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의 욕망 사실을 사실대로 찍어 보여 주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역할이었다. 요즘 다큐는 감성이 느껴지고 예술이라는 말도 듣는다. 공감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사실이란 무엇일까? 감독의 판단일까, 대중의 공감일까?
개인 심리의 리얼리티를 전달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활용한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아리 알만 감독, 2008
인텔리겐치아 2610호, 2015년 5월 29일 발행
이종수가 쓴 ≪포스트 텔레비전 시대의 다큐멘터리 트렌드≫
다큐멘터리는 변화와 진화를 거듭했다. 다양 한 패러다임이 서로 경쟁했다. 그러나 지금처 럼 이렇게 급격한 모순의 양상을 보이면서 폭 발한 적은 없었다. - ‘다큐멘터리 글로벌 트렌드’, ≪포스트 텔레비전 시대의 다큐멘터리 트렌드≫, 43쪽.
모순의 양상이란? 다큐 취향의 대중과 고급이 공존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다큐 취향의 대중이란 뭘 말하는가? 소수 엘리트 취향에 어필하던 다큐가 다수 수 용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대중, 오락의 요소 를 차용하는 경향을 말한다. 대중에게 어필하려는 이유는? 개인의 일상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2000년대 이후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 장르가 된 것 도 한 이유다. 현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정통 다 큐멘터리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나타났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인가? 개인을 인공의 상황에 배치하고 오락 스펙터 클만 제공한다는 비판이 있다. 문화 전반의 우민화, 저속화, 상업화를 불러온다고 주장 한다. 찬성하는 견해는? 다큐멘터리 장르의 확장 또는 방향 전환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품질 리얼리티 프로 그램은 다큐멘터리의 주요 목적, 곧 계급, 인 종, 성별 간 갈등과 불평등에 대한 진보적 메 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어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그런가? 영국 채널4의 <와이프 바꾸기>와 <역할 가장
하기>가 그렇다. 계급 갈등의 맨살을 보인다. 정통 다큐의 반응은? 정보 전달과 오락 제공의 혼종화다. 역사, 과 학, 문명 다큐가 대중 스토리텔링 전략을 흡 수했다. 어떤 프로그램이 그런가? 미국 PBS의 <NOVA> 시리즈, 영국 채널4의 <1900년대 하우스> 시리즈는 과학, 역사 다 큐에서 재연과 애니메이션, 리얼리티 요소 를 활용한다. EBS의 <다큐프라임>도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자연사, 역사, 과학 다큐를 제작한다.
다큐 고급화 경향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작가주의 필름 다큐가 출발점이다. 작가의 표현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미학과 형식을 시도한다. 무엇이 새로운 미학인가?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차용한 다큐멘터리다. 실사 영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주제, 예를 들 어 현대인이 겪는 심리적 세계를 표현한다. 애니메이션으로 심리를 표현한 다큐의 사례 는? <바시르와 왈츠를>을 보라. 개인의 심리, 감 정의 리얼리티를 전달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활용한다. 애니메이션이 현실성
과 진정성을 표현하는 데 더 나았다는 평을 받았다. 새로운 경향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다큐가 훨씬 더 재미있고 활기찬 장르가 된다 는 사실이다. 이성의 다큐에서 공감의 다큐 로, 사회적 설명에서 개인 이해의 다큐로 달 라진다. 표현의 예술성과 스토리텔링의 다 양화도 새로운 초점이다. 이 책, ≪포스트 텔레비전 시대의 다큐멘터리 트렌드≫는 무엇을 말하는 책인가? 다큐멘터리 개념에 대한 이론, 역사와 함께 트렌드를 정리한다. 이런 변화가 문화, 기술, 산업 환경의 변화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
핀다. 국내외의 환경, 과학, 일상, 리얼리티 쇼, 웹 다큐멘터리 장르를 사례로 분석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종수다.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다.
다큐멘터리의 욕망 사실을 사실대로 찍어 보여 주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역할이었다. 요즘 다큐는 감성이 느껴지고 예술이라는 말도 듣는다. 공감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사실이란 무엇일까? 감독의 판단일까, 대중의 공감일까?
개인 심리의 리얼리티를 전달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활용한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 아리 알만 감독, 2008
포스트 텔레비전 시대의 다큐멘터리 트렌드 이종수 지음 다큐멘터리 2015년 5월 30일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300쪽 21,000원
작품 속으로 방송문화진흥총서 149
포스트 텔레비전 시대의 다큐멘터리 트렌드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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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재정의
지식이 과거의 지식이 아니듯이, 다큐멘터리도 이전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 브라이언 윈스턴(Brian Winston)
‘다큐멘터리란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는 것은 늘 어려웠다. 그러나 적어도 다큐멘터리를 알아볼 수 있는 스타일과 표식 들이 있었다. 차분한 보이스오버(voice-over) 내레이션, 사실성을 증명 하는 지표적 이미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내러티브 전개 등이다. 그러 나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표식들이 점차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야 말로 다큐멘터리를 하나의 공통된 표현 양식을 가진 장르로 규정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디지털 기술의 확산으로 사진의 지표적 가치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거기에 전반적인 TV 프로그램에서 현실과 허구, 정보 와 오락 장르의 상호 혼합이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도 주관적, 개인적 다큐멘터리의 등장, 재연과 드라마 다큐, 오락적 리얼 리티 프로그램의 인기로 다큐멘터리와 타 장르의 경계가 점차로 희미해 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다큐 정체성 혼돈 속에서 다큐멘터리 이론과 학 문적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Nichols, 1991, 1994; Winston,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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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ner, 1995; Renov, 1993; Bruzzi, 2001). 21세기 들어 다큐멘터리의 정체성은 또 다른 차원의 도전에 직면 한다. 장르 간 이종 교배와 혼종화를 넘어 실사와 가상 이미지 혼합, 온 라인 다큐까지 다큐멘터리 스펙트럼은 무한 확장되고 있다. 이렇게 확 장된 다큐멘터리 스펙트럼은 다큐멘터리 논쟁을 더욱 도전적이고 흥 미롭게 만들고 있다. 특정 미디어 혹은 특정 신념을 넘어서 ‘다큐멘터 리’ 본질과 의미를 새롭게 재정의, 재상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다큐멘터리 개념 논쟁의 출발부터 최근까지의 핵심 이슈를 살펴본다. 실제와 창조적 가공, 기록과 예술 표현의 욕구 속에 서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장르적 정체성을 형성해 왔는지, 다큐멘터리 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인 리얼리티와의 관계는 어떻게 재정의될 수 있 는지를 논의한다. 또한 다큐멘터리를 둘러싼 텍스트, 제작자, 수용자들 간의 사회적 담론 과정, 그리고 디지털 융합으로 재구조화되고 있는 새 로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다큐멘터리를 재성찰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 하려 한다.
다큐멘터리의 태생적 딜레마 실제의 창조적 가공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그 다양한 정의의 기 원을 찾아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시발점에서 만나게 된다. 바로 존 그 리어슨(John Grierson)의 ‘실제의 창조적 가공(creative treatment of actuality)’이라는 정의다. 그리어슨은 스튜디오에서 제작되는 인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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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물과 대조적으로 ‘실제’라는 질료를 사용하는 다큐멘터리의 가치를 강조했다.
다큐멘터리 혹은 실제의 창조적 가공은 스튜디오 제작물처럼 겉만 번드르르하게 주장하는 스토리나 무대 배경을 갖지 않는 새로운 예 술이다. (Grierson, 1933, p.8)
그런데 여기서 그리어슨은 ‘실제의 창조적 가공’이 무엇을 의미하 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고, 이것이 다큐멘터리에 관한 가장 중요한 논쟁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다(Austin & de Jong, 2008, p.284). 아이 러니는 바로 이런 생략 덕분에 그리어슨 자신은 전혀 상상치 못했을 엄 청난 미디어와 기술 변화 속에서도 다큐멘터리에 관한 표준적 정의로서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실제의 창조적 가공’이라는 정의가 그토록 문제시되 는가? 바로 실제(현실)와 창조적 가공(예술)의 상호모순성 때문이다. 실제의 기록성과 예술적 표현성, 사실성과 내러티브 추구는 서로 상반 되는 경향이다. 이 두 경향의 결합은 필연적으로 긴장을 가져온다. 현실 은 끊임없이 개방적으로 진행되는데, 예술이란 것은 고도로 구조화되고 자족적이기 때문이다(Linton, 1992, p.87). 폴 워드(Paul Ward, 2005) 역시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포착하려는 모든 시도는 공통된 딜레마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분명 현실을 있는 그 대로 기록하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특정한 미학적 장치를 사용하는 이 영상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다. 상식적으로 사람들은 미학이 개입하는 순간 현실은 왜곡되거나 변화된다고 생각한다. 이 근 본적 딜레마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나 이론가들을 괴롭혀 왔으며, 다
큐멘터리에 대한 이해를 곤란하게 만들어 왔다(p.6). 그러나 이런 딜레마가 오히려 ‘논픽션’이라는 광범위한 범주 내에 서 다큐멘터리만의 독특한 위상과 장르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다큐 멘터리는 분명 현실에 존재하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포착한다는 점에서 논픽션이다. 그러나 “모든 다큐멘터리는 논픽션이지만, 모든 논픽션이 다큐멘터리는 아니다”(Barsam, 1973, p.1). 기본적으로 논픽션은 사건 의 단순한 기록에서 출발한다.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Arrival of Train)>, <퇴근하는 노동자들(Workers Leaving the Lumière Factory in Lyon)>은 논픽션이다. JFK 암살 장면을 담은 자프루더(Zapruder) 필 름, 로드니 킹(Rodney King) 구타 비디오도 논픽션이다. 이런 사실 기 록 필름은 전영화적(pre-filmic) 세계, 즉 카메라의 유무와 상관없이 ‘발 생한’ 세계의 사건과 분명한 지표적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것 은 우연히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사건’을 포착, 기록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다큐멘트(document)적 가치는 있지만, 다큐멘터리라 고 부를 수는 없다.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의 <북극의 나눅(Nanook of the North)>(1922) 이전에도 많은 기록 필름이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최 초의 다큐멘터리로 인정받은 것은 다른 논픽션물과 달리 ‘드라마틱한 내러티브 효과’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Winston, 2013, p.4). 암묵적 으로 다큐멘터리란 실제 자료를 의미 있는 형태로 재배열하는 내러티브 적 조직화 과정을 거친다. 그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는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는 ‘창의적인 논픽션’이다(Bernard, 2011). 한마디로 다큐멘터리 는 단순한 기록 필름보다 더 미학적 예술적이고, 단순한 강의 필름보다 더 큰 정치적, 사회적 야망을 가진 필름이라고 볼 수 있다(Plantinga, 2005,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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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실제와 창조적 가공 사이의 내적 긴장을 억지로 봉합하려는 것 은 오히려 다큐멘터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저해한다는 견해도 있다. 워드(Ward, 2005)는 다큐멘터리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두 경향-실 제를 포착하는 것과 창조적으로 가공하는 것-이 마치 양극단으로 대립 되어 있는 것처럼 보고, 이 둘의 균형을 억지로 맞추려고 하는 데서 오히 려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는 ‘기록’과 ‘해석’을 두 가지 대립되는 행위로 보고, 근본적으로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투명하게 반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순진한 리얼리즘(naive realism)’에 기초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기록 행위도 이미 기록하는 자의 선택과 해석의 렌즈 를 통과한 것이다. 더욱이 현실에 대한 인식론적 패러다임이 1970년대 이후 구성주의(constructivism)와 1980년대 이후 포스트구조주의(poststructuralism)의 영향을 받으면서, 현실을 ‘재현(re-present)’하려는 어 떠한 시도도 결국은 사회적, 문화적 구성 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구성적 표상주의 입장에서 다큐멘터리를 ‘다큐 멘토그래피(documentography)’라고 표현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현 실 매개와 재현 작업에 개입하는 인식적, 기호학적 효과를 강조한 개념 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특정한 현실을 최대한 진실 되게 말하고 자 하는 ‘구성적 재현(constituent representational)’ 작업과 그 결과로 서의 상징적 효과(물)로 볼 수 있는 것이다(김균·전규찬, 2003, 27쪽) 실제로 다큐멘터리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다큐멘터리 영 역에는 늘 ‘실제’를 있는 그대로 포착하려는 움직임과 ‘창조적 처리’를 극 대화하여 미학적 완성도와 특정한 사회적 목적을 성취하려는 시도가 공 존해 왔다. 마치 ‘벽 위의 파리(fly-on-the-wall)’처럼 투명하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는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에서, 현실을 극화하는 드라마 다큐멘터리까지 다큐멘터리 스펙트럼은 양극단을 오 고 갔다.
보여 주기와 말하기
예술철학의 입장에서 본 다큐멘터리의 사실성과 허구성에 관한 칼 플 란팅가(Carl Plantinga)의 논의는 주목할 만하다. 플란팅가는 픽션 필 름에서 현실에 관한 주장은 화면에 보여지는 상황(현상)과 현실세계 사이의 비유나 유사성에 기초하고, 다큐멘터리의 현실 주장은 화면에 보이는 현상과 현실세계의 직접적 연관성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픽션은 외관상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는 현실(verisimilitude, 핍진 성)’에 기초하여 진실을 주장하고, 다큐멘터리는 현실 속에 발생했다는 신빙성(authenticity, 현실정합성)에 기초하여 진실을 주장한다는 것이 다(Plantinga, 2005). 같은 맥락에서 니콜스는 “픽션의 리얼리즘이 은 유적이라면, 다큐멘터리의 리얼리즘은 환유적이다”(1991, p.28)라고 말했다. 플란팅가(2005)에 의하면,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담론은 다큐 멘터리를 지표적 기록으로 보는 시각(DIR, documentary as indexical record)과 현실에 대한 주장(DA, documentary as assertion)으로 보는 시각으로 나뉜다. DIR는 ‘보여 줌(showing)’과 시각적 기록을 중시하는 다큐멘터리이고, DA는 ‘말하기(saying)’ 즉 설명과 사회적 주장을 중시 하는 다큐멘터리다. DIR에서 지표적인 증거적 가치의 핵심 요소는 사진적 매체(사진, 동 영상)다. 그러나 사진 매체를 통한 ‘보여 주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큐멘터리는 ‘주장하려는’ 내러티브를 지지하기 위해 영상 이미지를 그
증거(흔적)로 사용하는 필름으로 정의된다. 사실상 대부분의 다큐멘터 리는 ‘보여 주기’와 ‘말하기’의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다큐멘터리는 일종의 ‘주장된 사실적 재현(asserted veridical representation)’이라고 볼 수 있다(Plantinga, 2005, p.111). 어떤 의미에서 다큐멘터리는 ‘보여 주기’의 증거적 가치와 투명성 이데올로기에 의존해서, ‘말하기’의 수사학적 가공 과정을 은폐하기도 한다.2) 물론 어떤 ‘보여 주기’ 행위도 순수하고 투명한 현실의 기록은 아 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본 특별한 시선의 결과이며, 동시에 수용자에 게 어떤 제안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해석적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또 한 모든 해석이 동등하게 타당한 것은 아니며, 때로는 그 해석을 정당화하 기 위해 의도적으로 증거의 한 측면을 감추거나 강조할 위험성도 있다. 특히 증대되는 디지털 유연성(digital malleability)으로 사진 이미지는 더 이상 ‘진짜임’을 보장하는 지표적 증거 가치를 상실해 가고 있다. 특 수효과, 디지털 조작, 시뮬레이션 등으로 얼마든지 ‘현실처럼 보이는’ 영 상을 만들어서 보여 줄 수 있다. 따라서 다큐멘터리 진실 주장의 타당성,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외부 현실에 대한 충실성 등이 오히려 중요해지고 있다.
2)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77)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듯한 사진의 순수
한 외연적(donotative) 지위가 사진의 함축적(connotative) 차원을 감추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에는 ‘코드 없는 메시지(단순한 현실 반영)’와 ‘코드 있는 메시지(예술적 구성)’가 공 존한다. 사진의 패러독스는 함축적 메시지가 바로 외연적 차원인 ‘코드 없는 메시지’의 기 반 위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p.19). 분명 인위적으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 세 계에 대한 투명한 지시성(referenciality)을 강조하면서 강력한 현실성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진적 패러독스는 다큐멘터리 리얼리즘에도 작동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논쟁 이슈 다큐멘터리의 정의와 개념에 관한 많은 논쟁들이 결국 세 가지 차원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① 다큐멘터리 형식·스타일(사실성과 허구성의 혼합과 드라마화), ② 다큐멘터리 시점(객관성과 주관성의 관점), ③ 다큐멘터리 목적과 주제(공적·사회적 영역과 사적·개인적 영역)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세 가지 문제 가운데 현실적으로 가장 쟁 점이 되는 것이 바로 형식과 스타일상에서의 연출과 재연, 현실과 허구 의 상호 침투에 관한 논란이다.
연출과 재연
다큐멘터리에서의 연출, 재연, 드라마화와 같은 형식·스타일의 문제 는 다큐멘터리의 기본 정의에서 ‘창조적 가공’과 연관된 중요한 이슈다. 과연 어떻게 다큐멘터리의 실제의 진실성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내러 티브적 구성과 예술적 표현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초기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연출이나 재연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했고 이에 대한 거부감이나 문제의식도 그리 크지 않았다. 플래 허티의 <북극의 나눅>(1922)도 오늘날 다큐멘터리의 신빙성 기준에서 본다면 논쟁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었다. 영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재 연(reenactment)’라는 주장이 나올 만큼 연출이 많이 개입되었던 다큐 멘터리였다.3)
3) <북극의 나눅>에는 이누이트(Inuit)족의 전통적 생활 양식을 보여 주기 위한 여러 연출
장면들이 있었다. 전통적인 이글루, 용감한 이누이트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위험하게 작살로 바다표범을 사냥하는 장면 등이다. 그러나 그 당시 이런 연출들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들어 촬영 과정에서 필름메이커와 대상과의 지나친 협력 관계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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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북극의 나눅>(로버트 플래허티, 1922), 바다표범을 사냥하는 나눅
현실적으로 그 시기에는 감독의 개입(engagement)이나 연출 없이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매우 단순해 보이는 최초의 사실 기록 필름인 뤼미에르(Lumiere) 형제의 <퇴근하는 노동자들> (1895)에도 연출이 개입되었다. 평소와 달리 말끔하게 차려 입은 노동 자들과 같이 있는 개의 모습은 촬영과 편집상에 일종의 셋업(set-up) 작 업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이것은 단순히 거대한 필름 카메라의 존재 때 문만은 아니다. 삶을 이야기하는 작업에는 언제나 개입이 따른다. 마찬
재연의 문제 등에 대한 윤리적 이슈가 제기되었다. 나눅은 필름 촬영 당시 자신의 일상생 활을 제시하기보다는, 나눅이라는 캐릭터와 역할을 구현해 냈다. 다시 말해 나눅은 서구 인들이 품고 있는 이누이트족의 독특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해 낸 것이다. 그것은 대 부분 플래허티의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이 스토리는 이누이트족의 삶에 대한 신빙성 있는 재현이라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적 가치가 충분하다(Nichols, 2010).
가지로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도 현실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개입과 연출 혹은 변형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다큐멘터리 역사 초기의 재연이나 극화에 대해 유연한 인식을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1948년 6월에 열린 ‘다큐멘터리 월드 유니온(World Union of Documentary)’ 회의에서는 “다큐멘터리는 사실적 촬영, 혹은 성실하고 정당화될 수 있는 재구성으로 해석된 리얼리티를 셀룰로이드 위 에 기록하는 모든 방법”(Jansen, 2004)이라고 선언했다. 문제는 ‘성실하고 정당화될 수 있는’ 재구성의 기준이다. 실제 인물이 아닌 배우를 통한 재구 성 혹은 재연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① 가능한 것을 촬영(filiming the possible), ② 인위적인 상황을 기록(documenting the artificial), ③ 카메 라 앞에서 ‘상상된’ 행위를 연기(performing the imagined actions)하는 행위까지 포함될 수 있다.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마지막 유형인 ‘상상적’ 행위를 연기하는 경우다. 즉, ‘리얼리티를 연기하는 것(staging reality)’ 인데, 이런 종류의 재구성은 윤리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때로 다큐멘터 리의 지위를 무효화한다(Winston, 2013, p.8). 그러나 재연을 사용한 다큐멘터리에도 관객들과의 일종의 ‘진실의 계약(프로토콜, protocol)’이 존재한다. 재연이 현실 세계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단서들이다. 대부분 재연 장면의 앞뒤에 사건 당시의 역사적 현실 세계 속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구두 증언이 사용된다. 여기 서 증언은 증거적 지위를 갖고 재연된 장면에 ‘정박(anchoring)’된다 (Nichols, 1994, p.4). 예를 들면, 가장 예술적이고 진보적 재연 다큐멘터 리로 손꼽히는 <가늘고 푸른 선(Thin Blue Line)>(Errol Morris, 1988)에 서는 할리우드 필름 느와르풍의 ‘재연’ 장면들이 증거와 증언들과 교차 되어 보여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테이프 리코더에서 흘러나오는 ‘진짜’ 범인으로 추정되는 증인의 목소리는 이전의 재연을 통해 보여 준
감독의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최근 들어 재연은 전반적 영상 문화의 스펙터클화 경향, 표현의 다 양화 경향과 더불어 다큐멘터리에서 일종의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연출과 극적 재연을 사용했느냐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사 용하는 제작자의 태도와 의도다. 또한 재연이 수용 경험에 미치는 영향 도 중요하다. 효율적으로 잘 사용된 재연 장면은 수용자들에게 현실 세 계에 대한 관심과 개입을 불러일으킨다(LaMarre & Landreville, 2009). 그러나 재연이 오히려 수용자들에게 현실을 공감하고 연상할 수 있는 상상력을 축소시킬 수도 있다. 불필요한 재연의 사용이 다큐멘터리적 가치를 훼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큐멘터리는 불변하는 영화제작 양식이 아니다. 다큐멘터리와 관 련해 유일하게 변치 않는 것은 다큐멘터리가 현실 세계와 실제 인물들 에 대해 어떤 주장이나 진실을 요청하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 미에서 다양한 허구적 장치(재연, 더 나아가 애니메이션이나 디지털 시뮬레이션)의 사용 그 자체가 다큐멘터리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허구적 스타일을 사용한 의도와 맥락에 대한 고려 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Ward, 2011, p.17). 즉, 논픽션과 픽션은 텍스트의 표면적 구조가 아니라 텍스트가 무엇에 헌신하는지에 따라 구 분된다는 것이다(Carroll, 1996, p.287). 그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것은 제작자, 제작 대상, 수용자 사이의 진실 추구 와 현실 근거성에 대한 암묵적 계약이다. 그리고 그 계약은 바로 감독의 의도와 충실한 맥락성에 대한 수용자의 신뢰에 기초하고 있다.
현실과 허구의 상호 침투
재연이나 드라마 다큐는 픽션 재구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현실 세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다양한 단서(증언, 기록물 삽입)를 제시한다. 문제는 ‘픽션화된’ 부분과 실사 장면의 구분이 아예 사라져 버리고 있는 회색 지 역이다. 즉, 다큐멘터리라고 합의된 영화에서 픽션물을 연상시키는 다 양한 기법과 관습을 사용하기도 하고, 반대로 픽션물에서 거친 현실감 을 강조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촬영 스타일이나 내레이션, 대사들을 의 도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현실과 허구의 의도적인 상호 침 투다. 가장 대표적이고 충격적인 사례가 바로 <블레어위치(Blair Witch)> 와 같이 완벽하게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픽션물이다. <블레어위치> 가 주는 복잡한 경험-분명 다큐멘터리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 하고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는 경험-은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결정하 는 것이 텍스트가 아닌 수용자의 기대와 믿음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무차별적 혼합 경향에 대해 다큐멘터리 전 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일반적으로 포스트모던적 시각에서는 이 렇게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 오히려 시대적 정서와 경 험을 잘 드러내는 진보적 양식이라는 견해도 있다. 브루치(Bruzzi)는 연출된 것(what’s staged)과 현실인 것(what’s real) 사이의 동요를 가 진 필름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2010, p.xv). 이를 통해 관객이 ‘현실 성’이 구성되는 인위적 과정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라노비치(Rabinowitz, 1994) 역시 후기 탈산업자본주의를 살 아가는 우리의 현재를 적절히 표현하기 위해 포스트모던 재현 모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의 지나친 재스타일링(restyling)이 가져올 광범위한 정치문화적 결과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선이 많다. 다큐멘터리 제작 자 체의 의미를 무효화하는 지나친 혼종화 경향도 우려의 대상이다. 극단 적인 경우가 다큐멘터리 제작 관행 자체를 조롱하는 모큐멘터리 (mockumentary)다. BBC의 <스토리빌(Storyville)> 제작자인 닉 프레 이저(Nick Fraser)는 “물론 모든 재현은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인공물 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재현이 허위이고, 사실과 픽션을 구별 하는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2013, xiii)라고 말한다. 지나친 혼종화는 일종의 인식론적 허무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는 것 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첨단 디지털 기술 환경 속에서 현실과 허구 의 상호 침투 경향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 다큐멘터리의 현실성을 그 외양적 스타일만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최종적 인 다큐멘터리 경험은 카메라와 그 카메라 앞에 놓인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바로 텍스트와 보는 이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다큐멘 터리의 의미는 텍스트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를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전제(assumption), 지향점, 시청 방식에 의해 결정 되는 것이다. 다이 본(Dai Vaughan, 1999)은 다큐멘터리 경험에서 관객 의 지각 영역을 강조하면서, 어떤 영화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것은 우 리가 그것을 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점 점 더 수용자의 경험과 인식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다.
다큐멘터리 재성찰 다큐 상식의 재이해
다큐멘터리를 재정의하기 위해 다큐멘터리와 리얼리티와 관련된 상식 적이고 일반적인 가정에서 출발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빌 니콜스 (Bill Nichols)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매우 상식적인 가정에 대한 재검토 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다음과 같이 재정의한다(2010, pp.6∼14). 첫째, 다큐멘터리는 ‘리얼리티’에 관한 것이다. 그것들은 ‘실제로 발 생한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많은 픽션 필름도 실제 일어 난 일(실화)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므로 다큐멘터리의 정의는 다음과 같이 수정될 수 있다. “다큐멘터리 필름은 실제 상황과 사건에 관해 이 야기하고, 알려진 사실을 존중한다. 다큐멘터리는 새로운, 증명될 수 없 는 것을 소개하지는 않는다. 역사적 세계에 대해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 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말한다.” 즉, 다큐멘터리는 ‘입증할 수 있는 증거’ 를 제공하는 알려진 사실들을 존중한다. 둘째, 다큐멘터리는 실제 인물에 관한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실제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현실 세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 한다. 다큐멘터리는 어떤 ‘역할’을 연기하지 않는 실제 사람에 관한 것 이다. 그러나 물론 픽션물에서의 연기와는 다르지만, 다큐멘터리에 나 오는 실제 사람도 자기 자신을 ‘연기’하거나 혹은 보여 준다. 사람들은 현실 속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신의 행위를 변형, 조절 한다. 더욱이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고 있는 것을 아는 이상, 우리는 우 리 자신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와 같이 출연자에게 제작진이 부여한 역할(캐릭터)을 수행 혹은 연기하도 록 요구하는 사례들은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이 가정은 다음과 같이
수정될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큐 제작자가 고안 해 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전시(display)하 고 연기한다. 셋째, 다큐멘터리는 실제 현실 세계에서 발생한 것에 관해 스토리 로 말한다. 앞서 논의했듯이 ‘창조적 가공’은 스토리텔링을 포함한다. 다큐멘터리에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광범위하게 인 정되고 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은 어떤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그 기준은 사실적 정확성, 역사물을 지배하는 해석적 일관성의 기 준이다. 이런 타당성과 일관성만 가진다면 많은 다큐멘터리가 픽션물 에서처럼 놀라운 스토리를 들려줄 수 있다. 이런 논의들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는 다음과 같이 재정의될 수 있다. 다큐멘터리 필름은 실제 상황과 사건에 관해, 자기 자신을 타당성 있는 스토리를 통해 전시하는 실제 사람(사회적 행위자)들을 통해 제시 된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분명한 시선을 가지고, 비유나 상상이 아니 라 입증된 사실에 근거해 역사적 세계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 는 방식으로 구성한다(Nichols, 2010, p.14).
다큐 담론의 주체들
다큐멘터리는 한정되고 명확한 경험적 카테고리가 아니다. 특히 최 근과 같은 장르 혼합과 다양한 미학적 실험(애니메이션, 재연, CG 이 미지) 속에서는 다큐멘터리를 단순히 텍스트적 스타일이나 제작자의 의도만으로 정의내리기는 더욱 어렵다. 실제로 무엇이 다큐멘터리인가 하는 것은 관객의 경험과 다큐멘터리에 대한 일상적 담론 과정에서 결 정되는데, 이 과정에서 다큐멘터리 경계는 희미하고 다양하다(Eotzem, 1995, p.82).
그렇지만 여전히 한 시대와 사회에서 무엇이 다큐멘터리인지 아 닌지, 더 나아가 무엇이 ‘적절한’ 다큐멘터리인지를 협의하는 담론적 과정 이 존재한다. 이 담론 작업에 참여하는 주체가 다큐멘터리 제도·기관, 제작 공동체, 텍스트의 집합체, 그리고 수용자다.
다큐 조직/제도
다소 순환론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다큐멘터리란 결국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조직과 기관의 생산물”이다. 만약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 제 작하는 기관에서 ‘이것이 다큐멘터리다’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것이 다 큐멘터리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제작과 관련된 기관들뿐 아니라, 그 배급과 상영자도 다큐멘터리 필름의 유통을 돕는 기능을 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디스 커버리채널, 최근 들어서는 넷플릭스나 유튜브도 다큐 배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밖에도 주요 다큐 제작자에게 전문적 지원을 하는 기관들도 있다.4) 이들은 자신들이 지원하는 작품들에 일정한 기준과 관 례들을 암암리에 강요하며, 그 목적과 기준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서 서히 변화해 가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제작 공동체
사실 우리가 다큐멘터리라고 부르는 것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 이 무엇을 만들고 싶어 하는가, 무엇에 가치를 두는가에 따라 변화한다.
4) 대표적 기관은 International Documentary Association, European Documentary Film Institute, Corporation for Public Broadcasting, British Film Institute(BFI), Foundation for Independent Film and Video 등이다.
다이렉트 시네마나 시네마베리테 운동도 만일 다큐 제작 공동체가 인정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실패한 다큐멘터리적 변형으로 사라질 수도 있 었을 것이다. 제작 공동체에서 승인되면서 이 다큐들은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다큐멘터리 혁신물로 받아들여졌다. 중요한 사실은 다큐멘터 리의 역사는 변칙적, 개방적, 역동적인 형식의 변화이고, 다큐 제작 공 동체는 바로 이러한 역동적 변화에 크게 기여해 왔다는 점이다. 다큐 제작 공동체가 모여 스스로 다큐멘터리에 관한 일종의 계율과 평가 기준을 공유하는 장소가 바로 국제적인 필름 페스티벌이다. 대표 적인 국제 다큐 페스티벌은 주로 유럽과 북미에서 개최되지만, 최근 들 어서는 아시아 지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다큐 페스티벌에서는 무수 한 실험적 다큐 프로젝트 가운데서 진정으로 대담하고 혁신적인 작품을 가려내는 일종의 ‘여과’ 작업을 수행하기도 한다. 필름 다큐뿐 아니라 방 송, 인터넷 다큐에 대한 평가도 이뤄지고 있다. 다큐 관련 저널과 온라 인 포럼에서 실무자들은 다큐멘터리 관련 문제점들을 논의한다.5) 다큐 제작자들이 공유하는 목적 의식, 핵심 가치, 평가 기준 등은 다큐멘터리 영역의 경계를 확장, 재공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텍스트 집합체: 관습과 양식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의 장르 관습도 여러 단계와 시기를 통과하면서 조금씩 변화해 왔다. 또한 각기 다른 국가와 지역에서는 그 들만이 선호하는 다큐멘터리 전통과 스타일이 있다. 유럽과 라틴아메
5) 다큐멘터리 관련한 전문학술지로는 Documentary, Dox, Studies in Documentary Film
등이 있으며, 영국영화위원회(BFI)에서 발간하는 Sight & Sound, 현업 실무자를 위한 RealScreen도 있다. 다큐멘터리 학자와 제작자 모임인 ’Visible Evidence Conference’에서
발행하는 콘퍼런스 결과물도 유용한 전문 자료다.
리카의 다큐멘터리는 대체로 주관적이고 공개적인 수사학적 형식을 선 호한다. 한편 영국과 북아메리카 다큐멘터리스트들은 객관적이고 관찰 적인 형식을 선호한다. 다큐멘터리는 또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1930년대의 많은 다큐멘터리는 보이스오버 해설과 더불어 경제 불황 시기의 감성을 공유하고 있으며, 주로 사회적, 경제적 이슈가 강조되었다. 정치 문화적 격동기인 1960년대에는 보이스오버 해설이 없는 탈권위주의적 다이렉 트 시네마류의 다큐멘터리가 등장했다. 또한 다양한 기술적 혁신(경량 의 핸드헬드 카메라와 동시녹음 기술)은 새로운 문화적 양식과 스타일 적 실험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런 배경에서 사회적 행위자 를 일상생활 속에서 촬영하면서 상호교류적 반응을 강조하는 시네마베 리테식 다큐도 등장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아카이브 필름 자 료나 인터뷰를 통해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하거나, 현재 이슈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양식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적 차별성과 시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에 는 몇 가지 지속적이고 주도적 관습과 양식들(modes)이 존재한다. 대 표적인 양식은 설명적(expository), 관찰적(observational), 상호작용 적(interactive)[참여적(participatory)], 그리고 성찰적(reflexive), 시적 (poetic) 양식이다(Nichols, 1991; 2010).6) 이러한 양식들은 다큐멘터 리 제작에서 일종의 표준적 인벤토리로 작용하면서 다큐멘터리 장르 정 체성을 논의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6) 다큐멘터리의 여섯 가지 양식에 관해서는 2장을 참조할 것.
수용자
다큐멘터리를 정의할 때 최종적인 요소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수용자의 가정(assumption)과 기대다.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픽션물에서 잘 나 타나듯이 다큐멘터리의 경계는 유동적이고 마치 카멜레온 같은 외양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어떤 영상물이 다큐멘터리인가 아닌가를 결정하 는 것은 필름의 맥락이나 텍스트 구조만큼이나 보는 이들의 마음과 인 식에 달려 있다. 수용자에게 다큐멘터리라는 감각을 만들어 내는 기본 가정은 다 큐멘터리가 실제 세계, 실제 사람, 실제 발생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란 점이다. 이것은 사진 이미지와 현실세계와의 지표적 연관성에 관한 믿 음에 기초하고 있다. 아무리 디지털 영상 시대라고 해도 영상 이미지는 여전히 강력한 증거적 힘을 가진다. 수용자들은 자신이 눈앞에서 보는 것과 카메라 앞에서 발생한 것 사이의 지표적 결합을 신뢰하는 동시에, 이 결합이 수사학적으로 구성되어 세계에 대한 논평과 시각으로 변형되 는 과정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수용자는 역사적 리얼리티의 인식과 그것의 ‘재현’에 대한 인식 사이의 진동(oscillation)을 예상한다. 이 예 상과 기대가 다큐멘터리에 대한 수용자의 관여를 다른 장르에의 관여와 구별시킨다(Nichols, 2010, p.36).
다큐멘터리 재정의
다큐멘터리라는 개념은 그 기원부터 불안정한 것이었다. 끊임없이 변 화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경계선상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큐멘터리 영역이 하나의 한정되고 명확한 범주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다큐 멘터리를 스타일이나 형식상의 공통 요소를 갖는 하나의 장르가 아니 라, ‘리얼리티’에 접근하고 이를 표현하는 하나의 ‘접근 방법’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적절할 수도 있다. 유동적인 다큐멘터리 개념을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적 아이디어를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결국 ‘리얼리티’와의 연관성이다. “전통적인 다 큐멘터리의 경계를 뛰어넘는 매우 다른 맥락과 전통의 필름이 나타났 다. 매우 광범위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필름은 매우 독창적 인 방식으로 리얼리티와 연결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Danish Film Institute, 2000). 이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가 ‘리얼리티’와 연결되는 방식은 변화하는 미디어 기술 속에서 한없이 다원화될 전망이다. 기존 의 다큐멘터리 논쟁의 주요 관심사는 실제 세계의 리얼리티의 재현과 교섭(negotiation)의 문제였다(Bruzzi, 2000; Nichols, 2001; Winston, 1995). 이는 기본적으로 제작적 측면과 텍스트적 구성 차원의 문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기존의 텍스트나 제작자 중심의 다큐멘터리 논쟁 을 수용자 차원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Arthur, 2005; Vaughan, 1999). 다큐 텍스트의 혼종성과 스타일적 다양성이 극대화되면서, 다큐멘터리 텍스트나 제작 맥락만큼이나 수용 자의 전제와 인식, 지향점이 다큐멘터리 경험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 문이다. 즉, 어떤 영상물이 다큐멘터리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제 작자의 의도와 현실 근거성에 대한 수용자의 믿음과 인식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온라인의 새로운 형태의 다큐멘터리는 이전의 전통적 다큐멘터리와는 전혀 다른 리얼리티 경험을 제공하면서, 다큐멘 터리의 전통적 인식론을 뒤흔들고 있다. 20세기 다큐멘터리는 관찰자 가 카메라를 통해 세상의 리얼리티를 고정시키고, 세상에 관한 객관적 이고 확고한 지식을 만들어 낸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온
라인 다큐의 새로운 인식론은 전적으로 상대적이고 관계적이다. 이것 은 모든 지식은 특정한 구체화된 관점에 의해 위치 지어진다는 것을 인 정하고, 온라인 다큐의 현존성은 이러한 다중관점적, 관계적 지식의 상 징적 표현이 된다(Dovey & Rose, 2013, p.367). 다큐멘터리를 재정의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은 결국 다큐멘터리를 기존의 유일한 정의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열린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들로 나타나고 있다(Plantinga, 1997; Ward, 2005; Nichols, 2010). 니콜스(2010)는 다큐멘터리가 하나의 유일한 정의에 따르지 않는 것을 유감스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유동성을 축하할 만한 일로 받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동성은 역동적이고 진화하는 형식을 만들 고, 최근 다큐멘터리의 놀라운 활력과 인기는 유동성과 창의적인 정신 이 다큐멘터리를 더욱 흥미진진하고 적응성 있는 예술적 형식으로 변신 시키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p.143). 다큐멘터리 표현 양식과 내용의 차이와 변화는 계속 이뤄질 것 이다. 그리고 무엇을 ‘다큐멘터리’로 규정할 것인지, 무엇을 ‘다큐멘터 리 프로젝트’로 간주할지는 끊임없이 새로운 지평 위에서 형성되는 제 작자, 수용자, 텍스트 집합체 간의 담론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지평은 새로운 기술 가능성, 예술적 표현, 그리고 리얼리티의 경험 방 식으로 끊임없이 흔들리고 또 재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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