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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를 만나고, 예수를 만나고 굿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고 전통과 일상이 춤추고 나와 너가 우리가 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가 되고 예수를 만나면 예수가 되어 우리 속에 살아 있다.

영화 <무녀도>, 감독 최하원, 1972


인텔리겐치아 2252호, 2014년 10월 8일 발행

스크린으로 간 문학 3. 정호웅이 엮은 ≪김동리 작품집≫

믿기 어려우나 이러한 이야기도 있다. 그가 산에 가 기도를 올릴 적엔 아무리 밤중이라도 무서움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마을 장난꾼들이 그를 놀래 주려고, 그가 산에서 내려오는 다리 우에 허수아비를 맨들어 세우 고는, 몇 사람이 다리 아래 숨었다가 그의 옷 자락을 잡어 댕겼다 한다. 이때 모화는 한숨을 쉬고, “이 구신이 모화를 몰르나?”


태연히 서서 이렇게 호령하매, 다리 아래 있던 사람들이 모두 넋을 잃고 쓰러져 버리었 고, 이 통에 그들은 무서운 병을 얻어, 그 뒤 한 사람은 죽고, 다른 몇 사람은 모화가 굿을 해서 도루 병을 낫게 한 것이라 한다. 모화는 큰 굿뿐 아니라 객귀도 곳잘 물리 첬다. 남의 집 장사일 같은 데나 가서, 부정한 음식을 먹고 갑자기 오한이 들고, 조갈이 나 고, 눈이 캄캄 어두워지고, 머리가 갈라지는 듯 벌룸거리고 할 적엔 모화가 와서 물밥이나 한 바가지 물리면 당장 시언해지며 잠이 드는 것이라 한다. -<무녀도>, ≪김동리 작품집≫, 김동리 지음, 정호웅 엮음, 32~33쪽


모화는 무녀인가? 이름난 무당이다. 사람들은 큰 굿을 해야 할 때면 반드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그녀에 게 위기가 닥친다. 무당에게 닥치는 위기란 어떤 것인가? 마을에 예수교가 들어온다. 예수교도가 늘 어가고 예전엔 반갑게 맞던 이들도 이제는 그 녀를 괄시하기 시작한다. 모화는? 불길 같은 질투를 느낀다. 이적은 신령님이 그녀에게만 허락한 특별한 권능인데 예수교 가 들어온 뒤로 서울 부흥 목사도 기도를 하 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떠들기 때문이다. 이


때 그녀에게 또 다른 화가 닥친다. 무엇이 찾아오는가? 벙어리인 딸 낭이가 임신을 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임신의 사유를 찾는다. 모화는 “신 령님을 느껴” 잉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러자 예수교를 믿는 몇몇 마을 사람은 그녀를 저주한다. 예수교도의 저주에 그녀는 어떻게 맞서는가? 자신의 딸이 해산하는 날 말이 터질 것이라고 예언한다. 말이 터지는가? 아니다. 딸은 유산을 하고 여전히 말을 하지


못한다. 이적을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은 그 녀를 비웃고 모화의 아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아들을 비난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낭이는 집에만 있기 때문이다. 아들이 여동 생을 범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모화의 반격은 무엇인가? 미쳐 버린다. 얼마 뒤 부잣집 며느리가 소에 몸을 던져 그녀는 굿을 하게 된다. 밤이 되자 죽은 사람의 혼백을 부르면서 물속으로 들어 간다. 빠져 죽는다.


딸과 아들은 어떻게 되나? 딸은 멸치를 팔다 돌아온 아버지를 따라 떠나 고 아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주제는 샤머니즘과 예수교의 투쟁인가? 아니다. 모화의 마지막 굿이다. 여기서 무당 과 죽은 영혼은 하나가 되고 무당의 육신과 정신이 춤과 소리로 승화한다. 그녀는 인간 세상의 온갖 관계들에서 풀려나 신의 세계를 노닐다가 무아지경에서 죽음의 세계로 건너 간다. 무당의 죽음은 무엇인가? 그녀는 죽음으로써 자신의 존재성을 완전히 실현하고 자신의 ‘자신 됨’을 지킨다. 그녀의


죽음은 하나의 완성이다. 모화 같은 강한 주 체가 등장하는 것이 김동리 문학의 특성이다. 김동리 문학의 특성이 뭔가?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끝끝내 자신을 지켜 내 는 강한 주체가 그를 둘러싼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끝끝내 지켜 내고자 하는 ‘자신 됨’은 종교적 믿음, 핏줄에 대한 자부, 절대의 사랑, 고독, 자존 의식 등 이다. 이 책에는 어떤 작품을 실었는가? <무녀도>, <황토기>, <두꺼비>, <역 마>, <등신불>, 모두 다섯 편이다. 모든 작품에서 강한 주체의 존재성이 드러난다.


김동리는 누구인가? 소설가이자 시인이고 뛰어난 비평가이기도 하다. 그는 개작을 자주, 많이 하기로 유명 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도 개작인가? 처음 발표한 원작을 수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덜 다듬어진 상태 그대로의 원작을 통해 독자는 창작의 산실을 가까이에서 경험 할 수 있으며 창작 중인 작가를 가장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정호웅이다.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다.


부처를 만나고, 예수를 만나고 굿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고 전통과 일상이 춤추고 나와 너가 우리가 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가 되고 예수를 만나면 예수가 되어 우리 속에 살아 있다.

영화 <무녀도>, 감독 최하원, 1972


김동리 작품집 김동리 지음 정호웅 옮김 한국 문학 2010년 3월 15일 출간 사륙판(128*188) 양장본, 204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무녀도(巫女圖)


ㄱ 무녀도는 슬픈 그림이었다.

우리 집에 있던 여러 가지 값 먹은 패물과 진기한 골동 품들 중에도 내가 가장 중히 여기고, 혹한 것은 저 무녀도 였었다. 그 참 값을 처음으로 발견한 이도 내요, 그 슬픔을 진정 으로 깊이 느낀 것도 나뿐이라 했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가지 서화 패물들을 가산과 함께 모두 유실하고도 오직 저 무녀도만은 내 손에서 놓지 않았었다. (저것만은 언제까지 라도 나의 가난한 책장 곁에 걸려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 집은 옛날의 소위 명문이라는 것이었다. 돈과 권세 도 있었고, 글하는 선비란 것도 있고 또 그밖에 진기한 패물 과 골동품으로도 매우 유명했었다. 이 골동품을 즐기는 취 미는 아비에서 아들로, 아들에서 손자로 대대 가산과 함께 내려오는 전통적 가풍이었다. 우리 집 살림을 전혀 파방처버린1) 것은 아버지 때였으니 1) 파방처버린: ‘파방(罷榜)’은 ‘옛날에 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발표를 취소하던 일을 ’ 뜻하며, 여기에서 전이되어 ‘파방치다는 ’ ‘살던 살림을 그만두다라는 ’ 뜻 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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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십여 년 전이다. 그때까지 아버지께서는 민족주의 요 사회주의요 하시고 만주에서 상해로 침이 마르게 돌아다 니시는 통에 가산이 모두 은행으로 넘어가버리고 이어 아버 지의 옥사와 함께 완전히 탁방나버린2) 것이었다. 한 스무나문 해 전만 해도 살림사리가 옛날과 다름없이 할아버지께서는 사랑에서 나그네를 치르셨고 그러자니 서 화 운객들이 끊일 새 없이 드나들었었고 따라서 탐스러운 물건에는 값을 아끼지도 않았었다 한다. 그 지음이라 한다. 왼종일 흙바람이 불어 후원에 살구꽃이 피고 하는 어느 봄날 어스름때였다. 이상한 나그네가 대문 앞에 닿었다. 한 오십이나 가까이 된 듯한, 동저고리바람에 갓을 쓰고 그 우에 명주수건으로 잘라 맨, 체수가 조고마한 사내가 나 귀ㅅ고삐를 잡고 서고, 나귀 우에는 열대여섯쯤 먹어 뵈는 얼굴이 몹시 파리한 처녀가 타고 있었다. 얼핏 보아, 늙은 하인과 그 상전의 따님인 상 싶었다. 그러나 이튿날 그 늙은 사내는 이렇게 말했다. “이 여아는 소인의 여식이옵는데 화재(畵才)가 볼만하와 2) 탁방나버린: ‘탁방(坼榜)’은 ‘옛날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성명을 게시하던 일을 ’ 뜻하며, 여기에서 전이되어 ‘탁방나다는 ’ ‘어떤 일이 결말이 나다라는 ’ 뜻 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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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의 문전을 찾었삽내다.” 소녀는 힌 옷을 입었었고, 옷빛보다 더 새하얀 얼골엔 깊 은 슬픔이 서리어 있었다. 혹 주인이 소녀에게 묻는 말 같이 건너보아도 소녀의 자 그만 입은 굳게 닫히어만 있었고,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리고 몇일 뒤 주인은 소녀에게 힌 비단 한 폭을 주었다. 그것이 곧 지금 저 벽에 걸린 무녀도가 된 것이다. 뒤에 물러 누은 어둑어둑한 산, 앞으로 폭이 넓다랗게 흐 르는 검은 강물, 산마루로, 들판 우로, 검은 강물 우로 모두 떨어질 듯한 파-란별들 어느 것이나 이슥한 밤중이다. 강 ㅅ가 모래ㅅ벌엔 차일을 치고, 거적을 두르고, 마을 여인들 이 자욱이 앉어, 무당의 시나위ㅅ 가락에 취하여 있다. 그들 의 얼골에 분명히 슬픈 흥분과, 새벽이 가까워 온 듯한 피곤 한 빛이 보인다. 무당은 시방 한창 청승에 자즈러져 뼈도 살 도 없는 혼령으로 화한 듯 가벼히 쾌자3)ㅅ자락을 날리며 춤 을 춘다…. 거기엔 발(자연)의 리듬과 사람의 호흡이 무당의 춤을 통 하야 혼연히 융화되어 있었다. 그것은 소녀의 얼굴에서 보 는 듯한 어떤 슬픈 숨ㅅ결이었다.

3) 쾌자: 소매가 없고 등솔기가 허리까지 트인 옛날 전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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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림에 깊은 이해가 없는 주인 할아버지이라도 지금까지 보아온 산수화나 매란죽에서와 다른 필치를 느낄 수는 있었다. 그것은 이해와 비판 저편에 흐르는 향수의 공 명이었다. “아기의 이름은?” “…” 소녀는 굵은 눈으로 한번 그를 바라보았을 뿐, 대답이 없 었다. 아비가 대신 딸의 이름을 대어, “낭이(琅伊).” 하고, 말을 끊어서, 다시 이었다. “여식은 귀가 먹었습니다.”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주인은 두 사람을 일헤ㅅ동안이나 붙잡어 머물게 하고, 그들의 긴 이야기를 모두 듣고, 떠나는 날에는 값진 비단과 좋은 음식과, 충분한 노자를 주어 보내었다 한다. 그러나 나귀 우에 앉은 가련한 소녀의 얼굴엔 올 때나 조 곰도 다름없는 슬픔이 있을 뿐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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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할아버지가 그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그 우에 할아버지의 이 해와 추측을 합처 나에게 들린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경주 읍에서 성 밖으로 두어 마정 나가면 가장 오래된 조 고만 평민촌(집성촌)이 있다. 이 평민촌 한 구석에 모화(毛火)라는 무당이 살고 있었 다. 모화서 온 사람이라 하야 모화라 부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 머리 찌프러저 가는 묵은 기와집이었다. 집웅 우에는 기와 버섯이 퍼렇게 뻗어 올라 독한 흙냄새를 풍기 고, 너른 뜰에는, 도트라지, 오요개지 같은 이름도 모를 잡초 들이 거다게 성하야 군데군데 사람의 키가 묻힐 지경이었고 땅(마당)은 봄에 물이 녹을 때부터 시작하야 도루 얼어붙을 때까지 사뭇 축진해서4), 배암 같은 지렝이들이 한 자씩이나

폇다 움추리고, 잡풀 뿌리 지음에는 개구리 머그리들이 쌍 쌍이 앉어, 얼을 빼고, 집 주위는 높지도 않은 앙상한 돌ㅅ 담이 문허지다 남은 옛성처럼 꼬불꼬불 외어 쌓다, 한군데

가 끊어졌을 뿐 울타리이랄 것도 없고, 우울한 처마 아래 단

4) 축진해서: 물기가 많이 있어 눅눅하고 끈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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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방문은 언제나 무겁게 닫혀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이 집에 오기를 꺼리었다. 어떤 사 람은 가까이 지나가기도 싫어했다. 그들은 집만 아니라, 이 집의 사람들까지도 가까이 하지 않었다. 그들은 스스로 백정이나 무당의 족속과는 잘 분별 하야, 그 웃 지위에 처할 것을 잊지 않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누구든지 사람이 아프거나, 죽거 나 하면 반드시 모화를 찾었다. 한번 찾은 사람은 자칫하 면 또 찾고 했다. 그만치 그들은 모화를 보는 것이 위안이 되었었다. 모화는 온 고을에서도 제일 이름난 무당이었다. 산ㅅ굿 이고, 용신ㅅ굿이고, 언제던 큰 굿이면 반드시 모화를 불러 갔다. 모화가 불린 굿을 모화굿이라 했다. 모화굿이라면 여인 들은 이십 리 삼십 리 산 고개를 넘기쯤은 예사고, 오십 리 육십 리 밖에서도 밥을 싸서 모여들었다. 모화굿을 보고는 울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 하였다. 날이 다 새어, 굿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여인들은 말 했다. “모화 시나위ㅅ가락이사 돈을 암만 줘도 아까운 줄 모를 러라.”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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