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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무서움 집 잃은 개, 머리카락, 우리 집 거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 일상과 일용의 뒷면을 본 인간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을 발견한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모파상은 알고 있었다.

‹지옥에서의 자화상›, 에드바르 뭉크, 1903


인텔리겐치아 2160호, 2014년 8월 7일 발행

무서운 책 5. 노영란이 옮긴 기 드 모파상의 ≪모파상 환상 단편집≫

대낮처럼 훤하게 모든 것을 볼 수 있는데, 거 울 속에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거울이 텅 비어 있었다, 그냥 깨끗하게, 훤하게, 빛으로 가득했다. 내 모습이 그 안에 없었다… 나는 분명 그 앞에 서 있는데! 위에서부터 아래까 지 투명하게 빛나는 거울을 보았다. 그리고 정신 나간 눈으로 거울을 쳐다보았다. 앞으 로 더 다가설 수가 없었다. 그가 분명히 거기


있다는 것, 그렇지만 그가 또 한 번 내 손아귀 에서 도망칠 거라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그 의 몸이 나의 모습을 삼켜 버렸다는 것을 느 끼면서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를라>, ≪모파상 환상 단편집(Contes fantastiques de Maupassant)≫, 기 드 모파상 (Guy de Maupassant)지음, 노영란 옮김, 90쪽

그가 누구인가? 오를라다. 오를라는 누군가? 알 수 없다. ‘나’는 그를 잡기 위해 온갖 노력 을 했지만 실패했다.


‘나’는 언제부터 그를 느꼈는가? 신경쇠약과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할 때 다. 누군가 자신을 뒤쫓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지만 어떤 존재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신경쇠약에 의한 착각인가? 아니다. 어느 날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깼다. 물 을 마시려 했다. 잠들기 전에 분명히 가득 차 있던 물병이 비어 있었다. 방 안에는 ‘나’밖에 없는데, 누가 물을 마신 걸까? 누구인가? 오를라다.


그의 짓인지 어떻게 확신하는가? 혹시 ‘나’가 그런 것인가 해서 실험을 했다. 물 병과 우유병을 하얀 천으로 감았다. 손과 수 염, 입술에 흑연을 묻히고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 보니 하얀 천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 는데 물과 우유는 사라졌다. 그것이 유일한 증거인가? 또 다른 일도 있었다. 환한 대낮에 산책을 하 다가 장미나무를 바라보았다. 가지가 저 혼 자 휘더니 부러졌다. 꽃이 곡선을 그리며 움 직이다가 허공에 멈추었다. 오를라의 정체가 뭔가?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고 ‘나’의 착각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나’일 수도 있다. 미지의 존재라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몽생미셸을 여행할 때 수도원에서 신부를 만 났다. 그가 미지의 존재를 이야기했다. 그가 말한 미지의 존재는 어떤 것이었나?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지상에서 극히 일부 일 뿐이다. 예를 들어, 바람은 건물을 부수고 인간을 죽이고 거대한 파도를 만들고 무서운 소리를 낸다. 하지만 인간은 바람을 볼 수 없 다. 그런데도 바람은 분명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오를라에 대해 ‘나’는 뭘 할 수 있 는가? 그의 지배력이 커지자 그를 죽이려 한다. 그 가 집 안에 들어왔을 때, 아니 그렇다고 생각 하자 문을 모두 잠그고 불을 질렀다. 그는 불타 사라졌는가? 실패한다. ‘나’는 일기의 끝에 그를 죽이기 위 해서는 “내가 죽어야만 하겠지…”라고 썼다. 그가 ‘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를라>는 모파상 환상 단편 가운데 어느 지점에 있는가?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오를라는 괴기스러 우면서도 신비하고, 동시에 소름끼치는 존


재다. 그것은 ‘나’의 외부에 존재할 수도 있 고, 내부에 존재할 수도 있다. 복합적인 해석 을 가능하게 하고 끝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1887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 <오를라> 는 1885년 ≪질 블라스≫에 실은 <어느 미 치광이의 편지>와 이듬해 같은 신문에 실은 <오를라>의 연장선에 있다. <어느 미치광이의 편지>는 어떤 작품인가? 편지 형식의 글이다. 신체의 능력은 보잘것 없지만 인간을 둘러싼 것들은 무한하다는 것 을 깨달은 주인공이 미지의 존재를 느끼는 과


정을 그렸다. ≪질 블라스≫판 <오를라> 이후 작품은 어 떻게 발전하는가? 미지의 존재는 마침내 이름을 갖게 된다. 주 인공은 정신과 전문의와 자연과학자 앞에서 초현실적 세계에 대한 생각과 주장을 선명하 게 드러낸다. 최종판은 일기 형식으로 바뀌 었고 사건이 추가되었다. ‘오를라’는 무슨 뜻인가? 여러 의견이 있다. 오를라(Le Horla)가 모르 (mort), 오뢰르(horreur), 위를르망(hurlement) 곧 죽음, 공포, 울부짖음 등을 연상시키기 때 문에 그렇게 지었다는 설이 있다. 당시 유행


하던 전염병 콜레라(choléra)의 철자를 바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모파상은 누구인가? 일반적으로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 작 가로 알려졌지만, 환상 단편을 많이 썼다. 그 의 환상 단편들은 프랑스 환상문학의 대표작 으로 평가받는다. 어떤 작품을 썼는가? 1880년 중편 <비곗덩어리>로 데뷔했다. 데뷔하자마자 작가로서 인정을 받고 성공했 다. 이후 10년간 매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 다. ≪텔리에의 집≫, ≪마드무아젤 피피≫, ≪오를라≫ 등 중단편집과 ≪여자의 일생≫,


≪벨아미≫, ≪몽토리올≫, ≪피에르와 장≫, ≪죽음처럼 강하게≫ 등 장편소설을 썼다. 어떻게 살다 갔는가? 1850년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태어났 다. 문학 소양이 뛰어난 어머니와 여섯 살 아 래 남동생과 어린 시절을 보냈다. 루앙에 있 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어머니와 친분이 있 던 플로베르의 집을 드나들기 시작한다. 이 때 졸라, 위스망드, 도데 등 당대 위대한 문인 을 소개받았다. 1877년경 매독에 걸렸고 몇 년 뒤 매독균이 온몸에 퍼지기 시작해 시력장 애를 겪는다. 1891년 시력장애가 심해지며 환영에 시달렸다. 이듬해 휴양을 위해 니스 에 있는 동안 자살을 시도해 파리에 있는 블


랑슈 박사의 병원에 입원했다. 이 병원에서 1893년 사망했다. ≪모파상 환상 단편집≫에는 어떤 작품을 실 었는가? <어느 미치광이의 편지>, <오를라>의 ≪질 블라스≫판과 최종판, <물 위에서>, <유령>, <마드무아젤 코코트>, <머리 카락>, <그 남자?> 등 모파상의 대표 환상 단편 여덟 편을 엮었다. 모파상 환상 단편의 특징은 뭔가? 귀신이나 뱀파이어, 악마 같은 것들이 등장 하지 않는데도 불안과 공포를 일으킨다는 것 이다. 모파상은 집 잃은 개, 머리카락, 자기


집 거실 등 평범하고 익숙한 대상들을 활용했 다. 평범한 일상이 불안과 공포의 근원지로 바뀔 때 독자는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두려움 을 느낀다. 당신은 누구인가? 노영란이다.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한다.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무서움 집 잃은 개, 머리카락, 우리 집 거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 일상과 일용의 뒷면을 본 인간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을 발견한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모파상은 알고 있었다.

‹지옥에서의 자화상›, 에드바르 뭉크, 1903


모파상 환상 단편집 기 드 모파상 지음 노영란 옮김 영국 소설 2009년 7월 15일 출간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170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Contes fantastiques de Maupassant 모파상 환상 단편집


어느 미치광이의 편지


친애하는 의사 선생님, 저를 선생님 손에 맡기겠습니다. 선 생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저의 기이한 정신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 니다. 저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고통과 환각에 시달리도록 저 자신을 내버려 두는 것보다 얼마간 요양소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더 나을지 판단을 해주십시오. 제 정신이 앓고 있는 특이한 병에 대한, 길고도 자세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크게 뜨고 있기 는 하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지고, 놀라지도 않고 이해도 못하면서,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며 말이지요. 저는 짐승들이 사는 것처럼 살았어요. 저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 을 관찰하고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 면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삶의 모든 역할을 수행 하면서,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것이 거짓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게 한 몽테스키외의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몸에 기관이 하나 더 있거나 하나 덜 있다 면 우리는 다른 지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 몸 이 이런 방식으로 되어 있지 않았다면, 우리 몸을 이루는 모 든 규칙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달랐을 것이다.” 15


저는 이 말을 여러 달 동안,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그 리고 조금씩 조금씩, 이상하게 밝은 빛이 제 안으로 들어왔 는데, 그 빛이 어둠을 만들었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신체 기관은 우리와 외부 세상을 연결하 는 유일한 매개체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자아를 형성하 는 내적인 존재는 신경조직에 의해 외부 세상과 접촉을 합 니다. 그런데 외부 세상은 그 크기나 지속 기간, 세상의 알 수 없고 셀 수 없이 많은 것들, 그것들의 근원, 미래 혹은 목적, 그것들의 모호한 형태와 끝없는 모습으로 인해 우리의 능력 을 벗어날 뿐 아니라, 우리의 신체 기관은 외부 세상의 아주 작은 단편들만 보여주는데 그것마저도 불확실하고 얼마 안 되는 정보들입니다. 불확실하다는 것은, 어떤 물질의 눈에 보이는 특성에 대 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오직 우리 신체 기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정보가 얼마 안 되는 것은 우리의 감각이 다섯 가지이 고 그 적용 범위와 오감이 밝혀낼 수 있는 것이 매우 제한되 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을 설명해 드리지요. 눈은 크기, 형태, 그리고 색깔 을 알려줍니다. 이 세 가지에 대해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16


눈은 우리 인간의 크기에 비례해서 중간 정도 되는 크기 의 것들을 보게 해줍니다. 그래서 어떤 것들에는 ‘크다’라는 단어를, 그리고 어떤 것들에는 ‘작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는 거죠. 왜냐하면 우리 눈의 약점 때문에 너무 크거나 너 무 작은 것은 인지하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거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세상의 거의 전부가 인간에게 감추어진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우주 공간에 있 는 별이나 물방울 속에 사는 미세 생물을 보지 못하는 것처 럼 말입니다. 만약 우리의 눈이 지금의 정상 능력보다 1억 배 정도 더 강해진다면, 그래서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알아볼 수 있고 지구의 주변에 있는 생물 들을 알아볼 수 있다 해도, 더 작은 수많은 생물들과 우리 눈이 닿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이 아직도 존재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크기에 대한 생각은 모두 틀린 것입니다. 큰 것에도 작은 것에도 끝이 없으니까요. 크기와 형태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오직 우리 신체 기관 하나의 능력에 따른 것이고 우리 자신과의 비교에 의한 것 이기 때문에 아무런 절대적인 가치를 갖지 않습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우리의 눈은 투명한 것도 보지 못합 니다. 우리 눈은 투명한 유리에 속아 넘어갑니다. 눈은 유리 17


를 공기와 혼동합니다. 물론 공기도 보지 못하죠. 색깔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색깔은 눈이 우리 몸에 부딪치는 빛을 화학적 성분에 따 라서 흡수하고 분해하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뇌에 색깔의 형태로 전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흡수하고 분해하는 비율에 따라서 색깔의 차이 가 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눈은 자신이 보는 방식, 혹은 크기를 분별하고 빛과 물체 사이의 관계를 측정하는 자신만의 임의적인 방식 을 뇌에 강요하는 것입니다. 청력을 살펴볼까요. 귀는 눈보다 더한데, 우리는 자기 멋대로인 이 기관에 속 고 그것에 놀아나고 있습니다. 두 개의 물체는 부딪치면서 일종의 공기의 진동을 일으킵 니다. 이 움직임은 작은 피부조직을 떨리게 만들고, 이 피부 조직은 사실 떨림에 불과한 이것을 바로 소리로 바꿉니다. 자연은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막은 소리의 형 태로 우리에게 전달하는 놀라운 특성을 가지고 있고, 세상 의 보이지 않는 파장들이 만들어내는 떨림을 진동의 숫자에 따라서 달라지는 소리의 형태로 전달하지요. 귀에서 뇌로 이어지는 짧은 경로 속에서 청각 신경이 수 18


행하는 이러한 변환 작업 덕분에 우리는, 대수학처럼 정확 하고 꿈처럼 몽롱한 것, 예술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 가장 시 적인 음악이라는 신기한 예술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미각과 후각은 어떠할까요? 우리의 미각과 코의 이상한 특성이 없다면 향기와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인류는 청각, 미각, 후각 없이, 그러니까 소리 와 맛, 냄새 없이도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신체 기관 하나를 덜 가졌다면 우리는 특별 하고 감탄스러운 것들을 모르고 살겠지만, 만약 우리가 몇 개의 신체 기관을 더 가졌다면 그동안 확인할 방법이 없었 기 때문에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을 발견 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면 서 착각하고 있고, 탐구되지 않은, 모르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거지요. 모든 것은 불확실하고 다른 방법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은 거짓이고, 모든 것은 가능하고, 모든 것이 의 심스럽습니다. 오래된 속담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확신을 표현해 보 지요, “진실은 피레네산맥 안에 있고, 오류는 산맥 너머에 19


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죠. 진실은 우리의 신체 기관 안에 있고, 오류는 그 옆에 있다. 우리가 사는 땅을 벗어나면 2 더하기 2가 더 이상 4가 아 닙니다. 진실은 지구에 있고, 오류는 더 먼 곳에 있다는 말이고, 전기, 최면, 의지 전달, 암시, 모든 종류의 최면술처럼 신비 한 것들은 숨겨져 있는데, 그 이유는 자연이 우리에게 그런 것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신체 기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 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감각이 저에게 보여주는 모든 것은 제가 인지하는 대로이고 다른 신체 기관을 가진 존재에게 이것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 같은 것을 믿는 일은 인간 신체 기관의 유사성에서 나오는 결과고 의견의 다양성은 신 경조직의 기능이 악간씩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까, 우리와 다르게 만들어진 인간들은 세상이나, 인생, 모든 것 에 대해 우리와 완전히 상반되는 생각을 가질 것이라는 결 론을 내렸습니다. 그러고는 저를 둘러싸고 있는 불가사의 한 것들을 의심하기 위해 초인간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 습니다. 제가 미친 걸까요? 20


제가 알려지지 않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저 자신에 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숨겨진 많은 비밀들을 의심하는 것 처럼 소리를 의심하는 귀가 없는 인간을 상상했고, 본질도 근원도 분별할 수 없는 청각 현상을 인정하는 인간을 상상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변의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공기 가 두렵고, 밤이 두렵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 거의 알 수 없고, 그리고 모든 것이 끝이 없는 무한대인 이상, 그 나머지는 무엇일까? 빈 공간이 아닐까요? 빈 공간 속에 무 엇이 있을까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간에게서 떠나지 않 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초자연적인 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공포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제가 끊임없이 우 주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제 신체 기관들을 예민하게 만들고, 자극하고, 보이 지 않는 것들을 감지하도록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의 존재라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공기 속으로 퍼지는 외침은 동물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 면 그 외침은 태어나고,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사라 지기 위해 다시 한번 모양을 바꾸니까요. 그러니까 형태가 없는 비물질적인 것들을 믿는 겁 많은 사람들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이 형태가 없는 것들은 누구일까요? 21


많은 인간들이 그들을 느끼고, 그들의 접근에 떨고, 그들 의 작은 접촉에 전율합니다. 그들을 가까이에서, 자기 주변 에서 느끼지만 식별해 낼 수가 없어요. 우리는 그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없고, 그들을 발견해 낼 수 있는 신체 기관이 없 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느 누구보다도, 제가, 이 초자연적인 존재들 을, 그들을 느낍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불 가사의한 것일까요? 저는 그것을 알고 있는 걸까요? 그들이 어떠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존재를 얘기할 수는 있습니다. 저는 보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것을, 실제로 존 재하는 것들을 보는 것처럼 보았습니다. 저는 밤새 움직이지 않고 테이블 앞에 앉아서 손으로 머 리를 괴고 그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어떤 손이, 아니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어떤 몸이 가 볍게 제 머리카락을 스친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는 몸뚱이가 없고, 무게도 없고, 인지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 에 저를 만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제 등 뒤에서 마루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가 뭔가 독특한 방식으로 소리를 냈 습니다. 저는 떨렸어요. 뒤를 돌아다보았지요. 아무것도 보 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생각하지 22


않았어요. 그런데 다음 날, 같은 시각에,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너 무 두려워서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분명히, 분명히, 분명히 방 안에 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보이 지는 않았어요. 방 안의 공기는 맑고 투명했습니다. 램프 두 개가 방 안의 모든 구석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는 다시 나지 않았고, 저는 조금씩 진정을 했습니 다. 하지만 불안했고, 자주 뒤를 돌아다보았어요. 다음 날, 저는 어떻게 하면 저를 찾아오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있을까 머리를 쥐어짜면서 일찍부터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그를 보았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 어요. 저는 벽난로와 천장에 있는 등을 모두 켰습니다. 축제를 벌이는 것처럼 불을 밝혔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두 개의 램 프가 켜져 있었습니다. 제 맞은편에는 참나무로 된, 기둥이 달린 오래된 침대가 있었어요. 오른쪽에는 벽난로, 왼쪽에는 문이 있었고, 문은 빗장을 질러 잠가두었어요. 등 뒤에는 거울이 달린 큰 장이 있었습니다. 그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 보았어요. 동공은 커 다랗게 열려 있었고, 눈은 이상했어요. 23


다른 날처럼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제, 그제, 그 소리는 9시 22분에 났습니다. 기다렸습니 다. 그 순간이 되었을 때, 저는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을 가졌습니다. 마치 무슨 액체 같은 것, 저항할 수 없는 액체 같은 것이 제 영혼을 잔혹하면서도 기분 좋은 공포 속에 빠트리면서 몸뚱이의 모든 작은 세포를 통해서 제 안으로 들어오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러고는 삐걱하 는 소리가 등 뒤에서 났어요. 너무 급히 휙 돌아서면서 일어나는 바람에 넘어질 뻔했 지요. 방 안이 대낮처럼 환하게 보였는데, 거울 속에 제 모 습이 안 보였어요! 거울이 비어 있었어요, 깨끗하게, 불빛 아래 환하게 밝혀진 채로. 제 모습이 그 안에 없었어요, 분 명히 저는 그 앞에 서 있는데. 저는 정신 나간 눈으로 거울 을 쳐다봤어요. 거울과 저 사이에 그가 있다는 것을, 제 모 습을 가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그 존재가 있다는 것을 느끼 고는 감히 거울 앞으로 가까이 갈 수가 없었어요. 아!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그러고는 거울의 안개 같은 몽롱함 속에서 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마치 물 을 통해서 보는 것 같은 몽롱함이었어요. 물이 왼쪽에서 오 른쪽으로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제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 주면서 미끄러져 가는 것 같았어요. 잠시 없어졌던 빛이 다 24


시 나타나는 것 같았어요. 제 모습을 가리고 있던 것은 윤곽 이 없었어요, 조금씩 환해지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불투명 체 같은 것이었어요. 그러고는 마침내 늘 거울 속에서 보던 것처럼 제 모습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항상 기다리고 있고, 이 기다림 속에서 제 머리가 혼란스러운 느낌이 들어요. 그를 기다리기 위해서 여러 시간 동안, 여러 날을, 여러 주 동안 거울 앞에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오지 않아요. 제가 그를 보았다는 것을 그가 알아버린 겁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그를 기다릴 겁니다, 죽을 때까지, 쉼 없이, 거울 앞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이제, 이 거울 속에서, 미친것들의 모습을, 괴물들, 끔찍 한 시체들, 무서운 짐승들, 잔혹한 것들, 미치광이의 머릿속 에서 떠나지 않는 거짓말 같은 모든 것들을 보기 시작합니다. 선생님, 이것이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될까요?

모프리뇌즈 드림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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