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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모든 인생 황필은 발문에 이렇게 썼다. “조정과 민간의 기쁘고 놀랍고 즐겁고 슬픈 이야기는 웃고 이야기할 만한 소재가 되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부드럽고 따스하게 만든다. 역사에 빠진 것이 이 책에 모두 있다.”

<춘의만원>, 신윤복 그림, 18세기


인텔리겐치아 2421호, 2015년 1월 27일 발행

홍순석이 옮긴 ≪용재총화≫

홍녀에게 반한 서거정 화사(畵史) 홍천기(洪天起)는 여자인데 얼 굴이 한때의 절색이었다. 마침 일을 저질러 사헌부에 나아가 추국(推鞫)을 받았다. 달 성(達城) 서거정(徐居正)이 젊었을 때에 여 러 소년들의 무리를 따라다니며 활 쏘고, 술 을 마시다가 또한 잡혀 와 있었다. 서거정은 홍녀(洪女)의 옆에 앉아서 눈짓을 보내고 잠 시도 돌리지 않았다. 이때 상공(相公) 남지


(南智)가 대사헌이었는데, 보다 못해 말하기 를, “유생이 무슨 죄가 있는가. 속히 놓아주 어라” 했다. 서거정은 나와서 친구들에게 말 하기를, “어찌 공사(公事)가 이처럼 빠르냐? 공사는 마땅히 범인의 말을 묻고 또 고사(考 辭)를 받아서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한 뒤에 천 천히 하는 것이거늘, 어찌 이렇게 급하게 하 는가?” 했다. 이것은 홍녀의 옆에 오래 있지 못한 것을 한탄해서 한 말이었다. 친구들이 듣고 모두 웃어 마지않았다. -«용재총화(慵齋叢話)», 성현 지음, 홍순석 옮김, 345~346쪽


‘용재총화(慵齋叢話)’가 무슨 뜻인가? ‘용재’는 저자 성현의 호다. ‘총화’는 여러 이 야기를 모은 것이다. 용재총화는 성현이 지 은 잡기류 문헌이라는 뜻이다. 무엇을 썼는가? 고려 때부터 조선 성종 때까지 왕세가·사대 부·문인·서화가·음악가 등의 인물 일화 를 비롯해 풍속·지리·제도·음악·문화· 소화(笑話) 등 사회 문화 전반을 다뤘다. 구성은? 내용으로는 기실(記實)·골계(滑稽)·기이 (紀異)·잡론(雜論)으로 나눌 수 있지만 유 형이나 내용에 따라 분류하지는 않았다. 336


편의 이야기를 특별한 기준 없이 10권으로 나누어 실었다. ‘기실’이 뭔가? 사회·경제·문화·지리·풍속·제도·불 교·정치·행정·인물 일화 등 성현 당대의 역사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역사 기록과는 다른가? 사서(史書)에 없는 세시풍속이나 사신, 왜인 의 풍속까지도 기록했다. 특히 인물 일화가 많다. 전체 분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누구의 일화인가? 인용한 글처럼 사대부는 물론 장수, 음악가,


궁사, 사냥꾼, 독경사, 맹인, 성대묘사꾼 등 거의 모든 유형을 망라했다. 골계는 어떤 이야기인가? 우치담(愚痴談)·낭패담(狼狽談)·사기담 (詐欺談)·예지담(睿智談)·호색담(好色談) 이다. 장덕순은 그중에서도 호색담이 «용 재총화»의 가장 특징적인 설화라 했다. 기이는 괴담인가? 귀신 이야기, 꿈과 해몽, 점복 등이다. <최 영 장군의 홍분(紅墳)> <강감찬과 호승(虎 僧)> 등은 대표적인 지괴설화(志怪說話)다.


잡론은 무엇인가? 개인 기록과 시화(詩話)로 구분할 수 있다. 저자 자신의 가문과 일가친척, 형제며 외숙 에 관한 이야기가 36편이나 된다. 민간의 속 언과 옛이야기도 세심하게 기록했다. 시화 는 본격적인 것도 있으나 대개는 인물 일화 에 삽입된 것이다. 성현은 왜 이 책을 썼나? <촌중비어서(村中鄙語序)>에서 “가히 후 대 사람들에게 권계(勸誡)가 될 만하고, 야외 (野外)의 일사(逸事)로서 늙마에 즐길 만하 며, 한가한 때에 소일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잡기류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를 실천한 것이다.


그는 어쩌다 잡기류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가족과 지인의 영향이다. 성종 시대 관료층 문인들은 잡기류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저 자의 형인 성임, 성간은 경전만 추종하는 도 학자(道學者)와는 다른 문학관을 지니고 있 었다. 성임은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 節)» «태평통재(太平通載)»를 엮었다. 같 은 시기에 서거정은 «필원잡기(筆苑雜記) »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강희맹은 «촌담해이(村談解弛)», 이육은 «청파극담(靑坡劇談)»을 저술했다. 당대의 ≪용재총화≫에 대한 평가는 무엇인 가? 황필이 쓴 <용재총화발문>을 보자. “무릇


우리나라 문장 각 세대(世代)의 고하(高下), 도읍 산천의 민풍(民風)과 시속(時俗)에서 숭상하는 것의 아름다움과 추함, 성악(聲樂) 복축(卜祝) 서화(書畵), 모든 잡기(雜技)에 이르기까지 조야 간(朝野間)의 기쁘고 놀랍 고 즐겁고 슬퍼함은 담소(談笑)의 자산이 되 어 심신(心神)을 온화하게 할 수 있다. 국사 (國史)에 갖추지 못한 것도 이 책에 모두 실 려 있다.” 성현은 누구인가? 조선 초기의 문인이다. 1439년에 태어나 1504년에 죽었다. 용재 외에 부휴자, 허백당 이라는 호도 사용했다. 음률에 정통해 «악 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했다. «허백당


집(虛白堂集)», «용재총화(慵齋叢話)», «풍아록(風雅錄)», «풍소궤범(風騷軌 範)», «부휴자 담론(浮休子談論)», «주 의패설(奏議稗說)» 등을 남겼다. 당신은 왜 이 책을 번역했나? 조선 초기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책에 담긴 다양한 기록은 오늘날 사회학·민속학·구비 문학은 물론 한국학 연구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당신은 누군가? 홍순석이다. 강남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다.


조선 초기의 모든 인생 황필은 발문에 이렇게 썼다. “조정과 민간의 기쁘고 놀랍고 즐겁고 슬픈 이야기는 웃고 이야기할 만한 소재가 되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부드럽고 따스하게 만든다. 역사에 빠진 것이 이 책에 모두 있다.”

<춘의만원>, 신윤복 그림, 18세기


용재총화 성현 지음 홍순석 옮김 2014 년12월 29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778쪽, 42,000원


작품 속으로

慵齋叢話 용재총화


차례

용재총화 권1 1. 1 역대의 스승··················3 1. 2 역대의 문장가·················5 1. 3 역대의 명필··················8 1. 4 역대의 화가 ·················10 1. 5 역대의 음악가 ················11 1. 6 역대의 도읍지 ················16 1. 7 한양의 명승지 ················19 1. 8 고금의 풍속 ·················22 1. 9 처용희 ···················26 1. 10 관화 ····················28 1. 11 구나 ····················30 1. 12 장례 ····················33 1. 13 대관과 간관 ················34 1. 14 감찰의 신참례 ···············38 1. 15 승정원 ···················40 1. 16 중국 사신과 문사들의 수창 ··········41


용재총화 권2 2. 1 집현전과 홍문관 ···············65 2. 2 과거 제도 ··················67 2. 3 동궁 ····················71 2. 4 삼관의 면신례 ················74 2. 5 성균관 ···················77 2. 6 함장들의 고집 ················79 2. 7 당대의 문벌 ·················80 2. 8 승지 ····················82 2. 9 약밥 ····················82 2. 10 세시명절의 행사 ··············83 2. 11 홍응의 청렴 ················87 2. 12 홍윤성의 호부 ···············88 2. 13 성간의 호학과 선견지명 ···········90 2. 14 최세원의 재담 ···············90 2. 15 비구니 암자에서의 버섯 소동 ·········94 2. 16 안평대군의 방탄 ··············95 2. 17 유방효의 풍류 ···············96 2. 18 김유의 우아한 문장 ·············97 2. 19 성(性)에 무지한 세 사람 ···········98 2. 20 성종조에 인출한 서적 ············99 2. 21 성현의 저술 ················100 2. 22 왕실과 사대부가의 재사···········101


2. 23 악관 박 모의 비천한 재주 ··········101 2. 24 전경법 ··················103 2. 25 성종의 호학 ················104 2. 26 성종의 문소전 개수와 서거 ·········105 2. 27 권초지례 ·················106 2. 28 민대생 조카의 언변 ············110 2. 29 예조 ···················110 2. 30 신상과 허조의 상이한 수완 ·········112 2. 31 최세원의 재담 ···············113 2. 32 성간의 꿈 ·················113 2. 33 성현의 예조판서 시절············115 2. 34 이육의 방달 ················116

용재총화 권3 3. 1 강감찬과 호승(虎僧) ············121 3. 2 영태의 광대놀이 ··············123 3. 3 이방실 남매의 용맹 ·············124 3. 4 신우의 광포 ················126 3. 5 신돈의 호색 ················128 3. 6 미친 척하고 난세를 피한 조운흘········129 3. 7 한종유의 방탕불기 ·············130 3. 8 최영의 홍분 ················132 3. 9 정몽주의 죽음 ···············134


3. 10 길재의 은둔과 교육·············135 3. 11 서견의 강개 ················138 3. 12 조반의 슬픈 사랑 ·············138 3. 13 이제현의 변언 ···············141 3. 14 조반의 외교 응대··············142 3. 15 김약항과 정총의 표문 사건 ·········143 3. 16 이숙번의 거만함 ··············145 3. 17 변계량과 김구경의 논시···········146 3. 18 변계량의 인색함 ··············148 3. 19 황희의 도량 ················149 3. 20 이맹균의 시 ················150 3. 21 정초의 총명 ················152 3. 22 이색이 자식을 잃음 ············153 3. 23 박석명이 사람을 잘 알아봄 ·········153 3. 24 박안신의 기개 ···············154 3. 25 맹사성과 성석린의 기연···········155 3. 26 순흥 안씨의 가계 ·············156 3. 27 안목이 파주 땅을 개간함 ··········157 3. 28 안원이 매와 개를 좋아함 ··········157 3. 29 음악에 조예가 깊은 정구와 정부 ·······159 3. 30 이옥이 왜구를 격퇴함············159 3. 31 하경복의 용기와 담력 ···········160 3. 32 성석린이 집터를 정함 ···········161


3. 33 성석연과 이행의 교유············162 3. 34 안종약이 귀신을 봄·············163 3. 35 안구와 귀신불 ···············166 3. 36 정씨의 귀신 이야기·············167 3. 37 태자가 안효례를 속임 ···········169 3. 38 성석연의 상주(上奏) ············170 3. 39 안숭선과 김종서의 반목 ··········171 3. 40 김처의 미친병 ···············172 3. 41 김허의 효성 ················172 3. 42 노중례의 치료담 ··············173 3. 43 글씨를 잘 쓴 축구 스님 ···········174 3. 44 이 모의 급하고 편협함 ···········174 3. 45 남간의 교주고집 ··············175

용재총화 권4 4. 1 유관의 청렴 ················179 4. 2 고득종 노비의 충직한 죽음 ··········179 4. 3 정갑손의 청빈과 너그러움 ··········180 4. 4 양녕대군이 두려워한 계성군 ·········181 4. 5 양녕대군의 활 솜씨 ·············182 4. 6 김호생의 호(號)···············182 4. 7 박이창의 해학 ···············184 4. 8 버림받은 비구니의 복수 ···········186


4. 9 윤자당 어머니의 문복 ············187 4. 10 배후문과 이석정의 활 솜씨 ·········188 4. 11 이예의 희작시 ···············189 4. 12 홍일동의 호방한 성격 ···········190 4. 13 의원 백귀린의 청렴 ············192 4. 14 정자영의 어리석음 ·············192 4. 15 집현전 학사의 연구(聯句)

·········193

4. 16 성간과 이개의 시 ·············224 4. 17 최수와 김자려의 시 ············227 4. 18 성세순의 시재 ···············229 4. 19 안연의 시재 ················231 4. 20 성간의 세 아들의 재주와 불행 ········231 4. 21 김수온의 재주와 기행············234 4. 22 영천군의 풍류 ···············238 4. 23 비문의 글씨 ················240 4. 24 보현원의 변천 ···············241 4. 25 삼관의 신래 풍속 ·············241 4. 26 성현의 영험한 꿈 ·············242 4. 27 화생의 이치 ················244 4. 28 이학에 밝은 최지··············245 4. 29 이양생의 장자다운 풍모 ··········246 4. 30 기유 집안의 귀변··············248 4. 31 이두 집안의 귀변··············249


용재총화 권5 5. 1 세 사람의 지혜 겨루기 ············253 5. 2 맹인들의 비둘기 소동 ············253 5. 3 어리석은 형과 영리한 동생 ··········255 5. 4 상좌가 사승(師僧)을 속임 ··········257 5. 5 호색적인 사승(師僧)의 봉변 ·········258 5. 6 도수승 ···················259 5. 7 바보 사위 ·················262 5. 8 이 장군의 호색담 ··············263 5. 9 민 공의 소탕함 ···············266 5. 10 뱀이 되어 아내와 동침하던 스님 ·······267 5. 11 정절의 어려움 ···············268 5. 12 안생의 사랑 ················270 5. 13 명통사 맹인의 어리석음···········273 5. 14 개성 맹인의 어리석음 ···········275 5. 15 호색 맹인의 어리석음 ···········276 5. 16 서울 맹인의 어리석음 ···········277 5. 17 양녕대군의 해학 ··············278 5. 18 풍산수의 어리석음 ·············279 5. 19 맹인 김복산의 실수 ············280 5. 20 최호원과 안효례의 논쟁 ··········281 5. 21 흉내를 잘 내는 사람들 ···········282


5. 22 사냥꾼 김속시 ···············283 5. 23 봉석주의 탐욕 ···············285 5. 24 어우동 ··················287 5. 25 김 사문과 기녀의 사랑 ···········289 5. 26 윤통의 속임수 ···············295 5. 27 목 서방 거안················299

용재총화 권6 6. 1 지불배의 인색함 ··············303 6. 2 한봉련의 궁술 ···············304 6. 3 성균관 유생들이 선생을 기롱한 사건 ·····305 6. 4 두 사문과 기녀의 사랑 ············307 6. 5 성삼문이 강희안을 조롱한 시 ·········309 6. 6 홍경손의 발원시 ··············310 6. 7 김복창이 김윤량을 조롱한 시 ·········311 6. 8 처녀의 음란한 시 ··············312 6. 9 전목과 기녀의 희작시 ············313 6. 10 호색 맹인 처의 속임수 ···········314 6. 11 해초와 성세원의 쟁변 ···········315 6. 12 안초와 청귤 ················315 6. 13 수원 기생의 항변··············316 6. 14 김복창과 송여성의 쟁변···········316 6. 15 성임과 기녀의 사랑 ············317


6. 16 세 유생의 꿈과 해몽 ············327 6. 17 나옹 스님의 위엄 ·············328 6. 18 혼수 스님의 출가와 깨우침 ·········328 6. 19 만우 스님의 학문 ·············332 6. 20 키다리 스님 원심··············334 6. 21 계승 ···················336 6. 22 신수 스님의 기행··············337 6. 23 박거경의 시참 ···············340 6. 24 순평군과 종학 ···············341 6. 25 박생의 호색과 낭패 ············342 6. 26 두 정생의 호색과 낭패 ···········343 6. 27 최세원 형제의 해학 ············345 6. 28 내경청에서 지은 성임의 시 ·········346 6. 29 홍녀에 반한 서거정·············346 6. 30 손영숙의 진솔함 ··············347 6. 31 이차공의 재담 ···············348 6. 32 최탁과 이시번의 성품············350 6. 33 손영숙의 어리석은 행동 ··········351 6. 34 어세겸의 횡포 ···············355 6. 35 변구상과 조백규의 재간 ··········357 6. 36 신 모의 비루함···············358 6. 37 신 재추의 편급함 ·············359 6. 38 성간의 선견지명 ··············360


용재총화 권7 7. 1 은문과 문생 ················363 7. 2 태종이 동년 장원을 우대함 ··········364 7. 3 태종의 시재 ················365 7. 4 안렴사의 이별시 ··············365 7. 5 양녕대군의 해학 ··············366 7. 6 현맹인의 실수 ···············367 7. 7 임숙과 이유한의 실수 ············368 7. 8 손순효의 처세 ···············368 7. 9 이순몽과 민발의 발언 ············371 7. 10 이자야의 시와 죽음 ············372 7. 11 두 현감의 손님 접대 ············373 7. 12 자비승의 진솔함과 기행 ··········375 7. 13 유정손과 최팔준의 어리석고 망령됨 ·····376 7. 14 성현의 풍자시 ···············377 7. 15 성현의 어렸을 때 회상 ···········379 7. 16 조수 ···················381 7. 17 꿩의 맛 ··················382 7. 18 유사한 사물들 ···············382 7. 19 기우제 ··················384 7. 20 원각사 ··················385 7. 21 언문 창제 ·················387


7. 22 유구 사신이 본 세 가지 장관·········388 7. 23 활자의 종류와 주자법············389 7. 24 조선 초기의 두시 학습 ···········391 7. 25 윤자영의 옹졸하고 곧음···········392 7. 26 김종련의 우직함 ··············395 7. 27 박지번의 충직함 ··············397 7. 28 기순과 숭어 ················397 7. 29 여러 사람들의 풍자시············398 7. 30 토산물 ··················400 7. 31 일암의 사람됨과 교유············401 7. 32 사람의 기호 ················403 7. 33 정수곤과 기찬의 해학 ···········404 7. 34 파리 목사 ·················405 7. 35 박생의 지나친 호색 행각 ··········406

용재총화 권8 8. 1 불교의 성쇠 ················417 8. 2 여승들의 추문 ···············419 8. 3 승문원 ···················420 8. 4 다섯 아들이 급제한 가문 ···········422 8. 5 한집안에서 재상이 되거나 과거에 장원한 사람들·423 8. 6 역대 문장가와 저술 ·············425 8. 7 담화랑 성간의 대구 ·············429


8. 8 정창손 형제의 상이한 기상 ··········430 8. 9 함동원의 진솔함 ··············431 8. 10 전시에서 장원한 성임의 전문 ········432 8. 11 윤자운의 대구 ···············434 8. 12 향도의 미풍 ················435 8. 13 성현의 귀신 체험 ·············435 8. 14 김성동과 윤수언의 죽음 ··········436 8. 15 빙고 ···················437 8. 16 이름난 점쟁이들의 예언 ··········439 8. 17 사대부들의 사리 추구············442 8. 18 철원의 사냥감 감소 ············444 8. 19 정흠지 부자의 풍채 ············445 8. 20 주자가례 준행의 유래 ···········445 8. 21 성현의 골계 ················446 8. 22 성석린과 성간 후손의 불운 ·········448 8. 23 속담 중의 격언 ··············448 8. 24 김을부의 엉터리 예언 ···········449 8. 25 사람들의 억측 ···············449 8. 26 교주고집 ·················450 8. 27 박연의 재능과 불운·············451 8. 28 조모의 묘소를 찾은 성현의 기연 ·······453 8. 29 개구리의 울음소리 ·············455 8. 30 죽은 사람의 복수 ·············456


8. 31 성현과 채수의 관동 유람 ··········457

용재총화 권9 9. 1 조선인과 중국인의 비교 ···········465 9. 2 온천 ····················468 9. 3 이씨 네 사람의 풍류 ·············472 9. 4 훈장 ····················474 9. 5 성균관 유생의 놀이 ·············478 9. 6 승과 ····················482 9. 7 독서당 ···················484 9. 8 도성 밖의 원교 ···············485 9. 9 예조의 어려운 일 ··············487 9. 10 일곱 노인의 기상··············488 9. 11 성석린의 시 ················489 9. 12 김수온의 시 ················491 9. 13 사문 송씨의 자조시·············493 9. 14 기로연과 기영회 ··············494 9. 15 문무관의 대우 ···············494 9. 16 꼴찌로 급제한 박충지············496 9. 17 사량유생 최항의 장원 급제 ·········497 9. 18 부정으로 장원한 김자············498 9. 19 부정으로 장원한 윤사균···········498 9. 20 이칙의 골계 ················499


9. 21 성사형의 진솔함 ··············500 9. 22 제액 ···················501 9. 23 허조의 원만한 일면 ············502 9. 24 이집과 최원도의 신의 ···········503 9. 25 역대의 명장 ················505 9. 26 이숙감의 골계 ···············506 9. 27 안처관의 풍정 ···············506 9. 28 이극감과 성임의 교분 ···········508 9. 29 노사신의 골계 ···············509 9. 30 어효첨의 세밀함 ··············510 9. 31 어세공이 김승경을 놀리다··········511 9. 32 술 때문에 죽은 축산군과 민보익 ·······513

용재총화 권10 10. 1 하윤의 호협한 기상 ············517 10. 2 하윤과 정사의 난 ·············518 10. 3 임오년 사은일의 소동············519 10. 4 김순강의 어리석음 ·············521 10. 5 김세적의 활 솜씨··············521 10. 6 세조 만년의 파적··············523 10. 7 도자기 ··················525 10. 8 예조 청사 ·················526 10. 9 궁궐 안팎의 샘과 못 ············527


10. 10 종이···················529 10. 11 임흥의 즐거움 ··············530 10. 12 양잠···················531 10. 13 제단···················532 10. 14 세조 때 문신들이 각자 즐기는 취향 ·····534 10. 15 파산군의 서재명 ·············540 10. 16 기건과 김승경의 고지식함 ·········541 10. 17 시문 선집 ················541 10. 18 최세원의 골계 ··············542 10. 19 우계지의 송별시 ·············543 10. 20 삼포 왜인 ················544 10. 21 채수의 골계 ···············546 10. 22 의녀의 비술 ···············547 10. 23 권 모가 음악을 배운 이유 ·········547 10. 24 성임의 저술 ···············548 10. 25 세 번이나 공신이 되지 못한 성임 ······549 10. 26 신린과 박거경의 겁먹음 ··········551 10. 27 일본의 풍속 ···············552 10. 28 야인의 풍속 ···············555 10. 29 성불도·종정도·작성도의 놀이 ······558 10. 30 남계영의 편벽한 학문 태도

········559

10. 31 이함녕의 불운 ··············560 10. 32 이정보의 졸필 ··············560


10. 33 최흥효의 서체와 불운 ···········561 10. 34 안지의 인품 ···············563 10. 35 귀화인 설장수의 가문 ···········563 10. 36 귀화인 명승과 진리 ············564 10. 37 향시 관리의 허술함 ············566 10. 38 정묘년 중시의 급제자 ···········567 10. 39 우리나라의 거족 ·············568

용재총화 발문(跋文)···············571 용재총화 원문··················573

해설 ······················745 지은이에 대해··················755 옮긴이에 대해··················757


1. 1 역대의 스승 경술(經術)과 문장(文章)은 두 가지 이치가 아니다. 육경 (六經)1)은 모두 성인(聖人)의 문장으로 사업(事業)2)에 적 용하던 것이다. 요즈음 글을 짓는 자는 경서에 근본함을 알 지 못하고, 경술에 밝다는 자는 문장을 모른다. 이는 기습 (氣習)이 한쪽으로 치우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는 사람 들이 힘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 때 문사들은 시(詩) 와 소(騷)를 업으로 삼았으나, 오직 정몽주(鄭夢周)만이 성리학을 처음으로 창도했다. 조 선조에 이르러서는 권근(權近)과 권우(權遇) 두 형제가 경 학에도 밝고 문장에도 능했다. 권근은 사서와 오경의 구결 (口訣)을 정했고, ≪천견록(淺見錄)≫과 ≪입학도설(入學 圖說)≫ 등을 지어서, 유학을 보급하는 데 도운 공이 적지

않다. 그 뒤에 스승이 될 만한 사람으로 황현(黃鉉)·윤상(尹 祥)·김구(金鉤)·김말(金末)·김반(金泮)이 있다. 황현

의 학문은 세상에 알려진 바가 없다. 윤상은 가장 정통하고,

1) 육경(六經):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춘추(春秋)· 주례(周禮)·예기(禮記)를 지칭한다. 2) 사업(事業): 일해서 천하의 백성에게 베푸는 것을 말한다(擧而措之 天下之民 謂之事業).


글도 조금은 할 줄 알았다. 김구와 김말은 모두 경학에 정통 했다. 그러나 김말은 고체(固滯)함을 면치 못했다. 그때 의 론이 서로 상하를 다투어 논쟁이 그치지 않았다. 때문에 수 업하는 제자들도 두 파로 나누어졌다. 두 사람은 모두 세조 에게 알려져서 관직이 1품에 이르렀다. 김반은 대사성이 되 었다가 연로해 치사(致仕)하고는 고향에서 굶주리다가 죽 었다. 그 다음가는 사람으로 공기(孔頎)·정자영(鄭自英)· 구종직(丘從直)·유희익(兪希益)·유진(兪鎭) 등이 있다. 공기는 익살스러워서 이야기를 잘했으나, 글 짓는 것은 사 소한 편지 한마디도 짓지 못했다. 일찍이 남의 편지를 받았 으나 답장을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옆에 있던 생원 김 순명(金順命)이 이것을 보고 그가 말하는 대로 받아 써 보 니, 사어(辭語)가 훌륭했다. 공기가 감탄해 말하기를 “자네 의 학문은 나에게서 배운 것인데, 자네는 잘 이용하고 나는 이용할 줄 모르니, 참으로 ‘푸른색이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 다 더 푸르다(靑出於藍 靑於藍)’ 하겠다” 했다. 정자영은 오경뿐만 아니라 여러 사적(史籍)을 널리 보았 다. 관직이 판서에 이르렀다. 구종직은 용모가 뛰어나서 세 조에게 발탁되어 마침내 관직이 1품에 이르렀다. 유희익은 현달하지는 못했다. 유진은 고집이 세서 사리에 통달하지 못했다. 근래에는 노자형(盧自亨), 이문흥(李文興)이 오랫동안


학관(學官)에 있었는데, 성종이 연로하다고 우대해 마침내 당상관에 올랐다. 모두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죽었다.

1. 2 역대의 문장가 우리나라의 문장은 최치원(崔致遠)부터 처음으로 떨쳐 드 러나게 되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들어가 급제하고 문명 (文名)을 크게 떨쳤다. 지금은 문묘(文廟)에 배향되어 있다. 이제 그의 저술을 통해 보면, 시구에는 능숙하나 뜻이 정밀 하지 못하고, 사륙문(四六文)3)은 잘 지었으나 용어가 정리 되지 못했다. 김부식(金富軾) 같은 이는 글은 섬부(贍富)하나 화려하 지 못하다. 정지상(鄭知常)의 글은 빛나기는 하나 널리 알 려지지 않았다. 이규보(李奎報)는 압운에 능숙하나 거두어 맺는 데가 없었다. 이인로(李仁老)는 세련되었으나 넓음이 없다. 임춘(林椿)은 치밀하나 융통하지 못하다. 이곡(李穀) 은 적실(的實)하나 산뜻하지 못하다. 이제현(李齊賢)는 노

건(老健)하나 문채가 없다. 이숭인(李崇仁)은 온자(醞藉)

3) 사륙문(四六文): 중국 육조(六朝) 때 발달한 문체로 4글자와 6글자 로 된 변려문을 말한다.


하나 깊지 못하다. 정몽주(鄭夢周)는 순수하나 긴요하지 못하다. 정도전(鄭道傳)은 장대(張大)하나 검속하지 못하 다. 세상에서 칭하기를 “이색(李穡)이 시와 글에 모두 뛰어 나 집대성했다” 한다. 그러나 비루하고 소략한 태도가 많아 서 원(元)나라 사람의 규율(規律)에도 미치지 못한다. 어찌 당(唐)·송(宋)의 영역에 비길 수 있겠는가. 권근(權近)·변계량(卞季良)이 대제학을 지냈으나 이 색에게 미치지 못한다. 변계량은 더욱 비약(卑弱)하다. 세 종께서 처음으로 집현전을 설치하고 문학하는 선비들을 맞아들였는데, 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이석형(李 石亨)·박팽년( 朴彭年)·성삼문( 成三問)·유성원( 柳誠 源)·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와 같은 사람들이 있어

서 모두 한때 이름을 떨쳤다. 성삼문의 문장은 호방하고 구 애됨이 없으나 시는 잘하지 못했다. 하위지는 대책문(對策 文)이나 소장(疏章)에는 능하나 시를 알지 못했다. 유성원

은 천재로 숙성했으나 지식이 넓지 못했다. 이개의 글은 맑 고 총명해 뛰어났으며 시도 정절(精絶)했다. 선비들은 모두 박팽년이 집대성했다고 추앙했는데 그는 경술·문장·필 법을 모두 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 주살(誅殺)당해서 저술한 것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최항은 사륙문체(四六文體)에 능하고, 이석형은 과문 (科文)에 능숙했다. 신숙주는 문장과 도덕이 한 시대의 존


경을 받았다. 그 뒤를 따를 사람은 서거정(徐居正)·김수 온( 金守溫)·강희맹( 姜希孟)·이승소(李承召)·김복창 (金福昌)과 나의 백씨[伯氏: 성임(成任)]뿐이다. 서거정의 문장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시를 지음에 한유(韓愈)와 육유 (陸游)의 체를 본받았는데 짓기만 하면 아름답기 짝이 없는 글이 되었다. 오랫동안 대제학을 맡았다. 김수온은 책을 읽으면 반드시 외기 때문에 문장의 체를 얻어서 글이 웅대하고 힘찼으며, 그와 맞서 글을 다툴 사람 이 없었다. 그러나 성품이 검속하지 못해 시의 압운에 착오 가 많아 격식에 맞지 않았다. 강희맹의 시와 글은 전아(典 雅)하고 자연스러워서 여러 선비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났

다. 이승소의 시와 글은 모두 아름다웠다. 정교로운 공인 (工人)이 다듬고 새긴 것과 같아서 다듬고 고친 흔적이 없 었다. 백씨(伯氏)의 시는 만당체(晩唐體)를 얻어서 떠가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처럼 막히는 데가 없었다. 김복창은 타 고난 자질이 성숙했으며, 반고(班固)4)로써 표준을 삼았다. 그의 문장은 노숙하고 건장했다. ≪세조실록≫을 편찬할 때 서사(敍事)는 대개 그의 손에서 나왔다. 이상은 모두 일 대에 이름을 떨쳤던 사람들로서 문학이 빛나고 성대했다.

4) 반고(班固): 중국 후한(後漢) 때 사람. 자는 맹견(孟堅), ≪한서(漢 書)≫를 저술했다.


2. 33 성현의 예조판서 시절 나는 예조판서로서 장악원의 제조가 되었는데, 손님의 연향 (宴享)과 사신에게 내리는 연향과 관습취재(慣習取才)166) 때 음악을 듣지 않는 날이 없었다. 또 태평관(太平館)에 왕 래할 때도 동리의 사면이 모두 악인과 기녀의 집이었다. 숭 례문 밖의 민보(敏甫)·여회(如晦)의 두 집 종년이 모두 솜 씨가 뛰어났는데 내가 일찍이 지나다가 들어가서 들었다. 또 대갓집 옆에 홍인산(洪仁山)·안좌윤(安左尹)의 두 큰 집이 있는데, 또한 비복(婢僕)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서 그 소리가 청아하고 밤이 깊도록 그치지 아니했다. 매양 누워 서 이것을 듣는 것이 또한 즐거움이었다. 내가 일찍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빈한한 선비가 부지 런히 독서하지만 명성을 차지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많거 늘, 나는 나이가 어려서 급제해 벼슬이 육경(六卿)에 이르 고, 밤낮으로 노래 부르는 가운데 있으니 어찌 홀로 태평의 즐거움을 누림이 이 같을 수 있겠는가” 했다. 얼마 안 가서 성종께서 돌아가셨다. 내가 예관으로서 친 히 염습을 받들어 통곡하면서 거적자리에서 잤고, 또 임금 의 관을 모시고 산릉(山陵)으로 가니, 그사이 궁인의 휘장

166) 관습취재(慣習取才): 조선 시대에 관습도감(慣習都監)에서 재주 를 시험해서 악인을 뽑던 일이다.


과 백관의 뜰에서 곡성이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때 비 통한 것을 당해 머리가 희고 늙은 지경에 또 이와 같은 변을 만난 것이다. 대개 즐거움이 지극하면 괴로움이 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2. 34 이육의 방달 나는 어렸을 때 이육(李陸)과 더불어 서로 친했다. 빈집에 살면서 독서를 했는데, 이웃 친구인 조회(趙恢)의 집과 서 로 몇 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 집에 능금나무가 있었는데 하루는 이육이 내게 말하기를, “졸다가 병을 얻는 것은 조회 의 집에 가서 능금을 먹는 것만 못하다” 했다. 이에 두 사람 이 함께 가 보니 능금이 나무에 가득해 찬란하게 붉었으되 문이 닫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주인을 불렀으나 또한 대답 이 없었다. 젊은 노비들은 문 안에서 술 마시고 웃으면서 떠 들썩한 데다가 소낙비가 한 줄기 쏟아졌다. 문 앞에는 큰 말 이 홰나무에 매여 있었고, 작은 말이 또한 서너 마리 있을 뿐 한 사람도 없었다. 이육이 말하기를, “주인이 손님을 따돌리 기를 이같이 심하게 하니 이 말을 훔쳐 가는 것만 같지 못하 다” 하므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한 마리씩 타 고 시냇가로 내달아 어정거리면서 독서하는 곳에 와서 두 말을 창고 속에 매어 두었다. 이육이 말하기를, “잡아먹고


싶다”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어찌 이런 도리가 있겠느냐. 이러면 도적과 다름없다” 했다. 이육이 말하기를, “조회가 비록 이 일을 알지라도 관청에 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고 는, 드디어 절굿공이를 들고 말 머리를 치려고 했다. 내가 붙잡고 이를 제지했다. 이튿날 조회가 왔는데 눈이 퀭하고 얼굴이 초췌했다. 이 육이, “자네는 어찌 편치 않은 기색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조회가 말하기를, “어제 처고모가 김포(金浦)의 시골집으로 돌아가려 해 말을 문밖에 매어 두었는데, 도적이 말을 훔쳐 갔다. 온 집안이 급박히 사람을 나누어 찾고 있다. 나도 고 양(高陽)과 교하(交河) 등지를 순력했으나 지금까지 찾지 못해 이 때문에 근심에 싸여 있다” 했다. 조금 있으니 말이 창고 속에서 울었다. 이육이 웃으므로 조회가 가서 보니 곧 그 말이었다. 조회는 한편 노하고 또 기뻐하면서 꾸짖기를 마지아니했다. 이때 모든 사람이 크게 웃었다.


5. 1 세 사람의 지혜 겨루기 옛날에 청주인(靑州人), 죽림호(竹林胡), 동경귀(東京鬼) 등 세 사람이 있었는데, 함께 말 한 마리를 샀다. 청주인은 천성이 민첩해 먼저 허리를 사고, 죽림호는 머리를, 동경귀 는 꼬리를 샀다. 청주인이 의논하기를, “허리를 산 사람이 마땅히 타야 한다” 하고, 말을 달려서 마음대로 갔다. 죽림 호는 먹일 풀을 가지고 말의 머리를 끌고, 동경귀는 빗자루 를 가지고 말똥을 쓸면서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괴로움을 참지 못해 서로 말하기를, “이제부터 는 높고 먼 곳에서 놀았던 사람이 말을 타기로 하자” 했다. 죽림호는 “내가 전에 하늘 위에 이른 일이 있다” 하니, 동경 귀가 “나는 네가 갔던 하늘 위의 그 위에 갔던 일이 있다” 했 다. 청주인은 “네 손이 닿는 곳에 무슨 물건이 없더냐? 긴 허 리뼈가 없던가?” 했다. 동경귀가 “있었다” 하니, 청주인이 “그 긴 허리뼈는 바로 내 다리였다. 내 다리를 만지고 왔으 니 반드시 내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 했다. 두 사람이 다시 는 상대하지 못하고 오래도록 청주인의 하인이 되었다.

5. 2 맹인들의 비둘기 소동 옛날에 어떤 사람이 집비둘기를 남몰래 가지고 시골로 내려


가다가 어떤 집에서 숙박하고 새벽에 나왔다. 그 집에서는 손님이 가지고 온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시골에 이르러서 집비둘기는 다시 서울로 날아갔는데, 가다가는 반드시 전에 묵었던 집에 들러서 빙빙 돌고 나왔다. 그 집에서는 비둘기 를 보고 모두 놀라 경사(經師)279)에게 묻기를 “비둘기도 참 새도 아닌 것이 방울 소리처럼 울고, 집을 세 번 돌다가 가는 데, 이 무슨 상서로운 징조입니까?” 했다. 경사가 말하기를, “반드시 큰 화가 있을 것이다. 내가 가서 빌어서 물리쳐 주 겠다” 했다. 이튿날 경사를 불러 집으로 오게 했다. 그가 말하기를 “반드시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하라. 만약 그렇게 하지 아니 하면 화가 도리어 클 것이다. 내가 시험 삼아 말하겠으니 당 신들은 듣고 그대로 따라 하겠는가?” 했다. 마침내 큰 소리 로 외치기를 “명미(命米)280)를 내놔라” 하니 모두 “명미를 내놔라” 했다. 또 경사가 “명포(命布)를 내놔라” 하니 모두 들 “명포를 내놔라” 했다. 경사가 또 “아니 어째서 내가 말하 는 대로만 하는가?” 하니 모두들 “아니 어째서 내가 말하는 대로만 하는가?” 했다. 경사가 그만 화가 나서 나가다가 머 리를 문설주에 부딪쳤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쫓아 나오며 다투어 머리를 문설주에 부딪쳤다. 사다리를 놓고 부딪치

279) 경사(經師): 독경(讀經)을 하며 점복을 하는 소경을 말한다. 280) 명미(命米): 독경하는 데 폐백으로 놓는 쌀을 말한다.


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경사가 문밖으로 나오다가 마침 진 흙처럼 미끄러운 쇠똥이 있어서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니, 사람들이 모두 미끄러져 넘어졌다. 쇠똥이 없어지니 어떤 이는 쇠똥을 더 갖다 놓고 넘어지기도 했다. 경사가 급해서 동과(冬瓜) 덩굴 밑으로 도망쳐 들어가니, 사람들이 또 따 라 들어가서 산처럼 겹겹이 되었다. 어린이들은 미처 들어 가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아빠, 엄마 나는 어디로 들어가 요?” 했다. 부모들이 대답하기를, “동과 덩굴로 들어올 수 없거든 남쪽 기슭에 있는 칡덩굴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 을 것이다” 했다.

5. 3 어리석은 형과 영리한 동생 옛날에 두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어리석고, 동생은 영리했 다. 아버지 제삿날이 되어 재(齋)를 올리려 했으나 집이 가 난해 아무것도 없었다. 형제가 밤중에 몰래 이웃집 벽을 뚫 고 들어갔는데 마침 늙은 주인이 순찰하러 왔다. 형제가 숨 을 죽이고 섬돌 밑에 엎드려 있는데 늙은이가 마침 섬돌에 다 오줌을 누었다. 형이 동생에게, “따뜻한 비가 내 등을 적 시니 웬일이냐?” 했다. 결국 늙은이에게 잡혔다. 늙은이가 묻기를, “너희들에게 무슨 벌을 줄까?” 했다. 동생은 “썩은 새끼로 묶으시고 겨릅대로 치시기를 원합니


다” 했다. 형은 “칡 끈으로 묶고 물푸레나무로 치십시오” 했 다. 늙은이가 그들의 말대로 벌을 주고 난 뒤에 “어디에 쓰 려고 도둑질하려 했느냐?” 하고 물었다. 동생이 “제삿날에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려고 그랬습니다” 했다. 늙은이가 불 쌍히 여겨 곡식을 주면서 마음대로 가져가게 하니 동생은 팥 한 섬을 얻어 힘을 다해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형은 팥 몇 알을 얻어서 새끼줄에 끼워 끌면서 “야허, 야허” 하면 서 돌아왔다. 이튿날 동생이 팥죽을 끓이면서 형을 시켜 스님을 청해 재(齋)를 올리게 했다. 형이 말하기를, “스님이란 어떻게 생 긴 물건이냐?” 했다. 동생이 “산중에 들어가서 검은 옷을 입 은 사람을 보면 청해 오시오” 했다. 형이 가다가 나무 끝에 까마귀가 있는 것을 보고, “선사(禪師)님, 저희 집에 오셔서 재를 올려 주소서” 하니 까마귀는 울면서 날아갔다. 형이 돌 아와서 “스님을 청했더니 후려치고 가 버리더라” 했다. 동 생이 “그것은 까마귀요 스님이 아니니, 다시 가서 누런 옷을 입었거든 청해 오시오” 했다. 형이 다시 산중에 들어가서 나 무 끝에 꾀꼬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선사님, 저희 집에 오셔서 재를 올려 주소서” 하니 꾀꼬리도 울면서 날아가 버 렸다. 형이 돌아와서, “스님을 청했더니 예쁜 모습으로 물끄 러미 보면서 가더라” 했다. 동생이 “그것은 꾀꼬리요 스님 이 아니니, 내가 가서 스님을 청해 오리다. 형님은 여기 계 시다가 만약 솥 안의 죽이 넘치거든 구기로 떠서 오목한 그


릇에 담아 놓으시오” 했다. 형은 처마 물이 떨어져서 움푹 팬 섬돌을 보고 죽을 그 속에 모두 부었다. 동생이 스님을 청해 돌아오니 한 솥의 죽이 모두 없어졌다.

5. 4 상좌가 사승(師僧)을 속임 상좌(上座)가 사승(師僧)을 속이는 것은 옛날부터 흔히 있 는 일이었다. 옛날에 어떤 상좌가 있었는데 그의 사승에게 말하기를, “까치가 은수저를 입에 물고 문 앞에 있는 가시나 무에 올라앉아 있습니다” 했다. 스님이 이를 믿고 나무를 타 고 올라가니 상좌가 크게 소리 질러 말하기를 “우리 스승이 까치 새끼를 잡아 구워 먹으려 한다” 했다. 스님이 어쩔 줄 을 몰라 내려오다가 가시에 찔려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 스 님은 성내어 상좌의 종아리를 쳤다. 상좌가 밤중에 스님이 드나드는 문 위에 큰솥을 매달아 놓고 큰 소리로 “불이야” 외쳤다. 스님이 놀라서 급히 일어 나 뛰어나오다가 솥에 머리를 부딪쳐서 까무러쳐 땅에 엎어 졌다. 오래된 뒤에 나와 보니 불은 없었다. 스님이 노해 꾸 짖으니 상좌는 “먼 산에 불이 났기에 알린 것뿐입니다” 했 다. 스님이 말하기를 “이제부터는 다만 가까운 데 불만 알리 고, 먼 데서 난 불은 알리지 말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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