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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신, 지렁이 헌 흙을 먹어 새 흙을 만든다. 그가 있는 곳은 매일 더 비옥해지고 들고 나는 호흡은 점점 더 싱싱하다. 대지는 살찌고 식물은 탐스럽다. 이 모든 것이 그, 지렁이의 선물이다.

인도 캘커타 식물원에서 페리카이타 속(屬) 지렁이가 만든 탑 형태의 분변토


인텔리겐치아 2234호, 2014년 9월 26일 발행

구월의 새 책 5. 최훈근이 옮긴 찰스 다윈의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 쟁기는 인류의 발명품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치 있는 것 중의 하나다. 그러나 사실을 말 하자면 인류가 출현하기 훨씬 이전부터 토지 를 경작해 온 생물이 있으니 바로 지렁이다. 지렁이라는 이 단순한 구조의 생물만큼 세계 역사에서 큰 역할을 했던 동물이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The Formation of Vegetable Mould Through the Action of Worms)≫,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지음, 최훈근 옮김, 282쪽


지렁이가 경작을 하는가? 땅속을 기어 다니며 수많은 굴을 파고 분변토 를 배설한다. 분변토란 무엇인가? 지렁이 똥이다. 가끔은 탑 형태로 높이 쌓아 놓기도 한다. 똥인데 왜 ‘흙[土]’이라고 부르는가? 지렁이가 흙을 먹고 싼 똥이 다시 흙이 되기 때문이다. 분변토는 무엇을 하는가? 흙을 비옥하게 한다. 그리고 지형을 바꾼다.


흙은 어떻게 비옥해지는가? 분변토가 질소, 탄소, 무기염류를 제공한다. 천연 비료 역할을 한다. 지형은 어떻게 바꾸는가? 예컨대, 목초지 지표면의 특정 층을 분변토 로 덮어 몇 인치 밑으로 파묻는다. 다윈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1837년 영국 스태퍼드셔에 살던 외삼촌 웨지 우드가 처음 알려 주었다. 깊은 인상을 받은 다윈은 같은 해 런던 지질학회에서 그 내용을 논문으로 발표한다.


지질학회는 동의했는가? 당시 학자들은 ‘증거가 부족하다’거나 ‘지렁 이가 그런 큰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다윈의 대응은 무엇이었나? 동료들의 비판에 위축되지 않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굳게 믿었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 려 했다. 어떻게 증명했는가? 관찰 데이터를 쌓는 한편 다른 측면에서도 문 제에 접근했다.


접근 방식을 어떻게 바꿨는가? 지표에 있던 물건이 지렁이 분변토에 묻히는 속도를 확인하는 대신, 일정 면적에서 일정 시간에 배설되는 분변토의 양을 조사했다. 지렁이가 흙을 옮긴다는 사실을 객관적, 정 량적으로 실증하려 했다. 지렁이가 흙을 옮기면 어떻게 되는가? 분변토를 통해 흙을 지표면으로 옮기는 과정 에서 땅속에 빈 곳이 생긴다. 그러면 땅이 매 몰되고 이 과정이 순환된다. 우리는 그 과정을 볼 수 있는가? 평범한 사람 눈에는 땅이 그 자리에 안정되게 유지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그렇지 않


다. 지렁이가 꿈틀대며 땅을 갈아 주고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된 사례가 있는가? 다윈은 영국의 스톤헨지 거석 근처의 토양을 예로 들었다. 또 당시에 막 발굴되었던 로마 시대 유적지, 영국 남부 구릉지대의 지형을 조사했다. 다윈에게 지렁이는 무엇이었나? 자기만의 오랜 연구 대상이었다. 다윈은 진 화론을 인정받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바쳤지 만, 마찬가지로 지렁이의 역할을 입증하는 데도 오랜 세월을 바쳤다.


그에게 이 책은 무엇이었나? 지질학회에서 처음 논문을 발표한 후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40여 년이 걸렸다. 1881년 이 책이 출간된 이듬해 다윈은 세상을 떠난 다. 이 책은 그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저서 였다. 우리에게 이 책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보잘것없는 지렁이가 그토록 큰 역할을 한다 는 사실을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알렸다. 작 은 동물의 위대한 힘을 새삼 느낄 수 있는, 파 브르의 ≪곤충기≫에 비견할 책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최훈근이다. 수십 년 동안 지렁이를 연구했다.


농사의 신, 지렁이 헌 흙을 먹어 새 흙을 만든다. 그가 있는 곳은 매일 더 비옥해지고 들고 나는 호흡은 점점 더 싱싱하다. 대지는 살찌고 식물은 탐스럽다. 이 모든 것이 그, 지렁이의 선물이다.

인도 캘커타 식물원에서 페리카이타 속(屬) 지렁이가 만든 탑 형태의 분변토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 찰스 다윈 지음 최훈근 옮김 자연과학 2014년 9월 30일 출간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298쪽 25,000원


작품 속으로

The Formation of Vegetable Mould Through the Action of Worms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


차례

머리말

····················xii

1장 지렁이의 습성 ·················3 2장 지렁이의 습성(계속)··············49 3장 지렁이의 분변토 배설량 ···········118 4장 고대 건축물 매몰에 미치는 지렁이의 역할····160 5장 지렁이의 활동에 따른 토양 침식

·······209

6장 지렁이의 활동에 따른 토양 침식(계속) ·····235 7장 결론 ····················275

해설 ······················283 지은이에 대해··················294 옮긴이에 대해··················236


1장 지렁이의 습성

서식지의 특성. 물속에서 오래 산다−야행성. 밤에 활동 하며 종종 지렁이 굴 입구 근처에서 새들에게 잡혀 먹는 다−지렁이의 구조. 눈은 없으나 빛과 어둠을 구별할 수 있고 빛을 비추면 반사 운동에 의하지 않으면서도 재빠 르게 피한다. 주의력−추위와 더위에 대한 감수성이 크 고, 소리를 듣지는 못하지만 진동과 접촉에 민감하며, 냄 새를 맡거나 맛을 느끼고 생각하는 지능은 낮다. 식성은 잡식성이고 소화 과정에서 나뭇잎은 먹기 전에 소화액

을 적신다. 특수 소화 기관인 석회샘13)−석회샘에서 형 성된 물질은 배설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소화 과정에서 산을 중화하는 역할도 한다.

지렁이는 매우 유사한 형태의 몇 종(種)이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한다. 영국에 서식하는 룸브리쿠스(Lumbricus)14) 속

13) (역주) 조그맣고 둥근 형태의 조직으로 칼슘 이온을 분비해 지렁이 체내의 pH와 칼슘 이온을 조절하는 기능을 가진다. 토양에 칼슘 이온을 제공해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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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아직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주변 국가에 서식하는 지렁이 종의 수를 통해 개략적으로 그 수를 추정 해 볼 수 있다. 아이젠(Eisen)에 따르면 스칸디나비아에는 8 종이 살며, 2종은 거의 땅속에 굴을 파고 지내 좀처럼 보기 드물고, 1종은 매우 습한 지역이나 심지어 물속에도 산 다.15) 이 책에서는 땅속에 살면서 분변토를 땅 위 지표면에 배설하는 지렁이에 한정해 다루고자 함을 미리 밝혀 두고자 한다. 호프마이스터(Hoffmeister)는 독일에 서식하는 지렁 이의 종류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뚜렷한 특징을 가진 지 렁이의 종이 스칸디나비아와 같은 수만큼 분포한다고 기술 했다.16)

지렁이는 잉글랜드에도 다양한 곳에 많이 사는데 지렁 이 분변토는 놀라울 정도로 많고, 토양이 메마르고 풀이 잘 자라지 않은 곳에서도 지표 대부분에 지렁이 분변토가 덮여

14) (역주) 유럽에서 널리 분포한 붉은색을 띠는 지렁이 종류로, 약 700여종이 알려져 있다. 룸브리쿠스 루벨루스(Lumbricus rubellus), 룸브리쿠스 테 레스트리스(Lumbricus terrestris) 등이 대표적이다. 15) ≪Bidrag till Skandinaviens Oligochaetfauna≫, 1871. 16) ≪Die bis jetzt bekannten Arten aus der Familie der Regenwurmer≫,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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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풀이 잘 자라고 땅이 기름져 보이는 런던 공원의 몇 곳은 지렁이 분변토가 많이 덮여 있고 비슷한 토양에 지렁 이의 종이 동일하다 해도 다른 지역보다 개체수가 많은 경 우가 있다. 지렁이는 주택에 접한 포장된 안뜰에도 많이 있 고, 습한 지하실 바닥을 통해 지렁이들이 많은 굴을 판 사례 도 있다. 한때 소택지(沼澤地)17)의 검은 피트(토탄) 속에 있는 지렁이를 본 적이 있지만, 정원사들이 많이 사용하는 마르고 갈색인 섬유질의 목탄에서는 극히 적거나 아예 없었 다. 고사리, 잡초, 이끼, 지의류 등이 잘 자라는 마른 모래땅 혹은 자갈길에도 지렁이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잉글랜드의 많은 지역에 진달래 같은 관목을 가로지르 는 오솔길은 짧은 잔디로 덮여 있다. 하지만 이 식생의 변화 가 사람이나 가축의 발에 밟혀 죽은 키 큰 식물이 고사한 결 과인지, 아니면 가축이 떨어뜨리는 배설물에 의해서 비옥 해진 땅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18) 17) (역주) 늪과 연못이 있는 낮고 습한 땅. 18) 압력(다짐)이 목초의 생육에 좋은 효과가 있다는 몇 가지 증거가 있다. 왕 립 농업 대학의 실험 농장에서 목초의 생육에 대해 많은 관찰을 하고 있는 벅먼(Buckman)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립 또는 분리된 작은 면적 으로 목초를 키우는데 있어 하나의 어려운 점은, 롤러작업을 하거나 단단 하게 다짐 작업을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이것 없이 목초지를 잘 유지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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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무성한 오솔길 위에서 지렁이 분변토가 종종 발견 되며 자세히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서리(Surry)주19)에 있는 관목 지대의 경사가 심한 오솔길에는 지렁이 분변토가 아주 조금밖에 없었지만, 경사가 심한 곳에서 흘러내린 고운 흙 이 몇 인치 쌓인 층은 지렁이 분변토가 많이 발견된다. 이곳에서는 지렁이가 과밀 상태가 된 듯 풀이 난 오솔길 몇 십 인치 거리 안과 관목지대 안에서 지렁이 분변토가 발 견되지만 이 범위를 벗어나면 분변토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 다. 이러한 결과로부터 수분을 더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고운 흙의 층은 아무리 얕아도 지렁이의 생존에 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래된 자갈길이나 황무지를 가로질러 발로 밟 아 다져진 오솔길에 종종 지렁이가 많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단지 토양을 압축하는 것만으로도 수분을 좀 더 유 지할 수 있으므로 지렁이에게는 어느 정도 좋은 서식 조건 이 된다. 큰 나무 아래에서는 1년 중 특정 기간밖에 지렁이 분변토를 볼 수 없는데 이것은 수목의 무수한 뿌리가 땅의 수분을 흡수해 버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근거

없다.” (≪Gardeners' Chronicle≫, 1854, p.619) 19) (역주) 영국 잉글랜드 남부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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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가을비가 많이 내린 뒤에는 지렁이 분변토가 지표를 덮 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잡목 숲과 삼림에는 지렁이가 있는데, 지표에 전혀 식물이 자라고 있지 않는 놀 공원 (Knole Park)의 오래 되고 키 큰 너도밤나무 숲에는 가을에 도 넓은 지역에서 지렁이 분변토가 조금도 발견되지 않는 다.

그래도 이 삼림을 관통하는 구덩이와 풀이 돋은 습지에는 지렁이 분변토가 많이 있었다. 노스웨일스(North Wales) 산 지나 알프스(Alps)에서는 내가 아는 한에서는 지렁이가 어 디에도 없다. 이것은 지렁이가 겨울 동안 추위를 피해 살 수 있는 굴을 파야 하는데 대부분 바닥이 바위로 되어 있어서 불가능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매킨토시(McIntosh) 박사는 스코틀랜드의 시 할리온(Schiehallion)산 해발 약 1500피트에서 지렁이 분 변토를 발견한 바 있으며, 이것들은 투린(Turin) 근처의 2000~3000피트 되는 언덕과 고도가 높은 인도 남부의 닐기 리(Nilgiri) 산맥과 히말라야에서도 많이 발견되었다. 지렁이는 지렁이가 속해 있는 다른 환형동물과 마찬가 지로 어떤 의미에서 보면 반수생(semi-aquatic)20)동물이지 만 실제로는 육상동물로 분류된다. 7


페리에(Perrier) 씨는 지렁이를 단 하룻밤 실내의 건조한 공기에 놓아두었더니 죽는 것을 발견했으며 반대로 물속에 여러 마리의 큰 지렁이를 약 4개월 동안 넣어 두어도 살아 있음을 관찰했다.21) 땅 표면이 마르는 여름 동안은 땅이 얼 었던 겨울과 마찬가지로 지렁이는 어느 정도 깊이까지 들어 가 활동을 멈춘다. 지렁이는 야행성으로 밤이 되면 많은 지 렁이가 기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평상시에는 굴속에 있다. 몸에 난 짧고 조금 젖혀진 강모가 있는 꼬리 부분을 팽창시켜 몸을 지탱하고 있으므로 지렁이를 끊지 않 고 굴에서 꺼내는 것은 쉽지 않다.22) 짝짓기 기간에는 새벽 에 인접한 지렁이 굴에 1~2시간 몸의 대부분을 내놓은 상태 지만 이외에는 낮에 땅속의 굴 안에서 지낸다.

병든 지렁이는 대개 기생성 파리에게 감염된 개체이지 만, 낮에 돌아다니다가 땅 위에서 죽어 버리는 예외적인 개

20) (역주) 물이 있는 지역에서 서식하거나 사는 생물. 21) 나는 페리에의 칭찬할 만한 논문을 많이 참고했다. <Organisation des Lombriciens terrestres>, ≪Archives de Zoolog. exper≫, tom. iii. 1874, p.372. C. F. Morren (≪De Lumbrici terrestris Hist. Nat≫, 1829, p.14) 논문에서는 지렁이가 여름에 15~20일 간 물에 담가도 견디지만 겨 울에는 죽는 것을 관찰했다. 22) Morren, ≪De Lumbrici terrestris Hist. Nat≫, &c., 1829,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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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를 제외하고는 많은 비가 온 후 마른 땅 위에 가끔 놀랄 만큼 많은 지렁이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골턴 (Galton) 씨는 1881년 3월의 어느 날 하이드파크(Hyde Park)23) 공원길에 2.5걸음마다(넓이는 4걸음) 평균 1마리 의 지렁이가 죽어 있다고 알려 주었다. 골턴 씨가 한 장소에 서 죽어 있는 지렁이를 세어 보니, 16걸음 안에 적어도 45마 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 지렁이들이 물에 빠져 죽은 것은 아 니다. 만약 물에 빠져 죽었다면 굴속에서 죽었어야 하기 때 문이다. 나는 지렁이들이 이미 병에 걸려 있어 땅이 침수됨 에 따라 빨리 죽게 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반적인 환경 조건에서 건강한 지렁이는 밤에도 결코 굴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잘 알려졌지만 이는 화이트 (White) 씨가 훨씬 전에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잘못이다. 폭 우가 내린 다음 날 아침 자갈길 위를 뒤덮은 진흙과 고운 모 래 막에는 지렁이가 지나간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나는 작년 8월부터 5월까지 이것을 관찰했으며, 나머지 2개월 동

23) (역주) 영국 런던의 중심부에 있는 넓은 공원이며, 런던 왕립 공원 가운데 하나다. 서펜틴 호수(Serpentine Lake)를 중심으로 둘로 나눌 수 있다. 공 원은 켄싱턴 가든(Kensington Gardens)과 이어져 있다. 1851년에는 대박 람회가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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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도 비가 오면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 게 분명했다. 어떤 경우에도 아주 약간의 지렁이가 죽어 있는 것밖에 발견되지 않았다. 1881년 1월 31일 폭설을 동반한 모진 한파가 물러 나자 길가의 인도(人道)에는 엄청난 수의 지렁이가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 예에서 가로와 세로 1인치 면적에 서 지나간 흔적이 5개나 있었다. 지렁이가 자갈길에 있는 지렁이 굴로부터 2~3야드에서 15야드 정도 거리의 이동한 흔적이 남겨져 있다.

그러나 지렁이 흔적 2개가 같은 굴 입구로 들어가는 것 은 본 적이 없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다. 일단 굴을 나온 지렁이는 다시 본래의 굴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감각기관을 고려할 때 지렁이는 분명히 새로이 살 곳을 찾아 굴을 떠난 후 새롭게 정착할 장소를 발견할 것이다. 모렌(Morren) 씨는 지렁이는 자신의 굴 입구 바로 아래 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몇 시간 동안 가만히 있는 일이 자주 있다고 말했다.24) 나도 모렌 씨와 같이 실내에서 상자에 지 렁이를 키우면서, 지렁이 굴을 들여다보며 지렁이의 머리 를 관찰했던 적이 있다. 굴 입구 위에 배출한 흙이나 쓰레기

24) ≪De Lumbrici terrestris Hist. Nat≫, &c.,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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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갑자기 치우면 지렁이 몸 끝이 갑자기 물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굴 입구의 지표면 근처에 누워 있는 이 습 관은 지렁이에게 큰 피해를 주는 행동이다. 어느 특정한 계 절에는 매일 아침 잔디 위에서 지빠귀나 검정 새가 놀랄 정 도로 많은 지렁이를 굴에서 잡아 끄집어낸다. 이러한 것은 지렁이가 지표면 근처에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렁이 는 물속에서도 오랫동안 살 수 있으니 신선한 공기를 호흡 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지렁이가 굴 근처에 누워 있는 것은 아침의 차가움을 피해 따뜻함을 얻 고자 이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지렁이는 종종 굴 입구를 낙엽으 로 덮는데, 이는 분명히 차고 습한 땅에 몸이 직접 닿는 것 을 피하기 위해서다. 지렁이는 겨울 동안은 굴을 완전히 막 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렁이 몸의 구조 이 주제에 대해 몇 가지 말해 둬야 한다. 성숙한 지렁이의 몸 은 작은 강모(强毛)25)가 달린 100~200개의 원통 모양 둥근 띠, 즉, 체절26)로 되어 있으며 근육 조직도 잘 발달되어 있 11


다. 지렁이는 전진과 후퇴도 하고 꼬리를 이용해 신속히 굴 속으로 피할 수 있다. 입(입술이나 입 등 여러 가지 호칭으 로 부름)은 몸 앞부분에 위치하며 무엇인가 붙들 수 있도록 조금 돌출되어 있다. 내부적으로는 입의 뒤에 그림 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튼튼한 인두(pharynx, 咽頭)27)가 있다. 이 부분은 페리에 씨에 의하면 지렁이가 먹이를 먹을 때 앞으로 밀어 주는 역할을 하는데, 돌출된 몸통이나 다른 환 형동물의 입에 해당한다. 인두는 식도에 이어지고 식도 아 래 양쪽에는 대량의 탄산석회를 분비하는 세 쌍의 석회샘이 있다. 이 석회샘은 매우 특이한 조직으로 다른 동물에는 이 와 같은 것이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 소화 작용을 이야

25) (역주) 지렁이의 몸에 나 있는 털. 26) (역주) 동물의 몸에서 전후축을 따라 반복해서 형성되는 분절적이고 입체 적인 단위를 말한다. 다른 말로 환절(環節)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구조 안에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기관이 반복해서 존재하며 환형동물과 절지 동물의 체절이 그 좋은 예다. 27) (역주) 머리의 구강, 비강으로부터 식도, 후두로 연결되는 원뿔 모양의 통 로. 인두실(pharynx chamber)은 호흡기와 소화기의 양쪽 기능을 갖는다. 근육의 굵은 섬유와 결합조직에 의해 두개골의 아랫부분과 그를 둘러싸는 구조에 붙어 있다. 인두벽에는 환상근(環狀筋)과 종주근(縱走筋)이 있는 데, 환상근은 음식물이 식도로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인두를 꽉 죄어 주고 공기를 삼키지 않게 하며 종주근은 음식을 삼킬 때 인두벽을 끌어올 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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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인두

식도(소화기계)

석회샘

식도(소화기계) 소낭 모래주머니

장의 윗부분

그림 1. 룸브리쿠스 속 지렁이 소화기관의 구조도. Ray Lankester의 ≪Quart. Jour. of Microscop.Soc.≫ vol. xv. N.S. pl. vii.에서 가져옴.

기할 때 자세히 다룰 것이다.

대부분의 종에서는, 식도는 모래주머니28) 앞쪽으로 부 푼 주머니다. 모래주머니는 매끄럽고 두꺼운 키틴질의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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