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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의 대중 캐릭터 장풍운은 풍운의 남자다. 늦게 태어나 부모와 헤어지고 도적 떼를 만난다. 그러더니 귀인을 만나고 장원급제하여 큰 공을 세운 뒤 세 부인과 두 첩을 얻는다. 이 모든 것이 팔자소관이라.

‹아버지를 잃은 아들›, 폴 자쿨레 판화, 1948


인텔리겐치아 2342호, 2014년 12월 4일 발행

신해진이 옮긴 ≪장풍운전≫ “7년 전, 두우성이 금릉(金陵)이란 곳을 비 춰서 ‘기이한 영웅이 나리라’ 했더니, 상공께 태어났구려. 귀한 아드님의 상(相)을 보니, 재산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자식이 많 겠거니와 부모와 이별하는 수(數)가 목전에 있소이다. 그래서 젊은 때의 운수는 사나우 나, 늙바탕의 운수는 매우 좋을 것이오.” “사람이 사주(四柱)를 피하기 어렵겠으나, 아비가 아직 쇠약치 아니했으니 무슨 어려 운 일이 있겠사옵니까?”


“이 아이는 10세 전에 부모와 헤어져 타향을 정처 없이 떠돌다가, 스무 살에 과거에 급 제하여 부모를 다시 만나고, 부귀와 공명이 천하의 으뜸이 될 것이오. 삼처이첩(三妻二 妾)에다 육자오녀(六子五女)를 둘 것이오.” -«장풍운전(張豐雲傳)», 지은이 미상, 신해진 옮김, 41쪽

삼처이첩에 육자오녀는 누구의 사주인가? 장풍운이다. 늙바탕의 부모가 기자정성(祈 子精誠)하여 태어난 인물이다. 아들의 용모 와 기상이 빼어난 것을 염려한 나머지 아버 지가 복술(卜術)이 유명한 도사를 불러서 물 었다.


사주대로 사는가? 앞으로 펼쳐질 줄거리가 그대로다. 목전의 이별 수는 무엇인가? 변방에 변란이 일어난다. 아버지는 이를 진 무하기 위해 출전하고 풍운은 도적에게 사 로잡혀 어머니와도 헤어진다. 어머니 양씨 부인은 절에 귀의한다. 사로잡힌 풍운은 도적패가 되는가? 아니다. 도적이 버리고 갔기 때문이다. 버려 진 그를 통판 이운경이 발견한다. 후처 호씨 의 반대를 내치고 전처소생의 경패와 혼인 시킨다.


사주가 말하는 떠돌이 생활은 무엇인가? 장모 호씨의 박대 때문이다. 풍운은 집을 나 와 광대 무리를 따라 떠돈다. 남겨진 부인 경패 역시 떠돌다 풍운의 어머니가 있는 절 에 들어간다. 결연에 따른 시련의 과정이다. 이제 과거 급제할 차례인가? 떠돌이가 된 풍운은 전 이부상서 왕공렬을 만나 그의 사환이 된다. 왕 상서의 심부름으 로 알게 된 원철의 집에 기거하면서 과거에 장원급제해 한림학사가 된다. 이후 왕 상서 의 딸 부용과 혼인하고 원철의 딸 황해를 첩 으로 삼는다.


부모는 어떻게 다시 만나는가? 꿈에 나타난 노승의 계시로 어머니와 첫 부 인 경패를 상봉한다. 수령 잔치에서 부남태 수인 부친과 신표를 확인하고 상봉한다. 부귀공명의 시작인가? 서번과 서달의 침략을 막은 전공(戰功)으 로 좌승상에 봉해진다. 황제가 보낸 역도(逆 徒)의 딸 장윤옥을 첩으로 삼고 명현왕의 딸 유경화와 늑혼(勒婚)한다. 끝은 어찌 되는가? 유씨 부인이 이 부인(경패)을 질투하고 음 해해 사달이 나지만, 왕 부인의 전갈을 받은 풍운이 전장에서 돌아와 진상을 밝힌다. 유


씨 부인은 벌을 받아 죽고 나머지는 부귀영 화를 누린다. 장풍운과 이경패의 입장에서 보면 해피엔드다. 결국 영웅 이야기인가? 고귀한 혈통을 지닌 비범한 인물이 가족과 분리돼 시련을 극복하고 입신양명한다는 점에서는 그러하다. 하지만 영웅 일개인의 ‘영웅적 역량 발휘’는 부족한 작품이다. 어떤 점에서 영웅의 면모가 부족한가? 영웅소설의 중요 요소는 군담(軍談)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영웅의 역량을 보여 주는 대목이 많지 않다. 때문에 전통 영웅소설이 주는 흥미가 반감된다. 또 등장인물들이 곤


란에 처할 때면 몽사(夢事)나 노승의 계시가 자주 등장한다. 그 결과 풍운의 영웅성이 약 해진다. 뒷부분에는 가정소설의 면모인 처 처 간 갈등이 확장되어 나타난다. 영웅성 약 화의 원인이다. 영웅소설과 가정소설이 함께 전개된 이유는 무엇인가? 장풍운이 성취해야 할 과제가 국가의 위기 를 극복하고 기존의 세계상을 회복하는 것 이 아니라 자신의 가문을 번영케 하는 데 있 었기 때문이다. 변방의 변란을 계기로 부 자·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해 가문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을 작품 전개의 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장풍운전>은 언제 누가 지었나? 작자와 창작 연대가 확실하지 않다. 정조 18 년(1794), 대마도 역관 소전기오랑(小田幾五 郞)이 조선의 사신으로부터 전해 듣고 기록 한 «상서기문»에 조선의 소설로 등장하 는 것으로 보아 창작 시기가 그 이전임을 알 수 있다. 당대의 반응은? 국내에서 매우 널리 읽혔는데, 소화집(笑話 集) «진담록»(1811)에 실린 삽화를 보면, 놀 음판에서 한 광대가 장풍운과 관련된 이야 기를 늘어놓으려 하니 수많은 청중이 손사 래를 치며 돌아서고 만다. 이미 너무나 잘 알 고 있었던 탓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신해진이다.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 수다.


조선조의 대중 캐릭터 장풍운은 풍운의 남자다. 늦게 태어나 부모와 헤어지고 도적 떼를 만난다. 그러더니 귀인을 만나고 장원급제하여 큰 공을 세운 뒤 세 부인과 두 첩을 얻는다. 이 모든 것이 팔자소관이라.

‹아버지를 잃은 아들›, 폴 자쿨레 판화, 1948


장풍운전 신해진 지음 미상 옮김 2009년 9월 15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 164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장풍운전


화설. 송(宋)나라 때 금릉1)에 한 재상(宰相)이 있었다. ‘장 희란 ’ 사람이다. 젊은 나이에 급제해서 이부시랑2)에 이르렀 으나,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올곧아서 소인배들과는 서로 잘 맞지 않으니, 임금에게 표3)를 올려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부인 양씨와 함께 농업에 힘써 가산이 넉넉했으 나, 단지 대를 이을 자식이 없음을 슬퍼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양씨가 꿈을 꾸었다. 그 꿈에, 붉은 도포를 입고 옥대를 두른 선관(仙官)이 하늘에서 내려와 일 러주었다. “그대가 대를 이을 자식이 없어 슬퍼함을 옥황상제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귀한 자식을 점지4)해 주셨으니 잘 길러 가 문을 빛내어라.” 꿈에서 깨어난 양씨가 시랑을 오게 하여 꿈꾼 것을 이야 기하며 서로 기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달부터 태기가 있 어 열 달 만에 옥동자(玉童子)를 낳았다. 시랑이 크게 기뻐 하여 부인을 위로하며 갓난아기를 보니, 강보(襁褓)에 싸여 있을지언정 강산의 빼어난 기운이 이마에 어리어 있었다.

1) 금릉(金陵): 지금의 난징(南京). 2) 이부시랑(吏部侍郞): 이부(吏部)의 차관(次官). 3) 표(表): 마음에 품은 생각을 적어서 임금에게 올리는 글. 4) 점지: 신불(神佛)이 사람에게 자식을 갖게 해줌.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즐거워서 이름을 ‘풍운(豊雲)’이라 ’ 했다. 짓고, 자(字)를 ‘뇌성이라 풍운은 점점 자라면서 우람한 용모와 당당한 기상이 날 로 빼어났다. 일곱 살 때 벌써 시서(詩書)에 능통하고 활쏘 기와 말타기를 좋아했다. 시랑은 풍운이 너무 일찍 원숙한 것을 염려했다. 그러다가 절강5)에 사는 장 진인의 복술(卜 術)이 유명하다는 소리를 듣고서 풍운을 데리고 절강으로

갔다. 이때 장 도사는 중당(中堂)에서 ≪주역(周易)≫을 강론 (講論)하고 있었는데, 동자(童子)가 들어와 밖에 손님이 왔 음을 알렸다. 도사가 시랑을 맞이하여 서로 인사를 나눈 후, 풍운을 몇 번이고 보더니 시랑에게 물었다. “상공6)께서 무슨 일로 이 누추한 곳까지 찾아오셨소?” “벼슬을 그만둔 후 늘그막에 얻은 아들이 너무 일찍 원숙 하기로 행여나 단명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선생께 알아보고 자 왔나이다.” 도사가 향을 피우고 생년월일시를 물으니, 시랑이 대답 했다. 5) 절강(浙江): 중국 동남부 황해 연안에 있는 성(省) 이름. 6) 상공(相公): 원래 재상 벼슬에 있는 사람을 높여 일컫는 말인데, 여기서는 그냥 ‘상대방을 ’ 높여 부른 말.


“무인년(戊寅年) 칠월(七月) 이십팔일(二十八日) 사시 (巳時)로소이다.” 도사가 놀라며 말했다. “7년 전, 두우성7)이 금릉(金陵)이란 곳을 비춰서 ‘기이한 영웅이 나리라’ 했더니, 상공께 태어났구려. 귀한 아드님의 상(相)을 보니, 재산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자식이 많 겠거니와 부모와 이별하는 수(數)가 목전에 있소이다. 그래 서 젊은 때의 운수는 사나우나, 늙바탕의 운수는 매우 좋을 것이오.” “사람이 사주(四柱)를 피하기 어렵겠으나, 아비가 아직 쇠약치 아니했으니 무슨 어려운 일이 있겠사옵니까?” “이 아이는 10세 전에 부모와 헤어져 타향을 정처 없이 떠돌다가, 스무 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부모를 다시 만나고, 부귀와 공명이 천하의 으뜸이 될 것이오. 삼처 이첩(三妻二 妾)에다 육자 오녀(六子五女)를 둘 것이오.”

그러자 시랑이 도사와 작별하고 돌아와 부인에게 도사 의 말을 전하고, 풍운의 생년월일을 기록한 것을 비단 주머 니에 넣어 풍운의 옷깃 속에 감추었다. 7) 두우성(斗牛星): 남두(南斗)를 지칭. “남두는 탄생을, 북두는 죽음을 관할 한다(南斗注生, 北斗注死)”(≪수신기(搜神記)≫ 권3)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사람의 수명과 요절은 모두 북두의 관할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빨리도 흐르더니, 다음 해 가을에 가달이 변방을 쳐들어오매, 천자가 변보8)를 들으시고 크게 놀라시어 문무 백관과 의논하시니, 좌승상 조전이 아뢰었다. “전(前) 시랑(侍郞) 장희가 지략이 있사오니, 그로 하여 금 변방을 진무9)케 하소서.” 천자가 즉시 사관10)에게 명하여 시랑을 부르시니, 시랑 이 조서(詔書)를 받고 부인과 이별하면서 풍운을 어루만지 며 말했다. “내 이제 황명(皇命)으로 출정하나니, 부인은 이 아이를 데리고 몸을 보중(保重)하소서.” 말을 마친 시랑은 자신이 차고 있던 장도11)를 끌러 풍운 의 옷고름에 채우고는 곧장 싸움터로 길을 떠났다. 부인이 시랑을 떠나보내고 나서 풍운을 안고 탄식했다. “너의 부친이 아주 먼 싸움터에 나갔으니 무사히 돌아오 시길 두 손 모아 빌거니와, 난세를 당했으니 만일 도적이 가 까이 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8) 변보(邊報): 변경에서 보내온 위급한 소식. 9) 진무(鎭撫): 난리를 진정시키고 백성을 어루만져 달램. 10) 사관(辭官):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아치. 11) 장도(粧刀): 정교한 장식을 한 칼집이 있는 주머니칼. 옷고름이나 주머니 에 늘 차고 다녔다.


그러더니 여자의 쪽에 꽂는 대 마디 모양의 순금 장식품 을 반으로 쪼개어 장도와 함께 풍운에게 채우고 지냈다. 도적이 금릉을 침범하자 백성들이 피란했다. 부인도 풍 운을 데리고 금계산으로 피란했다. 이때 도적이 피란하는 백성을 살해하고 재물을 노략질하다가 금계산에 이르렀는 데, 한 도적이 풍운을 보고는 말했다. “이 아이 관상을 보아하니 훗날 반드시 귀히 될 것이매, 내 데려다가 기르리라.” 그러고는 풍운을 말에 얹어 데려가고자 했다. 부인이 수 풀 속에 숨었다가 풍운을 데려가려 함을 보고 수풀 밖으로 나와 풍운의 이름을 울부짖거늘,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 지 않았다. 이에 그 도적이 부인을 죽이려 하니, 다른 늙은 도적이 말리며 말했다. “자식을 잃고 서러워하는 것이거늘 무슨 죄가 되겠는가? 죽이지 말라!” 그러자 그 도적이 칼을 멈추고는 행장12)을 탈취해 갔다. 부인이 하릴없어 통곡하다가 혼절13)하니, 시비(侍婢)가 붙 들어 구호하여 본디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12) 행장(行裝): 어느 곳으로 떠날 때에 쓰이는 모든 기구. 행리(行李). 13) 혼절(昏絶): 정신이 아찔하여 까무러침.


한편 장 시랑이 밤중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틀에 갈 길을 하루에 갈 정도로 바삐 가서 황성(皇城)에 이르러 천자를 알현하니 천자가 말씀하셨다. “짐이 본디 경(卿)의 충성을 아나니, 이 격서14)를 가지고 적진에 가서 도적을 물리치면 그 공을 표하리로다.” 시랑이 엎디어 아뢰었다. “신이 재주가 없사오나, 삼가 성교15)를 받들어 거행하겠 나이다.” 시랑이 격서를 받아서 곧바로 싸움터로 떠났다. 떠난 지 여러 날 만에 적진에 이르러 격서를 전하고, 도적을 유인해 위교16)에 이르렀다. 천자가 친히 정벌하사 도적의 무리를 모조리 쳐 죽이니, 풍운을 데려갔던 도적도 어찌할 수 없어 서 풍운을 버리고 달아났다. 이즈음에 양 부인은 풍운을 잃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도 적이 이미 가산을 모두 털어 가고 집까지 불태워 버렸다. 이 를 본 부인이 통곡하며 말했다. “지금 난리 중에 자식도 잃고 영감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14) 격서(檄書): 널리세상사람에게알려선동하거나의분을고취하려쓰는글. 15) 성교(聖敎): 임금의 말씀. 16) 위교(渭橋): 장안 북방을 흐르는 위수(渭水)에 놓은 다리. ≪삼국지≫를 보면, 마초의 부하였던 방덕이 조조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곳이기도 하다.


도 알지 못하는데 의지할 곳마저 없으니, 차라리 목숨을 끊 어 세상을 떠나리라.” 부인은 자결코자 하다가 다시 생각했다. ‘행여 살아 있으면, 영감과 풍운을 만나지 않을까?’ 그러더니 생각을 고치고 시비 옥매에게 말했다. “여남17)에 표질18)이 있으니, 그리로 가 의탁해야겠다.” 부인이 행장을 수습하여 여남으로 떠났는데, 며칠 만에 여남에 이르러 표질을 찾았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 모두 “그 집 사람들은 몇 해 전에 주인이 호남태수(湖南太守)가 되어 임소(任所)로 갔다”고 말하니, 부인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 다. 시비와 부인이 길가에 앉아 통곡하는데, 문득 한 여승이 지나다가 이들의 우는 광경을 보고 물었다. “무슨 연고로 이렇듯 슬퍼하나이까?” “우리는 난리 중에 가군19)과 자식을 잃고 의지할 곳마저 없어 이리하거니와, 노사20)는 어디에 계시며 어디로 가시 는지요?” “소승이 있는 절은 ‘단원’21)이란 승당22)이나이다. 마침

17) 여남(汝南):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차이현(蔡縣). 18) 표질(表姪): 내외 사촌의 자녀. 외숙이나 외숙모가 조카를 이르는 말이다. 19) 가군(家君): 남에 대하여 ‘자기 남편을 ’ 가리키는 말. 20) 노사(老師): 나이 많은 중을 높여 이르는 말.


속가(俗家)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어니와, 이번 난리 중에 부인 같은 사람이 많사오니 애처롭나이다.” “천행으로 존사(尊師)를 만난 것이니, 어려운 처지에 있 는 사람을 구제해 주소서.” “부인이 빈승23)을 따라가려 하시면, 삭발을 해야 하는데 그리하실 수 있겠나이까?” “이는 나의 바람이니, 존사가 버리지만 않으시면 상좌24) 라도 되어 한평생을 마치겠나이다.” 이윽고 노사가 부인을 데리고 단원으로 올라가니, 산수 가 수려하여 경치가 비할 바 없이 훌륭했다. 그노승은본디지체가있는좋은집안의여자였는데, 어려 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고 일찍 중이 되어 그 절에 끼친 ’ , 나이는 57세였다. 공이 있었다. 승명(僧名)은 ‘청정이요 다음 날, 청정이 부인과 옥매에게 목욕재계하고 머리를 깎게 한 후, 부처에게 예를 갖추어 절하게 했다. 부인은 승 명을 ‘계원이라 ’ 하여 청정의 상좌가 되고, 옥매는 승명을 21) 단원: ‘團圓’인 듯. ‘가족이 모인다는 ’ 뜻인데, 이 작품에서 복선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2) 승당(僧堂): 중이 좌선하며 거처하는 곳. 23) 빈승(貧僧): 가난한 중이란 뜻으로, 중이 ‘자기를 ’ 낮추어서 일컫는 말. 빈 도(貧道). 24) 상좌(上佐): 중이 되기 위해 출가한 사람으로서 아직 계를 받지 못한 사람.


‘보정이라 ’ 하여 계원의 상좌가 되어 시비와 주인이 사제(師 弟) 사이가 되니, 그 모습이 슬프고도 슬펐다.

이보다 먼저 천자가 도적을 대파하시고 나서 특별 명령 으로 시랑을 부남25)태수로 제수하시니, 부남은 남방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시랑이 제수받은 당일 떠나가는 도중 금릉에 이르니, 집은 불타서 터만 남고 인적이 없었다. 태수가 된 시랑이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부인과 풍운 을 부르며 통곡하다가 생각했다. ‘필연코 도적에게 죽었구나.’ 애달픈 마음을 억지로 참고 부남으로 부임했다. 태수는 부인이 없고 또한 관아 안에 풍운조차 없는지라 슬픈 심회 를 진정치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재취(再娶)를 구했 는데, 전 중서령 ‘진위의 ’ 딸과 혼인하니 용모와 재질이 괜찮 았다. 차설. 풍운이 부질없이 거리를 오락가락하며 모친을 불 러도 간 곳을 알지 못하여 길가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한데 문득 백발성성한 노인이 노새를 타고 지나다가 풍운의 울음 소리를 듣고 노새에서 내려 곁에 앉으며 말했다. “너는 분명 난중에 부모를 잃고 굶주렸는가 싶구나. 이

25) 부남(阜南): 지금의 안후이성(安徽省) 푸난현(阜南縣).


것이라도 먹어라!” 그러고는 실과(實果)를 내어주거늘, 풍운이 받아먹으니 배가 불렀다. 노인이 물었다. “너는 어디서 왔고 성명은 무엇이며, 부모는 어떤 사람이 고 어찌 이리 혼자 나다니느냐?” 풍운이 울며 대답했다. “모친이 나를 데리시고 저 산중에 갔었는데, 어떤 사람이 말에 태워 가다가 이 산 밑에 버리고 가니 어디에서 왔는지 를 모르오며, 부친은 장 시랑이라 하옵고, 나이는 여덟 살이 요, 이름은 풍운이로소이다.” “나와 함께 가려느냐?” “배고프고 갈 데 없으니 그리하겠나이다.” 그리하여 노인이 종자(從者)에게 풍운을 업혀 집으로 돌 아왔다. 이 노인은 전 통판 ‘이운경이다 ’ . 나이가 들어 늙었는지 라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한가하게 지내고 있었는 데, 마침 고을 수령을 만나보고 돌아오다가 풍운의 비범함 을 보고 기특히 여겨 데려온 것이었다. 통판의 전실 부인(前室夫人) 최씨는 일자 일녀(一子一 女)를 낳고 일찍 죽었는데, 딸은 경패요, 아들은 경운이라.

통판은 호씨를 재취하여 자녀를 두었다. 호씨는 천성이 사


나워 경패 남매를 시기하고 구박함이 점점 더욱 심했다. 통 판이 매양 몹시 원통해했는데, 마침 풍운을 만나서 매우 기 뻐하며 호씨에게 말했다. “내가 길에서 기특한 아이를 데려왔으니 부인은 사랑하 여 기르시오. 이 아이 나이가 차면 재산과 지위를 아울러 갖 출 것이니, 경패의 배필을 삼아 우리 문호(門戶)를 빛내게 해야겠소.” 그러고는 풍운을 불러 호씨에게 보이니, 호씨가 얼굴빛 이 달라지며 말했다. “상공(相公)은 세대원훈26)으로 명망이 조정에 자자하거 늘, 근본 없이 거리를 나다니는 아이를 금지옥엽 같은 딸아 이의 배필로 삼으려 하시니, 남들의 빈정거림과 비웃음을 면치 못할까 염려되나이다.” 통판이 웃으며 말했다. “이 아이는 훗날 반드시 이름을 천하에 떨칠 것인데, 지 금 정처 없이 떠돌아다님을 꺼리고 싫어한단 말이오.” 호씨가 통판의 말을 다 듣고는 풍운을 자세히 보매, 은은 (隱隱)한 골격과 열렬(熱烈)한 정신이 아닌 게 아니라 뛰어

26) 세대원훈(世代元勳): 여러 대에 걸쳐 쌓은 나라에 대한 공으로 임금의 특 별한 예우를 받는 노신(老臣).


난 기남자27)였다. 혼자 가만히 경패의 배필로 삼게 되면 제 자식에게 볼 낯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더니, 풍운을 해치리 라 결심하더라. 이후로 통판이 풍운을 가르치매, 풍운은 문일지십28)하 는 총명함이 있었다. 그리하여 통판은 그러한 풍운을 애중 (愛重)히 여겼다. 그러나 호씨는 시기하여 ‘먼저 경패를 없 애리라’ 하고 독약을 죽에 넣어 경패에게 주었으나, 경패가 받다가 놓쳐 떨어뜨렸다. 호씨는 이를 크게 꾸짖고 자신의 계교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한탄했다. 시간이 흐르는 물과 같이 빨리 지나니, 풍운의 나이는 15 세요, 경패의 나이는 16세라. 통판이 날짜를 택해 결혼시키 니, 경패의 아리따운 자색과 장생의 화려한 풍채가 참으로 한평생을 함께할 아름다운 짝이었다. 그러나 호씨가 가장 즐거워 아니하니, 통판이 생각했다. ‘호씨의 음흉한 마음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으니, 내 죽은 후면 딸아이 부부가 해를 만나리로다.’ 이렇듯 늘 근심하더니, 통판은 홀연 병을 얻어서 온갖 약 을 써도 효험이 없자 다시 일어나지 못할 줄 알고 풍운의 손 27) 기남자(奇男子): 재주와 슬기가 남달리 뛰어난 남자. 28) 문일지십(聞一知十): 하나를 들으면 열을 미루어 안다는 뜻으로, ‘지극히 총명함을 ’ 일컫는 말.


을 잡고 말했다. “이 늙은이의 후취(後娶) 호씨가 어질지 못하여 경패 남 매를 해치고자 하되 내가 살아 있기에 아직 엄두를 내지 못 하지만, 내가 죽으면 반드시 지독한 화를 입을 것이니, 돌아 가는 마음이 가장 슬프도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사 온데, 설마 어찌하겠나이까?” 통판이 슬퍼하며 말했다. “어진 사위는 5∼6년 후면 몸이 매우 귀하게 될 것인데, 나의 자녀들을 잊지 아니하면 죽은 이의 넋이라도 즐거울 것이로다.” 그러고는 유서(遺書)를 주며 말했다. “호씨의 박대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거든 이를 떼 어 보라!” 또 다른 유서를 경패에게 주며 말했다. “나 죽은 후에 네 서방을 특별히 공손하게 대접하되, 만 일 계모의 간계(奸計)가 매우 심하거든 이를 보아라!” 호씨와 자녀 등을 불러 앉히고는 길게 탄식하더니 말 했다. “내가 불행히도 죽을 것 같으니, 부인은 슬퍼 말고 여러 자녀들을 잘 거느려 보중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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