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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나아간다 씨가 나무가 되고 수정란이 성체가 되고 물고기는 인간이 되고 하나의 먼지 덩어리가 태양과 행성과 위성이 되었다. 생명에서 문화까지, 단순한 모든 것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허버트 스펜서 초상화>, 존 배그놀드 버제스 그림, 1871~1872


인텔리겐치아 2289호, 2014년 10월 31일 발행

시월의 새 책. 이정훈이 옮긴 허버트 스펜서의 ≪진보의 법칙과 원인≫

그래서 이런 유기체적인 진보의 법칙이 모 든 진보의 법칙임을 주장할 수 있다. 이와 같 이 연속된 분화를 통해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가는 진화(evolution)는 지구의 발전 에서 생명의 발전, 혹은 사회, 정부, 공업, 상 업, 언어, 문학, 과학, 예술의 발전에 이르기 까지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다. 태초까지 거


슬러 올라가는 우주적 변화부터 최근에 나타 난 문명의 결과까지, 우리는 단순한 것들이 복잡한 것으로 변화하는 것에서 진보가 본질 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보의 법칙과 원인(Progress: Its Law and Cause)≫,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지음, 이정훈 옮김, 6~7쪽

진보의 법칙이 뭔가? 단순성에서 복잡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유기체에서 나타난다. 종자가 나무가 되는 과정이나, 수정란이 동물 성체가 되는 과정 에서 생기는 일련의 변화를 보라.


어떤 변화인가? 수정란이 성체가 되는 과정을 보자. 처음에는 구조나 화학적으로 단일하다. 그러다가 분화 해 배아가 성장하며, 복잡한 조직이나 장기가 만들어진다. 이것을 발생이라고 한다. 종 수준에서도 이 법칙이 실현되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체 생물 종은 복잡성을 띤다. 척추동물의 예를 들면 가장 일찍 등장 한 어류는 가장 단순하고, 이후에 출현한 파 충류, 포유류로 갈수록 복잡성이 심화된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장 복잡한 생물인가? 위의 법칙을 포유류에만 국한하자면, 최초 의 포유류인 소형 유대류는 형태가 가장 하등


하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나타난 포유류인 인간은 가장 고등하고 복잡하다. 인간 종 안에서는 어떤가? 스펜서에 따르면 문명인인 유럽인은 미개인 보다 능력의 범위가 넓고 다양하며 더 복잡하 고 정교한 신경 기능을 가졌다고 한다. 틀린 말이지만 19세기 당시 유럽에서 흔한 인식이 었다. 물리학이나 천문학에서는 어떤가? 태양계에서도 이런 모습이 보인다. 태양계도 진화한다는 말인가? 성운설에 따르면 태초에 태양계는 단일한 덩


어리로 존재했다. 그러다가 내부와 외부에 서 밀도, 온도 차이가 발생하면서 회전 운동 이 일어나 태양과 행성, 위성으로 나뉘었다. 자연 세계 밖, 문화의 장에서는 어떤가? 인류 문명에도 이 법칙이 확인된다. 개별 인 간에서 사회적인 인간으로 나아가는 전반적 인 문명의 진화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모든 부족이나 국가에서 처음에는 단순한 군집만 이 존재했다가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분화하 며, 종교 체계도 출현한다. 언어와 예술 또한 진보의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다. 진보의 법칙이 보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제1원인(first cause)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1원인이 뭔가? 스펜서는 자연과학적 현상의 배후에 인간의 지성이나 인지 능력으로는 알 수 없는 형이상 학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의 본질을 제1원인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자연 과 인문, 사회를 공통으로 관통한다. 스펜서가 말하는 진보는 곧 진화론인가? 그렇다. 사람들은 다윈을 진화론의 시조 라고 보지만, 사실은 19세기 초중반 이미 유럽 지성계에는 생물의 진화가 사실이라 는 인식이 광범위했다. 여기에는 비교생물 학의 발전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스펜서


는 여기에 형이상학적인 설명을 덧붙여 진 화 철학을 완성했다. 그는 다윈보다 먼저 ‘진화(evolution)’,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말을 쓴 인물이다. 스펜서는 어떤 인물인가? 사회 진화론의 시조로 평가받는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 사상가로 사 회학, 정치철학뿐 아니라 인류학, 생물학에 까지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영향력은 어디까지 미쳤나? 사상의 핵심인 자유방임과 적자생존은 후에 미국에서 보수적인 자유주의의 바탕이 되었 다. 또 당대에 일본과 중국에 소개되어 동아


시아까지 넘어왔다. 유길준, 윤치호 등 조선 의 개화기, 일제강점기 지식인들도 영향을 받았다. 이 책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스펜서의 사회 사상을 다룬 책은 2014년 한 번 번역된 바가 있지만, 그의 진화 사상을 다 룬 책은 이번이 첫 번역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정훈이다. 화학과 과학사를 전공하고 존 스홉킨스대학 박사 과정에서 공부했다.


모든 것은 나아간다 씨가 나무가 되고 수정란이 성체가 되고 물고기는 인간이 되고 하나의 먼지 덩어리가 태양과 행성과 위성이 되었다. 생명에서 문화까지, 단순한 모든 것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허버트 스펜서 초상화>, 존 배그놀드 버제스 그림, 1871~1872


진보의 법칙과 원인 허버트 스펜서 지음 이정훈 옮김 자연과학 2014년 10월 30일 출간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113쪽 15,000원


작품 속으로

Progress: Its Law and Cause 진보의 법칙과 원인


진보의 법칙과 원인

현재 통용되는 진보(progress)1)의 개념은 다소 유동적이고 불명확하다. 때때로 이 말은 한 국가의 인구 증가나 영토 확 대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때때로 농업이나 산업의 성장에 이 말이 쓰일 때는 물적 생산의 양을 가리키기도 한다. 가끔 은 이런 생산에서 발생한 초과 생산량으로 생각되기도 한 다. 그리고 가끔은 이런 것들을 생산할 때 적용되는 새롭거 나 개선된 응용 과정을 말하기도 한다. 도덕이나 지적(知的) 진보를 논할 때, 우리는 개개인이나 집단 성원이 이것을 보 여 주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식이나 과학, 예술의 진보를 논할 때는 인간의 사고나 행동의 어떤 구체적인 결 과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통용되는 진보의 개념은 모호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정도로 잘못되어 있다. 위에서 말한 것들은 진보의 실상이라기보다는 진보에 부수되는 것 이다. 즉, 본질이 아니라 그림자에 불과하다. 아이가 성인으

1) 여기서 진보(progress)는 진화(evolution)라는 말을 아우른 개념이다. 현재 쓰이는 진화라는 개념은 당시 아직 정의가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자가 사용하는 진보는 진화와 대동소이한 의미로 쓰인다. 그러므로 현재 사용되 는 좌파적 진보의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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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성장할 때나 야만인이 철학자로 변화할 때 지적 능력의 진보가 일어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사실과 그에 따라 성립 된 법칙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진보는 내부적 변형 에 있는데, 그것은 증가된 지식으로 나타난다. 사회적 진보 는 다음과 같은 것에 실재한다고 생각되고 있다. 바로 인간 의 욕구 충족에 필요한 더욱 많은 재화의 생산, 신병이나 자 산에 대한 증가하는 안정감, 혹은 행동의 자유의 증진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사회적 진보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이것 은 사회 유기체(social organism) 안 구조의 변화에 있고, 이 것은 이러한 결과들을 가져온다. 현재의 진보의 개념은 목 적론적(teleological)이다. 이런 현상은 오직 인간의 행복에 만 관련을 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이런 변화들만이 직 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인간의 행복을 제고하는 진보를 구성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단지 인간의 행복 을 제고하기 때문에 진보를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런 변화의 본질 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하는데, 이 변화의 본질은 우리의 이해관계와는 무관하다. 가령, 지구의 연속적인 지 질학적 변화 과정을 인간 거주를 위해 점진적으로 적합해지 는 변화라고 보거나, 단순한 지질학적 진보로 보는 것은 지 양해야 한다. 그보다는 이런 변화 과정에 공통된 특징−즉, 4


이것들 모두에 적용되는 법칙−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것들에도 비슷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진보가 주는 부산물과 이익만을 보는 것을 넘어서서, 진보 그 자체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몇몇 독일 학자들은 개별 기관들이 진화2) 과정에서 보 여 주는 진보에 관한 질문들을 고찰해 왔다. 볼프(Caspar Friedrich Wolff, 1735~1794)3),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4), 베어(Karl Ernst von Baer, 1792~1876)5)는 종자가 나무가 되는 과정이나, 수정란이 동물이 되는 과정에서 보여 주는 일련의 변화는 단순성 (homogeneity)에서 복잡성(heterogeneity)6)으로 가는 발

2) 저자는 원문에서 진화(evolution)를 썼지만, 문맥상으로 보면 현재의 의미 에서는 ‘발생(embryogeny)’이 들어가야 맞다. ‘evolution’이 현재적 의미 의 진화를 가리키게 된 것은 이 글이 나온 뒤의 시기다. 또한 현재적인 의미 로 ‘진화’라는 말은 다윈이 아니라 스펜서가 가장 먼저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3) 발생학의 아버지로, 이미 배아에 모든 기관이 형성되어 있다는 전성설을 부 정하고 시간이 갈수록 내부 기관들이 분화된다는 후성설을 주장했다. 4) 시인으로 더 유명하지만, 식물학과 생물학에서도 상당한 연구를 했다. 5) 독일ᐨ에스토니아계 러시아 생물학자. 수정란이 배아가 되는 과정이 하등동 물에서 고등동물로 가는 과정과 대응된다는 반복설(recapitulation)을 주장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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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라는 정설을 수립했다. 모든 미생물은 초기 상태에서 구조나 화학적으로 단일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보여 주는 진보의 첫째 단계는 내부적으로 두 부분으로 나뉘어 사이를 보인다. 또는 이 현상을 생리학적으로 말한다면 분 화(differentiation)라고 한다. 이렇게 분화한 각각의 부분은 곧 차별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차츰 2차 분화가 1차 분화처럼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배아(embryo)가 성장하면서 모든 부분에서 이런 과정이 계속적으로 반복되 고 동시에 진행된다. 그리고 이렇게 끝없는 분화에 의해 마 침내 동물 성체나 식물 성체가 갖는 조직이나 장기의 복잡 한 구성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모든 유기체(organism)가 겪 는 일이다. 유기체의 발전이 단순성에서 복잡성으로 가는 변화에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정설이다.

그래서 이런 유기체적인 진보의 법칙이 모든 진보의 법 칙임을 주장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연속된 분화를 통해 간단

6) 일부 한국어 문헌에서 원문의 ‘homogeneity(혹은 homogeneous)’와 ‘heterogeneity(혹은 heterogeneous)’를 각각 동질성과 혼질성으로 번역 하고 있으나, 원문에서는 이 단어들을 각각 ‘simple’, ‘complex’와 동일한 의미로 쓰고 있고 자주 바꿔 쓰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대체로 단순성 과 복잡성이라고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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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가는 진화(evolution)는 지구의 발 전에서 생명의 발전, 혹은 사회, 정부, 공업, 상업, 언어, 문 학, 과학, 예술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 다. 태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주적 변화부터 최근에 나 타난 문명의 결과까지, 우리는 단순한 것들이 복잡한 것으 로 변화하는 것에서 진보가 본질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성운설(nebular hypothesis)이 사실이라면, 태양계 의 생성은 이 법칙을 보여 주는 한 예가 된다. 태초에 태양 과 행성을 구성하는 물질들은 널리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물질들은 그 원자의 중력을 통해 점차 뭉치기 시작했 다. 이 가설에 의하면, 태양계는 태생 상태에서는 무한하게 뻗어 있는 거의 단일한 매질로 존재했다. 이 매질은 밀도, 온도, 다른 물리적 속성 면에서 거의 단일한 존재였다. 이것 이 완성된 태양계로 가는 첫째 과정은 공간의 분화인데, 원 래 성운 물질이 점유했다가 나가서 비어 있는 공간과, 현재 도 성운 물질이 점유하는 공간으로 나뉜다. 동시에 이 덩어 리의 내부와 외부에서 밀도 차이와 온도 차이가 발생한다. 그리고 같은 순간, 이 전체에서 회전 운동이 일어나는데, 이 것의 속도는 중심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7


분화의 횟수와 정도는 태양, 행성, 위성으로 이루어지는 합 체가 만들어질 때까지 늘어난다. 이 합체는 개별 구성 요소 의 구조와 움직임에서 여러 차이를 보여 준다. 태양과 행성 들 사이에는 부피나 질량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한 행성과 다른 행성 사이에도, 행성과 위성 사이에 도 부차적인 차이가 있다. 이런 위성들은 행성 주위를 돌면 서 역시 태양의 주위도 돌고 있다. 태양과 행성들의 사이에 는 온도 면에서 더욱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그리고 행성과 위성들은 태양으로부터 받는 복사 에너지뿐만 아니라 자신 들이 내는 열복사에서도 서로 다르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이다.

이런 다양한 차이뿐만 아니라, 행성들과 위성들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 즉, 각각과 주성(主星)7)의 상대 거리, 궤도 의 기울기, 자전축의 기울기, 공전 주기, 고유한 중력, 물리 적 구성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면 태양 계의 기원이라고 추정되는 성운 덩어리의 거의 완전한 단순 성(homogeneity)에 비해 태양계의 복잡성(heterogeity)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7) 즉, 행성의 주성은 태양이며 위성의 주성은 행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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