’ · ‘6대빵’ 의결 이명박정부는 집권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줄여서 방통 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줄여서 방통심의위)’를 출범 시켰다. 여기까지는 외형상 나쁘지 않았다. 두 기구의 설 치와 운영에 관한 내용은 2008년 2월 29일 제정·시행된 ‘방송통신위원회의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에 담겼다. 그 런데 교묘하고 오묘하게도 이 기구들은 최고 권력자와 집 권당의 ‘방송 장악’을 매우 수월하게 만들 수 있는 법령상

xix


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송 프 로그램의 공정성 등의 위반을 이유로 법정 제재를 ‘의결’ 하면 방송통신위원회는 법정 제재 조치를 방송사에 명령 하는 이원적 구조였다. 방통위는 방송 심의뿐만 아니라 방송 정책 전반에 관한 사안을 관할하는 기구였다. 방송 사업자의 허가·재허가, KBS 이사 추천 및 감사 임명,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및 감사 임명, EBS 사장·이사 및 감사 임명, 프로그램 및 방송광고의 운영과 편성 등이 방통위의 관할에 속했다. KBS이사회와 MBC방문진이사 회에서 사장을 선임하므로 방통위는 실질적으로 대표적 인 공영방송사의 사장을 ‘뽑거나 내칠’ 권한을 행사하는 셈이었다. 방통위 위원은 5명인데 구조적으로 대통령과 집권당이 위원장을 포함해 그중 3명을 장악하였다. 회의 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였으므로 의견이 갈린 정책 사안에서 통치 권력은 ‘언제나’ 이길 수밖에 없 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대통령과 집권당의 지배 에 놓이게 되었다. 9명의 위원 중 3인은 대통령, 3인은 국 회의장, 3인은 상임위원회에서 추천하게 되었으므로 대통 령과 집권당은 방통심의위 의사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 운영 결과 쟁점 사안에 대한 의결은 일반적으로 6:3 으로 마무리되었다. 첨예한 쟁점에 대한 의결이 이뤄질

xx


때 방통위든 방통심의위든 야당 추천 위원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였다. 의결에 참여하여 ‘3:2’ 혹은 ‘6:3’으로 장렬하게 패하거나 아니면, 아예 의결장을 퇴장함으로써 ‘3:0’ 혹은 ‘6:0’의 이른바 ‘만장일치’ 의결을 낳는 데 일조하 는 것이었다. 6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그러한 불행 한 방송 심의 사례를 다루고 있다. 잠자는 시민을 깨우려는 영화는 다양한 이유로, 여러 층위의 당대 권력과 불화한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자들뿐 아니라 지배적인 세력을 형성한 종교들이 영화적 표현에 대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사전 검열을 시도한다. 부스러 기 권력과 사이비 딱지가 붙은 종교인들도 영화 제작자에 게 테러를 가하고 영화 필름을 불태워 버리려고 덤빈다. 명분은 동서의 고금을 막론하고 유사하다. 진실을 왜곡하 고 선량한 시민들을 선동·오염시킨다는 것이다. 정치적 인 신념과 도덕적 가치판단의 차이가 극장 문을 잠그는 빗 장으로 쓰였다. 점잖은 시민들은 명예훼손이나 저작권 침 해를 내세워 영화 상영을 막으려 해 왔다. 한국에서 영화 검열 헌법이 시행된 1962년부터 1972년의 10년 세월 동 안,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영화 검열 사건들이 속출했다. 영 화 제작에 앞서 시나리오를 사전에 검열하여 수정하게 만 들고, 제작된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내용을 검

xxi


열했다. 상영 중인 영화라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불온한’ 이야기들이 회자되면 그 영화의 필름 영사를 정지시켰다. 이만희 감독은 두 편의 ‘반공 영화’를 만들었다가 오히려 ‘반공법’으로 치도곤을 당했다. 이 감독은 1965년 제작한 <7인의 여포로>라는 영화에 중공군을 사살하고 대한민국 으로 귀순한 인민군 장교를 등장시켰는데, 검열 당국은 인 민군 장교를 ‘너무 멋있게’ 묘사했다며 반공법 위반죄로 그를 구속했다. <7인의 여포로>는 전체 분량의 1/3이 잘 려 나간 뒤 <돌아온 여군>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관객에게 돌아왔다. 검열 당국은 반공 영화를 한 편 만들라면서 이 감독을 석방했다. 당국의 ‘선처’로 풀려난 이 감독은 1966 년 <군번 없는 용사>를 제작했다. 피아와 선악의 구분이 명료한 ‘아주 확실한’ 반공 영화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정 보기관에 불려 갔다. 인민군 장교 역의 배우가 ‘너무 잘생 긴 남자’라며 당국은 감독의 ‘불순한’ 의도를 캐물었다. 신 성일이 그 배역을 맡아 벌어진 사단이었다. 영화 검열 헌 법 시대의 비극은 헌법전에서 영화 검열 조항이 삭제된 뒤 에도 계속되었다. 1984년 영화법이 개정되면서 영화의 사 전 심의 주체는 공연윤리위원회로 바뀌었다. 7장은 영상 물등급분류위원회의 <자가당착> 영화에 대한 두 번의 ‘제 한상영가’ 분류 사례를 다루었다. <자가당착>은 유수한

xxii


국제 영화제에 초빙돼 상영되고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 영화’ 인증을 받았다.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는 제한상영 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는데 국내에 그러한 영화관은 없다. 선진국에서 광고 불매 운동은 태연하고 일상적이다. 우 리나라에서도 2000년과 2005년, 방송사를 상대로 광고 불 매 운동이 전개된 바 있다. 2000년 가수 서태지의 팬들이 SBS의 <한밤의 TV연예> 프로그램 광고주 불매 운동을 벌 였다. 4개 광고주가 광고를 철회했다. 2005년 MBC의 <PD수첩>이 ‘황우석 교수’의 연구 진실성에 의혹을 제기 하자 네티즌들은 강력한 광고 불매 운동을 전개했다. SBS 와 MBC의 프로그램 내용을 문제 삼아 광고 불매 운동을 벌였던 그때 그 사람들은 다른 나라 시민들처럼 ‘무사’했 다. 민·형사상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한편, 종신 대통령을 꿈꾸던 박정희정권은 1974년 12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동아일보≫ 광고주들에게 ‘광고 게재 취소’를 압박하여 대형 광고주들의 광고를 게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1974 년 10월 24일 기자들이 발표한 ‘자유언론수호대회 결의문’ 이 신문에 게재된 후 ≪동아일보≫ 보도 기사의 내용과 논조에 대한 정권의 불만이 광고주들에 대한 압박으로 표 출되었다. 오랫동안 광고해 온 대형 광고주들이 광고 동 판을 회수해 가고 이미 계약된 광고를 무더기로 취소했다.

xxiii


동아일보의 계열사인 동아방송도 프로그램 광고주들이 광고를 철회하는 바람에 방송을 내보내지 못하기도 했다. 다음 해 동아일보가 수많은 기자들을 해고하면서 보도의 논조를 변형하자 대형 광고주들이 거짓말처럼 7월 중순부 터 ‘일제히’ 광고를 다시 싣기 시작했다. 정권에 충성하는 수하들이 ‘알아서 저지른 일’이라서 당시로서는 실정법상 의 위법 행위나 불법적 범죄라는 인식과 대응은 난망한 일 이었다. 그러나 30년 후 민주화된 나라에서 광고 불매 운 동은 ‘업무방해죄’, ‘강요죄’, ‘공갈죄’로 형사 처벌이 가능 한 ‘범죄’로 규정되었다. 8장은 광고 불매 운동에 대한 헌 법재판소의 결정 사례를 다뤘다.

‘비상한 공적 관심사’와 생각의 차이 1993년 12월 27일 법률 제4650호로 제정된 ‘통신비밀보호 법’은 불량하고 부정한 대통령 선거 운동의 산물이다. 199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터진’ 이른바 ‘초원복집’ 사 건의 결과물이다. 그해 12월 11일 아침, 첫 번째 임기제 검 찰총장을 지내고 바로 직전까지 법무부 장관을 맡았던 김 기춘과 부산시장을 비롯한 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 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참석자들의 발언은 선거의 공정성

xxiv


을 파괴하고 지역감정과 지역 차별을 고착화할 수 있는 음 습한 내용이었다. 이들의 대화 내용을 통일국민당 측에서 몰래 녹음, 폭로했다. 부산 지역 기관장들의 불법적인 선 거 개입 시도와 망국적인 지역감정 조장 발언에 다수 국민 들은 크게 놀랐지만, 곧 통일국민당은 외려 역공의 대상이 되었다. 여당과 주류 언론 매체들은 선거의 공정성 훼손 이나 지역감정 발언의 폐해를 은폐하고 대신 ‘불법 도청’ 행위라는 죄악의 굴레를 통일국민당과 그 당의 대통령 후 보에게 덧씌웠다. 영남권 유권자의 결집 효과를 가져온 초원복집 사건 후 ‘불법 도청’의 피해자 운운하던 김영삼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의 집권기에 불법 적인 도청을 방지하겠다는 ‘통신비밀보호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통신비밀보호법은 오히려 불법 도청을 법률상 ‘감 청’ 행위로 포장해 국가기관의 ‘합법적인 도청’을 정당화 함으로써 시민들의 통신에 대한 국가기관의 감시는 더 광 범해지고 체계화되었다. ‘양해라뇨, 제가 더 떠듭니다’란 발언으로 유명한 당시 부산지방경찰청장 박일룡은 김영 삼정부에서 제5대 대한민국 경찰 총수에 임명되었다. 김 기춘은 경남 거제를 기반으로 1996년부터 내리 3선의 국 회의원을 지내고, 2013년 박근혜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장 을 맡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출세가도와 달리 고초

xxv


를 겪은 언론인과 정치인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통신비 밀보호법의 도청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2011년 MBC 이상호 기자는 대법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 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의원은 2013년 그 규정으로 인해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한겨레 최성진 기자도 2013년 이상 호 기자와 마찬가지로 통비법 위반의 유죄가 인정돼 ‘선고 유예’ 판결을 받았다. 두 기자에게 적용된 법리는 ‘비상한 공적 관심사’였다. 10장에서는 대법원의 ‘비상한 공적 관 심사’ 판결을 다루었다. 이 책에서는 6개의 헌법재판소 결정과 2개의 대법원 판 결 그리고 심의위원회가 의결한 2개의 심의 사례를 다루 었다. 대법원 판결 2개는 모두 1심에서 ‘무죄’가 선언되었 다가 항소심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고 대법원에서 원심이 확정된 경우다. 1심 재판부의 고뇌와 법관으로서 열정과 양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판결문 원본을 구해 읽어 보기 를 권한다. 상급심들의 판결문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가 며 읽는다면 슬픔과 분노, 일상과 비상, 씁쓸한 재미와 우 울한 찬탄의 바다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의 경우 반대 의견까지 두루 살펴본다면 헌법재판관들의 해 당 쟁점에 대한 논리의 견결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표현물의 제작 과정에 참여한 전문가나 커뮤니케이션 분

xxvi


야에 종사하는 학자들이 심의위원회에서 펼치는 윤리 적·직업적 역량 역시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거나 위축시 키는 데 치명적이다. 열 개의 판결이 한국에서 표현의 자 유를 위축하는 역할을 했다고 보는 필자의 시각에 대해 전 혀 동의하지 않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의 차이를 존중한다.

xxvii



차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사회적 사건

01

‘불온서적’

02

교사와 정치 표현

03

국회 담벼락 시위 금지

04

후보자 비방

05

‘듣보잡’ 모욕죄

06

시청자 사과

07

<자가당착> 영화 심의

08

광고 불매운동

09

미디어법 날치기

10

‘비상한 공적 관심사’

1 13 25

35 45 55 65

75 85 97

v



01 ‘불온서적’ (헌법재판소 2010.10.28.선고 2008헌마638결정)

‘불온 도서’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할 내용으로, 군인의 정신 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도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할 것이다. 이 사건 복무규율 조항은 규범의 의미 내용으로부터 무엇이 금지되고 무엇이 허용되는 행위인지를 알 수 있어,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다 할 것이므로,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할 수 있다 할 것이다’ 한국은 ‘불온서적’의 저자가 두 명씩이나 대통령을 지낸 나라다. 1992년 4월,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는 그 해 3월에 치러진 제14대 총선에 군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입증 자료라면서 “건강한 부대관리”라는 제목의 선거 지 침 문서를 공개했다. 군은 미적지근하게, 그 문서의 존재 를 부정하지 못했다. 당시 ≪동아일보≫ 등이 보도한 그 문서에는 ‘불온간행물 도서’ 574종의 목록이 첨부돼 있었 다. 그중 󰡔나와 조국의 진실󰡕의 저자 김영삼은 그해 12월 치러진 선거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조국과 함께, 민족과 함께󰡕를 저작한 김대중은 1998년부터 제15 대 대통령을 지냈다. 그 후로도 두 명의 대통령이 임기를 마쳤고 제18대 박근혜 대통령도 집권 2년 차에 접어들었 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불온서적’ 사건의 여파를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에 대한 항의 집회, 이른바 ‘광 우병 집회’가 이어지던 2008년 7월, 국군기무사는 한국대 학생총학생회연합이 ‘병영 내에 도서 보내기 운동’을 전개 하려고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를 국방부에 보고했다. 이 보고서에는 23종의 도서 목록이 포함되었다. 국방부 장 관은 7월 22일 ‘군내 불온 도서 차단 대책 강구 지시’를 각

2


군에 하달했다. 그 직후 공군과 육군은 문서로 ‘군내 불온 서적 차단 대책 강구 지시’를 제정해 시행했다. 이를 접수 한 부대에서는 장병들에게 정신교육을 실시했다. 또 출타 후 부대에 복귀하는 장병들의 소지품과 우편물 등을 검색 하였는데, 영내에서 생활하는 간부 숙소 등도 확인하는 등 일제 점검을 실시한 뒤 상급 부대에 그 결과를 보고하였다. 군의 불온서적 조치에 대해 당시 상당수 언론 매체는 즉각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겨레≫나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문화일보≫와 KBS, SBS도 국방부의 ‘마구잡이식’ 불온서적 지정이 논란을 낳 고 있다고 보도했다. MBC는 “고장 난 국방부 시계가 거꾸 로 가도 너무 뒤로 세게 돌아갔다”고 평가했다. 불온서적 목록에는 이미 시중에서 10만 부 이상 팔려나 간 장하준 교수의 베스트셀러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비 롯해 대학 교양 수업의 교재로 쓰이던 저서들도 포함되었 다. 그 무렵 서점들의 판매 집계에 따르면, 국방부의 불온 서적에 지정된 도서들은 오히려 판매량이 급증하였고 불 온서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저자들의 일부는 ‘불 온서적에 선정이 안 돼 반성한다’며 국방부 조치를 조롱하 고 시민들에게 익살을 떨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8년 8월 21일, 어떤 책을 선택하

3


고 읽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이성과 양심을 가진 인간 으로서 누려야 할 모든 국민들의 가장 기본적이고 고유한 자유이자 권리라고 밝혔다. 책의 선택과 독서는 책에 있 는 내용을 외부적으로 실현하거나 표현하는 것과 달리 거 의 ‘내심의 영역’에 해당하므로 더욱 두터운 보호가 필요 하고 제복을 입은 군인이라고 해서 그 신분이 인간으로서 본질적인 요청에 더 우선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더 불어 인권위는 국방부의 ‘불온서적’ 대책 지시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헌법 제37조 제2항의 법률 유보 원칙 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리고 8월 26일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대해 명백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여 명 시적인 법률상 근거를 확보하는 등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 요하다는 의견을 국방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군 법무관 지영준 소령과 그의 아내 홍은희 그해(2008년) 10월 22일, 육군과 공군 법무관 7명은 국방 부의 불온서적 차단 지침에 대해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청구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군의 불온서적 지 정과 차단 대책 지시가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 학문 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점, 다른 하나는 그

4


러한 지시의 근거가 된 군인사법 제47조의2, 군인복무규 율 제16조의2가 헌법상 포괄적 위임을 금지하는 원칙 및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점이었다. 군인이라도 책을 선택하고 읽을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부정할 수 없고, 설령 군인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명확한 법령에 의거해야 한다는, 지극히 군 법무관다운 생각들이 었다. 나중에 공군 법무관과 육군 법무관 1명은 소송을 취 하했는데, 결과적으로 헌법 소원 심판의 청구인은 지영 준·박지웅·한창완·이환범·신성수 법무관 등 5명, 피 청구인은 국방부 장관과 육군 참모총장이 되었다. 국방부는 이듬해 3월 17일, 다섯 명의 군 법무관들이 헌 법 소원을 청구하여 군의 위신을 실추하고 복종 의무를 위 반하였으며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이들을 징 계했다. 한창완 법무관은 1개월 감봉, 이환범·신성수 법 무관은 5일간 근신 처분을 받았고 지영준·박지웅 법무관 은 파면되었다. 현행 ‘변호사법’ 제5조에 따르면, 파면된 자의 경우 5년이 지나지 않으면 변호사가 될 수 없다. 또 ‘군법무관임용등에관한법률’ 제7조는 군 법무관 시험에 합격해 임용된 군 법무관이 10년을 복무하지 않고 전역할 때에는 변호사 자격을 상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지웅 법무관은 전자의 규정, 지영준 법무관은 후자 규정의 적용

5


을 받을 처지였다. 징계를 받은 군 법무관들은 징계 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지영준 법 무관의 파면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항소심 재 판부인 서울고등법원은 지영준·박지웅 두 법무관의 파 면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두 법령의 관련 규정 에 따라 변호사 자격을 제한받는 군의 파면 조치는 책임의 정도로 볼 때 너무 무거워 징계 재량권을 일탈하고 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두 법무관은 2년 5개월 여 만인 2011 년 9월 군에 복귀했으나 한 달쯤 지난 뒤 정직 1개월의 징 계를 받았다. 국방부는 이를 근거로 이들에게 전역 처분 을 내렸다. 군 법무관 임용 시험에 합격한 뒤, 절대 전역하 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던 지영준 법무관은 군의 전역 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 지 않았다. 그는 전역 당했다. 여기서 지영준 법무관의 아내 홍은희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군이 지영준 법무관더러 헌법 소원을 취하 하라며 회유의 강도를 높여 갈 때, ‘어 퓨 굿 우먼’ 홍은희 는, “만약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헌법 소원을 취하한다면 그대는 내가 믿어 왔던 멋진 남자가 아니다”라며 군인 남 편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의 아내는 파면당한 남편 대신 시어머니와 두 딸의 생계를 책임지겠다며 학습지 교사로

6


생활 전선에 나섰다. 1992년 개봉된 영화 <어 퓨 굿 맨(A Few Good Men)>에서 열연한 갤러웨이 소령 역의 데미 무어보다 몇 백 배 더 아름답고 강한 모습이다. 이 영화는 쿠바 관타나모 해군 기지에서 벌어진 해병대 폭행 치사 사 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두 법무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미남 배우 톰 크루즈가 해군 법무관 역을 맡았다. 헌법재판소는 2010년 10월 28일, 관련 규정이 ‘무엇이 금지되고 무엇이 허용되는 행위인지를 예측하게 할 수 있 다’면서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또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군인사법 의 규정이 대통령령으로 규정될 내용과 범위에 대해 ‘다소 광범위하게’ 위임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포괄 위임 금지 원 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면서 법무관들의 헌법 소원 청구를 기각했다. 명확성의 원칙이란 헌재의 해석에 따르면, 법령을 명확 한 용어로 규정하여 수범자들로 하여금 규제 내용을 미리 알 수 있도록 하게 만들고, 법 집행자에게 객관적으로 판 단의 지침을 주어 차별적이거나 자의적인 법 해석과 법의 집행을 예방하기 위한 원칙을 의미한다. 명확성의 원칙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원리에 기초하여 기본권을 제한 하는 모든 입법에 요구된다고 헌재는 말해 왔다. 그런데

7


헌법재판소는 군 법무관들이 청구한 이 사건의 결정에서 군의 복무규율 조항이 불온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을 뿐, 달리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 면서도, 국가 안보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불온이라는 개념 을 명확하게 규율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불확정 개념’ 으로 규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불온이라는 개념 은 가치관에 대한 판단을 포함하는 것으로 구체적이고 객 관적인 의미를 표방하는 개념으로 보기 어렵다고도 판단 했다. 헌재는 나아가 군인복무규율의 여러 규정을 종합할 때 ‘불온 도서’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할 내용으로, 군인 의 정신 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도서’를 의미하는 것으 로 ‘해석할 수 있다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그리고 통상적 인 법 감정과 복무 의식을 가진 군인이라면 이를 예측하고 행동할 수 있을 것이고 법 집행 당국의 자의적인 집행 가 능성 또한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불온한 ‘불온’ 개념 명확성 원칙 ‘불온 도서’의 지정과 관련된 규정이 명확성의 원칙에 반 하지 않는다는 헌재의 결정은 기존 결정의 내용에 비춰 볼

8


때, 헌재의 표현대로라면 오히려 ‘매우 불온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할 것’이다. 2002년 6월 헌법재판소는 ‘불온 통신’ 에 대해 규정하고 있던 전기통신사업법 및 동법 시행령 조 항 일부를 위헌 결정했다. 불온 통신의 개념이 너무 불명 확하고 애매하여 표현의 자유에서 요구하는 명확성의 요 청에 현저하게 부응하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뿐만 아니다. 헌재는 2010년 12월 28일 선고한 전기통신기본 법 위헌 결정에서, 명확성의 원칙이 갖는 중요성을 새삼 확인했다. ‘공익을 해할 목적’의 허위 통신을 금지하는 관 련 규정은 그 의미가 불명확하고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2010년 10월 군인사법 사건 에서 ‘불온’ 규정이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는 ‘불온 표현물 소 지·전파 등의 금지’를 규정하면서 ‘불온 유인물·도서· 도화 기타 표현물을 제작·복사·소지·운반·전파 또는 취득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공공의 안 녕질서, 미풍양속과 같은 그저 그럴듯한 수식어조차 동반 하지 못한 ‘불온’ 개념에 대해 헌재는 앞서 살펴본 대로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할 것’이라는 추정에 기대어 명확 성의 원칙을 준수하고 있다고 합헌 결정했다. 사람은 책을 읽는 존재다. 두 발로 걷는다거나 말로 의

9


사를 소통하는 것도 일반 동물과 사람을 구분하는 주요 차 이지만 스스로 책을 골라 그 책을 읽는 것은 오로지 사람 만이 할 수 있는 특징이다. 군인이라고 결코 예외일 리 없 다. 군의 특성상 도서의 선정과 독서에 일정한 제한이 필 요하다고 해도 그것은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행복을 추구할 인간으로서 갖는 기본 권리와 관련이 있으므로 그 제한의 기준은 아주 명백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제한의 근 거는 법에 엄존해야 한다. 그런데 헌재의 2010년 2008헌 마638 결정은 공공 기관이 선정한 권장 도서, 당대의 책 읽는 시민들이 고른 베스트셀러, 대학의 교양 교재들을 불 온 도서로 선정해 군인들에게 읽기를 차단한 국방부의 조 처가 포괄적 위임 금지 원칙을 위반하지 않아 법률 유보 원칙을 준수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욱이 군의 들쭉날쭉 한 자의적 불온 도서 선정 기준이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 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계면쩍어서였을까, 헌재는 결정 문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할 것이다’라는 모호한 언술로 ‘불 온’ 개념의 불확정성을 덮고 말았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대포라는 헌법재판소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일관되게 ‘어 퓨 굿 맨’이 될 수 없을까?

10


참고문헌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2005). 󰡔나는 고발한다󰡕. 책세상. 이재승(2009). 불온서적 지정의 위헌성. 헌법실무연구회 편 ≪헌법실무연구≫. 제10권. 319∼341. 조영환(2008). 군 법무관이 불온서적 지정에 헌법 소원?: 군(軍)의 이념성향 철저히 조사하라. ≪한국논단≫. 통권 230호. 50∼55.

11



02 교사와 정치 표현 (대법원 2012.4.19.선고 2010도6338 전원합의체 판결)

교사들의 시국 선언은 법률에서 공무원에 대하여 금지하는 특정의 정치적 활동에 해당하며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등 정치적 편향성 또는 당파성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은 공무원인 교원의 본분을 벗어나 공익에 반하는 행위로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기강을 저해하거나 공무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어서 직무 전념 의무를 해태한 것이다. 이는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교사들은 입을 다물라’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헌법 제 33조는 근로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 장하고 있는데, 공무원인 근로자의 경우 제2항에 따라 ‘법 률이 정한 자에 한하여’ 근로 3권을 가진다. 국가공무원법 제66조는 ‘집단 행위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제1항에 따 라 공무원은 ‘노동운동이나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다만,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 는 공무원은 예외’로 하고 있다. ‘지방공무원법’ 제58조 역 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의 집단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내용은 ‘국가공무원법’ 제66조와 같다. 한편 ‘국가공무원법’ 제65조와 ‘지방공무원법’ 제57조는 공무원이 ‘정치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정당이나 정치단체의 결성 에 관여하거나 가입하는 것,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인을 지지·반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공무원의노 동조합설립및운영등에관한법률’ 제4조는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의 ‘정치활동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노동조 합과 조합원은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그것 이다. ‘교원의노동조합설립및운영등에관한법률’ 역시 교 원 노조의 설립과 운용을 인정하면서도 ‘교원의 노동조합

14


은 일체의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법 제3조 ‘정치활동의 금지’ 규정이다. ‘사립학교법’ 제58 조 제1항은 교원이 ‘정치운동을 하거나 집단적으로 수업을 거부하거나, 어느 정당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해 학생을 지도·선동할 때’ 면직시킬 수 있도록 규정했다. 원래 이 규정은 ‘노동운동’을 한 경우에도 면직시킬 수 있도록 규정 했으나 2005년 12월 29일 법 개정 때, 사립학교 운용의 민 주성·투명성·공공성을 제고하겠다는 취지에서 ‘노동운 동’ 부문이 삭제되었다. ‘공직선거법’ 제86조는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은 물론 우 리나라 공무원의 정치적 표현 행위 규제에 영향을 준 미국 과 일본도 공무원·교육공무원 등이 직무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공무원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폭넓게 허용하 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도 2006 년 1월 발표한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 권고안’에서 국가 공무원법과 공선법 등에 의해 공무원의 정치활동이 포괄 적으로 제한되고 있다며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과도하게 금지하는 법을 정비하여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을 일 정 범위 확대할 것을 핵심 추진 과제로 제안하였다. 그런 데 2012년 1월 3일 발표한 국가인권위원회의 ‘2012∼2016

15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 권고안’의 제2기 핵심 추진 과제 에는 ‘공무원의 정치활동’ 부문이 빠지고 대신 ‘온라인상 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및 선거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 향으로 공직선거법을 개정할 것’이라는 내용이 추가되었 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09년 6월 1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1만 6172명의 교사 이름으로 ‘6월 민주 항쟁의 소중한 가치가 더 이상 짓 밟혀서는 안 된다’는 제1차 시국 선언을 발표했다. 6월 22 일 전교조 소식지에 게재된 서명 교사는 1만 7189명이었 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 6월 26일 시·도부교육감 회의를 개회하고 제1차 시국 선언과 관련해 전교조 간부 88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또 시·도교육청에 중징계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했다. 전교조는 한 달 뒤인 2009년 7월 19일, 2만 8635명의 교사 명의로 ‘민주주의 수호 교사 선언’이라는 제2차 시국 선언을 발표했다. 7월 23일 전교 조 홈페이지에 게시된 제2차 시국 선언 참여 교사의 수는 2만 8711명이었다.

1심 재판부 김동현 판사의 혼을 담은 판결문 2010년 2월 25일 대전지방법원 김동현 판사는 국가공무 원법상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16


기소된 전교조 대전지부장, 같은 지부의 수석부지부장과 사무처리 실무자 등 현직 교사 3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 다. 다만, 실내가 아닌 청와대 부근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 형식의 옥외 집회를 한 데 대해 ‘사전 신고’가 필 요한 ‘미신고 집회’였다며 지부장에 대해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대전지법 2010.2.25.선고 2009고단2786, 4126, 2009고정2259판결). 재판부는 이 판결에서, 교사들의 시 국 선언 행위는 공익에 반한다거나 직무 전념 의무를 위반 한 것이 아니고 직무 기강을 저해한 것도 아니어서 무죄라 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교사들의 시국 선언은 전반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며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폭넓게 허용하지 않을 경우, 정부는 자기 오류를 시정할 기회를 잃게 되고 시정의 기회를 놓친 국가 정책은 국민에게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야 말로 공익을 증진하는 길이며, 그것이 바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정신이라고 평가했다. 잘못된 비판은 그에 반대되는 또 다른 비판에 의해 자기 시정의 길을 가도록 해야 하고 그러한 표현 행위를 공권력의 힘으로 처벌하는 것은 지나친 국가주의의 발로라고 보았다. 재판부는 교사 들의 정부 비판이 다소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고 다수 대중

17


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지라도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에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구체적인 위험 을 발생시키지 않는 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하여 치러야 할 필연적인 대가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지부장에 게 벌금 200만 원, 수석부지부장과 사무처리 교사에게는 벌금 70만 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법원은 교사들의 시국 선언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는, ‘공익에 반하는 목 적을 위한’ 집단 행위이며 시국 선언과 관련한 일련의 행 위는 ‘직무 전념 의무를 해태하게 하는 등의 영향을 가져 오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더불어 항소심은 그러한 행위가 근무 시간 외에 이루어졌거나 어떤 피해를 발생케 한 바가 없다는 이유로 달리 볼 것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이 사건 의 항소심 재판부와 항소심을 확정한 대법원의 판단은 1 심 재판부와 상반된다.

다수 의견 ‘정치적 편향성 · 당파성 명백한 공무 외의 집단 행위다’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무 원인 교원들의 집단적인 의사 표현 행위가 관련 법령에서 금하는 정치적 활동에 해당할 경우, 또 특정 정당이나 정

18


치 세력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 는 정치적 편향성, 당파성을 명백히 드러내는 행위를 할 경우에는 공무원인 교원들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만 한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 다. 이는 교원의 본분을 벗어나 공익에 반하는 행위로, 공 무원의 직무 기강 저해, 공무의 본질을 해치는 직무 전념 의무의 해태라고 할 것이어서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인 것이다. 둘째, 피고인 교사들의 1차, 2차 시국 선 언 행위는 공무원인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만한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할 정도의 정치적 편향성, 당파성을 명확히 드러낸 행위다. 이는 공무원인 교원의 본분을 벗 어나 공익에 반하는 행위로서 공무원의 직무 기강 저해, 공무의 본질을 해치는 직무 전념 의무의 해태이며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에 해당한다. 셋째, 1차 시국 선 언문은 전교조 본부·지부 간부들이 선거에 대한 영향, 반 현정권 전선의 구축이라는 뚜렷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시국 선언의 형식을 빌려 편향적인 입장에서 공권력 행사, 주요 정책을 일방적으로 부정하고 평가하고 공격하는 것 이다. 즉, 정치적 중립의 한계를 벗어나 국정운영을 주도 하는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집단적 으로 주장한 것이다. 넷째, 피고인 교사들의 1차 시국 선

19


언 관련 행위는 뚜렷한 정치적인 목적, 의도를 가지고 정 부의 주요 정책 결정 및 집행을 저지하려는 의사, 비판적 인 영향력을 집단적으로 행사함으로써 특정 정치 세력에 반대하는 의사를 명확히 한 것이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 성과 국민의 신뢰를 침해하고 그 침해에 대한 직접적인 위 험을 초래할 정도의 정치적 편향성, 당파성을 명확히 드러 낸 행위인 것이다. 다섯째, 2차 시국 선언은 피고인 교사 들과 전교조 본부·지부 간부들이 분명한 정치적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실행한 것이다. 그 근거의 하나로 대법원 은 2차 시국 선언문에 ‘정부의 조치가 군사독재를 떠올리 게 한다거나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공권력의 남 용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음’을 제시했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반대 의견 ‘수업권 · 교육행정 침해 아니며 정부 정책 비판과 개선 요구다’ 박일환·전수안·이인복·이상훈·박보영 대법관은 피 고인 교사들의 시국 선언 행위는 ‘공익에 반하는 목적의 행위’가 아니고 ‘직무 전념 의무를 해태’하는 것도 아니어 서 ‘국가공무원법’상의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에

20


해당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학생들의 수업권 침해나 교 사들의 직무 수행 등 교육행정에서 실질적인 침해나 지장 뿐 아니라 추상적인 침해나 지장의 우려도 찾아볼 수 없다 고 판단했다. 이들 다섯 대법관은 1, 2차 시국 선언은 특정 정치집단이나 정파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정부의 특정 정 책이나 개별 공권력 행사에 반대하거나 그것을 비판하는 의사를 표현하고 그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설령 그러한 의견이 일부 정치집단이나 세력과 같아 보이 더라도 특정 정치집단에 대한 규탄이나 지지를 위해 행한 것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이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의 위반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 고 판시했다. 다섯 재판관은 1차 시국 선언의 전체적인 내 용은 특정 사안에 대한 수사권 행사를 공권력 남용이라고 규탄하고 정부가 추진하던 주요 정책을 비판하면서 국정 쇄신을 촉구하는 것으로 그 결론의 표현은 ‘현 정부가 국 정을 전면 쇄신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또 2차 시국 선언의 전체적인 내용은 1차 시국 선언에 대한 교과부의 징계방침을 위헌 적인 공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하면서 그 철회를 요구하고 시국 선언의 정당성을 주장한 것이라고 보았다. 또 교사 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민과 소통할 것을 요

21


구한 것으로 정치적인 주장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판 단했다. 두 차례 시국 선언문에 대한 1심 재판부와 항소심·대 법원의 판단은 극적으로 다르다. 또 대법원의 다수 의견 과 소수 의견 역시 서로 상반되었다. 대법원에서 다섯 재 판관은 교사들의 시국 선언 행위가 관련 법령에 위배되려 면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한 행위’여야 하는데 그때 ‘공 익에 반한다’는 의미는 포괄적·추상적·상대적이라는 점을 고려해 제한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법 집 행 기관의 통상적 해석을 통해 그 내용을 객관적으로 확정 하기 어렵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과 헌법 상 표현의 자유와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수두룩하게 사실을 왜곡하고 널리 인정받는 역사적 사 실에 대해서마저 편파적이고 몰역사적인 관점을 갖고 기 술한, 막강한 후원자를 등에 업은 특정한 입장의 역사책을 대한민국의 거의 대부분 고등학교는 ‘정식 교과서’로 채택 하지 않았다. 동·하계올림픽을 비롯한 여러 스포츠 행사 에서 확인되듯, 대한민국은 이미 체력적인 면에서 세계 선 진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영화와 음악을 비롯한 문화 콘텐츠 부문, 최첨단 정보 사업 부문에서도 그러하다. 그 런데 유독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인 의사 표현의 자유에 대

22


해 우리나라는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물의 진위나 사건의 시비를 가려볼 수 있는 역량을 함양하고 공 동체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정책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행위를 형사 처벌하고자 한다면 도대체 학교를 지키는 교 원들은 왜, 무엇을 위해 숨을 쉬어야 하는가? 학생들은 누 구로부터, 어디서 그러한 역량을 습득해야 하는가? 대법 원의 다수 의견에는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 부족하다.

참고문헌 이재진 · 이정기(2011). 초 · 중 · 고교 교원의 정치적 표현과 제한법리에 관한 탐색적 연구: ‘시국 선언’ 관련 판례를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회 ≪한국언론정보학보≫. 통권 54호. 32∼57. 장철준(2011). 교원 및 교원단체의 표현의 자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익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언론법학회 ≪언론과 법≫. 제10권 1호. 281∼306. 정영태(2010a). 초 · 중등학교 교원의 정치적 자유권 제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논거와 문제점. 인하대 교육연구소. ≪교육문화연구≫. 제16권 2호. 5∼44. 정영태(2010b).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논거와 문제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한국정치연구≫. 제19권 1호. 71∼100. 조국(2012). 초 · 중 · 고등학교 교원의 정치활동의 범죄화 비판. 한국형사정책학회 ≪형사정책≫. 제24권 2호. 139∼166.

23



03 국회 담벼락 시위 금지 (헌법재판소 2009.12.29.선고 2006헌바 · 59(병합))

국회의사당 경계 지점에서 100미터 이내의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 규정은, … 자유로운 국회의사당 출입과 국회 시설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정당한 입법 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임이 인정된다. 이로 인한 집회·시위 효과의 감소, 관련 자유의 제한은 감수할 만한 정도의 것이어서 법익 균형성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아 이 법률 조항은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배하여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한다.


200미터와 100미터 민의의 대변이라는 국회의사당 정문 혹은 국회의 담벼락 주위에서 집회와 시위를 벌이는 것은 허용될까? 이모, 김 모 씨 두 사람은 2004년 11월 국회 내 보존 서고동 건립 공 사 현장의 건설 장비에 올라가 ‘비정규직 개악 완전 철폐’ 등의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같은 내용의 구호를 외쳤다. 두 사람은 국회의사당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 터 이내의 장소에서 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서울남 부지법에서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은 항소하면 서 집시법 제11조 제1호에 대해 위헌 심판 제청을 신청했 으나 항소심 법원은 항소를 기각하고 이 신청도 기각했다. 두 사람은 2006년 2월 27일 위 법률 조항에 대해 헌법 소 원을 청구했다. 다른 이모 씨 역시 2005년 12월 6일 국회 의사당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 비정 규직 권리 보장 등의 구호를 외치며 집회와 시위를 했다. 3 회에 걸쳐 해산 명령을 받았으나 불응했다는 이유로 기소 되어 서울남부지법에서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이모 씨 는 항소하면서 집시법 제11조 제1호를 비롯해 몇 개의 규 정에 대해 위헌 심판 제청을 신청했으나 항소심 법원이 2006년 6월 14일 이 신청을 기각하자 7월 11일 헌법 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26


헌법재판소는 2009년 12월 29일, 이 규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5인의 재판관이 제시한 법정 의견의 골자 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집회를 전면 금지한 것은 헌법 기관인 국회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한 것 이다. 즉, 국회의원과 국회에서 근무하는 일반 직원, 국회 에 출석하여 진술하는 일반인과 관료 등이 어떤 압력이나 위력에 구애됨 없이 자유롭게 국회의사당에 출입하여 업 무를 수행하고 국회의사당·국회 시설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은 질서 유지, 공공복 리를 위한 것으로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둘째, 이 규정은 국회의원에게 직접적인 비난을 가하는 집회와 시위, 위세를 보여 심리적 압박감을 줄 위험이 있는 집회 와 시위, 국회의원 등의 국회 출입을 어렵게 할 수 있는 집 회와 시위를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것으로 방법의 적절성 도 인정된다. 셋째, 이 규정이 외교 기관이나 외교 사절 숙 소 인근의 집회와 시위처럼 예외적인 허용을 인정하지 않 는 것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국회가 수행하는 헌법적 기능은 그 특수성과 중요성에 비 추어 볼 때 특별하고 충분한 보호가 필요한데 집시법상의 일반적인 규제 수단만으로는 이를 충분히 달성할 수 없다. 또 이 규정은 1962년 제정 당시의 200미터 제한보다 상당

27


히 완화된 것이며 100미터보다 더 좁은 범위로 설정하더 라도 동일한 효과를 거둘지 불분명하다. 외국의 사례에 비춰 보더라도 ‘지나치게 과도한’ 것은 아니다. 넷째, 국회 의 기능이나 역할에 비추어 볼 때, 이 법률 조항이 어떠한 예외도 두지 않은 것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반되지 않 는다. 국회가 집회와 시위의 대상이 아닐 때에도 국회는 추상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국회에 대한 집회와 시위가 아니더라도 국회의 기능을 저해하지 않는다고 단 정할 수 없다. 또 소규모 집회라도 집회의 성격, 방법에 따 라 국회의 기능을 저해할 위험성이 클 수 있다. 나아가 휴 일이나 휴회기에도 국회의 업무는 성질상 중단되지 않는 다는 점에서 휴일·휴회기의 집회와 시위가 국회의 기능 을 저해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다섯째, 이 규정으 로 인한 사익의 제한은 국회 인근에서 집회를 제한받는다 는 좁은 범위의 장소적 제한에 불과하다. 또 이 조항으로 인해 국회에 대한 집회 자체가 불가능해졌다고 보기 어렵 다. 국회는 일반 건물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서 국회 를 대상으로 하지 않은 집회나 시위의 제한 범위도 상대적 으로 적다. 그러나 국회의 기능 보호는 대의민주주의 제 도에서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따라서 이 조항으로 인해 발생하는 집회와 시위의 효과 감소, 이와 관련된 자

28


유의 제한은 감수할 만한 정도의 것이다. 이 규정은 법익 균형성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헌법재판소 2009.12.29. 선고 2006헌바20·59(병합) 법정 의견].

반대 의견 ‘집회 장소를 항의의 대상으로부터 분리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 이공현·조대현·김종대·송두환 재판관은 해 당 조항이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반하여 집회의 자유를 침해 하는 것으로 위헌이라는 반대 의견을 냈다. 네 재판관이 제시한 반대 의견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집회의 자 유는 정치·사회 현상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공개적으로 표출케 하여 정치적 불만 세력을 사회적으로 통합하고 정 치적 안정에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 선거와 선거 사이의 기간에는 유권자와 그 대표 사이의 의사를 연결하며 대의 기능이 약화된 경우에는 그에 갈음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수단으로서도 기능한다는 점에서 대의제 자유민주국가 제도의 필수 구성 요소다. 둘째, 집회의 장소는 특별한 상 징적 의미를 가지고 집회의 성과에도 영향을 준다. 집회 가 국가권력에 의해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장소나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는 장소로 추방된다면 집회의 자유는 사실상 효력을 잃기 때문에, 집회의 자유는 다른 법익의

29


보호를 위해 정당화되지 않는 한 집회 장소를 항의의 대상 에서 분리시키는 것을 금지한다. 셋째, 이 규정은 입법 목 적의 정당성이 없거나 입법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수단을 택하고 있다. 집회를 통해 국회에 대해 의사를 전달하거 나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오늘날 다원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자체로 허용될 필요와 가치가 있다. 국회의 원은 자기 자신의 양심에만 구속되고 특정인이나 집단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해서는 안 되며 양심에 따른 결정을 내 릴 때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와 주장, 이해관계 등을 널리 파악하고 충분히 검토, 교량을 할 필요가 있다. 또 국회 인 근에서의 집회와 시위가 그 자체로서 국회에 물리적 압력 이나 위해를 가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위험성이 있는 것 도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국회의사당 건물은 이미 그 경 계 지점으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확보하고 있어서 경계 지 점 밖에서 이루어진 집회와 시위에 의해 물리적 위해나 업 무 수행의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넷째, 집시 법이 규정하고 있는 다양한 규제 수단들에 비춰 볼 때, 이 규정과 같이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을 설정하지 않더라도 국회의 기능 보호라는 입법 목적 달성에 지장이 없다는 점 에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도 위배된다. 다섯째, 이 조항 은 보호 법익에 대한 침해의 위험이 작은 때에도 기본권의

30


제한을 완화시킬 수 있는 예외를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다 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여섯째, 영국이나 일본은 사전에 의회 인근의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으며 독 일이나 미국이 같은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으나 집회나 시 위가 허용되는 예외를 명시적으로 함께 규정하고 있다. 외국의 입법례와 비교해 볼 때 이 조항과 같이 절대적 금 지는 이례적이다. 일곱째,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때는 제한을 통해 보호하는 공익이 침해되 는 사익보다 우월해야 함에도 이 조항은 상충하는 법익 간 의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어서 법익 균 형성도 인정하기 어렵다.

조대현 재판관 ‘국회 담벼락 안에 집단 표현 가능 한 공공장소 마련하라’ 한편, 조대현 재판관은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서 국회와 국회의원은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의견 을 수렴해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국회 주변에서 국민들의 집단적 의사 표현을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허용하기 어렵 다는 반대 의견에 보충 의견을 냈다. 공무 집행을 방해하 지 않는 한,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는 개인적이든 집단적이 든 국회 주변뿐만 아니라 국회의 울타리 안에서도 허용되

31


어야 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국회의 경내에 개인적, 집단 적인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공공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마 땅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종대 재판관은 국회의사당 경계 지점 내부, 즉 보존 서고동 건립 공사 현장에서 발생 한 이모, 김모 씨의 집시법 위반에 따른 헌법 소원 청구는 이 법률 조항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며 일부 각하 의견을 제시했다. ‘국회의사당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 내의 장소’의 의미는 그 ‘외부’를 뜻하지 국회의 경계에서 안쪽으로 100미터에 이르는 구내 지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거 시기를 제외하면 일반 국민들이 자기가 살아가는 현장에서 국회의원을 만나기란 매우 어렵다. 일반 유권자 들이 개별적으로 국회의원을 만나러 국회의사당을 방문 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이해관계가 걸린 민원이나 정책 사안을 가지고 국회의원을 접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지하 1층, 지상 7층짜리인 국회의사당 건물은 33만 579m² 부지에 연면적 8만 1443m²다. 동양 최 대의 단일 의사당 건물로 알려져 있다. 어디 그뿐인가. 국 회는 정문 출입구를 비롯해 동서남북 네 개의 출입문 외에 도 여러 쪽문을 통해 출입이 가능하다. 예외적 허용 없이 절대적인 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로 국회의사당을 규정

32


한 것은 국회와 국회의원이 갖는 대의 민주주의 제도의 상 징성,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권리에 비춰 볼 때 타 당하지 않다. 오히려 예외적 허용조차 둘 필요 없이 국회 는 자유로운 집회와 시위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 직할 것이다. 집시법이 불법과 폭력을 동원한 집회와 시 위를 결코 허용하지 않고 있고 다양한 법률적 보호 장치에 의해 국회와 국회의원의 직무 수행은 보호를 받고 있기 때 문이기도 하다. 국회 담벼락의 바깥이 아니라 담장 안에 서도, 국민들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의사 표현이 가능해져 야 한다. 국회의 담벼락 가까운 곳에서 집회와 시위를 했 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받는 현실을 국회의원들이 과연 알기나 할 것인가, 어떻게 그들에게 그 실상을 피부에 와 닿게 보여 줄 수 있을까?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유권자를 다시 찾아오지 않을 때, 유권자들이 국회의원들 가까이 가 서 직접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100미터도 너무 멀지 않은가.

33


참고문헌 권혜령(2010). 집회 · 시위의 전제로서 ‘장소’개념에 대한 고찰: 미국의 ‘공적 광장이론’과 새로운 공간전술에 대한 비판 논의를 중심으로. 한국비교공법학회 ≪공법학연구≫. 제11권 3호. 3∼30. 남경국(2011). 집시법 제11조 옥외집회 · 시위금지장소 규정: 집회금지구역 규정에 관한 헌재결정의 비판을 중심으로. 부산대 법학연구소 ≪법학연구≫. 제52권 3호. 1∼29. 이희훈(2010a). 평화시위구역제도와 국회·법원 인근 집회 금지에 대한 헌법적 평가: 헌재결 2009.12.29. 2006헌바20.2006헌바59(병합)와 헌재결 2009.12.29. 2006헌바13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한국공법학회 ≪공법연구≫. 제38권 3호. 131∼163. 이희훈(2011b).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의 위헌성. 조선대 법학연구원 ≪법학논총≫. 제17권 2호. 245∼275.

34


04 후보자 비방 (헌법재판소 2013.6.27.선고 2011헌바75 결정)

근거가 희박한 의혹 등의 제기를 광범위하게 허용할 경우 …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와 그 가족의 인격과 명예가 훼손됨은 물론 향후 치러질 선거와 관련하여 유권자들의 선택을 오도하는 중대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고, 이는 공익에 현저히 반한다. 따라서 …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의사를 객관적으로 표출한 자들에 대한 비방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건전한 선거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적절한 제한이라 할 것이다. 벼랑에 몰린 ‘후보자 비방죄’ 여전히 당당


우리 헌법 제113조 제1항은 헌법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 을 얻어야 특정한 법률의 위헌을 선고할 수 있도록 정했 다. 탄핵의 결정, 정당 해산의 결정, 헌법 소원에 대한 인 용을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법 제23조 2항 2호에 따르면, 종전에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헌법·법률의 해석 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하는 경우에도 그러하다. 이를 특별다수결 혹은 가중정족수라고 부른다. 따라서 재 판관 아홉 명 중 다수인 다섯이 특정 법률 조항의 위헌을 결정하더라도 다른 넷이 동의하지 않으면 해당 법률 규정 은 여전히 합헌으로 남는다. ‘사실상의 위헌’ 또는 ‘뇌사 판 정받은 법률’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러한 심판정족수 규정 은 실은 우리 헌법에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기도 하 다. 헌법재판소가 2013년 6월 27일, ‘공직선거법’ 제251조 ‘후보자 비방죄’에 대해 내린 합헌 결정이 바로 그러한 사 례다. 재판관 5명이 이 법률 조항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 으나 다른 재판관 4명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위헌 이라는 찬성 의견이 6인에 이르지 못해 ‘후보자 비방죄’ 규 정은 합헌으로 살아남았다. 공직선거법 제251조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비방 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이다. 이 조항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 ‘후보자가 되려

36


고 하는 자’, 그의 배우자, 그의 직계존·비속, 그의 형제 자매를 비방한 자를 처벌하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진실한 사실로서 공 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이 조항은 ‘사 실’과 의견은 어떻게 다른지, ‘비방’의 개념과 범위는 명확 한지, ‘공공의 이익’이라는 개념은 명확한 것인지, ‘후보자 가 되려는 자’는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인지 등이 논 란이 되어 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후보자 비방죄’ 규 정이 선거의 공정성과 선거운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에 기여하는 것인지가 쟁점이 되었다. 2013년 6월 27일 선고한 ‘2011헌바75 결정’에서 재판관 4명의 법정 의견은 두 개의 개념에 대해 명확성 여부를 판 단했다. 첫째가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다. 헌재는 후보 자가 되고자 하는 자에 해당하는지는 ‘등록’이라는 객관적 인 기준에 의하지 않더라도 외부로 표출된 행위에 따라 객 관적으로 결정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두 가지 경우를 그 근거로 삼았다. 하나는 공천 신 청이나 후보 추천 활동 같은 확정적인 외부 표출뿐만 아니 라 그 신분과 접촉 대상, 언행 등에 비추어 선거에 입후보 할 것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였다. 다른 하나는, 해당 조항이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37


못하게 할’ 목적을 가지고 비방한 경우만을 처벌하고 있으 므로 설령 여러 선거가 겹친다고 하더라도 어떤 선거인지 를 특정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라는 용어는 특정 선거 시기를 기준으로, 비방 행 위 당시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의사를 인정할 객관적 징표 가 존재하는 자를 의미하기 때문에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 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둘째가 ‘공공의 이익’ 개념인데 이 에 대해서도 헌재는 명확성의 원칙을 지킨다고 보았다. 헌재는 ‘공공의 이익’이란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공동 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국민 전체 내지 대다수 국민과 그들 의 구성체인 국가 사회의 ‘이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규 정했다. 더불어 ‘공공의 이익’이란 사회 상황의 변화에 따 라 그 의미가 변화할 수 있는 것이어서 법규범의 적응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느 정도 망라적인 의미를 가지도록 입법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입법자가 ‘공공의 이익’이라는 불확정 개념을 사용했다고 해서 명확성의 원 칙에 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해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수범자와 법 적용자에 의해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쉽게 파 악할 수 있고 법관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확대될 염려도 없 다고 판단했다.

38


법정 의견과 ‘오로지’의 쓰임새 또 법정 의견은 청구인이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과잉 금지 원칙의 위반 가능성에 대해서도 판단했다. 법정 의견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고려하여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의 범위나 시기를 어디까지로 정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보았다. 언론 매체와 인 터넷을 통한 비방의 확대재생산을 고려할 때 선거일 전 일 정 기간을 정해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의 범위·시기 를 정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후보자가 되고 자 하는 자’의 범위를 선거에 영향을 미칠 특정 시기를 기 준으로 제한하는 것보다 구체적 사안에서 이루어진 비방 행위의 내용, 비방 행위와 특정 선거와의 관련성, 후보자 가 되고자 하는 의사와 그 객관적 징표의 존재 여부 등을 고려해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는 입법 형성권의 재량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했다. 또 근거가 희박한 의혹 등의 제기를 광범위하게 허용할 경우 비록 나중에 그것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지더라도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와 그 가족의 인격과 명예가 훼손됨은 물론 유권자의 선택을 오도하는 중대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어서 공익에 현저히 반한다고 판단했다. 선거의 공정성과 건전한 선거 문화의 정착을 위해 후보자 비방죄의 존치 필요성이 크다고 보았

39


다. 또 법정 의견은 형법의 명예훼손죄 위법성 조각 조건 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로 한 정하고 있음에 비해 공선법 제251조의 위법성 조각은 ‘오 로지’라는 요건을 없애고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로 정함에 비춰볼 때 이는 선거운동의 자유, 정치 적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위법성 조각 사유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라고 보았다. 침해의 최소성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선거운동의 자유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다소간 제한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기본권 제한의 정도는 공익, 즉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와 그 가족의 명예 보호, 건전한 선거 풍토의 조성, 선거인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선거의 공정 성을 기하려는 공익에 비해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정 의견은 궁극적으로 후보자 비방죄가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형법 명예훼손죄와 공선법 후보자 비방죄 그러나 박한철·이정미·김이수·이진성·강일원 재판 관 등 5인은 일부 위헌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의견의 골 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와 그 가 족의 명예 보호,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하려는 입법 목적은

40


정당하다. 둘째, 특정인에 대한 비방 행위를 형법이 아닌 공선법으로 더 중하게 처벌하는 것이 정당화되려면 처벌 의 범위를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기에 이루어진 행위로 제한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 조항은 ‘후보자가 되 고자 하는 자’나 비방 행위의 시기에 대해 아무런 제한이 없다. 이렇듯 시기의 합리적 제한이 없는 비방 행위의 가 중처벌은 오히려 고소·고발의 남발을 야기하여 선거를 혼탁하게 만들고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의 능력과 자질을 올바르게 판단할 기회를 제한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을 달 성하는 데 적합한 수단이 아니다. 셋째, 선거운동의 자유 를 포함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 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후보자비방죄’ 조항은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나 징 표를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다. 법정 의견이 주장하는 신 분·접촉 대상·언행 등의 객관적 징표라는 것으로 ‘후보 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결정할 수 없고, 법 집행 기관의 자 의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하여 그 결과 금지와 처벌의 범위 를 지나치게 확장하여 선거운동의 자유, 정치적 표현의 자 유를 축소시킨다. 예비 등록을 하지 않은 자에 대한 비방 은 공선법이 아니더라도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 가능 하기 때문에 이 조항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위반한다.

41


넷째, 선거의 혼탁을 방지하는 것 외에도 선거의 공정성은 공직 수행 능력, 공직 후보자의 인격 등 공직 적합성에 관 한 정보의 공개, 그러한 정보에 근거하여 최고의 자를 선 출할 것을 포함한 개념이다. 따라서 이 조항으로 인하여 제한되는 선거운동의 자유,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매우 크 고 중대한 반면, 예비 후보자 이외의 자에 대한 공연한 사 실 적시를 통한 비방을 금지해 달성하는 명예 보호, 선거 의 공정성 확보라는 공익은 다소 추상적이다. 따라서 법 익의 균형성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5명의 재판관은 후보자비방죄에 예비 후보자 등록을 마친 자 이 외의 자를 포함하는 것은 과잉 금지 원칙 위반이라고 판단 했다. 비록 재판관 5명이 법정의견과는 달리 ‘후보자비방죄’ 에 대해 일부 위헌 의견을 냈지만 후보자비방죄의 존치를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또 그들의 위헌 의견은 헌법 소원의 인용에 필요한 6명의 찬성을 얻지 못하여 결 과적으로 ‘합헌’이라는 법정 의견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과연 ‘비방’, ‘공공의 이익’,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의 범 위와 시기 등 여러 가지 쟁점을 안고 있는 데다가 선거운 동의 자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 조항을 존 치할 필요성이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우리 형

42


법은 언제든지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두고 있고, 비방할 목적으 로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한 경우 ‘출판물명예훼손 죄’나 ‘사이버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도 있다. 그뿐만 아 니라 공직선거법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일상적으 로 ‘인터넷선거보도심의의원회’를, 선거 시기 동안 방송통 신심의의원회에 ‘선거방송심의위원회’를, 언론중재위원 회에 ‘선거기사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선거 보도의 공정 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구를 통해 선거운동과 관련된 잘못된 보도에 대해 신속한 반론의 처리가 이루어 지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굳이 공선법에다가 다른 법률 조항에 비해 가중처벌하는 ‘후보자비방죄’를 두어 자유민 주주의 체제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의 자유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공 직 적격자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철저한 후보 자 검증이 필요하고 후보자를 제대로 검증하려면 사실에 기반을 둔 ‘의혹의 제기’가 필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43


참고문헌 권오걸(2013). 공직선거법상 후보자비방죄에 대한 연구: 표현의 자유와 선거의 공정과의 조화의 관점에서. ≪법학연구≫. 제49집. 159∼185. 김경호(2013). 후보자 검증을 위한 의혹제기와 후보자비방죄의 위법성조각 판단 기준에 관한 연구. ≪언론과학연구≫. 제13권 3호. 5∼43. 김상호(2003). 공직선거법상 후보자비방죄. ≪동아법학≫. 제32호. 291∼305.

44


05 ‘듣보잡’ 모욕죄 (헌법재판소 2013.6.27.선고 2012헌바37 결정)

모욕죄의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형사 처벌이 가능하고 그 법정형의 상한이 비교적 낮다. 법원은 개별 사안에서 형법 제20조의 정당 행위 규정을 적정하게 적용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와 명예 보호 사이에 적절한 조화를 도모하고 있다. 따라서 형법상 모욕죄는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당대의 논객들, 법정에서 겨루다 진중권과 변희재는 당대의 ‘논객’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논객의 사전적 의미는 ‘의론이나 변론을 잘하는 사람’ 혹 은 ‘말이나 글로 자기주장을 잘하는 사람’이다. 시기의 차 이가 있긴 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논객은 서로의 연관 검색어 머리 자 리를 차지하는 검객이기도 하다. 사상이나 관점이 같아서 가 아니라 말이나 글로 서로의 사상이나 관점을 비판하고 따지는 ‘검투’를 벌여 왔기 때문이다. 검찰과 법원의 기록 에 따르면 진중권은 2009년 1월 26일, 진보신당 인터넷 당 원 게시판에 “가엾은 조선일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 다. 변희재를 ‘듣보잡’으로 지칭하면서 조중동(≪조선일 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이 함량 미달의 듣보 잡을 방송과 인터넷을 비판하는 데 효용가치를 두고 싼 맛 에 쓴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또 같은 해 6월 21일, 인터넷 다음의 블로그에 “비욘 드보르잡의 근황”이라는 제목을 글을 게시하였다. 이 글에는 “요새 통 얼굴 보기 힘드네,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개집으로 숨어 버렸나 비 욘 드보르잡이 지금 뭐하고 있을까요”라는 표현이 담겼 다. 검찰은 진중권이 변희재를 모욕했다고 판단해 형법 제311조 위반으로 기소했다. 또 진중권은 2009년 4월 10

46


일, 진보신당 게시판에 “추부길 아우어뉴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변듣보는 매체를 창간했다가 망하기를 반복하는 일의 전문가”, “이번 30억 원 횡령설 유포는 처음 부터 변듣보와 추부길 아이들의 공모로 이루어졌다”라는 표현이 담겼다. 검찰은 진중권이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 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변희재 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2항 위반의 죄로 기소했다. 2010년 2월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 독 재판부는 모욕죄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 위반 을 인정해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같은 해 7월에 열린 항소심에서도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되었다. 대법원은 2011년 12월 22일, ‘듣보잡’, ‘함량 미달’, ‘함량이 모자라도 창피한 줄 모를 정도로 멍청하게 충성할 사람’, ‘싼 맛에 갖 다 쓰는 거죠’, ‘비욘 드보르잡’, ‘개집’ 등의 표현은 피해자 를 비하하여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 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서 모욕적인 언사에 해당 한다며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했다. 진중권은 상고심 재 판 중에 형법상 모욕죄가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정이라며 위헌 법률 심판 제청을 신청 했으나 기각되자 2012년 1월 25일 헌법 소원 심판을 청구 했다.

47


법정 의견 ‘모욕죄 징역 1년 상한 낮은 편’ 헌재가 이 결정에서 내린 내용의 골자는 다섯 가지다. 첫 째, ‘모욕적 표현’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다고 하 여도 헌법 제21조 언론출판의 자유의 보호 영역에 해당한 다. 둘째, 모욕죄 규정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서 파생 되는 명확성 원칙,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입법에서의 명 확성 원칙이라는 엄격한 의미의 명확성을 요구한다. 셋째,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모 욕죄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예측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하다고 보기 어렵고 대법원은 모욕의 의미에 대해 객관적인 해석 기준을 제시하고 있어서 법 집행 기관 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염려도 없다. 넷째, 특정한 표현의 모욕죄 해당 여부는 분리된 개별적 언사가 아니라 표현의 전체적인 내용과 맥락, 상대방을 경멸할 의도나 우발성, 다소 과장된 표현 여부, 대화·토론의 경위와 성격, 행위 자와 상대방과의 관계 등 여러 요인을 종합하여 판단하는 법원의 통상적 법률 해석·적용의 문제다. 형법 규범의 일반성과 추상성에 비추어 모욕죄 조항은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다섯째, 모욕적 표현으로 인해 사람의 사회적 가치가 저하되고 인터넷 등의 환경에서 모욕적 표 현이 가지는 전파와 파급의 효과, 피해 회복의 어려움 등

48


을 고려할 때 모욕죄의 입법 정당성은 존재한다. 헌재의 법정 의견은 모욕죄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형사 처 벌이 가능한 점, 법정형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한이 비교적 낮은 점, 비교적 경미한 불법성을 가진 행위에 대하여는 집행유예나 선고 유예 등 법관의 양형으로 불법과 책임을 일치시킬 수 있는 점, 형법 제20조의 정당 행위 규정을 적정하게 적용함으 로써 표현의 자유와 명예 보호 사이의 적절한 조화가 도모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형법상 모욕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반대 의견 ‘형법상 모욕죄 폐지되어야’ 그러나 박한철·김이수·강일원 재판관은 모욕죄가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규 정이라는 반대 의견을 냈다. 위헌이라는 주장의 골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다. 첫째, 대법원은 ‘사실을 적시하 지 아니하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모욕이라고 해석 하고 있으나 이러한 모욕죄의 ‘모욕’ 범위가 지나치게 광 범위하다. 헌법상 보호받아야 할 표현인 단순히 부정적· 비판적 내용이 담긴 판단과 감정 표현까지 ‘모욕’에 해당

49


돼 형사 처벌될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 자·해학을 담은 문학적 표현, 부정적인 내용을 정중한 표 현으로 비꼬아서 하는 말, 인터넷에서 널리 쓰이는 ‘듣보 잡’과 같은 다소 거친 신조어 등을 일부 거칠고 거북한 표 현이 있다고 하여 무조건 모욕적 표현으로 볼 것은 아니 다. 둘째, 구체적인 사회적 해악을 발생시키거나 개인의 명예 감정을 심각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행위, 즉 추 상적 판단과 감정의 표현에 의하여 발생할 해악이 크고 명 백한 경우에 해당하는 표현만을 처벌해야 한다. 예를 들 면 미국과 프랑스, 독일처럼 성별·종교·장애·출신국 가 등에 대한 혐오적 표현, 집단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선 동하는 표현, 오로지 모멸감을 줄 목적으로 상대방을 인신 공격하고 비하하는 직설적·노골적 표현 중에서 상대방 의 즉각적인 폭력을 유발할 위험이 있는 행위 등을 처벌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모욕죄가 처벌하는 모욕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여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 효과를 낳 는다. 모욕적 표현을 형사 처벌하는 것은 다양한 의견 간 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해 사회 공동체의 문제를 제 기하고, 건전하게 해소할 가능성을 제한한다. 정치적·학 술적 토론과 의견 교환 과정에서 사용된 일부 부정적인 언 어나 예민한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관한 비판적 표현을

50


모욕죄로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인 기능을 훼손하는 것이다. 넷째, 모욕이라는 광범위한 개념을 잣 대로 국가가 표현의 허용 여부를 재단하게 되면, 현대 민 주주의 사회에서 언론과 사상의 자유 시장이 왜곡되고 정 치적으로도 악용될 우려가 있다. 형법 제20조의 정당 행 위 규정의 사후적 위법성 조각 심사만으로 표현 행위의 위 축 효과를 막을 수 없고 모욕죄에 대한 고소·기소·재판 에 이르는 형사 사법 절차의 진행은 행위자뿐만 아니라 실 시간으로 이를 지켜보는 일반인에게도 위축 효과를 가져 온다. 인터넷·SNS가 일상화된 환경에서 모욕죄 형사 처 벌의 위축 효과는 상당히 크다. 다섯째, 모욕적 표현에 대 해서는 시민사회의 자기 교정 기능에 맡기거나 민사적 책 임을 지우는 것이 바람직하며 모욕 행위를 형사 처벌하는 것, 특히 단순한 견해 표명에 대한 징역형은 국제 인권 기 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모욕 표현물에 대한 삭제, 임시 조치 등의 대안이 가능하므로 형사 처벌 조치가 필요하지 않으며 상당수 국가들은 모욕죄를 폐지하거나 실질적으 로 사문화하고 있다. 일본의 형법상 모욕죄의 법정형은 구류 또는 과료에 불과하다. 개별적인 상황이나 맥락이 다를 수 있을 테지만 그동안 대법원은 ‘도둑놈, 죽일 놈, 망할 년, 아무것도 아닌 똥꼬

51


다리 같은 놈’과 같은 표현들을 모욕죄상의 모욕적 표현이 라고 판단했다. ‘듣보잡’하지 않은 이러한 정도의 표현을 쏟은 사람들의 입과 손가락을 죄인으로 몰아 1년씩이나 감옥에 가두고 징역을 시키려는 모욕죄 규정은 ‘너무 허무 맹랑’하지 않은가. 더욱이 인터넷에서 이런 표현을 했을 경우 2년이나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겠다는 정치인들 의 입법 제안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모욕을 느 끼지 않는가. 시민을 모욕한 그런 정치인들에게 굳이 징 역의 형벌을 내리지 않을지라도 공개된 토론과 항의, 선택 의 배제와 같은 장치들을 가동시킬 수 있지 않은가[대법원 은 ‘듣보잡’이 ‘듣도 보도 못한 잡것(잡놈)’을 의미하며 ‘유 명하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헌재 반대 의견은 ‘듣보잡’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잡놈’을 줄인 말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 또는 물건’을 가리키는 인터넷 신조어로 누리꾼들 사이에 유행하는 재미있는 문화 현상 중 하나라고 보았다].

52


참고문헌 김상호(2008). 형법상 모욕과 비방. 한국법학원 ≪저스티스≫. 제103호. 52∼71. 박경신(2009). 모욕죄의 위헌성과 친고죄 조항의 폐지에 대한 정책적 고찰. 고려대 법학연구원 ≪고려법학≫. 제52권. 263∼299. 박경신 · 김가연(2011). 모욕죄의 보호법익 및 법원의 현행 적용방식에 대한 헌법적 평가. 한국언론법학회 ≪언론과 법≫. 제10권 2호. 441∼467. 조국(2013).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및 모욕죄의 재구성. 한국형사정책학회 ≪형사정책≫. 제25권 3호. 9∼46.

53



06 시청자 사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2008.7.16. 제11차 정기회의 의결)

방송 중 여섯 가지 자막 오역과 편집에 의하여 사실을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다루지 않음으로써 사실을 오인하게 하였다. 진행자가 ‘아까 광우병 걸린 소’라고 단정적으로 방송한 것도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한국인의 인간광우병 발병 확률 94% 운운한 것은 확정되지 않은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로 오해하게 만든 것이다. MBC <PD수첩>이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 객관성, 오보 정정 규정을 위반하였으므로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의결한다.


민간 독립 기구라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2008년 4월과 5월에 방송된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 고기 광우병 편은 MBC로 하여금 두 번씩이나 시청자들에 게 사과하게 만들었다. 한 번은 2008년 8월, 방송통신심의 위원회의 ‘시청자 사과’ 의결에 따라 ‘법적 강제’에 의해 이 뤄졌다. 다른 한 번은 2011년 9월, 명예훼손죄 위반으로 기소된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 어 무사 귀환한 직후 신문과 방송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행해졌다. MBC 경영진은 대대적으로 사과문을 내보낸 뒤 사과의 빌미를 제공했다며 무죄를 받고 돌아온 제작자들 을 징계 조치했다. 나중에 법원은 이 징계가 부당하다며 취소 판결을 하기도 했다. <PD수첩>과 관련된 MBC의 2011년 9월 사과 방송과 2008년 8월 사과 방송의 단초는 2008년 7월 16일 심야에 이뤄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청자 사과’ 의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회의는 그해 5월 에 정식 출범한 제1기 방통심의위의 열한 번째 회의였다.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라고 의결한 이 회의를 제대로 이해 하기 위해서는 이날의 회의록뿐 아니라 아홉 번째 회의, 열 번째 회의, 그리고 열두 번째 회의록을 함께 살펴볼 필 요가 있다. 방통심의위는 어떤 기구인가? 천하에 법령으로 정한 국

56


가기구가 자기 기관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모르고 헤매는 꼴을 보여 준 예가 방통심의위를 빼놓고 또 있을까? 방통 심의위는 처음에 ‘민간 독립 기구’라면서 행정 기관이라는 것을 부인하다가, 국가인권위원회가 ‘너희는 명백히 행정 기구다’라고 말해 주고 서울행정법원이 재판을 통해 ‘행정 기구’임을 확인하고 나아가 헌법재판소가 ‘너희는 분명히 행정 기구’라고 거듭 확인을 해 주었을 즈음에야 겨우 ‘우 리가 행정 기구인가벼’라고 수그러들었다. 방통위 설치 운 영법에 따르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 내용이 심의 규정에 위반될 때 방송법상의 제재 조치를 정하거나 권 고·의견 제시를 할 수 있다. 2008년 당시 방송법상 제재 조치는 ① 시청자에 대한 사과, ② 방송 프로그램·방송 광고의 정정·수정 또는 중지, ③ 방송 편성 책임자·방 송 프로그램 또는 방송 광고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 ④ 주 의 또는 경고 등이었다. 그중 가장 무거운 법정 제재인 ‘시 청자 사과’는 위헌성이 강력하게 제기돼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 1991년 4월 헌법재판소가 법을 동원해 강제로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양심의 자 유에 어긋나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린 것도 ‘시청자에 대한 사과’ 명령이 위헌이라는 판단의 근거였다. 방송 심의에 따른 ‘시청자 사과’를 의결하는 것은 그만큼 신중할 것이

57


요구되었다. 방통심의위가 ‘시청자 사과’와 같은 법정 제 재 조치를 정하려고 할 때는 미리 당사자나 대리인에게 의 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도록 방통위법에 규정되었다. 법정 제재 조치를 정한 뒤에는 바로 방통위에 제재 조치를 처분 해 줄 것을 요청해야 하고 방통위는 그 처분을 명령하도록 법에 정해졌다.

‘의견 진술’의 절차상 순서 공방 ‘듣고 보자’ 2008년 5월 14일 개최된 제1차 임시회의를 비롯해 6월 25 일 개최된 여덟 번째 회의까지 방통심의위원회는 위원들 간에 ‘비교적’ 커다란 의견 충돌 없이 무난하게 운영되었 다. 의견의 차이가 있었다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인터 넷상 모욕적 표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정도였다. 7월 1일 개최된 제9차 정기회의의 ‘의결 사항 다’ 안건으로 MBC TV <PD수첩> 심의에 관한 건(2008-09-057)이 상정 되었다. <PD수첩> 프로그램 담당자의 ‘의견 진술’을 청취 할지를 다루는 안건이었다. 위원장·부위원장을 비롯한 몇몇 위원들은 이 안건의 처리가 비교적 간단하고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의결 사항 가’와 ‘의결 사항 나’ 보다 먼저 처리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윤덕·엄 주웅·박정호 위원은 시간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굳

58


이 순서를 바꾸지 말고 문서에 상정된 의결 사항 순서대로 처리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간단히 처리’될 것으로 여 겨졌던 이 안건을 마무리하는 데 결국 50분의 시간이 소요 되었다. 의결 과정에서 엄주웅·이윤덕·백미숙 위원은 심의 제재의 대상이 되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면밀하게 점 검해 보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이 ‘의견 진술의 청취’는 법 정 제재 조치를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의견 진술의 청취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위원회의 박홍식 방송심의국장은 의견 진술을 받겠다는 것은 곧 법 정 제재를 하겠다는 의미라고 분명히 밝혔다. 백미숙 위 원은 구체적인 근거를 마련하지 않고 의견진술부터 듣고 보자는 것은 위원회의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 적으로 법정 제재를 한다는 확정이나 명확한 근거도 없이 표결에 의해 <PD수첩> 관계자들의 의견 진술을 청취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위원장과 부위원장, 그리고 4명 의 위원이 찬성하고 앞의 세 위원이 반대했다. 의결 구조 는 ‘6:3’이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짚어 본 대로다. 2008년 7월 9일 열린 심의위원회의 제10차 회의에서는 ‘의견 진술’ 연기 요청 문제가 다루어졌다. MBC는 <PD수 첩> 프로그램에 대한 반론·정정 보도 재판이 진행 중이 므로 1심 판결이 끝날 때까지 ‘의견 진술’의 일정을 연기해

59


달라고 요청했다. 9차 회의에서 의견 진술 청취에 대해 반 대한 위원들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 결정, 농식품부가 검찰에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 의뢰한 내용, 법원에서 진행 중인 반론·정정 보도 재판의 내용이 방통심의위에서 다 루는 내용과 유사하므로 심의를 진행할 이유가 없거나 최 소한 1심 판결 때까지 기다려 보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 수 위원은 법원의 재판과 방통심의위의 방송심의는 동일 하지 않으며 또 같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재판 일정을 고려해 심의를 판결 이후로 연기하거나 심의 자체를 하지 않으면 ‘정치적 심의’로 오해받을 수 있다면 서 일정을 크게 늦출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엄주웅 · 백미숙 · 이윤덕 위원 ‘심의 없는 심의 절차 반대’ 제11차 회의는 정회 시간을 포함해 8시간 20분이 소요되 었다. 2008년 7월 16일 오후 3시 10분에 시작되어 밤 11시 30분에 끝났다. 이날 MBC 관계자 의견 진술이 있었다. 엄 주웅 위원은 전차 회의록 검토가 끝난 뒤 신상발언을 통해 프로그램 방송 후 두 달이 지났다는 점, 심의 규정과 거의 동일한 공정성·객관성을 이유로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되는 상황이라는 점,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가 제대로 이뤄

60


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정 제재를 전제로 한 의견 진술은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하였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퇴장했 다. 백미숙 위원도 의견 진술 진행에 대한 심도 있는 실질 적 논의가 부재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PD수첩>의 의견 진술과 심의에 불참했다. 이윤덕 위원도 위원회의 법적 정당성 확보 문제 등을 제기하며 퇴장했다. 위원장과 부 위원장을 비롯한 6명의 위원이 의견 진술을 진행했다. 의 견 진술에는 정호식 MBC 시사교양국 국장과 조능희 CP 가 참석했다. 의견 진술 과정을 기록한 방대한 분량의 이 날 회의록을 읽는 것은 마치 반전을 거듭한 한 편의 영화 를 보는 느낌을 준다. 언론학 분야의 교수인 세 사람의 위 원장과 위원이 자주, 많이 그리고 매우 구체적으로 물었 다. 발언의 양과 시간도 진술인들의 그것을 가볍게 능가 했다. 진술인들은 의견 진술의 장은 ‘다그치듯이’ 하는 자 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차분하고 편하게, 목소리를 낮 추어서’ 발언해 달라고 위원장에게 요청하는 해프닝도 생 겼다. 진술인들은 최후 진술에서 심의위원회가 탐사 보도 와 젊은 방송인들에게 ‘장애가 아니라 방패와 이정표’가 되는 좋은 결정을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위원회는 간담회 형식으로 회의를 진행하기로 하고 오 후 7시 15분에 정회했다가 밤 11시 20분에 속개했다. 방통

61


심의위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 ‘방패와 이정 표’가 아니라 오히려 ‘장애’가 된 <PD수첩>에 대한 ‘시청 자 사과’ 결정은 ‘정회’ 시간에 대통령과 여권의 추천을 받 은 6명의 위원에 의해 ‘간담회’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회의 의 진행을 정지했다는 것인지, 회의를 ‘정회’한 것이 아니 라 간담회 형식으로 회의를 계속했다는 것인지 제11차 회 의록과 발언 내용, 의결의 결과가 마찰음을 냈다. 아무튼 ‘간담회 형식의 정회’를 끝내고 회의를 속개한 뒤 방통심 의위는 10분간에 걸쳐 정회 중에 논의한 내용들을 구체적 으로 의결했다. <PD수첩>이 ‘방송심의에관한규정’ 제9조 (공정성) 제2항과 제3항, 제14조(객관성), 제17조(오보정 정)를 위반했으므로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세 명의 위원이 퇴장한 터라 의결의 구조를 ‘6:0’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6:3’이라고 해야 할지 우스 꽝스럽게 되었다. 방통심의위는 퇴장한 세 명의 위원 이 름을 빼고 의결서를 만들어 방통위와 MBC에 보냈다. 그 런데 제11차 회의록 첫 페이지에는 출석 위원이 아홉 명으 로 되어 있고 불출석 위원은 없는 것으로 작성되었다. 심 의위원회의 운영 자체가 ‘불명확’한 환경에서, 법정 제재 조치의 수위를 결정하지도 않은 모호한 상태로 특정 프로 그램의 내용이 ‘불명확’하다며 관계자를 불러 의견 진술을

62


들은 뒤 회의의 정회 시간에 간담회 형식으로 ‘시청자 사 과’라는 법정 제재 조치를 의결했다. 심야에 마무리된 방 송통신심의위원회 제11차 회의 정경이다. <PD수첩> 제작진은 여러 건의 민사상 명예훼손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 피소됐으나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또 형사상 명예훼손죄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 정되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23일, 방송법상 법정 제재 조치인 ‘시청자 사과’는 방송사의 의사에 반하 는 사과 행위를 강제함으로써 방송 사업자의 인격권을 제 한한다며 위헌 결정했다. 법적으로 강제하는 ‘시청자에 대 한 사과’는 시청자 국민들로 하여금 방송사가 객관성·공 정성 등을 저버린 방송을 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 로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방송사 의 사회적 신용과 명예를 저하시키고 법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을 저해한다고 판시했다. ‘정치적 심의위원회’로 오해 받기 싫다면서 ‘시청자 사과’ 심의 제재를 서두르던 다수 심의위원들의 주장은 방통심의위가 ‘정치적 심의’로 얼룩 졌다는 사회적 비판을 미리 내다본 ‘통찰’로 보였다.

63


참고문헌 김서중(2014). 정치적 심의로 얼룩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새얼문화재단 ≪황해문화≫. 82권. 357∼363. 심석태(2013). 방송심의 기구의 ‘민간·독립성 신화’에 대한 고찰. 미국헌법학회 ≪미국헌법연구≫. 제23권 3호. 163∼203. 최우정(2013). 헌법상 방송의 자유보장을 위한 현행 방송심의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한국비교공법학회 ≪공법학연구≫. 제14권 2호. 3∼30. 황성기(2009). 신문사 광고주 관련 정보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위법 결정의 헌법적 문제점. 한국비교공법학회 ≪공법학연구≫. 제10권 2호. 213∼243.

64


07 <자가당착> 영화 심의 (영상물등급분류위원회 2011.6.14.2011-F307 결정)

이 영화는 포돌이라는 정치적 상징물을 내세워 현 사회와 정치를 풍자한 내용으로 실험적인 영화 기법, 픽션과 다큐멘터리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특정 정치인의 목을 자르고 피가 뿜어져 나오는 장면 등 경멸적, 모욕적 표현의 수위가 다분히 의도적이며 극심해서 개인의 보편적 존엄과 가치를 현저하게 손상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결정한다.


‘영화 검열’을 헌법에 규정한 나라 지난 10여 년 사이 ‘군인·친구·괴물·왕·도둑·감방· 변호인’ 등을 키워드로 한 우리나라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헌법상 검열 국가’였던 우리나라의 영화인들이 대표적인 세계 영화제의 최고상을 연거푸 거머쥐고 상업 적으로도 연달아 성공을 거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인류 가 달나라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까지 ‘대한민국 헌법’은 ‘영화 검열’을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1948 년 제정된 제1호 헌법 제13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에 의하 지 아니하고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받 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4·19혁명 후에 개정 된 제4호 헌법 제13조는 ‘법률 유보’ 부분을 아예 제거하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받지 아니한다’라고 정비했다. 그러다가 5·16 군사 쿠데타 후 1962년 12월 26일 개정된 제6호 헌법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내용을 4개 항으로 규정했다. 이 헌법의 제 18조 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 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한 뒤, 다만 공중 도덕과 사회윤리를 위하여 영화나 연예에 대한 검열을 할 수 있다고 명문화했다. 1962년 1월 20일 법률 제995호로 제정된 영화법은 문공부 장관에 의한 영화 심의 제도를 도

66


입했는데 운영 방식은 ‘영화상영사전허가제’였다. ‘영화 검열’ 헌법 규정은 그로부터 10년간 헌법 제18조에 살아 있다가 1972년 12월 27일 시행된 제8호 헌법에서 비로소 삭제되었다. 영화 검열 헌법 시대의 비극은 헌법전에서 영화 검열 조항이 삭제된 뒤에도 계속되었다. 1984년 영화법이 개정 되면서 영화의 사전 심의 주체는 공연윤리위원회로 바뀌 었다. 영화 검열이란 검은 장막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차 츰 걷히기 시작했다. 영화 관객 1000만 시대가 도래하는 전조였다. 세 건의 영화 관련 헌법 재판이 주목을 받았다. 우선 1996년 10월 4일 헌법재판소는 영화를 상영하기 전 에 공연법에 의해 설치된 공연윤리위원회(공륜)의 심의를 받도록 하고 심의를 필하지 않은 영화의 상영 행위를 형사 처벌하는 영화법 관련 규정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법 제21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전 검열 제도라는 것이다. 또 민간인으로 구성되긴 했지만 법에서 영화에 대한 사전 허가 제도를 채택하고 행정권이 공연윤리위원회의 구성 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공륜은 검열 기관이 라고 판시했다[헌재 1996.10.4. 93헌가13,91헌바10(병 합)]. 1995년 영화법이 폐지되고 새로 제정된 영화진흥법 에도 사전 심의 제도가 그대로 채택되었는데, 헌재의 위헌

67


결정을 반영하여 영화진흥법은 1997년 ‘상영 등급 부여 제 도(사전등급제)’와 ‘등급 부여 보류 제도’를 도입했다. 그 사이 영화의 심의 주체는 ‘공연윤리위원회 → 한국공연예 술진흥협의회 → 영상물등급위원회’로 바뀌었다. 둘째, 200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사전등급제’ 그 자체는 사전 검열이 아니지만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가 특정한 영화의 상영 등급을 분류하면서 그 등급의 분류 를 일정기간 동안 보류하는 ‘상영 등급 분류 보류 제도’는 검열이라고 판단했다. 형식적으로는 등급 분류 보류지만 실질적으로는 영등위의 허가를 받지 않는 한 무한정 영화 를 통한 의사 표현이 금지될 수 있다며 이는 헌법이 절대 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사전 검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영등위 역시 행정권이 주체가 된 검열 기관이라고 판단했 다. 이에 2002년 1월 개정된 영화진흥법은 ‘상영 및 광 고·선전에서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라고 규정한 ‘제 한상영가’ 등급을 도입했다. 더불어 ‘제한상영가’ 영화의 광고와 선전은 제한상영관 안에서만 게시하도록 제한했 다. 또 제한상영관이 아닌 곳에서 ‘제한상영가’ 영화를 상 영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제한상영관에서는 다른 등급 의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 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영화진흥법은 2006년 4

68


월 폐지되고 그를 대체한 ‘영화및비디오물진흥에관한법 률’이 제정되었다.

‘헌법 불합치’ 위헌 결정된 기존의 ‘제한상영가’ 규정 셋째, 2008년 7월 31일 헌법재판소는 ‘제한상영가’ 영화의 법적인 정의가 어떤 영화인지를 제대로 알 수 없게 만든다 며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또 영화 상영 등급 분류의 구체적인 기준을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규정 에 위임하고 있는 법 규정은 표현의 자유의 제한과 관련되 어 있다는 점, 제한상영가 등급을 정하는 기준을 알 수 없 다는 점, 위임되는 내용을 알 수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포괄위임금지원칙을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해당 규 정을 이듬해 12월 31일까지 효력을 유지하게 하는 헌법 불합치 위헌 결정했다. 2009년 5월 개정된 ‘영화 및 비디 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은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를 ‘선정성·폭력성·사회적 행위 등의 표현이 과도 하여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정서를 현저하게 해할 우려가 있어 상영 및 광고·선 전에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라고 정의했다. 또 상영 등급에 대한 분류 기준은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 질서의

69


유지와 인권 존중에 관한 사항’ 등 여섯 가지를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개정했다. 그러나 ‘제한상영가’ 영 화의 광고와 선전은 제한상영관 안에서만 허용하는 것, 제 한상영관에서만 제한상영가 영화를 상영하도록 한 것, 제 한상영관에서는 다른 등급의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은 그대로 유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3년 5 월 기준으로 국내에 제한상영관이 없어서 제한상영가 등 급 분류를 받을 경우 사실상 국내 개봉은 불가능하다. 영화감독 김선은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자신이 제작한 영화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 참여>를 ‘청소년관람불 가’ 등급으로 분류해 달라며 등급 분류를 신청했다. 2010 년 제작된 <자가당착>에 대해 제작진은 이명박정부에서 불거진 촛불집회, 용산 참사, 4대 강 사업 등의 사건과 논 란을 기록하고 풍자하는 ‘정치 풍자 코미디 액션’ 영화라 고 소개하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펴낸 󰡔2013 영상 물등급분류연감󰡕에 따르더라도 <자가당착>은 ‘포돌이를 내세워 시대적 정치 풍자를 다룬 영화’다. 하반신이 불편 한 새내기 경찰 포돌이가 꿈과 희망을 가지고 현실과 대응 하는 중에 쥐들의 공격을 받고 일전을 벌이는 내용의 이 영화에는 당시 박근혜 국회의원의 얼굴, 박 의원의 얼굴을 한 마네킹이 등장한다. 2011년 6월 14일 영등위는 특정 정

70


치인과 관련된 여러 장면들의 경멸적, 모욕적인 표현은 개 인의 보편적 존엄과 가치를 현저하게 손상한다며 ‘제한상 영가’ 등급으로 분류했다. 8명의 심의위원 중 7명의 심의 위원들은 7개의 등급 분류 기준 항목 중에서 ‘주제’ 부문을 ‘제한상영가’로 판단했다. ‘선정성’에 대해서는 7명의 위원 들이 ‘청소년관람불가’로 판정했고 ‘폭력성’은 1명이 ‘15세 이상관람가’, 7명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분류했다. 1차 심의에서 ‘폭력성’이나 ‘선정성’ 항목은 ‘제한상영가’ 판정의 이유가 되지 않았다. 한편, 김 감독은 같은 내용의 <자가당착>을 2012년 9월 14일 영등위에 ‘청소년관람불 가 등급’으로 분류해 줄 것을 다시 신청했는데, 9월 22일 영등위는 1차 신청과 마찬가지로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분류했다. 영등위는 해당 영화가 ‘과도한 신체 훼손이나 선혈 묘사 등 폭력적인 묘사가 직접적이고 매우 구체적이 며 잔혹하게 표현’되었다고 지적했다. 또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하게 훼손하고 국민의 정서를 현저히 손상시 킬 우려가 높다’고 판단했다. 영화의 ‘주제’를 문제 삼은 1 차 심의에 비해 2차 심의에서는 영화의 ‘폭력성’이 더 문제 가 되었다. 7명의 심의위원 중에서 5명이 ‘폭력성’을 ‘제한 상영가’로 분류했고 ‘주제’ 항목에 대해서는 4명이 ‘청소년 관람불가’, 3명이 ‘제한상영가’로 판정했다.

71


<자가당착>은 ‘제한상영가 등급’ 아니다 이에 김 감독은 2012년 11월 1일 서울행정법원에 ‘제한상 영가 등급 분류 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청구했다. 같은 날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보도 자료를 내고 <자가당 착>이 제한상영가 등급 분류된 것은 ‘과도한 폭력성’ 때문 이라면서 영화계와 정치권에서 제기한 ‘정치적 고려’는 전 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자가당착> 의 주제와 내용이 ‘현실 정치와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라고 보고, 민주적 기본 질서를 부정하거나 범죄 등 반인간적·반사회적 행위를 미화·조장하는 것 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폭력성’ 항목과 관련해 재판부 는 영화에서 전개되는 폭력 장면은 폭력의 잔혹함을 부각 시켜 선정적으로 관객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판 단했다. 또 ‘선정성’에 대해서도 성적 상상이나 호기심을 불필요하게 부추기거나 조장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재판부는 국내에 제한상영관이 없어서 제한상영가 등급 분류는 사실상 국내 개봉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과 해당 영화의 ‘예술성’을 감안하여 ‘성인으로 하여금 영화를 관람하게 하고 영화의 정치적·미학적 입 장에 관해 자유로운 비판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 단했다. <자가당착>이 관련 법령의 ‘제한상영가’ 기준에

72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 일반 영화관에서 영화 관람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과도한 규제로 재량권의 일탈·남용이 라는 점을 고려해 1심 재판부는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등 급 분류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영등위가 항소했으 나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 2월 13일 항소를 기각했다. 항 소심 법원은 기각 사유를 ‘1심 판결 이유’와 같다고 밝혔 다. 영등위는 <자가당착>의 ‘제한상영가’ 분류를 취소하 지 못하겠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자가당착> 영화의 등 급 분류에 대해 법적으로 ‘끝까지 간 것’이다. 영화비평가 들은 영등위의 두 번에 걸친 ‘제한상영가’ 등급 분류와 항 소, 상고 대응이 영등위의 <자가당착>이 될 것이라고 비 판하고 있다. 영화 <자가당착>은 제작된 해인 2010년 인디포럼과 서 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2011년에는 베를린영화 제, 홍콩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 2013 년 1월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는 <자가당착>을 ‘예술 영 화’로 인증했다. 작품의 영화 미학적 가치가 뛰어나거나 소재·주제·표현 방법 등에서 기존 영화와 다른 새로운 특색의 창의적, 실험적 작품에 대해 주어지는 인증서다. 이 영화는 2013년 일본에서 ‘중학생관람가’로 개봉되었다. 한국 성인들의 영화 수용 수준과 역량이 일본 중학생의 그

73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정치적인 고려 없이 심의를 했다는 영등위의 발표를 정치적인 것으로 보 아야 하는가? ‘자가당착’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언행의 앞 뒤가 맞지 않음’이다.

참고문헌 권헌영(2011). 영상물 등급분류제도의 법적 문제와 개선과제. 한국토지공법학회 ≪토지공법연구≫. 제53집. 379∼405. 박창석(2013). 영화에 대한 공법적 규제: 제한상영가 영화를 중심으로. 한국비교공법학회 ≪공법학연구≫. 제14권 2호. 31∼59. 황승흠(2013). 등급분류제와 청소년유해매체물 제도의 관계. 한국비교공법학회 ≪공법학연구≫. 제14권 3호. 211∼234. 황창근(2008). 영화등급분류제도의 개선 방향. 국제헌법학회 한국학회 ≪세계헌법연구≫. 제14권 3호. 495∼526.

74


08 광고 불매운동 (헌법재판소 2009.12.29.선고 2010헌바54,407(병합))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켜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여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하거나, 공갈하여 타인의 재산,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했다고 평가하기에 충분한 소비자 불매운동 행위를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자’를 형법상 ‘강요죄’, ‘공갈죄’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의 취지에 반하지 않는다.


선진국의 일상적인 광고 불매운동 언론의 논조나 취재 보도 행위를 문제 삼아 그 언론에 광 고를 게재하는 기업들에게 광고 게재의 중단을 요구하는 광고 불매운동은 헌법이 보장하는 소비자 보호 운동의 하 나다. 기업들이 광고 게재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그 기업 의 제품을 불매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이를 실천에 옮 기는 행위도 소비자 보호 운동의 정당한 범위에 속한다. 물론 광고 불매운동이나 광고주 기업의 제품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 행사가 아니라 ‘불법’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안다. 선진 국에서 광고 불매운동은 일찍이 합법적인 권리 행사로 자 리 잡았다.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이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광고 불매운동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기각한 ‘풋힐 타임스’ 사건은 1984년의 일이다. 2011년 영국에서는 1843년에 창간돼 168년의 전통에 빛나는 신문 ≪뉴스 오 브더월드≫에 대한 강력한 광고 불매운동이 전개되었다. 유명 인사들의 사생활을 폭로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던 이 신문의 불법 도청 행위에 대한 시민사회의 분노가 표출된 것으로 광고주들 대부분은 광고 계약을 취소했다. 도청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고위 간부들 여럿이 사법 처리된 이 신 문은 그해 7월 10일 ‘문을 닫고’ 폐간했다. 우리나라에서

76


도 2000년 가수 서태지의 팬들이 SBS의 <한밤의 TV연예> 프로그램의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였다. 4개 광고주가 광 고를 철회했다. 2005년 MBC의 <PD수첩> 프로그램에서 ‘황우석 교수’의 연구 진실성에 의혹을 제기하자 네티즌들 은 강력한 광고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프로그램 광고주들 이 대부분 광고를 철회하면서 자칫 방송사가 ‘문을 닫을 뻔한’ 상황이 벌어졌다. 황 교수의 연구 결과가 조작된 것 이라는 내부 연구진의 공개적인 폭로 후에 광고 불매운동 은 사그라졌다. SBS와 MBC의 프로그램 내용을 문제 삼아 광고 불매운동을 벌였던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무사’했다. 민·형사상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광고 불매운동 차원의 항의 전화, 항의 게시글도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 신문사를 상대로 한 광고주 압박 운동 혹은 광고 불매운동 역시 괜찮을까? 2013년 3월 14일 대법원은 소비자 불매운 동은 소비자 보호 운동의 일환으로 헌법 제124조뿐만 아 니라 헌법 제21조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헌법 제10조에 내재된 일반적 행동의 자유 관점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소비자 불매운동이 위력에 의한 업무방 해죄를 구성하는지는 운동의 목적이나 경위, 대상 기업의

77


선정 이유와 연관성, 불매운동의 규모와 영향력, 운동 참 여자의 자발성, 실행 과정의 폭력 행위나 위법행위 수반 여부, 운동의 기간 및 대상 기업의 피해 정도, 대상 기업의 반응과 태도 등을 종합적·실질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업무방해죄의 위력은 원칙적으로 피해자에게 행사되어야 하므로 위력 행사의 상대방이 아닌 제3자인 경우 그로 인해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가능성이 ‘직 접적’으로 발생함으로써 이를 실질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위력의 행사와 동일시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면 피해자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 다. 이에 대법원은 항소심 법원이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세 신문에 대한 광고 불매 운동을 벌인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법리를 오 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며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광고주들에게 지속적·집단적으로 항의전화를 하거나, 항의글을 게시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 로 광고 중단을 압박한 행위는 광고주들의 자유의사를 제 압할 만한 세력으로서 위력에 해당한다며 광고주에 광고 불매운동을 벌인 피고인들에게 업무방해죄 위반의 유죄 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러한 행위는 광고주들에

78


게 광고 중단을 ‘홍보·호소·설득’하는 차원을 넘어 광 고주들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만한 위력을 행사하여 광고 주들의 영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수단 방법의 적정성, 법익 균형성, 긴급성, 보충성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정당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13.3.14.선고 2010도410판결). 파기 환송심에서 서울 중앙지법은 2013년 8월 13일, 조중동에 대한 업무방해죄 부분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피고인들에 대한 원 심의 양형도 각각 줄어들었다. 이로써 이른바 ‘광우병 관 련 제1차 광고 불매운동’은 법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한편 대법원은 2013년 4월 11일, ‘언론소비자주권 국민 캠페인’ 이른바 ‘언소주’ 김성균 대표와 이 단체의 석웅궁 미디어행동팀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대 법원 2013.4.11.선고 2010도13774판결). 두 사람은 전체 광고의 70∼80%를 조중동에 광고하던 광고주 ‘광동제약’ 에게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 고 협박’을 가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불매운동으로 인한 영업상 손실을 우려한 광동제약으로 하여금 홈페이지에 향후 ‘특정 언론사에 편중하지 않고 동등하게 광고를 집행 할 것과 앞으로도 소비자들과 함께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게 한 혐의, 광고 게재 예정에 없던 ≪한

79


겨레≫·≪경향신문≫에 378만 원씩 합계 756만 원 상당 의 광고를 게재하게 한 혐의를 받았다. 원심은 두 사람의 광고 불매운동은 형법 제324조 ‘강요죄’, 제350조 ‘공갈죄’ 위반에 해당한다며 각각 6월과 4월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2년간 집행을 유예했다. 당초 1심은 김 대표에게 징역 10 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석 팀장은 무죄 판결했다. 이 로서 이른바 ‘광우병 제2차 광고 불매운동’ 역시 법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두 차례의 ‘광고 불매운동’ 당사자들은 각 각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일 때 위헌 법률 심판 제청을 신 청했으나 기각되자 2010년 1월 22일, 2010년 10월 22일 각각 헌법 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위력이나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 협박에의한강요죄와 공갈죄 등의 규정이 추 상적·포괄적이어서 명확성의 원칙과 죄형법정주의 원칙 을 위반한다는 취지였다. 헌법재판소가 2011년 12월 29 일 선고한 2010헌바54·407결정은 이들 청구에 대한 헌 재의 대답이다.

업무방해죄의 ‘위력’, 강요죄 · 공갈죄의 ‘협박’ 은 명확성 원칙 위반 아니다 이 사건에서 헌재의 법정 의견은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첫째, 소비자 불매운동은 해당 사업자뿐만 아니라 그 사업

80


자의 거래 상대방인 제3자에 대해서도 실행이 가능하다. 둘째, 불매운동의 범위에는 불매운동을 검토하고 있다는 취지의 의견 표명, 다른 소비자들에게 불매운동을 촉구하 는 행위, 불매운동 실행을 위한 조직 행위, 직접 불매를 실 행하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셋째, 신문의 정치적 입장이 나 보도 논조는 신문 상품 구매의 결정 요소로서 소비자의 권익과 관련되고 따라서 불매운동의 목표가 될 수 있다. 넷째, 소비자 불매운동은 헌법·법률의 한계 내에서 정당 화되는데, 그 기준은 객관적으로 진실한 사실을 기초로 할 것,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소비자들의 의사 결정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것, 실행 과정에서 기물을 파괴하거나 관계 자들을 폭행·협박하는 등 위법한 수단을 동원하지 말 것, 해당 사업자와 거래하는 광고주·거래처·후원 협력 업 체 등 제3자 영업의 자유 등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거 나 위축시키지 말 것 등이다. 다섯째, ‘위력이나 위계에 의 한 업무방해죄’의 ‘위력·위계·업무·방해·공동정범’, ‘강요죄’와 ‘공갈죄’의 ‘협박’ 등은 건전한 상식과 통상의 법 감정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명확히 해석할 수 있고 혹시 불 명확한 점이 있더라도 법 집행 기관이나 법원의 해석에 의 해 합리적으로 보충될 수 있어서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 지 않는다. 여섯째, 광고 불매운동의 ‘무차별적 전화걸기’

81


는 횟수, 홈페이지의 글 남기기와 어울려 조직적으로 계획 된 비정상적인 전화 공세로 내용 정당성 여부를 떠나 계속 걸려 오는 전화 자체만으로 심리적 압박과 두려움을 느낄 정도의 물리력 행사이고 사회 통념의 허용 한도를 벗어나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한하기에 족한 ‘위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일곱째, 소비자 불매운동을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 되지 않는 업무방해죄, 강요죄, 공갈죄의 형사벌로 처벌 하는 것은 소비자 운동을 보호하는 헌법의 취지에 반하지 않는다. 이러한 법정 의견은 헌법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더불어 재판관들은 불매운동으로 인해 기업 이 파산할 수도 있다거나 제3자 기업의 영업의 자유를 침 해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헌재 결정은 ‘에베레 스트에 올라갈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산을 오염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일체의 장비 없이, 방한복 착용도 하지 말고 나체로 등반하라’는 주문과 다르지 않다. 헌재 결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조중동 광고주에 대한 광고 불매운동을 ‘소비자 불매운동의 제3자 행위’로 전락 시키고 그에 대한 업무방해죄, 강요죄, 공갈죄의 적용이 헌법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는 점이다. 집 단적인 ‘위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광고 불매운동에 대 해 헌법적 보호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이 읽히는 대

82


목이다. 같은 OECD 국가들에서 평범하게 수용되고 있는 광고 불매운동의 헌법적 권리가 한국에서는 아직 요원하 고, 나아가 형사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어서 헌법 제124조의 소비자 보호 운동에 소비자 불매운동이 당연히 포함된다는 헌재의 ‘빛 좋은 해석’은 아직 ‘개살구’ 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참고문헌 김병희(2011). 광고와 언론자유의 관련 양상: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와 광고주 압박운동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광고학회 ≪광고학연구≫. 제22권 1호. 151∼171. 이승선(2009). 언론소비자의 특성과 소비자운동의 보호법리: 광고불매운동을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회 ≪한국언론정보학보≫. 제48호. 5∼24. 이호중(2011). 소비자 운동으로서 집단적 항의전화걸기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 한국형사법학회 ≪형사법연구≫. 제23권 4호. 135∼170. 조국(2011). 소비자 불매운동의 법적 지위와 형사처벌의 당부. 한국형사법학회 ≪형사법연구≫. 제23권 3호. 369∼392.

83



09 미디어법 날치기 [헌법재판소 2009.10.29.선고 2009헌라8 · 9 · 10(병합) 전원재판부]

국회의장이 2009년 7월 22일 15시 35분경 개의된 국회 본회의에서 ‘신문등의자유와기능보장에관한법률 전부개정법률안’,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의 가결을 선포한 행위는 청구인인 국회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다. 청구인들이 국회의장에 대해 청구한 두 법률안의 가결 선포 행위에 관한 무효 확인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재석-찬성-취소-반대-취소-찬성’ 되풀이 최고 24회 대단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정상적인 법률안은 상임 위원회의 심사와 본회의의 심의·표결 절차를 거쳐 처리 된다. 본회의에서는 안건을 심의할 때 해당 안건을 심사한 위원장의 심사 보고를 듣고 ‘질의·토론’을 거친다. 표결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국회의장이 의장석에서 표결 안건의 제목을 선 포하면 더 이상 그 안건에 대한 발언은 허용되지 않는다. 회의장에 있지 않은 국회의원은 표결에 참여할 수 없으며 표결이 끝나면 의장은 그 결과를 의장석에서 선포한다. 현 행 국회 의결은 전자투표로 진행하며 국회법에 따라 의원 은 소속 정당에 기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 그런데 헌법 재판 기록에 의하면 이른바 미디어 관련 법, 즉 신문법 수정안은 회의 진행 시스템에 입력된 뒤 33 초 후, 방송법 수정안은 3분 후에 국회의원들의 표결이 시 작되었다. 방송법 개정안은 2008년 12월 허원제 의원 등 11인이 발의했고 신문법 개정안은 2008년 12월 한선교 의 원 등 12인이 발의했다. 상임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방송 통신위원회는 심사 기간 내에 이들 법안의 심사를 마치지 못했다. 그러자 국회의장은 2009년 7월 22일, 제283회 국 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 두 법안을 부의했다. 본회의에

86


서 강승규 의원 외 168인이 두 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 출하였다. 그때가 15시 35분이었다. 그로부터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 서울시의 의사당대로 1번지에서 국회 의원들이 기상천외한 날치기 쇼를 공연했다. 공연은 숨가 쁘게 진행되었다. 15시 35분 신문법과 방송법 수정안이 발 의되고 15시 37분 두 법안이 일괄상정되었다. 심사보고나 제안 설명은 단말기 회의록, 회의 자료로 대체되고 질의와 토론은 실시되지 않았다. 15시 38분에 신문법 수정안이 국 회 e-의안시스템에 입력되었고 표결 개시가 선포되었다. 15시 49분 27초에 신문법 수정안이 회의진행시스템에 입 력되었다. 33초 후인 15시 50분 전자투표시스템이 가동되 고 신문법 수정안의 표결이 시작되었다. 방송법 수정안은 15시 55분에 회의진행시스템에 입력되고 3분 후인 15시 58 분 방송법 수정안 표결이 선포돼 표결을 시작했다. 본회의장 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여당 의원이 표결에 ‘참 여’하고, 의장단을 보호하느라 자신의 좌석을 멀리 이탈해 있던 여당 의원의 비어 있던 좌석의 표결 버튼이 스스로 ‘눌러지는’ 기이한 현상도 생겼다. 어떤 여당 의원들은 허 리를 쭉 빼서 남의 투표단말기를 만지작거리다가 그 근처 의 다른 의원의 단말기를 향해 모종의 액션을 취한 뒤 자 기 자리로 돌아갔다. 야당 의원들 일부는 여당 의원들의

87


어깨나 오른팔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국회의 전자투 표 시스템에 따라 국회의원은 자신의 좌석에서 컴퓨터 단 말기 등을 이용해 재석 버튼을 누른 뒤, 안건에 대해 찬 성·반대·기권의 버튼을 눌러 표결에 참여한다. 이변이 없는 한, 국회의원은 재석과 찬반 표시 등 두 번의 버튼을 작동해 표결에 참여한다. 그런데 날치기 쇼가 진행된 그 날, ‘재석-찬성-취소-찬성’ 의원 10명, ‘재석-찬성- 취소-반대-취소-찬성’을 되풀이한 의원은 7명이었다. 총 표시의 횟수가 24회인 국회의원도 나타났다. ‘재석- 반대-취소-찬성’을 되풀이한 의원도 6명, ‘재석-찬성 -취소’ 혹은 ‘재석-반대-취소’ 표시를 하여 기권 처리 된 의원은 7명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국회의장을 대신해 의사를 진행한 국회부의장은 방송법 수정안에 대해 표결 을 진행한 뒤, 몇 분 후 ‘투표 종료’를 선언했고 곧이어 ‘투 표 종료 버튼’이 눌러졌다. 전자투표 전광판에는 재적 294, 재석 145, 찬성 142, 반대 0, 기권 3이 표시되었다. 그 순간 의결정족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투표를 다시 해 달라는 국회부의장의 요구에 따라 재투표가 진행되었다. 쇼는 국회부의장이 신문법·방송법 개정안의 가결을 선 포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두 법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 써 우리나라 신문 시장을 과점 지배하던 주류 신문사들의

88


방송 사업 진출이 허용되었다. 한편,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정세균 의원 등 90명은 미디어법 날치기 다음 날 헌법재판소에 권 한 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국회의장의 미디어법 가결 선 포 행위가 국회의원으로서 자신들의 심의·표결권을 침 해했고 따라서 신문법·방송법의 가결 선포 행위를 무효 확인해 달라는 청구였다. 헌법재판소는 위헌 법률 심판, 탄핵 심판, 정당 해산 심판, 권한 쟁의 심판, 그리고 헌법 소원 심판을 담당한다. 다른 심판의 인용 결정에는 재판 관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지만 권한 쟁의 심판의 경 우 종국 심리에 관여한 재판관의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을 내린다.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찬성하면 심의·표결권 침해를 인정하거나 가결 선포 행위의 무효 확인이 가능한 것이다. 권한 쟁의 부문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법 제66조에 따르면, 헌재는 권한 침해의 원인이 된 처분을 취소하거나 무효를 확인할 수 있다. 또 헌재가 부작위에 대한 심판 청구를 인용할 때 피청구인은 그 결정의 취지에 따른 처분을 해야만 한다.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신 문법·방송법의 가결선포 행위는 청구인 국회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고 확인했으나 가결 선 포 행위를 ‘무효 확인’ 해 달라는 청구는 기각했다. 2009년

89


10월 29일의 일이다[2009헌라8·9·10(병합)결정].

제안 취지 · 설명 · 질의 · 토론 생략된 법률안, 회 의 자료 입력 33초 후 표결 개시 이 결정에서 쟁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신문법·방송 법 처리가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는지, 다 른 하나는 국회에서 처리된 신문법·방송법을 무효라고 확인해 달라는 청구를 받아들일지 등이었다. 헌법재판관 들의 의견은 <표 1>의 분류와 같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신문법 수정안은 당일 15시 38분 국 회 e의안 시스템에 입력되고 15시 38분 같은 시각에 신문 법 수정안에 대한 표결 개시가 선포되었다. 회의 진행 시 스템에 입력된 시각은 15시 49분 27초였는데 33초 후에 전자투표 시스템이 가동돼 표결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절 차와 진행에 대해 재판관 여섯 명은 국회의원들의 심의· 표결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회의 진행 시스템에 신문법 수정안이 입력돼 15시 58분까지 그 상태 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도 침해가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 였다. 반면 김희옥·김종대·송두환 재판관은 위법하다 는 의견을 제시했다. ‘표결 선포-회의 진행 시스템 입력 -투표 개시’로 이어진 일련의 처리 과정은 국회법이 요구

90


91

방 송 법

무효확인 청구

심의 표결권 침해

신 문 법

X X X X X

일사부재의원칙 위반

(소결)심의 · 표결권 침해 신문법 방송법

X

제안취지 · 설명절차 위법

질의 · 토론절차 위법

X

X

X

X

X

X

표결절차 헌법정당성 위반

(소결)심의 · 표결권 침해

X

X

이공현

X

이강국

질의 · 토론절차 위법

제안취지 · 설명절차 위법

구분 ○

X X X ○ X

○ ○ ○ ○

X

X

X

X

X

○ ○

김종대

김희옥

X

X

조대현

<표 1> 신문법 · 방송법 처리의 제1차 권한 쟁의 심판 사건에 대한 재판관들의 의견

X

X

X

X

X

X

X

X

민형기

X

X

X

X

X

X

이동흡

X

X

X

X

X

X

X

X

목영준

X

송두환


한 ‘안건의 제안 취지 설명’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다는 것 이다. 이들 재판관 세 명은 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은 안건에 대해 제안자가 그 취지를 설명하도록 규정한 것은 의원들이 그 안건의 취지·내용을 파악하여 질의·토론의 중요한 전제가 되게 함에 있다고 판단했다. 표결을 위한 의 사 결정의 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이다. 더불어 국회법에 따 라 국회의장이 표결을 선포한 이후에는 질의·토론이 금 지되어 있기 때문에 표결이 선포되고 11분이 지나서 회의 진행 시스템에 수정안이 입력된 것, 입력 후 30여 초 후에 투표가 개시된 것은 적법한 절차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한편, 다수의 재판관은 국회의원들에게 질의·토론의 기회를 주지 않고 표결을 하고 신문법안의 가결을 선포한 것은 심의·표결권을 침해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러 나 이공현·민형기·목영준 재판관은 국회법은 국회의장 에게 폭넓은 권한을 부여하고 있고 의사 진행에 관한 것은 원칙적으로 의장에게 그 권한과 책임이 있기 때문에 국회 의장의 의사 절차 진행이 명백히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 한 그의 자율적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당시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야당 의원 들에게 질의·토론의 의사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질 의와 토론의 유무를 확인하지 않고, 질의·토론을 생략한

92


후 표결을 선포한 것은 ‘객관적으로 명백히’ 잘못된 것이 아니고 따라서 야당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 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방송법에 대한 표결을 두 번씩이나 한 행위에 대해서 이강국·이공현·김희옥·이동흡 재판관은 투표를 종료 한 결과 과반수의 출석이라는 의결정족수에 미달되었다 면 그것은 유효한 국회의 의결이 아니라면서, 따라서 국회 의장이 재표결을 실시하고 방송법안의 가결을 선포한 것 은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이 아니라고 보았다. 우리 헌법 제49조와 국회법 제109조는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 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의 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정해 놓고 있다. 이들 4 명의 재판관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이라는 의결정족 수는 국회의 의결을 유효하게 성립시키는 전제 요건의 의 결능력에 관한 것으로 ‘출석 의원 과반수의 찬성’이라는 다수결 원칙을 선언한 의결 방법에 관한 규정과 법적인 성 격이 다르다고 보았다. 또 이들 4명의 재판관은 전자투표 절차와 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더불어 제1차 방 송법 수정안 표결 절차의 투표 종료 선언은 극도의 소란으 로 말미암은 착오에 불과하고 이러한 의사 진행의 우연한 실수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최종 의사를 확정하는 기

93


준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반면 조대현·김종대·민형 기·목영준·송두환 재판관은 투표가 종료되고 재적 의 원 과반수의 출석이 미달된 것이 확인된 이상 국회의 의사 는 부결로 확정되었고 따라서 확정된 부결 의사를 무시하 고 재표결을 실시, 그 결과에 따라 가결을 선포한 것은 일 사부재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보았다. 이들 5명의 재판관 은 투표가 종료되었더라도 재적 의원 과반수에 미달한 것 을 이유로 국회 의사가 유효하지 않다고 해석하는 4명의 재판관의 견해에 따를 경우, 재적 의원 과반수에 이를 때 까지 몇 번이고 재표결을 해야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위법 · 위헌적 절차로 탄생한 법률의 ‘무효 확인’ 청구 거듭 기각 신문법의 가결 선포 행위를 무효 확인해 달라는 청구에 대 해 민형기·목영준 재판관은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이강국·이공현·김종대 재판관은 국회의 의사 결정을 존중하자는 이유에서, 이동흡 재판관 은 가결 선포 행위가 의사 절차의 적정성에 관한 ‘경미한 하자’는 있지만 헌법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반면 조대현·송두환·김희옥 재판관은 심의·표결 절차가 위헌성과 위법성을 가진 것

94


으로 그 가결 선포 행위에 대해 무효 확인 청구를 인용해 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방송법의 무효 확인 청구에 대해 이강국·이공현·김희옥 재판관은 심의·표결권 침 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민형기·이동흡·목영준 재판관 은 의결·표결 절차의 하자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방송법 을 취소 또는 무효로 할 만한 정도의 하자는 아니라는 이 유, 김종대 재판관은 국회의 자율에 맡기자는 이유로 청구 를 기각했다. 반면 조대현·송두환 재판관은 질의·토론 절차가 생략되어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을 뿐만 아니 라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반하였으므로 동 법에 대한 가결 선포 행위의 무효를 선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 로 다수 의견에 따라 신문법과 방송법의 가결 선포 행위의 무효 확인 청구는 기각되었다. 50여 일 뒤인 12월 18일, 야 당 국회의원들은 헌재가 신문법·방송법의 처리 과정에 서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다고 결정하였음에도 국회의 장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서 두 번째 권한 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이에 대해서도 기각 결정했다 (헌법재판소 2010.11.25.선고 2009헌라12결정). 필자의 생각에 헌법재판소가 신문법·방송법의 가결 선포 행위에 대해 무효 확인 청구를 인용해서 두 법을 취 소하거나 무효 선언했다고 하더라도 국회에서는 다시 물

95


리력에 의한 법안 처리가 반복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방송 시장 진출에 ‘필사적’이었던 주류 신문과 신문 방송 겸영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던 정부·여당의 분위 기를 감안할 때, 두 법안의 처리가 더욱 정교하고 창의적 인 방식으로 ‘날치기 공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헌법재판관 다수가 요모조모 ‘비상한 논리’를 동원해 무효 확인 청구를 기각하여 미디어 관련 법에 대한 국회의 2차 적인 날치기 입법을 사전에 ‘차단’한 것은 눈물겨운 배려 일 수도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 시스템의 핵심 중 핵심이 라고 할 질의와 토론 절차를 배제해 버리고 심의·표결의 권리를 훼손한 것이 명백한 법안의 위법·위헌적 가결 선 포 행위의 ‘결과물’에 대해 ‘결과적’으로 면죄부를 부여한 행위는 결코 면죄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참고문헌 이부하(2011). 변칙적으로 가결·선포된 법률의 효력: 헌재 2009.10.29. 2009헌라8·9·10(병합) 판례 평석을 겸하여. 국제헌법학회 한국학회 ≪세계헌법연구≫. 제17권 2호. 463∼486. 조재현(2012). 권한쟁의심판에서 결정의 범위와 기속력에 관한 연구. 한국헌법학회 ≪헌법학연구≫. 제18권 1호. 429∼459. 차진아(2009). 권한쟁의심판과 위헌법률심판의 충돌에 관한 고찰. 한국헌법학회 ≪헌법학연구≫. 제15권 1호. 381∼422.

96


10 ‘비상한 공적 관심사’ (대법원 2011.3.17.선고 2006도8839 전원합의체 판결)

이 사건의 도청 자료는 국가 기관이 … 대화를 녹음한 것이다. 굴지의 재벌 그룹 경영진과 유력 중앙 일간지 사장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문제나 정치인과 검찰 고위 관계자에게 이른바 추석 떡값을 지원하는 문제를 논의한 대화의 내용은, 보도 시점에서 볼 때 이미 약 8년 전의 일로 그 내용이 보도 당시의 정치 질서 전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 … 현저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떡값’과 ‘떡 가게 값’ 1972년은 국내외로 참으로 ‘비상한’ 해였다. 필리핀의 마 르코스 대통령은 그의 임기를 연장하려던 개헌이 실패하 자 1972년 9월 필리핀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장 기 집권을 획책했다.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도 1972년 10 월 17일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그의 무제한 연 임을 보장하는 유신헌법 체제를 출범시켰다. ‘비상한’ 일 은 미국에서도 일어났다. 1972년 6월, 워싱턴의 워터게이 트 빌딩에 당시 대통령 닉슨의 재선을 도모하려는 비밀공 작반이 침투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다가 도청 장 치를 설치하려고 했던 것인데, 비밀공작반원들은 도중에 체포되었다. 워터게이트로 명명된 도청과 거짓말이 드러 나면서 닉슨은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미국 역사상 임기 중 사임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대통령을 물러나게 만든 ‘도청’은 40 여 년이 지난 2011년 7월, 168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영 국 한 신문사의 폐간을 촉발한 공이 역할을 했다. 1843년 창간되어 1969년 투퍼트 머독이 인수한, 영국에서 가장 잘 팔리던 주말 신문인 ≪뉴스오브더월드(News of the World)≫는 취재 과정에서 불법 해킹과 도청을 일삼아 전 편집국장 레베카 브룩스 등 관련 간부들이 구속되고 머독

98


이 청문회장에 불려 나가는 수모를 겪었다. 2011년 ≪뉴 스오브더월드≫의 추악한 해킹과 도청 사실이 드러나면 서 이 신문에 대한 대대적인 광고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이 신문은 불법적인 전화 도청 사실을 사과하면서 폐간을 선언했다. 민주주의의 쌍끌이 국가라는 미국과 영국에서 벌어진 ‘도청’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 의 2013년 11월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정보 기관 정보통 신본부(GCHQ)는 일반인들의 휴대전화를 감시할 목적으 로 벨기에의 통신 회사에 침투하려고 시도했다. 한편 2013 년 12월 영국의 ≪가디언≫과 한국의 ≪시사인≫ 등 국내 외 여러 언론 매체들은 ‘올해의 인물’로 전직 미국 중앙정보 국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을 선정했다. 스노든은 2013년 6월, 미국 국가안보국이 국내외에서 무차별로 도·감청을 해 온 자료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통해 폭로하고 러 시아로 임시 망명했다. 도청 대상에는 각국 정상들의 대화 도 포함되었다. 스노든이 폭로한 도청 자료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미국과 영국 등 여러 나라의 언론인이 형사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도청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언론인 이 다른 사람이 도청한 자료를 보도하면 어떻게 될까?

99


1997년 대통령 선거일을 즈음해 발생한 이른바 ‘삼성 X파 일’ 사건을 살펴보자. 옛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활동해 온 안기부의 ‘미림’이라는 정보수집팀은 김영삼정부에서 불 법 도청을 방지하겠다는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된 뒤에 도, 정치인과 주요 공적 인물들의 대화를 엿듣고 기록했 다. 그 기록물 중에는 1997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 전, 삼성그룹 최대 실세로 평가받던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 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대화를 도청한 것도 포함되 었다. 두 사람은 1997년 9월의 어느 날, 선거에 출마할 것 으로 예상되는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정치자 금을 전달할 것인지, 기타 정치인들과 검찰의 간부들에게 얼마의 금품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등을 의논하는 대화 를 나눴고 그 내용은 불법 도청 테이프에 저장되었다. 언 론과 삼성·법조 관계자들은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 의혹 이 강한 금품을 스스럼없이 ‘떡값’이라고 불렀다. ‘떡 가게’ 를 몇 개씩 차리고도 남을 규모의 금품이었다. 이 사건은 몇 년의 잠복기를 거쳐 2005년 공론화되었 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주미 대사로 임명되자 한 재 미 교포가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에게 도청 테이프의 존재 를 알리고 보도 여부를 타진했다. 이상호 기자는 미국까 지 날아가 그 재미 교포를 만났는데, 테이프가 한국에 있

100


다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귀국했다. 그 과정에서 재미 교 포에게 취재 사례비로 1000달러를 제공했다. 미국의 할리 우드와 한국에서 두 번에 걸친 성문 분석 작업을 마쳤으나 보도는 차이피일 미뤄졌다가 2005년 7월 21일 <뉴스데스 크> 시간에 방송되었다. 보도 당일 이학수 본부장과 홍석 현 중앙일보 회장의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이 일부 받아들 여져 테이프와 원음과 대화 내용의 직접 방송, 실명 보도 는 금지되었다. 문화방송은 같은 달 27일까지 X파일의 내 용을 실명과 함께 보도했다. 방송 후 142일간에 걸쳐 검찰 의 수사가 이뤄졌으나 검찰은 도청 자료에 등장하는 인물 들을 횡령 혐의로 처벌하기 어렵고, 뇌물 공여 혐의도 공 소시효가 완료되었다는 점을 들어 무혐의 결정했다. 대신 안기부 직원들이 도청한 자료를 보도한 이상호 기자는 통 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항소심 판결 선고일로부터 무려 4년 4개월의 시간이 흐른 2011년 3월 17일 대법원은 이상호 기자의 유죄를 확정하고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2006도8839판결).

다수 의견 ‘8년 전 사건으로, 비상한 공적 관심사 아니다’ 2006년 8월 11일, 1심 재판부는 대통령중심제 국가인 우

101


리 헌법상 공명정대한 대통령 선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는 점과 검찰은 누구보다 법을 준수하고 직무의 순결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할 때 도청한 자료의 내용은 민 주적 기본 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공익적 사항이고 대화 당사자와 대화에서 언급한 사람들은 국정의 방향과 국가 조직의 운영, 국민의 정치 생활 등에 큰 영향을 미치 는 공적 인물들로서 이를 보도한 것은 언론 기관의 책무에 해당한다고 판단,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23일, 항소심 재판부는 대화의 내용은 보도 당시의 국정 운영이나 국가 정치 질서의 전개에 어떠한 직접적인 영향 력을 미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사회 질서 수호를 위해 부득이하게 보도할 대상이었다고 보지 않았다. 또 8년 전의 사건이라서 긴급성도 없다면서 나아 가 피고인 이상호 기자뿐만 아니라 당시 보도에 참여한 대 한민국의 모든 언론 매체의 보도·출판 행위가 통신비밀 보호법 위반의 ‘유죄’임을 선언하는 판결을 내렸다. 2011 년 대법원은 재판관 다섯 명이 무죄라는 반대 의견을 냈으 나 다수의견을 통해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다수 의견은 불법 도청에 관여하지 않은 언론 이 도청된 자료를 보도했을 때 형법 제20조의 정당한 행위 로 인정받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보도의 목적

102


이 도청 범죄 사실 그 자체를 고발하기 위해 불가피할 것, 도청 자료를 위법한 방법이나 적극적·주도적으로 획득 하지 아니할 것, 보도의 이익이 통신 비밀 보호의 이익을 초과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도청 자료를 공개하지 않으면 공중의 생명과 신체, 재산, 기타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 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어야 하고 비상한 공적 관심사를 알리려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부분에 한정될 것 등이었다. 대법원은 굴지의 재 벌 그룹 경영진과 유력 중앙 일간지 사장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문제, 정치인과 검찰 고위 관 계자에게 추석 떡값을 지원하는 문제를 논의한 것은 공적 인 관심 사항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보면서, 그 러나 해당 사건은 보도 시점 대비 8년 전의 사건으로 보도 당시의 정치 질서 전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고 판단했다. 또 문화방송의 보도 행위는 공익에 대한 중 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비상한 공적 관심사’ 가 아니라고 보았다. 대화의 당사자들이 정치자금과 떡값 을 제공하려고 상의한 것에 불과하고 실제 정치자금 등을 제공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도, 이상호 기자가 재미 교포에게 1000달러를 제공한 것 외에, 1만 달러를 추가로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서는 도청 자료의

103


취득에 적극적·주도적으로 관여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명을 밝히고 대화의 내용을 소개한 것에 대해서도 수단 과 방법의 상당성을 결여했다고 평가했는데, 대법원은 해 당 테이프가 사인들 사이에 은밀히 이루어진 대화를 불법 으로 녹음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대화 당사자들은 공 적 인물로 프라이버시가 통상인에 비해 제한되지만 지극 히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개인 간의 대화가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불법 감청 내지 녹음되고 공개될 것이라는 염려 없이 대화할 권리까지 쉽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판 시했다.

반대 의견 ‘해당 자료 보도는 언론 기관의 사회적 책무다’ 박시환·김지형·이홍훈·전수안·이인복 대법관은 반 대 의견에서,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대통령 선거와 검찰 조직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행태는 민주적 헌정 질서의 근 간을 해치는, 매우 중대한 공공의 이익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8년 전 사건이기는 하지만 재계와 정치권의 유 착을 근절할 법적·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고 삼성 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대화 내용이 단 지 과거의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 문화

104


방송의 보도는 국가 기관의 조직적인 불법 도청, 재계와 언론·정치권 등의 유착 관계 실태를 고발하는 것으로 ‘매 우 중대한 공익적 목적’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대화의 당사자들도 공적인 인물들이어서 도청 자료 공개로 입게 되는 인격권의 침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반대 의견은 국가 기관이 자행한 불법 도청의 자료에 주목 하면서 국가 기관이 제대로 기록물을 관리하지 않아서 유 출된 자료의 보도는 단순한 사안의 불법 도청 자료의 보도 와 판단을 달리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미 도청 자 료가 외부로 유출된 상황에서 이뤄진 이상호 기자의 보도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언론 기관에 대하여 그 부여된 사회 적 책무를 방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국가 기관이 불법 도청을 통해 작성한 이른바 ‘삼성 X파 일’의 내용 일부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한 진보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통비법 위반죄가 확정되어 2013년 2 월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통비법 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 한 원심을 2011년 5월 13일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 송한 데 따른 후속 재판의 결과였다. 한편, 영국에서 168년 전통의 신문이 도청을 이용한 ‘취재’ 때문에 폐간을 하고, 한국에서는 이미 도청이 완성된 자료를 ‘보도’했다는 이유 로 공영방송 기자에게 유죄 선고가 확정된 2011년, 영국의

105


BBC와 같은 공영방송으로 발돋움하겠다며 수년째 수신료 인상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의 공영방송 KBS 기자가 수신 료 인상에 반대하던 야당 대표실을 도청했다는 혐의로 검·경의 수사를 받았다. 결과는 예상대로 흐지부지되었 다. 미국과 영국의 언론인들은 KBS 기자 도청 의혹 사실의 처리 결과에 크게 당혹했을 것이다. 그런데 경악스러운 일 은 계속되었다.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과 MBC 기획홍 보부장 이진숙의 비밀 회동을 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 에 대해 법원은 통비법 위반의 책임을 물어 ‘징역 6월, 자격 정지 1년’을 ‘선고유예’ 판결했다. 1심 법원의 형량을 항소 심 법원은 더 높였다. 항소심 법원이 최 기자의 행위를 유 죄 판단하면서 적용한 법리가 바로 ‘비상한 공적 관심사’였 다. 법원은 두 사람의 공적인 인물이 재산매각 자금을 선거 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용처에 써 보자고 머리를 맞댄 대화 의 공개는 정당한 언론의 취재 보도 대상에 적용되는 ‘비상 한 공적 관심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추후 반복적으로 ‘비상한 공적 관심사’의 법리가 저널리즘의 진실을 추구하 려는 언론인들을 죄다 통비법 위반의 ‘선고유예 전과자’로 양산하는 기계장치로 쓰일 것 같아 암울하다. 아니면 그 법 리는, 진실을 듣고도 처벌이 두려워 못들은 척해야 하는 ‘귀먹은 언론인’ 양성의 토양이 될지 모른다.

106


참고문헌 박선영(2013). 언론기관의 자유와 통신비밀: 안기부 X파일 사건을 중심으로. ≪공법학연구≫. 제14권 3호. 3∼23. 이승선(2007). 공적 인물의 통신비밀보호와 공적 관심사안에 대한 언론보도의 자유. ≪한국언론정보학보≫. 통권 제38호. 211∼244. 이승선(2014). ‘비상한 공적 관심사’라는 비상한 논리.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중재≫. 통권 제130호. 24∼33. 조국(2008). 불법도청에 관여하지 않은 언론의 도청결과물 보도의 위법성조각: ‘X파일’ 보도사건을 중심으로. ≪법조≫. 통권 627호. 185∼217. 조국(2012). ‘삼성 X파일’ 보도 및 공개사건 판결 비판. 한국형사법학회 ≪형사법연구≫. 제24권 1호. 271∼295.

107


이승선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다. 연세대학교에서 학사와 석 사, 박사과정을 마쳤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틈틈이 국문학 과, 법학과를 기웃거렸다. 방송법제와 관련된 주제로 박사학위 를 받은 뒤 2000년 한국방송대학교 법학과 1학년에 입학해 4 년간 공부했다. 2006년 충남대학교에서 “언론소송과 당사자 적격”이라는 논문으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3월부 터 1년간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방문연구교수로 공부했 다. 한국언론학회를 비롯해 5개 학회의 총무이사를 지냈다. ≪언론학보≫ㆍ≪방송학보≫ㆍ≪언론과 법≫ㆍ≪언론과학 연구≫ㆍ≪방송통신연구≫ 등의 편집위원, KBS 제1기 뉴스옴 부즈맨을 했다. 공적 인물의 통신비밀보호와 공적 사안에 대한 언론 보도를 연구해 2008년 한국언론정보학회 우수논문상, 2010년에는 방송 서비스의 재판관할권과 관련된 쟁점을 연 구ㆍ발표하여 한국언론법학회가 수여하는 ‘철우언론법상’을 받았다. 2011년에는 입학일로부터 30여 년 동안 ‘공부를 열심 히 한 것 같다’는 이유로 대학 동문 재상봉 행사에서 명예의 전 당에 헌정되었다. 언론의 취재 보도와 위법, 명예훼손 연구에 관심이 많다. 요즈 음 한국의 언론 자유를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한 대법관과 헌 법재판관들의 '언론사상'을 탐구하고 있다. 더불어 언론의 자 유를 오히려 위축하는 데 영향을 준 판결이나 심의 결정들을 살펴보는 일련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