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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북쪽을 바라보며 금이 침략해 중원을 빼앗겼다. 평생 변방과 강남에서 고향을 생각하며 북벌의 과업을 잊지 않았다. 우국의 정으로 사를 썼고 애국사파의 시조가 되었다.

<고령독립도(高嶺獨立圖)>, 고기패 그림, 청대 작품


인텔리겐치아 2425호, 2015년 1월 29일 발행

이치수가 옮긴 ≪신기질 사선≫ 淸平樂 -獨宿博山王氏菴

遶牀飢鼠. 蝙蝠翻燈舞. 屋上松風吹急雨. 破紙窗間自語. 平生塞北江南. 歸來華髮蒼顔. 布被秋宵夢覺, 眼前萬里江山.


청평악 -홀로 박산의 왕씨 초가집에 묵으면서

침상을 맴도는 굶주린 쥐들 박쥐는 날아다니며 등불 앞에서 춤춘다. 지붕 위 소나무 사이로 바람은 급한 빗발 뿌리고 찢어진 창호지는 창문에서 홀로 중얼거 린다. 평생토록 북쪽 변방과 강남 땅 돌아다니 다가 돌아오니 흰머리 생기고 얼굴엔 노쇠한 빛 가득하네. 베 이불 덮고 가을밤 꿈에서 깨어나니 눈앞에 조국의 만 리 강산 펼쳐져 있네. -«신기질 사선(辛棄疾詞選)», 이치수 옮김, 84~85쪽


청평악이 무슨 뜻인가? 곡조의 이름일 뿐 별 뜻은 없다. 사를 노래할 때 사용하는 곡조 이름을 사패라 하며 사 내 용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 같은 사패로 전혀 다른 사를 여러 편 지을 수도 있다. 이 책에 도 <청평악> 사패로 지은 사가 세 편이나 된다. 제목은 없나? 사패 뒤에 부제를 달기도 하고 서문으로 사 를 짓게 된 경위나 중심 내용을 밝히기도 한 다. 같은 사패의 작품을 구분할 때는 사의 첫 구절을 함께 밝힌다.


사란 무엇인가? 곡조에 맞춰 지어 부르는 ‘가사(歌辭)’다. 시 (詩)와 함께 중국 운문 문학을 대표하는 장 르다. 언제부터 나타났나? 당대에 시작해 송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수 대(隋代) 이래로 중국에 외국 음악이 대량으 로 전해지면서 새로운 음악인 연악(燕樂)이 성행했다. 이 새로운 곡조에 사람들이 가사 를 지어 불렀다. 누가 지었나? 처음에는 민간에서 유행했다. 점차 문인들 이 관심을 가지면서 새로운 문학 장르로 발


전했다. 시와는 무엇이 다른가? 제목을 달지 않고 대신 사패를 쓴다. 악곡 규 정에 따라 단락이 나뉘기도 한다. 각 구의 글 자 수가 들쭉날쭉해 일정하지 않으며 평측 규정이 복잡하고 엄격하다. 신기질은 누구인가? 송사의 대표 작가다. 1140년에 태어나 1207 년 사망했다. 소식과 함께 호방사(豪放詞)의 대가로 불린다. 호방사가 무엇인가? 사는 풍격에 따라 호방사와 완약사(婉約詞)


로 나눈다. 호방사는 남성적이고 웅건하며 완약사는 여성적이고 섬세하다. 신기질의 사는 호방사 중에서도 특히 비장함이 두드 러진다. 신기질의 비장미는 어디서 비롯한 것인가? 우국(憂國)의 정(情) 때문이다. 그의 사는 애 국사(愛國詞), 또는 영웅사(英雄詞)로 불린 다. 북벌에 대한 염원과 조국의 현실에 대한 비탄을 드러낸 작품이 많다. 이 때문에 그를 ‘애국사파’의 시조로 꼽기도 한다. 조국의 현실이란? 당시 송나라는 금나라의 침략으로 중원 땅 을 빼앗기고 강남으로 쫓겨 왔다. 신기질은


금나라가 통치한 산동성에서 태어나 저항 활동을 하다 23세에 남송으로 내려왔다. 인 용시에서 “평생토록 북쪽 변방과 강남 땅 돌 아다”녔다고 한 것처럼 죽을 때까지 북벌을 위해 문무 양면에서 노력했다. 그는 애국사만 쓴 것인가? 다양한 내용과 제재를 다뤘다. 산수 경치를 묘사하고 농촌 생활과 풍경을 노래했다. 전 통 주제인 남녀 간의 정을 읊은 것도 있고, 다른 사람의 작품에 창화(唱和)하고 다른 사 람에게 수증(酬贈)한 것도 있다. 꽃과 달, 바 위 등 여러 사물을 노래한 작품도 있다.


표현의 특징은? 산문화 작법을 사용해 표현 수법이 풍부하 고 내용과 제재가 폭넓어졌다. 산문화 작법이란? 산문으로 쓰던 내용을 사로 표현하고, 산문 의 장법(章法), 구식(句式), 어휘, 표현 수법 을 그대로 사에서 사용했다. 문답체를 사용 하기도 하고 경서에 나오는 말을 인용해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굴원(屈原)의 <천문(天問)>체를 본떠 쓴 사도 있다. 작품 수는 얼마나 되나? 현전하는 송사 2만여 수 중 629수가 신기질 의 작품이다. 그가 누구보다도 사를 좋아하


고 여기에 전념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 외 에도 시 145수, 산문 17편이 전한다. 후인에 미친 영향은? 남송의 육유(陸游)와 유과(劉過), 유극장(劉 克莊) 등이 그의 뒤를 이어 애국사파를 이루 었다. 진유숭(陳維崧, 1625~1682)을 대표로 하는 청대의 양선파(陽羨派)는 신기질의 사 를 학습의 전범(典範)으로 삼으며 그의 사를 계승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치수다.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다.


평생 북쪽을 바라보며 금이 침략해 중원을 빼앗겼다. 평생 변방과 강남에서 고향을 생각하며 북벌의 과업을 잊지 않았다. 우국의 정으로 사를 썼고 애국사파의 시조가 되었다.

<고령독립도(高嶺獨立圖)>, 고기패 그림, 청대 작품


신기질 사선 신기질 지음 이치수 옮김 2014 년 12월 30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212쪽, 18,000원


작품 속으로

辛棄疾詞選 신기질 사선


차례

염노교 念奴嬌(我來弔古)··············3 청옥안 靑玉案(東風夜放花千樹) ··········9 목란화만 木蘭花慢(老來情味減) ··········13 태상인 太常引(一輪秋影轉金波) ··········17 수룡음 水龍吟(楚天千里淸秋) ···········20 보살만 菩薩蠻(鬱孤臺下淸江水) ··········25 염노교 念奴嬌(野棠花落) ·············28

자고천 鷓鴣天(撲面征塵去路遙) ··········32

자고천 鷓鴣天(唱徹陽關淚未乾) ··········35 만강홍 滿江紅(過眼溪山) ·············38 모어아 摸魚兒(更能消幾番風雨) ··········42 완랑귀 阮郞歸(山前燈火欲黃昏) ··········47 심원춘 沁園春(三徑初成) ·············50 축영대근 祝英臺近(寶釵分) ············55 수조가두 水調歌頭(帶湖吾甚愛) ··········58 답사행 踏莎行(進退存亡) ·············62 수룡음 水龍吟(渡江天馬南來) ···········67


천년조 千年調(巵酒向人時) ············73 추노아 醜奴兒(少年不識愁滋味) ··········77 추노아근 醜奴兒近(千峰雲起) ···········80

청평악 淸平樂(遶牀飢鼠) ·············84 생사자 生査子(溪邊照影行) ············87

자고천 鷓鴣天(春入平原薺菜花) ··········89 자고천 鷓鴣天(枕簟溪堂冷欲秋) ··········92 청평악 淸平樂(茅簷低小) ·············95 청평악 淸平樂(連雲松竹) ·············97 자고천 鷓鴣天(陌上柔桑破嫩芽) ·········100 하신랑 賀新郞(細把君詩說) ···········103 파진자 破陣子(醉裏挑燈看劍) ··········108 작교선 鵲橋仙(松岡避暑) ············112 답사행 踏莎行(夜月樓臺) ············115 염노교 念奴嬌(倘來軒冕) ············118 생사자 生査子(靑山招不來) ···········123 서강월 西江月(明月別枝驚鵲) ··········126 최고루 最高樓(吾衰矣) ·············129 심원춘 沁園春(疊嶂西馳) ············133 심원춘 沁園春(杯汝來前) ············137 옥루춘 玉樓春(何人半夜推山去) ·········141


목란화만 木蘭花慢(可憐今夕月) ·········143 서강월 西江月(醉裏且貪歡笑) ··········147 하신랑 賀新郞(路入門前柳) ···········150 감황은 感皇恩(案上數編書) ···········155 하신랑 賀新郞(聽我三章約) ···········158

자고천 鷓鴣天(壯歲旌旗擁萬夫) ·········163 복산자 卜算子(千古李將軍) ···········166 분접아 粉蝶兒(昨日春如) ············169 하신랑 賀新郞(甚矣吾衰矣) ···········172 수룡음 水龍吟(老來曾識淵明) ··········176 남향자 南鄕子(何處望神州) ···········180 영우락 永遇樂(千古江山) ············183

해설 ······················189 지은이에 대해··················200 옮긴이에 대해··················202


염노교1)

−건강2)의 상심정3)에 올라 사치도4) 유수5)에게 드리며

1) 염노교(念奴嬌): 사패(詞牌)의 하나. 사(詞)는 본래 음악에 맞추어 노래하는 가사이며, 따라서 각 사는 모두 의거하는 곡조가 따로 있 다. 음악적 규정이 각기 다른 이런 사의 곡조, 즉 사조(詞調)의 명칭 이 바로 사패다. 사조마다 구(句)의 수, 글자수, 평측(平仄) 등의 규 정이 다르고, 사패의 명칭도 각기 따로 있다. ‘염노교’는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각지를 순행할 때 그를 수행했던 가녀(歌女) 염노(念 奴)의 이름을 따서 사패명으로 삼았다고 전해지지만, 후대 사람들이

짓는 사의 내용은 이미 사패와 관련이 없으며, 같은 사패를 사용해 얼 마든지 다른 내용의 사를 몇 편이고 지을 수 있다. 그 대신 사를 짓는 작가들은 사패에 이어 부제(副題)나 서문을 달아 이 사를 짓게 된 배 경이나 중심 내용 등을 밝히기도 한다. 사패는 같더라도 내용이 다른 작품들을 서로 구분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패 뒤에 사의 첫 구절을 함께 적는다. 2) 건강(建康): 지금의 중국 장쑤성(江蘇省) 난징(南京). 3) 상심정(賞心亭): 건강(建康)의 하수문(下水門) 위에 있으며 아래로 진회하(秦淮河)가 흐른다. 4) 사치도(史致道): 사정지(史正志). ‘치도’는 그의 자(字)다. 소흥(紹 興) 21년(1151) 진사가 된 뒤, 추밀원편수(樞密院編修), 이부시랑

(吏部侍郞), 병부시랑(兵部侍郞) 등을 거쳐, 건도(乾道) 3년(1167) 건강지부(建康知府) 겸 강남동로안무사(江南東路安撫使), 행궁유 수(行宮留守)가 되어 건강에 부임했다. 5) 유수(留守): 행궁유수(行宮留守)를 가리킨다. 남송 초, 고종(高宗) 이 건강에 한 번 머문 적이 있는데, 뒤에 수도를 임안(臨安)으로 옮기


내 옛날 유적지 찾아와 높은 누각에 오르니 공연한 시름만 산더미 같네. 호랑이 웅크리고 용이 서렸던 곳 어디인가? 단지 흥망의 자취만 눈에 가득하네. 버드나무 밖에는 지는 해 물가엔 돌아가는 새 언덕에는 바람에 나부끼는 높은 나무들. 일엽편주 서쪽으로 가는데 누가 부나 한 가닥 피리 소리 처량하네.

사안6)의 옛 풍류 생각하니

면서 건강을 ‘행궁’이라 부르며 이곳을 지키는 관리를 두었다. 6) 사안(謝安, 320∼385): 동진(東晉)의 저명한 정치가. 아직 벼슬길에 나서기 전에 회계(會稽)에서 은거하면서 왕희지(王羲之), 허순(許 詢), 지둔(支遁) 등의 명사와 자주 교유했으며, 낚시와 사냥을 즐기

고 글을 짓고 읊조리기를 좋아했다. 산수 유람을 즐기며 매번 기녀를 대동했고, 음악을 좋아했다. 뒤에 효무제(孝武帝) 때 재상이 되어,

전진(前秦) 부견(苻堅)의 대군이 남침하자, 동생 사석(謝石)과 조카


동산7)에 해 저물어 갈 때 슬픈 쟁 소리에 눈물 흘렸다지.8) 큰 공로와 명성은 모두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긴긴 날을 단지 바둑으로 보냈네. 보배 거울은 찾기 힘들고9) 푸른 하늘엔 구름 저물어 가는데 사현(謝玄)을 보내 비수(淝水)에서 크게 이겼다. 원문에는 그의 자 (字)인 ‘안석(安石)’으로 표기했다. 7) 동산(東山): 동진의 사안이 벼슬하기 전에 은거했던 곳. 지금의 중국 저장성(浙江省) 사오싱시(紹興市) 상위구(上虞區) 서남쪽에 있다. 8) 슬픈 쟁 소리에 눈물 흘렸다지(淚落哀箏曲): 동진의 효무제 말년에 사안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의 시기를 받았다. 한번은 효무제 가 악기를 잘 다루는 환이(桓伊)를 연회에 불렀는데 마침 사안도 그 자리에 있었다. 환이가 쟁(箏)을 타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 불렀다. “임금 노릇 쉽지 않지만 신하 노릇이야말로 진실로 어렵다네. 충성과 신의를 다하는 일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어도 의심을 받아 걱정스럽 네.” 사안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9) 보배 거울은 찾기 힘들고(寶鏡難尋): 당(唐)나라 이준(李濬)의 ≪송 창잡록(松窗雜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떤 어부 가 진회하(秦淮河)에서 옛날 구리거울[銅鏡]을 하나 주웠는데 사람 의 폐부(肺腑)를 비추었다. 뒤에 물속에 빠트려서 두루 찾았으나 찾 지 못했다. ‘보경난심(寶鏡難尋)’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 어 렵다는 것을 비유한다. 또는 ‘보경(寶鏡)’을 달을 비유하는 것으로 보 기도 한다.


누굴까 한잔 술을 내게 권할 이는? 강가에서 바람이 화를 내고 있으니 내일 아침에는 파도가 집을 뒤엎겠네.

念奴嬌 −登建康賞心亭, 呈史留守致道

我來弔古, 上危樓,

贏得閒愁千斛10). 虎踞龍蟠何處是, 只有興亡滿目. 柳外斜陽, 水邊歸鳥,

隴上吹喬木. 片帆西去, 一聲誰噴霜竹11). 却憶安石風流,

10) 곡(斛): 10말[十斗]의 용량. ‘천곡(千斛)’은 매우 많다는 의미다. 11) 분상죽(噴霜竹): 피리를 불다.


東山歲晩, 淚落哀箏曲. 兒輩功名都付與, 長日惟消棋局. 寶鏡難尋, 碧雲將暮, 誰勸杯中綠12). 江頭風怒, 朝來波浪翻屋.

해제

해가 뉘엿뉘엿 지는 어느 저녁, 작자는 건강(建康)의 상심정(賞 心亭)에 올라 도도하게 흘러가는 장강을 바라보면서 옛날을 생

각하며 시름에 잠긴다. 이곳 건강은 지리적 형세가 뛰어나 옛날 부터 여러 왕조들이 다투어서 세워진 바 있건만 지금은 흥망의 자취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다. 여기에는 쇠미한 남송의 국세(國 勢)에 대한 근심이 담겨 있다. 또 큰 공을 세우고도 도리어 시기

를 받으며 긴긴 날을 단지 바둑으로 보낸 옛날 동진(東晉) 사안 (謝安)의 경우를 예로 들며, 작자 자신도 금(金)나라를 몰아내 고 중원의 잃어버린 옛 땅을 되찾고자 하나 이런 기회를 찾기 어

12) 배중록(杯中綠): 술을 가리킨다.


려워 혼자 괴로워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마음을 작품 마 지막에서는 강에 성난 바람이 불어와 파도를 크게 일으켜 집을 덮쳐 버릴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형상적으로 나타내었다.


청옥안

−원소절13) 밤

봄바람 불어 이 밤 수많은 나무마다 꽃이 활짝 피었네. 불꽃들 바람에 불려 떨어지네 유성이 비처럼 내리듯. 진귀한 말 화려한 수레 오가는 길에 향기 가득하네. 퉁소 소리 울려 퍼지고 백옥 달빛 옮겨 가며 밤새도록 물고기와 용 오색등이 춤춘다.

여인들은 머리에 아름다운 장식물 치장하고 웃고 떠들며 아리따운 자태에 그윽한 향기 풍긴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 사람을 백 번 천 번 찾다가 문득 머리를 돌려 보니 그 사람은 바로

13) 원소절(元宵節): 음력 정월 대보름(15일)을 ‘상원절(上元節)’, 또는 ‘원소절’이라 부른다. 원소절에 등불을 다는 것은 당(唐)나라 개원 (開元) 연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등불 드문드문한 곳에 서 있네.

靑玉案 −元夕

東風夜放花千樹. 更吹落, 星如雨. 寶馬雕車香滿路. 鳳簫聲動, 玉壺14)光轉, 一夜魚龍舞. 蛾兒雪柳黃金縷15), 笑語盈盈16)暗香去.

14) 옥호(玉壺): 옥으로 만든 병. 달을 비유한다. 또는 원소절의 등을 가 리킨다고도 본다. 15) 아아(蛾兒)·설류(雪柳)·황금루(黃金縷): 옛날 부녀자들이 원소 절에 달던 각종 머리 장식품. 여기서는 성장(盛裝)한 부녀자를 가 리킨다. 16) 영영(盈盈): 여자의 자태가 날렵하고 아름답다. 걸음걸이가 사뿐사 뿐하다.


衆裏尋他千百度. 驀然17)回首, 那人却在, 燈火闌珊18)處.

해제

이 사의 상편(上片)에서는 원소절 밤의 떠들썩한 정경을 생동 적으로 묘사했다. 이날에는 온 거리에 갖가지 화려한 등(燈)을 내거는 풍속이 있는데, 등불들은 마치 봄바람이 불어 수많은 나 무마다 꽃이 활짝 핀 듯하고, 또 등불의 불꽃들은 하늘에서 유성 (流星)처럼 떨어진다. 퉁소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백옥 같은 달은 빛을 내뿜으며 움직여 시간은 흘러가는데, 여러 사람 들이 공연하는 물고기와 용의 오색등(五色燈) 춤이 밤새도록 펼쳐진다. 그러나 하편(下片)에 오면 이런 분위기 속에서 머리 에 온갖 화려한 장식을 하고 웃고 떠들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 내며 지나가는 여인들과 완전히 대비되는 존재가 한 사람 등장 한다. 이 사람은 이날 밤 모든 사람들이 떠들썩한 분위기에 빠 져 즐기고 있을 때, 등불이 드문드문한 곳에 홀로 쓸쓸하게 서 있다. 백 번 천 번을 찾아도 찾지 못했던 사람을 문득 고개를 돌

17) 맥연(驀然): 갑자기. 18) 난산(闌珊): 드문드문하다.


렸을 때 보게 되었으니 그 반갑고 기쁜 마음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추노아

−박산129)으로 가는 길에 벽에 적다

젊을 때는 아직까지 근심이 뭔지 모르면서 높은 누각 오르기를 즐겼네. 높은 누각 오르기를 즐기며 새로운 사 짓기 위해 억지로 근심을 말했네.

그런데 이제 근심을 다 알게 되니 말하려다 그만두네. 말하려다 그만두고는 도리어 말한다네, “날씨도 서늘하고 좋은 가을이로다”.

129) 박산(博山): 지금의 중국 장시성(江西省) 광펑현(廣豐縣) 서남쪽 으로 30여 리 되는 곳에 있다.


醜奴兒 −書博山道中壁

少年不識愁滋味, 愛上層樓130). 愛上層樓, 爲賦新詞强說愁. 而今識盡愁滋味, 欲說還休. 欲說還休, 却道天涼好個秋.

해제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늘 이런저런 일로 인해 근심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런데 젊었을 때는 아직 이 근심이란 것이 무엇인지 제 대로 모를 수가 있지만, 막상 온갖 근심 걱정을 다 겪고 나면 그 것에 대해 말하려 해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이 사 는 이런 내용을 젊었을 때와 나이가 많이 든 지금, 즉 과거와 현 재라는 두 시점을 서로 대비하면서 근심과 관련한 입장과 태도

130) 층루(層樓): 높은 누각.


를 극명하게 잘 보여 주고 있다.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을 평이 하고 설득력 있게 서술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사를 애송하 고 있다.


파진자

−진동보173)를 위해 장쾌한 사를 지어 보내다

술 취해 등불 돋우고 칼을 보았는데 꿈속에 나팔 소리 울려 퍼지는 군영으로 돌아갔네. 불고기를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악기들은 변방의 노래 연주한다. 가을날 전쟁터에서 군대를 점검했네.

말은 적로174)처럼 나는 듯 빨리 달리고 활은 천둥 같은 소리 내어 놀라게 만든다. 임금님의 천하 통일 일 다 마치고 살아서 죽은 뒤에 이름을 떨치려 했네. 안타깝도다 흰머리만 가득하네.

173) 진동보(陳同甫): 진량(陳亮, 1143∼1194). ‘동보(同甫)’는 그의 자다. 신기질과 마찬가지로 항금(抗金)을 주장했다. 174) 적로(的盧): 삼국 시대 유비(劉備)가 타던 말. 한번은 유비가 다른 사람들에게 쫓길 때 적로가 몇 미터나 되는 하천을 뛰어넘어 위험 한 지경을 벗어났다고 한다.


破陣子 −爲陳同甫賦壯詞以寄之

醉裏挑燈175)看劍, 夢回吹角176)連營. 八百里177)分麾下178)炙179),

五十絃180)翻181)塞外聲182). 沙場秋點兵.

175) 도등(挑燈): 등불을 돋우어 더욱 밝게 하다. 176) 취각(吹角): 군대에서 호각(號角)을 불다. 호각은 옛날 군대에서 명령을 전하던 관악기로, 후세에는 나팔을 가리킨다. 177) 팔백리(八百里): 소[牛]를 가리킨다. 옛날에 팔백리박(八百里駁) 이란 소가 있었다고 한다. 178) 휘하(麾下): 부하 장수들을 가리킨다. 179) 적(炙): 구운 고기. 180) 오십현(五十絃): 고대의 악기 슬(瑟). 여기서는 군대에서 합주(合 奏)하는 각종 악기를 가리킨다.

181) 번(翻): 연주하다.

182) 새외성(塞外声): 변방 요새의 정경을 노래한 악곡.


馬作的盧飛快, 弓如霹靂183)弦驚. 了却184)君王天下事,

贏得185)生前身後名. 可憐白髮生.

해제

작자는 젊어서 금(金)나라에 함락된 지역에서 항금(抗金) 활동 을 하다가 남쪽으로 내려와 남송(南宋)에 온 이후에도 늘 금나 라를 몰아내고 중원(中原) 땅을 수복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 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 사에서도 첫 구에서는 술에 취한 가운데에도 등불을 돋우고 보검을 보면 서 언제나 이 보검을 사용할 기회가 오려나 생각하는 장면을 보 여 준다. 꿈속에서도 이런 생각은 이어져, 이제 상상 속 군대 생 활의 여러 장면들이 펼쳐진다. 하편에서는 실제 전투에 들어가 는데, 임금님을 보필해 잃어버린 땅을 수복해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완성하고자 노력하며, 스스로도 살아 있을 때나 죽은 뒤 에도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웠다는 명성을 얻고자 한다. 여기

183) 벽력(霹靂): 벼락. 천둥. 184) 요각(了却): 마치다. 완성하다. 185) 영득(贏得): 얻다. 획득하다.


까지 이 작품은 부제(副題)에서 이른 바 ‘장쾌한 사’, ‘씩씩한 노 래’를 들려준다. 그러나 맨 마지막 구에 이르면 앞에서 말한 것 과는 전혀 다른 180도의 변화가 생겨나, 웅장하고 장쾌한 장면 에서 비통하고 실망 어린 장면으로 급전직하한다. 이제 흰머리 가 희끗희끗하지만 앞에서 본 바와 같은 장면을 펼칠 기회는 언 제 찾아올지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신기질의 사를 호방파(豪 放派)에 넣는데, 이 사가 바로 그의 대표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신기질의 사는 호방파라 하더라도 실제로 는 비장(悲壯) 침울(沈鬱)하다는 것도 이 작품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심원춘

−술을 끊으려고 해, 술잔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훈계하다

술잔아 너 앞으로 나오너라 이 늙은이 오늘 아침 내 몸을 점검해 보았다. 오랫동안 술 먹고 갈증이 심해 목구멍이 눌어붙은 솥 바닥 같았는데 지금은 잠자는 것 좋아해 코 고는 소리는 우레 치듯 한다. 너 술잔은 말하는구나. “유영227)이야말로 고금에 달관한 사람으로 술 취해 죽으면 그 자리에 파묻으면 그뿐이라 했습니다.” 네가 뜻밖에도 이런 말을 하다니 한탄스럽다 너는 친구에게 정말 무정하구나.

227) 유영(劉伶): 위(魏)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 늘 사슴 수레를 타고 술 한 병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을 시켜 삽을 메고서 뒤따르게 하고는, “내가 죽으면 바로 묻으라”고 말했다.


너는 또 노래와 춤을 매개로 해 우리를 꾀는구나. 생각건대 너는 인간에겐 맹독과 같은 존재. 하물며 원한은 크든 작든 좋아하는 것으로 인해 생겨나고 사물은 좋고 나쁘고 없이 지나치면 재앙이 되는 법이다. 내 너에게 분명히 말하는데 “더 머물지 말고 속히 물러가라 내 힘은 아직 너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술잔이 두 번 절하고 말한다. “가라고 하시면 바로 물러가고 부르시면 반드시 오겠습니다.”

沁園春 −將止酒, 戒酒杯使勿近

杯汝來前, 老子今朝, 點檢形骸.


甚長年抱渴, 咽如焦釜, 於今喜睡, 氣似犇228)雷. 汝說劉伶, 古今達者, 醉後何妨死便埋. 渾如此, 歎汝於知已, 眞少恩哉. 更憑歌舞爲媒. 算合作人間鴆毒229)猜. 况怨無小大, 生於所愛, 物無美惡, 過則爲災. 與汝成言, 勿留亟退, 吾力猶能肆230)汝杯. 杯再拜,

228) 분(犇): 주 122 참조.

229) 짐독(鴆毒): 짐새의 깃에 있다는 맹렬(猛烈)한 독. 230) 사(肆): 마음대로 하다.


道麾之即去, 招亦須來.

해제

이 사는 금주(禁酒)를 내용으로 하는 것인데, 작자와 술잔 사이 에 말을 주고받는 대화(對話) 형식, 그리고 산문으로 쓸 법한 내 용을 사로 나타내는 표현법 등은 일찍이 보기 드문 것이다. 전 편을 다 읽고 나면 독자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가득 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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