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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지만 위험한 생각의 지름길 열심히 따져 보지만 결론은 딴판이다. 이성에 의한 추론이 아니라 경험과 직관으로 판단한다. 이것이 휴리스틱, 인간의 사고 전략이다. 왜 그럴까? 판단이 빠를수록 위험은 낮아지고 인지 자원은 더 많이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한 길 앞에>, 케이 세이지, 1940


인텔리겐치아 2617호, 2015년 6월 3일 발행

윤선길이 쓴 ≪휴리스틱과 설득≫

고급 주방용품 메이커인 윌리엄 소노마는 멋 진 제빵기를 279달러에 시판한 적이 있다. 그 후 좀 더 큰 모델을 429달러에 내놓았다. 마켓 이 어떻게 반응했을까? 429달러짜리 제빵기 는 시장에서 완전히 실패했고 279달러짜리 제빵기의 판매는 두 배로 상승했다. - ‘맥락 효과’, ≪휴리스틱과 설득≫, 59쪽.


정말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소노마 제품의 품질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 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279달러’라는 가격 이 조금 비싸 보였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구매 를 주저했다. 품질과 가격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매출이 2배로 뛰었나? 더 비싼 신제품이 나왔기 때문이다. 크기만 조금 크고 기능은 비슷한 429달러짜리 제품 이 나오자 279달러는 더 이상 비싼 가격이 아 니었다. 그럼 429달러짜리 신제품은 왜 만들었나? 소비자가 279달러를 비싼 값이 아니라고 생


각하게 만든 미끼였다. 미끼는 어떻게 소비자의 생각을 바꾼 것인가? 같은 값이라도 비교 대상에 의해, 또는 맥락 에 따라 더 싸게 지각된 것이다. 279달러는 그 자체로는 비싼 값이었지만 429달러와 비 교하면 싼 값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맥락은 우리에게 지각 편향을 일으키는 휴리스틱으 로 작용한다. 휴리스틱이 뭔가? 논리 추론이 아니라 경험, 직관 사고를 이용 해 단순하고 빠르게 판단하는 인간의 사고 전 략이다. 우리의 판단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 는 편향이기도 하다.


좀 더 간명하게 말하면 뭔가?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생각의 지름길에는 어떤 것이 있나? 비싼 제품이 좋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휴 리스틱의 영향이다. 높은 가격이 높은 품질 을 대표한다고 보는 태도다. 왜 인간은 판단 과정에 휴리스틱을 이용하는 가?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래 인간은 주변 환경을 분석하기 위해 이성적 이며 논리적으로 시간과 인지 노력을 투여하 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인지적


구두쇠에 가깝다. 인지적 구두쇠란? 인지 자원을 함부로 소모하지 않는다. 기회 만 되면 언제라도 힘든 사고 과정을 피하려는 성향이다. 원시 조상으로부터 전해진 생존 전략이다. 휴리스틱이 생존 전략인가? 그렇다. 수십만 년 전부터 인간은 자신을 둘 러싼 무수한 위험과 위협으로부터 생명을 지 키기 위해 신속한 판단과 선택이 필요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간편하고 신속 하게 효율적 결정을 하고, 남는 인지 자원은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를 잠재 위험에 대처하


기 위해 보존했다. 정보 시대에 인지 구두쇠가 의미 있는가? 소비자는 복잡한 매체 환경에서 정보 과부하 시대를 살아간다. 판단 대상이 더 많아졌다. 실제로 일상 의사 결정에 미치는 휴리스틱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더 강력하고 보편적이다. 우리 일상에서 휴리스틱은 언제, 어디서 볼 수 있는가? 정치, 문화, 광고, 마케팅에서 대중 설득 전 략으로 광범하게 이용된다. 위의 인용 사례 가 바로 그런 것이다.


설득 수단으로서 휴리스틱의 장점은 무엇인 가? 마케팅에서 메시지로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휴리스틱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더 효 과가 높다는 것은 오랫동안의 경험에 의해 검 증되었다. 메시지보다 휴리스틱이 더 효과가 높은 이유 가 뭔가? 휴리스틱 단서를 제공하면 사람들은 그 방향 으로 움직이게 된다. 사실은 설득된 행동이 지만 설득된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행동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례가 있나? 담배 회사가 화학 첨가물이 없는 ‘천연’ 재료 로 만든 담배 브랜드를 출시해 성공한 예를 들 수 있다. 천연 재료로 제조한 담배가 몸에 덜 해로운 것도 아닌데 ‘천연’이라는 표현이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력 있는 단서로 작용한 것이다. 휴리스틱의 단점은 무엇인가? 휴리스틱이란 다른 말로 우리가 갖고 있는 고 정관념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휴리스틱에 근거한 판단에 대해 갖는 확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지나친 집착을 초래하기도 한다. 선 전·선동가들의 설득 도구로 다양하게 널리 이용되기도 한다.


이 책, ≪휴리스틱과 설득≫은 무엇을 다루는 가? 휴리스틱의 개념과 의미를 설득 관점에서 간 결하고 쉽게 설명한다. 여덟 가지 유형별 특 징과 사례를 함께 소개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선길이다. 한신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홍 보학부 교수다.


빠르지만 위험한 생각의 지름길 열심히 따져 보지만 결론은 딴판이다. 이성에 의한 추론이 아니라 경험과 직관으로 판단한다. 이것이 휴리스틱, 인간의 사고 전략이다. 왜 그럴까? 판단이 빠를수록 위험은 낮아지고 인지 자원은 더 많이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한 길 앞에>, 케이 세이지, 1940


휴리스틱과 설득 윤선길 지음 설득 커뮤니케이션 2015년 5월 20일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116쪽 9,800원


작품 속으로

휴리스틱과 설득


설득의 세계와 휴리스틱

우리 사회에는 항상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상업적이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때로는 개인적 인 목적을 위해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한다. 커뮤니케이션 의 수단과 방법이 날로 발달함에 따라 설득을 이용하는 사 람이나 관련 직업의 수도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마 케터, 광고인, 홍보 담당자, 정치인, 변호사, 의사, 정당, 지방자치단체, 대학, 이익단체, 시민단체는 물론 친구나 부모까지, 설득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설득의 기술을 필요로 하지 만 설득은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자유의 지가 있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생각이나 선택을 강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데도 역설적 으로 사람들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나 대안을 평가하는 방 식에서 항상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하면, 사 람들이 일상에서 선택하는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의미다. 그 선택이 무엇이건, 선택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판단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판단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의사 결정 과정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주관에 따라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사람들은 “나는 똑똑하고 이성적이기 때문에 얄팍한 광고 수법이나 정치인들의 속셈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고 믿 는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허망하다. 우리는 항상 자신도 모르게 수많은 설득 메시지와 설득 전략에 영향을 받고 있 는데, 그런 환경에서 판단한다는 것을 단지 깨닫지 못할 뿐이다. 우리의 판단과 선택이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일상에서 일어 나는 대부분의 의사 결정이 편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의사 결정 시 의존하는 편향을 ‘휴리스틱’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우리의 판단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휴 리스틱에 관해 알아보고자 한다. 휴리스틱이라는 낯선 개 념의 본질, 휴리스틱이 효과를 미칠 수 있는 인지적 배경 과 설득 모델, 그리고 휴리스틱의 유형별 특징과 사례 등 을 살펴볼 것이다.


휴리스틱, 생각의 지름길 비행기를 타고 가다 사고로 죽을 가능성보다 자동차 사고 로 사망할 가능성이 실제로는 세 배나 더 높다. 이처럼 자 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보다 더 위험 한 일인데도 운전 공포증을 겪는 사람은 극히 드문 반면 비행 공포증은 대부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을 가능성과 상어 때문에 죽을 가능성 중에서 어떤 가능성이 더 클까? 대부분은 상어 때문에 죽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답할 것이 다. 하지만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을 가능성이 상어 때문 에 죽을 가능성보다 30배는 더 높다고 한다. 사람들은 왜 자동차 운전보다는 비행기 추락을, 비행기 추락보다는 상어 관련 사고의 가능성을 더 높게 판단했을 까? 그것은 사람들이 마음에 쉽게 떠오르는 일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많이 보고 들은 것일수록, 최근에 경험한 것일수록, 생생한 메시지 일수록 더 잘 회상되는 경향이 있어 기억에 왜곡이 생길 수 있다. 기억이 사실과 다를 수 있기에 현실에서 일어나 는 빈도나 확률도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자동차, 비행기, 상어 사고와 관련된 기억들은 매스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매스미디어가 일상적인 사건보다는 특이한 사건을 더 집


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사고 장면을 더 쉽 게 떠올린다. 즉, 쉽게 회상되는 사건일수록 그런 일이 더 많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향 때문에 오류가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빈도나 확률을 잘못 판단하는 원 인은 사람들이 ‘휴리스틱’을 사용해 판단했기 때문이다. 휴리스틱을 가장 처음 연구한 트버스키와 카너먼 (Tversky & Kahneman, 1974)은 휴리스틱을 이렇게 설명 한다. “사람들은 선거의 결과, 피고의 유죄 여부나 달러의 미래 가치 같은 불확실한 사건들의 가망성(likelihood)에 관한 결정을 신념에 근거해 판단한다. 이런 신념들은 보 통 ‘내 생각에는…’, ‘가능성은 …’, ‘그 일은 일어날 듯하지 않은데…’ 등으로 표현된다. 불확실한 사건에 관한 신념 은 승산(odds)이나 주관적 확률과 같은 숫자 형태로 표현 된다. 무엇이 그런 신념을 만드는가? 사람들은 불확실한 양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사람들은 확률 평가나 가치의 예언 같은 복잡한 과제를 매우 단순한 판단 과정으 로 만드는 소수의 휴리스틱 원리들에 의존한다. 일반적으 로 이 휴리스틱들은 매우 유용하지만, 때로는 심각하고 체 계적인 오류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휴리스틱을 이용해 판단하는가? 판단은 상당히 복합적인 과제다. 어떠한 일이 일어날 빈


도나 확률을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상당한 양의 정보를 수 집하여 분석하고 논리적인 추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사 람들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논리적 사고 체계보다는 경험에 기초한 직관적 사고 체계, 즉 단순하고 빠른, 생각 의 지름길을 이용해 의사 결정을 하는 경향이 있다. 더군 다나 불확실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의사 결정해야 하는 조 건에선 생각의 지름길이 더욱 필요하다. 이와 같은 의사 결정의 단순화 전략 또는 생각의 지름길이 바로 휴리스틱 (heuristic)이다. 우리말에서는 휴리스틱이 간편법, 추단 법, 어림법, 주먹구구법, 발견법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되지 만, 여기서는 원어를 살려 ‘휴리스틱’이란 용어를 사용한 다. 그것이 혼동을 막고 본래의 의미를 공유하는 데 효과 적이기 때문이다. 휴리스틱에 의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제한된 인지능력 으로 우리는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고자 인지 자원을 절약 하려는 인지적 구두쇠 성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 때문에 인간이 휴리스틱에 의존해 의사 결정하는 성향은 오래된 생존 습관이 되었다. 물론 휴리스틱이 본질상 편 향이기에 결과적으로 판단의 오류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다는 것과 신속하고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인류가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 고 생존할 수 있는 혜택도 있다. 휴리스틱의 개념은 본래 심리학에서 사람들의 의사 결 정 방법을 연구하는 개념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많은 분 야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특 히 행동경제학, 경제 커뮤니케이션, 소비자 행동, 경영과 학, 컴퓨터 사이언스, 인공지능, 컴퓨터 디자인, 인터페이 스, 헬스 커뮤니케이션, 정치 분야의 연구에서 휴리스틱 을 활발히 응용하고 있다. 그 밖에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서도 이 개념을 통해 많은 설득 현상을 설명하려는 노력이 있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설득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휴리스틱의 개념이 유용하게 활용 될 여지가 많다.

사전 설득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에서 논쟁이 벌어지는 환경이 중 요하다고 했다. 이 환경은 마치 무대와 같아서 상황을 자 신에게 유리하게 조성할 수 있으면 전술적으로 유리한 위 치에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현 대의 설득 개념으로 보면 ‘사전 설득’에 해당된다. 즉, 상황 을 장악하고 설득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시키는 것을 말한다. 사전 설득이라는 것은 이슈를 구성하고 결론을 프레이 밍(framing)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슈나 결론을 어떻게 구성하고 프레이밍하느냐에 따라 대상이나 사안을 달리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슈를 규정하고 논의해 나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준비하게 되면, 커뮤니케이터는 사람들 의 인지 반응에 영향을 끼쳐 설득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도 동의를 얻어 낼 수 있다. 시바스리갈 위스키의 광고 문안 가운데 많은 사람이 좋 아하는 카피가 있다. “주인이 보면 벌써 반병이 비었고, 손 님이 보면 아직 반병이 남았다.” 똑같은 반병이 남았지만, 그것을 얼마 남지 않아 안타깝게 보는 주인의 시각과 아직 도 많이 남아 있어서 흐뭇해하는 손님의 시각이 있다. 마 찬가지 원리로 사전 설득도 동일한 대상이나 사안을 자신 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지각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 다. 사전 설득에는 언어적 수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지각 원리들이 활용된다. 예를 들면, 같은 사람이라 도 키 큰 사람하고 서 있으면 작아 보이지만, 작은 사람하 고 있으면 키가 커 보인다. 그래서 마케터들은 자사 상품 이 돋보일 수 있도록 주변에 미끼 역할을 하는 제품을 함 께 진열하기도 한다.


휴리스틱은 사전 설득의 도구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휴리스틱이 원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설득 환경을 준비하는 것이다. 어떤 브랜드가 경쟁 브랜드보다 더 잘 기억되도록 만든다든지, 어떤 상표를 보면 즐거운 보상이 기대되도록 상표에 감정의 꼬리표를 붙이는 것과 같은 사전 설득 방법들이 모두 휴리스틱을 이용한 전략들 이다. 여기서는 각 휴리스틱이 설득 상황에서 어떻게 사 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본다.

휴리스틱의 오용과 프로파간다 휴리스틱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편향에 의 존해 의사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정관념이나 편향을 이용해 사람들을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중에 프로파간 다가 있다. ‘프로파간다(propaganda)’라는 용어는 한때 전체주의 국가에서 이뤄지는 정치적 목적의 설득 전술을 의미하는 정도로 사용했다. 처음에는 프로파간다를 거짓 이나 기만을 통해 편향된 생각을 유포하거나 사람들을 선 동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이제 프로파간다는 상 징을 조작하거나 심리를 조종함으로써 대중에게 암시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미로 발전했다. 프로파간다는 사람 들의 편견이나 감성에 작용하는 이미지, 슬로건, 상징들


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프로파간다는 메시지 수용자로 하 여금 특정한 입장을 마치 자신의 입장인 양 ‘자발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커뮤니케이션이다. 프랫카니스와 아론슨(Pratkanis & Aronson, 2001)은 공정한 설득과 프로파간다를 구분할 수 있는 두 가지 기준 을 제시했다. 첫째, 메시지가 현안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 록 유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생각을 단절시키며 기존의 편견을 이용하려 하는가? 둘째, 커뮤니케이터는 감정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사람들이 이성적 사고보다는 감정에 반응하도록 하는가? 이들의 기준에 의하면 선동가는 수용 자로 하여금 합리적 사고를 하게 하기보다는 기존의 편향 이나 고정관념에 의존해 판단하고 감정이 비판 능력을 압 도하도록 유도한다고 한다. 즉, 휴리스틱에 따르는 편향 을 이용해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설득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프로파간다다. 설득이 어렵다곤 하지만 휴리스틱의 원리를 잘 파악하 여 이를 설득의 지렛대로 이용한다면, 설득은 실상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프로파간다의 수많은 사례 가 이를 말해 준다. 또한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문화, 광 고, 마케팅 등에서도 대중을 움직이는 데 휴리스틱을 이용 한다. 휴리스틱을 오용하거나 남용할 수 있는 여지는 곳


곳에 도사리고 있다.

설득의 두 얼굴 설득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즉, 설득 기술은 선의의 목 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지만 때로는 악의적으로 사용될 수 도 있다는 의미다. 우선 설득 지식을 잘 이용하면 사람들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민주사회 시민으로 서 또는 소비자로서 이성적인 선택을 하게 도와주는 것이 다. 또한 설득의 원리와 기법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우리 의사에 반하는 설득 전략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도 있다. 즉, 설득 기술을 선의로 잘 이용하면 사회가 건전하게 발 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설득 수단인 휴리스틱이 사회 발전을 위해 유용하게 활 용된 사례도 많다. 휴리스틱이 사회에 커다란 효익으로 작용한 경우다. 18세기 러시아제국의 통치자였던 예카테 리나 여제가 농민들이 기피하던 감자를 러시아의 주식으 로 만들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러시아 농민들은 감 자에 독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카테리나 여제는 희소가치 휴리스틱을 이용해 재치 있게 농민들의 의식을 바꾸어 식량문제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설득 지식이나 기술을 남용하게 되면, 이 사회 는 수많은 프로파간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정치적인 선전·선동뿐만 아니라, 광고를 비롯해 온갖 매체에 과잉 공급되고 있는 수많은 콘텐츠가 다 프로파간다일 수 있다. 프로파간다처럼, 누군가 휴리스틱을 남용해 우리를 조종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우리 스스로 자신 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원 치 않는 설득이나 프로파간다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는 방법, 그리고 궁극적으로 설득의 기술을 슬기롭게 사용하 는 방법을 이해시키는 데에도 그 목적이 있다.

휴리스틱의 개념과 종류 이 책은 휴리스틱을 선의의 목적으로 활용하거나 휴리스 틱의 남용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데 관심이 있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휴리스틱의 개념은 설명하기에 따 라 복잡할 수도 있고 아주 간단할 수도 있다. 본래 철학에 서 시작된 개념이지만, 어떤 분야에서 어떤 목적으로 다루 는가에 따라 정의가 달라지기도 한다. 휴리스틱의 종류 또한 분야나 시각에 따라 너무 다양해서 때로 혼란스럽기 까지 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각 휴리스틱의 개념을 가능 한 한 쉽게 설명하는 한편, 학문의 범주를 벗어나 흥미 위


주의 대중적인 설명이 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 력했다. 각 장은 휴리스틱의 본질에 관한 설명, 해당 휴리 스틱의 성격을 보여 주는 실험 및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전형적 사례들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이 책은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처음 두 개의 장은 각 휴리스틱을 설명하기 전에 휴리스틱의 개념을 이 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담았다. 휴리스틱을 다룬 서적들을 읽으면서 느끼듯이 휴리스틱의 개념은 단순해 보이지만 저자나 응용 사례에 따라 개념이 모호하기도 하 다. 또 책의 내용도 순수하게 학술적인 확률 판단에서 대 중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한 것까지 다양해서 때로 독자들 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따라서 1장에서는 휴리스틱의 개념과 우리 생활에서 휴리스틱이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2장에서는 이론적 설득 모델과 휴리스틱의 관계를 살펴보 았다. 인간의 사고와 추론 방법이 어떻게 설득의 모델로 융합되는지를 알아보고, 설득 모델을 통해 휴리스틱과 설 득의 관계를 설명했다. 3장에서 9장까지는 여덟 가지 휴리스틱을 다루었다. 여 기서는 두 가지 기준으로 휴리스틱을 선정했다. 하나는 트버스키와 카너먼이 심리학에서 빈도와 확률 판단의 의 사 결정 요인으로 처음 연구한 휴리스틱의 유형을 기준으


로 했고, 다른 하나는 설득 연구나 실용 분야에서 많이 다 루는 휴리스틱을 기준으로 했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이 처음으로 주창하고 연구한 휴리 스틱은 회상 용이성 휴리스틱, 대표성 휴리스틱, 기준 설 정과 조정 휴리스틱이다. 그중에서 회상 용이성과 대표성 휴리스틱을 선정했고, 그다음 소비자 행동, 광고, 마케팅, 설득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다루어지는 빈도가 높은 휴 리스틱을 선정했다. 휴리스틱의 선정에서 어느 정도의 차 이는 있겠지만 어느 연구자나 자의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리고 한정된 지면도 한몫했다. 아쉽게도 여기서 다루지 못한 ‘기준 설정과 조정 효과’는 독립된 장으로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머리말에서 간략하 게 설명을 했다. 3장부터 9장까지 다룬 휴리스틱은 순서대로 회상 용이 성 휴리스틱, 대표성 휴리스틱, 감정 휴리스틱, 라벨링, 맥 락 효과, 그랜팰룬, 희소가치다. 마지막 10장에서는 휴리 스틱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오류와 예방 방법을 설명했 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이 그들의 논문 서두에서 언급했듯 이 휴리스틱의 본질은 편향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휴리스 틱에 의존해 의사 결정할 때 오류를 범할 가능성도 있고 자신들의 이런 성향으로 프로파간다에 희생될 수도 있다.


따라서 휴리스틱을 설득 도구로 이해하는 것도 의미 있지 만 이러한 설득 도구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기에 마지막 장에서 이 주제를 다루었다.

기준점과 조정 휴리스틱 제한된 지면으로 이 책 본문에서 다루지는 못했지만 주요 휴리스틱 중 하나이기에 여기에서 간략하게 소개한다. 이 휴리스틱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행동경제학 관련 문헌을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수량이나 크기를 판단하는 하나의 전략이다. 최초의 정보를 기준점(anchor) 으로 삼아 수용 가능한 값(value), 즉 자신이 받아들일 만 한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조금씩 조정해 나가는 방법을 이 용하는데, 이런 의사 결정 방법을 기준점과 조정 휴리스틱 (anchoring-and-adjustment heuristic)이라고 한다. 이 휴 리스틱이 초래하는 효과를 ‘기준점 효과(anchoring effect)’ 또는 ‘닻 내림 효과’나 ‘정박 효과’라고 하기도 한다. 판단의 출발점이 되는 최초의 정보 또는 기준점은 뒤이 어 일어나는 조정 과정을 계속 끌어당기기 때문에, 결과적 으로 사람들이 도출한 최종 값이 처음 출발한 기준점에 상 당히 근접하게 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마치 배가 어떤 지


점에 닻을 내리면 닻을 내린 그 지점 주변에 머무는 것처 럼, 사람들도 어떤 정보를 기준점으로 하여 판단 과정을 시작하면 최후에 도출한 값이 처음에 시작한 기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 휴리스틱의 영향은 생활 곳곳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가격 지각, 부동산 거래나 심지어는 교사의 성적 부 여 또는 판사의 양형에도 최초의 기준들이 영향을 미친다. 또한 암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위험성을 평가할 때도 기준 점에 따라 위험 지각을 달리한다. 이런 편향이 있기 때문 에 사람들이 한번 형성한 첫인상은 상당히 오래가며 바꾸 기도 정말 힘들다.

휴리스틱을 더 알아보려면 선택의 문제는 본래 경제학에서 시작했다.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기대 효용에 따라 합리적 판단을 한다고 가정했 다. 이러한 가정이 인간의 실제 행동을 설명하는 데도 이 용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가진 심리학자들이 있었다. 그 들이 사이먼(Herbert A. Simon), 카너먼, 그리고 트버스 키였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에서는 사람들의 행동이 경제 학의 기대 효용 이론에서 예측하는 바와 다르게 나타났다. 휴리스틱과 편향은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실시한 ‘판단’


연구의 핵심이었다. 인간의 선택과 판단에 대한 그들의 연구는 심리학과 경제학 외의 분야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 공로로 사이먼과 트버스키는 경제학자가 아닌 심리학 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휴리스 틱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는 휴리스틱 연구의 효시인 트 버스키와 카너먼(1974)의 논문을 권한다. ≪사이언스≫ 에 실린 그들의 논문이 우리나라에서는 󰡔󰡔불확실한 상황에

서의 판단: 추단과 편향󰡕󰡕이란 제목의 책에 실렸다. 이 책 에는 트버스키와 카너먼의 논문 외에 휴리스틱과 편향에 관한 학술 논문이 여러 편 실려 있다. 행동경제학적 측면에서 휴리스틱에 관심이 있는 독자

에게는 도모노 노리오(友野典男)의 󰡔󰡔행동경제학󰡕󰡕이나 안

광호·곽준식의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본 소비자 의사결

정󰡕󰡕을 추천한다. 또한 휴리스틱과 편향이 우리에게 미치 는 다양한 사례와 문제점 등을 흥미 있게 소개하는 책도

있다. 조지프 핼리넌(Joseph Hallinan)의 󰡔󰡔우리는 왜 실

수를 하는가󰡕󰡕와 레이 허버트(Wray Herbert)의 󰡔󰡔위험한

생각 습관 20󰡕󰡕, 토머스 키다(Thomas Kida)의 󰡔󰡔생각의 오 류󰡕󰡕에서는 휴리스틱의 많은 생활 사례들을 만날 수 있다. 설득 또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도움이 되는 책이 있다. 저자가 동료들과 함께 번역한 프랫카니스·아


론슨(Pratkanis & Aronson)의 󰡔󰡔프로파간다 시대의 설득 전략󰡕󰡕을 권한다. 이 책의 모태가 되기도 했지만 설득 기술 의 오용과 남용을 비롯하여 ‘설득’이란 주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다. 휴리스틱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며 생활 곳곳에서 우 리의 판단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휴리스틱의 역 사와 작용이 그만큼 오래되고 깊은 만큼 휴리스틱의 개념 도 여러 분야에 걸쳐 있고 표현도 다르며 이해도 다를 수 있다. 그러한 여건에서 독자들이 설득의 도구로 휴리스틱 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참고문헌 안광호 · 곽준식(2012).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본 소비자 의사결정󰡕󰡕. 학현사.

友野典男(2006). 行動経済学. 光文社. 이명희 옮김(2007). 󰡔󰡔행동경제학󰡕󰡕. 지형.

Hallinan, J. T.(2009). Why we make mistake. Broadway Books. 김광수 옮김(2012).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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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nema, D., Slovic, P., & Tversky, A.(1982). Judgment u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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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da, T.(2006). Don’t believe everything you think. 박윤정


옮김(2007). 󰡔󰡔생각의 오류󰡕󰡕. 열음사. Pratkanis, A. R., & Aronson, E.(2001). Age of propaganda: The

everyday use and abuse of persuasion. 윤선길 · 정기현 ·

최환진 · 문철수 옮김(2005). 󰡔󰡔프로파간다 시대의 설득전략󰡕󰡕. 커뮤니케이션북스. Tversky, A., & Kahneman, D.(1974).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 Science, 185(4157), 1124∼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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