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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도둑을 심판하다 배심원 열두 명이 죄인을 심판한다. 그들은 결백할까? 알 수 없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짓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 알 수 없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극 ‹자에는 자로›, 폴 배리 연출, 뉴저지 셰익스피어 극장, 1990


인텔리겐치아 2331호, 2014년 11월 27일 발행

김종환이 옮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자에는 자로≫ 에스캘러스 각하를 엄격하고 덕을 갖추신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와 장소가, 혹은 장소와 욕망이 일치해 각하의 욕정이 작동하는 경우, 혹은 열정이 끓어올라 그걸 주체하지 못하고 목적했던 효과를 이루었다고 칩시다. 그럼 각하도 언젠가는, 지금 벌을 내리려고 하는 그 사람과


똑같은 죄를 지어, 스스로에게 그 법을 적용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유념하 십시오. 앤젤로 에스캘러스, 유혹을 받는 것과 죄를 짓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나는 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선서를 하고 죄수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배심원 열두 명 가운데, 심판받는 자보다 더 무거운 죄를 진 사람이 한둘 있을 수 있소. 하지만 재판은 드러난 일만 심판하는 법이오. 도둑들이 도둑들을 심판한들 법이 어찌 그걸 알겠소? -«자에는 자로(Measure for Measure)»,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지음, 김종환 옮김, 42~43쪽


누구를 심판하는 것인가? 클로디어스다. 앤젤로는 간음죄를 물어 그 를 사형하려 한다. 혼인도 하기 전에 연인과 동침해 그녀를 임신시켰기 때문이다. 혼전 동침이 죽을죄인가? 법이 금하고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 던 일이었다. 공작 대행인 앤젤로가 법질서 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이전보다 엄격하게 법 을 적용한 것이다. 클로디어스는 누이동생 인 이사벨라를 통해 앤젤로에게 선처를 호 소한다. 이사벨라의 간청이 통했나?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앤젤로는 클로디


어스를 사면해 주는 조건으로 그녀의 정조 를 요구한다. 거래가 성립되는가? 천만에. 이사벨라는 분노를 터뜨리며 단칼 에 거절한다. 감옥에 갇힌 클로디어스를 찾 아가 앤젤로와 있었던 일을 말한다. 마침 사 형수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와 있던 수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다. 그는 수사로 변장 한 공작이었다. 공작이 왜 변장을 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권력을 행사하 는 사람과 그의 통치를 받는 백성을 감시하 기 위해서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권력을 앤젤로에게 이양한 뒤 그를 통해 법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공작은 지금까 지 백성의 방종을 두고 보기만 했다. 그런 자신이 이제 와서 똑같은 방종을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은 폭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이다. 그런데 공작은 이 정치적 연극을 통 해 권력을 위임받은 뒤 변한 앤젤로를 보게 된다. 공작의 다음 전략은? 앤젤로가 이사벨라의 정조를 빼앗게 만들 생각이다. 클로디어스와 같은 죄를 짓게 만 들어 ‘자에는 자로’, 즉 자신이 심판한 대로 심판받게 하려는 것이다.


이사벨라가 희생되는가? 아니다. 베드 트릭(Bed Trick)으로 앤젤로를 속인다. 한밤중에 이사벨라 대신 마리아나 를 방에 들여보낸다. 앤젤로의 과거 약혼녀 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다. 베드 트릭이 먹히는가? 앤젤로는 마리아나를 이사벨라로 착각해 동침한다. 다음 날 공작이 만인의 환영 속에 귀환한다. 이사벨라는 그 자리에서 앤젤로 의 만행을 고발하고 공개 재판을 요구한다. 아직 자신이 만난 수사가 공작이었다는 사 실을 모른다.


공작의 마지막 전략은? 앤젤로 편을 들어 그가 직접 재판을 진행하 도록 한다. 스스로 명예를 회복하라는 것이 다. 공작은 앤젤로에 대한 처결을 잠시 미루 고 자신의 진면목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 낼 수 있는 극적인 순간을 기다려 나타난다. 이 희곡은 언제 초연했나? 1604년 제임스 1세가 지켜보는 가운데 ‘국왕 극단’이 궁정 무대에 올렸다. 제임스 1세는 이 작품의 공작에 대응하는 인물이다. 공작과 제임스 1세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제임스 1세는 백성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 는 점을 의식하면서 ‘연극성’을 권위를 과시


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 작품 역시 ‘연 극성’을 통해 권력을 과시하는 군주의 모습 을 재현한다. 연극성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있지 않은 것을 만들어 내는 ‘가장’을 내포하 는 개념이고 있는 것을 과장하거나 미화해 서 드러내는 연극적 성질을 뜻한다. 연극성과 권력 과시는 어떻게 연결되나? 연극성은 이미지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피해 갈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고, 권력은 항상 연극성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이미 지를 전유한다.


이 작품은 권력에 대한 연극인가? 권력의 연극적 재현을 통해 권력을 미화하 고 과시하면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군주 의 모습을 재현한 정치적 연극이다. 공작은 바로 이런 정치 연극의 연출자인 동시에 주 인공이다. 여기서 공작은 뭔가? 공작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공작의 연극 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은폐와 연 극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위선자로 보기 도 하고 다른 평자는 공작이 공개 재판에서 모든 죄인을 사면하는 것을 두고 그를 용서 와 자비의 화신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종환이다.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 수다.


도둑이 도둑을 심판하다 배심원 열두 명이 죄인을 심판한다. 그들은 결백할까? 알 수 없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짓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 알 수 없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극 ‹자에는 자로›, 폴 배리 연출, 뉴저지 셰익스피어 극장, 1990


자에는 자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종환 옮김 2014년 8월 8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 250쪽 16,500원


작품 속으로

자에는 자로


나오는 사람들

빈센티오: 빈 공국의 공작 앤젤로: 부재중인 공작 대리관 에스캘러스: 원로 신하 클로디오: 청년 신사 루시오: 멋쟁이 신사 신사 두 명 배리어스: 공작을 수행하는 신사 전옥(典獄) 토머스, 피터, 탁발(托鉢) 수사 판사(判事) 엘보: 어리석은 경관 프로스: 어리석은 신사 폼피: 오버던 부인의 급사 애브호슨: 사형 집행인 바너딘: 방탕한 죄수 이사벨라: 클로디오의 여동생 마리아나: 앤젤로의 약혼녀 줄리엣: 클로디오의 애인


프랜시스카: 수녀 오버던 부인: 유곽 포주(抱主)

기타 귀족들, 관리들, 시민들, 소년, 시종들

장소: 빈


제1막


제1장 빈, 공작 궁전의 회의실

(공작, 에스캘러스, 귀족들, 시종들 등장)

공작

에스캘러스.

에스캘러스 네, 각하! 공작

경의 국정 수행 자질을 두고 많은 말을 하고 싶지 않소. 그리하면, 내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일 거요. 경은 국정 수행에 관한 한 조예가 깊은 분이기 때문이오. 그런 일을 두고 내 조언이 필요 없는 분이란 걸 잘 알고 있소. 경은 그만한 능력이 있소. 하지만 이 말만은 하고 싶소. 경의 능력을 발휘하여 나랏일이 잘 굴러가도록 힘써 주시오. 경은 백성들 성향과 이 빈의 제도와 백성들에 대한 재판 절차를 잘 알고 있소.


경은 또한 과인이 아는 그 누구보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오. 이론을 실행에 옮겨 본 경험 말이오. (위임장을 주면서) 이게 위임장이오. 그 내용에 반하는 일이 없어야 할 거요. (시종에게) 앤젤로 경에게 전하라. 이리 들라고 전하라. (시종 퇴장) (에스캘러스에게) 앤젤로 경이 어찌할 것 같소? 내가 이 빈을 비우는 동안 공작 권한을 대리할 사람으로 앤젤로 경을 택했다는 걸 아실 거요. 그를 특별히 신임하기 때문이오. 처벌 권한을 주고, 총애라는 옷을 입히고, 내 모든 권력기관을 관장할 권한을 그에게 주기로 결정했소. 경은 이를 어찌 생각하시오? 에스캘러스 좋습니다. 만약 빈에

그런 큰 은총과 영예를 받을 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앤젤로 경입니다.


공작

보시오, 그가 오는구려.

(앤젤로 등장)

앤젤로 늘 각하의 뜻을 받들려고 합니다.

공작님 뜻을 알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공작

앤젤로, 그대의 삶에는 일종의 표식 같은 게 있소. 그래서 그것이 사람들에게 평소 경의 삶이 어떤지 알려 주고 있소. 경 자신과 그대의 덕은 앤젤로 경 그대의 것이 분명하오. 하지만 자신의 덕만 쌓는 데 몰두하거나 그걸 자신만을 위해 써선 아니 될 것이오. 사람이 횃불을 쓰듯 하늘은 어떤 사람을 쓰는 법이오. 빛은 횃불 자신을 밝히려고 있는 게 아니오. 그런 이치와 마찬가지로 덕을 타인을 돕는 데 쓰지 않으면, 그 덕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소. 인간의 영혼에 묘한 기운이 감도는 건


좋은 결과를 낳게 하기 위해서요. 자연은 그 묘한 힘에서 가장 작은 부분도 인간에게 그냥 빌려 주진 않습니다. 자연은 인색한 여신처럼 채권자의 특권을 누리려고 하지요. 원금은 말할 것도 없고 이자를 받지 않으면 힘을 안 빌려 줘요. 내가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고 있군. 넘겨받은 직책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잘 아는 분께 말이오. 앤젤로, 그러니 받으시오. (위임장을 들고) 내가 없는 동안 완벽하게 날 대신해 주시오. 이제 이 빈에서 생사여탈권과 자비를 베풀 권한은 순전히 경의 말과 마음에 달려 있소. 에스캘러스 경이 제일 원로요. 하지만 경 다음 지위를 맡게 되었소. 자, 위임장을 받으시오. (위임장을 준다.) 앤젤로 하지만 공작 각하,

제게 그런 막중한 일을 맡기기 전에 제 자질과 역량을 좀 더 면밀히 따져 보십시오.


공작

더는 사양하지 마시오. 심사숙고하여 경을 선임한 것이니 경에게 주어진 영예를 받아들이시오. 내가 이곳을 서둘러 떠나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급히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오.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서면을 통해 경에게 연락을 취하겠소. 그러니 경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내게 알려 주시오. 그럼, 잘 있어요. 경이 내가 위임한 일들을 충실하게 시행해 주길 기대하오.

앤젤로 하지만 허락해 주십시오.

각하께서 떠나시는 길을 전송하고 싶습니다. 공작

급히 떠나야 하니 그럴 수는 없소. 내 명예를 걸고 주저 없이 일을 처리하시오. 경의 권한은 공작인 내 권한과 같소. 그러니 경이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법을 집행하거나 조절하시오. 손을 이리 주시오. 비밀리에 떠나려고 하오. 난 백성들을 사랑하오.


하지만 그들 눈앞의 무대에서 구경거리가 되고 싶진 않소. 큰 박수를 받고 환호 소릴 듣는 것이 그리 나쁘진 않소.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을 그리 즐기지 않소.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이들은 모두, 그런 일을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다시 한 번 잘 있어요. 앤젤로 하늘이 공작님 계획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길! 에스캘러스 즐거운 여정과 즐거운 귀국이 되시길! 공작

고맙소. 그럼 안녕히 계시오. (퇴장)

에스캘러스 (앤젤로에게) 경과 터놓고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허락해 주시오. 나에 관한 일이오. 내 위치와 임무가 무엇인지 자세히 알고 싶소. 권력을 갖고 있지만, 그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어떤 성격인지 아직 잘 모르겠소. 앤젤로 저 역시 그러합니다.

함께 안으로 들어가, 그 점에 대해 조속히 그리고 충분히 의논합시다. 에스캘러스 그럼 함께 갑시다.


(모두 퇴장)


제2장 빈의 거리

(루시오와 신사 둘 등장)

루시오 우리 공작님께서 다른 공작들과 더불어

헝가리 왕과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그땐 모든 공작들이 헝가리 왕을 공격할 거야. 신사 1 하느님, 저희에게 평화를 내려 주소서!

헝가리 왕은 제외하고…. 신사 2 아멘! 루시오 당신 말은, 십계명이 쓰인 서판을 들고

바다에 나갔지만, 그중 한 조항을 지웠다는, 그 신앙심 깊은 체하는 해적의 말과 같소. 신사 1 “도둑질하지 말라”는 조항 말이오? 루시오 그렇소. 해적이 그 조항을 지워 버렸소. 신사 1 그야 그 계율을 지키면 선장이고 부하들이고

모두 할 일을 잃게 될 조항이니까. 그들 목적은 도둑질하는 게 아니겠소? 병사들 중 어느 누구도


식사 전에 감사 기도를 드릴 때, “평화를 내려 달라”는 기도를 좋아할 리가 없지 않소. 신사 2 그걸 싫어하는 병사가 있다는 걸

나는 들어 본 적이 없소. 루시오 그야 그렇게 기도하는 자리에

있어 본 적이 없어서겠지요. 신사 2 아니오. 적어도 열두 번쯤은

그런 자리에 있었소. 신사 1 그래요? 운율을 맞추면서 기도합디까? 루시오 어떤 운율에도, 어떤 나라 말에도 맞추어…. 신사 1 어떤 종교에도 맞추어…. 루시오 아, 그렇소. 이상할 게 뭐겠소?

어떤 시비가 붙건 기도는 기도니까. 예를 들어 당신이 아무리 기도하며 은총을 빌어도 여전히 사악한 악당이듯 말이오. 신사 1 좋아요. 하지만 당신과 나는 피차일반이오. 루시오 그렇긴 하오. 우단과 그 자투리처럼….

그런데 당신은 자투리 쪽이오. 신사 1 당신은 우단, 그것도 좋은 우단이고….


분명 세 겹자리 최고급 우단이오. 그렇지만 차라리 평범하게 짠 두꺼운 모직 양복감 자투리가 되는 게 낫겠소. 매독에 걸려 대머리가 된 당신처럼 프랑스산 우단이 되기보다는…. 뜨끔하지 않소? 루시오 당신이 뜨끔할 것 같은데….1)

그런 말을 하려니 얼마나 괴롭겠소. 당신 스스로 자백해서 내가 먼저 축배를 들어야겠다는 걸 알게 됐소. 하지만 내 생전에 당신이 마신 잔으로 술을 마시진 않을 거요. 신사 1 내가 한 대 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신사 2 그렇소. 당신이 한 대 맞은 거요.

당신이 매독에 걸렸든 그렇지 않든…. 루시오 봐요. 저길 봐요. 성병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부인이 나타났소. 내가 저 여자 집에서 성병에 걸린

1) “매독에 걸려 대머리가 된 당신”이란 신사의 말을 받아 루시오는 매독에 걸 린 게 자신이 아니라 신사라고 하면서 역공하고 있다.


계집들을 사들이는 데 쓴 돈이 자그마치…. 신사 2 자그마치 얼마란 말이오? 루시오 한번 맞춰 보시오. 신사 2 1년에 3천 달러2)쯤 되오? 신사 1 아, 그 이상이오. 루시오 거기에 보태 매독 때문에 대머리가 되었군. 신사 1 당신은 늘 내가 성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 생각한 거요. 난 멀쩡하오. 루시오 ‘멀쩡하다’는 말은 건강상 그런 게 아니고

속이 텅 비었다는 뜻일 거요. 당신 뼛속은 텅 비어 있소. 방탕이 지나치면 몸을 제물 삼아 잔치를 벌이는 게 아니겠소?

(유곽 여주인 오버던 등장)

신사 1 요즘 어때요? 좌골신경통(坐骨神經痛)은

어느 쪽 궁둥이가 더 심하오? 오버던 됐어요, 됐어. 지금 저쪽에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가는 사람이 있어요.

2) ‘달러(dollar)’를 쓸 자리에 ‘슬픔(dolour)’을 사용한 말장난이다.


당신 같은 사람 5천 명 값어치는 되는 분이오. 신사 2 누굴 말하는 거요? 오버던 클로디오 님을 두고 하는 말이오, 신사 양반. 신사 1 클로디오가 감옥에 끌려간다고! 그럴 리가? 오버던 아니, 그렇다니까요.

체포되어 끌려가는 걸 똑똑히 봤어요. 이삼일 내에 모가지가 달아난다는군요. 루시오 농담 그만두시오. 그럴 리가 없어.

모가지가 달아난다고 장담할 수 있소? 오버던 장담합니다.

줄리엣에게 아이를 갖게 한 죄 때문이랍니다. 루시오 그걸 믿어야 할 것 같군. 클로디오는

두 시간 전에 나와 만나기로 약속했소.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약속을 지켰던 사람이오. 신사 2 게다가 좀 전에 우리가 이야기했던

그런 일에 관련된 모양이오. 신사 1 그런데 뭣보다도 최근 포고 내용에 부합합니다. 루시오 자, 갑시다! 진실을 확인하러 갑시다.

(루시오와 신사 둘, 퇴장)


오버던 이렇게 전쟁이니 역병이니

참수형이니 불경기니 난리들이니 점점 손님만 줄어들게 됐군.

(폼피 등장)

웬일이냐? 뭔 소식이 있느냐? 폼피

저기 저 사람이 감옥에 끌려가고 있어요.

오버던 왜 그러지? 뭘 어쨌다고? 폼피

여자 문제랍니다.

오버던 뭔 죄를 지었지? 폼피

자기 개울에서 자기 송어를 잡았다고 합니다.

오버던 그럼, 그가 웬 처녀에게

아이를 갖게 했단 말이냐? 폼피

아니죠. 그가 임신시킨 아이가 처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님은 아직 그 포고령을 듣지 못했나요?

오버던 뭔 포고령 말인가? 폼피

빈 교외에서 영업하는 유곽들이


전부 헐리게 된다는 포고 말입니다. 오버던 그럼, 시내에서 영업하는 집들은 어떻게 되고? 폼피

씨를 받기 위해 남겨 둘 것 같습니다. 헐기로 했던 게,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웬 현명한 시민의 탄원으로 말입니다.

오버던 하지만 교외에 자리 잡은 우리 유곽들은

모조리 헐리게 되었다고? 폼피

네, 마님. 완전히 허문답니다.

오버던 저런! 정말 대단한 정치적 개혁이군.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폼피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좋은 변호사에게는 손님이 끊이지 않으니까요. 장소가 바뀐다고 장사까지 바꿀 필요는 없죠. 전 여전히 마님 급사로 남겠습니다. 힘내세요. 마님은 봐줄 겁니다. 이 사업을 하다가 눈까지 거의 못쓰게 된 마님이니까요. 당국에서도 마님 상황을 참작할 겁니다.

오버던 여보게, 여기에 있어 봤자

뭔 소용이 있겠나? 이만 물러가세. 폼피

아, 여기 전옥이 감옥으로


끌고 가는 클로디오 님이 보이네요. 줄리엣 양도 함께 있네요. (모두 퇴장)

(전옥, 클로디오, 줄리엣, 관리들 등장)

클로디오 여보시오, 왜 날

세상 사람들 구경거리로 만드는 거요? 감옥으로 끌려가기로 되어 있으니 제발 그리하시오. 전옥

제가 악의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앤젤로 경의 특명 때문에 이러는 겁니다.

클로디오 신처럼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분께서

우리 죄를 저울에 달아,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어. “자비를 베풀 자에게는 자비를 베풀고 아니 베풀 자에게는 아니 베푼다”3)는 하느님 말씀은 언제나 공명정대하지.

3) “긍휼히 여길 자는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는 불쌍히 여기리라”는 ≪로마서≫ 9장 15절을 반영한 대사다. “자에는 자로” 또는 “죄에는 죄로” 라는 이 작품의 제목 또한 여기에 연유한다.


(루시오와 신사 둘 다시 등장)

루시오 아, 클로디오, 지금 어찌 된 건가!

왜 이렇게 구속된 건가? 클로디오 너무 과한 자유를 누린 탓일세, 루시오.

너무 과식하면 그 대가로 단식을 해야 하듯이, 방탕이 지나치면 구속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지. 쥐를 잡으려고 약을 뿌린 음식을 탐식하는 쥐처럼 인간도 갈증이 난 사람처럼 죄를 탐하다가 마침내 죄를 들이마시고 죽어 버리는 법이지. 루시오 구속되어 끌려가면서도

그런 명언을 할 수 있다면, 나도 구속되기 위해 사람을 보내 채권자들을 불러와야겠군. 하지만 솔직히 말해, 감옥에 갇힌 도덕군자보다는 자유를 누리면서 바보짓을 하는 게 낫지. 클로디오, 대체 죄목이 뭔가? 클로디오 그걸 입 밖에 내면 또 다른 죄가 될 죄라네. 루시오 뭐라고? 살인죄인가? 클로디오 아니.


루시오 간음죄인가? 클로디오 그렇다고 해 두지. 전옥

자, 갑시다! 이젠 가야 합니다.

클로디오 전옥 양반, 한마디만 더 합시다. 루시오,

자네에게 한마디만 더 하겠네. (그를 옆으로 데려간다.) 루시오 도움이 된다면 백 마디라도 하게.

그런데 간음을 이렇게 엄하게 다스리는가? 클로디오 내 경우에는 그렇다네. 진심으로

혼인 언약을 하고, 나는 줄리엣과 동침했네. 자네도 그녀를 알 거야. 그녀는 분명 내 아내야. 다만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은 그녀의 친척 손에 맡겨 둔 지참금을 가능한 한 많이 받아 내기 위해서라네. 시간이 무르익어, 친척들이 우리 둘 관계를 인정할 때까지 숨겨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녀와 내가 남몰래 은밀한 정사를 벌인 결과, 아이라는 엉뚱한 표적이 그녀 몸에 생겨났네. 루시오 표적이라니, 아이가 생겼단 말인가?


클로디오 그래. 그런데 불행하게도.

공작 권한을 위임받은 새 대리인께서, -그것이 새로 번쩍이는 것에는 늘 따르는 결점인지, 혹은 대중이 통치자가 타고 다니는 말과 같은 존재여서, 새롭게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자신이 명한 것의 효과를 시험하기 위해 그 말에 사정없이 박차를 가해 보는 것인지, 아니면 그 직책에서 자연히 행사하게 되는 폭정 때문인지, 혹은 갑자기 출세한 것 때문인지 몰라. 뭐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권한을 위임받은 새 공작 대리께서 19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벽에 걸어 두고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먼지투성이 갑옷 같은 법률을 끌어내 나라는 사람에게 적용했네. 잠자고 있던 온갖 법률을 두들겨 깨워 새삼스럽게 내게 적용한 셈이지. 이는 분명 자기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야. 루시오 분명히 그래. 자네 모가지는

자네 어깨 위에 너무 불안하게 얹혀 있어서, 사랑에 빠진 우유 짜는 계집의 탄식에도


날아가 버릴 지경이네. 사람을 보내 공작님께 탄원해 보는 게 어떻겠나? 클로디오 그렇게 해 보고 싶었네.

하지만 공작님 행방을 몰라. 루시오, 날 위해 제발 이렇게 좀 해 주게. 내 여동생이 오늘 수녀원에 들어가 수습 수녀가 되는 인가를 받기로 되어 있네. 위험에 처한 내 절박한 상황을 그녀에게 알려 주고, 준엄한 공작 대리께 접근해서 탄원해 달라고 제발 내 동생에게 부탁해 주게. 큰 기대를 하고 있네. 여동생은 젊으니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아도 남자의 마음을 움직일 매력이 있는 셈이지. 게다가 그녀는 이유를 들어 따지는 데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어. 그러니 분명 공작 대리를 설득할 수 있을 거야. 루시오 그녀가 설득할 수 있길 빌겠네.

자네처럼 인생을 즐기는 행동에 관용을 베풀어 주면 좋겠지만, 엄중한 처벌을 면치 못하게 되어 애석하네.


구멍에 말뚝을 집어넣는 장난을 즐기다가 어리석게 목숨을 잃게 되어 가엾네. 자네 여동생에게 가 보겠네. 클로디오 루시오, 고맙네. 루시오 두 시간 내에 다녀오겠네. 클로디오 전옥, 자 갑시다.

(모두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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