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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블라토프의 유머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두세 시간은 훌쩍 지난다. 독자는 첫 문장부터 웃기 시작한다. 책을 덮으면 진한 여운이 남는다. 눈물이 통과하는 웃음. 가족의 일생이 꼭 그렇다.

도블라토프의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 노라와 부인 옐레나


인텔리겐치아 2202호, 2014년 9월 4일 발행

추석 특집 가족 4. 김현정이 옮긴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Сергей Д. Довлатов)의 ≪우리들의(Наши)≫

그 후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사방 에서 나를 내쫓았다. 진짜 몇 푼 안 되는 일자 리도 앗아갔다. 나는 어떤 바보 같은 화물선 경비로 취직했 다. 그리고 거기서도 쫓겨났다. 나는 술을 엄청 마시기 시작했다. 아내와


딸아이는 서유럽으로 떠났다. 우리 두 사람 만 남았다. 더 정확히는 셋. 엄마, 나 그리고 개 글라샤. 노골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나는 형법 세 항목에 저촉되었다. 놀고먹는 것, 권력 도 전, ‘다른 형태의 무기 소지’ 세 죄명 모두 위조된 것이었다. 경찰이 거의 매일같이 나타났다. 그러나 나도 이에 대한 방어 수단을 구축했 다. 우리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에 살았다. 반대편 창문에서 게나 사흐노가 항상 불쑥 얼 굴을 내밀곤 했다. 그는 술고래 기자로, 많은 모주망태들이 그렇듯, 눈부실 정도로 고매


한 사람이었다. 온종일 창가에서 포트와인 을 마셔 댔다. 우리 현관 쪽으로 경찰이 오면, 게나는 수 화기를 들었다. “더러운 년들이 온다.” 그는 간결하게 보도 했다. 그러면 나는 바로 빗장 문을 걸어 잠갔다. 경찰은 빈손으로 떠나갔다. 게나 사흐노는 정직하게 일하고 1루블을 받았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우리들의≫,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김현정 옮김, 215쪽


‘나’는 누구인가? 소련의 작가다. 유쾌하지 않은 일의 발생은 어디서 비롯되었 는가? 그의 작품 세 편이 서구에서 출판되었기 때문 이다. 당시 소련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당국은 그의 작품에 체제 비판 내용이 들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사는가? 구치소에서 며칠을 살다가 나온 뒤 결국 어머 니, 개 글라샤와 함께 뉴욕으로 이민 간다.


도블라토프 자신의 이야기인가? 그렇게 봐도 된다. 실제로 그는 소련에서 책 을 낼 수 없었다. 출판사가 출간을 거부했다.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원고를 최종 수정한 상태에서 국가안보국의 개입으로 출 간은 물거품이 된다. 그의 작품이 서구에 알려진 경로는 어떤 것이 었나? 지하에서 돌던 그의 작품 몇 편이 1976년 러 시아 이민 잡지에 게재된다. 이 때문에 탄압 을 받자 1978년에 이민 길에 오른다. 오스트 리아 빈을 거쳐 뉴욕에 정착한다.


이 소설은 어디까지 사실인가? 작가의 이야기가 섞여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픽션이다. 한 러시아인 작가가 할아버지, 외 삼촌, 이모 등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 를 들려준다. 가족 열세 명을 주인공으로 삼 은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이다. 그 가 운데 작가 이야기도 등장한다. 뭘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한 가족 4대에 걸친 ‘우리들의’ 삶이다. 러시 아 제정 말기에 살았던 조부들의 삶부터 소비 에트 시절 부모와 작가 세대, 그리고 이민 후 미국에 정착해 사는 다음 세대의 이야기다. 자신과 소비에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 주려 했다.


도블라토프는 어떤 작가인가? 러시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현재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언제 고국에서 출간되는가? 안타깝게도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고국에 내 놓을 첫 단편집을 보지 못하고 1990년 생일 을 일주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소련 해 체 뒤 1993년에 그의 첫 번째 전집이 러시아 에서 발간됐다. 현재까지 매년 재발행될 정 도로 엄청난 판매 부수를 자랑한다. 그의 대중성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재미다. 그의 작품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두 세 시간 눈을 뗄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유머


는 단순한 우스개를 넘어선다. 어떤 유머인가?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서술과 등장인물 의 언행으로 독자를 배꼽 빠지게 한다. 실제 로 러시아 사람들은 첫 문장부터 웃기 시작 한다. 실컷 웃은 독자는 책을 덮고 나면 가벼 운 웃음 속에서 진한 여운을 느낀다. 이것이 도블라토프식 유머다. “눈물이 통과하는 웃 음.” 그런데도 그가 지향하는 유머는 가볍다. 잘 읽히는 이유는 뭔가? 평이한 단어와 구어체로 된 짧은 문장이다. 주변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는다. 그래서 작 품 내용은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이 평범


한 일상의 소재를 언어로 표현하는 데 도블라 토프가 들이는 노력은 굉장하다. 주변의 일을 어떻게 끌고 오는가? 실재 인물의 이름이나 직업, 사건들을 작품 속에 집어넣는다. 작품 속 이야기가 사실보 다 더 그럴싸해진다. ‘굉장한 노력’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한 문장마다 수백 번씩 쓰고 고치기를 반복한 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렇게 다듬고 또 다듬어서 탄생한 몇 단어로 이루어진 짤막 한 문장에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압 축적이면서도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군더 더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언어의 마술


사라고 불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정확하면서 도 쉬운 도블라토프의 문체는 러시아어의 진 수를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압축된 문장을 당신은 어떻게 옮겼는가? 구어체를 가능한 한 활용하면서도 재미와 가 볍지만은 않은 여운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도블라토프의 삶과 작품을 비교해 보면 이야 기는 실제가 아니라 픽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모호해 구분 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 역시 도블라토 프 특유의 창작 방법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현정이다. 부산대 노문학과에서 강의한다.


도블라토프의 유머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두세 시간은 훌쩍 지난다. 독자는 첫 문장부터 웃기 시작한다. 책을 덮으면 진한 여운이 남는다. 눈물이 통과하는 웃음. 가족의 일생이 꼭 그렇다.

도블라토프의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 노라와 부인 옐레나


우리들의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김현정 옮김 러시아 소설 2009년 5월 15일 출간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218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우리들의


1장 우리 모이세이 증조부는 수호보1)의 농사꾼이셨다. 유태인 과 농사꾼이라… 상당히 드문 결합이라 해야겠다.2) 극동에 서는 그럴 수가 있었다. 그의 아들 이사크가 도시로 옮겨갔다. 사건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돌려놓았다는 말이다. 처음에 그는 하얼빈3)에 살았다. 거기서 우리 아버지가 태어났다. 그 후 블라디보스토크4) 어느 중앙로에 정착했 다. 처음우리조부는시계를비롯한온갖가재도구를고쳤다. 그다음에는 인쇄 일을 했다. 정판공(整版工) 같은 거였다. 그 리고 2년 후 스베틀란카 거리5)에 간이식당을 냈다.

1) 수호보(Сухово): 러시아 시베리아에 위치하고 있는 시골 마을. 2) 유태인은 법적으로 땅을 매매할 수 없기 때문에 농사꾼이 될 수가 없었다 (이는 전 세계로 흩어진 유태인들이 주로 상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 기도 하다). 3) 하얼빈은 1898년 만주구간 철도 요충지로 생겨난 러시아 도시였다. 1932년 일본군에 점령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군이 이를 되찾아 중국 공산 당에게 넘겨주면서 오늘날 중국의 도시로 남게 되었다. 4)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 러시아 극동의 최대 항구 도시이자 군사 요 충지다. 1860년에 건설되어, 1903년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철도가 놓이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5) 스베틀란카(Светланка): 블라디보스토크 중심 거리 중 하나.


옆에 자마라예프의 포도주 상점 ‘네크타르, 발잠이 ’ 자리 하고 있었다. 우리 조부는 꽤나 자주 안부를 여쭈러 자마라 예프네로 갔다. 친구 분들은 술을 마시며, 철학을 주제로 담 화를 나눴다. 그리고 요기를 좀 하러 조부네로 갔다. 그러고 다시 자마라예프네로…. “자넨 인정 많은 사내야.” 자마라예프가 되뇌곤 했다. “유태인인데도 말이지.”6) “저는 부친 쪽으로만 유태인이지요.” 조부가 말했다. “모 친 쪽으로 치자면 네덜란드인입니다!” “예끼, 이 사람!” 알았다는 듯 자마라예프가 대꾸했다. 1년이 지나고 그들은 상점의 술과 식당의 음식을 바닥내 버렸다. 노쇠해진 자마라예프는 아들들이 있는 예카테린부르 크7)로 떠났다. 그리고 우리 조부는 전쟁터로 갔다. 일본전8)

6) 유태인이 공식적으로 러시아 거주민으로 분류된 것은 18세기 말엽 예카테 리나 여제가 폴란드 일부 지역을 점령하면서부터다. 러시아어에는 유태인을 뜻하는 말로 ‘예브레이(еврей)’ 말고도 ‘지트(жид)’가 있다. 이때 지트는 유태 인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로 ‘구두쇠, 노랑이라는 ’ 뜻을 담고 있다. 다른 나라에 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러시아인들이 떠올리는 전형적인 유태인의 모습은 돈 밖에 모르는 몰인정한 상인이다. 7) 예카테린부르크(Екатеринбург): 러시아 우랄의 중심 도시로, 중공업뿐만 아니라 교육과 문화가 발달했다. 8) 러일 전쟁(1904∼1905)을 말한다.


이 시작되었다. 어느 군 사열에서 조부는 차르9)의 눈에 들었다. 조부는 키가 7피트10) 정도였다. 사과를 한입에 통째로 넣을 수도 있었다. 콧수염은 견장까지 닿았다. 차르는 조부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가슴을 찔렀다. 조부를 즉시 근위대로 데려갔다. 거기서 그는 전무후무 한 유태인이 될 뻔했다. 그는 포병대에 배치되었다. 말들이 힘이 빠지면, 조부가 늪지를 따라 대포를 끌었다. 한번은 포병대가 돌격에 가담했다. 우리 조부가 출격했 다. 포수대는 공격자들 뒤를 봐줘야 했다. 그러나 대포 소리 가 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우리 조부의 등이 적의 보루를

9) 차르: 러시아 전제 군주. 10) 1피트는 30.48센티미터다. 즉, 조부의 키는 2미터를 훨씬 넘었다. 세르게 이 도블라토프 또한 2미터 정도의 키로, 작품 속에 자신의 큰 키와 관련된 에피 소드가 자주 등장한다. 쉬는 시간에 쉴리프펜바흐가 나를 불러 세워서는 물어본다. “실례지만, 키 가?”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익숙하니까. 나는 다음과 같은 맹랑한 대화가 계 속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키가 몇 인가요?”/ “194요.” “농구를 하셨으면.”/ “왜요? 농구 하는데요.”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행가방(Чемодан)≫의 <기사용 장갑(Шоферские перчатки)> 중)


가로막고 있었단다. 전선에서 조부는 3구경짜리 소총과 메달 몇 개를 가져왔 다. 게오르기옙스키 십자 훈장11)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일주일 진탕 놀았다. 그러고는 ‘에덴’ 제단의 수석 웨이 터가 되었다. 한번은 굼뜬 웨이터와 말다툼을 했다. 큰 소리 가 나기 시작했다.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책상 서랍에 주먹이 박혔다. 우리 조부는 무질서한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혁 명12)에도 부정적이었다. 게다가 혁명의 진행을 어느 정도 늦추기까지 했다. 사건은 이랬다. 외곽에서 민중의 무리가 시(市) 중심으로 돌진해 왔다. 조부는 유태인 학살13)이 시작된 것으로 단정 지었다. 소총

11) 게오르기옙스키 십자 훈장(Георгиевский крест): 제정 러시아 최고의 군 인 훈장으로, 제정 말기에는 일개 병사가 혁역한 공을 세웠을 때도 이 훈장을 주었다. 12) 1917년 볼셰비키 사회주의 혁명을 말한다. 13) 역사적으로 러시아인과 유태인의 관계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고, 제정 러시아는 종교 및 정치, 경제적 이유로 유태인 탄압 정책(유태인 학살)을 썼다. 1881년 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로 어수선한 시기에 왕위에 오른 알렉산 드르 3세는 대규모 유태인 학살 정책을 써서 왕권을 안정시켜 나갔다. 1890년 대 들어와서 이권 문제를 놓고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여러 지역에서 유태인 학 살이 자행되었다. 1900년대 초에는 부활절에 유혈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간헐적인 소동을 토대로 조부는 혁명을 또 하나의 유태인 학살로 해석 한 것이다.


을 집어 들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무리가 가까워지자, 조부 는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는 혁명을 반대하는 블라디보스 토크의 유일한 주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혁명은 승리를 거두었다. 민중의 무리는 골목골목에서 중심으로 돌진해 왔다. 혁명 후 우리 조부는 잠잠해졌다. 다시 겸손한 수공업자 로 돌아갔다. 부득이한 경우에만 자신의 존재를 이따금 상 기시킬 뿐. 예를 들어 조부는 ‘메르헤르, 메르헤르 앤드 케 이라는 ’ 미국 회사의 명성을 훼손시켜 버렸다. 미국 회사는 일본을 통해 극동으로 접이 침대를 들여왔 다. 접이 침대라 부르게 된 것은 아주 뒤의 일이긴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접이식은 선풍을 일으키는 신상품이었다. ‘매 직 베드라는 ’ 이름으로. 접이 침대는 보기에는 지금 것과 비슷했다. 꽃무늬 방수 덮개에 스프링, 알루미늄 틀…. 우리 진보적인 조부는 상점으로 향했다. 침대는 특별 단 상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미국 회사에서 신상품을 진열 중입니다!” 점원이 큰 소 리로 외쳤다. “독신자의 염원! 여행에 빠질 수 없는 필수품! 편안함과 안락함! 한번 느껴보시겠습니까?!” “그럽시다.” 우리 조부가 말했다. 조부는 끈도 다 풀지 않은 구두를 밀쳐놓고 침대에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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