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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가 학생으로 돌아왔다 해발 700미터 고원에 지쿠마 강이 흐른다. 피폐한 영혼은 봄을 기다린다. 겨울은 혹독했다. 자연과 싸우고 자연에 기대는 농부의 삶을 만난다. 눈과 귀의 허위와 편견 걷어 내고 바르게 보는 법을 얻었다.

고모로 시절의 도손.


인텔리겐치아 2430호, 2015년 2월 2일 발행

김남경이 옮긴 ≪지쿠마 강 스케치≫ 자네는 우유가 언 것을 본 적이 없겠지. 초록 빛에 우유 향도 없다. 여기서는 달걀도 언다. 그걸 쪼개면 흰자도 노른자도 사각사각 씹 힐 기세다. 부엌 개수대에 흐르는 물은 모두 꽁꽁 언다. 파뿌리, 차 찌꺼기까지 얼어붙는 다. 불 켜진 창으로 약한 빛이 새어 나올 무 렵, 뾰족한 식칼인지 뭔지로 개수대의 얼음 을 꽝꽝 두들겨 깨는 광경은 따뜻한 지역에 서는 볼 수 없는 그림이다. 밤을 넘긴 홈통의


물은 아침이 되면 반은 얼음이다. 그걸 햇볕 에 쬐고 얼음을 두들겨 떨어뜨린 후 물을 퍼 담는 식이다. 단무지도 쓰케모노도 얼어서 씹으면 서걱서걱 소리가 난다. 어떤 때는 쓰 케모노까지 더운 물로 헹구지 않으면 안 된 다. 고용인의 손을 보니 거칠고 꺼뭇꺼뭇하 며 피부는 찢어져 군데군데 붉은 피가 나고 물을 퍼 올릴 때는 장갑 끼고 두건을 쓰고 한 다. 마루방에 걸레질한 자리가 금방 허옇게 얼어 버린 아침이 전혀 낯설지 않다. 밤이 이 슥해지고, 방마다 기둥이 얼어 갈라지는 소 리를 들으며 독서라도 하고 있으면 정말이 지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다. -«지쿠마 강 스케치(千曲川のスケッチ)», 시마자키 도손 지음, 김남경 옮김, 173~174쪽


여기는 어디인가? 고모로 마을이다. 일본 나가노 현이다. 해발 700미터의 고원 지대다. 활화산인 아사마 산 이 있고 지쿠마 강이 흐른다. 인용문은 1월 27일부터 2월 26일까지 절정에 이른 고모로 마을의 겨울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편지인가? 수필 «지쿠마 강 스케치(千曲川のスケッチ)» 의 일부다. 도손이 고모로에 있을 때 습작한 글을 1911년 6월부터 1912년 8월까지 «중학 세계(中學世界)»에 연재했다. 독자층을 고 려해 젊은이들이 읽기 쉽게 수정하면서 은인 요시무라 다다미치(吉村忠道)의 자녀 시게 루(樹) 앞으로 쓰는 형식을 취했다.


무엇을 썼나? 마을 주변의 자연, 사람들의 생활, 행사, 풍 물을 스케치했다. 형식은? 12장 65편이다. 각 편은 독립된 내용이다. 시 간의 흐름에 따라 썼다. 봄에 시작해 봄에 끝 난다. 왜 봄인가? 도손에게 봄은 ‘이상의 봄’, ‘예술의 봄’, ‘인생 의 봄’이다. 인생 고비마다 새 생명이 싹트는 “봄을 기다리며”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 고 이겨 냈다. 그에게 ‘봄’은 위기에서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을 상징한다.


위기란? 이십 대 초반, «새싹집(若菜集)»을 통해 낭 만주의 시인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시인의 사 회적 위치는 매우 낮았고 일본어로 시의 감 정을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경제적으 로도 큰형의 사업 실패로 생활고에 시달렸 다. 정신과 재정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1899년 도쿄를 떠나 고모로 생활을 시 작한다. 그곳에서 ‘봄’을 찾는가? “고모로에 시골 교사로 가서 학생이 되어 돌 아왔다”고 고백한다. 거친 자연에 투쟁과 순 응을 반복하는 농부들의 지혜와 검소한 생 활을 직접 보고 느끼고 배운 7년이었다. 생


활 양식은 물론 문학 형식까지 바뀌었다. 문학 형식의 변화란? 스케치, 사생(寫生)이다. 회화 기법 말인가? 그렇다. 인상파의 기법이다. 수채화가 미야 케 가쓰미(三宅克己)에게 ‘사물을 바르게 보 는 법’으로 사생을 배워서 이를 글에 응용했 다. 사물을 허위와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글로 옮긴다. 어떻게 연습했나? 러스킨의 «근대 화가론»이나 다윈의 «종 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서 자연과학적 관찰을 익혔다. 투르게네프 의 «사냥꾼의 일기»에서 회화를 보는 듯 한 신비한 인상을 받았다. 그의 묘사는 ≪지쿠마 강 스케치≫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계절 변화를 바탕에 깔고 물질의 자연과 감 상의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려 했다. 자 연이나 풍경의 외면 묘사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참모습을 실감나게 스케치했다. 이후 도손은 어떻게 달라지나? «선집(選集)» 상권 서문에 자신의 산문은 ‘이 스케치로부터 출발했다’고 밝혔다. 사생 기법은 그의 언어 표현 지평을 넓혔고 이로


부터 서정시에서 소설로 전향해 «파계», «봄», «신생» 등 자연주의 소설의 대작 을 남겼다. 시마자키 도손은 누구인가? 본명은 시마자키 하루키(島崎春樹)다. 1872 년에 태어나 1943년에 죽었다. 메이지 낭만 주의 시인이고 자연주의 소설가다. 당신은 왜 이 책을 번역했나? 이 수필은 도손이 시에서 산문으로 전환하 는 계기가 된 중요한 작품이다. 그의 정신적 풍토가 되고 문학 방향을 결정지은 고모로 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원시적이고 소박한 삶의 형태를 간직한 산


촌 사람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남경이다. 명지전문대학 일본어과 초빙교 수다.


교사로 가 학생으로 돌아왔다 해발 700미터 고원에 지쿠마 강이 흐른다. 피폐한 영혼은 봄을 기다린다. 겨울은 혹독했다. 자연과 싸우고 자연에 기대는 농부의 삶을 만난다. 눈과 귀의 허위와 편견 걷어 내고 바르게 보는 법을 얻었다.

고모로 시절의 도손.


지쿠마 강 스케치 시마자키 도손 지음 김남경 옮김 2014 년 1월 15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210쪽, 18,000원


작품 속으로

千曲川のスケッチ 지쿠마 강 스케치


그 여섯

가을 수학여행 10월 초, 나는 식물 교사 T 군과 함께 학생들을 데리고 지쿠 마 강 상류로 나갔다. 맑게 갠 가을, 우린 즐거운 여행을 하 고 있었다. 수학여행 일정은 핫카무라가오카(八つが丘)에 서 고슈(甲州)로 내려가 고후(甲府)로 나온 뒤 스와(諏訪) 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이학사와 수채화가 B 군 그리고 다른 동료와 합류해 와다(和田)에서 고모로로 둘러 오는 코스다. 이번 여행은 거의 일주일을 소비했다. 우리는 다테시나, 야 쓰가오카의 긴 산맥을 따라 그 주위를 크게 한 바퀴 빙 돈 것 이다. 지쿠마 강 상류에서 노베야마가하라(野辺山が原) 코스 는 전에 한 번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때는 근처에 사는 양복 점 주인과 동행했다. 이번 여행에서 그전에 경험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을 자네에게 말해 주려고 한다.


고슈 가도 고모로에서 이와무라타(岩村田) 마을로 나왔다. 그곳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고슈 가도는 비교적 평탄하고 광활한 계곡 을 지나야 한다. 노랗게 물들어 가을다운 미나미사쿠(南佐 久) 분령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쿠마 강은 논밭이 많은 골짜

기로 흐른다. 사이카와(犀川) 강으로 합류하기까지 지쿠마 강은 거의 배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채로 내버려 둔 다. 이 한마디로도 자네는 그 강의 기질과 광경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쿠(佐久), 지이사가타의 높은 곳에서 계곡 밑을 내려다본 지쿠마 강만을 자네에게 말했다. 지금 우리가 걸 어가는 곳은 또 다른 운치를 보여 주는 강 유역이다. 우스다 (臼田), 노자와(野沢) 마을을 지나 우리는 하류 가까운 곳 으로 나왔다. 마나가시(馬流)란 곳으로 해안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강의 모습이 급변하며 나타난다. 주변에는 강 위에서 휩쓸 려 내려온 무시무시하게 큰 돌이 묻혀 있다. 그 사이를 흐르 는 지쿠마 강은 큰 강이라기보다 오히려 거대한 계류에 가 깝다. 계류 부근의 찻집엔 고슈야(甲州屋) 간판을 단 곳도


있어 왠지 고슈에 다다른 느낌이 든다. 산을 넘어 깊숙이 들 어온다는 고슈 상인의 왕래도 볼 수 있다. 마나가시 근방에서 학생 T가 우리 일행에 합류했다. T 군의 집은 신사(神社)이며, 가도에서 조금 떨어진 유수한 마쓰하라(松原) 호반에 있다. T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철나무, 갈대, 단풍, 옻나무, 자작나무, 졸참나무들이 우리가 걸어가는 강가에 무성했다. 양쪽 해안에는 미나미 마키(南牧), 기타마키(北牧), 아이기(相木) 등의 마을들이 즐비했다. 강물 근처에 설치된 작은 물레방앗간도 여기저 기에 보인다. 야쓰가오카의 산이 인접한 곳은 거대한 붕괴

흔적으로 붉디붉은 모습을 보이고 긴부(金峯), 고쿠시(国 師), 고부시(甲武信), 미쿠니(三国)의 산들과 높이 솟은 정

상, 그리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산이 겹겹이 어우러진 풍경이 조망 속으로 들어왔다. 해가 기울었다. 차츰 우리는 계곡 깊숙이 들어왔음을 느 꼈다. 이따금 T 군과 멈춰 서서 강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물 을 바라봤다. 석양이 산에서 산으로 반사하며 깊어진 가을 공기 속으로 빠져들고, 멀리 숯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도 보였다. 계곡 끝난 지점에 우미노구치(海の口) 마을이 있다. 왠


지 강 소리도 귀를 따라왔다. 해가 저물고서야 우린 그 마을 에 들어갔다.

산촌의 하룻밤 산간 지방 이야기 속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청불전쟁40) 후 프랑스 병사가 사용한 군마는 일본 육군 성에 매수되어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그 가운데 종마 13마 리가 신슈로 옮겨졌습니다. 이때 기질 좋고 늠름한 알제리 종 마필이 미나미사쿠로 유입되었습니다. 지금 잡종이라 부르는 것은 주로 이 알제리종을 지칭한 것입니다. 그 후 아 메리카산 아사마호라는 유명한 종마도 들어왔고 차츰 마필 개량이 시작되었습니다. 노베야마가하라의 말 시장은 해마 다 번창해 그 풍문이 모 궁의 귀족에게 들어갔습니다. 귀족 은 육사기병대 대좌41)로 소문난 말 애호가였습니다. 그가

40) 청불전쟁: 1884년부터 1년간 청나라와 프랑스 간에 벌어진 전쟁을 말한다. 인용문은 1902년 11월 ≪묘조(明星)≫에 발표된 도손의 단편 소설 <짚신(藁草履)>의 한 구절이다. 41) 대좌(大佐): 대령에 해당한다.


아꼈던 파라리스라는 아라비아산을 종마로 미나미사쿠에 임대하자 주민의 칭송이 이어졌습니다. 파라리스 혈통을 이어받은 일년생 말이 34마리나 됐다는 소문이 자자했습니 다. 귀족의 기쁨은 어땠을까요? 결국 노베야마가하라를 찾 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나는 양복점 주인의 초대로 하룻밤을 이 야쓰가 오카 산기슭에서 보낸 적이 있었는데 때마침 그 귀족이 왔 을 무렵이었다. 조용한 산촌의 밤−강물이 범람하는 것을 피해 이 고원 산기슭으로 이주했다는 집들−풍설을 막기 위해 돌을 얹은 판자 지붕−언덕 위에도 계곡 밑에도 있는 등불−촌스런 여관 이층에서 희미한 별빛과 밤공기를 통해, 전에 가 본 적 있는 곳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이곳은 말 한두 마리 기르지 않는 집이 없을 만큼 말의 산지다. 말은 이곳 사람들에게 중요한 재산이다. 아가씨가 혼자 말을 타고 어두운 밤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닐 정도 로 소박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곳엔 작은 목욕통이 수채통 위에 설치돼 있어서−아 무리 이곳 사람들이 힘든 생활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생활을 좀 더 간편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는 하지만−올 때 마다 나를 놀라게 한다. 여기서 다시 지쿠마 강 상류에 이르


니 강 위에 핫카무라(八カ村)42)라는 촌락이 있다. 그 주변 은 신슈에서도 가장 두메산골로 흰쌀은 오직 환자에게만 먹 일 정도로 가난하고 거친 산마을 중 하나라고 한다. 우리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양복점 주인의 친척뻘 되는 사 람이 등불을 켜고 여관에 찾아왔다. 이 지역 출신으로 고모 로에 가서 오랫동안 교장선생님 댁에서 일하던 아가씨가 있 었는데 지금은 결혼해 아이까지 있다던가. 산촌과 연관해 식 모살이하는 사람들의 일생이 왠지 내 마음을 끌었다. 자네는 ‘하리코시’란 것을 먹은 적이 없을 것이다. 이름 조차 들은 적이 없겠지. 뜨거운 재 속에서 구운 메밀떡이다. 짚신 신고 모닥불에 몸을 녹이며 그 ‘하리코시’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데 이 고장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화롯가 의 즐거운 풍경이다.

고원 위에서 이튿날 아침 우리는 노베야마가하라에 올라갔다. 마음에 남

42) 핫카무라(八カ村): 8개의 촌락(根小屋村, 日出安村, 正能村, 外川 村, 騎西村, 牛重村, 常泉村, 油井ヶ嶋村)을 말한다.


아 있던 여러 기억이 떠올랐다. 파라리스 망아지 34마리, 암 말 240마리, 황마까지 합해 300여 마리의 마필이 열을 지어 통과한 것도 이 언덕길이었다. 말 시장 주변에 만들어진 임 시 가옥, 보라와 흰색으로 된 막, 여기저기 둥지를 튼 상인, 4000여 명의 군집, 그런 것이 어지럽게 머리에 떠올랐다. 그 때 나는 양복점 주인과 나란히 가을 햇살이 닿는 언덕을 걸 어 다녔는데 지금도 내 눈에 어른거리는 것은 나가노에서 지사(知事)를 따라온 키 큰 참사관이다. 나긋나긋한 하얀 손을 흔들며 유연한 구두 소리를 내는 신사였다. 그러면서 도 동작은 민첩했다. 때마침 그 무렵 나는 톨스토이의 ≪안 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었기에, 내가 상상한 브론스키43) 타입을 그 참사관과 결부해 보기도 했다. 신사가 어깨에 걸 친 쌍안경을 꺼내 야쓰가오카 쪽에 있는 목장을 멀리 바라 보던 모습은−실례지만−내가 생각하는 브론스키 그대로 였다. 당시의 혼잡함에 비하면 이번 언덕 위는 쓸쓸했다. 벌써 서리라도 내린 것처럼 잡초 잎이 노랗거나 암갈색이 된 곳

43) 브론스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건장한 체격에 준수한 용모를 한 군인으로 주인공 안나 와 불륜에 빠진다.


을 지금 밟고 있으며, 드문드문 서 있는 자작나무 줄기에 아 침 햇살이 비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이타바시(板橋) 마을로 갔다. 고원의 넓이는 사방으로 5리나 된다. 황량한 언덕에 메밀을 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조그마한 촌락을 형성했다. 이타바시는 이곳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다. 예전에 이 부근의 일을 이야기 속에 이렇게 썼다. “걷혀 가는 고원의 안개 조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산 자락이 조금 보인 야쓰가오카가 서서히 기괴한 암석을 드러 내다가 마침내 붉은빛을 띤 정상까지 보일 무렵에는 그림자 가 산에서 산으로 비춥니다. 고슈에 걸친 산맥 빛깔이 몇 번 바뀌었는지 모릅니다. 방금 보랏빛을 띤 노랑. 방금 잿빛을 띤 노랑. 갑자기 해가 들어 부부가 걷는 길을 비추기 시작했 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조각난 면 조각 같은 구름도 떠 있고 어느새 푸른 하늘이 됩니다. 아! 아침입니다. 오토코야마(男山), 긴부잔(金峯山), 온나야마(女山), 고 부시가타케(甲武信岳) 등, 산들도 모두 나타났습니다. 멀 리 그 사이를 흐르는 것이 지쿠마 강의 원천, 희미하게 보이 는 것이 상류의 촌락. 지쿠마 강은 아침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났습니다….” 부부란, 내가 이야기 속에 쓰려는 인물이다. 한때 나도 이런 문체를 즐겨 쓰곤 했다.


“통소매로 된 한텐44)에, 잠방이45), 짚신을 신고 얼굴에 수건 두른 농부는 몇 쌍의 부부 곁을 지납니다. 괭이를 어깨 에 걸친 사내도 있고, 거름통을 짊어지고 허리를 비틀거리 며 가는 사내도 있으며, 아버지 담뱃갑을 허리에 달랑달랑 차고 쫓아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기후, 잡초, 황폐함, 거칠 고 메마른 땅을 상대로 이 가을, 하루의 혹독한 노동이 시작 된 것입니다. 벌써 일하고 있는 농부도 있습니다. 검디검은 ‘놋페’ 밭 옆을 지나자 우락부락한 사내가 땀범벅이 돼 곁눈질도 하지 않고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큰 괭이를 찍어 몸을 옆으로 쓰 러뜨릴 정도로 흙덩이를 일으켰습니다. 정신이 아뜩해질 듯한 검은 흙 냄새가 분분히 코를 찌릅니다… 이타바시 마 을을 떠나 여행자 무리도 만났습니다. 고원의 가을은 지금입니다. 둘러보면 나무숲도 군데군 데. 가지란 가지는 죄다 남쪽을 향해 살아남고, 겨울에 부는 거센 바람도 염려됩니다. 자작나무는 대부분 낙엽송이 되 어 하늘 높이 우뚝 서고, 가는 잎의 버드나무는 웅크리듯 낮

44) 한텐(半天): 에도 시대 서민의 옷으로, 이후 점원이나 노동자들이 입는 짧은 겉옷. 45) 잠방이(股引): 통이 좁은 바지 모양의 남자용 작업복.


게 숨었습니다. 가을빛을 보내는 바람이 소란스레 불고 지 나자, 풀은 노란 파도처럼 나부끼며 움직이고, 떡갈나무 잎 도 뒤집혔습니다. 여기저기 보이는 큰 돌에는 가을빛이 들어 쓸쓸한 생각 마저 들게 합니다. ‘하수오꽃’ 잎을 드리우고, 홍법꽃을 피우는 데가 이곳입 니다. ‘가시바미’ 열매가 떨어지는 곳도 이 지역입니다. 여기는 또 들새도 숨어 살고 있습니다. 조릿대 잎 그늘에 둥지를 트는 종달새는, 쇠약해져 초봄 정도엔 힘도 없습니 다. 메추라기는 사람이 지나는 소리에 놀라 때때로 풀 속에 서 날아오릅니다. 볼품없는 짤막한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 려다 곧바로 툭 떨어지듯 풀 속으로 도로 숨어듭니다. 다른 수목이 누렇게 메마른 가운데 아직은 녹음이 많아 그늘을 남긴 곳도 있습니다. 그것은 물의 흐름을 여행자에 게 일러 줍니다. 그곳은 잡목이 무성하고 샘 따라 가지를 드 리운 채 깊숙이 뿌리를 적시고 있습니다. 지금은 마을마다 농부도 가을 노동에 쫓겨 고원에 말을 방목하는 사람도 적습니다. 야쓰가오카 산맥 남쪽 자락에 사는 야마나시(山梨) 농부만 겨울철 여물이 부족해 멀리 이 곳까지 말을 끌고 와 풀을 베어 모으고 있습니다….”


이는 주로 옛길에서 본 광경이다. 정취 깊은 것도 옛길이 다. 일전에 나는 새 길을 택해 돌아가는 길에 언덕 가운데를 지난 적이 있다. 그때 남녀 농부가 여물을 가득 채운 말을 이끌고 야마나시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들은 도시락을 먹으며 걷고 있었다. 물어보니 왕복 16리 길을 걸으면서 그 사이 여물을 베어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해 뜨기 전에 야마나시를 나온다 하더라도 앉아서 도시락 먹을 여유 가 전혀 없다고 한다. 말을 끌고 걸어가면서 먹는 도시락− 실로 분주한 생활의 광경이라 생각했다. 이런 말을 동행한 T 군에게 하며 옛길로 걸어갔다. 달랑 세 집뿐인 작은 마을을 벗어나자 인가는 더 이상 보이지 않 는다. 이곳 고원이 목장에 적합한 것은 여물이 많기 때문이란 다. 지금은 마필 보는 일도 적지만, 저 멀리 험악한 구릉 사 이로 돌아다니며 노는 말 떼가 보인다. 자작나무 아래쪽 줄기 잎사귀는 이미 떨어졌다. 낙엽이 나 풀이 살랑대는 소리−특히 떡갈나무 잎 우는 소리를 들 으니, 바람 차고 해가 뜨거운 고원 위로 여행 왔음을 실감케 한다. ‘말똥가리’가 야쓰가오카 하늘을 날고 있는 것도 봤다.


군데군데 있는 갈색 졸참나무 숲도 보며 지나갔다. 멀리 잿 빛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 모습은 왠지 망막한 느낌을 준다. 언덕에 있는 한 줄기 좁은 길가에 보랏빛 꽃도 피어 있다. T 군에게 물었더니 그것은 솔체꽃이라고 한다. 이 부 근은 오래된 전쟁터이기도 해서, 옛날 우미노쿠치 성주가 고슈 무사와 싸워 전사했다고 전해지는 장소도 있다. 고슈 경계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사람 키 정도 높이의 작 은 배나무를 발견했다. 잎은 다 떨어지고 붉고 작은 열매가 남아 있었다. 풀을 밟고 다가가 열매를 따 보니 아직은 떫 다. 그중에는 서리 맞아 입에 넣자마자 녹을 듯한 맛을 내는 것도 있었다. 곧바로 우리는 고슈를 향해 있는 야쓰가오카 측면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나왔다. 수목이 적은 가파른 경 사, 깊은 계곡들을 눈앞에 두고 섰다. ‘후지!’ 라고 학생들은 서로 외쳐 대며 그곳에서 높고 험준한 언 덕길을 따라 고슈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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