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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에 흔들리는 한국 탐정 홈스나 뤼팽, 푸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냉철한 계산으로 기만과 술수를 관통한다. 한국 탐정 유불란은 사랑에 약하다. 피의자 주은몽에게 향하는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실패하지만 그래서 정겹다.

1939년 2월 17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마인› 삽화


인텔리겐치아 2158호, 2014년 8월 6일 발행

무서운 책 4. 김현주가 엮은 김내성의 ≪초판본 마인 천줄읽기≫

장안의 인심은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흥분과 렵기와 공포에 몸부림첫다. 그들은 한곳에 모히기만 하면 불가면의 이야기요 주홍마의 이야기로 해를 보냇다. 그들은 백영호 씨의 영혼을 애도하기보다 먼저 복수귀 해월의 기 상천외한 재조를 찬양하엿다. 콩알만 한 가 슴을 응켜쥐고 바들바들 떨고 잇는 은몽의 신 세를 가련타 하기보다 먼저 순정을 짓밟히운


소년 승려 해월의 애끌튼 심정에 한숨짓기도 하엿다. 이리하야 백영호 씨 살해사건은 공 포와 기적과 신비를 남겨노코 또다시 미궁으 로부터 미궁으로 빠저들기 시작하엿다. 이 처럼 사건이 다시 미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도회의 각 신문지는 명탐정 유불란 씨의 출마 를 대서특서하야 부르짓게 된 것도 결코 무리 는 아니엇다. -≪초판본 마인 천줄읽기≫, 김내성 지음, 김현주 엮음, 71~72쪽

살인 사건인가? 그랬다. 백영호가 칼에 찔려 살해되었다. 주 은몽도 다쳤다.


누가 죽였나? 해월이다. 승려 출신에 붉은 망토를 입고 탈 을 썼으며 신출귀몰한다. 살인을 저지른 뒤 종적을 감췄다. 살해 동기는 무엇인가? 여주인공 주은몽에게 버림 받고 앙심을 품 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영호가 그녀의 남편 이다. 주은몽은 어떤 인물인가? 절세의 미인이자 유명한 무용가다. 출세작 제목을 따 ‘공작부인’이라고 불린다. 갑부인 백영호와 결혼했다.


사건 현장은 어디인가? 주은몽이 개최한 가장무도회다. 명성 높은 예술가, 실업가, 변호사가 초청받았다. 해월은 검거되었나? 경찰은 그를 잡지 못한다. 그래서 명탐정으 로 알려진 유불란이 사건에 개입했다. 오상 억이란 이름의 청년 변호사도 사건을 해결하 려고 동분서주한다. 미결 사건으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다. 해월이 다시 나타난다. 이번에는 백 영호의 아들 남수를 살해한다.


치정 사건이 아닌가? 살인의 진짜 동기가 밝혀진다. 해월은 백씨 일가에 오랜 원한이 있었다. 오상억은 그가 엄여분이란 여인의 아들일 거라 추측한다. 백영호는 30여 년 전 고향에서 엄여분을 능 욕하고 아이의 아버지였던 사촌 형 백문호를 살해했다. 반전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탐정 유불란의 입에서 시작된다. 그는 엄여 분의 아이가 확실히 사내였냐고 묻는다. 해월의 정체가 열쇠인가? 아직 알 수 없다. 과연 실재한 인물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유불란의 다음 착점은 어디인가? 해월이 여자일 수 있고 주은몽이 만들어 낸 허상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은 해월 이 주은몽과 동일인물이라고 선언한다. 여기가 종착점인가? 아니다. 주은몽이 죽는다. 사건은 다시 반전 을 맞는다. 뭐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오상억과 유불란의 추리가 충돌한다. 마침 내 2차까지의 살인 사건, 곧 백영호와 백남수 의 피살 사건의 범인은 주은몽이라는 것이 유 불란에 의해 밝혀진다.


주은몽은 누가 죽였는가? 그녀는 죽었다. 그러나 살해당한 것은 아니 었다. 그럼 자살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부모의 원수를 갚고 목숨을 버렸다. 이 소설의 매력은 무엇인가? 역동적 서사다. 범행 발발, 용의자 추적, 해 결, 증거의 제시와 반전이 꼬리를 문다. 표면 에 드러난 서사 맥락만 따라가다가는 잘못된 추론에 빠지지만, 작중 등장인물이 찾아낸 실마리가 결정적 추론의 계기가 되게끔 복선 이 깔려 있다. 치밀한 구성 속에서 사건이 긴 박하게 전개되며 반전이 연속되는 묘미를 느


낄 수 있다. 서사에 힘을 주는 이야기 장치는 무엇인가? 유불란이라는 탐정의 캐릭터다. 셜록 홈스 나 뤼팽이 철저히 이성적 사고에 기초한 탐정 이라면 작가 김내성이 창조한 유불란은 감정 의 동요와 그에 따른 추리의 실패를 그대로 드러낸다. 감정의 동요란 무엇을 말하는가? 유불란은 주은몽에게 연애 감정을 품어 정확 한 사건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다. 스토리텔링은 어떤가? 과거의 일화와 현재의 사건을 교차시키면서


인물 관계나 사건 전개에서 아이러니를 반복 해 드러낸다. 서사의 역동성을 배가시키는 또 다른 장치다. ≪마인≫이 인기를 끈 계기는 무엇인가? 김내성은 논리적 추론과 거듭된 반전을 통해 범인을 추적하는 서사 방식을 사용했다. 당 대 독자들에게는 낯선 추리 기법이었다. 백 영호와 오상억은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부를 쌓은 물질적 욕망의 화신이라는 사실이 밝혀 진다. 반면 주은몽은 백영호와 백남수를 살 해했지만 부모의 원한을 풀기 위해 자신마저 희생한 인물로 인식된다. ≪마인≫은 근대 의 경제적 기반인 자본과 근대적 지식의 소유 자인 자본가의 비윤리성을 폭로했다. 결국


독자들은 이런 부조리를 지탱하는 것이 일본 의 식민 질서와 가치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김내성은 한국 탐정소설에서 어떤 위치에 있 는가? 그는 한국 탐정소설의 기원을 열었다. 일본 와세다대학 졸업 후 귀국해 탐정소설가로 등 단했다. 본격적인 추리의 세계를 보여 주었 을 뿐 아니라 소설 20편, 평론 5편을 발표해 양적으로도 당대 작가들을 압도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현주다. 한양대학교 기초·융합교육원 교수다.


피의자에 흔들리는 한국 탐정 홈스나 뤼팽, 푸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냉철한 계산으로 기만과 술수를 관통한다. 한국 탐정 유불란은 사랑에 약하다. 피의자 주은몽에게 향하는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실패하지만 그래서 정겹다.

1939년 2월 17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마인› 삽화


초판본 마인 천줄읽기 김내성 지음 김현주 엮음 한국 근현대소설 2013년 8월 1일 출간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216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魔人 마인


차례

해설 ·······················9 지은이에 대해 ··················19 가장무도회(假裝舞蹈會) ·············25 제1차(第一次)의 참극(慘劇) ············49 제2차(第二次)의 참극(慘劇) ············75 의혹(疑惑)····················97 유 탐정(劉 探偵)의 오뇌(懊惱) ··········120 의외(意外)의 선언(宣言) ·············145 해월(海月)의 정체(正體) ·············175 탐정폐업(探偵廢業) ···············196 엮은이에 대해··················215


≪마인≫, 조선일보, 1939. 2. 17


가장무도회(假裝舞蹈會)

一 세게범죄사(世界犯罪史)는 일천구백삼십× 년 사월 십오 일을 꿈에라도 이저서는 안 될 것이다. 실로 야수(野獸)와 가티 잔인하고도 한편 신기루(蜃氣樓)처럼 신비롭고 마도 (魔道)1)의 일루미네−슌2)처럼 호화로운 이 죄악의 실마리 는 그날 밤− 저 세게적 무용가 공작부인(孔雀夫人)의 생 일날 밤부터 시작되엿던 것이다. 공작부인이 세게적으로 진출하야 구미 각국에서 자기의 예술과 더부러 조선이라는 이름을 기운껏 선양하고 다시 서 울로 도라온 것은 바루 작년 느진 가을이엇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주은몽(朱恩夢)이라는 사실 을 이저버린 듯이 그를 공작부인이라고 불럿고 그 역시 그 러케 불리우는 것을 그리 불명예라고 생각하지는 안는 듯시

1) 마도(魔道): 불교에서 악마의 세계를 의미함. 2) 일루미네−슌: 영어 illumination의 1930년대 한글식 표기. 여기서의 뜻은 네온사인, 조명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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펏다. 사람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공작부인은 벌써 삼십의 고개를 넘엇다고도 하고 아직 이십이삼 세박개 안 되엿다고 도 하느니만큼 그의 나이는 가히 추측할 길이 업섯스나 그 의 파트론인 백영호(白英豪) 씨와 약혼한 채로 아직 결혼식 을 거행하지 안헛다는 사실로 미루어보매 그가 아직 미혼의 처녀라는 것만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리고 공작부인이라는 명칭은 그의 출세작 <공작부인(孔雀夫人)>으로부터 불 리워지는 일종의 애칭이라고도 할 수 잇다. 그처럼 주은몽을 세게적 인물로 만드러준 그의 출세작 <공작부인>이 상연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사 년 전 동경 ‘히비야’ 음악당의 호화로운 스테−지에서엿다. 퍼붓는 듯한 찬양의 소리 ― 앵콜에 앵콜을 거듭한 주은 몽의 인끼는 그야말로 하늘을 뚤흘 듯시펏다. 도하의 각 신 문지는 반도의 무히 주은몽을 세게적으로 선전하기를 아까 워하지 안헛다. 주은몽이란 이름은 어느듯 공작부인이란 애칭으로 변햇던 것이다. 그때 마침 미술 연구차로 파리에 가 있던 백만장자 백영 호 씨가 ‘요꼬하마’ 부두에 나리자마자 조선이 나은 세게적 무히 주은몽의 인끼에 놀라는 한편 그를 은연히 사모하는 정을 남달리 두텁게 품고 수차 주은몽과 만나는 사이에 두 26


사람 사이에는 어느듯 화려한 미레를 굿게굿게 맹서하는 속 삭임이 오고 가고 하엿다고, 그리고 그해 가을로 주은몽은 약혼자 백영호 씨의 후원을 어더 구미로 무용행각을 떠낫던 것이라고 ― 이것이 소위 미들 만한 소식통이 확보하는 뉴 −쓰로 되여 잇다.

그것은 하여튼 필자는 이만한 예비지식을 독자 제군에 게 던저주고 이제부터 세게범죄사상 이즐 수 업는 일천구백 삼십×년 사월 십오일, 명수대 주은몽의 저택에서 열린 가 장무도회(假裝舞蹈會)로 인도하고저 한다. 주은몽 ― 아니, 공작부인은 자기의 축복바든 탄생을 가 장 흥미 잇고 가장 호화롭게 기념하기 위하야 사월 보름날, 한강 건너편 명수대 자기 저택에서 조선서는 보기 드문 가 장무도회를 열기로 하엿던 것이다. 그날 밤 ― 남국으로부터 화신(花信)을 싯고 차저오는 바람세조차 훈훈한 그날 밤 손님들을 태운 자동차가 달비체 무르녹은 한강을 황홀히 나려다보며 일로 명수대를 향하야 마치 그림처럼 미끄러저 간다. 오늘 밤 공작부인의 초대를 바든 손님들은 가장무도회 라는데 벌써 적지 안흔 흥분과 엽기심을 느낄 뿐만 아니라 절세의 미인이요 세게적 무히인 공작부인과 손목을 마조 잡 고 춤출 수 잇다는 그 광경을 다시 씹어 상상할 때 그 황홀찬 27


란한 일순간을 전 생애의 금자탑처럼 고히고히 가슴속 기피 모시려는 것이엇다. 그들은 공작부인의 초대장을 바든 그날부터 동경이나 혹은 해외에서 배워가지고 온 서투른 스텝을 레코−드에 마추어가면서 연습하기를 게으르지 안헛다. 초대를 바든 손님들 가운데는 유명한 실업가라든가 명 성 노픈 변호사 가튼 인물도 석겨 잇섯스나 대체로 보아서 문사 미술가 음악가 연극인 가튼 예술가가 대부분이엇다.

二 도하의 각 신문지는 공작부인의 가장무도회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엿다. 그중에는 공작부인이 너무나 광적(狂的)인 이 국적(異國的) 취미를 비웃는 기사도 업지 안헛스나 하여튼 조선서는 처음 보는 기사인 만큼 쩌−널리스트들에게 잇서 서는 한 개의 조흔 미끼가 아닐 수 업섯다. 그것은 하여튼 공 작부인으로부터 영예스러운 초대를 바든 손님들은 지금 공 작부인의 화려한 자태를 눈아페 그려보면서 명수대를 향하 여 달리고 잇다. 더구나 그것이 힘만 잇스면 누구던지가 딸 수 잇는 야생 28


화(野生花)가 아니고 장래의 남편 백영호라는 울파주3) 안 에 천연히 피여 잇는 다리야인지라 사람들은 더한층 흥분과 호기심을 안 느낄 수 업섯다. 뿐만 아니라 제일미술전람회(第一美術展覽會) 조각부 (彫刻部) 심사원인 백영호 씨는 제아모리 백만장자랄지라 도 벌서 오십의 고개를 넘어선 중늙은이다. 하기는 비록 오십이 넘엇다 할지라도 그의 단정한 용모 와 교양 잇는 예술가적 타입은 그로하야금 적어도 십 년은 점게 하엿다. 더구나 미술 연구차로 다년간 세련된 파리생 활을 격거온 영향도 만흐리라. “그러나, 그러나…” 하고 중얼거리면서 공작부인과 백영호 씨의 약혼을 남 달리 달갑게 여기지 안는 사람이 한 사람 잇스니 그것은 지 금 한강철교를 호기 잇게 달리고 잇는 한 대의 세단 속의 인 물이엇다. 그 세단 속의 인물 ― 씰크햇트에 택시−드를 입고 힌 장갑을 낀 손에 흑칠의 단장을 들고 귀미테서부터 턱 아래 까지 시컴헌 수염을 곱게 기르고 게다가 검은 모노클(외알

3) 울파주: 울바자(바자로 만든 울타리)의 평안도 사투리. 바자는 ‘대, 갈 대, 수수깡, 싸리 따위로 발처럼 엮거나 결어서 만든 물건’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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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까지 낀 양은 마치 파리나 런던의 사교게에서 흔히 보 는 교양 잇는 풍류신사다. 아니, 독자 제군이 만일 탐정소설의 팬이랄 것 가트면 이 세단 속의 인물이 저 ‘모리스·르블랑’의 탐정소설의 주인 공 ― 파리 경시청을 마치 어린애처럼 농락하기를 즐겨하 는 무서운 도적 ‘아르세−느·루팽’으로 가장하엿다는 것을 곳 간파할 것이다. 그리고 제군이 만일 가장술(假裝術)에 대한 지식이 풍 부하다면 그의 수염이 결코 임시로 부친 가짜 수염가티 보 이지 안는 것만 보아도 그의 가장술이 얼마나 훌륭하다는 사실을 가이 짐작할 줄 안다. 그는 지금 자기의 변장을 자기 이외에는 한 사람도 간파 할 수 업스리라는 자부심을 한 아름 품고 눈아페 닥처오는 공작부인의 저택을 물끄럼이 바라보면서 중얼거린다. “공작부인이 진심으로 저 늙은 백영호 씨를 사랑할 수가 잇슬 것인가? …아니다! 공작부인이 과연 백영호 씨와 결혼 을 한다면 그는 자기의 청춘을 어떤 제물로 바치려는 정략 결혼일 것이다 ― 가난한 예술가와 돈 만흔 파트론 사이에 생기기 쉬운 의무 결혼! 공작부인은 현재 저 쾌활한 청년 화 가 김수일(金秀一)을 사랑하고 잇지 안는가?…” 그때 자동차는 벌써 공작부인의 정문 압까지 다달앗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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