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20141113 p

Page 1

타자, 무한한 자기만족 존재는 스스로 만족하려 하지만 만족하려는 욕구는 만족될 수 없다. 허위를 알아차린 존재는 수치와 구토를 느끼고 무력해진다. 자기 완결성, 곧 허위로부터의 탈출이 감행된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너를 만난다. 그것은 무한하다.

타자성의 철학자 레비나스. © 브라하 에팅거


인텔리겐치아 2309호, 2014년 11월 13일 발행

김동규가 옮긴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탈출에 관해서≫

‘더-이상-아무것도-해 볼-것이-없음(il-n’y-aplus-rien-à-faire)’이란, 어떤 행위도 쓸모없어 진 한계상황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보다 자 세히 말해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은 오로지 이 상황에서 탈출하는 것뿐이라는, 바로 그 최상의 순간을 지시하고 있다. -«탈출에 관해서(De l’évasion)», 엠마누엘 레비나스 (Emmanuel Lévinas) 지음, 김동규 옮김, 59쪽


탈출의 주체는 누구인가? 존재의 구조에 갇힌 인간이다. 존재의 구조란? 절대적 자기만족, 완전성의 이념을 추구하 는 것이다. 자기만족에서 탈출해야 하는 이유는? 허위이자 감금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존 서 양철학에서 자아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며 스스로 충만한 존재가 되려 한다. 자기만족 을 위해 자아는 타자를 배제하고 자신의 존 재를 침해받지 않으려는 ‘내적 평화’를 추구 한다. 그러다 자기만족을 성취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탈출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른


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수동적 체험이다. 자기만족이 허위인가? 그렇다.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되는가? 욕구, 수치심, 구역질을 통해서 인식한다. 욕구는 어떻게 자기만족의 허위를 지적하는가? 인간은 욕구한다. 그러나 욕구는 충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죽음이라는 사건을 생 각해 보자. 죽음은 죽음일 뿐 치울 수 없다. 따라서 욕구 충족의 범주에서는 자기만족 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수치심은 어떤가? 욕구를 충족하면 쾌락을 느끼기 때문에 쾌 락을 욕구의 목적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쾌 락은 끝이 없기 때문에 욕구의 목적이 아니 다. 욕구 충족과 함께하는 쾌락의 감정은 “기만적 탈출”이자 “실패한 탈출”이다. 이러 한 실패 상황에서 수치심을 느낀다. 구역질은 언제 느끼는가? 수치심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수치심은 벌 거벗음을 망각하지 못했을 때 생긴다. 곧 감 추고 싶은 것을 감추지 못했을 때 생긴다는 뜻이다. 자아는 자기 자신을 감출 수 없으며 자기 자신에 못 박힌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 고 수치심보다 더 극단적인 불쾌감인 구역


질을 느낀다. 구역질이 어떻게 탈출로 연결되는가? 구역질을 느낀 인간은 ‘그저 거기에 있으며’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볼 것이 없는’ 무력한 현존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순수한 존재 에 대한 경험은 존재로부터 탈출을 감행하 게 한다. 존재에서 탈출한 인간은 어디로 향하는가? 궁극적으로는 타자다. ‘존재와 다르게’, 존 재를 넘어선 인간은 무한한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 전에 갇혀 있던 나를 벗어나는 일종의 자기 초월을 경험하 게 된다. «탈출에 관해서»는 레비나스의


초기 작품으로 자기 초월만 제시되어 있다.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누구인가? 리투아니아 출신의 유대계 프랑스 철학자 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후설과 하 이데거의 수업을 듣고 1930년 <후설 현상 학에서의 직관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 았다. 이후 현상학 연구자로 활동하다 1961 년 <전체성과 무한>으로 국가 박사 학위 를 받았다. 논문을 심사한 얀켈레비치는 “당신이 여기 내 자리에 앉아야 했을 텐데 요”라고 극찬했고, 리쾨르는 “이제부터는 그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레비나스 철학의 바탕은 무엇인가? 반유대주의와 전쟁의 트라우마가 분명하게 담겨 있다. 그는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가정 에서 전통적인 유대교 교육을 받았으며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탈무드» 연구에 매진 했다. “유대성(judéite)”은 그의 삶에서 지울 수 없는 요소였으며,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사유를 펼치 는 데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철학함의 방식은 기본적으로 ‘현상학’이다. 그의 철학은 무엇이 특별한가? 전체성을 강요하는 존재론 중심의 서양철 학에 반기를 들고 윤리학을 제1철학으로 정 립하려 했다. 윤리 법칙이나 강령을 제시하


는 대신 윤리의 초월적 가능 근거를 따져 자 신의 사유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 자기성의 철학이 대세인 서양철학에서 ‘타자성의 철 학’을 개진하게 되었다. ≪탈출에 관해서≫는 어떤 책인가? 레비나스 철학의 출발점으로 1940~1950년 대 형성된 그의 독창적인 초창기 사유를 선 취한 책이다. 1935년 «철학 연구»에 발표 한 논문에다 그의 제자 자크 롤랑이 해설과 주석을 덧붙여 1982년에 출판했다. 이 책은 어떻게 번역했는가? 자크 롤랑은 1997년 주석을 수정·보완했 다. 나는 1982년판을 저본으로 삼아 레비나


스의 글과 주석 전체를 옮겼고, 1998년 출간 된 문고판을 참고해서 보완된 부분도 반영 했다. 롤랑이 쓴 해설은 그 장황함과 난해함 때문에 싣지 못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동규다.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 이다.


타자, 무한한 자기만족 존재는 스스로 만족하려 하지만 만족하려는 욕구는 만족될 수 없다. 허위를 알아차린 존재는 수치와 구토를 느끼고 무력해진다. 자기 완결성, 곧 허위로부터의 탈출이 감행된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너를 만난다. 그것은 무한하다.

타자성의 철학자 레비나스. © 브라하 에팅거


탈출에 관해서 엠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김동규 옮김 2012년 1월 20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 114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탈출에 관해서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편지 친애하는 자크 롤랑에게

우리의 친구 브뤼노 루아(Bruno Roy)가 1935년에 <철학 연구(Recherche Philosophique)>−알렉상드르 쿠아레 (Alexandre Koyré)와 알베르트 슈파이어(Albert Spaïer), 장 발(Jean Wahl), 그리고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가 기획한 잡지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나온 아방 가르드적 철학 잡지−에 실렸던 <탈출에 관해서>라는 글을 새로 편집해서 출간하자고 했을 때, 나는 이 제안을 적 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네. 나에게 있어 이 제안은 분명 하게 존중할 만한 명분이나 고상한 이유가 따르는 경우에서 야 비로소 수락을 고려할 만한 것이 될 수 있었네. 그래서 나는 의미의 종언이라는 지적 상황에 대한 증언을 보여주겠 노라는 결심을 하고 나서야 이 오래된 글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게 되었지. 대량 학살이 일어나기 전에 나온 이 잊혀져 버린 글에 또 다른 생동감을 부여하는 일이란, 자기 정당화 의 문제까지 개입되는 것으로 생각되네. 더구나 이 문제는


주석과 인용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될 터인데, 이런 작업은 나 의 젊은 시절에 대한 해석에서 시작되는 일이기에 너무나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네. 이러한 해명의 작업에 대한 요청을 친히 수락해 주게나. 그리고 가장 눈에 잘 드러나는 방식으로 이 해명 작업을 수 행해 주었으면 좋겠네. 자네는 현대의 위대한 사유라는 맥 락에 가장 보잘것없는 나의 짧은 시론을 포함시켜 주었지 (이 시론은 논점이 결여된 의식을 가졌을 때, 불가능하지만 새로운 사유에 대한 확고한 기대감에민 의지해서 나온 것일 세). 또한 내 글의 행간에 있는 대조적인 요소들을 메아리치 게 만들어서 들릴 만한 목소리로 그 요점들을 재생시키거나 위대한 인간의 속삭임이라는 메아리로 변형시켜 주었지. 자네의 세심한 배려는 그때까지만 해도 숨어 있었던 전조들 을 내가 사용한 (이미 태동하고 있었던 침묵인) 용어들 속에 서 캐내는 성과를 이루었다네. 자네의 그 엄청난 지식과 재능, 그리고 우정에 대해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고 싶네. 엠마누엘 레비나스, 1981. 12.


1장

존재의 이념에 대항하는 전통철학에 대한 전복은, 인간의 자유와 이 자유를 공격하는 존재의 잔인한 사건 간의 불일 치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로부터 이 전복이 야기하는 갈 등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맞서는 대립이 아닌, 세계와 인간 간의 대립이다. 주체의 단순성은, 주체의 분열을 일으키고, 인간 안에 비자아(non-moi)와 자아(moi)의 대립을 설정하 는 투쟁의 저편에 놓여 있다. 이러한 투쟁은 자아의 통일성 을 깨트리지 않는다. 이러한 자아의 통일성은 본래적으로 자기 안에 인간이 아닌 모든 것이 정화될 때 자기 자신을 완 성시키며, 자신을 움켜쥐고, 자신에게 의존하면서 자신과 의 평화라는 약속을 얻는다. 18세기와 19세기의 낭만주의(romantisme)는 인간의 숙 명이라는 영웅적 개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평화의 이상에 서 벗어나지 못했다. 개인은 개인을 억누르는 낯선 실재성 (réalité étrangère)의 포위를 풀어줄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고유한 실재성의 완연한 만개를 보증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방해물1)과의 투쟁은 오직 개인의 영웅주의에 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즉, 이 투쟁은 이방인에게로 그 방 향을 돌린다. 루소(J. Rousseau)나 바이런(G. Byron)보다 더 교만한 자들도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자기만족으로서의 자아(moi comme se suffisant à soi)라 는 개념은 부르주아(bourgeois) 정신과 부르주아 철학의 본 질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이다. 프티 부르주아(petit bourgeois) 의 자기만족과 같이, 자아라는 개념은, 불안하면서도 진취적 인 자본주의가 지닌 뻔뻔스러운 꿈에 자양분을 공급해 준다. 이 개념은 인간을 자기 자신과 화해시키기보다는, 알려지 지 않은 시간과 사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을 지 향하는 자본주의의 노력, 결정권과 발견에 대한 숭배(culte) 를 주재한다. 부르주아는 내적인 분열과 자기 신념의 결여 에 대한 수치심(honte)을 표현하지 않는다. 단지 현실과 미 래를 염려할 뿐이다. 왜냐하면 분열과 결여는 바로 부르주 아가 소유한 현재의 확정된 균형 관계를 끊어버리도록 위협

1) 낯선 실재성.


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는 본질적으로 보수주의자이지만 불안한 보수주의로 존재한다. 부르주아는 사업 문제와 학문 을 자신들이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한 방어와 연결시킨다. 부르주아의 소유 본능은 통합에 대한 본능이고, 부르주아 의 제국주의는 안전에 대한 탐구다. 부르주아는 세계와 자신 을 대립시키는 적대 관계에 대해 ‘내적 평화(paix intérieure)’ 라는 백색의 망토를 덮어씌우려고 한다. 가책에 대한 그들 의 표현은 양심의 평화라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평 범한 유물론자들조차도 장래의 확실성을 향유하기를 좋아 한다. 그들은 거주할 곳을 해결하기 위해, 문제 속에 미지 수를 도입하는 미래에 반대하여 현재에 대한 담보를 요구 한다. 부르주아가 소유하게 되는 자본이란, 위험에 대한 지 배력과 보증을 수반하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길들여진 부 르주아의 미래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기들의 과거와 통합 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러한 만족의 범주는 우리에게 만족을 제시하 는 것으로서의 존재(être)의 이미지 안에서 파악된다. 그것 들은 존재한다. 이 만족의 범주의 본질과 속성은 불완전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존재의 사실 자체는 완전과 불


완전의 구별 너머에 자리하게 된다. 존재에 대한 긍정이 지 닌 잔인성은 절대적인 만족이며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을 지 시하지 않는다. 존재는 다음과 같이 존재한다. 존재는 우리 가 존재 안에서 존재의 현존(existence)만을 직시하는 한, 이 긍정에 어떤 것도 덧붙이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 러한 지시는 우리가 존재의 동일성(l’identité de l’être)에 대 해 말하려고 하는 바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동일성은 존재 의 속성이 아니다. 또한 동일성은 그 자체로 동일성을 가정 하는 속성들 간의 유사성으로는 나타날 수 없다. 오히려 동 일성은 사람들이 그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성격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 사실의 충만함(suffisance)의 표 현이다.2)

2) 본서에서는 ‘être’를 ‘존재’로, ‘existence’는 ‘존재’나 ‘현존’으로 번역한다. 이는 강영안 교수의 ≪시간과 타자(Le Temp et L’autre)≫와 서동욱 교수의

≪존재에서 존재자로 (De l’existence à l’existant)≫에서 제시된 원칙을 수용 한 것이다. ‘être’를 존재로 번역하는 것은 대체로 분명한 것이지만, ‘existence’

도 존재로 옮기는 것은 혼란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존재로 번역하 는 것은 레비나스의 활용법을 존중해서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여러분 은 하이데거가 존재(Sein, être)와 존재자(Seiendes, étant)를 구별한다는 것 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앞에서 이 구별을 사용했다. 하지만 나는 어감 때문에 존재(exister: existence의 동사형−옮긴이 첨가)와 존재자(existant)


또한 실제로 서양철학은 결코 이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서양철학은 존재론주의(l’ontologisme)와 싸우면서도, 그 리고 이것을 둘러싸고 싸울 때에도, 우리와 세계 간의 조화 내지는 우리의 고유한 존재의 완전성을 위해서, 더 좋은 존 재를 위해서 싸웠을 뿐이다. 서양철학의 평화와 안전성(é qulibre)에 대한 이상은 존재의 충만함을 전제했다. 인간의 조건이 지닌 불충분성은 심지어 ‘유한한 존재(l’être fini)’라

란 말을 쓰고자 한다. 이 용어에는 실존주의적인 의미가 전혀 없다”(E. Lé vinas, ≪시간과 타자≫, 강영안 역, 서울: 문예출판사, 1996, 38쪽). ‘existence’ 는 보통 실존이라고 번역되지만 레비나스는 독일어 ‘Sein’을 염두에 두고 이를 번역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아울러 실존주의적인 의미마저 배제한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 ‘existence’와 ‘existant’를 실존과 실존자로 옮기는 것은 레 비나스의 의도를 어느 정도 무색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존재에서 존재자로≫와 ≪시간과 타자≫가 ≪탈출에 관해서≫보다 나중에 나온 책이 기는 하지만, 레비나스의 철학적 아이디어는 이미 본서에부터 충분하게 드러 나고 있기 때문에 ‘존재’와 ‘존재자’에 원어를 병기하는 방향으로 번역 원칙을 세웠다. 다만 ‘être’와 ‘existence’가 한 문장에서 쓰이는 경우 전자는 존재, 후 자는 현존으로 옮겨 구분했다. 단, ‘existence’의 경우, 존재보다는 사태나 존 재자의 실제적 있음을 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맥락에서는 ‘현존’으로 번역했다. ‘existence’와 ‘existant’의 번역 원칙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존재에서 존 재자로≫(엠마누엘 레비나스, ≪존재에서 존재자로≫, 서동욱 역, 서울: 민 음사, 2001, 173∼181쪽)에 수록된 서동욱 교수의 “번역어에 대해서” 편을 참 조하라.


는 의미를 직시한 것 외에, 단 한 번도 다른 어떤 존재의 한계 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이러한 한계의 초월성, 유 한한 존재와의 연합은 철학의 유일한 고지로 남게 된다…. 그러는 동안 현대의 감수성은 우선 이러한 초월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라고 지시하는 문제들과 씨름한다. 이는 마 치 한계의 이념이 존재하는 것의 현존(l’existence de ce qui est)뿐만 아니라, 단지 그 본성에도 적용될 수 없다는 주장 이 확실성을 얻게 되는 것과 같은, 또한 현대의 감수성이 존재 내에 있는 보다 심오한 하나의 결함을 지각하게 되는 것과 같은 그런 문제이다. 탈출(L’évasion)은 이시대의 문 학이 표현하는 이상한 침묵과 관련하는 것이며, 우리 세대 의 존재 철학에 대한 보다 철저한 유죄판결로 나타난다. 우리가 현대의 문학비평에서 빌려 온 탈출이라는 용어 는 유행하는 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즉, 그것은 이 시대 의 병적 경향(mal du siècle)이다. 탈출이라는 표현 자체만 으로 현대적 삶의 모든 상황에 대한 목록 전체를 도출하기 는 쉽지 않다. 그 목록은 삶의 여백 속에 아무것도 남겨두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자각할 힘조차도 지니지 못한 세대 속 에서 만들어진다. 보편적 질서라는 포착할 수 없는 악순환


지금까지 북레터 <인텔리겐치아>를 보셨습니다. 매일 아침 커뮤니케이션북스와 지식을만드는지식 저자와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인텔리겐치아>사이트(bookletter.eeel.net)를 방문하면 모든 북레터를 만날 수 있습니다.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