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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미디어 생활 2/10

신문

한국전쟁기의 ≪영남일보≫

한반도를 커버한 부산 대구의 전국구 신문 전황 보도, 징병 공고, 배급 안내, 전황 분석, 국제 관계, 전선 르포와 대통령 동정, 피난민 소식과 휴먼 스토리, 개학 통지와 문화 기사까지. 2면짜리 지방지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국민의 힘이었다.


인텔리겐치아 2637호, 2015년 6월 16일 발행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서울의 주요 신문이 임시 수도 부산과 대구로 피난한다. 대구의 ≪영남일보≫와 ≪대구매일신문≫, 부산 의 ≪국제신보≫와 같은 지방지는 서울의 신문들이 자리 잡기 전부터 피난민과 지역 주민을 위해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영남 일보≫는 피난민이 들끓고 있는 대구에서 뿐 아니라 전국에서 한때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했다. 전쟁 당시 대구 지역 신문들은 2 면으로 발행되었다. 1950년 9월 ≪영남일보≫의 지면 구성 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계엄사령관 육군


1953년 3월 18일 자 ≪대구매일신문≫<단침>민심


소장 정일권 이름으로 된 포고령, 신성모 국 방장관의 담화문, 전과 보고, 모집 공고, 배 급 안내, 군 관계 인사 인터뷰, 기자회견, 외 신으로 들어온 전황,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관계, 국제기구 관련 외신, 종군 특파원의 전 선 르포, 대구를 방문했다는 이승만 대통령 동정, 피난민 소식, 찾는 사람, 무훈담, 미담 등 휴먼 스토리, 학교 개학 통지, 그밖에 정 치·경제·사회·교육·생활·문화 기사, 사설, 시평이 실려 있다. 여기에 문총구국대 원들을 중심으로 시·수필 등 문학작품, 연 재소설이 들어갔다. 한국전쟁기 신문들은 엄격한 사전 검열 을 거쳤고 정부 발표 위주로 지면을 꾸렸다. 그러나 전황이 궁금하고 전쟁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신문은 중요 한 정보원이었으며 없어서는 안 될 큰 위안이 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던 시절, 전쟁으 로 피폐해진 국민에게 신문은 순간순간을 버 티는 힘이 됐다. 겨우 2면이 발행됐을 뿐이지 만 신문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불안에 떠는 국민에게는 살아 있다는 확인, 여전히 세상 이 돌아가고 있다는 확인이 되었을 것이다. 김은주, 연합뉴스 논설위원, ≪한국의 여기 자, 1920~1980≫ 지은이


한국전쟁과 미디어 생활 2/10

신문

한국전쟁기의 ≪영남일보≫

한반도를 커버한 부산 대구의 전국구 신문 전황 보도, 징병 공고, 배급 안내, 전황 분석, 국제 관계, 전선 르포와 대통령 동정, 피난민 소식과 휴먼 스토리, 개학 통지와 문화 기사까지. 2면짜리 지방지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국민의 힘이었다.


한국의 여기자, 1920~1980 김은주 지음 언론일반 / 언론인 2014년 1월 20일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362쪽 19,800원


작품 속으로

한국의 여기자, 1920∼1980


머리말 시대와 여기자

한 시대는 개인들이 만든다. 사회를 이끌어 가는 위대한 개인일 수도 있고, 그저 평범한 개인일 수도 있다. 이들이 모여서 하나의 시대를 만 들어 낸다. 한편으로, 각각의 시대는 개인들의 생애를 결정짓는다. 그 시대가 아니었더라면 달리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 그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살 수가 없었다. 시대 속 개인의 생애사(生涯史)는 흥미로운 주제다. 이 개인이 기자라면 어떠했을까. 기자라는 직업은 단순히 생계유 지를 위한 방편에 그치지 않았다. 역사의 현장을 알리고, 기록을 남기 고, 여론을 만들어 냈다. 당대의 흐름을 기록하는 자로서 언론은 힘을 갖는다. 힘이라고 할 때 기득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외된 계층을 위해서도 언론은 힘이 될 수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기자직에 도전해 온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들 역시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데 일익을 담당했고 또 시대의 틀 안에서 나름의 인생을 살았다. 그런데 기자가 여성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기자가 여성이면 특별히 ‘여기자’라고 부른다. ‘남기자’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는 것을 보면 기자직은 남성의 직업이며 여성이 이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여류(女流)’


라는 단어가 사용됐던 것과 마찬가지다. 과거 여기자들은 극소수였고, 그래서 주목을 받았고, 그만큼 힘이 들었다. 오늘날 주요 언론사의 수 습기자 절반 이상을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고, 여기자들이 여성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거침없이 현장을 누비는 상황에서 ‘홍일점 여기자’ 라는 개념은 생소할 것이다. 그러면 과거 여기자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자신이 속한 시대 속 에서 어떻게 기자직을 수행했으며, 어떤 생애를 살았을까. 각각의 시대 가 요구한 여기자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는 192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활약한 여기자 아홉 명 이 등장한다. 이각경이 ≪매일신보≫에 입사한 1920년부터 이영희가 ≪한국일보≫를 퇴사한 1981년까지다. 일제강점기 전기, 일제강점기 후기와 해방, 한국전쟁, 자유당 정권, 박정희 대통령 집권 전기, 유신시 대가 배경이 된다. 필자 나름으로 시대가 부여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 다고 생각하는 여기자들을 골랐다. 이들이 그 시대 여기자 전체를 대표 한다고는 단정하지 않는다. 다른 훌륭한 분들도 많았을 것이다. 여기자 는 당대에 가장 첨단을 걷는 여성이었다. 기자이며 동시에 선각자였고, 지사(志士)였다. 독립운동가였으며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였고 뛰어 난 문학가였으며 문필가였다. 교육가였고, 국가정책을 다루거나 정계 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이들 중 어떤 이는 너무 일찍 깨인 탓에 제대로 꿈을 펼치지 못하 고 시들었다. 어떤 이는 일생동안 후회 없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일제 말 친일 행적이나 한국전쟁 당시 부역 행위, 또 사회활동 과정에서 비난 의 대상이 된 사람도 있었다. 사생활 관련해서 남의 입에 오르내린 사 람도 있었다. 사명감을 갖고 기자직을 택한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마 지못해 생계 수단으로 일한 사람도 있었다. 기자직을 다른 일을 위한


발판으로 삼은 사람도 있었다. 여기자로서 희소성에서 오는 특권을 누 리고 즐긴 사람도 있었고, 여전히 남성 중심의 언론계에서 여기자로서 의 한계와 편견에 시달려 괴로워한 사람도 있었다. 불과 몇 달 만에 기 자직을 떠난 사람도 있었고, 정년을 마친 사람도 있었다. 필자는 이들 모두가 나름대로 열심히 자신의 시대를 살아냈다고 생각한다.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선각자로서의 여기자들이 다. 이들은 지사적(志士的)인 자세로, 배운 여성으로서의 사명감과 책 임감을 갖고 계몽적인 활동을 펼쳤다. 봉건제도하에서 여성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생활의 합리화를 주장했는가 하면 여성교육과 여성단체 의 활동에 직접 나서거나 지면(紙面)을 통해 도왔다. 공직으로 연결되 어 여성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기도 했다. 또 다른 흐름은 작가, 문인, 문필가로서의 여기자들이다. 초창기 언론인과 작가는 혼재돼 있었다. 예컨대 최초의 신소설 작가인 이인직 은 ≪매일신보≫ 기자였다. 신문 연재소설은 많은 경우 기자들이 직접 집필했다. 여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문학에 뜻을 둔 이들이 자신의 작 품을 신문에 싣고자, 문단에 다가가기 위한 방편으로, 단순히 글을 쓰 는 것을 즐겨서 기자직에 도전했다. 문학작품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 었다. 사회 평론가로, 역사 연구자로, 집필가로 활약했다. 두 가지 흐름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선 1부에는 ‘최초의 여기자’들이 등장한다. 기록에 남아 있는 최 초의 여기자는 1920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공채로 입사한 이각경이다. 그리고 민간지 최초의 여기자로 ≪조선일보≫의 최은희, ≪동아일보≫의 허정숙이 활약했다. 이들 세 명을 ‘선각 여기자’들로 묶 었다. 이들은 당시 드물게 신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들로, 봉건사회에서 여성들을 깨우는 역할이 이들의 몫이었다. 기자이면서 좌우익을 막론


하고 여성해방, 여성운동에 뛰어 들었다. 1920년대는 근대교육을 받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운동이 활발했다. 여기자들은 직접 일선에 나 서거나 글로써 여성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최은희는 기자직을 떠난 후 여성독립운동사 등을 집필하며 일제강점기 용감한 여성들의 활약상을 기록했다. 좌익 운동가였던 허정숙은 짧은 기자생활을 마치고 사회주 의 혁명가의 길을 걸었다. 1930년대 들어서 ‘문인 여기자’들이 이들의 뒤를 이었다. 이들은 여성해방이나 여성운동보다는 하나의 직업으로, 그것도 문학 활동에 도움이 될 만한 직업으로 기자직을 선택했다. 점차 거세진 일제의 압박 으로 국내의 모든 사회운동이 초토화되어 지하로 숨거나, 해외로 무대 를 옮겼던 시절이었다. 선각 여기자들이 했던 것과 같은 활동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었다. 신문의 상업주의가 확산되면서 문예물이 지면을 상당 부분 차지하게 되었고, 신문사에서도 기자로 문인들을 선호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시인으로 유명한 노천명이다. 소설가 장덕조는 문인 여기자의 맥을 함께하지만 시대적으로는 한국전쟁 시기에 활약했다. 한국전쟁에서 이들의 운명은 엇갈렸다. 서울을 떠나지 못했던 노천명 은 부역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무사히 피난을 간 장덕조는 대구를 중심으로 유일한 종군 여기자로 맹활약을 펼쳤다. 2부에서는 노천명과 장덕조를 다루었다. 전쟁이 끝나고 산업화 시기로 들어서면서 여기자들의 활동 분야 가 다양해졌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고 여러 영역을 적극적 으로 개척해 나가는 여성들이 나타났다.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가 주어 졌다. 3부 ‘전후 부흥기 여기자들’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여기자들 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한국전쟁이 끝 나고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을 거쳐 유신독재까지의 시기에 해당


한다. 대표적으로 정충량, 정광모, 이영희, 권영자를 소개했다. 정충량 은 여성 논설위원으로 예리한 필봉을 날렸다. 정광모는 당시로는 드물 게 정치부 여기자로 청와대 출입을 하며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수행했 다. 동화작가로 유명한 이영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행된 어린 이신문의 창간 멤버였다. 문화부 기자 시절 일종의 사명감으로 고대사 연구를 시작했고, 지금도 연구와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권영자는 유신시절 언론자유를 부르짖으며 해직된 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 원회(동아투위) 초대 위원장을 맡아 유신정권에 저항하며 자유언론 투 쟁의 선봉에 섰다. 그는 기자 시절 여성문제에 천착했고 해직된 다음에 는 정부와 국회에서 여성정책을 추진하는 데 앞장섰다. 이들은 모두 기자로 출발했다. 기자생활은 이들이 후에 무슨 일을 하든지 자양분이 됐다. 기자로서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가능 했던 첨단적인 세계를 접하게 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을 길러 주었고,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주었으며, 필력을 가다듬게 했다. 이들 상당수 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훌륭한 여성 직업인으로서 여성이 당당한 가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 책의 주요 관심사는 이들이 기자 외에 어떤 일을 했는지가 아니 다. 작가이건 사회활동가이건 공직에 진출했건 이 책은 이들 모두를 기 자로 접근했다. 각 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그들이 쓴 기사다. 두 번 째로 기자 활동, 세 번째로 생애를 소개했다. 1차로 이들이 직접 쓴 기사들을 찾았다. 다행히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고 오래 전에 신문이 폐간됐거나 전쟁 중에 소실되어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또 기명 기사가 아닌 것이 많아 누가 썼는지 정확하게 알기 힘든 경우도 있었다. 여기자들은 대부분 여성란을 담당했다. 따라


서 이들의 기사 분석은 자연스럽게 시기별 여성란 분석이 되었다. 2차로 이들이 쓴 기고문이나 이들이 남긴 문학작품, 저서, 논문들 을 참고했다. 3차로 이들에 관한 기사, 책, 논문들을 읽었다. 유족이나 이들과 가까웠던 분들을 만나기도 했다. 정광모, 이영희, 권영자 세 분 은 직접 만나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정광모는 두 차례 한국소비자 연맹 사무실로 찾아가 인터뷰했으나 책을 마치기 전 별세했다. 이 책에 나오는 여기자들은 모두 신문기자들이다. 1920년대 들어 신문과 잡지가 속속 창간됐으나 잡지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지속적으로 발행되지 않았다. 최초의 잡지사 여기자는 1922년 개벽사 에 입사한 김경숙으로 알려져 있다.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했 다. 초기에는 아나운서와 기자가 혼재돼 있었다. 해방 다음날인 1945년 8월 16일 ≪경성방송국≫의 아나운서였던 문제안이 처음으로 방송기 자라는 명칭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해방 이틀 후인 1945년 8월 17일 ≪해방통신≫을 필두로 ≪조선통신≫, ≪합동통신≫ 등 한국인이 설 립한 뉴스통신사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따라서 방송과 통신에서 여기자가 등장한 것은 신문에 비해 한참 후의 일이다. 잡지, 방송, 통신 등 다른 매체의 여기자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진행될 수 있을 것 이다. 여기 한 분 한 분의 일생이 각자의 평전을 써도 될 만큼 극적이고 감동적이었다. 험난한 시대를 살아내고, 온몸을 다해 그 시대가 요구하 는 소임을 다한 사람들이었다. 권영자는 필자에게 “그때는 시대가 그랬 어”라고 말씀하셨다. 이들의 생애와 기사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하면서 이들이 속했던 시대의 사회상, 가치관, 언론관, 여성관, 여성의식 등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대의 한 단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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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한다. 또한 여기자들의 역사를 통해 앞으로 여기자들의 바람직한 활 동 방향을 도출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매너리즘에 빠진 여기자들이나 막연한 동경을 가진 여기자 지망생들에게 여기자의 역할 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존칭은 모두 생략했다.

2014년 1월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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