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만드는 소통과 소외 매일 대화하지만 얼굴 한 번 본 적 없다. 모바일 관계는 넓지만 옅다. 언제 끊어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집착하지만 바로 옆 사람과는 점점 더 멀어진다. 소통이 소외를 낳는다.
모바일 미디어 세상은 소통하면서 소외된다. <두 사람>, 찰스 블랙맨, 1960
인텔리겐치아 2624호, 2015년 6월 8일 발행
송종현이 쓴 ≪모바일 미디어와 일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안 정된 자아 정체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사 랑스러운 가족의 일원임을 확인하고, 또래 집 단과 친밀한 우정을 나누며, 공동체와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존 재론적 안전감을 느끼는 필수 조건이다. 우리 는 끊임없이 신뢰할 수 있고 친밀한 누군가와 접속, 연결되고자 열망한다. 그래서 우리의 휴대폰은 늘 누군가와 접속하려고 24시간 준
비 상태이며, 우리는 매일 수시로 블로그나 소 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타인의 흔적을 확인 하곤 한다. - ‘존재론적 안전감’, ≪모바일 미디어와 일상≫, 28∼29쪽.
타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면? 고립감을 느낀다. 고독이 스스로 만든 상황이 라면 고립은 타인과의 연결에 실패한 상태다. 그러면 불안, 우울, 절망의 감정에 빠진다. 고립이 절망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뭔가? 내 신호에 대한 타인의 응답은 그의 의지와 선택의 결과다. 전화, 카톡, SNS 대답은 모
두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선택 으로부터 자신이 제외되면 사회 존재로서의 자아 정체성 획득에 실패한 것으로 받아들인 다. 이것은 위기다. 어떤 위기인가? 관계의 연결망에서 배제되는 상황이다. 이 위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 또는 빠져나오기 위해 우리는 휴대폰에 더욱더 집착한다. 휴대폰으로 고립의 위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 는가? 휴대폰은 디지털 탯줄이다. 분리되었다는 느낌은 낯설고 두려운 감정이다. 세상과 닿 아 있음을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 어머니와
탯줄로 연결된 태아가 안전을 느끼듯 디지털 탯줄로 자기 존재의 안전을 확인해야 불안을 떨칠 수 있다. 휴대폰이 ‘존재의 안전’을 보장하는가? 그렇다. 휴대폰은 세상과 연결해 자아의 안 전을 확인하는 도구이자 자아를 표상하는 상 징이다. 그것이 어떻게 자아를 표상하는 상징이 될 수 있는가? 휴대폰 단말기로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는 의미다. 단말기를 구입할 때 통화 품질이 나 기능보다는 브랜드의 명성, 디자인, 출시 시점을 더 먼저 고려한다. 휴대폰의 ‘기능’을
넘어 ‘상징’을 소비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행 동이다. 상징 소비의 목적이 뭔가? 사회관계 유지다. 상징의 소비는 곧 사회 가 치의 공유와 공감 행위다. 휴대폰 브랜드, 디 자인, 케이스, UI는 개인의 취향을 드러낸 다. 카톡과 SNS는 개인의 상황과 감정, 일상 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취향과 일상을 공유 하고 공감하는 ‘동시적 삶’을 사는 것이다. 무엇과 동시에 사는 것인가? 멀리 있는 타인과 삶을 공유하는 것이다. 두 곳에 살지만 하나의 리듬을 공유하는 새로운 사회관계 양식이다. ‘넓지만 얇은’ 관계다.
무엇이 넓지만 얇다는 것인가? 수시로, 그러나 짧게 관계를 유지하고 관리 한다. 끈끈하고 깊고 두터운 관계가 아니다. 매일 서로의 SNS에 방문해 짧게 안부를 확인 하지만 일 년에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 의 수를 세어 보라. 이렇게 가늘게 연결된 관 계는 언제라도 끊길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걱정하고 두려워하면서도 그 관계를 중단하 지 못한다. 두려움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옆 사람을 두고도 휴대폰으로 다른 사람과 소 통한다. 가족은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상 대와 개별 미디어로 소통한다. 이제 친구의 집으로 전화를 걸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의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모바일 미디어 는 한쪽의 관계를 얇게 확장하면서 다른 한쪽 을 소외시킨다. 소외된 한쪽은 휴대폰으로 소통할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선다. 소통하 면서 소외되는 것이다. 소통이 만드는 소외를 지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관계의 질을 회복해야 한다. 모바일 사회에 서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돌아봐야 한 다. 휴대폰이 깊숙이 침투한 우리의 일상에 서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 다. 관계의 본질은 멀리 떨어진 것을 이어 주 는 친밀성과 신뢰의 획득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 ≪모바일 미디어와 일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모바일 미디어가 변화시킨 우리의 일상을 관 찰했다. 모바일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나타 난 새로운 소통 방식이 인간의 사회관계에 미 친 영향을 분석한다. 자기 존재의 안전과 자 아 정체성을 왜 휴대폰에서 확인하는지를 타 인과의 연결에 실패했을 때 고립감, 우울, 불 안의 감정을 느끼는 인간의 속성에서 살핀 다. 소통과 소외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원인 을 분석하고 모바일 사회에서 일어나는 정보 격차, 프라이버시, 공적 공간에서 모바일 이 용 문제를 논의한다. 일상의 면면을 관찰한 저자의 기록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사회관계 의 본질을 찾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송종현이다.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 션학과 교수다.
휴대폰이 만드는 소통과 소외 매일 대화하지만 얼굴 한 번 본 적 없다. 모바일 관계는 넓지만 옅다. 언제 끊어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집착하지만 바로 옆 사람과는 점점 더 멀어진다. 소통이 소외를 낳는다.
모바일 미디어 세상은 소통하면서 소외된다. <두 사람>, 찰스 블랙맨, 1960
모바일 미디어와 일상 송종현 지음 미디어와 사회 / 모바일 2015년 5월 20일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110쪽 9,800원
작품 속으로
모바일 미디어와 일상
모바일 미디어와 사회관계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언제나 부정확하고 상당히 위험 스러운 게임과도 같다. 1980년대 초 컨설팅 기업 매킨지는 AT&T의 의뢰를 받아 세계 휴대폰 시장의 규모를 예측한 바 있는데, 이때 매킨지는 2000년 이전까지 단말기 기술 수 준이나 통화 요금의 요인을 고려할 때, 전 세계적으로 대략 90만 명 정도가 이용할 것이라고 단언했다(con-fidently predicted, Brown, 2002). 그러나 적어도 그 예측치 만큼 매일 이용자가 증가할 정도로 모바일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해 왔다. 양적인 측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없 어서는 안 될 물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하라면 전기나 수도 와 같은 생존을 위한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휴대폰(이제는 스마트폰)이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할 것이다. 현대인들 에게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미디어는 ‘사회적 생존’을 위한 필수품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바일 미디어는 우리 일상에 조 용히 스며들어 왔고, 항상 주머니나 가방 속에서 세상과
연결을 기다리는 자신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2000년을 전후해 태어난 세대에는 모바일 미디어 가 가장 먼저 친숙해지는 매체가 되었고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던 자연스러운 ‘인간의 조건’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 의 중년층에게 TV가 그러한 매체였던 것처럼 말이다. TV가 인간의 개인적 삶과 사회문화적 지형에 미친 영 향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지금 의 미디어 관련 학문이 TV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성장해 왔 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TV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된 모바일 미디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 가오고 있는 것일까? 쿠퍼(Cooper, 2002)라는 연구자는 모바일 미디어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열광적 수용과 관련 해 “이론적 범주와 분석 양식에 대한 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전략적이고 성찰적인 가치가 담겨져 있다”고 한 바 있다. 다소 모호한 말이기는 하지만 모바일 미디어에 대 한 학문적 관심과 열정을 촉구하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메시지에 대한 하나의 화답을 위한 시 도다. 모바일 미디어가 가져온 우리 삶의 변화가 어떤 방 향으로 전개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반영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모바일 미디어가 사회관계에 미친 영향에 대 해 살펴보고자 했다. TV가 정보와 오락의 제공을 통해 개
인과 사회에 영향을 미쳐 왔다면, 모바일 미디어는 개인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기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물론 스마트폰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모바일 미디 어는 대인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의미를 넘어선 다기능 의 통합적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되었지만, 여전히 모바 일 미디어의 핵심적 기능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 있 는 것이다. 모바일 미디어는 우리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즉 사 회관계를 수정(modifying), 확장(amplifying), 대체(substituting)하거나, 새로이 창조(creating)할 수도 있다(Katz & Aakhus, 2002). 또한 그 결과는 통상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이 그러하듯이 사회관계의 ‘발전’을 의미하기도 하지 만, 때로는 ‘상실’의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 책의 소주제들은 모바일 미디어가 가져온 사회관계 지형의 발전과 상실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발전보다는 상실에 초점을 두고 있다. 모바일 미디어가 가져다준 편리함이나 사회관계의 확장에 비해,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들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 기 때문이다. 모바일 미디어가 그리고 있는 화려하고 밝 은 외면에 비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잃어 가고 있 는 사회관계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주목하고, 신뢰와 친밀
성에 기반을 둔 건강한 사회관계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 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시점인 것이다.
모바일 미디어의 출발, ‘삐삐’ 우리 사회에서 개인 단위의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은 무선 호출기(일명 ‘삐삐’)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전까지의 모바 일 미디어는 특정 집단(기자, 의사, 경찰 등)만이 사용 가 능했던 ‘금단의 영역’이었다.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서는 전파를 사용해야 하는데, 공적인 용도로 국가가 엄격 히 관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80년대 접어들면서 전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속속 개발되었 고, 이동통신 서비스의 형태로 일반 대중에게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작이 바로 무선호출 서비스였다. 1990 년대 초반 무렵의 일이었다. 무선호출기의 확산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보 급 초기에는 영업직 근로자를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목적 의 이용자가 많았으나 점차 일반인으로 확대되었다. <응 답하라 1994>라는 케이블 TV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한 장면이지만, 이제 사정이 생겨 약속 시간에 늦을 경우 호 출을 해서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늦게까지 귀가 하지 않는 가족에게 집으로 연락하라는 호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불편한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커 다란 변화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호출을 받아 표시된 전화번호로 연락하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야만 했다는 점이다. 공중전화 부스 앞에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풍경이 흔히 발견 되곤 했다. 이용자들은 숫자로만 표시되는 무선호출 서비 스의 메시지 표현 양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의미를 반 영한 숫자 체계를 만들어 갔다. ‘8282’, ‘3535’와 같은 숫자 는 연락받을 전화번호가 아니라, ‘빨리빨리’, ‘사모해요’와 같은 언어적 의미였다. 여전히 고정된 장소가 아닌 외부에서 이동 중인 상황에 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되지는 않았 다. 좀 더 진보된 기술이 필요했다. 이런 욕구를 반영한 새 로운 서비스가 등장했다. 소위 ‘씨티폰’이라 부르던 발신 전용 이동통신 서비스다. 무선호출기에서 휴대폰으로 전 환하던 과도기에 잠시 등장했다가 이내 사라진 ‘불운’의 서비스다. 그래서인지 이 서비스에 대해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씨티폰은 무선호출기의 한계를 보완하는 기능을 가지 고 있었다. 무선호출기로 호출을 받고, 씨티폰으로 전화 를 걸면 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공중전화 앞에서 차례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한쪽 주머니에는 무선호출 기, 다른 한쪽에는 씨티폰을 넣고 다니면 두려울 게 없을 정도였다. 당시 언론에서는 씨티폰을 “황금알을 낳는 거 위”가 될 것이라고 호들갑 떨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씨티폰은 사라졌다. 값비싼 아 날로그 휴대폰 대신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디지털 휴대 폰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5개나 되는 이동통 신 서비스 제공 사업자가 허가되면서, 이들의 적극적인 마 케팅으로 이제 사람들은 과거 소수 계층의 ‘부의 상징’이 었던 휴대폰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길거리와 지하 철 안에서 무선호출기의 ‘삐삐’ 호출 소리 대신, ‘따르르릉’ 하는 휴대폰 벨 소리가 넘쳐나게 되었다.
공적 공간의 사적 전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이었다. 신문이나 책을 읽거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정 도에서 이제 공적 공간은 개인적인 통화 소리가 넘쳐나기 시작한 것이다. 공적 공간은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집합적이고 사회적 인 성격을 지니며, 다원적이고 포괄적인, 그리고 중립적인 영역”을 의미한다(Tiesdell & Oc, 1998). 그래서 이곳에서
는 익명의 타인들과 우연히 만난다. 익명의 타인들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집합적 정체성을 소유하고 있는 이웃으 로 기대되고 이해될 때 진정한 ‘우리 관계’가 될 수 있다. 그 러나 공적 공간에서 모바일 미디어 이용은 익명적 타인들 과 공적으로 소통할 기회를 위축시킨다. 한편에서는 새로 운 기술이 우리의 의사소통의 경계를 넓히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의사소통을 사사화하고, 이용자로 하여금 그 가 물리적으로 위치하고 있는 공적 세계로부터 사회적으 로 고립시키고 있는 것이다(Cameron, 2000). 또한 모바일 미디어는 이런 공적 공간을 개인 공간이 중첩되고 갈등하는 영역으로 새롭게 정의하게 만들었다. 단지 개인의 영역 안에 ‘몰입’함으로써 익명적 타인들과 경계를 갖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공적 공간 내에서 개인 공간에 적극적으로 ‘편입’하게 만든 것 이다. 타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입이었고, 공적 공간 규범에 대한 재정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모바일 프라이 버시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모바일 미디어는 사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하는 개 인 매체면서도 주로 공적인 공간이나 상황에서 이용된다 는 점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 게 만들기 시작했다(Wei & Leung, 1999). 이런 ‘경계의 희
석’은 ‘공적 공간의 사사화(privatization of public space)’ 로 귀결되었다. 산업사회 이후 개인의 생활양식과 인간관 계에서 점증하고 있는 사사화의 물결이, 드디어 공적 공간 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또한 개인의 행위 공간과 자유 공간을 극대화하고, 동 시에 공간에 대한 개인의 잠재적인 통제력을 키움으로써 공적 공간의 성격과 기능을 자신의 필요와 목적에 맞게끔 재정의하고 활용하는 ‘사적 전유(private appropriation)’ 의 가능성도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특정 공간 내 개인의 행동 양식과 규범 인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흔히 공공장소 예절 이라는 관점에서, ‘문화 지체’의 일종으로 인식하기도 하 지만, 휴대폰과 같은 개인 매체가 공적 공간으로 진출하면 서 발생하는 문제는 공적 공간의 규범적 가치와 기능·의 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공적 공간 규범 재정의 공적 공간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지만, 공간에 대한 동 등한 점유권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개인행동 은 일정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공식적인 규 칙과 비공식적인 규범의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서는 공적 공간을 자기중심적으 로 이용하는 비규범적인 현상들을 쉽게 발견하곤 한다. 가령 공적 공간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이리저리 뛰어다 니는 어린이와 이를 방임하는 보호자의 모습에서, 지하철 에서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 는 행동에서, 길거리나 통로에서 마주 오는 사람의 어깨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딪히며 지나치는 행동에서, 그리고 도 로를 혼자 점유한 듯 신호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차선을 변 경하는 운전자의 모습 등에서, 우리는 공적 공간이 부적절 하게 전유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공적 공간의 운영 원리인 ‘행동의 합리 성’이 무시됨으로써 유발되는 것이라 하겠다(Drucker & Gumpert, 1996). 즉, 공적 공간의 규칙이나 규범을 준수 함으로써 작은 이익을 희생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는 행동의 합리성이 수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행동의 합리성을 위반하는 것은 공적 공간에 대 한 태도와 인식이 보편적인 사회 규범과 일치하지 않기 때 문인데, 이는 특정한 공간과 상황에서 어떠한 행동이 적절 한가 혹은 적절하지 않은가에 대한 가치판단, 즉 ‘상황정 의(situational definition)’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다. 메 이로위츠(Meyrowitz, 1985)에 의하면, 우리가 사회생활
에 적응해 가는 방식은 자기가 속한 문화의 상황 정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한다. 공적 공간의 행동 합리성과 관련되면서 공적 공간에 대 한 규범적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은 사 회통제에 대한 수용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 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공적 생활에 참여는 사 회적 통제에 대한 준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회는 규칙이나 규범을 통해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이를 통해 사회생활에서 모호성(ambiguity)을 제 거하곤 한다. 즉, 사회적 통제란 공적 공간에서 허용될 수 있는 행위를 통제하는 공간에 대한 사회적인 관리 전략이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에 어느 정도 순응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에 대해 저항적인 태도와 행 동을 보이는지에 따라 공적 공간에 대한 규범적 인식 또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모바일 미디어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불 러들여 그들만의 가상의 공간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우리 가 공적 공간에서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는 등의 개인행동 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모바일 미디어가 우리 에게 가져다준 ‘연결가능성(connectivity)’의 증대는, 타인
의 프라이버시와 보다 적극적으로 대치되는 상황의 가능 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바일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욕구를 아무런 제약 없이 실현시킨 다는 것은 곧 공적 공간의 규범을 위반함을 의미하는 것이 라 할 수 있다.
인간의 확장과 사회관계의 변화 모바일 미디어의 매체 특성은 이동성과 개별성으로 압축 해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이 지닌 함의를 좀 더 추상 적으로 표현해 본다면 ‘확장(extensions)’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바일 미디어의 이동성은 인간 상호작용의 범위를 시공간적 장벽을 넘어 무한히 자유로 운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개별성 또한 인간 상호작 용에서 개인 혹은 자아의 통제력과 표현 영역을 ‘확장’하 는 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한 매클 루언(McLuhan, 1964)에게 ‘확장’이란 신체 감각기관의 기 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를 이동성이라는 모바일 미디 어의 매체 특성에 견주어 보면 ‘탈맥락적 효과’를 통해 우 리의 귀와 입, 두뇌 등의 기관이 수행하는 기능은 시공간 적으로 무한히 확장되고, 그에 따라 새로운 비율과 균형의
지각 및 인지 양식이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 으로 말하자면, 모바일 미디어는 커뮤니케이션의 시공간 적 제약을 극복함으로써 우리가 일상을 조직하고, 정보를 수집·처리하고, 누군가와 상호작용을 수행하는 ‘기능의 확장(extension of function)’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새로운 영역으로 자신을 확장할 수 있게 된 것이라 하겠다. 모바일 미디어에는 매클루언이 직접 거론하지 않은 또 다른 확장의 차원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바로 ‘자 아의 확장(extension of ego)’이다. 아론과 아론(Aron & Aron, 1986)은 이 세상의 많은 것을 자기 것으로 흡수하여 자신을 넓히려는 욕구를 ‘자아 확장 동기(self-expansion motiv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이는 개인 혹은 자아는 자신과 관련된 제반 사항이 포 함되어 구성되는 역동적 전체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앞서 살펴본 바처럼 개별 성이란 특성을 지닌 모바일 미디어에는 자신만의 배타적 인 관계 영역이 존재할 뿐 아니라 정체성을 표현하고 전이 시키는 과정과 투사의 과정이 모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한 자아 확장의 가능성이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모바일 미디어는 ‘사회관계의 확장(extension of
social network)’과도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이는 무엇 보다도 사회관계를 관리하는 방식이 모바일 미디어를 통해 보다 세밀해지고(micro-coordinated), 그에 따라 사회적 관 계에 대한 개인의 통제력(control) 혹은 유연성(elasticity)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유연한 미시 조정 능 력을 통해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 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섬세하게 관 리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바일 미디어가 사회관계의 유지와 발전에 기 여하는 방식은 다면적인 성격을 지닌다. 다시 말해 모바 일 미디어는 사회관계의 범위(폭과 크기)와 깊이(친밀성 과 신뢰)를 개방적이고 심층적인 양상으로 넓히기도 하지 만, 다른 한편으로는 폐쇄적이고 피상적인 방향으로 위축 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모바일 미디어가 창출하는 새로운 사회관계의 지형은 미디어 자체의 특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모바일 미디 어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만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관계의 변형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는가는 미디어 와 인간, 그리고 사회구조의 역학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과연 모바일 미디어가 인간의 조건으로 작동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사회관계의 변형에 담겨 있는 ‘숨겨진 부호’ 는 어떤 것들인지 숙고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문헌 Aron, A., & Aron, N. E.(1986). Love and the expansion of self. NY: Hemisphere. Brown, B.(2002). Studying the use of mobile technology. In B. Brown, N. Green, & R. Harper(Eds.), Wireless world social
and interactional aspects of the mobile age(pp.3∼15). London: Springer-Verlag. Cameron, D.(2000). Small incivilities. Critical Quarterly, 42(2), 127∼131. Cooper, G.(2002). The mutable mobile: Social theory in the wireless world. In B. Brown, N. Green, & R. Harper(Eds.),
Wireless world: Social and interactional aspects of the mobile age(pp.19∼31). London: Springer-Verlag. Drucker, S., & Gumpert, G.(1996). The regulation of public social life. Communication Quarterly, 44(3), 280∼296. Katz, J. E., & Aakhus, M.(2002). Introduction: Framing the issues. In J. E. Katz, & M. Aakhus(Eds.), Perpetual
contact(pp.1∼13). Cambridge University Press. McLuhan, M.(1964). Understanding media. McGraw-Hill.
박정규 옮김(1997). 미디어의 이해.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Meyrowitz(1985). No Sense of place. NY: Oxford Univ. Press. Tiesdell, S., & Oc, T.(1998). Beyond ‘fortress’ and ‘panoptic’ cities. Environment and Planning B: Planning and Design,
25(5), 639∼655.
Wei, R., & Leung, L.(1999). Blurring public and private behaviors in public space. Telematics and Informatics, 16(1-2), 11â&#x2C6;ź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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