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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을 훔치고 옥을 훔치다 사랑한다고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자의 아버지가 버티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인의 향기를 훔친다. 실체는 없지만 후각은 예민하다. 아비가 딸을 이기랴! 남자는 옥을 얻는다.

한나라 사람 장창이 아내를 사랑하여 눈썹을 그려 줬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장창화미(張敞畵眉)>, 구영 그림, 명나라 시대 작품


인텔리겐치아 2223호, 2014년 9월 19일 발행

아시아 고전 특집 7. 김장환이 옮긴 곽징지(郭澄之)의 ≪곽자(郭子)≫

진건이 한수를 속관으로 삼았는데, 회견할 때 마다 그에게서 진기한 향내가 풍겼다. 그 향 은 외국에서 바친 것으로 한번 몸에 차면 며칠 동안 향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진건은 곰곰이 생각했다.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께서 오직 나 와 가충(賈充)에게만 이 향을 하사하셨으므 로 다른 집에는 이 향이 있을 리가 없다.’ -≪곽자≫, 곽징지 지음, 김장환 옮김, 27쪽


한수의 향내는 어디서 나는 것인가? 진건의 딸과 사통한 탓이다. 그녀가 한수를 사모했다. 진건은 어떻게 하는가? 딸 신변의 하녀에게 캐물어 사실을 확인한 다. 즉시 딸을 한수에게 시집보냈다. ‘투향절옥(偸香竊玉)’의 유래인가? 그렇다. ‘향을 훔치고 옥을 훔치다’는 의미 다. 부정한 남녀 관계를 일컫는다.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데서도 볼 수 있지 않나? 이 이야기는 ≪세설신어(世說新語)≫를 거쳐 당나라 원진(元稹)의 전기(傳奇)소설 ≪앵앵


전(鶯鶯傳)≫의 원본이 되었다. 이후 송나라

조령치(趙令畤)의 사(詞) ≪상조접련화(商 調蝶戀花)≫, 금(金)나라 동해원(董解元)의 제궁조(諸宮調) ≪서상기제궁조(西廂記諸 宮調)≫, 원(元)나라 왕실보(王實甫)의 잡극 (雜劇) ≪최앵앵대월서상기(崔鶯鶯待月西 廂記)≫로 면면히 개편 발전되었다. 허구인가? 지인소설(志人小說)이다. 실화에 근거했다. 지인소설이 무엇인가? 문인 명사들의 언행·일화·인물 품평을 주 요 내용으로 하는 짧은 글이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유행했다. 당시 사회의 여러 측면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반영한다. 언행, 일화, 소문을 기록한 것을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가? 묘사를 통해 인물의 감정과 태도를 그려낸 다. 소설의 초기 형태로 분류한다. 완벽한 이 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지는 못하고 묘사도 구 체성은 떨어진다. 전(傳), 기(記)와는 어떻게 다른가? 전(傳)은 한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일대기로 기록한 것이고, 기(記)는 한 사건의 전말을 종합 기술한 것이다. 지인소설은 특정 인물 의 주목할 만한 언행과 풍모, 또는 특정한 사 건의 가장 극적 대목을 포착하여 짤막한 편폭


에 간결하게 묘사한다. 이것이 차이다. 지인소설에는 어떤 작품이 있는가? 대표작으로 중국 남조(南朝) 송(宋)나라 유 의경(劉義慶)의 ≪세설신어≫가 있다. 서한 부터 동한, 서진, 동진 등 4조에 걸친 약 200 년 동안의 인물 이야기다. 다루는 인물이 정 치가, 문인, 사대부, 서민, 승려에 이르기까 지 500~600명에 달한다. ≪곽자≫는 어떤 책인가? 위진(魏晉) 시대 명사 청담(淸談)의 산물이 다. 동진 말에 지어졌다. 현재 남아 있는 노신 (魯迅)의 ≪고소설구침≫본에 총 84조가 집 록되어 있다.


이 책의 특징은 무엇인가? 인물의 정신세계와 성격을 형상화하는 데 뛰 어나고 언어가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문장이 청신하다. 위에서 언급한 ≪세설신어≫의 창작에 직접적인 취재 고사를 제공했다. 약 70여 조가 ≪세설신어≫에 채록되어 있다. 어떻게 현재까지 전해지나? 당나라 때까지는 남아 있었으나 송나라 이후 에 이미 망실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유문 (遺文)이 ≪예문유취(藝文類聚)≫, ≪초학기 (初學記)≫, ≪태평어람(太平御覽)≫, ≪태 평광기(太平廣記)≫ 등에 실려 전한다.


곽징지는 누구인가? 400년 전후 활동한 동진의 문학가다. 처음에 상서랑(尙書郞)에 임명되었다가 조정을 나 와서 남강왕(南康王)의 상국(相國)이 되었 다. 노순(盧循)의 반란을 만나 유랑 생활을 하다가 유유를 따라 북벌에 참여했으며, 유 유의 상국종사중랑(相國從事中郞)에까지 이르렀다. 남풍후(南豊侯)에 봉해졌다가 죽 었다. 그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진서(晉書)≫ 권92 <문원전(文苑傳)>에 그의 전(傳)이 실려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장환이다. 연세대 중문학과 교수다.


향을 훔치고 옥을 훔치다 사랑한다고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자의 아버지가 버티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인의 향기를 훔친다. 실체는 없지만 후각은 예민하다. 아비가 딸을 이기랴! 남자는 옥을 얻는다.

한나라 사람 장창이 아내를 사랑하여 눈썹을 그려 줬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장창화미(張敞畵眉)>, 구영 그림, 명나라 시대 작품


곽자 곽징지 지음 김장환 옮김 중국 문학 2008년 7월 15일 출간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158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郭子 곽자


한수가 향을 훔치다

가공려[賈公閭: 가충(賈充)]1의 딸이 한수(韓壽)2 를 좋아했 는데, 하녀들에게 그를 아는지 물어보았더니 한 하녀가 말 했다. “그분은 옛 주인이셨습니다.” 그녀는 사모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하녀가 나중에 한수의 집으로 가서 그러한 사정을 갖추어 말했다. 한수가 곧 하녀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게 했더니, 그녀는 크게 기뻐 했고 마침내 그와 사통했다. 일설에는 한수와 사통한 사람은 진건(陳騫)의 딸이라고 한다. 진건이 한수를 속관으로 삼았는데, 회견할 때마다 한 수에게서 진기한 향기가 풍겼다. 그 향은 외국에서 바친 것 으로 한번 몸에 차면 며칠 동안 향기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었다. 진건은 곰곰이 생각했다.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께서 오직 나와 가충(賈充) 에게만 이 향을 하사하셨으므로 다른 집에는 이 향이 있을 리가 없다.’ 혹시 한수와 자기 딸이 사통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여 딸 신변의 하녀에게 캐물었더니 하녀가 사실대로 대답했다. 27


진건은 즉시 딸을 한수에게 시집보냈다. 그런데 결혼하기 전에 그녀가 죽는 바람에 한수는 가씨[賈氏: 가오(賈午)]3 를 부인으로 맞이했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이로 인해 한수와 밀통한 사람이 가충의 딸이라고 전해졌다.

韓壽偸香 賈公閭女悅韓壽, 問婢識否, 一婢云: “是其故主.” 女內懷存 想, 婢後往壽家說如此. 壽乃令婢通己意, 女大喜, 遂與通. 與韓壽通者乃是陳騫女. 騫以韓壽爲掾, 每會, 聞壽有異香 氣, 是外國所貢, 一著衣, 歷日不歇. 騫計: ‘武帝唯賜己及 賈充, 他家理無此香.’ 嫌壽與己女通, 考問左右, 婢具以實 對, 騫卽以女妻壽. 未婚而女亡, 壽因娶賈氏, 故世因傳賈 充女. [≪世說≫<惑溺>篇注, ≪御覽≫五百·九百八十 一] 1.

가공려(賈公閭): 가충(賈充). 자는 공려. 사마씨(司馬氏)가 위나라를

찬탈하는밀모(密謀)에참여했다. 진나라초에사공(司空)·시중(侍中)· 상서령(尙書令)을 역임했다. 딸 가남풍(賈南風)은 혜제(惠帝)의 비(妃) 가 되었다. 2.

한수(韓壽): 자는 덕진(德眞). 품행이 고상했다. 증조부 한기(韓曁)가

위(魏)나라의 사도(司徒)를 지냈다. 3.

가씨(賈氏): 서진 혜제(惠帝) 가황후(賈皇后)의 여동생 가오(賈午)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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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여남이 스스로 혼처를 구하다

왕여남[王汝南: 왕담(王湛)]1은 젊었을 때 혼처가 없었는데

스스로 학보(郝普)2 의 딸3 을 구해달라고 했다. 부친 왕사공

[王司空: 왕창(王昶)]4 은 그가 어리석기 때문에 틀림없이 결 혼할 상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뜻에 따라5 곧 허 락했다.

王汝南自求婚處 王汝南少無婚處, 自求郝普女.(郝氏, 襄城人. 父匡, 字仲時, 一名普, 洛陽太守.) 司空以爲癡,(司空, 昶也) 會無往婚對, 其音樂, 便許之. [≪御覽≫四百九十] 1.

왕여남(王汝南): 왕담(王湛). 자는 처충(處沖). 일찍이 여남 태수(汝

南太守)를 지냈기에 그렇게 불렀다. 2.

학보(郝普): 자는 도광(道匡). 일찍이 낙양 태수(洛陽太守)를 지냈다.

3.

학보의 딸: 왕담의 부인으로 왕승(王承)을 낳았다. 학씨는 가문이 매우

비천하여 혼인을 맺을 만한 상대가 아니었지만, 왕담이 일찍이 그녀를 보 고 곧바로 혼인하기를 구했다. 과연 그녀는 명랑하고 고매하여 어머니의 모범으로서 일족 가운데 으뜸이었다. 왕담의 통찰력 높은 식견과 여유 있 는 마음이 모두 이와 같았다. 4.

왕사공(王司空): 왕창(王昶). 자는 문서(文舒). 일찍이 사공(司空)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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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의 뜻에 따라: 원문은 ‘기음악(其音樂)’. 이대로는 의미가 통하지 않

는다. ≪세설신어≫<현원(賢媛)>편에는 ‘임기의(任其意)’라 되어 있 는데, 문맥상 타당하므로 이것에 따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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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동해가 처음 강남으로 건너가다

왕동해[王東海: 왕승(王承)]1가 처음 강남으로 건너와서 낭 야산(琅邪山)에 올라 탄식했다. “나는 여태껏 근심이 없었는데 오늘만은 근심스러워지 는구나!” 사마태부[司馬太傅: 사마월(司馬越)]2 가 말했다. “그땐 몸과 혼이 모두 나간 듯했었지.”

王東海初過江 王東海初過江,(王承, 字安期, 東海內史) 登琅邪山, 歎曰: “我由來不愁, 今日直欲愁!” 太傅云: “當爾時, 形神俱往.” [≪類聚≫三十五, ≪御覽≫四百六十九] 1.

왕동해(王東海): 왕승(王承). 자는 안기(安期). 담백하여 욕심이 적었

고 자신을 치켜세움이 없었다. 일찍이 동해 내사(東海內史)를 지냈는데, 정사를 처리함이 청정하여 관리나 백성들이 그를 흠모했다. 난리를 피하 여 장강을 건넜는데, 그때는 길에 도적이 있어서 사람들이 걱정하고 두려 워했지만, 왕승은 곤경을 당할 때마다 태연스럽게 대처했다. 원제[元帝: 사마예(司馬叡)]가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이 되었을 때 그를 불러 종 사중랑(從事中郞)으로 삼았다. 2.

사마태부(司馬太傅): 서진 동해왕(東海王) 사마월(司馬越). 자는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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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元超)이며 팔왕(八王) 가운데 하나. 팔왕의 난 때 태부가 되어 태재 (太宰)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과 함께 정사를 보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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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기가 동해 태수가 되다

왕안기[王安期: 왕승(王承)]가 동해 태수(東海太守)로 있을 때, 어떤 말단 관리가 연못 속의 물고기를 훔쳤다. 주부(主 簿)가 그에게 죄를 묻자 왕안기가 말했다.

“뭇 백성과 함께 공유함이 마땅하니1 물고기가 무에 그리 아깝단 말인가?”

王安期爲東海太守 王安期爲東海太守, 小吏盜池中魚, 綱紀推之, 王曰: “與衆 共之, 魚何足吝?” [≪御覽≫四百九十九] 1.

뭇 백성과 함께 공유함이 마땅하니: 원문은 ‘여중공지(與衆共之)’. 주

(周)나라 문왕(文王)은 사방 70리나 되는 동산을 백성들과 함께했기 때 문에 백성들은 그것도 작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맹자(孟子)≫<양혜 왕하(梁惠王下)>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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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안인과 하후담이 미려한 용모를 지니다

반안인[潘安仁: 반악(潘岳)]1과 하후담(夏侯湛)2 은 모두 미 려한 용모를 지녔는데, 한번은 함께 걸어갔더니 당시 사람 들이 그들을 ‘딸린 옥[連璧]’3 이라고 불렀다.

潘安仁·夏侯湛有美容貌 潘安仁·夏侯湛並有美容貌, 嘗同行, 人謂之“連璧”. [≪初 學記≫十九, ≪御覽≫三百八十] 1.

반안인(潘安仁): 반악(潘岳). 자는 안인. 진나라 초의 저명한 문학자.

일찍부터 재능이 빼어나 이름이 알려졌으며, 용모가 매우 준수했다. 2.

하후담(夏侯湛): 자는 효약(孝若). 위(魏)나라 정서장군(征西將軍) 하

후연(夏侯淵)의 증손. 재능이 풍부하고 문장이 뛰어났으며, 명성이 반악 에 버금갔다. 중서시랑(中書侍郞)을 역임했다. 3.

딸린 옥: 한 쌍의 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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