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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미디어 생활 5/10

영화

영화 <오인의 해병> 마지막 장면, 김기덕 감독, 1961

일루전, 전쟁은 영화처럼 아들은 전장으로 가고 아비는 무덤으로 갔다. 나라는 목숨을 건졌지만 병사는 돌아오지 못했다. 전쟁의 참화가 깊어질수록 감정의 반응은 무뎌지고 눈 앞의 삶은 환상처럼 왔다 사라진다. 전쟁은 영화다. 환상 같은 현실, 현실 같은 환상이다.


인텔리겐치아 2643호, 2015년 6월 19일 발행

<오인의 해병>은 한국전쟁 당시 최전선 해 병전초 소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제각각 의 사연을 가진 다섯 인물이 사선에서 전우 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각 대원의 사연 을 플래시백 기법을 이용해 자세히 묘사하여 전쟁에 휩쓸린 인간 군상의 모습을 깊이 있게 표현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서, 자신과 갈등하던 아들이 작전 수행 중 전사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것을 본 대대장의 마지막 연 기가 긴 여운을 남긴다.


<오인의 해병> 포스터


한국전쟁 당시에도 국방부 정훈국, 공보 처, 미 USIS를 통해 전쟁 관련 뉴스영화와 기 록영화가 다수 제작됐다. 공보 활동에 활용 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정의의 진격> 1부 (1951)와 2부(1953)는 이승만의 평양광장 연 설 장면, 북한군이 촬영한 노획 필름 장면과 같이 한국전쟁 과정을 충실히 기록하고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크다. 한편 극영화들은 한 국전쟁의 경험을 어떻게 재현하여 ‘기억해야 할 과거’로 서사화할 것인지 다양한 시도를 했다. 1950년대 후반에 들어 전후 복구가 진행 되고 한국 영화 산업이 성장하면서 전쟁을 소 재로 하는 영화의 제작도 일시적으로 주춤한 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 <오인의 해병>


과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이만희)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민족적, 휴머니즘적 역사로 포섭하는 반공 영화 장르의 토대가 성립한다. 김미현, 영화진흥위원회 국제사업부 팀장, ≪한국 영화 역사≫ 지은이


한국전쟁과 미디어 생활 5/10

영화

영화 <오인의 해병> 마지막 장면, 김기덕 감독, 1961

일루전, 전쟁은 영화처럼 아들은 전장으로 가고 아비는 무덤으로 갔다. 나라는 목숨을 건졌지만 병사는 돌아오지 못했다. 전쟁의 참화가 깊어질수록 감정의 반응은 무뎌지고 눈 앞의 삶은 환상처럼 왔다 사라진다. 전쟁은 영화다. 환상 같은 현실, 현실 같은 환상이다.


한국 영화 역사 김미현 지음 영화 / 한국영화론 2014년 4월 15일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120쪽 9,800원


작품 속으로

한국 영화 역사


한국 영화 역사 쓰기

영화사 쓰기 방법론 영화사의 재인식

영화 역사는 연구 방법의 시간성에 그 특징이 있다고 한다. 영화가 시간을 경과하며 어떻게 기능해 왔는지를 다루는 것이 영화사의 핵심이라는 것이다(알렌·고메리, 1997, 17 ∼48). 영화사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는 것은 다 수의 역사들이 서술될 수 있는 가능성의 장(field)을 펼치 는 것이다. 영화와 영화를 둘러싼 시대의 의미는 ‘역사적 특정성(singularities)’에 따라 복수의 해석이 가능하며 사 회적, 산업적, 문화적, 미학적 접근 방법에 따라 다양한 이 야기가 구성될 수 있다. 영화 연구에서 영화사가 부상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1970년대 전성기를 누린 기호학, 정신분석학, 알 튀세르적 마르크시즘, 후기 구조주의 등에 의거한 영화 이 론이 ‘거대 이론(grand theory)’이라 비판 받으면서, 미 시정치학적 관점에 따라 탈식민주의(post colonialism), 페미니즘(feminism), 문화 이론(cultural studies) 등으


로 연구방법이 분화한 맥락과 함께한다. 새로운 역사적 접근 방법은 수정주의 역사학(revisionist historiography) 을 중심으로 다양한 국가, 시기, 감독을 발굴하고 재해석 의 공간을 열어줌으로써 영화사를 새롭게 기술했다. 관습 적인 역사 쓰기에 대해서는 과거의 사실을 의심 없이 재생 산하면서 이론적 반성은 하지 않았던 문제가 지적되었으 며, 역사 연구가 자료의 기록더미에서 ‘중요한’ 사실을 추 려 내어 연대기적 질서를 구성하는 데 제한되는 것이 아니 라는 인식도 함께 이루어졌다. 총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과 거를 재현하는 것을 불가능할 뿐더러, 영화 담론은 당대의 사회제도에서 생산된 권력 관계와 질서의 산물이기 때문 이다.

영화와 집단적 기억, 그리고 역사

영화와 역사학의 만남은 크게 두 측면에서 진행되었다. 우선, 영화에 나타난 역사성, 집단적 기억에 대한 관심이 다. 영화의 집단적 기억에 대한 관심은 1974년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가 ‘영화와 기억’을 주제 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장 나르보니(Jean Narboni) 등과 가졌던 일련 의 인터뷰에서 비롯했다. 이들은 역사영화가 대중의 기억


을 조작하고 투쟁력을 통제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푸코는 텔레비전이나 영화의 ‘역사물’이라 칭해진 장르를 통해 대 중문화에서 ‘역사 쓰기’가 진행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프랑스에서 제작된 몇 편의 영화가 제2차 세계대전과 나 치시대 프랑스의 정치를 조작함으로써 당시에는 진정한 투쟁이 없었다고 기억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대중문 화의 역사 재현은 민중이 ‘기억해야 하는 것’만을 보여 줌 으로써, 기억을 통제하고 저항의 동력을 차단하기 때문에, 현대의 투쟁은 대중의 기억을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Foucault, 1977, 18∼36). 1977년 에든버러영화제는 영화의 역사·생산·기억 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Edinburgh Film Festival), 같은 해 영화잡지 ≪스크린≫으로 지면을 옮겨 심화되었다. 영화 이론은 연구 방법론의 시간적 차원을 회복해 특정 시기의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관계에 집중해야 하며(Mark Nash & Steve Neal, 1977, 77∼91), 역사영화 가 대중이 ‘기억해야 할 것’만을 보여 주고 있다면, 기억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전유(appropriation) 하는 투쟁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더불어 역사학계의 일부는 영화를 역사의 기록으로 받 아들였다. 영화는 광학적 기록과 정보를 보존하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거나 관람한 사람들의 야망, 강박 그리고 좌절 의 기록이고, 특정 시기의 심리, 사회, 역사 연구로 가는 길 을 열어 주는 질료(raw material)다. 마르크 페로는 소비에 트 무성영화 시기의 영화들에서 그 시대의 심리 구조, 그 리고 ‘망탈리테(mentalité, 그 시대의 정신을 다른 시대와 구분하고 본질적인 차이와 심성적 한계를 결정하는 물질 적 구조를 의미한다)’를 찾아내면서, 1917년 소비에트 혁 명에서 뉴스릴에 나타난 시위 행렬을 통해 시위에 나선 혁 명의 주체 세력이 볼셰비키의 선전과 달리 대부분 ‘낫을 든’ 노동자가 아니라 농민이었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새로운 역사 쓰기

새로운 역사 쓰기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스타일을 구분하 고 구조화하는 방식(영화사를 스타일의 역사로 파악하며 영화의 형식 규범에 시대의 구조가 내재해 있다는 전제에 서 출발한다)과 인종지학적(ethnographic) 연구(1980년 대 이후에는 페미니즘의 관객 연구가, 그 이후에는 탈식민 주의론이 영화사와 만나면서 발전시켜 왔다)로 대표된다. 전통적인 역사서와 연구 성과는 의심받았고 새로운 사 실과 가설이 발굴되었다. 초기 영화사 연구는 많은 성과 가 집중되었던 시기다. 초기 영화사를 할리우드 고전적인


스타일의 전사(前史, pre-history)로 인식하던 것에서 독 자적 질서를 부여하고, 초기 영화가 고전적 할리우드 스타 일과 시공간의 논리, 내러티브 전략, 장르 구성, 영화와 관 객 사이의 관계에서 차이가 있었음을 밝혔다. 고전적 할 리우드 영화가 관객을 디제시스(diegesis) 안에서 환영을 즐기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과 달리, 초기 영화는 관객의 시각을 자극하고 긴장시키며, 불안과 긴장을 일으키는 공 격적이고 전시하는 형식을 보인다는 것이다. 1907년 이전 미국 영화의 주요 장르는 트릭영화, 꿈 영화, 추적영화, 멜로드라마, 소극 등이었고 이완된 구조 를 가지고 있어서 늘이거나 줄일 수가 있었다. 어떤 영화 는 반복적인 쇼트로 구성되어 있어서 기본 골격만 유지하 면 변형이 가능했다(John Fell, 1983; Elasaesser & Barker eds., 1991). 노엘 버치는 초기 영화의 이러한 형식적 특징 을 ‘원시적 재현 양식(primitive mode of representation)' 이라고 명명한 바 있었다. 할리우드 고전 영화의 제도적 재현 방식(institutional mode of representation)보다 느 슨하고 열린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상호 텍스트성이 강한 특징이 있다(Noël Burch, 1979). 페미니즘 관객 연구의 측면에서 접근한 영화사 연구도 활발하다. 패트리스 패트로(Patrice Patro)는 1920, 1930년


대 독일 바이마르 시기의 거리 멜로드라마(street film)에 주목한다. 이 시기 영화가 남성 주체성의 위기를 반영하 고 있다는 그동안의 연구가 인지하지 못한 측면을 비판하 고, 거리영화가 여성 관객에게 호소하는 형식과 여성의 욕 망, 판타지를 그려 내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1989). 이 밖 에도 여성 감독을 발굴해 영화 생산과 소비를 여성의 관점 에서 재해석한 연구들도 있다. 새로운 영화 역사 쓰기는 영화가 대중매체의 일부로서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을 재구성하고, 역사적 사실을 웅변하기도 하며, 새로운 의미와 사실을 생산한다 는 점을 입증했다. 현대에서 영화가 생산하는 이미지는 비공식적 역사 이상의 것이 되었고 역사의 주체가 되었다. 새로운 영화 역사 쓰기는 신역사주의(new historicism)와 영화 이론의 성과를 결합한 역사를 지향하고 있다. 1970년대의 이론은 그 막대한 파급력과 의미에도 불 구하고 비싼 대가를 치러 왔고 역사연구가 부각되었다. 그러나 새롭게 대두된 역사 연구도 여전히 문제점을 지니 고 있다. 역사 쓰기에서 개별 공간의 연구가 거대 담론의 모든 실수를 버릴 수 있는 것으로 가정되어 온 것은 아닌 가 하는 점이다. 새로운 역사쓰기와 역사적 특이성에 대 한 강조가 이론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


화 역사쓰기는 역사의 영역에서 역사와 이론의 결합에 대 한 고민이면서, 보편성의 층위와 개별적 연구가 어떻게 만 날 것인가에 대한 길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한국영화사 연구의 흐름 한국영화사 연구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부터 많은 진전 을 이루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노력으로 옛 한국영화 를 관람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으며, 원로 영화인들 의 구술 기록과 신문기사, 잡지 등을 정리한 자료집도 발 간되고 있다. 식민지 시기 영화가 발굴되어 작품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 분야의 아카이빙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역사적 자료에 대한 접근이 용 이해 졌다. 현대 한국사회의 성질과 문학, 연극, 건축, 만 화 등의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다룬 인접 분야의 연구도 활 발해지면서 ‘한국 영화 역사’가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이 풍 성해지고 있다. 역사 연구는 비록 폐허의 잔해에서도 시대의 풍경과 담 론을 구성하는 작업이지만 1차 사료의 발굴과 복원은 무 엇보다 중요한 토대다. 영화사가 새로운 사실을 발굴하여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 고 다시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역동적인 작업이라는 인식


은 한국영화사 연구의 소중한 진전이다.

󰡔󰡔한국 영화 역사󰡕󰡕의 관점

󰡔󰡔한국 영화 역사󰡕󰡕는 역사학계와 한국 영화사 연구의 성과 를 결합하고 한국 영화를 현대사의 흐름에 따라 소개하고 자 기획했다. 한국 영화사는 어떻게 인식하고 접근하는지에 따라 다

양한 관점과 사실을 서술할 수 있다. 󰡔󰡔한국 영화 역사󰡕󰡕는 한국 영화가 말하고 있는 시대의 기록이며, 그 영화를 생 산하고 소비한 시대의 대중심리와 사회구조에 대한 성긴 프레임을 짠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영화는 식민지 조선에 양풍(洋風)과 함 께 도래해 대중문화의 꽃으로 자리 잡았다. 1900년경에 첫 상영이 이루어진 후, 1910년대 극장가의 형성과 함께 전파되었고, 1920, 1930년대에 걸쳐 관람이 보편화하 면서, 가두(街頭) 모던 생활의 일부로 대중에게 환상을 제공했다. 이에 비해, 한국 영화 제작 역사는 1919년 <의리적 구 토(義理的仇討)>가 연쇄극(kino-drama)으로 만들어지고, 1923년 <월하의 맹서>가 완전한 극영화로 공개되면서 시 작되었다. 영화가 보편화된 1934년 조선에서 상영된 전체


영화 편수 중 조선 영화의 비율은 4%에 불과하며, 1940년 에서야 국민 1인당 관람횟수(외국 영화 포함)가 1회에 도 달한다. 해방 후 1950년대 중반까지도 기록영화와 뉴스 외의 장편 극영화 제작은 미진했다. 한국 영화가 산업적 으로 융성했던 1960년대와 2000년대 이후에만 한국 영화 점유율이 50% 내외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이외 시기에는 15.9(1993)∼40% 사이에 걸쳐 있었다. 따라서 한국 영화 역사를 한국인이 한국 자본으로 제작 하고 한국 문화와 정서를 다룬 작품들의 기록으로 이해한 다면 그 폭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서양에 기원을 둔 기계 복제의 예술이며,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하는 산업일 뿐 아니라, 상영 지역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매개하는 문화다. 또한 영화 역사는 그 기원부터 국제적으로 유통되어 온 제작과 소비의 순환 고리를 구성하고 있어서, 민족 국가마 다 차이가 있으면서도 유사성을 공유하는 장르적 군집을 형성하곤 했다. 일례로 1960년대 마카로니 웨스턴과 홍콩 의 검술영화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검객 영화 제작을 촉진해 장르의 지역화가 이루어졌다. 동일한 문화 상품을 소비하고 제작함으로써 세계적 보편성을 매 개하면서 동시에 각 민족 국가의 지역성을 표현해 온 것이


다. 이와 같은 현상이 세계 영화 역사의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한국 영화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근대 의 형성과 외래의 수용을 포함한 사회문화사이자, 민족 영화 제작과 소비의 장이면서, 전 지구적 보편성을 담지 한 시간의 흐름이다.

시기 구분 기준과 주제

󰡔󰡔한국 영화 역사󰡕󰡕는 현대사와 한국 영화의 시기별 특징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역사 기술이 존재 했던 것들을 듬성듬성하게 재현한 것일 뿐이지만, 이 책 에서는 한국 영화의 세세한 제작 기록과 사실은 상당 부 분 누락될 수밖에 없었다. 짧은 지면을 변명삼아 각 시기 를 다른 시기와 구별하는 특징을 명확하게 보여 주고 싶었 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역사󰡕󰡕의 시기 구분은 이제까지 기술해온 것

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역사의 시간성은 다양한 층위와 단면을 지니는 연속적인 흐름이며, 시기 구분은 역사의 불 연속적인 단절과 질적 변화가 일어난 문턱을 표지하는 구 분점으로 인식했다. 일제 식민지 시기는 활동사진과 극장가의 형성(1895∼


1923), 식민지 대중문화와 무성영화(1923∼1935), 유성영 화와 근대의 삶 그리고 군국주의(1935∼1945) 등 세 부분 으로 분류했다. 활동사진 상영 시기, 조선 영화 제작 출발, 그리고 유성영화의 시작을 기준으로 구분한 것이다. 영화 제작 형식의 전환, 일제의 식민 정책, 근대 도시문화 형성 이 어떤 현상으로 발현되었는지를 중심으로 보았다. 무성 영화는 <청춘의 십자로>(1934) 단 한 편만 보존되어 있어 영화의 특징을 통해 다른 방식의 시대 구분을 제안하기 어 려웠던 한계도 작용했다. 해방 후 1945년부터 1957년까지를 ‘정치적 격변기’ 라는 주제로 묶은 것은 다른 한국 영화사 책들과 차이가 있다. 이 기간은 일반적으로 1954년까지 묶이는 시기로 1955년 <춘향전>의 상영을 기점으로 한다. 그러나 1955 년까지 지배적인 장르는 전쟁영화였고, 1958년에 이르러 서야 극영화 중심으로 영화계가 재편되기 때문에, 영화의 기록성이 우선하던 시기로 보고 이 기간을 연장했다. 1958년에서 1962년을 ‘미국 문화, 근대화, 그리고 가족’ 이라는 주제로 별도의 시기로 분리한 것은, 이 시기에 한 국 사회와 영화 형식이 어떤 길을 갈지에 대해 여러 가능 성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는 1960년 4·19 혁명 과 1961년 5·16 군사 쿠데타의 격변기에 가족 드라마를


비롯한 가족 이야기를 생산했고, 1963년에서 1971년까지 는 영화정책이 체계를 갖추고 산업을 형성하며 장르영화 중심의 제도화 시기로 진입했다. 한편, 1972년에서 1979 년까지는 유신 독재 체제가 사회 전반의 규율과 분위기를 지배하던 시기이다. 한국 영화의 경향은 시대의 변화를 여러 징후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한국 영화는 현대로 진입하는 차이를 가 시화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지속되던 영화 정책과 구조 가 변화했고, 금지되었던 소재와 표현 방식이 가능해졌으 며, 사회 민주화에 화답하는 영화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 다. 1990년대에는 대기업 자본의 영화 투자와 미국 직접 배급이 정착했고, 소비 문화를 직접 반영하는 기획 영화와 함께, 2000년대를 맞이하는 작가 감독들의 데뷔작이 출현 했다. 2000년대 한국 영화의 성취는 정책 지원과 산업 성 장에 근거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상업적 가능성과 작가 성을 버무린 작품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과정을 기술하면서 한국 영화가 당대의 현실과 어 떻게 조우했고, 무엇을 드러내었는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한국 현대사의 사회문화적 변화와 이를 반영하거 나 예감하는 정책적, 산업적, 기술적 변화를 중요하게 다 루었다. 영화 정책과 산업의 변화가 미치는 영화의 제작


경향과 장르, 그리고 담론에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핵심적 으로 요약하는데 집중했다. ‘코리안 뉴웨이브’나 ‘작가주 의’ 감독의 영화를 등장한 시기 중심으로 기술하거나, 시 기 구분을 벗어나는 내용을 한 시기에 통합 서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의 영화 역사 오늘날의 역사 쓰기(historiography)는 어떤 단일한 관점 도 부정한다. 근대와 전근대가 공존하는 식민지 시기, 다 양한 욕망이 투사된 스크린과 관객의 역사, 민족에 대한 관념 등에 구체적으로 접근함으로써 당대의 심리 구조, 욕 망, 환상에 대한 다수의 역사를 펼치려고 한다. 역사 서술 은 영화사의 가설을 검토하고, 영화를 분석하며, 정치학 과 영화 사이의 접합점을 밝히는 현실의 실천이다. 역사 적인 작업은 불변적인 것처럼 보이는 영화 제도가 우연적 인 것임을 보여 줌으로써 현재가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것 임을 밝혀내고자 한다. 한국 영화 역사 쓰기는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역화 (localization)가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시대에 한국 영화 를 정의하는 것부터 점점 더 어려워졌다. 한국형 블록버 스터는 할리우드의 액션 장르를 ‘공개적’으로 차용해 민족


의 역사와 감정을 버무렸으며, 각 국가와 공동 제작 영화 는 다양한 출처의 자본, 문화, 인력이 공동 작업한 혼종 (hybrid)의 상품을 내놓고 있다. 국가가 영화 제도를 규율 하고 통제하는 시기는 멀리 지나고 있으며, 영화 산업은 한국 영화가 소재와 표현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달성할 만큼 성장해 있다. 한국 영화가 하위 문화로 간주되던 역 사도 지나갔다. 그 자리는 산업화에 따른 다양성의 문제, 지속 성장을 위한 과제, 글로벌화에 대한 대응 등의 화두 가 대신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한국 영화를 둘러싼 담론은 그 형태 를 달리할 것이고 역사가 되어 간다. 영화 역사 쓰기는 시 간에 대한 그칠 수 없는 저항이자 재현이다. 한국 영화사 는 현실의 역동성에 의해 끊임없이 다시 쓰여질 것이다.

* ‘영화사 쓰기 방법론’은 김미현(2003)을 요약 정리했다.


참고문헌 김미현(2003), 영화, 역사와 관계 맺기, 󰡔󰡔영상예술연구󰡕󰡕󰡕3호, 9∼28쪽.

로버트 알렌 · 더글라스 고메리 저, 유지나 외 역(1997). 󰡔󰡔영화의 역사: 이론과 실제󰡕󰡕. 까치.

마르크 페로 저, 주경철 역(1999). 󰡔󰡔역사와 영화󰡕󰡕. 까치. Edinburgh Film Festival(1977). History/Production/Memory.

Edinburgh Magazin(no 2). John Fell(1983). Film Before Griffith. Berkeley &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Mark Nash & Steve Neal(1977). Reports from the Edinburgh Festival, Film: ‘History/Production/Memory.’ Screen 18. 4(Winter, 77/78), pp.77∼91. Noĕl Burch(1979). Film’s Institutional Mode of Representation and the Soviet Response. October 11(Winter, 1979), pp.77∼96. Patrice Petro(1989). Joyless Street: Woman & Melodramatic

Representation in Weimar Germany. Princeton University Press. Thomas Elasaesser & Adam Barker(eds.)(1990), Early Cinema:

Space Frame Narrative. B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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