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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전쟁과 가족 1917년부터 1920년까지 14번 정권이 바뀐다. 권력은 충돌하고 사람은 죽어 나간다. 혁명과 전쟁, 러시아 인텔리의 운명을 목격한 작가의 선택은 가족이었다.

연극 ‹백위군›, 세르게이 제노바치 연출, 모스크바예술극장, 2004


인텔리겐치아 2239호, 2014년 9월 30일 발행

국군의 날 2. 강수경이 옮긴 미하일 불가코프의 희곡 ≪백위군≫

알렉세이 조용히! 자,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제군들 은 여전히 제군들 앞에 놓인 무엇을… 누구 를… 지키려는 과업을 수행할 것인가…? 한 마디로 말해, 난 여러분들의 전투를 지휘하 지 않겠다. 왜냐하면 광대놀음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광대놀음 때 문에 자신의 피를 흘린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마를 닦는다.) 내


아들들이여, 내 말을 들어라! 나는 상비군 장 교로서 독일군과의 모든 전쟁을 치렀다. 이 에 대해서는 스투진스키 장군과 미실라옙스 키 장군이 증인이다. 나의 양심과 책임감으 로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 제 군들에게 경고하건대, 제군들을 사랑하기에 집으로 돌려보낸다. -≪백위군(Белаягвардия)≫, 미하일 불가코프(МихаилА.Булгаков) 지음, 강수경 옮김, 141쪽

알렉세이는 누구인가? 게트만의 포병 부대 대령이다. 게트만이 누구인가? 우크라이나 민족의 수장이다. 백위군, 곧 반


혁명군에 가담했다. 왜 전투를 “광대놀음”이라 한 건가? 게트만이 독일 정부의 조종을 받기 때문이 다.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되었고, 국가의 몰락과 고귀한 인간 정신의 파멸이 닥쳐올 것 이다. 독일의 조종을 받게 된 이유는 뭔가? 1764년 예카테리나 2세는 유명무실해진 게 트만의 직위를 없앴다. 1918년 4월 독일 정 부는 게트만을 직접 선출해 부활시켰다. 게 트만은 독일군의 지시와 지원을 받아 행동 했다.


게트만은 지금 어디에 있나? 독일군 제복으로 갈아입고 독일로 몰래 도망 쳤다. 고위급 인사 다수도 독일로 달아났다. 그래서 게트만군은 해산하나? 젊은 생도와 장교 200여 명은 알렉세이의 명 령에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알렉세이와 동 생 니콜카만 김나지움에 남아 페틀류라군을 기다린다. 페틀류라는 누구인가? 농민과 하층 계급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혁명 군 수장이다. 훌륭한 무기와 20만 명의 군대 를 가졌다.


알렉세이와 니콜카에게 닥칠 운명은 무엇인가? 알렉세이는 죽임을 당한다. 니콜카는 부상 을 입고 집으로 돌아온다. 페틀류라군의 승리인가? 그렇다. 하지만 영원한 승리는 아니었다. 다음 승리는 누구의 것인가? 볼셰비키다. 1919년 크리스마스 전야 볼셰비 키가 키예프에 입성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 서 페틀류라군이 떠나기 시작했다. 1919년 크리스마스 전야 키예프의 풍경은 어 땠나? 거리에서는 전투가 한창이었다. 그와 상반


된 장면이 알렉세이의 집에서 펼쳐진다. 알렉세이의 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이 밝혀져 있다. 스투 진스키, 미실라옙스키, 집주인 바실리사, 알 렉세이의 조카 라리오시크는 카드놀이를 한 다. 술잔이 오가고 니콜카의 노랫소리와 농 담이 집 안을 채운다. 내부와 외부의 괴리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알렉세이의 집은 인간의 가치를 보존하는 장 소다. 주인공들은 볼셰비키가 세우는 새로 운 세상이 아니라 가족의 전통과 가치, 문화 가 녹아 있는 집을 변함없이 보존해 나가는 세상을 꿈꾼다.


<백위군>의 집필 동기는 무엇인가? 1917년부터 1920년까지 키예프에서 열네 번 의 정권이 교체되던 시기, 불가코프는 의사 라는 이유로 전쟁터의 이곳저곳으로 동원되 었다. 뜻하지 않게 마주한 혁명과 전쟁, 러시 아 인텔리들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 인간 실존 의 의미를 이야기하려 했다. 이 작품에 대해 당시 러시아의 반응은 무엇인가? 1926년 10월 5일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초 연되었고 1941년까지 987회나 무대에 올랐 다. 스탈린은 열다섯 번이나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백위군>을 수정한 <투르 빈가의 나날들>이 가져다준 것이었다.


무슨 말인가? <백위군>이라는 제목으로 상연하지 못했 다. 검열 때문이다. 불가코프는 혁명과 전쟁 에 회의적이었다. 혁명의 반대편에서 인간 의 가치를 지키려 한 주인공들의 신념과 갈등 을 그린 작품은 소비에트 체제의 검열을 통과 할 수 없었다.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와 문 학부장 마르코프는 희곡의 제목과 세부 내용 을 대폭 수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불가코프 는 원치 않았지만 극장의 힘에 밀려 그들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투르 빈가의 나날들>이 공연되었다. 지금 모스크바의 상황은 어떤가? 모스크바 대표 극장의 연출가들은 작가의 본


래 의도를 되살리려 노력한다. 제목도 불가 코프가 원했던 <백위군>으로 내걸고, 소 설에서 희곡으로 각색되면서 생략된 부분을 연극 장면에 포함시킨다. 이 책의 번역 판본은 무엇인가? 두 번째 판본이다. 검열을 의식하지 않은 불 가코프의 의도가 그나마 정확하게 표현되고 극작가로서 빛나는 재능이 고스란히 남아 있 다는 평가를 받는다. 불가코프는 어떻게 살다 갔나? 1891년 5월 15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태 어났다. 키예프대학 의학부 재학 중 제1차 세 계대전이 터지자 의무병으로 발령받아 전쟁


을 체험했다. 전쟁과 혁명이 끝난 뒤 작가로 서 사명을 받아들여 본격적으로 작품을 썼 다. 1921년 모스크바에 정착한 뒤 번역, 볼쇼 이극장의 리브레토 작업, 단역배우로 출연 하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다. 1930년 “조국 에서는 존재의 수단을 획득하는 것이 불가 능”해 망명을 요청한다는 편지를 스탈린에 게 보냈고, 이듬해 모스크바예술극장의 조 감독으로 임명되었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 았다. 계속되는 상연 금지와 출판 금지 명령 으로 고혈압 신장경화증이 악화되어 1940년 3월 10일 숨을 거뒀다. 어떤 작품을 썼는가? ≪백위군≫, ≪비운의 달걀≫, <조이카의


아파트> 등 소비에트 권력의 유토피아적 허 상을 반어적으로 풍자하는 작품을 썼다. 여러 작품을 다른 장르로 개작하는 훌륭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몰리에르의 희곡 <위선자들의 밀교>를 소설로, 고골의 ≪죽은 혼≫, 세르 반테스의 ≪돈키호테≫, 톨스토이의 ≪전쟁 과 평화≫를 희곡으로, 고골의 ≪죽은 혼≫과 ≪검찰관≫을 영화 시나리오로 개작했다. 죽 기 3주 전까지 12년간 써 왔던 역작 ≪거장과 마르가리타≫ 창작을 계속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강수경이다. 타이완 국립 가오슝대학교 동 아시아어문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권력과 전쟁과 가족 1917년부터 1920년까지 14번 정권이 바뀐다. 권력은 충돌하고 사람은 죽어 나간다. 혁명과 전쟁, 러시아 인텔리의 운명을 목격한 작가의 선택은 가족이었다.

연극 ‹백위군›, 세르게이 제노바치 연출, 모스크바예술극장, 2004


백위군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강수경 옮김 희곡 2010년 12월 28일 출간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210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Белаягвардия 백위군(희곡)


4막 연극 두 번째 판본

예수 탄생 후 1918년째 해는 위대하고도 끔찍했다….


나오는 사람들

알렉세이 바실리예비치 투르빈: 포병 부대 대령, 30세. 니콜카 투르빈: 알렉세이의 남동생, 18세. 옐레나 바실리예브나 탈베르카: 알렉세이의 여동생, 24세. 블라디미르 로베르토비치 탈베르크: 참모부 대령, 옐레나의 남편, 35세. 빅토르 빅토로비치 미실라옙스키: 사령부 대위, 포병, 28세. 레오니트 유리예비치 셰르빈스키: 중위, 게트만의 친위대 부관. 알렉산드르 브로니슬라보비치 스투진스키: 대위, 29세. 라리오시크: 지토미르에 사는 알렉세이의 조카, 21세. 바실리 이바노비치 리소비치(별명은 ‘바실리사’): 집주인, 45세. 반다 스테파노브나: 바실리사의 아내, 39세. 전(全) 우크라이나 게트만.1) 1) “게트만”이라는 타이틀은 우크라이나 역사와의 밀접한 관련 속에 이해할 수 있다. 1572년 폴란드, 이후에는 러시아 지배하에 국경의 남동쪽을 수비하 기 위한 목적으로 카자크 군대가 정비되었고 이 군대의 총사령관을 게트만이 라 명명했다. 그러나 이후 게트만은 우크라이나 카자크인들의 독립운동을 지휘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의 수장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는 여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분열되면서 곳곳에 여러 명의 게트만이 등장하기


발바툰: 페틀류라2) 군대의 제1기병대 사령관. 갈란바: 페틀류라 군대의 백부장. 우라간: 강도. 키르파티: 매독 환자. 에 이른다. 1704년 드네프르 강의 남쪽과 동쪽을 점령하면서 우크라이나를 통일하게 되는 이반 마제파가 게트만 중에서 가장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그 러나 1708년 다수의 카자크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폴타바 전투에 서 패해 터키로 도망가고 만다. 이후 게트만의 권력은 점차 유명무실해지고 급기야 1764년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는 게트만 직위를 소멸시킨다. 한 편 본 작품에 등장하는 게트만은 실제 역사상의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는 1918년 4월에서 12월까지 독일 정부에 의해 우크라이나의 게트만으 로 선출된 파벨 스코로팟스키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에서처럼 다수의 농민 들에 의해 선출된 페틀류라가 등장해 ‘우크라이나 집정부’를 수립하면서 스 코로팟스키는 독일로 망명하게 되고 그곳에서 1945년 미국의 폭격으로 사 망하고 만다. 2) 시몬 바실리예비치 페틀류라(1879~1926): 우크라이나 정치가, 군사혁명 가. 1919년에서 1920년까지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수장. 폴타바의 소부 르주아 가정에서 출생해서 폴타바 신학교를 졸업했으나 1900년 우크라이나 혁명당에 입당한다. 좌파로서 우크라이나 사회민주노동당의 창립 멤버이기 도 하다. 우크라이나에 게트만 정부가 집권하면서 게트만에 대항하는 편에 서게 된다. 1917년 12월 키예프 카자크 군사학교 출신의 지원병들과 군대 를 조직해 1918년 11월 게트만에 대항하는 봉기를 주도한다. 같은 해 12월 14일 키예프를 점령하면서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1919년 2월 10일 인민공화국의 단일 지도자가 된다. 그해 봄 키예프로 진격해 오는 붉은 군대를 저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군대를 조직하고 백위군 지휘 부와 볼셰비키에 대항하는 협력 체제를 모색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1920년 4월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서부 지역이 완전히 함락되면서 폴란드에 국 경 지대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폴란드와의 협공을 모색하나 실패하고 폴란드 로 망명한다. 1923년 소련이 페틀류라를 송환해 줄 것을 요청하자 헝가리,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지를 돌다 결국 파리에 정착한다. 그러나 1926년 5월 결국 소련에 의해 살해된다.


귀족식 모자를 쓴 강도. 폰 시라트: 독일군 장군. 폰 두스트: 독일군 소령. 독일군 군의관. 탈주자: 카자크 출신 기병대 군인. 바구니를 든 사람. 공관 하인. 유대인. 막심: 김나지움 수위, 60세. 가이다마크 (우크라이나 카자크인, 기병대 군인): 통신병. 장교 1. 장교 2. 장교 3. 생도들과 가이다마크들.

1막, 2막, 3막은 1918년 겨울에, 4막은 1919년 초에 일어난다. 공간적 배경은 키예프다.


제1막


장면1

투르빈 가족의 아파트. 저녁. 벽난로에는 불이 타고 있다. 막이 열리면서 시계가 아홉 번 울리고 보케리니의 미뉴에트 가 부드럽게 연주된다. 알렉세이는 서류 더미 위로 몸을 숙 이고 있다. 니콜카는 기타를 들고 있다.

니콜카: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한다.) 매시간 소문은 더 흉흉해지네. 페틀류라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네! 우리는 기관총을 장전했지. 페틀류라를 향해 쏘았지. 기관총 사수들-사수들-사수들…. 사랑스런 친구들-친구들-친구들 우리를 구했어, 훌륭해!

알렉세이: 대관절 무슨 노래를 부르는 거야! 부엌데기 노래 같으니라고. 뭔가 제대로 된 노래를 불러 봐. 니콜카: 왜 부엌데기야? 이건 내가 직접 작사한 거라고, 알 료샤. (노래한다.) 네가 노래를 부르건 말건 네겐 이런 목소리가 없지! 바로 그런 목소리가 있지,


머리칼이 연기처럼 곤두서는….

알렉세이: 이거야말로 바로 네 목소리를 두고 하는 말인걸. 니콜카: 알료샤, 이건 무슨 헛소리야! 내겐 목소리가 있어. 물론 셰르빈스키 같은 목소리는 아니지만 말이야. 그러나 어쨌든 이 정도면 충분히 멋있다고. 드라마틱한 목소리,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리톤. 레노치카, 이봐 레노치카! 네 생 각엔 어때? 내게 목소리가 있지? 옐레나: (자신의 방에서) 누구한테? 너한테? 아니, 없고말고! 니콜카: 이건 옐레나가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렇게 대답한 거야. 그리고 말이야, 알료샤, 성악 선생이 내게 이렇게 말 하더라니까.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혁명만 아니었더라 도 당신은 정말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도 있었을 겁니다”라고 말이야. 알렉세이: 네 성악 선생이 형편없구나. 니콜카: 그래, 난 그럴 줄 알았어. 투르빈가의 집에는 신경 장애가 가득하다고. 내게 목소리가 없다니. 어제는 있었는 데 말이야. 내 성악 선생이 형편없다니. 이건 정말 회의주의 로군. 그렇지만 난 천성적으로 낙관주의에 더 가깝지. (기타 줄을 퉁긴다.) 비록, 알료샤. 너도 알겠지만 나 역시 슬슬 걱 정이 되긴 하지만 말이야. 벌써 9시잖아. 그는 낮에 온다고 했는데 말이지.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알렉세이: 너 좀 조용히 말해. 니콜카: 문제로군, 조물주여, 결혼한 누이의 남동생으로 산


다는 건.3) 옐레나: 거기 식당에 몇 시예요? 니콜카: 음… 9시. 우리 시계가 좀 빨라, 레노치카. 옐레나: 작문하지 마, 제발. 니콜카: 봐, 걱정하고 있어. (흥얼거린다.) 흐릿해, 아, 어쩌 면 모든 게 흐릿할까…. 알렉세이: 제발, 내 마음을 괴롭게 하지 마. 즐거운 노래를 불러 봐. 니콜카: (노래한다.) 다차 아저씨들, 안녕하세요! 다차 아주머니들, 안녕하세요! 측량은 이미 예전에 시작되었답니다…. 헤이, 내 노래는… 사랑스럽구나! 술-술-술, 술병 국산 포도주4)가든… 고상한 해군 모자, 유행하는 군화들, 소년병들이 행진하네….5)

3) “문제로군, 조물주여, …로서 산다는 건”−이 구절은 19세기 러시아 희곡작

가 그리보예도프의 <지혜의 슬픔>에 나오는 파무소프의 대사를 불가코프 가 패러디한 것이다. 4) ‘국산 포도주’는 혁명 이전 황제 치하의 러시아에서 국가가 독점적으로 판 매하던 보드카를 의미한다.

5) <측량>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노래는 20세기 초 러시아 사관학교 생도


갑자기 전기가 나간다. 무대 뒤에서 니콜카의 톤에 맞춰 우 렁찬 합창이 이어진다. “고상한 해군 모자….”

알렉세이: 레나, 초 있어? 옐레나: 응, 응. 알렉세이: 이게 뭐람. 1분마다 전기가 나가다니…. 옐레나: (초를 가지고 나오면서) 조용히, 잠깐만요. (귀를 기 울인다. 전기가 다시 들어온다. 옐레나가 촛불을 끈다. 멀 리서 폭발 소리가 들린다.) 니콜카: 이상해, 너무 가까이에서 들려. 바로 스뱌토신 근처 에서 들리는 것 같아. 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 는 걸까. 알료샤, 혹시 나를 참모부에 보내지 않겠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고 올게. 난 다녀오고 싶은데. 알렉세이: 제발 좀 앉아. 차렷! 니콜카: 예, 알겠습니다. 대령님. 난 말이지, 왜냐하면, 그저,

들이 가장 즐겨 부르던 노래 중 하나다. 훈련을 가는 도중, 또는 돌아오는 길 에 부르던 노래라고 한다. 훈련은 주로 도시 외곽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시골 집(다차)에 사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으로 노래는 시작 된다. 노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황실 기병학교에서 탄생했지만 이후 여러 사관학교들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가사를 바꿔 가며 불렸다. 러시아 사관생도 들은 볼셰비키 혁명 당시 다수의 적들을 상대해 러시아 황실을 수호하며 대 부분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후 이 노래는 아이러니하게도 소련 시절 이데올 로기 선전용으로 피오네르(소년 단원)들의 노래 <물병>으로 개작되어 불 리기도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좀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말이 야…. 저기서 사람들은 싸우고 있는데…. 우리 대대가 조금 이라도 빨리 정비된다면 좋을 텐데…. 알렉세이: 대대를 정비시키는 데 네 조언이 필요하다면 내 가 직접 네게 말한다. 니콜카: 죄송합니다, 대령님. 옐레나: 알료샤, 대체 내 남편은 어디에 있는 걸까? 알렉세이: 올 거야, 레노치카. (초인종 소리) 니콜카: 봐, 그야, 내가 말했잖아. (문을 열려고 뛰어 나간다.) 누구세요? 미실라옙스키: (무대 뒤에서) 문 열어, 제발, 빨리…. 알렉세이: 아냐, 이건 탈베르크가 아냐. 니콜카: (미실라옙스키를 현관으로 들이면서) 아니, 이건, 자네로군, 비텐카. 미실라옙스키: 그래, 나야. 물론, 진짜 나라고. 니콜, 소총 좀 잡아 줘. 빌어먹을. 알렉세이: 그래, 이건 미실라옙스키로군…. 옐레나: 빅토르, 어디서 오는 거야? 미실라옙스키: 오흐, 안녕, 레나. 잠깐만. 오흐… 조심해서 걸어, 니콜. 주머니에 보드카 병이 들었어. 깨뜨리지 마. 안 녕들 하신가, 모두 안녕들 하신가. 오흐, 크라스니 술집에 서 오는 길이야. 레나, 오늘 밤 여기서 묵게 해 줘, 부탁해. 집까지 못 가겠어. 완전히 얼었다구.


옐레나: 아아, 맙소사. 물론이야. 어서 불 가까이로 와. (모 두가 미실라옙스키를 안내한다.) 미실라옙스키: 오흐… 오흐… 오흐…. 알렉세이: 뭐야, 자네에게 털 부츠 하나 주지 못했단 말인가? 미실라옙스키: “털 부츠”라고! 이건 무슨 개새끼들 같으니 라고. 옐레나: 자, 이렇게 하죠. 저기 욕실에 지금 물을 데우고 있 어요. 여러분들은 어서 빨리 그의 옷을 벗기도록 해요. 나는 그에게 줄 옷을 준비할게요. (나간다.) 미실라옙스키: 친구들, 벗겨, 벗기라고…. 니콜카: 알았어, 알았어. (미실라옙스키의 부츠를 벗긴다.) 미실라옙스키: 살살. 오흐, 살살! 보드카라도 좀 마시게 해 줘. 보드카! 알렉세이: 지금 주지. 미실라옙스키: 빌어먹을, 발가락이 떨어져 나갔어. 발가락 이 떨어져 나갔음에 틀림없어. 알렉세이: 자네 무슨 소리야! 괜찮아질 거야. 니콜카. 발을 보드카로 소독해. 미실라옙스키: 좋아, 보드카로 내 발을 소독하는 걸 허락하 지! 손으로 문질러. 아파…! 아파…! 살살해. 니콜카: 쯧… 쯧…. 대위가 얼다니. 옐레나: (실내복과 실내화를 들고 나타난다.) 이제 욕실로 데려가요. 자! 에흐 불쌍해!


미실라옙스키: 레노치카, 하나님이 네게 건강을 허락하시 길 빌어.6) 그리고 물론 물질의 축복도 함께. 보드카를 더 줘! (마신다.) 알렉세이: 웃옷을 벗겨. (미실라옙스키가 옷 갈아입는 것을 돕는다.) 니콜카: 자, 몸이 좀 따뜻해졌어, 대위? 미실라옙스키: 좀 나아졌어. 니콜카: 말해 봐, 크라스니 술집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 지고 있는 거야? 미실라옙스키: 술집 아래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지. 그래, 바 로 그거야. 나라면 이 눈발, 추위, 죽일 놈의 독일군들과 페 틀류랴를 그냥…. 알렉세이: 이해할 수 없군. 무엇 때문에 자네를 술집 아래로 보냈단 말인가? 미실라옙스키: 술집 아래에는 아직 농민들이 있어. 친애하 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바로 그 가증스런 농민 들 말이야. 니콜카: 뭐라고, 설마? 신문에서는 농민들이 게트만 편이라 고 쓰고 있잖아. 미실라옙스키: 무슨 소리야. 생도, 나한테 신문 같은 것을 들이밀다니. 나라면 이 당신들의 신문기자 놈들을 그냥 단

6) “감사하다”는 의미의 관용적 표현.


방에 한 가지에다가 매달아 버렸을 거야! 오늘 아침에 내가 정찰 근무를 하고 있는 중에 한 놈과 맞닥뜨렸지. 그래서 물어봤다고. “아니, 당신네 농부들은 다 어디 가 있는 거요? 온 마을이 쥐 죽은 듯하군.” 그랬더니 그놈은 반쯤 봉사라 내 어깨에 있는 견장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대답하더군. “모두 페틀류랴한테로 달려갔습죠.” 니콜카: 오이-오이-오이. 미실라옙스키: 그래, 바로 그거야. “오이-오이-오이.” 그 래 나는 그 고추냉이의 셔츠 가슴 부분을 붙잡고는 말했지. “모두 페틀류랴한테로 달려갔습죠. 그래, 내 지금 너를 쏘 아 버릴 테다, 이 늙은…. 너 이놈아, 페틀류라한테 달려가 는 게 어떤 건지 내 알려 주지. 내 너를 하늘나라로 달려가 게 해 주지…. 하늘나라로 달려가게 말이다….” 니콜카: 대위, 자네가 그를 쏘았단 말야? 알렉세이: 아니길 바라네. 미실라옙스키: 그 자식은 내게 아주 필요했어. 그놈에게 말 했지. “야만인들에게 가. 그러나 나한테 한 번만 더 페틀류 라에 대해 입만 벙긋해 봐.” 성스러운, 흙을 파먹고 사는 이 놈은 1.5베르스타7)를 마치 토끼처럼 날아가더군.

7) ‘베르스타’는 고대 러시아의 거리 단위로 1베르스타는 1.06킬로미터에 해당한다.


(니콜카가 웃는다.)

알렉세이: 생도, 거기 뭐가 우스운 게 있어! 그렇다면, 자네 는 어떻게 도시로 들어온 건가? 미실라옙스키: 오, 하나님, 오늘 교대했지. 보병 부대가 왔 더군. 사령부에서 대단한 스캔들을 하나 일으켰지. 기분 정 말 엉망이더군. 그들은 기차 안에 앉아서 코냐크를 마시고 있더라고. 내가 말했지. 당신네들은 게트만과 함께 관저에 앉아 있고, 포병 장교들은 이 추위에 군화만 신긴 채 농민들 과 총싸움하러 보내느냐고. 나를 어떡해야 할지 모르더군. 말하기를, 우리는, 대위, 당신들을 전공별로 각 포병 부대의 위치로 배치시킨다네. 도시로 가시오. 그래서 나는 기관차 를 타고 출발했지…. 완전히 창백해지더군. 알료샤, 나를 자 네 부대에 받아 주게. 알렉세이: 물론이지! 나야말로 자네를 부르고 싶었다네. 내 자네에게 제1중대를 맡기지. 미실라옙스키: 고마워. 니콜카: 만세!!! 모두 함께 모이게 되었어. 스투진스키는 선 임 장교로 함께하고, 멋져! 미실라옙스키: 자네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니콜카: 알렉산드르 김나지움을 점거하고 있어. 우리는 이 미 준비가 되었다고, 비텐카. 내일이나 모레면 출동할 수 있 을 거야.


미실라옙스키: 내가 보기엔, 생도, 페틀류라가 자네 정수리 를 쥐어 팰 것을 참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군. 니콜카: 아니 이건, 누가 누구를 잡느냐지! 옐레나: (등장한다.) 자, 빅토르, 어서. 씻으러 가. 미실라옙스키: 빛나는 레나, 네 수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안고 키스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줘. 옐레나: 자, 수건. 미실라옙스키: 레노치카, 어떻게 생각해. 지금 보드카를 마 실까, 아니면 좀 있다가 저녁 식사하면서 마실까? 옐레나: 추호의 의심도 없어. 저녁 식사 시간에 마셔야지. 가, 가. 당신 내 남편 저기 어딘가에서 못 봤어요? 남편이 없어졌어. 미실라옙스키: 레노치카, 괜찮아. 찾을 거야. 그는 지금 올 거야.

(나간다. 초인종이 그치지 않고 계속 울리기 시작한다.)

니콜카: 자, 봐. 그야, 그라고. (현관으로 뛰어간다.) 알렉세이: 맙소사, 이건 무슨 종소리람?

(니콜카가 대문을 연다.)

라리오시크: (트렁크와 보따리를 가지고 현관에 나타난다.)


자, 이렇게 제가 도착했습니다. 초인종을 제가 잘못 건드린 것 같군요. 니콜카: 그건 당신이 단추를 안으로 ‘꾹’ 눌렀기 때문이에요. (대문 뒤로 달려간다.) 라리오시크: 아아, 맙소사. 용서하세요. 자, 제가 도착했습 니다. 안녕하세요, 깊이 존경하는 옐레나 바실리예브나. 사 진으로 당신을 당장 알아봤습니다. 엄마가 당신께 가장 뜨 거운 안부를 전해 드리라고 하셨어요. (종소리가 멈춘다. 니콜카가 들어온다.) 그리고 역시 알렉세이 바실리예비치 께도 같은 안부를 전해 드립니다. 알렉세이: 감사합니다. 라리오시크: 안녕하세요,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당신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두 놀라신 것 같군 요. 여러분들에게 편지를 전해 드립니다. 편지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줄 겁니다. 엄마는 제게 말했어요. 겉옷을 벗기도 전 에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들에게 편지를 읽어 드리라고 말입 니다. 옐레나: 어쩜, 전혀 알아볼 수 없는 필체네. 라리오시크: 예, 끔찍하지요! 허락하신다면 제가 직접 읽어 드리는 것이 낫겠습니다. 엄마는 자신이 직접 써 놓고도 무 엇을 썼는지 알아볼 수 없는 그런 필체를 가졌지요. 제 필체 도 바로 그렇습니다. 이것은 우리 집안 내력이지요. (읽는 다.) “사랑하는, 사랑하는 레노치카. 당신께 내 아들을 보냅


니다. 순전히 가족으로서 말입니다. 그가 묵을 수 있도록 따 뜻이 대해 주세요.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을 압니다. 게다가 당신의 아파트는 아주 크지 않습니까….” 엄마는 당 신을 매우 사랑하고 또 존경합니다. 물론 알렉세이 바실리 예비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읽는다.) “그 어린것이 키예프 대학에 입학합니다. 그의 능력으로….” 아아, 바로 엄마는 엄마라니까요. 음… 음…. “…지토미르에 앉아서 시간을 낭비하는 건 불가능해요. 생활비는 내가 잘 챙겨서 보낼 겁 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에 익숙한 어린것이 낯선 사 람들 집에 함께 사는 것을 원치 않아요. 어쨌든 나는 매우 서두릅니다. 지금 병원 열차가 오고 있어요. 아들이 직접 당신께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줄 겁니다.” 음…. 이게 다입니 다. 알렉세이: 죄송합니다만, 제가 지금 누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라리오시크: “누구와”라니요? 저를 모르십니까? 알렉세이: 유감스럽게도, 모릅니다. 라리오시크: 하나님 맙소사! 그리고 옐레나 바실리예브나 당신도 역시? 옐레나: 저 역시 모릅니다. 라리오시크: 맙소사,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엄마가 전보에 다 썼습니다. 엄마는 여러분들에게 전보로 예순세 글자를 보냈다고요.


니콜카: 예순세 글자! 오이… 오이… 오이! 옐레나: 우리는 어떤 전보도 받지 못했어요. 라리오시크: 맙소사, 이 무슨 스캔들이람! 저를 용서하세요, 제발. 전 저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겉옷도 벗지 않은 채 바로…. 죄송합니다. 제가 무언가를 부순 것 같군요. 전 끔찍하게 운이 없습니다. 알렉세이: 저, 실례지만, 당신의 성이 뭡니까? 라리오시크: 라리온 라리오노비치 수르잔스키입니다. 옐레나: 당신이 라리오시크, 지토미르에 있는 조카? 라리오시크: 네, 그렇습니다! 옐레나: 그래서 당신이? 우리 집에 오신 거예요? 라리오시크: 네! 그러나 보시다시피, 저는 엄마의 전보 이후 로 저를 기다리고 계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용서하세요. 양탄자를 더럽혔군요…. 저는 지금 아무 호텔에라도 가겠습니다. 옐레나: 지금 무슨 호텔로 간단 말이에요? 잠시만요—우선 외투를 벗으세요. 알렉세이: 그래요, 아무도 당신을 쫓아내지 않습니다. 외투 를 벗으세요. 라리오시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니콜카: 바로 여기에. 외투는 현관에 걸어 두어도 좋아요. 라리오시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파트가 정말 좋습 니다.


알렉세이: 이런 젊은이는 난생 처음이야. 옐레나: (귓속말로) 알료샤, 어쩌지, 그를 묵게 해야 할 것 같 아. 좋은 사람인 것 같아. 내가 그를 서재에 묵게 해도 반대 하지 않을 거지? 어쨌든 빈방이니까. (라리오시크가 들어 온다.) 자, 라리온 라리오노비치. 먼저 욕실로 가서 씻는 게 어때요? 거기엔 이미 한 사람이 더 있긴 해요. 미실라옙 스키 대위라고…. 아시다시피 긴 기차 여행 이후에…. 라리오시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토미르에서 키예프까지 11일을 왔답니다. 니콜카: 오이−오이−오이! …11일! 라리오시크: 끔찍, 정말 끔찍해요. 이건 정말 악몽이라고 요…. 옐레나: 자, 그럼. 라리오시크: 진심으로 감사…. 아아, 죄송합니다만, 옐레나 바실리예브나, 저는 욕실로 갈 수 없습니다. 알렉세이: 왜죠? 라리오시크: 죄송합니다만, 사실 어떤 악당들이 병원 열차 에서 속옷이 든 제 가방을 훔쳐 갔답니다. 전 정말 끔찍이도 재수가 없어요. 책과 서류들이 든 가방은 두고 말입니다. 속 옷을 몽땅 잃어버렸습니다. 옐레나: 그러나 이 재난은 극복할 수 있는 거군요. 니콜카: 제가 드리죠, 제가 드릴게요. 라리오시크: (은밀하게 니콜카에게) 참, 셔츠는 제게 여기


하나 있을 겁니다. 제가 그것으로 체호프 전집을 쌌거든요. 그래서 말입니다만, 제게 팬티를 주실 수 있습니까? 니콜카: 물론입니다. 제 것이 당신에게 크긴 하겠지만 그것 을 영국산 핀으로 고정시키지요 뭐. 라리오시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옐레나: 라리온 라리오노비치, 우리는 당신이 서재에서 지 내도록 해 드리겠어요. 니콜카, 안내해 드려. 니콜카: 자, 저를 따라오세요. (라리오시크와 함께 나간다.) 알렉세이: 독특하군! 나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를 군대로 보내겠어. (초인종 소리) 이제는 누군지 추측하지 않겠어. 레노치카, 난 내 방으로 갈게. 내겐 아직 할 일이 많아. 여기 서는 방해가 돼. (나간다.) 옐레나: 누구세요? 탈베르크: (무대 뒤에서) 나야… 나야… 문 열어. 옐레나: (문을 열고 탈베르크를 들인다.) 다행이야!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예요? 나는, 정말이지, 걱정했다고요. 탈베르크: 입 맞추지 마, 난 추운 곳에 있다 왔어. 감기 걸 릴 수도 있어. 옐레나: 도대체 어디에 있었어요? 탈베르크: 독일군 사령부에서 지체했어. 중요한 일이 있어 서 말이야. 옐레나: 알았어요. 어서, 어서 들어와요. 몸을 녹여요. 이제 차를 마시도록 해요.


탈베르크: 차는 필요 없어. 레나, 잠깐만. 그런데 이건 누구 외투야? 옐레나: 미실라옙스키 거예요. 방금 진영에서 돌아왔어요. 완전히 꽁꽁 얼어서…. 탈베르크: 어쨌든 제대로 치워 놓을 수는 있었을 텐데. 옐레나: 잠깐만요. (외투를 문에 건다.) 저 새로운 소식이 또 하나 있어요. 방금 갑작스럽게 지토미르에 사는 조카가 왔 어요. 그 유명한 라리오시크 말이에요. 탈베르크: 그럴 줄 알았어. 옐레나: 알렉세이가 그를 우리 집에 묵게 했어요. 서재에. 탈베르크: 그럴 줄 알았어. 친애하는 미실라옙스키 한 명만 으로도 부족해서 또 무슨 지토미르 조카가 나타났다니! 이 건 집이 아니라 무슨 여관이군! 난 정말 알렉세이를 이해할 수 없어! 옐레나: 발료자, 당신 그냥 피곤해서 기분이 엉망일 뿐이 에요. 이해할 수 없군요. 미실라옙스키가 당신한테 무슨 나 쁜 일을 했어요? 그는 그저 매우 착한 술꾼일 뿐이라고요. 탈베르크: 아주 훌륭한 위인이지. 술집이나 다니는. 옐레나: 발료자! 탈베르크: 참, 그건 그렇고. 지금은 미실라옙스키 이야기를 할 때가 아냐. 저, 옐레나, 중요한 일이 생겼어. 옐레나: 무슨 일이에요? 탈베르크: 독일군들이 게트만을 더 이상 지원하지 않기로


했어. 옐레나: 발료자, 무슨 말이에요? 어디서 알았어요? 탈베르크: 방금 비밀리에 독일군 사령부에서. 아무도 몰라. 심지어 게트만까지도. 옐레나: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탈베르크: 어떻게 되느냐고? 음…. 9시 반이군…. 그렇담… 어떻게 되느냐고? …레나. 옐레나: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탈베르크: 말하고 있어, 레나…. 옐레나: “레나”가 뭐 어쨌다는 거예요…? 탈베르크: 레나, 난 말야. 지금, 도망가야만 해. 옐레나: 도망간다니? 어디로요? 탈베르크: 베를린으로. 음…. 9시 31분이로군. 사랑하는 여 보, 당신도 알 거야. 만약 러시아 군대가 페틀류라를 물리치 지 못하고 페틀류라가 키예프로 입성하는 경우에 무엇이 나 를 기다리는지 말이야. 옐레나: 당신을 숨길 수 있을 거예요. 탈베르크: 내 사랑, 어떻게 나를 숨긴단 말이야? 나는 바늘 이 아니잖아. 도시에 나를 모를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게트만 치하의 국방부 보좌관을 숨긴다니! 미실라옙스키 경 처럼 제복 외투를 벗고 낯선 아파트에 앉아 있는 짓 따윈 난 못해. 아주 기막힌 방법으로 날 찾아내고 말 거야. 옐레나: 잠깐,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어떻게 도망간단 말이


죠? 말하자면, 우리 둘이서 떠나야만 한다는 건가요? 탈베르크: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거야. 방금 아주 끔찍한 상 황이 밝혀졌어. 도시는 사방이 포위되어 있다고. 도시를 떠 나는 유일한 길은 독일군 사령부 기차를 타고 가는 길뿐이 야. 여자들은 태우지 않아. 내 연줄을 통해서 단 하나의 자 리를 얻었어. 옐레나: 다른 말로 하자면, 당신 혼자 떠나고 싶다는 거군요? 탈베르크: 여보, “원치 않아.”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어. 9시 35분이군. 이건 위기 상황이라고! 기차는 한 시간 반 후에 출발해. 결정해, 되도록이면 빨리…. 옐레나: 되도록이면 빨리. 한 시간 반 후라고요. 그렇다면 결정하죠, 떠나세요. 탈베르크: 당신은 똑똑해. 난 항상 확신했지. 내가 또 무슨 말을 하려 했더라? 그래, 당신이 똑똑하다고 말하려 했어. 참, 이건 내가 이미 말한 거로군. 옐레나: 우리 얼마 동안 떨어져 있는 건가요? 탈베르크: 내 생각엔, 한두 달 정도. 나는 그저 베를린에서 이 혼란기가 지나기를 좀 기다렸다가, 게트만이 돌아오 면…. 옐레나: 만약 게트만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면요? 탈베르크: 그럴 순 없어. 심지어 독일군들이 우크라이나를 버려둔다 해도 영국, 프랑스, 러시아 연합군이 우크라이나를 점령해서 게트만을 다시 세울 거야. 유럽은 게트만 체제의


우크라이나를 필요로 해. 모스크바의 볼셰비키에 대한 경계 선으로서 말이야. 보라고. 난 모든 것을 다 계산해 놓았어. 옐레나: 그래요, 그렇군요. 그렇지만 이건 어떻게 된 거죠? 게트만은 아직 여기 있잖아요. 우리 편이 군대를 모으고 있 는데 당신은 갑자기 이들 눈앞에서 도망을 쳐요. 이게 자연 스럽겠어요? 탈베르크: 여보, 순진하기도 하지! 난 당신한테 비밀을 이야 기한 거라고…. “도망간다고.” 왜냐하면 당신이 이 사실을 결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참모부 대령들은 도망가는 게 아니라 출장 가는 거라구. 내 호주머니에는 게트만 국방부에서 받은 베를린 출장 통지서가 있어. 어때, 이 정도면? 옐레나: 네, 아주 그럴싸하군요. 그렇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 은 어떻게 되는 거죠? 탈베르크: 다른 모든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다니 정말 고맙 군. 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고. 옐레나: 오빠랑 동생에게는 미리 말해 둬요. 탈베르크: 물론이지, 물론이고말고. 자, 그렇다면 다 해결 되었군. 다행이야.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지내야 한 다니 참 마음이 무겁군. 그러나 한편으론 다행이야. 나 혼 자 떠나는 것이. 당신은 우리 아파트를 잘 지키도록 해. 옐레나: 블라디미르 로베르토비치, 여기엔 내 형제들이 살 고 있어요. 당신 설마 그들이 우리를 밀어내려 한다고 말하


고 싶은 건 아니죠? 당신은 그럴 권리가 없다고요. 탈베르크: 오,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구…. 물론, 아니지…. 10시 20분 전이군. 그러나 당신도 이런 속담을 알잖아. “ki va a la shas, per sa plas.”8) 옐레나: 그래요, 이 속담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탈베르크: 부탁이 하나 더 있어, 마지막 부탁이야. 여기 에…. 음… 내가 없을 때 물론 그… 셰르빈스키가… 찾아 올 테지…. 옐레나: 그는 당신이 있을 때에도 찾아왔었어요. 탈베르크: 유감스럽지만 여보, 알다시피, 나는 그자가 싫어. 옐레나: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있을까요? 탈베르크: 당신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지나치게 느끼해. 그 래서 가능하다면… 음…. 옐레나: 가능하다면 뭐라고요? 탈베르크: 뭐라고 말할 순 없어. 당신은 현명한 여자야. 그 리고 충분히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당신은 아주 잘 알 거야. 내 성에 그림자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자신을 절제 해야 하는지 말이야. 옐레나: 좋아요…. 당신의 성에 그림자를 남기지 않겠어요. 탈베르크: 아니 당신, 왜 그렇게 건조하게 대답하는 거야? 8) “Qui va à la chasse perd sa place”는 “사냥을 떠나는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잃는다”는 뜻의 프랑스어로 희곡 속 번역은 작가 불가코프의 번역이 다.


난 당신에게 당신이 날 배신했다고 말하지 않았잖아. 난 그 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어. 옐레나: 블라디미르 로베르토비치, 왜 당신은 내가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죠? 탈베르크: 옐레나, 옐레나, 옐레나! …당신을 못 알아보겠 군. 바로 이것이야말로 미실라옙스키와 친하게 지낸 결과 야. 난 그자가 마음에 안 들어. 결혼한 여자가 배신을 하다 니. 10시 15분 전이군…. 또 늦겠군. 옐레나: 지금 짐을 챙기죠. 탈베르크: 여보,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챙기지 마…. 단지 트렁크에 속옷만 조금 넣으라고. 되도록 서둘러 줘. 당신에게 1분을 주겠어. 옐레나: 당신, 오빠와 동생과는 인사해야죠. 탈베르크: 물론이고말고. 단지 조심해. 나는 출장을 가는 거야! 옐레나: 알료샤, 알료샤! (달려 나간다.) 알렉세이: (나오면서) 그래, 그래…. 아, 안녕한가, 발료자! 탈베르크: 안녕, 알료샤! 알렉세이: 무엇 때문에 이리 분주한 거지? 탈베르크:. 이보게, 내 자네에게 중요한 소식을 전해야겠 어. 알려 두네만, 오늘 게트만의 상황이 아주 심각하게 되 었어…. 알렉세이: 어떻게?


탈베르크: 심각해, 아주. 알렉세이: 무슨 일인가? 탈베르크: 독일군들이 도움을 주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 아. 페틀류라를 우리 힘으로 물리쳐야 할 수도 있어. 알렉세이: 설마? 상황이 좋지 않군. 이야기해 줘서 고맙네. 탈베르크: 이제는 두 번째 소식인데 말이야. 난 지금 당장 출 장을 가게 되었어. 기차가 한 시간 후면 출발해. 알렉세이: 만약 비밀이 아니라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탈베르크: 베를린으로…. 알렉세이: 어디로? 베를린으로? 탈베르크: 그래!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어쩔 도리가 없 었어. 이 무슨 엉망진창이란 말인가. 알렉세이: 얼마나 오랫동안 다녀오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탈베르크: 두 달가량. 알렉세이: 아아, 그렇게 되었군. 탈베르크: 그래서 말이야. 자네, 잘 있게. 옐레나를 부탁해. (손을 내민다.) 이건 무슨 뜻인가? 알렉세이: (손을 등 뒤로 숨기면서) 이건 자네의 출장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라네. 탈베르크: 투르빈 대령. 알렉세이: 나 여기 있어, 탈베르크 대령. 탈베르크: 자네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줄 아시오, 친애 하는 처남.


알렉세이: 언제 명령하실 건가, 친애하는 매부? 탈베르크: 언제라구? 10시 10분 전이군…. 내가 돌아오면 그리하지. 알렉세이: 흥, 누가 알겠는가, 자네가 돌아올 때쯤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탈베르크: 자네…. 자네…. 난 오래전부터 자네와 담판을 벌여 보고 싶었어. 알렉세이: 아내를 걱정시키지 말게, 탈베르크. 옐레나: (트렁크를 들고 나오면서) 무슨 이야길 하고 있었어 요? 당신들 무슨 일이에요? 하필 이런 시점에! 참 보기가 좋 지 않군요. 알렉세이: 레노치카,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야. 탈베르크: 여보,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야. 그럼, 잘 있게. 알료샤. 알렉세이: 잘 가게, 발료자! 옐레나: 니콜카! 니콜카! 니콜카: (나오면서) 아, 그가 왔군, 난…. 옐레나: 발료자는 출장을 가. 인사 나누렴. 탈베르크: 잘 있어, 니콜카. 니콜카: 잘 다녀오세요. 탈베르크: 옐레나, 자, 여기 돈 받아. 베를린에서 곧장 돈을 부칠게. 건강해. 건강해. (급하게 현관으로 걸어간다.) 나오 지 마. 여보, 감기 걸려.


알렉세이: (불쾌한 목소리로) 옐레나, 너 감기 걸려. 니콜카: 알료샤, 어떻게 이렇게 떠날 수 있어? 어디로? 알렉세이: 베를린으로. 니콜카: 베를린으로. 아하…. 이런 순간에…. 마부랑 실랑 이를 벌이는군. (철학적으로) 알료샤, 있지, 난 알아챘어. 그 가 쥐를 닮았다는 걸 말이야. 알렉세이: (기계적으로) 그래, 집은 배를 닮았고 말이야. 자 어서 손님들께로 가, 어서, 어서.

(니콜카가 나간다.)

알렉세이: 대대는 완전히 길을 잘못 들었어.9) “아주 심각 해!” “심각해, 아주.” 쥐를 닮았다. (나간다.) 옐레나: (돌아와서 창을 바라본다.) 떠났어.

9) 알렉세이의 독백은 대대를 정비하고 출정하는 것이 마치 장례를 준비하 는 것 같다는 예언자적 말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북레터 <인텔리겐치아>를 보셨습니다. 매일 아침 커뮤니케이션북스와 지식을만드는지식 저자와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인텔리겐치아>사이트(bookletter.eeel.net)를 방문하면 모든 북레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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