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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르노스티 억압된 통일의 가톨릭, 통일 없는 자유의 프로테스탄티즘. 교회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사랑과 자유를 간직한 개인과 개인의 유기적 통일은 불가능한가? 소보르노스티는 대답한다. 그것은 가능하다.

‹자화상›, 알렉세이 호먀코프, 1842


인텔리겐치아 2373호, 2014년 12월 24일 발행

성탄절 특집 3 허선화가 옮긴 알렉세이 호먀코프의 ≪교회는 하나다/서구 신앙 고백에 대한 정교 그리스도인의 몇 마디≫

자신의 형제들의 동의 없이 모든 교회의 고백 을 감히 바꾸려고 한 개별 교회들의 교만은 사랑의 영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었으며 하 나님과 거룩한 교회 앞에서 범죄가 되었다. -<교회는 하나다>, «교회는 하나다 / 서구 신앙 고 백에 대한 정교 그리스도인의 몇 마디(Церковь одна/ Несколько слов православного христианина о западных верованиях)», 알렉세이 호먀코프(Алексей С. Хомяков) 지음, 허선화 옮김, 35쪽


무엇이 범죄인가? 완전하고 충분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고백 을 가톨릭교회가 바꾼 일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고백이란? 기독교의 대표 신앙 고백문이다. 니케아 신 경을 기초로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서 채택한 신경이다. 뭘 어떻게 바꾸었나? 그리스어 원문을 라틴어로 옮기면서 “필리 오케(filioque)”를 넣었다. ‘아들에게서’라는 뜻이다.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나온다’는 구 절이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온다’ 고 바뀌었다.


왜 바꿨나?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 아리우스주의를 경계 하기 위해서였다. 필리오케는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단어 하나에서 시작한 동방정교회와 가톨릭 교회의 논쟁은 1054년 서로 상대 교회를 파 문하는 결과를 낳았다. <교회는 하나다>는 교회 통일을 주장하는 건가? 아니다. 호먀코프는 정교와 가톨릭, 프로테 스탄티즘은 함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같은 기독교가 왜 함께하지 못하는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의 합리주의 때문 이다. 합리주의는 교회의 원칙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과 개인의 판단을 따른다. 가톨 릭은 교황이라는 감독의 합리주의적 의견에 전 교회의 권리를 부여하고, 프로테스탄티 즘은 개인 의견의 독립성을 거룩한 교회의 믿음보다 중시한다. 호먀코프가 생각하는 ‘하나의 교회’란 무엇인 가? 동방 총주교 관구와 연합하는 공동체다. 그 는 하나님과 교회를 한 몸으로 묘사한다. 하 나님은 머리이고 교회는 지체다. 교회에 속 한 개인에게서 거짓된 가르침이 생겨날 수


있다. 그 때문에 오염된 지체는 이단이나 분 파를 만들며 떨어져 나간다. 따라서 교회의 거룩함은 변치 않는다. <서구 신앙 고백에 대한 정교 그리스도인의 몇 마디>는 어떤 글인가? 교회 분열의 본질에 천착하는 글이다. 초대 교회의 정신을 계승하는 동방정교의 관점이 다. 거룩한 전승에서 이탈한 가톨릭과 프로 테스탄트를 공격한다. 알렉세이 호먀코프는 누구인가? 시인이자 정교 신학자, 슬라브주의 교의를 체계화한 사상가다.


슬라브주의란? 19세기 중엽에 나타난 슬라브족의 민족주의 사상이다. 서유럽 국가를 모범으로 삼아 러 시아의 후진성을 극복하려 한 서구주의와 대립했다. 그는 왜 슬라브주의로 나아갔나? 러시아와 서유럽의 근본 원칙이 다르기 때문 이다. 서유럽의 영향으로 러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가 하나같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고 걱정했다. 무엇이 근본적으로 다르단 말인가? 러시아 농민 공동체는 내적 법칙을 따르고, 서유럽 국가는 외적 법칙을 따른다. 러시아


는 국가와 민중의 상호 동의를 바탕으로 이 루어졌기 때문에 다른 계급이나 계층에 적대 감을 품지 않는다. 서유럽은 강제와 합리주 의, 국가에 대한 교회의 종속의 역사였다. 잘못된 길을 벗어나는 방법은? ‘소보르노스티’다. 호먀코프는 러시아의 소 보르노스티 정신이 서유럽의 영향에서 벗어 나 인류를 해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보르노스티는 뭔가? 사원 또는 모임을 뜻하는 소보르에서 파생 한 말이다. 사랑과 자유를 간직한 개인의 유 기적 통일체다. 억압된 통일의 가톨릭, 통일 없는 자유의 프로테스탄티즘을 극복하는 대


안으로 종교 영역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점 차 정치 이데올로기, 문화 패러다임으로 외 연이 확장되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허선화다. 러시아 문학과 역사를 강의한다.


소보르노스티 억압된 통일의 가톨릭, 통일 없는 자유의 프로테스탄티즘. 교회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사랑과 자유를 간직한 개인과 개인의 유기적 통일은 불가능한가? 소보르노스티는 대답한다. 그것은 가능하다.

‹자화상›, 알렉세이 호먀코프, 1842


만인/ 빌라도의 죽음 작자 미상 지음 강태경 옮김 2009년 9월 15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 141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교회는 하나다


1. 교회의 단일성은 하나님의 단일성에서 비롯되어야 마땅 하다. 왜냐하면 교회는 개별성 속에 존재하는 개인들의 집 합이 아니라 은혜에 복종하는 다수의 이성적인 피조물 가운 데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단일성이기 때문이다. 은 혜는 복종하지 않고 그것을 누리지 않는(재능을 파묻고 있 는) 자들에게도 주어지지만 그들은 교회에 속하지 않는다. 교회의 단일성은 가상의 것이거나 비유적인 것이 아니라 살 아 있는 몸 안에 있는 많은 지체들의 단일성과 같이 참되고 본질적인 것이다. 교회는 아직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나뉘어 있는 것 같을지라도 하나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보이 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의 구분을 인정할 수 있다. 교회 의 단일성은 참되고 무조건적인 것이다. 지상에 살고 있는 자, 지상의 길을 마친 자, (천사들처럼) 지상의 길을 위해 창 조되지 않은 자, 아직 지상의 길을 시작하지 않은 자(미래의 세대), 이 모두는 하나의 교회, 하나의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 결합되어 있다. 왜냐하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하나님의 피조물도 하나님에게는 명백하게 보이며, 하나님은 아직 비존재에서 존재로 부름 받지 않은 자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의 믿음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자 신의 본질적인 단일성과 내적인 은혜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


으면서 시간 속에서 나타나고 실현된다. 따라서 ‘보이는 교 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 말할 때는 오직 사람과의 관계 속 에서만 말하는 것이다. 2. 보이는 교회, 혹은 지상의 교회는 그 머리를 그리스도 로 하는(골로새서 1:18) 모든 교회의 몸과 완전한 교제와 단 일성 안에서 살아간다. 교회는 자신 속에 거하는 그리스도 와 성령의 은혜를 그 모든 완전함 가운데 소유하고 있다. 그 러나 그 발현의 완전함은 가지고 있지 못한데, 그것은 교회 가 하나님이 합당하게 여기는 만큼만 행하고 판단하기 때문 이다. 지상적인 보이는 교회는 주님이 모든 피조물을 마지막 으로 심판할 때 나타나도록 되어 있는 모든 교회의 충만함 과 완전함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 따라서 교회는 자신의 한 계 내에서만 행하고 판단한다. 즉, 사도 바울의 말대로 외인 들을 판단하지 않고(고린도전서 5:12∼13) 스스로 자신을 교회로부터 분리한 사람들만을 분리된 것으로, 즉 자신에 게 속하지 않은 것으로 인정한다. 교회는 나머지 인류, 혹은 교회에 낯선 이들, 혹은 하나님이 교회에 알려주시지 않은 끈으로 교회와 연결된 이들을 위대한 날의 심판에 맡긴다. 지상의 교회는 성령의 은혜와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자유 를 따라 자신만을 판단하며 나머지 인류를 그리스도 안에서


의 통일성과 하나님의 양자 됨으로 부른다. 그러나 남의 종 을 심판하지 말라는 자신의 구세주와 머리의 명령을 알기에 교회의 부름을 듣지 않는 자들에게 선고를 내리지 않는다. 3. 세상이 창조된 때로부터 지상의 교회는 계속해서 지 상에 있어왔고 하나님 자신에 의해 교회에게 주어진 약속을 따라 모든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있을 것이다. 교 회의 특징은 어떤 거짓의 혼합도 허용하지 않는 내적인 거 룩함과 외적인 불변성이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는 진리의 영이 살고 있으며 교회의 보호자이자 머리인 그리스도가 불 변하기 때문이다. 내적인, 그리고 외적인 교회의 특성들은 은혜에 의해 그 지체가 된 사람들만이 알고 있다. 타인들, 혹은 부름을 받지 않은 자들에게 그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식(儀 式)의 외적인 변화는 부름 받지 않은 자들에게는 의식을 통

해 자신을 드러내는 성령 자체의 변화(예를 들어, 구약의 교 회에서 신약의 교회로의 이행, 혹은 사도들의 시대부터 교 회 의식과 법규들의 변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교회와 그 지 체들은 내적인 믿음의 지식으로써 하나님의 영, 곧 자신의 영의 단일성과 불변성을 알고 있다. 외부에 있는 부름 받지 않은 자들은 내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외적인 지식을 가 지고 의식(儀式)의 변화에만 주목한다. 하나님의 불변성 자


체도 그들에게는 그의 피조물들의 변화 속에서 변화하는 것 처럼 보인다. 따라서 교회는 변화되거나 어두워지거나 배 신할 수가 없고 그런 적도 없다. 그렇게 된다면 교회는 진리 의 영을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자신의 내부 로 거짓을 받아들이거나 평신도와 장로들, 그리고 감독들 이 그리스도의 영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 명령이나 교훈 에 복종하는 그런 때는 있을 수 없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의 영이 빈약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자는 교회를 모르며 교 회에 낯설다. 다른 거짓된 가르침을 보존하거나 받아들임 으로써 자주 거짓된 가르침에 반대하는 것은 교회의 일이 아니다. 그 본질상 교회 안에는 항상 거짓과 혼합된 부분적 인 진리가 아닌 완전하고 혼합되지 않은 진리를 고백하는 전도자들과 교사들, 순교자들이 있어야 한다. 교회는 부분 적인 진리와 부분적인 거짓이 아니라 완전한 진리, 혼합이 없는 진리를 안다. 교회 안에 사는 이는 거짓된 가르침에 복 종하지 않고 그가 거짓됨을 알기 때문에 가짜 교사에게서 성례를 받지 않으며 거짓된 의식을 따르지도 않는다. 교회 는 진리가 있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는다. 또한 거룩하기 때 문에 꾀를 부리지도 않으며 낙심하지도 않는다. 교회는 불 변하기 때문에 언젠가 진리로 인정했던 것을 거짓이라고 인 정하지도 않는다. 전체 교회 회의와 전체의 합의로써 어떤


개인이나 감독 또는 총대주교의 가르침에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선언한 만큼, 교회는 그 개인이나 감독 또 는 총대주교와 그의 후계자들이 가르침에 있어서 실수에 빠 질 수 없으며 그들이 어떤 특별한 은혜에 의해 거짓으로부 터 보호되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 교회가 자신의 거룩함을 상실했다면 땅은 무엇으로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만약 교 회의 오늘의 명령이 어제의 것과 모순된다면 진리가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교회, 즉 그 지체들 안에서는 거짓된 가르침이 생겨난다. 그러나 그때 오염된 지체들은 이단 또는 분파를 형성하며 떨어져 나간다. 따라서 교회의 거룩함 자체는 더럽혀지지 않는다. 4. 교회는 하나의 사도적인 거룩한(보편적이고 우주적 인) 공회라고 불린다. 교회는 하나이며 거룩하고 어느 지역 이 아닌 모든 세상에 속하며 교회에 의해 어느 한 민족이나 한 나라뿐 아니라 모든 인류와 모든 땅이 거룩해진다. 교회 의 본질은 모든 땅에서 교회를 인정하는 모든 지체들의 삶과 영의 일치와 단일성에 있다. 교회의 믿음과 소망, 사랑의 충 만함은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 안에 담겨 있다. 따라서 어떤 기독교 공동체가 지역 교회, 예를 들어 그리 스, 러시아, 또는 시리아 교회라고 불린다면 그런 명칭은 단


지 어떤 나라(그리스, 러시아, 시리아 등)에 살고 있는 교회 의 지체들의 모임을 의미한다. 하나의 그리스도인들의 공 동체가 교회의 가르침을 표현하거나 다른 공동체와의 일치 없이 교회의 가르침에 교리적인 해석을 가할 수 없다. 더구 나 어떤 공동체나 그 목자가 자신의 해석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 믿음의 은혜는 삶의 거룩함과 분리될 수 없 으며 어떤 공동체나 목자도 모든 이들의 믿음의 수호자로 부름 받을 수는 없다. 하나의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교 회의 가르침을 표현하거나 다른 공동체와의 일치 없이 교회 의 가르침에 교리적인 해석을 가할 수 없다. 그러나 교리적 인 해석이나 가르침의 권리를 갖지 않는 모든 기독교 공동 체는 다른 공동체를 시험에 들게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 식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의식을 도입할 권리를 가진다. 그 러나 한 공동체에서는 잘못된 점이 없고 심지어 칭찬할 만 한 것이 다른 공동체에 잘못된 것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 해, 그리고 형제가 형제를 의심과 분열의 죄로 끌어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버리고 다른 의견에 복종해야 할 수도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회 의식의 통 일성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 의식 속에서는 심지어 무지한 자들에게도 영과 가르침의 단일성이 드러나 기 때문이다. 그 의미를 아는 자들에게 의식은 살아 있는 기


독교적인 기쁨의 원천이 된다. 사랑은 교회의 면류관이자 영광이다. 5. 교회 안에 살아 있으며 교회를 다스리고 지혜를 주는 하나님의 영은 여러 모양으로 교회 안에서 역사한다. 하나 님의 영은 성경과 전승과 실행에서 역사한다. 하나님의 일 을 행하는 교회는 전승을 보존하고 성경을 기록한 그 교회 다. 교회 안의 사람들, 혹은 많은 사람들이 전승을 보존하거 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총체성 안에 살고 있는 하 나님의 영이 그것을 행한다. 왜냐하면 성경 안에서 전승의 기초를 찾거나 전승 안에서 성경의 증거를 찾거나 실행 안 에서 성경과 전승의 정당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렇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교회 밖에서 사는 자에게는 성경 도 전승도 실행도 이해되지 않는다. 교회 안에 거하며 교회 의 영에 참여하는 자에게만 교회 안에 살고 있는 은혜 때문 에 그 통일성이 분명해진다. 실행이 성경과 전승에 선행하지 않는가? 성경이 전승에 선행하지 않는가? 노아와 아브라함, 선조들, 구약 교회의 대 표자들의 행함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았는가? 전승은 최초의 선조인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조상들에게 도 존재하지 않았는가? 그리스도는 사도들이 성경으로써 구속의 일과 자유의 법을 증거하기 전에 인간에게 자유와


언어적인 가르침을 주지 않았는가? 따라서 전승과 실행, 성 경 사이에는 모순이 없으며 완전한 일치만이 있다. 전승을 보존하고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지혜에 합당한 일을 행하는 만큼만 우리는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살 고 있는 지혜는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의 지체로서 주어진 것이며 부분적으로 주어지기 때문 에 우리의 개인적인 거짓을 완전히 없애주지 않는다. 그러 나 교회에게는 진리의 충만함 속에서 거짓과의 혼합 없이 주어진다. 따라서 지혜가 떠나가지 않도록 교회를 판단하 지 말고 교회에 복종하라. 교회의 진리에 대한 증거를 구하는 사람은 그것으로써 자신의 의심을 드러내며 자신을 교회로부터 제외시킨다. 또는 의심하는 자로 보이면서 동시에 진리를 증명하고 자신 의 이성의 힘으로 그것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유지한 다. 그러나 이성의 힘은 하나님의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다. 인간의 무력함은 증명의 무력함 속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성경만을 받아들이고 그것에만 교회의 기초를 두는 자는 사 실은 교회를 부인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교회를 세우려고 기 도하는 것이다. 전승과 실행만을 받아들이고 성경의 중요 성을 무시하는 자 역시 사실은 교회를 부인하고 성경으로써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심판자가 되는 것이다. 기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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